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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한성대 인근에 있는 한 중견 연극극단에서 배우 등 관계자 15명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집단감염됐다. 해당 연극은 전면 취소됐으며, 확진된 배우 가운데 일부가 출연하는 TV 드라마 등은 촬영이 중단됐다. 극단 ‘산’은 20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극단 배우 및 스태프 41명에 대한 검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 15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해당 극단은 19일부터 연극 ‘짬뽕&소’를 무대에 올릴 예정이었으나 이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 허동원 씨가 17일 코로나19로 확진돼 모든 관계자가 검사를 받았다. 현재 7명은 음성 판정을 받았으며, 나머지 19명은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확진자 가운데는 영화 ‘군함도’ 등에 출연해 대중에게 친숙한 배우 김원해 씨도 포함됐다. 김 씨의 소속사인 ‘더블에스컴퍼니’는 이날 “김 씨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모든 스케줄을 취소한다”고 밝혔다. 김 씨와 동행했던 매니저는 음성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출연 배우는 물론이고 관계자까지 집단감염되며 30일까지 예정됐던 연극 공연은 모두 취소됐다. 극작가 겸 연출가인 윤정환 극단 산 대표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방역을 준수하며 준비했는데도 이런 상황이 발생해 죄송하다. 더 이상 전파가 없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다수 확진자가 발생해 문화예술계가 받을 타격을 생각하니 가슴이 무겁고 아프다”고 전했다. 극장은 물론이고 서울 종로구에 있는 연습실까지 방역을 마친 당국은 확진자들의 감염 경로 등에 대한 역학조사를 벌이고 있다. 방송가에도 비상이 걸렸다. 확진된 배우 등이 TV 드라마 등에 출연하며 방송 관계자들과 접촉해왔기 때문이다. 연예기획사 ‘좋은사람 컴퍼니’에 따르면 배우 오만석 씨는 17일 확진된 허동원 씨의 메이크업을 맡았던 분장사와 2시간가량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접촉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분장사 역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상태다. 오 씨는 20일 자신의 SNS에 “신속하게 검사를 받으러 왔다. 내일 오전 결과가 나오는 대로 알려드리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로 인해 오 씨가 출연하는 JTBC 예능프로그램 ‘장르만 코미디’도 촬영이 중단됐다. 배우들이 출연했던 TV 드라마들도 촬영을 멈췄다. KBS는 “배우 허동원 씨가 출연하는 드라마 ‘도도솔솔라라솔’(방영 예정)과 배우 서성종 씨가 출연하고 있던 드라마 ‘그놈이 그놈이다’의 촬영이 전면 중단됐다”고 밝혔다. 드라마 촬영에서 허 씨와 접촉한 배우 서이숙 씨도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 이로 인해 서 씨가 출연하는 tvN의 새 드라마 ‘스타트업’도 촬영을 일시 중단했다. 이소연 always99@donga.com·김민 기자}

《온몸에서 나오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20세기 다빈치’ 요제프 보이스는 삶 자체가 예술이라며 경계를 허물었는데, 우리는 여전히 박제된 미술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예술가 김주영(72)은 한국의 근현대사를 온몸에 안고 길 위에서 스스로 붓이 되길 자처한다. 한국 미술의 ‘딥 컷(Deep Cut)’, 숨은 보석인 김주영의 작품세계를 지면에는 시원하게, 동아닷컴에는 심층적으로 소개한다.》 30대 후반 홍익대 미대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났다. 파리8대학에서 조형예술을 공부했다. 강의실 앞에서 한 교수를 기다렸다. 그 교수를 졸라 미학 수업을 들었다. 탈구조주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였다. 운동화와 청바지만 남기고 모두 버린 삶을 살았다. 굶기를 밥 먹듯 했고 버려진 건물에서 작업도 했다. 김환기 화가의 부인 김향안 여사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지원해준 덕에 얼마간 버텼으나 이내 노마드(유랑) 생활로 돌아갔다. 그의 방황은 태생적 조건에서 출발했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아버지가 좌익 활동을 하다 증발했다는 걸 성인이 돼서 알았다. ‘김주영’은 본명이 아니었고, 어릴 때 크레용을 주며 혼자 놀라고 했던 어머니의 당부는 정체를 들킬까 봐 두려운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다. 김주영이 놓인 삶의 조건은 6·25전쟁이라는 한반도의 비극에서 출발한다. 이름도 없는 아버지. 역사의 수레바퀴에 송두리째 흔들린 개인의 삶. 1994년 파리 베르나노스 갤러리에서 열린 첫 개인전에서 그는 무명의 기생을 위한 제식을 올린 뒤 수십 년간 이름 없는 영혼을 위로하는 노마드 프로젝트를 이어갔다. 그는 언제나 흰 광목천에 검은 먹으로 발자국을 찍는다. 손에는 한 줌의 쌀이나 흙, 재가 들려 있다. 스스로 낸 길 끝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며 크고 작은 영혼들을 위로하는 그를 유럽에선 ‘동양에서 온 무당’이라며 신기하게 여겼다. 서양 문명의 한계를 본 그는 2006년 귀국했고, 경기 안성 시골에 정착했다. 여전히 지구를 캔버스 삼아 스스로가 붓이 된 그는 평면과 문(門), 벽과 창(窓), 흑과 백, 바닥과 거울 등 충돌하는 소재를 통해 조형 언어를 생성해낸다. 모래성을 쌓았다가 허물듯 김주영은 예술을 한다. 그의 예술은 흰 천 위 발자국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마치 우리의 삶이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김주영 작가::▽1948년 충북 진천 출생▽1972년 홍익대 회화과(석사)▽1992년 프랑스 파리8대학 조형예술학과(박사)▽1994년 프랑스 파리 베르나노스 갤러리 ‘어느 기생의 영혼祭’▽2000년 서울 남대문시장-DMZ ‘떠도는 무명의 영혼들이여’▽2010년 중국 ‘송화강은 흐른다―신경 고모’▽2019년 충북 청주시립미술관 개인전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손끝이 아닌 ‘온 몸에서 나오는 예술’이란 무엇일까? 현대미술의 거장 요셉 보이스(1921~1986)는 이미 미술관뿐 아니라 대학 강단, 사회단체, 정당(녹색당) 등 곳곳을 누비며 삶 자체가 예술임을 보여주고 ‘20세기 다빈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르네상스’나 ‘모더니즘’ 같은 허영적 미의식에 얽매여 박제된 미술만 보고 있는 건 아닐까?한국의 현대미술가 김주영(72)의 예술은 흰 광목천 위에 찍힌 검은 발자국이다. 이 단순한 몸짓이 예술인 것은 그것이 그녀의 삶과 온 몸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보이스의 ‘펠트 수트’와 벨기에 작가 프란시스 알리스의 ‘산책’ 그 자체가 예술 작품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자신의 삶과 한국의 역사,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을 버무린 한국 작가 김주영의 예술 세계를 소개한다.● 길 위에서 스스로 붓이 되다2009년 동유럽 불가리아의 초원. 카라반과 임시 주거촌이 만들어진 ‘노마딕 빌리지’ 한 가운데서 김주영 작가가 흰 광목천을 펼쳤다. ‘노마딕 빌리지’는 ‘길 위에서 작업하다’는 콘셉트로 예술가들이 유럽 일원을 이동하며 함께 생활하고 작업하는 프로젝트다. 오스트리아 슈미에드(Schmiede) 재단 후원으로 이뤄진 프로젝트에 김주영 작가도 참여했다.그는 빈 땅에 스스로 만든 흰 광목천 길 위로 검은 먹을 칠한 발자국을 찍어 나갔다. 길 끝에 도착한 곳은 ‘비밀 정원’. 작가가 노마딕 빌리지에 도착하고 열흘 동안 가꾼 불모의 땅이다. 조약돌로 50X100cm 구역을 경계 짓고 매일 물을 주었더니 신기하게도 풀이 돋아났다.이 길 앞에 선 작가는 땅에 완전히 엎드린다. 그리고 양팔을 십자로 벌렸다 머리 위로 모으고 반쯤 일어나, 자연의 신에게 쌀 한줌을 바친다. 김주영 작가의 행위 예술 ‘쌀의 길’이다. 이렇게 흰 광목천을 펼치고, 손에는 흙이나 재를 담은 채 발자국을 찍으며, 땅 위에 엎드리며 제식을 올리는 행위는 김주영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다. 일반인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은 이러한 퍼포먼스가 어떻게 예술 행위가 되느냐는 것이다. 방점은 행위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담고 있는 수많은 맥락과 함의에 있다. 1990년대부터 시작된 작가의 ‘노마딕 프로젝트’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이 의식은 한국의 비극적 근대사와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얽히면서 탄생한 작품이다. ● 문(門)의 이편과 저편작가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가 사주신 크레용과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다. 홍익대 회화과에서 유화와 누드모델을 처음 접하고, 대학원 연구조교와 강사 생활 시절엔 기하학적 그림과 검은색 모노크롬 작업을 했다. 일요일에는 ‘홍익일요화우회’ 일을 하며 풍경화도 그렸다.이중섭의 주치의였던 정신건강의학과 박사 유석진 교수 밑에서 임상예술요법(예술 치료)을 연구하면서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을 깊이 이해하게 된다. 이 때 나온 모티프가 바로 ‘문’이다. 캔버스 위에 그려진 문은 이편에서 저편으로 넘어가는 초현실적 상징이다. 1986년 파리로 이주한 후 박사논문으로도 이어졌던 이 모티프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설명했다.“너무 불충분한 이 세상의 수많은 모순들을 생각하며 상상한 ‘저편의 세상’으로 통하는 문과 같다. 모든 문제가 풀어질 것 같은 그런 동경의 세계가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 ‘구운몽’의 꿈 속 개미굴 저편의 세계 혹은 무릉도원처럼. 나 스스로를 지탱하게 하는 내 몸 속 집 같은 곳이다.”그가 말하는 ‘모순’이란 두 가지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하나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한반도는 물론 인간 사회가 갖고 있는 모순이다. 또 하나는 미시적 관점에서 작가의 태생적 조건이 자아낸 역사의 모순이다. ● ‘신경 고모’ 이야기그는 30대 초반부터 홍익공업전문대에서 강의를 시작하고, 1982년 당시 뉴욕에 있었던 환기재단 공모에서 입상할 정도로 인정받는 작가였다. 그런데 1986년 교수 자리를 내려놓고 프랑스로 떠난다. 이 때부터 시작된 노마드(유랑)의 삶은 프랑스에서 독일 인도 네팔 몽골과 한국의 DMZ, 다시 중앙아시아와 터키로 수십 년간 이어졌다. 유랑이 시작된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내 진짜 이름은 김주영이 아니다”라고 털어놨다.“내가 태어나기 전 세상을 떠난 줄 알았던 아버지가 사실은 좌익 활동을 하다 증발했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 알았다. 어머니의 철저한 증거인멸로 나는 그 존재조차 몰랐다. 어릴 때 어머니가 나에게 크레용을 쥐어 준 것은 우리 가족의 정체가 탄로 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내 본명이 ‘현선영’임을 알게 된 것이 파리행 즈음이다.”존재 자체가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 그가 겪었던 지진과 같은 모순은 사실 분단이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비극과도 맞닿아 있다. 이 모순과 고통을 때로는 깊이 파고들고, 또 때로는 주변과 세계로 확장하며 김주영의 작품은 이어졌다.2000년 남대문시장과 DMZ로 이어진 작업 ‘떠도는 무명의 영혼들이여: 등잔불 祭’와 2010년 노마드 프로젝트 ‘송화강은 흐른다: 신경 고모’는 작가의 개인사와 연결된다.DMZ 프로젝트 당시 작가는 언론 인터뷰에서 “이름 없이 벌판에 버려졌던 수많은 아버지와 어머니들을 찾아보고 싶다. 체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렸지만 소멸될 수 없는 끈질긴 생명의 투쟁을 담겠다”고 밝혔다. 작가는 DMZ를 따라 전쟁의 상흔이 남은 곳에서 호롱불을 켜고 제식을 올리며 남은 재를 상자에 담았다.‘송화강은 흐른다: 신경 고모’에서는 중국 신경에서 남편을 만난 엄마, ‘신경 고모’(친척들이 작가의 어머니를 부르던 호칭)의 이야기를 추적해갔다. 하얼빈 장춘 길림으로 이어진 여정에서 그는 731부대 박물관, 의열단 결성 장소, 송화강 등을 찾아 무명의 영혼을 위한 제식을 올린다. 돌아온 뒤에는 자개장농 속에 어머니의 유품과 데드마스크를 놓고 에폭시로 굳혀 박제했다.● 쌀과 흙과 한줌의 재1986년 작가는 삶의 풀리지 않는 모순을 안고 프랑스로 떠난다. 그 곳에서 몇 번의 중요한 만남을 경험하는데, 그 중 하나가 김환기의 부인 김향안 여사(1916~2004)였다. 4년 전 환기재단 공모에서 수상한 젊은 작가를 김향안은 기억했다. 그리고 파리8대학에 진학한 김주영에게 장학금으로 지원을 해주었다.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때로는 불법 점거(squat)한 건물을 화실 삼았던 그에게 큰 도움이었다.또 다른 만남은 노마디즘 철학자 질 들뢰즈(1925~1995)였다. 막 파리에 도착해 프랑스어도 유창하지 못했던 김주영은, 들뢰즈의 강의실 앞에 기다리다 그에게 강의를 듣게 해달라고 졸랐다. 동양인 예술가의 절박함을 본 들뢰즈는 호의를 베풀었고, 김주영은 그의 강의를 청강했다.이 때 그의 작품은 평면에서 공간으로 확장된다. 주어진 공간에 흰 천을 깔고, 검은 발자국을 찍으면서 충돌 속에 그는 조형 이미지를 건진다. 또 납작한 바닥에 거울을 놓아 깊이를 만들기도, 나무로 지은 기하학적 조형물 속에 초록색 네온사인을 넣어 활기를 불어 넣는다. 이 모든 것은 고정된 형식이 아닌 주변 맥락에 따라 자유롭게 변화하는 ‘리좀’(Rhizome)적 조형언어다.유럽 지성사의 변화를 체화한 작가가 돌아온 것은 우리 농가의 처연한 삶이었다. 흙과 쌀과 농기구와 나무를 활용한 조형 언어를 그는 ‘애잔한 서정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실컷 돌아다니며 하고 싶은 이 짓 저 짓 해보았는데, 원점으로 돌아왔다. 결국 나의 원점은 한국의 시골 논밭이 있는 전원이었다. 거친 잡풀더미와 뙤약볕에서 일하는 아낙네들 말이다.”지난해에도 터키로 노마드 프로젝트를 이어간 김주영의 작업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는 늘 끊임없이 이야기(내러티브)를 만들고, 집을 지으며 또 종국에는 그 집을 불태우고 재로 돌아갈 것이다. 흰 광목천에 찍힌 검은 발자국처럼, 우리의 삶도 결국은 타고 남는 ‘한줌의 재 이야기’이기 때문이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저자는 연극 ‘버자이너 모놀로그’의 작가이자 친족 성폭력 피해자다. ‘버자이너 모놀로그’는 금기시되어 왔던 여성의 성(性)을 솔직하게 보여준 작품이다. 저자는 ‘브이데이’와 ‘원 빌리언 라이징 레볼루션’을 조직해 여성 폭력 방지에 힘쓰는 사회운동가이기도 하다. 그가 31년 전 세상을 떠난 가해자 아버지의 입장에서 스스로 써 내려간 글을 담았다. 5세 때 시작한 성 학대는 10세 때 폭행과 위협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아버지의 목소리로 다시 기록한다. 여기서 가해자였던 아버지 자신도 폭력 속에 살았던 성장 과정, 나르시시즘 안에 그림자처럼 도사린 자기혐오가 드러난다. 이분법적 선악 구분을 넘어 상대를 원점에서 바라본다. 이를 통해 끝내 화해할 수 없었던 두 비극적 삶을 정면 돌파하는 처절한 시도가 돋보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저자의 죽음’을 말한 바르트의 삶은 어떻게 이해될 수 있을까. 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한 이 책은 그가 주변인과 주고받은 편지를 모았다. 알베르 카뮈, 알랭 로브그리예, 모리스 블랑쇼, 루이 알튀세르 등 프랑스 실존주의와 구조주의를 만들었던 수많은 사람의 흔적이 담겼다. 그러나 바르트 전집의 편찬자이자 이 책의 편집인 에리크 마르티는 ‘서간문에서 바르트의 삶을 다시 발견하길 바라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손을 떠난 편지는 그의 의도가 아닌 그것이 놓인 맥락에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거의 매일 저녁 바르트와 외출했던 미셸 푸코와의 편지가 전혀 남아있지 않은 것도 독특하다. 어쩌면 의미 없을 메모, 예의상의 표현도 모조리 한자리에 모았다. 이를 통해 책은 문자를 넘어선 ‘우정의 지도’를 그리는 데 집중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13년 스웨덴 스톡홀름 현대미술관. 미국도 서유럽도 아닌 미술사의 변방 스웨덴에서 ‘추상미술의 개척자’라는 야심 찬 제목의 전시가 열렸다. 제목만 보면 대부분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이 떠오른다. 뜻밖에도 이 전시의 주인공은 미술계에서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던 스웨덴 여성 작가 힐마 아프 클린트(1862∼1944)였다. 이 전시는 이후 노르웨이, 스페인, 덴마크를 거쳐 독일 베를린까지 순회하며 관객 100만 명이 찾는 대흥행을 이뤘다. ‘아프 클린트 열풍’이 조만간 국내에도 상륙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다큐멘터리 영화 ‘힐마 아프 클린트―미래를 위한 그림’이 개봉 시기를 조율 중이다. 독일 미술사가 율리아 포스의 ‘아프 클린트 전기’도 풍월당에서 번역 출간할 예정이다. 포스는 독일 유력 일간지 프랑크프루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에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아프 클린트를 소개해 화제를 모았다.○ 사후 42년 만에 공개된 그림아프 클린트 회고전은 두 가지 점에서 미술계를 놀라게 했다. 첫째는 그가 칸딘스키보다 앞서 추상을 그렸다는 것, 둘째는 그런데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는 점이다. 아프 클린트는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신지학(神智學)에 심취했다. 독일 신지학협회 회장이던 루돌프 슈타이너에게 편지를 써 직접 만날 정도로 진취적이던 그는 신지학의 영향으로 추상화를 그렸다. 그가 첫 추상 작품 ‘원시적 혼동’을 그린 것은 1906년. 칸딘스키가 처음 그린 1911년에 조금 앞섰다. 그런데 1908년 슈타이너로부터 ‘이 그림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테니 향후 50년 동안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는 충격적 이야기를 듣는다. 이후 수년간 작업은 끊겼지만 아프 클린트는 자신만을 위한 그림을 이어갔다. 아프 클린트는 1944년 세상을 떠나며 자신의 추상 작품은 20년간 공개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후 1986년, 작품 일부가 미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 기획전에서 처음 빛을 봤다.○ ‘미술사는 다시 쓰여야 한다’11일 전주국제영화제를 통해 미리 공개된 다큐멘터리 영화 ‘미래를 위한 그림’에는 아프 클린트가 미술사에서 배제된 과정이 잘 드러난다. 그가 살아 있을 때는 여성 작가라는 이유로, 죽어서는 연구나 전시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미술관에서 거부됐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아프 클린트는 스웨덴 왕립미술학교를 졸업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미술학교에서 여성에게 그림은 부업에 불과했다. 여성의 ‘직업’이 주부밖에 없는 상황에서, 결혼하지 못한 여성이 삽화나 일러스트레이션 등의 소일거리로 돈을 벌기 위해 가는 곳이 미술학교였다. 그럼에도 아프 클린트는 사회와 과학, 사상의 흐름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자신만의 추상을 그렸다. 다만 세상에 공개할 수 없을 뿐이었다. 아프 클린트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그림을 물려받은 아프 클린트의 조카는 20년이 지나고 미술관을 찾아간다. 그러나 전시 이력이 없고 미술계에서 생소하다는 말만 들은 채 그림을 보여줄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의 그림들은 지하실 한구석에서 종이에 꽁꽁 싸여 수십 년간 잠들어 있었다. 국제 미술계는 백인 남성 중심의 모더니즘 미술사를 원점에서 다시 돌아보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신데렐라처럼 등장한 아프 클린트의 은폐된 작품들이 ‘재평가’의 시험대에 올랐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토지문화재단(이사장 김영주)은 ‘2020 원주박경리문학제 제11회 전국 청소년백일장’을 10월 17일 개최한다. 초중고교 재학생이나 해당 연령 청소년이면 누구나 시와 산문 부문에 참가할 수 있다. 본선에 앞서 온라인 백일장이 다음 달 7일까지 열린다. 심사를 통과한 100명이 10월 17일 현장 백일장에 참여할 수 있다. 대상 수상자(1명)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상과 장학금 100만 원, 최우수상 수상자(1명)에게는 강원도지사상과 50만 원을 수여한다. 온라인 백일장은 올해부터 한국토지주택공사(LH·사장 변창흠) 지원을 받아 LH사장상을 신설했다. 주제는 ‘행복한 나의 집’이다. 자세한 내용은 토지문화재단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스페인 출신 미국 영화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60·사진)가 코로나19에 걸렸다고 10일(현지 시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밝혔다. 반데라스는 어릴 적 자신의 사진과 함께 “10일인 오늘 내 60번째 생일을 코로나19로 인한 격리 상태에서 맞이하게 됐다”고 올렸다. 그는 “평소보다 약간 피곤하지만 비교적 건강하고 가능한 한 빨리 회복할 거라고 자신하고 있다”며 “격리 기간 동안 읽고 쓰고 쉬면서 나의 열정으로 맞은 60번째 해를 뜻깊게 보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모두에게 큰 포옹을”이라며 글을 마무리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화 ‘김일성의 아이들’이 로마국제무비어워즈 다큐멘터리 부문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받았다. 매달 온라인으로 수상작을 선정하는 로마국제무비어워즈가 김덕영 감독(56)의 작품 ‘김일성의 아이들’을 7월의 장편 다큐멘터리 수상작으로 발표한 것으로 11일 확인됐다. ‘김일성의 아이들’은 1950년대 북한 전쟁고아들의 동유럽 이주를 다룬 영화다. 올해 프랑스 니스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도 진출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975년 전남 신안 섬마을 어부가 우연히 그물에 걸려 올라온 도자기들을 관계당국에 신고하면서 이른바 ‘신안선’ 발굴이 시작됐다. 이듬해부터 해저 20m 지점에서 신안선을 발견했고, 도자기와 공예품 약 2만7000점, 중국 동전 28t 등을 건져 올렸다. 연구 결과 신안선은 1323년경 중국에서 일본으로 출항했으며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했다. 신안선의 발견은 한국 수중(水中) 고고학의 시작을 알렸다. 신안선의 유물은 전남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으로 인해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직무대리 심영섭)는 ‘다음갤러리’에서 ‘700년 전, 신안보물선의 침몰’ 전시를 온라인으로 공개하고 있다. 고화질로 마련된 온라인 전시에선 길이 30m의 신안선을 비롯해 관련 유물 80여 점, 관련 애니메이션과 다큐멘터리 등 영상 2편을 볼 수 있다. ‘해양유물전시관 e뮤지엄’도 11일부터 해양유물전시관 홈페이지에 공개된다. 도자기 등 발견된 유물은 주로 중국에서 만든 것이지만 고려청자 7점, 청동 숟가락, 청동 거울 등 고려의 유물도 들어 있다. 해양문화재연구소는 “중세 동아시아 사람들의 바닷길 문화 교류를 이해하고, 수백 년 전 차와 향, 장식, 일상생활 문화가 오늘날 우리들의 취향, 미감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북유럽 원주민 사미족은 지하세계에 지상과 똑같은 세상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다만 그 세상은 위아래가 뒤집혀 있다. 옆에서 본다면 땅을 사이에 두고 산 자와 죽은 자가 발바닥을 맞대고 있는 모양새다. 넷플릭스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의 ‘업사이드다운’에도, 조던 필의 영화 ‘어스’에도 이런 세계는 등장한다. 지하는 우리와 닮았지만 어딘가 어둡고 음침해 소름 끼치는 공간이다. 영국 저술가인 저자는 이런 눈에 보이지 않는 땅 밑 세상을 파헤친다. 자연을 소재로 한 책으로 데뷔할 때부터 주목받은 그는 자연 풍경과 인간의 마음을 글로 엮었다. 전작인 ‘마음의 산’(2003년), ‘야생의 장소들’(2007년), ‘더 올드 웨이즈’(2012년)가 산과 들판, 오래된 길을 다녔다면 이번엔 더 깊고 축축한 공간으로 파고 들어간 셈이다. 땅 밑에는 인류가 ‘두렵기에 버리고 싶고, 사랑하기에 지키고 싶은 것들’이 들어 있다. 소중한 물건을 간직한 타임캡슐이나 사랑했던 가족, 혹은 두꺼운 벽으로 둘러싼 핵폐기물이 그렇다. 이들은 지상세계에서 보이지 않을 뿐 언젠가는 돌아온다. 기후변화로 빙하가 녹으며 질소가 퍼져 나와 뒷덜미를 잡듯이 말이다. 저자는 언더랜드가 단순한 땅속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듯, 이야기를 지하 900m 아래 암흑물질 실험실에서 시작한다. 우주 질량의 27%를 구성하는 암흑물질은 눈에 보이는 물질들과 좀처럼 교류하지 않는다. 암흑물질의 하나인 윔프 1조 개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간, 두개골, 창자를 통과한다. 지구의 맨틀 같은 고체의 원자를 단 하나도 건드리지 않고 가로지르는 이들 윔프에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아주 얇은 그물조직, 비단에 불과하다. 모든 것이 차단된 땅속에서 연구자들은 암흑물질의 흔적을 뒤쫓는다. 이렇게 지상과는 다른 템포로 흐르는 땅속 ‘심원의 시간’으로 저자는 독자를 초대한다. 심원의 시간 앞에서 인류는 겸허해진다. 숲에서 경쟁하듯 자라는 나무들은 사실 땅속에서 뿌리와 곰팡이의 네트워크로 교류하고 있다. 병에 걸린 나무가 주변 나무의 면역 체계를 깨우고, 영양분이 많은 나무가 그것을 나눠주기도 한다. 파리의 카타콤, 이탈리아 북동부 ‘포이베 대학살’로 시신 수천 구가 가득한 카르스트 동굴로 이야기는 이어진다. 심원의 시공간을 따라가면 일상은 완전히 뒤집힌다. 땅속에 묻힌 억겁의 세월 앞에 하루 일과부터 우리가 집착하는 욕망까지 돌아보게 된다. 마치 산 위에 올라 도시를 바라볼 때 감상에 젖듯. 모든 것을 걷어내고 땅의 묵묵한 시간도 파헤쳐진다면 인류가 남기는 흔적이란 과연 무엇일까. 인류세(世)로 시작한 책은 핀란드 남서부 올킬루오토섬의 고준위 핵폐기물을 봉인하는 현장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독자에게 묻는다. ‘땅속에 우리는 어떤 흔적을 남길 것인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지난해 말 김성연 부산비엔날레 집행위원장은 덴마크인 예술감독 야코브 파브리시우스의 손에 이끌려 국립민속박물관의 ‘미역과 콘부’ 전시를 봤다. 올해 비엔날레와 관련해 함께 회의하던 파브리시우스가 꼭 봐야 한다며 데려간 것이다. 미역과 콘부(다시마)는 한국과 일본의 바다 문화를 다룬 전시였는데 해외 참여 작가가 궁금해한다는 이유였다. 전시 도록을 받은 작가는 해녀와 관련된 작품을 만들었다. 2년마다 열리는 국제 미술전 비엔날레에는 늘 딜레마가 있다. 국제전을 표방하다 보니 너무 난해해 지역과의 소통이 아쉬웠다. 외부의 예술감독이 사전 구성한 작가진에 전시 장소만 빌려주는 ‘헬리콥터 전시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다. 그런데 2020 부산 비엔날레는 과감히 ‘부산’을 주인공으로 세워 눈길을 끈다. 다음 달 5일부터 11월 8일까지 열리는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는 ‘열 장의 이야기와 다섯 편의 시’. 피아노곡 10개와 간주곡 5개로 구성된 무소륵스키의 작품 ‘전람회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람회의 그림’이 무소륵스키의 친구이자 건축가 빅토르 하르트만에 대한 오마주라면 이번 비엔날레는 부산을 위한 오마주라는 설명이다. 전시의 첫 관문은 독특하게 문학이다. 지난해 예술감독으로 선임된 파브리시우스는 번역된 국내 문학작품을 읽고 저자 11명을 섭외했다. 배수아 박솔뫼 김혜순 김금희 김숨 김언수 편혜영, 마크 본 슐레겔, 아말리에 스미스, 안드레스 솔라노, 이상우다. 이들은 일정 기간 부산에 머무르며 글을 썼다. 그 다음엔 시각예술가와 음악가를 초청해 이들 문학에 맞는 신작이나 기존 작품을 선택해 달라고 했다. 부산에서 나온 문학작품을 출발점으로 음악과 미술이 뻗어 나가는 구조다. 파브리시우스는 “전시가 하나의 몸이라면 문학가는 뼈대, 시각예술가들은 두뇌이며, 음악가들은 근육과 세포”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이러한 구조에 대해 “세계 미술 소개뿐 아니라 부산을 중심으로 확장하는 의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에는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의 화제작 ‘몬도카네’도 포함됐고 ‘소닉 유스’의 베이시스트였던 킴 고든도 참여한다. 이들 모두 부산을 주제로 모였다. 독일 작가 슈테판 딜레무트는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 구단의 마스코트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김 위원장은 “부산 비엔날레는 1981년 부산청년비엔날레로 시작해, 관이 아닌 지역 작가가 주도한 자생적 비엔날레”라고 말했다. 그만큼 비엔날레에 지역 미술과 소통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지역 작가전을 별도로 구성하는 방법도 있지만 국제전 옆에 부록처럼 끼워진 전시에 회의적인 반응도 많았다. 예술감독을 공모할 때부터 지역 이해도를 우선순위로 뒀다. 김 위원장은 “파브리시우스는 이미 수차례 부산 비엔날레를 찾았고 덴마크에 한국 작가를 소개하는 등 한국 미술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했다. 변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주최 측은 시간당 관객 수를 제한하고 사전 예약제를 실시할 예정이다. 파브리시우스는 “힘든 시기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바로 성찰의 자리다. 시각예술과 문학, 음악을 통해 나는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지 성찰해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예술 작품은 사고파는 상품도 된다. 그러나 상업적 가치만 추구하면 금세 천박해지는 ‘상품’이다. 작가는 돈을 넘어서는 가치를 추구해야 하고, 갤러리스트(갤러리를 운영하는 사람)는 안목으로 돈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가치를 품고 서로 줄다리기하는 묘한 관계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세잔에게 볼라르, 피카소에게 칸바일러가 있었듯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도 하다. 갤러리스트와 작가를 ‘예술적 동지’로 보는 두 사람이 있다. 현대미술가 서용선(69)과 갤러리스트 이영희 씨(70)다. 둘이 나눈 대화를 이 씨가 최근 ‘화가 서용선과의 대화’(좋은땅)로 펴냈다. 3일 서 작가의 작업실에서 두 동지를 만났다. ―‘예술적 동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서용선=내 작품은 색이 강하고 형태도 거칠어 어색해하는 사람이 많다. 나름대로 그렇게 그릴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는데, 이를 작가의 편에서 함께 안타까워하고 전달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동지적 관계다. 대부분 (내) 그림 앞에서 머뭇거리는데 이영희는 1초도 망설이지 않고 호불호를 표현한다. ―이영희 씨는 서 작가가 주목받기 전부터 알아봤다. ▽이영희=어릴 때부터 그림을 보고 자랐다. 사춘기에는 조르주 루오와 칸딘스키에 심취했다. 어머니가 1세대 플로리스트 임화공(1924∼2018)이다. 동화백화점 지하에서 ‘국내 최초로’ 꽃집을 하셨다. 학교 다녀오면 늘 백화점 갤러리에 올라가 그림을 봤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 씨가 리씨(Lee C)갤러리를 운영하던 2009년 ‘산(山)·수(水)’전으로 시작됐다. 인물과 역사를 주된 소재로 삼았던 서 작가에게 이 씨가 풍경화를 제안해 열린 전시다. 2015년 갤러리를 정리한 이후에도 이 씨는 서 작가의 전시를 돕고 있다. ―두 분의 첫인상이 굉장히 다르다. ▽서=(이 씨의) 느닷없는 솔직함이 이해가 안 될 때가 있다. 또 굉장히 상업적인 사람으로 보이는데, 내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도 가끔 이해가 안 된다. ▽이=얄미울 때도 많다. 그림 외에 다른 것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지방 출장을 가다가 내가 잠시 차에서 내렸는데 그것도 모르고 30분을 혼자 운전해 가신 적도 있다(웃음). ―이인범 상명대 교수는 두 분을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로 표현했다. ▽서=해외에서 갤러리가 작가와 일상을 함께하는 좋은 예를 봤다. 일본의 아는 작가는 갤러리에서 작업실 문제부터 재료 구하는 것까지 도와줬다. 독일에서는 (갤러리스트가) 작업실에 들러 작품을 토론하고 논쟁도 하더라. 우리 미술계에서 이런 이야기는 어색하다. ―‘책을 통해 미술이 결국 삶에 관한 것임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이=그림을 이야기하는 것은 인생을 소개하는 일이다. 이런 기회를 통해 작가가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다. ▽서=인생과 이미지는 별개가 아니다. 그림을 통해 상투적 아름다움을 넘어 삶을 이야기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젊은 작가, 갤러리스트에게 조언한다면…. ▽서=갤러리가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것이 작가의 가장 어려운 문제다. 갤러리도 작가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기도 한다. 이럴 때 터놓고 대화한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이=한 원로 작가에게서 작가와 컬렉터, 갤러리스트의 관계는 동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젊은 작가가 컬렉터와 갤러리스트를 두려워하지 말고, 자존감을 갖고 대화했으면 좋겠다.양평=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엄마의 신전엔 종교의 구별이 없다. 부처 예수 마리아 때로는 무속신이 번갈아 자리를 지킨다. 누군가는 그녀의 ‘기복’을 비과학적이라 매도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회와 구조의 결함을 떠안은 누군가에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처절하고 단단한 몸부림이다.’ ‘젊은 시각 새로운 시선 2020―낯선 곳에 선’전이 열리는 부산 해운대구 부산시립미술관 3층 전시장 한 곳에 100개의 물그릇이 놓여 있다. 그릇 앞에는 화난 듯 강하게 그은 붓 터치가 눈에 띄는 ‘엄마의 신전’ 회화 연작이 걸렸다. 애틋하고 처절하며 때로는 ‘징글징글’한 엄마의 열망을 담은 문지영 작가(37)의 작품이다. 지난달 24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가족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시각 장애와 지적 장애를 가진 동생을 ‘고치기’ 위해 어릴 때부터 엄마와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녔다. 동생의 상태가 장애인 줄 모르고 해결책도 알지 못해 끊임없이 헤매고 다녔다. 결혼을 하고 나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 작가는 그것이 사회적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 마음을 되돌아보며 작가는 오래된 가족사진을 캔버스에 옮긴다. 어릴 때 법당에서 찍은 사진은 붉게 물들었다. 때로는 너무나 맹목적이어서 두려운 엄마의 염원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예술을 개념으로 접근한 사변적 작품이 한때 유행처럼 번졌다. 이런 가운데 작가가 몸으로 겪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조형 언어가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젊은 시각…’전은 신진 작가 발굴을 위해 부산시립미술관에서 1999년 3월 시작해 60여 명을 소개해 온 전시다. 이번 전시는 권하형 노수인 유민혜 하민지 한솔 작가를 함께 소개한다. 10월 4일까지.부산=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그렇게 해도 안 떨어질 겁니다.’ ‘강남 부동산 불패!’ 부동산 정책을 둘러싼 논쟁의 정점엔 서울 강남이 있다. 온갖 정쟁 속에서도 모두가 궁금한 것은 오직 하나,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강남 부동산 가치의 향방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전시를 열고 있는 팀 ‘강남버그’는 제3의 방향에서 강남을 분석한다. 건축가와 미술가, 기획자가 협업한 이 그룹은 그 결과물을 지난달 24일 개막한 ‘프로젝트 해시태그 2020’전에 선보이고 있다. 강남의 속살이 드러난 이곳에서 강남버그는 이렇게 묻는다. ‘정책이 부동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집값보다 더 근본적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사교육 1번지’의 천태만상영상 설치작품 ‘강남버스’는 반포 둔치를 시작으로 압구정동 대치동 구룡마을을 돌아 강남역에 도착한다. 배우 노래강사 워킹맘 등 가이드가 이야기를 들려준다. 분홍색 가이드북은 ‘강남어’를 소개한다. 화려한 겉모습 속 학벌사회의 민낯이 드러난다. ‘레테(레벨테스트) 돼지엄마(학원과 팀 수업을 결정하는 엄마) 참새아빠(부인, 자녀를 대치동에 유학 보낸 아빠) 과떠리 외떠리 민떠리(과학고, 외고, 민사고에 떨어져 일반고 다니는 학생)….’ 이런 관점의 배경에는 강남버그의 실제 경험이 있다. 멤버인 이정우 박재영(미술가) 김나연(기획자) 이경택(건축가)은 모두 ‘강남8학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스스로가 ‘강남의 버그(벌레)’라는 우스갯소리로 출발했다. “대기업 취직을 통해 사회 주류가 되길 바랐던 부모의 기대와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강남의 교육 시스템이 전혀 다른 결과 값을 낳은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가 버그라는 생각이 들었다.”(이경택) 버그들의 자조 섞인 냉소는 ‘천하제일뎃생대회’로 이어졌다. 사전 신청자들이 국립현대미술관 로비에서 주어진 시간에 석고상을 그리는 참여 이벤트였다. 행사의 이면엔 ‘대학에 가고 나니 아무 쓸모가 없던 입시교육’에 대한 풍자가 깔려 있다. “대치동에서 선릉역 일대 미술학원 거리는 홍대 입구와 함께 1980년대 초반부터 한국의 미대 입시를 담당했다. 그때는 석고 소묘가 필수였는데 대학에 가니 ‘이제 석고 소묘는 잊어라’고 했다. 그 뒤 입시에서 석고 소묘가 사라지는 걸 지켜봤다.”(박재영) 당시 미술교육이 예술의 본질보다는 ‘대학에 들어가는 기술’에 치중했다는 이야기다. 강남의 ‘상징’인 사교육도 얼마나 효용성이 있는지 따져 묻는다. 이때 ‘강남버스’에서는 연극배우가 가이드로 나선다. 잠실에 살지만 ‘뺑뺑이’로 압구정동 현대고를 졸업했다는 그는 말한다. “현대고 출신이라면 다들 제가 여유롭다고 착각해요. 그런데 저도 가끔 그걸 우쭐해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이런 생각이 들죠. 내가 지금 강남 출신을 연기하고 있나?”○ 깨어나지 못한 ‘마취 강남’‘강남버스’ 뒤편엔 건축 도면이 둘러싼 공간이 펼쳐진다. 도시건축의 시선에서 강남을 바라보는 설치작품 ‘마취 강남’이다. 강남 쏠림을 억제한다고 하는 부동산 정책이 강남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기듯 강남은 이미 정책들에 ‘무감각해졌다’고 진단한다. 이렇게 ‘깨어나지 못한 도시’ 강남을 의학용어로 해석한다. 1972년 서울 도심 고등학교의 강남 이전 발표와 이를 전후로 한 인구 분산 정책은 ‘이식(移植)’이라고 본다. 은마아파트의 재개발 움직임에 자극받은 ‘우성-선경-미도 아파트’(우선미) 조합은 ‘유착’이다. 1980년대 강남의 유일한 대형 호텔이던 르네상스호텔의 철거는 ‘절제’다. 이런 끊임없는 증상과 시술의 후유증으로 등장한 것이 구룡마을이다. 전시장 벽면에는 없어졌거나 실현되지 못한 강남의 건축물 도면이 걸려 있다. 단기적 시야에 국한된 개발, 맹목적 사교육, 그 가운데 밀려난 인간적 가치와 본질을 이들은 결국 버그라고 본다. 버그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시스템의 오류를 파악할 수 있는 시그널이라는 것이다. 버그의 수정에 미래가 있다고 강남버그는 제안한다. “권력이나 힘에 의해 억지로 개발된 지역, 유흥과 부동산의 도시. 이런 과거 이야기보다 현재의 강남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이야기하고 싶다. 강남은 그 지역만이 아닌 한국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시는 9월 30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라인홀트 메스너는 네팔의 한 사무실에서 뜻밖의 소식을 듣는다. 일본의 유명 산악인 우에무라 나오미가 1980∼1981년 겨울 에베레스트 단독 등정 허가를 받았다는 얘기였다. 1978년 낭가파르바트 단독 등정 기록을 세운 메스너는 ‘에베레스트도 충분히 혼자 가능하다’고 내심 생각하면서 다만 구체적 실행 시기를 1980년대 중반으로 미뤄둔 터였다. 우에무라보다 앞서 ‘세계 최초’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그는 폭설과 산사태, 따가운 햇살이 번갈아 괴롭히는 몬순 시기에 등반할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1980년 여름, 티베트의 북쪽 새로운 루트를 통한 에베레스트 단독 등반 허가를 따낸다. 이 책은 이후 이어지는 극한의 여정을 담고 있다. 메스너는 이탈리아 남티롤 출신으로 1986년 히말라야 8000m급 봉우리 14좌를 완등한 인류 최초의 산악인이 된다. 그를 세상에 알린 것은 1978년 페터 하벨러와 함께한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정’이었다. 당시 산소 공급 장치 없이는 7500m 이상에서 생존이 힘들다는 주위의 경고에도 한계에 도전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후 다시 찾은 에베레스트 북동벽 아래 베이스캠프. 산소도, 동료도 없이 오직 18kg 배낭과 자신뿐이다. 산을 홀로 마주한 메스너의 기록은 위대함이나 희열보다는 외로움과 불확실함, 그리고 고통으로 가득하다. “물밀 듯 밀려오는 두려움의 흐름을 막았을 때에만 출발할 수 있다” “잡념을 놓아버리고 평온한 마음을 갖는 동시에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행동하는 것이 예술” 등 솔직하고 실감나는 서술이 돋보인다. 마침내 세계 최초 에베레스트 무산소 단독 등정이라는 기록을 세운 메스너는 이렇게 회고했다. “진정한 등산의 예술은 정복보다는 절절한 외로움 끝에 일상으로 돌아와 느끼는 ‘살아 있음’의 고마움이다. 진정한 도전은 불확실함의 끝까지, 존재의 한계까지, 몸의 힘이 닿는 데까지 고통을 견디며 나아가는 것에 있을 뿐이다. … 에베레스트 정상은 한계를 이겨낸 사람에게 그 진정한 속내를 열어 보인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이 작품은 1992년 미국 LA폭동을 기억하기 위해 작년부터 LA 코리아타운에 그리려던 것이다. 그런데 몇 주 전 이걸 한국에서라도 당장 그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7일 개관한 부산 해운대 영무파라드호텔에 그래피티 작가 로열독(32·심찬양)의 작품 ‘Walk in your shoe 2020’이 등장했다. 호텔 12~15층 사이 보이드(비운) 공간의 복도 벽 11m를 차지한 작품이다. 로열독은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 운동에 빗대 “나는 너의 입장에 서겠다. 당신의 삶이 내게 중요하다(Your lives matter to me)”고 작품을 설명했다. ‘예술 호텔’을 표방하는 이 호텔에는 보이드 공간이 3곳 있다. 한국 1세대 그래피티 작가인 제이플로우의 ‘부산산책’은 8~11층에, 구현주 작가의 ‘부산 풍경’은 4~7층에 자리 잡았다. 꼭대기층 레스토랑에는 에바 알머슨의 대형 회화도 걸렸다. 부산지역 작가들 작품도 객실마다 자리했다. 박헌택 대표는 “일상에서 친근하게 예술을 접하도록 해 저변을 확대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하 2층에서는 앤디 워홀, 키스 해링, 케니 샤프 등의 작품을 선보이는 소규모 전시 ‘피카프로젝트-깔롱 드 팝아트’전과 과일에서 영감을 얻은 체험형 전시 ‘푸룻푸룻아일랜드’도 열린다. 각각 10월 31일, 내년 2월까지.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86년 조선과 수교를 맺은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은 도자기 두 세트를 선물한다. 세브르 도자제작소에서 만든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과 ‘클로디옹병’이다.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리는 ‘신(新)왕실도자’전에서 이 프랑스 도자기가 최초로 공개된다. 그런데 전시장에는 살라미나병만 자리하고 있고, 클로디옹병 한 쌍은 찾을 수 없다. 소장품에 없어 분실된 줄로만 알았던 클로디옹병은 최근 엉뚱하게도 일본 도쿄 프린스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이 도자기가 일본에 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클로디옹병은 깊고 신비로운 코발트색과 붓 자국이 아지랑이처럼 남아있는 명품이다. 금속 산화물 대다수가 1000도에서 분해되기에 푸른색을 내려면 최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클로디옹병의 푸른색을 ‘세브르 블루’라고도 부른다. 손잡이와 외곽에는 금테두리가 둘러져 있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를 선보이는 ‘신(新)왕실도자’전을 준비하던 국립고궁박물관 학예팀은 클로디옹병의 소재를 사진으로 추적했다. 1918년 촬영한 대한제국 황실 가족사진에서 모습을 확인했다. 그런데 1950년대에는 일본 도쿄 영친왕 저택 사진에서 클로디옹병이 발견됐다. 영친왕의 아카사카 저택이 1930년 완공되면서 석조전 가구 일부가 넘어갔는데, 이때 클로디옹병도 함께 간 것으로 학예팀은 추측하고 있다. 1955년 영친왕 저택은 세이부그룹 창업자 쓰쓰미 야스지로(1889∼1964)에게 매각됐다. 이후 세이부그룹 계열사인 프린스호텔로 활용되다가 2016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 프렌치 레스토랑 및 결혼식장으로 운영 중이다. 레스토랑이 영친왕 저택의 구조와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해 클로디옹병도 90년 넘게 그대로 남아있다는 후문이다. 곽희원 연구사는 “일본에서 클로디옹병을 직접 봤을 땐 소름이 돋았지만, 이내 도자기에 담긴 근대 조선 왕실의 슬픈 역사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프린스호텔 구관인 영친왕 저택은 철거 위기에도 놓였으나 호텔 측이 마음을 바꿔 다행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클로디옹병은 국내로 돌아올 수 있을까? 현재 사기업인 세이부그룹이 소유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후 일본 황족의 재산이 몰수될 때 황족 일원이었던 영친왕 저택도 부동산 업자에게 넘어갔다. 학예팀은 작품 대여 협의도 진행했지만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았다. 곽 연구사는 “우선은 해외 소재 문화재를 확인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1886년 조선과 수교를 맺은 사디 카르노 프랑스 대통령은 도자기 두 세트를 선물한다. 세브르 도자제작소에서 만든 ‘백자 채색 살라미나병’과 ‘클로디옹병’이다. 살라미나병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품으로 남았는데, 클로디옹병 한 쌍은 행방불명이었다. 분실된 줄 알았던 클로디옹병이 최근 엉뚱하게도 일본 도쿄 프린스호텔의 레스토랑에서 발견됐다. 고종이 선물 받은 도자기가 일본에 가게 된 사연은 무엇일까? 클로디옹병은 깊고 신비로운 코발트색과 붓 자국이 아지랑이처럼 남아있는 명품이다. 금속 산화물 대다수가 1000도에서 분해 되기에 푸른색을 내려면 최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그래서 클로디옹병의 푸른색을 ‘세브르 블루’라고도 부른다. 손잡이와 외곽에는 금테두리가 둘러져있다.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서양식 도자기를 선보이는 ‘신(新) 왕실도자전’을 준비하던 국립고궁박물관 학예팀은 클로디옹병의 소재를 사진으로 추적했다. 1918년에는 대한제국 황실 가족사진에서 모습이 확인했다. 그런데 1950년대에는 일본 도쿄 영친왕 저택 사진에서 클로디옹병이 발견됐다. 영친왕의 아카사카 저택이 1930년 완공되면서 석조전 가구 일부가 넘어갔는데, 이 때 클로디옹병도 함께 간 것으로 학예팀은 추측하고 있다. 1955년 영친왕 저택은 세이부그룹 창업자 스스미 야스지로(1889~1964)에게 매각됐다. 이후 세이부그룹 계열사인 프린스호텔로 활용되다, 2016년 리노베이션을 거쳐 현재 프렌치 레스토랑 및 결혼식장으로 운영 중이다. 레스토랑이 영친왕 저택의 구조와 인테리어를 그대로 활용해, 클로디옹병도 90년 넘게 그대로 남아있다는 후문이다. 곽희원 연구사는 “일본에서 클로디옹병을 직접 봤을 땐 소름이 돋았지만, 이내 도자기에 담긴 근대 조선 왕실의 슬픈 역사가 떠올라 마음이 아팠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프린스호텔 구관인 영친왕 저택은 철거 위기에도 놓였으나, 호텔 측이 마음을 바꿔 다행히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 클로디옹병은 국내로 돌아올 수 있을까? 현재 사기업인 세이부그룹이 소유해 불투명한 상황이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 후 일본 황족의 재산이 몰수될 때 황족 일원이었던 영친왕 저택도 부동산 업자에게 넘어갔다. 학예팀은 작품 대여 협의도 진행했지만 코로나19로 여의치 않았다. 곽 연구사는 “우선은 해외 소재 문화재를 확인한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말했다. 29일부터 10월 4일까지.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20년에 걸쳐 19권으로 집필된 대작 ‘세계인문지리’의 출발점이 된 책이다. 저자는 1871년 파리코뮌 운동에 참여했다 추방당한 뒤 스위스 산골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슬펐다, 살아가는 일에 지쳐버렸다”로 시작하는 책은 점차 산의 곳곳을 걸어보고 바라보며 익숙해지는 명상록으로 변한다. 산이나 바위가 형성되는 과정을 과학적으로 설명도 한다. 이야기들은 사회에서 유배당한 저자의 개인적 감정과 얽혀 부드럽게 읽힌다. 자연을 바탕으로 인간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법을 제시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와추셋 산행’과 함께 산을 다룬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제임스 조이스도 르클뤼의 저서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저자는 지정학, 역사지리학은 물론이고 생태학 이론과 생태운동에도 영향을 미쳤다. 19세기에 채식주의를 실천하고 ‘자유 동거’와 ‘여성 참정권’등 페미니즘 사상에서도 선구적 주장을 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