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환

정양환 부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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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양환 기자입니다.

ray@donga.com

취재분야

2026-04-10~2026-05-10
칼럼74%
인사일반17%
미국/북미3%
국제일반3%
국제경제3%
  • 주민들이 편하게 찾는 문화공간으로, 장애인들도 행복한 치유의 쉼터로

    사랑의교회(서울 서초구)는 부활절을 맞아 생명의 공동체가 돼 ‘생명의 빛을 온 세상에 전달하는 도구로써 쓰임 받기’를 위해 기도한다. 특히 교회당은 성도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공유하고 열린 공간으로 조성했다. 아울러 사랑의교회는 민족과 나라의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감당하면서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고 섬김과 나눔을 실천하는 ‘선한 공동체의 사명’을 견지하려 한다.부활의 실천, 세상을 섬기는 공간 영국의 세계적인 복음주의 설교가였던 존 스토트 목사(1921∼2011)는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세상에 대한 전도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임을 주셨다”고 말했다. 사랑의교회 역시 부활절을 맞아 교회당을 누구나 찾아와서 인생의 짐을 내려놓는 쉼과 치유의 터로 만들고자 한다. 특히 문화 예술의 여유를 관조해 세상을 위한 나눔과 섬김을 공유한다. 이를 위해 3대 실천방안도 마련했다. 첫째, 누구나 거부감 없이 소통하는 개방형 문화공간이다. 종교적 색채를 자제하고 주민들이 편하게 드나드는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실제로 지역사회 공공기관이나 단체가 임대해 아트갤러리나 북카페 등을 운영하기도 한다. 둘째, 공공재로서의 역할 수행이다. 사랑의교회 교회당은 장애인이 건물에서 이동하는 데 아무런 불편이 없도록 만들었다. 이동장벽을 완전히 제거해 최우수(Barrier Free) 등급을 취득했다. 또한 대지면적 기준으로 54%를 완전 개방하고, 교회 경내를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을 생각하는 친환경 건축을 꼽을 수 있다. 태양열과 자동절전 조명시설, 유휴 냉난방 에너지 활용 시스템을 갖췄다. 사랑의교회는 건축계획단계부터 예배에 국한하지 않고 대중문화공연을 열 수 있는 ‘공공성’에 중점을 뒀다. 본당은 기둥을 제거해 음향과 조명이 방해를 받지 않는다. 수용인원 6500여 석에 44개의 채광창을 갖춰 대규모 오페라 공연도 가능하다. 실제로 2013년부터 ‘서울시립교향악단 우리동네 음악회(2014년)’ ‘영화 더크리스마스 상영(2017년)’ ‘호두까기발레 공연(2018년)’ 등 다양한 이벤트를 선보였다.꾸준한 나눔과 섬김 사랑의교회는 나눔과 섬김의 책임을 잊지 않는다. 2014년 설립한 국제구호개발 NGO ‘사랑광주리’(이사장 오정현 목사)는 북한 어린이에게 영양식품을 꾸준히 지원해왔다. 지금까지 7개 시설에 모두 78t(116만 명 분량)을 지원했다. 또한 △북한 돼지농장과의 경제협력 △종묘장 등 환경개선사업 △평양 소재 대학 교육지원 등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사랑광주리는 또 2015년부터 일대일 상담과 봉사활동, 음식 나누기 등을 통해 대학생과 취업·창업을 준비하는 청년 지원에도 힘쓰고 있다. 사랑의교회 ‘사랑의복지재단’과 ‘이웃사랑선교부’도 눈길을 끈다. 1996년 설립한 재단은 지금까지 300억 원가량을 어린이와 장애인, 취약계층에 지원했다. 이웃사랑선교부는 해마다 ‘사랑의 김장 김치 나누기’를 비롯해 지역 홀몸노인과 입양가정 돌봄에 힘쓰고 있다. 최근 국가적 화두인 저출산 극복을 위한 노력도 게을리하지 않는다. 2014년 서초구에 기부채납 방식으로 교회 공간 325m²에 대형 어린이집을 건립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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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아메리칸드림’ 뒤엔 쓰레기 취급당한 백인 빈민 있었다

    “있는 그대로의 미국의 과거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 옹골찬 유혹이다. 솔직히 이 책은 제목이나 두께가 되게 부담스럽다. 500년 조선사도 헷갈리는데, 다른 나라 4세기가 가당키나 한가. 근데 교과서처럼 외웠던 ‘아메리칸드림’ 이면을 들춰 주겠단다. 어떤 이에겐 자유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성조기가 실은 카스트 버금가는 계급사회의 깃발이란 주장이다. 그리고 그 최하층에서 허덕이는 백인 빈민들이 있다. 바로 책의 원제인 ‘화이트 트래시(white trash·백인 쓰레기)’다. 이 정도면 저자가 미국 주적이 아닐까 싶지만, 아이젠버그는 루이지애나주립대 석좌교수다. 2016년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가 선정한 ‘가장 중요한 사상가 50인’에도 뽑혔다. 그가 자국의 치부라고도 할 만한 속살을 이토록 가차 없이 헤집는 이유는 뭘까. “마뜩잖을지 모르지만, 백인 쓰레기는 우리나라 서사에서 중심이 되는 가닥이다. (때로는 보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그런 사람들의 존재야말로 미국 사회가 우리가 의식하고 싶지 않은 이웃들에게 부여한, 자꾸 바뀌는 꼬리표에 집착한다는 증거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야’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싫든 좋든, 그들은 우리이며 항상 우리 역사의 본질적인 일부였다.” 그 신념을 바탕으로 수집한 근거는 놀랍도록 매섭다. 일단 건국신화부터 뒤집었다. 신대륙으로 건너온 조상들은 개척영웅이 아니었다. 영국의 가진 자들은 이익 창출과 거지 퇴출(이것도 상당히 순화한 표현이다)을 위해, 못 가진 이들은 강제노역이나 추방에 떠밀려 아메리카로 왔다. 대서양을 건너왔건만 ‘기회의 땅’은 귀족에게나 허락됐다. 빈자들은 ‘영주관할인(leet-men)’이라 불리며 대지주에게 예속된 처지였다. 저자는 이런 계급 구도가 남북전쟁을 거치고 20세기를 넘기면서도 여전하다고 본다. 아니 오히려 더 굳어졌다. 벤저민 프랭클린, 토머스 제퍼슨 등 건국의 아버지들이 친(親)계급주의 성향을 지녔던 건 넘어가자.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하지만 20세기 전후 여러 학자는 우생학을 끌어와 ‘가난은 타고난 기질’ 탓으로 몰고 갔다. 심지어 21세기에도 일부 정치인은 실직을 개인의 나태와 동일시하는 발언을 서슴없이 한다. 2009년 기준 미국 상위 1%는 소득의 5.2%만 국세와 지방세로 내는 반면에 하위 20%는 10.9%나 내는 기형적 구조는 다 뿌리가 있던 셈이다. ‘알려지지…’는 매우 논쟁적이다. 한쪽만 본다며 쉽게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을 법하다. 게다가 강 건너 구경인지라 팍팍 와 닿지 않는 면도 있다. 생소한 지명과 인물이 숱해 가끔 ‘멍 때림’도 유발한다. 하지만 지난 미 대선에서 왜 그가 당선됐는지 어떤 정치서적보다 명쾌히 보여준다. 몇 세대 동안 하수구 취급을 받은 이들에게 ‘주류’는 어느 당, 어떤 공약이었건 위선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한반도에 이게 과연 남 일일까. 이미 세찬 바람이 낯짝을 때리건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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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왕의 식탁에서 모두에게로… 디저트의 ‘달콤한 모험’

    어쩌면 이 책 구입비는 ‘1만6800원’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읽는데 분명 돈이 더 들어간다. 분명 빵빵하게 저녁도 먹었건만. 반갑잖은 군침이 밀려온다. 독서가 마음이 아니라 몸의 양식도 될 줄이야. 담뱃갑 따라 “체중이 불어날 수 있습니다”란 경고 문구라도 표지에 실어야 할 판이다. 하지만 다이어트와 잠시 이별하고 나면 신나는 모험이 황홀경으로 펼쳐진다. 근사한 사진 때문이라면 더 나은 요리책이 훨씬 많다. 우리의 입을 달래주는 갖은 디저트들이 어디서 어떻게 왔는지 배우는 건 기대보다 더 즐겁다. 실은 디저트는 이름만 달랐을 뿐, 고대부터 존재했다. 옛사람이라고 ‘단짠단짠’을 싫어했겠나. 하지만 영국 옥스퍼드백과사전의 음식 분야 필자인 저자에 따르면 본격적으로 디저트가 각광받은 건 중세 무렵이다. 역시 주인공은 ‘설탕’. 인도에서 사탕수수로 정제하는 기술을 개발한 뒤 돌고 돌아 유럽으로 흘러왔다. 당시엔 설탕이 병도 치료하는 비싼 약재이자 최고급 향신료로 대접받았다. 당연히 상류층, 그들만의 잔치였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결과 아닌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주린 이들은 맛이나 모양을 따질 리 없다. 여유가 되니 폼도 잡는다. 디저트가 화려하게 꽃핀 17, 18세기가 왕정·귀족문화의 절정기였던 건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당시 디저트는 눈으로 즐기는 ‘과시용’이 많았다. 성이나 영토를 미니어처처럼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설탕 등으로 만든 외벽을 부수면 안에서 새들이 날아오르는 디저트도 유행이었다고 한다. 재밌는 건, 과거엔 디저트가 꼭 식사 마지막에 먹는 요리는 아니었다. 유럽도 우리네 ‘한상차림’처럼 고기 생선과 함께 올라왔다. 지금과 같은 코스요리는 ‘러시아식’인데, 실용을 중시하던 이 풍조가 유럽으로 전해져 정착했다. 마찬가지로 대다수 디저트는 어느 한 나라가 ‘자기 것’이라고 부르기 애매하다. 오랜 세월에 걸쳐 이리저리 뒤섞이며 완성된 형태니까. 앞서 얘기했지만 ‘디저트의 모험’은 굉장히 즐거운 탐방이다. 세계 곳곳을 돌며 뿌리 내린 디저트를 따라, 미식여행을 다녀온 듯한 만족감이 크다. 특히 디저트의 양대 산맥이라 할 ‘크림’(아이스크림 포함)과 ‘케이크’는 따로 1장씩 할애해 설명했는데, 더욱 허기가 지니 주의하시길. 특권층의 전유물이었던 디저트가 19, 20세기 대중에게 퍼져 나가는 대목은 격변의 역사만큼 흥미진진하다. 다만 하나 아쉬운 건, 이 모험이 너무 한쪽 동네만 들여다본단 점이다. 디저트라 부르진 않았을지언정, 다채로운 후식을 보유한 아시아를 너무 홀대한다. 중국과 일본은 1페이지뿐이고, 한국은 아예 없다!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도. 겨우 80일 동안 몇 나라 들러놓고 ‘세계일주’라 불러서야 되겠나. ‘리얼 어드벤처’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으니, 저자는 얼른 다시 짐을 싸시길. 아님 다른 누군가라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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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사상 최악의 미세먼지? 10여 년 전엔 잘 몰랐을뿐

    ‘파란 하늘∼ 빨간 지구∼.’ 왠지 동요 한 구절을 연상시키는 제목에 현혹되지 마시라. ‘파란하늘…’은 버겁도록 묵직한 책이다. 왜 아니겠는가. 빙하가 녹아서 북극곰이 물에 빠지는 영상. 기상이변으로 몰아닥치는 자연재해. 아니, 뿌옇다 못해 마스크를 써도 목이 텁텁한 대기. 최소 한 번쯤 봤거나 경험한 지구의 경고는 어깨를 짓누른 지 오래다. 전 국립기상과학원장인 대기과학자가 썼으니 품질이야 믿고 봐도 될 터. 아니나 다를까. 한 페이지씩 넘길 때마다 입천장이 메마른다. 미리 말하지만, 저자는 결코 과장해서 겁을 주진 않는다. 오히려 이 심각한 내용을 담담한 필치로 정리한다. 하지만 다들 안다. 원래 차분한 팩트가 제일 무섭다. 요즘 한반도에서 가장 큰 관심사인 ‘미세먼지’를 살펴보자. 어느 순간 미세먼지는 호환마마, 심지어 핵미사일보다 겁나는 존재가 됐다. 그런데 실은 “서울의 오염먼지 농도는 2000년대 초반이 지금보다 50퍼센트 이상 높았다”. 저자도 지적하지만, 미세먼지란 용어 자체를 본격적으로 쓴 것도 2014년 이후다. 게다가 미세먼지는 생태계에서 긍정적 효과도 지녔기에, 예전부터 썼던 스모그나 연무로 부르는 게 옳다고 한다. 이 혼란은 무분별한 용어 사용에 멈추질 않는다. 우린 쉽게 중국을 탓하지만 아직 명확한 결론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심지어 봄에 몰려올 ‘공포의 황사’는 실제로는 “코털이나 기관지 점막에서 걸러져 배출되므로 노약자가 아닌 건강한 사람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리나라 토양은 대부분 산성화돼 있어 알칼리 성분인 황사는 토양을 중화시키는 ‘고마운’ 역할도 한다. ‘파란하늘…’은 참 반가운 책이다. 원래 오해나 무지만큼 무서운 게 없다. 특히 지구온난화나 오염먼지와 같은 이슈는 대단히 중요하나 대다수가 ‘잘 모른다’. 숱한 관련 서적이 있지만 다소 장황하거나 와 닿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저자는 조곤조곤 맥을 짚어 준다. 깨진 빙하가 빨리 녹는 이유를 “덩어리 얼음을 따뜻한 곳에 둬도 천천히 녹지만, 얼음을 깨뜨려 물그릇에 넣으면 빠르게 녹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설명하는 친절함도 맘에 든다. 특히 이 책을 손에 쥐었다면 마지막 ‘나오는 말’은 곱씹어 읽길 권한다. 30년 넘게 현직에 종사했던 과학자로서 가슴에 맺혔던 응어리가 빼곡하다. 과학을 과학으로 대접하지 않고, 정책의 도구로 쓰는 한국의 현실은 울림이 크다. 과학자조차 공무원이나 영업사원으로 만드는 사회에서 어떤 개선이나 진보를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다만 저자를 비롯한 과학자들에게도 어쭙잖은 부탁 말씀을 드린다. 계속해서 이렇게 현안을 다루는 과학서가 나와야 한다. 최근 청와대에서 발표한 인공강우 실험은 “요행을 기대하는 현대판 기우제”란 질타처럼. 대중이 그만큼 알아주지 않더라도, 한숨과 좌절이 반복되더라도 말이다. 모두가 하늘과 지구를 돌아볼 수 있도록.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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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구제불능 내 인생, 조금씩 나아지는 중입니다”

    에리코는 정말 구제불능이다. 주위에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도 있었을 게다. 20대 초반 여성이 기껏 한다는 일이 에로만화 편집자. 힘든 일만 있으면 엄마에게 쌍심지. 급기야 자살 미수까지. 겨우 살아났지만 재취업은 물 건너가고. 기초생활수급자로 연명하다가 또 목숨을 끊으려 하고…. 가족과 친구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아마 이렇게 ‘동전의 한쪽 면’만 보면 그리 정이 가질 않는다. 하지만 동전을 뒤집어보자. 술과 노름에 빠진 아버지. 학창시절 지속된 집단따돌림. 겨우 취직한 직장은 월급이 고작 12만 엔(약 122만 원). 숱한 야근과 가욋일에도 추가 수당도 없다. 지병이던 우울증은 점점 깊어지고…. 나락으로 떨어진 심정이 이해가 간다. 실은 이해한단 말도 에리코에겐 조심스럽다.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아보려던 그에게 세상은 냉혹했다. 병력과 자살 시도는 자립할 기회를 박탈한다. 치료와 위안을 위해 찾은 클리닉센터는 환자를 돈벌이 대상으로 여긴다. 기초생활수급자를 대하는 공무원들은 왜 그리 야멸치고 냉랭한지. 갈수록 심장이 쪼그라드는 에리코는 인생이란 무거운 굴레를 벗어던지고만 싶다. 짐작했겠지만, 다행히 그는 ‘회복’하고 있다. 다시 한 발짝씩 내딛고 있다. 봉사단체에서 일하며 세상이란 문을 노크했다. 작지만 소중한 월급봉투를 쥐고 친구에게 점심을 먹자고 전화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서글프다. 에리코는 10여 년에 걸친 여정 끝에 어렵사리 일어섰지만, 그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상당수는 무너져 내리니까. 아마 그가 이 책을 쓰기로 결심한 것도 그런 이들에게 보내는 위로의 메시지가 아닐까. ‘이 지옥을…’은 참 먹먹한 책이다. 담담한 문장 속에 절망이 빼곡하다. 차이는 있겠지만, 갈수록 팍팍한 삶에 힘겨워하는 청춘들의 눈물이 배어 있다. 흥미로운 건, 후반부에 에리코의 말투가 달라진단 점이다. 마치 딴 사람처럼 주장과 의견을 쏟아낸다. 결이 좀 안 맞긴 한데, 얼마나 하고픈 말이 많았을까 싶다. 그래서 더욱, 더 많은 목소리가 울리는 세상이 돼야 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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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텅 빈 공장, 남겨진 사람들… 희망은 어디에 있는가

    삶은 그래도 계속된다. 하지만 행복도 이어질까. 제인스빌. 미국 위스콘신주에 있는 작은 도시. 인구는 겨우 6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긍심이 넘쳐난다. 어디나 그렇듯 크고 작은 문제야 있다. 그래도 안정적이다. 부유하진 않아도 기름기가 흐른다. 대다수는 안락한 노후를, 혹은 근사한 미래를 꿈꿨다. 그런데 폭풍우가 몰아쳤다. 조짐은 진작부터 보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미 자동차산업은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하필 제인스빌 경제의 근간은 1923년 첫 자동차를 생산한 GM 공장이었다. 전성기엔 7000명, 당시에도 3000명 이상이 종사하는. 그 공장이 문을 닫았다. 처음엔 절망보다 낙관이 우세했다. 일시적 중단이려니 싶었다. 그게 아니라도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싶었다. 하지만 부동산은 폭락했고, 제조업 노동자가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정부와 지역 사회가 나름의 애를 쓰긴 했다. 하지만 보조금이나 후원금은 갑자기 텅 빈 월급봉투를 메울 수 없었다. 폭풍이 지나갔다고 끝이 아니었다. 햇볕이 없는 먹구름 아래에서 젖은 옷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몇몇에게만 실낱같은 햇빛을 허락한 채. ‘제인스빌…’은 참 조심스러운 책이다.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 저자 밴스는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운 이야기”라 극찬했는데, 뭔 말인지 알겠지만 차마 그렇게 부르질 못하겠다. 담담하게 박힌 글자 속에 이토록 애잔함이 가득한데 어찌 아름답다고 부를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는 뻔한 표현 말고는 달리 떠오르질 않는다. 물론 미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저자는 상찬 받아 마땅하다. 2008년 GM 공장이 폐쇄된 뒤 2013년까지 제인스빌이 변해가는 과정을 대단한 필력으로 켜켜이 쌓아올렸다. 뭣보다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집중했는데, 이게 상상 이상이다. 사실 기반산업이 무너진 도시의 곤궁함은 꽤나 익숙한 테마다. 제인스빌은 몰라도 거제와 군산은 아니까. 하지만 책은 우리가 가진 정보가 얼마나 파편적이고 피상적인지 잘금잘금 씹어준다. 가슴을 울린 공명을 감히 드러내기도 겸연쩍게. 뭣보다 재난이 휩쓸고 간 뒤 이에 대처하는 자세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절망을 부르짖는 저편에선 희망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초점을 맞춘 사람들은 모두 ‘다시 씨앗을 심는’ 이들이었다. 취업교육을 받고, 살림이나 잠을 줄이고, 싸우고 또 싸웠다. 가진 자들도 외면하지 않았다. 기부하고 지원하고 곁을 지켰다. 각자의 방법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려 애썼다. 하지만 본질은 바로 그 결과에 있었다. 모든 씨앗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었다. “주민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부는 형편이 피고, 일부는 비통해하고, 일부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 최근에 시행된 조사의 결과를 보면, 실업률은 4% 아래까지 떨어졌다.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실업률이다. … 좋은 소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직업을 가진 모든 주민들이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실질 임금은 눈에 띄게 하락했다.” 비가 오지 않는 땅은 사막이 되기 쉽다. 하지만 폭우를 견딜 우산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진 않는다. 게다가 더 큰 아픔은, 비는 또다시 내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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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성기 누리던 GM공장서 7000명이 잘렸다…곤궁한 도시의 삶

    삶은 그래도 계속 된다. 하지만 행복도 이어질까. 제인스빌. 미국 위스콘신 주에 있는 조그만 도시. 인구는 겨우 6만 명이 조금 넘는다. 하지만 시민들은 자긍심이 넘친다. 어디나 그렇듯 크고 작은 문제야 있다. 그래도 안정적이다. 부유하진 않아도 기름기가 흐른다. 대다수는 안락할 노후를, 혹은 근사한 미래를 꿈꿨다. 그런데 폭풍우가 몰아쳤다. 조짐은 진작부터 보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앞두고 미 자동차산업은 헛발질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하필, 제인스빌 경제의 근간은 1923년 첫 자동차를 생산한 GM공장이었다. 전성기엔 7000명, 당시에도 3000명 이상이 종사하는. 그 공장이 문을 닫았다. 처음엔 절망보다 낙관이 우세했다. 일시적 중단이려니 싶었다. 그게 아니라도 산 입에 거미줄 치랴 싶었다. 하지만 부동산은 폭락했고, 제조업 노동자가 갈 곳은 마땅치 않았다. 나름 정부나 지역사회가 애를 쓰긴 했다. 하지만 보조금이나 후원금은 갑자기 텅 빈 월급봉투를 메울 수 없었다. 폭풍이 지나갔다고 끝이 아니었다. 햇볕이 없는 먹구름 아래에서 젖은 옷은 갈수록 무거워졌다. 몇몇에게만 실낱같은 햇빛을 허락한 채. ‘제인스빌…’는 참 조심스러운 책이다. ‘힐빌리의 노래’(흐름출판) 저자 밴스는 “가공되지 않은 아름다운 이야기”라 극찬했는데, 뭔 말 인지 알겠지만 차마 그렇게 부르질 못하겠다. 담담히 박힌 글자 속에 이토록 애잔함이 가득한데 어찌 아름답다고 부를까. 책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단 뻔한 표현 말고는 달리 떠오르질 않는다. 물론 미 워싱턴포스트 기자인 저자는 상찬 받아 마땅하다. 2008년 GM 공장이 폐쇄한 뒤 2013년까지 제인스빌이 변해가는 과정을 대단한 필력으로 켜켜이 쌓아올렸다. 뭣보다 그곳을 살아가는 사람에 집중했는데, 이게 상상 이상이다. 사실 기반산업이 무너진 도시의 곤궁함은 꽤나 익숙한 테마다. 제인스빌은 몰라도 거제와 군산은 아니까. 하지만 책은 우리가 가진 정보가 얼마나 파편적이고 피상적인지 잘금잘금 씹어준다. 가슴을 울린 공명을 감히 드러내기도 겸연쩍게. 뭣보다 재난이 휩쓸고 간 뒤 이에 대처하는 자세는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절망을 부르짖는 저편에선 희망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초점을 맞춘 사람들은 모두 ‘다시 씨앗을 심는’ 이들이었다. 취업교육을 받고, 살림이나 잠을 줄이고, 싸우고 또 싸웠다. 가진 자들도 외면하지 않았다. 기부하고 지원하고 곁을 지켰다. 각자의 방법에 동의하건 하지 않건, 자신들의 도시를 지키려 애썼다. 하지만 본질은 바로 그 결과에 있었다. 모든 씨앗이 꽃을 피우는 게 아니었다. “주민들은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일부는 형편이 피고, 일부는 비통해하고, 일부는 그럭저럭 살아간다. …최근에 시행된 조사의 결과를 보면, 실업률은 4% 아래까지 떨어졌다. 21세기가 시작된 이래 가장 낮은 실업률이다. …좋은 소식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 직업을 가진 모든 주민들이 편안한 생활을 영위하기에 충분한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다. 주민들의 실질 임금은 눈에 띄게 하락했다.” 비가 오지 않는 땅은 사막이 되기 쉽다. 하지만 폭우를 견딜 우산이 누구에게나 주어지진 않는다. 게다가 더 큰 아픔은, 비는 또 다시 내린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1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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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있는 그대로 세상을 보라,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면

    책을 읽다가 이리 겸연쩍기도 처음이다. 처음부터 문제 13개를 내놓더니 풀어보란다. 독자 수준을 뭐로 보나 싶게 ‘쉽다’. 휘리릭 풀고 답을 봤는데 아뿔싸. 반 이상 틀렸다. 당황한 마음을 저자는 더 후벼 판다. 보기가 3개이니 침팬지도 33%는 맞힐 거라고. 다만 위안도 건넨다. 한국 포함 14개국 1만2000여 명이 풀었는데 정답률이 13%라고. 심지어 노벨상 수상자와 의료계에선 점수가 더 낮았단다. 어떤 문제이기에 이럴까. 하나 고르자면 ‘지난 20년간 세계 인구에서 극빈층 비율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늘거나 비슷할 줄 알았더니 정답은 ‘거의 절반으로 줄었다’이다. 갈수록 삶이 팍팍하다던 우리네 푸념은 뭐였단 말인가. 저자는 또 지긋이 못 박는다. “사람들이 자기가 세상을 오해했음을 알았을 때, 당혹스러워하기보다는 아이 같은 궁금증과 영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팩트풀니스’를 읽는 과정은 상당히 버겁다. 어렵게 쓴 탓이 아니다. 오히려 똑 부러지게 명확하다. 문제는 페이지를 넘길수록 진실이라 믿었던 세계관에 자꾸 금이 간다. 세상은 이토록 발전했고 나아졌는데, 우리는 왜 여전히 1960년대에나 맞아떨어질 편견을 진실이라 붙잡고 살았을까. 저자 말마따나 유엔이나 세계은행 홈페이지 통계만 들어가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책이 권하는 건 단 하나다. 번역하자면 ‘사실충실성’이라 부를 제목처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보자는 게다. 그럼 세상이 이렇게 살 만하니 엔조이하면 되는 걸까. 아니다. 저자는 계층갈등이나 지구온난화 등 산적한 이슈를 가벼이 여기란 뜻이 아니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면 문제도 풀 수 있단 바람이다. 곪은 상처가 어딘지 알아야 약도 바를 수 있듯. 스웨덴 통계학 석학이던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다 2017년 세상을 떠났다. 남겨진 이들의 몫도 자명하다. 인정할 건 인정하고, 반성할 건 반성하자. 오해를 풀면 관계도 회복될지니. 세상이라는 저버릴 수 없는 친구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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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괴짜이자 천재… 세상을 매혹시킨 디자이너 ‘맥퀸’

    언젠가 한 출판사 대표에게 물어봤다. 국내에선 왜 평전이 인기가 없냐고. 사견을 전제로 그는 답했다. ‘위인전 효과’ 때문일지도. “이유가 여러 갈래겠죠. 근데 책이 다룰 정도면 ‘교훈적’이길 바라는 분위기가 있습니다. 평전의 핵심은 인물을 입체적으로 들여다보는 건데. 게다가 삶이 바빠서 그런지, 큰 줄기만 알려고도 하고. 그래서 저희끼린 ‘교육용 위인전’에 익숙해서가 아닐까 짐작하곤 하죠.” 그게 맞는다면, ‘알렉산더…’는 그런 흐름을 가장 거슬러 올라가는 책이다. 평범한 우리네에겐 별반 교훈적이지 않다. 그리 두껍진 않지만 간략하지도 않다. 패션 문외한에겐 진입장벽도 있다. 일단 맥퀸이 누군지 모르면 어떻게 이 책을 집어 들겠나. 하지만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만끽하고 싶다면 ‘알렉산더…’는 탁월한 선택이다. 거칠고 퇴폐적이며 음습하고 파괴적이지만, 강력하고 끈질기다. 비록 2010년 스스로 세상을 등지며 짧은 생애는 멈춰버렸지만, 알렉산더 맥퀸이란 이름은 여전히 살아 숨쉬는 것처럼. 영국 노동자 집안 출신인 그는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언제나 돈에 쪼들렸고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매형에게 성폭력에 시달린 상처는 평생을 지배했다. 게다가 보잘것없는 외모에 동성애자였으니. 뭐 하나 ‘주류’가 될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디자이너로 승승장구했을 때조차 비아냥거림이나 수군거림을 견뎌야 했다. 그럼에도 맥퀸은 자기가 뭘 잘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그는 스케치 없이 원단에 바로 가위를 갖다대도 완벽한 옷태를 만들어냈다. 양복점 수습 등 밑바닥부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았기에 현장을 장악할 줄 알았다. 그리고 ‘패션을 위한 패션’에 갇히기보단 경계를 넘나들며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또 그걸 실현시킬 추진력을 내뿜었다. 물론 단점도 뚜렷했다. 그런 시절 그런 업계였다지만, 술과 마약에 찌들어 살았다. 괴팍했고, 치기 어렸다. 뭣보다 인성이 ‘×차반’이었다. 평전은 다소 애정을 갖고 점잖게 감싸는데, 천재고 뭐고 친구 삼긴 글렀다. 인간적 배신도 적지 않다. 그런데 묘하다. 그래서 더 이 인물이 끌린다면 이상하게 들릴까. 부제 ‘광기와 매혹’처럼 나방을 유혹하는 불꽃이 넘실거린다. 게다가 구질구질한 짠함도 귀를 간질인다. 역시, 인생은 ‘기브 앤드 테이크(give & take)’다. 제로섬 게임처럼 뭔가 가지면 뭔가를 잃는다. 악마가 건넨 행운은 신이 주는 행복을 앗아가는지도. 다른 뜻에서도 ‘알렉산더…’는 참 반갑다. 2004년 재즈피아니스트 빌 에번스로 시작했던 ‘현대 예술의 거장’ 시리즈는 2012년 26권 뒤론 만날 수 없었다. 지난해 기존에 소개했던 구스타프 말러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신(新)버전으로 내놓더니, 드디어 진정한 재출발을 알렸다. 마침 ‘알렉산더…’의 원서 부제는 ‘Blood Beneath the Skin’이다. 시리즈도 면면히 혈관을 타고 생명이 흘러가길 기대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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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르네상스-종교개혁… 거대한 물결 뒤엔 ‘네트워크’ 있었다

    참 대단한 양반이다. 미국 하버드대 역사학과 교수인 저자는 쉼 없이 굵직한 책을 펴낸다. ‘금융의 지배’ ‘로스차일드’ 등 무게도, 내용도 묵직하다 못해 버거울 정도. 솔직히 너무 두꺼워 주저할 때도 있지만, 결국 읽어 보면 감탄한다. ‘광장과 타워(The Square And The Tower)’도 실망스럽지 않다. 일단 제목이 근사하다. 책의 주제를 멋들어지게 담았다. 서양에서 중세나 근대에 조성한 스퀘어와 주변 타워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다. 높다란 탑이 수직적 위계조직을 상징한다면, 널찍한 광장은 수평적인 관계인 ‘네트워크’를 뜻한다. 즉, 인류는 왕국이나 제국과 같은 계층 구조와 이를 거스르는 연결망 조직의 움직임을 통해 진화했다는 것이다. 그간 역사는 권력 중심으로 쓰이고 설명돼 왔기에 저자는 네트워크라는 관점에서 이를 들여다보려 한다. 사실 네트워크란 용어는 20세기 무렵부터 흔히 쓰여, 이전 역사에서 그다지 중요하단 인식이 없었다. 하지만 저자는 프리메이슨이나 일루미나티 같은 조직부터 현재의 페이스북이나 구글까지 역사의 주요한 대목에선 네트워크가 강한 힘을 발휘했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4차 산업혁명 등의 거대한 물결도 네트워크가 작용했다고 본다. 다만 네트워크가 언제나 순기능만 가진 건 아니었다. 질병의 확산이나 종교적 갈등처럼 “의도하진 않았지만 가끔은 끔직한 재앙을 가져오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에 네트워크는 역사에서 더욱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앞서 말했지만 ‘광장과 타워’는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경제사학이 전공이지만 다양한 분야를 거침없이 넘나들면서도 논거의 핵심을 잃지 않는다. ‘통섭’을 이렇게 체화해 내는 학자는 정말 드물다. 다만 다소 장황한 대목도 없지 않다. 이 책의 1부 서론은 굳이 이렇게 길게 써야 했을까 싶다. 호불호를 떠나서 유발 하라리의 ‘정신없이 몰아치는’ 흡입력이 아쉽다고나 할까. 비싸고 맛있는 특급 요리라서 허겁지겁 먹지 말란 깊은 뜻이 있을 거라 혼자 납득해 본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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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혁명과 위기 사이… 정규직 없는 시대가 가져올 미래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한두 번쯤 꿈꾸지 않을까. 조직을 벗어난 자유로운 삶을. 그런데 조만간 이런 ‘선택’의 옵션조차 사라질지 모른다. 모두까진 아니라도 대다수가 프리랜서나 자영업자가 되는 세상. ‘긱 경제(gig economy)’의 시대가 오기 때문이다. 긱 경제란 전통적인 정규직과 달리 임시직이나 프리랜서가 주를 이루는 경제 구조를 일컫는다. 당연히 자기 사업이나 가게를 하는 이들도 포함되지만, 이 용어는 그보다는 새로운 근로 형태에 초점을 맞춘다. 이른바 ‘독립계약자’다. 독립계약자는 글로벌 차량공유업체 ‘우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우버에서 실제로 차를 운전하는 기사는 그들의 직원이 아니다. 개인사업자로서 우버와 계약을 맺은 신분이다. 때문에 본사의 지시를 따를 필요도 없고, 근무 시간이나 방식도 맘대로 정할 수 있다. 우버 이후 ‘청소계의 우버’ ‘배달계의 우버’ 등 숱한 분야에서 비슷한 형태의 스타트업이 쏟아졌다. 대다수가 정보기술(IT) 업계에서 출발한 이들이 꿈꾸는 장밋빛 미래는 자명하다. 더 이상 숨 막히는 직장에 얽매이지 마라. 자유롭게 일하고 원하는 대로 쉬라. 긱 경제는 혁명적 대안이 될 것이다. 과연 그럴까. 스타트업 전문기자로 활동해 온 저자는 여기에 단연코 제동을 건다. 분명 대세는 거스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런 경제구조를 낙관적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물론 컴퓨터 프로그래머 같은 전문가들에겐 독립계약은 꽤나 ‘짭짤한’ 노동방식이 될 수 있다. 조직에 얽매이지 않고도 더 많은 수익을 거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호사를 누리는 건 ‘일부’일 뿐이다. 학력이나 경력이 떨어지는 이들은 거기서도 도태됐다. 요령을 터득한 이들조차 일감을 따내려 하루 종일 컴퓨터나 휴대전화란 ‘족쇄’에 발목 잡힌다. 심지어 복지 혜택도 없는 데다, 해고(이 관계에선 ‘퇴출’이라 부른다)까지 쉽다. 이름과 업종만 다를 뿐, 우리네 프랜차이즈 가게들의 한숨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렇다고 이런 기업들이 다 나쁘단 뜻은 아니다. 좀 더 나은 수익과 지원을 제공하려 노력하는 업체도 많다. 미국의 한 청소공유업체는 아예 직원을 정식으로 채용하고 스톡옵션도 줬다. 노동자가 일터를 옮길 때마다 따라 움직이는 사회보험 프로그램인 ‘이동형 복지’를 만드는 곳도 적지 않다. 저자가 강조하고 싶은 건 정부와 기업, 시민들이 이런 구조의 변화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응 방안을 서둘러야 한단 점이다. “긱 경제는 한때 그 창조자들이 상상했던 것과 달리 ‘노동의 미래’에 대한 주문형 개선책이 아니다. 그러나 노동의 미래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전망하고 그에 대비하기 위해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떤 수고를 기울여야 할지 고민한다면, 긱 경제가 현실의 생생한 사례로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직장이 없는…’은 끝내준다. 뻔한 경제서적의 외피를 썼지만, 공들인 취재를 바탕으로 긱 경제의 속살을 제대로 파헤쳤다. 뭣보다 숫자나 이론에 얽매이지 않고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사람들’을 들여다보는 인간미가 물씬하다. 원서의 부제인 ‘직업의 종말과 노동의 미래’가 궁금하다면 충분히 읽어볼 가치가 차고 넘친다. 그나저나 정말 세상은 어디로 가는 걸까.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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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이상과 현실의 괴리… 스웨덴판 귀농 이야기

    제목만 보면 뜨거운 연애가 떠오를 터. 하지만 우리로 치면 ‘귀농 이야기’다. 스웨덴 문학 강사였던 저자는 2010년 아버지 목장을 물려받았다. 아내, 세 아이와 함께 낙향한 이유는 간명하다. 안 그래도 도시가 지겨워졌는데, 재산까지 물려받았으니. 그런데 ‘양치기의 삶’은 생각만큼 근사하지 않다. 제목 그대로, 맘이 널뛰기를 한다. 짭짤한 귀농 노하우를 기대한다면 얼른 덮으시길. 3년의 일기를 정리한 이 책은 정보보단 금언집(金言集)에 가깝다. 대단한 명언도 없는데, 짤막하되 정갈한 문장에 삶의 지혜가 콕콕 박혀 있다. 양 도축이나 채식주의, 대규모 농업 등에 대한 현실적인 사변들이 가볍지 않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역시 인생이란 어디에 살든 모순덩어리인 것을.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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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기억하는 역사는 얼마나 진실일까

    “역사가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면, 기억은 죽은 자와 산 자의 대화이다. … 전후 세대에게 그들이 태어나기도 전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도 없고 또 물어서도 안 되지만, ‘기억 연구’라는 영매를 통해 과거의 비극과 만나고 죽은 자들과 소통하고 기억해야 하는 책임은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있다.” 참으로 어려운 문제다. 솔직히 말하면, 이 책을 읽은 뒤 좀 후회했다. 명쾌한 문장 덕에 배운 게 많지만, 머리도 가슴도 뻑뻑해졌다. ‘역사에 대한 기억’이 이다지도 복잡한 일일 줄이야. 자칫 양비론이나 양시론에 휘둘리고픈 유혹마저 느껴졌다. 일단 감 놔라 배 놔라 하기 쉬운 남의 일부터 짚어 보자. “베일 뒤에 숨은 가해자”였던 오스트리아. 알다시피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에 가장 적극적으로 동조했던 국가였다. 당시 ‘제3제국’ 전체 인구 가운데 오스트리아인은 8% 정도였지만 나치 친위대의 14%나 차지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들은 전후 스스로를 나치의 첫 번째 피해국이라 불러왔다. 히틀러의 서슬에 휘둘린 불가항력적 가담자일 뿐이라는 논리다. 2013년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1%가 ‘과거 청산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다’고, 46%는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희생자’라고 답했다고 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일본이 자행하는 ‘기억 조작’은 더하다. 우리를 비롯해 아시아를 사지로 몰아넣은 제국주의 주범이 가녀린 원폭의 피해자인 양 행세한다. 위안부 문제는 군이나 정부가 이를 지시했다는 증거나 문서는 어디에도 없다는 얄팍한 ‘실증주의’를 들이민다. 특히 “많은 일본인이 자신은 군부 지도자들에게 속은 순진한 보통 사람일 뿐이며, 오히려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속에서 천불이 날 얘기지만, 저자는 거울에 비친 우리 모습도 냉정히 들여다볼 것을 주문한다. 사례로 든 ‘집합적 유죄’란 개념이 그렇다. 해나 아렌트는 단지 독일인이란 이유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고 항변했다. 만약 전후 일본이 똑같은 논리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 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나 더. 그렇다면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서 벌인 행위에 대해서는 현재의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물론 사안마다 경중이 다르며 ‘침묵’과 ‘부정’과 ‘왜곡’은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억 전쟁의 면죄부를 ‘내로남불’로 선택할 순 없는 노릇이다. 이에 대해 저자는 “해결의 실마리는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책임과 그 과거를 기억할 책임을 구분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성적으로나 감성적으로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결국 하나씩 풀어나갈 수밖에 없으리라. ‘기억 전쟁’은 몹시 날카롭고 매섭다. 역사를 자기 입맛대로 재단하려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 암세포는 우리 사회, 우리 인식 속에서도 살아서 꿈틀거린다. 어떤 수술이나 약물이 효과가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넋 놓고 있다간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암을 앎으로써 다시 한번 출발점에 서야 한다. 지난한 싸움이라 할지라도.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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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25년간 여행하며 수집한 세상과 그 시대의 사람들

    “이웃을 사랑하기란 어렵고, 적을 사랑하기란 더 어려우며, 후자는 실제로 가끔 부주의한 판단이다.” “자유는 자칫 퇴색하기 쉬운 개념이다. 자유 덕분에 오히려 엄격한 이데올로기를 고수하는 선택지가 가능해질 수도 있다.” 명언 노트라도 하나 사야 할까. ‘경험 수집가의 여행’은 최근 몇 년 사이 읽은 책 가운데 ‘금과옥조(金科玉條)’ 같은 문장들이 가장 뻔질나게 튀어나온다. 일상생활에서 들었다면 느끼했을지도 모를 이런 글귀를 세련되고 유려하게 엮다니. 일단 저자의 펜에 경배를….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 임상심리학과 교수인 그는 원래 저널리스트로서도 방귀깨나 뀌는 인물이다. 실은 이 책도 뉴욕타임스와 뉴요커, 에스콰이어 등 여러 매체에 실었던 글 가운데 엄선했다고 한다. 1988년부터 2015년까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세계를 돌며 겪은 기록들은 쫀득쫀득하면서도 싱싱한 날것의 냄새가 물씬하다. 뭣보다 ‘경험…’은 한가한 여행 후일담과는 결이 다르다. 저자는 여행이란 직접 체험이 담겼기에 관광보다 윗길이라고 했지만, 그보다는 르포라고 봐야 옳을 듯하다. 다양한 주제를 다루면서 저자가 놓치지 않는 대목이 바로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015년 국내에도 출간했던 ‘부모와 다른 아이들’(열린책들)에서 보여줬던 놀라운 취재와 따스한 인간애를 다시 한번 만끽할 수 있다. 묵직하기 이를 데 없었던 심층보고서 ‘부모와…’와 달리 허리띠를 느슨하게 풀고 가벼운 맘으로 접근할 수 있단 매력은 덤. 다만 한계도 살짝 엿보인다. 25년간 다양한 언론에 썼던 기사를 모으다 보니 아무래도 ‘도도히 흐르는 굵은 강줄기’는 흐릿하다. 게다가 1988년의 소련과 2015년의 호주는 변해버린 저자의 나이와 환경만큼이나 동떨어진 분위기인 것을. 물론 이런 아쉬움을 메워주는 지성과 문장력이 있긴 하다. 어쨌거나 이번 기회에 서재에 좋아하는 작가 이름을 또 하나 추가하시길. 그만한 ‘솔로몬의 지혜’가 없어 보인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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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정치의 숨겨진 본질, 시공을 넘어선 탐구

    생존해 있는 이탈리아 정치철학자 조르조 아감벤의 글은 국내에 번역되기 시작한 10년 전부터 보기 드문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아감벤은 발터 벤야민 저서의 이탈리아 번역 책임자다. 벤야민과 유대인 랍비 출신 종교학자 야콥 타우베스에게 끌려 ‘남겨진 시간’이란 책을 썼다. 정치철학자 카를 슈미트는 생면부지의 타우베스에게 전화를 걸어 정치 토론을 제안했다. 네 사람 사이에 시공을 뛰어넘어 정치의 본질에 대한 낯선 생각들이 오갔다.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는 그를 죽이더라도 살인죄로 처벌받지 않는, 고대 로마법상의 특이한 존재다. ‘호모 사케르’를 통해 드러나는 정치의 숨겨진 본질은 벤야민의 메시아주의, 예외 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주권자라는 슈미트의 사상과 연결돼 있다. 아감벤을 다룬 국내 사회과학 분야의 첫 저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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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불운 이겨내고 성공 이룬 ‘슈퍼맨’들의 비밀

    잠깐 눈을 감아보자. 누구나 생애 한 번쯤은 초인을 꿈꾼 적이 있지 않은가.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날거나 복면을 쓰고 빌딩을 타는. 물론 꼭 슈퍼히어로일 필요는 없다. 뭔가 특출한 능력을 지니고픈 맘을 다들 품어본다. 하나 나이를 먹을수록 환상은 저 멀리 떠나간다. 평범하다 못해 남보다도 뒤처지진 않는지. 괜스레 뒷목이 구부정해진다. 그런데 ‘슈퍼노멀’은 왠지 그러지 말라고 어깨를 다독이는 기분이 든다. 실은 책 자체가 힐링을 주려는 목적을 지니진 않았다. 오히려 과거에, 주로 어린 시절에 여러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지를 주목한 책이다. 다시 말해, ‘Super Normal’은 고난을 극복한 품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소개다. 미국 버지니아대 교육학 교수인 저자는 현지에서도 유명한 임상심리학자라고 한다. 20년 넘게 수많은 이들을 상담해왔는데, ‘역경을 기회로 바꾼’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가정불화 등을 겪은 이들은 행동장애나 학습장애 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꼭 정신질환이 아니어도 문제아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운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유능하고 자신감 넘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엇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이를 이겨내는 힘. 저자는 이 슈퍼노멀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했다. 일단 이런 회복탄력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인간의 뇌가 지닌 ‘투쟁-도피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투쟁 반응이란 말 그대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해군장교로 훌륭하게 성장한 폴이란 인물은 어린 시절 극심한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힘겨웠지만 그는 분노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기 삶을 지키고 처한 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 흔히 분노는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장애물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피 반응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만약 어린아이가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면 이에 맞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럴 경우 외적으로 순응하는 척하면서 현실과 ‘거리 두기’를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한다. 한마디로 투쟁 반응이 ‘문제 중심 대처’라면, 도피 반응은 ‘정서 중심 대처’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 싶겠지만, 이를 통해 곤란을 버텨낸 케이스는 생각보다 많다. ‘슈퍼노멀’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역경을 이겨낸 우리네 이웃의 승전보만 전하지 않는다. 이렇게 어렵사리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아픔과 고통이 남아있단 점을 잊지 않는다. 만화나 영화 속 슈퍼히어로도 그렇지 않나. 겉으론 화려하고 남부러울 게 없지만, 실은 인간적인 번뇌까지 벗어날 순 없다. ‘슈퍼’하긴 해도 ‘노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과학서적임에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페이지마다 배어있는 점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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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운한 출발에도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슈퍼노멀‘

    잠깐 눈을 감아보자. 누구나 생애 한번쯤은 초인을 꿈꾼 적이 있지 않은가. 망토를 두르고 하늘을 날거나 복면을 쓰고 빌딩을 타는. 물론 꼭 슈퍼히어로일 필요는 없다. 뭔가 특출한 능력을 지니고픈 맘을 다들 품어본다. 하나 나이를 먹을수록 환상은 저 멀리 떠나간다. 평범하다 못해 남보다도 뒤쳐지진 않는지. 괜스레 뒷목이 구부정해진다. 그런데 ‘슈퍼노멀’은 왠지 그러지 말라고 어깨를 다독이는 기분이 든다. 실은 책 자체가 힐링을 주려는 목적을 지니진 않았다. 오히려 과거에, 주로 어린 시절에 여러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어떻게 무너지거나 굴복하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지를 주목한 책이다. 다시 말해, ‘Super Normal’은 고난을 극복한 품성을 지닌 인물들에 대한 소개다. 미국 버지니아대학 교육학 교수인 저자는 현지에서도 유명한 임상심리학자라고 한다. 20년 넘게 수많은 이들을 상담해왔는데, ‘역경을 기회로 바꾼’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져왔다. 예를 들어, 어린 시절 가정불화 등을 겪은 이들은 행동장애나 학습장애 등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꼭 정신질환이 아니어도 문제아로 전락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반대로 “불운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유능하고 자신감 넘치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한 케이스도 적지 않다. 엇비슷한 어려움을 겪었는데도 이를 이겨내는 힘. 저자는 이 슈퍼노멀의 ‘회복탄력성’에 주목했다. 일단 이런 회복탄력성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는 인간의 뇌가 지닌 ‘투쟁-도피 반응’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먼저 투쟁 반응이란 말 그대로 맞서 싸우는 것이다. 해군장교로 훌륭하게 성장한 폴이란 인물은 어린 시절 극심한 집단따돌림을 당했다. 힘겨웠지만 그는 분노를 자양분으로 삼아 “자기 삶을 지키고 처한 환경을 개선시키겠다는 의지”를 관철시켰다. 흔히 분노는 부정적 감정으로 여겨지지만, 장애물을 극복하는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도피 반응도 상당한 효과를 발휘한다. 만약 어린 아이가 가정폭력에 시달린다면 이에 맞서기란 참으로 어렵다. 이럴 경우 외적으로 순응하는 척 하면서 현실과 ‘거리 두기’를 통해서 마음의 상처를 최소화한다. 한마디로 투쟁 반응이 ‘문제 중심 대처’라면, 도피 반응은 ‘정서 중심 대처’로 스트레스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런 게 무슨 소용이냐 싶겠지만, 이를 통해 곤란을 버텨낸 케이스는 생각보다 많다. ‘슈퍼노멀’은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다. 역경을 이겨낸 우리네 이웃의 승전보만 전하지 않는다. 이렇게 어렵사리 좋은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그들의 마음속엔 여전히 아픔과 고통이 남아있단 점을 잊지 않는다. 만화나 영화 속 슈퍼히어로도 그렇지 않나. 겉으론 화려하고 남부러울 게 없지만, 실은 인간적인 번뇌까지 벗어날 순 없다. ‘슈퍼’하긴 해도 ‘노멀’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과학서적임에도 인간에 대한 애정이 페이지마다 배어있는 점은 이 책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1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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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충동적이고 제멋대로인 10대… 이게 다 뇌 때문이야

    역시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었다. 소싯적에 주구장창 들었던 그 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공저자 가운데 한 명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신경학과 교수인 젠슨은 ‘아이들의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평생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발달하고 작동하는지를 살펴왔는데, 특히 10대 시기에 관심이 컸다. 왜 그런가 하니, 본인이 아들 둘을 키운 엄마였기 때문이다. 젠슨 박사는 앤드루와 윌이 청소년이던 시절에 크나큰 충격을 먹었다. 착하고 바르던 아들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일삼았다. 어느 날 갑자기 괴상망측한 머리 스타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이없는 교통사고를 내고는 별것 아니라는 듯 굴곤 했다. 오죽했으면, 서문 제목이 ‘믿을 수 없겠지만 외계인은 아닙니다’일까. 그런데 이 질풍노도를 그동안 과학계 안팎에선 꽤나 오해했다는 게 저자의 요지다. 젊은 혈기나 부실한 교육, 혹은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던 ‘호르몬의 이상 분비’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이들도 어느 정도 작용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바로 뇌가 덜 자랐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우리로선 알아먹기 힘드니 집어치우자. 지금까지 뇌 발달은 6∼8세 정도면 성인의 뇌에 근접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신 연구는 뇌가 10대는 물론이고 20대까지도 계속 성장한다는 걸 밝혀냈다. 게다가 발달에는 순서가 있는데, 뒤쪽에서 앞쪽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가장 늦게 발달하는 앞쪽 뇌가 ‘이마엽’과 ‘관자엽’이다. 짐작했겠지만 전자는 판단과 통찰, 충동 조절을 관장한다. 후자는 감정과 성욕, 언어를 맡고 있다. 딱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사례로 접근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선 최근 9∼26세를 대상으로 ‘나쁜 일이 자기에게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추측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복잡한 과정은 생략. 결론적으로 청소년은 나쁜 일이 벌어질 확률이 자기가 추측했던 것보다 더 클 경우, 실제 확률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반대 경우엔 잘 기억하면서. 다시 말해, 성인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뇌에서 부정적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앞쪽 ‘앞이마겉질(prefrontal cortex)’에 집중돼 있다. 아직 이 부분이 덜 성장하다 보니 그토록 무작정 위험한 일에 뛰어들고 있었던 셈이다. ‘10대의 뇌’는 참 재밌다. 또 한 명의 저자인 미 워싱턴포스트 유명 과학칼럼니스트 넛의 공이 큰 듯한데,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잘 정리했다. 추천사를 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말마따나 “10대 때 읽었다면 부모님께 까닭 없이 화내거나, 지나친 감수성에 사로잡혀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당연히 부모에게도 소중한 지침서가 되어줄 책이다. 다만 명쾌한 해설과 별개로, 조언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녀가 흡연을 하는 경우에 대한 처방이 그렇다. 여러 노력이 실패했다면, 차라리 씹는담배나 전자담배를 권하란다. 뇌는 이해가 가나 정서적으론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승자’가 하는 말이니. 왜 승자냐고? 큰아들은 명문대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는 하버드대를 나와 뉴욕에서 경영자문직을 얻었다. 갑자기 눈길이 확 쏠리지 않는가. 이 책을 더 꼼꼼히 읽고 싶었던 이유였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2019-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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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기행 일삼는 10대들, 이유 있었네!

    역시 어른들 말씀은 틀린 게 없었다. 소싯적에 주구장창 들었던 그 말.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공저자 가운데 하나인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신경학과 교수인 젠슨은 ‘아이들의 뇌를 연구하는 사람’이다. 평생 인간의 뇌가 어떻게 발달하고 작동하는지를 살펴왔는데, 특히 10대 시기에 관심이 컸다. 왜 그런가하니, 본인이 아들 둘을 키운 엄마였기 때문이다. 젠슨 박사는 앤드루와 윌이 청소년이던 시절에 크나큰 충격을 먹었다. 착하고 바르던 아들들이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기행을 일삼았다. 어느 날 갑자기 괴상망측한 머리 스타일로 나타나는가 하면, 어이없는 교통사고를 내고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굴곤 했다. 오죽했으면, 서문 제목이 ‘믿을 수 없겠지만 외계인은 아닙니다’ 일까. 그런데 이 질풍노도를 그동안 과학계 안팎에선 꽤나 오해했다는 게 저자의 요지다. 젊은 혈기나 부실한 교육, 혹은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졌던 ‘호르몬의 이상 분비’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이들도 어느 정도 작용했지만, 가장 중요한 걸 놓치고 있었다. 바로 뇌가 덜 자랐기 때문이었다. 어려운 전문용어는 우리로선 알아먹기 힘드니 집어치우자. 지금까지 뇌 발달은 6~8세 정도면 성인의 뇌에 근접한다는 게 정설이었다. 하지만 최신 연구는 뇌가 10대는 물론 20대까지도 계속 성장한다는 걸 밝혀냈다. 게다가 발달에는 순서가 있는데, 뒤쪽에서 앞쪽 방향으로 이뤄진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가장 늦게 발달하는 앞쪽 뇌가 ‘이마엽’과 ‘관자엽’이다. 짐작했겠지만 전자는 판단과 통찰, 충동 조절을 관장한다. 후자는 감정과 성욕, 언어를 맡고 있다. 딱 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가. 사례로 접근하면 더 이해하기 쉽다.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에선 최근 9~26세를 대상으로 ‘나쁜 일이 자기에게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 추측하게 하는’ 실험을 했다. 복잡한 과정은 생략. 결론적으로 청소년은 나쁜 일이 벌어질 확률이 자기가 추측했던 것보다 더 클 경우, 실제 확률을 제대로 기억해내지 못했다. 반대 경우엔 잘 기억하면서. 다시 말해, 성인보다 부정적인 정보를 처리하는 능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뇌에서 부정적 정보를 처리하는 영역은 앞쪽 ‘앞이마겉질(prefrontal cortex)’에 집중돼있다. 아직 이 부분이 덜 성장하다보니 그토록 무작정 위험한 일에 뛰어들고 있었던 셈이다. ‘10대의 뇌’는 참 재밌다. 또 한 명의 저자인 미 워싱턴포스트 유명 과학칼럼리스트 넛의 공이 큰 듯한데, 상당히 복잡한 내용을 지루하지 않게 잘 정리했다. 추천사를 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말마따나 “10대 때 읽었다면 부모님께 까닭 없이 화내거나, 지나친 감수성에 사로잡혀 방황하지 않았을 텐데.” 당연히 부모에게도 소중한 지침서가 되어줄 책이다. 다만 명쾌한 해설과 별개로, 조언은 다소 거리감이 느껴지는 대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자녀가 흡연을 하는 경우에 대한 처방은 그렇다. 여러 노력이 실패했다면, 차라리 씹는담배나 전자담배를 권하란다. 뇌는 이해가 가나 정서적으론 갸웃거려진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승자’가 하는 말이니. 왜 승자냐고? 큰 아들은 명문대에서 양자물리학을 전공해 박사과정을 밟고 있고, 둘째는 하버드를 나와 뉴욕 경영자문직을 얻었다. 갑자기 눈길이 확 쏠리지 않는가. 이 책을 더 꼼꼼히 읽고 싶었던 이유였음을 부인하지 못하겠다. 정양환기자 ray@donga.com}

    • 2019-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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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도한 이어 여현호… 언론인 출신 ‘靑직행’ 논란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소통수석비서관에 윤도한 전 MBC 논설위원을 임명한 데 이어 9일 국정홍보비서관에 여현호 전 한겨레신문 선임기자를 임명하자 이들의 원소속 언론사 노조들이 비판하고 나섰다.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겨레신문지부는 이날 여 비서관 임명에 대해 성명을 내고 “권력을 감시하던 언론인이 하루아침에 권력 핵심부의 공직자로 자리를 옮겼다”며 “공정성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를 해치는 일로서 매우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여 기자의 청와대행이 한겨레가 언론인 윤리에 어긋난다고 줄곧 비판해온 행태에 해당함을 분명히 밝힌다”며 “청와대에도 깊은 유감”이라고 했다. 문재인 정부 정책홍보를 총괄하게 될 여 비서관은 한겨레신문 정치부장과 논설위원, 선임기자를 지냈으며 임명 이틀 전인 7일 사표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한겨레신문은 여 비서관이 논설위원이던 2015년 10월 정연국 당시 MBC 시사제작국장이 박근혜 정부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되자 사설로 “현직 언론인이 최소한의 ‘완충 기간’도 없이 언론사에서 권력기관으로 곧바로 줄달음쳐 간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앞서 언론노조 MBC본부는 8일 윤 수석의 임명에 대해 성명을 내고 “사실상 현직 언론인이 청와대에 직행했다고 해도 할 말이 없다”며 “권력을 감시하고 고발하는 것을 소명으로 여기던 기자가 다른 자리도 아닌 청와대를 대표해 홍보하는 자리로 갔다는 것은 납득할 수가 없다”고 했다. 윤 수석은 지난해 12월 31일자로 MBC에서 명예퇴직했다.문병기 weappon@donga.com·정양환 기자}

    • 2019-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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