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원모

유원모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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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 법조팀 유원모 기자입니다. 잘 듣고 잘 쓰겠습니다.

onemore@donga.com

취재분야

2026-05-24~2026-06-23
검찰-법원판결64%
사회일반23%
사법10%
정치일반3%
  • 조선 사신들 여정 빼곡히… “일기가 역사보다 생생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걱정거리 중 하나는 날로 부상하는 만주의 후금(청나라) 세력이었다. 랴오둥반도를 차지한 이들로 인해 명나라로 가기 위한 육로길이 막혀 버렸다. 이에 조선 조정에서는 1621년(광해군 13년) 사신들을 바닷길로 건네 보내는 ‘해로사행(海路使行)’을 개발한다. 이런 역사를 가장 잘 확인할 수 있는 기록은 광해군일기 등 왕실의 공식 사료가 아니라 당시 해로사행의 일원으로 참여했던 최응허(1572∼1636)의 ‘조천일기(朝天日記)’다. 한양에서부터 베이징에 도착해 평안도 안주로 되돌아올 때까지의 9개월 여정을 빼놓지 않고 기록했다. 조천일기는 지난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조사를 마치고 일반에 공개했다. 이처럼 개인일기는 당시를 보여주는 핵심적인 사료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독자를 대상으로 한 글이 아니기에 정형화돼 있지 않고, 행서(行書)와 초서(草書) 등이 섞여 있어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최근 5년간 전국에 흩어져 있는 조선시대 개인일기 1500여 편을 지역별로 모아 정리하는 학술사업을 펼쳤다. 28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는 이 같은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학술 심포지엄 ‘조선시대 개인일기의 가치와 활용’이 열린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일기의 사료적 가치와 문화재 지정 기준, 일기를 편력(編曆), 표해록, 상소일기 등 11종의 세부 기준으로 새롭게 정리한 연구 등을 공개한다. ‘조선시대 개인일기의 종류와 기록자 계층’의 논문을 공개하는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는 “최근 북한 학계에서 임꺽정의 활동을 다룬 조선시대의 일기를 발견하기도 했다”며 “일기의 사료적 가치를 높이기 위해 해제, 번역 등 기초 작업이 더 충실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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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청자 변천사 보여주는 가마터 문화재 지정

    고려시대 청자 문화 변천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전북 진안골 청자 가마터가 문화재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전북 진안군 ‘도통리 청자요지’(사진)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24일 밝혔다. 청자요지는 10∼11세기 청자의 초기 형태를 생산한 가마터 2기로 2013년부터 5년여간 진행한 발굴조사에서 발견했다. 길이가 43m인 2호 가마는 지금까지 확인된 호남 최대 규모의 초기 청자 가마다. 조사 결과 벽돌가마(전축요·塼築窯)에서 진흙가마(토축요·土築窯)로 변화하는 한반도 초기 청자 가마 양상이 확인돼 학술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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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시가 식구에게만 존칭… 예절인가요, 차별인가요

    가족 모임에서 저자가 내뱉은 한마디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시가 식구들 대부분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일부는 눈물까지 쏟아냈다. 도대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패륜적인 이야기였을까. “우리 모두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의 시작을 부른 말이었다. 늘 의문이 들던 저자였다. 시가의 모든 이들에게는 ‘님’으로 끝나는 존칭이 붙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막내며느리인 자신에게는 존중의 의미를 담은 호칭을 불러주지 않았다. 제수씨 아니면 동서, 혹은 이름을 부르는 식이었다. 가부장적이지도 않았고, 늘 자상하던 시부모님이었기 때문에 저자는 흔쾌히 이 같은 제안을 수락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밖 일들만 다가왔다. 특히 저자와 동갑이었던 남편 형의 부인인 ‘형님’ 반발이 컸다. 험악한 말이 오고가며 “아랫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아주버님 일갈까지. 사회 관습에 기대던 이들과의 다툼 끝에 저자는 새로운 방식을 준비한다. 저자는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념 대회에 참가했다.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여성차별적인 ‘표준 언어 예절’ 가족 관계 호칭을 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저자의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고,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저자는 지금까지 작지만 큰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가족 내에서 실제로 호칭 개선을 위해 싸워 본 저자의 여정을 담아냈다. 가족 호칭 문제를 들여다보며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서열화된 언어문화까지 짚어낸다. 불평등한 친인척 호칭 문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4월 동아일보 연중기획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어색한 친인척 호칭 편’이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같은 해 9월 호칭 개선 내용을 담은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을 발표하기도 했다. 늘 쓰는 가족 호칭의 어원을 뜯어보면 시대착오적인 요소가 강하게 배어있다. 손위 형수가 손아래 시동생을 부르는 ‘도련님’은 조선시대 하인이 양반집 아들을 부를 때 사용했다. ‘아가씨’ 역시 종이 주인집 아씨를 부를 때 쓰던 말이고, ‘올케’ 어원은 오라비의 계집을 뜻한다. 저자는 이처럼 가부장 문화에 바탕을 둔 수직적 서열구조로 만들어진 호칭들이 진정한 소통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남성이 윗사람으로 여겨지는 호칭 문화가 바뀌어야 가족 모두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 더 나아가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민정님!” 올해 1월 저자는 시부모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1년여 투쟁 끝에 시작한 가족 내 작은 변화다. 호칭 문제를 넘어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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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8년 타향살이 지광국사탑, 고향으로… 원주 법천사지로 이전 결정

    오랜 유랑생활을 한 비운의 고려시대 승탑(僧塔)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국보 제101호)이 100여 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간다. 문화재청은 “20일 문화재위원회 건축문화재분과 회의에서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을 원래 위치인 강원 원주시 법천사지로 이전하기로 했다”고 21일 밝혔다. 고려 문종 때 국사(國師)를 지낸 승려 해린(984∼1070)의 사리를 봉안한 지광국사탑은 독특한 구조와 화려한 조각, 뛰어난 장엄 장식으로 고려 승탑의 백미로 꼽힌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부터 현재까지 108년간 이곳저곳을 떠돌며 겪은 수난은 한국 근·현대사의 아픔과 궤를 같이한다. 지광국사탑은 일제강점기인 1911년 문화재 수탈에 혈안이 된 일본인 손에 해체돼 법천사지를 떠났다. 당시 경성시내 명동에 있던 무라카미 병원으로 옮겨진 탑은 이듬해 서울 중구 남창동의 와다 저택 정원으로 또 이동했다. 급기야 그해 5월엔 일본 오사카로 반출되기까지 했다. 조선총독부의 반환 요청으로 1912년 말 고국으로 돌아왔지만, 뜬금없이 경복궁에 자리 잡았다. 광복 뒤에도 시련은 이어졌다. 6·25전쟁 때 폭격을 맞아 크게 파손됐고, 1957년 치밀한 고증 없이 급하게 복원됐다. 이후 1990년 국립고궁박물관(당시 국립중앙박물관) 뒤뜰로 이전해 20여 년간 자리를 지켰다. 하지만 2005∼2015년 진행한 문화재 특별 안전점검과 정밀안전진단 결과, 탑 곳곳에 균열과 탈락 현상 등을 확인했다. 결국 문화재위원회는 2015년 9월 탑의 전면 해체·보존처리를 결정했다. 2016년 5월부터 대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탑을 보존 처리하고 있다. 연구소는 올해 말까지 보존 작업을 완료할 계획. 현재 법천사지에는 108년 전 이별한 지광국사 탑비(국보 제59호)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문화재청은 “탑을 원래 자리에 전각을 세워 복원하거나 법천사지 부지에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 전시관 내부에 두는 방안 등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며 “실제 이전은 2021년 정도가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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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버님’ ‘형님’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 부르자고 제안했다가…

    가족 모임에서 저자가 내뱉은 한 마디는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왔다. 시가 식구들 대부분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고, 일부는 눈물까지 쏟아냈다. 도대체 얼마나 극악무도하고, 패륜적인 이야기였을까. “우리 모두 ‘아주버님’ ‘형님’ ‘도련님’이라는 호칭 대신 이름에 ‘님’자를 붙여서 불러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의 시작을 부른 말이었다. 늘 의문이 들던 저자였다. 시가의 모든 이들에게는 ‘님’으로 끝나는 존칭이 붙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막내며느리인 자신에게는 존중의 의미를 담은 호칭을 불러주지 않았다. 제수씨 아니면 동서, 혹은 이름을 부르는 식이었다. 가부장적이지도 않았고, 늘 자상하던 시부모님이었기 때문에 저자는 흔쾌히 이 같은 제안을 수락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 밖 일들만 다가왔다. 특히 저자와 동갑이었던 남편 형의 부인인 ‘형님’ 반발이 컸다. 험악한 말이 오고가며 “아랫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는 아주버님 일갈까지. 사회 관습에 기대던 이들과의 다툼 끝에 저자는 새로운 방식을 준비한다. 저자는 지난해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기념 대회에 참가했다. “아주버님, 도련님, 아가씨… 나는 당신들의 아랫사람이 아닙니다” “국립국어원은 여성차별적인 ‘표준 언어 예절’ 가족 관계 호칭을 개정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광장에 나섰다. 저자의 목소리에 많은 사람들이 귀를 기울였고, 새로운 원동력을 얻은 저자는 지금까지 작지만 큰 도전을 이어오고 있다. 이 책은 가족 내에서 실제로 호칭 개선을 위해 싸워 본 저자의 여정을 담아냈다. 가족 호칭 문제를 들여다보며 한국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서열화된 언어문화까지 짚어낸다. 불평등한 친인척 호칭 문제는 우리 사회의 주요 담론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4월 동아일보 연중기획 ‘새로 쓰는 우리 예절 신예기<新禮記>―어색한 친인척 호칭 편’이 보도돼 화제를 모았다. 이에 여성가족부는 같은 해 9월 호칭 개선 내용을 담은 ‘3차 건강가정기본계획(2016~2020)’을 발표하기도 했다. 늘 쓰는 가족 호칭의 어원을 뜯어보면 시대착오적인 요소가 강하게 베어있다. 손위 형수가 손아래 시동생을 부르는 ‘도련님’은 조선시대 하인이 양반집 아들을 부를 때 사용했다. ‘아가씨’ 역시 종이 주인집 아씨를 부를 때 쓰던 말이고, ‘올케’ 어원은 오라비의 계집을 뜻한다. 저자는 이처럼 가부장 문화에 바탕을 둔 수직적 서열구조로 만들어진 호칭들이 진정한 소통을 막는다고 지적한다. 남성이 윗사람으로 여겨지는 호칭 문화가 바뀌어야 가족 모두 평등하고, 민주적인 관계 더 나아가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있다고 말한다. “민정님!” 올해 1월 저자는 시부모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는다. 1년여 투쟁 끝에 시작한 가족 내 작은 변화다. 호칭 문제를 넘어 가족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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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선왕실 백자 항아리-궁중 도장 국내 환수

    “내일의 상참(常參)에 빈대(賓對)를 겸하여 설행하겠다. 처소는 중화궁(重華宮)으로 하겠다.”(승정원일기 순조 11년 윤3월 9일) 조선 후기 왕실에서 작성한 승정원일기, 일성록 등에는 ‘중화궁’이라는 장소가 종종 등장한다. 그러나 19세기 창덕궁과 창경궁을 그린 동궐도(1828년)에선 중화궁을 찾을 수 없다. 과연 실제로 존재했던 곳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어줄 귀한 유물이 최근 고국으로 돌아왔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19일 “조선왕실 유물로 추정되는 ‘중화궁인(重華宮印)’ 인장 1점과 ‘백자 이동궁(履洞宮)명 사각호’ 도자기 1점을 올해 3월 미국 뉴욕 경매에서 국내로 들여왔다”고 밝혔다. 이번 환수는 온라인 게임회사 ‘라이엇 게임즈’가 후원했다. 중화궁인의 손잡이는 서수(瑞獸·기린을 닮은 상서로운 동물) 모양이고, 도장을 찍는 면인 인면(印面)에는 전서와 해서체로 글자를 새겼다. 7.2cm 정사각형 크기에 높이는 6.7cm. 서준 국립고궁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서울대 규장각에서 소장하는 ‘당시품휘(唐詩品彙)’ 서적에 같은 모양의 인장이 있어 조선 왕실에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며 “중화궁은 특정 건물이라기보다 창덕궁 동쪽 일대를 뜻하는 권역 개념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백자 이동궁명 사각호는 바닥에 청화기법으로 ‘이동궁(履洞宮)’이라는 푸른색 글자가 적혀 있다. 이동궁은 정조의 딸인 숙선옹주(1793∼1836)가 ‘이동’으로 시집갔다는 기록이 있어 옹주의 궁가일 가능성이 크다. 최경화 서강대 전인교육원 강사는 “조선백자 가운데 청화(靑華) 글씨가 확인된 사례는 이동궁 말고는 흥선대원군 거처인 운현궁(雲峴宮)과 경복궁 재수합(齋壽閤) 정도다”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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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쑤! 마지막 예기에게 바치는 신명 한판

    미리 준비한 천을 머리에 갖다대니 금세 꽃 한 송이를 닮은 머리띠가 생겨났다. 눈빛과 손짓을 몇 번 주고받더니 “얼쑤”라는 추임새와 함께 장단이 시작됐다. 소고와 꽹과리 장구 등을 둘러멘 단원들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실내 공연장은 어느새 드넓은 야외마당처럼 신명으로 채워졌다. 호남 서부 평야지대인 전북 익산, 김제, 정읍, 고창 등지에서 전승되는 호남우도농악의 굿판이 펼쳐진 것. 그러더니 단원들 몇 명이 옷을 갈아입고 나타났다. 이제는 한 편의 신파극을 선보이며 뮤지컬 무대로 변신했다.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한국문화의집 공연장에서 만난 연희단 팔산대의 모습은 종합예술 선물세트와도 같았다. 이들은 20, 21일 서울 중구 남산국악당 크라운해태홀에서 열리는 우리 시대 마지막 예기(藝妓)인 장금도(1928∼2019) 유금선 명인(1929∼2014)의 추모 공연 ‘몌별 해어화’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몌별(袂別)’은 ‘소매를 잡고 놓지 못하는 안타까운 이별’을 뜻하는 말이다. 김운태 연희단 팔산대 단장(56)은 “옛 권번(券番)처럼 우리 단원들도 춤과 노래, 무대에서 숨쉬는 방법까지 수년에 걸친 합숙 연습을 통해 갈고 닦고 있다”며 “권번에서 가무를 배운 마지막 예기인 장금도 유금선 명인에게 배운 전통 그대로 신명나는 판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가까운 과거라 오히려 역사에 기록되지 못하고 잊히는 경우가 있다. 근현대 예술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예기(예술인 기생)와 권번(예기 조합) 문화가 대표적이다. 예기는 술 따르는 기생을 일컫는 나무기생과 달리 수년간 음악, 춤, 예절 훈련을 통해 예술가 정신을 간직한 이들을 가리킨다. 채(회초리)를 맞으며 제대로 학습한 생짜(기생)라는 뜻에서 ‘채 맞은 생짜’라고도 불렀다. 전북 지역에서 큰 잔치를 벌일 때 “임방울 소리에 장금도 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던 장금도 명인은 군산 소화권번 출신으로 민살풀이춤의 대가였다. 부산 동래권번에서 입적한 유금선 명인은 춤을 부르는 구음(口音)이 탁월해 부산시 무형문화재 제3호 ‘동래학춤’의 구음 보유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1950년대에 들어 전국 권번은 대부분 사라져 갔다. 예기의 전통 역시 명맥이 끊겼다. 그나마 1957년 전북 남원권번에서 만든 ‘호남여성농악단’이 1979년까지 유지됐다. 연희단 팔산대는 호남여성농악단장의 아들이자 막내 단원이던 김 단장이 2011년 전통의 부활을 선언하며 시작됐다. 농악단에서 활동하던 옛 단원뿐 아니라 서울 명문대에서 판소리, 무용, 기악 등을 전공한 청춘들까지 불러 모았다. 옛 권번처럼 경기 고양시에 숙소를 만들어 관객의 박수를 받기 위한 구슬땀을 함께 흘리고 있다. 장금도 유금선 두 명인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이들의 스승을 자처했다. 김 단장은 “오히려 고향에서는 예기 출신이라는 점을 숨기느라 명인들의 춤과 노래가 제대로 전승되기 힘들었다”며 “두 분께서 늘 ‘젖어 있어라’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제야 그 의미를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번 공연에서는 두 명인과 함께 마지막 예기 3인방으로 여겨지는 권명화 명인(85)의 소고춤 공연도 선보인다. ‘달구벌춤의 봉우리’로 불리는 권 명인은 대구의 대동권번 출신으로 대구시 무형문화재 제9호 살풀이춤 보유자다. 진옥섭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먼저 가신 두 분을 기리고, 홀로 남은 예기의 증인을 주목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공연을 준비했다”며 “올해 최고 맛있는 판이라고 감히 자부한다”고 말했다. 3만 원.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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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읍 고택에서 듣는 100년전 예기의 소리와 춤 이야기

    200년 된 고택에서 우리 고유의 소리와 춤을 보전해 온 100여 년 전 예기(藝妓·예술인 기생)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강연이 열린다. 전북문화재단은 예기와 교방(敎坊) 문화에 대한 강의 ‘예기들의 흔적을 찾아서’를 전북 정읍시 산외면에 위치한 ‘고택문화체험관’에서 한다고 16일 밝혔다. 김문성 국악평론가가 진행하는 이번 강의는 △예기의 삶과 이들의 조직체인 권번(예기 조합)에 대한 역할과 기능 △1920, 30년대 예기들의 음악 활동 △호남지역 권번 흥망사 △‘예기’와 ‘권번’ 문화의 현대적 계승 방법 등으로 구성됐다. 권번의 예술을 잇고 있는 명인의 공연을 감상하는 프로그램과 예기 출신 가수 및 대중가수의 옛 음반을 즐길 수 있는 코너도 준비했다. 강의는 29일, 다음 달 13, 20일 열린다. 강의별 인원은 선착순 20명.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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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눈에 살펴보는 분청사기의 역사

    “일본 다인(茶人)들이 마음대로 붙인 미시마(三島)보다 우리는 분장회청사기(粉粧恢靑砂器)라 함이 그 특색을 잘 보이는 것이 아닐까.” 일제강점기였던 1941년 미술사학자 고유섭(1904∼1944)은 청자, 백자와는 다른 조선 초의 도자기를 분청사기로 이름 지었다. 분청사기는 청자에 분을 바르듯 백토(白土)를 표면에 분장한 후 유약을 입혀서 구워낸 도자기를 일컫는다. 14∼16세기 조선 왕실을 비롯한 관청과 사대부 계층이 즐겨 찾았지만 백자의 인기가 커지자 차츰 기억과 관심에서 멀어져 갔다. 오히려 분청사기는 일본에서 관심이 컸다. 임진왜란 때 끌려간 조선 도공들에 의해 분청사기가 고급 다기(茶器)로 인기를 끈 것. 이후 구한말 조선에 진출한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의 분청사기를 앞다퉈 찾으면서 다시 우리 앞에 나타났다. 이 같은 분청사기의 역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시회가 열린다. 서울 이화여대 박물관이 개교 133주년을 기념해 개최한 ‘분청사기’ 특별전이다. 분청사기의 개념부터 제작 제도, 기법과 조형미 등을 찬찬히 알려준다. 15세기 초까지 활발하게 제작된 상감 분청사기를 대표하는 ‘유로문(柳蘆文) 매병’과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조선시대 도자기 지석인 ‘선덕(宣德)10년명 지석’(1435년) 등 100여 점의 유물이 출품됐다. 태종 17년(1417년) 이후 관청에서 사용할 그릇에는 관사의 이름을 표기하는 정책이 시행됐는데 이를 보여주는 ‘분청사기 인화문 경승부(敬承府)명 접시’와 한글이 적혀 있는 ‘분청사기 귀얄문 어존명 고족배’도 확인할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대학박물관협회가 주관하는 ‘2019 대학박물관 진흥 지원 사업’에서 일부 지원을 받아 마련됐다. 12월 31일까지. 무료.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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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접시 위 고기 한 점… 그 동물은 어떤 삶 살았을까

    진짜가 되고 싶었다. 매일같이 ‘진짜’에 대한 글을 쓰던 저자였다. 10년간 잡지사 기자이자 편집자로 음식 분야 취재와 레스토랑 평론 등을 담당한 저자는 일을 할수록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괴로워했다. 접시 위에 올라온 스테이크와 가장 가까운 일을 하면서도 정작 무슨 부위인지, 그 동물은 어떤 삶을 살고 어떻게 죽었는지 등에 대해 알지 못하는 답답함이었다. 마침 절묘한 타이밍이 다가왔다. 10년간 몸담은 직장에서 상사와의 불화로 해고당했고, 평생을 함께할 줄 알았던 연인과도 이별했다. 우연히 거의 사용하지 않던 신용카드가 눈에 들어왔다. 프랑스 남서부의 시골마을 가스코뉴행 비행기 표를 구입하고, 고민 없이 떠났다. 가스코뉴의 한 도축장에 도착한 저자는 펜 대신 칼을 집어 든다. 이후 저자는 음식과 고기, 육식의 본질을 확인하는 진짜배기 도축사로 변신해 간다. 제목처럼 도축장에서 칼을 들고 있는 저자의 여정을 담아낸 책이다. 잡지사를 그만두며 글 쓰는 일은 다신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섬세하고 날카로운 필력이 곳곳에 묻어나온다. 단순히 육식과 채식이라는 이분법적인 구도가 아닌 “책임감 있는 육식 소비”라는 대안을 저자의 생생한 경험을 통해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가스코뉴 농가에서는 동물을 대하는 특별한 한 가지가 있었다. 바로 진정성이다. 대부분의 농장에서 곡물을 직접 재배해 사료를 만들고, 동물의 탄생과 죽음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 도축사가 직접 관여한다.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동물을 철저히 분업화된 방식으로 해체하는 공장식 도축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특히 동물을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곳곳에 녹아 있었다. 프랑스 등은 온몸의 피가 다 빠져나가기 전까지 의식을 유지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사전에 반드시 전기 충격으로 기절시키는 등 단순히 먹기 위한 존재가 아닌 함께 생활한 존재로서 동물에게 예의를 다하는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온 그는 프랑스에서 배운 도축과 정형 등을 소개하는 ‘포틀랜드 고기 공동체’를 설립한다. 육식 비율이 높으면서도 도축업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편견이 강하고, 고기를 만들어낸 죽음을 연상시키는 문화를 금기시하는 미국 사회에서 과감한 시도였다. 지역사회에서는 “노골적이고 폭력적이다” “비양심적이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러나 저자는 햄 한 조각조차 어떻게 접시 위에 올라오게 되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알리겠다는 각오를 유지한다. 결국 저자의 뜻에 동참한 이들이 늘어났고, 2014년부터는 미국 전역으로 프로그램을 확대한 ‘굿미트 프로젝트’를 선보이며 새로운 육식 문화를 전파하고 있다. 육식과 도축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지만 책 전반에는 삶의 확실성과 정직함을 찾기 위한 저자의 용기와 집념이 곳곳에 배어 있다.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인문학 강연을 듣거나 유기농 음식을 찾는 것이 유행처럼 퍼지고 있지만 정작 본질에 다가서기 위한 진지한 노력과 경험이 부족한 한국 사회에 신선한 통찰을 제공한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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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6년간 갇혀있던 ‘신안 해저보물’ 극적 구출

    36년간 신안 앞바다에서 발견된 도자기 등 중요 해저유물 수십 점을 훔쳐 숨겨 왔던 도굴업자가 검거됐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과 대전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전남 신안군 증도 앞바다(사적 제274호 신안해저유물 매장해역)에서 도자기 57점을 도굴한 후 은닉해 온 혐의(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 위반)로 A 씨를 검거하고, 해당 유물들을 환수했다고 13일 밝혔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A 씨는 1983년 잠수부를 고용해 신안선 인근 해저유물 57점을 도굴해 자신의 집에 오랫동안 감춰놓고 있었다. 최근 경제적 어려움을 겪자 일본으로 도자기를 가져가 판매하려다가 올해 3월 20일 경찰에 체포됐다. 한상진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장은 “신안선에서 나온 도자기들과 형태나 구성이 매우 비슷하다”며 “피의자는 애초 어머니 유품이라고 주장했지만 ‘신안선 발굴 유물’이라고 언급하며 팔아넘기려 했다는 관계자 진술 등도 확보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회수한 문화재는 청자 46점을 비롯해 백자 8점과 검은 유약을 바른 흑유자(黑釉瓷) 3점 등이다. 특히 청자 구름·용무늬 큰접시, 청자 모란무늬 병은 완벽한 형태를 갖추고 있어 학술적인 가치는 물론 전시·교육 자료로도 활용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1975년 우연히 한 어부의 그물에 도자기가 걸리면서 존재가 확인된 신안선은 우리나라 수중고고학의 상징과도 같은 문화재다. 1323년 중국 저장성 경원(慶元·현 닝보)을 떠나 일본 하카타(博多·현 후쿠오카)로 향하던 중 풍랑을 만나 신안 앞바다에서 침몰해 650년간 바닷속에 잠들어 있었다. 1976년부터 1984년까지 진행된 수중 발굴조사 결과 도자기 2만여 점을 비롯한 2만4000여 점의 유물과 28t 무게의 동전 800만 개가 무더기로 발견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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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보물 속을 통해 본 유물 보존 과학의 성과

    1000개의 눈과 손을 가진 천수관음보살을 표현한 금동십일면천수관음상. 고려시대 불상으로 오랜 시간을 거치며 엉덩이 부분이 훼손돼 제대로 세우지도 못했다. 심지어 도금이 일부 벗겨져 전시는커녕 긴급한 수리를 필요로 했다. 국립중앙박물관 보존과학부는 지난해 합성수지로 덧대 기울어진 불상의 무게중심을 잡고, 들떠 있는 금박은 우뭇가사리와 천연아교 등 전통재료로 치료했다. 제 모습을 찾은 천수관음상은 지난해 특별전 ‘대고려전’을 통해 시민들 곁으로 돌아왔다.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3월까지 열리며 화제를 모은 ‘대고려전’에 소개한 유물들의 보존과학 성과를 공개하는 이색적인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상설전시관 3층 청자실 옆에서 12일부터 ‘고려 보물의 속을 들여다보다’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문화재 6점의 컴퓨터단층촬영(CT) 이미지를 디지털 영상으로 선보인다. 교과서에도 실리는 중요 문화재인 ‘청자 어룡모양 주자’(국보 제61호)와 ‘청자 칠보무늬 향로’(국보 제95호) 등의 내부 모습을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또 ‘은제 금도금 표주박모양 병’(국보 제287호)을 자세히 관찰할 수 있는 ‘디지털 돋보기’ 코너도 준비됐다. 9월 1일까지. 무료.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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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역사문화연구원 학술대회 열려

    충청남도(도지사 양승조)와 충남역사문화연구원(원장 이종수)은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충청유교 선구적 인물, 그 역사적 활약상’을 주제로 지역사회문화콘텐츠 활용 국제학술대회를 연다.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고려로 귀화하며 송나라의 문물을 국내에 전파한 정신보와 그의 아들 정인경의 역사적 행적을 조명한다. 현재 학계에서 공인되는 안향의 성리학 도입(1290년)보다 53년 앞서 고려에 성리학을 전파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할 예정이다. 연구원 측은 “충남은 고려 말 성리학을 도입한 최초의 지역이자 조선 유교문화의 중심지였다”며 “학계 연구결과를 통해 충청유교 문화권과 관련한 다양한 콘텐츠를 발굴해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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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박 벗겨진 고려불상, 깨진 신라 유리잔… 문화재 수술실서 회춘”

    “레이온지(복원에 활용되는 반투명 종이) 좀 더 부탁해.” 10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의 보존과학부 연구실. 박영만 학예연구사는 돋보기안경을 머리에 고정시킨 채 목조관음보살좌상 앞에서 1시간째 흡수력이 좋은 종이를 들고 마치 지혈하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전통 접착제인 아교를 주사기에 넣고, 불상 외부의 금박이 뒤틀린 곳에 조금씩 바르고 닦고 있던 것. 800년이 넘는 시간을 견뎌 오면서 차츰 훼손돼 간 불상 문화재가 조금씩 제 모습을 찾던 순간이다. 이 보살좌상은 현존하는 고려시대의 유일한 유희좌(遊戱坐·오른쪽 다리를 굽혀 세우고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린 모양) 불상이었다. 내부는 나무로 만들어졌지만 외관을 장식하는 금박이 울퉁불퉁 탈락돼 응급 치료가 필요했다. 박 연구사는 “문화재 훼손을 막기 위해 작업을 할 때는 숨쉬는 것도 조심스럽다”며 “이 문화재는 먼 길을 떠나 미국의 프리어&새클러 박물관에 전시 대여할 예정이라 더 세심하게 작업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1층에는 독특한 공간이 있다. 약품실, 방사선실, 비파괴 분석실 등 이름만 보면 의료기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바로 문화재의 응급의료센터로 여겨지는 보존과학부 연구실이다. 병원으로 치면 수술실과 비슷해 관람객들에게는 제한적으로만 공개된다. 본보 기자가 찾은 이날에도 서화, 금속, 직물 등 12명의 전문가가 병들고, 시름하는 문화재를 살려내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 해외 소재 한국 문화재도 치료 영원불변한 문화재는 없다. 모든 문화재는 수리와 보수를 필요로 한다. 보존과학부 연구진들은 “1000년 전 장인에 의해 한 번 태어나고, 1000년 후 우리가 다시 숨결을 불어넣는다”는 각오를 다진다고 했다. 최근 보존을 마친 신라의 황남대총 유리잔이 대표적인 사례다. 국보 제193호인 이 유리잔은 1973년 경주 황남대총에서 파편으로 출토돼 긴급 보수를 한 채 40년 넘는 시간이 흘러 미관과 안정성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에 박물관에서는 6개월간 파편을 한 땀 한 땀 해체했고, 유실된 파편 2점까지 찾아내 마침내 올해 3월 재접합에 성공해 온전한 모습으로 되살려냈다. 이해순 학예연구사는 “예민한 유리 재질이라는 특성과 국보라는 중압감에 6개월간 불면증에 시달리기도 했다. 보존에 완치라는 개념은 없기 때문에 지금도 모니터링과 추가 연구는 계속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한국 문화재를 보유 중인 해외 박물관에서도 국내에 보존 처리를 의뢰할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자랑한다. 스위스 취리히에 위치한 리트베르크박물관은 소장 중인 조선 후기 불화 ‘추파당대사 진영’이 곰팡이와 얼룩 등으로 훼손되자 지난해 5월 박물관에 보존을 요청했다. 진영은 1년에 걸친 보존 작업 끝에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 관람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박학수 학예연구관은 “해외 소재 중인 우리나라 문화재가 18만 점에 이르지만 제대로 된 보존 조치가 안돼 대부분 수장고에 있는 게 현실”이라며 “우리의 손으로 되살려낸 문화재가 해외 곳곳에서 전시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뿌듯한 일”이라고 말했다.○ 수요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인력과 공간 지난해 기준 국립중앙박물관의 소장품은 41만296점에 이른다. 우리나라 전체 등록 박물관은 873개, 전체 소장품은 1000만점을 넘어섰다. 하지만 대부분 박물관의 경우 보존 인력은 전무한 실정이다. 그래서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 처리를 위탁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유혜선 보존과학부장은 “2005년 용산으로 이전될 때만 하더라도 문화재 보존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을 미처 예상하지 못해 이미 보존처리실은 포화 상태”라며 “시급한 수리가 필요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만 따져도 7만 점에 이르지만 현재 인력과 공간에선 1년에 1000점밖에 치료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국립중앙박물관은 문화재의 보존과 수리를 위한 ‘보존과학센터’ 설립을 추진 중이다. 이미 프랑스국립박물관은 60여 명의 전문가로 구성된 ‘문화재 복원 연구 센터(C2RMF)’를 운영 중이고, 중국은 고궁문물원 보존센터에 160명이 넘는 전담 인력이 보존에 매달리고 있다. 배기동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관계부처와 적극 협의해 전문성과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보존과학센터가 내년부터 설립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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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10만세운동은 정치이념 초월한 거족적 독립운동”

    “울려 해도 다시는 잊지 못할 이 설움….” 1926년 4월 27일자 동아일보는 식민지 조선인들의 비통한 마음을 담아 조선 왕조의 마지막 군주인 순종의 승하 소식을 알린다. 망국의 슬픔과 일제의 교묘한 문화통치에 신음하던 한반도는 이때부터 새로운 움직임이 꿈틀댔다. 순종 인산일인 6월 10일에 맞춰 대규모 만세시위운동을 국내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100년 전 한반도 전역을 뒤덮은 3·1운동은 단지 1919년만의 기억이 아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태동시켜 독립운동 세력의 구심점을 마련했고,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진 한국 독립운동의 뿌리로 여겨졌다. 그중에도 1926년 6·10만세운동은 이념을 떠나 온 민족이 합심해 일어난 3·1운동의 정신을 가장 온전하게 계승한 사건이었다. 최근 학계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6·10만세운동의 역사적 가치도 새롭게 규명하는 작업이 화두로 떠올랐다. 1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는 6·10만세운동기념사업회 주최로 ‘6·10만세운동과 민족통합’ 학술대회가 열린다.○ 국내 독립운동 세대교체 알린 신호탄 시작은 상하이였다. 상하이의 독립운동가들은 민족주의자들과 조선공산당 임시상해부를 비롯한 사회주의 계열 등 이념을 떠나 천도교, 학생·청년계가 총망라된 대한독립당을 구성해 만세운동 준비에 나선다. 당시 임시정부 국무령 대행을 맡은 최창식은 상하이에서 운영하던 삼일인쇄소에서 6·10만세운동에 쓰일 격문 5000장을 인쇄토록 했다. 가만히 있을 일제가 아니었다. 이미 3·1운동이란 뼈아픈 충격을 겪은 일제 경찰은 대대적인 검열과 단속에 나섰다. 결국 거사 직전인 6월 6, 7일 대한독립당과 관련된 인사들이 무더기로 적발됐다. 이들이 준비한 격문마저 압수당하고 만다. 그럼에도 끝내 발각되지 않은 국내 세력이 있었다. 조선학생과학연구회 등 사회주의 계열 학생단체와 통동(현 통인동) 인근에 주로 거주해 ‘통동계’로 불린 중앙고보, 중동학교 학생들은 은밀하게 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조선 민족아 우리의 철천지원수는 자본제국주의 일본이다. 2천만 동포야 죽음을 결단코 싸우자. 만세 만세 조선독립만세.” 통동계 학생들이 작성한 이 격문은 간략하지만 결의에 찬 독립 의지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이들은 5000장을 몰래 인쇄해 순종의 인산일까지 지켜냈다. 6월 10일 오전 8시. 순종의 운구 행렬이 창덕궁을 나왔다. 30여 분이 흐른 뒤 경성시내 종로3가 단성사 앞에서 미리 약속한 호루라기 신호가 울렸다. 6·10만세운동의 시작이었다. 중앙고보생 30∼40여 명은 격문서 1000여 장과 태극기 30여 기를 살포했다. 일제의 삼엄한 경계와 철통같던 감시망을 뚫고 나온 함성이었다. 놀란 일제 기마경찰이 시민들을 향해 돌진하는 바람에 중경상을 입는 시민이 속출했다. 이어 청계천 관수교 부근에 이르자 다시 연희전문학교 학생 50여 명이 격문 50장을 살포했다. 오전 9시 경성사범학교 앞에서 일어난 격렬한 만세시위로 인해 학교 담장이 무너질 정도였다. 이후 동대문 부인병원, 창신동 채석장, 신설동 고무회사 앞까지. 이들은 가슴 속에 간직한 태극기와 격문을 꺼내 들고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장석흥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는 “3·1운동 당시 보조자 역할이었던 학생들은 6·10만세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의 주축으로 떠올랐다는 점에서 독립운동세력의 세대교체를 알린 역사적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민족대통합 운동 촉발시킨 6·10만세운동 “이 운동은 전 민중의 중심이 될 통일기관을 필요로 한다. 내부의 쟁투를 그치고 공동의 적인 일본인과 싸울 준비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산 안창호는 그해 7월 1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6·10만세운동 연설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이후 중국에서 활동하던 독립운동가들은 민족대당촉성운동을 각지에서 일으키며 한때 분열되고 침체됐던 독립운동에 통합이라는 새로운 활력을 만들어냈다. 장 교수는 “일제는 6·10만세운동을 학생들의 치기 어린 행동으로 축소·은폐하기 위해 혈안이 돼 있었다”며 “6·10만세운동은 정치적 이념을 넘어 항일이라는 깃발 아래 전 민족이 힘을 합친 결과였다”고 밝혔다. 3·1운동과 함께 6·10만세운동,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11월 3일)은 학계에서 일제강점기 국내 3대 만세운동으로 평가한다. 하지만 다른 두 운동과 달리, 6·10만세운동은 현재 국가기념일로 지정되지 않은 상태다.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그 뜻을 계승한 6·10만세운동을 국가기념일로 계승하는 것이 100주년을 맞은 우리 사회의 당면과제”라며 “학계뿐 아니라 정부와 민간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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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불평등 심화시키는 신흥 권력 엘리트집단

    오늘날 미국 사회의 엘리트들은 자선과 기부로 거액을 내놓으며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인자한 부자와 권력자들이 많아지고 있음에도 정작 불평등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단적으로 단 8명의 부호가 전 세계 부의 절반을 차지하는 유례없는 역사가 진행 중이다. 미국 잡지 ‘타임’의 논설주간인 저자는 바로 이 엘리트의 견고한 기득권 유지 방식을 파헤친다. 이를 위해 ‘마켓 월드’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마켓 월드는 현재의 사회체제로 이익을 얻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긍정적인 일도 해내는 신흥 권력 엘리트 세계를 지칭한다. 계몽된 사업가, 자선단체, 학계, 언론, 정부, 싱크탱크의 연구원들이 주요 구성원이다. 이들의 특징은 ‘평등’과 ‘정의’ 같은 고결한 메시지를 내세우면서도 정작 부의 집중, 승자 독식이라는 근본적인 사회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마켓 월드라 불리는 신흥 권력 엘리트뿐 아니라 ‘지식 소매상’이라 불리는 최근 일부 지식인들에 대한 매서운 비판도 함께 한다. 과거 권력을 매섭게 비판했던 공공지식인 대신 지식 생산에 많은 후원을 하는 대부호들과 어울리는 신흥 지식인을 뜻한다. 책의 배경은 주로 미국 등 서구 사회지만 부와 권력, 지식과 정보의 독점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해낸 통찰은 한국 사회에 더 필요해 보인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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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8년 지어진 흑산도 성당 등록문화재 지정 예고

    한반도 서남해의 최남단에 위치한 흑산도의 ‘신안 흑산성당’(사진)이 문화재로 등록된다고 5일 문화재청이 밝혔다. 흑산도는 18세기 한국 천주교회 창설의 주요 인물인 정약전(1758∼1816)이 1801년 신유박해 때 유배를 온 곳으로 천주교와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이기도 한 정약전은 흑산도에 머물며 지역주민들에게 천주교를 전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흑산성당은 광복 이후인 1957년 성골롬반 선교회의 도움을 받아 항구에서 가까운 언덕 위에 부지를 마련한 후 이듬해 11월 축성식을 거치며 완공됐다. 건축 과정에서 언덕의 딱딱한 암반 지형을 신도들이 깎아내고, 섬에서 쉽게 구할 수 있던 몽돌 등을 자재로 활용하는 등 건축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것으로 평가됐다. 한편 올해 4월 등록문화재로 예고된 ‘고성 최동북단 감시초소(GP)’와 ‘부산 구 동래역사’ ‘세종 구 산일제사 공장’ ‘대한민국 임시정부 환국기념 23인 필묵’ 등 4건은 문화재로 등록됐다.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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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30년대 상하이서 불어온 재즈열풍… 조선의 청춘을 사로잡다

    ‘상하이 릴’(1935년), ‘상하이 블루스’(1937년)…. 1930년대 경성의 모던보이, 모던걸들에게 가장 인기 있던 재즈 음악에서는 공통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화려함과 낭만,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 ‘상하이’가 등장한다는 것. “어여쁜 엔젤들의 윙크가 그리워라 상하이/상하이는 청춘의 락원∼” 1935년 발표된 ‘꽃피는 상하이’의 가사 속에는 당대 젊은이들의 인식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식민지 조선의 청춘들은 왜 상하이에 열광했을까. 1928년 1월 조선축구단의 상하이 원정 경기가 결정적 계기였다. 당시 호남의 대부호였던 백명곤이 이끌던 조선축구단은 영국 육군 축구팀과의 원정 경기를 위해 중국 상하이로 떠났다. 축구 경기를 위해 떠났지만 백만장자이자 화려한 사치를 즐기던 백명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다름 아닌 ‘재즈’였다. 상하이의 조계 지역을 중심으로 재즈 클럽이 크게 번성하면서 미국, 필리핀, 러시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밴드들이 활동하고 있던 때였다. 백명곤은 재즈 악보와 색소폰, 피아노 등 악기를 대거 구입해 귀국한다. 이후 당대 최고 음악가들을 한 명씩 불러 모아 색소폰에 백명곤, 트럼펫 한욱동, 피아노 홍난파, 드럼 이상준, 노래 이인선 등으로 구성된 8인조 재즈 악단을 결성한다. 한국 최초의 재즈 밴드인 ‘코리아재즈밴드’가 탄생한 것이다. 경성의 YMCA 회관에서 첫 공연을 연 밴드의 인기는 대단했다. 세련된 음색에 젊은이들은 매료됐고, 전국을 순회하는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1929년 9월호 개벽 잡지에는 “코리아재즈밴드의 공연이 있을 때마다 젊은 피에 끓는 남녀들에게 큰 환호를 받았다. 한 가지 즐김에 빠져서 정신을 못 차리도록 뛰고 놀아버릴 뿐”이라며 재즈 열풍에 빠진 당대의 세태를 비판하는 지식인이 등장할 정도였다. 지난달 24일 중국 상하이 푸단대에서 열린 한중 공동 국제학술대회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상하이’에서는 한국 대중음악의 뿌리를 추적한 이색적인 연구가 공개됐다. 장유정 단국대 교수의 ‘중국 상하이와 한국 근대 대중음악의 몇 가지 국면’이다. 장 교수는 “1930년대까지 재즈는 최고의 인기를 누렸지만 1941년 태평양전쟁 발발 이후 적군인 미국을 비롯한 서양의 음악을 금지하면서 명맥이 끊기고, 잊힌 역사가 됐다”며 “1950년대를 ‘재즈 1세대’로 규정하고 있는데 1920, 30년대에 이미 재즈 열풍이 불었다는 점에서 당시를 ‘재즈 0세대’로 부를 만하다”고 했다. 한편 단국대 동양학연구원과 푸단대 한국연구센터가 주최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대한민국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한국과 중국의 공동 항일투쟁 역사가 집중 조명됐다.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최근 인도를 방문한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인도의 무장 독립 투쟁을 이끌던 수바스 찬드라 보스(1897∼1945)의 후손을 직접 찾아가 인도의 민심을 얻기도 했다”며 “한국과 중국은 함께 독립을 위해 투쟁한 공통의 역사가 있다는 점에서 ‘항일’을 매개로 한 공동 역사 연구는 경색된 한중 관계 개선을 위한 해법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상하이=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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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 석릉 인근 고분서 고려 향로-석상 등 출토

    고려 제21대 임금 희종(재위 1204∼1211년)의 무덤인 인천 강화도 석릉(碩陵·사적 제369호)의 동쪽 무덤에서 철제 향로와 동물 석상 등 당시 장례 문화를 알려주는 유물이 대거 출토됐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올해 3월부터 진행한 석릉 주변 고분군 발굴조사에서 철제 향로의 다리 부분과 도기 항아리, 양과 호랑이 형태로 돌을 조각한 석양(石羊)과 석호(石虎), 문신이나 무신을 형상화한 석인상(石人像) 등을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도기 항아리는 아가리와 몸통이 넓고 목이 짧은 전형적인 고려의 양식을 보인다. 연구소는 도기 항아리와 동물 모양의 철제 향로는 건물을 짓기 전 땅의 기를 다스리며 안전을 기원하는 지진구(地鎭具)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또 무덤 인근에 세운 동물 모양 상인 석수(石獸)와 석인상을 통해 고려 시대 묘역 구조를 밝힐 수 있는 기초 자료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희종은 아버지 신종(재위 1197∼1204년) 시절부터 국정을 좌지우지한 권신 최충헌을 제거하려다 실패하면서 폐위됐고, 사후에는 유배지인 강화도에 묻혔다. 고려는 희종이 세상을 떠나기 5년 전인 1232년 몽골 침략을 피해 강화로 수도를 옮긴 뒤 39년간 수도로 삼았다.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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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존 최대 조선시대 달항아리 떴다… 제6회 동아옥션 경매 12일 개최

    조선 후기에 주로 제작된 달항아리는 중국과 일본에선 볼 수 없는 한국 도자의 독특한 양식이다. 조선의 다른 백자와 달리 높이가 40cm 이상 될 정도로 크고, 넉넉한 느낌에 아름다운 곡선이 특징. 지금까지 지정된 국보도 3점에 이른다. 지금까지 공개된 조선시대 달항아리 가운데 가장 큰 규모로 확인된 달항아리가 동아옥션 경매에 나왔다. 12일 오후 3시 서울 서대문구 동아일보 충정로 사옥 18층 동아옥션 갤러리에서 열리는 제6회 동아옥션 정기 경매에는 총 200여 건의 다채로운 예술품을 선보인다. 이번 경매에서 가장 주목할 작품은 높이 57cm, 너비 49cm의 달항아리다. 그동안 국보로 지정된 달항아리 3점이 모두 높이가 44∼49cm라는 점에서, 동아옥션이 선보이는 달항아리는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한다. 달항아리는 현존하는 작품이 20∼30점 정도에 불과해 희귀한 문화유산으로 꼽힌다. 조선시대 왕실의 관요(관청의 사기를 만드는 제조장)에서 만들어져 애초 왕실과 상류층 양반을 위한 전유물이었다. 이번에 출품된 달항아리는 자세히 보면 표면이 마냥 매끄럽지만은 않다. 오히려 다소 투박하고 거칠기도 하다. 비밀은 ‘유약 말림현상’에 있다. 도자기는 한번 만들면 모습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가마에서 갓 구워냈을 때부터 자연미를 간직한 모습으로 태어난다. 도예가 신한균 사기장은 “가마 속이 아무리 높은 온도라도 그 안에 미묘한 수분이 있는데 그 과정에서 말림이 발생한다”며 “정형화되고 딱 맞아떨어지는 것보다 정다운 미감을 주는 달항아리의 매력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이태호 명지대 명예교수도 “꾸밈없는 대로 푸르고 누르스름한 유색도 잡티가 섞인 대로 흘러내려서 좋다”며 “하늘이 내린 도공의 무심함과 손맛이 살아 숨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이자 국학자, 언론인으로 활동한 위당 정인보(1893∼1950)의 미공개 친필 간찰 10건도 출품된다. 그중에서도 위당이 ‘봉산석실’이라는 한 명승지를 방문하고 감상을 남긴 글이 눈에 띈다. “고요함 속에 지혜가 싹트고(靜慮宜發智)/밝음을 쫓다 보면 저절로 맑아진다네(湛明本自澄).” 근대 국학연구의 태두였던 위당은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하며 빼어난 글 솜씨를 자랑했다. 광복 이후 5대 국경일 중 3·1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노래를 직접 작사하기도 했다. 천경자 화백(1924∼2015)의 ‘기타 치는 사람’(1967년)도 출품됐다. 천 화백 특유의 강렬한 색감과 문학적 서정성을 바탕으로 인간에 대한 애욕과 환희, 고독, 두려움 등을 오롯이 담아냈다. 만해 한용운의 친필 간찰과 백범 김구가 쓴 ‘우최초자환가(雨催樵子還家·비는 나무꾼이 집에 돌아가길 재촉하네)’ 휘호와 채근담 필사 등 글씨 2점, 구한말 조선을 방문한 외국인에게 발급해주던 일종의 여행증명서인 ‘호조(護照)’ 등도 나왔다. 동아옥션은 출품작들을 직접 살펴볼 수 있도록 상설 전시를 한다. 경매에 나온 물품들은 5일부터 서울 동아옥션 갤러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 참고.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 2019-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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