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은 다름 아닌 ‘병(病)’이었다.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죽게 만든 흑사병이 그 주인공이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중세 유럽은 1000여 년간 신(神)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의학 역시 약초(허브) 등을 이용해 내과 치료를 하는 가톨릭 사제들이 의사보다도 더 신임을 받던 시절이다. 흑사병이 유행하자 사람들은 사제의 조언대로 신에게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일반인의 사망률이 약 30%였지만 사제의 사망률은 42∼45%에 이르렀다. 교회가 치료는커녕 사제가 먼저 죽어가는 현실을 보며 대중은 교회와 신에 대한 믿음을 거두기 시작했다. 신권이 하락하는 것과 달리 왕권은 강화됐다. 흑사병 대유행을 끝낸 것은 간절한 기도가 아닌 국가가 만들기 시작한 위생과 검역 절차였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각국은 방역 시스템과 여행증명서를 발급했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 모든 공항과 항만에서 이뤄지는 검역은 흑사병 유행이 시초가 된 셈이다. 이처럼 의학의 발전으로 달라진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단국대 의대 교수이자 재치 있는 대중 강연으로 잘 알려진 저자의 경험 덕분에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술술 읽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는 실험실 속 천재적인 과학자의 노력보다 서로 다른 문명의 만남이나 사회의 급격한 변동이 의학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비롯해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로 사람과 사회, 지식까지 교차할 수 있었다. 덕분에 히포크라테스처럼 서양 의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최근 인공지능(AI) 등 첨단 의료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의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치료는 단순한 약물 투여와 수술에 그치지 않는다. 플라세보 효과처럼 의사와 환자의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치유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의료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의학의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건강은 없다”는 저자의 재치 있는 말처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의학자들의 치열한 분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가 당대 정치적 반대파였던 노론 계열의 호론 벽파의 수장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밀찰(密札·비밀편지) 9통이 새로 확인됐다. 이 편지에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공식 사료에는 기록되지 않은 기밀이 담겨 있어 정조의 통치 체제를 이해하는 새로운 자료로 평가받는다. 앞서 2009년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밀찰 297통이 발견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1923호(정조어찰첩)로 지정된 바 있다. 정조의 밀찰을 소장 중이던 심환지의 후손 청송 심씨 문중에서 최근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에게 편지 분석을 의뢰해 존재가 알려졌다. 안 교수는 정조의 비밀편지를 분석한 논문 ‘정조대 군신의 비밀편지 교환과 기밀의 정치운영’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학술지 ‘정신문화연구’에 실을 예정이다.○ 밀찰 보안에 극도로 예민했던 정조 “김매순처럼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나는 자가 감히 선현(송시열)을 모욕해 붓끝에 올리기까지 하니, 제멋대로 내버려 둔다면 조정에 어른이 있다고 하겠는가?” 1799년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한 편지에는 분노로 가득 찬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호론의 지도자였던 한원진(1682∼1751)을 이조판서로 추증(追贈·사후에 직급을 높임)하는 안건으로 호론과 낙론이 팽팽한 논쟁을 펼치고 있었다. 정조는 낙론을 이끌던 김조순(1765∼1832)을 통해 반대 여론을 가라앉히는 등 중재에 나섰다. 그런데 스물네 살의 신진 관료였던 김매순이 상소문을 써 낙론의 반발 심리를 부추기자 이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기존에 알려진 정조의 정치적 성향과 다른 모습이어서 주목된다. 18세기 조선의 유학계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색채를 보인 낙론 계열과 정통 성리학 체계를 고수한 호론으로 분화됐는데 정조의 정치적 성향은 낙론에 가깝다고 여겨져 왔다. 안 교수는 “정조실록 등 공식 기록에서는 정조가 호락논쟁에 중립을 지켰다고 나와 있지만 감정의 민낯을 보여주는 밀찰에서는 오히려 호론에 동조한 모습”이라며 “‘만류할 때는 반드시 경의 뜻이라 말하고,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등 자신의 언급이 공개되면 파장이 클 것으로 정조도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밀찰의 성격상 정조는 보안을 극도로 중시했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겸종(겸從·잡일을 하거나 시중 드는 사람) 가운데 잡류가 많다고 들었으니 솎아낼 방도를 생각해 더욱 치밀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만기친람형 정조의 통치술 “정약용은 문벌과 글재능은 합당하지만 외조부의 신주를 불태워 땅에 묻을 때 일언반구도 애통해하며 만류한 일이 없습니다. 여론은 모두 그를 사학(邪學)에 물들었다고 하니 청요직에 선발해서는 안 됩니다.”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밀찰과 함께 이번에 새롭게 연구된 박종악(1735∼1795)이 정조에게 보낸 비밀편지 내용의 일부다. 노론 출신으로 1792년 우의정을 지낸 박종악이 다산 정약용(1762∼1836)에 대한 인사정보를 보고한 것이다. 당시에 고위관료로 진출하는 발판인 홍문관 관원의 선정 문제로 노론과 남인, 소론 계열 간에 팽팽한 기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조는 이 같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인 계열인 정약용을 홍문관에 등용시켜 이후 정국을 급속히 냉랭하게 만들었다. 안 교수는 “신진 관료에 대한 인사 추천권은 국왕이 아닌 관료들의 협의로 진행한다는 법적 절차가 있었지만 정조는 소소한 국정에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했다”며 “정조의 밀찰은 노련하게 책략을 구사한 소통 방법이었지만 과도한 비밀주의에 의존한 정치 형태라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 역시 크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60년대부터 20여 년간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추억이 깃든 옛 성무교회 건물(사진)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위치한 ‘서울 구 공군사관학교 교회’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성무교회로 불렸던 이 건물은 1964년 옛 공군사관학교 교정(현 보라매공원) 내에 지어졌다. 최창규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당시 미 공군 장병과 국내외 신자들의 성금 2만8000달러를 모아 만들어졌다. 급경사로 디자인된 지붕형태와 수직성을 강조한 내부 공간 등은 당시 일반적인 교회 건축 형식에서 벗어난 독특한 건축 기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5년 공군사관학교가 충북 청원군으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창고처럼 사용되다 2013년부터 지역문화예술 공간인 ‘동작아트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과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 등 2건을 등록문화재 제740, 741호로 각각 등록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극락(極樂)에는 삶은 돼지머리와 해맑은 삼해주(三亥酒)가 있는가? 만일 그런 것들이 없다면 비록 극락이라 하더라도 나는 가지 않겠네.”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1420∼1488)은 ‘돼지’를 극락세계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다. 조선시대에도 잔칫날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돼지에 관한 즐거운 이야기는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돼지꿈을 꿨다면 복권 당첨 같은 대길(大吉)을 바란다. 이처럼 돼지는 풍요와 다산(多産), 행운 등 긍정적 인식이 가득한 동물이다.》 돼지해는 12년마다 돌아오지만 2019년 기해(己亥)년은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조합한 간지(干支)력을 사용하는데, 10개의 천간에서 ‘기(己)’는 노란색을 나타낸다. 2007년 정해년도 황금돼지해로 알려졌지만 사실 ‘정’의 색상은 적(赤)색이다. 12년 전 ‘붉은돼지해’가 황금돼지해로 둔갑한 건 빨간색을 부(富)와 동일시하는 중국 문화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 인간과 돼지의 2000년 동고동락 집을 뜻하는 한자 가(家)는 지붕 ‘宀’ 밑에 돼지 ‘豕’가 함께 사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다. 지금도 전북 남원지역과 제주도, 일본 오키나와, 중국 산둥(山東)성 등지에는 친환경돼지 변소인 ‘돗통시’가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 돼지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에는 “주호(州胡·제주도)에서는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어 철기시대 이후 돼지의 완전한 가축화가 이뤄진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재래종 돼지는 조선 후기까지 사육했지만 이후 외래종이 들어오며 점차 사라졌다. 현재 국내에서 주로 사육하는 돼지는 랜드레이스종(덴마크)과 요크셔종(영국) 등 새끼를 많이 낳고 생장속도가 빠른 외국 품종이 대다수다.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토종 돼지로는 경북 김천시의 지례돈(知禮豚)과 경남 사천시의 사천돈(泗川豚) 등이 있다. 곽승현 선진기술연구소 양돈기술개발팀장은 “우리나라 재래 돼지는 서양 돼지보다 몸집은 작지만 지방 함량이 높아 고기 맛이 우수하다. 고급육 생산을 위한 주요 품종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며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양돈장이 증가하는 등 동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한국 양돈업계에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돼지를 키우는 집은 줄어들었지만 ‘돼지저금통’ 등 재물과 관련한 상징물로 돼지는 여전히 함께한다. 돼지 모양 저금통의 기원은 18세기 잉글랜드. 한 도공이 ‘pygg’라는 오렌지색 점토를 ‘pig(돼지)’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돈(豚)-돈(金) 발음 같아, 복의 상징으로 신화와 설화 속 돼지는 중요한 장소를 알려주는 능력자 혹은 신의 제물로 등장한 경우가 많다. ‘삼국사기’에는 수도를 점지하는 돼지의 신성한 모습이 표현돼 있다. 이 책의 고구려 유리왕편에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 이를 잡아오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관리가 국내성 위례암에서 겨우 잡았는데, 이곳의 산세와 지세가 뛰어나 왕에게 알려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지금도 고사나 굿을 지낼 때면 돼지머리를 빼놓지 않는데 조선시대 기록인 ‘동국세시기’에도 12월 납향(한 해 동안 겪은 일을 고하는 제사)의 제물로 산 돼지를 바쳤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돼지가 재물과 복의 상징물로 여겨진 것은 집안의 중요한 자산인 데다 ‘돼지 돈(豚)’과 ‘돈(金)’의 발음이 같은 이유도 있었다”며 “강한 번식력을 가진 돼지가 풍년이나 번창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극락(極樂)에는 삶은 돼지 머리와 해맑은 삼해주(三亥酒)가 있는가? 만일 그런 것들이 없다면 비록 극락이라 하더라도 나는 가지 않겠네.”(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1420~1488)은 ‘돼지’를 극락세계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다. 조선시대에도 잔칫날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돼지에 관한 즐거운 이야기는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돼지꿈을 꿨다면 복권 당첨 같은 대길(大吉)을 바란다. 이처럼 돼지는 풍요와 다산(多産), 행운 등 긍정적 인식이 가득한 동물이다. 돼지해는 12년마다 돌아오지만 2019년 기해(己亥)년은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조합한 간지(干支)력을 사용하는데, 10개의 천간에서 ‘기(己)’는 노란색을 나타낸다. 2007년 정해년도 황금돼지해로 알려졌지만 사실 ‘정’의 색상은 적(赤)색이다. 12년 전 ‘붉은 돼지해’가 황금돼지해로 둔갑한 건 빨간색을 부(富)와 동일시하는 중국 문화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 인간과 돼지의 2000년 동고동락 집을 뜻하는 한자 가(家)는 지붕‘宀’ 밑에 돼지‘豕’가 함께 사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다. 지금도 전북 남원 지역과 제주도, 일본 오키나와, 중국 산둥(山東)성 등지에는 친환경적 돼지 변소인 ‘돗통시’가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 돼지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에는 “주호(州胡·제주도)에서는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어 철기시대 이후 돼지의 완전한 가축화가 이뤄진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재래종 돼지는 조선 후기까지 사육했지만 이후 외래종이 들어오며 점차 사라졌다. 현재 국내에서 주로 사육하는 돼지는 랜드레이스종(덴마크)과 요크셔종(영국) 등 새끼를 많이 낳고 생장속도가 빠른 외국 품종이 대다수다.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토종 돼지로는 경북 김천시의 지례돈(知禮豚)과 경남 사천시의 사천돈(泗川豚) 등이 있다. 곽승현 선진기술연구소 양돈기술개발팀장은 “우리나라 재래 돼지는 서양 돼지보다 몸집은 작지만 지방함량이 높아 고기 맛이 우수하다. 고급육 생산을 위한 주요 품종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며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양돈장이 증가하는 등 동물복지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한국 양돈업계에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돼지를 키우는 집은 줄어들었지만, ‘돼지 저금통’ 등 재물과 관련한 상징물로 돼지는 여전히 함께 한다. 돼지모양 저금통이 유래한 기원은 18세기 잉글랜드. 한 도공이 ‘pygg’라는 오렌지 색 점토를 ‘pig(돼지)’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돈(豚)-돈(金) 발음 같아, 복의 상징으로 신화와 설화 속 돼지는 중요한 장소를 알려주는 능력자 혹은 신의 제물로 등장한 경우가 많다. ‘삼국사기’에는 수도를 점지하는 돼지의 신성한 모습이 표현돼 있다. 이 책의 고구려 유리왕 편에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 이를 잡아오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관리가 국내성 위례암에서 겨우 잡았는데, 이곳의 산세와 지세가 뛰어나 왕에게 알려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지금도 고사나 굿판을 지낼 때면 돼지 머리를 빼놓지 않는데 조선시대 기록인 ‘동국세시기’에도 12월 납향(한 해 동안 겪은 일을 고하는 제사)의 제물로 산돼지를 바쳤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돼지가 재물과 복의 상징물로 여겨진 것은 돼지가 집안의 중요한 자산인 데다 ‘돼지 돈(豚)’과 ‘돈(金)’의 발음이 같은 이유도 있었다”며 “강한 번식력을 가진 돼지가 풍년이나 번창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우리나라 역사속 기해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돼지가 길상(吉祥)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덕분인지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기해년만큼은 평화로운 시기가 많았다. 조선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1899년도 무탈했다. 인천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국내 최초의 철도 경인선과 서울~인천 간 시외전화가 개통되는 등 근대 문물이 유입됐다. 다만 최초의 민간 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이 대한제국에 대한 비판 기사로 창간 4년 만에 폐간됐다. 큰 규모 전쟁은 황금돼지해를 비켜갔다. 1599년은 왜구가 조선을 침략해 1592년부터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6년 동안 전쟁이 끝난 다음해였다. 그렇다고 아주 사건이 없진 않았다. 1839년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다. 서양인 신부 3명을 비롯해 천주교인 119명이 처형되거나 투옥되는 등 ‘기해박해’로 나라가 뒤숭숭했다. 세도가문이자 천주교에 관용적이었던 안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얻고자 한 풍양 조씨가 일으킨 사건으로 이후 조정의 권력은 풍양 조씨에게 넘어갔다. 1659년은 유명한 ‘예송(禮訟) 논쟁’이 벌어진 해다. 조선 효종이 승하한 뒤 조정은 그의 의붓어머니(인조의 계비) 자의대비 조씨가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할지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효종이 인조의 둘째 아들로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고려해 조씨가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서인의 주장과, 맏아들이 아니더라도 왕실 종통(宗統)을 이었으면 당연히 적자(嫡子)로 인정됐으니 3년을 입어야 한다는 남인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1419년은 조선왕조 500년 간 유일하게 타국을 침범해 전쟁을 벌인 해이기도 하다. 왜구의 간헐적 약탈에 시달리던 조선은 삼군도제찰사 이종무로 하여금 227척의 함선과 1만7000여 명의 수군을 이끌고 대마도를 공격하게 했다. 그는 대마도 앞바다에 함선을 정박하고 2주간 전투를 벌였고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宗貞盛)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귀환했다. 향가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이 신라에 나타난 해는 879년 기해년이다. 1899년에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등이 태어났다. 스페인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AC 밀란’이 창단된 해이기도 하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올해 12월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이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번 달 1∼29일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47.2%를 기록했다. 현재 추세라면 47% 안팎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신과 함께―죄와 벌’과 ‘1987’ ‘강철비’ 등이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 영화 점유율이 78.2%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12월은 한국 영화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시기로, 외화에 점유율 우위를 내준 것은 2011년(37.4%) 이후 7년 만이다. 올겨울 개봉한 ‘마약왕’(175만 명), ‘스윙키즈’(113만 명) 등 대작들이 흥행에 고전하고 있는 탓이 크다. 한편 2018년 연간 한국 영화 점유율은 ‘신과 함께’ 시리즈 등의 흥행으로 29일 기준 51.1%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 8년 연속 과반을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2014년(50.1%) 이후 최저 수준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맑은 새벽 우물에 양치질하니 우물 물빛이 해가 타는 것 같이 붉네. 꽃 무리가 시골집을 비추니 아침 해 조각이 노을처럼 붉네.”(완당전집·阮堂全集 중) 조선 후기 문인이자 실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저서 ‘완당전집’에서 아침의 풍경을 이같이 기록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처럼 하루라는 일상을 300여 점의 유물과 영상 등으로 소개하는 독특한 전시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1년여 간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최근 재개관한 상설전시실 1관 ‘한국인의 하루’다. 1993년 민속박물관이 지금 자리인 경복궁 경내에 문을 연 뒤 1관은 ‘한민족 생활사’라는 상설전시를 진행해왔다. 5000년에 걸친 한민족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좁은 공간 탓에 우리나라의 다채로운 문화를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져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군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치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관(衣冠)을 가지런히 하고, 태도를 존엄하게 하기 위함이다.”(사소절·士小節)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말처럼 의관정제(衣冠整齊)는 아침을 시작하는 사대부들에게 가장 큰 덕목이었다. 이와 관련된 유물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자녀들에게 당부의 말을 적은 서첩인 ‘하피첩(霞피帖·보물 제1683-2호)’ 원본과 조선 후기 선비들의 생활지침서인 ‘일용지결(日用指訣)’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집안일부터 농사일까지 낮 시간은 생산이 일어나는 활기찬 시간이다. 박명배 소목장(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과 박문열 두석장(제64호)이 공방에서 전통 가구와 장식을 만드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즐길 수 있고, 특색 있는 전국 팔도 항아리들도 한곳에 모아 전시한다. 해가 떨어진 밤하늘은 별들이 자리를 대신한다. 이번 전시에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서양의 천문도인 신법천문도가 8폭 병풍에 동시에 그려져 있는 ‘신구법천문도(보물 제1318호)’를 공개한다. 전시실 천장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겨울철 별자리를 키오스크를 통해 구현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박물관은 앞으로 상설전시실을 계절 변화에 맞게 3개월마다 전시품을 교체할 계획이다. 김창호 학예연구사는 “상설전시임에도 특별전처럼 전시 내용을 지속적으로 바꿔 변화무쌍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줄 방침”이라며 “1년을 주제로 하는 상설전시 2관 ‘한국인의 일상’과 3관 ‘한국인의 일생’까지 한국인의 삶과 관련된 전시를 한꺼번에 즐기면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미국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 사건, 닉슨의 워터게이트, 베트남 전쟁까지…. 1994년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 ‘포레스트 검프’는 지능지수(IQ)가 75에 불과한 주인공 톰 행크스(검프 역)가 현대사의 주요 장면에 등장해 흐름을 바꿔놓는다는 흥미로운 소재의 영화다. 물론 100% 허구의 이야기다. 합스부르크 가문의 부상, 가톨릭교회의 대금업 금지 철폐, 면죄부 판매와 종교개혁, 복식부기의 전파 등 15∼16세기 중세 유럽의 흐름을 완전히 바꿔놓은 이 같은 사건들에서 공통적으로 한 사람이 등장한다면 어떨까. 영화가 아니라 실재한 역사다. 바로 이 책의 주인공 야코프 푸거(1459∼1525)다. 푸거는 독일에서는 역사상 최고의 사업가로 여겨지지만,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현대 자본주의의 선두 주자인 미국에서조차 생소한 인물로 여겨졌다. 이 책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의 유럽지사에 기자로 근무했던 저자가 2015년 영어권에 본격적으로 푸거를 소개한 것이다. 1525년 푸거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의 재산은 유럽 내 총생산의 2%에 육박할 정도였다. 그러나 처음부터 금수저로 출발한 것은 아니었다.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지역의 평민 집안에서 7형제 중 막내로 태어난 푸거가 물려받은 것은 작은 규모의 직물 매매였다. 그는 새로운 방식의 수익 모델을 구상한다. 투자에 가까운 채권 방식의 대출이었다. 당시 오스트리아의 슈바츠에 위치한 은 광산은 유럽 최대 규모를 자랑했다. 흥청망청 생활로 유명한 지기스문트 대공이 이 지역을 통치하고 있었는데 푸거는 그에게 거액을 빌려주고, 그 대신 슈바츠의 모든 수입을 갖기로 하는 조건을 내걸었다. 비슷한 방식으로 당시 오스만튀르크의 침공이 빈번했던 헝가리의 구리 광산 채굴권을 독점해 나갔다. 구리는 당시 전쟁의 주요 무기인 대포와 소총의 주원료였기 때문에 푸거는 막대한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거부로 성장한 푸거는 가톨릭 교회와 역사적인 협상에 나선다. 당시까지 고리대금을 죄악시한 교회의 방침을 바꾸기로 한 것. 이를 위해 오래전부터 후원해 온 젊은 신학자들을 통해 이론적 배경을 마련하고, 주교 교황 등 교회 최고위층에 서슴없는 로비까지 한다. 결국 교황 레오 10세는 이자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칙령에 서명을 했다. 금융이 종교의 굴레에서 벗어나 현대 은행의 제도적 기반이 조성된 것이다. 푸거는 당시 유럽의 정치까지 쥐락펴락했다. 1523년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에게 “소신이 없었다면 폐하께서는 황제관을 쓰지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빌려드린 돈은 이자까지 계산해 지체 없이 상환토록 명하소서”라는 독촉장을 보내기도 했다. 당시 황제는 선거로 뽑았는데 카를 5세가 막대한 선거 비용을 푸거에게서 빌려왔기 때문이었다. 책은 역사상 처음으로 자본이 정치와 종교의 영향력을 압도하기 시작했던 15∼16세기 유럽을 푸거라는 한 자본가를 통해 비추고 있다. 탁월한 글 솜씨에 풍부한 사료 분석이 더해져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흥미로운 경험을 선사하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약 2000년 전인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호형대구(虎形帶鉤·호랑이모양 띠고리·사진)가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경산 신대리 1호 목관묘 출토 청동호랑이모양 띠고리’와 조선 초기 불경인 ‘불정심 관세음보살 대다라니경’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26일 밝혔다. 호형대구는 의복과 칼자루 등에 부착한 장식품이다. 경산 신대리 호형대구는 2007년 영남문화재연구원이 발굴해 현재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 중인데 보존 상태가 좋아 가치를 인정받았다. 전남 장흥 묘덕사 소장품인 ‘불정심 관세음보살 대다라니경’은 몸에 지니거나 독송하면 관세음보살의 영험하고 신비한 힘을 빌려 액운이 사라진다는 불교 경전이다. 3권 1첩으로 이뤄진 수진본(袖珍本·소매에 넣도록 작게 만든 서적)으로, 1425년(세종 7년)에 제작됐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 충남 보령시 오천면은 인구가 줄어들자 지역의 신문지국이 폐쇄돼 주민들이 신문을 볼 수 없어 불편을 겪었다. 2013년 ‘오천 작은 도서관’이 개관하면서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신문 읽기 모임을 만들었다. 문예 한글교실과 명화 그리기 등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도 함께 열리면서 도서관은 오천면의 ‘문화 사랑방’으로 거듭났다. #2. 경기 양주시에 위치한 육군 25사단 소속 장병과 가족들이 거주하는 미소마을 관사아파트. 주변에 보이는 건 논과 밭뿐이었다. 지난해 아파트 단지 안에 ‘미소마을 작은 도서관’이 문을 열었고, 매달 새 책이 확충되면서 군인 자녀들의 새로운 아지트가 됐다. 이처럼 전국의 문화 소외지역과 오지에 ‘작은 도서관’ 76개를 조성한 기업이 있다. 2008년부터 11년째 독서문화진흥사업을 펼치고 있는 KB국민은행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묵묵히 작은 도서관을 후원해 온 국민은행은 올해 8월 제24회 독서문화상 시상식에서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국민은행 본점에서 19일 만난 성채현 국민은행 홍보·브랜드 총괄상무 겸 소비자브랜드전략그룹 대표(53·사진)는 “디지털 시대로 변해가지만 책과 같은 아날로그 원천 콘텐츠에 바탕을 둔 감성과 지성 없이는 사회가 발전할 수 없다”며 “청소년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작은 도서관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질 좋은 독서 프로그램을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우선 작은 도서관 한 곳을 지을 때마다 1억여 원을 투자해 1000권가량의 책과 관련 비품을 지원한다. 이후 매년 200∼300권의 신간 도서 구입비를 별도로 후원하는 한편 작가와의 만남과 동화 구연, 책을 읽은 후 연극을 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서관별로 연간 3회 이상 제공하고 있다. 성 상무는 “작은 도서관이 책을 읽고 추억을 만들며 주민들이 함께 어울리는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작은 도서관은 형태도 다양하다. 오지나 전방에 근무하는 군인과 가족들을 위한 작은 도서관 15곳을 설립했고, 병사들을 위한 ‘병영독서카페’는 올해까지 11개 관을 만들었다. 2016년부터는 국민은행 여자농구단 ‘KB스타즈’가 사용한 버스를 개조해 만든 1000여 권의 책을 갖춘 이동식 도서관 ‘책 읽는 버스’가 해수욕장, 고속도로 휴게소, 연평도 등 전국 방방곡곡을 찾아다니고 있다. 성 상무는 “상대적으로 문화시설이 부족한 지방자치단체에서 작은 도서관 건립을 요청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주민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며 “앞으로도 작은 도서관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누구의 얼굴일까. 전남 함평군 금산리 방대형(方臺形) 고분에서 20일 열린 전문가 현장설명회에서는 한 점의 토기가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마치 마스크를 쓴 것 같은 사람 얼굴 모양을 본떠 만든 토기가 공개됐기 때문. 평행하게 배치한 눈과 얼굴의 양쪽에는 귀로 추정되는 원형의 투공(透孔) 흔적이 선명했다. 코 주변에는 수염을 표현한 듯 비스듬히 음각된 6개의 선까지. 얼굴을 토기로 형상화한 인물식륜(人物埴輪)이었다. 한반도 유적지에서 처음으로 일본 고분(古墳)시대(3∼7세기) 대표적 유물인 인물식륜이 발견됐다. 5세기 말∼6세기 중엽 마한의 지배층 무덤으로 추정되는 함평 금산리 방대형 고분에서다. 올해 10월부터 이곳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있는 전남문화관광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는 “2014년 시굴조사에서 동물을 표현한 형상식륜이 처음 출토된 데 이어 올해 학술발굴조사에서 우리나라 유적지에서 최초로 인물식륜을 발견했다”며 “고대 한일 관계사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 확인된 인물식륜은 일본 돗토리(鳥取)현에서 출토된 것과 유사하게 머리 부분이 좁아지는 삼각형 형태다. 일본의 오사카, 나라 등지에서 다수 출토된 식륜은 고분시대 일본의 지배층 무덤 주위를 장식했던 토기를 일컫는다. ‘일본서기’에는 식륜의 유래에 대해 “순장 풍습이 있던 야마토 시대에 땅속에 묻힌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고 왕이 슬퍼하자 산 사람 대신 흙으로 만든 사람을 묻게 했다”고 기록돼 있다. 말의 얼굴, 등, 다리와 관련된 마형(馬形)식륜 1점도 함께 출토됐다. 앞서 2014년 조사에서는 닭의 머리 부분을 표현한 식륜이 발견된 바 있다. 사람, 동물, 집 모양 등 다양한 토기를 묻어 수장자의 권위를 강조한 고대 일본의 독특한 장례 유물이 한반도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자연스레 식륜이 묻힌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연구소 측은 6세기까지 백제의 세력권에 흡수되지 않고,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독자적인 영향력을 행사한 마한 세력의 활발한 국제 교류를 보여주는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서는 5세기 중국 남조 시대의 도자기가 함께 발견되기도 했다. 이범기 전남문화재연구소장은 “일본의 일부 학계에서 주장하는 임나일본부설이 맞으려면 통치 권력을 보여주는 여타 유물이나 고분군 등이 발견돼야 하는데 고고학적 증거가 전혀 없다”며 “일본의 규슈 지역에서 마한 계통의 토기와 주거지 유적이 발견된 점을 고려할 때 마한이 동아시아 각 국가와 적극적인 교역을 펼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자라병, 동물형상 토기도 함께 나왔는데 4, 5세기 일본 고분에서 주로 출토되는 단단한 재질의 스에키(須惠器) 토기 계열로 확인됐다. 유물을 검토한 서현주 한국전통문화대 융합고고학과 교수는 “한반도 토기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의 스에키 또는 스에키 계열의 토기로 보인다”며 “일본의 공인들이 한반도로 넘어온 것인지 일본에서 만들어진 토기를 가져온 것인지에 대해서는 추가적인 규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함평 방대형 고분은 무덤 표면에 흙이 흘러내리지 않도록 돌을 깔아 마무리하는 즙석(葺石)분이다. 최대 길이 51m, 높이 8.9m로 현재까지 보고된 즙석분 가운데 가장 큰 규모다. 이 소장은 “영산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마한이 4세기 백제의 근초고왕 대에 병합된 것이 아니라 6세기까지 강력한 세력을 유지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함평=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제55회 동아연극상에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극단 동, 남산예술센터)과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프로젝트아일랜드)가 작품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대상 수상작은 나오지 않았다. 동아연극상 심사위원회(위원장 윤광진)는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에서 24일 최종 심사를 진행했다. 올해 본심에 오른 작품은 21편. 심사위원들은 “올해 연극계 안팎에서 미투 논란 등 이슈가 많아 전반적으로 활동이 침체됐다. 작품에 오롯이 에너지를 쏟기 어려운 분위기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눈에 띄는 연극이 줄었다”고 총평했다. 한편으로는 “젊은 창작자들이 약진한 점은 고무적이다”라고 평가했다. 장강명 작가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경사진 두 개의 달 위를 표현한 무대에서 배우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가 뒤섞인 이야기를 펼치는 독특한 구성의 작품이다. 심사위원들은 “추상적인 소설의 내용이 신체행동 연극을 주로 펼치는 극단 동의 장점과 잘 결합된 수작”이라고 평가했다. 함께 작품상을 받은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미국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소설 ‘발기, 사정, 노출 그리고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현대인의 광기를 발칙한 화법으로 그렸다. 심사위원들은 “소외된 현대인의 모습을 복합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관객들이 몰입할 수 있게 입체감 넘치는 방식으로 잘 전달했다”고 평했다. 연기상은 ‘텍사스 고모’에서 멕시코 아줌마와 소철 할머니 역을 비롯해 ‘운명’에서 인근 여인 갑 역을 맡아 열연한 이수미 씨, 연극 ‘사막 속의 흰개미’에서 주인공 공태식 역을 맡은 강신구 씨에게 돌아갔다. 심사위원들은 “이수미는 작품마다 매번 새로운 질감과 에너지로 배우의 존재감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준다. 강신구는 본인만의 ‘배우 예술’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하는 탁월한 연기를 선사했다”고 평가했다. 새개념연극상은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 다원예술 감독에게 돌아갔다. 김 감독은 미술과 공연을 결합한 작품을 선보여 연극의 외연을 확대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희곡상은 ‘텍사스 고모’의 윤미현 작가가 받았다. 신인연출상은 ‘율구’(극단 파수꾼)의 이은준 연출가, 무대예술상은 ‘오슬로’(국립극단), ‘돼지우리’(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무대 디자인을 맡은 이태섭 감독이 수상자로 선정됐다. 유인촌신인연기상은 1인극 ‘임영준햄릿’에서 햄릿 역을 맡은 임영준 씨와 작품상 수상작인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에서 능청스러우면서도 진지한 연기를 보여준 남동진 씨에게 돌아갔다. 특별상은 도서출판 ‘연극과 인간’의 박성복 대표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20년 동안 묵묵히 연극 관련 국내외 서적과 희곡집을 대가 없이 출판하는 등 한국 연극을 이끈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고 평가했다. 시상식은 내년 1월 14일 오후 3시 서울 중구 명보아트홀에서 열린다. ▼“하와이 이주史 배경… 역사적 사실의 힘이 연극을 이끈 원동력”▼‘운명’으로 연출상 김낙형 씨“유난히 더웠던 올여름, 뜨거운 열정으로 함께 고생했던 배우와 제작진이 너무 보고 싶습니다.” 연극 ‘운명’으로 제55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수상자로 선정된 김낙형 연출가(48·사진)는 “실험연극이라는 장르적 특성으로 인해 극단 단원들이 힘들었을 텐데 묵묵히 함께 와줘서 고맙다”며 “함께 연극을 하고 있는 동료이자 인생의 반려자인 김성미 배우에게 큰 선물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운명’은 국립극단에서 진행하는 근·현대 희곡 시리즈 연극의 9번째 작품이다. 이화학당 출신의 신여성 박메리가 아버지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해 하와이에 살고 있는 양길삼과 사진만 본 뒤 결혼하며 펼쳐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김 연출가는 “구한말 하와이 이주라는 실제로 있었던 사실을 다뤘다”며 “역사적 사실이 갖는 힘이 연극을 이끈 원동력이었다”고 밝혔다. 원작인 윤백남(1888∼1954)의 동명희곡은 20여 페이지에 불과할 정도로 짧다. 김 연출가는 “추가로 사료를 뒤지며 행간을 채웠고, 배우들과 함께 당대 이주민의 삶을 고민해 낸 결과”라며 “현재 대한민국의 화두인 난민, 여성 문제 등과 연결되며 관객들이 동시대성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배우 출신인 김 연출가는 1999년 ‘훼미리 바게뜨’를 통해 작가로 데뷔한 뒤 2001년 ‘별이 쏟아지다’ ‘나의 교실’ 등의 연출을 맡으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최근 몇 년간 청주대 대학원에서 연극학 석사 과정을 이수하며 충전과 성숙의 시기도 보냈다. 김 연출가는 “올해 3월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연출부에 참여해 국내외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며 “대학원 생활이라는 휴지기를 거친 뒤 올해 운 좋게 시기와 조건이 잘 맞아서 좋은 성과를 보여줄 수 있었다”고 밝혔다.유원모 onemore@donga.com·신규진 기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은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다수 국가에서 ‘해방’과 같은 이름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게 ‘해방’은 또 다른 폭력의 시작이었다. 패전국이었던 독일에서는 종전 뒤 무려 86만 명에 이르는 여성이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 소련군에 의한 피해 여성이 약 50만 명이었고, 미군에게 성폭력을 당한 여성도 19만 명 안팎으로 추정된다. 70년이 지난 2015년 독일에서 출간된 책 “군인들이 도착했을 때: 2차 세계대전 말기 독일 여성의 강간”이 공개되고 나서야 ‘해방’의 이면이 정식으로 폭로됐다. 전승국 프랑스의 식민지 알제리에서도 종전은 해방이 아니었다. 1945년 5월 알제리 세티프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알제리인들이 프랑스 군인과 민병대에 의해 최대 4만5000여 명이 희생됐다. 알제리는 지난한 투쟁 끝에 1962년이 돼서야 독립할 수 있었다. ‘현대사…’는 이처럼 세계에서 새로 발굴된 사료와 최신 연구를 통해 현대사의 정설로 굳어진 역사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는 책이다. 그동안 ‘승자의 역사’ 입장에서 숨겨져 왔던 사회적 약자와 피해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연구들을 대거 포함시킨 점이 눈길을 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인 ‘홀로코스트’에 대한 최신 연구를 보자. 구동독 정부 소장 자료가 비밀 해제되면서 새롭게 알려진 사실은 학살이 주로 가스실 등 ‘공장 시스템’에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직접 얼굴과 얼굴을 마주한 채 진행한 ‘대면 학살’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역사는 진보한다”는 역사학의 명제에 의문을 들게 한다. 반대로 유대인을 구출하기 위해 목숨까지 내걸었던 독일군 안톤 슈미트 상사와 스웨덴의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 빈 주재 중국 영사 허펑산 등은 최근에서야 존재가 확인됐다. ‘악(惡)의 평범성’이 아닌 인간에게 ‘선(善)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현대사는 ‘장기 폭력사’와 ‘단기 평화사’로 구성된다”는 저자의 해석처럼 전쟁과 폭력이 끊이지 않았던 20, 21세기 현대사의 큰 줄기와 인권, 평화를 위해 노력한 의인(義人)들의 노력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백제 무왕(?∼641)의 왕릉이 유력한 전북 익산시의 쌍릉(사적 제87호) 대왕릉에서 백제 왕릉 중 최대 길이의 묘도(墓道·무덤길)가 확인됐다. 익산시와 원광대 마한백제문화연구소는 올해 5월부터 대왕릉 2차 발굴조사를 진행한 결과 길이 21m, 최대 너비 6m, 최대 깊이 3m 규모의 묘도를 발견했다고 20일 밝혔다. 무덤방인 석실(石室) 쪽은 너비가 4m로,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좁아지는 것이 특징이다. 최완규 소장은 “부여 능산리 고분군의 백제 왕릉급 무덤 묘도가 4∼6m 정도인 것과 비교하면 대왕릉의 묘도는 3∼4배 이상 길다”며 “장엄한 장례의식이 치러졌다는 단서”라고 설명했다. 또한 고분 축조 과정에서 석실을 먼저 만들고 나중에 묘도를 만든 사실도 확인됐다. 대왕릉의 주인공이 생전에 미리 준비했던 수릉(壽陵)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설명이다. 익산 쌍릉은 ‘서동요’의 주인공인 무왕과 부인인 선화공주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7월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대왕릉 내부에서 발견된 인골을 분석한 결과 “60대 전후 남성 노인, 키 161∼170.1cm, 사망 시점은 620∼659년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최 소장은 “최장 길이의 묘도와 수릉이 확인되면서 고고학적으로 무왕 무덤일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가야 문화권 유적지에서 찾아낸 4∼5세기 유물 3건이 보물이 된다. 문화재청은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사진),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19일 밝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 중인 고령 지산동 32호분 출토 금동관은 1978년 경북 고령 지산동 고분에서 나온 5세기 대가야의 유물이다. 삼국시대의 일반적 금동관 형태인 출(出)자 형식에서 벗어나 넓적한 판 위에 X자 형태 문양을 점선으로 교차해 새긴 점이 특징이다. 부산 복천동 22호분 출토 청동칠두령은 7개 가지가 달린 청동방울로, 4∼5세기 가야 최고 수장급 인물이 사용한 도구다. 청동제 방울은 팔두령, 쌍두령 등 고조선의 유물이 발견된 적이 있지만 삼국시대 문화재로는 이 청동칠두령이 유일하다. 부산 복천동 38호분 출토 철제갑옷 일괄은 4세기 유물로 종장판주(縱長板胄·투구), 경갑(頸甲·목가리개), 종장판갑(縱長板甲·갑옷) 등으로 구성된 세트다. 고대 갑옷 가운데 출토지가 확실하고 일체를 갖춘 유일한 자료로 알려졌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형님, ‘이상의 집’이 재개관하면 제일 먼저 찾아갈게요.” 10월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회원이기도 한 고 신성일 배우의 전화였다.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던 고인은 1968년 영화 ‘이상의 날개’에서 천재시인 이상(1910∼1937)을 연기하며 더욱 애착이 컸다. 김 이사장은 “그가 세상을 뜨기 20일 전, 마지막 통화에서도 ‘이상의 집’ 얘길 했다”며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고인의 빈자리가 너무도 크다”고 아쉬워했다. 고인이 그리도 기다렸던 ‘이상의 집’이 19일 보수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다. 서울 종로구 통인동에 자리 잡은 이곳은 2층 구조에 75m2 규모다. 이상이 1912∼1933년 20여 년 동안 머물렀던 백부 김연필의 집이었다. 당시의 집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집터도 여러 필지로 나뉘었지만 역사적 가치는 여전하다. 후대에 재건된 이곳은 문화유산국민신탁이 2009년 KB국민은행 후원을 받아 매입한 뒤 전시회와 문화 행사를 여는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번 보수공사는 문화재지킴이 협약 기업인 라이엇게임즈 후원으로 이뤄졌다. 재단장한 이상의 집은 이상 작품을 처음으로 소개한 서적과 인쇄본 등의 자료를 대거 공개하고, 편의시설도 크게 늘렸다. 지금까지 확보한 아카이브 자료는 시 75편, 소설 21편, 수필 19편, 서신 5편, 그림과 삽화 16점, 기타 자료 21점 등 150여 점에 이른다. 특히 재개관하면서 이상의 친구인 화가 구본웅(1906∼1953)이 그린 19세의 이상 초상화를 참고해 조각가 최수앙이 제작한 흉상이 내부 한가운데에 새로 설치됐다. 집 안쪽에는 2층으로 이어지는 ‘이상의 방’이 만들어졌는데, 컴컴한 색상으로 벽면을 칠해 오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김대균 건축사무소 착착 대표는 “이상의 방은 대표작 ‘날개’를 형상화한 곳으로, 이상의 작품 세계를 공간으로 표현했다”며 “수수께끼 인물이 아닌 문학·미술·건축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보인 이상을 함께 느꼈으면 한다”고 밝혔다. 이상의 집은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되며, 공휴일과 명절에는 문을 닫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8일 가야의 무덤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경남 함안군 말이산 고분군(사적 제515호)의 13호분. 5세기 말 아라가야의 전성기를 이끈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이곳의 내부로 들어갔다. 성인 1명이 겨우 들어갈 크기의 입구를 지나니 길이 9m, 너비 2m, 높이 1.8m 정도 되는 공간과 만났다. 빨간색 안료로 칠해진 점토가 사방을 휘감고 있었다. 가야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붉은 채색 고분을 마주한 순간이었다. 무덤 내부는 왕의 시신이 놓인 자리와 가야의 독특한 장례 문화인 순장(殉葬)의 흔적을 보여주는 순장자의 공간 등으로 분리돼 있었다. 언뜻 여타 가야 고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고개를 드니 황홀한 광경이 펼쳐졌다. 한반도 밤하늘을 크고 작은 125개의 홈으로 표시한 성혈(星穴·돌에 새긴 별자리)이 찍혀 있었다. 서양 별자리에서 궁수자리인 남두육성(南斗六星)과 청룡자리(전갈자리) 등을 포함해 은하수가 빼곡하게 표시돼 있었다.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말이산 13호분을 발굴 조사한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은 18일 가야 무덤 유적지에서 최초로 성혈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성혈은 고대인들의 천문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적이다. 하지만 사례가 희귀해 신라 백제 고분군에선 발견된 적이 없고,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과 고구려 고분군인 평양 진파리 무덤 일부에서만 나왔다. 13호분의 성혈은 고구려 고분 별자리와 상당히 유사하다. 한반도 고대 국가들이 비슷한 천문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단 뜻이다. 특히 이번 발굴은 1918년 12월 일제강점기 야쓰이 세이이쓰(谷井濟一)가 발굴한 뒤 딱 100년 만에 이뤄진 조사란 점에서 의미가 더 각별하다. 물론 당시는 도굴과 다름없는 행태로 이뤄진 데다 보고서조차 남겨 놓지 않았다. 얼마나 유물을 빼앗아 갔는지조차 알 수 없다. 최경규 동아세아문화재연구원 조사단장은 “이번에 발굴한 성혈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천문도인 1395년 천상열차분야지도(국보 제228호)의 별자리와 매우 흡사하다”며 “한민족의 고유한 천문관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한반도 천문사(史) 연구에 획기적인 발굴”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말이산 고분군에서 북쪽으로 2km가량 떨어진 아라가야 왕성지에서는 망루와 무기고, 병영시설 등으로 추정되는 건물터 14기를 무더기로 찾았다. 5m 길이의 부뚜막 시설을 갖춘 집터도 발견됐는데, 이 같은 대규모 가야 생활 유적지는 한 번도 보고된 사례가 없다. 아라가야 왕성 발굴조사를 진행하는 강동석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실장은 “성곽과 무기고 등이 함께 발견된 점으로 볼 때, 일반 백성이 아닌 상비군의 주둔시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실제로 가야 군사가 사용한 화살촉, 철갑 등도 함께 출토돼 아라가야 연구에 새로운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함안=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조선 후기 문인들이 예찬한 ‘강진 백운동 원림(園林)’이 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전남 강진군 성전면에 위치한 백운동 원림을 국가지정문화재 명승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원림은 집에 딸린 숲이나 정원을 뜻한다. 월출산 옥판봉의 남쪽 기슭 아래에 자리한 백운동 원림은 담양 소쇄원과 보길도 부용동과 함께 호남의 3대 정원으로 불릴 정도로 뛰어난 경치를 자랑한다. 원림의 안뜰에는 시냇물을 끌어 마당을 굽이굽이 돌아나가는 ‘유상구곡’의 흔적 일부가 남아있다. 완만한 경사면에 유교 덕목을 상징하는 매란국죽송(梅蘭菊竹松)을 심는 등 조선시대 전통 원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은 강진에서 유배 중이던 1812년 제자들과 함께 월출산을 등반하고 백운동에서 하룻밤을 유숙한 뒤 제자 초의선사에게 ‘백운동도’를 그리게 했다. 또 12곳의 아름다운 경승을 칭송하는 시를 써서 묶은 ‘백운첩’을 남기기도 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제게 ‘살롱(salon)’은 가뭄에 단비나 마찬가지였죠. 학원 다니며 삭막한 자기계발을 하기도, 친구들과 술이나 마시며 세상불평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싫었거든요.” 공공연구기관에서 일하는 최균 씨(39)는 ‘살롱’ 예찬론자다. 지난해 여름 살롱 활동을 시작한 그는 현재 5가지 살롱 모임에서 활동한다. 그는 “서로 다른 세계에 속한 사람들이 교류하며 생각의 지평을 넓힐 수 있다는 점이 살롱의 매력”이라며 “살롱 활동을 하며 영화비평가로도 살고 싶다는 꿈을 찾았다”고 말했다. 2018년 대한민국에서 ‘살롱 문화’가 성행하고 있다. 살롱은 본래 17∼19세기 유럽에서 성행하던 귀족이나 문인들의 사교 모임을 일컬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0세기 룸살롱이나 헤어살롱 등 여기저기서 마구잡이식으로 쓰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살롱의 본질적인 취지를 잘 살린 다양한 ‘소셜 살롱’이 각광받고 있다. 최근 살롱 문화는 독서토론이나 영화비평, 요리 등 관심사나 취미를 중심으로 생산적인 모임을 진행하는 게 특징. 대부분 유료 회원제로 운영하며 진입 장벽을 높였다. 그 대신 내부에선 개방성 평등성을 운영 규칙으로 삼아 프랑스의 살롱 문화와 상당히 닮았다. 지난해 문을 연 소셜 살롱 ‘문토’는 1년 만에 27개의 모임을 진행하는 커뮤니티로 성장했다. 각 모임은 해당 분야에 조예가 깊은 멤버가 리더를 맡는다. 13일 오후 9시 이 살롱을 찾았을 땐 늦은 밤인데도 요리, 도시공학 등 모임 4개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현장에서 살펴본 살롱 모임은 멤버들 대부분이 존칭을 썼다. 직업이나 나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따지지 않는다. 분위기도 리더가 일방적으로 진행하기보단 얘기를 나누며 공통의 관심사를 자연스레 찾아갔다. 에세이 살롱에서 만난 양수석 씨(41)는 “살롱에선 대학생과 대기업 간부도 진솔한 친구가 될 수 있는 게 장점”이라고 말했다. 음악 살롱에 참여한 의사 심예지 씨(32·여)는 “학창 시절 플루트를 연주했지만 까맣게 잊고 살았다”며 “살롱에 참여한 뒤 다시 옛 친구들과 클래식 앙상블 동아리를 결성해 연습 중”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살롱도 등장했다. 서울 성동구에 위치한 ‘안전가옥’은 SF나 판타지 등 장르 문학 창작자들을 위한 살롱이다. ‘안전가옥’은 올 한 해 살롱 멤버들의 신작 발표회와 창작 워크숍 등이 70여 차례나 열렸다. 자유롭게 서로의 작품을 비평해주거나 공동작품을 구상해 결과물을 잡지로 내기도 했다. 살롱 자체적으로 공모전을 열어 신진 작가를 발굴하기도 했다. 살롱 멤버인 최수진 씨(23·여)는 “하반기 SF·판타지 공모전에 당선된 뒤 매일 퇴근하고 여기로 온다. 내년 상반기 출간이 목표”라고 말했다. 무엇이 사람들을 살롱으로 이끄는 걸까. 전문가들은 ‘취향’의 위상이 높아진 점을 신(新)살롱 문화의 원동력으로 꼽았다. 트렌드 분석가인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기성세대를 옥죄던 부모 봉양이나 자식 수발의 의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2030세대들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느냐’를 인생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단편적인 소통의 한계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리가 반영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직접 얼굴을 맞대는 ‘아날로그의 반격’인 셈이다. 안전가옥 단골인 윤여경 한국SF협회 부회장(소설가)은 “살롱에선 예기치 않은 만남과 의도치 않은 대화를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는 일이 많다”며 “SNS에선 거의 불가능한 ‘입체적인 소통’이 주는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이지운 easy@donga.com·유원모 기자}

“퇴사와 1인 기업을 준비하는 30대를 위한 모임을 만들면 관심이 있을까요?” 올해 1월 카드회사에 다니다 퇴직한 지 7개월 된 강혁진 씨(36)는 무심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이 같은 글을 올렸다. 다음 날 오전 무려 100명이 넘는 이가 강 씨의 게시물에 ‘좋아요’와 댓글을 남겼다. 1주일 뒤인 1월 마지막 수요일, 30대 직장인 40여 명이 서울 강남구 한 공유오피스에 모였다. 독립서점을 운영하며 작가의 꿈을 꾸는 청년과 취미로 시작한 가죽공방을 차린 한 1인 창업가까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올해 출범한 ‘월간 서른’은 매달 마지막 수요일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모이는 교육형 살롱이다. 현재 매달 평균 100명 넘게 이곳을 찾는다. 월간 서른은 취향 공유를 넘어 직장인들을 위한 교육의 성격까지 지닌 살롱인 셈. 갈수록 사회적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지만, 막상 마땅한 정보나 교육을 얻기 힘든 현실을 잘 비집고 들어갔다는 평을 받는다. 최근 살롱은 이런 대안형 교육기관의 성격을 지닌 것이 많다. ‘신촌대학교’는 서울 서대문구 신촌 일대에서 카페나 스튜디오를 빌려 강의실로 사용한다. 캠퍼스도, 학위도 없지만 실용적인 지식을 배우는 데 주안점을 뒀다. 비정부기구(NGO) 세계를 다루는 ‘심봉사학과’나 생생한 프랑스어를 배우는 ‘샹송으로 사랑타령이나 불러볼과’, 창업 교육을 진행하는 ‘그까짓 창업학과’ 등이 인기다. 2015년 4월에 시작해 현재까지 300여 개 학과가 만들어졌다. 이 밖에 ‘낯선 대학’ ‘퇴직학교’ 등 이색적인 교육 살롱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2030 청년들이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사회와 인간에 대한 성찰 등 인문학적 배움에 대한 기본적인 갈망을 지녔음을 보여 준다”며 “현재 국내 대학과 기업이 이런 문화적 감수성을 갖추지 못했다는 걸 방증하기도 한다”고 진단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이지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