김민

김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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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는 국제부 기자입니다. 예술가의 이야기를 따로 모아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kimmin@donga.com

취재분야

2025-11-26~2025-12-26
미술38%
연극20%
문학/출판13%
칼럼7%
인사일반7%
언론3%
문화 일반3%
사고3%
사회일반3%
사건·범죄3%
  • 청년작가 9인의 무한 도전과 가능성

    젊은 작가를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1981년 시작한 국립현대미술관(MMCA)의 기획전 ‘젊은 모색’이 5년 만에 다시 열린다. ‘액체 유리 바다’가 제목인 이번 전시에는 김지영 송민정 안성석 윤두현 이은새 장서영 정희민 최하늘 황수연 등 작가 9명의 작품 53점이 공개된다. ‘젊은 모색’은 덕수궁미술관 시절 ‘청년작가’전으로 시작했다. 김호석 노상균 서용선 정현 구본창 서도호 문경원 최정화 이불 등 유명 작가들이 이 기획전을 거쳐 갔다. 2013년 MMCA 서울이 개관하고 전시 프로그램을 점검하면서 잠시 중단됐다가 과천에서 올해부터 재개됐다. 전시 제목은 1980, 90년대생 작가들의 자유롭고 유동적인 태도, 현실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성향, 더 넓은 바다로 뻗어나갈 가능성을 키워드로 붙였다. 전시장은 각 작가의 개인전 형식으로 작품의 맥락을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했다. 물침대에 편하게 누워 감상하는 안성석의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 가족의 다양한 형태를 추리극의 한 장면처럼 풀어낸 이은새의 회화 작품 등을 만날 수 있다. 인터넷 문화나 애니메이션적 조형 요소를 활용한 작업도 눈에 띈다. 9월 15일까지. 2000원.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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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영미 시인 “시 ‘괴물’ 발표 후회 안해… 운명이라 생각”

    “시 ‘괴물’을 발표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미안했어요. 문단 성폭력 고발을 여고생이 시작했거든요. 내가 너무 늦게 쓴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단 권력의 성폭력 행태를 폭로한 최영미 시인(58)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열린 신작 시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그는 6년 만에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1만 원·사진)을 냈다. 최 시인은 “당시 젠더 이슈에 관한 시 세 편을 써달라는 황해문화의 청탁을 받고 ‘괴물’을 쓰게 됐다”며 “후회를 아예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집에서 최 시인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된 변화와 일상을 원숙해진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보에 실었던 ‘등단소감’도 눈길을 끈다. 등단 직후 써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등단 후 문단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을 겪고 느낀 감정을 솔직히 적어 내려간 시다. 그는 “작년 봄 이후로 ‘왜 그걸(성폭력 사건) 지금 말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제가 침묵했던 것이 아니고 작가로서 표현을 했지만 시집에 넣지 못했을 뿐이다.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이번 시집에 게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집에는 ‘괴물’을 포함해 ‘미투’ 운동에 관한 시 5편을 수록했다. ‘독이 묻은 종이’에서는 고은 시인과 벌이고 있는 재판을 언급한다. “직접적인 표현이지 문학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질문에 그는 “직접적으로 느꼈다면 나에 대한 칭찬”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문학성은 잘 몰라요. 주제가 주어지면 그에 관해 쓸 뿐이에요. 사람들이 제 언어를 ‘직구’라고 느끼지만 저는 변화구도 써요. 다만 훌륭한 투수는 변화구도 직구처럼 넣잖아요? 고립무원으로 살았지만, 저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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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계 미투’ 주도 최영미 “‘성폭력 사건 왜 이제야 말하느냐’ 묻는다면…”

    “시 ‘괴물’을 발표한 것은 후회하지 않아요. 오히려 미안했어요. 문단 성폭력 고발을 여고생이 시작했거든요. 내가 너무 늦게 쓴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단 권력의 성폭력 행태를 폭로한 최영미 시인(58)이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25일 열린 신작 시집 출간 기자간담회에서 말했다. 그는 6년 만에 시집 ‘다시 오지 않는 것들’(이미·1만 원)을 냈다. 최 시인은 “당시 젠더 이슈에 관한 시 세 편을 써달라는 황해문화의 청탁을 받고 ‘괴물’을 쓰게 됐다”며 “후회를 아예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이렇게 흘러가는 것이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 시집에서 최 시인은 자신의 안과 밖에서 진행된 변화와 일상을 원숙해진 언어와 강렬한 이미지로 표현했다. 1993년 민족문학작가회의 회보에 실었던 ‘등단소감’도 눈길을 끈다. 등단 직후 써둔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은 “내가 정말 여, 여류시인이 되었단 말인가/술만 들면 개가 되는 인간들 앞에서/밥이 되었다, 꽃이 되었다/고, 고급 거시기라도 되었단 말인가”라고 말한다. 등단 후 문단 술자리에서 이뤄지는 무수한 성추행과 성희롱 발언을 겪고 느낀 감정을 솔직히 적어 내려간 시다. 그는 “작년 봄 이후로 ‘왜 그걸(성폭력 사건) 지금 말하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제가 침묵했던 것이 아니고 작가로서 표현을 했지만 시집에 넣지 못했을 뿐이다. 오해받고 싶지 않아서 이번 시집에 게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시집에는 ‘괴물’을 포함해 ‘미투’ 운동에 관한 시 5편을 수록했다. ‘독이 묻은 종이’에서는 고은 시인과 벌이고 있는 재판을 언급한다. “직접적인 표현이지 문학성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는 질문에 그는 “직접적으로 느꼈다면 나에 대한 칭찬”이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문학성은 잘 몰라요. 주제가 주어지면 그에 관해 쓸 뿐이에요. 사람들이 제 언어를 ‘직구’라고 느끼지만 저는 변화구도 써요. 다만 훌륭한 투수는 변화구도 직구처럼 넣잖아요? 고립무원으로 살았지만, 저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지금까지 저를 이끌어 준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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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율금 작가 개인전 ‘유’는 ‘나’이며 동시에 ‘당신’

    이 전시장을 찾는 관객은 한 번쯤 그림 앞으로 눈을 바짝 가져간다. 서울 종로구 갤러리밈에서 열리는 유율금 작가(61)의 개인전 ‘나는 어디에도 있으나, 사실은 어디에도 없다’ 이야기다. 작품 가까이로 다가서면 멀리서 보이지 않았던 가득 찬 글자, ‘유’가 보이기 시작한다. 40년 가까이 다른 일을 했던 유 작가는 둘째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함께 미술교습소를 찾으며 그림을 만났다. 이후 틈틈이 창고에서 그림을 그리며 자신의 다른 모습을 찾으려 했다. 화면을 채운 ‘유’는 자신의 이름이자 당신을 의미하는 ‘You’이기도 하다. 작가는 “나를 숨기면서도 드러내고 싶은 감정을 담아냈다”고 설명했다. 캔버스를 긁고 파내는 작업 속에는 작가와 그를 둘러싼 경험이 녹아 있다. 스스로 엄마가 된 후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애처로움, ‘집단’ 속에 살아가며 잃어버린 나, 그리고 공장지대에서 약사로 일하며 본 수많은 아픈 사람들까지. 작가는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손가락을 잃은 노동자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나 나나 선택에서 배제돼 수동적인 삶을 살지만, 결국은 그 고통이 아름답게 꽃피길 바란다. 그것이 나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다”라고 말한다. 2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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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불공정했던 종교재판… 사법제도는 공정할까

    12세기 한 종교재판은 죄를 부력으로 따졌다. 죄인을 물에 빠뜨려 떠오르면 유죄, 가라앉으면 무죄라는 것이다. 이는 랭스 대주교 잉크마르의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음성이 울리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없다”는 설명에 근거했다. 너무나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방식이다. 그런데 신이 모든 것의 기준이었던 시대에는 진실하고 공정한 재판으로 여겨졌다. 저자는 묻는다. 지금부터 900년 이후의 누군가는 우리의 사법제도를 어떻게 볼까? 저자는 후손들이 우리가 신성 재판을 대할 때 못지않은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우리도 직관이 몸에 배어 오류를 파악하고 있지 못할 뿐이다. 뉴욕타임스 기자 데이비드 로젠바움의 죽음이 단적인 예다. 로젠바움은 강도에게 맞아 쓰러졌지만, 옷에 묻은 토사물 때문에 주취자로 오인받아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 그를 본 구급대원, 경찰, 의료진은 토사물로 인한 혐오감 때문에 상태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이처럼 의식 너머의 여러 인지적 요인이 사법제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강압적 심문 기법, 잘못된 기억을 가진 목격자, 피의자에게 유리한 증거를 넘기지 않는 검사, 사람인 이상 편견을 가진 배심원과 판사까지. 성역으로 여겨졌던 사법제도의 구멍을 흥미진진한 문체로 파헤친다. 이를 보완할 개혁안까지 2장에 걸쳐 조목조목 제시한 수작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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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엄마로 기억된 日 배우… 그녀가 나답게 사는 법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팬이라면 늘 엄마 역할로 등장한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지난해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어느 가족’의 개봉으로 한국을 찾은 고레에다는 그녀와의 작업을 “진검승부”라고 했다. 극중 해변에서 읊조린 대사 “다들 고마웠어…”가 첫 촬영 애드리브라면서 말이다. 유쾌하면서 강단 있는, 그럼에도 헌신적이어서 그리운 엄마를 연기한 배우 키키 키린의 120가지 말을 모았다. 영화에서 단편적으로 보여준 키키 키린의 전체 모습은 더 깊고 사랑스럽다. 처음 배우를 할 땐 “그 얼굴론 시녀 역할도 못 맡는다”는 소리를 들었고 로커와 결혼해 43년 동안 별거혼을 유지하며 혼자 아이를 키웠다. 유머러스한 표지사진처럼 ‘자기답게 사는 여자’ 그녀의 말들이 단단하게 반짝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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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 그림’으로 가득 채워진 老거장의 마지막 5년

    화가 박생광(1904∼1985)은 말년에 한국적인 채색화로 화단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평생 수묵화를 그려온 작가는 눈을 감기 직전 5년여 동안 돌연 한국의 오방색과 전통에서 영감을 얻은 그림을 쏟아냈다. 외부와의 교류도 끊고 작업했던 그의 곁을 지킨 이는 아들 박정 씨(74)다. 현재 대구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박생광전’(10월 20일까지)은 15년 만의 회고전으로 회화와 드로잉 등 162점으로 구성됐다. 박 씨를 17일 만나 박 화백의 마지막에 대해 인터뷰했다. 이를 박 씨의 육성으로 재구성했다. 일본에 머무르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한국에 오셨다. 여든이 다 된 아버지가 다시 일본으로 가려 하자 가족이 붙잡았다. 며칠을 생각하던 아버지는 “해야 할 일이 있으니 가지 말까” 하더니, 일본의 그림을 가져오라 하셨다. 그때부터 아버지가 완전히 다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첫 그림은 8호 캔버스에 작게 그린 ‘무속’이었다. 이는 후에 대작으로 그려지고, 1985년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의 ‘르살롱-85: 한국 16세기부터 오늘날까지의 예술전’ 포스터가 됐다. 당시 아버지의 그림을 본 후배 작가들은 “지금 그림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왜 이상한 걸 시작하느냐”고 했다. 아버지는 생글생글 웃으며 “내가 딴생각이 있어 그렇다”고 답했다. 아버지는 내게 “게네는 모른다. 40대부터 우리 그림을 그리고 싶었는데 그걸 이제 시험해 보는 것”이라고 하셨다. 단군부터 현재까지의 역사를 담은 ‘역사 인물 시리즈’는 호암미술관에서 가져온 피카소의 ‘게르니카’ 포스터에서 시작했다. 아버지는 포스터를 보고 “역사를 그려야겠다”고 하셨다. 당시 후두암을 앓고 계셨는데 의사가 1년 혹은 2년 이상 버티지 못할 것이라며 아버지에게는 이를 전하지 말라고 했다. 아버지는 “내가 계획이 있으니 빨리 말해줘야 한다”고 독촉하셔서 당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대작 200점 시리즈를 계획하셨다며 작업실 문 앞에 ‘출입금지’를 써 붙이고 작업에 몰두하셨다. 하지만 계획의 절반밖에 이루지 못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행운이 찾아왔다. 동아시아 기획전을 위해 1984년 10월 한국에 온 아르노 오트리브 프랑스미술가협회장이 덕수궁미술관에서 우연히 아버지 작품을 봤다. 오트리브는 “이 젊은 작가는 누구냐”고 물었다. “젊은 작가가 아닌 노(老)대가”라는 답변을 듣더니 당장 작업실로 가자고 했단다. 서울 강북구 수유동 자택 겸 작업실로 온 오트리브는 “한국은 일제강점기도 겪었으니 게르니카 같은 작품이 나올 법한데 왜 풍경에만 집착하나 싶었다. 이게 바로 세계적인 그림이다”라고 했다. 그는 아버지를 파리 전시에 초청했다. 오트리브의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아버지는 대표작인 ‘전봉준’과 ‘역사의 줄기’를 제작하셨다. 차기작으로 안중근을 그려야겠다며 나를 데리고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가서 사진을 찍게 하고 스케치도 해보셨지만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1980년을 전후로 시작한 아버지의 불꽃같은 마지막 작업은 1985년 7월 막을 내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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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택가 골목길 ‘커뮤니티 바’… “소비 아닌 소통을 추구합니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핫 플레이스’가 불과 몇 년 만에 썰렁해지는 ‘젠트리피케이션(원주민 내몰림)’ 현상은 이미 오래된 문제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주된 원인으로는 무리한 임대료 상승이 꼽힌다. 장사가 잘되면 임대료가 올라 지역이 특색을 잃고 발길이 끊기는 악순환이 나타나기도 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같은 지역에 몰려든 다음, 식상해지면 떠나고 마는 ‘일회용 소비’도 문제다. 이런 가운데 과시적인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망을 형성해 오래 지속되는 공간을 실험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지난해 10월 서울 동작구에 문을 연 ‘공집합 상도’는 동네 청년이 자유롭게 오가는 ‘커뮤니티 바’다. 주거 공간이 대부분인 지역에 생긴 낯선 공간이지만, 금방 조용히 찾는 ‘혼술족’과 단골이 생겼다. 공집합을 기획한 이들은 블랭크 건축사사무소의 문승규(32) 김요한(32) 대표. 17일 두 번째로 서울 용산구에 문을 연 커뮤니티 다이닝 바 ‘공집합 후암’에서 이들을 만났다. ‘공집합’의 특징은 공간에 투자한 주민이 직접 바를 운영하는 ‘호스트 나이트’가 열린다는 점이다. 문 대표는 “단순한 술 판매가 아니라 찾는 사람이 바텐더가 되고, 매출 일부를 가져가면서 공간을 함께 소유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이런 독특한 형태는 그들이 상도동에 거주하며 얻은 경험에서 나왔다. 김 대표는 “일상에서 편의점이나 마트, 카페 외에 다니는 곳이 많지 않았다”며 “술을 마시기 위해 이태원이나 연남동 등 번화가에 가는 것이 아니라 동네에서 소비를 하며 하나의 생태계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기존 상업공간이 술의 ‘소비’에 초점을 둔다면, 공집합은 ‘소통’이 목적이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공간을 추구한다. 오래 앉아 있기 불편한 바 체어 대신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작업을 할 수 있는 평범한 테이블과 콘센트를 놓았다. 바텐더와 부담스러울 정도로 가까웠던 바는 1m 폭으로 넓혀, 원할 때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정도로 조정하고 조도도 높였다. 반려동물 입장을 허용했더니, 강아지와 산책하고 가볍게 한잔하는 사람도 생겨났다. 여성들도 안심하고 찾을 수 있어 호응이 높다고 한다. 하지만 영업 공간이 ‘소비’를 부추기지 않으면 지속 가능성이 있을까? 놀랍게도 공간이 유지될 정도의 수익은 생겨나고 있단다. 게다가 건축사사무소인 블랭크의 건축·설계 업무로 생기는 수익이 있어 ‘공집합’에서 필요 이상 이윤에 매달릴 필요가 없다. 문 대표는 “사람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블랭크가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쇼룸’의 성격이 강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블랭크는 이제 지방으로 눈을 돌리려 한다. 다음 프로젝트로 지방의 빈 공간을 쓸모 있게 변화시키는 ‘유휴’를 준비하고 있다. 올 하반기 공개를 목표로, 서울에서 지방으로 정착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서비스를 개발 중이다. 빈 공간을 커뮤니티 공간으로 전환한다는 취지로 지은 이름 ‘블랭크’의 연장선이다. 문 대표는 “과거에는 ‘짓는 건축’에 초점을 맞췄다면 이제는 ‘잇는 건축’이 중요하다고 한다. 건축이 탄생해 운영되기까지의 생애주기를 고려해야 하고, 그 점에서 ‘참여’와 ‘소통’하는 건축을 계속 고민하고 싶다”고 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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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맨드라미 위를 나는 풍경… 김지원 ‘캔버스 비행’전

    화려한 꽃 그림은 여전히 상업적으로 인기를 끄는 장르지만 누군가는 ‘이제 시장에서 꽃 그림을 그만 보고 싶다’는 불만을 털어놓기도 한다. 꽃 그림이 단순히 장식에만 쓰이는, 깊이가 없는 소비적 그림이라는 이유에서다. ‘맨드라미 작가’로 잘 알려진 김지원 작가(58)도 꽃 그림을 그린다. 그러나 화가는 꽃의 화려함보다 야생성에 집중해 주목을 받았다.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김지원의 개인전 ‘캔버스 비행’이 열리고 있다. 전시는 김 작가의 대표작인 ‘맨드라미’ 시리즈 신작을 비롯해 ‘풍경’ ‘비행’ ‘무제’ 연작 등 회화, 설치, 드로잉 작업 90여 점을 새롭게 공개한다. 2000년부터 맨드라미를 그려 온 작가는 처음에는 사람의 뇌, 소의 천엽, 고교시절 교련복 무늬를 떠올리게 하는 꽃의 독특한 형태에 끌렸다고 한다. 꽃이 “징그러워 작업실 밭에 심어놓고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렸고, 그것이 대중에게 좋은 반응을 얻어 ‘맨드라미 작가’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맨드라미의 붉은색과 꿈틀대는 형상, 그 맨드라미를 감싸는 서정적인 표현이 새로운 장식성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는 ‘캔버스 비행’이라는 제목처럼, 맨드라미가 아닌 다른 작품을 전면에 배치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붉은 기운을 쫙 뺀 맨드라미 대형 회화와 ‘비행’ 연작이 관객을 마주한다. 이전의 ‘맨드라미’나 ‘풍경’ 시리즈가 작가의 눈높이에서 그려진 그림인 데 비해 ‘비행’은 제목처럼 살짝 높은 시점에서 대상을 바라본다. 모형 비행기는 캔버스 나무틀과 다 쓴 붓, 주워 온 나뭇가지로 만들었다. 하루 종일 머무는 작업실에 모형 비행기를 매달아 놓고 그린 이 작품들은 ‘맨드라미 작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러워질 무렵인 2013년 시작했는데, 여러 작품을 한데 선보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작품들은 작업실 벽에 걸린 드로잉, 천장에 모빌처럼 달린 모형 비행기 등 여러 대상물을 정물처럼 그렸다. 모형 비행기를 매단 선이 어지럽게 얽히고 파편이 흩어져 마치 추락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작가는 “인간이 만든 무기 중 가장 거대하며 세계 경찰 미국의 힘을 보여주는 ‘항공모함’은 어찌 보면 맨드라미와 같다. 욕망과 혁명, 연정, 독사가 떠오른다”고 말했다. ‘비행’을 그리기 전 작업실 풍경을 일기처럼 메모한 ‘무제’ 드로잉 연작도 전시장에서 함께 만나볼 수 있다. 김 작가는 이메일 주소도 ‘캔버스김’일 정도로 30여 년 동안 회화에 집중해왔다. 그 결과 작가는 캔버스 속에 드러나는 대상의 형태에만 집중한 것이 특징적이다. 작가가 “맨드라미와 항공모함이 같다”고 말한 것처럼, 맨드라미의 모양과 색깔, 비행기가 어지럽게 얽힌 형태 모두 캔버스 속에 조형성을 만들어내기 위한 재료일 뿐이다. 김 작가는 인하대와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미술학교(슈테델슐레)를 졸업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제15회 이인성 미술상을 수상했고 대구미술관(2015년), 금호미술관(2011년)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전시는 7월 7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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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온몸이 푹 잠기듯… 작품 속으로 빠지다

    경기 김포시의 복합문화공간 ‘나인블럭 아트스페이스 김포’. 카페와 함께 운영되는 이곳 전시관에는 495m²(약 150평) 규모의 텅 빈 공간이 있다. 관람객이 들어서면 60여 대의 빔 프로젝터가 작동하고, 삭막했던 바닥과 벽돌은 캔버스가 된다. 흐르는 음악과 함께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 속으로 온몸이 푹 잠기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는 이 공간은 ‘반 고흐 인사이드2: 더 라이트 팩토리’ 전시의 하이라이트인 메인 미디어홀이다. 이번 전시는 2016년 옛 서울역사인 서울 중구 문화역서울284에서 석 달 동안 관객 15만 명이 찾은 ‘반고흐 인사이드’의 후속 전시다. 전시를 기획한 미디어앤아트의 지성욱 대표는 “상영되는 콘텐츠의 스토리는 물론이고 벽면과 바닥까지 5개 면에 이미지를 매핑(대상물에 영상을 비춰 다르게 보이도록 하는 기술)하는 방식도 순수 국내 기술과 자본으로 만들었다”며 “아이들과 함께 오는 주부 관객을 포함해 지역 주민들의 호응이 높다”고 말했다. 최근 ‘반 고흐 인사이드2’와 같은 ‘이머시브(immersive·몰입경험)’ 요소가 문화계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이머시브’란 ‘에워싸는 듯한’, ‘실감 나는’ 등을 의미하는 단어로, 가상현실(VR) 기기 등을 이용해 완전히 다른 공간에 푹 빠져드는 몰입적인 경험을 의미한다. 공연예술계에서는 ‘이머시브 시어터’가 오래된 화두다. 2003년 영국 극단 펀치드렁크의 ‘슬립 노 모어’를 통해 촉발된 ‘이머시브 시어터’는 무대의 경계를 없앤 체험적 요소가 특징이다. ‘슬립…’은 배우가 호텔로 개조한 여러 공간에서 연기하고 관객이 3시간 동안 공간을 넘나들며 개별적 경험으로 이야기를 좇는 구조로 미국 뉴욕과 중국 상하이에서 꾸준히 상연 중이다. 이머시브 붐은 전시, 연극, 영화 같은 장르의 경계마저 무너뜨린다. ‘레버넌트’ ‘버드맨’ 등을 연출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육체와 모래’가 대표적이다. 온두라스와 과테말라 난민들이 미국 국경을 넘는 사투를 다큐멘터리 영화, 설치미술, VR의 장르를 넘나들며 생생하게 보여준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카운티 미술관(LACMA)에서 2년 넘게 전 회 매진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영화업계는 올해를 이머시브 열풍의 분수령으로 보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세계 영화제 가운데 VR 섹션이 있는 곳은 지난해 40여 개에서 올해 110여 개로 껑충 뛰었다. 27일 개막하는 부천 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4년째 이어온 VR 섹션을 크게 확대했다. 김종민 프로그래머는 “예술의 흐름이 VR, AR(증강현실), MR(혼합현실)를 넘어 이 모든 것을 아우르는 XR(확장현실)로 가고 있다”며 “올해 개막식에 이머시브 공연인 ‘스마트폰 오케스트라’를 전진 배치하는 등 세계의 첨단 이머시브 콘텐츠들을 보여줄 예정이다”라고 했다. 이머시브 요소가 지닌 ‘체험’의 중요성은 순수 예술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달 개막한 제58회 베니스 비엔날레 국제미술전에서도 전시관을 인공 해변으로 바꿔 바닷가에 온 듯한 체험을 하게 한 리투아니아 국가관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미술그룹 랜덤 인터내셔널의 젖지 않고 빗속을 통과하는 설치 작품 ‘레인 룸’도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와 LACMA, 상하이 유즈 미술관 등을 순회할 정도로 인기다. 이머시브 열풍은 4차 산업혁명으로 가속화되고 있다.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인터넷의 발달로 문화계 콘텐츠는 정보의 일방적 전달보다 상호작용과 감각을 직접적으로 자극하는 특징이 두드러진다. VR나 AR, 3차원(3D) 프로젝션 매핑 등 다양한 기술 발전이 체험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다만 ‘이머시브’는 원천 콘텐츠를 더 풍부하게 하는 기술일 뿐 맹목적으로 추종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 전시기획사 대표는 “예술 작품은 원화로만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다”며 “기술 발전만 추구하기보다 그 안에 담을 콘텐츠에 대한 고민도 많아진다면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 kimmin@donga.com·임희윤 기자}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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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직립보행-언어-관습… 인류의 시작을 찾아서

    인간은 어떻게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을까. 고대 신화와 종교는 이 근원적 질문에 대한 답을 은유와 신앙으로 제시해왔다. 올림포스 신이 필요에 의해 인간을 만들었다거나,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베어 물었다는 식으로 말이다. 과학의 발달과 고대 문명의 발굴로 오래된 믿음엔 금이 간 지 오래다. 수천 년간의 이데올로기가 무너지고 철학가가 ‘신은 죽었다’고 외친 20세기는 그야말로 격동기였다. 저자는 역사학, 생물학 등 여러 학문의 발전을 토대로 모든 것의 시작을 탐구한다. 직립보행, 언어, 일부일처제 등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의 출발을 추적해 나간다. 교양서의 눈높이에 맞춰 여러 학문적 성과를 검토하며 저자는 설득력 있는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깨닫는 건, 여전히 인간은 그 모든 것의 시작에 대해 어떤 해답도 얻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시작에 대한 철학적 질문이 사라지지도 않고, 시작의 시대가 멀리 있어서 생긴 온갖 구멍이 메워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여러 출발을 탐구하는 끝에 도달하는 건, 변증법적으로 발전하는 줄 알았던 역사가 사실은 서로 연관성 없는 사건들이 예측 불가한 방식으로 결합한 결과라는 것이다. ‘인간은 창조의 최고봉이 아니라, 조금 주목할 만한 존재’라는 저자의 표현이 오히려 요즘에 걸맞은 격언으로 느껴진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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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폐공간을 핫 플레이스로 뚝딱 ‘황금손 듀오’

    목욕탕, 공장, 우체국, 한옥…. 버려진 공간들이 건축·디자인 듀오 ‘패브리커’의 손을 거치면 사람 몰리는 ‘핫 플레이스’로 변한다. 2015년 서울 종로구 계동의 목욕탕을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 쇼룸으로 바꿨더니, 목욕탕을 개조한 갤러리나 카페가 유행처럼 번졌다. 2016년에는 폐공장을 개조한 카페 ‘어니언(ONION) 성수’가 문을 열자 ‘필수 관광 코스’가 됐다. 최근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어니언 안국’까지 선보인 이들을 만났다. 패브리커는 디자이너 김동규(37), 김성조(36)가 결성한 팀으로 현재 ‘카페 어니언’의 아트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몬스터의 ‘항해하는 도전 정신’을 보여주려 폐선박을 쇼룸 앞에 갖다 놓는가 하면, 홍익대 입구의 새 매장 ‘퀀텀’에는 15일마다 완전히 다른 공간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눈길을 끌었다. 오래된 공간의 재생만으로 주목받은 건 아니다. 패브리커의 작업은 오랜 대화와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결과물이기에 돋보인다. 목욕탕을 개조할 때는 서울 시내 오래된 목욕탕을 샅샅이 뒤졌고, 폐선박을 가져올 때는 충남 대천에 오래된 배가 흉물로 방치된다는 기사를 보고 움직였다. 김성조는 “기존 리모델링에서는 철거가 굉장히 빨리 이뤄지는 데 반해 어니언 안국은 어떤 것을 버리고 채워야 할지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카페 내부 한쪽 벽면을 보면 아랫부분은 흙벽을 두고 위쪽은 흙벽 내부의 구조물 역할을 하는 ‘사잇간’을 노출시켰다. 또 포도청에서 한의원, 요정, 한정식집으로 바뀌며 사라져버린 중정을 되살렸다. 공간에 접근하는 방식도 새롭다. 보통 상업 공간이 상권이나 접근성을 따진 뒤 디자인을 맞추는 반면에 패브리커는 디자인에 맞는 공간을 먼저 찾는다. 카페 어니언 2호점이 미아, 3호점이 안국에 열리게 된 이유다. 만약 안국동의 한옥을 찾지 못했다면 3호점이 ‘어니언 제주’가 될 뻔했다고. 김동규는 “카페는 좋은 공간과 콘텐츠가 쏟아지는 ‘격전지’이기 때문에 음료를 팔아 돈을 버는 확장보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봤다”며 “어니언의 공간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예술가가 작업할 때의 마인드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미국 블루보틀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이다.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해외 유학 경험이 없다는 점도 독특하다. 두 사람 모두 성균관대 서피스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나의 아저씨’를 인생 드라마로 꼽고 스스로를 ‘김치 아저씨’로 칭한다. 그런데도 ‘어니언 안국’을 찾는 고객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두 사람은 ‘어니언’을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했다. “미국과 일본만 해도 브랜드가 너무 많은데, 우리는 아직 대기업만 떠올리잖아요. 서울의 독특한 커피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어요.”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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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욕탕, 공장, 한옥…그들 손 거치면 버려진 공간서 ‘핫플레이스’로

    목욕탕, 공장, 우체국, 한옥…. 버려진 공간들이 건축·디자인 듀오 ‘패브리커’의 손을 거치면 사람 몰리는 ‘핫 플레이스’로 변한다. 2015년 서울 종로구 계동의 목욕탕을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 몬스터’ 쇼룸으로 바꿨더니, 목욕탕을 개조한 갤러리나 카페가 유행처럼 번졌다. 2016년에는 폐공장을 개조한 카페 ‘어니언(ONION) 성수’가 문을 열자 ‘필수 관광 코스’가 됐다. 최근엔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어니언 안국’까지 선보인 이들을 만났다. 패브리커는 디자이너 김동규(37), 김성조(36)가 결성한 팀으로 현재 ‘카페 어니언’의 아트 디렉터로 일하고 있다. 이전에는 선글라스 브랜드 ‘젠틀 몬스터’의 ‘항해하는 도전 정신’을 보여주려 폐선박을 쇼룸 앞에 갖다 놓는가 하면, 홍대입구에 새 매장 ‘퀀텀’에는 15일 마다 완전히 다른 공간 인테리어를 선보이는 등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로 눈길을 끌었다. 오래된 공간의 재생만으로 주목받은 건 아니다. 패브리커의 작업은 오랜 대화와 많은 시간을 투자한 결과물이기에 돋보인다. 목욕탕을 개조할 때는 서울 시내 오래된 목욕탕을 샅샅이 뒤졌고, 폐선박을 가져올 때는 충남 대천에 오래된 배가 흉물로 방치된다는 기사를 보고 움직였다. 김성조는 “기존 리모델링에서는 철거가 굉장히 빨리 이뤄지는 데 반해, 어니언 안국은 어떤 것을 버리고 채워야할지 오랜 시간을 들여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카페 내부 한쪽 벽면을 보면, 아랫부분은 흙벽을 두고 위쪽은 흙벽 내부의 구조물 역할을 하는 ‘사잇간’을 노출시켰다. 또 포도청에서 한의원, 요정, 한정식집으로 바뀌며 사라져버린 중정을 되살렸다. 공간에 접근하는 방식도 새롭다. 보통 상업 공간이 상권이나 접근성을 따진 뒤 디자인을 맞추는 반면 패브리커는 디자인에 맞는 공간을 먼저 찾는다. 카페 어니언 2호점이 미아, 3호점이 안국에 열리게 된 이유다. 만약 안국동의 한옥을 찾지 못했다면 3호점이 ‘어니언 제주’가 될 뻔했다고. 김동규는 “카페는 좋은 공간과 컨텐츠가 쏟아지는 ‘격전지’이기 때문에 음료를 팔아 돈을 버는 확장보다 브랜드의 정체성이 중요하다고 봤다”며 “어니언의 공간은 단순한 인테리어가 아니라 예술가가 작업할 때의 마인드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커피계의 애플’로 불리는 미국 블루보틀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이다. 세련된 감각이 돋보이는 두 사람이지만 해외 유학 경험이 없다는 점도 독특하다. 두 사람 모두 성균관대 서피스디자인학과를 졸업했다. ‘나의 아저씨’를 인생 드라마로 꼽고 스스로를 ‘김치 아저씨’로 칭한다. 그런데도 ‘어니언 안국’을 찾는 고객의 절반 이상은 외국인. 두 사람은 ‘어니언’을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브랜드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했다. “미국과 일본만 해도 브랜드가 너무 많은데, 우리는 아직 대기업만 떠올리잖아요. 서울의 독특한 커피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 브랜드가 됐으면 좋겠어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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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겁게, 유머러스하게 그린 ‘나와 너’

    서울 강남구 포스코미술관에서 13일 개막하는 기획 초대전 ‘김상연의 그림―나를 드립니다’는 미술관 안쪽에 위치한 아카이브 공간을 먼저 보기를 추천한다. 회화, 조각 등 20여 점이 전시된 가운데 아카이브 공간이 최근 작품들의 출발점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카이브 공간에 들어서면 정면에 추사 김정희의 ‘부작란도(不作蘭圖)’가 보인다. 가까이 보면 추사의 그림을 작가가 목판으로 본떠 만든 작품이다. 김상연 작가는 “동양화 전통이 선대의 회화를 임모(臨模·모방해 그리는 것)하며 그 정신을 배웠던 것처럼 추사의 그림에서 그의 정신과 지적 유희를 학습했다”고 설명한다. 그 결과 나온 회화는 전시장의 회화 작품으로, 목판은 설치·조각 작품으로 다양하게 변주된다. 서울에서 김 작가의 개인전은 2011년 마이클슐츠갤러리에서 열린 뒤 8년 만이다. 독일 기반이었던 이 갤러리가 한국에서 철수한 뒤 작가는 중국과 독일, 한국에서 간간이 전시를 열었다. 그간 광주의 한 축사를 개조한 작업실에서 쌓아온 내공을 오랜만에 확인하는 자리다. 전시장 가운데 뫼비우스의 띠 형상을 한 붉은 조각 ‘나는 너다’는 나와 타인의 관계를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내가 온전한 자아를 갖고 타인을 이해하면 그 사람은 ‘남’이 아닌 나와 같은 존재가 된다는 의미를 담았다. 작가는 이런 공감과 이해를 통해 평화를 추구할 수 있다고 봤다. 광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경험도 작품에 반영됐다. ‘나는 너다’의 뒤쪽 벽면을 장식한 ‘풀다’는 소와 유사한 형상인 작은 동물 조각들이 떼를 지어가는 모습이다. ‘20세기 최고 퍼포먼스’라고도 불렸던 1998년 ‘정주영 소 떼 방북사건’과 2008년 광우병 사태와 연관이 있다. 고 정주영 회장이 북한에 돈이 아닌 소 떼를 데려간 상징적 의미, 그리고 광우병 사태 때 오로지 먹거리로만 소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에 받은 충격에서 탄생한 작품이다. ‘나를 드립니다’라는 제목처럼 전시 작품들은 작가가 몸으로 느낀 솔직한 감각을 때로는 무겁게,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대형 회화 작품 ‘존재’가 타인의 흔적을 짙은 먹으로 무겁게 그렸다면, 나무 조각 ‘나를 드립니다’는 작가의 몸에 고인 다른 대상의 흔적을 농담을 던지듯 재미있게 표현했다. 중국 전통 판화기법인 ‘수인판화’를 재해석한 수인회화 작품 ‘존재―손’도 처음 공개한다. 7월 9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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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심 속에 꼭꼭 숨은 ‘불친절한 공간’… 젊은 감성 유혹

    왁자지껄한 서울 남대문시장 건너편인 중구 회현동의 한 골목. 세월을 머금은 빌라와 상가, 게스트하우스가 복잡하게 얽힌 언덕길을 올라가다 보면 ‘piknic’이라고 적힌 흰 표지판이 눈에 띈다. 간판 위 얇은 화살표를 따라 발길을 재촉하면 흰 바탕 위 짙은 갈색 나무 쪽문이 보인다. 처음 이곳을 찾은 이라면 이 문은 당황스럽다. 밀어야 하나, 당겨야 하나, 아님 옆으로 밀어야 할까. 지난해 개관한 복합문화공간 ‘피크닉(piknic)’은 이 문처럼 묘한 공간이다. 사근사근하진 않지만 묵묵하게 동네를 바꾸고 있는. 오렌지 빛 타일로 꾸며진 피크닉의 건물은 1979년 완공한 한 제약회사의 본사였다. 그 뒤 ‘효림빌딩’이란 이름의 임대사무실로 쓰이다, 2017년 전시기획사 글린트가 인수하며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뼈대는 그대로 둔 채, 푸른색 기와 모양 지붕과 창문 프레임을 바꾸는 등 군더더기를 제거했다. 리모델링 설계를 맡은 NIA건축 최종훈 대표는 피크닉 자체가 오브제가 아니라 배경으로서의 건축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산을 비롯한 주변과의 조화와 건축의 원래 기능에 집중했다는 뜻이다. 그 결과 장식적 요소는 제거하고 기본만 갖춘 미니멀리즘적 공간이 탄생했다. 안내판이나 설명을 최소화한 것도 ‘의도된 불친절’이다. 피크닉은 입구가 두 군데지만 찾기가 쉽지 않다. 남산 쪽 정문은 대로에서 보이지 않고, 주차장을 넘어 내리막길 앞까지 와야 보인다. 주소를 알고 와도 헤맬 정도라 “큰마음 먹고 와야 하는 곳”이란 볼멘소리도 나온다. 이가영 글린트 기획팀장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공간 사용법을 정해 주기보다 직접 경험하고 즐기도록 하고 싶었다”며 “숨겨진 공간에서 보물찾기 하듯 각자 다른 감각을 찾았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평일 낮에도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지하 1층∼지상 4층에 들어선 전시 공간과 카페, 레스토랑, 디자인숍이 있다. 1층 카페는 ‘카페가 개념미술 작품처럼 보일 수 없을까’라는 고민에서 출발했다. 벨기에 예술가인 마르셀 브로타에스의 화분, 의자 등으로 구성된 설치 작품 ‘Un Jardin d‘Hiver’(1974년)와 드리스 반 노튼의 2004년 패션쇼 공간 테마에서 영감을 얻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시 공간은 관객 체험에 집중하는 글린트의 특징에 맞춰 평범하게 구성했다. 열리는 전시에 맞춰 매번 그 모습이 달라진다. 개관 전시로 사카모토 류이치 특별전 ‘Ryuichi Sakamoto: Life, Life’를 개최해 주목받았다. 현재는 피나 바우쉬(바우슈)와 30여 년간 협업한 무대 미술가 페터 팝스트의 전시 ‘피나 바우쉬 작품을 위한 공간들’(10월 27일까지)이 열린다. 김범상 글린트 대표는 “과감한 표현을 위해 천고가 높고 시야가 탁 트이는 전시실을 만들고 싶었는데 오래된 건물의 제약이 여전히 아쉽긴 하다”고 털어놨다. 그럼에도 전시를 위해 밑그림을 그린 공간이 운이 좋아 저절로 모습을 갖추게 된 거라고 설명했다. “전시를 보러 오는 사람들을 위한 기능을 추가하다 보니 지금의 모습이 됐습니다. 평소 좋아하던 분야와 호감 있던 사람들과의 협력이 자연스럽게 이뤄져 독립적 경쟁력을 갖춘 건축물이 된 건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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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텅 빈 고흐의 방에 그의 작품 한 점을

    “언젠가 카페에서 나만의 전시를 할 수 있을 거라 믿어.”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세상을 떠난 1890년 형 테오에게 보낸 편지엔 이런 문구가 있다. 생전 전시는커녕 그림 팔기도 어려웠던 고흐의 못 다한 꿈을 이루기 위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를 담당하는 도미니크 얀센 반고흐재단 대표(71·사진)가 7일 한국을 찾았다. 반고흐재단은 프랑스 오베르쉬르우아즈에서 고흐가 머물렀던 라부 여인숙을 관리하는 비영리재단이다. 얀센 대표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프랑스 식품기업에서 이사로 재직했던 경제인이다. 그러다 1985년 라부 여인숙 앞에서 교통사고를 당한다. 회복을 하며 고흐의 편지를 읽고 감동 받은 얀센은 바로 회사를 그만뒀다. 이후 라부 여인숙을 인수해 고흐의 마지막 흔적을 복원했다. 네덜란드 안네 프랑크의 텅 빈 집에서 받은 감동을 떠올리며, 고흐가 머물렀던 방도 관객이 상상하도록 비워 뒀다. 이 빈 공간에 고흐의 오베르쉬르우아즈 시절 그림 한 점을 걸어 놓자는 것이 ‘반 고흐의 꿈’ 프로젝트다. 얀센 대표는 “2007년 고흐가 오베르쉬르우아즈 시절 그린 밀밭 작품이 경매에 올라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사의 보증을 받고 모금을 통해 매입하기로 했지만, 이듬해 금융 위기로 원 소유자가 급히 처분해 구입에 실패했다”고 설명했다. 이번에도 여러 기업, 특히 중국에서 대규모 후원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월트 디즈니처럼 고흐를 상품화하는 전략에 사용하고 싶지 않다”며 “한국 기업 중에서도 고흐의 예술을 존중하는 곳이 있다면 함께 일하고 싶다”고 했다. 현재 프로젝트는 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기반으로 진행하고 있다. 기부자에게는 디지털 인증서, 고흐의 방 디지털 열쇠 등을 제공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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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트페어 ‘조형아트서울’ 12~16일 코엑스서

    입체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아트페어 ‘조형아트서울(PLAS)’이 12일부터 16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 국내외 86개 갤러리가 참여해 조각과 설치, 미디어아트, 회화 등 2000여 작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조각가 김영원의 미디어아트 협업 작품과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 예술가 6명(김현하 김환 이민희 정은혜 홍석민 홍세진)의 작품이 특별전을 통해 공개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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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내밀하고 솔직한 기록, 일기로 보는 여성의 삶

    공식적으로 기록되거나 출판되기 어려웠던 여성의 이야기는 내밀한 일기로 전해져 왔다. 이미 10세기 일본 궁중 여인들이 베갯머리 책으로 일기를 간직해 왔으니 짧은 역사도 아니다. 숨죽인 채 꿋꿋이 적어 내려 온 일기에 담긴 여성의 삶을 풍부한 사례를 통해 살펴본다. 저자는 수년 동안 ‘여성 일기 연구회’를 운영하며 다양한 일기를 읽었다. 일기에 적힌 건 아주 사적인 이야기지만, 그 안에 사회의 억압과 제약, 결혼과 양육, 삶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기로 등 여러 중요한 문제가 담겨 있었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이다’라는 68혁명의 문구처럼 1970년대 페미니즘 운동은 일기를 통해 여성의 글을 해석하고 비평하며 여성의 관점에서 사회를 다시 돌아봤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은 버지니아 울프의 일기, 감옥 생활 중 쓴 일기를 그대로 출판한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 등 다양한 여성 작가의 일기에서 발췌한 내용을 읽어볼 수 있다. 고독과 가난 속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는, 그가 죽은 후 남편에 의해 불리한 내용은 편집된 채 발간되기도 했다. 스스로도 오랜 시간 동안 일기를 써 온 저자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독자에게도 일기 쓰기를 제안한다. 변하지 않고 늘 내 곁에 있는 친구와도 같은 일기장을 통해 솔직한 나만의 목소리를 찾고, 억압받은 감정을 치유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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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패션디자이너 폴 스미스 “패션 아닌 내 인생을 전시합니다”

    “제 프레젠테이션이 너무 지루하진 않았죠? 다행이네요!” 훤칠한 키의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73)가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으며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5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만난 그는 자신의 커리어를 담은 전시 ‘헬로, 마이 네임 이즈 폴 스미스’(8월 25일까지) 개막으로 한국을 찾았다. “보통 패션 전시는 옷을 보여주거나 브랜드를 홍보하죠. 하지만 제 전시는 ‘폴 스미스’의 성장 과정을 담았어요. 패션보다 인생에 관한 전시입니다.” 이날 스미스는 격식 있는 감색 정장 차림이었지만, 버건디와 네이비 색이 교차된 줄무늬 양말을 신었다. 예의를 갖추면서 위트와 친근함을 잃지 않는 성격이 그대로 드러났다. 전시에도 그는 ‘겸손’을 강조했다. “전시장 초입에 1평 남짓한 제 첫 매장 보셨죠? 이 전시는 보잘것없는 상황에서 출발해 노력하며 경력을 일궈 나가는 것, 삶을 향한 적극적 태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전시장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시절부터 최근까지의 여정을 보여준다. 돈이 없어 호텔방을 쇼룸으로 사용한 기억, 첫 매장에서 기록한 메모 등을 볼 수 있다. 패션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도 있다. 스미스는 “내 커리어의 구체적인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아주 실용적인 전시”라고 했다. 독창적 아이디어가 자산인 디자이너가 민낯을 공개하는 게 껄끄럽진 않았을까. 그에게 ‘왜 비법을 공개하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많은 사람이 전시가 굉장히 솔직하다고 말해요. 하지만 사람들이 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죠. 바로 제 마음속에 들어오는 거죠. 호기심 많고 삐딱하게 보길 좋아하는 제 마음은 저만이 볼 수 있답니다.” 2013년 같은 제목으로 영국 런던디자인미술관에서 첫선을 보인 전시는, 뮤지엄 역사상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았다. 데얀 수직 관장(66)은 “내 사무실 책상이 세상에서 가장 어지럽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어지러운 스미스의 책상을 공개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에도 전시된 스미스의 책상엔 최신 기기와 오래된 라디오가 함께 놓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혼합이 인상적이다. 이 얘기를 건네자 스미스는 웃으며 재킷 안주머니에서 종이와 펜을 꺼냈다. “재밌는 관찰이네요. 전 여전히 아날로그 드로잉으로 아이디어를 생각해요. 물론 최신 기술도 활용하죠. 그러나 유명한 ‘멀티 스트라이프’도 수작업으로 만들어집니다. 종이 위에 여러 색의 털실을 감아 입체감을 만들고, 그 색들이 서로 부딪치며 아주 정확하고 환상적인 스트라이프가 탄생하죠.” 40년 동안 꾸준히 이어진 한 팬의 독특한 선물도 만날 수 있다. 의자, 스키, 스케이트보드, 닭 인형 등 온갖 물건이 박스도 없이 우표만 붙은 채 그에게 보내졌다고 했다. “손 글씨가 매번 같아 한 사람이 보낸 거라 추측할 뿐 누가 보냈는지 아직도 몰라요.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는 순수한 우정의 표현이 놀랍고 사랑스럽죠.” 그는 자신을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 늘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전시를 통해 과거를 보니 뿌듯함을 느낀다고 했다. “인내심을 갖고 천천히 무언가를 쌓아 올리는 것. 너무 많은 것들이 너무 빨리 돌아가는 지금에도 전 여전히 그런 것이 좋습니다. 젊은 디자이너에게도 좋은 영감이 되길 바랍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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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안-강인함 교차… 獨이주 한인 간호여성의 초상

    한국과 비슷하지만 어딘가 한국과는 다른 집 안 풍경. 그 한가운데 중년 여성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다. 이질적 풍경 속, 화면 아래에서 조금씩 떠있는 발이 왠지 모를 불안감마저 자아낸다. 마치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이 온전한 나의 땅이 아니라는 것처럼…. 사진작가 김옥선(52)의 신작 ‘베를린 초상’은 재독 한인 간호 여성을 조명한다. 제주에 거주하는 이방인이나 국제결혼 부부, 다문화가정, 난민 등을 담아 온 그간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이번에 공개하는 25점 사진 연작도 눈앞의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사진 기법에 바탕을 뒀다. 전시장에 줄지어 나란히 걸린 사진을 보면 이들이 이질적 환경에서도 저마다 고유의 뚜렷한 개성을 일구며 살아왔음이 드러난다. 불안한 토대일지언정 묵묵하게 자신의 환경을 지켜온 강인함이 표정에 묻어난다. 모두가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한국을 떠나 타지에서 자신의 삶을 지켜온 주인공들이다. 한인 간호 여성의 독일 집단 이주는 독일에서 의사로 활동했던 이수길 박사의 중개로 1966년 1월 시작했다. 간호 인력이 부족한 독일, 해외 경험과 돈벌이를 희망한 한국 여성, 외화가 필요했던 정부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1976년 독일 정부 정책이 변경될 때까지 1만여 명이 이주한 것으로 추산된다. 이주가 중단되고 현지 잔류, 제3국 이주, 귀국 중 선택을 해야 했다. 이 중 현지 잔류를 선택한 대부분의 간호 여성들은 독일 경제가 악화되면서 시행된 강제 귀국 조치 등의 대책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연대를 통해 자리를 지켜왔다. 그 역사의 숨소리가 작품을 통해 뚜렷하게 전해진다. 서울 강남구 아뜰리에 에르메스. 7월 28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 2019-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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