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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가 미국 페이스북 데이터센터에 설치된 태양광 모듈을 공급해 화제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부사장(사진)의 글로벌 전략이 성과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페이스북 데이터센터에 전기를 공급하는 뱅크소프트스테이션 발전소가 최근 가동에 들어갔다. 이 데이터센터는 태양광발전소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데, 여기에 설치된 35만 개의 모듈 일부가 한화 제품이다. 페이스북은 태양광발전소 가동으로 신재생에너지로 100% 돌린다는 당초 계획을 달성하게 됐다. 페이스북은 올해 안에 이 데이터센터 운영을 시작할 방침이다. 한화에서는 미국 페이스북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망에 자사 태양광 모듈 공급을 통해 북미 시장을 적극 공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내 태양광발전 수요에 대한 기대가 높다.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주요 기업들이 데이터센터를 구축할 때 신재생에너지 활용에 방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페이스북은 현재 80% 수준인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올해 안에 100%로 끌어올릴 방침이고 MS도 2023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70%로 높이기로 했다. 한화의 태양광 글로벌 전략은 김 부사장이 이끌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2025년 매출 19조 원, 영업이익 1조6000억 원의 목표를 설정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삼성전자가 주요 보직에 50대 사장을 전진 배치하는 등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대표이사 체제는 유지하되 젊은 사업부장을 앞세워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꾀한다는 전략이다. 20일 삼성전자는 사장 승진 4명, 위촉업무 변경 5명 등 총 9명 규모의 2020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김기남 부회장(DS부문장), 김현석 사장(CE부문장), 고동진 사장(IM부문장)의 3인 대표 체제를 유지하되 이들이 각자 겸직하던 종합기술원장, 생활가전사업부장, 무선사업부장 역할은 떼어내 새로운 얼굴로 대체했다. 전자계열사 업무를 총괄하는 정현호 사업지원 TF 사장 등도 유임하며 최상위 리더십은 안정을 유지한다는 기조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노태문 신임 무선사업부장(52·사장)이다. ‘젊은 피’의 대표 주자인 노 사장은 포스텍 박사 출신으로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2007년 슬림 카메라폰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39세에 상무가 됐고, 2010년 갤럭시S 개발로 ‘자랑스러운 삼성인상’을 받으며 3년 만에 전무를 달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번 삼성 사장단 중 최연소로 임원 승진 13년 만에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령탑을 맡게 됐다. 김현석 사장이 겸직하던 생활가전사업부장도 이재승 부사장이 맡을 것으로 알려지는 등 세대교체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 리더십 강화로 꼽힌다. 김 부회장이 겸직을 하던 종합기술원장에는 프린스턴대 박사 출신인 황성우 부사장(58)이 사장으로 승진해 맡게 됐다.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를 지냈던 황 사장은 2012년부터 삼성 종합기술원에서 선행 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해 왔다. 또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의 세계 최초 상용화를 주도한 통신 전문가인 IM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 전경훈 부사장(58)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번 승진 인사는 ‘기술 혁신에 보상이 있다’는 인사 기조를 재확인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삼성 최고경영진을 보좌하며 기획, 재무 등 삼성의 미래 밑그림을 그리던 인물들도 약진했다. 미래전략실 출신이자 현재 전자 계열사를 총괄하는 사업지원 TF 소속인 최윤호 부사장(57)이 경영지원실장(사장)에 승진 선임돼 삼성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됐다. 또 과거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을 맡았다가 미전실 해체 이후 삼성SDS 사업운영총괄로 이동했던 박학규 부사장(56)이 DS부문 경영지원실장(사장)으로 승진했다. 미전실 커뮤니케이션팀장 등을 거친 이인용 고문(63)은 삼성전자의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CR담당 사장이 됐다. 이 사장은 2월 출범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유일한 삼성 측 위원을 겸하고 있다. 전자 계열사 중에서는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에 경계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솔루션팀장(57)이 승진하면서 선임됐다. 2017년 11월부터 경영지원실장을 맡았던 노희찬 사장(59)은 에스원 대표이사로 이동하고, CR담당 윤부근 부회장(67)을 비롯해 권오현, 신종균 부회장은 고문으로서 조언자 역할을 맡을 예정이다. 삼성은 21일 삼성생명, 삼성카드, 삼성물산 등 다른 계열사 사장단 인사와 각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및 조직 개편급 후속 인사도 발표한다. 현성철 삼성생명 사장(60) 자리에 전영묵 삼성자산운용 대표이사 부사장(56)이 승진 선임되는 등 후속 인사도 세대교체가 예상된다.김현수 kimhs@donga.com·서동일 기자}

삼성전자가 주요 보직에 50대 사장을 전진 배치하는 등 세대교체 인사를 단행했다. 대표이사 체제는 유지하되 젊은 사업부장을 앞세워 안정과 변화를 동시에 꾀한다는 전략이다. 20일 삼성전자는 사장 승진 4명, 위촉업무 변경 5명 등 총 9명 규모의 2020년 정기 사장단 인사를 발표했다. 김기남 부회장(DS부문장), 김현석 사장(CE부문장), 고동진 사장(IM부문장)의 3인 대표체제를 유지하되 이들이 각자 겸직하던 종합기술원장, 생활가전사업부장, 무선사업부장 역할은 떼어내 새로운 얼굴로 대체됐다. 이번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인물은 노태문 신임 무선사업부장(52·사장)이다. ‘젊은 피’의 대표주자인 노 사장은 포스텍 박사 출신으로 1997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뒤 2007년 슬림 카메라폰 개발 공로를 인정받아 38세에 상무가 됐다. 그는 2010년 갤럭시S 개발로 ‘자랑스런 삼성인상’을 받으면서 상무 승진 3년 만에 전무를 달았다. 2018년 부사장으로 승진했고 1년 만인 2019년 정기인사에서 사장에 오르는 등 매번 고속승진으로 화제를 모았다. 삼성 사장단 중 최연소로 이번 2020년 정기인사에서 임원 승진 13년 만에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령탑을 맡게 됐다. 김현석 사장이 겸직하던 생활가전사업부장도 이재승 부사장이 맡을 것으로 알려지는 등 세대교체가 이어질 예정이다. 이번 인사의 또 다른 특징은 기술 리더십 강화로 꼽힌다. 김 부회장이 겸직을 하던 종합기술원장에는 프린스턴대 박사 출신의 황성우 부사장(58)이 사장으로 승진해 맡게 됐다. 고려대 전기전자전파공학부 교수를 역임했던 황 신임 사장은 2012년부터 삼성 종합기술원에서 선행기술 개발을 진두지휘해왔다. 또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의 세계 최초 상용화를 주도한 통신 전문가인 IM부문 네트워크사업부장 전경훈 부사장(58)이 사장으로 승진했다. 삼성전자 측은 “기존 3인 대표이사는 사업부문 간 시너지 창출과 전사 차원의 신사업·신기술 등 미래 먹거리 발굴을 비롯해 후진 양성에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 최고경영진을 보좌하며 기획, 재무 등 삼성의 미래 밑그림을 그리던 인물들도 약진했다. 미래전략실 출신이자 현재 전자계열사를 총괄하는 사업지원 TF 소속인 최윤호 부사장(57)이 경영지원실장(사장)에 승진 선임돼 삼성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됐다. 또 과거 미래전략실 경영진단팀장을 맡았다가 미전실 해체 이후 삼성SDS 사업운영총괄로 이동했던 박학규 부사장(56)이 DS부문 경영지원실장(사장)으로 승진했다. 미전실 커뮤니케이션팀장 등을 거친 이인용 고문(63)은 삼성전자의 대외 업무를 총괄하는 CR 담당 사장이 됐다. 이 사장은 2월에 출범할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유일한 삼성 측 위원도 겸하고 있다. 2017년 11월부터 경영지원실장을 맡았던 노희찬 사장(58)은 에스원 대표이사로 이동하고, CR담당 윤부근 부회장(67)은 경영 원로로서 조언자 역할을 맡게 된다. 전자 계열사 중에서는 삼성전기 대표이사 사장에 경계현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솔루션팀장(57)이 승진하면서 선임됐다. 홍원표 삼성SDS 사장(60), 이동훈 삼성디스플레이 사장(61), 전영현 삼성SDI 사장(60) 등 나머지 전자계열사 대표이사는 모두 유임한다. 삼성은 21일에 삼성생명, 삼성카드, 삼성물산 등 다른 계열사 사장단 인사와 각 계열사 부사장 이하 임원 및 조직개편 급 후속인사도 발표할 계획이다. 김현수기자 kimhs@donga.com서동일기자 dong@donga.com}

“‘대혼란’이란 표현도 부족하다. 3월 주주총회 전까지 상장회사마다 신임 사외이사를 찾아야 하는데 찾아지겠나. ‘대란’이 뻔히 보인다. 가뜩이나 안팎으로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는데 정부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법을 만들어 시행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정부가 당초 1년 동안 유예하기로 했던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강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14일 4대그룹 관계자는 이렇게 토로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한국은 세계 주요국 가운데 법으로 사외이사 임기를 제한하는 유일한 나라가 된다”라며 “사외이사의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라는 게 정부 설명인데 6년 이상 한 기업에 사외이사로 재직하면 독립성이 훼손된다는 근거는 대체 뭔가”라고 반문했다. 법무부는 당초 입법예고 후 법제처에 개정안을 넘기는 과정에서 경제단체들의 의견을 수렴해 사외이사 연임을 제한하는 규정 등 일부는 1년간 유예할 방침을 세웠다. 법무부 관계자는 “금융위원회 등 관계 기관들이 여당과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는 과정에서 유예 방침이 철회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지난해 10월 법무부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상법 시행령이 개정안대로 시행되면 올해 3월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외이사 임기 제한 규정에 따라 새로 뽑아야 하는 사외이사는 최소 566개사 718명이다. 이는 전체 사외이사(1432명)의 50.1%다. 재계는 사외이사 제도가 시작된 미국은 물론 독일 일본 등 주요 선진국 어디에도 기업의 사외이사 임기를 정부가 정하는 나라는 없다고 성토했다. 그간 기업 이사회가 ‘거수기’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정부가 사외이사 임기까지 규제하는 것은 과도한 자율성 침해라는 지적이다. 실제로 미국에는 사외이사의 경쟁사 겸임 금지 조항이 있는 대신 기간 규정은 없다. 따라서 장기 근무한 사외이사가 적지 않다. 미국 애플에서 20년째 사외이사를 맡고 있는 아서 레빈슨 이사회 의장을 비롯해 글로벌 가구회사 레깃앤드플랫에서 51년째 사외이사를 맡은 로버트 엔로 씨 등이 대표적이다. 이경상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조사본부장은 “사외이사를 너무 오래하면 기업과 유착관계가 생기는 등 폐단이 있을 수 있지만 거꾸로 전문성을 발휘해 회사와 주주를 위해 필요한 판단을 내릴 수도 있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상법 시행령 외에도 지난해 하반기부터 기업 지배구조와 관련된 시행령 개정안을 쏟아내고 있다. 지난해 11월 배임 등으로 유죄를 받은 기업 총수의 취업 제한을 골자로 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 시행령이 시행된 데 이어 지난해 12월 말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강화하는 ‘국민연금 적극적 주주활동 가이드라인’이 의결됐다. 국민연금이 기업 경영권에 지금보다 훨씬 쉽게 간섭할 수 있도록 이른바 ‘5%’룰을 완화하는 자본시장시행령도 곧 법제처 심사를 거쳐 내달 초 시행될 예정이다. 서동일 dong@donga.com·김정훈·김현수 기자}
기간제에서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근로자에게도 정규직과 같은 취업규칙을 적용해 호봉이나 수당을 동일하게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이 무기계약직과 정규직 근로자의 처우를 똑같이 해야 한다고 판결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슷한 이유로 사업주와 갈등을 겪고 있는 무기계약직 근로자의 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대법원 3부(주심 이동원 대법관)는 A 씨 등 7명이 대전문화방송(MBC)을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최근 원고 일부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환송했다고 13일 밝혔다. 계약직 사원으로 근무하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된 이들은 정규직에 비해 임금과 상여금 등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며 2013년 소송을 제기했다. 1심에서는 무기계약직을 정규직과 차별하는 것이 위법이라는 판결이 나왔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입사 경로가 정규직과 다르므로 임금이나 상여금 기준을 다르게 적용하는 건 위법이 아니라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다시 뒤집은 것이다. 재판부는 “기간제법에 따르면 ‘사용자는 기간제 근로자라는 이유로 같은 사업장에서 동종 또는 유사 업무에 종사하는 정규직에 비해 차별적 처우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취지를 감안할 때 해당 조항이 무기계약직에게도 동등하게 적용된다고 봤다. 특히 해당 사업장에 무기계약직에 대한 별도의 취업규칙이 없는 점을 지적하면서 “정규직에게 적용되는 취업규칙 등이 정한 근로조건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고 기본급, 상여금, 근속수당, 자가운전보조금이 지급되고 정기적인 호봉 승급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판결했다. 산업계와 노동계에서는 이번 판결을 기점으로 비슷한 소송이 이어질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상당수 대기업 및 은행권은 텔러, 캐셔 등 일반 정규직과 뚜렷이 구분되는 특수 직종을 무기계약직으로 두는 등 10여 년 전부터 법무 리스크에 대비해왔기 때문에 해당 판례의 큰 영향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2017년 이후 협력사 직원 등을 무기계약직으로 급격히 전환한 공공기관이나 직무 및 취업규칙 구분을 뚜렷이 해놓지 않은 중소기업은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전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이 같은 부서에서 ‘동종유사업무’를 하는 경우에 한해 같은 취업규칙을 적용하라는 취지”라며 “일반적으로 정규직과 무기계약직이 한 부서에서 같은 일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아 현장의 혼란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송혜미 1am@donga.com·이호재·김현수 기자}

“왜 10대 그룹은 거의 변하질 않을까요?” 지난해 12월 한 재계 경영인의 모임에서 이 같은 질문이 나왔다. 최근 20년 동안 한국의 10대 그룹에 오르는 기업의 이름이 손 바뀜 없이 거의 그대로인 데 대해 이유를 물은 것이다. 누군가 “삼성, 현대차, SK 등 주요 그룹이 너무 잘해서?”라고 반문했다. 다른 누군가는 “한국 산업구조가 고착화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사람들의 관심을 끈 해석은 주요 그룹 경영자인 A 씨로부터 나왔다. “10대 그룹 밑 기업들이 위로 올라오지 않으려 하거든요. 올라가 봐야 특별한 이득이 있나요? 오히려 ‘대가’만 치르게 됩니다. 앞으로도 기업 양극화는 심해질 것이고, 잘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한 반기업 정서도 더욱 강해질 거예요.” ‘공룡 기업’으로 찍히면 반기업 정서의 타깃이 될 뿐 아니라 규제당국의 ‘맞춤형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으니 10대 그룹이 되고 싶지 않은 ‘피터팬 신드롬’이 작용한다는 의미였다. 상위 기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늘어날 것이란 A 씨의 예측에 참석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편향적인 생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 중소·중견 기업 오너를 만나 보면 같은 말을 하는 걸로 봐서 A 씨의 분석을 터무니없다 치부할 수만은 없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로부터 1960년부터 2019년까지 자산 기준 10대 그룹 명단을 받아봤다. 1960년에도 1위는 삼성이었지만 낯선 기업이 적지 않았다. 삼호, 개풍, 대한 같은…. 1972년에는 국내 최대 자동차 회사이던 신진자동차, 건설로 급성장한 현대 등이 명단에 새로 등장했다. 1980년에는 대우, 선경(현 SK) 등이, 1990년에는 ‘봉고’로 인기몰이에 나선 기아자동차, 쌍용, 롯데 등이 ‘뉴 페이스’였다. 하지만 2000∼2019년에는 이렇다 할 신진 그룹을 찾기 어려웠다. 현대그룹이 계열 분리되고, LG와 GS가 헤어짐에 따라 생긴 순위 변동 정도였다. 특히 5대 그룹은 2005년 이후 15년 동안 변화가 없었다. 미국은 어떨까. 2000년, 2010년, 2020년 파이낸셜타임스 선정 글로벌 500대 기업 명단 등을 찾아보니 20년 동안 시장가치 기준 5대 기업 자리를 지킨 기업은 마이크로소프트뿐 나머지는 계속 바뀌었다. 2000년에는 제너럴일렉트릭(GE)이, 2010년에는 엑손모빌이 1위였다. 2020년에는 1월 4일 기준 애플, MS, 알파벳(구글 모기업), 아마존, 페이스북 순으로 시장을 장악했다. 이 기업들의 평균 나이는 30.6세다.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다르다. 한국은 좁은 내수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을 공략해야 하는 조건 때문에 대기업 중심으로 성장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기업이 여러 위기 속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한 것은 박수 받아 마땅하지만 20년 동안 ‘무서운 신인’이 없었다는 점은 우려스럽다.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의미도 되기 때문이다. 한 5대 그룹 계열사 사장은 “요즘만 같아선 규제든 여론이든 리스크가 커서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게 낫다는 분위기”라고 했다. 기업가 정신이 가장 활발해야 할 민간 기업 분위기가 이렇다. 이대로라면 2030년 주요 기업 명단도 똑같을 것 같다.김현수 산업1부 차장 kimhs@donga.com}
삼성 주요 계열사의 준법 여부를 감시하는 준법감시위원회가 2월 출범한다. 진보성향 변호사, 시민단체 인사 등이 포함된 준법감시위원회는 앞으로 삼성의 노동조합, 승계 관련 이슈 등 경영 전반에 걸쳐 성역 없이 감시할 예정이다. 기업 외부에 상설 준법감시 기구를 두는 것은 한국 재계에서 전례가 없던 일이다. 위원장을 맡은 김지형 전 대법관은 9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위원회가) 총수의 형사재판에 유리한 양형 사유로 삼기 위한 면피용 아니냐는 생각에 처음엔 거절했다”면서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직접 만나 위원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보장받았고, 삼성이 먼저 변화의 문을 열었다는 점이 중요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12월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다음 재판 기일인 이달 17일 전까지 삼성의 준법감시 체계 구축을 요구한 바 있다. 준법감시위는 별도 법인으로 삼성전자 물산 생명 SDI 전기 SDS 화재 등 7개 계열사와 협약을 맺고 다음 달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김 위원장은 “삼성이 변해야 기업 전반이 변한다. 삼성의 문제가 아닌 우리 기업 전반의 윤리경영 차원에서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수 kimhs@donga.com·서동일·임현석 기자}

“준법 감시 분야에 성역을 두지 않겠습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위원장 김지형 전 대법관은 9일 “법 위반 위험이 있는 대외 후원이나 계열사 특수관계인 사이의 내부거래 같은 공정거래, 뇌물수수 분야에만 (감시의 눈길을) 그치지 않을 것이다. 노조 문제나 승계 문제 등도 예외가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를 지켜본 주요 기업 관계자는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의 설립 취지, 구성, 감시 대상까지 전부가 파격적이라는 반응이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시민사회 인사가 포함된 상설 외부 준법감시기구는 국내에선 처음이다. 해외에서도 전문 준법경영 자문 기관에 의뢰하는 경우는 있어도 상설 기구를 만든 사례는 드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어떻게 운영되나 김 전 대법관은 ‘독립성과 자율성’이란 말을 수차례 강조했다. 그는 “위원회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삼성 내부의 개입을 철저히 배제했다. 앞으로 조직 운영 등 모든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는 과정에서도 삼성의 개입을 배제하고 독자적으로 운영하겠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준법감시위 위원은 김 전 대법관이 모두 직접 영입했다. 내부 위원인 이인용 삼성전자 고문도 삼성의 추천 없이 김 전 대법관이 선택했다. 나머지 5명과는 일면식이 없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재계 관계자는 “김 전 대법관은 삼성과 재벌 체제에 비판적인 인사들로부터 광범위하게 추천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위원회는 회사 외부에 별도법인 형태로 2월경 공식 출범한다. 삼성전자 삼성물산 삼성생명 등 주요 7개 계열사와 협약을 체결해 준법감시 업무를 위탁받는 형식이다. 이달 중 각 계열사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맺을 계획이다. 지난해 12월 17일 7개사 사장단과 법무법인 등이 협약과 관련된 법적 절차 논의를 끝낸 것으로 알려졌다. 위원회 위원들은 비상근직으로 이들을 지원할 사무국 형태의 상근조직도 꾸려진다. 위원들은 지난해 12월 상견례에서 삼성 전반의 준법감시 역할에 대해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노조, 승계 등 삼성 안팎에서 논란이 됐던 사안뿐 아니라 자체 홈페이지, 익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오르내리는 내부 고발 게시글도 필요할 경우 들여다볼 예정이다. 경실련 사무총장 출신으로 위원회에 합류한 고계현 소비자주권시민회의 사무총장은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일관되게 삼성 작업장 노동 문제와 기업 지배구조 문제, 경영권 상속 문제에 목소리를 내왔다. 시민사회가 제기한 문제들을 삼성이 원칙적으로 처리하는지를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뭐기에 삼성 준법감시위의 ‘실효적’ 준법감시 프로그램 계획은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가 제시한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의 기준과도 맞아떨어진다. 앞서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지난해 10월과 12월 두 차례 열린 재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위법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할 실효적 준법감시제도 마련을 주문했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을 참고해 달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8일 관련 방안을 재판부에도 별도로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은 구체적이면서도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를 요구하며 이를 평가할 기준도 상세히 정하고 있다. 제8장에 따르면 준법감시 체제에는 △범죄행위 방지를 위한 기준 및 절차 △경영진 훈련 프로그램 △정기 평가 △내부고발자 보호 시스템 등이 요구된다. 삼성 준법감시위가 △사전 예방 조사 △직무교육 프로그램 △이행점검 △내부고발자 익명 신고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공표한 것이 이 제도와 들어맞는다. 미국에서는 1991년 연방 양형기준 제8장이 시행되면서 기업문화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양형기준의 벌금 설정 방식이 기업 스스로 위법행위를 억제할 장치를 만들어 범죄행위를 방지·감지·보고하는 내부 시스템을 만들도록 유도하기 때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 내부에서는 2, 3년 전부터 이사회 기능을 보강해 준법감시체계를 강화하려 했지만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기에 불충분하다고 판단했다”며 “이번에 외부 기구를 신설하는 건 법원의 ‘숙제’를 넘어선 진정성 있는 변화의 의지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김현수 kimhs@donga.com·서동일·박상준 기자}

“우리는 구글, 페이스북과 파트너십을 맺고 있지만 대기업으로부터 직접 투자받은 것은 삼성뿐이다. 고객뿐 아니라 서비스 제공자(기술)까지 행복해야 진정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삼성의 철학이 우리의 창업정신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찾아가 만난 스타트업 ‘펄스(Puls)’의 미치 갤브레이스 대표는 “삼성은 우리가 원하는 정보와 기술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른 업체와 협력을 주선하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24시간 가전 수리공 연결 플랫폼을 개발한 펄스는 2017년 삼성의 투자를 받은 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가전 애프터서비스(AS)가 한국에 비해 불편한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지에서 큰 인기를 거두며 ‘AS업계의 우버’로 불리고 있다. 2017년 약 35만 명이던 소속 기술자는 현재 약 4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갤브레이스 대표는 “한국에서 이미 우수한 AS 시스템을 갖춘 삼성이 우리 같은 스타트업 플랫폼에 투자한다고 했을 때 놀랐다”며 “삼성 리더십의 오픈 마인드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혁신 공간 실리콘밸리에서 움튼 뉴 리더십 펄스 사례는 삼성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삼성의 실리콘밸리 투자의 첫 번째 원칙인 ‘지분은 소유하되 간섭하지는 않는다’가 실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임원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 그룹이 미국에 투자했다면 철저한 목표 아래 관리가 이뤄졌을 것”이라며 “투자 기업에 대한 자율성 보장은 삼성이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삼성이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이처럼 개방과 협업 지향으로 전환한 것은 2012년 삼성전략혁신센터(SSIC) 설립 이후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010년 사장으로 취임한 뒤 강조했던 ‘오픈 이노베이션 없이는 미래가 없다’는 철학이 조직 내 뿌리 내리기 시작한 시점이다. 1983년 새너제이에 반도체 현지 법인 설립으로 실리콘밸리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삼성의 목적은 ‘자사 제품 혁신’이었다. 지금은 다르다. SSIC와 삼성넥스트 등은 삼성 외부에서 새로운 먹거리와 혁신을 찾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프랜시스 호 SSIC 산하 삼성캐털리스트펀드 전무는 “실리콘밸리는 미래 세상이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혁신 공간”이라며 “2, 3년 안에 즉시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도 보지만 현재 삼성의 사업과 무관한 영역까지 눈과 귀를 열고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SSIC와 삼성넥스트가 주축이 된 ‘원석’ 발굴도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넥스트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투자한 90개 스타트업 중 65개가 활발히 운영 중이다. 나머지 25개 스타트업 중 14개는 다른 회사에 매각돼 삼성에 수익을 남겼다. 투자 실패 사례는 11개 기업에 불과하다. 브렌든 킴 삼성넥스트 글로벌투자 팀장은 “벤처 10곳 중 1, 2곳만 살아남아도 성공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실리콘밸리에서 현재의 투자성과는 꽤 괜찮다. 앞으로 추가 실패사례가 나올 수 있지만 우리는 전혀 두렵지 않다”고 했다.○ ‘삼성의 미래’, 4차 산업혁명 기술로 삼성은 실리콘밸리 조직을 통해 이종 DNA 수혈이라는 리더십 체인지도 꾀했다. 2012년 영입된 삼성의 첫 최고혁신책임자(CIO) 겸 삼성넥스트 사장인 구글 출신 데이비드 은 사장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과 실리콘밸리 출신 임원진은 삼성 전체의 혁신 DNA를 바꾸고 있다. 특히 이 부회장은 2018년 8월 △AI △5세대(5G) 통신 △바이오 △자동차용 전장부품 등을 ‘4대 미래 성장사업’으로 꼽으며 삼성의 미래 지향점이 ‘글로벌 리딩 테크 기업’임을 분명히 했다. 구글, 아마존, 애플 등 세계를 이끌고 있는 미국 테크 기업과 격전을 벌이겠다는 의지다. 삼성이 미래 신성장 산업을 발표한 것은 201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발광다이오드(LED),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의료기기, 바이오 등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한 이후 8년 만이었다. 장기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를 제외하고 이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 기술 기업으로 삼성을 전환시키겠다고 밝힌 셈이다. 이 부회장은 이를 위해 개방과 협업, 선행기술 투자 등 실리콘밸리식 혁신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경영진을 잇달아 소집하며 “지금은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그동안의 성과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며 변화를 주문했다.샌프란시스코·멘로파크=유근형 noel@donga.com / 김현수 기자}

삼성전자가 다음 달 11일 미국에서 신제품 공개 행사인 ‘언팩’을 열고, 갤럭시S10과 갤럭시 폴드의 후속작을 선보일 예정이다. 5일 삼성전자는 다음 달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팰리스오브파인아트에서 열릴 언팩 행사의 초청장을 글로벌 미디어와 주요 협력사, 개발자들에게 보냈다고 밝혔다. 초청장 영상을 보면 갤럭시(Galaxy) 알파벳 중 두 개의 ‘a’ 자리가 사각형 형태로 도드라지는 모습이 나타난다. 모바일 업계에서는 첫 번째 a 자리의 직사각형은 갤럭시S 시리즈를, 두 번째 a 자리의 정사각형은 클램셸(조개껍데기) 형태의 폴더블폰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주요 외신은 갤럭시S10 시리즈의 후속작 명칭은 S11이 아닌 ‘갤럭시S20(6.2인치)’이 되고, 화면 및 사양에 따라 ‘갤럭시S20 플러스(6.7인치)’, ‘갤럭시S20 울트라(가칭·6.9인치)’로 확장될 것으로 보고 있다. 또다른 관심사는 위아래로 열리고 닫히는 폴더블폰이다. 지난해 삼성개발자콘퍼런스(SDC)에서 외관 디자인만 살짝 공개됐던 이 폴더블폰은 접으면 정사각형 지갑 모양이고, 펼치면 6.7인치 화면이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은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 ‘톰 브라운’과 디자인을 협업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본 모델의 가격은 100만 원대 중후반으로 갤럭시 폴드(239만8000원)보다 가격이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일 차세대 반도체 연구 현장을 찾아 “과거의 실적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며 “역사는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부회장이 새해 첫 경영 행보를 반도체 개발 현장에서 시작한 것은 삼성이 지난해 대외적으로 선포한 ‘시스템반도체 세계 1위’ 비전을 다시 한번 강조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나온다.○ “잘못된 관행 버리고 미래로” 이 부회장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20년 경자년 신년회’에 참석한 뒤 곧바로 경기 화성시 반도체 사업장으로 향했다. 반도체연구소에서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3나노 공정기술’을 보고받은 뒤 DS(반도체)부문 사장단과 함께 차세대 반도체 전략을 논의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김기남 DS(반도체) 부문장(부회장), 정은승 파운드리 사업부장(사장) 등이 참석했다. 이 부회장은 간담회에서 “잘못된 관행과 사고는 과감히 폐기하고 새로운 미래를 개척해 나가자”라고 당부했다. 또 “우리 이웃, 우리 사회와 같이 나누고 함께 성장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자 100년 기업에 이르는 길임을 명심하자”라고도 했다. 삼성전자의 신년회는 이 부회장이 불참한 가운데 이날 오전 9시 김 부회장 주재로 열렸지만 이 부회장의 현장 메시지가 사실상 삼성의 ‘신년사’ 성격을 띤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기술혁신을 통해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을 실현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게 핵심 메시지다. 특히 3나노 반도체는 도체 미세화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차세대 기술(GAA·Gate All Around)을 적용했다. 삼성이 최근 공정 개발을 완료한 5나노 제품에 비해 칩 면적을 35% 이상 줄일 수 있으며 소비전력을 50% 줄이면서도 성능(처리 속도)은 약 30% 향상시킬 수 있다.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을 달성할 차세대 기술로 꼽힌다.○ 시민단체·법조계가 삼성 준법 여부 살핀다 한편 삼성은 김지형 전 대법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어 준법감시체계를 확립하는 데 속도를 낼 계획이다. 외부 인사 6명, 내부 인사 1명으로 구성된 준법감시위원회에는 그간 삼성을 비판해온 시민단체 활동가를 비롯해 법조인, 교수 등으로 구성됐다. 내부 지향적이었던 의사결정 체계에서 벗어나 외부가 삼성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기준으로 의사결정을 하겠다는 의지가 들어있다. 앞서 이 부회장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부(정준영 부장판사)는 “정치권력자로부터 (뇌물을 달라는) 요구를 받더라도 응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변을 다음 재판 기일(1월 17일) 전까지 제시해 달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삼성의 새로운 미래 비전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답변을 한 셈이다. 삼성은 지난해 12월 17일 전자, 금융, 건설 등 7개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모여 준법감시위원회 설립을 논의했고, 각 계열사가 위원회와 일종의 협약을 통해 이를 지키기로 한 것으로 전해진다. 삼성은 지주사나 그룹 기획조정실이 따로 없어 계열사마다 이사회의 준법감시 체계를 강화하는 방안도 논의됐지만 새로운 감독기구를 만드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김 전 대법관은 9일 준법감시위 관련 기자간담회를 열 예정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계열사마다 컴플라이언스(준법경영) 위원회 및 팀이 운용되고 있다. 준법감시위원회는 이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계열사별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연계해 더욱 강도 높은 준법경영을 실천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1974년 2월 15일 오전 1시경. 수문이 열리면서 바닷물이 독 안으로 차기 시작했다. 독 안에는 길이 344m에 이르는 26만 t급 초대형 유조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저 거대한 무쇳덩이가 과연 뜰 것인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는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이날은 현대중공업의 역사적인 첫 진수식 날이었다. 한국 중공업 사상 처음으로 초대형 유조선이 실제로 물에 뜨는 날이었다. 항만청은 “엔진 시동 없이 배를 띄우는 것은 항해규칙 위반”이라는 웃지 못할 이유로 허가에 뜸을 들였고, 선장들은 방파제 입구가 좁아 배가 빠져나가지 못할 것이라고 반대했다. 정 회장은 “배가 망가지면 내가 책임지겠다”며 선장 대신 배 위로 올라가 지휘봉을 잡았다. 오전 5시 거대한 유조선은 하얀 파도를 일으키며 독에서 벗어나 바다로 나아갔다. 모두가 함성을 질렀다. “콧등이 시큰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기능공들 중엔 흑흑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런 경험도 없이 불굴의 신념과 불철주야 초인적 노력으로 난관을 극복해준 기능공들이 대견스러웠고 고마웠다.” 1991년 정 회장은 동아일보에 연재한 ‘나의 기업 나의 인생’ 에세이에서 현대중공업의 첫 진수식에 대해 이같이 기억했다. 울산 어촌마을 미포만 일대가 세계 1위 조선 강국의 대표 중심지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발상의 전환, 번뜩이는 아이디어 “외국에 나가서 고생하느니 몇천만 달러, 몇억 달러짜리 배를 수주해서 국내 조선소에서 우리 기술로 건조하면 해외 건설보다 안전할 것이다.” 정 회장은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해외 건설 사업이 베트남전쟁 등으로 갖은 고초를 겪자 조선업을 떠올렸다고 썼다. 정부가 중화학 육성책을 꺼내 들기 전부터 조선업 진출을 고민했다는 의미다. 문제는 돈이었다. 해외에서 4300만 달러를 빌려야 조선소를 지을 수 있었다. 이는 1971년 우리나라 경제개발 예산의 15%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정 회장은 먼저 조선기자재 업체를 찾아가 “당신네 회사서 기자재를 살 테니 은행을 좀 움직여 달라”고 요구했다. 이어 영국 바클레이스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 만한 영국의 유력 조선 기술회사인 ‘애플도어’의 찰스 롱보텀 회장을 찾아갔다. 롱보텀 회장은 그가 내민 어촌마을 사진만 보고 난색을 표했다. 한국의 상환 능력을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 “우리 현대의 능력으론 이 사업이 무모하다는 평가인 듯했다. 나는 맥이 쭉 빠졌다. 지금 같으면 주요 인사와 면담할 때 무슨 이야기를 할지 미리 준비하지만 그때는 그럴 여유도 경험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내 바지 주머니 속에 있는 오백 원짜리 지폐가 생각났다.” 정 회장의 유명한 ‘거북선 지폐’ 일화는 임기응변의 결과였다. “한국은 1500년에 이미 거북선을 만들었다”며 열정을 토하는 그를 보고 롱보텀 회장이 마침내 미소를 띠었다. 롱보텀 회장은 바클레이스은행과 연결해 줬을 뿐 아니라 그리스 선사가 싼 배를 찾는다는 귀띔을 해주는 등 물심양면으로 정 회장의 조선 사업을 지원했다. ○ 처음부터 세계와 맞서다 “조선업도 1969년 처음 시도했을 땐 일본 기업과 합작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일본 기업은 경영에 간섭하려 하고, 또 생산 규모도 ‘너희 경제 규모를 봐서 5만 t급 선박을 만들 수 있는 시설 정도면 충분하다’는 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본의 어느 조선소보다도 더 큰, 세계 제일의 생산능력을 갖춘 독을 계획해서 세계 조선사상 처음으로 배와 독을 동시에 완공했습니다.” 1991년 5월 정 회장은 옛 소련의 칼미크 자치국을 찾아 한국의 경제발전에 대해 연설을 하며 현대중공업이 왜 처음부터 초대형 26만 t급 유조선 건조로 시작했는지 설명했다. 사실 처음에 현대중공업은 일본과 합작사가 될 뻔했다. 당시 우리나라 전체 산업군이 그랬지만 기술도 자본도 없는 상태에서 일본과 합작하는 게 조선업 진출에 유리해 보였다. 마침 미쓰비시가 관심을 보였다. 하지만 이들은 처음부터 ‘한국 경제 규모에 맞는 일이나 하라’는 태도를 보였다. 1970년 중국이 ‘미국에 지나치게 우호적인 한국, 대만’과 거래하는 기업과는 거래하지 않겠다는 ‘주 4원칙’을 발표하자 미쓰비시 측은 중국 눈치를 보며 합작을 못 하겠다고 했다. 현대중공업은 1993년 펴낸 20주년 사사에서 이 사건을 ‘새옹지마’라고 표현했다. 일본이 정한 수준에 머무르지 않고, 어렵더라도 처음부터 세계와 맞서는 수출주도형 공업화를 택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세계 시장을 노렸기에 현대중공업은 빠르게 성장해 1972년 조선소 기공식 이후 11년 만인 1983년에는 건조량 기준 조선부문 세계 1위 기업이 됐다. 또 40년 만인 2012년에는 세계 조선업계에서 처음으로 선박 인도 누적 톤수가 1억 GT(총톤수)를 넘겼다. 잘나가던 현대중공업도 2010년 이후 불어닥친 조선업계 불황의 여파에는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2015년에 1조 원이 넘는 영업손실을 낸 현대중공업은 감원과 자산 매각, 사업 재편 등을 통해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총력을 다하고 있다. 특히 1994년 국내 최초로 고부가가치 선종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을 인도하는 등 기술 개발을 해왔던 LNG 시장이 커지는 것이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권오갑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은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M&A)을 위해 지난해 6월 중간지주사 격인 한국조선해양을 출범시키며 “세계 어느 나라도 넘보지 못할 기술력을 갖춰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며 앞으로도 기술로 세계를 제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구글은 사람으로 치면 이제 21세 청년이 됐습니다. 우리는 조용히 사랑을 주되 다 큰 청년에게 성가신 잔소리는 하지 않는 부모가 되려고 합니다.” 지난해 12월 세계 최대 테크 기업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47)와 세르게이 브린(47)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며 한 말이다. 두 사람은 테크 혁신의 아이콘이었기에 세계가 놀랐다. 미국 주간지 포천은 “한 시대의 막을 내리는 사건”이라고 평했다. 젊은 최고경영자(CEO)들이 몰려 있는 실리콘밸리에서도 리더십 체인지가 빠르게 일어나고 있다는 의미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인터넷·모바일 시대의 성공문법과 조직으로는 살아남기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다. 구글 모기업 알파벳에서 두 창업자가 물러남으로써 알파벳과 구글은 더 빠른 의사 결정 구조를 갖게 됐다. 구글 CEO인 순다르 피차이(48)가 알파벳의 CEO도 겸임하기 때문이다.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과 알파벳에 CEO 2명, 사장 1명이 있을 필요가 없다. 경영진은 단순해질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도 리더십 체인지로 상승세를 탔다. 2014년 당시 47세이던 사티아 나델라가 CEO가 된 뒤 MS의 시가총액은 애플을 위협하는 수준으로 치고 올라왔다. 나델라가 PC 운영체제(OS) 성공에 매달리던 공룡 MS에 스타트업 정신을 불어넣으며 주요 사업을 클라우드로 ‘재정의’했기 때문이다. 그는 취임 일성부터 “우리 업계는 전통에 얽매이지 않는다. 혁신만을 존중할 뿐”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전통 기업들도 다르지 않다. 네덜란드의 ING그룹은 최근 터키 ING 여성 CEO였던 피나르 아바이(47)를 본사 시장 책임자에 임명했다. 그는 2011년 34세 나이에 은행 경력이 전무한 상태로 터키 ING CEO를 맡아 화제를 모았고, 파격적인 고객 서비스로 하버드비즈니스리뷰까지 주목했던 인물이다. ING 본사는 2015년에는 애자일(기민성) 경영을 위해 본사 직원 전원을 인사 이동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글로벌 세대교체 바람이 국내 뉴 리더들에게도 ‘내부 혁신 없이는 죽을 수 있다’는 위기감을 주고 있다”고 했다.김현수 kimhs@donga.com / 멘로파크=유근형 기자}

“현재 국내 기업들의 인사와 평가, 교육 및 채용 시스템 등은 모두 1970, 80년대 산업화 시대의 유물입니다. 혁신이 어려울 수밖에 없죠. ‘대기업에 다니는 A’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 A’가 되기를 원하는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다니고 싶어 하는 기업이 되려면 대대적인 수술이 불가피합니다.” 지난해 말 주요 그룹의 인사는 세대교체 광풍이 거셌다. 그 배경에는 4대 그룹 중 한 곳의 인사채용 담당자가 말한 이 같은 고민이 반영돼 있다. 1980∼1995년 출생한 밀레니얼세대와 1995년 이후 출생한 Z세대의 합성어인 MZ세대가 주요 기업 구성원의 60% 이상을 차지하게 되면서 변화가 불가피했다는 의미다. 주요 기업 경영진은 최근 직원들이 일하는 공간이 자유로운지, 근무시간이 유연한지, 채용 과정이 경직돼 있지는 않은지, 평가 및 보상 체계는 수평한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이렇게 조직 시스템 곳곳에 메스를 들이대는 이유는 리더뿐 아니라 조직 전체가 바뀌어야 혁신도 가능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종 DNA가 혁신을 이끈다 2010년 이후 시작된 재계 3, 4세 경영은 최근 재계 서열 상위 그룹인 삼성, 현대자동차, LG까지 세대교체가 되면서 본격화되고 있다. 3, 4세 오너들은 공개채용 시스템을 통해 통합된 DNA를 선호했던 과거와 달리 이종의 전문가 집단 간 장벽을 허문 지 오래다. 특히 최근엔 나이, 출신, 전공이라는 오래된 허들마저 치워버렸다. 올해 취임 3년 차를 맞은 구광모 ㈜LG 대표가 이끄는 LG그룹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말 인사에서 LG생활건강에는 34세 여성 상무가 탄생했다. LG전자는 인공지능(AI) 분야의 젊은 석학으로 꼽히는 조셉 림 미국 남캘리포니아대(USC) 컴퓨터공학부 교수(35)도 영입했다. 구 대표는 지난해 말 주요 계열사의 최고인사책임자(CHO)를 모두 교체해 앞으로 조직 변화가 더 클 것이라고 예고했다. 삼성, 현대차그룹의 외부 전문가 영입 경쟁도 치열하다. 삼성전자는 2018년 최고혁신책임자(CIO)라는 직책을 만들고 구글 출신인 데이비드 은 사장(53)을 선임했다. 국내 재계에서 처음으로 정기 공채를 폐지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10월 ‘도심 항공 모빌리티’ 사업 추진을 이끌 ‘어번에어모빌리티(UAM) 사업부’를 신설하고 미국항공우주국(NASA) 출신 신재원 박사(60)를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또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직을 신설하고 일본 닛산 출신인 호세 무뇨스 사장을 선임했다. 현대차가 C레벨(CEO, CFO 등 경영자를 지칭)급 인사에 외국인을 선임한 건 이때가 처음이었다. 재계 관계자는 “한국 기업이 ‘빠른 추격자’에 머물렀던 지금까지는 카리스마적인 오너의 비전을 읽고, 그것을 충실히 이행하는 내부의 인물이 C레벨에 포진했다”며 “근본적으로 다른 종류의 역량과 가치관이 필요한 변화의 시대라 기업 밖에서 혁신의 동기와 인물을 찾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구성원에 대한 투자로 조직문화부터 바꿔야 이들 기업은 또 기존 구성원의 역량을 높이고,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투자에도 과감하게 나서고 있다. SK는 구성원의 성장을 위한 통합 교육의 인프라 역할을 할 조직인 ‘SK유니버시티’를 출범시킨다. SK 관계자는 “영입하고 싶은 AI 전문가가 30대라면 과거의 직급 및 보상 체계로는 끌어오기가 불가능했다. 이제는 이런 사람을 끌어들이기 위한 답을 찾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기업도 조직문화 혁신에 사활을 걸고 있는 상태다. 미국 콘텐츠 공룡 디즈니는 2000년대 초반만 해도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고자 할 뿐 혁신이 없었다. 이런 기업문화에 염증을 느낀 구성원들이 대거 이직을 하자 경영진은 위기의식을 느꼈다. ‘세상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To Make People Happy)’이란 전통의 구호를 고객이 아니라 구성원들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디즈니는 달라졌다. 사내 교육 시스템을 신설해 전문가를 양성했다. ‘행복 오피스’라는 조직을 신설해 구성원의 행복을 추구했다. 정보통신기술(ICT) 업계 관계자는 “디즈니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시장에 뒤늦게 진출했지만 넷플리스의 대항마가 됐다”며 “픽사와 마블, 21세기폭스 등을 인수한 경영적 판단에 조직문화 혁신이 더해진 게 성공 비결”이라고 말했다. ▼ “아버지 세대와 차별화된 혁신”… 그룹들 주력 업종 바꾸기 ▼“이제 현대자동차그룹의 경쟁자는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도요타가 아니라 구글, 우버 같은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입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현대차의 신산업을 발굴하고 있는 크래들(CRADLE) 사무소의 김창희 부소장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12월 7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뷰를 찾아가는 길이었다. 글로벌 생존전쟁의 국면이 자동차산업을 넘어섰다는 고백이자 선언이었다. 그는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공급자’로 완전히 탈바꿈할 현대차를 꿈꾸고 있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삼성의 미래 먹거리를 찾고 있는 삼성넥스트의 브렌든 킴 글로벌투자 팀장은 “지금 인공지능(AI)이 대세라고 하는데 우리는 벌써 AI 이후까지 상상하며 혁신 아이디어를 찾고 있다”며 “삼성은 50년 후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국산화, 세계화를 넘어 이제는 ‘디지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그룹 등이 미국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찾고, 스타트업 투자를 늘리는 것은 아버지 세대의 기업과는 달라진 점이다. 1958년 LG전자, 1969년 삼성전자, 1968년 포스코, 1973년 현대중공업 등 한국의 대표기업들이 설립됐을 때 창업 세대의 목표는 ‘국산화와 기술개발’이었다. LG그룹 창업자 구인회 회장은 라디오 국산화에 사활을 걸었고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은 TV와 반도체를 독자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1987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등 2세 경영인들이 전면에 나서서는 품질경영과 세계화를 외쳤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이 세계시장에서 글로벌 브랜드로 도약하는 시기였다. 201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재계 3, 4세의 ‘뉴 리더’는 새로운 도전 과제를 안을 수밖에 없게 됐다. 디지털 혁신으로 인해 기존 산업의 ‘파괴’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현대차의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한 콘퍼런스에서 “아들이 운전면허를 딸 생각을 안 한다”라고 농담을 한 뒤 현대차가 소유에서 공유 중심으로 사업을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2015년부터 방산, 화학, 프린팅 등 전통적 효자 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당장의 수익을 포기하더라도 삼성이라는 기업의 정체성을 글로벌 테크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상 때문이었다. 2018년 경영에 복귀한 뒤에는 6개월간 현장에 다니며 AI, 5세대(5G) 통신, 바이오, 전장(電裝)부품 등을 ‘4대 미래 성장사업’으로 선언했다. 삼성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등 글로벌 테크 공룡들의 파트너이자 경쟁사로 글로벌 기술 전쟁 한가운데에 서 있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학과 교수는 “지금 산업계의 구조는 ‘대전환’기다. 기업 모두 절박한 심정으로 시장을 찾고 투자처를 선택하고 있다. 지금의 선택에 따라 미래 100년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대기업도 스타트업 정신으로 디지털 혁신은 글로벌 모든 기업의 과제지만 한국은 특히 승계의 과정에서 뉴 리더십의 등장과 맞물려 있어 더 절박한 과제가 됐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재벌 3, 4세로 물리적 세대교체는 진행됐지만 4차 산업혁명 사회라는 거대한 물결에서 성공 모델을 만드는 진정한 의미의 세대교체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며 “삼성전자 이 부회장 등 뉴 리더들이 아버지 세대와는 차별화된 혁신에 나서 새로운 성공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의 경우 2010년 시가 총액 5대 기업 중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제외한 나머지 3개 기업이 2019년 말 기준 아마존, 페이스북, 구글로 대체되는 등 새로운 창업자가 뉴 리더로 등장했다. 대기업 중심 경제로 성공방정식을 써온 한국에서 뉴 리더들은 내부 혁신자이자 새로운 창업 정신을 발휘해야 하는 더 어려운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일부 성공 사례도 나오는 중이다. 2011년 설립된 SK바이오팜은 지난해 11월 국내 신약 사상 처음으로 임상 3상까지 독자 개발한 뇌전증 신약 ‘엑스코프리’를 미국 식품의약국(FDA)으로부터 판매 허가를 받았다.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SK바이오팜 미국 법인에서 만난 조정우 사장은 “10년 넘게 돈만 들어가는 사업이 바이오다. 최태원 회장의 결단, 그룹 차원의 인재 확보와 기민한 지원으로 한국 신약사에 새로운 기록을 내게 됐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국 대기업의 뉴 리더는 과거, 현재, 미래와 끊임없이 싸워야 하는 더욱 어려운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홀랜드=서동일 dong@donga.com / 허동준 기자 / 마운틴뷰=유근형 noel@donga.com·지민구 / 김현수 기자}
지난해 12월 31일 삼성전자 경기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 정전이 발생해 일부 반도체 생산라인의 가동이 중단됐다. 이번 정전은 이날 화성 변전소 송전 케이블이 터지면서 발생해 화성 동탄 일대에 1, 2분간 전력이 끊겼다. 삼성 화성 반도체 사업장에도 1분가량 전력 공급이 중단됐지만 복구 작업에는 2, 3일 걸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화성 사업장에서 생산하는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반도체 일부의 생산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2018년에도 삼성전자 경기 평택 반도체 사업장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해 500억 원 수준의 피해를 본 적이 있다. 당시에는 삼성전자가 운용하는 사업장 내부 변전소에 이상이 생겨 정전이 28분간 이어졌다. 이번 화성 정전 사고는 1분가량 정전이 발생해 평택 정전 사고에 비해 전력 공급 중단 시간은 짧았지만 복구 작업에 2, 3일 걸리면서 피해액이 200억∼3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미세 공정이 주를 이루는 반도체 사업장은 잠시라도 전력 공급이 끊기면 생산 라인을 복구하기까지 수일이 걸리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일본 도시바 반도체 사업장 정전 사태로 정상 가동까지 3개월이 걸린 적도 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그가 1968년 쓴 보고서는 한국을 발칵 뒤집어 놨었다. 요약하자면 ‘한국에서 철을 생산해 봤자 쓰일 곳도 없다. 해외 차관에 의존해 제철소를 지으면 실패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보고서는 우리 정부가 보낸 차관 예비신청서에 대해 미국 측이 보내는 ‘거부’ 의사와 같았다.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상식적이겠지만 박태준 회장은 달랐다. 군인 출신인 그는 포항제철 주식이 한 주도 없었지만, ‘짧은 인생을 영원 조국에’라는 좌우명을 신앙처럼 마음에 두고 있었다. 박 회장뿐 아니라 당시 정부 관료들, 포항제철에 모인 신입 직원들은 제철소가 애국의 길이라는, 이상하리만큼 강한 진정성으로 똘똘 뭉쳐 있었다. 진정성이 ‘상식을 초월하는 일’을 해내 50여 년 뒤 포스코가 2019년 기준 재계 6위, 자산 78조 원이 넘는 글로벌 그룹으로 성장할 줄 그땐 아무도 몰랐다.○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 “제철소에 인생을 걸었는데, 돈 1억 달러를 못 구해 이렇게 나자빠져야 하나. 고심 중에 갑자기 어떤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온몸에 강한 전류가 흐르는 느낌이었다.” 1969년 초 차관을 거절당한 박 회장은 갑자기 대일청구권자금을 떠올린다. 농림수산 부문에 쓰기로 협약된 돈이라 그는 곧바로 일본 정계와 철강협회를 설득하러 일본으로 떠났다. 끈질긴 설득으로 지원 약속을 받아냈다. 박 회장은 이때부터 부실공사를 들킨 직원 등에게 ‘민족 반역자’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선조들의 피 값으로 건설하는 만큼 실패하면 민족사에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니 우향우해 영일만(경북 포항 앞바다)에 빠져 죽어 속죄해야 한다”고 비장한 각오를 내비쳤다. 불굴의 정신을 상징하는 ‘우향우 정신’이 이때부터 포스코 문화의 근간이 됐다. 또 한정된 자원으로 창의력을 발휘하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원은 유한, 창의는 무한’이란 박 회장이 내건 슬로건도 여전히 포항제철소 정문에 붙어 있다. ‘우향우’, ‘창의는 무한’ 정신은 첫 쇳물이 나오기까지 여러 번 빛을 발했다. 당시 정치권에서 제철소에 돈이 몰린다는 것을 알고 대놓고 대선 자금을 요구하거나 로비스트와 결탁해 설비 구매에 개입하려 했다. 박 회장은 박정희 대통령을 찾아가 담판을 지었다. 박 대통령은 소신껏 설비를 구매하라는 취지로 박 회장의 건의사항이 담긴 메모지에 곧바로 서명해 줬다. 이 메모지는 훗날 ‘종이마패’로 불렸다. 박 회장은 또 “대체 제철소가 어디 있냐”는 호주 광산업계의 질문에 모래벌판 위 ‘제선공장’ 입간판 사진을 꺼내들어 집요한 설득에 나섰다. 결국 좋은 조건으로 철광석 등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 자동차-조선업 발전 기반된 철 포항에 제철소 건설이 본격화된 1970년은 한국 경제사에 중요한 기점이었다.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 정책에 따라 1967년 현대자동차, 1969년 삼성전자, 1972년 현대중공업이 생겼다. 1973년 마침내 포항제철소에서 첫 쇳물이 흘러나온 뒤에 자동차, 조선도 생산에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철은 산업의 ‘쌀’이었기에 대통령부터 제철소 건설 근로자까지 ‘애국의 길’이라며 매달린 것이다. 포스코의 조강 생산량은 1973년 44만9000t에서 2017년 3720만6000t으로 약 83배로 뛰었다. 포스코는 ‘주인 없는’ 회사로 불리지만 전문경영인이 다른 기업의 오너 일가 못지않게 장기 투자를 감행해 왔다. 1973년 첫 흑자를 낸 이래 현재까지 개별 기준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다. 포스코는 2000년 민영화 이전에는 정부와 산업은행이 대주주였고, 2019년 9월 기준 국민연금(11.72%)이 대주주다. 한 포스코 관계자는 “정통 ‘포스코맨’ 전문경영인과 임원들은 우향우 정신을 바탕으로 ‘주인의식’이 강한 편”이라고 말했다. 2010년 대우인터내셔널 인수와 같은 대형 인수합병(M&A), 2007년 세계 최초 파이넥스 공법 상용화를 위해 15년간 연구개발(R&D)비 5000억 원 투자 등의 사례가 대표적인 장기 대형 투자 사례로 꼽힌다. 포스코의 새로운 성장동력인 리튬 2차전지 소재 산업도 정준양 회장 시절부터 권오준 회장을 거쳐 현 최정우 회장으로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올해 포항제철소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선정하는 등대공장(세계 제조업의 미래를 이끄는 스마트 공장)에 선정됐는데, 이는 2016년 알파고의 대국 장면을 지켜본 임직원과 연구원들이 힘을 합친 덕이 컸다. ○ 지역 사회 넘어 ‘기업시민’으로 발돋움 최정우 포스코 회장은 올 7월 취임 1년을 맞아 새로운 포스코의 비전으로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강조한 ‘기업시민헌장’을 선포했다. 미래 100년 비전으로 삼겠다는 의지다. 지역과 함께 성장하겠다는 것은 박태준 창업회장 때부터 내려오는 정신이기도 하다. 포항제철은 1968년 서울 명동 유네스코 빌딩에서 창립총회를 한 뒤 YWCA 건물을 사옥으로 삼았지만 1973년 본사를 포항으로 이전해 버렸다. 박 회장은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영기업체 본사를 지방으로 옮기는 것은 인구 분산도 되고, 산업시설을 전국 곳곳에 두어 거기서 창출되는 소득의 균등 분배 효과도 있기 때문”이라고 본사 이전 배경을 밝혔다. 인재가 포항까지 가겠느냐는 우려에 직원들의 주택과 학교를 포항에 지어 지역과 함께 크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포스코는 이제 본사가 위치한 지역을 넘어 사회와의 조화를 꾀한다는 방침이다. 최 회장은 기업시민헌장을 발표하며 “의사 결정과 일하는 방식에서 기업시민헌장을 준거로 공생의 가치를 창출하면서 기업 가치를 높여야 한다”고 당부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1926년 19세 소년 구인회는 서울 유학 후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 승산마을에 돌아왔다. 서울 중앙고 독서클럽에 가입해 서양 책도 섭렵한 그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뜬 후였다. 고향에서 일본 상인에 대항해 마을 협동조합을 조직한 그는 값싸게 생필품을 팔아봤다. 동아일보 진주지국장을 맡아 매일 신문을 읽으며 더 큰 세상을 꿈꿨다. “뭐라고? 유교 집안의 장손이 장사를 한다고?” 시내로 나가 장사를 해보겠다고 하자 집안 어른들은 일제히 반대했다. 하지만 조부는 고심 끝에 손자를 믿어주기로 했다. 부친도 모아놓은 돈 2000원을 내놓고 “네 생각대로 잘 해 보거라. 남과 화목하게 지내며 신용을 얻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1931년 부친이 준 2000원에 동생 철회가 조달한 1800원을 얹어 진주시에 포목점인 ‘구인회상점’을 열었다. 유가의 청년이 사업가로 변신하는 순간이었다. 포목점은 훗날 LG그룹 창업의 기반이 됐다.○ “남이 손대지 않은 것을 해라” LG그룹 창업주인 구인회 회장이 포목점에서 배운 것은 고객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는 것, 하나를 팔아도 더 좋은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저 옷감을 떼다 팔던 그는 어느 날 이런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손님이 좋아할 만한 수를 놓고 염색을 해보면 어떨까?’ 포목점은 대박이 났다. 기술을 혁신하고 고객 중심으로 생각하는 문화가 LG그룹에 뿌리박히게 된 것도 이때의 경험 덕분이다. 1947년 구 회장은 부산에 락희화학공업(LG화학)을 세우고 럭키크림을 만들었다. 구 회장과 동생들은 일제, 미제 화장품을 넘겠다는 각오로 어렵사리 고급 향료를 구하고, 화장품 기술자를 영입했다. 럭키크림은 인기 만점이었지만 화장품 통이 문제였다. 자꾸 깨져 불량이 났다. 수소문 끝에 플라스틱 관련 서적 6권을 얻어 연구한 구 회장은 1952년 전쟁통에 플라스틱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국민의 생활용품을 차질 없게 만들어 내는 일도 애국하는 길이다. 기업하는 사람으로서 남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업을 성공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가.” 락희화학공업이 만든 플라스틱 빗이 인기를 얻자 주력 품목은 화장품보다 플라스틱, 합성수지가 됐다. 다음은 전자제품이었다. “화학이나 잘하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구 회장은 다시 모험을 감행했다. 1958년 설립한 금성사(현 LG전자)는 1959년 한국 최초의 라디오(금성 A-501)를 만들었다. 부품 국산화율이 60%에 이르는 의미 있는 진전이었다. 이어 한국 최초의 ‘눈표 냉장고’, ‘백조 세탁기’, ‘금성 TV’ 등을 줄줄이 내놓았다. 1967년 동아일보 보도에 따르면 19인치 금성 TV를 타깃으로 한 전문 털이범이 등장할 정도였다. 세탁기, 냉장고, TV가 있는 ‘현대식 가정’도 속속 늘어갔다.○ 인화와 만난 기술혁신주의 “어깨가 무겁습니다. 집안 어른들의 기대에 부응해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1995년 2월 구본무 당시 LG그룹 회장이 동아일보 기자로부터 ‘그룹 총수가 된 소감을 말해 달라’는 질문을 받고 한 대답이다. 당시 재계는 LG의 행보를 주시하고 있었다. 구자경 명예회장이 정정한데도 70세가 되자 아들에게 회장직을 물려줬기 때문이다. 회사명도 ‘럭키금성’에서 ‘LG’로 바꾸며 글로벌 지향점을 더 분명히 했다. 구본무 회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초우량기업으로 발돋움하겠다는 포부를 밝히면서도 “어른들의 뜻에 따라”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집무실에는 ‘경청(傾聽)’이라고 쓰인 액자가 걸려 있었다. 공격적인 사업 확장에 나서면서도 ‘인화’가 우선이라는 점을 늘 새기고 있었던 셈이다. ‘인화’는 창업 이후 꾸준히 내려온 모토다. 1945년부터 허씨 집안과 함께 경영을 하면서 더 필요한 덕목이었을 것이다. 2005년 GS와 계열 분리를 할 때도, 2018년 4세대인 구광모 ㈜LG 대표가 그룹의 새로운 총수가 되었을 때에도 잡음 하나 없었다. 이건희 이화여대 명예교수 등이 쓴 ‘연암 구인회 연구’에 따르면 LG는 창업 초기부터 구씨와 허씨 집안이 함께 1인 3역씩 해가며 사업에 뛰어들어 모두가 창업자라는 마인드가 강했다고 한다. 6·25전쟁 당시 흩어졌던 구씨, 허씨 가족들까지 부산으로 모여들면서 LG의 부산 공장은 가족이 경영자이고 직원이었다. LG의 전직 고위 임원은 “집안 어른의 집단의사결정 체계 속에 ‘리더’에게 힘을 실어주는 분위기였다”며 “때로는 보수적으로 보이다가도 투자해야 할 곳이 있으면 과감하게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성장 기반을 닦아 왔다”고 말했다. 창업주의 기술혁신주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LG화학의 자동차 배터리 사업은 1992년 구본무 회장이 R&D를 독려하며 시작됐다. LG디스플레이가 내놓은 세계 최초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지난해 세계 최대 가전전시회 ‘CES 2018’을 뒤흔든 돌돌 말리는 롤러블 TV도 혁신의 결과물이었다. 구광모 대표는 총수가 된 직후 첫 공식 행선지로 서울 강서구 LG사이언스파크를 택해 기술혁신주의를 이어갈 것을 선언했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고향인 경남 진주시 지수면은 우리나라 재계의 발상지라고 볼 수 있다. 삼성, LG, GS, 효성, LS 등이 지수면과 이런저런 인연으로 엮여 있기 때문이다. 구인회 회장은 1920년에 이웃 허만식 씨의 딸 을수 양과 결혼하기 전까지만 해도 고향을 지키는 유학자로 살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홍문관 교리를 지낸 조부로부터 6세부터 한학을 배웠다. 만석꾼 허 씨와의 인연은 구 회장의 생각을 바꿔 놓았다. 아내의 친정에는 신문물을 접한 친척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1921년 지수면 승산마을에 신식 학교인 ‘지수보통학교’가 생기자 손위 처남은 구 회장에게 이 학교에 다녀볼 것을 권했다. 그해 4월 구 회장은 보통학교 2학년에 편입했다. 나중에 서울로 유학을 가게 된 것도 장인의 지원 덕분이었다. 지수에 신식 학교가 생겼다는 소식에 경남 의령군에 살던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도 지수보통학교로 유학을 오게 된다. 당시 허 씨 일가와 결혼한 둘째 누나가 지수에 살고 있었다. 구 회장보다 3세 아래인 이 회장은 1922년 12세 때 지수보통학교에서 구 회장과 조우한다. ‘호암자전’에 따르면 누나 집에서 처음으로 머리카락을 자른 그는 당시를 ‘개화의 날’로 회상했다. 효성그룹 창업주인 조홍제 회장도 고향은 경남 함안군이지만 비슷한 시기에 지수보통학교를 다녔다. 허정구 삼양통상 창업 회장도 이 학교를 거쳤다. 조 회장과 허정구 회장은 훗날 삼성그룹 창업에 힘을 보태기도 했다. 1945년 광복 직후 부산에서 무역업을 준비하던 구인회 회장을 허만정 회장이 찾아와 “내 아들(고 허준구 GS건설 명예회장) 사람 만들어 달라”고 맡기면서 두 가문의 본격적인 동업이 시작됐다. 1947년 락희화학공업 창업 이래 이들의 동업 관계는 58년간 이어졌다.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1974년 7월. 현대자동차는 최초의 자체 모델인 자동차 이름을 짓기 위해 39일간 전 국민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었다. 응모자 수는 총 5만8023명. 이 가운데 ‘아리랑’(887표)이 1위를, ‘휘닉스’(211표)가 2위를 차지했다. 3위를 차지한 ‘포니’는 105표를 얻었다. 현대차는 포니를 최종 차 이름으로 정하며 포니를 적었던 충남 논산군의 이대식 씨를 선정해 승용차 1대를 상품으로 증정했다. 현대차가 1위 아리랑이 아닌 3위 포니를 택한 까닭은 수출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인기 자동차 이름에는 당시 시대상과 함께 숨은 전략을 엿볼 수 있다. 현대차의 최장수 브랜드는 역시 ‘쏘나타’다. 1985년 대우자동차 ‘로열프린스’를 겨냥해서 출시됐다. 서서히 등장하는 중상류층을 겨냥해 클래식의 악곡 형식을 뜻하는 소나타에서 따왔다. 원래 출시 당시 이름도 ‘소나타’였다. 그런데 ‘소가 타는 것이냐’는 농담이 나오자 2세대부터 쏘나타로 바꿨다. 1986년에는 현대차의 최고급차 ‘그랜저’가 나온다. 이름도 크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그랜저로 지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직후인 1980년대 초반 많은 기름을 먹는 대형차는 초상류층의 전유물이었다. 당시 현대차가 팔던 포드의 ‘그라나다’는 웬만한 아파트 한 대 가격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다시 유가와 달러 가치, 국제금리가 낮아지는 ‘3저 호황’으로 고급 대형차에 대한 욕망이 일기 시작했고, 각진 그랜저는 대성공을 거뒀다. 1990년대에는 오렌지족, X세대처럼 차를 살 수 있는 젊은 세대가 등장한다. 1994년 출시된 ‘엑센트’는 발음하기 쉽고 젊고 신선한 어감을 준다는 이유로 채택됐다. 당시 광고 문구에도 ‘젊은 제작진이 만든 젊은 사람을 위한 차’를 강조하며 ‘신세대 신감각 엑센트’라고 표현했다. 동아일보는 1992년 5월 2일자 ‘차 이름 짓기 아이디어전 치열’이라는 기획기사를 통해 국산 자동차 이름에 얽힌 뒷얘기를 기사화한 적이 있다. 이 기사에 따르면 프랑스어로 열정을 뜻하는 ‘엘란’과 영어로 수송을 뜻하는 ‘트랜스포트’를 적절히 합쳐 ‘엘란트라’라는 이름을 지었는데 유럽이나 호주로 수출될 때는 ‘란트라’라는 이름을 달고 나갔다. 이 지역에 이미 엘란트라라는 차 이름이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차는 2000년 싼타페를 시작으로 2004년 투싼, 2017년 코나, 2018년 팰리세이드 등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내놨다. 모두 미국 휴양 도시 이름이다. 자유로운 이미지를 표현하기 위해서다.염희진 salthj@donga.com·김현수 기자}

“국가로 보나 삼성그룹으로 보나 보통의 위기가 아닙니다. 정신 안 차리면 구한말과 같은 비참한 사태가 올 수도 있습니다.” 1993년 8월 4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은 6월 ‘신경영 선언’ 두 달 뒤 동아일보 기자와 만났다. 신경영 선언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야 한다’며 강도 높은 품질경영 방침을 대내외에 알린 사건이었다. 기자가 “품질경영은 경영의 기본인데 왜 지금 강조하는지”라고 물었다.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곳이 삼성인데 삼성은 분명히 이류입니다. 3만 명이 만든 물건을 6000명이 하루에 2만 번씩 고치고 다니는 이런 비효율 낭비적 집단은 지구상에 없어요. 이걸 못 고친다면 구멍가게도 안 돼요.” 이 회장은 저서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1997년)에서 신경영 선언 전 극심한 위기감을 느꼈다고 썼다. 위기감이 신경영 선언의 배경이었던 셈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 전체가 사그라질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불고기를 3인분은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대식가인 내가 식욕이 떨어져서 하루 한 끼를 간신히 먹을 정도였다. 그해(1992년)에 체중이 10kg 이상 줄었다.”○ 퀀텀 점프 기반 된 ‘위기의식’ 하지만 임직원들은 이 회장의 위기의식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른바 ‘3저 호황’ 직후 한국 경제도, 삼성도 상승세였다. 1993년 한국 수출액은 전년 대비 49.0% 늘었고, 삼성전자 매출(개별 기준)도 33.6% 늘었다. 이어지는 반도체 호황으로 1994, 1995년 삼성전자 매출은 연속해서 40% 이상 증가율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이 회장 눈에는 해외 대리점에서 먼지 쌓인 채 굴러다니는 TV, 11.8%에 달하는 휴대전화 불량률이 보였다. 근본적인 품질 경쟁력이 일본이나 미국 수준이 되지 않으면 언젠가 호황이 끝날 때 순식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컸다. 반도체 실적에 취한 조직이 변하질 않자 이 회장은 ‘애니콜 화형식’으로 불리는 드라마틱한 조치를 취했다. 1995년 3월 9일. 삼성전자 구미사업장에 ‘100% 양품만 만들겠습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이 걸렸고 직원들은 ‘품질은 자존심’이라고 쓴 띠를 둘렀다. 운동장에는 휴대전화, 무선전화기, 팩스 불량품 15만 대, 약 500억 원어치의 제품이 쌓여 있었다. 직원들이 망치로 부수고 기름을 뿌려 불태웠다. 이를 지켜보던 임직원 2000여 명 중에는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조직 구석구석까지 위기의식이 퍼지게 된 순간이었다. 직원들 눈빛까지 달라진 삼성은 17년 후인 2012년 마침내 세계 휴대전화 시장 1위를 차지했다. 삼성 특유의 위기의식은 1997년 말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는 바탕이 됐다. 당시 삼성전자도 자본잠식 위기에 이르는 등 외환위기의 직격탄을 맞았고, 1998년 7월 삼성전자 최고경영진 20여 명은 10시간이 넘는 마라톤회의 끝에 강도 높은 구조조정안을 발표했다. 동시에 윤종용 당시 사장을 포함한 참석 임원 모두 사표를 썼다. 구조조정에 실패하면 모두 사임하겠다는 결의의 표현이었다. 이듬해 말, 윤 사장은 사임 대신 미국 주간지 비즈니스위크 표지를 장식했다. 삼성이 어떻게 1년 만에 위기 탈출에 성공하고 더욱 강해졌는지 분석하는 기사가 실렸기 때문이다. 1999년 삼성전자의 당기순이익(개별 기준)은 전년 대비 10배 뛰었다. ○ 결단을 내릴 땐 과감하게 삼성전자가 2006년 소니를 이기고 마침내 TV 시장 세계 1위에 올랐을 때에도 이 회장은 축포를 터뜨리지 않았다. 당시 삼성 경영진이 일본 언론과 1위를 자부하는 인터뷰를 하자 대로했다고 한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일본으로부터 아직 배울 게 많은데 자극하면 안 된다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일본 정재계에서 ‘삼성 때리기’ 조짐이 보였다. 삼성 측이 일본 오피니언 리더들을 대상으로 “한일이 힘을 합쳐 부상하고 있는 중국 시장에 뛰어들어야 한다. 서로 반목할 때가 아니다”라며 설득해 위기를 넘겼다고 한다. 삼성 리더십의 위기의식은 세계 경제 흐름에 대한 집요한 관심에서 출발했다. 때로는 기회를 발견해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1986년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반도체 불황 중에 용인 기흥 3라인을 건설하라며 “돈 걱정 말고 서둘러야 한다. ‘미국의 보복’이 생각보다 빨라질 것이다”라고 지시했다. 이 창업회장은 일본의 공세에 미국 D램 업체들이 도산하면서 ‘제2의 진주만 공습’이란 말이 나오는 데다 일본 기업이 당시 소련 잠수함에 컴퓨터 프로그램을 판매한 사건을 신문에서 보고, 미일 무역 마찰을 예상한 것이다. 그 예상은 맞아떨어져 삼성은 3라인 건설을 바탕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이건희 회장이 1987년 4Mb D램 개발 당시 반도체 설계 공법을 결정한 일도 유명하다. 웨이퍼에 쌓느냐(스택형), 웨이퍼를 파느냐(트렌치형)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삼성은 당시 주류가 아닌 스택형을 택하는 모험을 했다. 이 결정은 1992년 삼성이 세계 D램 시장 1위에 오르는 디딤돌이 됐다. ▼ 한발 앞선 리더십의 원천은 ‘끊임없는 공부’ ▼이병철, 美-日 경제전문가 조언 듣고 1년 넘게 연구한 뒤 반도체 진출이건희 ‘일본 프렌즈’ 등 인맥 탄탄… 글로벌 경제 흐름에도 항상 촉각삼성 특유의 위기의식과 과감한 의사결정의 바탕은 최고위 경영층이 미국 일본 기술 ‘고문’으로부터 듣고, 공부했기 때문이라는 게 삼성 안팎의 중론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은 1983년 삼성이 반도체에 뛰어든다는 ‘도쿄 선언’ 전 1년 이상 반도체 관련 자료를 모아 연구했다. 반도체 선언에 결정적 요인이 된 것도 일본과 미국 경제 전문가의 조언이었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도 ‘이건희의 일본 프렌즈(LJK)’와 같은 글로벌 정재계 인맥을 쌓는 동시에 기술 디자인 품질 전문가를 삼성 고문으로 중용했다. 1993년 신경영 선언의 도화선이 된 ‘후쿠다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당시 일본의 디자인 전문가 후쿠다 다미오 씨는 삼성 고문으로서 삼성의 문제를 조목조목 정리해 보고서를 제출했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40년사’에서 1987년 반도체 설계 공법을 결정했을 당시 “사실 나도 100% 확신할 수 없었기에 운이 좋았다 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삼성 안팎의 젊은 엔지니어들의 주장을 신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 회장은 글로벌 경제 흐름에도 관심이 높았다. 2003년 신년사에서 “한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의 늪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른바 중진국 트랩에 빠지지 말고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 같은 결론을 내기 위해 약 1년 동안 비서진에 주요국 1인당 국민소득 자료를 꾸준히 요구했다고 한다.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 3만 달러로 가는 데 어떤 장애물이 있는지 연구한 것이다 삼성에 정통한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은 늘 ‘나는 임원들보다 시간이 있고, 많은 전문가를 안다’고 말했다. 미래의 위기와 기회를 엿보고, 의사결정하기 위해 끊임없이 배운 것”이라고 회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시간이 날 때마다 글로벌 정재계 및 과학계 전문가를 만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올해에만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을 만났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