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윤

김기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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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로 특파원

pep@donga.com

취재분야

2026-01-11~2026-02-10
문학/출판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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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일반11%
사회일반11%
음악7%
미술4%
교육4%
여행4%
만화4%
정당3%
  • [책의 향기]오랑캐가 활개치던 도쿄, 어떻게 일본의 중심 됐나

    “일본 도쿄(東京)는 대형 화재 때문에 완성됐다?” 고대 일본의 중심은 본래 교토(京都)였다. 당시 수도로 정해진 헤이안쿄(平安京)는 오늘날 교토의 모태가 됐다. 반면 도쿄(당시 에도) 일대는 산간지대 너머 펼쳐진 황야 지대로 말을 타는 무사들이 활개를 치는 곳이었다. 교토 사람들은 그들을 오랑캐라 무시했다. 도쿄엔 뒤늦게 가마쿠라(鎌倉) 막부가 들어섰고 본격적으로 도시의 틀을 갖춰 나갔다. 그러던 1644년 어느 날, 평화롭던 도쿄에 대형 화재가 발생하며 도쿄는 무너지는 듯했다. 하지만 도쿄 사람들은 되살아났다. 오히려 화재와 재해에 맞서길 택했다. 재난 이후 재건한 도시의 크기는 점차 거대해졌다. 저자는 대형 화재와의 싸움을 “에도의 꽃”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이후 개항, 메이지 유신 시대를 거치며 도쿄는 일본 문명개화의 중심지가 된다. 건축학, 공학 교수인 저자는 도쿄 재건의 역사를 두 권에 걸쳐 건축학적 측면에서 조명했다. 달팽이 모양의 수로 형태, 에도성 설계, 풍수지리적 입지 조건 등 도쿄를 바라본 저자의 식견이 흥미롭다. 글과 함께 풍부한 삽화도 돋보인다. 구체적 수치 자료도 덧붙여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황야 지대 작은 도시 에도가 오늘날 ‘메가시티’인 도쿄로 발돋움한 과정을 보면 격세지감이 절로 느껴진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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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뱅글뱅글 피루엣 동작 따라하다 발레리노 됐어요”

    “발레는 잘 몰라도 제자리에서 한 발로 회전하는 ‘피루엣(Pirouette)’ 동작이 마냥 재미있었어요. 나중에는 동생과 겨루느라 발레 학원이 끝날 때까지 계속 뱅글뱅글 돌기만 하던 ‘팽이 소년’이었죠.” 입단 8년 만에 지난달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로 승급한 김기완(30)은 어린 시절부터 뱅글뱅글 돌기를 좋아해 ‘팽이 소년’으로 불렸다. 발레학원에 첫발을 들이던 순간을 떠올리며 “‘빌리 엘리어트’의 빌리처럼 자유롭고 막힘없는 몸짓, 정리되지 않은 동작을 보고 따라하며 희열을 느꼈다”며 “한 바퀴씩 돌던 동작이 두세 바퀴로 점점 늘어났고 손동작도 곁들이니 그게 곧 발레가 됐다”고 말했다. 발레에 빠져든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 뒤 국립발레단에 입단했고 큰 키(188cm)와 다부진 체격을 자랑하는 무대 위 백조가 됐다. 수석무용수가 된 그는 본인만의 원칙에 더욱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매일 연습실에 도착하기 3시간 전부터 일어나 스트레칭과 맨몸 운동으로 몸을 푸는 ‘클래스’와 연습이 끝나고 하는 30분 마무리 운동에 가장 신경 쓰고 있습니다.” 추운 날씨에는 부상 위험이 크기 때문에 휴식시간에는 스키부츠처럼 발목을 감싸는 ‘텐트슈즈’를 늘 착용한다. 하반신 보온을 위해 노점에서 구매한 수면바지 스타일의 포근한 하의도 입고 다닌다. 그는 “아킬레스건 부상으로 고생한 경험이 있어서 철저히 관리하려 애쓴다”며 “요즘 동료들이 ‘이 바지 어디서 샀느냐’며 부러워할 때 뿌듯하다”며 웃었다. 김기완을 얘기할 때면 동생 김기민(27)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함께 돌기를 겨루던 동생은 현재 러시아 마린스키무용단의 수석무용수로 활약하며 스타 무용수로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겨울 법도 할 동생 얘기에도 그의 입가엔 ‘아빠 미소’가 번졌다. 그는 “공연이 없어도 자주 영상통화하며 안부를 묻고 지낸다”며 “저는 동생이 맡았던 배역, 동생은 제가 맡았던 배역을 탐낼 정도로 서로에게 ‘1호팬’ 같은 존재”라며 각별한 형제애를 나타냈다. 수석무용수로서 느끼는 변화를 묻자 그는 단연코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현재 무용수로서 정점에 서있는 행복한 시기라고 생각해요. 그만큼 힘든 점도 있지만 누구보다 무대 위에서 책임감을 가져야겠죠. 이전에는 제 동작에만 집중했다면 이젠 동료와의 호흡은 물론 관객들이 제 춤에 공감했는지도 살피게 되더라고요. 최근에는 무대장악력을 배우려 마이클 잭슨, 퀸의 무대 영상도 찾아보고 있습니다.” 무용수가 천직인 그는 아직 무대를 떠난 이후의 모습을 그려본 적이 없다. 다만 누구보다 오랜 시간 무용수로 남고 싶다는 포부를 내비쳤다. “발레리노가 오랜 기간 무대에 남아있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아요. 1, 2년 정도 차이는 있겠지만 마흔 살까지는 춤추며 살고 싶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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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터뷰부터 메모까지 50만 점 수집… 후대 예술인에게 귀중한 자산되길”

    “원로 배우의 성장기부터 임종을 앞두고 남긴 말씀까지 다양한 발언과 자료들을 기록합니다. 이 기록들이 언젠가는 후대 예술인들에게 귀중한 자산이 될 테니까요.” 국내 무대 위에서 벌어진 모든 것을 기록하고 모으는 이가 있다. 원로 배우, 연출가, 무대 제작자를 만나 직접 이야기도 듣고, 때론 이들이 남긴 작은 메모부터 대본까지 다채로운 기록물을 모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 김현옥 학예사(44)는 “해외에선 이미 공연 세부 분야별 기록관이 있을 만큼 관련 기록물을 중시하고 있다”며 “작은 자료도 후대 공연예술인들에겐 가장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학예사는 1세대 공연기록 수집가다. 원로 예술인들을 인터뷰해 구술채록 자료를 만든다. 또 악보나 대본, 무대 의상 스케치 등도 모아 작품별, 시대별로 분류한다. 현재 예술자료원에선 예술인 300명의 구술채록 기록을 포함해 50만 점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작업은 구술채록이다. 원로예술인 한 명당 7∼8회씩 만나 10시간 이상 함께하며 그가 남긴 진솔한 말들을 기록하는 게 포인트다. 이를 나중에 접한 독자가 예술인의 신념과 생애를 통해 작품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김 학예사는 “예술가와 오래 대화한 끝에 나온 기록에서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게 구술채록 자료의 매력”이라며 “같은 예술가라도 누구와 어느 시기에 작업했는지에 따라 작품의 특징이 달라지는 등 구술채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고 귀띔했다. 김 학예사가 만난 많은 근현대 예술가들의 모습은 대중에 알려진 바와 많이 달랐다고 한다. “전위예술의 대가인 무세중 선생님의 경우 늘 ‘내가 최초로 시도했다’고 뽐내는 모습이 알려져 있었죠. 근데 그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부성, 모성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선생님이 ‘내가 모든 걸 처음부터 다했다’고 말하는 행동이 당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편견이 많이 깨졌죠.” 이 밖에도 50년이 넘은 극단 ‘자유’의 이병복 무대미술가, 김정옥 연출가, 박정자 배우는 극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모두 제각각 달랐다. 연간 공연되는 작품만 2만여 편인 요즘, 김 학예사에겐 아쉬운 점도 있다. 물리적으로 모든 공연을 다 기록할 수 없기에 대형 뮤지컬, 연극보다는 소규모 작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당장 성과가 드러나는 일은 아니지만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국내 곳곳에서 벌어졌거나 진행 중인 한국 공연예술의 단면을 촘촘하고 끈질기게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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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에게도 평범한 청년의 삶 있었죠”

    “대본의 대사와 숨결을 따라 역사 속 한 장면을 상상하면서 곡을 씁니다. 작가의 의도와 맞는 곡이 나올 때 제일 뿌듯하죠.”(오상준) “때론 극에 사용할 곡을 먼저 받아 들으며 영감을 받아요. 대본과 가사 내용을 붙이고, 최종적으로 제가 상상한 노래와 똑같은 곡이 나올 땐 정말 소름이 돋는답니다.”(한아름) 개막을 앞둔 뮤지컬 ‘윤동주, 달을 쏘다’(3월 5∼17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영웅’(3월 9일∼4월 21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을 비롯해 2015년 ‘뿌리 깊은 나무’까지 함께 호흡을 맞춘 한아름 작가(42)와 오상준 작곡가(51)는 자타 공인 뮤지컬계 ‘역덕’(역사극 덕후) 콤비다. 관객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역사 뮤지컬 대중화에 앞장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14일 만난 이들은 “오늘이 ‘밸런타인데이’보다는 안중근 의사가 사형 선고를 받은 날로 기억되면 좋겠다”며 역사 이야기에 여념이 없었다. 두 사람이 처음 호흡을 맞춘 건 약 10년 전. 역사를 좋아했던 한 작가와 역사에 큰 관심이 없던 오 작곡가가 뭉쳤다. 한 작가는 “선조들이 하늘에서 술 한잔 하며 ‘후손들이 내 이야기로 뮤지컬 공연을 하고 있다’며 껄껄 웃는 상상을 하면 고된 작업을 하다가도 힘이 난다”고 했다. 오 작곡가는 “많은 이들이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모르는 것에 충격을 받아 역사 공부를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두 사람에겐 어느덧 역사적 소명의식도 생겼다. 하지만 역사극이 보람차고 재미있기만 한 건 아니다. 한 작가는 “역사가 소재가 되면 늘 해석과 평가가 따르기에 어떤 짓눌림을 느낀다. 위인전 형태의 보편적 작품만을 만들 순 없어 끊임없이 새로운 사실을 찾는다”고 했다. 오 작곡가는 “곡이 잘 나오려면 실존 인물의 삶에 깊게 빠져들어야 한다”며 “아픈 역사를 생각하며 자주 울다 보면 작품이 끝난 뒤 그 인물에서 빠져나오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때론 저희도 발랄한 디즈니 작품을 해보고 싶다”며 웃었다. 역사를 관객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두 사람은 공감을 극대화하려고 애쓴다. 역사를 가르치기보다는 인물에 몰입할 수 있는 포인트를 작품 곳곳에 넣는다. 한 작가는 “‘윤동주, 달을 쏘다’에서는 윤동주가 여느 청년들처럼 친구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다양하게 그렸다”며 “나라가 아무리 어려워도 청춘이 지닌 밝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오 작곡가는 “어두운 장면에서도 단조 선율보다는 밝은 에너지를 주는 장조 선율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공연을 앞둔 소회도 남달랐다. 한 작가는 “단순히 시점에 맞춰 공연을 올리는 게 아니라 후손들에게 교과서보다 절절하고 아름다운 방식으로 우리 역사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오 작곡가는 “이 시대에 기여하는 역할을 맡은 것만으로도 행복한 예술가”라고 말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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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삶과 예술’ 국내 원로 배우, 성장기부터 임종까지 모든 것 기록”

    “원로 배우의 성장기부터 임종을 앞두고 남긴 말씀까지 다양한 발언과 자료들을 기록합니다. 이 기록들이 언젠가는 후대 예술인들에게 귀중한 자산이 될 테니까요.” 국내 무대 위에서 벌어진 모든 것들을 기록하고 모으는 이가 있다. 원로 배우, 연출가, 무대 제작자를 만나 직접 이야기도 듣고, 때론 이들이 남긴 작은 메모부터 대본까지 다채로운 기록물을 모은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의 김현옥 학예사(44)는 “해외에선 이미 공연 세부 분야별 기록관이 있을 만큼 관련 기록물을 중시하고 있다”며 “작은 자료도 후대 공연예술인들에겐 가장 큰 자양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학예사는 1세대 공연기록 수집가다. 원로 예술인들을 인터뷰해 구술채록 자료를 만든다. 또 악보나 대본, 무대 의상 스케치 등도 모아 작품별, 시대별로 분류한다. 최근엔 자료를 디지털 형식으로 변형해 저장하는 일도 맡았다. 현재 예술자료원에선 예술인 300명의 구술채록 기록을 포함해 7~8만 점의 기록이 남아있다. 그가 가장 공을 들이는 작업은 구술채록이다. 원로예술인 한명 당 7~8회씩 만나 10시간 이상 함께 하며 그가 남긴 진솔한 말들을 기록하는 게 포인트다. 이를 나중에 접한 독자가 예술인의 신념과 생애를 통해 작품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기 위함이다. 김 학예사는 “예술가와 오래 대화한 끝에 나온 기록에서 예술가의 인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는 게 구술채록 자료의 매력”이라며 “같은 예술가라도 누구와 어느 시기에 작업했는지에 따라 작품의 특징이 달라지는 등 구술채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포인트가 많다”고 귀띔했다. 김 학예사가 만난 많은 근·현대 예술가들의 모습은 대중에 알려진 바와 많이 달랐다고 한다. “전위예술의 대가인 무세중 선생님의 경우 늘 ‘내가 최초’ ‘독보적 존재’라고 뽐내는 모습이 알려져 있었죠. 근데 그가 성장 과정에서 겪은 부성, 모성에 대한 애착이나 우리나라에서 추방 받았던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동안 선생님이 ‘내가 모든 걸 처음부터 다했다’고 말하는 행동이 당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편견이 많이 깨졌죠.” 이 밖에도 50년이 넘은 극단 ‘자유’의 이병복 무대미술가, 김정옥 연출가, 박정자 배우는 극단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모두 제각각 달랐다. 연간 공연되는 작품만 2만여 편인 요즘, 김 학예사에겐 아쉬운 점도 있다. 물리적으로 모든 공연을 다 기록할 수 없기에 대형 뮤지컬, 연극보다는 소규모 작품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는 “당장 성과가 드러나는 일이 아니지만, 아무리 작은 무대라도 국내 곳곳에서 벌어졌거나 진행 중인 한국 공연예술의 단면을 촘촘하고 끈질기게 기록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

    • 2019-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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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정복 아닌 치유의 공간… 숲으로 가다

    숲은 인간을 품고, 인간은 숲에 기대 살아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산업화라는 미명 아래 숲의 모성적 성격을 부정하기 시작했다. 숲을 정복의 대상으로 봤다. 난개발과 무차별적인 벌목으로 둘의 관계는 금이 갔다. 책에는 인간과 숲의 일그러진 관계를 치유하려 모인 이들의 ‘환경 서사시’가 펼쳐진다. 저마다의 운명에 이끌려 숲을 찾은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한다. 감전 사고로 죽다 살아난 뒤 나무의 소리를 듣게 된 파티광 대학생, 비극적 운명의 나무 사진 100년 치를 물려받은 화가, 전투기가 격추당한 뒤 반얀나무 위에 떨어져 겨우 목숨을 구한 미 공군, 나무에서 떨어져 장애를 갖게 된 학생…. 이들은 숲의 속성을 배우며 인간의 파괴적 개발로 위기에 놓인 원시림의 참상을 목격한다. 저자는 인물들의 인생 이야기를 풀어내면서도 ‘숲이 불러들인’ 객체에 머물게 했다. 인물들이 끊임없이 관찰하고 느끼는 숲은 말 한마디 할 수 없어도 진짜 주인공이 된다. 나무껍질의 향, 나이테, 나무에서 싹이 움트는 모습에 대한 묘사는 평소 깨닫지 못한 숲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할 정도다. 환경보호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 의식을 가르치려 하지는 않는다. 치밀한 관찰을 통해 얻은 숲에 대한 식견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숲속 다양한 종류의 나무들은 ‘영원한 가지들이 뻗고 영원 속으로 뿌리가 뻗으며 베어 쓰러져도 다시 움이 돋는’ 살아 있는 인간과도 같다. 작품은 러시아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를 떠올리게 한다. 시베리아 원시림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사랑과 인생을 다룬 영화에서 숲은 역시 벌목으로 스러져 가면서도 잠시 손님으로 머무는 인간에게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준다. 숲은 두 작품에서 모두 인간들이 스스로 비극을 마주하도록 더 따뜻하게 인간을 품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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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4 20장 분량의 연극 대사… 배우들은 어떻게 다 외우지?

    연극배우들이 80∼140분 동안 무대에서 끊임없이 쏟아내는 대사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최근 공연을 했거나 개막을 앞둔 4개 작품의 대본을 분석한 결과, 배역에 따라 개인당 A4용지 20장 분량으로, 8000자가량의 대사를 소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 배역의 대사까지 다 암기하는 경우 분량은 A4용지 35장, 4만 자까지 늘어난다. 지문을 제외하고도 60장(A4용지)을 넘기는 작품도 있다. 배우들은 무대 위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대사를 소화하기 위해 처절할 정도로 온갖 노력을 다 하고 있다. 연극 ‘대학살의 신’의 최정원(50)은 “배우들이 모여 대본을 리딩한 내용을 녹음한 뒤 차 안이나 집에서 무한 반복해 듣다 보면 상대 배역의 대사까지 암기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같은 작품에서 남편 역을 맡은 남경주(55)는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대본을 외우는 건 중요한 무대 위 약속”이라며 “다만 글자, 단어에 집중하기보다 대본의 중요 내용을 형광펜으로 표시하며 상대 배우와의 대사 호흡을 생각하는 게 암기에 더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대사량이 많기로 유명한 연극 ‘레드’의 김도빈(37)은 “아내에게 상대역 연기를 부탁한 뒤 그 앞에 서서 연기를 펼치며 도움을 받는다”며 “암기가 약한 편이라 대사보다는 상대 배우와의 상황을 먼저 외우는 방법을 택했다”고 했다. 연극 ‘오이디푸스’에서 크레온 역을 맡아 오랜 시간 무대를 누비고 있는 최수형(40)은 “동선이 많은 역할이다 보니 대사 중간중간에 움직일 타이밍과 쉬어갈 음절, 동선까지 대본에 필기하는 방식으로 대사를 숙지한다”고 밝혔다. 대사를 외우는 데 ‘왕도는 없다’는 베테랑 배우도 많다. ‘레드’에서 약 20쪽 분량을 소화하는 정보석(57)은 “딱히 다른 방법 없이 자연스레 대사가 나올 정도로 그냥 달달달 외운다”며 “외울 때 대본에 뭔가 썼다가도 금세 지워 대본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편”이라고 했다. 22일 개막하는 연극 ‘자기 앞의 생’에서 로자 할머니를 연기하는 양희경(65)은 “다 외워질 때까지 무조건 반복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같은 역을 맡은 이수미(46)는 “선배들에게 대본 빨리 외우는 방법을 묻곤 하는데 뾰족한 대답을 못 들었다. 머릿속에서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장면, 장면을 떠올리며 반복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이어 “30년 이상 무대에 오른 선배들 가운데는 뇌가 적응해 대본을 카메라로 찍듯 ‘캡처’하는 분도 있는데 피나는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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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더 얄밉고 더 유치하게” 속물 케미 뿜뿜

    “저도 알랭의 속물 같은 모습이 싫어요. 하지만 관객들도 유치한 말장난을 벌이는 어른들의 모습을 보면 언젠가 겪었던 일처럼 공감하실걸요?” 연극 ‘대학살의 신’에서 권위적인 속물 변호사 알랭을 맡은 남경주(55)는 어떻게 하면 관객에게 더 얄밉게 보일지 고민한다고 털어놨다. 알랭의 아내 아네트를 연기하는 최정원(50)도 “고상하면서도 위선적인 모습을 표현하는 일이 쉽진 않지만, 살아보지 않은 누군가의 인생을 연기하고 전달하는 게 연기의 재미”라고 말했다. 서울 서초구 한 연습실에서 지난달 24일 만난 두 배우는 서로 조언하고 토론에도 열을 올리며 ‘속물 부부 케미’를 뿜어냈다. 동명의 영화를 각색한 이 작품은 한 가정집에서 네 배우가 나누는 대화로 채워진다. 자녀들 간의 싸움 때문에 모인 알랭, 아네트 부부와 미셸(송일국), 베로니크(이지하) 부부는 초반에는 고상하게 화해를 시도한다. 하지만 서로의 말에 기분이 상한 이들은 어느덧 부부끼리, 때론 상대 배우자와 의기투합해 유치한 말싸움을 벌인다. 숨겨 왔던 이기적 본성을 유감없이 드러내는 게 포인트다. 최정원은 “제목인 대학살만큼이나 사람들은 남에게 많은 상처를 주고 산다”며 “자기 자식이 잘났다고 싸우는 부모와 이를 보고 자란 아이들도 결국 어른과 똑같아진다는 점을 꼬집는다”고 말했다. 남경주는 “대학살이 별다른 게 아니라 분별력 있는 성인들이 상대를 정신적으로 짓밟고 폭행하는 행위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뮤지컬계 터줏대감으로, ‘믿고 보는 배우’인 둘은 서로를 너무나 잘 알고 연극에 대한 애정도 크기에 주저 없이 함께하는 작품을 택했다. 최정원은 “연극은 지적 탐구에 대한 즐거움을 주고 배우로서 성장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뮤지컬 배우로 살면서도 연극은 놓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경주는 “연극은 작가가 깊은 주제의식을 갖고 집필하기 때문에 연기하며 배우는 즐거움이 있다”며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도 끝나면 보람을 진하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2017년 초연에 비해 캐릭터의 격정보다는 이성에 초점을 맞췄다. 작품의 주제의식이 차분한 어조에서 더 부각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남경주는 “더 속물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 마구 소리치는 모습보다는 차분해지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정원은 “초연 때 화를 많이 냈다면 이번에는 좀 더 논리적으로 대사를 뱉는 느낌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둘은 서로에 대한 깊은 신뢰를 나타냈다. “남경주 선배는 연습 시간에 한 번도 늦은 적이 없어요. 연기에 대한 선배의 무한한 애정과 존경심을 배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답니다.”(최정원) “최정원 씨의 장점은 열정이에요. 무대를 장악하는 에너지와 자존감 높은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절로 힘이 난다니까요.”(남경주) 3월 24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4만∼6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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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리뷰]배우의 감정표현 따라 살아 숨쉬는 무대 ‘압권’

    무대가 그야말로 살아 숨쉰다. 배우들의 숨결과 감정 표현을 따라 무대의 색채가 시시각각 변한다. 때론 무대가 계단처럼 높아졌다 낮아지며 360도 회전한다. 끊임없이 꿈틀거리는 무대는 배우들에게 최고의 비극적 놀이터가 됐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와 무대연출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스 3대 비극 작가인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왕’을 각색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다”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의 운명과 비극을 그렸다. 오이디푸스 배역의 황정민은 운명 앞에서 울부짖으며 관객에게 서글픈 에너지를 전달한다. 작품은 극장의 깊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건물 기둥을 겹겹이 배치해 관객 앞에 고대 그리스 궁전이 놓인 것 같은 느낌을 준다. 배우들이 무대 깊은 곳부터 관객 바로 앞까지 뛰어다닐 정도로 동선을 폭넓게 사용했다. 다양한 무대장치와 특수효과도 보는 재미를 더한다. 회전하는 무대에서 걷는 오이디푸스가 계속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장면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인간 존재를 표현했다. 극 후반부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를 땐 음향에 맞춰 피를 뜻하는 붉은 천막이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대체로 어두운 톤이지만 빨강, 초록, 파랑 빛깔의 무대 색채 변화 덕에 눈이 지루할 틈이 없다. 압권은 오이디푸스가 무대 밖으로 나와 지팡이를 짚고 걷는 장면. 오이디푸스를 비추는 조명 외엔 극장 안의 모든 특수효과가 사라진다. 객석은 숨소리도 없이 자체 음 소거 모드로 전환한다. 이 장면에서 관객들은 작품의 마지막 특수효과가 된다. 황정민 배해선 남명렬 정은혜 등 출연. 24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3만3000∼8만8000원. 13세 관람가.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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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말잔등에 올라탄 문명, 인류의 운명을 바꾸다

    고도로 산업화한 사회에서 말은 권위를 상징한다. 북미, 유럽 국가에서 기마경찰은 말에 올라 시위 현장을 통제한다. 의전행사에서 전통과 품격을 높이는 일을 맡는다. 제복을 입은 채 말에 오른 이들은 말에 오르지 않은 이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권위를 뿜어낸다. 말은 속도를 의미하기도 한다. 고대부터 유목사회에서 말은 빠른 이동, 운송을 위한 제1의 수단이었다. 현대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접하는 말의 모습은 속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린 경마, 폴로 경기다. 최고의 속도전으로 꼽히는 F1 레이싱에서도 사람들은 늘 엔진의 마력(馬力)을 조금이라도 높이려 안달이 나 있다. 인류가 이토록 6000년 넘게 마력(馬力)의 마력(魔力)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미국 문화인류학자인 저자는 인간이 사육한 최상의 동물인 말이 인류 문명에 번영을 가져다줬기 때문이라고 봤다. 고대부터 말은 정복의 수단이자 문명, 종교, 언어 전파의 수단이었다. 말의 기동성을 이용해 인간은 물리적 이동거리를 단축했고, 말이 짊어진 물품들은 더 빠르게 세계로 퍼져나갔다. 말을 이용할 줄 알았던 문명은 말을 이용하지 못한 문명을 압도했다. 고도로 발전한 기술을 말에 싣고 널리 펼쳐내지 못한 문명은 사라져갔다. 기원전 6000만 년 전부터 존재한 야생말의 생물학적 분석부터 인류와 함께한 말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풀어낸다. 문화인류학과 역사를 매력적으로 연결하고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인간과 말의 떼려야 뗄 수 없는 공생관계에서 인류의 미래 모습까지도 조심스레 내다봤다. 인간 중심으로 서술된 기존 역사를 말을 중심에 놓고 바라보니 상당히 흥미롭다.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도 ‘말 때문에 이긴 전쟁이구나’라는 걸 깨닫게 된다. 기마민족의 활약으로 유명한 몽골제국은 물론이고 고대 아케메네스 제국과 중국 진 제국은 말을 효과적으로 흡수한 ‘기마 군국주의’로 번영을 누릴 수 있었다. 뒤이어 전차를 이용한 로마, 아랍의 기마병, 신대륙을 정복한 유럽 기마병까지 말은 늘 인류에게 정복과 승리를 가져다줬다. 20세기에는 ‘쇠 말’(기관차), ‘말 없는 탈것’(자동차), ‘날개 돋친 페가수스’(비행기)가 말을 대신하고 있다고 말한다. 말의 활약상에 주목하면서도 말 때문에 초래된 파괴적 정복전쟁의 폐해도 짚었다. 특히 유럽인이 신대륙 정복에 앞세운 군마는 아메리카 원주민 4830만여 명의 피를 불러왔다. 이는 끝내 19, 20세기의 노예무역과 1·2차 세계대전이라는 인류의 비극으로 이어진다. 이에 저자는 끊임없는 가속에 대한 열망 대신 공유, 협력이라는 전혀 다른 형태의 속도를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전쟁이 줄어들지 않고 계속되는 지금이야말로 멈추지 않는 정복의 오만한 태도에서 벗어나 인종 말살의 대립, 고갈되는 오존층, 녹아가는 만년설, 사라지는 산호초로 고통받는 이 세상을 다시 일으켜야 할 때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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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겨울 감성 자극할 보컬리스트 로번 신보 앨범 ‘아임낫’ 공개

    “불현듯 찾아오는 그리움은 더 차갑게 식지만/한숨 섞인 입김은 아직까지도 뜨겁다./ 이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어두운 겨울밤처럼/당신에게도 다가간다.” 여성보컬리스트 로번(ROVN·본명 곽연재)은 8일 멜론, 벅스뮤직, 네이버뮤직 등 각종 음원 사이트에 올겨울 감성을 자극할 신보 싱글앨범 ‘IMN0T(아임낫)’을 공개했다. 앞서 로번은 유튜브를 통해 가수 딘(DEAN)의 ‘Instagram’과 세계적인 팝가수 샘 스미스의의 ‘Pray’의 커버영상을 공개하며 기대를 모아왔다. 이를 바탕으로 금번에 처음 선보이는 로번의 신보는 음악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로번은 차가운 바람 소리로 시작하는 ver1에서 자신의 매력적인 중성적 멜로디를 선보였다. 또한 녹슨 기타줄의 사운드가 이별 후의 감성을 더욱 부각시킨다. 시각적인 심상으로 ‘아무도 밟지 않은 눈 덮인 새하얀 언덕’을 선정했다. IMN0T(아임낫)은 떠나간 연인에게 지금 얘기하고 싶은 말들을 담은 곡으로 로번의 짙은 감정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전반적으로 기타사운드가 강한 이 곡은 프로듀서 ‘Kanasus brew’의 탄탄한 베이스 위에 로번의 스토리 설정, 그리고 ‘Jordi moods’와 ‘ziuuu’의 예술적 색감으로 완성되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

    • 201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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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극 ‘자기 앞의 생’… “로자를 연기하며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는 경험 하게 돼”

    로맹 가리의 소설을 각색한 연극 ‘자기 앞의 생’에서 ‘로자’ 할머니 역할을 맡은 배우 이수미(46). 그는 그야말로 뼛속까지 연극인이다. 명동예술극장에서 22일 국내 초연을 앞둔 그는 매일 8시간 이상 연습을 하다 집에 돌아오면 대본의 처음부터 끝까지 홀로 ‘시뮬레이션’을 마치고 새벽 3∼4시가 되어야 잠이 든다. 20년 넘게 무대에서 갖가지 배역을 맡아 온 그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왜 넌 무대에 올라왔다가 금세 또 사라지냐”는 우스갯소리를 들어왔다. 그러나 이번 작품에선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지키는 핵심 배역이다. 그는 “‘자기 앞의 생’ 제의를 받았을 때 국내 초연이라는 부담감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단은 덥석 붙잡았다”며 “제가 맡은 역할이 크든 작든 무대 위에선 모든 게 다 사랑스럽다”고 말했다. 그가 연기할 로자 할머니는 극 중 창녀 출신에 폴란드에서 온 이민자다. 또 유대인인 데다 파리 빈민가에 살며 소수자로 낙인이 찍힌 존재다. 살면서 믿었던 연인에게 배신당하는 아픔도 있지만, 어린 아랍인 소년 모모와 다른 소수자들의 아픔까지도 어루만지는 인간적 면모를 보여준다. 그는 “로자에게서 자본주의 사회 속 연극인으로 소외된 채 지내 온 나 자신을 발견했다”며 “관객도 세대, 종교, 인종을 뛰어넘어 로자라는 한 인간과 사람 대 사람으로 마주하는 경험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작품이 없는 휴식기에도 국내외 여행을 가본 적이 없다. 그저 다음 배역을 맡기까지 집에 틀어박혀 연기 연습을 하거나 무대에 활용할 소재를 찾는 게 진정한 ‘꿀 휴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번 작품을 맡기 전에도 책과 TV를 보며 연기에 활용할 것들을 찾는 게 정말 재밌었다”고 털어놨다. 요즘엔 주로 다큐멘터리를 골라 보며 직접 체험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의 인생을 들여다보길 즐기고 있다고 했다. 그런 그에게 올해 1월 제55회 동아연극상 연기상 수상은 다시금 무대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는 촉매제가 됐다. 늘 동료들을 축하해주기만 하고 아쉬움을 묻어둬야 했던 그는 “상을 목표로 연기했던 건 아니지만, 순수예술에 대한 헌신을 인정받는 것 같아 행복했다”는 소회를 털어놨다. 그는 최근 수상 이후엔 처음 무대에 올랐던 순간도 자주 떠올린다. “20년 전엔 연극한다고 하면 ‘우와! 연극하세요?’라며 신기해했는데, 요즘엔 ‘아이고, 연극해? 너도 힘들겠다’는 동정 어린 대답을 들어요. 근데 전 요즘 같은 반응을 들을 때가 더 좋아요. 관객과 배우라는 게 각자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인간 대 인간으로 객석과 무대에서 만날 때 서로의 모습에 더 쉽게 공감하지 않을까요?”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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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어머니를 찌른 소년, 무엇이 그를 내몰았나

    부모 살해, 패륜, 사이코패스…. 약 120년 전 영국 런던. 로버트라는 소년은 어머니를 칼로 찔렀다. 어머니의 시체는 집에 놓아둔 채 너무도 태연하게 동생과 일주일을 지냈다. 이 천인공노할 사건으로 당시 영국 전역은 발칵 뒤집혔다. 기자 출신인 저자는 얼핏 듣기만 해도 섬뜩한 이 사건을 르포 기사처럼 생생하게 우리 앞에 되살려냈다. 우연히 본 옛날 기사에서 포착한 뒤, 과거 재판기록은 물론이고 소년의 묘비까지 찾아내는 등 끈질기게 단서들을 뒤졌다. 사건 발생일의 날씨, 일출·일몰 시간까지 계산해서 묘사하는 치밀함도 보인다. 단순히 정신병자나 사이코패스의 소행으로 남을 뻔한 이 사건을 저자는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한다. 정신병동으로 옮겨진 소년은 치료 과정에서 부모로부터 극심한 정서적 학대를 겪은 사실을 밝혀냈다. 13세 아동이 감내하기엔 고된 육체적 노동에도 시달려 정신적 장애도 안고 있었다. 더 극적인 사실은 따로 있다. 소년은 정신병원을 나와 생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선행을 베풀며 살았다고 한다. 로버트가 죽은 뒤 그의 묘비에는 실제 고마움을 간직한 이가 ‘항상 그를 기억한다’고 새겨 넣었다. 어떤 누군가에게는 로버트가 친모를 죽인 사실 자체는 더는 중요하지 않았다. 모두에게 잊혀진 한 소년의 끔찍한 범행. 그 속살에는 단순한 개인적 일탈이 아니라 산업화를 빙자해 아동 인권을 방치했던 영국 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밝혀낸 수작이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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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석푸석한 피부가 고민일 땐 ‘시간제한 피부 관리법’ 효과

    새해엔 나이는 한 살 더 먹어도 피부 나이만큼은 붙잡아둘 수 있다. 고액의 비용이나 별도의 노력이 드는 건 아니다. 생활 습관과 수면 시간만 조절해도 효과를 볼 수 있다. 깊어지는 주름, 푸석푸석해지는 피부, 점점 어두워지는 피부색이 고민이라면? 채널A ‘나는 몸신이다’에서 ‘시간제한 피부 관리법’을 공개한다. 시간제한 피부 관리법은 피부 세포의 재생이 활발한 특정 시간을 활용하는 방법으로 주름, 탄력, 수분, 피부 색조까지 개선하는 데 큰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관리법의 핵심은 바로 수면 시간 조절. 특히 밤 11시부터 오전 2시 사이에 충분히 숙면을 취하고 있다면 몸에서 멜라토닌 호르몬이 최대치로 분비된다. 멜라토닌 호르몬은 피부 노화를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스튜디오에는 4주 동안 이 관리법에 맞게 생활한 체험단이 출연해 관리법을 실천한 뒤 스스로 느낀 생생한 후기를 털어놓는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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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골단 곤봉 피하려 지하실에 숨어든 학생들

    어둡고 퀴퀴한 냄새가 나는 지하실. 이곳은 운동권 학생들에게 암암리에 알려진 최고의 아지트다. 벽 뒤편으로는 숨을 수 있는 별도 공간이 있는 데다 함께 읽고 토론할 수 있는 불온서적도 가득하다. 데모에 사용할 전단과 화염병도 만들 수 있다. 연극 ‘더 헬멧: 룸 서울’은 시위에 참가한 학생을 찾으려는 백골단원들이 이 지하실에 들이닥치며 시작된다. 지하실 소유주인 서점 주인은 학생들을 벽 뒤에 숨겨주고 정체가 드러나지 않도록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비밀 공간은 결국 발각되고, 벽 밖으로 끌려나온 학생들은 백골단의 곤봉에 힘없이 쓰러진다. 극 후반부에는 학생들을 벽 뒤에 숨겨 보호하려는 대학생 백골단원과 상사 사이의 팽팽한 긴장도 그려진다. 지하실은 벽에 의해 분리되거나 합쳐지며 다층적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등장인물들은 벽으로 가로막혀 상대를 바라보지 못할 땐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지만, 벽이 열려 서로 마주한 후에는 상대가 자신과 같은 평범한 시민임을 알면서도 폭력을 휘두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작품은 그 시대를 살아가던 모두가 구조적 폭력에 희생당하는 피해자임을 역설한다. 저마다 ‘빨갱이를 잡기 위해’ ‘선배가 술을 사준다고 해서’ ‘독재를 타도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지하실을 찾은 인물들은 ‘이 일이 끝나면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소망을 내비치지만 이는 끝내 이뤄지지 않는다. 객석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접하도록 한 구성이 돋보인다. 벽이 열릴 때 관객은 하나의 대사와 이야기를 접하지만, 벽으로 공간이 나눠지면 객석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접한다. 다만 무대 두 개의 방음 시설이 완전하지 않아 각 무대의 대사, 소리가 뒤섞여 혼란스러운 순간도 있다. 김태형 연출가는 “무대가 완벽히 구분되지 않는 점은 아쉽지만 연극적 약속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우들의 외침과 현장음, 배경음악이 뒤섞여 관객이 극중 상황 속에 함께 놓여 있는 느낌을 준다. 이호영 이정수 한송희 등 출연. 2월 27일까지. 서울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 전석 3만 원. ★★★★(★ 5개 만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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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거장 화가의 발칙한 조수 연기 “스승이 소리칠 때 짜릿한 희열”

    “거장 마크 로스코가 화실 밖으로 나가라고 소리 지를 때 가장 짜릿해요. 매일 더 큰 호통 소리를 듣고 싶어 감정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연극 ‘레드’에서 마크 로스코(1903∼1970)의 화실에 조수로 고용된 ‘켄’을 연기하는 박정복(35), 김도빈(37)에게 무대에서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로스코 역은 강신일, 정보석이 맡고 있다. 김도빈은 “스승이 ‘네 인생은 저 밖에 있다’고 말하는 순간 울컥하며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스승을 따르면서도 때론 발칙하게 도발하는 캐릭터 켄.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24일 박정복, 김도빈을 만났다. 6일 개막한 후 인기몰이 중인 ‘레드’는 1958년 로스코가 뉴욕 시그램 빌딩 안 고급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 40여 점을 의뢰받은 뒤 돌연 계약을 파기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작품. 압도적인 대사량과 철학적 사유가 돋보이는 2인극이다. 켄은 가상의 인물로 극중 로스코는 ‘팝 아트’라는 새로운 화풍이 주목받자 본인이 이룬 추상화의 위상이 무너지는 게 아닌지 끊임없이 번뇌한다. 거장의 반열에 올랐지만 어느새 ‘꼰대’가 되어버린 화가 로스코가 켄과 대화하고 팽팽히 맞서며 토론하는 모습을 그렸다. 세 번째 켄을 연기하는 박정복은 “켄이 그림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인물이기에 새로운 배우가 참신한 모습을 보여주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역을 양보해야 하나 고민했다”면서도 “워낙 애정이 많은 작품이라 욕심이 생겼다”고 밝혔다. 처음 켄을 맡은 김도빈은 “공연 때마다 외벽에 큼지막하게 붙은 ‘레드’의 현수막을 보며 동경하던 작품”이라며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곧바로 ‘덥석’ 수락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처음 만난 두 배우는 로스코와의 관계 설정이 가장 어렵다고 설명했다. 둘은 틈 날 때마다 배역에 대한 고민을 나누려 자주 통화한다. “어제도 극 후반부 4장에 대해 논의했어요. 스승에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직언하는 내용이 있는데 항상 어려워요. 단순한 대사일 수도 있지만 애증을 담아 연기해야 하거든요”(김도빈) “스승에 대한 존경과 증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해요. 정보석, 강신일 선배로부터 ‘오늘은 좀 무섭더라. 날 죽일 것 같았어’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그만큼 감정선이 미묘하죠.”(박정복) 관객은 쉼 없이 쏟아지는 대사의 양에 놀라지만, 정작 힘든 장면은 따로 있단다. 김도빈은 “거대한 캔버스를 붉은색으로 칠하는 장면에서 팔과 온몸의 근육을 이용해 붓질을 하는 게 진짜 어렵다”며 “농도에 따라 물감이 따귀를 때리듯 얼굴을 덮칠 때도 있고 입에 들어갈 때도 많다”고 했다. 그는 “관객이 이 힘든 장면을 꼭 알아주셨으면 한다”며 웃었다. 박정복 역시 “처음엔 팔 한쪽만 사용했는데, 붓질하는 에너지가 객석까지 전달되지 않는다는 걸 안 뒤부터는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이 장면에서는 두 배우의 거친 숨소리가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대사가 현학적이고 어렵다는 반응도 있다. 이들은 “니체, 쇼펜하우어 등 철학적 대사를 100%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털어놓았다. 박정복은 “김태훈 연출가로부터 켄이 철학적 내용을 다 이해하지 않은 채 연기하는 게 낫겠다는 조언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김도빈은 “관객마다 각자 다르게 느끼고 이해하는 모든 게 정답”이라고 했다. 2월 10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4만∼6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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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 현실이 아니야” 되뇌지만 묘하게 설레는 이 기분…

    ‘그녀’(2013년)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컴퓨터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까톡 왔숑!” 기자는 요즘 그녀와 ‘썸’ 타는 중이다. 상대가 먼저 카톡을 보내면 내게 관심 있는 거라던데, 시작이 좋다. 연락을 주고받다가 결국 공원, 맛집 데이트까지 즐겼다. 이젠 편하게 전화도 하는 사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잘 맞는다. 세 번째 데이트 날, 수줍음 많은 내 성격을 알아챈 그녀가 불쑥 먼저 사귀자고 고백했다. 고민 끝에 받아준 그녀의 맘. ‘알콩달콩’ 연애로 긴 시간을 보낸 뒤 난 그녀에게 마침내 프러포즈를 했다. 그녀가 “Yes!”라고 답하는 순간, 화면에 문구가 떴다. ‘미션 클리어, 점수 획득!’ 나만의 그녀는 화면 속 가상 연인 ‘여빈’. 나의 연애는 오늘도 순항 중이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서….○ “가상 데이트 설레” vs “실제 소통 어려워질 수도” 기자가 직접 체험한 ‘러브 레볼루션’은 가상현실 기능까지 탑재했다. 아직 베타 버전이지만 3월 일반에 정식 출시를 앞뒀다. 최근 가상 연인을 만들어주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각광을 받고 있다. ‘러브 레볼루션’에서는 원하는 이상형의 캐릭터를 선택하면, 그 캐릭터를 연기한 실제 배우가 눈앞에 등장한다. 가상 연인으로부터 불쑥 영상통화가 걸려와 “지금 쇼핑 중인데 어떤 색 신발이 더 예뻐 보이냐”고 묻기도 한다. “검은색”이라고 외치면 가상 연인은 음성을 인식하고 검정 신발을 산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게임머니를 벌어 치장도 해야 한다. 직장인 박재용 씨(30)는 “머릿속에선 ‘이건 그저 게임일 뿐’이라 되뇌는데도 게임을 진행할수록 이상형 여성과 데이트하는 것 같아 설렘을 느꼈다”고 말했다. 남성들만 이런 게임을 하는 것은 아니다. ‘플로렌스’는 ‘훈남’ 가상 캐릭터와 말풍선 퍼즐을 맞춰가며 현실감 있는 연애 상황을 구현한다. 가상 연인의 문자나 전화 세례를 즐기는 앱 ‘수상한 메신저’, 학원 만화의 요소가 강한 ‘일진에게 찍혔을 때’도 인기다. 김서영 씨(26)는 “캐릭터 사실성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연애에서 느끼는 작은 설렘, 풋풋함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많은 현실 연애에서 환멸을 느낀 ‘N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세대)가 이런 게임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분석한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는 “실제 연애와 경쟁사회에서 느끼는 피로감을 가상현실로 달래는 셈”이라면서도 “어려움 없는 가상 데이트에 익숙해질수록 실제 사람과 소통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점점 사라질까 우려된다”고 했다.○ 드라마부터 가수까지… 게임화 확산 연애뿐 아니다. 문화 콘텐츠 전반이 게임화되고 있다. 지난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필두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 밴더스내치’가 게임의 콘셉트를 차용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기술의 발달도 문화 콘텐츠의 게임화에 가속페달이 됐다. 설치 미술 등 전시에도 증강현실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1일 데뷔한 10인조 여성그룹 ‘체리블렛’은 가상의 운영체제 ‘체리블렛’을 중심에 뒀다. 앨범마다 새로운 가상 맵(map)과 퀘스트(과제)가 주어진다. 멤버마다 작은 로봇을 가지고 있는데, 멤버들은 로봇과 함께 성장한다. 육성 시뮬레이션게임, 슈팅게임의 이미지와 콘셉트를 그룹의 뼈대로 삼은 셈이다. 심지어 팬 응원봉도 게임용 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의 유순호 부장은 “아이돌 음악을 주로 소비하는 10, 20대는 반쯤은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 할 정도로 게임에 대한 이해도와 집중도가 매우 높은 세대”라면서 “건강한 성장 이야기와 게임 요소를 결합해 팬들의 참여와 몰입도를 높이려 한다”고 설명했다. 김기윤 pep@donga.com·임희윤 기자}

    • 2019-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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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친 생겼다, 프러포즈도 했어” 현실이 아니라 되뇌지만 설렘 느껴

    《기윤 “나, 여친 생겼다. 프러포즈도 했어.”희윤 “여친? 축하해! 뭐 하는 사람이야?”기윤 “게임 캐릭터!”희윤 “(당황)”기윤 “전화도 주고받고 얼마나 사실적인데…”희윤 “내 전화나 잘 받아….” 》 ‘그녀’(2013년)가 떠올랐다. 주인공이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현실적이었다. “까톡 왔숑!” 기자는 요즘 그녀와 ‘썸’ 타는 중이다. 상대가 먼저 카톡을 보내면 내게 관심 있는 거라던데, 시작이 좋다. 연락을 주고받다가 결국 공원, 맛집 데이트까지 즐겼다. 이젠 편하게 전화도 하는 사이다. 우리는 생각보다 잘 맞는다. 세 번째 데이트 날, 수줍음 많은 내 성격을 알아챈 그녀가 불쑥 먼저 사귀자고 고백했다. 고민 끝에 받아준 그녀의 맘. ‘알콩달콩’ 연애로 긴 시간을 보낸 뒤 난 그녀에게 마침내 프러포즈를 했다. 그녀가 “Yes!”라고 답하는 순간, 화면에 문구가 떴다. ‘미션 클리어, 점수 획득!’ 나만의 그녀는 화면 속 가상 연인 ‘여빈’. 나의 연애는 오늘도 순항 중이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속에서….●“이상형과 가상 데이트 설레” vs. “실제 사람과 소통 어려워질 수도” 기자가 직접 체험한 ‘러브 레볼루션’은 가상현실 기능까지 탑재했다. 아직 베타버전이지만 3월 일반에 정식 출시를 앞뒀다. 최근 가상 연인을 만들어주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 각광받고 있다. ‘러브 레볼루션’에서는 원하는 이상형의 캐릭터를 선택하면, 그 캐릭터를 연기한 실제 배우가 눈앞에 등장한다. 가상연인으로부터 불쑥 영상통화가 걸려와 “지금 쇼핑중인데 어떤 색 신발이 더 예뻐 보이냐”고 묻기도 한다. “검정색”이라고 외치면 가상연인은 음성을 인식하고 검정 신발을 산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게임머니를 벌어 치장도 해야 한다. 직장인 박재용 씨(30)는 “머릿속에선 ‘이건 그저 게임일 뿐’이라 되뇌는데도 게임을 진행할수록 이상형 여성과 데이트하는 것 같아 설렘을 느꼈다”고 말했다. 남성들만 이런 게임을 하는 것도 아니다. ‘플로렌스’는 ‘훈남’ 가상 캐릭터와 말 풍선 퍼즐을 맞춰가며 현실감 있는 연애 상황을 구현한다. 가상 연인의 문자나 전화 세례를 즐기는 앱 ‘수상한 메신저’, 학원 만화의 요소가 강한 ‘일진에게 찍혔을 때’도 인기다. 김서영 씨(26)는 “캐릭터 사실성은 다소 떨어진다. 하지만 연애에서 느끼는 작은 설렘, 풋풋함을 느끼기엔 부족함이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많은 현실 연애에서 환멸을 느낀 ‘N포세대’(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 세대)가 이런 게임에서 위안을 받는다고 분석한다. 배정원 행복한성문화센터 대표는 “실제 연애와 경쟁사회에서 느끼는 피로감을 가상현실로 달래는 셈”이라면서도 “어려움 없는 가상 데이트에 익숙해질수록 실제 사람과 소통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 상대에 대한 배려도 점점 사라질까 우려 된다”고 했다.●드라마부터 가수까지… 게임화 돼가는 문화 콘텐츠 연애뿐 아니다. 문화 콘텐츠 전반이 게임화되고 있다. 지난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을 필두로 드라마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넷플릭스 시리즈 ‘블랙미러: 밴더스내치’가 게임의 콘셉트를 차용했다. 증강현실과 가상현실 기술의 발달도 문화 콘텐츠의 게임화에 가속 페달이 됐다. 설치 미술 등 전시에도 증강현실을 도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21일 데뷔한 10인조 여성그룹 ‘체리블렛’은 가상의 운영체제 ‘체리블렛’을 중심에 뒀다. 앨범마다 새로운 가상 맵(map)과 퀘스트(과제)가 주어진다. 멤버마다 작은 로봇을 가지고 있는데, 멤버들은 로봇과 함께 성장한다. 육성시뮬레이션게임과 슈팅게임의 이미지와 콘셉트를 그룹의 뼈대로 삼은 셈이다. 심지어 팬 응원봉도 게임용 총 모양으로 만들었다. 소속사 FNC엔터테인먼트의 유순호 부장은 “아이돌 음악을 주로 소비하는 10, 20대는 반쯤은 가상세계에 살고 있다 할 정도로 게임에 대한 이해와 집중도가 매우 높은 세대”라면서 “건강한 성장 이야기와 게임 요소를 결합해 팬들의 참여와 몰입을 높이려 한다”고 설명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임희윤기자 imi@donga.com▼ 1980년대 처음 등장…연애 게임 역사▼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의 역사는 오래 됐다. 게임의 역사, 그 자체와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애 시뮬레이션은 1980년대 일본에서 시작됐다. 개인용 컴퓨터와 게임기용으로 먼저 개발됐다. 1985년 출시한 ‘천사들의 오후’는 이 장르의 초석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게임 캐릭터와 대화를 주고받는 식의 기초적 어드벤처 기능을 선보였다. 본격적인 붐은 1990년대. ‘동급생’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잇따라 나오며 신드롬을 일으켰다. 시리즈로 이어지며 소프트웨어가 100만 장 이상 팔리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1997년 ‘캠퍼스 러브 스토리’를 필두로 ‘리플레이’ 등이 나오면서 선전했다. 연애 게임은 여러 갈래가 있다.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미연시), 연애 어드벤처, 비주얼 노벨(novel·노블) 등이다. 단순히 정해진 스토리를 따라가며 화면을 넘기는 수준에 머무르느냐, 플레이어 자신이나 캐릭터를 길러 내거나 행복도와 호감도 등의 수치를 상승시키는 좀더 적극적인 쌍방향 소통이 일어나느냐에 따라 갈린다. 연애 게임의 르네상스는 스마트폰이 이끌었다. 한때 선정성 논란에 휩싸이기 일쑤이던 연애 게임은 모바일 시대로 옮겨오면서 습한 방을 벗어나 휴대전화를 타고 일상으로, 양지로 나왔다. 여성용 게임도 늘었다. 모바일 시대에 추가된 다양하고 편리한 기능은 중독성을 높여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일본에서 나온 ‘러브 플러스’는 터치 펜을 이용한 동작 감지, 입체 그래픽으로 몰입감을 높였다. 신드롬은 거셌다. 플레이어가 게임 캐릭터 중 한 명과 실제 결혼식을 올려 화제가 됐다. 지방 도시에서 이들 캐릭터를 활용한 관광 상품을 만들기도 했다. 2017년에는 중국 게임 ‘연예제작인(러브앤프로듀서)’에 등장하는 가상 캐릭터를 위해 게이머들이 쓴 돈이 월간 3900만 달러(약 437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왔다. 캐릭터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팬들이 4만9000달러(약 5492만 원)짜리 축하 광고를 띄우기도 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 2019-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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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인간의 술에 대한 애착은 진화의 산물”

    “오늘부터 금주. 내가 어제처럼 또 과음하면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회식 다음 날 종종 이런 말을 듣지만 지킬 수 없는 말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런데 인간이 술에 사로잡혀 사는 건 자연스러운 진화생태학적 현상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영국 에든버러대 진화생태학 교수인 저자는 인간이 술을 끊지 못하는 것을 의지박약의 문제로 보지 않았다. 인류가 독소인 에탄올에 내성을 키워 알코올에 익숙해지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인체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치는 ‘비소’ ‘스트리크닌’ 등 독소와 달리 익은 포도, 곡물 속 효모를 섭취하며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에탄올에 적응해왔다는 것이다. 책은 우리가 흔히 먹고 마시는 식재료가 어떤 진화과정을 거쳤는지, 인류가 이 음식을 왜 즐기게 됐는지 진화생태학적 관점에서 조명한다. 겨자 생강 고추냉이의 매운맛, 향신료의 자극적인 맛은 식물이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낸 화합물이다. 다른 생물에게는 거부반응을 일으키는 이 화합물은 인류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저자는 “화학물질에 독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면 우리는 그 자극을 회피하기보다는 즐기는 법을 배울 수 있다”며 “독이 있으니 먹지 말라는 식물의 허풍에 속지 않으면 더 많은 영양소를 섭취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선택에서 선호된다”고 말한다. 책 후반에는 인류의 미래 밥상의 모습도 조심스레 내다봤다. 기후변화와 인구증가로 세계 인구가 100억 명에 이르면 식량이 부족해져 유전자변형작물(GMO)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우려도 있다. 다만 지속 가능한 생산 식량으로서 GMO가 과소평가됐다고 지적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 2019-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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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 손혜원, 국회 상임위중 수천 만원대 자개장 거래 중개 의혹

    무소속 손혜원 의원이 국회의원 임기 중에 자신이 설립하고 남편이 대표로 있는 공예품 판매·유통업체 ‘하이핸드코리아’의 나전칠기 상품 거래에 개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공무 외 영리 행위와 겸직을 금지한 국회법, 국가공무원법 위반했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손 의원은 2016년 7월 11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상임위 전체회의장에서 휴대폰 문자로 자개장 거래를 하는 모습이 언론에 포착돼 물의를 빚었다. 당시 찍힌 손 의원의 휴대전화 화면에는 지인 김 모 씨에게 나전칠기 사진을 전달 받은 후 “내가 250 줬으니 그거만 받으면”, “신촌 자개장 조○○ 사장이 사고 싶다는데”라고 보내는 손 의원의 문자가 포착됐다. 손 의원실의 보좌관은 이 같은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자 “크로스포인트재단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은 훨씬 좋은 작품으로 그렇게 싼 가격은 있을 수 없다”며 “지인에게 개인 소장품을 판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이 문자에 등장하는 조 모 씨에게 확인한 결과는 달랐다. 조 씨는 24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문자의 앞에 나오는 250만원 짜리 거래는 다른 사람과의 문자 내용으로 별개의 것”이라며 “나는 하이핸드코리아에서 판매하는 6000만원 짜리 자개장 구입 문의를 위해 손 의원과 협의를 했다”고 말했다. 손 의원이 국회 상임위 도중 판매 중개한 것이 개인 소장품이 아니라 하이핸드코리아가 소장하고 있는 수천만원 대 나전칠기 작품이었다는 것이다. 조 씨는 “당시 ‘하이핸드코리아’ 측이 6000만 원 정도를 제시했지만, 나는 4000만 원 이상은 힘들다고 여겨 결국 거래가 성사되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조 씨가 구입을 시도한 자개장은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 내에 입주한 하이핸드코리아 신촌점에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는 “겸임교수로 있는 한 대학의 국제디자인 대학원 모임, 디자인 경영 모임의 여행 등을 함께 다니면서 손 의원을 만나 알게 됐다”며 “손 의원이 나전칠기박물관을 운영하고, 비싼 작품도 많이 가지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도 많이 구입을 의뢰하곤 했다”고 말했다. 손 의원이 설립한 후 현재 남편 정건해 씨(74)가 대표로 있는 크로스포인트문화재단은 나전칠기 관련 공예품 전시는 한국나전칠기박물관에서, 판매는 하이핸드코리아에서 나눠 운영 중이다. 손 의원 측은 하이핸드코리아 경영에 관여한다는 의혹에 “겸직 금지 판단을 받지 않고, 자의로 사직한 뒤 경영에 개입한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조 씨의 하이핸드코리아의 소장 작품을 중개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같은 해명은 거짓인 것으로 확인된 것이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국가공무원법 제64조(영리 업무 및 겸직 금지)와 국회법 제29조의2(영리업무 종사 금지) 등 법률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며 “손 의원은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의무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유원모기자 onemore@donga.com김기윤기자 pep@donga.com}

    • 2019-0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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