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모

유원모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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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법조팀 유원모 기자입니다. 잘 듣고 잘 쓰겠습니다.

onemore@donga.com

취재분야

2026-01-09~2026-02-08
검찰-법원판결60%
사회일반17%
사법10%
정치일반7%
사건·범죄6%
  • [책의 향기]1000년의 세월 되살리는 ‘한국의 인디아나존스들’

    통일신라시대 왕실의 연회 장소였던 경북 경주시의 동궁과 월지(안압지). 1970년대 첫 삽을 뜬 후 현재까지도 발굴 조사가 진행 중이다. 2014년 이곳에서 깊이가 7m에 이르는 통일신라 때의 우물이 발견됐다. 문제는 폭이 1.2∼1.4m에 불과했다. 체구가 작은 여성이어야 겨우 내부 조사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이때 발굴단원이던 장은혜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로프로 몸을 감고 깜깜한 우물에 홀로 들어갔다. 1000년의 세월을 견딘 문화유산이 빛을 보게 된 순간이다. 이 책은 집요하면서도 역동적인 문화재 발굴 현장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동아일보 기자인 저자는 문화재 담당으로 활동할 당시 취재한 경험을 살려 국내외 주요 유적지 20곳에서 활약한 고고학자 24명의 이야기를 되살려냈다. 박물관 속 빛나는 유물들은 원래부터 아름답다고 여겨지기 십상이다. 그러나 흙 속의 진주 찾기처럼 한 땀 한 땀 흘려내는 고고학자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세공돼야만 그 진가가 드러날 수 있다고 책은 강조한다. 2009년 전북 익산시 미륵사지 석탑의 보수정비 과정에서 1370년 만에 발견된 황금빛의 사리장엄구를 보자. 당시 연구진은 지름 1mm의 미세한 금 구슬을 핀셋 대신 양면 접착테이프를 붙인 막대기로 건져 올렸고, 섬유류는 대나무 칼로 조심스럽게 떼어내는 등 꼬박 이틀 밤낮을 지새운 끝에 유물을 수습할 수 있었다. 기존 역사 해석을 뒤집는 발굴 현장의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절로 쾌감이 느껴진다. 1978년 경기 연천군 전곡리에서 아슐리안 주먹도끼가 발견되면서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만 이 도끼가 존재한다는 기존의 ‘모비우스의 학설’을 무너뜨렸다. 1976년 경기 여주시 흔암리 발굴지에서 발견된 기원전 10세기 탄화미는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전파됐다는 일본의 학설을 뒤집는 쾌거였다. 빛나는 업적뿐 아니라 속도와 성과를 중시하는 한국 사회 분위기에 휩쓸려 아쉬운 결과를 낳은 발굴 현장도 균형 있게 소개한다. 또 통설과 대립되는 학설도 함께 다뤄 읽는 깊이를 더한다. 영화 인디아나존스의 무대를 한반도로 옮겨 놓은 듯한 흥미로움을 선사하는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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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총 길이 34m의 종이… 그 위에서 춤추는 3024자의 한자

    길이만 34m에 이르는 종이에 빼곡히 글씨가 적혀 있다. 기계적인 맞춤도, 어색한 비대칭도 아닌 춤추는 듯한 리듬감이 3024자의 글자에서 흘러나온다. 한 글자씩 자세히 보면 칼처럼 날카롭다가도, 멀리서 전체를 보면 궁극의 예술혼이 주는 압도감에 숙연해진다. 21일 찾은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박물관의 한쪽 벽면에 걸린 서예 작품은 단번에 시선을 붙들었다. 한국 근현대 서예가를 대표하는 검여(劍如) 유희강(1911∼1976·사진)이 쓴 ‘관서악부(關西樂府)’의 전체 작품이 처음으로 전시된 것이다. 성균관대박물관은 “추사 이후 한국 최고의 명필이라고 평가받는 검여의 작품 100여 점을 공개하는 특별전 ‘검무(劍舞)’를 31일부터 진행한다”고 밝혔다. 성대박물관은 관서악부를 상설 전시하는 ‘관서악부실’도 공개한다. 검여의 유족은 최근 성균관대박물관에 검여의 작품 400여 점과 습작 600여 점, 벼루, 붓, 종이 등 관련 유물 1000여 점을 기증했다. 장남 유환규 씨(82)는 “가내 소장보다는 학계에서 연구하고, 시민들이 즐기는 게 아버지의 뜻이라고 생각해 아무 조건 없이 기증했다”고 말했다.○ 글과 그림의 일체 이룬 예술 검여의 글씨에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한 그의 여정이 담겨 있다. 일제강점기였던 1937년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 전신)를 졸업한 그는 중국 베이징으로 유학을 떠나 1946년까지 머물며 서화와 금석화, 서양화를 배웠다. 이때의 경험은 회화성을 가미한 검여 서예의 바탕이 됐다. 1945년 해방 정국에서는 임시정부 산하 한국광복군 주호지대장의 비서로 근무하며 임정 요원들의 환국에 앞장서기도 했다. 광복 후 귀향한 그는 본격적인 서예가로서 활동한다. 당시 그의 대표작은 ‘완당정게(阮堂靜偈)’다. 추사 김정희가 초의선사에게 준 정게(부처의 가르침 찬미)를 새로운 형식으로 창조한 작품이다. 화선지의 한가운데에 ‘나무아미타불’이라는 큼지막한 여섯 글자를 써서 마치 불탑을 형상화한 모습을 표현했고, 주변에는 추사의 시를 자신만의 행서체로 꽉 채워놓았다. 김대식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실장은 “추사를 가장 흠모했던 검여는 열심히 따라가는 ‘법고(法古)’를 넘어 새로운 개성을 펼친 ‘창신(創新)’을 실현한 서예가”라고 설명했다. ○ 신체장애 극복한 예술 정신 1968년 9월 그의 인생에 가장 큰 시련이 다가온다. 뇌졸중이 발병해 실어증과 함께 오른쪽 반신이 마비된 것. “종이와 먹과 붓의 단판 승부”라고 표현될 만큼 서예는 손끝의 예민한 감각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오른손 마비는 서예가로서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불굴의 의지가 새롭게 붓을 쥐게 했다. 평생을 써 온 오른손이 아닌 왼손으로 글씨를 써 내려갔다. 쓰러진 지 10개월 만에 왼손으로 다시 서예를 시작한 그의 글씨를 보고 이경성 전 국립현대미술관장(1919∼2009)은 “검여의 좌수서(左手書)는 기교 없이 서예 본질의 추구만이 남아 더욱 격조가 높았다”고 평가했다. 검여는 1976년 4월부터 일생의 역작인 ‘관서악부’를 쓰기 시작한다. 관서악부는 1774년 신광수(1712∼1775)가 평양의 아름다운 풍경을 풀어낸 시다. 당시 서예계에서 중국의 명문을 쓰던 관행과 달리 우리나라 가사문학의 백미로 여겨지는 관서악부를 택한 점 역시 흥미롭다. 6개월간 작품에 매달린 그였지만 결국 그해 10월 발문의 일부는 완성하지 못한 채 운명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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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으로 만드는 예술 작품… 전국에 공예의 장 선다

    전통 공예와 이를 창의적으로 계승한 현대 공예 작품을 체험하고, 즐길 수 있는 국내 최대의 공예 축제 ‘공예주간’이 이번 주 전국 곳곳에서 열린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2019 공예주간(Craft Week 2019)’을 26일까지 전국 360여 개 공방과 화랑, 문화예술기관에서 동시에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2회를 맞는 공예주간은 지난해 수도권에서만 진행된 것과 달리 올해는 부산, 광주, 창원, 청주, 강릉 등 전국으로 범위를 넓혀 전시, 체험, 판매, 강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서울에서는 공예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기획전시가 눈길을 끈다.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에서 26일까지 열리는 ‘공예×컬렉션: 아름답거나+쓸모있거나’는 생산자 입장에서 벗어나 쓰임과 향유의 경험을 중시하는 사용자 입장에서 공예를 조명한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과 한복려 궁중음식문화재단 이사장(국가무형문화재 제38호),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등 공예품 애호가 26명의 특별 소장품을 감상하고, 영상 인터뷰를 볼 수 있다.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는 젊은 공예작가와 평론가, 인문학자들이 모여 목공예, 차와 다기, 백자, 공예와 패션의 융합 등 전통 공예를 현대화하는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행사 기간 동안 오후 7시부터 자정까지 팝업 술집을 운영해 공예작가들이 만든 술잔을 들고, 작가들과 대화할 수 있는 자리도 마련했다. 실생활에 필요한 공예품을 구입할 수 있는 직거래장터 ‘마켓유랑’이 25, 26일 부산 수영구 복합문화공간 F1963에서 열린다. 전통천연염색법을 계승하고 있는 전남 나주시에서는 한국천연염색박물관 등지에서 염색 체험, 플리마켓 등을 진행한다. 젊은 도예인들이 합심해 만든 충남 공주시 계룡산도예촌에서는 세계 철화분청사기를 감상할 수 있는 전시와 저렴하게 도자기를 구매할 수 있는 장터를 즐길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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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덕수궁 안 돌담길, 오후 8시 30분까지 연장 개방

    문화재청은 21일부터 10월까지 덕수궁 내부 보행로(사진) 개방 시간을 오후 8시 30분까지 3시간 연장한다고 밝혔다. 덕수궁 내부 보행로는 지난해 10월부터 기존에 영국대사관이 점유하며 통행이 제한됐던 70m 구간을 연결하면서 시민들에게 돌아왔다. 문화재청은 덕수궁 돌담길 활성화를 위해 야간 조명 설치와 ‘돌담길 음악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할 예정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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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들의 나라’ 그리스 소장 보물 첫 한국展

    ‘신(神)들의 나라’ 그리스의 국보급 유물 수백 점이 처음으로 한국을 찾는다. 그리스 문화체육부가 국가 간 문화 교류의 일환으로 소개하는 특별전 ‘그리스 보물전, 아가멤논에서 알렉산드로스 대왕까지’가 다음 달 5일부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2층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그리스 전역의 24개 박물관에서 출품된 귀중한 유물 350여 점을 엄선했다. 그리스 박물관에서 소장한 유물이 한국에 오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그리스의 중흥기를 꽃피웠던 시기까지의 도자기, 금속조각, 장신구, 금과 은, 상아 등 다양한 소재로 구성됐다. 기원전 3000년경 그리스의 청동기 시대를 일컫는 ‘에게해 문명’ 관련 유물이 관람객을 가장 먼저 맞이한다. 에게해 문명은 크레타 섬, 키클라데스 제도, 그리스 본토 간의 문화 교류와 이 지역의 문명을 통칭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황소머리 술잔’은 크레타섬에서 꽃피운 미노스 문화의 종교의식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황소를 신성시한 미노스인들은 머리에 있는 두 개의 구멍을 통해 술을 흘려보내며 숭배의식을 펼쳤다고 한다. 당대 미노스인들의 의식주를 살펴볼 수 있는 ‘아크로티리의 소년 벽화’도 놓치면 아쉽다. 기원전 17세기∼기원전 12세기에 번성했던 미케네 문명. 미케네는 강력한 적수였던 도시국가 트로이를 두 번이나 물리쳤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군사 문화를 중시했던 역사답게 ‘아가멤논의 황금가면’, ‘사자와 싸우는 모습을 담은 금인장’ 등 강인한 모습을 형상화한 유물들이 주를 이룬다. 유랑시인 호메로스의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유물들도 흥미롭다. 호메로스의 두상과 함께 그가 쓴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올림포스 신들의 조각상을 선보인다. 또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올리브유를 담아 선물했다고 전해지는 암포라(흑화식 도자기)도 공개된다. 이 밖에도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이자 그리스 중흥기를 이근 필리포스 2세 때 제작된 화려한 금화관과 금귀걸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형상화한 조각상 등 관람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화려한 유물들이 가득하다. 전시는 9월 15일까지. 성인 1만5000원, 청소년 1만1000원.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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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읽기 능력 잃어가는 디지털 세대… 처방은 종이책

    책 제목처럼 독서를 권하는 책이다. 그러나 “책을 읽어야 좋은 것”이라는 뻔한 훈계조가 아니다. 뇌과학 분야의 최신 성과 중에서도 읽기와 관련된 연구 결과를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편지글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2009년 발간한 책 ‘책 읽는 뇌’를 통해 인류의 책 읽기 능력이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 오랜 진화 끝에 힘겹게 획득한 성취라고 주장하며 학계에 신선한 충격을 준 미국의 인지신경학자다. 특히 깊이 읽기를 통해 비판적 사고와 반성, 공감과 이해, 개인적 성찰이 가능해지면서 지금의 고도화된 문명을 이룩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저자의 주장에 간과해선 안 되는 맹점이 있다. 바로 읽기란 타고난 것이 아닌 학습과 숙달에 의한 성취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다시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상당한 지적 수준에 이른 독자라 해도 깊이 읽는 능력이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어렸을 적 감명 깊게 읽은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를 어느 날 다시 꺼내 들었지만 더 이상 길고 난해한 문장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디지털 읽기 방식에 익숙해져 깊이 읽기의 방법을 놓쳐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었다. 최근 10여 년간 전 세계가 디지털 문화로 변모해 갔다. 덩달아 읽기의 주된 대상 역시 인쇄물에서 스마트폰 등 디지털 매체로 바뀌었다. 이 책은 디지털 매체에 익숙해지면서 깊이 읽기의 방법을 잃어 버렸을 때 나타나는 폐해를 조목조목 짚어낸다. 이와 함께 깊이 읽기 능력을 회복한 자신의 노력을 소개하며 특히 청소년들에게 권해야 할 올바른 읽기 교육 방법에 대해서도 일러준다. 디지털 읽기의 가장 큰 위험성은 주의집중과 깊이 있는 사고를 앗아간다는 점이다.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정보산업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한 사람이 하루 동안 다양한 기기를 통해 소비하는 정보의 양은 약 34GB(기가바이트)에 이른다고 한다. 약 10만 개의 영어 단어에 육박하는 숫자다. 그러나 저자는 밀도가 떨어지는 이 같은 방식은 연속적이거나 집중적인 읽기가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기기를 통한 읽기가 인쇄물을 대하는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미국 새너제이대의 한 연구에 따르면 디지털 읽기에서는 ‘훑어보기’가 표준 방식이 된다. F자형 혹은 지그재그로 중요한 글자만 재빨리 훑어 맥락을 파악한 후 결론으로 직행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방법으로 신문이나 책을 읽으면 단어를 듬성듬성 건너뛰게 되고, 글에 담긴 논리적인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비판적 사고와 성찰의 능력을 전제로 하는 민주주의에 크나큰 위협이 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가짜뉴스의 범람과 이를 구별해내지 못하는 흐름 역시 저자의 주장과 맥이 닿아 있다. 그렇다면 디지털 기기를 버리고, 무조건 책을 들어야 할까. 저자는 양자택일의 관점이 아닌 신중한 균형의 길을 제시한다. 바로 양손잡이 읽기 뇌의 길이다. 필요한 정보를 쉽고, 빠르게 검색하는 디지털 특화 읽기 방식과 창의적 사고와 깊이 있는 사유를 가능케 할 인쇄물 기반 읽기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를 통해 매체마다 다른 읽는 속도와 리듬, 습관을 형성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기 없이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현재 우리들에게 제대로 읽는 법을 일러주는 귀한 참고서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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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이드&인사이트]“불완전이 더 낫다”… 복원된 미륵사지 석탑의 역설

    “6층까지만 복원된 지금의 모습을 보고 ‘이게 정말 다 수리가 된 게 맞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아요. 그럴 때마다 자신 있게 말씀드립니다. 복원 가능한 최대의 범위에서 ‘진정성’을 확보했다고 말이죠.”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10일 열린 ‘미륵사지 석탑 보수정비 20년-문화재 수리의 현황과 과제’ 학술대회장에서 만난 김현용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43)는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인생의 절반가량인 20년을 오롯이 익산 미륵사지 석탑(국보 제11호) 복원에 매달린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대학교 4학년 때 아르바이트생으로 미륵사지와 인연을 맺은 후 2001년 미륵사지 석탑의 해체가 시작되자 건축조사보조원으로 일했고, 2007년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로 임용되면서 복원 과정을 총괄하는 책임자가 됐다. 미륵사지 석탑 복원의 국내 최고 전문가에게 이 같은 질문이 쏟아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지난달 30일 새로 준공된 미륵사지 석탑(서탑)은 9층으로 추정되는 완전한 모습이 아닌 한쪽이 붕괴된 모습을 그대로 놔둔 6층까지만 복원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고(最古)이자 최대(最大) 석탑이면서 20년이라는 단일 문화재 역사상 가장 오랜 시간을 투입한 미륵사지 석탑은 왜 이런 모습으로 우리 앞에 다시 섰을까.○ 달라진 문화재 복원, 동탑과 서탑의 비대칭 “성덕왕 18년(719년) 9월 미륵사에 진(震·벼락 또는 지진)이 있었다.”(삼국사기·三國史記) “미륵사가 동방 석탑 중 최고라는 이름은 헛소리가 아니다. 100년 전에 벼락이 떨어져 그 절반이 허물어졌다.”(와유록·臥遊錄·1756년) 각종 기록처럼 미륵사지 석탑은 백제 무왕 때인 639년 지어진 후 1300여 년의 세월을 견디면서 제 모습을 상당 부분 잃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가장 오래된 모습은 1910년 12월 일본인 조사단이 촬영한 사진이다. 당시에도 이미 동탑은 자취를 잃었고, 서탑은 6층까지만 남은 채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한 모습이었다. 일제는 1915년 콘크리트 185t을 투입해 붕괴된 석탑의 벽면을 응급 보수했다. 하지만 8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콘크리트로 뒤엉킨 석탑은 흉물이 돼버렸다. 결국 1999년 문화재위원회는 전격적으로 석탑의 해체 후 보수정비를 결정했다. 문제는 석탑의 원형을 어떻게 설정할지였다. 창건 당시 미륵사지 석탑의 모습을 알려주는 문헌이나 그림 등 기록이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계 일부에서는 1993년 복원된 미륵사지 동탑처럼 9층으로 쌓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그러나 동탑은 20세기 한국 문화재 복원 역사상 최악의 사례로 꼽힐 만큼 실패작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동탑의 원형을 추정할 기록이 없으니 서탑의 형상을 본떠 만들었고, 기계로 석재를 가공해 문화재가 주는 특유의 색감도 살리질 못했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켜 버리면 좋겠다는 사람도 있다”고 말할 정도였다. 결국 2011년 문화재청은 국제학술대회와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익산 미륵사지 보수정비 기본원칙’을 세운다. 총 4가지로 △추론에 의한 복원을 지양하고, 남아있던 6층까지만 보수해 진정성을 확보한다 △원형을 보존하기 위해 훼손된 부재(部材·탑의 재료)는 과학적 방법으로 보강해 최대한 재사용한다 △전통기법만으로 원형 유지가 어려운 경우에는 최소한으로 현대적 기술을 적용한다 △조사, 연구, 시공 등 모든 과정을 상세하게 기록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미륵사지 석탑은 다소 불완전해 보이는 6층의 형태로 돌아왔다. 김 학예연구사는 “30년 가까운 시차를 두고, 나란히 서 있는 미륵사지 서탑과 동탑의 비대칭적인 모습은 한국 문화재 수리 역사와 가치관의 변화를 설명하는 가장 극명한 사례”라며 “미륵사지 석탑 복원은 추론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멈춰야 한다는 문화재 보존의 보편적 이념을 충실히 구현했다”고 말했다. ○ 원형을 둘러싼 감사원과 문화재청의 시각차 하지만 준공을 앞두고 새로운 논란이 불거졌다. 올해 3월 감사원이 “미륵사지 석탑의 재료와 공법이 원형과 다르게 복원됐다”는 감사 발표를 한 것. 감사원의 지적 사항은 크게 2가지다. 돌 사이의 틈을 메우는 충전재로 성능이 우수한 실리카퓸 배합제를 사용한다는 계획에서 충분한 검토 없이 황토 배합제로 바꾸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 석탑 내부의 중심 기둥인 적심(積心)을 모두 새로운 석재로 쌓겠다는 계획과 달리 1, 2층에만 이를 적용하고 3층 이상에서는 옛 부재를 활용해 안정성과 일관성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김 학예연구사는 “충전재로 사용하려 했던 실리카퓸의 색깔이 시멘트와 매우 유사해 과거 흉물로 느끼게 한 것과 비슷한 모습이 나올 것으로 우려됐다”며 “천연 재료인 황토 배합제를 사용해도 충분히 안정성에 문제가 없다는 실험 결과를 확보했고, 2016년부터 진행한 모니터링에서도 안전하다는 평가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적심에 옛 부재를 활용한 점 역시 하중이 가장 몰리는 1, 2층에는 내구성이 강한 새로운 돌을 사용한 후 3층 이상부터는 역사적 가치를 고려해 기존 석재를 최대한 보강해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미륵사지 석탑은 옛 부재 재사용률을 81%까지 끌어올렸다. 불가피하게 새로운 돌을 쓸 때에도 옛 부재와 성분이 가장 유사한 전북 익산의 화강암인 황등석을 사용했다. 석탑 전체로 봤을 때 옛 부재와 새 부재의 비율은 각각 65%와 35%다. 문화재계에서는 감사원의 감사 발표가 문화재 복원을 가로막는 형식 우선, 행정편의주의의 대표적인 예라고 지적한다. 이왕기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위원장은 “애초 계획보다도 옛 부재를 더 많이 사용하고, 전통 재료를 구현하려 한 노력을 두고 계획서와 다르니 원형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라며 “문화재 가치와 중요성은 무시한 채 단순히 건물을 고치고 짓는 것처럼 일괄적인 표준시방서와 셈법을 강요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 무조건적인 원형 집착에서 벗어날 때 문화재 복원은 무조건 옛것을 좇을 수도, 그렇다고 현재의 기술만을 반영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일정 부분의 원칙은 있다. 바로 사회적 합의다. 대표적으로 경복궁을 보자. 1990년대부터 본격적인 경복궁 복원 계획이 발표되면서 원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논란이 불거졌다. 1395년 태조 이성계가 창건한 경복궁이 원형이라는 주장과 1865년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중건된 경복궁이 기준이 돼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결국 문화재청은 19세기의 경복궁을 원형으로 택했다. 태조 때의 경복궁은 건물 높이가 낮아 현실적으로 기준으로 삼기에 어려웠고, 고종 때의 건축 기록이 더 풍부했기 때문이다. 전봉희 한국건축역사학회장(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은 “문화재 중에서도 특히 건축문화재는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게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며 “문화재 복원 역시 하나의 역사적 결과물이기 때문에 정답을 좇기보단 당대 사회가 도출할 수 있는 최대 범위에서 합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달 15일 화재로 지붕과 첨탑이 무너져 내린 노트르담 대성당의 복원에서 현대적 건축양식을 도입하는 데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후 노트르담 대성당 복원 방식으로 지붕 전체를 스테인드글라스로 덮거나 탄소섬유 재질로 불꽃을 형상화하는 등 창의적인 설계안이 쏟아져 나왔다. 처음 지어진 12세기가 원형인지 첨탑이 세워진 18세기가 기준인지로 다투는 모습은 오히려 찾기 어렵다. 이른바 문화 선진국으로 불리는 프랑스의 현 모습이다. 수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에게는 지금도 보수정비를 기다리는 문화재가 가득하다. 이들 역시 원형을 찾기 위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하다. 다만 이제는 한 가지 단서를 더 붙여도 되지 않을까. 2019년 우리의 모습을 얼마나 반영할 수 있는지 말이다. 원형에 대한 애착도 좋지만 문화재 복원을 바라보는 자신감 있는 시선이 이제는 필요한 때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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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분노에 찬 수형자는 시한폭탄… 복귀 프로그램 실효성 키워야”

    큼지막한 십자가가 걸린 커다란 강단 앞에 법복을 입은 스님이 섰다. 이곳은 국내 대표적인 기독교 대학인 숭실대의 한경직 목사 기념관. 2007년 숭실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배임호 교수의 ‘교정복지론’ 수업이 열렸던 곳으로, 매주 이색적인 강사들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사형수의 대부로 불리는 박삼중 스님과 가톨릭 신자이자 수많은 범죄자를 직접 감옥에 넣었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다. 기독교 대학에서 맺어진 독특한 스승과 제자들은 10여 년간 스승의 날이면 사제 모임을 가졌다.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14일 만난 박삼중 스님, 송 전 총장, 배 교수는 “스승에는 종교도, 위치도, 나이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인연 한가운데는 사형수였던 A 씨가 있다. 20대에 한순간의 오판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모범적인 복무 생활을 거치고 난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8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교정복지 사례 연구를 하던 배 교수는 “이론에 치우친 교정복지 수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형수 출신 A 씨를 강사로 초빙했다. 이어 사형수의 교정에 가장 헌신하는 박삼중 스님과 법조인으로 교정 현장을 지켜본 송 전 총장까지 모셔오면서 전무후무한 교정복지 강의가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박삼중 스님은 자신이 늘 몸에 지니고 있는 염주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교정과 스승의 의미를 알려줬다. 스님은 “염주 2개를 항상 차고 다니는데 이 중에 하나는 1989년 사형을 당한 고금석이 준 염주”라며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사람 4명을 죽인 그는 감옥에 들어오기 전 짐승과도 같은 삶을 살았지만 감옥에서 보낸 3년만큼은 부처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치금을 모두 불우한 재소자 가족에게 나눠주고, 모기로 들끓는 감옥 안에서 웃통을 일부러 벗고 피를 뜯어가라고 하기도 했다”며 “신분은 비록 사형수였지만 지금도 내게는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송 전 총장은 30년 넘게 수사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단죄하며 살아왔다. 그가 사형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사형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2과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박삼중 스님을 만나면서부터다. 송 전 총장은 “당시만 하더라도 1년에 8, 9명씩 사형 집행이 이뤄지던 때였는데 스님이 찾아와 사형수들의 안타까운 가족사 등을 알려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며 “사제 모임을 함께하는 제자들이 교정복지 전문가로 성장할 때마다 뿌듯함과 즐거움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강력히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열악한 교도소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소식에는 “범죄자에게 무슨 인권이 있냐”며 힐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송 전 총장은 “국민의 법감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고,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처벌이 실제로 범죄 예방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범률을 낮추기 위해서는 수형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세밀한 교정행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삼중 스님은 “결국 사회로 돌아올 수형자들에게 분노만 키우게 한다면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을 늘리는 꼴”이라며 “범죄자를 만드는 배경에는 사람의 본성보다 사회의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수형자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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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주 황복사터서 쌍탑 추정 목탑터 발견

    경북 경주시 황복사(皇福寺)지에서 쌍탑으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목탑 터와 신라 시대 유물 700여 점이 한꺼번에 발견됐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12월부터 경주 낭산 일원(사적 제163호)에서 매장문화재 조사기관인 성림문화재연구원이 진행한 발굴조사 결과 황복사지에서 한 변이 6m인 정사각형 목탑 터 2개를 발견했다고 15일 밝혔다. 이번 조사 결과 사찰 중심 건물인 금당(金堂)과 탑 2개, 중문(中門)이 남북 방향으로 배치된 것으로 확인됐다. 사찰을 처음 조성한 시기는 단각고배(短脚高杯·짧은다리굽다리접시), 연꽃무늬 수막새 등 출토 유물로 봤을 때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사이로 보인다고 연구원은 설명했다. 황복사지에서 목탑 터가 실제로 쌍탑으로 판명난다면 신라가 지은 첫 쌍탑식 사찰이 된다. 이전까지 신라가 지은 최초의 쌍탑식 사찰은 679년에 창건한 경주 사천왕사(四天王寺)로 알려져 있었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목탑 터 규모가 작고 주변에 비를 세운 건물인 비각이 있으며 중문 터와 가깝다는 점으로 미뤄 종묘와 관련된 제단으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있어 학계의 추가 검증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사찰 내 십이지신상 건물 터에서는 소·쥐·돼지·개 조각상이 확인됐다. 유물은 금동입불상, 금동판불, 비석 조각, 장식 기와인 치미, 녹색 유약을 바른 벽돌인 녹유전 등 700여 점이 나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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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독교 대학 강단에 선 스님과 가톨릭 신자 검찰총장의 ‘묘한 인연’

    큼지막한 십자가가 커다란 강단 앞에 법복을 입은 스님이 섰다. 이곳은 국내 대표적인 기독교 대학인 숭실대의 한경직 목사 기념관. 2007년 숭실대 대학원 사회복지학과 배임호 교수의 ‘교정복지론’ 수업이 열렸던 곳으로, 매주 이색적인 강사들이 등장했다. 주인공은 사형수의 대부로 불리는 박삼중 스님과 가톨릭 신자이자 수많은 범죄자를 직접 감옥에 넣었던 송광수 전 검찰총장이다. 기독교 대학에서 맺어진 독특한 스승과 제자들은 10여 년간 스승의 날이면 사제모임을 가졌다. 서울 종로구 청계광장에서 14일 만난 박삼중 스님, 송 전 총장, 배 교수는 “스승에는 종교도, 위치도, 나이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인연 한가운데는 사형수였던 A 씨가 있다. 20대에 한순간의 오판으로 다른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그는 사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모범적인 복무 생활을 거치고 난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고, 18년 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후 자유의 몸이 될 수 있었다. 교정복지 사례 연구를 하던 배 교수는 “이론에 치우친 교정복지 수업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사형수 출신 A 씨를 강사로 초빙했다. 이어 사형수의 교정에 가장 헌신하는 박삼중 스님과 법조인으로 교정 현장을 지켜본 송 전 총장까지 모셔오면서 전무후무한 교정복지 강의가 열리게 됐다”고 말했다. 박삼중 스님은 자신이 늘 몸에 지니고 있는 염주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교정과 스승의 의미를 알려줬다. 스님은 “염주 2개를 항상 차고 다니는데 이 중에 하나는 1989년 사형을 당한 고금석이 준 염주”라며 “조직폭력배의 일원으로 사람 4명을 죽인 그는 감옥에 들어오기 전 짐승과도 같은 삶을 살았지만 감옥에서 보낸 3년만큼은 부처나 다름없었다”고 말했다. 이어 “영치금을 모두 불우한 재소자 가족에게 나눠주고, 모기로 들끓는 감옥 안에서 웃통을 일부러 벗고 피를 뜯어가라고 하기도 했다”며 “신분은 비록 사형수였지만 지금도 내게는 인생의 스승과도 같은 인물”이라고 말했다. 송 전 총장은 30년 넘게 수사 현장에서 범죄자들을 단죄하며 살아왔다. 그가 사형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90년대 초 사형 집행을 담당하는 법무부 검찰2과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박삼중 스님을 만나면서부터다. 송 전 총장은 “당시만 하더라도 1년에 8, 9명씩 사형 집행이 이뤄지던 때였는데 스님이 찾아와 사형수들의 안타까운 가족사 등을 알려주면서 인연이 시작됐다”며 “사제모임을 함께 하는 제자들이 교정복지 전문가로 성장할 때마다 뿌듯함과 즐거움이 생긴다”고 말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강력히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열악한 교도소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소식에는 “범죄자에게 무슨 인권이 있냐”며 힐난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에 대해 송 전 총장은 “국민의 법감정을 존중할 필요가 있고, 단기적으로는 강력한 처벌이 실제로 범죄 예방에 도움을 준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재범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수형자들의 사회 복귀를 돕기 위한 세밀한 교정행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삼중 스님은 “결국 사회로 돌아올 수형자들에게 분노만 키우게 한다면 우리 사회의 시한폭탄을 늘리는 꼴”이라며 “범죄자를 만드는 배경에는 사람의 본성보다 사회의 환경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수형자들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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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화의 수도’ 인천… 공단 노동자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인천과 가장 잘 어울리는 수식어는 ‘최초’다. 개항 이후 신문물과 외국인이 들어온 첫 관문으로, 우리나라 근대화의 상징이었고 산업화 시기에는 젊은이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한 기회의 땅이었다. 개항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인천의 역사와 공단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 이색적인 전시가 열린다. 국립민속박물관이 ‘2019 인천 민속문화의 해’를 맞아 15일부터 ‘메이드 인 인천’ 특별전(사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박물관 연구팀이 2017년 진행한 ‘인천 공단과 노동자의 생활문화’ 학술조사를 토대로 인천지역의 유물과 영상 600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는 1부 ‘개항과 산업화’, 2부 ‘공단과 노동자’로 구성됐다. 1부에서는 19세기 말부터 제물포가 개항장으로 지정되면서 배로 수입된 물품을 의미하는 ‘박래품(舶來品)’ 등 신문물을 접한 인천의 모습을 볼 수 있다. 1917년 한국 최초의 성냥회사인 조선인촌회사에서 만든 성냥과 경인고속도로 개통 초청장, 중국음식점 배달가방, 축음기, 사진기 등 각종 근대 유물이 전시된다. 2부에서는 1960년대 이후 인천 공단 노동자들의 삶을 대변하는 ‘동일방직 작업복’, ‘용접바가지(마스크)’, ‘제미니자동차’ 등 유물과 관련 산업에 종사했던 22인의 인터뷰 영상을 만날 수 있다. 8월 18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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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전파와 교육을 담당했던 서원(書院)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확실시된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권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이코모스는 각국이 등재 신청한 유산을 조사한 후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 등 4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 결과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당사국에 전달하며 등재 권고를 받은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된다. 한국의 서원은 1543년 주세붕(1495∼1554)이 ‘백운동서원’이라는 명칭으로 건립한 조선의 첫 서원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다. 모두 2009년 이전에 사적으로 지정됐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코모스는 서원이 유교가 발달한 조선의 건축물로, 성리학을 사회적으로 전파하고 정형성을 갖춘 건축문화를 이룩했다는 점이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추가 이행 과제로 9개 서원에 대한 통합 보존 관리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문화재청은 “관련 지자체와 협의해 이코모스의 지적 사항을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서원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6월 30일 개막해 7월 10일까지 이어지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확정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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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서원 9곳,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유력

    조선시대 성리학의 전파와 교육을 담당했던 서원(書院)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확실시된다. 문화재청은 “세계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유네스코 산하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으로 등재 권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이코모스는 각국이 등재 신청한 유산을 조사한 후 등재 권고, 보류, 반려, 등재 불가등 4가지 권고안 중 하나를 선택한다. 이 결과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와 당사국에 전달하며 등재 권고를 받은 유산은 이변이 없는 한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된다. 한국의 서원은 1543년 주세붕(1495~1554)이 ‘백운동서원’이라는 명칭으로 건립한 조선의 첫 서원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다. 모두 2009년 이전에 사적으로 지정됐고,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코모스는 서원이 유교가 발달한 조선의 건축물로, 성리학을 사회적으로 전파시키고 정형성을 갖춘 건축문화를 이룩했다는 점이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충족시킨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추가 이행과제로 9개 서원에 대한 통합 보존 관리방안 마련을 권고했다. 문화재청은 “관련 지자체와 협의해 이코모스의 지적 사항을 개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서원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6월 30일 개막해 7월 10일까지 이어지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확정된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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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사치는 낭비’라던 명나라, 산업발전 기회 놓쳤다

    “손승우는 연회를 한 번 베풀면 생물 1000여 마리를 죽이고, 이덕유는 국을 한 번 끓이면 2만 냥을 썼으며 채경은 메추라기를 먹는데 하루에 1000개는 잡았다. 음식을 먹고자 하는 욕망으로 잔인하게 살생함이 이처럼 극에 달했도다.” 중국 명나라 때의 수필집 ‘오잡조(五雜俎)’에는 당대 부유층의 음식 사치를 이같이 기록하고 있다. 단지 음식에만 집착한 것은 아니었다. 명나라 중엽 이후 강남 지역을 중심으로 상업 경제가 크게 발전하면서 중국 대륙 전체가 소비사회로 변모해갔다. 특히 명나라 말기에는 가마, 가구, 복식, 여행 등에서 압도적인 규모의 사치문화가 등장했다. 저자는 중국 역사에서도 가장 화려하게 소비를 즐긴 명·청 교체기의 사회상을 되살린다. 사실 명나라는 조선이 본보기로 삼을 만큼 유교에 충실한 국가였다. 검소와 절제를 근간으로 하는 ‘예교(禮敎)’ 제도의 틀 아래에서 신분에 따라 의식주 양식 전반에 제한을 가할 정도였다. 점차 하급 사대부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한 상인들이 등장하면서 사회 분위기가 완전히 변하기 시작한다. 상인들은 자신들의 부를 뽐내기 위해 고관대작들만 타고 다니던 가마에 화려한 장식을 더해 길거리를 활보했고, 평민 사이에서조차 유행복을 따라 소비하는 문화가 팽배해졌다. 사대부는 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 학식을 자랑할 수 있는 서재용 가구를 사 모으는 등 신분을 초월해 ‘사치’가 명나라 말기를 설명하는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명 말의 사회상은 19세기 산업혁명 직전에 나타난 영국의 18세기 소비사회와 유사하다. 그러나 중국은 산업사회로 변모하지 못했다. 저자는 이미 상업시대로 접어든 영국은 사치를 ‘새로운 지식’으로 포용할 수 있었지만 농본사회였던 당대 중국은 재정 세수를 고려할 때 사치를 ‘낭비’라는 개념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고 분석한다. 이 같은 관념의 차이가 현재까지 두 대륙의 역사를 바꿔놓은 갈림길이었다는 것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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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무예 수련부터 문화유산 탐방까지…개성만점 한국의 사찰을 즐긴다

    한국의 사찰이 매력적인 이유는 1700년 넘는 전통을 이어온 불교문화유산과 자연 환경, 수행자들의 삶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어서다.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으로 전국의 주요 사찰 7곳이 등재된 것도 한국만의 살아있는 사찰 문화가 인정받았기 때문. 전통과 현대, 휴식과 체험을 조화롭게 경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는 한국의 사찰을 가장 잘 즐길 수 있는 방법이다. 템플스테이는 현재 전국 130여 개 사찰에서 운영할 만큼 인기가 많다. 주요 프로그램은 예불과 참선, 발우공양과 울력 등 사찰 일과를 체험하면서 자연에 대한 이해, 자신을 위한 위로와 명상을 돕도록 꾸려져 있다. 최근에는 문화유적 탐방, 연등 만들기 등 체험 프로그램과 정해진 일과 외에 자유롭게 시간을 즐길 수 있는 휴식 프로그램, 외국인을 위한 전용 프로그램까지 개성 넘치는 템플스테이가 가득하다. 12일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전국 주요 사찰의 특색 있는 템플스테이를 소개한다. △전등사=선사 시대 고인돌부터 단군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 대몽항쟁과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인 병인양요까지.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인 강화도에 위치한 전등사의 템플스테이는 다양한 문화유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전국 최초로 법당과 갤러리를 합친 무설전, 아름다운 노을을 보며 진행하는 일몰 포행(트레킹) 등 예술과 자연이 합쳐진 매력을 선사한다. △골굴사=6세기 신라의 불교문화 최전성기에 수도 경주에 세워진 사찰로, 국내 유일의 석굴사원이다. 골굴사는 ‘선무도(禪武道)’의 총본산이다. 스님들의 심신 수련법의 하나로, 신라·고려·조선 승병들의 호국정신의 맥을 이은 전통 무예다. 한국 불교와 전통 무예를 배우려는 외국인들이 알음알음으로 찾아오면서 1992년부터 자연스럽게 ‘사찰 숙박 체험’이 시작돼 우리나라 템플스테이의 효시로 여겨지는 곳이다. 승가 전통의 불교 수행법인 선무도는 골굴사 템플스테이에서만 체험해 볼 수 있다. △미황사=우리나라 육지 사찰 가운데 최남단에 위치한 미황사는 한 폭의 산수화 같은 달마산 자락에 위치한다. 1993년 첫 출간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첫머리에 남도 답사 일번지로 미황사를 소개할 만큼 빼어난 자연환경과 유서 깊은 역사를 자랑한다. 미황사 템플스테이는 산중에서 난 제철 재료로 정갈한 음식과 차를 마시며 마음의 진리를 찾는 ‘다도(茶道)’ 프로그램 등이 인기가 많다. △법주사=속리산의 품에 안긴 법주사는 지난해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가운데 한 곳으로 뽑힐 만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이다. 법주사의 품 안에는 1000년의 세월만큼 격조 높은 국보와 보물이 가득한데 팔상전(국보 제55호)과 세계에서 제일 큰 33m 금동미륵대불 등 경이로운 문화재가 눈앞에 펼쳐진다. 스님과의 일대일 인터뷰, 음악과 함께하는 역사 이야기, 트레킹 코스인 ‘녹음(綠陰)을 만끽하다’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가득하다. △백담사=내설악 깊은 오지에 자리 잡고 있어 조선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좀처럼 찾기 힘든 수행처였다. 덕분에 백담사 계곡을 찾아 시원하게 흘러가는 계곡의 맑은 물에 번뇌를 털어내고, 설악산에 걸친 푸른 구름을 벗 삼아 휴식과 비움을 실천하기에 알맞은 곳이다. 요가형 108배, 먹기 명상, 숲 명상, 돌탑 쌓기, 소금 만다라 등 다양한 명상·체험 프로그램으로 특히 인기가 높다. △금선사=도심 속에서 템플스테이를 찾는다면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 위치한 금선사가 안성맞춤이다. 북한산국립공원 비봉 코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세속의 세계를 벗어난 첫 번째 관문인 삼각산 금선사의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누리며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평일 휴식 프로그램과 스님들의 일과와 유사한 일정을 따라가며 북한산 공원의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솔 냄새를 즐길 수 있는 주말 체험 프로그램 등 직장인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이 다수 준비돼 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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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제 삼천궁녀 목숨 잃은 낙화암, 부소산 일대 아닌 백마강 옷바위”

    “부여성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있어 아래로 강물과 접해 있다. 전하기를 의자왕이 모든 후궁들과 함께 서로 이끌고 와 강에 투신해 죽었다. 이를 타사암(墮死巖)이라 한다.” 고려 후기에 간행된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낙화암의 전설이 이같이 기록돼 있다. 이후 수백 년간 백마강 유역의 부소산 낙화암은 빼어난 자연경관과 함께 전국적인 명승지로 인기를 얻고 있다. 하지만 바위의 꼭대기에 있는 백화정에서 백마강을 내다본 이들이라면 한 가지 의문을 갖게 된다. 과연 여기서 궁녀들이 빠질 수 있었을까? 최근 부여 지역의 설화와 지형을 분석해 낙화암의 본래 위치를 규명한 흥미로운 연구가 나왔다. 황인덕 충남대 교수가 학술지 백제연구에 실은 ‘부여 주정리 대왕포와 낙화암 전설―낙화암 전설 발단 지점 재고’ 논문이다. 황 교수는 7일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백제 무왕 때부터 의자왕 재위 시까지 수도인 부여에서 북대왕포(낙화암)와 함께 남대왕포로 불리며 가장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했던 현재 부여읍 중정리 옷바위 일대가 실제 낙화암의 무대”라고 말했다. 황 교수에 따르면 우선 현재의 낙화암은 지형적으로 설화의 주인공이 되기 힘들다. 높이가 30여 m에 이르지만 계단식 지형으로 인해 바위 정상에서 성인 남성이 있는 힘껏 돌을 던져야 겨우 물속에 빠뜨릴 수 있을 정도로 바닥면과 멀다. 투신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반면 옷바위의 경우에는 20여 m로 높이는 낮지만 암벽이 수직으로 바닥에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의 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왕포를 설명하면서 “부여현 치소로부터 남쪽으로 7리에 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현재의 옷바위 위치와 정확히 일치하는 부분이다. 부여 지역의 설화에는 “적군에게 쫓기다 궁녀만 피신해 옷바위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내용이 전해지는데 삼국유사에서 “의자왕과 궁녀들이 함께 죽었다”는 기록과는 다르다. 황 교수는 “삼국유사에는 백제의 패망을 부정적으로 묘사한 측면이 있는데 사실 의자왕은 패망 후 당나라의 낙양으로 끌려가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며 “당나라군을 피해 도망가던 당시 궁녀들의 긴박한 상황을 고려하면 도성의 끝자락에 위치하며 선착장 등을 갖추고 있던 옷바위가 낙화암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현재의 부소산 일대가 낙화암으로 비정된 배경에는 자연경관이 큰 몫을 했다는 게 황 교수의 분석이다. 현재 옷바위는 백제 때와는 달리 백마강의 유역 변화로 인해 강물이 말라 버렸다. 이로 인해 전설의 이야기에 대응할 만한 뛰어난 경관적 요소를 잃어버렸다. 황 교수는 “부소산 낙화암의 전설은 사실에 기반하기보다는 설화와 자연적 요소가 합쳐진 ‘관광전설’의 성격이 크다”며 “백제의 최후와 관련한 연구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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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몽골서 광복군 활동 이자해의 전기 등 3점, 문화재 등록 예고

    1930, 40년대 내몽골 지역에서 광복군으로 활동한 이자해(1894∼1967)가 남긴 전기 ‘이자해자전’이 문화재로 등록된다. 문화재청은 항일문화유산인 ‘이자해자전 초고본’과 ‘한국독립운동사략(상편)’, 1960년대 건축 양식을 간직한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을 등록문화재로 예고한다고 7일 밝혔다. 일제강점기 당시 의사로 활동한 이자해는 자신의 전기에서 내몽골 지역에 한인이 다수 거주한다는 내용과 이들이 일제 패망 후 한인회를 조직해 활동한 내용 등을 상세하게 남겼다. 한국광복군과 연계해 병력을 모집했다는 사실 등 베이징 이북 지역에서의 독립운동 역사를 새롭게 밝혀준다는 점에서 가치가 크다. 상하이 임시정부에서 활동한 김병조(1877∼1948)가 1921년 쓴 한국독립운동사략은 3·1운동의 배경, 각 지역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와 국내외 운동의 전개 상황 등을 소개한 역사책이다. 일제의 탄압 실태와 임시정부의 수립 및 통합 과정을 방대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정리해 3·1운동과 임정 연구의 기본 문헌으로 평가받는다. 구 이리농고 본관은 1963년 이리농림학교의 제2본관으로 조성한 붉은 벽돌 건물로, 출입구 상부 계단실과 현관부를 화강암으로 쌓은 것이 특징이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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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소 짓는 얼굴에 피어난 88가지 깨달음

    칠흑 같은 어둠의 공간을 지나 특별전시실 내부로 들어가면 고요한 불빛 아래 석상들이 인사를 건넨다. 누군가는 미소를, 어떤 이는 고뇌에 찬 표정으로 관람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지난달 29일 개막한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특별전 ‘영월 창령사터 오백나한―당신의 마음을 닮은 얼굴’ 전시장의 풍경이다. 아라한(阿羅漢)의 준말인 나한(羅漢·사진)은 석가모니 제자이자 깨달음을 얻은 불교 성자다. 강원 영월군 창령사터에서 나온 오백나한은 2001년 주민의 신고로 존재가 알려졌고, 이듬해까지 진행된 발굴조사에서 형태가 완전한 상 64점을 포함해 나한상과 보살상 317점을 찾았다. 이번 전시는 지난해 국립춘천박물관에서 진행된 특별전에서 소개된 나한상 88점을 서울로 모셔와 시민들에게 선보인다. 전시는 1부 ‘성속(聖俗)을 넘나드는 나한의 얼굴들’과 2부 ‘일상 속 성찰의 나한’으로 구성됐다. 1부 전시장에는 벽돌 바닥 위에 33개의 좌대를 세우고, 그 위에 32개의 나한상이 배치됐다.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 나한부터 수행자의 모습을 형상화한 나한까지 저마다의 표정에서 각기 다른 깨달음이 전해진다. 한 곳은 “당신 마음속의 나한을 보세요”라는 문구와 함께 빈 좌대로 남겨져 있다. 호기심에 좌대 위로 얼굴을 갖다 대면 자신의 얼굴이 비친다. 2부 전시장은 탑처럼 쌓아 올린 스피커 700여 개 사이사이에 나한상 29구가 파묻혀 있다. 현대예술가 김승영 설치작가와의 협업으로 꾸려진 이 공간은 번잡한 빌딩 숲에서 성찰하는 나한을 형상화했다. 도심의 소음과 물방울과 종소리를 결합한 독특한 배경음이 함께 울려 나와 오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시는 6월 13일까지. 2000∼3000원.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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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흉악범의 인권 빼앗으면 범죄 줄어들까

    #1. 정신병원장 A 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넘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는 최근 6개월간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운전자들에 의한 교통사고가 2배 이상 늘어나 이들에 대한 운전 교육을 강화해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2. 정부가 2030년까지 가칭 국가유전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다. 모든 신생아들의 유전정보를 채취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질병 원인 연구를 하고 범죄자를 식별하겠다는 구상이다. 가상의 상황을 염두에 둔 이 같은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 문항은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2015년 개발한 ‘인권 감수성 테스트’의 일부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요구에 응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정보 침해이므로 거부할 것인가. 이 테스트에는 4년여 동안 무려 6만 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이 설문에 참여했다. 약간의 재미와 정보를 위해 각자 얻은 점수에 해당하는 국가를 예시로 보여주는데 덴마크는 90점으로 가장 높다. 80점 이상∼90점 미만에는 독일 프랑스 일본, 70점 이상∼80점 미만에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속해 있다. 북한과 소말리아는 최하위로 나타난다. 객관적인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 인권지수는 상위권에 속한다. 시민 대부분이 인권 개념을 인식하고 있고, 인권 교육 역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 표현, 난민 문제, 갑질과 괴롭힘,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페미니즘 갈등 등을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의 인권 감수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각종 이슈에 숨겨져 있는 인권 코드를 끄집어낸다. 논쟁적인 주제의 찬반 입장을 소개하고, 서로의 주장에 담긴 이론적 배경과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정답보다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2010년 국내에 소개돼 인기를 끈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판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범죄자의 인권 문제를 보자. 성범죄자의 엽기적인 행각을 다룬 보도가 나오면 ‘화학적 거세’나 ‘징역 100년’이라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엄벌주의만으로는 범죄자의 재범률을 떨어뜨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의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를 ‘교육생’으로 부르며 사회 복귀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의 재수감 비율은 약 20%로 미국(67.5%), 영국(50%)에 비해 현격히 낮다.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미래의 범죄를 막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난해 예멘 출신 난민 561명이 제주도에 한꺼번에 들어오자 한국 사회 일부에서는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 인원 통계를 보면 내국인 평균이 3495명인 데 비해 외국인 평균은 1735명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독일 등 해외의 난민 범죄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이들의 인권 보호에 눈을 감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인권 사회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학술 용어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사례를 통해 풀어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학습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가 참고해야 할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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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혐오표현, 난민 문제, 갑질과 괴롭힘…우리의 ‘인권 감수성’은 몇 점?

    인권도 차별이 되나요?구정우 지음320쪽·1만5000원·북스톤 #1. 정신병원장 A 씨는 최근 경찰로부터 환자들의 진료 기록을 넘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이유는 최근 6개월간 정신질환 경력이 있는 운전자들에 의한 교통사고가 2배 이상 늘어나 이들에 대한 운전교육을 강화해 사고를 방지하겠다는 것이었다. #2. 정부가 2030년까지 가칭 국가유전정보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한다. 모든 신생아들의 유전정보를 채취해 국가 데이터베이스에 보관하겠다는 것. 이를 통해 질병원인 연구를 하고 범죄자를 식별하겠다는 구상이다. 가상의 상황을 염두해 둔 이 같은 질문에 당신은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 문항은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가 2015년 개발한 ‘인권감수성 테스트’의 일부다. 사회의 안전을 위해 국가의 요구에 응할 것인가? 아니면 개인정보 침해이므로 거부할 것인가? 이 테스트에는 4년여 간 무려 6만 명이 넘는 학생과 시민이 설문에 참여했다. 약간의 재미와 정보를 위해 각자 얻은 점수에 해당하는 국가를 예시로 보여주는데 덴마크는 90점으로 가장 높다. 80점 이상~90점 미만에는 독일 프랑스 일본, 70점 이상~80점 미만에는 우리나라와 미국이 속해 있다. 북한과 소말리아는 최하위로 나타난다. 객관적인 수치만 보면 우리나라 인권지수는 상위권에 속한다. 시민 대부분이 인권 개념을 인식하고 있고, 인권교육 역시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혐오표현, 난민 문제, 갑질과 괴롭힘, 양심적 병역거부 논란, 페미니즘 갈등 등을 보고 있으면 우리 사회의 인권감수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저자는 한국 사회의 각종 이슈에 숨겨져 있는 인권 코드를 끄집어낸다. 논쟁적인 주제의 찬반 입장을 소개하고, 서로의 주장에 담긴 이론적 배경과 해외 사례 등을 통해 사안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했다. 정답보다는 생각의 실마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2010년 국내에 소개돼 인기를 끈 ‘정의란 무엇인가’의 한국판 느낌을 주기도 한다. 범죄자의 인권 문제를 보자. 성범죄자의 엽기적인 행각을 다룬 보도가 나오면 ‘화학적 거세’나 ‘징역 100년’이라는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함께 나온다. 하지만 저자는 엄벌주의만으로는 범죄자의 재범률을 떨어뜨리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표적으로 노르웨이의 교도소에서는 재소자를 ‘교육생’으로 부르며 사회 복귀에 초점을 둔다고 한다. 이로 인해 노르웨이의 재수감 비율은 약 20%로 미국(67.5%), 영국(50%)에 비해 현격히 낮다. 인권을 보장함으로써 미래의 범죄를 막는 것이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지난해 예맨 출신 난민 561명이 제주도에 한꺼번에 들어오자 한국 사회의 일부에서는 ‘잠재적인 범죄자’라는 부정적인 시선으로 이들을 바라봤다. 하지만 2016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의 인구 10만 명당 범죄자 검거인원 통계를 보면 내국인 평균이 3495명인데 비해 외국인 평균은 1735명으로 절반에 불과했다. 독일 등 해외의 난민 범죄 사례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해 이들의 인권 보호에 눈을 감은 것은 아닌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인권 사회학’이라는 다소 어려운 주제를 학술 용어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비유와 사례를 통해 풀어낸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인권 문제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학습이 부족했던 한국 사회가 참고해야할 책이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

    • 2019-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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