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동아미디어그룹의 매거진 정기구독 서비스 회사인 동아PDS가 온라인 북마케팅 플랫폼 북콤파스를 20일 개설했다. 북콤파스에서는 국내 및 해외 잡지 정기구독 신청을 할 수 있다. 국내 잡지로는 신동아, 주간동아, 여성동아 등 동아일보가 발행하는 잡지를 비롯해 시사저널, 우먼센스, 학교도서관저널, 샘터, 월간커피, 스테레오사운드, 퓨처에코, 멘즈헬스, 탑기어, 투어코리아 등이 있다. 보그, 타임, 뉴스위크, 리더스 다이제스트, 내셔널지오그래픽, 포커스, 뉴사이언티스트 등 해외 잡지도 신청할 수 있다. 동아PDS는 오프라인 정기구독 서비스에서 쌓은 노하우를 북콤파스에서 구현하고, 구독 대행 잡지 수도 늘려갈 예정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 측이 건물과 땅을 대거 매입한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에 대해 문화재청과 목포시가 부동산 가격 상승을 우려해 투기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문화재로 지정되면 오히려 시세차익을 얻을 수 없다”던 손 의원의 해명과는 상충되는 상황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18일 “지난해 8월 등록문화재로 고시된 뒤 이곳이 도시재생활성화지역으로도 선정돼 부동산 투기에 대한 우려가 나와 대책 마련을 진행했다”며 “지난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재생활성화 사업 추진계획안’에서 해당 지역 건축 자산을 매입하기 위해 45억2000만 원의 예산을 책정해 올해 예산안에 반영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비슷한 성격의 전북 ‘전주 한옥마을’ 등지가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며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몸살을 앓은 전례가 있어 이를 대비하기 위한 측면이었다. 문화재청은 관련 예산을 활용해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안에 위치한 빈집 등 건축 자산을 매입해 문화시설, 청년창업센터 등 공적 공간으로 운영할 계획이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우정실무원 이중원 씨는 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한다. 하지만 낮과 밤이 바뀐 오후 9시가 이 씨의 출근시간이다. 12시간 내내 이 씨는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내려오는 우체국 택배 상자를 화물 운반대에 싣는다. 기계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딴짓은커녕 자세를 바꿀 틈도 없다. 이 씨가 일하는 서울 광진구 동서울우편집중국은 전국에서 가장 많은 우편 물동량이 몰리는 곳. 이 씨를 포함해 야간에 일하는 우정실무원 대부분은 비정규직이다. 이 씨는 “야간 노동이 2급 발암물질이라고 하던데 맞는 말”이라며 “사막으로 치면 여긴 고비 사막이 아니라 사하라 사막”이라고 자신의 일터를 비유한다. 이 책은 주변에서 흔히 만날 수 있지만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았던 야간 노동자들의 일상을 기록한 인터뷰집이다. 우편집중국, 대학교, 병원, 공항, 지하철, 감옥, 급식소 등 우리 사회의 필수적인 편의와 안전을 만들어 내는 일터의 밤 시간이 무대다. 달빛과 함께하는 이들 가운데는 ‘비정규직 노동자’ ‘하청 노동자’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불규칙한 노동시간과 열악한 근무조건이 유독 야간 노동에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항공기 청소 노동자들을 보자. 이들은 하루 평균 20대 이상의 비행기에 오르고, 1000개 이상의 변기를 닦는다고 한다. 그러나 소독제 안전교육은 물론이고 안전 장비를 제대로 공급하지 않는 것이 현실. 이로 인해 CH2200이라는 유해 화학물질에 중독돼 병원 치료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책에 등장하는 야간 노동자들은 하나같이 불면증이나 심혈관계 질환, 불임 위험 등 건강 악화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 막차를 보내고 난 후 지하철 선로와 터널 곳곳을 점검하는 노동자들은 만성적인 수면장애를 호소하고 있고, 한 지방 교도소에서 일하는 교정직 공무원 A 씨는 2시간 넘는 거리에 있는 교도소까지 꼭 버스를 타고 다닌다. 부족한 수면 탓에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날 우려가 더 크기 때문이다. 야간 노동자의 삶과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이 책이 ‘위험의 외주화’ ‘휴식 없는 노동’ 등 우리 사회의 여러 난제를 해결할 실마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나전칠기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나전칠기를 구입하도록 종용하고, 박물관 인사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17일 국립중앙박물관에 따르면 손 의원은 지난해 6월 국립민속박물관 소속 학예연구사 A 씨를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에 전입시킬 것을 요구했다. A 씨의 부친은 경남 통영시에서 활동한 나전칠기 장인으로, 지난해 작고했다. 2014년 손 의원이 건립한 서울 용산구 한국나전칠기박물관의 개막특별전에 A 씨의 부친 작품이 출품된 바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A 씨의 전문성이 확인되지 않았고, 보존과학 분야의 특성상 1∼2년 단위로 진행되는 인사교류 대상에는 맞지 않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손 의원이 지난해 10월 국정감사 질의에서 다시 거론하는 등 지속적인 압박을 가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손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도쿄예대에서 박사를 받은 전문가가 수리를 못한다고 인격적인 모독을 받고, 민속박물관에서 행정업무를 하고 있다. 유물 수리에 최고의 글로벌 스탠더드를 가진 인재”라고 A 씨를 치켜세웠다. 민속박물관 유물과학과에서 근무했던 A 씨는 2017년부터 보존 업무에서 배제됐으며, 현재 박물관 교육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A 씨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지난해 인사교류에 지원한 것은 사실이지만 손 의원 측에 부탁을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손 의원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근현대 나전칠기 구입을 종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손 의원은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20∼21세기 근현대 나전칠기 작가들의 작품들을 더 늦기 전에 구입하는 것이 박물관의 책무”라고 지적했다. 두 달 뒤인 12월 국립중앙박물관은 기존 고미술·고고학 유물과 성격이 다른 4점의 현대 칠기 관련 공예 작품을 이례적으로 사들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금속공예전문 박물관인 국립청주박물관에서 소장할 수 있도록 박물관 계획에 따라 구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편 이날 본보 취재진이 찾은 손 의원의 나전칠기박물관은 규모가 협소하고, 인터폰을 눌러야만 들어갈 수 있는 폐쇄적인 구조였다. 문화재계 인사는 “원래는 손 의원이 수집한 나전칠기 작품을 판매하던 곳”이라며 “전시·연구 기능은 거의 없어 이름만 박물관일 뿐 판매장 역할이 더 큰 곳”이라고 말했다. 유원모 onemore@donga.com·김자현 기자}

한 글자 한 글자 얼마나 많은 정성을 들였을까. 조선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1822∼1844)가 직접 쓴 글씨는 단아하면서도 아름다운 왕실의 한글문화를 제대로 보여준다. 문화재청은 덕온공주가 쓴 ‘자경전기(慈慶殿記)’와 ‘규훈(閨訓)’ 등 68점으로 구성된 ‘덕온공주 집안의 한글자료’를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경매로 구입해 고국으로 환수했다고 16일 밝혔다. 덕온공주와 양아들 윤용구(1853∼1939), 손녀 윤백영(1888∼1986) 등 왕실 후손이 3대에 걸쳐 작성한 한글 책과 편지, 서예 작품으로 구성됐다. 덕온공주는 조선 제23대 임금 순조와 순원왕후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공주는 정실 왕비가 낳은 딸을, 옹주는 후궁이 낳은 딸을 일컫는다. 이번에 환수된 자료 가운데 ‘자경전기’와 ‘규훈’은 처음 발견된 덕온공주의 친필 서책이란 점에서 눈길을 끈다. 덕온공주가 아름다운 한글 궁체로 손수 쓴 책인데, 한문으로 쓰여 있던 것을 한글로 번역해 작성했다. 자경전기는 1777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위해 창경궁 내에 지은 전각 자경전의 유래를 밝힌 책이다. 규훈은 여성이 지켜야 할 덕목과 예절을 소개한 일종의 수신서다. 순원왕후가 사위 윤의선에게 보낸 편지도 흥미롭다. 감기와 기침을 앓고 있는 사위를 걱정하고, 덕온공주가 궁에 들어와 있어 마음이 든든하다는 내용이 정갈한 글씨에 담겨 있다. 덕온공주 양아들 윤용구가 고종의 지시를 받아 중국 상고시대부터 명나라 말기까지의 역사를 추려서 한글로 번역한 책 ‘정사기람(正史紀覽)’과 딸 윤백영을 위해 여성과 관련된 역사를 발췌해 정리한 ‘여사초략(女史抄略)’ 등도 포함됐다. 윤용구는 고종 때 이조·예조판서를 지낸 관료이면서 뛰어난 글씨를 자랑했는데, 1910년 한일 강제병합 뒤 일제가 주는 남작 작위를 거절한 우국지사다. 박준호 국립한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조선 후기 한글 서예의 새로운 명필을 발견해 ‘덕온공주체’라는 새로운 글씨체 활용도 고려해 볼 만하다”며 “조선 왕실 여성들의 의사소통에서 한글의 역할과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중요 자료들”이라고 밝혔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3월 1일 오후 2시 파고다공원(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모여 만세삼창을 한다. 이후 우리는 3개조로 나뉘어 행진한 후 오후 4시 혼마치(本町·충무로)에 집결한다.” 1919년 3월 1일. 경성 시내를 ‘독립만세’의 외침으로 뒤덮은 3·1 만세시위대의 행로다. 미리 약속한 것처럼 파고다공원을 뛰쳐나온 이들은 3개조로 나뉘어 경성 시내로 진격했다. 200여 명에서 시작한 시위대는 오후 4시가 되자 3000여 명으로 불어났고, 모두 혼마치 거리 입구로 모였다. 목표는 남산 자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였다. 3·1운동 100년을 맞아 당시 만세시위대의 구체적인 이동 경로를 파악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박찬승 한국사연구회장(한양대 사학과 교수)은 최근 논문 ‘만세시위의 기폭제가 된 서울시위’에서 3·1운동 가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시위대원의 재판 신문조서, 판결문, 조선군 사령부의 문건 등을 분석해 당대의 긴박했던 움직임을 복기했다. 박 교수는 “그동안 3·1운동 연구가 많이 진행됐을 것이라는 선입견과 일본어로 남은 신문조서가 2010년대 들어서야 번역되면서 가장 중요한 3월 1일 당시 시위대의 양상이 제대로 확인되지 못했다”며 “분석 결과 3·1 만세시위대가 해외 영사관에 독립선언서를 전달하는 등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가지고 움직였다는 사실도 드러났다”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식민지 조선의 경성 시내에 위치한 파고다공원에는 200여 명의 학생이 운집했다. 이들의 시선은 공원 가운데 육각당(六角堂)으로 향했다. 두루마기를 입은 한 30대 남성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기 시작한 것. 10여 분간의 연설이 끝난 뒤, 우렁차게 “조선민족 자주독립 만세”를 외쳤다. 자리에 있던 학생들도 한목소리로 내뱉었다. “독립 만세!” 일제 경찰은 당시 파고다공원의 상황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파고다공원 바로 옆에 위치한 종로경찰서 지서(파출소)의 한 순사가 공원 내부에서 웅성거리는 소리를 듣고서야 3·1 만세시위대의 집결을 확인했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가 3·1 만세시위대의 상세한 이동 경로를 밝힌 논문 ‘만세시위의 기폭제가 된 서울시위’를 통해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3개조 나눠 경성 시내로 진격 당시 파고다공원 만세시위를 주도한 것은 학생들이었다.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 보성전문학교의 강기덕, 경성의학전문학교의 한위건 등이 학생대표 3인방이었다. 학생대표단은 천도교, 기독교계가 중심을 이룬 민족대표 33인과 3·1운동을 함께하기로 뜻을 모았다. 3·1 만세시위대는 미리 계획을 세운 3개조로 나뉘어 경성 시내를 활보했다. 가장 큰 대열은 종로1가 전차 교차점(현 종각 앞)으로 가서 남대문로를 따라 남대문역(현 서울역)으로 이동했다. 이후 서울 중구 정동의 미국 영사관(현 선원전 터)∼대한문∼광화문∼조선보병대(현 정부서울청사)∼서대문정(서대문 사거리)을 거쳐 프랑스 영사관으로 향했다. 일부 시위대는 프랑스 영사관으로 들어갔다. 경성전수학교 학생 박승영은 프랑스 영사로 추정되는 인물에게 “정의와 인도에 바탕을 둔 민족자결주의에 입각해 조선의 독립을 선언하고 실현시키려 하므로 귀국의 정부에 알려 달라”고 요청했다. 영사관 직원은 그의 말을 수락했다. 박 교수는 “당시 시위대가 프랑스에서 파리강화회의가 열린다는 점을 미리 알고서 한국인들의 독립의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 같은 경로를 계획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나머지 한 시위대는 종각에서 무교정(무교동 사거리)을 지나 덕수궁 앞 대한문으로 진격했다. 당시 덕수궁에는 고종의 장례를 치르기 위해 경성으로 온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영친왕(이은)이 있었다. 시위대는 일제가 설치한 조선왕실 근위대 ‘이왕직 보병대’와 육탄전을 벌인 끝에 덕수궁 경내 진입에 성공한다. 이들은 너무나 호화로운 궁의 상황에 잠시 놀랐다. 이내 황태자 이은에게 면회를 요청했지만 끝내 거부당했다. 나머지 한 대열은 창덕궁 앞으로 향한 후 안국동을 거쳐 광화문으로 향했다. 200명으로 시작한 행진은 곧 3000여 명으로 불어났다. 학생들은 독립선언서를 시민들에게 나눠주면서 “만세만 부르면 독립이 온다”고 설명했다. 시민 중 일부는 실제로 독립이 이뤄진 것이라 여기고, 어깨춤을 추며 같이 행렬에 나섰다. ○ 최종 목적지는 조선총독부 약 2시간 동안 경성 시내를 뒤덮은 3개조는 오후 4시가 되자 한곳으로 모였다. 일본인 밀집 거주지였던 혼마치(本町·현 충무로) 입구. 이곳에 모인 이유는 자명했다. 당시 남산 자락에 위치한 조선총독부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1905년 통감부 건물을 세운 일제는 1925년 경복궁 경내에 새 청사를 짓기 전까지 총독부 청사를 남산에 뒀다. 뒤늦게 상황을 인지한 조선총독부는 당시 용산에 주둔하던 조선군사령부에 급히 지원 병력을 요청했다. 혼마치 2가에 보병 3개 중대와 기병 1개 소대로 저지선을 구축한다. 오후 5시. 일제 군경과 맞닥뜨린 시위대는 돌파를 시도했지만 더 이상 진격하지는 못한다. 2시간여 육박전 끝에 현장에서 134명이 경찰에 붙잡힌다. 경찰에 붙잡히지 않은 시위대 가운데 1000여 명은 연희전문학교(현 서울 연세대) 앞과 마포전차종점 등지에서 밤 12시를 넘긴 시간까지 만세 시위를 이어갔다. 3월 1일 경성 시위는 그렇게 끝이 났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이들의 애절한 외침은 1년여간 한반도 전역은 물론 간도와 연해주, 미국, 일본 등지로 퍼져나갔다. ▼ 학생대표단, 나흘만에 서울역앞서 또 대규모 시위 ▼“여학생도 다수 참여… 열기 확산” 1919년 성공적인 3·1 만세시위를 이끈 학생대표단은 제2의 만세일로 3월 5일을 지목했다. 3일 고종의 인산(因山)을 앞두고 있어 2일에는 시위를 자제했다. 4일 역시 고종의 하관식이 예정돼 있었다. 또 지방에서 상경한 이들이 고종의 국장을 마친 뒤 5일 대거 남대문역을 통해 귀향할 것으로 보고, 많은 인파의 참여를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학생대표단의 계획은 예상대로였다. 5일 오전 9시 남대문역(서울역) 앞 광장에는 수천 명의 학생과 시민이 모였다. 조선총독부 추산 4000∼5000명, 조선군사령부 추산 1만 명, 학생대표단 자체 추산 5000∼6000명이었다. 오전 9시 2분쯤 양복을 입은 연희전문학교의 김원벽이 인력거 위에서 “독립 만세”를 불렀다. 곧이어 다른 인력거에 탄 보성전문학교의 강기덕이 마찬가지로 만세를 부르기 시작하면서 거대한 행렬이 움직였다. 당시 일제는 숭례문 앞에서 시위대 행진을 막으려 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박찬승 한양대 교수는 “3월 5일 만세시위에는 1일과 달리 뒤늦게 소식을 접하거나 학생대표단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여학생들도 다수 참여한 게 특징”이라며 “학생들은 만세시위 이후에도 계속해서 격문과 지하신문을 만들어 3·1운동의 열기를 이어갔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25.1%. 지난해 12월 KB금융그룹이 발간한 ‘2018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4가구 중 하나는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덩달아 국내 반려동물 사료 시장은 연평균 19.4%의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동물용 의약품, 미용, 장묘사업 등 관련 사업 역시 기록적인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 책의 배경인 미국에서는 약 8000만 가구가 반려견을 키우고 있다. 전체 가구의 44%에 이르는 수치다. 개 관련 산업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사료비로만 300억 달러(약 33조 원), 치료비 160억 달러(약 18조 원) 등 매년 700억 달러(약 78조 원)를 반려견에게 쓴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반문한다. 그 열정만큼 우리는 반려견과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이 책엔 반려견들의 행동 세계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낸 각종 정보가 담겨 있다. 저자는 세계적인 동물학자이자 콜로라도대 명예교수. 2009년 늑대가 ‘도덕 지능’을 가지고 있어 사리분별은 물론이고 친구를 사귀거나 원한을 품을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해 화제를 모았다. 책을 읽다 보면 ‘견(犬)통령’이라 불리는 강형욱 훈련사가 떠오르는데 강 훈련사가 반려견 심리학자라면 저자는 반려견 행동학자로 볼 수 있다. 동물학의 최신 연구 성과가 주를 이루지만 탁월한 비유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게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야외에서 개들이 걸어갈 때면 오줌을 찔끔 누거나 코를 킁킁거리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 같은 행동은 후각이 특히 발달한 개들의 소통 방식이다. 앞서 지나간 개들의 흔적을 살피고, 일종의 문자메시지처럼 오줌을 통해 답장을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산책을 할 때 반려견이 냄새를 맡지 못하게 목줄을 확 잡아당기는 일 등은 자제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꼬리 흔들기’ 행동을 통해서도 개들의 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왼쪽으로 꼬리를 흔들 땐 심박동이 빨라지는 등 불안의 징후를 보여주고, 오른쪽으로 흔드는 꼬리는 차분한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살짝 꼬리를 흔드는 건 “안녕” 혹은 “나 여기 있어”처럼 인사말을 나타내고, 크게 흔드는 것은 친밀감의 표현이라는 연구 결과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과학적인 내용이 가득하지만 저자는 반려견을 키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책임’이라고 강조한다. 개나 그 밖의 동물을 삶에 들이기로 했다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그들의 삶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고의 삶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한다. 이 책을 감수한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아무 생각 없이 개를 기르지 말고, 이 책을 읽으며 과학적으로 개를 관찰하며 길러보자. 내가 기르는 개의 행복에도 분명 도움이 되고 개를 기르는 나의 기쁨도 배가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개의 속마음을 이해하고, 반려견과의 행복한 일상을 더해줄 처방이 담겨 있는 책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고려는 ‘청자의 나라’로 알려질 만큼 뛰어난 공예기술을 자랑한 문화국가였다. 고려의 공예는 단지 청자뿐 아니라 궁궐 등 건물의 지붕을 장식하는 기와에서도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지난해 11월 남북이 공동으로 발굴조사를 진행한 개성 만월대에서 고려 황실의 기와를 전담 생산한 6개의 가마터 ‘육요(六窯)’가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만월대 공동발굴조사에 참여한 이상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장은 “지난해 진행된 8차 남북 공동조사에서 생산지와 생산자를 구체적으로 적시한 명문기와들이 대거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생산지가 확인된 기와는 ‘적항(赤項)’, ‘덕수(德水)’, ‘판적(板積)’ 등 총 6종류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고려사에 기록이 남아있는 ‘육요’에 대해 청자를 만드는 기관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6곳의 생산지가 적힌 기와가 만월대에서 확인되면서 고려의 황궁을 이해하는 데 새로운 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같은 내용은 경북 경주시 현대호텔에서 10, 11일 열리는 ‘신라 왕경에서 고려 개경으로: 월성과 만월대’ 학술대회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이번 행사는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경주시, 한국고고학회, 남북역사학자협의회가 공동 주최한다. 400여 년간 황궁으로 사용된 만월대는 시기마다 달라진 고려기와의 양식을 모두 품고 있다. 고려 초기에는 통일신라와 유사하게 연꽃무늬 기와가 주로 사용됐지만 중기 이후부터는 평평한 면에 원형 돌기 문양을 새겨 넣은 일휘문(日暉文)수막새 등 독창적인 문화를 꽃피웠다. 원나라의 영향을 받은 후기에는 라마 불교의 문양인 ‘범(梵)’자를 새긴 기와도 발견됐다. 한편 만월대 내부에서 도교의 제사를 담당한 기관인 ‘소전색(燒錢色)’에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제기(祭器)도 출토됐다. 소전색은 복원궁(福源宮), 구요당(九曜堂), 대청관(大淸觀) 등의 도교 사원들과 함께 고려 때 설치됐지만 조선 건국 초 폐지됐다. 황실 전용 약국인 ‘상약국(尙藥局)’에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청자도 함께 나왔다. 이상준 소장은 “지난해 조사 결과 만월대의 중심 건축군에서 교차로 역할을 한 ‘공지(空地)’가 발견되는 등 고려궁성의 실체를 보여주는 유적들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국내 최대 불법 복제만화 공유사이트 ‘마루마루’를 운영해온 일당이 검거됐다. 문화체육관광부 저작권 특별사법경찰은 마루마루 운영자 2명을 저작권법 혐의로 입건하고, 해당 사이트를 폐쇄했다고 8일 밝혔다. 문체부는 지난해 방송통신위원회, 경찰청과 함께 서버를 해외로 이전해 불법 복제물을 유통하는 사이트에 대한 단속을 벌였다. 그 결과 마루마루를 포함해 25개 사이트를 폐쇄하고, 이 중 13개 사이트 운영자를 검거했다. 대표적인 웹툰 불법 공유 사이트 ‘밤토끼’와 방송저작물 불법 공유 사이트 ‘토렌트김’에 이어 마루마루 운영자까지 검거하면서 분야별 최대 규모 불법 사이트 운영자를 모두 잡았다. 마루마루 운영자 A 씨는 미국의 도메인 서비스 업체를 통해 사이트를 개설하고, 약 4만2000건에 이르는 불법 복제만화를 유통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외국 신작 만화를 전자책 등으로 구매한 뒤 번역자들에게 이를 제공하고, 다시 자료를 게시하는 방식으로 사이트를 운영했다. 이를 통해 거둬들인 광고 수익만 12억 원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는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며 온라인 도박을 한 진행자(BJ)와 환전상 4명에 대해 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했다. BJ는 방송에서 휴대전화 번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아이디를 알려줘 회원을 모집한 뒤 게임머니를 지원받아 대리 게임을 했다. 회원들은 BJ가 게임에서 이기면 수익을 얻고, 지면 게임머니를 잃었다. 환전상은 이용자들로부터 현금을 송금받아 BJ에게 게임머니를 공급하고 게임 결과에 따라 게임머니를 환전해줬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잊혀진 영웅의 흔적은 쓸쓸했다. 묵묵히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한 그의 일생이 일제에 의해 순국한 마지막 장소에서도 고스란히 묻어났다. 최근 찾은 러시아 연해주(프리모르스키) 우수리스크시 북쪽 외곽 소비에트스카야 언덕. 이곳은 ‘연해주 독립운동의 대부’ 최재형(1858∼1920)이 1920년 4월 일제의 총칼에 목숨을 잃은 곳이다. 당시 일제는 러시아 적군(赤軍)에게 연해주 지역 일본인들이 목숨을 잃자 이에 대한 분풀이로 무고한 한국인 수백 명을 학살하는 ‘4월 참변’을 일으켰다. 하지만 당시 잔혹했던 역사를 알려주는 기념비나 안내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최재형이 마지막까지 조국 독립에 헌신한 이곳에서 소강석 한민족평화나눔재단 이사장(새에덴교회 담임목사)이 하모니카 연주를 시작하자, 함께 자리했던 고려인 최 나젤르다 씨(84)가 정확한 한국어 발음으로 아리랑 한 곡조를 읊었다. 찬 빗줄기가 내리던 이날 최재형을 향한 후손들의 작은 묵념이었다. 동아일보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최근 한민족평화나눔재단과 함께 고난한 독립투쟁의 흔적이 남아 있는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3성의 항일 유적지를 찾았다. ● 독립 영웅들의 발자취 최재형은 항일 독립운동사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진 인물이다. 함경도 경원에서 노비로 태어난 그는 아홉 살이 되던 해 국경을 넘어 연해주에 둥지를 틀었다. 이후 러시아 군대를 상대로 군수물품을 납품하며 연해주 최대의 한인 거부(巨富)로 거듭났다. 그가 추구한 삶은 단순한 경제적 윤택함이 아니었다. 최재형은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에 임명되는 등 그가 모은 재산을 독립자금으로 내놓았다. 재정적 지원뿐 아니라 구국운동단체 동의회(同義會)와 권업회(勸業會) 창립, 대동공보 발간 등 연해주의 독립운동 막후에는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특히 안중근 의사는 1909년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위해 하얼빈으로 떠나기 전까지 최재형의 집에 머무르며 거사를 준비했다. 우수리스크 시내에는 최재형의 발자취가 일부 남아 있다. 볼로다르스카야 거리 38번지는 최재형이 마지막까지 거주한 곳이다. 한때 러시아인 소유로 넘어갔지만, 최근 재외동포재단 지원으로 고려인민족문화자치회가 구입해 ‘최재형 기념관’으로 재단장하고 있다. 최재형은 1962년 한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받았다. 하지만 냉전시기 사회주의 계열이라는 평가 탓에 본격적인 연구가 부족했다. 1937년 고려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하며 연해주 독립운동 자료가 체계적으로 보존되기 힘들었던 측면도 있다. 우수리스크 미르교회에서 만난 고려인 홍 안톤 이바노비치 씨(82)는 “1937년 강제 이주하는 기차 안에서 태어난 저를 포함해 대부분 고려인이 연해주 독립운동사에 대해 배울 기회가 없었다”며 “러시아에 머물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들에게 한국어와 한국사 교육을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뿌리 쑤이펀(라즈돌나야)강은 우수리스크에서 유일하게 동해로 흘러가는 하천이다. 독립운동가 이상설(1870∼1917)은 “내 몸과 유품, 유고는 모두 불태워 쑤이펀 강물에 흘려보내고 제사도 지내지 말라”는 유언을 남겨 이 강물에 뿌려졌다. 죽어서라도 조국을 찾고 싶었던 그의 뜻을 기리기 위해 강변에는 이상설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2001년 광복회와 고려학술문화재단이 세운 것이다. 이상설은 1907년 헤이그 특사 활동이 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는 임시정부보다 앞선 최초의 망명정부 대한광복군 정부를 만들고, 초대 대통령에 오르는 등 연해주 지역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이었다. 이처럼 연해주는 우리 민족의 항일 투쟁사가 오롯이 배어 있는 땅이다. 1863년 함경도 농민 13가구가 처음 이주한 뒤 한때는 한인만 20만여 명에 이르렀다. 블라디보스토크시 외곽 라게르산에 위치했던 ‘신한촌(新韓村)’에는 1만여 명의 선조가 거주했다. 이곳에서 1919년 3월 결성된 대한민국민의회는 그해 4월 세워진 대한민국 임시정부로 흡수·개편되면서 임정의 한 축을 이뤘다. 갖은 고난과 핍박을 견뎌낸 신한촌이지만 지금은 모든 흔적이 사라졌다. ‘신한촌 기념탑’만이 당대의 역사를 품고 홀로 서 있다.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60주년과 3·1운동 80주년을 기리기 위해 1999년 세워진 이 기념탑은 3.5m 크기의 기둥 3개와 8개의 돌로 구성돼 있다. 돌기둥 3개는 남·북한과 해외 동포를 상징하고, 돌 8개는 조선8도를 뜻한다. 소강석 이사장은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연해주는 해외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한 곳”이라며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은 올해 후손들이 이곳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우수리스크·블라디보스토크=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종이나 나무, 가죽 등을 인두로 지져서 그림을 그리는 장인인 낙화장(烙畵匠)이 국가무형문화재가 된다. 문화재청은 낙화장을 국가무형문화재 136호로 지정하고,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보유자인 김영조 씨(66·사진)를 낙화장 보유자로 인정했다고 7일 밝혔다. 19세기 초 전북 임실 지역을 중심으로 전승된 낙화장은 조선 후기 학자 이규경(1788∼1863)이 쓴 일종의 백과사전인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의 낙화변증설(烙畵辨證設)에 관련 기록이 전해진다. 낙화는 전통 수묵화 화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산이나 바위를 묘사할 때 강하게 붓을 찍는 ‘부벽준’이나 빗방울 같은 점을 무수히 그리는 ‘우점준’ 등의 기법을 붓 대신 인두로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 먹의 미묘한 농담을 인두와 불로 구현해야 해 숙련된 손놀림이 필요하다. 낙화장 보유자가 된 김 씨는 충북 무형문화재(제22호) 낙화장 보유자다. 1972년 입문해 공예 분야로 인식됐던 낙화가 전통회화의 한 분야로 자리 잡는 데 일조했다. 종이, 목재 등 바탕재료의 차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품의 표현력이 섬세하다는 평가를 받는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르네상스를 일으킨 원동력은 다름 아닌 ‘병(病)’이었다. 14세기 중반 유럽 인구의 3분의 1가량을 죽게 만든 흑사병이 그 주인공이다. 르네상스 이전까지 중세 유럽은 1000여 년간 신(神)의 지배 아래 놓여 있었다. 의학 역시 약초(허브) 등을 이용해 내과 치료를 하는 가톨릭 사제들이 의사보다도 더 신임을 받던 시절이다. 흑사병이 유행하자 사람들은 사제의 조언대로 신에게 빌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심지어 일반인의 사망률이 약 30%였지만 사제의 사망률은 42∼45%에 이르렀다. 교회가 치료는커녕 사제가 먼저 죽어가는 현실을 보며 대중은 교회와 신에 대한 믿음을 거두기 시작했다. 신권이 하락하는 것과 달리 왕권은 강화됐다. 흑사병 대유행을 끝낸 것은 간절한 기도가 아닌 국가가 만들기 시작한 위생과 검역 절차였다. 15세기에 들어서면서 유럽 각국은 방역 시스템과 여행증명서를 발급했다. 현재까지도 전 세계 모든 공항과 항만에서 이뤄지는 검역은 흑사병 유행이 시초가 된 셈이다. 이처럼 의학의 발전으로 달라진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들이 생생하게 담겼다. 단국대 의대 교수이자 재치 있는 대중 강연으로 잘 알려진 저자의 경험 덕분에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들도 술술 읽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저자는 실험실 속 천재적인 과학자의 노력보다 서로 다른 문명의 만남이나 사회의 급격한 변동이 의학 발전의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강조한다. 고대 그리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비롯해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로 사람과 사회, 지식까지 교차할 수 있었다. 덕분에 히포크라테스처럼 서양 의학의 기초를 닦은 인물들을 배출할 수 있었다. 최근 인공지능(AI) 등 첨단 의료기술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의사라는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그러나 치료는 단순한 약물 투여와 수술에 그치지 않는다. 플라세보 효과처럼 의사와 환자의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한 치유는 AI가 대신할 수 없는 의료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의학의 역사를 모르는 민족에게 건강은 없다”는 저자의 재치 있는 말처럼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 온 의학자들의 치열한 분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자유한국당이 4일 KBS 수신료 납부 거부 운동을 시작했다. 또 KBS 수신료를 강제 징수하지 못하도록 방송법 등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이를 위해 이날 ‘KBS 헌법파괴 저지 및 수신료 분리징수 특위(KBS 특위)’를 발족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언론의 자유를 악용하는 KBS의 헌법파괴를 저지하고 수신료 강제징수를 금지해 KBS의 편향성을 바로잡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공영방송 공정성 회복을 위한 5개 법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한국당이 꼽은 중점처리 5대 법안은 △공영방송 사장 임명 시 특별다수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방송법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9인에서 13인으로 늘리는 방송문화진흥회법 △방송통신심의위원을 9인에서 13인으로 늘리는 방송통신위원회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 △KBS 수신료 분리징수 및 중간광고 제한 법 △한국교육방송공사법 등이다. 특히 한국당은 KBS의 시사 프로그램 ‘오늘밤 김제동’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출연한 신년기획 프로그램을 문제 삼았다. 앞서 ‘오늘밤 김제동’에서는 김수근 ‘김정은 위인맞이 환영단장’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찬양하는 내용의 인터뷰를 여과 없이 내보내 논란이 됐다. 또 정 장관은 신년기획 프로그램에 나와 “북한의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이해하고 넘어가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해 북한군의 도발을 정당화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나 원내대표는 “이런 발언들이 국민이 낸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 전파를 탔다는 게 충격적”이라고 비판했다. KBS 특위는 이날 곧바로 ‘KBS 수신료 거부 챌린지’ 캠페인을 시작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거리 현수막 게시 등을 통해 전국 단위 수신료 거부 운동을 벌일 예정이다. 지상파의 중간광고를 허용하고, 케이블TV 등 유료방송에서 종합편성 채널의 의무전송을 폐지하는 정부 방침에 대해서도 제동을 걸기로 했다. 정용기 정책위의장은 “문재인 정권은 방송통신위원회를 동원해 지상파에 중간광고 허용 등 온갖 특혜를 주고, 정권 홍보에 소극적인 종편에는 의무송출 폐지로 노골적 압박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지상파 중간광고를 원천 금지하는 강효상 의원 발의안과 국회 동의를 얻을 시에만 중간광고를 허용하는 박대출 의원 발의안을 두고 당내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KBS 특위 위원장을 맡은 박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종편 채널들이 내용적 측면에서는 안착 단계까지 이르지 않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의무전송 조항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KBS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제1야당이 잘못된 주장을 이어갈 경우 국민에게 공영방송 제도 자체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줄 수 있다”며 “보도 공정성에 대한 문제를 수신료와 연계하는 것은 공영방송의 독립성을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식 대변인은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정치적 공방거리로 계속 활용하기 어려워지니까 공영방송 공정성 이슈로 방향을 선회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최고야 best@donga.com·강성휘·유원모 기자}

조선의 제22대 임금 정조가 당대 정치적 반대파였던 노론 계열의 호론 벽파의 수장 심환지(1730∼1802)에게 보낸 밀찰(密札·비밀편지) 9통이 새로 확인됐다. 이 편지에는 조선왕조실록, 승정원일기 등 공식 사료에는 기록되지 않은 기밀이 담겨 있어 정조의 통치 체제를 이해하는 새로운 자료로 평가받는다. 앞서 2009년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밀찰 297통이 발견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1923호(정조어찰첩)로 지정된 바 있다. 정조의 밀찰을 소장 중이던 심환지의 후손 청송 심씨 문중에서 최근 안대회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에게 편지 분석을 의뢰해 존재가 알려졌다. 안 교수는 정조의 비밀편지를 분석한 논문 ‘정조대 군신의 비밀편지 교환과 기밀의 정치운영’을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학술지 ‘정신문화연구’에 실을 예정이다.○ 밀찰 보안에 극도로 예민했던 정조 “김매순처럼 입에서 아직 젖내가 나는 자가 감히 선현(송시열)을 모욕해 붓끝에 올리기까지 하니, 제멋대로 내버려 둔다면 조정에 어른이 있다고 하겠는가?” 1799년 정조가 심환지에게 보낸 한 편지에는 분노로 가득 찬 감정이 그대로 실려 있다. 당시 조정에서는 호론의 지도자였던 한원진(1682∼1751)을 이조판서로 추증(追贈·사후에 직급을 높임)하는 안건으로 호론과 낙론이 팽팽한 논쟁을 펼치고 있었다. 정조는 낙론을 이끌던 김조순(1765∼1832)을 통해 반대 여론을 가라앉히는 등 중재에 나섰다. 그런데 스물네 살의 신진 관료였던 김매순이 상소문을 써 낙론의 반발 심리를 부추기자 이에 감정이 폭발한 것이다. 이 같은 내용은 기존에 알려진 정조의 정치적 성향과 다른 모습이어서 주목된다. 18세기 조선의 유학계는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색채를 보인 낙론 계열과 정통 성리학 체계를 고수한 호론으로 분화됐는데 정조의 정치적 성향은 낙론에 가깝다고 여겨져 왔다. 안 교수는 “정조실록 등 공식 기록에서는 정조가 호락논쟁에 중립을 지켰다고 나와 있지만 감정의 민낯을 보여주는 밀찰에서는 오히려 호론에 동조한 모습”이라며 “‘만류할 때는 반드시 경의 뜻이라 말하고, 남들 눈에 띄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는 등 자신의 언급이 공개되면 파장이 클 것으로 정조도 예상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밀찰의 성격상 정조는 보안을 극도로 중시했다. 심환지에게 보낸 편지 중에는 “겸종(겸從·잡일을 하거나 시중 드는 사람) 가운데 잡류가 많다고 들었으니 솎아낼 방도를 생각해 더욱 치밀하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만기친람형 정조의 통치술 “정약용은 문벌과 글재능은 합당하지만 외조부의 신주를 불태워 땅에 묻을 때 일언반구도 애통해하며 만류한 일이 없습니다. 여론은 모두 그를 사학(邪學)에 물들었다고 하니 청요직에 선발해서는 안 됩니다.” 심환지에게 보낸 정조의 밀찰과 함께 이번에 새롭게 연구된 박종악(1735∼1795)이 정조에게 보낸 비밀편지 내용의 일부다. 노론 출신으로 1792년 우의정을 지낸 박종악이 다산 정약용(1762∼1836)에 대한 인사정보를 보고한 것이다. 당시에 고위관료로 진출하는 발판인 홍문관 관원의 선정 문제로 노론과 남인, 소론 계열 간에 팽팽한 기 싸움이 진행되고 있었다. 정조는 이 같은 여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인 계열인 정약용을 홍문관에 등용시켜 이후 정국을 급속히 냉랭하게 만들었다. 안 교수는 “신진 관료에 대한 인사 추천권은 국왕이 아닌 관료들의 협의로 진행한다는 법적 절차가 있었지만 정조는 소소한 국정에까지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려 했다”며 “정조의 밀찰은 노련하게 책략을 구사한 소통 방법이었지만 과도한 비밀주의에 의존한 정치 형태라는 점에서 비판의 소지 역시 크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1960년대부터 20여 년간 공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추억이 깃든 옛 성무교회 건물(사진)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서울 동작구 보라매공원에 위치한 ‘서울 구 공군사관학교 교회’를 문화재로 등록 예고한다고 2일 밝혔다. 성무교회로 불렸던 이 건물은 1964년 옛 공군사관학교 교정(현 보라매공원) 내에 지어졌다. 최창규 건축가가 설계했으며 당시 미 공군 장병과 국내외 신자들의 성금 2만8000달러를 모아 만들어졌다. 급경사로 디자인된 지붕형태와 수직성을 강조한 내부 공간 등은 당시 일반적인 교회 건축 형식에서 벗어난 독특한 건축 기법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5년 공군사관학교가 충북 청원군으로 이전하면서 한동안 창고처럼 사용되다 2013년부터 지역문화예술 공간인 ‘동작아트갤러리’로 운영되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날 ‘대한민국임시정부 건국강령 초안’과 ‘서울 경희대학교 본관’ 등 2건을 등록문화재 제740, 741호로 각각 등록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극락(極樂)에는 삶은 돼지머리와 해맑은 삼해주(三亥酒)가 있는가? 만일 그런 것들이 없다면 비록 극락이라 하더라도 나는 가지 않겠네.” (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1420∼1488)은 ‘돼지’를 극락세계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다. 조선시대에도 잔칫날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돼지에 관한 즐거운 이야기는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돼지꿈을 꿨다면 복권 당첨 같은 대길(大吉)을 바란다. 이처럼 돼지는 풍요와 다산(多産), 행운 등 긍정적 인식이 가득한 동물이다.》 돼지해는 12년마다 돌아오지만 2019년 기해(己亥)년은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조합한 간지(干支)력을 사용하는데, 10개의 천간에서 ‘기(己)’는 노란색을 나타낸다. 2007년 정해년도 황금돼지해로 알려졌지만 사실 ‘정’의 색상은 적(赤)색이다. 12년 전 ‘붉은돼지해’가 황금돼지해로 둔갑한 건 빨간색을 부(富)와 동일시하는 중국 문화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 인간과 돼지의 2000년 동고동락 집을 뜻하는 한자 가(家)는 지붕 ‘宀’ 밑에 돼지 ‘豕’가 함께 사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다. 지금도 전북 남원지역과 제주도, 일본 오키나와, 중국 산둥(山東)성 등지에는 친환경돼지 변소인 ‘돗통시’가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 돼지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에는 “주호(州胡·제주도)에서는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어 철기시대 이후 돼지의 완전한 가축화가 이뤄진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재래종 돼지는 조선 후기까지 사육했지만 이후 외래종이 들어오며 점차 사라졌다. 현재 국내에서 주로 사육하는 돼지는 랜드레이스종(덴마크)과 요크셔종(영국) 등 새끼를 많이 낳고 생장속도가 빠른 외국 품종이 대다수다.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토종 돼지로는 경북 김천시의 지례돈(知禮豚)과 경남 사천시의 사천돈(泗川豚) 등이 있다. 곽승현 선진기술연구소 양돈기술개발팀장은 “우리나라 재래 돼지는 서양 돼지보다 몸집은 작지만 지방 함량이 높아 고기 맛이 우수하다. 고급육 생산을 위한 주요 품종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며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양돈장이 증가하는 등 동물 복지를 증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한국 양돈업계에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돼지를 키우는 집은 줄어들었지만 ‘돼지저금통’ 등 재물과 관련한 상징물로 돼지는 여전히 함께한다. 돼지 모양 저금통의 기원은 18세기 잉글랜드. 한 도공이 ‘pygg’라는 오렌지색 점토를 ‘pig(돼지)’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돈(豚)-돈(金) 발음 같아, 복의 상징으로 신화와 설화 속 돼지는 중요한 장소를 알려주는 능력자 혹은 신의 제물로 등장한 경우가 많다. ‘삼국사기’에는 수도를 점지하는 돼지의 신성한 모습이 표현돼 있다. 이 책의 고구려 유리왕편에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 이를 잡아오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관리가 국내성 위례암에서 겨우 잡았는데, 이곳의 산세와 지세가 뛰어나 왕에게 알려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지금도 고사나 굿을 지낼 때면 돼지머리를 빼놓지 않는데 조선시대 기록인 ‘동국세시기’에도 12월 납향(한 해 동안 겪은 일을 고하는 제사)의 제물로 산 돼지를 바쳤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돼지가 재물과 복의 상징물로 여겨진 것은 집안의 중요한 자산인 데다 ‘돼지 돈(豚)’과 ‘돈(金)’의 발음이 같은 이유도 있었다”며 “강한 번식력을 가진 돼지가 풍년이나 번창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극락(極樂)에는 삶은 돼지 머리와 해맑은 삼해주(三亥酒)가 있는가? 만일 그런 것들이 없다면 비록 극락이라 하더라도 나는 가지 않겠네.”(태평한화골계전·太平閑話滑稽傳) 조선 초기 문신 서거정(1420~1488)은 ‘돼지’를 극락세계의 첫 번째 조건으로 꼽았다. 조선시대에도 잔칫날이면 빠지지 않는 음식이 돼지고기였다. 돼지에 관한 즐거운 이야기는 음식에 그치지 않는다. 돼지꿈을 꿨다면 복권 당첨 같은 대길(大吉)을 바란다. 이처럼 돼지는 풍요와 다산(多産), 행운 등 긍정적 인식이 가득한 동물이다. 돼지해는 12년마다 돌아오지만 2019년 기해(己亥)년은 60년 만에 찾아온 ‘황금돼지해’다.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를 조합한 간지(干支)력을 사용하는데, 10개의 천간에서 ‘기(己)’는 노란색을 나타낸다. 2007년 정해년도 황금돼지해로 알려졌지만 사실 ‘정’의 색상은 적(赤)색이다. 12년 전 ‘붉은 돼지해’가 황금돼지해로 둔갑한 건 빨간색을 부(富)와 동일시하는 중국 문화의 영향이 컸다는 분석도 있다. ● 인간과 돼지의 2000년 동고동락 집을 뜻하는 한자 가(家)는 지붕‘宀’ 밑에 돼지‘豕’가 함께 사는 모습을 표현한 상형문자다. 지금도 전북 남원 지역과 제주도, 일본 오키나와, 중국 산둥(山東)성 등지에는 친환경적 돼지 변소인 ‘돗통시’가 남아 있다. 한반도에서 돼지를 집에서 키우기 시작한 것은 약 2000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삼국지’ 위지동이전 한조에는 “주호(州胡·제주도)에서는 소나 돼지 기르기를 좋아한다”는 기록이 나와 있어 철기시대 이후 돼지의 완전한 가축화가 이뤄진 것으로 학계에선 보고 있다. 우리나라 재래종 돼지는 조선 후기까지 사육했지만 이후 외래종이 들어오며 점차 사라졌다. 현재 국내에서 주로 사육하는 돼지는 랜드레이스종(덴마크)과 요크셔종(영국) 등 새끼를 많이 낳고 생장속도가 빠른 외국 품종이 대다수다. 최근까지 명맥을 유지하는 토종 돼지로는 경북 김천시의 지례돈(知禮豚)과 경남 사천시의 사천돈(泗川豚) 등이 있다. 곽승현 선진기술연구소 양돈기술개발팀장은 “우리나라 재래 돼지는 서양 돼지보다 몸집은 작지만 지방함량이 높아 고기 맛이 우수하다. 고급육 생산을 위한 주요 품종으로 최근 각광받고 있다”며 “정보통신기술을 접목한 양돈장이 증가하는 등 동물복지를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한국 양돈업계에서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직접 돼지를 키우는 집은 줄어들었지만, ‘돼지 저금통’ 등 재물과 관련한 상징물로 돼지는 여전히 함께 한다. 돼지모양 저금통이 유래한 기원은 18세기 잉글랜드. 한 도공이 ‘pygg’라는 오렌지 색 점토를 ‘pig(돼지)’로 잘못 알아들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돈(豚)-돈(金) 발음 같아, 복의 상징으로 신화와 설화 속 돼지는 중요한 장소를 알려주는 능력자 혹은 신의 제물로 등장한 경우가 많다. ‘삼국사기’에는 수도를 점지하는 돼지의 신성한 모습이 표현돼 있다. 이 책의 고구려 유리왕 편에는 제물로 바치기 위해 기르던 돼지가 달아나 이를 잡아오라고 지시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관리가 국내성 위례암에서 겨우 잡았는데, 이곳의 산세와 지세가 뛰어나 왕에게 알려 수도를 옮겼다고 한다. 지금도 고사나 굿판을 지낼 때면 돼지 머리를 빼놓지 않는데 조선시대 기록인 ‘동국세시기’에도 12월 납향(한 해 동안 겪은 일을 고하는 제사)의 제물로 산돼지를 바쳤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천진기 국립전주박물관장은 “돼지가 재물과 복의 상징물로 여겨진 것은 돼지가 집안의 중요한 자산인 데다 ‘돼지 돈(豚)’과 ‘돈(金)’의 발음이 같은 이유도 있었다”며 “강한 번식력을 가진 돼지가 풍년이나 번창을 가져온다는 인식이 현재까지 전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우리나라 역사속 기해년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돼지가 길상(吉祥)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덕분인지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기해년만큼은 평화로운 시기가 많았다. 조선의 운명이 위태로웠던 1899년도 무탈했다. 인천 제물포와 노량진을 잇는 국내 최초의 철도 경인선과 서울~인천 간 시외전화가 개통되는 등 근대 문물이 유입됐다. 다만 최초의 민간 신문이었던 독립신문이 대한제국에 대한 비판 기사로 창간 4년 만에 폐간됐다. 큰 규모 전쟁은 황금돼지해를 비켜갔다. 1599년은 왜구가 조선을 침략해 1592년부터 임진왜란, 정유재란 등 6년 동안 전쟁이 끝난 다음해였다. 그렇다고 아주 사건이 없진 않았다. 1839년은 천주교에 대한 박해가 극심했다. 서양인 신부 3명을 비롯해 천주교인 119명이 처형되거나 투옥되는 등 ‘기해박해’로 나라가 뒤숭숭했다. 세도가문이자 천주교에 관용적이었던 안동 김씨로부터 권력을 얻고자 한 풍양 조씨가 일으킨 사건으로 이후 조정의 권력은 풍양 조씨에게 넘어갔다. 1659년은 유명한 ‘예송(禮訟) 논쟁’이 벌어진 해다. 조선 효종이 승하한 뒤 조정은 그의 의붓어머니(인조의 계비) 자의대비 조씨가 상복을 몇 년간 입어야 할지를 둘러싸고 대립했다. 효종이 인조의 둘째 아들로서 왕위에 올랐다는 사실을 고려해 조씨가 1년간 상복을 입어야 한다는 서인의 주장과, 맏아들이 아니더라도 왕실 종통(宗統)을 이었으면 당연히 적자(嫡子)로 인정됐으니 3년을 입어야 한다는 남인의 주장이 팽팽하게 맞섰다. 1419년은 조선왕조 500년 간 유일하게 타국을 침범해 전쟁을 벌인 해이기도 하다. 왜구의 간헐적 약탈에 시달리던 조선은 삼군도제찰사 이종무로 하여금 227척의 함선과 1만7000여 명의 수군을 이끌고 대마도를 공격하게 했다. 그는 대마도 앞바다에 함선을 정박하고 2주간 전투를 벌였고 대마도주 소 사다모리(宗貞盛)에게 항복을 받아내고 귀환했다. 향가 ‘처용가’의 주인공 처용이 신라에 나타난 해는 879년 기해년이다. 1899년에는 자유주의 경제학의 거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영화감독 앨프리드 히치콕 등이 태어났다. 스페인 축구클럽 ‘FC 바르셀로나’와 이탈리아 ‘AC 밀란’이 창단된 해이기도 하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올해 12월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이 7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했다. 30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이번 달 1∼29일 한국 영화 관객 점유율은 47.2%를 기록했다. 현재 추세라면 47% 안팎에 머무를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신과 함께―죄와 벌’과 ‘1987’ ‘강철비’ 등이 흥행에 성공하며 한국 영화 점유율이 78.2%를 기록한 것과 비교하면 큰 폭으로 줄어들었다. 12월은 한국 영화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시기로, 외화에 점유율 우위를 내준 것은 2011년(37.4%) 이후 7년 만이다. 올겨울 개봉한 ‘마약왕’(175만 명), ‘스윙키즈’(113만 명) 등 대작들이 흥행에 고전하고 있는 탓이 크다. 한편 2018년 연간 한국 영화 점유율은 ‘신과 함께’ 시리즈 등의 흥행으로 29일 기준 51.1%를 기록했다. 2011년부터 8년 연속 과반을 유지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2014년(50.1%) 이후 최저 수준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맑은 새벽 우물에 양치질하니 우물 물빛이 해가 타는 것 같이 붉네. 꽃 무리가 시골집을 비추니 아침 해 조각이 노을처럼 붉네.”(완당전집·阮堂全集 중) 조선 후기 문인이자 실학자인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저서 ‘완당전집’에서 아침의 풍경을 이같이 기록했다. 아침부터 밤까지 이어지는 시간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이처럼 하루라는 일상을 300여 점의 유물과 영상 등으로 소개하는 독특한 전시가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이 1년여 간의 준비기간을 마치고, 최근 재개관한 상설전시실 1관 ‘한국인의 하루’다. 1993년 민속박물관이 지금 자리인 경복궁 경내에 문을 연 뒤 1관은 ‘한민족 생활사’라는 상설전시를 진행해왔다. 5000년에 걸친 한민족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전시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좁은 공간 탓에 우리나라의 다채로운 문화를 보여주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져 대대적인 개편에 나섰다. “군자가 거울을 보는 것은 치장하기 위함이 아니라, 의관(衣冠)을 가지런히 하고, 태도를 존엄하게 하기 위함이다.”(사소절·士小節) 조선 후기 북학파 실학자 이덕무(1741∼1793)의 말처럼 의관정제(衣冠整齊)는 아침을 시작하는 사대부들에게 가장 큰 덕목이었다. 이와 관련된 유물인 다산 정약용(1762∼1836)이 자녀들에게 당부의 말을 적은 서첩인 ‘하피첩(霞피帖·보물 제1683-2호)’ 원본과 조선 후기 선비들의 생활지침서인 ‘일용지결(日用指訣)’ 등을 관람할 수 있다. 집안일부터 농사일까지 낮 시간은 생산이 일어나는 활기찬 시간이다. 박명배 소목장(국가무형문화재 제55호)과 박문열 두석장(제64호)이 공방에서 전통 가구와 장식을 만드는 모습을 영상을 통해 즐길 수 있고, 특색 있는 전국 팔도 항아리들도 한곳에 모아 전시한다. 해가 떨어진 밤하늘은 별들이 자리를 대신한다. 이번 전시에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천문도인 ‘천상열차분야지도’와 서양의 천문도인 신법천문도가 8폭 병풍에 동시에 그려져 있는 ‘신구법천문도(보물 제1318호)’를 공개한다. 전시실 천장에는 천상열차분야지도의 겨울철 별자리를 키오스크를 통해 구현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박물관은 앞으로 상설전시실을 계절 변화에 맞게 3개월마다 전시품을 교체할 계획이다. 김창호 학예연구사는 “상설전시임에도 특별전처럼 전시 내용을 지속적으로 바꿔 변화무쌍한 한국인의 모습을 보여줄 방침”이라며 “1년을 주제로 하는 상설전시 2관 ‘한국인의 일상’과 3관 ‘한국인의 일생’까지 한국인의 삶과 관련된 전시를 한꺼번에 즐기면 더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