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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라는 이유로 차마 말하지 못했던, 또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쳐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아픔들이 무대 위에서 터져 나온다. 올해 한국 창작연극계는 그 아픔을 관객 앞으로 가져왔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선정한 ‘공연예술창작산실―올해의 신작’ 연극 6편은 이런 치열한 주제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작품들은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피해자들의 아픔과 전쟁의 상처가 여전히 아물지 않았다고 들려준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다음 달 9∼17일 펼쳐지는 극발전소301의 ‘가미카제 아리랑’은 일제 가미카제 특공대에 선발돼 일왕을 위해 죽는 조선 청년들의 비극적 삶의 흔적을 돌아본다. 옳고 그름의 판단을 떠나 당시 고통스러운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비극적 현실이 그려진다. 배우 조영규 임일규 등이 출연한다. 김동현 유승일이 출연하는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세기의 사나이’(2월 22일∼3월 3일)는 청산리 전투, 6·25전쟁, 베트남 전쟁 등 역사적 장면들을 한 편의 역사책을 훑듯 짜임새 있게 표현했다. 연극의 사실성에서 벗어나 만화적 상상력을 동원했다. 잊힌 역사의 단면을 경쾌하게 표현했다. 같은 극장 소극장에서 무대에 오르는 ‘배소고지 이야기’(3월 1∼10일)는 기존 전쟁 서사를 뒤집어 여성의 시각에서 조명했다. 6·25전쟁 당시 전북 임실 배소고지에서 벌어진 양민학살 사건을 토대로 전쟁 속 여성들의 아픔에 주목했다. 전쟁 이후에도 상처를 돌볼 틈 없이 외면당한 여성들을 통해 전쟁을 다시 서술한다.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피해자의 모습도 그려진다. 25일부터 다음 달 3일까지 펼쳐지는 극단 ‘인어’의 ‘빌미’는 오랜 시간 이웃으로 살아온 두 가족 간에 발생한 살인사건을 그린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끊임없이 잘못을 감추기 위해 거짓을 일삼는 모습을 그렸다. 등장인물의 욕망이 맞닿으며 어떻게 서로 피해를 주는 ‘악’이 되는지 보여준다. 김철리 박정순 등이 출연한다. 배우 박종용이 출연하는 ‘하거도’(3월 8∼17일·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지상 낙원처럼 보이는 하거도의 이면에서 강제 노역으로 착취당하는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발전만을 외치던 사회 이면에 숨겨진 아픔을 비추며 진정한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돌아본다. 남명렬 출연의 ‘비명자들1’(3월 22∼31일·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 역시 비슷한 주제 의식을 공유한다. 극에 등장하는 좀비는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존재다. 이들이 내지르는 비명은 구조 요청이자 고통을 전이하는 바이러스다. 라이브 음악 등 음향효과도 적극 활용된다. 비명을 통한 사회적 외면과 위로, 공감 과정을 형상화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환자라고 ‘먹방’ 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추억의 음식’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먹는 즐거움을 느끼는 걸 볼 때 제일 행복합니다.” ‘국내 1호 푸드 스타일리스트’란 수식어로 유명한 정신우 셰프(50)가 항암 투병 와중에도 음식에 대한 단상을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책 제목은 ‘먹으면서 먹는 얘기할 때가 제일 좋아’(위즈덤하우스). 16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쉽지 않았지만, 제 책을 집어 든 독자가 일상에서 잊고 지낸 먹는 즐거움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썼다”고 말했다. 정 셰프는 한국 음식업계에서 항상 화제를 몰고 다녔다. 배우로 활약했던 경력 덕분에 ‘훈남 셰프’로도 불렸던 그는 요리경연 TV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도 얻었다. 그런데 2014년 우연히 찾았던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간단한 상처를 치료하러 갔는데 ‘흉선암’이란 진단을 받았어요. 심지어 길어야 15개월이란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졌죠.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느냐’며 의사에게 무작정 화를 냈기도 했습니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투병을 시작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울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정 셰프는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누워서 치료만 받을 게 아니라 직접 ‘항암 밥상’을 만들어 먹기로 결심했다. 그는 “제 식단과 투병기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더니 다른 환우들로부터 ‘이 음식이 정말 먹고 싶은데 먹어도 되느냐’는 질문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몇몇 의학 전문가들은 “환자가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고 걱정 어린 조언도 보내왔다. 하지만 그는 “먹는 즐거움을 되찾는 건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됐다”고 털어놨다. “환자들은 소화기능이 떨어져 어차피 많이 먹을 수도 없어요. 정답은 아닐지 몰라도 무조건 ‘먹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양념을 덜하거나 소화에 좋은 재료를 써서 환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는 굳이 항암에 대한 얘기는 본격적으로 싣지 않았다. 오히려 삼겹살과 짜장면, 소갈비 등 군침 돌지만 딱히 ‘건강’과 직결되진 않는 음식들을 주로 다뤘다. 정 셰프는 “말 그대로 먹는 얘기 하는 게 제일 즐거워서 ‘인생 음식’에 대한 수다를 담았다”며 “숨겨진 전국 맛집과 그들의 손맛 비법도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 셰프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더욱 바쁘게 지낼 계획이다. 그간 본인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항암 콘서트’를 열며 많은 이들과 즐거움과 고단함을 함께 나눴다. 앞으로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 제대로 된 ‘먹방’도 선보인단다. “여전히 투병 중이라 해도 별다를 건 없어요. 끊임없이 웃으며 먹고 얘기하는 게 우리네 삶의 진면목이 아닐까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환자라고 ‘먹방’ 하지 말라는 법 있나요? ‘추억의 음식’ 한 숟가락을 입에 넣고 먹는 즐거움을 느끼는 걸 볼 때 제일 행복합니다.” ‘국내 1호 푸드 스타일리스트’란 수식어로 유명한 정신우 셰프(50)가 항암 투병 와중에도 음식에 대한 단상을 담은 에세이를 펴냈다. 책 제목은 ‘먹으면서 먹는 얘기할 때가 제일 좋아’(위즈덤하우스). 16일 서울 강남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쉽지 않았지만, 제 책을 집어 든 독자가 일상에서 잊고 지낸 먹는 즐거움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에 썼다”고 말했다. 정 셰프는 한국 음식업계에서 항상 화제를 몰고 다녔다. 배우로 활약했던 경력 덕분에 ‘훈남 셰프’로도 불렸던 그는 요리경연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도 얻었다. 그런데 2014년 우연히 찾았던 병원에서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간단한 상처를 치료하러 갔는데 ‘흉선암’이란 진단을 받았어요. 심지어 길어야 15개월이란 얘기까지 들었습니다. 하늘이 무너졌죠. 밑도 끝도 없이 ‘어떻게 이렇게 무책임할 수 있냐’며 의사에게 무작정 화를 냈기도 했습니다. 머리가 하얘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죠.” 투병을 시작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씩 우울함이 몰려왔다. 하지만 정 셰프는 ‘그래도 살아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는 누워서 치료만 받을 게 아니라 직접 ‘항암 밥상’을 만들어 먹기로 결심했다. 그는 “제 식단과 투병기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더니 다른 환우들로부터 ‘이 음식이 정말 먹고 싶은데 먹어도 되냐’는 질문이 쏟아졌다”고 말했다. 반응은 생각보다 더 뜨거웠다. 몇몇 의학 전문가들은 “환자가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고 걱정 어린 조언도 보내왔다. 하지만 그는 “먹는 즐거움을 되찾는 건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됐다”고 털어놨다. “환자들은 소화기능이 떨어져 어차피 많이 먹을 수도 없어요. 정답은 아닐지도 몰라도, 무조건 ‘먹지 말라’고 할 게 아니라 양념을 덜 하거나 소화에 좋은 재료를 써서 환자가 먹고 싶은 음식을 즐기는 게 중요하다고 봤습니다.” 하지만 이번 에세이는 굳이 항암에 대한 얘기는 본격적으로 실지 않았다. 오히려 삼겹살과 짜장면, 소갈비 등 군침 돌지만 딱히 ‘건강’과 직결되진 않는 음식들을 주로 다뤘다. 정 셰프는 “말 그대로 먹는 얘기 하는 게 제일 즐거워서 ‘인생 음식’에 대한 수다를 담았다”며 “숨겨진 전국 맛집과 그들의 손맛 비법도 소개하고 싶었다”고 했다. 정 셰프는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더욱 바쁘게 지낼 계획이다. 그간 본인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항암 콘서트’를 열며 많은 이들과 즐거움과 고단함을 함께 나눴다. 앞으로는 유튜브 채널도 개설해 제대로 된 ‘먹방’도 선보인단다. “여전히 투병중이라 해도 별 다를 건 없어요. 끊임없이 웃으며 먹고 얘기하는 게 우리네 삶의 진면목이 아닐까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낸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아픔을 달랜다. 한 무대에 펼쳐진 커다란 한지 위에서 집을 짓고 기괴한 몸짓으로 죽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이가 있다. 온몸에 먹을 묻혀 종이에 글씨를 쓰고, 때론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등 온몸으로 연인을 부르짖는다. 그는 바로 기생 홍랑이다. 1인극 ‘새닙곳나거든’은 관기 홍랑과 조선 8대 문장가인 최경창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최경창의 죽음 이후에야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두 사람을 그렸다. 실제 역사 기록에 따르면, 최경창은 과거 급제 후 함경도로 부임하러 가는 길에 한 마을에서 홍랑을 만난다.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서로를 사랑했지만 양반과 기생이라는 신분의 벽을 넘을 수 없었다. 게다가 최경창은 이미 결혼해 아내가 있던 몸. 홍랑은 최경창이 병으로 죽고 나서야 그의 무덤 곁을 3년간 지키다 결국 자해와 죽음으로써 그의 뒤를 따른다. 극 중 홍랑과 최경창을 홀로 연기한 지현준 배우는 70분간 대사 한마디 없이 김시율 음악감독의 고적한 피리 연주에 따라 몸을 움직인다. 무대 옆 산수화 병풍에 새겨진 18수의 시 내용에 맞춰 둘의 마음속 목소리를 표현한다. 극을 이해하려면 어느 때보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배우의 서글픈 동작은 관객 상상에 따라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때론 이해하기 어렵다. 사각사각 화선지를 밟거나 무대 위에서 발을 구르는 소리가 유난히 관객 귀에 박힌다. 극의 마지막까지 몸부림치던 홍랑은 먹물로 한지를 흠뻑 적셔 찢은 뒤 한지 아래로 몸을 구겨 넣는다. “텅 빈 최경창의 서재에서 알몸이 되어 그의 글을 어루만진다”는 구절에 따라 한지 아래를 굴러다니며 죽음을 표현한다. 죽어서야 비로소 하나가 된 둘의 기괴한 몸짓은 시의 구절처럼 ‘차라리 춤’이 된다. 27일까지. 서울 성동구 우란문화재단 우란2경. 전석 3만 원.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관객들은 무대 밖에서도 ‘무파사’를 알아보고 사진 촬영을 요청하지만, ‘스카’는 거의 못 알아봐요. 늘 짙은 분장을 하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본심을 숨겨야 하는 악역의 숙명이겠죠.” 뮤지컬 ‘라이온 킹’에서 악역 스카를 맡은 앤터니 로런스(30·영국)는 나름의 ‘고충’을 털어놨다. 반면 무파사 역할의 음토코지시 엠카이 카니일레(29·남아프리카공화국)는 “길에서 ‘무파사다!’라고 소리치며 저를 알아보는 한국 관객들을 만나면 즐겁다”며 “더 많은 관객이 무파사의 메시지에 공감하도록 열정적으로 연기하겠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18일 만난 두 배우는 강렬한 에너지를 뿜어냈다.》 지난해 대구에 상륙해 흥행 열풍을 일으킨 라이온킹은 서울에서도 뜨거운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붉게 타오르는 사바나 초원. 왕자로 태어난 사자 ‘심바’가 아버지인 무파사를 죽인 삼촌 스카를 물리치고 왕위를 되찾는 이야기로, 1997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됐다. 20개국 100개 이상의 도시에서 95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끌어 모아 공연 수익만 81억 달러(약 9조922억 원)에 이른다. 한국에서도 라이온킹 신드롬이 이어져 다음 달 공연까지 일찌감치 티켓 대부분이 판매됐다. 무파사와 스카는 각각 선과 악을 상징하는 핵심 배역. 두 배우의 대결 구도는 극 초반부터 관객의 몰입을 한껏 끌어올린다. 무대에서 ‘으르렁’대는 두 사람은 인터뷰에서는 서로를 칭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오프닝넘버인 ‘생명의 순환(Circle of Life)’에서 스카가 무대에 오르지 않는데도 로런스는 늘 무대 옆에 서서 지켜봐요. 그 모습에서 프로 정신을 배웁니다.”(카니일레) “카니일레와 대기실을 함께 쓰는데, 힘든 투어 일정에도 늘 무대에서 열정적이고 밝은 모습을 보여줘 존경스러워요.”(로런스) 둘은 영국 런던에서 열린 오디션에서 무파사와 스카로 호흡을 맞춰본 후 각별한 사이가 됐다. 두 배우가 가장 공을 들이는 건 마스크 연기다. 극 중 무파사와 스카의 마스크가 시선을 마주하며 울부짖는 장면은 특히 유명하다. 연기를 하며 마스크가 얼굴 앞으로 내려오거나 머리 위로 올라가도록 리모컨으로 계속 조종한다. 로런스는 “스카의 마스크는 누군가를 위협하거나 감정을 숨기는 연기 도구”라며 “1막에서 어린 심바는 스카의 마스크 속 눈을 바라보지만, 2막에서 어른이 된 심바는 제 눈을 직접 바라보며 스카의 본심을 알아챈다”고 설명했다. 카니일레는 “6개월 동안 거울로 둘러싸인 방에서 마스크 속 눈을 바라보는 훈련을 하며 동물적 시선과 움직임에 집중했다”고 밝혔다. 두 배우는 겨울철 최고의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신경 쓰고 있다. 로런스는 “춥고 건조한 날이 계속돼 가장 중요한 수분 보충을 하기 위해 물통을 달고 산다”며 “운동선수처럼 나만의 원칙을 정해 몸 관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두 배우는 공연마다 확연하게 달라지는 객석의 반응을 한국 공연의 매력으로 꼽았다. “관객이 함께 쇼를 즐기고 있다는 걸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요. 마지막에 모두 일어서서 열광적으로 박수를 칠 때는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예요.”(카니일레) “오프닝부터 끊임없이 함성을 질러주는 관객들을 보면 마치 록 콘서트장에 있는 것 같아요. 흥이 절로 난다니까요.”(로런스) 3월 28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6만∼17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번개탄을 피우고 목숨을 끊은 50대 가장. 그가 기러기 아빠로 혼자 지내다가 사망한 원룸 안에선 태블릿PC, 해외 송금용 서류, 양복과 와이셔츠, 처세술에 관한 책, 라면 몇 봉지와 소주병만이 발견됐다. 그리고 벽지엔 유서 대신 “한사코 끌어안고자 했던 삶이 마침내 칼이 되어 내 심장을 찌르는구나”라는 낙서만 남아 있었다. 작품 ‘밤의 흔적’의 주인공이 죽은 사람들의 특수 청소를 하기 위해 마주하는 공간처럼 소설집 속 작품 8편의 공간들은 하나같이 재난처럼 황폐하고 참혹하다. 때론 무기력하고 고요한 느낌마저 든다. ‘누가 고양이를 죽였나’에선 만연한 남편의 폭력이 드러난다. ‘나이아가라’에선 주인공이 떠나는 여행길 자체가 죽은 자의 흔적을 찾는 여정이다. ‘경옥의 노래’에선 죽은 연인을 그리워한 탓에 함께 다녔던 곳들을 돌아다니며 재를 뿌리는 애도의 여행이 그려진다. ‘총’에서는 베트남전쟁에 참전해 무공훈장을 받은 국가유공자인 아버지가 가족에겐 늘 폭행을 일삼자 아들이 아버지를 향해 총을 겨누는 장면이 나온다. 아버지는 도리어 “방아쇠를 당겨라”라고 외치지만 힘없이 총을 다시 내려놓는 아들의 모습은 큰 무기력을 안겨준다. 저자가 이처럼 다양하면서도 구체적인 죽음의 장면들을 묘사하는 건 결국 우리 사회에 남은 상처와 이로 인한 영혼과 육체의 죽음을 조명하기 위함일 것이다. 이 소설집은 저자의 자전적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는 2014년 세월호 참사 뒤 이듬해 한국을 떠났다. 타지에 머문다고 해서 한국에서의 상처가 쉽사리 잊힌 건 아니었다. 오히려 한국에서의 기억들로 고통받으며 절필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는 “밤마다 거미줄을 치듯 한 줄 한 줄 글을 씀으로써 겨우 되살아났다”고 적었다. 그만큼 소설 속 문장들은 담담한 듯 절실하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우리나라 동요 ‘상어가족’(사진)의 영어판인 ‘베이비 샤크’가 미국 빌보드 싱글차트에 2주째 진입해 ‘핫 100’ 38위를 기록했다. 이 노래는 지난해 7월 빌보드 ‘키드 디지털 송 세일즈 차트’에 처음 오른 뒤 지난주에는 ‘핫 100’ 32위를 차지했다. 한국 가요가 아닌 동요가 ‘핫 100’에 진입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상어가족’은 2015년 국내 교육 스타트업인 스마트스터디가 유아교육 콘텐츠인 ‘핑크퐁’을 통해 내놓은 동요다. 북미권 구전 동요를 편곡한 2분 길이의 노래로 중독성 있는 “뚜루루뚜루∼”라는 후렴구가 반복된다. 지난해 8월에는 영국 오피셜 싱글차트에 올라 화제가 됐다. 현재 유튜브 조회수는 22억여 회에 이른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공연장 입구에서 객석까지 향하는 좁고 어두컴컴한 길. 전쟁터의 참호처럼 꾸민 통로를 걷다 보면 벙커에 도착한다. 벙커 한가운데에 마련된 무대에 선 배우들은 관객 100명을 향해 “여기에 있는 이 불쌍한 병사들”이라고 외치며 모두가 벙커에서 함께 살아남아야 하는 전우임을 알린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벙커 밖의 적을 조준하던 총구는 어느새 벙커 안에 있는 아군들을 향한다. 이 순간, 관객은 거대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던져진 인간의 비참함, 트라우마, 외로움과 만난다. 내용과 형식의 기발함으로 호평받고 있는 연극 ‘벙커 트릴로지’는 제1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모르가나’, ‘아가멤논’, ‘맥베스’라는 테마에 맞게 각색된 옴니버스식 3부작이다. 각 테마는 신화와 소설에서 이야기를 가져와 전쟁 속 인간이 어떻게 망가지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아가멤논’에서는 독일군 영웅 저격수를 그리스 신화 속 아가멤논 왕에 빗대 아내에 의해 살해당하는 모습을 그린다. ‘맥베스’에서 권력에 도취된 영국 장군이 맥베스로 등장하며, ‘모르가나’에서는 아서왕 전설 속 기사들처럼 전쟁을 흥미로운 모험으로 생각해 참전했다 고통받는 젊은 군인들의 이야기를 표현했다. 벙커는 전쟁에서 최후의 방어선이자 공격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극 중에서 벙커는 거대한 전쟁 시스템에 희생되는 인간들이 아군, 적군마저 분간하지 못한 채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파국을 맞는 공간이다. 결국 벙커는 심리적 방어선일 뿐 전쟁에서는 어떤 곳도 안전지대가 될 수 없다는 걸 말한다. 소품, 음악도 눈여겨볼 만하다. 인간이 가장 편안한 상태에서 잠이 들도록 하는 베개는 역설적으로 상대를 질식시키는 살인 도구가 된다. 전쟁광인 맥베스 장군이 음악을 듣는 장면에서는 나치가 홍보 수단으로 이용한 바그너의 곡이 흘러나온다. 총격 장면에선 1차대전 당시 사용된, 탄피가 한 발 한 발 위로 튀어 오르는 총기 소품을 사용하는 등 철저한 고증도 거쳤다. 무대 음향, 특수효과 역시 몰입을 높인다. 벙커 위로 적 포탄이 떨어질 때면 무대 전체가 진동할 정도로 큰 효과음을 쓴다. 벙커가 울리며 천장에서 흙가루(실제는 초콜릿 가루)가 떨어지는 소소한 특수효과도 사용한다. 다만 과도한 음향 때문에 배우의 대사가 일부 전달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물론 바로 옆 사람의 말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소란스러운 벙커 내부 모습을 상상한다면 무대에 집중하는 데 큰 문제는 없다. 이석준 박민성 오종혁 박은석 신성민 등 출연. 2월 24일까지. 서울 종로구 홍익대대학로아트센터 소극장. 전석 3만 원.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영국의 장애인·비장애인 통합극단인 ‘하이징스’가 서울 종로구 대학로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이음센터에서 19일까지 공연한다. 이들이 선보이는 작품은 인형극 ‘프레드’, 백색증이 있는 배우의 일대일 공연 ‘시선’, 뇌성마비 배우의 퍼포먼스 ‘조건’이다. 하이징스는 장애에 대한 편견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방식으로 문제 제기를 한다. ‘프레드’는 사회적 편견과 싸우는 헝겊인형의 이야기. 장애 배우 3명이 인형의 머리, 팔, 다리 등을 나눠 잡고 장애 인형이 매일 마주하는 현실을 묘사한다. 인형의 익살스러운 몸동작이 나올 때면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져 나온다. 2016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서 선보인 뒤 18개국에서 170회 이상 무대에 오를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시선’은 백색증이 있는 배우 조 배넌이 빛과 소리가 차단된 작은 블랙박스에서 단 한 사람의 관객만을 대상으로 연기한다. 공연 시간은 12분으로, 하루 20회 열린다. ‘조건’은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댄 도가 자전적 이야기를 강의 형태로 전하는 퍼포먼스다. 하이징스는 영국을 포함해 전 세계를 무대로 장애인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극단에서는 다운증후군이나 자폐증, 백색증 등 장애를 가진 전문 배우들이 비장애인 배우와 동등하게 작업한다. 하이징스는 장애인이 전문 배우가 될 수 있도록 교육하는 비영리 아카데미도 운영하고 있다. 클레어 윌리엄스 하이징스 대표는 “장애인이 살아가는 현실을 독특한 시선에서 조명하고 뼈있는 유머를 던져 관객에게 웃음과 함께 편견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려 한다”며 “모든 공연을 탁월한 수준으로 끌어올려 장애인 연극에 대한 낮은 기대치를 뒤집고 관객을 놀라게 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극단을 초청한 샘 하비 주한 영국문화원장은 “유쾌함과 웃음 앞에서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같다”며 “장애인 예술에 대한 벽을 허물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프레드’ 2만 원, ‘시선’ 1만 원, ‘조건’ 2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