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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국내 초연된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의 프로그램북은 50년 뒤를 내다본 일종의 ‘예언서’였다. 프로그램북에서 임영웅 연출은 자신을 “고도의 말을 전하는 소년처럼 베케트의 말을 전하는 사람”으로 적었다. 원로 연극인 김정옥은 “(이 작품이) 미래의 고전이 될 것”이라고 썼다. 50년이 지난 오늘 임영웅이 작품을 통해 연극계에 전했던 말들은 한국 연극의 역사가 됐고 ‘고도를 기다리며’는 살아있는 고전이 됐다. 다음 달 극단 산울림 50주년 공연과 ‘연출가 임영웅 50년 기록’ 전시를 준비 중인 임영웅 연출(83)과 그의 딸 임수진(56·서울 마포구 산울림소극장 극장장)을 26일 만났다. 임 연출은 부축을 받을 정도로 거동이 불편했다. 그러나 사진 촬영을 시작하자 이내 여유롭게 포즈를 취했다. 웨딩사진 같은 다정한 포즈 요청에는 “딸이랑 나랑 나이 차가 몇인데”라며 농담도 건넸다. 50주년을 앞둔 ‘고도를 기다리며’에 대한 소회를 묻자 그는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으니, 한번 시작하면 끝까지 하고 보는 거지 뭐”라고 답했다. 딸 수진 씨는 “초연 당시 제가 6, 7세여서 극장에 놀러가 마냥 재밌어한 기억이 있는데 벌써 50년 전”이라며 웃었다. 1969년 임 연출은 극단 산울림을 설립하며 “우리말 연극을 하니 순우리말로 하되, 사회에 여운과 울림을 줬으면 한다”는 취지를 밝혔다. 방송사 PD와 신문기자 출신인 그는 창단 공연으로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택했다. 작품은 나무 한 그루가 전부인 어느 시골길에서 부질없이 ‘고도’라는 인물을 기다리는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의 이야기다. 인간 존재의 부조리성을 표현하며 작품성은 물론이고 흥행에도 성공해 해외 초청 공연도 했다. ‘연극은 인간이 그리는 예술’이라는 그의 신념이 녹아든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임 연출은 “연극은 항상 새롭기 때문에 직접 디렉팅을 했는데 올해는 몸이 불편해 쉽지 않다”며 “정동환, 안석환, 김명국 등 오래 호흡을 맞춘 배우들을 믿는다”고 했다. 건강이 예전 같지 않다 해도 그는 여전히 활동 중인 현역 연극인이다. 떨리는 손으로 손수 명함을 건네며 “극단 산울림 대표”로 본인을 소개한 그는 오랜만에 찾은 무대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둘러봤다. “이건 무슨 소품이냐” “요즘 어떤 작품이 진행 중이냐”고 묻기도 했다. 딸 수진 씨는 “얼마 전까지도 아버지는 여러 공연을 챙겨 보실 정도로 평생 연극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다”고 설명했다. 임 연출이 극단에서 쌓아올린 시간은 극장장인 수진 씨에 의해 계속되고 있다. 그는 ‘고전극장’ ‘편지콘서트’ 등 연극, 예술인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수년째 이어왔다. 그는 “부모님 영향으로 늘 연극과 가까운 곳에 있으면서도 미술이 좋아 해외로 떠났다. 근데 나중에야 연극인들의 ‘인큐베이터’ 같은 산울림의 가치를 깨닫고 소임을 다하기 위해 극장을 직접 맡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현재 산울림소극장은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으며 동생인 임수현 예술감독도 힘을 보태고 있다. 임 극장장은 “가족끼리 닮은 건 많지 않아도 하나를 오랜 시간 지속하는 습관만큼은 닮았다”고 했다. 임 연출이 많은 굴곡 속에서도 50년간 극단을 이끌어왔듯 임 극장장 역시 “신진 극단, 예술가와 함께하는 협주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서울 명동예술극장. 5월9일~6월2일. 2만~5만 원. 전시 '연출가 임영웅 50년의 기록展'. 서울 마포아트센터 스튜디오3. 5월7일~25일. 무료.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음악을 닥치는 대로 삼켜 버리며 자신만의 멜로디로 소화해내던 한 천재 소년. 후대에 그는 숱한 명곡을 남긴 ‘악성(樂聖)’ 베토벤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그 역시 ‘월광’ 같은 서글픈 꿈을 꾸며 자신의 ‘운명’을 치열하게 고뇌한 한 인간이었다. 뮤지컬 ‘루드윅: 베토벤 더 피아노’는 천재 음악가 베토벤이 아닌 인간 베토벤의 생애를 톺아보며 존재의 의미와 꿈을 그린 작품이다. 동생의 아들인 카를을 자신의 아들로 입양하고 그를 수제자로 키우려 했던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창작했다. 피아노 소나타 ‘월광’과 ‘비창’, 교향곡 ‘운명’ 등의 곡은 주요 넘버에 접목했다. 청력 상실로 인한 베토벤의 좌절감, 음악에 대한 사랑과 집착, 카를을 향한 베토벤의 빗나간 사랑 등은 서정적 넘버와 팽팽하게 맞물린다. 지난해 초연에 비해 새로운 넘버 2곡을 추가했다. 서사의 완결성이 높아졌으며 군더더기가 줄어 극은 속도감 있게 전개된다. 뭣보다 작품 내 여백을 남기지 않을 정도로 무대를 빽빽하게 채우는 음향 효과가 돋보인다. 베토벤이 청력을 점차 잃는 과정에서 소리가 울리는 듯한 ‘이명(耳鳴)’ 효과나 베토벤의 격정을 표현한 천둥소리 등 음향 효과는 몰입을 높인다. 음향과 맞물려 정확한 타이밍에 활용하는 조명 효과는 극적 긴장감을 더한다. 무대 위에선 작품 내내 피아노 라이브 연주가 계속되며 소극장이 담아낼 수 있는 다채로운 연출의 매력을 뽐냈다. 배우들 간의 ‘찰떡’ 호흡도 눈여겨볼 만하다. 역동적 움직임은 없지만 배우들은 말하듯 노래하고, 노래하듯 말하며 숨 가쁜 호흡을 주고받는다. 대사와 넘버의 경계가 자연스러우며,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1인 다역 연기도 잘 들어맞는 편이다. 다만 일부 장면에서 배우들의 과도한 감정 연기는 다소 부자연스럽다. 또 베토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마리’가 외치는 페미니즘적 메시지도 전체 서사에선 매끄럽지 못하다. 다만 드라마 같은 삶을 살았던 베토벤과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짧은 시간에 압축했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는 있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긴 해도 작품이 주는 울림은 크다. 제작진은 “베토벤의 곡이 너무 유명해 가사를 붙이기도 어려웠다”고 밝혔지만 원곡이 주는 무게감을 잘 활용했다. 거대 오케스트라 없이도 피아노 한 대와 배우들의 목소리라는 매력적인 악기로 110분을 꽉 채웠다. 서범석 김주호 이주광 테이 등 출연. 6월 30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드림아트센터 1관. 4만4000∼6만6000원. 11세 관람가.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잠요? 매일 3시간밖에 못 자죠. 무대 위에서 ‘공주’ ‘황후’ 김소현과는 180도 다른 ‘안나’가 되려면 어쩔 수 없죠. 하하.” 뮤지컬 배우 김소현(44)은 다음 달 17일부터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에서 주인공 안나를 연기하기 위해 요즘 잠을 줄이고 있다. 김소현이 연기할 안나는 톨스토이의 동명 원작 소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아 남편과 가정을 떠나는 역할이다. 15일 오전 서울 광화문 인근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소현은 “자식도 버리고 사랑을 찾아 떠나는 안나는 공감하기 쉽지 않은 역할이고, 평소 맡던 배역과도 달라 잠을 줄여가며 연습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어 “아무리 피곤해도 새벽 6시 전에 일어나 아이 도시락을 싸는 걸 보면 안나 때문이 아니라 영락없는 ‘워킹맘’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며 웃었다.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의 크리스틴으로 무대에 오른 뒤 ‘명성황후’ ‘마리 앙투아네트’ 등에 출연한 그녀는 대중에게 ‘김소현=공주’란 이미지로 깊게 각인됐다. 이 같은 고정관념은 ‘안나 카레니나’를 앞두고 “김소현이 안나를?” 같은 의문을 낳으며 ‘독’이 되기도 했다. 그녀는 “배우의 일이란 게 원래 내면의 작은 조각을 극대화해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인데 제가 경험하지 못한 삶이라 더 재밌다”며 미소 지었다. 얼마 전까지 뮤지컬 ‘엘리자벳’의 지방공연을 소화해 “피곤하다”는 하소연을 할 때도 눈빛은 밝게 빛났다. 고혹적 매력을 뽐내는 안나가 되기 위해 그는 소설, 영화, 논문도 보고 자료도 찾으면서 안나와 관련된 작은 조각들을 모아 개인 자료집도 만들었다. 그는 “불륜을 저지르는 나쁜 캐릭터지만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반복된 일상에 갇힌 사람”이라며 “연출가인 알리아 체비크와 ‘엄마’ ‘여성’이란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수다 떨 듯이 안나라는 캐릭터를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을 앞두고 그는 마음가짐뿐만 아니라 몸 관리에도 각별히 신경 쓴다. 그동안 입던 무대 드레스는 옆으로 넓게 퍼지는 풍성한 의상이었다. 반면 안나의 의상은 흔히 말해 ‘깊게 파이는’ 치명적 드레스다. 그는 “음식을 가리는 편은 아닌데, 이번에는 노출이 많은 의상이다 보니 많이 못 먹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녀가 이토록 배역과 혼연일체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유는 무대 위 가짜를 가장 경계하기 때문이다. “진짜와 가짜는 노래나 연기를 잘하고 못하는 것과는 관계없어요. 무대에 오르는 순간 진심으로 연기에 임하는 게 가장 중요한 철칙입니다. 배우가 어느 무대에 오르든 진심으로 연기한다면 관객들도 이를 느끼고 함께 감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19년차 배우인 그녀는 공연을 앞두고 오드리 헵번, 마리아 칼라스의 영상을 즐겨 본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레전드라 불리는 사람들이 가진 공통적인 아우라를 닮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그녀는 ‘아름답다’ ‘멋지다’란 수식어보다는 ‘의외다’ ‘새롭다’는 말을 더 듣는 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가장 좋아하는 말은 ‘의외’라는 말이에요. 안나 역할처럼 자꾸 변신하고 다른 면을 끄집어내며 늘 새로운 레전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 획, 한 획 글자의 의미를 생각하며 만든 캘리그래피(Calligraphy)를 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낍니다. 펜과 종이만 있으면 되니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요.” 대학원생 황의현 씨(30)는 요즘 캘리그래피에 푹 빠져 있다. 그의 캘리그래피 작업이 특별한 이유는 한글이나 영어가 아닌 아랍어로 쓴다는 것이다. 황 씨는 “아랍어 글씨는 수많은 점들을 균형감 있게 배치해야 하고 고정된 형태를 벗어나 예술적으로 크게 변형할 수 있는 게 매력이다”며 “1∼2시간 동안 몰입해 완성한 캘리그래피는 내게 소중한 예술작품”이라고 말했다. 황 씨는 캘리그래피 동호회 활동을 하며 페르시아어의 글씨체인 ‘파르시’체도 연습하고 있다. 김종훈 씨(28)도 아랍어 캘리그래피 작품을 만든다. 어학 연수로 튀니지에 머무는 동안 일종의 서예학원에 다니며 취미로 아랍어 캘리그래피를 배웠다. 지난해까지는 관심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무료 강습도 했다. 김 씨는 “취직이나 경력 개발과 관련된 활동은 아니지만 삶이 힘들 때마다 펜을 집어 들고 정성스레 글자를 쓰면 자존감도 높아진다”고 했다. 그는 노래 가사, 좌우명 등을 아랍어로 번역해 작품을 만든다. 컴퓨터, 스마트폰에 익숙해져 좀처럼 펜을 쓸 일이 없어진 시대에 펜을 잡고 손으로 자신이 원하는 문구를 쓰는 캘리그래피가 각광받고 있다. ‘쓰기의 귀환’인 셈이다. 캘리그래피는 약 20년 전 유명 소설가들의 책 표지 제목 디자인으로 사용되면서 대중적으로도 인지도를 얻은 뒤 꾸준히 발전해 오늘날 제품 브랜드, TV 드라마·다큐멘터리 제목, 생활용품 디자인에 활용되고 있다. 한때 한글이나 알파벳을 예쁘게 쓰는 정도로 인식되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독립된 예술 장르로 인정받으며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아랍어 캘리그래피를 비롯해 스케치, 드로잉과 결합한 캘리그래피가 인기를 모으고 있으며 작업 도구도 만년필, 색연필, 붓펜, 초크펜, 마커펜 등으로 다양하다. 과거에는 광고, 디자인 분야 종사자들이 캘리그래피를 주로 배웠지만 요즘에는 취미로 캘리그래피를 배우려고 전문학원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서울과 제주에서 필묵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김종건 대표는 “취미로 캘리그래피를 배우는 사람들이 수강생의 20%에서 최근 절반까지 늘었다”고 했다. 취미활동을 공유하는 애플리케이션 ‘프립’에만 캘리그래피 관련 활동이 100여 개에 이른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도 소규모로 캘리그래피 작품을 공유하는 모임이 많다. 연령대도 다양하다. 이산글씨학교를 운영하는 이산 작가는 “중고교생부터 70대까지 매주 수강생 60여 명이 강의를 듣는다”고 말했다. 취미로 시작해 전문 자격증까지 취득하려는 수강생도 적지 않다고 한다.영문 캘리그래피가 한때 큰 인기를 끌었는데, 최근에는 한글 캘리그래피가 더 각광을 받고 있다. 이산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한글은 개인 취향에 따라 자기만의 글씨체를 만들기도 더 쉽고, 무한한 변형도 가능한 게 매력”이라고 설명했다. 김종건 대표는 “한글 캘리그래피를 배우기 위해 스위스, 독일, 영국에서 오는 외국인 수강생도 적지 않다”고 했다. 손글씨의 인기는 도서 시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출판계에 따르면 시를 필사할 수 있도록 만든 ‘필사 시집’이 꾸준히 판매되고 있다. TV 드라마에 등장했던 필사 시집 ‘어쩌면 별들이 너의 슬픔을 가져갈지도 몰라’(김용택 지음·예담)는 2015년 첫 출간 이래 81쇄를 찍었고, 현재 3권까지 출간됐다. 윤동주 시인의 시를 필사할 수 있는 책도 시인의 탄생 100주년(2017년)을 즈음해 여러 권이 출간됐다. 자신의 생각을 손으로 쓸 수 있도록 디자인한 각종 다이어리북도 사랑받고 있다.김기윤 pep@donga.com·조종엽 기자}

“만화는 형식일 뿐, 본질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에서 출발합니다.” 웹툰 작가 주호민(38)은 끊임없이 변신하는 아티스트다. 작가보다 사람으로서 무언가 보여주기 위해 얼마 전 정식 유튜버로 데뷔한 그는 “만화를 처음 시작할 때처럼 긴장되고 설렌다”고 했다. 그의 도전은 계속된다. 최근 온라인 아카데미 콜로소(Coloso)에서 후학을 양성하는 ‘웹툰 스승’으로 또 한 번 나섰다. 주 작가는 “웹툰 작가 지망생들로부터 ‘어떻게 시작할지 모르겠다’는 막연한 고민부터 작품 피드백 요청까지 메일을 자주 받는다”며 “콘텐츠 기획, 콘티 제작 과정, 작가 데뷔 방법 등 노하우를 들려주고 싶다”고 밝혔다. 그 핵심으로 “무엇보다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찾는 게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주호민 표’ 웹툰은 독창성과 작품성을 고루 인정받고 있다. 2005년 만화 ‘짬’으로 인기를 끈 그는 ‘무한동력’ ‘제비원 이야기’ ‘신과 함께’ 등 연달아 히트작을 내놨다. 지금도 중국 송나라 시대 요괴를 소재로 한 웹툰 ‘빙탕후루’를 연재하고 있다. 주 작가는 1000만 관객 영화 ‘신과 함께’ 얘기가 나오자 “솔직히 이럴 만한 만화였나 싶다”며 웃었다. 그는 “지나간 생각이 박제된 것 같은 부끄러움에 영화에서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순간이 있었다”며 “그래도 과학, 다큐멘터리 등 특정 분야를 ‘덕질’해 만든 콘텐츠가 많은 이의 노력 끝에 영상화된 걸 보고 결국 감동해버린다”고 털어놨다. 주 작가는 최근 ‘요즘 감성’을 놓치지 않기 위해 늘 스탠딩 코미디를 즐겨 본다고 한다. “이게 왜 낡았어?”라는 질문을 가장 경계한다. “스탠딩 코미디야말로 첨예한 사회 이슈를 다루는 첨병이죠. 감각이 낡은 건 어쩔 수 없지만 이를 아는 건 중요해요. 문제를 느끼지 못하면 진짜 낡아빠진 사람이 되거든요. 하하.” 그는 앞으로도 하고픈 작품, 던지고 싶은 이야기가 훨씬 많다. 다만 10여 년 전과 달리 작품관은 살짝 변화했다. “과거엔 ‘밥보다 꿈’을 외쳤다면 지금은 ‘밥 먹어야 꿈꾼다’로 생각이 바뀌었어요. 청년과 약자에게 위안을 주는 작품을 만들며, 약자는 선하고 강자는 악한 ‘언더도그마’에 지나치게 빠졌다는 생각도 해요. 늘 이것저것 재밌는 메시지와 이야기는 물론이고 언젠가는… 발달장애 아들의 이야기도 꼭 해보고 싶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프로 무용수들은 이슬만 먹고 산다?” 이에 대한 무용수들의 답은 “아니요”다. 이들은 “많이 먹어야 춤출 수 있다”고 말한다. 공연을 눈여겨본 관객이라면 무용수가 찰나의 정지 동작 중 배와 등이 달라붙을 정도로 거칠게 숨 쉬는 모습을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꼿꼿하고 마른 몸으로 가볍게 무대를 뛰노는 무용수들은 실로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낸다. 이 때문에 풍부한 에너지 섭취는 필수다. 하지만 동시에 ‘춤선’과 체중을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최근 공연을 마쳤거나 공연을 앞둔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무용단 무용수 4명의 식단을 조사했다. 이들은 아침, 점심에 적게 먹고 저녁에 다양한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초긴장 상태에서 배앓이를 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공연 당일 자극적 음식은 금물이다. 소화가 잘되는 초콜릿과 바나나는 ‘최애’(최고 애정) 식단으로 꼽혔다. 근육 강화를 위한 육류 섭취는 필수다. 개인별 식단 비책도 하나쯤은 갖고 있다. 개인차가 있지만 발레단원들의 식단 관리가 가장 엄격하다.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고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하며 직접적으로 체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일주일여 앞둔 국립발레단의 박슬기 발레리나는 공연 시즌에는 아침 식사로 밥 반 공기 정도와 채소, 나물 반찬을 먹는다. 점심은 건너뛰거나 떡 한 조각과 우유로 대신한다. 초콜릿이나 이온음료도 수시로 먹는다. 일본에서 구한 ‘흑설탕·소금 혼합 제품’도 좋은 에너지원이다. 연습이 끝나면 닭고기를 즐긴다. 공연 2시간 전에는 계란과 채소가 든 샌드위치를 꼭 먹는다. 그는 “운동량이 적은 비시즌에는 에너지 소비가 적어 먹는 양이 확 줄어든다”며 “팔만 만져 봐도 체중을 정확히 맞힐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공연을 마친 유니버설발레단의 사공다정 발레리나는 공연하는 날 아침에 사과 반쪽과 물 한 잔, 점심식사로는 커피, 우유, 작은 초콜릿만 섭취한다. 공연이 끝나면 연두부로 단백질을 보충한다. 기름 없는 소고기 부위를 조금 먹을 때도 있다. 그는 “학창 시절 부모님께 ‘밤에 라면을 먹고 싶다’고 졸라도 허락해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습관이 돼 자극적 음식과 야식은 피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용수와 현대무용수는 “발레 쪽보다는 제약이 덜할 것”이라면서도 엄격히 식단을 관리한다. ‘넥스트 스텝Ⅱ’ 공연을 앞둔 국립무용단의 김미애 무용수는 “아침에는 빵 한 조각, 점심은 탄수화물 종류, 저녁에는 육류, 단백질을 섭취하고 틈틈이 초콜릿을 먹는다”고 했다. 다만 공연 당일은 무조건 죽만 먹는다. 소화불량으로 공연에 지장이 생긴 적이 있어 이런 철칙이 생겼다. 그는 “공연용 한복을 입기에 노출이 적은 편이라 부담이 덜해도 공연만 끝나면 어김없이 식욕이 돌아온다”며 웃었다. 다음 달 3일 막이 오르는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공연을 앞둔 국립현대무용단의 서일영 무용수는 아침 식사 비책으로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끓인 누룽지와 바나나를 꼽았다. 점심에는 바나나 5, 6개만 먹는다. 그는 “삼겹살, 치킨, 피자는 저녁에 주로 먹는다”며 웃었다. 높은 열량 섭취에도 매일 연습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그는 무대에서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전 연극계에서 비주류라고 생각해요. 연극을 사랑하는 배우이자 예술감독으로서 사회 비주류가 느끼는 민감한 문제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축제를 만들고 싶습니다.” 큰 키에 백팩을 짊어지고 11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의 한 카페에 들어선 그는 연극만 생각하는 대학로 청춘의 모습이었다. 30년 넘게 배우로 연극무대를 누빈 남명렬 씨(60)가 올해 서울연극제의 예술감독을 맡았다. “신진 작가부터 스타 연출가까지 좋은 작품들을 출품해 10편만 골라야 하는 행복한 고민을 했어요. 메시지는 물론이고 예술적 완성도를 주로 고려했습니다.” 선정된 작품을 설명하는 동안 그는 처음 무대에 오른 대학생처럼 눈이 빛났다. 올해 40돌을 맞은 서울연극제는 이달 27일부터 6월 2일까지 이어진다. 대학로 일대에서 혐오, 젠더, 통일 등을 주제로 한 작품 10편이 무대에 오른다. 독일 수상 빌리 브란트의 이야기를 토대로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모크라시’(이동선 연출)가 축제의 문을 연다. 20세기 초 중국 한 인력거꾼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를 돌아보는 ‘낙타상자’(고선웅 연출), 장강명 소설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인터넷 여론조작을 다룬 ‘댓글부대’(이은진 연출)가 관객들을 만난다. 죽기 직전 한 남자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순간의 중첩을 통해 우리의 시공간을 돌아보는 ‘중첩’(이우천 연출)을 폐막작으로 준비했다. 그는 “지금, 현재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밀접하게 연결된 문제를 말하며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축제를 구상 중”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연극 ‘오이디푸스’를 비롯해 드라마, 영화를 오가며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영업사원으로 회사를 다니다 35세에 무대에 뛰어들었는데 운 좋게도 훌륭한 연출가, 작가를 만나 계속 연기할 수 있었어요. 무명 시절에는 어떻게든 연출가의 눈에 띄고 싶어 대학로를 배회하거나 꼭 공연장 근처에서 책을 읽었죠.”(웃음) 그는 ‘팬덤 문화’가 생긴 요즘 연극계를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팬들을 몰고 다니는 후배를 보면 ‘내가 20년만 늦게 태어났어도’라고 우스갯소리도 해요. 그만큼 연극계가 짊어진 책임감이 더 커진 거죠. 연극은 누구보다 먼저 불편한 문제에 시선을 돌리고 내적으로 성숙해져야 합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프로 무용수들은 이슬만 먹고 산다?” 이에 대한 무용수들의 답은 “아니오”다. 이들은 “많이 먹어야 춤출 수 있다”고 말한다. 무용을 눈여겨 본 관객이라면 찰나의 정지 동작 중 배와 등이 달라붙을 정도로 거칠게 숨 쉬는 무용수의 모습을 한 번쯤 봤을 것이다. 꼿꼿하고 마른 몸으로 가볍게 무대를 뛰노는 무용수들은 실로 막대한 에너지를 쏟아낸다. 때문에 풍부한 에너지 섭취는 필수다. 하지만 동시에 ‘춤선’과 체중을 고민해야 하는 딜레마도 안고 있다. 최근 공연을 마쳤거나 공연을 앞둔 국립발레단, 유니버설발레단, 국립현대무용단, 국립무용단 무용수 4명의 식단을 조사했다. 이들은 아침, 점심에 적게 먹고 저녁에 다양한 음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한다. 초긴장 상태에서 배앓이를 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공연 당일 자극적 음식은 금물이다. 소화가 잘 되는 초콜릿과 바나나는 ‘최애’(최고 애정) 식단으로 꼽혔다. 근육 강화를 위한 육류 섭취는 필수다. 개인별 식단 비책도 하나쯤은 갖고 있다. 개인차가 있지만 발레단원들의 식단관리가 가장 엄격하다. 노출이 많은 의상을 입고 발끝으로 온몸을 지탱하며 직접적으로 체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약 일주일 뒤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을 앞둔 국립발레단의 박슬기 발레리나는 공연 시즌에는 아침 식사로 밥 반 공기 정도와 야채, 나물 반찬을 먹는다. 점심은 건너뛰거나 떡 한조각과 우유를 섭취한다. 초콜릿이나 이온음료도 수시로 먹는다. 일본에서 구한 ‘흑설탕·소금 혼합 제품’도 좋은 에너지원이다. 연습이 끝나면 닭고기를 즐겨 먹는다. 공연 2시간 전 계란과 야채가 든 샌드위치를 꼭 먹어야 하는 징크스도 생겼다. 그는 “운동량이 적은 비시즌에는 에너지 소비가 적어 먹는 양이 확 줄어든다”며 “팔만 만져 봐도 체중을 정확히 맞출 수 있다”고 말했다. 최근 공연을 마친 유니버설발레단의 사공다정 발레리나는 공연하는 날 아침에 사과 반쪽과 물 한잔, 점심식사로는 커피, 우유, 작은 초콜릿만 섭취한다. 공연이 끝나면 연두부로 단백질을 보충한다. 기름 없는 소고기 부위를 조금씩 먹을 때도 있다. 그는 “학창시절 부모님께 ‘밤에 라면을 먹고 싶다’고 졸라도 허락해주지 않았는데 이제는 습관이 돼 자극적 음식과 야식은 피한다”고 말했다. 한국무용수와 현대무용수는 “발레보다는 제약이 덜할 것”이라면서도 엄격히 식단을 관리한다. ‘넥스트 스텝Ⅱ’ 공연을 앞둔 국립무용단의 김미애 무용수는 “아침에는 빵 한 조각, 점심은 탄수화물 종류, 저녁에는 육류, 단백질을 섭취하고 틈틈이 초콜릿을 먹는다”고 했다. 다만 공연 당일은 무조건 죽만 먹는다. 소화불량으로 공연에 지장이 생긴 적이 있어 이런 철칙이 생겼다. 그는 “공연용 한복을 입기에 노출이 적은 편이라 부담이 덜해도 공연만 끝나면 어김없이 식욕이 돌아온다”며 웃었다. 다음달 3일 막을 올리는 ‘라벨과 스트라빈스키’ 공연을 앞둔 국립현대무용단의 서일영 무용수는 아침 식사 비책으로 속을 따뜻하게 해주는 끓인 누룽지와 바나나를 꼽았다. 점심에는 바나나 5, 6개만 먹는다. 그는 “삼겹살, 치킨, 피자는 저녁에 주로 먹는다”며 웃었다. 높은 열량 섭취에도 매일 연습에서 에너지를 다 소진하는 그는 무대에서 완벽한 근육질 몸매를 선보일 준비를 하고 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

학생과 교사들이 쌓아올린 마음의 벽은 아파트 콘크리트 벽보다 두껍다. 두꺼운 벽을 없애려는 노력에도 이들의 외로움은 더 커져만 간다. 연극 ‘철가방추적작전’은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중학교가 배경. 학교를 벗어나려는 청소년들과 이들을 학교로 데려오려 고군분투하는 교사가 중심인물이다. 학생이 학교 안팎에서 겪는 차별을 통해 계급화된 교육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김윤영 작가의 동명 단편소설을 각색했으며 올해 두산아트센터가 선보인 ‘아파트’ 시리즈 가운데 첫 작품이다. 겉으로 평범해 보이는 이 학교는 ‘아파트’라는 큰 가상의 벽으로 나뉘어 있다. 공공임대 아파트와 민간 아파트에 사는 학생들은 한 교실에 지내면서도 알게 모르게 서로를 ‘○○ 아파트 출신’으로 규정한다. 아파트 브랜드에 따라 학생의 계급도 결정된다. 누군가는 교실에서 잘 가르치는 학원을 고를 때, 다른 누군가는 돈을 잘 주는 배달 아르바이트를 고민한다. 배달 오토바이를 모는 학생이 “가게 사장님은 내가 어디 사는지 묻지 않고 똑같이 대해준다”고 말하는 장면이 아픈 여운을 남긴다. 역설적으로 관객은 교실 안에 묘하게 흐르는 이질감 속에서도 ‘사회의 축소판’을 보는 듯한 익숙함과 마주한다. 무거운 주제와 달리 작품은 ‘활극’을 연상시킬 정도로 역동적이다. 학생을 뒤쫓는 교사의 추격 장면은 박진감이 넘친다. 세련된 무대 연출과 배우들의 실감나는 중학생 연기는 2019년 한 중학교 교실을 가져다 놓은 듯 현장감이 뛰어나다. 때론 여느 학원, 청춘물처럼 유쾌한 웃음도 던진다. 극의 소재와 줄거리 자체는 상투적이지만 원작 소설이 탄생한 약 20년 전과 오늘날 교실 모습이 크게 달라지지 않음을 깨닫는 순간 씁쓸함은 커진다. 특히 어느 학생이든 동등하게 가르쳐 왔다고 자부한 교사 ‘봉순자’는 본인도 모르게 졸업앨범비 도난 사건의 범인을 임대 아파트 출신 ‘정훈’으로 생각한 장면에서 고개를 떨어뜨린다. 현실 사회의 폐부를 묵직하게 찌른 작품. 강지은 김효숙 이철희 전수지 등 출연. 다음 달 4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전석 3만5000원. 14세 관람가.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습니다) ‘헬조선’ ‘흙수저’를 외치는 요즘 아이들의 마음속으로 한 발 다가갈 수 있는 지침서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이자 청소년 정신 치유 전문가인 저자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났다. 그 결과 요즘 청소년의 마음고생을 “초등학교 때는 수치심을 배웠고, 중학생 때는 외로움에 시달렸고, 고등학생 때는 불안에 휩싸였다”고 정의 내렸다. 과도한 경쟁과 서열화에 지친 청소년의 심리를 폭넓게 분석했다. 저자는 어른 세대와는 너무도 다른 아이들의 심리 상태와 특징을 구체적으로 알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배고픔보다 외로움이 더 큰 상처다” “집밥보다 편의점 도시락이 더 맛있다” “포기는 빠르고, 다양하다”와 같은 쉽고 풍부한 사례와 키워드가 이해를 돕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비명이 절로 나올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종아리 근육을 꼭 풀어줘야 해요. 의상을 갈아입을 땐 2, 3명씩 붙어 도와주느라 진짜 정신이 없어요.”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을 떼어다 옮겨놓은 듯한 무대 디자인, 다채로운 원색의 의상·장신구와 백조들의 화려한 군무까지. 유니버설발레단(UBC)의 ‘백조의 호수’가 화려한 볼거리로 관객의 시선을 잡아끄는 동안 무용수들은 무대 뒤에서 ‘조용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이들은 근육 경련이 생기지 않도록 몇 초의 휴식시간 동안 종아리, 허벅지 근육을 열심히 주무른다. 한쪽에서는 동료를 향해 ‘실수하지 않았으면…’ 하는 묵언의 응원 기도도 이어진다. 공연 중인 무용수가 집중할 수 있도록 무대 뒤편에서는 조용함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4년째 주역 ‘오데트’ 역을 맡고 있는 홍향기 발레리나(30)를 5일 만나 ‘백조의 호수’ 무대 뒤 이야기와 관전 포인트에 대해 알아봤다. 우선 그가 꼽은 조용한 전쟁의 순간은 2막 1장에서 솔로로 흑조 연기가 끝난 직후다. “오데트는 주로 왼쪽 다리로만 중심을 잡고 서 있거나 회전하거든요. 2막에서 흑조 파드되(2인무) 연기와 솔로 연기를 펼치고 난 뒤 한 다리로 연속 회전하는 푸에테 장면 이전에 딱 30초간 쉬는 시간이 주어져요. 비명을 지를 정도로 고통스럽지만 앉아서 계속 종아리를 주무르고 주먹으로 때립니다. 매년 공연 때마다 이 순간이 가장 고비죠.” 잠깐의 휴식이자 전쟁 같은 순간이 지나면 무용수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무대로 돌아온다. 그는 “후반부로 갈수록 안무가 격렬해져 숨소리도 거칠어지지만 백조의 자태가 흔들리지 않도록 한결같은 상태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화려한 소품, 의상이 활용되는 작품인 만큼 의상을 갈아입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주연 외에 많게는 3, 4개 의상을 입는 무용수도 있기 때문에 여러 명의 스태프가 붙어 무대의상을 바꿔 입도록 분주하게 돕는다. 백조와 흑조를 오가며 달라지는 오데트의 표정 연기도 눈여겨볼 만하다. 그는 “1막 등장장면에서는 최대한 애처로운 연기에 집중하다 2막에서 흑조를 연기할 땐 요염하면서도 도발적인 느낌을 표현하려 했다”고 밝혔다. 다른 배우들도 표정 연기에 공을 들여 발레단 내 ‘표정연기 특별훈련’도 진행됐다. 개인적으로 제일 애정이 가는 장면을 묻자 ‘솔로 파트’보다는 단원들이 함께 만드는 ‘1막 2장 호숫가 전경’ 장면이라고 답했다. “여러 무용수가 함께 만드는 웅장한 장면인데 무용수 한 명 한 명의 움직임과 숨결에 집중하면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어요. 올해 새로 추가한 흑조와 백조의 군무 장면은 물론 이번에 처음으로 바꾼 ‘새드엔딩’도 뭉클함을 선사할 겁니다.” 13일까지.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아트센터. 1만∼10만 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30년 넘게 무대에 올랐지만, 공연 직전까지 늘 배앓이와 대사를 까먹는 악몽에 시달려요. 많은 배우들이 이에 시달리는 걸 보면 일종의 직업병이죠. 그래서 연극 무대가 ‘늘 집처럼 편하다’는 말은 절반은 거짓말입니다. 하하.” TV와 스크린을 오가며 ‘마 부장’과 ‘악녀’ 역할로 각각 대중에게 존재감을 드러낸 배우 손종학(52)과 서이숙(52)이 연극 무대로 돌아왔다. 2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만난 두 사람은 10일 막을 올리는 ‘인형의 집: Part 2’ 막바지 연습에 한창이다. 무대에 복귀한 소감을 묻자 손종학은 “거창한 소감은 필요 없다. 운 좋게도 제 스케줄이 잘 맞아 무대로 돌아왔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자 서이숙은 “실은 둘 다 심리적 압박감 때문에 ‘장 트러블’로 고생하고 있다”며 “흔히 말하는 ‘군 입대 꿈’처럼 무대에서 머리가 하얘지거나 무대 의상을 잃어버리는 악몽과 매일 밤 싸우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들이 심혈을 기울이는 ‘인형의 집…’은 국내 초연 작. 페미니즘 연극의 고전으로 꼽히는 1879년의 ‘인형의 집’을 모티브로 미국 극작가 루커스 네이스가 2017년 새로운 스토리를 입혔다. 결혼 제도의 모순을 느끼고 가출한 여성 ‘노라’의 15년 뒤 모습을 상상해 극에 녹여냈다. 노라가 가출한 뒤 고생했을 거란 막연한 편견과 달리 작품에서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승승장구한다. 돈도 많이 벌고, 연하 애인과 사랑에 빠진다. 서이숙은 “극 초반 노라가 집에 돌아오는 장면에선 멋지고 당당한 여성을 표현할 것”이라고 했다. 이혼 절차를 마무리하기 위해 남편과 마주한 노라는 딸과 유모도 만나며 설전을 벌인다. 서이숙과 우미화 배우가 노라를 맡았고, 손종학과 박호산 배우가 남편 토르발트를 연기한다. 두 배우는 작품의 방점을 ‘소통’에 찍고 있다. 서이숙은 “사람들이 갈등하는 건 결혼 제도의 모순이나 가정 내 성적 불평등 때문이기도 하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소통의 부재 때문”이라며 “서로 ‘대화하는 법’을 모르는 현대인에게 메시지를 던지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손종학은 “그동안 기득권 안과 밖에서 살아온 남성과 여성이 소통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표현하려고 한다”며 “외국 작품임에도 한국 관객들에게 와 닿는 바가 더 클 수도 있다”고 했다. 15년 만에 만난 노라와 가족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이에 두 배우는 “결말은 열려 있다”고 답했다. 제작진과 배우들은 실제 연습에서도 결말의 방향을 두고 끝없이 고민했다. 손종학은 “부부가 전혀 변하지 않을 수도 있고, 적어도 서로의 입장 정도는 이해했을 수도 있다”고 했다. 서이숙은 “대화를 나누고 소통하려 했다는 것만으로도 ‘첫출발’은 한 것”이라며 “관객들 역시 ‘저 남자의 생각이 과연 변했을까’ ‘사회적 장벽들이 사라졌을까’ 등의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작품 속 캐릭터에 이입해 말을 이어가던 두 배우는 “근데 살아보니 사람은 절대 쉽게 안 변하는 것 같다”며 크게 웃었다. 30년 넘게 배우로 살아온 두 사람에게도 절대 변하지 않는 습관이 있다. 연습 기간 중엔 맡은 캐릭터처럼 사는 것이다. 서이숙이 “작품의 화두가 소통인 만큼 어느 순간 술자리에서 말을 줄이고 남의 얘길 듣는 저 자신을 발견했다”고 하자, 손종학은 “어딜 가든 온전히 즐기질 못하고 늘 배역에 묶여 있는 게 배우들의 직업병이자 숙명”이라고 했다. 28일까지. 서울 강남구 엘지아트센터. 3만∼6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알아선 안 될 것을 알아버린 자, 혹은 남들보다 너무 빨리 진실을 마주한 자. 교회의 교리가 세상의 진리이던 시기에 ‘지동설’을 주장한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는 수세기 동안 예술 작품의 소재로 쓰였다. 그만큼 모순적 시대상에 맞선 매력적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국립극단의 ‘갈릴레이의 생애’는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집필한 갈릴레이 이야기를 토대로 21세기 한국에 ‘인간 갈릴레이’를 되살려낸 작품이다. 연구가 종교 교리와 맞지 않아 재판정에 선 갈릴레이는 학자로서의 양심과 불합리한 현실 사이에서 고뇌한다. 그는 교회 권력에 굴복하는 듯하지만, 결국 마음에 묻어둔 진실을 책으로 써 세상 밖으로 이를 알리는 데 성공한다. 작품이 말하는 한 인물의 생애는 배우의 헌신적 연기로 완성됐다. 갈릴레이 배역의 배우 김명수는 구시대에 두 발을 딛고 있지만 가슴은 새 세상을 꿈꾸는 ‘경계인’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두 점 사이를 직선으로 연결할 수 없다면 이를 돌아서라도 연결하라”는 말이 그의 생애를 적확하게 표현한다. 극 초반부 갈릴레이가 고뇌하는 장면이 다소 늘어지기도 하지만, 4시간 분량의 원작을 압축한 점을 고려하면 이는 납득할 만하다. 역동적인 장면은 없으나 빼어난 무대 연출이 이를 보완한다. 원형의 무대 위를 도는 장치와 인물은 갈릴레이의 인생과 우주를 표현했다. 상단 스크린에는 그가 망원경으로 바라본 태양, 목성의 영상을 띄워 현장감을 더했다. 무대 중앙에 위치한 배 모양의 장치는 마치 관객을 우주 속 항해로 끌어들이는 듯하다. 김명수 이호재 강진휘 김정환 등 출연. 4월 28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14세 관람가.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동아일보사가 해마다 식목일에 개최하는 ‘무궁화 묘목 나눠주기’ 행사가 올해도 5일 시민들을 찾아간다. 이날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 앞에서는 무궁화 묘목 2만 그루를 시민에게 무료로 나눠 준다. 무궁화 보급 행사는 일제강점기 35년간 설움 받았던 나라의 꽃인 무궁화를 널리 알리고 가꾸기 위해 동아일보사가 1985년에 시작했다. 이 행사는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는 2020년까지 계속된다. 이날 행사에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활동 중인 인기 배우 이연희 씨와 김민종 씨가 참여해 묘목을 나눠 준다. 행사는 5일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열리며 배우 이연희, 김민종 씨는 낮 12시부터 오후 1시까지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다. 묘목은 개인별 5그루, 단체는 10그루를 선착순으로 받아 갈 수 있다. 묘목을 소지한 관람객은 동아미디어센터 옆 일민미술관 신문박물관에 무료로 입장해 신문 제작 체험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와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4번 출구(청계광장 방면)를 이용하면 행사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동아일보사가 해마다 식목일에 개최하는 ‘무궁화 묘목 나눠주기’ 행사가 올해도 5일 시민들을 찾아간다. 이날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 앞에서는 무궁화 묘목 2만 그루를 시민에게 무료로 나눠준다. 무궁화 보급 행사는 일제강점기 35년간 설움 받았던 나라의 꽃인 무궁화를 널리 알리고 가꾸기 위해 동아일보사가 1985년에 시작했다. 이 행사는 동아일보 창간 100주년을 맞는 2020년까지 계속된다. 이날 행사에는 영화,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 활동 중인 인기 배우 이연희 씨와 김민종 씨가 참여해 묘목을 나눠준다. 행사는 5일 오전 11시 반부터 오후 3시까지 열리며 배우 이연희, 김민종 씨는 정오부터 오후 1시까지 스페셜 게스트로 참여한다. 묘목은 개인별 5그루, 단체는 10그루를 선착순으로 받아 갈 수 있다. 묘목을 소지한 관람객은 동아미디어센터 옆 일민미술관 신문박물관에 무료로 입장해 신문 제작 체험 이벤트에도 참여할 수 있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와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4번 출구(청계광장 방면)를 이용하면 행사 장소를 쉽게 찾을 수 있다. 02-2020-1780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수십만 병사와 장군들을 호령하는 삼국지 촉나라의 제갈량. 그는 무대 위에서 병사들 목말을 타고 전장의 말 위에 오르는 장면을 연출한다. 곁에서 그를 호위하는 8척 장신의 장군 조자룡. 그가 병사들에게 내뱉는 노랫말(판소리)은 어느 때보다 위엄이 넘친다. 그런데 뮤지컬 ‘적벽’에선 두 장수의 역할을 모두 여성 배우들이 맡는다. 공연 무대 위에서 ‘성역(性域)’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성 역할 고정관념을 깨는 ‘젠더 프리·크로스 캐스팅’ 작품이 잇따라 막을 올렸다. 젠더 프리·크로스 캐스팅이란 기획 단계부터 역할에 성별을 따로 구분하지 않거나 배역을 남성, 여성이 번갈아가며 연기하는 것을 뜻한다. 연극 ‘함익’도 대표적인 케이스. 재벌 2세에 대학교수 신분으로 남부러울 것 없이 사는 30대 여성 함익. 그러나 정작 그녀의 마음은 복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걸 가졌지만 늘 심리적 고독으로 고뇌하는 자. 어디서 본 듯 익숙한 이 배역은 셰익스피어 고전 ‘햄릿’의 한국형 캐릭터다. 남성 배역으로 굳어져 있던 햄릿은 무대에서 여성으로 다시 탄생했다. 뮤지컬 ‘해적’은 심지어 모든 배역을 혼성으로 캐스팅했다. 무대에 등장하는 2명의 배우가 각각 1인 2역을 소화하며 기존 해적의 이미지에서 탈피했다. 연극 ‘B클래스’는 기존 캐스팅을 뒤집은 ‘성별 반전’ 사례라 할 수 있다. 2017년 초연 당시엔 남성 배우들만 무대에 올랐다. 하지만 이를 깨고 같은 배역에 여성 배우들을 캐스팅해 현재 남성과 여성 버전, 두 가지 형태로 공연된다. 최민우 프로듀서는 “사실 여성이 중심이 되는 무대를 먼저 만들고 싶었지만 ‘남자는 이렇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워지기로 했다”며 “성별에 따른 미세한 장면, 대사 차이는 있지만 큰 틀에서 작품이 말하는 메시지는 같음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배우들은 무대 위 이 같은 변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초기엔 역할 이입에 어려움을 표하던 이들도 배역의 성별 구분보다 내면적 인간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적벽’의 제갈량을 맡은 윤지수 배우는 “처음엔 ‘남성’이란 역할에만 집중해 연기하느라 다소 어색했지만, 이젠 극 중 하나의 캐릭터 자체로 받아들여 연기하니 훨씬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한국형 햄릿인 ‘함익’의 최나라 배우는 “나는 여성이니까 다르게 연기해야겠다는 생각은 없고 내면의 고독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수년 전부터 늘어난 ‘젠더 프리’ 캐스팅은 성공적이란 평가가 많다. 하지만 기계적인 성 역할 전환에 앞서 작품의 질에 대한 고민이 동반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관객들의 젠더 프리 캐릭터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고, 배역도 주변 인물로 한정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연 평론가인 원종원 순천향대 공연영상학과 교수는 “젠더 프리 캐스팅 자체가 성 역할 고정관념 개선에 도움을 주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선 안 된다”며 “캐스팅이 관객의 흥미를 자극하고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평생 종잇조각만 붙들고 세상과 싸우는 미친 여자.” 사회와 단절돼 원고에만 매달려 사는 한 노파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에바 호프. 그녀는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을 상대로 원고 소유권을 놓고 30년 동안이나 소송을 이어왔다. 세상은 그녀가 손에 쥔 원고가 고인이 된 한 유명 작가의 미발표 작품이라는 사실에만 주목해 그녀를 ‘아집에 가득 찬 78세 노인네’ ‘원고에 미친 여자’로 몰아갔다. 그 누구도 그녀의 괴팍한 태도나 아집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뮤지컬 ‘호프(HOPE):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은 무엇이 한 노파의 삶을 이렇게 만들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한다. 작품은 유대계 독일 작가 프란츠 카프카(1883∼1924)의 유작 반환 소송 실화를 모티브로 탄생했다. 실제 사건의 얼개를 토대로 가상 인물들을 만들어 ‘호프’라는 인간이 인생을 걸고 원고를 지키는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수시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면서 전쟁터, 법정, 경매장, 집 등으로 배경이 빠르게 전환하며 몰입도를 높인다. 다만 일부 장면 전환에서는 1인 다역을 소화하는 배우들이 급박하게 역할을 바꾸느라 다소 부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 아쉽다. 작품 속 주인공과 인물 간 갈등의 중심에는 늘 ‘원고’가 있다. 이 때문에 연출자는 아예 원고를 의인화해 ‘K’라는 배역으로 구현하는 신선함을 선보였다. 오직 호프의 눈에만 보이는 ‘K’는 주인공을 향해 “원고에서 벗어나 너 자신이 되어야만 한다”고 노래하며 주인공의 또 다른 내면의 목소리를 표현했다.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며 삶을 견뎌나가는 호프의 모습은 삶을 견뎌내는 우리의 그것과 닮았다. 극 중 호프가 “잃어 본 사람은 알아”라고 읊조릴 때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많다. 작품은 “그동안 읽히지 않았던 네 인생을 다시 찬찬히 읽어 보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김선영 차지연 고훈정 조형균 등 출연. 5월 26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연강홀. 5만5000∼8만8000원. 13세 관람가.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잘된 웹툰이 감독, PD에게 선택돼 영상화되는 시기는 지났습니다. 웹툰 제작 단계부터 영상화를 고려한 ‘기획형 웹툰’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었던 한국형 좀비물 ‘킹덤’은 만화 ‘신의 나라’를 토대로 만들었다. 드라마 ‘시그널’ ‘싸인’의 김은희 작가, 양경일 작가와 뭉쳐 ‘신의 나라’를 기획한 윤인완 웹툰 작가는 만화의 영상화를 고민하던 중 원작의 선정성과 영상 구현의 어려움에 부딪혔다. 이때 떠오른 대안이 바로 웹툰. 윤 작가는 “웹툰 ‘신의 나라’를 만들고 이를 다시 드라마화하기로 했다”며 “웹툰 기획·제작 단계부터 영상을 고려한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완성도와 볼거리에서 호평을 받은 ‘킹덤’이 탄생했다. 기획형 웹툰 시대를 열며 ‘한국형 마블’을 꿈꾸는 윤인완 작가를 그가 대표로 있는 서울 마포구 와이랩의 사무실에서 22일 만났다. 윤 작가는 사무실 곳곳에 펼쳐져 있는 인기 웹툰 ‘테러맨’ ‘신석기녀’ ‘부활남’ 그림을 가리키며 “만화의 제작·기획·교육까지 모든 게 한곳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스튜디오 곳곳에서는 연재 중인 인기 웹툰을 만들고 있었다. 그에게 만화는 곧 인생이다. 1996년 만화 ‘데자부―봄’으로 데뷔한 그는 양경일 작가와 함께 ‘신 암행어사’ ‘아일랜드’ 등 인기작을 쏟아냈다. 일본에서도 만화를 연재했고, 시장이 웹툰 위주로 재편되자 기획자로도 나섰다. 그는 “20년 이상 만화를 업으로 삼으며 잡지연재 시기부터 웹툰 전성시대까지 많은 굴곡을 겪었다”며 “최근 영화감독, 제작사, 배급사가 소재를 발굴하기 위해 먼저 웹툰을 찾는 걸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웹툰 속 독특한 세계관이나 탄탄한 구성으로 정평이 난 그는 주로 고전 소설에서 소재를 발굴한다. 여기에 시의성을 더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다. ‘테러방지법’과 ‘이슬람국가(IS)’가 이슈가 되던 때 탄생한 작품이 히어로물 ‘테러맨’이다. 그는 “스토리 구성에 있어 지켜야 할 모든 요소가 고전에는 이미 다 갖춰져 있다”며 “제 만화도 도스토옙스키나 카프카의 글처럼 언제 읽어도 날카로움과 놀라움을 주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 작가는 웹툰 속 캐릭터들이 연달아 인기를 끌면서 ‘한국형 마블 스튜디오’를 꿈꾸고 있다. 그는 “미국의 마블, DC코믹스를 따라 하는 거냐는 비판도 듣지만 불교의 윤회사상과 ‘초끈 이론’을 바탕으로 ‘슈퍼스트링 유니버스’라는 한국적 세계관을 구현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가 바라본 한국 웹툰의 미래는 장밋빛이다. 세계에 통할지 반신반의하던 ‘킹덤’의 성공을 보며 한국적인 내용일수록 ‘먹힌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한다. “웹툰 플랫폼 덕에 어느 때보다 글로벌 확장성이 커졌어요. 집, 카페에서 그린 작품이 일본, 태국, 말레이시아, 미국까지 1, 2주 내로 뻗어나가고 웹툰 원작 영화가 1000만 관객을 넘어선 시대죠. 할아버지가 되어도 평생 젊은 사람들과 함께 한국 웹툰, 만화를 만들고 싶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조선 말기 무관부터 뱀파이어, 청와대 경호원, 군인, 복학생까지. 올해 초 공연들의 출연진을 살펴보면 유독 자주 눈에 띄는 이름이 있다. 13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배우 오종혁(36)은 “새로운 역할만 보면 무조건 해야겠다는 욕심이 생긴다”며 ‘열일(열심히 일)하는 배우’가 된 그 나름의 이유를 털어놨다. 오종혁은 어느덧 11년 차 배우다. 연극과 방송, 영화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한 그지만 4월 막을 올리는 연극 ‘함익’은 만만치 않은 작품이다. 그는 복수심이 가득한 재벌 2세 출신 여교수 ‘함익’에게 인간적 순수함을 일깨우는 복학생 ‘연우’를 맡았다. 오종혁은 “화려한 외형만 중시하던 함익의 얼어있던 내면을 흔드는 캐릭터”라며 “물론 정신적으로 성숙하지만 실제 저보다 훨씬 어린 역할이라 쉽지 않다”면서 웃었다. 오종혁은 여전히 누군가에겐 아이돌 가수 ‘클릭비’로 더 친숙하다. 아이돌이란 단어가 나오자 그는 “아이돌은 늘 제약이 따르기 때문에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었다”며 “답답해서 몰래 점도 봤더니 ‘1등 연예인감인데 성격은 정반대’라는 얘길 들었다”고 했다. 반면 공연계에 발을 들인 순간을 떠올리며 “배우들이 뿜어내는 밝고 활기찬 에너지에 반했다”고 했다. 그는 ‘공연 팬’을 자처할 정도로 무대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열정적으로 무대에 오르는 그의 모습은 앞으로도 계속 볼 수 있을 듯하다. “마치 이명처럼 무대 위에서 ‘삐∼’ 소리가 나는 순간이 있어요. 관객과 배우가 한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실 때 드는 밀도가 꽉 찬 느낌이죠. 이 짜릿함에 중독되면 끊을 수가 없습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2일 오후 서울 중구 국립극장 창극단 연습실. 칼을 든 배우들이 연습실을 뛰어다니며 창(唱)을 뿜어냈다. 때론 절제된 동작을 표현하기 위해 파르르 손끝을 떨면서도 몸의 선은 꼿꼿하게 유지했다. 특히 중앙에 서 있는 두 배우가 움직일 때면 대만 경극의 대가인 우싱궈(吳興國) 연출가도 일어나 “따! 따! 따! 딴∼”이라고 박자를 외치며 몸소 경극 리듬을 표현했다. 다음 달 5일 막을 올리는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에서 항우와 우희를 맡아 막바지 연습 중인 정보권(27)과 김준수(28)를 만났다. ‘패왕별희’는 동명의 대만 경극을 원작으로 창극을 결합해 ‘초한지’의 항우, 유방, 우희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이날 처음으로 음악에 맞춘 동작 연습을 끝낸 두 사람은 “경극에선 손동작 하나하나가 다 정해져 있어 모조리 외워야 한다”면서 “힘들 줄은 알았는데 생각보다 더 힘들다”며 웃었다. 이어 “판소리에 경극을 입혀 새로운 장르를 만드는 건 영광스러운 일이자 큰 압박”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립창극단원 김준수와 객원 멤버인 정보권은 중앙대 예술대학 1년 차 선후배다. 김준수가 “연인 역할에 몰입해야 해서 가끔 보권이를 ‘여보’라고 부른다”며 장난을 치자, 정보권은 “제발, 밖에선 그러지 말라”며 손사래를 쳤다. 형·동생 같은 선후배에서 연인을 연기하는 두 사람은 눈빛만으로 의중을 알아챌 정도로 ‘찰떡 호흡’을 뽐낸다. 원작과 마찬가지로 항우 역할은 ‘남성성의 끝판왕’이며 우희는 ‘여성성의 끝판왕’이다. 정보권은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라는 항우의 압도적 용맹함을 표현해야 하는데, 충청도 출신이라 그런지 연출의 요구처럼 내면의 기개와 날카로움을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다”며 웃었다. 김준수는 “영화 ‘패왕별희’(1993년)에서 장국영이 연기한 우희를 보며 여성의 선을 공부했다”며 “요즘엔 춤 선이 예쁘게 보이도록 다이어트를 할 정도로 힘들지만 누구든 쉽게 할 수 없는 역할인 만큼 더욱 매력적”이라고 답했다. 둘 다 고충을 토로했지만 우 연출은 “대만에서도 찾기 힘든 재목의 배우들”이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숱하게 무대에 오르며 ‘소리꾼 아이돌’이란 별명을 얻은 이들이지만 이번 작품은 큰 도전이다. 하지만 한편으론 창극의 자부심을 느끼는 계기가 됐다. 김준수는 “창극은 어떤 장르도 흡수할 수 있는 매력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정보권은 “내면을 토해내는 창극과 감정의 치우침 없이 모든 동작을 절제하는 경극이 만들어낸 두 전통예술의 시너지 효과가 놀랍다”고 말했다. 두 청년 소리꾼은 창극을 매개로 더 많은 관객과 만나고 싶어 한다. 이들은 “국악, 창극에도 다양한 시도가 있으니 먼저 유튜브에서 공연을 접하다 보면 젊은 세대도 우리 소리에 공감할 것”이라 권했다. 배우로서 개인적 욕심도 덧붙였다. 김준수는 “한국적인 것에 젖어 있었지만 앞으론 현대무용, 힙합 등과 결합한 새로운 장르에 도전해 보고 싶다”고 밝혔다. 정보권은 “뮤지컬처럼 창극에서도 유명 ‘넘버’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