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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징용돼 미쓰비시중공업의 나가사키조선소에서 일하다 원폭 피해를 본 한국인 3명이 뒤늦게 피폭 수첩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일본 나가사키지방법원은 8일 한국인 피폭 징용자 3명이 나가사키 시를 상대로 낸 피폭수첩 발급거부 취소 청구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하고, 시 당국에 수첩 발급을 명령했다고 아사히신문이 보도했다. 한국인 원폭피해자는 약 7만 명이다. 이 중 일본 정부로부터 피폭자임을 인정해주는 건강수첩을 받은 피해자는 약 3000명(사망자까지 포함)이다. 일본 정부는 건강수첩이 있는 원폭피해자에게만 의료비와 간병비, 건강관리수당 등을 지원했다. 일본 정부는 건강수첩 발급의 중요한 근거로 각 전범 기업이 제출한 징용자 명부를 활용했다. 미쓰비시중공업도 태평양전쟁 종전 약 3년 후인 1948년 6월 나가사키 지방 법무국에 한반도 출신 징용자 3418명의 명부를 제출하면서 미지급 임금 85만9779엔을 공탁했다. 하지만 나가사키 지방 법무국은 공탁 서류를 보관하라는 1958년의 법무성 지침을 어기고 보존기한이 지났다는 이유로 1970년 명부를 폐기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됐다. 2015, 2016년 건강수첩 발급을 신청했다가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거부당한 김성수(93) 옹(翁) 등 한국인 징용 피폭자 3명은 나가사키 시 당국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 이번에 승소했다. 재판 과정에서 원고 측은 원폭 투하 당시의 체험을 상세히 증언할 수 있는 점 등을 들어 피폭자임을 주장했다. 일본 재판부는 “원고의 진술은 뒷받침이 되고, 진술의 골자도 믿을 만해 옳다고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예측하지 못한 사태를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행위다. 일방적인 도발이며 매우 유감스럽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추적 레이더 조사(照射)와 관련해 한 말이다. 다만 최근의 언급은 아니다. 시점은 2013년 2월 6일. 대상은 중국이다. 일본 정부는 2013년 1월 ‘중국 감시선이 일본 헬리콥터와 호위함에 대해 각각 추적 레이더를 가동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추적 레이더를 비춘 적 없다’고 반발했지만 총리까지 나서 중국에 항의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이 벌이고 있는 ‘레이더 가동’ 진실게임과 판박이다. 하지만 흔히 일어나는 일로 넘겨버리기엔 석연치 않은 대목이 있다. 2013년 초 일본과 중국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유권을 놓고 극심하게 대립했다. 중국은 센카쿠 인근으로 군함을 보냈고, 일본은 해상자위대 파견으로 맞섰다. 중국 해양감시선과 일본 순시선도 대치하면서 군경이 모두 동원된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도 펼쳐졌다. 그런 민감한 시기에 추적 레이더 가동 이슈가 터졌고, 아베 총리가 유감을 나타낸 것이다. 당시 중일 간 대치 국면은 마치 전쟁이 날 듯이 법석대는 수준이었다. 현재 한일 관계가 악화됐다고는 하지만 그처럼 군사적 긴장 관계를 느낄 정도는 아니다. 일본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전략적 가치도 다르다. 지난해 개정된 방위대강에서 일본은 가장 큰 군사적 위협국으로 중국을 꼽았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고 있는 우방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정부와 정치인들은 ‘한국 해군 구축함이 일본 초계기에 추적 레이더를 가동했다. 재발 방지책을 마련하라’고 연일 정치적 메시지를 보내고, 유튜브를 통한 국제 여론전까지 벌이고 있다. 한국 국방부도 일본 측 위협을 강조하며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일본이 우방인 한국에 날을 세우는 이유는 뭘까. 일본 언론이 분석하는 대로 위안부 문제, 화해·치유재단의 해산, 강제징용 판결 등으로 아베 총리의 심기가 불편했는데, 레이더 문제까지 더해지자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폭발한 것일 수 있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빠르게 부상하고,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을 보내면서 한일 간 경제 격차가 줄어들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한일 청구권협정을 맺은 1965년 한일 간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1 대 100이었지만, 요즘은 1 대 2.5 수준으로 줄었다. 과거 일본은 한국에 비교적 너그러웠지만, 지금은 조바심을 내고 있다. 또 하나. 한국에 대한 부채의식이 옅어졌다. 과거 일본은 외교적으로 한국과 부딪치더라도 결국엔 한발 물러섰다. 강제병합, 위안부 문제 등이 일본인 마음속에 부채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다르다. 2015년 말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한다’고 한국 정부와 합의하면서 족쇄 하나를 풀었다. 한국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문제는 1965년 한일협정으로 해결됐다’고 밝혔지만, 한국 대법원의 반대 판결 이후 지한파 일본 지식인들도 한국과 담을 쌓기 시작했다. 부채의식을 지워버린 일본. 이제 앞으로 국제사회의 첨예한 이슈에서 한국에 대한 공세의 칼날을 더 날카롭게 세울 것 같다. 하지만 방패 역할을 할 국내 인사를 찾는 게 쉽지 않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고자 뛰어다녔던 외교부 공무원과 청와대 인사들은 박근혜 정부 시절의 과오와 함께 사라졌다. 공무원들까지도 정권이 바뀌면 ‘찍히는’ 현실. 과연 누가 소신 있게 방패 역할을 할 수 있겠나. 박형준 국제부 차장 lovesong@donga.com}

지난달 온 가족 5명이 일본 도쿄를 다녀왔다. 인원수대로 숙박료를 받는 일본 특성상 호텔을 이용하려면 최소 1박에 40만 원을 내야 했다. 경비를 줄이고자 공유숙박업체 에어비앤비를 통해 1박에 20만 원을 내고 일본인 거주 원룸을 통째로 빌렸다. 체크인했더니 집주인은 가족 5명의 여권 정보를 달라고 했다. 심지어 온 가족 얼굴 사진도 찍었다. 다른 나라에서도 수차례 에어비앤비를 이용했지만 이처럼 까다로운 적은 없었다. 이유를 물었더니 “일본에선 올해 여름부터 도심 가정집을 이용해 공유숙박업을 하는 게 합법화됐다. 내 집은 적법 숙소다. 주위에 폐 끼치는 것을 막기 위해 투숙객 정보를 꼼꼼하게 받는다”는 설명이 돌아왔다. 한국보다 앞서 일본이 공유숙박을 전면 허용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일본인은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해 낯선 이방인을 자기 집에 들이길 꺼린다. 심지어 친한 친구여도 집에 초대하는 경우는 드물다. 그런 일본이 올해 6월 15일 주택숙박사업법(일명 ‘민박신법’)을 시행하면서 공유숙박을 전면 허용했다. 까다로운 여관업 영업 허가를 얻을 필요 없이 누구나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에 신고만 하면 자기 집을 돈 받고 외부인에게 빌려줘도 된다. 한국은 농어촌 지역에서만 내·외국인에게 집을 제공할 수 있고, 서울 등 도시에선 외국 관광객에게만 빌려줄 수 있다. 일본 정부는 2010년대 중반 숙박시설 부족과 빈집 문제 해결을 위해 공유숙박을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당시 “손님 다 뺏긴다”며 반발하는 호텔과 여관업계, 그리고 프라이버시를 방해받기 싫어하는 국민 정서가 큰 걸림돌이었다. 일본 정부는 기득권층 설득 작업에 먼저 나섰다. 또 2016년 1월 도쿄 하네다공항 인근 오타구를 ‘민박 특구’로 지정하며 제한된 지역부터 공유숙박을 테스트했다. ‘최소 6박’이라는 조건을 달아 단기 숙박 위주의 기존 업체 피해를 최소화했다. “새로운 형태의 숙박이 기존 업체들에도 추가 관광객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설득하기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직접 관광전략회의를 주재하며 정부 차원에서 외국 관광객 유치에 나섰다. 일본 방문 외국인 관광객이 2013년 사상 처음 1000만 명을 넘었고, 올해 3000만 명을 돌파했다. 매년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면서 호텔마다 방이 꽉꽉 차자 기득권층은 공유숙박 전면 시행에 별 반발을 하지 않았다. ‘푼돈에 이방인들에게 집을 내주다 보면 각종 사건사고가 생긴다’는 부정적 국민감정도 점차 완화됐다. 민박신법에 따르면 집주인은 소음 및 위생 관리 대책을 제출해야 하고, 숙박명부를 의무적으로 작성해야 한다. 신고 의무를 다하지 않은 공유숙박 집은 퇴출된다. 공유숙박이 활성화될수록 청소업체, 집 수리 및 인테리어 업체 일감이 늘어났고, 민박 이용자와 집주인이 공존하도록 현관과 욕실을 2개씩 만든 공유숙박용 주택 등 새로운 사업도 생겨났다. 17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정부는 ‘내년에 공유숙박을 내국인에게까지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숙박업계는 공유숙박 저지를 위해 단체행동에 나설 태세다. 정부가 신사업을 추진할 때마다 기존 집단이나 세력이 반발하고, 그러면 정부는 신사업을 늦추거나 ‘없던 일’로 하는 악순환이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 이미 일본이 하고 있는 변화나 혁신도 실천해 내지 못한다면, 일본을 앞서기는커녕 따라잡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박형준 국제부 차장 lovesong@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가 18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채택할 장기 방위전략인 ‘방위대강’에 사거리 500∼900km의 장거리 미사일 도입 계획이 포함돼 있다고 지지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은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가 가능) 원칙을 유지하고 있어 원칙적으로 공격형 전략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공격형 무기인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려는 것이라고 통신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방위대강에는 장거리 순항 미사일인 ‘스탠드오프(stand-off)형 미사일을 획득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사거리 900km의 합동장거리공대지미사일(JASSM) 도입 계획도 담겼다. JASSM은 정밀유도 미사일로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일본 영공에서 JASSM 미사일을 발사하면 북한 내륙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통신은 “적 기지 공격 능력을 갖추는 셈”이라며 “정부가 전수방위 원칙 수정에 대한 논의도 없이 군사 장비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위대강은 10년 주기로 작성되는 일본 정부 차원의 방위 전략이다. 현재 2013년 말에 마련한 방위대강을 적용하고 있는데 아베 정부가 중국과 북한의 위협을 빌미로 5년 만에 다시 만들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가 18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채택할 장기 방위전략인 ‘방위대강’에 사거리 500~900㎞의 장거리 미사일 도입 계획이 포함돼 있다고 지지통신이 17일 보도했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전수방위(專守防衛·공격을 받은 경우에만 방위력 행사가 가능) 원칙을 유지하고 있어 원칙적으로 공격형 전략무기를 보유할 수 없다. 하지만 중국과 북한 위협을 빌미로 공격형 무기인 장거리 미사일을 보유하려는 것이라고 통신은 전했다. 통신에 따르면 방위대강에는 원거리 공격용인 ‘스탠드오프(stand-off)형 미사일을 획득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에서 생산하는 사거리 900㎞의 합동장거리공대지미사일(JASSM) 도입 계획도 담겼다. JASSM은 정밀유도 미사일로 항공자위대 전투기가 일본 영공에서 JASSM 미사일을 발사하면 북한 내륙에까지 도달할 수 있다. 통신은 “적기지 공격 능력을 갖추는 셈”이라며 “정부가 전수방위 원칙 수정에 대한 논의도 없이 군사 장비화를 진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방위대강은 10년 주기로 작성되는 일본 정부 차원의 방위 전략이다. 현재 2013년 말에 마련한 방위대강을 적용하고 있는데 아베 정부가 중국과 북한 위협을 빌미로 5년 만에 다시 만들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현대아산 입사 15년 차인 A 차장(40)도 지난달 18일 방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입사 이래 수십 번 북한을 방문했지만, 이번 금강산 관광 20주년 기념행사에선 왠지 가슴이 더 설렜다고 한다. ‘진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 A 차장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2004년 5월 현대아산에 입사했다. 입사 1년 전에 금강산 관광이 육로로까지 확대되면서 대북 사업이 순풍을 타고 있던 때였다. 2005년 6월 금강산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고, 그해부터 현대아산은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그가 받던 월급은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 쟁쟁한 계열사보다 더 많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에 설립된 현대아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월급을 많이 주라”고 지시한 덕분이었다. 현대아산은 매번 새로운 역사를 써 갔다. 북한과 맺은 계약, 북한에서 벌인 사업이 모두 ‘사상 최초’였다.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됐다. A 차장은 ‘남북 관계 개선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선후배 관계도 끈끈했다. A 차장은 서울 계동 사옥 근처에서 술값 걱정 없이 술을 마셨다. 선배들이 술값을 다 내줬으니까. 하지만 2008년 7월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망 사고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 천안함 폭침(2010년), 연평도 포격(2010년), 북한 핵실험(2009, 2013, 2016, 2017년) 등 악재가 연이어 터졌고, 북한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인한 매출 손실액을 약 1조5000억 원으로 보고 있다. 10년간 누적 적자는 2247억 원.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평화생태 관광 프로그램, 해외를 오가는 크루즈 여행, 심지어 탄산수 유통에까지 손을 댔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2008년 1084명이었던 직원을 현재 167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매출 손실액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앞으로 전망도 불확실하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하는 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쉽지 않다. 설혹 재개되더라도 정치 논리에 휘말리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만난 A 차장의 표정은 밝았다. “경영 악화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고,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과 동기를 봐야 했다. 월급도 한동안 줄었다. 하지만 현대가 아니면 어느 기업이 대북 사업을 할 수 있겠나.” 정 명예회장의 고향은 금강산 북쪽 강원 통천이었다. 정주영, 몽헌 부자는 고향을 일군다는 애절한 소망을 담아 필생의 사업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펼쳐 왔다. 현재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현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서 “선대 회장님의 유지(遺志)인 남북 경제협력은 반드시 현대그룹에 의해 꽃피게 될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대북 퍼주기 논란 등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해 세간의 비판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남북 관계 개선을 위해 경협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대 특유의 ‘불도저’ 정신, ‘오뚝이’ 정신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대북사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그래도 없다면 새 길을 닦아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10년간 남북 관계의 풍랑에 따라 부침해 온 현대가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길 고대한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현대아산 입사 15년차인 A 차장(40)도 지난달 18일 방북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입사 이래 수십 번 북한을 방문했지만, 이번 금강산 관광 20주년 기념행사에선 왠지 가슴이 더 설렌다고 한다. ‘진짜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때문. A 차장은 대학 졸업과 동시에 2004년 5월 현대아산에 입사했다. 입사 1년 전에 금강산 관광이 육로로까지 확대되면서 대북 사업이 순풍을 타고 있던 때였다. 2005년 6월 금강산 관광객 수가 100만 명을 돌파했고, 그해부터 현대아산은 흑자를 내기 시작했다. 당시 회사 분위기는 더없이 좋았다. 그가 받던 월급은 현대건설, 현대상선 등 쟁쟁한 계열사보다 더 많았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99년에 설립된 현대아산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월급을 많이 주라”고 지시한 덕분이었다. 현대아산은 매번 새로운 역사를 써 갔다. 북한과 맺은 계약, 북한에서 벌인 사업이 모두 ‘사상 최초’였다. 일거수일투족이 언론에 보도됐다. A씨는 ‘남북 관계 개선에 일조하고 있다’는 자부심이 들었다. 선후배 관계도 끈끈했다. A 차장은 서울 계동 사옥 근처에서 술값 걱정 없이 술을 마셨다. 선배들이 술값을 다 내줬으니까. 하지만 2008년 7월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 사망사고 이후 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것. 천안함 폭침(2010년), 연평도 포격(2010년), 북한 핵실험(2009, 2013, 2016, 2017년) 등 악재가 연이어 터졌고, 북한에 대한 여론은 싸늘하게 식었다. 현대그룹은 금강산 관광 중단으로 인한 매출 손실액을 약 1조5000억 원으로 보고 있다. 10년 간 누적 적자는 2247억 원. 새로운 수익원을 찾기 위해 평화생태 관광 프로그램, 해외를 오가는 크루즈 여행, 심지어 탄산수 유통에까지 손을 댔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2008년 1084명이었던 직원 수를 현재 167명으로 줄였다. 하지만 금강산 관광 매출 손실액을 메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앞으로 전망도 불확실하다. 미국과 국제사회가 대북제재를 하는 한 금강산 관광 재개는 쉽지 않다. 설혹 재개되더라도 정치 논리에 휘말리면 언제 중단될지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만난 A 차장의 표정은 밝았다. “경영악화로 인해 재택근무를 하기도 했고, 회사를 떠나는 선배들과 동기를 봐야 했다. 월급도 한동안 줄었다. 하지만 현대가 아니면 어느 기업이 대북 사업을 할 수 있겠나.” 정 명예회장의 고향은 금강산 북쪽 강원 통천이었다. 정주영-몽헌 부자는 고향을 일군다는 애절한 소망을 담아 필생의 사업으로 금강산 관광 사업을 펼쳐 왔다. 현재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현 회장은 매년 신년사에서 “선대 회장님의 유지(遺志)인 남북 경제협력은 반드시 현대그룹에 의해 꽃피게 될 것”이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대북 퍼주기 논란 등 현대의 대북사업에 대해 세간의 비판은 여전히 있다. 하지만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경협이 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현대 특유의 ‘불도저’ 정신, ‘오뚜기’ 정신이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대북 사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정 명예회장은 “길이 없으면 길을 찾고, 그래도 없다면 새 길을 닦아 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10년간 남북관계의 풍랑에 따라 부침해온 현대가 다시 새로운 역사를 쓰길 고대한다. 박형준 차장 lovesong@donga.com}

KT가 PC로 유선전화를 관리하는 ‘KT통화매니저’ 기능에 고객 응대 매뉴얼을 추가한 ‘친절매니저’를 새롭게 출시했다고 23일 밝혔다. 친절매니저는 고객, 민원인 등 전화가 올 경우 PC로 전환돼 △맞이 단계 △응대 단계 △종료 단계 등 전화 대응 매뉴얼을 보며 통화할 수 있게 만든 서비스다. 상황에 따른 고객 대응 매뉴얼을 볼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특징. △고객 전화번호 관리 △간단한 메모 저장 △착신전환 △문자 송수신 등 기존 통화매니저 기능도 함께 사용할 수 있다. KT 측은 “전화 응대가 많은 정부 기관과 지자체, 공공기관 등 대 국민 서비스를 하는 기관을 대상으로 출시됐다”고 말했다. 친절매니저는 월 4400원(부가가치세 포함)으로 이용 회선에 따라 최소 10%에서 최대 60%까지 할인받을 수 있다. KT 고객센터 또는 친절매니저 고객센터에서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KT 유선통화사업담당 최세준 상무는 “공공기관은 물론 민간 기업에서도 고객 전화 친절 응대에 대한 요구가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며 “앞으로도 KT는 유선 지능망 기술 활용한 차별화된 유선전화 부가서비스를 지속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2008년 말 기획재정부 출입기자 시절이었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내 기업들이 줄도산했다. 그해 12월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1만2000명 줄었다. 월별 취업자 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한 건 5년 2개월 만이었다. ‘실업 대란’, ‘최대 위기’와 같은 단어가 연일 신문 1면을 장식했다. 2009년 2월 윤증현 김&장법률사무소 고문이 새 기재부 장관으로 취임했다. 그는 취임하자마자 그해 성장률 전망치와 일자리 수를 마이너스로 발표했다. 경제전문가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적당히 숫자를 분식(粉飾)해 ‘장밋빛’ 목표를 제시하는 게 기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윤 장관은 취임사에서도 “경기침체를 하루아침에 정상 궤도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요술 방망이’는 없다”고 잘라 말해 시장의 헛된 기대감을 날려버렸다. 그 대신 경제 주체들이 고통 분담에 동참해 줄 것을 호소했다. 정책 추진은 과감했다. 추가경정예산 조기 편성,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 서비스산업 경쟁력 강화 등을 밀어붙였다. 역대급 규모의 추경을 조기에 편성하기 위해 수차례 국회를 드나들며 국회의원들을 설득했다. 국회의원들과 싸우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었다. 국정감사 때 국회의원의 질타에도 윤 장관은 “의원님 말씀만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정부 사정도 들어보셔야지요”라며 할 말을 다 했다. 두둑한 배포와 포용력 덕분에 그는 기재부 내에서 ‘다거(大哥·맏형)’로 불렸다. 2009년 0.3%까지 떨어졌던 경제성장률이 2010년에 6.2%로 급반등했다. 해외 언론들은 “교과서에 교재로 삼을 법한 경제회복”이라고 치켜세웠다. 많은 경제 전문가들이 V자 경제 반등을 ‘윤증현 효과’로 인정했다. 진념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2001년 1월에 취임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의 여진이 아직 남아 있을 때였다. 그는 취임 후 기자간담회에서 “앞으로 경제정책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청와대나 여당의 정치적 요구가 있더라도 ‘노(NO)’라고 해야 할 때는 ‘노’라고 분명히 말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장관으로 재직한 1년 3개월 동안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 만들어진 각종 기업 관련 규제를 철폐했다. 정치권과 금융당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소득세 법인세 양도소득세 세율 인하 방침을 밝혔다. 진 장관은 오랜 공직생활에서 오는 카리스마와 김대중 대통령의 신임을 바탕으로 소신 있는 경제 정책을 펼친 인물로 기억되고 있다. 김동연 기재부 장관이 조만간 교체될 것이란 예측이 많다. 1년 5개월째 한국 경제를 총지휘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물이 없다는 게 가장 큰 약점이다. 법인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등 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옥죄는 정책이 실시될 때 김 장관의 목소리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물론 김 장관에겐 시어머니가 너무 많다는 점을 인정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에 기여한 정치인들이 국토교통부, 행정안전부, 해양수산부, 교육부 등에 수장으로 앉아 있으면서 사전에 조율되지 않은 정책을 서슴없이 발표했고, 김 장관이 뒷수습했다. 장관급이지만 권한과 역할은 그 이상인 대통령정책실장도 사사건건 김 장관과 충돌하고 있다. 그런 파워 게임에 김 장관이 휘둘리는 모습을 보면서 기업들은 그의 발언에 대한 신뢰를 거두고 있다. 다음 기재부 장관은 윤 전 장관과 진 전 장관이 보여줬던 소신과 강단까지 갖춘 인물이 선임되길 고대한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일본 대표 기업이자 협력적 노사관계로 유명한 도요타자동차도 한때 전투적 노조로 골머리를 앓았다. 1950년 도요타는 종업원 약 20%를 해고하는 구조조정을 발표했고 노조는 전투적 쟁의를 벌였다. 생산직에서 시작된 쟁의는 점차 관리직까지 확대됐다. 도요타는 한때 작업장을 폐쇄하기도 했다. 그 후 약 10년간 도요타 노조는 크고 작은 쟁의를 벌였다. 자동차 생산공정 특성상 협력회사를 포함해 어느 한 조립라인 직원들이 쟁의를 하면 전체 생산공정을 세워야 했다. 쟁의를 할수록 오히려 노조원들의 삶이 팍팍해졌다. 결국 도요타 노사는 1962년 ‘노사선언’에 합의했다. 합의서 말미에 ‘일본의 도요타에서 세계의 도요타로 도약하는 눈부신 영광을 획득하기 위해 회사, 노동조합 모두가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을 맹세한다’고 적었다. 그 후 도요타 노사는 2인3각으로 협력했다. 다른 일본 기업들의 노사 역사도 대체로 도요타와 비슷하다. 요즘 일본에선 전투적 쟁의를 찾아보기 힘들다. 상급 노조가 전국적 투쟁을 벌이거나 강경 노조원이 경찰과 힘겨루기를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본의 노동운동은 전투적 투쟁(1945년 패전 직후)→노조와 경영진의 타협적 단계(1950년대 말부터 60년대까지)→노조의 경영 참가 단계(1970년대 중반 이후) 등의 순으로 발전해 왔다(스즈키 아키라·鈴木玲 호세이대 교수). 국내에선 LG전자와 코오롱이 한때 전투적 노조로 홍역을 앓았다. 1989년 임·단협에 불만을 품은 LG전자 창원공장 노조원들은 지게차로 경부고속도로를 막았고, 대로에 폐유를 뿌리고 방화를 했다. 124일간 이어진 파업으로 LG전자 창원공장은 쑥대밭이 됐고, LG전자는 가전업계 1위에서 2위로 내려앉았다. 2000년대 초반 한국 화섬(化纖)업계 전반이 위기에 빠지자 코오롱은 일부 섬유사업을 접기로 하고 근로자를 구조조정했다. 그러자 코오롱 구미공장 노조는 구미공장 정문을 점거하고 ‘코오롱 상품’ 불매운동을 벌이며 맞섰다. 2006년 3월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서울 성북구 자택 대형 유리문을 부수고 들어가 경비원을 폭행하기까지 했다. 변화의 시초는 ‘이러다가 회사가 문을 닫을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었다. 2006년 7월 코오롱 구미공장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김홍열 씨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노사가 대치하다가 낭떠러지에 몰려 ‘이러다 죽겠구나’ 생각이 들면, 그때서야 노사 화합의 힘을 깨닫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근 노조 간부를 9명에서 5명으로 줄였고, 구미공장의 주요 고객사를 일일이 찾아가 불편에 대해 사과했다. 1990년 LG전자 노조위원장으로 선출된 유재섭 씨는 취임하자마자 회사에 “노동자들이 힘을 합쳐 가전시장 1위를 탈환하겠다. 그 대신 회사는 업계 최고의 대우를 해 달라”고 요구했다. 임금을 올려달라는 게 아니라 ‘열심히 일해 1위를 되찾겠다’고 말하는 노조위원장을 보며 회사는 적지 않게 놀랐을 것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다음 달 21일 총파업을 강행한다고 한다. 현대·기아자동차 노조는 연례행사처럼 매년 파업을 하고,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공적자금을 수혈받은 상태인데도 임금을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극한 노사 대치로 공장 문을 닫았을 때 깨치면 늦다. 도요타, LG전자, 코오롱 사례에서 힌트를 얻어 ‘한국판 노사선언’이 잇따라 나오길 기대한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웹툰을 그리는 기맹기(필명·24·여) 작가. 경남 창원에서 보낸 유년 시절, 언니 둘 중 첫째 언니가 유난히 만화를 좋아했다. 밍크, 찬스 같은 만화잡지가 항상 집에 있었다. 그 덕분에 초등학생일 때부터 ‘커서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직접 만화를 그려 보곤 했다. 주로 판타지 만화였다. 블로그와 카페에 올렸더니 친구들이 “재밌다”고 말했다. 기분이 좋았다. 웹툰과의 인연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고교 시절 네이버 도전만화 게시판에 꾸준히 웹툰을 올렸다. 액션 판타지를 그린 작가의 웹툰이 ‘베스트도전만화’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때부턴 조회수가 수천 단위로 바뀌었다. “내 웹툰을 많은 사람이 본다는 사실에 설렜다. 열심히 그려 40회를 연재했다. 하지만 네이버로부터 정식 연재 제안을 받지는 못했다.” 웹툰 인연은 대학까지 이어졌다. 2014년 경기 이천에 있는 한 대학의 만화창작과로 진학했다. 1학년 때 캐릭터 콘셉트를 스케치하는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칠판에 ‘강남미인’(된장녀)이라고 주제를 적었다. ‘강남에서 성형하면 왜 된장녀가 되는 거지?’ 반발심이 생겨 그는 당찬 강남미인 캐릭터를 그렸다. 1년 뒤 강남미인 캐릭터를 들고 ‘대학만화 최강전’에 참여했다. 결과는 8강전에서 탈락. 하지만 얼마 뒤 네이버로부터 “강남미인을 정식으로 연재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그때 탄생한 게 ‘내 ID는 강남미인’이다. 네이버와 계약하고 2016년 4월부터 2017년 12월까지 85화를 연재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심지어 드라마로까지 만들어졌다. ‘얼마를 벌었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액수를 밝히지 않고 “통장에 찍힌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어린 내가 이렇게 큰돈을 받아도 될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짐작하건대 네이버와 계약하고 요일웹툰에 연재하는 작가 약 300명의 평균 연봉(약 2억2000만 원)보다 분명히 많았을 것이다. 과거 만화가는 소위 ‘배곯는 직업’으로 꼽혔다. 공부 잘하는 엘리트가 만화가가 된다는 사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20대에도 연봉 2억 원 이상 벌 수 있는 게 웹툰 작가다.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상사 눈치 볼 필요도 없다. 자신의 방이나 카페에서 작업을 할 수도 있다. 요즘 초등학생들의 장래 희망 중 웹툰 작가의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문제는 모든 웹툰 작가가 연봉 2억 원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8월 발표한 ‘만화·웹툰 작가 실태 기초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웹툰 작가 761명 중 24.7%는 지난해 1000만 원 미만의 수익을 올렸다. 기맹기 작가도 “나는 좋은 플랫폼에서 연재하며 잘된 케이스이고, 연재하는 플랫폼에 따라 적은 수입과 불합리한 계약으로 힘들어 하고 계신 분들도 많다”고 말했다. 인기 작품을 만들어 내는 원동력은 뭘까. 기맹기 작가는 ‘억울함’이라고 말했다. “억울한 점이 있으면 남한테 이야기하고 싶어진다. 그걸 만화로 그린다. 억울함을 느끼려면 세상에 애착을 가지고 많은 경험을 하는 게 필수적이다.” 그는 경험을 넓힌다는 차원에서 대학을 다녀볼 만하지만, 안 다녀도 전혀 상관없다고 잘라 말했다. 네이버웹툰의 한 팀장은 ‘열정’을 꼽았다. “연재 중인 웹툰 작가 중엔 작가가 되기 전에 다른 일을 하면서 웹툰에 도전한 사람이 많다. 열정을 가지고 꾸준히 문을 두드리다 보면 성공 가능성은 점점 커진다.” 참고로 요즘 웹툰 작가들은 20, 30대가 주류이고, 만화 전공자보다는 독학한 이가 많다고 한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도쿄특파원으로 근무하던 2014년 10월 일본 기후현 오가키시에 있는 중소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초정밀 금형 제품을 생산하는 오가키정공. 대표 제품은 컴퓨터용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사용되는 부품이다. 부품 가운데 약 8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간격으로 균일한 틈이 있는 게 특징. 우에다 가쓰히로 사장은 “비행기가 지상 1mm 위를 일정하게 나는 것과 같은 정밀도가 필요하다. 오가키정공을 포함해 세계에서 4개사밖에 못 만든다”고 말했다. 한국 금형 회사도 그런 부품을 만들 수 있을까. 박순황 한국금형공업협동조합 이사장에게 물어봤다. “쉽지 않다. 일정하게 8nm 틈이 있도록 표면을 가공하려면 작업장 내 진동이 전혀 없어야 한다. 옆에 도로가 있어 차량이 지나가도 안 된다. 온도와 습도 관리도 해야 하고, 설비에서 열이 나서도 안 된다. 기술력 또한 매우 높아야 한다.” 아직까지 한국과 일본의 기술력 격차는 존재한다. 본보가 최근 연재를 끝낸 ‘한국 제조업 골든타임을 지켜라’ 시리즈에 따르면 기계산업 경쟁력의 경우 일본이 한국보다 2∼4년 정도 앞서 있다. 한국은 지난해 일본과의 무역에서 283억 달러(약 31조5800억 원) 적자였는데, 주요 적자 품목은 부품소재 등 기계산업 중간재 제품이었다. 한국이 수출을 하면 할수록 일본 부품과 소재를 많이 사와야 한다. 이 때문에 대일 무역수지는 1965년 일본과 국교를 재개한 이후 한 번도 흑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한국의 처지를 두고 일본의 경제평론가 고무로 나오키는 ‘가마우지 경제’라고 표현했다. 목에 줄이 감긴 물새 가마우지가 잡은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고 낚시꾼에게 빼앗기는 것에 빗댄 말이다. 오래전부터 한국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기계 관련 조합들은 부단히 해법을 찾았다. 부품소재 경쟁력 강화 방안, 부품소재 국산화 대책, 부품소재산업의 근간을 이루는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뿌리산업 지원센터’…. 수많은 대책을 쏟아냈지만 아직도 일본의 벽을 넘지 못했다. 그 이유는 여럿 있을 것이다. 한 우물을 깊게 파는 일본 특유의 문화, 일본산 초정밀 부품에 대한 글로벌 수요와 이에 따른 기술 개발 등은 일본 기계산업이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반면에 한국 중소기업은 일본과 유사 제품을 만들어내더라도 시장에서 신뢰성을 확보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 기간을 버티지 못하고 쓰러지는 기업이 허다하다. 기자는 한일 격차 이유에 ‘손끝’ 경쟁력 차이를 추가하고 싶다. 우에다 오가키정공 사장은 “초정밀 기술은 사람의 손끝에서 나온다. 우리 회사는 그런 기술자를 존중한다. 정년이 됐다고 내보내지 않는다”고 말했다. 오가키정공에는 220명의 직원이 있는데, 당시 65세를 넘은 직원이 8명이었다. 따로 정년이 없기 때문에 70세 넘어서도 일할 수 있다. 우에다 사장은 일본 내외 기업들에 작업 현장을 공개했다. 경쟁사인 한국 금형 중소기업으로부터 연수생을 받기도 했다. ‘기술을 도용당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손끝이 익힌 기술은 한두 달 연수한다고 배울 수 없다. 수십 년 일하며 체화해야 한다”고 답했다. 요즘 전 세계가 인공지능(AI) 열풍에 빠져 있다. AI가 인간의 직업을 대체할 것이란 우려도 크다. 하지만 한길을 수십 년 동안 파 손끝이 정밀 기술을 익히게 되면 AI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정년 연장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30년 동안 냉연강판과 강관 등 철강제품을 팔아온 철강 영업맨 A 팀장(54). 철강산업은 ‘산업의 쌀’이라 불릴 정도로 전후방 산업 연관효과가 컸기에 국가가 발전할수록 회사도 성장했다. 그는 철강 영업에 자부심을 느끼며 열심히 일했다. 회사는 그가 무사히 딸, 아들을 대학까지 보낼 정도로 튼튼한 재정적 울타리를 쳐줬다. 하지만 요즘 그의 표정은 무척 어둡다. “지난해 말부터 회사가 어려워졌다. 2, 3년 더 이 상태로 가면 우리 회사뿐 아니라 여러 철강회사가 문을 닫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정년이 거의 다 됐으니 그나마 견딜 만하단다. 후배들을 생각하면 아찔하다고 했다. 잘나가던 한국 철강산업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기본적으로 중후장대(重厚長大)한 철강산업 스타일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잘 맞지 않는다. 고로 1기를 만들려면 3, 4년 동안 약 3조 원을 투자해야 한다. 압연설비를 새로 들이려면 2, 3년 동안 약 6000억 원을 투자해야 한다. 정보기술(IT) 기업과 달리 4차 산업혁명에 빠르게 대응하기 힘들다. 한국에서 생산된 철강의 약 80%는 자동차, 조선, 건설 분야에서 소비된다. 그런데 요즘 자동차와 조선 경기가 엉망이다. 수요가 줄면 생산을 줄여야 한다. 하지만 중후장대한 산업 특성상 생산 규모를 하루아침에 줄이기 힘들다. 생산된 제품을 손해 보고 팔거나 재고로 쌓아두고 있다. 그렇다면 살길은 수출이다. 하지만 수출길도 점차 막히고 있다. 먼저 중국 변수. 중국은 2006년부터 순수출국으로 바뀌었다. 워낙 대규모로 저가 철강제품을 생산해 세계에 쏟아내다 보니 전 세계적 공급 과잉을 유발시켰다. 지난해 전 세계 조강(쇳물) 생산능력은 23억8000만 t인데 조강 수요는 16억3000만 t에 불과하다. 글로벌 공급 과잉은 7억5000만 t. 이 중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60%(4억6000만 t)다. 거기에 미국발(發) 보호주의 움직임이 결정타를 날렸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올해 6월 유럽연합(EU), 캐나다 등 철강제품에 25% 관세 폭탄을 투하했다. 그러자 EU도 7월 전 세계 철강제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 잠정 조치를 발동했다. 한국 기업들은 이래저래 수출 물량 감소를 겪고 있다. 어찌 손쓸 방도가 없다는 점 때문에 A 팀장의 고민은 더 깊다. 조선과 자동차 경기를 갑자기 부양시킬 수도 없고, 주요국의 관세 폭탄을 혼자 막을 수도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0년 동안 영업한 ‘촉’으로 그는 두 가지 방향성을 제시했다. 한국 역시 국내 철강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장벽을 쳐야 한다. 한국은 생산량의 약 40%를 수출하면서 국내 수요의 약 40%를 수입하는 기형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 반면 일본은 생산량 40%를 수출하지만 수요의 10% 정도만 수입한다. 까다로운 인증, 폐쇄적 유통시장 등 일본의 비관세장벽을 참고할 만하다. 개별 기업으로선 고통스럽겠지만 사업 재편도 필요하다. 이미 일본, EU는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와 비효율 설비 감축을 실시하고 있다. 중국 역시 2016년부터 부실 철강회사를 정리하고 있다. 한국 기업도 수요 침체 품목은 설비를 줄이고, 경쟁 우위 품목은 부가가치를 높여 수출에 승부를 걸어야 한다. 그래야 호황기가 올 때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그는 가난했다. 부산에서 보낸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는 날품팔이를 했고, 어머니는 노점 행상을 했다. 배불리 밥을 먹은 기억이 없다. 합창부에 들어갔지만 단복을 살 돈이 없어 친구에게 빌려 입었다. 하지만 자존감을 잃지 않았다. 중학교까지 10리 길을 메뚜기를 잡으며 즐겁게 걸어 다녔다. 1973년 중학교를 졸업했지만 고등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는 부산 공공직업훈련소에서 기술을 배웠다. 1970년대 기능인은 조국 근대화의 기수로 대접받았다. 적어도 밥은 굶지 않을 수 있었다. 1977년 기능공으로 울산의 현대조선소 협력회사에 입사했고 이듬해 현대중공업에 지원했다. 면접에서 “화려한 이력도, 뛰어난 영어 실력도, 명문대 졸업장도 없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을 대한민국 최고의 회사로 만들기 위해 목숨 걸고 일하겠다”고 말했다. 결과는 합격. 신입이지만 경력이 있어 작업조장을 맡았다. 12명의 조원과 함께 당시 세계 최대의 역사(役事)였던 사우디아라비아 주바일 지역 산업항구 제작 작업에 투입됐다. 공사 금액은 한국 예산의 25%와 맞먹는 수준이었다. 그 이후 그의 삶은 현대중공업의 성장, 나아가 한국 조선업의 드라마틱한 성장과 함께 비상했다. 세계 조선업은 1980, 90년대 극심한 불황에 빠졌지만 현대중공업은 ‘대규모 설비 확장’이라는 역발상을 했다. 선박 수명이 약 25년인 점을 감안하면 2000년 전후로 다시 호황이 올 것이라는 계산 때문이었다. 계획은 적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발주량이 늘며 현대중공업은 날개를 달았다. 한때 초강경 전투노조였던 노조도 회사에 힘을 보탰다. 1995년부터 19년간 한 차례도 파업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측과 함께 수주에 나섰다. 2008년 조선산업 수출액은 431억 달러를 기록하며 자동차, 반도체를 제치고 처음으로 수출 1위를 했다. 그해 현대중공업은 선박 102척을 건조해 세계 20개국에 수출하는 등 전체 매출액의 절반가량을 조선 분야에서 거둬들였다. 최대 호황이었다. 하지만 호시절은 그때로 끝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 선박 발주가 급감했다. 게다가 중국은 저가 선박 발주를 싹쓸이해 갔다. 회사는 살아남기 위해 직원들의 임금을 깎고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협력적이었던 노조는 2016년 말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로 복귀하며 다시 강성으로 변했다. 지금도 현대중공업 노사는 대치 중이다. 최근 현대중공업 노조는 회사 측의 희망퇴직 시행에 반발해 부분 파업을 실시했다. 회사로선 해양플랜트 일감이 제로(0)인 상태여서 유휴인력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현대중공업의 성쇠를 온몸으로 경험한 그는 고윤열 가공소조립 5부 기감(사무직으로 치면 차장급)이다. 올해 만 60세여서 연말에 정년퇴직을 한다. 젊음을 바쳐 40년을 근무한 직장을 떠나는 그에게 ‘남아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물었다. “지금은 회사도 힘들고, 노동자도 힘들다. 일감은 없는데 노동자는 많으니 희망퇴직 받는 회사 처지도 이해가 가고, 머리띠를 두르고 파업을 하는 후배도 이해가 간다. 지금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이야기할 때다. 회사는 인력 구조조정만큼은 최대한 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는 세계 일류 제품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바쳐야 한다. 다시 호경기가 왔을 때 비상할 수 있도록 다 같이 살아남아야 하지 않겠나.”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14일 리콜 대상이면서 아직 긴급 안전진단을 받지 못한 BMW 차량에 대해 운행중지를 요청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다. 게다가 운행중지 대상이 고급 자동차의 대명사인 BMW여서 더욱 충격적이다. 아직 안전진단을 받지 못한 2만여 대의 차주 불만이 눈에 선하다. 불탄 BMW 차량 소유주 마음도 시꺼멓게 탔을 것이다. 어쩌다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원인 제공은 분명 BMW가 했다. 차량 결함으로 인해 올해 들어 39대의 BMW 차량이 불탔다. 운전자 부주의로 인한 화재까지 합치면 80대가 넘는다. 인터넷상에서는 지난해 현대자동차 화재 건수(2327건, 운전자 부주의 화재 포함·이하 동일)를 언급하며 언론이 유독 BMW만 가지고 문제 삼는다는 음모론도 제기됐다. 하지만 이는 국내에 돌아다니는 현대차 수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점을 감안하지 않았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측 자료에 따르면 현대차는 올해 상반기 등록 차량 1만 대 중 1.18대꼴로 불탔다. 기아자동차는 0.69대다. 하지만 BMW는 1.5대로 훨씬 많다. 이 숫자는 승용차와 화물자동차 화재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승용차 기준으로 한정한다면 BMW 화재 비율은 국산차보다 2배 이상 높을 것이다. BMW 화재 건수가 2016년(65건) 이후 급격히 늘고 있는 점도 우려스럽다. 지난해에는 94건이었고, 올해는 8월 현재 80건을 넘었다. BMW 측은 사태 수습을 위한 골든타임도 놓쳤다. 동아일보는 7월 17일에 불타는 BMW를 처음 보도했다. 주행하던 BMW 520d에서 불이 났는데, 올해 들어 동일 모델에서만 5번째 화재였다고 사회면에 기사화했다. 당시 BMW코리아 측은 “정확한 화재 원인이 파악되지 않았다”며 별문제 없다는 투로 대응했다. 그 시점에 BMW가 독일 본사의 전문가들을 불러 기자회견을 열었으면 어땠을까. 참고로 독일 BMW 본사 품질관리부문 수석부사장 등 현지 전문가들이 방한해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배기가스 재순환장치(EGR) 문제점을 인정한 때는 이달 6일이었다. 정확하게 문제점을 분석하지 못했다는 점도 사태를 키웠다. BMW 측은 왜 한국에서만 EGR 문제로 인한 화재가 집중되는지, 동일 제품을 장착한 현대·기아차는 왜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지 등 의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심지어 BMW코리아가 긴급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이상 없음’으로 판정된 BMW 차량에서도 불이 났고, EGR 문제로 인한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도 불이 나고 있다. 현재는 어떻게 손을 써야 할지 모르는 암담한 상태다. 그동안 BMW, 메르세데스벤츠, 폴크스바겐 등 독일차에 대한 국내 소비자들의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안전하고 믿을 수 있는 차량일 뿐 아니라 하차감(차에서 내릴 때 주위에서 던지는 부러운 시선에 대한 느낌)까지 확실했다. 그렇기에 BMW 측이 한국 소비자를 상당히 만만하게 봤을 것이다. 더 근원적으로는 독일의 제조 신화에 금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본차와 한국차가 선전하면서 나타나고 있는 기술 평준화, 그로 인한 독일차의 기술 리더십 쇠퇴, 미래차 시장을 잡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비 급증…. 이러한 내외부 환경들에 독일차 제조사들이 조급증을 내면서 독일 특유의 제조 철학이 무뎌지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다. 3년 전 터졌던 폴크스바겐의 디젤 게이트 사태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상태여서 더욱 그렇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문재인 대통령이 기업인을 만나기 시작했다. 이달 9일 인도 방문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23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도 “필요하다면 저부터 기업, 소상공인, 자영업자, 노동계와 직접 만나겠다”고 말했다. 상반기(1∼6월)까지만 해도 대기업과 비공식적으로 만나거나 총수와 독대하길 꺼린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경제는 심리에 큰 영향을 받는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기업에 관심을 갖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기업은 투자를 늘린다. 고용은 덤으로 따라온다. 하지만 국내 기업인들은 문 대통령의 태도 변화를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잘못이 있다면 검찰 조사를 받아야 하겠지만 대기업이란 이유로 적폐로 몰리는 느낌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편의점주들이 항의했는데, 왜 공정거래위원회가 프랜차이즈 본점을 조사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그들은 미국과 일본의 기업 환경을 부러워했다. 미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시했던 양적완화를 끝내고 금리를 올리고 있다. 그만큼 경제에 자신감이 붙었다는 뜻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법인세 감세를 골자로 하는 세제개혁을 밀어붙이며 기업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해외에선 세일즈맨으로 변신한다. 지난해 11월 미일 정상회담 뒤 기자회견장에서 “미국 군사 장비를 구매하면 북한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을 쉽게 요격할 수 있다”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올해 들어선 미국으로 수출되는 철강, 태양광 제품 등에 고율의 관세를 매기며 미국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미국 우선주의’ 원칙은 다른 세계엔 재앙이지만 미국 기업에는 축복이다. 일본도 주가가 오르고, 사실상 완전고용 상태가 이어지면서 호경기를 맞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수시로 기업인들과 만나며 애로사항을 듣는다. 도쿄특파원으로 지냈던 2015년 봄 일본의 한 중견기업 대표를 만났을 때 그는 “아베 총리와 저녁을 먹었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저녁을 한 번 먹었고, 나와 두 번째 저녁을 먹었다”고 말한 게 기억에 남는다. 아베 총리 역시 일본을 대표하는 비즈니스맨으로 불러도 손색없다. 해외 투자유치 설명회에 참석해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빠뜨리지 않는 문구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비즈니스 하기 쉬운 국가를 만들겠습니다. 꼭 일본에 투자해 주세요.” 도쿄에서 두 번째로 높은 주상복합건물 ‘도라노몬힐스’(247m)는 독특하게 도로 위에 지어졌다. 현행법상 불가능하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도시재생특별촉진지구로 지정해 불가능한 사업을 허가해줬다. 주변에서 이용하지 않은 용적률을 활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줘 용적률도 1150%까지 늘려줬다. 2014년 6월 준공식에 참석했던 아베 총리는 “규제를 대폭 풀 테니 기업은 더 적극적으로 도쿄 부동산을 개발해 달라”고 독려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아베 총리 모두 ‘기업이 원하면 뭐든지 하겠다’는 자세다. 기업은 임금 상승, 고용 확대 등으로 화답하며 선순환을 만들고 있다. 일본 대기업 단체 경단련(한국의 전경련)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전 회장은 2014년 12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밖에 없다. 전폭적으로 지지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올해 하반기 문 대통령이 기업인들을 많이 만나면서 그들에게 ‘신뢰’까지 심어주길 고대한다.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핀란드의 국민기업 노키아는 2007년에 최고 전성기를 맞았다. 당시 연간 매출액은 510억 유로. 한화로 치면 약 67조 원이다. 150년 역사상 최대 매출이었다. 노키아는 삼성전자 모토로라 등 2∼5위 경쟁사 4곳의 판매대수를 모두 합한 것과 맞먹는 압도적인 판매량을 자랑했다. 이듬해 애플은 아이폰을 세상에 선보였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조작할 수 있고, 모바일 인터넷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었다. ‘요술 방망이’가 따로 없었다. 그 후 휴대전화 시장은 급속도로 스마트폰 중심으로 바뀌었다. 변화에 느렸던 노키아는 결국 2014년 4월 마이크로소프트(MS)에 인수됐다. 마크 엡스타인 미국 라이스대 경영대학원 교수 등은 ‘혁신 패러독스’라는 책을 통해 노키아의 몰락 원인을 ‘점진적 혁신’에 안주한 것으로 봤다. 기존 제품을 꾸준하게 개선했지만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획기적인 제품(파괴적 혁신)을 내놓지 못했다. 결국 애플의 파괴적 혁신 한 방에 노키아는 무너졌다. 어떻게 해야 파괴적 혁신을 할 수 있을까. 엡스타인 교수는 그 원동력을 ‘조직문화’에서 찾았다. 진취적이고 혁신을 북돋우는 조직문화가 파괴적 혁신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최근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사태를 보면서 조직문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절감했다. 대한항공 오너 일가족은 2014년 ‘땅콩 회항’에 이어 올해 ‘물컵 갑질’, 자택 경비원 등에 대한 폭언과 폭행, 대학 부정 편입학 등으로 물의를 빚고 있다. 현재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부와 3자녀 모두 수사를 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경우 ‘기내식 대란’으로 구설에 올랐지만 점차 박삼구 회장의 갑질에 대한 폭로전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 승무원 교육생들이 박 회장을 위해 노래와 율동을 연습하는 영상이 공개되기도 했다. 한국의 오너 경영은 빠르고 과감한 의사결정으로 대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하지만 오너를 신처럼 떠받드는 제왕적 조직문화는 기업을 병들게 한다. 두 항공사 직원들은 “직장이 어디냐”는 물음에 자부심을 느끼며 답할 수 있을까. 항공업은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고, 이미 공룡기업들이 자리 잡고 있는 ‘레드오션’이다. 후발 주자가 성공하기는 지극히 어렵다. 하지만 1967년 설립된 사우스웨스트항공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은 1972년부터 지난해까지 한 해도 빠짐없이 흑자를 냈다. 돈만 잘 버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기업, 젊은이들이 일하고 싶어 하는 기업 조사에서 꾸준히 톱10에 들고 있다. 경영 전문가들은 사우스웨스트항공의 핵심 경쟁력으로 조직문화를 꼽는다. 창업자인 허브 켈러허는 ‘직원이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직원이 고객을 행복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졌고, 그 생각을 조직문화로 정착시켰다. 그는 직원 이름과 개인사를 많이 기억한다. 생일파티를 열어주고 직접 축하 노래를 부른다. 심지어 “고객이 잘못된 요구를 하면 응하지 말고, ‘다른 항공편을 이용하라’고 말하라”고 지시한다. 이 같은 조직문화가 우수한 인재를 끌어들이고, 훌륭한 고객 서비스로 이어지는 것이다. 위기는 곧 기회다. 한국을 대표하는 양대 항공사가 이번 기회를 계기로 조직문화를 재정립했으면 한다.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직원들과 논의하며 비전을 정하는 게 첫 순서다. 비전은 구체적이고, 구성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킬수록 좋다. 저렴한 생필품을 전문적으로 유통하는 일본의 다이소가 ‘소비자물가지수를 1% 낮추는 기업’을 비전으로 정한 것처럼. 박형준 산업1부 차장 lovesong@donga.com}

“와∼, 피부가 정말 매끄러워졌어요. 피부색도 밝아졌고.” 15일 베트남 호찌민 사이공전시컨벤션센터(SECC). 한국의 한 화장품업체로부터 화장 시연을 받은 고등학생 다이홍돈짱 양(17)은 거울을 쳐다보며 깜짝 놀랐다. 그는 “생각보다 한국 화장품이 비싸지 않은 것 같다. 오늘 두세 개 살 생각”이라고 말했다. 경기도가 주최하고 킨텍스가 주관하는 ‘제1회 K뷰티 엑스포 베트남’이 이날 SECC에서 사흘 일정으로 열렸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영향으로 대(對)중국 화장품 수출이 힘들어지자 동남아에서 돌파구를 찾기 위해 기획된 행사다. 한국 뷰티 업체 110개사뿐 아니라 중국, 프랑스, 일본 등 7개국에서도 57개 기업이 참여했다. 오전 9시 개장이지만 30분 전부터 전시장 입구에는 100여 명의 베트남 여성이 기다리고 있었다. 의학 성분으로 화장품을 만드는 업체인 오스코리아의 이병장 대표는 “오전에만 100명 이상의 베트남인이 부스를 찾았고, 바이어 미팅도 2건 예정돼 있다. 한류 덕분에 한국 화장품에 대한 베트남인들의 관심이 높은 것 같다”고 말했다. 경기도와 킨텍스는 6월 베트남을 시작으로 8월 대만, 9월 태국, 10월 한국에서 릴레이로 뷰티 박람회를 연다. 호찌민=박형준 기자 lovesong@donga.com}


2014년경 일본 도쿄(東京) 특파원으로 지낼 때였다. 대학 친구가 2박 3일로 짧게 가족여행을 왔다. 하루를 온전히 쓸 수 있는 황금 같은 가운데 날에 그들이 가고자 했던 곳은 도쿄 디즈니랜드. 그런데 하필 비바람이 몰아쳤다. 친구는 한참 고민하더니 “애들(당시 6세, 4세 아들)이 너무 가고 싶어 해서, 또 도쿄에 언제 올지 모르니 가겠다”고 했다. 친구 가족이 집으로 되돌아온 것은 오후 11시가 훌쩍 넘어서였다. 아들 둘은 유모차에서 자고 있었다. 온갖 고생을 다 했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친구 반응이 의외였다. “정말 좋더라. 어릴 때 본 디즈니 만화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비바람 덕분에 사람이 없어 모든 놀이기구를 줄 안 서고 이용했다. 행운이었다.” 맞는 말이다. 도쿄 디즈니랜드는 비바람이 몰아쳐도 갈 만하다. 해외에서 온 여행객들은 방문 1순위로 도쿄 디즈니랜드를 꼽는다. 실제 가 보면 일본어뿐 아니라 한국어와 중국어를 쉽게 들을 수 있다. 한때 일본에서 ‘테마파크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1995년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줄어들기 시작했고 2005년부터는 총인구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6년엔 65세 이상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 중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어린아이가 줄어드니 누가 테마파크에 가겠는가.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도쿄 디즈니랜드, 오사카(大阪) 유니버설 스튜디오 등 대형 테마파크는 방문자 수, 매출액, 영업이익에서 매년 성장하고 있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기자는 도쿄 디즈니랜드의 TV 광고 문구가 핵심을 찔렀다고 본다. ‘할머니, 엄마, 그리고 나. 3세대가 함께 즐기는 곳.’ 도쿄 디즈니랜드에서 머리카락이 하얀 노인들을 보면 충분히 고개가 끄덕여진다. 16일 중국 상하이(上海)에 디즈니랜드가 정식 개장했다. 미국 월트디즈니와 중국 상하이선디그룹이 총 55억 달러(약 6조400억 원)를 투자했다. 전체 7km² 부지 중 3.9km² 면적에 들어서 아시아 최대 테마파크로 자리 잡았다. 중국 관광 업계는 상하이 디즈니랜드 입장객이 연간 1200만∼1500만 명에 이르며 1인당 하루 2300위안(약 41만 원)이 넘는 금액을 소비할 것이라고 추산하고 있다. 중국 언론은 디즈니랜드가 상하이 국내총생산(GDP)을 매년 0.8% 이상씩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기자는 실제 그렇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세계테마파크협회(TEA)와 미국 에이컴(AECOM)사가 매년 공동 발표하는 ‘세계 테마파크 입장객 현황’ 자료를 보면 2014년 기준 전 세계 테마파크 입장객 수 상위 10곳 중 9곳을 디즈니랜드 관련 테마파크가 싹쓸이했다. 나머지 한 곳은 일본 오사카 유니버설 스튜디오(5위)였다. 글로벌 테마파크는 유치만 하면 소위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이다.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보면 또 하나 부러운 점이 있다. 2011년 사업을 시작해 5년 만에 속전속결로 끝냈다는 점이다. 한국 문화체육관광부(당시 문화관광부)도 1999년 ‘관광비전 21’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글로벌 테마파크 유치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당시 정부는 국내에 디즈니월드, 레고랜드 등 세계적 관광명소를 2003년까지 유치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까지 성사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07년 롯데그룹 주도로 유니버설 스튜디오와 양해각서(MOU)를 맺으며 테마파크 유치에 나섰지만 2008년 리먼쇼크, 외국인 자본 10% 유치 조항 미충족, 땅 주인인 수자원공사와 땅값 줄다리기 등에 시달리다가 결국 2012년 중단됐다. 테마파크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글로벌 테마파크는 시설투자만 2조∼3조 원이 들어간다. 사전에 투자자를 모으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준공 후 조기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사업도 아니다. 결국 민간자본에만 맡겨놓으면 반드시 패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마중물 붓는 수준이 아니라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중국 정부는 상하이 디즈니랜드를 유치하며 정부 토지를 99년간 무상 임대했고 국영기업이 지분 57%(약 30억 달러)를 투자했다. 도로, 지하철 등 인프라스트럭처도 모두 정부가 지원했다. 그만큼 민간 투자자의 사업 실패율은 줄어든다.박형준 산업부 차장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