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가면을 벗읍시다!” 한국에서 첫 성적소수자 단체로 알려진 ‘초동회’의 소식지 1호에 실린 문구다. 1994년 1월 25일 발간한 이 소식지에서 초동회란 “‘초록은 동색이다’의 앞 글자를 딴 것으로, 흩어진 그룹을 연결해 동성애자로서 떳떳하게 살아갈 여건을 마련하기 위한 단체”라고 적혀있다. 원본이 한 장밖에 남지 않은 이 자료의 복사판을 서울 마포구 ‘합정지구’에서 열리는 전시 ‘퀴어락’에서 볼 수 있다. ‘퀴어락’ 전시의 출발점은 2009년 정식으로 문을 연 ‘한국퀴어아카이브(퀴어락)’다. 2002년 설립한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가 수집한 2000여 편의 국내외 성소수자 관련 도서, 문서, 영상을 열람할 수 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서울에서 활동하는 이강승 작가는 퀴어락에서 우연히 발견한 트랜스젠더 여성의 일기장을 보고 전시를 기획했다. 일기장 속 자기혐오와 희망을 보며 “성소수자의 이야기가 젠더 차원이 아닌 역사의 일부로 다뤄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아카이브 자체를 전시 소재로 삼았다. 참여한 작가 최하늘, 이경민, 문상훈&아장맨, 루인, 김세형(AJO)은 수개월 동안 퀴어락의 자료를 조사한 결과물을 작품으로 내놓았다. 퀴어락 자료들을 담는 책장과 선반, ‘선데이서울’에 보도했던 성소수자 이미지를 활용한 패션 디자인 등이 있다. 지하 공간에는 서울 마포구 ‘별관’에서 열렸던 ‘레즈비언’ 전시 영상 기록물도 상영한다. 가장 흥미로운 건 전시장 속 아카이브에서 만나는 개인의 이야기들이다. ‘성소수자’에 관한 추상적 정의가 아닌 구체적 사례가 펼쳐지면서, 그것이 승인·거부의 문제가 아닌 실존하는 사실임을 담백하게 드러낸다. 다음달 2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민족주의와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관점을 벗어나 역사를 보려는 과감한 시도가 돋보이는 책이다. ‘임진전쟁’이라는 제목이 보여주듯이 저자는 제2차 세계대전 이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전쟁으로서 이 전쟁을 바라본다. 국내 학계가 애국심의 프레임으로 임진왜란을 파고들 때, 그는 개인으로서 조선인들이 겪었을 심리를 파고들며 외세와의 충돌로 인해 민족 개념이 비로소 탄생했다고 분석한다. 눈길을 끄는 건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일본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뿌리 깊은 문제라는 사실의 발굴이다. 임진왜란 중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가토 기요마사에게 내린 명령 중 ‘서비스 여성’, 혹은 ‘첩’을 의미하는 ‘쓰카이 메’를 요구하는 특이한 내용이 있었다고 한다. 전쟁에서 점령지의 여성이 유린당하는 것은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일본의 경우 여성 동원을 제도화한 것이 최상위 기구의 명령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목한다. 미국 일리노이대 교수를 거쳐 컬럼비아대 한국학 석좌교수를 지낸 저자는 서구학계의 주류에서 활동한 몇 안 되는 한국학자였다. 그는 16세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계기로 형성된 조선의 민족담론에 관한 연구를 지속했지만 2011년 69세로 갑작스레 별세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남편인 윌리엄 하부시 교수가 자신의 동료, 제자들과 함께 연구를 보완했고 책은 2016년 컬럼비아대에서 출간됐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57·여)와 오스트리아 소설가 페터 한트케(77)가 2018년과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각각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한림원 미투 파문으로 수상자를 내지 않아 10일(현지 시간) 올해 2명을 함께 발표했다. 한림원은 토카르추크에 대해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열정과 서사적 상상력을 갖췄다. 소소한 일상을 파고드는 동시에 멀찍이서 삶을 바라보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트케에 대해서는 “소설, 에세이, 단편,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 언어학적 독창성을 지닌 작품으로 인간 경험의 특수성과 그 경계를 탐구했다”고 설명했다. 파문을 겪은 한림원의 수상자 선정을 놓고 문학계에서는 “동유럽권의 여성 작가와 소수자성을 지향하는 작가의 조합”이라고 해석했다. 심하은 은행나무 해외문학팀 편집장은 “폴란드 수상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96년) 이후 20여 년 만이다. 지역 안배 기준에는 적합하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라 의외”라고 했다. 안장혁 동의대 문학인문학부 교수는 “한트케의 정체성은 ‘시대의 비주류’다. 전위적 문학을 추구하는 논쟁적 작가지만 한림원이 저항 정신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여성 작가로는 15번째 수상자인 토카르추크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고 있다. 바르샤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1993년 장편소설 ‘책의 인물들의 여정’을 출간했다. 심리치료사로도 활동하다 시로 데뷔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주의에 신화와 전설,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덧입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을 받는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E.E’ ‘태고의 시간들’ ‘낮의 집, 밤의 집’ ‘방랑자들’과 단편집 ‘옷장’ ‘여러 개의 작은 북 연주’가 있다. ‘방랑자들’로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여성의 삶을 충실히 복원해낸 장편 ‘태고의 시간들’이 올해 처음 출간됐다. 단편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가 수록된 동명의 단편집도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한트케는 소설, 희곡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한트케는 첫 소설 ‘말벌들’(1965년)이 출간되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트케는 기존의 문학적 가치와 방법을 거부하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쓴다. 시에 미학적인 문구를 넣는 것은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읽힌 책은 1972년 발표한 ‘소망 없는 불행’으로 어머니가 자살한 후 쓴 작품이다. 전쟁과 가난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자 목숨을 끊은 어머니를 보며 한 인간이 자아에 눈뜨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감독 빔 벤더스와 함께 ‘베를린 천사의 시’(1987년) 각본을 썼다. 줄거리 없이 배우들이 관객에게 욕설을 퍼붓는 희곡 ‘관객모독’(1966년)은 국내에서도 자주 공연된다. 소설 ‘페널티 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반복’ 등이 국내에 출간됐다. 한편 한트케는 2006년 세르비아의 독재자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그를 옹호하는 연설을 발표해 비판을 받았다. 한트케는 “밀로셰비치는 영웅이 아닌 비극적인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4년에는 오스트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벨상은 문학의 잘못된 성역화”라며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한림원은 그가 “훌륭한 예술성으로 숨겨진 영역과 경계를 탐험했다”고 평가했다.이설 snow@donga.com·김민·김기윤 기자}

“‘젠탱글’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명상에 빠져드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10일 만난 릭 로버츠와 마리아 토머스 부부는 ‘젠탱글’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패턴을 그리며 명상하는 젠탱글을 미국에서 처음 창립했다. 국내에서도 젠탱글은 소규모 클래스로 전파되고 있다. 이에 로버츠와 토머스가 9, 10일 서울을 찾아 직접 워크숍을 열었다. 두 사람이 젠탱글을 시작한 것은 16년 전. 캘리그래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토머스가 대형 작품 속 작은 패턴을 그리다 4시간 동안 집중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토머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한 느낌이 좋아 설명하자, 릭이 ‘그게 바로 명상의 상태’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단순한 패턴 그리기를 통해 집중에 도움을 주는 수업을 열게 됐다. 토머스는 과거 캘리그래퍼로 저명인사들의 초청장에 손글씨를 썼다. 배우 캐서린 제타존스와 마이클 더글러스의 ‘세기의 결혼’ 때 청첩장, CNN 설립자 테드 터너의 70세 생일 파티 초청장도 그녀가 디자인했다. “캘리그래퍼 때는 정해진 도안을 따라가는 데 정신없었어요. 그런데 젠탱글에서는 손이 가는 대로 패턴을 완성하며 자유로움을 느낀답니다.” 남편인 로버츠는 17세 때 삶의 이유를 찾고 싶어 대학을 떠나 힌두교도들이 수행하는 곳인 아슈람과 인도를 오가며 명상을 배웠다. 두 사람은 “한 명은 예술을 알고, 다른 한 명은 명상을 알기 때문에 젠탱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미쳐 있기에 가능했다”며 웃었다. 일상의 고민을 던지고 손가락에만 집중하는 젠탱글로 심신의 안정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고 부부는 말했다. 최근에는 미 공군 대령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에 젠탱글을 활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순간에 충실하는 젠탱글의 미학처럼, 이들은 한국 방문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창덕궁 후원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당분간은 이것을 소화하는 데 시간을 보내겠죠. 확실한 건 언제가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겁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젠 탱글’은 아름다운 그림을 그리며 명상에 빠져드는 손쉬운 방법입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10일 만난 릭 로버츠와 마리아 토마스 부부는 ‘젠 탱글’을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했다. 두 사람은 단순한 패턴을 그리며 명상하는 ‘젠 탱글’을 미국에서 처음 창립했다. 국내에서도 ‘젠 탱글’은 소규모 클래스로 전파되고 있다. 이에 로버츠와 토마스가 9, 10일 서울을 찾아 직접 워크숍을 열었다. 두 사람이 ‘젠 탱글’을 시작한 것은 16년 전. 캘리그래퍼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토마스가 대형 작품 속 작은 패턴을 그리다 4시간 동안 집중한 경험에서 출발했다. 토마스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집중한 느낌이 좋아 설명하자, 릭이 ‘그게 바로 명상의 상태’라고 알려줬다”고 말했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에게 단순한 패턴 그리기를 통해 집중에 도움을 주는 수업을 열게 됐다. 토마스는 과거 캘리그래퍼로 저명 인사들의 초청장에 손글씨를 썼다. 배우 캐서린 제타 존스와 마이클 더글라스의 ‘세기의 결혼’ 때 청첩장, CNN 설립자 테드 터너의 70살 생일 파티 초청장도 그녀가 디자인했다. “캘리그라퍼 때는 정해진 도안을 따라가는 데 정신없었어요. 그런데 ‘젠 탱글’에서는 손이 가는 대로 패턴을 완성하며 자유로움을 느낀답니다.” 남편인 로버츠는 17살 때 삶의 이유를 찾고 싶어 대학을 떠나 힌두교도들이 수행하는 곳인 아슈람과 인도를 오가며 명상을 배웠다. 두 사람은 “한 명은 예술을 알고, 다른 한 명은 명상을 알기 때문에 젠 탱글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우리 둘 다 어느 정도 미쳐있기에 가능했다”며 웃었다. 일상의 고민을 던지고 손가락에만 집중하는 ‘젠 탱글’로 심신의 안정을 얻는 사람들이 많다고 부부는 말했다. 최근에는 미 공군 대령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치료에 젠 탱글을 활용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향후 계획을 묻자 순간에 충실하는 ‘젠 탱글’의 미학처럼, 이들은 한국 방문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창덕궁 후원에서 새로운 패턴을 발견하고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당분간은 이것을 소화하는 데 시간을 보내겠죠. 확실한 건 언제가 한국에 꼭 다시 오고 싶다는 겁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파시즘의 광풍이 낳은 비극인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예술가들은 모든 것을 원점에서 생각했다. 프랑스 화가 이브 클랭(1928∼1962)은 1958년 텅 빈 전시장을 ‘허공’이라 이름 붙여 전시했고, 이탈리아 화가인 피에로 만초니(1933∼1963)는 자신의 배설물을 통조림에 담아 만든 작품 ‘예술가의 똥’을 1961년 발표했다. 이들처럼 과거와 결별하고 완전히 새롭게 출발하자는 염원을 담은 독일 미술운동 ‘제로’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포항시립미술관과 제로파운데이션이 공동 기획한 전시 ‘제로 ZERO’는 주요 참여 작가의 대표작 48점을 소개한다. ‘제로’는 1950년대 후반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태동한 ‘국제미술운동’으로 독일 출신 미술가 하인츠 마크, 오토 피네, 귄터 위커가 주축이었다. 1958년부터 1961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미술 잡지 ‘제로’를 발간하고, 국제적 미술가 네트워크를 형성해 전시를 열었다. 제로는 전통 회화나 상업 예술과 거리를 둔 것이 특징이다. 빛이나 움직임 등의 비물질적인 재료나 기술을 활용했다. 마크는 알루미늄을 이용해 빛의 움직임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위커는 무한하게 반복되는 기계의 움직임 자체를 작품으로 표현했다. 조명장치를 활용해 우주적 공간을 연출한 피네는 제로 운동이 중단된 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로 재직하며 환경 미술, 키네틱 예술 등의 전개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의 활동은 최근 영미권 중심의 미술사를 다시 돌아보는 흐름과 맞물려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2014년에는 미국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다. 새로운 출발을 모색했던 예술가들의 흔적을 포항에서 소개하는 이유도 곱씹을 만하다. 김석모 학예실장은 “한국 산업화의 상징이었던 포항도 벌써 시 승격 70주년을 맞는다. 철강산업이 포항을 이끌어왔지만 산업 전환으로 도시가 혼란기를 겪는 상황이다. 예술가들처럼 미래를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 보자는 것이 기획 의도”라고 설명했다. 추석 연휴 4일간 예년에 비해 3배 이상 많은 3000여 명의 관객이 미술관을 찾았다고 한다. 내년 1월 2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소설가 황석영, 시인 안도현 등 문학인 1276명이 7일 조국 법무부 장관을 지지하고 검찰 개혁 완수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조국 지지 검찰 개혁을 위해 모인 문학인’은 이날 오전 국회 정론관에서 ‘조국을 지지한다. 검찰 개혁 완수하라’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에서 “블랙리스트의 악몽이 아직도 생생한데 다시 자의적인 공권력의 폭주가 시작되는 것을 보고 불안과 분노를 느낀다”며 “검찰 개혁은 시대적 과제이자 촛불 민심의 명령임을 확인하기 위해 서명에 나섰다”고 밝혔다. 또 “‘조국 사태’는 그야말로 국민 관심 돌리기의 일환이라는 것이 우리들의 판단”이라며 “우리 문학인들은 검찰 개혁의 기수로 나서 수모를 당하는 조국 장관의 곁에서 그를 응원하고 검찰 개혁을 지지함을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소설가 황석영 정도상 공지영과 시인 안도현 이시영 장석남이 대표 발의한 서명은 지난달 25일부터 온라인으로 추진됐다. 서명에는 시인 정양 이상국 이동순 함민복 이윤학 이정록 나희덕 박성우 문신 김성규 박준, 소설가 이경자 양귀자 최인석 이병천 김연수 김현경 박문구 이기호 이만교 정찬 권여선 오수연, 평론가 신형철 하응백, 방송작가 송지나 등이 참여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내 최대 미술장터 한국국제아트페어(KIAF·키아프)의 관객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행사를 주최한 한국화랑협회에 따르면 올해 관객은 8만2000명으로 지난해보다 30% 늘었다.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VIP 프리뷰로 지난달 25일 문을 연 키아프는 닷새 동안 17개국 갤러리 157곳에서 미술품 1만여 점을 선보인 후 29일 막을 내렸다. 가장 많은 관심을 받은 작품은 미국 작가 제임스 터렐의 ‘아틀란티스’(70만 달러·약 8억 원)와 ‘최고가 작품’인 루마니아 작가 콘스탄틴 브랑쿠시의 ‘프린세스 X’(739만 달러·약 87억5000만 원)였다. 페이스갤러리에서 선보인 ‘아틀란티스’는 발광다이오드(LED) 패널 12장을 겹쳐서 만든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원 원주시 ‘뮤지엄 산’에서도 볼 수 있는 터렐의 작품은 대규모 설치로 유명하지만 키아프에서는 장소 특성상 작은 규모로 설치됐다. 브랑쿠시의 작품은 독일계 디갤러리가 선보였다. 군더더기 없이 감각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브랑쿠시는 현대 조각의 아버지로 불린다. 프랑스 보나파르트 가문의 공주가 고개를 돌린 옆모습을 표현한 조각은 8개 에디션 중 하나다. 역사적 가치를 지닌 만큼 해당 조각 대부분은 파리 퐁피두센터 등 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지난해 미국 데이비드 즈워너 갤러리가 처음 참여해 제프 쿤스, 도널드 저드, 앨리스 닐 등 동시대 ‘핫한’ 작가를 선보이며 화제를 모았던 것에 비하면 올해는 한결 차분한 분위기였다. 미술 시장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에서 화려한 작품을 부각시키기보다는 내실을 다지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주최 측도 관객 친화적으로 다가가는 모습이었다. B홀 내부에 새롭게 토크 라운지를 조성해 11개 강연을 했다. 전문가 강연은 물론 대중적 인기를 얻고 있는 김찬용 도슨트와 ‘방구석 미술관’의 저자 조원재의 토크가 인기였다. 일부 강연에서는 미처 자리를 잡지 못한 관객이 서서 듣기도 했다. 1950년대부터 1979년 사이 국내 구상 작품을 선보인 ‘한국근대회화, 역사가 된 낭만’ 특별전도 미술 초심자에게 흥미로운 공간이었다. 권옥연 김환기 박생광 박수근 변관식 이중섭 임직순 황용엽 등 작가 26명의 작품 38점이 판매와 상관없이 전시됐다. 전시 기간에 방탄소년단의 RM과 뷔, 배우 전지현 소지섭, 가수 나얼이 찾은 것도 화제가 됐다. 판매액도 310억 원으로 지난해(280억 원)보다 10.7% 증가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놀지 않고 일만 하면 바보가 된다(All work and no play makes Jack a dull boy).’ 책장을 넘기다 보면 스탠리 큐브릭의 공포 영화 ‘샤이닝’ 속 섬뜩한 장면이 떠오른다. 국내에서 많이 읽히는 ‘90년생이 온다’가 조금은 부드럽게 젊은 세대를 분석했다면, 이 책은 같은 세대에 관한 이야기를 그 뿌리부터 짚어가며 암울한 전망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는 1980년부터 2000년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1988년생인 저자는 언론이나 기존 저술이 밀레니얼 세대를 다루는 방식이 지극히 단편적이라고 지적한다. 밀레니얼 세대에 관한 기존 서술은 두 가지 측면을 주요 관심사로 삼는다고 분석한다. 첫 번째는 “지적 수준이 하락한 젊은이들을 직장에서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이며 두 번째는 “젊은이들이 새로운 기술(유튜브 등)을 사용해 발생시킨 문화에 대한 서술”이다. 이런 지적은 흥미롭다. ‘90년생이 온다’ 역시 기업에서 젊은 세대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 또 그들이 소비자로서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지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인 저자는 자신의 세대를 관리 대상이나 소비자로 한정하길 거부한다. 밀레니얼이 ‘불안정하고, 자기중심적이며 게으르다’는 베이비붐 세대의 시각에도 반박한다. 그러면서 출생부터 교육, 대학 입학, 직장 생활까지의 과정을 추적하고 이들 세대가 출발부터 ‘인적 자본’으로 관리되어 왔음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그의 말처럼 지금도 어린이의 능력은 경제적 가치로 환산된다. 영어유치원이든, 영재학원이든 아이의 적성을 빠른 시간에 찾아 그것을 돈으로 만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렇게 자란 밀레니얼 세대를 저자는 “자기의 시간을 누려본 경험이 전에 없이 부족하고 스스로 자아를 쌓아나갈 기회를 구조적으로 박탈당해온 아이들”이라고 설명한다. 놀지 않고 일만 해서 바보가 된다는 지점은 바로 이 부분이다. 비극은 계속된다. 좋은 일자리를 갖기 위해 대학을 갔지만 눈앞에 놓인 것은 무급 인턴, 학자금대출, 그리고 과거보다 더 많은 일을 하지만 제자리인 임금이다. 이쯤 되면 밀레니얼은 ‘줄임말을 즐겨 쓰고, 재미있는 것을 좋아하며, 솔직한’이라는 한가한 말로만 정의되기에는 너무나 불안하고 분노하는 세대인 것만 같다. 그러나 지금의 경제 시스템을 무턱대고 비판하는 데 그치지는 않는다. 냉정한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이 겪는 불안과 격차는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 흐름을 그저 따라가기보다는 더 늦기 전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지를 돌아봐야 한다고 당부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제 미술계 중심지인 미국 뉴욕은 갤러리 한 곳이 문을 열면 네 곳이 닫는다고 한다. 전쟁터와 같은 이곳에 6년 전 23세 한국인 청년이 뛰어들어 지금은 유명한 갤러리스트인 래리 가고시안과 함께 소개되는 컬렉터가 됐다. 그 주인공은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트에 있는 신갤러리의 대표 신홍규 씨(29)다. 신 씨는 이달 둘째 주에 발간된 세계적 미술잡지 아트뉴스(ARTnews)의 톱200 컬렉터 특집에 소개됐다. 1902년부터 발행된 아트뉴스는 매년 컬렉터 200명을 선정해 특집판을 발간한다. 올해 처음으로 갤러리스트 겸 컬렉터를 선정했는데 신 씨는 가고시안, 이완 워스(하우저&워스 갤러리), 아니 글림셔(페이스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 등 세계적 갤러리스트와 함께 언급됐다. 최근 전화로 만난 그는 “갤러리 비즈니스의 경우 화려한 면만 보고 살아남는 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간과한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한국인으로서 기쁘다”고 말했다.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미술품 보존학을 공부하던 그는 2013년 갤러리를 열었다. 독특한 안목과 기획력으로 빠른 시간에 주목을 받았고, 특히 뉴욕에서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작가 위주로 전시를 구성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로 트렌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기준은 ‘미술사적 중요성’이고, 이를 위해 신발이 닳도록 작품을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이근민 작가처럼 국내에서 외면받은 작가를 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로 발굴해 해외에 소개했다. 최근에는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와 함께 활동한 리처드 햄블턴(1952∼2017)을 재조명했다. 그가 아트뉴스에 소개한 것도 자신이 소장한 햄블턴의 작품 ‘오프닝’이다. “갤러리를 막 열었을 때,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불쑥 들어와 미술 이야기를 해서 친해졌어요. 그러다 어느 날 작업실에서 쫓겨났다기에 제 갤러리 공간을 내주고 작업하게 했죠. 당시 현대미술을 잘 몰라 좋은 친구로만 지냈는데, 그가 스트리트 아트에서 이름 있던 햄블턴이었어요.” 햄블턴과의 만남이 낭만적으로 들린다는 이야기에 그는 “작가와 친구처럼 지내면서도 능력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관계가 오히려 필요하지 않냐”고 반문했다. 10대 때부터 온라인으로 작품을 구매하며 감식안을 키워 ‘영재(prodigy)’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지금까지 모은 소장품은 기원전 3세기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 유물부터 동시대 작가의 작품까지 다양하고, 이 중 100여 점이 미술관에 대여돼 전시되고 있다. 생애 처음으로 산 19세기 일본 판화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선보였다. 좋은 작품을 구별하는 기준을 묻자, 그는 대뜸 ‘농구’를 예로 들었다. “제가 농구를 좋아하는데, 농구 책을 열심히 봐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좋은 작품을 보면 몸으로 먼저 느껴요. 물론 미술사적 맥락을 알기 위해선 책도 함께 봐야 하죠. 그래서 예술이 특별한 것 같아요.” 그는 당장 국내에 돌아와 활동할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경북 경주에 ‘디아 비컨’ 같은 세계적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러면서 예술을 ‘돈’이 아닌 시대의 반영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저는 작품을 ‘투자’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안타까워요. 작품이 없어도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거든요. 그러니 돈이 아니라, 시대를 감지하게 해주는 도구로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졌으면 해요. 그러면 더 많은 의미가 보이거든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국제 미술계 중심지인 미국 뉴욕은 갤러리 한 곳이 문을 열면 네 곳이 닫는다고 한다. 전쟁터와 같은 이곳에 6년 전 23세 한국인 청년이 뛰어들어 지금은 유명한 갤러리스트인 래리 가고시안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는 컬렉터가 됐다. 그 주인공은 맨해튼 로어이스트사이트에 있는 신갤러리의 대표 신홍규 씨(29)다. 신 씨는 이달 둘째주에 발간된 세계적 미술잡지 아트뉴스(ARTnews)의 탑 200 컬렉터 특집에 소개됐다. 1902년부터 발행한 아트뉴스는 매년 컬렉터 200명을 선정해 특집판을 발간한다. 올해 처음으로 갤러리스트 겸 컬렉터를 선정했는데, 신 씨는 가고시안, 이완 워스(하우저&워스 갤러리), 아니 글림셔(페이스 갤러리), 데이비드 즈워너 등 세계적 갤러리스트와 함께 언급됐다. 최근 전화로 만난 그는 “갤러리 비즈니스의 경우 화려한 면만 보기 쉽지만, 살아남는 데에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는 걸 간과한다. 그 노력을 인정받아 한국인으로서 기쁘다”고 말했다. 미국 델라웨어대에서 미술품 보존학을 공부하던 그는 2013년 갤러리를 열었다. 그는 독특한 안목과 기획력으로 빠른 시간에 주목 받았다. 특히 뉴욕에서 한 번도 소개되지 않은 작가 위주로 전시를 구성한 것이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트렌드를 따르기 보다는 제가 좋아하는 작가들로 트렌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 기준은 ‘미술사적 중요성’이고, 이를 위해 신발이 닳도록 작품을 보러 다니고 있습니다.” 그는 이근민 작가처럼 국내에서 외면 받은 작가를 블로그 등 다양한 채널로 발굴해 해외에 소개했다. 최근에는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와 함께 활동한 리처드 햄블턴을 재조명했다. 그가 아트뉴스에 소개한 것도 자신이 소장한 햄블턴의 작품 ‘오프닝’이다. “갤러리를 막 열었을 때, 왜소한 체격의 남자가 불쑥 들어와 미술 이야기를 해서 친해졌어요. 그러다 어느 날 작업실에서 쫓겨났다기에, 제 갤러리 공간을 내주고 작업하게 했죠. 당시 현대미술을 잘 몰라 좋은 친구로만 지냈는데, 그가 스트리트 아트에서 이름 있던 햄블턴이었어요.” 햄블턴과의 만남이 낭만적으로 들린다는 이야기에 그는 “작가와 친구처럼 지내면서도 능력은 객관적으로 판단하는 관계가 오히려 필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10대 때부터 온라인으로 작품을 구매하며 감식안을 키워 ‘영재’(prodigy)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지금까지 모은 소장품은 기원전 3세기 이탈리아 북부 카노사 유물부터 동시대 작가의 작품까지 다양하고, 이중 100여 점이 미술관에 대여돼 전시되고 있다. 생애 처음으로 산 19세기 일본 판화도 미국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선보일 예정이다. 좋은 작품을 구별하는 기준을 묻자, 그는 대뜸 ‘농구’를 예로 들었다. “제가 농구를 좋아하는데, 농구 책을 열심히 봐도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어요. 저는 좋은 작품을 보면 몸으로 먼저 느껴요. 물론 미술사적 맥락을 알기 위해선 책도 함께 봐야하죠. 그래서 예술이 특별한 것 같아요.” 그는 당장 국내에 돌아와 활동할 계획은 없지만 언젠가 어릴 적 살던 경북 경주에 세계적 미술관을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예술을 ‘돈’이 아닌 시대의 반영으로 봤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저는 작품을 ‘투자’의 대상으로만 보는 것이 안타까워요. 작품이 없어도 사는 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거든요. 그러니 돈이 아니라, 시대를 감지하게 해주는 도구로서 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아졌으면 해요. 그러면 더 많은 의미가 보이거든요.”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코디 최(최현주·59)의 개인전 ‘하드 믹스 매스터 시리즈 2: 노블레스 하이브리디제’가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 24일 시작했다. 작가는 서양 로코코 이미지와 사군자의 ‘난’을 접목시켰다. 전시 제목 ‘노블레스 하이브리디제’는 서양과 동양의 귀족적 취향을 혼합했다는 의미로, 귀족의 의무를 뜻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패러디해서 작가가 만든 말이다. 작가는 1980년대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서 겪은 문화 충돌이 작품에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가세가 기울어 이주한 후 백인 위주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해 ‘왕따’를 당하고, 3년 동안 소화제를 마시면서 버텼다. 이때 마셨던 소화제를 재료로 1984년 작품 ‘로댕 싱크’를 만들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인조 대리석 위에 로코코와 사군자의 이미지를 컴퓨터로 합성해 프린트하고, 그 위에 옻칠로 난을 그렸다. 작가의 아들이 유년 시절 컴퓨터로 그린 이미지와 작가의 스승인 마이크 켈리의 드로잉을 합성한 ‘하드 믹스 매스터 시리즈1’의 후속 연작이다. 조각 작품인 ‘The Thinker’와 ‘Cody‘s Legend vs. Freud’s Shit Box’도 함께 공개한다. 전시는 10월 2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언제부턴가 난해함, 모호함이 미술 전시의 당연한 트렌드처럼 여겨진다. 같은 말도 관념적 언어를 씌워 의도를 숨기는 전략은, 보는 이에게 해석할 자유를 준다는 취지였다. 그런데 난해함이 과해지면서 어떠한 메시지도 전달되지 않고, 작가나 기획자가 기획 의도에 책임을 지지 않는 결과도 생긴다. 이런 가운데 작가의 ‘먹고사니즘’이라는 실질적 문제로 출발한 전시가 눈에 띈다. 서울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열리는 ‘족쇄와 코뚜레’전이다. 독특한 전시 제목은 작가의 발목을 잡는 것(족쇄)과 그것을 해결하려 ‘코 꿰여 있는 생업’(코뚜레)을 의미한다. 작가라면 작품을 팔아서 먹고살기를 꿈꾼다. 그러나 지극히 일부만 살아남고, 40대가 돼야 신인 취급하는 미술 시장에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많은 작가들은 아르바이트 같은 부업을 한다. ‘코뚜레’에 끌려가다 결국 자기 작업을 못 하는 함정에 빠진다. 이런 ‘웃픈’ 상황을 전시는 익살스럽게 풀어간다. 전시장 1층 안쪽 공간에는 신민 작가의 작품들이 설치돼 있다. 조각 ‘견상자세 중인 알바생들’은 세간에서 ‘고달프다’고 여기는 상황을 견고하고 힘 있게 풀어내 눈길을 끈다. 겉만 보면 힘들게 버티는 듯하지만 사실은 요가의 ‘견상자세’를 하는 중이다. 작가가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모은 감자튀김 포장지와 박스를 재료로 만들었다. 연약하고 불쌍한 청년이 아닌, 누가 뭐래도 아랑곳하지 않는 단단함이 느껴진다. 물론 버티지 못하고 떨어져 나간 사람들도 있다. 전시장 구석에 널브러진 잘린 머리들(신민 ‘들이쉬고, 내쉬고, 그대로 유지’)은 애처롭게 보인다. 김동현, 도파민최, 박수호, 오순미, 장하나, 최호철, 허보리 작가의 작품도 독특함이 돋보인다. 신선한 기획의 탄생 배경엔 특별한 기준이 있었다. 바로 ‘미술관과 연고가 없는 작가’였다. 김영기 선임큐레이터는 “작가처럼 전시 기획도 새로움이 의무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맥락에서 다양한 메시지가 발견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10월 26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물밑에서 일어나는 사회 현상에 이름 붙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일본 사회학자인 저자는 ‘패러사이트 싱글’(대학 졸업 뒤에도 부모와 동거하는 미혼자), ‘곤카쓰’(婚活·결혼을 위해 해야 하는 적극적인 활동) 등의 용어를 제시했다. 이런 ‘이름 짓기’는 낡은 관념을 뒤로하고, 사회 변화를 간편하게 각인시켜 사람들의 구체적 행동을 이끌어 낸다. 이번엔 ‘가족 난민’이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가족을 포함한 소중한 존재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을 그는 난민으로 규정한다. 여전히 사회는 부모와 자녀라는 표준 가족의 형태가 정상이라 믿지만, 이미 그런 가족을 구성하는 것 자체가 어려워진 시대. 표준 가족이 아닌 대안적 형태로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방식을 고민해 봐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생애미혼율’(50세까지 한 번도 결혼한 적 없는 사람의 비율)이 증가하는 일본은 2040년 연간 20만 명이 고립사할 거란 추정도 나온다. “누구나 정규직이 되어 표준 가족을 이룰 수 있는 시대로 돌아간다는 건 환상”이라는 진단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낡은 틀 때문에 가족 난민이 더욱 늘어나기 전에 한층 다양한 가족의 개념을 인정해야 한다고 그는 경고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간판은 없고요, ‘은파 피아노’로 찾아가면 됩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은파 피아노’에는 피아노가 없다. 10년 넘게 있던 피아노 학원이 나간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 그런데 일반 카페에 당연히 있는 테이블이 없다. 그 대신 에스프레소 머신과 LP판, 앰프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커피 내리는 소리와 음악만이 가득하다. 이 독특한 공간은 카페 ‘펠트’다. 인근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는 이 지역은 유동 인구가 거의 없다. 도로변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간판도 없는 데다 내부도 휑하다. 그런데도 인스타그램과 입소문으로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송대웅 펠트 대표(35)는 “주변에서 이런 곳에 카페를 해도 되겠냐는 걱정이 많았는데, ‘그냥 커피만 마시는 공간’이란 콘셉트가 오히려 독특하게 다가온 것 같다”고 했다. 장식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며 미니멀리즘을 극단까지 밀고 나간 공간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간판만 보고 지나치는 사람은 “카페를 열려고 리모델링을 하나 보다”고 착각할 정도로 불친절하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벽에 있는 좁은 벤치에 앉아 허공에서 시선을 교환한다. 이런 ‘불친절’은 “오직 커피로만 승부한다”는 철학이 반영된 것. 펠트는 사실 카페 브랜드가 아니라 원두를 가공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창전동 카페를 ‘쇼룸’이라고 하는 것도 주된 사업이 커피 납품이기 때문이다. 서울 여의도에서 유명했던 ‘매드커피’의 김영현 대표가 송 대표와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로, 서울 용산구 사운즈 한남의 카페 ‘콰르텟’과 ‘헬카페’도 펠트의 커피를 쓴다. 카페라테가 특히 인기인 펠트 커피의 원두는 현지에서 직접 고른 것들이다. 송 대표는 매년 중남미의 온두라스, 니카라과 농장에서 한 달 동안 지낸다. 한 해 날씨나 작황은 어떤지, 제일 잘하는 생산자는 누구인지 등 온갖 이야기를 듣고 커피나무가 자라는 과정도 지켜본다. 송 대표는 “국내에서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좋은 생두를 구할 수 있어 효율성에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지만 직접 체험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장기적인 계획도 구상한다”고 설명했다. 독특한 공간뿐이었다면 한때 유행에 그쳤겠지만 기본에 충실한 덕분에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광화문 D타워 지하에, 올해는 강남구 도산공원에 패션브랜드 준지의 플래그십 스토어에 입점했다. 스튜디오Stof에서 건축 디자인을 맡은 D타워 펠트는 간판은 있지만 ‘은파 피아노’의 이미지를 유지하고자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빌딩 지하 연결 통로에 자리 잡았는데, 주변 공간의 요소를 내부 인테리어에 그대로 가져와 마치 전체가 한 공간인 것처럼 만들었다. 그러자 버려졌던 공간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로 잠시 일하다, 먹어 본 사람들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좋아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된 송 대표는 “30, 40년은 커피를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급하게 매장이 여러 곳 생겼어요. 그렇지만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고 싶습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간판은 없고요, ‘은파 피아노’로 찾아가면 됩니다.” 서울 마포구 창전동 주택가에 자리 잡은 ‘은파 피아노’에는 피아노가 없다. 10년 넘게 있던 피아노 학원이 나간 자리에 카페가 들어섰다. 그런데 일반 카페에 당연히 있는 테이블이 없다. 대신 에스프레소 머신과 LP판, 앰프만 덩그러니 놓여 있어, 커피 내리는 소리와 음악만이 가득하다. 이 독특한 공간은 카페 ‘펠트’다. 인근 지하철 2호선 신촌역에서도 꽤 오랜 시간을 걸어야 하는 이 지역은 유동 인구가 거의 없다. 도로변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간판도 없는데다 내부도 휑하다. 그런데도 인스타그램과 입소문으로 찾는 발길이 꾸준히 이어진다. 송대웅 펠트 대표(35)는 “주변에서 이런 곳에 카페를 해도 되겠냐는 걱정이 많았는데, ‘그냥 커피만 마시는 공간’이라는 콘셉트가 오히려 독특하게 다가온 것 같다”고 했다. 장식적인 요소를 완전히 배제하며 미니멀리즘을 극단까지 밀고 나간 공간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있다. 간판만 보고 지나치는 사람은 “카페를 열려고 리모델링을 하나보다”고 착각할 정도로 불친절하다.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은 벽에 있는 좁은 벤치에 앉아 허공에서 시선을 교환한다. 이런 ‘불친절’은 “오직 커피로만 승부한다”는 철학이 반영된 것. 펠트는 사실 카페 브랜드가 아니라 원두를 가공하는 스페셜티 커피 브랜드다. 창전동 카페를 ‘쇼룸’이라고 하는 것도 주된 사업이 커피 납품이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유명했던 ‘매드커피’의 김영현 대표가 송 대표와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로, 서울 용산구 사운즈 한남의 카페 ‘콰르텟’과 ‘헬카페’도 펠트의 커피를 쓴다. 카페라떼가 특히 인기인 펠트 커피의 원두는 현지에서 직접 고른 것들이다. 송 대표는 매년 중남미의 온두라스, 니카라과 농장에서 한 달 동안 지낸다. 한 해 날씨나 작황은 어떤지, 제일 잘 하는 생산자는 누구인지 등 온갖 이야기를 듣고 커피나무가 자라는 과정도 지켜본다. 송 대표는 “국내에서도 이제는 안정적으로 좋은 생두를 구할 수 있어서 효율성에서는 추천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지만, 직접 체험하면서 새로운 것들을 보고 장기적인 계획도 구상한다”고 설명했다. 독특한 공간뿐이었다면 한 때 유행에 그쳤겠지만, 기본에 충실한 덕분에 규모도 점차 커지고 있다. 지난해에는 광화문 D타워 지하에, 올해는 강남구 도산공원에 패션브랜드 준지의 플래그십스토어에 입점했다. 스튜디오Stof에서 건축 디자인을 맡은 D타워 펠트는 간판은 있지만, ‘은파피아노’의 이미지를 유지하고자 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과 빌딩 지하 연결 통로에 자리 잡았는데, 주변 공간의 요소를 내부 인테리어에 그대로 가져와 마치 전체가 한 공간인 것처럼 만들었다. 그러자 버려졌던 공간이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패션 디자이너로 잠시 일하다, 먹어 본 사람들의 즉각적인 피드백이 좋아서 바리스타로 일하게 된 송 대표는 “30, 40년은 커피를 더 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근 급하게 매장이 여러 곳 생겼어요. 그렇지만 평생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느리더라도 차근차근 내실을 다지고 싶습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사진 속 배경은 미국 캘리포니아 남부의 고급 주택가 팜스프링스다. 1960년대 미드센트리모던(20세기 중반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모더니즘 인테리어 스타일)풍 대저택 수영장 위 한 남자가 서 있다. 셔츠를 걸친 남자의 시선 끝엔 죽은 듯 물에 떠 있는 또 다른 남자가 보인다. 제목은 ‘아메리칸 드림―앨릭스와의 자화상’. 네덜란드의 사진 예술가 에르빈 올라프(60·사진)의 작품이다. 작품은 영국 작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1972년 작품 ‘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에서 모티프를 따왔다. 그러나 밝은 햇살이 비추는 경쾌하고 풍요로운 호크니의 미국과 올라프의 미국은 사뭇 다르다. 수영장 옆 잔디는 누렇게 말랐고, 먼 산에서도 나무는 찾아볼 수 없다. 촬영 당시 제작팀은 잔디에 녹색을 칠하려 했지만, 작가는 “완벽한 저택 속 시든 잔디가 가슴 아픈 무언가를 일으킨다”며 말렸다. 여기에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제목을 붙이자 간극은 더 커진다. 화려했던 그 시절 미국은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걸까. 그림처럼 꼭 맞는 구도와 색감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은 올라프 사진의 특징 중 하나다. 그러나 단순한 시각적 아름다움을 넘어 느껴지는 불길한 징조와 불안함은 그를 상업 사진가가 아닌 예술가의 경지로 이끌었다. 1980년대 욕망이 넘치는 밤의 인물을 표현해 주목받은 올라프는 한 컷에 담은 사회적 금기와 인간 탐구로 어느새 네덜란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평가받는다. 지난해 네덜란드 국립 레익스 박물관은 그의 작품 500여 점을 컬렉션에 포함시켰다. 일부는 작가가 기증했는데, 유전 질환인 폐기종을 앓으면서 ‘60세까지밖에 살 수 없다’는 진단을 받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환갑의 작가는 여전히 왕성한 작업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레익스 박물관은 7월 3일부터 9월 22일까지 렘브란트, 요하네스 페르스프롱크, 얀 스테인 등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를 이끈 화가의 회화 작품과 올라프의 사진 작품을 나란히 전시하고 있다. 올라프의 스튜디오 매니저인 셜리 덴 하르토흐는 “네덜란드 거장의 계보에 오르게 된 기념비적인 일”이라고 말했다. 10월 6일까지 서울 종로구 공근혜갤러리에서 그의 ‘팜스프링스’ 시리즈를 직접 볼 수 있다. 화려했던 미국을 대표하는 지역인 팜스프링스가 이상 기후로 변화한 모습, 그 안에 여전히 존재하는 빈부 격차를 시적으로 포착한다. 창백한 얼굴로 사무용 의자에 앉아 있는 소년을 담은 작품 ‘은행, 상속자’는 지금의 미국을 대표하는 누군가를 연상케 만든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중세가 이렇게 쿨한 거였어?’ 서울 종로구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나는너를중세의미래한다1’전은 역사책 속 중세에 관한 전시가 아니다. 띄어쓰기를 하지 않아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 난해한 제목 속에 ‘중세’와 ‘미래’가 겹쳐 있듯, 객관적인 ‘중세’의 개념 대신 동시대 미술가들이 각자의 관점으로 해석한 ‘중세’가 짬뽕처럼 전시장에 혼재돼 있다. 2층에 설치된 최윤 작가의 ‘너와 나의 서울 중세(I·MEDIEVAL SEOUL·U)’ 작품의 영상에는 한국에서 유럽 중세 문화를 즐기는 동호회원들이 등장한다. 옆 창문에 설치된 최고은 작가의 ‘봄의 욕망의 정원’은, 전통적인 종교화의 구도 위에 벨기에와 한국의 풍경을 혼란하게 섞었다. 3층에 가면 ‘진실의 입’을 연상케 하는 얼굴 조각이 최첨단 로봇 청소기 위에 붙어 바닥을 훑고 다닌다. 덴마크 작가 아니아라 오만의 작품 ‘최후의 화신’이다. 전시는 덴마크의 공공미술관 쿤스탈오르후스의 예술감독이자 내년 부산비엔날레 감독인 야코브 파브리시우스(49)가 기획했다. ‘나’와 ‘너’라는 주체, ‘중세’와 ‘미래’라는 시간 경계를 허무는 기획 의도에 맞춰 한국 덴마크 이란 아르메니아 독일 등 다국적 작가 20명이 참가했다. 파브리시우스는 “역사를 직선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 동시다발적으로 존재하는 현상으로 탐구하고 싶었다”며 “가장 발전했다고 여겨지는 현재가 자세히 들여다보면 원시적이고 단순한 지점이 있는데, 그곳을 파고든 것이 한 예”라고 설명했다. 국적과 시대 불명의 이질적인 이미지가 새로운 감각을 깨워 흥미롭다. 11월 17일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반투명 색안경 위에 착용한 헤어밴드와 똑딱이 머리핀. 상반신에는 홀치기염색 크롭티(배꼽티)를 걸쳐 건강미와 활동성을 드러냈다. 한 손엔 형광색 파워숄더(어깨가 각진) 재킷을 들고 하의는 펑퍼짐한 배기팬츠(힙합 바지) 차림. 금방이라도 무리 지어 힙합 댄스를 출 듯하다. 1990년대 여성그룹 ‘디바’를 다시 본 이야기가 아니다. 제니, 설현, 선미, 현아 같은 아이돌 가수들의 요즘 공항 패션이나 화보 속 옷차림이다. 래퍼 비와이는 얇은 빨간 띠 로고가 선명한 벙거지 모자를 썼다. 1990년대 패션이 돌아왔다. 유별난 소수의 극한 ‘뉴트로(새 복고)’ 체험이 아니다. 올여름 배꼽티를 입은 젊은 행인들에게서 20여 년 전의 환영을 봤다면 그것은 환영이 아닌 실제다. 시내 곳곳에선 요즘 1990년대 패션 파티도 열린다.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도 1990년대생 벨라 하디드, 켄들 제너 같은 유명 모델이 약속한 듯 1990년대 스타일을 뽐내는 화보가 넘실댄다. 그 시절 그 패션은 어떻게, 왜 슬그머니 우리 곁에 다시 왔나.○ ‘내 파티에 이승연, 문희준이?’ 블로거 김혜영 씨(36)는 최근 출산을 앞두고 지인 15명을 초대한 베이비샤워 파티, ‘83년생 김혜영’을 열었다. 드레스코드는 ‘90년대 스타일’. 초청받은 참가자들은 행사 2주 전부터 분주해졌다. 서울 종로구 동묘시장 광장시장부터 온라인 쇼핑몰까지 뒤지고 돌아다녔다. 눈길을 사로잡을 ‘그 시절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당일 파티 현장에는 어두운 색 립 라이너로 빈틈없이 입술을 채우고 베레모를 쓴 배우 이승연, 힙합 바지에 헤어피스를 단 가수 문희준이 등장했다. 물론 연예인 본인이 아니다. 1990년대의 그들을 흉내 낸 참가자들. ‘모조 이승연’은 1990년대 TV 토크쇼 ‘이승연의 세이세이세이’ 진행 당시의 스타일을 감쪽같이 재현했다. 당대의 통신기기 삐삐부터 록그룹 ‘Y2K’의 사인 CD, 루즈삭스, 헤어피스, 크롭티, 배기팬츠, 플라스틱 헤어핀과 베레모(빵모자)까지…. 이른바 세기말 감성이 폭발했다. 여성그룹 ‘샤크라’의 패션 콘셉트로 꾸며 파티에 참가한 박지훈 씨(33)는 “1990년대에 초중학생이었는데 당시에는 구매력이 없어서 해보지 못했던 루즈삭스 같은 것들을 이번에 직접 체험하니 즐거웠다. 이정현 같은 1990년대 가수를 보면 분장과 무대가 굉장히 파격적이다. 평소 무채색 옷만 입다 세기말 감성으로 꾸미니 자유로워진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Z세대 울린 X세대 감성 “캘빈(클라인)과 나 사이에 뭐가 있는지 알아요? 아무것도 없어요.” 1981년 배우 브룩 실즈가 모델로 등장한 캘빈클라인 의류 광고 문구다. 당시 15세이던 실즈가 이 문구에 맞춰 도발적 포즈를 취했는데 논란과 함께 여성성과 섹시함을 강조한 캘빈클라인의 인기도 반등했다. 38년 뒤, 캘빈클라인의 새 모델인 17세 가수 빌리 아일리시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 사람들에게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나는 펑퍼짐한 옷을 입지. 아무도 그 속을 모르니까 몸매 품평을 못 하잖아. 난 내 캘빈 속에서 진실을 말해.” 근 40년 차의 두 광고는 일견 비슷해 보이지만 내면은 판이하다. 전자가 사회가 만든 전형적 여성상을 강조했다면 후자는 개성과 다양성을 내세운다. 1980년대의 레이거노믹스와 보수적 분위기를 1990년대 X세대가 자유와 개성으로 탈피하려 한 움직임이 패션에 남아 Z세대에 울림을 주는 형국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서는 1990년대 TV 뉴스 화면 속에서 배꼽티를 입은 여성이 “이렇게 입으면 기분이 좋거든요”라고 말하는 장면이 화제가 됐다.○ 친숙함과 과감함 사이 1990년대 패션 붐은 업데이트나 재해석이 아닌 동일 재현으로 가고 있다. 패션 회사들도 적극적이다. 프라다는 얇고 붉은 띠 모양 로고인 리네아 로사를 부활시키고 당시 유행한 나일론 백팩을 그 모습 그대로 재출시했다. 타미힐피거도 1990년대의 로고 장식을 다시 사용한다. 과장된 색채 등 맥시멀리즘의 이면에 담백한 미니멀리즘이 공존한 것도 1990년대 패션의 강점으로 꼽힌다. 진정아 더블유 매거진 디지털 에디터는 “(고 존 F 케네디 2세의 부인) 캐럴린 베셋케네디, 모델 케이트 모스가 1990년대에 보여준 정제되고 담백한 스타일이 현재 스타일리시하게 받아들여진다. 첨단 경향을 과하게 좇는 것을 촌스럽게 생각하는 20, 30대에게 1990년대 문화는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친숙함이 있다. 1960∼80년대 패션에 비해 동시대와 접점이 많고 실용적이란 점도 90년대 패션의 매력이다”라고 했다.임희윤 imi@donga.com·김민 기자}

“‘프렌즈’ 의상 담당자님 제 의상도 평생 맡아주시면 안 될까요?” 90년대 패션 붐은 시트콤 ‘프렌즈’로도 불어오고 있다. 넷플릭스가 ‘프렌즈’를 지난해 다시 공개하자 영미권 국가는 물론 국내 소셜 미디어에서도 ‘프렌즈 패션’이 화제다. 여성 캐릭터인 레이첼, 모니카, 피비의 패션에서 각자 개성이 잘 드러나, 이들의 옷만 캡처한 이미지도 전 세계로 공유된다. 제니퍼 애니스턴이 연기한 레이첼 그린은 당시에도 패션 아이콘이었다. 풍성한 볼륨에 레이어드를 준 어깨 길이의 머리는 ‘레이첼 스타일’이라는 고유 명사가 됐다. 데님의 다양한 활용, 영화 ‘클루리스’식 체크무늬, 짧은 셔츠 끝단을 질끈 동여맨 스타일이 ‘레이첼표’ 패션이다. 보헤미안(집시)의 의상을 멋지게 재해석했다는 의미의 ‘보호 시크’라면 단연 피비 부페이(리사 쿠드로)다. 시트콤 속에서 ‘4차원’ 캐릭터로 등장한 그녀는 사이즈가 큰 꽃무늬 원피스나 갈색 계열의 스웨이드를 즐겨 입었다. 화려한 색감으로 자유분방함을 연출한 것도 특징이다. 당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던 모니카 갤러거(코트니 콕스)의 패션이 최근 재평가되고 있다. 유명 글로벌 패션 브랜드 쇼핑몰인 ‘네타포르테’는 여름 트렌드로 모니카의 패션을 선보였다. DKNY를 연상케 하는 하이웨이스트 진이나 더블브레스트 재킷에 검은 쇼트커트 헤어까지. 단정하면서도 분위기 있는 그녀의 패션이 90년대 ‘놈 코어’(평범함의 극치) 패션 아이콘이라면서 말이다. ‘그 시절 패션’을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된 밀레니얼 세대의 열광 덕분일까? 넷플릭스는 지난해 ‘프렌즈’ 방영권을 올해 말까지 1년 연장하며 무려 1억 달러(약 1194억 원)를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