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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인류 최초로 달에 발자국을 남긴 사람은? 잘 알려진 대로 정답은 ‘닐 암스트롱(1930~2012)’이다. 그러면 두 번째는 누구일까. 시사상식에 밝은 분은 버즈 올드린(87)이라고 답을 하실 터. 아폴로 11호를 타고 우주로 나간 두 사람은 협정 세계시(UTC) 기준 1969년 7월 20일, 한국시간으로는 이튿날인 21일 인류 최초로 달 착륙에 성공했다. 퀴즈 하나 더. 달을 처음 떠난 사람은 누구일까. 이번에는 올드린이 정답이다. 달착륙선인 ‘이글호’에서 조종사인 올드린이 앉는 자리가 더 안쪽이었기에 올드린이 나중에 내리고 먼저 탔어야 했다. 이런 구조 때문에 짓궂은 이들은 올드린을 인류 역사상 최고 ‘콩라인(2등을 뜻하는 인터넷 용어)’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래도 올드린은 사정이 나은 편이다. 사령선인 컬럼비아호 조종사 마이클 콜린스(87)는 아예 달을 밟아보지도 못했다. 대신 콜린스는 멋진 사진을 많이 찍기로 유명한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도 수작으로 손꼽히는 아래 사진을 남겼다. 사진이라면 올드린도 뒤지지 않는다. 그는 1966년 제미니 12호를 타고 나가 4시간 동안 우주유영(EVA)을 하면서 ‘셀카’를 찍었다(아래 사진). 이 사진은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우주에서 찍은 셀카다. 달에서 처음 사진에 찍힌 사람도 올드린이다. 암스트롱이 입은 우주복에만 카메라가 달려 있었기에 암스트롱은 달에 첫발을 내딛고도 정작 자기가 나오는 ‘인증샷’을 남기지 못했다. 버즈 올드린이 쓴 헬멧 부분에 조그맣게 비친 게 전부다. 당시에는 TV 보급률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음에도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은 전 세계적으로 약 6억 명이 시청했다. 동아일보에서는 김남호 진철수 특파원이 미국 휴스턴 우주기지에 머물면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날 하루만이 아니다. 동아일보는 그해 7월 11일부터 본격적으로 지면 곳곳을 달 탐사 관련 보도로 채웠다. 그달 12일자 동아일보는 “달 표면에 첫발을 내디딜 것을 상상만 해도 어마어마한 그 순간 월인(月人) 암스트롱은 무엇을 생각하고 지상의 우리들은 또 무엇을 느낄 것인가. 기자회견에서 암스트롱은 ‘달 표면에 내려선 첫 순간 무어라고 말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다만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다’고 대답하면서 굳은 표정이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암스트롱이 달에 첫 발자국을 남기기 전 남긴 말은 그 유명한 “이것은 한 사람에게는 작은 발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다(That‘s one small step for a man, one giant leap for mankind)”였다. 올드린이 달을 밟고 남긴 첫 마디는 “아름답다! 아름다워!”였다. 이들이 지구로 돌아온 그달 25일 동아일보 1면에는 서정주 시인(1915~2000)이 쓴 ’대우주의 님에게 - 미스터 앨드린(올드린) 宅(택) 잔디밭 옆에서‘라는 시를 실었다. “그 색시의/한 발톱에 턱도 대 보고/입술 부르르 떨고 내려오는/미스터 ’앨드린‘ 부러웁군/달아/너는/그저/그 시의 한 개 발톱이었던 것을/이쁜 때도 삼삼히 끼인/그 색시의 한 개 발톱이었던 것을… (후략)” 서 시인이 암스트롱이 아니라 올드린에 대한 시를 쓴 정확한 이유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암스트롱보다 올드린이 한국과 인연이 깊다. 미국 공군 조종사였던 올드린은 6·25 전쟁에 참전해 F86 세이버를 몰고 총 66회 출격해 옛 소련 전투기 두 대 격추한 전력이 있다. 미국 잡지 ’라이프‘ 1953년 6월 8일자에는 올드린이 격추한 미그15 전투기에서 조종사가 탈출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암스트롱과 올드린 달에 첫발을 디딘 이후 아폴로 계획이 17호로 막을 내릴 때까지 총 12명이 달에 다녀왔다. 아폴로 17호가 달을 떠난 건 1972년 12월 14일. 그 후 인류는 45년이 다 지나도록 달에 가지 않고 있다. 아폴로 17호 선장이던 유진 서넌(1934~2017)이 현재까지 달에 발자국을 남긴 마지막 사람이다. 서넌 선장은 달을 떠나면서 바닥에다 딸 트레이시의 이름 약자인 ’TDC‘를 썼다. 인류가 달에 남긴 첫 번째 흔적은 작은 발자국이었지만 마지막 흔적은 크고 깊은 사랑이었던 셈이다. 마지막 퀴즈. 인류 역사상 두 번째로 달에 발걸음을 디딘 사람은? 이제 올드린이라는 이름을 떠올리게 되셨으리라 믿는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올해 5월 아시아나항공은 승무원 A 씨에게 ‘비행 금지’ 징계를 내렸습니다. 자기 딸을 ‘벙커’에서 쉬게 했다는 이유였죠. 문제가 생긴 건 건 5월 16일. A 씨는 이탈리아 로마에서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근무 중이었습니다. 이 비행기에는 A 씨 남편과 중학생인 딸도 타고 있었습니다. 비행 중 딸이 “몸이 좋지 않다”고 하자 A 씨가 딸을 벙커로 데려간 겁니다. 아시아나 관계자는 “기내에서 응급환자가 발생했을 때도 승무원이 아닌 사람이 벙커에 들어온 전례가 없었다. A 씨가 사규를 위배했는지 정확하게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인사 조치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도대체 벙커는 뭘까요? 벙커의 정식 명칭은 ‘승무원 휴식칸(Crew Rest)’입니다. 장거리 운항 중 승무원들이 교대로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마련한 공간이죠. 아래 사진처럼 말입니다. 비행기를 수 없이 탔지만 이런 공간을 본 적 없으시다 고요? 그럴 수밖에 없죠. 승객은 볼 수 없는 곳에 숨어 있거든요. 아래 사진을 보시면 탑승석 위층에 있는 벙커로 가는 계단을 어떻게 숨겼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물론 벙커로 가는 길이 꼭 저렇게만 생긴 건 아닙니다. 기종에 따라 벙커 위치가 다릅니다. 예를 들어 보잉 747-400은 비행기 꼬리날개 바로 앞에 벙커를 마련해두었습니다. 에어버스 A380은 탑승석 아래쪽이 벙커입니다. 이런 위치도 100% 맞는 건 아닙니다. 항공사에서 비행기를 구매할 때 규모나 위치를 별도로 지정하기 때문이죠. 벙커 인테리어 역시 기종에 따라 다릅니다. 아래 사진처럼요. 한 전직 승무원은 “벙커 안에는 인터폰과 에어컨이 있고 회사에 따라 영화를 볼 수 있는 모니터를 달아주기도 한다. 하지만 실내가 비좁고 잠을 청하는 시간이 짧기 때문에 비행 피로를 제대로 풀기는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모든 승무원이 동시에 쉬면 기내 서비스에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벙커 침대 숫자는 탑승 승무원 숫자보다 적습니다. A씨가 탔던 비행기는 승무원 11명이 근무하는데 침대는 7대였습니다. A씨는 “딸을 벙커에 데리고 왔을 때는 6명이 휴식 중이라 침대 한 대가 비어 있었다. 동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휴식을 취하게 한 것”이라고 해명했죠. 사실 아시아나항공 벙커에 승무원이 아닌 사람이 들어간 게 A 씨 딸이 처음은 아닙니다. 검찰에서 2007년 김경준 전 BBK투자자문 대표(51)를 미국 로스엔젤레스(LA) 교도소에서 한국으로 송환할 때도 비행기가 이륙하기 전까지 김 전 대표가 벙커에 숨어 있었죠. 기내에서 김 씨를 본 사람들이 외부로 이 사실을 알릴까 봐 격리조치를 취했던 겁니다. 비행기가 이륙하고 휴대전화 사용이 불가능한 지점이 되어서야 김 전 대표는 이코노미석에 있는 자기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삼겹살이 맛있다’는 건 83년 전 조상들도 알았습니다. 1934년 11월 3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기사 ‘육류의 좋고 그른 것을 분간해 내는 법’에는 “도야지(돼지) 고기의 맛으로 말하면 소와 같이 부위가 많지 아니하나 뒤 넓적다리와 배 사이에 있는 세겹살(삼겹살)이 제일 맛이 있고 그다음으로는 목덜미 살이 맛이 있다”는 문장이 나옵니다. 한국 언론에 삼겹살이 등장한 건 이 기사가 처음입니다. 삼겹살이 맛있다는 건 미국 사람들도 압니다. 그저 한국을 찾은 미국인들이 삽겹살 맛에 반하고 돌아간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삽겹살을 뜻하는 영어 표현 중에 ‘Raw Bacon’이라는 게 있습니다. 익히지 않은 베이컨이 삽겹살인 셈. 영국이나 캐나다에서는 베이컨을 보통 등심으로 만들지만 미국 사람들은 돼지 뱃살, 즉 삽겹살로 만들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네요. 요즘 미국 사람들이 얼마나 베이컨을 좋아하는지 미국에서 삼겹살은 역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습니다. 18일 미국 농무부(USDA)에 따르면 이달 7일 삽겹살 가격은 100파운드(약 45.4㎏)에 202.56 달러(약 22만7576 원)로 200 달러를 넘어 섰습니다. 2013년 4월 5일에 삼겹살 가격이 136.16 달러였으니 현재까지 48.8%가 오른 셈. 반면 등심(loin)은 86.25 달러에서 94.99 달러로 10.1% 상승에 그쳤습니다. 미국 사람들도 지방이 적어 담백한 맛이 나는 등심보다 지방이 풍부해 부드럽고 달콤한 삽겹살 맛에 점점 더 빠져들고 있는 셈이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해 미국인은 2013년보다 베이컨을 14% 더 많이 샀다”며 “미국인도 베이컨이 건강에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맛에 이끌려 ‘길티 플레저(guilty pleasure·하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만족감 때문에 하는 행위)’를 포기하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그럼에도 삼겹살은 역시 한국입니다. 축산물종합정보센터에 따르면 삼겹살 1㎏당 소비자가는 2013년 1만4233원에서 올해 2만1911원으로 53.9% 올랐습니다. 지난해에만 삼겹살 14만8746t을 해외에서 수입했음에도 가격 상승을 막지 못했죠. 미국은 한국이 돼지고기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지난해 전체 돼지고기 수입량 31만8498t 중 3분의 1(10만6089t)이 미국에서 건너 왔습니다. 물론 가장 많이 수입한 부위는 삼겹살이었습니다. 그러니 미국에서 삼겹살 값이 오르는 걸 보고 ‘또 금(金)겹살을 먹겠구나’하는 걱정이 된 게 아주 기우만은 아닐 겁니다. 가격 더 오르기 전에 오늘 저녁 ‘삼소(삽겹살+소주)’ 어떠십니까.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컴퓨터 부품 중에서 요즘 제일 구하기 힘든 건 그래픽 카드입니다. 컴퓨터 부품은 시간이 흐르면 가격이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가격이 40만 원 이상 오르는 일도 있습니다. 그나마 주문을 하고 나서 2~3주 정도는 기다려야 제품을 받아볼 수 있죠.이렇게 그래픽 카드가 귀한 몸이 된 건 ‘비트코인(bitcoin)’, ‘이더리움(ethereum)’, ‘제트코인(Z Coin)’ 같은 가상화폐 때문입니다. 이런 가상화폐는 기본적으로 암호를 풀어야 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암호를 풀려면 ‘부동소수점 연산’을 해야 합니다. 컴퓨터에 쓰는 모든 부품 중에서 그래픽 카드 안에 들어 있는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이 연산을 가장 잘합니다. 보통 컴퓨터에선 중앙처리장치(CPU)가 연산을 담당하죠. 하지만 이 부동수소수점 연산에는 GPU 여러 대를 쓰는 게 더 효율적입니다. CPU가 어려운 수학 문제를 빨리 푸는 장치라면 GPU는 쉬운 문제가 아주 많이 있을 때 빨리 푸는 능력이 있거든요. 이 때문에 가상화폐를 채굴(mining·암호를 푸는 과정)하는 사람들이 그래픽 카드를 대량 구매하면서 시장에 물량이 부족하게 된 거죠. 아예 채굴 공장을 차리기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래픽 카드를 사기가 좀 수월해질지 모르겠습니다. 가상화폐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 가격 하락 추세를 보여서죠. 지난달 12일 2911달러까지 올랐던 비트코인 가격은 17일 현재 1925달러로 내려왔습니다. 물론 올해 1월 13일 780달러였던 것에 비하면 비트코인은 여전히 비쌉니다. 그래도 그래프 모양은 심상치 않습니다. 전형적인 ‘버블 붕괴’ 모양이거든요. 레프 톨스토이는 소설 ‘안네 카레리나’에 “행복한 가정은 서로 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서로 다른 이유로 불행하다”고 썼지만 버블은 반대입니다. 경제적 거품을 뜻하는 버블은 서로 비슷한 모양으로 빠집니다. 미국 월가에서는 ‘하이먼 민스키 모델’을 거품 붕괴 모형으로 사용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이먼 민스키(1919~96)는 평생을 금융 불안정성(Financial Instability) 연구에 바친 미국 경제학자입니다. 이 연구는 원래 ‘주류 경제학’에서 크게 인정받지 못했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재조명받았죠. 금융 불안정성 이론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고수익을 노린 고위험 투자가 점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확대되면서 자본주의 금융 시스템은 결국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민스키는 아래 그래프 같은 사이클에 따라 거품이 빠진다고 분석했습니다. 어떻습니까. 비트코인 가격 추이가 이 모델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이 들지 않으시나요? 게다가 갈수록 매도 물량이 늘고 있어 이 가격이 더욱 내려갈 확률도 높은 상황입니다. 이렇게 되면 비트코인은 정말 하이먼 민스키 모델을 그대로 따라갈지 모릅니다. 다만 모두가 이 분석에 동의하는 건 아닙니다. 이미 이런 조정 단계를 여러 번 거쳤지만 비트코인 가격이 계속 올랐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죠. ‘마스터링 비트코인(Mastering Bitcoin)’이라는 책을 쓴 안드레아스 M 안토노풀로스 씨는 “비트코인 가격이 폭락한 이유는 가격이 너무 빨리 오른 것에 대한 조정 반응일 뿐”이라며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투자자들은 안심해도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과연 앞으로 가상화폐에 돈을 쓰는 건 합리적인 투자가 될까요? 아니면 거품 속으로 뛰어드는 투기에 그칠까요? 돈 버는 데 별 소질이 없는 저로선 그저 빨리 새 컴퓨터를 마련할 수 있도록 그래픽 카드 가격이나 좀 내렸으면 좋겠습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프로야구 팬은 압니다. 볼카운트에 따라서 스트라이크존 크기가 달라진다는 걸 말이죠. 타자에게 제일 유리한 3볼 노(0)스트라이크 상황에서는 스트라이크존이 가장 넓고, 거꾸로 투수에게 가장 유리한 0볼 2스트라이크 때는 스트라이크 존이 가장 좁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현상을 ‘부작위 편향(omission bias)’이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부작위 편향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심리 상태를 말합니다. 부작위(不作爲)라는 낱말은 법률적으로 “마땅히 하여야 할 일을 일부러 하지 아니함(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책임이 따르는 행동을 피할 수 있으니까요. 원래 방금 투수가 던진 공이 볼인지 스트라이크인지 판정하는 건 구심(球審)에게 제일 중요한 임무. 그런데 3볼에서 볼을 선언하면 타자는 볼넷을 얻어 1루 베이스로 걸어가게 되고, 2스트라이크에서 스트라이크를 선언하면 타자는 삼진 아웃을 당합니다. 반대로 3볼에서 스트라이크를 선언하거나, 2스트라이크에서 볼을 선언하면 그냥 볼카운트만 바뀔 뿐입니다. 스크라이크존이 넓어지거나 좁아지는 이유죠. 부작위 편향과 비슷하지만 방향이 다른 개념으로 손실 회피 편향(loss aversion bias)이 있습니다. 문자 그대로 손해를 피하려는 경향이 손실 회피 편향입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83)는 사람들이 똑같은 금액을 얻을 때 느끼는 만족감보다 잃어버렸을 때 느끼는 상실감이 2배 더 크다는 걸 실험으로 증명했습니다. 일기예보 때도 이 손실 회피 편향이 작동합니다. 미국 오하이오주에 사는 에릭 플로에르(46)라는 컴퓨터 과학자는 2002년 연구를 통해 방송사 등에서 강수확률을 20%라고 발표했을 때 실제로 비가 온 경우는 5%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실제보다 강수확률을 부풀려서 발표한 겁니다. 이렇게 예상 강수확률은 실제보다 계속 높다가 70% 이상이 되어서야 실제와 비슷한 확률이 됩니다. 플로에르는 이런 현상에 ‘축축한 편향(wet bias)’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일기예보 때 이렇게 강수확률을 높게 발표하는 이유는 그게 ‘욕을 덜 먹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우산이 없는데 비가 올 때가 우산을 들고 나왔는데 비가 오지 않을 때보다 더 당혹스러운 게 당연한 일. 우산이 없는 데 비가 올 때 ‘오늘 일기예보가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 많을 겁니다. 각종 산업 현장에서도 비에 대비를 해뒀는데 비가 오지 않는 편이 준비 없이 비가 내릴 때보다 손해가 적겠죠? 이런 이유로 일기예보를 발표할 때는 틀릴 줄 알면서도 강수확률을 높게 잡는다는 게 플로에르가 내린 결론입니다. 한국도 사정은 비슷합니다. 기상청에서 내놓은 2012~2015년 장마기간 예보정확도를 따져 보면 비가 온다고 했는데 비가 오지 않아서 예보가 틀린 비율은 7.9%로 그 반대 경우 7.0%보다 12.3% 높았습니다. 또 한 전직 예보관은 “장마철에 비가 100㎜ 올 확률이 높다면 예측 강수량은 이보다 조금 높여서 예보하는 일이 많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은 500억 원짜리 슈퍼컴퓨터를 쓰고도 기상청이 항상 틀린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강수 예보가 14.9%(=7.0%+7.9%)가 틀렸다는 건 85.1%(=100%-14.9%)는 맞았다는 뜻입니다. 게다가 날씨를 예측하는 이들도 틀릴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어떻게 틀려야 사람들에게 피해를 덜 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또 틀렸다”고 비난하기 전에 한번쯤 그 고민을 알아줘도 나쁜 일은 아니지 않을까요?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국제축구연맹(FIFA) 월드컵 역사상 첫 승을 거둔 나라는 어디일까요? 정답은 미국입니다. 1930년 오늘(13일) 미국은 우루과이 수도 몬테비데오에 있는 에스타디오 파르케 센트랄에서 벨기에를 3-0으로 물리쳤습니다. 당시 월드컵에는 개막전 개념이 없어 이 경기와 같은 시각 프랑스-멕시코 경기도 열렸습니다. 이 경기에서는 프랑스가 4-1 승리를 거뒀습니다. 사상 첫 월드컵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미국과 프랑스는 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월드컵 출범을 도왔습니다. 월드컵 이전에 전 세계 축구인들 이목을 가장 집중시킨 세계 대회는 올림픽이었습니다. 그런데 1932년 로스엔젤레스(LA)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미국에서 인기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 축구를 올림픽 종목에서 제외했습니다. 대신 미식축구를 시범 종목으로 넣었죠. 이에 반발해 프랑스 출신인 쥘 리메 FIFA 회장(1873~1956)이 발벗고 나서 만든 대회가 바로 월드컵입니다.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브라질이 통산 3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이 트로피를 영구 보관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습니다. 이 트로피는 1983년 도난 당했고 범인 일당은 이 트로피를 녹여 금괴로 팔아버렸습니다. 이제 FIFA 월드컵은 각 나라 축구 대표팀이 서로 못 나가 안달인 대회지만 제1회 대회 때는 서로 ‘네가 가라, 우루과이’ 모드였습니다. 리메 회장이 사비를 털어 유럽 각국 축구협회를 찾아 다니며 “제발 선수들을 보내 달라고” 로비를 하고 다녀야 할 정도였습니다. 아직 항공 교통이 발달하기 전이라 유럽에서 남미에 있는 우루과이까지 배를 타고 가려면 몇 주씩 걸렸거든요. 지역 예선도 없어서 참가 신청만 하면 대회에 나설 수 있었는데도 축구 종주국인 잉글랜드를 비롯해 독일 이탈리아 같은 축구 강국이 모두 끝내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대신 프랑스와 루마니아, 벨기에, 옛 유고슬라비아 등 4개국이 참가하면서 첫 번째 대회는 ‘아메리카컵’이 아니라 ‘월드컵’으로서 구색을 갖출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FIFA에서 유럽 여느 나라 대신 우루과이를 1회 대회 개최지로 선정한 이유는 뭘까요? 일단 1930년은 우루과이가 브라질로부터 독립한 지 100주년 되는 해였습니다. 또 당시 우루과이는 1924년 파리 올림핌과 1928년 암스테르담 올림픽에서 2연패를 차지한 축구 강호였습니다. 게다가 우루과이 정부에서 다른 나라 선수들에게도 교통비, 숙박비를 비롯해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고 했으니 FIFA로서는 우루과이를 선택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 대회에는 지역 예선뿐만 아니라 없는 게 참 많았습니다. 심판이 부족해 각국 감독이 돌아가며 다른 나라 경기 때 선심을 맡았습니다. 울리세스 사우체도 볼리비아 대표팀 감독(1896~1963)은 아르헨티나-멕시코 경기 때 주심을 보기도 했습니다. 사우체도 감독은 이 경기에서 페널티킥을 3개 불었습니다. 보통은 3경기에 한 번만 불어도 페널티킥 선언이 많은 심판으로 손꼽힙니다. 볼리비아 선수들은 실제로 이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뛰었습니다. 그만큼 당시에는 월드컵에서 국가간 경쟁의식이 두드러지지 않았습니다. 프랑스 대표팀에는 감독이 없었습니다. 프랑스는 리메 회장 모국이니까 리메 회장 체면을 생각해 대회에 참가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단, 가스통 바루 대표팀 감독(1883~1958)은 개인적으로 대회 불참을 선언했습니다. 그래서 라울 카우드롱(1883~1958) 코치가 이 대회 때 대신 지휘봉을 잡았습니다. 대회가 끝난 뒤에는 바루 감독이 자기 자리로 복귀했습니다. 이 대회 준우승팀 아르헨티나에는 주장이 없었습니다. 원래는 마누엘 페레이라(1905~1983)가 아르헨티나 대표팀 주장으로 이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페레이라는 당시 대학생이었는데 시험을 봐야 한다며 대회 도중 짐을 싸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게 아르헨티나에 꼭 나쁜 일만은 아니었습니다. 페레이라를 대신해 출전한 기예르모 스타빌레(1905~1966·사진)가 8골을 넣으면서 월드컵 초대 득점왕에 올랐거든요. 첫 번째 월드컵에는 공인구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서로 자기 나라 공을 쓰자고 목소리를 높이기 바빴습니다.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가 맞붙은 결승전 때는 결국 전반전에는 아르헨티나에서 만든 공, 후반전에는 우루과이에서 만든 공을 쓰기로 결정했습니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 공을 쓴 전반에 1-2로 밀렸지만 자기네 공을 쓴 후반전에 3골을 넣으면서 결국 4-2로 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이 결승전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뛰었던 프란시스코 바라요는 2010년 8월 30일 100세를 일기로 숨을 거뒀습니다. 그는 100번째 생일이던 그해 2월 5일 FIFA와 인터뷰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이 결승전 패배를 꼽았습니다. 바라요를 마지막으로 이 월드컵에 참가했던 선수는 그 누구도 현재 이 세상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한국이 월드컵에 첫 출전한 건 이로부터 24년이 지난 1954년 스위스 대회 때부터였습니다. 당시 한국은 헝가리에 0-9로 패했습니다. 그러자 일부에서 “아시아나 아프리카 나라는 축구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월드컵에 나와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이에 대해 리메 회장은 “지금은 한국이 처참하게 무너졌다고 해도 수십 년 뒤에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게다가 그런 주장 자체가 월드컵이라는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축했습니다. 그 예상대로 한국은 이제 8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나라가 됐고, 월드컵은 미국프로미식축구리그(NFL)에 이어 두 번째로 TV 중계권료가 비싼 스포츠 이벤트가 됐습니다. 1930년 전 오늘 첫 경기를 치른 선수들은 월드컵이 이렇게 대단한 대회가 될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요?}

1914년 오늘(11일)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19살짜리 투수가 있습니다. 이 투수는 데뷔전에서 클리블랜드 타선을 7이닝 2실점으로 막고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데뷔 첫해 성적은 2승 1패, 평균자책점 3.91. 이 투수는 그 해 일정이 모두 끝난 10월 17일 헬렌 우드포드(1897~1929)하고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헬렌은 이 투수가 자기 데뷔 팀 연고 도시였던 보스턴에 도착한 첫날 커피숍에서 만난 점원이었습니다. 결혼 후 보스턴 선발 한 축을 꿰찬 이 투수는 18승 8패, 평균자책점 2.44로 1915 시즌을 마감했습니다. 1916년에는 23승 12패를 거두며 평균자책점(1.75) 리그 1위에 올랐습니다. 만 21세 이전에 아메리칸리그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른 건 이 투수가 처음이자 마지막입니다. 그는 사실상 자신의 월드시리즈 데뷔전이었던 1916년 2차전에서 혼자 14이닝을 1실점으로 막으면서 완투승을 기록했습니다. 메이저리그 포스트시즌에서 14이닝 완투승을 거둔 건 지금까지도 이 투수 혼자입니다. 이 투수는 1917년에도 24승 13패를 기록하며 만 23세 이전에 2년 연속 23승 이상을 기록했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 건 여전히 이 투수 한 명뿐입니다. 이 투수는 1918년 월드시리즈 때는 2승 무패, 평균자책점 1.06으로 보스턴 마운드를 이끌었습니다. 이 투수는 이해 4차전에서 8회 2실점하기 전까지 월드시리즈에서 29와 3분의 2 이닝 연속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이 기록은 43년이 지난 1961년에야 깨졌습니다. 이 투수는 누구일까요? 정답은 조지 허먼 ‘베이브’ 루스입니다. 네, 메이저리그에서 통산 714홈런을 기록한 그 베이브 루스 맞습니다. 보통은 루스를 홈런왕으로 기억하는 분들이 많지만 그는 사실 메이저리그에서 94승 46패, 평균자책점 2.28을 남긴 에이스급 투수이기도 했습니다. 요즘 일본 프로야구 니혼햄에서 뛰는 오타니 쇼헤이(大谷翔平·23)가 투수와 타자를 겸해 ‘이도류(二刀流)’로 불리고 있는데 루스는 100년 전에 이미 리그 최고 투수이자 리그 최고 타자로 손꼽혔습니다. 지금은 오타니가 대단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루스에게는 비할 바가 못 됩니다. 단, “투구는 좋아했지만 타격은 사랑했다”는 루스는 결국 나중에는 타격에만 전념하게 됩니다. 만약 투수도 계속했으면 어땠을까요? ‘야구란 무엇인가’라는 책으로 한국 팬들에게도 친숙한 야구 기자 레너드 코페트는 “만약 루스가 뛰던 시절에 지금처럼 지명타자 제도가 있었다면 루스는 투수로는 400승을 거두면서 타자로는 800홈런을 칠 수 있었을 것”이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수비는 하지 않고 타격에만 전념하는 지명타자 제도가 생긴 건 1973년입니다. 루스는 당시 최다였던 714홈런을 치고 은퇴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루스가 은퇴할 때까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삼진을 가장 많이(1330개) 당한 타자도 루스였다는 점입니다. 이에 대해 루스는 “삼진을 먹을수록 나는 다음 홈런에 더 가까워진다”고 말했습니다. 삼진을 두려워하면 홈런을 칠 수 있을 만큼 강한 타구를 때릴 수 없다는 거였죠. 혹시 작은 손해가 두려워 어떤 일을 망설이고 계시지는 않나요? 그럴 때 루스를 떠올려 보면 어떨까요? 루스는 데뷔 첫 타석도, 메이저리그 마지막 타석도 삼진이었지만 사람들은 그를 삼진왕이 아니라 홈런왕으로 기억합니다. 게다가 어떤 일을 잘하게 되는 첫 걸음은 분명 어떤 일에 실패해 보는 것입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1985년 7월 8일 새벽 3시 반경. 당시 프로야구 OB(현 두산)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성근 감독은 대구 방문 일정 도중 ‘투수 박상열이 물에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게 됩니다. 박상열은 1984년 12승(7패)을 따낸 팀의 주축 투수였지만 이해에는 시즌 중반까지 3승(3패)에 머물고 있던 상태. 때마침 아들을 얻기도 한 박상열은 득남도 자축할 겸 울적한 기분도 해소할 겸 동료들과 어울려 새벽까지 수성못 인근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셨습니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박상열은 그해 신인 김영신에게 수성못 안에 있는 바위까지 누가 헤엄 쳐서 먼저 갔다 오는지 내기를 하자고 제안합니다. 수영을 잘 못하던 김영신이 머뭇거리자 박상열은 “내가 해병대 출신이다. 물에 빠지면 건져 주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결국 둘은 팬티까지 모두 벗고 물속으로 뛰어 들어갔죠. 그런데 김영신이 한참 헤엄을 치다 포기하고 돌아와보니 박상열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옷은 벗어둔 자리에 그대로 있던 상태. 김영신은 애타게 “상열이 형! 상열이 형!”하고 불렀지만 메아리조차 없었습니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자 김영신은 구단 프런트 직원에게 연락했습니다. 이때가 새벽 2시경. 그 뒤 프런트 직원들까지 동원해 1시간 반 동안 수성못 근처를 뒤졌지만 끝애 박상열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 감독에게까지 보고를 했던 것. 김 감독은 숙소에 있던 선수들을 모두 깨워 ‘유명을 달리한’ 박상열의 시신을 한 시간 넘게 애타게 찾았습니다. 먼동이 터오던 새벽 4시 40분경 누군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찾았다!” 박상열을 찾은 곳은 수성못이 아니라 숙소였습니다. 술에 취한 박상열이 자기 방이 아니라 다른 선수 침대 밑에 발가 벗은 채 시체처럼 곯아떨어져 있었던 것.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김 감독은 박상열에게 “곧바로 짐을 사서 2군으로 내려가라”고 소리쳤습니다. 이상은 고 이종남 야구 전문기자가 펴낸 책 ‘사람 좋으면 꼴찌’에 들어 있는 내용을 정리한 것. 그래도 김 감독 눈에 박상열이 아주 내칠 만큼 싫지는 않았는지 둘은 지난해까지 한화에서 한솥밥을 먹기도 했습니다. ‘수성못 익사 사건’은 결국 해프닝으로 끝났지만 이듬해 김영신이 정말 물에 빠졌을 때는 박상열이 그를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1986년 8월 16일자 동아일보는 “OB 베어스 소속 김영신 선수(당시 26)가 익사체로 떠내려오는 것을 육군 초병이 발견, 인양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기사는 계속해 “경찰은 사체 검안 결과 김 선수가 14일 오후 4시경 익사했으며 더위를 피해 혼자 한강에 나갔다가 급류에 휘말려 변을 당한 것으로 추정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단, 이 기자는 같은 책에서 “김영신이 (성적 비관을 이유로) 한강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썼습니다. 김영신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LA) 올림픽 국가대표로 뽑히는 등 유망주로 손꼽히던 포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OB는 ‘포수 사관학교’라고 불릴 만큼 좋은 포수가 많았습니다. 김경문(59·현 NC 감독), 조범현(57·전 kt 감독) 등 당대를 대표하는 포수들이 주전 경쟁을 벌이는 통에 김영신을 출전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김영신은 2년간 22경기에 나서 타율 0.156에 2타점을 기록한 게 전부였습니다. OB는 그의 죽음을 애도하는 의미에서 등번호 54번을 영구결번 처리했습니다. 이는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첫 번째 영구 결번 사례입니다. 동아일보 기사에서 ‘영구결번’이라는 표현을 쓴 것도 김영신이 처음이었습니다. LG에서 9일 이병규(43)가 썼던 등번호 9번을 영구결번으로 만들면서 이제 프로야구에 영구 결번은 총 13개가 됐습니다. 영구결번은 역사에 영원히 남을 만큼 대단한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팀이 선물하는 최고의 영예. 그래서 나머지 영구결번 열 두 번 모두 기쁨과 훨씬 더 가깝지만 첫 번째만은 유독 슬픔과 맞닿아 있습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그녀의 발’은 참 예뻤다. 새까맣게 탄 종아리와 대비돼 더욱 희게 빛났던 그 발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 위기에 빠진 대한민국 국민에게 희망의 상징이 됐다. 그 발 주인공은 박세리(40)였다. 무대는 1998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US여자오픈이 열린 미국 위스콘신주 블랙울프런 골프장. 당시 스물 한 살의 박세리는 전날 열린 4라운드까지 동갑내기 제니 추아시리폰(미국)과 나란히 6오버파 공동 선두로 경기를 마쳤고, 대회는 연장 라운드로 이어졌다. 7월 7일 열린 연장전도 최종 18홀까지 두 선수는 동타였다. 18번홀(파4). 박세리가 티샷한 공은 왼쪽으로 감기면서 워터 해저드(연못) 바로 옆 경사면 러프에 아슬아슬하게 걸렸다. 오른손잡이 박세리로서는 정상적인 스탠스를 잡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럴 때는 ‘언플레이어블(unplayable)’을 선언하고 1벌타를 받는 게 상식. 하지만 박세리는 양말을 벗고 연못으로 들어갔다. 연못 안에서 친 공은 페어웨이에 안착했고, 박세리는 이번에도 추아시리폰과 함께 18번홀을 보기로 마쳤다. 이제 누구든 한 홀만 앞서면 우승하는 ‘서든 데스’에 돌입했다. 승부가 갈린 건 92번째로 맞은 11번 홀(파4). 둘 모두 투 온에 성공한 뒤 추아리시폰이 먼저 퍼팅한 공이 홀 왼쪽으로 비켜가면서 60㎝를 지나쳤다. TV 중계를 지켜보던 모두가 숨을 죽였다. 박세리가 홀컵 5m 거리에서 친 공은 홀 컵으로 쏙 빨려 들어갔다. 박세리가 이날만 5시간이 걸린 혈전을 끝내는 순간이었다. 같은 해 5월에 열린 맥도널드 LPGA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던 박세리는 이날 우승으로 LPGA 역사상 처음으로 메이저 대회를 2연패한 신인 선수가 됐다. 그는 펑펑 울면서도 환한 웃음을 잃지 않았다. 당시 현지 중계진은 “이제 박세리의 방에는 우승 트로피를 쌓아둘 선반이 필요할 것”이라고 평했다. 박세리가 남긴 발자취는 LPGA에서 따낸 우승 트로피 25개 그 이상이었다. 그가 양말을 벗는 장면은 가수 양희은 씨의 노래 ‘상록수’와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공익광고가 됐다. 당시 박세리는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서 뛰던 ‘코리안 특급’ 박찬호(44)와 함께 한국 국민에게 따뜻한 위안을 주는 존재였다. 1998년 7월 7일 박세리의 그 흰 발은 “우리들 가진 것 비록 적어도/ 손에 손 맞잡고 눈물 흘리니/ 우리 나갈 길 멀고 험해도/ 깨치고 나아가 끝내 이기리라(‘상록수’)”라고 희망을 노래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설마 아직도 ‘탕진잼’이라는 말 못 들어보신 거 아니죠? ‘먼지잼’은 아시나요? 탕진잼의 ‘잼’은 재미를 줄인 말. 고단한 일상 속에서 몇 천 원 정도 쯤 탕진하면서 위안을 얻는 재미를 뜻합니다. 그러면 먼지잼은 먼지를 뒤집어쓰고 청소하는 재미일까요? 아닙니다. 먼지잼에서 잼은 ‘재우다’를 줄인 말입니다. 먼지를 재울 수 있을 만큼, 그러니까 겨우 먼지나 날리지 않을 정도로 조금 내리는 비가 바로 먼지잼입니다. 이렇게 비 종류를 나타내는 ‘토박이말(순우리말)’을 살펴보겠습니다. 제일 유명한 건 역시 ‘소나기’. 문자 그대로 ‘지나가는 비’입니다. ‘소낙비’ 역시 소나기와 같은 표준어니 공식 문서 같은 곳에 쓰셔도 됩니다. 안개하고 소리가 비슷한 ‘는개’는 ‘안개비보다 조금 굵고 이슬비보다는 가는 비(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를 뜻합니다. 빗줄기 굵기로 따지면 안개비가 제일 얇고, 그다음으로 는개- 이슬비- 가랑비 순서입니다. 가랑비가 바람 없이 조용하게 내리면 보슬비가 됩니다. 같은 사전에 따르면 ‘보슬거린다’는 말 자체가 ‘눈이나 비가 가늘고 성기게 조용히 내린다’는 뜻입니다. 부슬비는 보슬비의 큰말입니다. 빗줄기가 제일 굵은 장대비가 오래도록 쏟아지는 장마를 예전에는 ‘오란비’라 불렀습니다. ‘오래다’의 옛말이 ‘오라다’였거든요. 장마 중에는 ‘건들장마’도 있습니다. 건들장마는 ‘초가을에 비가 오다가 금방 개고 또 비가 오다가 다시 개고하는 장마’를 뜻합니다. 사람이 무게 없이 행동하는 걸 건들거린다고 하잖아요? 가볍게 땅을 건드린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초가을에 선들선들 부는 바람 이름도 ‘건들바람’입니다. 오란비와 건들장마 사이에 내리는 비는 ‘잠비’라고 합니다. 한창 농번기지만 비를 핑계로 잠자기 좋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건들장마가 지나면 ‘떡비’가 내립니다. 가을걷이가 끝나면 비 온 김에 떡을 해 먹으며 쉴 수 있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이 붙었죠. 애주가에게 떡이 있는데 술이 빠지면 서운한 법. 농한기에 내리는 겨울비는 그래서 ‘술비’입니다. 장마가 끝나고 내리는 비 중에는 얼핏 비속어처럼 들리는 ‘개부심’도 있습니다. ‘장마로 큰물이 난 뒤, 한동안 쉬었다가 다시 퍼붓는 비’라는 뜻입니다. 개부심은 명개를 부시어 낸다는 의미인데요, 표준국어대사전에선 ‘흙탕물이 지나간 자리에 앉은 검고 고운 흙’이라고 풀이합니다. 이 글을 쓰는 현재 서울 광화문에는 여우볕이 끝나고 다시 비가 한두 방울 떨어집니다. 여우비가 볕이 든 상태로 잠깐 내리를 비를 뜻하는 것처럼 여우볕은 비나 눈이 오는 날 잠깐 나는 볕을 뜻합니다. 여러분이 계신 곳 날씨는 어떤가요? 탕진잼으로 겨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여러분 마음 속에도 혹시 비가 오고 있나요? 혹시 그렇다면 적어도 이 ‘불금(불타는 금요일)’만큼은 그 비가 먼지잼으로 끝나길 기원해 봅니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위에서는 온도차가 극명합니다. 한국에서는 평창 겨울올림픽 때 단일팀을 꾸리는 등 남북한 사이에 스포츠 교류를 늘리자며 구애하고 있지만 북한에서는 장웅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남북관계를 체육으로 푼다는 건 천진난만하기 짝이 없다”고 발언하는 등 냉담하기만 합니다.그러면 아래는 어떨까요? 그러니까 실제로 경기장에서 같이 땀 흘리는 남북한 선수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적어도 지난달 중국 저장(浙江)성 타이저우(台州)시에서 막을 내린 차이니즈컵 국제정구대회 때는 ‘훈훈’ 그 자체였습니다.사건(?)이 생긴 건 대회 마지막날인 지난달 23일이었습니다. 북한 대표 서재일(18)이 남자 단식 8강에 출전했는데 다리에 쥐가 나서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예산 문제 등으로 12개국이 참가한 이 대회에 트레이너를 파견하지 않았던 상태. 서재일이 통증이 너무 심해 코트에 주저 앉자 제일 먼저 달려간 건 한국 대표팀 이재성 트레이너였습니다. 이 트레이너는 경기가 모두 끝날 때까지 서재일을 돌봤습니다.이 대회에 한국 여자 대표팀을 이끌고 다녀온 유영동 감독은 “관중석에서 이 트레이너가 북한 선수 쪽으로 뛰어가는 걸 보는데 속에서 뭔가 뭉클한 게 올라오더라. 나중에는 관중석에 있는 우리 선수들이 전부 울면서 북한 선수를 응원했다”며 “그렇게 계속 통증을 느낄 정도면 기권할 법도 한데 북한 선수도 한국 팀에서 도움을 받았으니 끝까지 버틸 수 있던 것 같다. 결국 3-4로 패했지만 참 아름다운 장면이었다”고 전했습니다.북한 동생이 경기에서 패했으니 이제 한국 형이 나설 차례. 김태민(21·충북대)은 8강에서 서재일을 꺾은 첸쭝원(대만)을 4-3으로 꺾고 준결승에 진출했고 결국 이 대회 정상에 올랐습니다. 유 감독은 “첸쭝원은 세계선수권대회 정상을 노릴 정도로 기량이 뛰어난 선수다. 당연히 이번 대회서도 우승 후보 1순위였다. 김태민이 이런 선수를 꺾으면서 우리 민족의 자존심을 세워준 느낌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한번 맺은 인연은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유 감독은 “윤용철 북한 코치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20년 전에 아시아선수권에서 맞붙었던 거 같더라. 그래서 ‘너 용철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형님이 살이 많이 쪄서 긴가민가해서 말을 못 붙이고 있었다’고 하더라”며 웃었습니다. 따로 묻지는 않았지만 그날 호텔방에 남북한 지도자가 나눠 마신 소주병이 적잖이 쌓이지 않았을까요?‘윗분’들이 어떻게 판단하고 움직이든 국제 대회가 있을 때마다 물밑에서는 이렇게 일상적인 만남이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꼭 남북 단일팀을 꾸리겠다는 명분에 집착하기보다 이렇게 일상적인 접촉을 늘려가는 게 진짜 스포츠 교류 아닐까요?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인생은 B와 D 사이의 C다.” 프랑스 철학자 장폴 사르트르(1905∼1980)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이 태어나서(Birth) 죽을 때(Death)까지 어떤 선택(Choice)을 내리는지에 따라 인생이 바뀐다는 뜻이다. 29일 메이저리그 데뷔 경기에서 결승 홈런을 친 황재균(30·샌프란시스코)의 인생에도 몇 번이나 ‘C’가 찾아왔다. 황재균은 이날 1번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안방 AT&T파크에서 콜로라도(Colorado)를 상대로 선발 5번 타자 겸 3루수로 빅리그 신고식을 치렀다. 4회말 두 번째 타석에서 투수 앞 땅볼로 메이저리그 데뷔 첫 타점을 올린 황재균은 6회말 타석에 들어서 카일 프리랜드(24)가 던진 빠른 공(시속 145km)을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겼다. 황재균의 빅리그 첫 안타이기도 한 이 홈런은 3-3 동점에서 샌프란시스코가 4-3으로 앞서 가는 클러치(Clutch) 홈런이었다. 황재균은 이 홈런으로 1939년 톰 헤이피(1913∼1996)에 이어 데뷔전에서 홈런을 친 구단 역사상 두 번째 3루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샌프란시스코가 결국 5-3 승리를 거두면서 이 홈런은 결승 홈런이 됐다. ○ Chance(우연) 팀을 떠나려고 했던 황재균의 운명을 바꾼 건 백업 내야수 코너(Conor) 길래스피(30)였다. 부상자명단(DL)에 있던 그가 복귀하면서 입지가 좁아졌다고 판단한 황재균은 옵트아웃(Opt-out)을 통해 자유계약선수(FA) 선언을 하려고 했다. 그때 길래스피가 다시 DL에 오르면서 황재균은 빅리그에서 호출을 받았다. 황재균이 2007년 프로야구 현대에서 처음 주전 자리를 꿰찬 것도 우연 때문이었다. 당시 현대 붙박이 유격수는 지석훈(33·현 NC)이었다. 그때 현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시진 감독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석훈이 주전 유격수”라고 공언했다. 그러나 타율이 0.176밖에 되지 않던 지석훈은 김 감독을 찾아가 “타격 연습을 좀 더 할 수 있게 제발 2군(현 퓨처스리그)으로 보내 달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이때 대신 1군 무대에 올라온 선수가 황재균이었다. 황재균은 타율 0.300으로 시즌을 마치면서 눈도장을 받았다. 그 후 팀이 넥센으로 바뀌고, 포지션을 3루수로 바꾼 다음에도, 또 롯데로 트레이드된 뒤에도 황재균은 주전을 놓치지 않았다. ‘Chance’는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Challenge(도전) 황재균이 국내 무대에서 또래 중 가장 독보적인 3루수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최정(30·SK)이 있기 때문이다. 두 선수는 서로 다른 진로를 선택했다. 2014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은 최정은 4년 총액 86억 원에 SK에 잔류했지만, 황재균은 마이너리그에만 머물 수도 있는 계약 조건을 받아들였다. 메이저리그에 갔을 때 최고 보장액도 310만 달러(약 32억 원)밖에 되지 않았다. “메이저리그에서 홈런을 쳐보고 싶다”는 게 그가 도전을 선택한 이유였다. 황재균은 이날 홈런으로 꿈 하나를 이뤘다. 황재균의 도전정신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 모른다. 황재균의 어머니 설민경 씨(57)는 안성여고 시절까지 정구 선수로 뛰었지만 농협(현 NH농협은행) 입단 후 테니스로 종목을 바꿨다. 그 후 종목 변경 4년 만인 1982년 뉴델리 아시아경기에서 여자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황재균은 2014년 인천 아시아경기에서 어머니의 뒤를 이어 야구 금메달을 거머쥐었다. 이제 어머니의 뒤를 따르고 있는 아들이 빅 리그에서도 꿈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프로야구 삼성 외국인 투수 페트릭(28·사진)에게 2017년 6월 29일이 영원히 잊지 못할 날이 됐다. 페트릭은 이날 광주구장에서 안방 팀 KIA를 상대로 선발 등판해 2이닝 동안 14점을 내줬다. 이로써 페트릭은 국내 프로야구 역사상 한 경기에서 점수를 가장 많이 내준 선발 투수가 됐다. 이 14점이 모두 자책점이었기 때문에 페트릭은 선발 투수 최다 자책점 기록도 새로 썼다. 이전까지는 KIA 한기주(30)가 지난해 5월 6일 넥센을 상대로 13자책점을 내줬던 게 선발 최다 자책점 기록이었다. 14실점 및 자책점은 페트릭 본인에게도 프로에서 가장 많이 내준 점수다. 페트릭이 2012년 세인트루이스 산하 루키 팀을 통해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한 경기에서 9점 이상을 내준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프로야구 요코하마에서 뛰던 지난해에는 8월 한 달 동안 기록한 전체 자책점이 14점이었다. 페트릭은 이날 3회에도 마운드에 올랐지만 5연속 안타를 맞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KIA 타선은 바뀐 삼성 투수 권오준을 상대로도 세 타자가 연속 안타를 때려내며 프로야구 역대 최다 연속 타자 안타 기록(8타자)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운명의 날이 닷새 앞으로 다가왔다. 황재균(30·샌프란시스코·사진)은 다음 달 2일까지 구단에서 메이저리그로 ‘발령’ 내지 않는다면 팀을 떠나기로 마음을 굳혔다. 이날은 황재균이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첫날이다. 황재균은 지난겨울 샌프란시스코와 계약하면서 6월 말까지 메이저리그의 부름을 받지 못하면 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옵트 아웃(opt out)’ 조항을 계약서에 포함시켰다. 샌프란시스코 현지 언론에서는 황재균이 직접 이 옵션을 사용하겠다고 밝혔다는 보도가 줄을 잇고 있다. 황재균이 이렇게 마음을 굳힌 건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더 이상 자리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최근 3루수 두 명을 메이저리그 현역 로스터에 포함시켰지만 황재균에게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샌프란시스코는 황재균과 같이 마이너리그 AAA팀 새크라멘토에서 뛰던 3루수 유망주 라이더 존스(23)를 25일 메이저리그로 불러올렸다. 전날에는 3루 수비가 가능한 백업 내야수 코너 길라스피(30)도 부상자명단(DL)에서 복귀시켰다. 그렇다고 구단이 황재균을 차별 대우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존스는 AAA 53경기에서 OPS(출루율+장타력) 0.944를 기록했다. 양준혁(48)이 프로야구에서 18년 동안 뛰면서 남긴 OPS가 0.950이다. 황재균은 같은 날까지 OPS가 0.799로 존스보다 0.145 뒤졌다. 한국에서는 최익성(45)이 통산 OPS 0.799로 은퇴했다. 양준혁과 최익성 중에 한 명을 고르라고 한다면 양준혁을 선택하는 구단이 더 많을 게 당연한 일. 나이까지 어리다면 낙점받을 확률도 자연스레 올라간다. 길라스피도 메이저리그 8년 차 선수이기 때문에 황재균보다 경험에서 앞선다. 황재균이 실제로 FA가 된다면 다른 메이저리그 구단과 계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한국이나 일본 구단의 유니폼도 입을 수 있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류현진(30·LA 다저스)이 29일 ‘고속도로 시리즈’에서 시즌 4승에 도전한다. 고속도로 시리즈는 로스앤젤레스(LA)에 연고를 둔 메이저리그 구단 다저스와 에인절스의 라이벌전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두 팀 안방 구장을 미국 5번 고속도로(I-5)가 연결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다저스와 에인절스는 27일부터 30일까지 4연전을 치른다. 첫 두 경기는 다저스 안방에서 치르고, 다음 두 경기는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치르는 방식이다. 류현진이 등판하게 될 29일 경기는 전체 4연전 중 세 번째, 에인절스 안방에서 열리는 첫 번째 경기다. 원래 선발 등판 순서만 따지면 류현진은 28일 등판이 유력했다. 그러나 데이브 로버츠 다저스 감독은 마에다 켄타(29)에게 한번 더 선발 등판 기회를 주기로 하면서 류현진의 등판 일정이 하루 밀렸다. 마에다는 최근 세 경기에서 10이닝 동안 2실점(평균자책점 1.80)으로 호투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류현진은 닷새를 쉬고 등판하기 때문에 큰 무리가 되는 건 아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동안 5일 쉬고 등판했을 때 평균자책점이 3.33으로 나흘 휴식 때 3.67보다 더 좋았다. 에인절스는 류현진이 유독 강한 팀이기도 하다. 류현진은 2013년 5월 29일 첫 맞대결 때 완봉승을 거뒀고, 2014년 8월 8일에도 7이닝 무실점 승리를 따냈다. 에인절스 상대 피안타율도 0.088밖에 되지 않는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모범생 이미지가 강한 로저 페더러(36·스위스·세계랭킹 5위·사진)가 올해는 도박을 선택했다. 클레이 코트 시즌을 건너뛰면서 통산 7번 우승한 윔블던 테니스 대회에 다걸기(올인)하는 전략을 세웠다. 페더러가 다음 달 3일(현지 시간) 개막하는 올해 대회에서도 우승하면 피트 샘프러스(46·미국·은퇴)를 제치고 프로 테니스가 출범한 1968년 이후(오픈 시대) 윔블던 남자 단식 최다 우승자가 된다. 페더러는 1월 끝난 호주 오픈(하드 코트)에서 2012년 윔블던 이후 4년 반 만에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하드 코트 시즌 마지막 대회인 남자프로테니스(ATP)투어 마이애미 오픈 챔피언 역시 페더러였다. 그러나 이 대회가 끝난 4월 2일 이후 페더러는 두 달 넘게 테니스 코트에서 자취를 감췄다. 프랑스 오픈을 포함해 클레이 코트 시즌을 통째로 건너뛴 것이다. 페더러가 이런 선택을 한 건 지난해 수술 받은 왼쪽 무릎 보호 때문이다. 윔블던이 열리는 잔디 코트에서는 공이 낮고 빠르게 굴러 무릎을 많이 굽혔다 펴야 한다. 자연스레 무릎에 무리가 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클레이 코트에서는 페더러가 아니라 그 누구라도 라파엘 나달(31·스페인·2위)을 꺾기가 힘들다. 30대 중반을 넘긴 페더러가 아예 휴식을 선택한 이유다. 코트를 떠나 있으면 경기 감각이 떨어지는 게 당연한 일. 이 역시 모범생 캐릭터 페더러에게는 문제 될 게 없었다. 페더러는 25일 독일 할레에서 막을 내린 게리베버 오픈(잔디 코트)에서 우승하며 물 오른 컨디션을 자랑했다. 지난주 슈투트가르트 오픈 때 1회전에서 탈락한 아쉬움을 달래는 우승이었다. 지난해 12월 괴한이 휘두른 칼에 왼손 신경을 찔린 왼손잡이 페트라 크비토바(27·체코·16위)도 이날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 아혼클래식에서 우승하며 윔블던 정상 복귀를 향해 한 걸음 더 다가갔다. 크비토바는 2011년과 2014년 윔블던 챔피언 출신이다. 한편 윔블던 본선 진출권이 있는 한국 테니스 간판 정현(21·한국체대·54위)은 왼쪽 발목을 다쳐 대회에 불참하기로 했다. 대신 이덕희(19·서울시청·145위)와 권순우(20·건국대·189위)가 26일 시작하는 예선에 출전해 본선 진출을 노린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최정(30)-최항(23·이상 SK) 형제가 나란히 1군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프로야구 SK는 25일 문학 kt전을 앞두고 선발 라인업에 최항을 8번 타자 겸 1루수로 적어 넣었다. 최항은 원래 육성선수(옛 연습생) 신분이었지만 이날 정식선수가 되면서 1군 무대에 올라 왔다. 2012년 프로야구에 데뷔한 최항이 1군 경기에 출전하는 것도 이날이 처음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날 1회초 수비 때 kt 1번 타자 이대형(34)이 3루수 앞 땅볼을 치면서 SK 주전 3루수인 형(최정)이 공을 잡아 동생에게 전달했다. 최항은 이날 1회초에 뜬공 수비에서 실책을 저지르면서 3실점 빌미를 제공했지만 1-4로 뒤진 2회말 2사 2루에 들어선 데뷔 첫 타석에서 적시 2루타를 때려내며 실수를 만회했고, 다음 타자 김성현(30)의 우전안타 때 홈을 밟으며 승부를 1점차로 좁혔다. 이제 형이 나설 차례. 3회말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최정은 시즌 26호 홈런을 날리면서 4-4 균형을 맞췄다. 형의 이 한 방으로 동생의 실수까지 하늘 높이 사라져 버렸다. 한편 이날 NC는 나성범의 만루홈런으로 KIA에 9-6 역전승을 거두고 올 시즌 처음으로 KIA와 공동 1위가 됐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로사리오(28·한화)가 프로야구 역대 세 번째로 4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16일 수원구장에서 kt를 상대로 4번 타자 겸 1루수로 선발 출전한 로사리오는 1회 첫 타석에서 볼넷을 골라낸 뒤 이후 네 타석에서 잇달아 홈런을 날렸다. 로사리오는 한화가 4-0으로 앞선 2회초 2사 1루 상황에서 kt 선발 주권(22)을 상대로 2점 홈런을 쏘아 올렸다. 이어 5회에는 선두 타자로 나와 정대현(26)을 상대로 가운데 담장을 넘기며 7-2로 점수 차이를 벌렸다. 로사리오가 올해 26번째로 연타석 홈런을 친 타자가 되는 순간이었다. 지난해부터 한국 프로야구에서 뛰기 시작한 로사리오 개인 기록으로는 4번째 연타석 홈런이었다. 한번 불붙은 로사리오의 방망이는 식을 줄 몰랐다. 한화가 8-10으로 역전당한 6회초 1사 1, 3루 상황에서 이날 네 번째 타석에 들어선 로사리오는 배우열(31)을 상대로 130m짜리 홈런을 치면서 한국 무대 데뷔 첫 3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3연타석 홈런은 35년이 넘는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47번밖에 나오지 않은 기록. 올해 3연타석 홈런을 친 건 로사리오가 처음이다. 대기록을 완성한 건 7회초였다. 로사리오는 7회초 1사 상황에서 강장산(27)이 던진 시속 143km짜리 빠른 공을 받아쳐 왼쪽 담장을 넘겼다. 한화가 15-10으로 앞서가는 홈런이었다. 단, 15-14로 쫓긴 9회초 무사 1루 상황에서는 1루수 앞 병살타를 치면서 프로야구 첫 번째 5연타석 홈런을 기록하는 데는 실패했다. 로사리오 이전에 4연타석 홈런을 친 선수는 박경완(45·당시 현대)과 나바로(30·당시 삼성) 두 명뿐이다. 한 경기에서 4연타석 홈런을 친 건 박경완과 로사리오뿐이다. 박경완은 2000년 5월 19일 대전 한화전에서 4연타석 홈런을 기록했다. 나바로는 2014년 6월 20, 22일 두 경기에 걸쳐 마산에서 NC를 상대로 4연타석 홈런을 날렸다(21일 경기는 비로 취소). 한 경기에서 홈런 네 방을 친 건 로사리오가 역대 네 번째로 역시 리그 통산 최다 타이 기록이다. 한편 한화 선발 배영수는 1회말 kt 이대형(34)과 이진영(37)을 연속해 범타로 처리하며 프로야구 역대 6번째로 2000이닝을 소화한 투수가 됐다. 배영수도 이진영의 기록 수립을 도왔다. 이진영은 데뷔 후 2000번째로 출장한 이 경기에서 5회말 배영수로부터 2루타를 뽑아내며 역대 10번째로 2000안타를 기록한 선수가 됐다. 경기 후 로사리오는 “처음 기록한 4연타석 홈런이라 너무 기쁘다. 가족들 앞에서 홈런을 칠 수 있어 더 행복하다”라고 말했다. 이 경기는 한화가 15-14로 이겼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건강한 황제를 막아설 자는 없었다. ‘클레이 코트의 황제’ 라파엘 나달(31·스페인·세계랭킹 4위)이 프랑스 오픈 테니스 대회에서 ‘라 데시마(La Decima)’에 성공했다. 라 데시마는 ‘10번째 (우승)’를 뜻하는 스페인어다. 나달은 12일 프랑스 파리 인근 롤랑가로스 경기장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스타니슬라스 바브링카(32·스위스·3위)에게 3-0(6-2, 6-3, 6-1) 완승을 거두고 프랑스 오픈에서만 10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오픈 시대(프로 선수 출전을 허용한 1968년 이후) 들어 특정 메이저 대회에서 두 자릿수 우승을 차지한 건 남녀 선수를 통틀어 나달이 처음이다. 2014년 프랑스 오픈 이후 3년 만에 메이저 대회 정상에 복귀한 나달은 “(3회전을 앞두고 기권했던) 지난해에는 개막 전부터 경기를 못할 만큼 왼쪽 팔목이 아팠지만 다른 대회가 아니라 프랑스 오픈이라 참가했다. 드디어 라 데시마를 이뤄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쁘다”고 말했다. 이번 우승은 나달의 메이저 대회 15번째 우승이기도 하다. 이로써 나달은 어깨를 나란히 하던 피트 샘프러스(46·미국·은퇴)를 앞질러 프로 테니스 역사상 두 번째로 메이저 대회 우승을 많이 한 남자 선수가 됐다. 1위는 18승을 기록 중인 로저 페더러(36·스위스·5위)다. 나달은 올해 6경기에서 모두 3-0 완승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프랑스 오픈에서 통산 79승 2패(승률 0.975)를 기록하고 있다. 클레이 코트 통산 승률은 0.917(389승 35패). 통산 73승을 기록한 나달은 이 중 53번을 클레이 코트 대회에서 차지했다. 붉은 벽돌 가루를 깐 클레이 코트는 마찰이 심해 공이 느리고 높게 튄다. 이 때문에 수비력이 뛰어난 선수가 유리하다. 어릴 때부터 주로 클레이 코트에서 연습한 나달은 ‘괴물(beast)’이라고 불릴 만큼 뛰어난 체력을 바탕으로 코트 전체를 커버하면서 상대가 지쳐 나가떨어지게 만드는 게 특기다. 나달 본인은 분당 회전수(RPM) 4000이 넘는 포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해 마찰력을 줄이기 때문에 상대 선수가 더 애를 먹는다.황규인 기자 kini@donga.com}

“한마디로 모든 게 빨라요. 말도 빨리 하고, 걸음도 빨리 걷고, 공도 빨리 칩니다.” 2017 프랑스오픈 테니스 여자 단식 챔피언 옐레나 오스타펜코(20·라트비아·세계랭킹 47위·사진)를 지도하고 있는 아나벨 메디나 가리게스 코치(35)는 신데렐라로 떠오른 제자를 이렇게 소개했다. 오스타펜코는 11일 프랑스 파리 인근 롤랑가로스 경기장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시모나 할레프(26·루마니아·4위)에게 2-1(4-6, 6-4, 6-3) 역전승을 거뒀다. 코치 말처럼 2014년 윔블던 주니어 챔피언 출신 오스타펜코는 한번 마음먹으면 모든 게 빠르다. 오스타펜코는 라트비아 테니스 선수로는 처음 메이저 대회 결승에 진출해 우승까지 차지했다. 메이저 대회를 떠나 그가 여자프로테니스(WTA)투어에서 우승한 것 자체가 이번이 처음이다. 빠른 만큼 예측하기도 어렵다. 오스타펜코는 32번 시드를 받은 지난해 대회 때는 1회전에서 탈락했지만,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한 올해는 챔피언이 됐다. 이번 우승으로 오스타펜코는 오픈 시대(프로 선수 출전이 허용된 1968년 이후) 들어 시드 배정을 받지 못하고도 프랑스오픈에서 우승한 첫 번째 선수가 됐다. 빠른 만큼 성격도 시원시원하다. 축구 골키퍼 아버지와 테니스 코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스타펜코는 어릴 적에 댄스스포츠 선수로도 활약했다. 그가 결국 테니스를 선택한 이유는 “성적이 더 잘 나왔기 때문”이다. 오스타펜코는 “요즘도 틈날 때마다 열심히 삼바 춤을 춘다. 삼바는 코트 위에서 발놀림을 가볍게 만들어준다”고 말했다. 대신 사흘 전까지 10대 소녀였던 만큼 비밀은 많다. 라이몬즈 베요니스 라트비아 대통령조차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지 못해 어머니를 통해 축하 인사를 건넸을 정도다. 오스타펜코는 “지금도 대통령께 내 번호를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없다”며 웃었다. 반면 할레프는 생애 첫 메이저 대회 우승과 함께 생애 처음으로 랭킹 1위에 오를 기회를 모두 놓쳤다. 황규인 기자 ki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