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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선잠을 깨우던 비는 더 매서워졌다. 19일 오전 6시 경남 양산시 통도사. 아직 도시는 일과를 시작하기 전이건만. 경내는 진즉부터 분주하다. 아침 공양을 끝낸 스님들은 오전 일과를 찾아 총총. 객은 멋쩍게 널찍한 방을 차지하고 앉았다. 풍경 소리도 감추는 서늘한 빗줄기. 산안개를 머금은 앞뜰을 노스님과 하염없이 바라봤다. “빗속 운치도 꽤 그럴싸하죠?” 모락모락 차 한 잔이 이만하면 훈기를 되살렸을까. 그제야 성파 스님(80)은 지그시 말문을 열었다. 스님이 통도사 방장(方丈·선원 율원 강원 등을 갖춘 대형 사찰의 가장 큰 어른)에 추대된 건 지난해 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했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셔 불법승(佛法僧)의 삼보(三寶) 사찰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통도사. 그곳 방장의 1년은 분명 달랐을 터. 한데 스님은 “평생 여기서 기거했는데 바뀔 게 무어냐. 내 할 일 할 뿐, 다들 알아서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방장에 오른 뒤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까. “아예 없진 않소. 사부대중(四部大衆) 눈치는 좀 보게 됩디다, 껄껄. 그 나름의 역할이란 게 있으니…. 하지만 기존에 떠오르는 모양대로 살고 싶진 않아요.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느니, 그런 것도 없고. 난 방장을 꿈꾼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물 흐르듯 오다 보니 어느 날 자연스레 온 거죠. 이 자리에서도 뭘 어떻게 하기보단 꾸밈없이, 억지 없이 하는 겁니다.” ―승좌식(방장 취임식)을 안 한 이유도 그래서입니까. 그 비용으로 불우이웃을 도우셨죠. “뭐 대단한 일 했다고…. 방장이 어디 식을 치러야만 방장입니까. 형식에 얽매이면 집착밖에 얻을 게 없어요. 다만 능히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는 게 자제고 실천이니. 구애받지 말자고 했습니다. 특별한 게 아닙니다.” 이 대목은 짚을 필요가 있다. 승좌식은 결코 작은 행사가 아니다. 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방장은 8대 총림만 있는 자리다. 영축총림 통도사는 그중에도 핵심 사찰로 꼽힌다. 게다가 이런 결단은 가풍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5월 통도사 주지로 임명된 현문 스님도 고불식(告佛式)을 거절했다. “어른께서 물리치셨는데, 예의가 아니다”라며 역시 전액 기부했다. ―원래도 조예가 깊던 옻칠, 서화, 도예 등 예술 활동을 꾸준히 하신다 들었습니다. “그게 내 재주고, 전하는 가르침이오. 하던 걸 그대로 하는 거지. 근데 거창하게 예술이라 부를 거 없습니다. 그저 일상이고 생활이에요. 괜히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서민과 괴리감만 생겨요. (손수 옻칠한 바닥을 두어 번 두드리며) 벽에 걸고 감상하는 것만 작품이 아닙니다. 깔고 앉아 살아가는, 이게 다 문화의 향유인 거예요. 짙은 바탕에 사금파리처럼 무늬가 영롱하죠? 난 이걸 우주라 여깁니다. 광대한 우주를 올려다볼 것만 아니라, 등을 대고 누워 보는 거죠.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세상도 예술도 달리 보입니다.” ―요즘 속세는 꽤나 시끄럽습니다. 한일이나 남북 관계도 예사롭지 않고요. “산중에서도 간간이 뉴스를 듣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주위도 잘 살피지 못하는데 어찌 먼 곳을 논하겠습니까. 세상에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둘 처지는 아닙니다. 다만 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격변을 몸으로 겪었던 세대지요. 현 상황에 너무 과잉반응하면 안 됩니다. 잘 살피되 일희일비는 피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더군요.” ―괜한 걱정을 사서 한단 말씀인가요. “당연히 삶에는 최선을 다해야죠. 목표를 갖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과정은 보지 않고 성취에만 욕심을 냅니다. 틈이 없고 여유가 없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똑똑하고 지식도 풍부해요. 그래서인지, 먼저 계산부터 합디다. 이게 성공할지 여부부터 따지는 거예요. 불가에는 ‘문수의 지혜, 보현의 실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실천의 상징이죠. 하지만 둘은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습니다. 이사무애(理事無碍). 이치와 행위는 둘이 아닌 거죠. 머리로만 움직이면 균형을 잃습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 같은 건가요. 알 듯 모를 듯, 더 어지럽습니다. “요즘 부모는 아이의 장래를 미리 계획하고 맞춤 학습을 시킨다더군요. 제 딴엔 영리한 줄 알겠으나, 되레 망칠 수 있습니다. 어른이라고 자기 취향을 금방 찾겠습니까. 굴러가는 대로 부딪히고 모색해 봐야죠. 이것저것 다 시키란 뜻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는 데 한 길만 있으면 누구나 부처가 되게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칠도 하고, 글도 쓰고, 수행도 닦고, 자연스레 맞는 옷을 걸쳐가는 거죠. 내장에 탈이 났는데 다리를 치료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 어리석음을 피할 마음가짐은 뭘까요. “굳이 보탤 건 없겠지만…. 수직과 수평, 기준을 잡아야 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나만 잘났다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이고 우주예요. 남 탓만 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보세요. 동서남북은 어딜 가도 동서남북이지만, 자리가 바뀐 건 바로 자신입니다.” 그새 빗줄기는 더 거세져갔다. 무겁던 엉덩이를 떼고 스님 ‘작업실’이 있는 서운암(瑞雲庵)에 오르기로 했다. 앞서 방을 나서던 스님. 성큼성큼 뒤뜰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으로 가선 턱 하니 운전석에 앉는다. 통도사 방장 어른이 기사도 없이 직접 핸들을 잡다니…. “저보다 더 에너지 넘치고,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라던 현문 스님의 말이 무르팍을 탁 친다. 굵은 빗방울에서 소탈한 흙냄새가 물씬했다.양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깊은 밤 선잠을 깨우던 비는 더 매서워졌다. 19일 오전 6시 경남 양산시 통도사. 아직 도시는 일과를 시작하기 전이건만. 경내는 진즉부터 분주하다. 아침 공양을 끝낸 스님들은 오전 일과를 찾아 총총. 객은 멋쩍게 널찍한 방을 차지하고 앉았다. 풍경 소리도 감추는 서늘한 빗줄기. 산안개를 머금은 앞뜰을 노스님과 하염없이 바라봤다. “빗속 운치도 꽤 그럴싸하죠?” 모락모락 차 한 잔이 이만하면 훈기를 되살렸을까. 그제야 성파 스님(80)은 지긋이 말문을 열었다. 스님이 통도사 방장(方丈·선원 율원 강원 등을 갖춘 대형사찰의 가장 큰 어른)에 추대된 건 지난해 봄.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해 해인사 송광사와 삼보(三寶) 사찰로 꼽히는 통도사. 그곳 방장의 1년은 분명 달랐을 터. 한데 스님은 “평생 여기서 기거했는데 바뀔 게 무어냐. 내 할 일 할 뿐, 다들 알아서 한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럼 방장에 오른 뒤 변한 게 하나도 없습니까. “아예 없진 않소. 사부대중(四部大衆) 눈치는 좀 보게 됩디다, 껄껄. 나름 역할이란 게 있으니…. 하지만 기존에 떠오르는 모양대로 살고 싶진 않아요. 타의 모범이 돼야 한다느니, 그런 것도 없고. 난 방장을 꿈꾼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물 흐르듯 오다보니 어느 날 자연스레 온 거죠. 이 자리에서도 뭘 어떻게 하기보단, 꾸밈없이 억지 없이 하는 겁니다.” -승좌식(방장 취임식)을 안 한 이유도 그래서입니까. 그 비용으로 불우이웃을 도우셨죠. “뭐 대단한 일 했다고…. 방장이 어디 식을 치러야만 방장입니까. 형식에 얽매이면 집착 밖에 얻을 게 없어요. 다만 능히 할 수 있을 때 하지 않는 게 자제고 실천이니. 구애받지 말자고 했습니다. 특별한 게 아닙니다.” 이 대목은 짚을 필요가 있다. 승좌식은 결코 작은 행사가 아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 방장은 8대 총림만 있는 자리다. 영축총림 통도사는 그 중에도 큰 사찰로 꼽힌다. 게다가 이런 결단은 가풍으로 이어질 조짐이다. 5월 통도사 주지로 임명된 현문 스님도 고불식(告佛式)을 거절했다. “어른께서 물리치셨는데, 예의가 아니다”며 역시 전액 기부했다. -원래도 조예가 깊던 옻칠, 서화, 도예 등 예술 활동이 꾸준하시다 들었습니다. “그게 내 재주고, 전하는 가르침이오. 하던 걸 그대로 하는 거지. 근데 거창하게 예술이라 부를 거 없습니다. 그저 일상이고 생활이에요. 괜히 고급스럽게 포장하면 서민과 괴리감만 생겨요. (손수 옻칠한 바닥을 두어 번 두드리며) 벽에 걸고 감상하는 것만 작품이 아닙니다. 깔고 앉아 살아가는, 이게 다 문화의 향유인 거예요. 짙은 바탕에 사금파리처럼 무늬가 영롱하죠? 난 이걸 우주라 여깁니다. 광대한 우주를 올려다볼 것만 아니라, 등을 대고 누워보는 거죠. 마음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세상도 예술도 달리 보입니다.” -요즘 속세는 꽤나 시끄럽습니다. 한일이나 남북 관계도 예사롭지 않고요. “산중에서도 간간히 뉴스를 듣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주위도 잘 살피지 못하는데 어찌 먼 곳을 논하겠습니까. 세상에 이래라 저래라 훈수 둘 처지는 아닙니다. 다만 전 일제강점기, 6·25전쟁 등 격변을 몸으로 겪었던 세대지요. 현 상황에 너무 과잉반응하면 안 됩니다. 잘 살피되 일회일비는 피해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알아서’ 문제가 생기기도 하더군요.” -괜한 걱정을 사서 한단 말씀인가요. “당연히 삶은 최선을 다해야죠. 목표를 갖는 것도 좋습니다. 그런데 과정은 보지 않고 성취에만 욕심을 냅니다. 틈이 없고 여유가 없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을 보면 똑똑하고 지식도 풍부해요. 그래서인지, 먼저 계산부터 합디다. 이게 성공할지 여부부터 따지는 거예요. 불가에는 ‘문수의 지혜, 보현의 실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지혜의 상징이고, 보현보살은 실천의 상징이죠. 하지만 둘은 서로 대척점에 있지 않습니다. 이사무애(理事無碍). 이치와 행위는 둘이 아닌 거죠. 머리로만 움직이면 균형을 잃습니다.” -공즉시색(空卽是色) 같은 건가요. 알 듯 모를 듯, 더 어지럽습니다. “요즘 부모는 아이의 장래를 미리 계획하고 맞춤 학습을 시킨다더군요. 제 딴엔 영리한 줄 알겠으나, 되레 망칠 수 있습니다. 어른이라고 자기 취향을 금방 찾겠습니까. 굴러 가는대로 부딪히고 모색해봐야죠. 이것저것 다 시키란 뜻이 아닙니다. 깨달음을 얻는데 한 길만 있으면 누구나 부처가 되게요.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칠도 하고, 글도 쓰고, 수행도 닦고, 자연스레 맞는 옷을 걸쳐가는 거죠. 내장에 탈이 났는데 다리를 치료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 어리석음을 피할 마음가짐은 뭘까요. “굳이 보탤 건 없겠지만…. 수직과 수평, 기준을 잡아야 합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이 나만 잘났다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서 있는 곳이 세상이고 우주예요. 남 탓만 하지 말고, 스스로를 돌보세요. 동서남북은 어딜 가도 동서남북이지만, 자리가 바뀐 건 바로 자신입니다.” 그새 빗줄기는 더 거세져갔다. 무겁던 엉덩이를 떼고 스님 ‘작업실’이 있는 서운암(瑞雲庵)에 오르기로 했다. 앞서 방을 나서던 스님. 성큼성큼 뒤뜰 소형 SUV로 가선 턱 하니 운전석에 앉는다. 통도사 방장 어른이 기사도 없이 직접 핸들을 잡다니…. “저보다 더 에너지 넘치고, 시대를 앞서가는 분”이라던 현문 스님의 말이 무르팍을 탁 친다. 굵은 빗방울에서 소탈한 흙냄새가 물씬했다. ▼ ‘십육만 도자대장경’ 불심이 이룬 걸작 ▼ “우리 후손에겐 이 서운암의 도자대장경(陶瓷大藏經)도 장경각(藏經閣)도 나라와 불교의 위대한 문화유산으로 남을 겁니다.” 서운암에 오른 성파 스님은 순박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어린아이처럼 뿌듯한 맘을 감추지 못한다고나 할까. 경전 등을 보관하는 건물인 장경각 서까래를 올려다볼 때나, 도자로 만든 경전을 쓰다듬을 때도. 그늘진 실내건만 눈빛이 형형했다. 훗날이 아닌 지금 봐도, 도자대장경은 대단한 걸작이다. 경남 합천군 해인사에 있는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을 일일이 새겨 도자기 판으로 구워냈다. 양면에 경전을 담은 팔만대장경을 도자기 1면씩만 넣다보니 ‘십육만 대장경’이 됐다. 한 판 크기는 가로세로 약 52X26㎝, 무게는 대략 4㎏. 성파 스님이 1991년 이 불사를 일으켜 일일이 확인하며 2000년 마무리했으니 무려 10년이 걸린 역사였다. 도자기 전문가인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도 여러 번 이곳을 찾아 “이 많은 도자를 이리 네모반듯하게 완성한 건 굉장한 기술이다. 불심으로 이룬 위대한 업적”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대장경을 봉안한 장경각을 완공한 건 그 뒤로 또 한참 뒤인 2013년. 모두 합치면 강산이 두 번 바뀌고도 2년이 더 흘렀다. 장경각 역시 허투루 짓지 않았다. 옻칠 전문가인 스님이 건물에 쓰인 모든 목재와 단청까지 옻칠을 했다. 기와 역시 손수 구운 도자 기와다. 웬만해선 엄두도 못 낼 이 큰일을 성파 스님과 통도사는 왜 한 걸까. “우리 불교는 전통적으로 호국불교입니다. 나라를 위해 피땀을 아끼지 않았죠. 팔만대장경은 불심으로 대동단결해 몽골을 물리치자는 의도였지 않습니까. 도자대장경은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만들었습니다. 그 마음이 부처에 닿는 날이 멀지 않았겠지요?” 양산=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그 개는) 안락사를 하는 게 옳을 겁니다.” 이 한마디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는 난리가 났다. 어떻게 강형욱이 이런 말을. 반려동물 가족들은 소위 ‘멘붕’에 빠졌다. 평소 ‘개통령’으로 불려온 강 훈련사. 다름 아닌 그가 살(殺)을 입에 담았기에 더 충격이 컸다. 배경은 이렇다. 최근 경기 용인시에서 폭스테리어가 세 살배기 여아를 무는 참사가 벌어졌다. 폐쇄회로(CC)TV를 보면 거의 ‘사냥하듯’ 달려든다. 게다가 그 개는 비슷한 전력이 여러 차례였다. 그런데도 반려인은 또다시 입마개 없이 외출했다. 강 훈련사는 “(이런 상태라면) 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상처가 될 수 있겠지만,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한 ‘경고성’ 발언으로 이해해 달라”고 설명했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요즘 반려동물 관련 뉴스가 끊이지 않는다. 나쁜 소식만 있진 않지만 개나 고양이를 놓고 옥신각신이 허다하다. 그건 아마 한국도 반려동물 양육인구 1000만 시대를 맞았기 때문이다. 너도나도 반려동물을 키우니 당연히 관심도 폭증한다. 문화 쪽에선 이런 흐름이 벌써부터 도드라졌다. 채널A ‘개밥 주는 남자’ 시리즈를 비롯해 다양한 반려동물 프로그램이 TV에서 인기다. 출판도 만만찮다. 관련 서적이 쏟아진다. 어떤 주는 영원한 강자 자기계발서보다 많다. ‘제2의 개통령’ 설채현 수의사가 쓴 ‘그 개는 정말 좋아서 꼬리를 흔들었을까?’는 지난달 출간해 벌써 3쇄를 찍었다. 최근 ‘노곤하개’ 등 반려동물을 다룬 인기 웹툰도 적지 않다. 뭣보다 SNS 월드는 광풍이 몰아치고 있다. 몇몇 멍멍이, 야옹이가 스타가 된 뒤 숱하게 ‘내 새끼’를 봐달라며 게시물을 올린다. 보통은 사랑하는 자식을 자랑하고픈 거라고 믿고 싶다. 한데 아닌 경우도 심심찮다. 얼마 전 버려진 강아지를 돌보는 척 속이다가 누리꾼의 집중포화를 받고 사죄한 유튜버도 있다. 문제는 상당수가 반려동물과의 생활이 지닌 ‘좋은 면’에 치중한단 점이다. 이해는 간다. 지저분하거나 괴로운 모습을 누가 좋아하겠나. 특히 ‘돈벌이’가 목적인 이들은 더욱 그러할 터. 하지만 말 안 통하는 동물을 키우는 게 그리 쉬울까. 마침 네이버 웹툰 ‘개를 낳았다’가 5일 선보인 56화는 적나라했다. 키울 여건이 되지 않는 반려생활이 동물과 사람 모두에게 얼마나 괴로운 일인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어쩌면 폭스테리어 양육자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족 같은 존재를 죽일 수 없단 심정은 존중한다. 하지만 당신 가족의 좋은 면만 보고 나쁜 점은 등한시한다면, 그건 진정한 가족이 아니다. 기왕 가족이라 하니 인간으로 가정해보자. 법은 폭력사고를 일으키면 사회와 격리한다. 자격 없는 부모에게선 양육권을 뺏기도 한다. 설 수의사는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물지 않는 개는 없다”고. “우리 애는 순해요”란 착각이 가장 위험하단다. 기계가 아닌 생명체인지라 100%란 없으니까. 모든 상황에 대비하고 책임져야 한다. 반려동물을 가족으로 인정받고 싶은가. 그럼 의무부터 다해야 한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부모가 자식을 잘 키울 수 있을까. 정양환 문화부 차장 ray@donga.com}

에이머스 데커. 2m 가까운 거구. 한때는 잘나가는 형사였다. 한데 ‘악마’에게 아내와 딸을 잃은 뒤 추락. 노숙자로 전전하다 끝내 복수에 성공했다. 덕분에 FBI 특수수사팀에 합류. 쉼 없이 범죄와 싸워 왔다. 그런 그가 펜실베이니아주 배런빌이란 소도시에 온 건 나름 휴가였다. 갈 곳 없던 데커를 동료인 알렉스 재미슨이 언니네로 데려갔다. 여전히 쉴 줄 모르고 머리엔 일 생각만 가득하던 그때. 아니나 다를까. 바로 옆집에서 의문의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그리고 그건, 처음도 끝도 아니었다. ‘폴른…’은 2016년 국내에 선보인 소설 ‘모든 것을 기억하는 남자’ 시리즈 4편이다. 변호사 출신인 저자가 만든 ‘풍운아’ 데커가 중심인물. 이 시리즈는 3권까지 세계에서 약 1억3000만 부가 판매됐다. 국내에선 10만 권 이상 나갔다. 이 작품의 매력은 뭐니 뭐니 해도 주인공 데커다. 프로미식축구 선수였으나 첫 게임에서 머리를 다치며 은퇴한 불운한 사내. 그 대신 한 번만 보면 모든 걸 기억하는 ‘과잉기억증후군’이란 선물(?)을 얻는다. 물론 이건 극악한 형벌이기도 하다. 범죄수사엔 너무나 쓸모 많은 재능이지만, 가족 살해현장이 24시간 사진처럼 눈앞에 떠오르니까. “데커는 누가 자신의 가족을 앗아갔는지 알아냈고, 살인자는 결국 대가를 치렀다. 하지만 이는 데커가 치렀던 대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숨을 내쉬는 마지막 순간까지 치러야 할 대가.” 데커는 외양이나 재능은 다 가진 듯 보이지만, 실은 구멍이 숭숭 뚫린 심장을 가진 이다. 아마도 저자는 이 독특한 주인공에게서 현대사회를 비춰 보려는 게 아닐까. 물질도 정보도 풍요롭지만, 공허하기 짝이 없는. 게다가 ‘폴른…’의 배경인 배런빌을 포함해 이 시리즈엔 미국의 퇴락한 도시들이 자주 등장한다. 영화(榮華)의 잔상은 그대로 남았으되 속에선 대책 없이 곪아가는 세상. 시리즈 책 표지처럼 ‘푸른 어둠’만이 하염없이 깔려 있다. 행여나 과한 의미 부여가 오해를 불러일으키진 말자. 이 책은 재밌다.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도 “발다치 소설 가운데 최고”라고 했단다. 솔직히 그 양반 의견에 100% 동의하진 않지만, 쫄깃쫄깃한 건 틀림없다. 주인공한테 휴가조차 배려하지 않는 저자는 독자에게도 눈 돌릴 틈을 주지 않는다. 게다가 데커를 슈퍼히어로로 만들어준, 모든 걸 기억하는 능력이 이번 작품에서 새로운 양상을 마주한다. 물론 우리는 안다. 이 시리즈가 여기서 끝일 리 없다. 어차피 데커는 또다시 범죄를 해결하겠지. 한데 언제는 그걸 몰라서 범죄소설을 읽었나. 갈수록 무더워지는 여름, 이만큼 빠져드는 작품을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다만 혹시 모르니, 문단속은 잘한 뒤 읽으시길. 범인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올봄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본 관객이라면 이런 생각을 했음직하다. “이제 마블은 어디로 가는 걸까?” 작품이 맘에 들었건 아니건, 엔드게임은 제목처럼 한 시대를 종언했다. 하지만 이게 끝일 리가 있나. 새로운 캐릭터, 새로운 에피소드가 또 등장할 터. 그런 시점에서 그래픽노블 ‘시빌 워Ⅱ’는 또 다른 서사시의 출발을 가늠해볼 좋은 스포일러가 돼줄지도 모르겠다. 실은 전작 ‘시빌 워’(2009년 국내 출간)는 마블에겐 너무나 고마운 존재였다. 슈퍼맨 배트맨이 포진한 DC코믹스에 비해, 다소 ‘사이즈’가 작다는 세간의 평가를 한방에 뒤집어줬다. 2016년 영화 ‘캡틴 아메리카: 시빌 워’는 개인적 은원과 감정에 초점을 맞췄지만 원작 만화는 훨씬 크고 심오한 주제를 버무려냈다. ‘아이언맨 vs 캡틴 아메리카’ 대립 구도를 통해 집단 혹은 국가의 이익(안보)과 개인의 자유 가운데 무엇이 더 중요한가라는 쉽지 않은 질문을 던졌다. ‘시빌 워Ⅱ’는 또 다른 난제를 갖고 돌아왔다.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면, 범죄를 예방해 다수의 안전을 지킬 수 있지 않을까. 반대로 그게 가능하다 해도,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죄를 묻는 게 정의일까. 이번엔 아이언맨과 캡틴 마블이 중심이 돼 대립각을 세운다. 그리고 또 한번 내전으로 피를 흘린다. 솔직히 말하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전작의 충격은 기대하기 어렵다. 더 많은 희생과 더 많은 반전이 있는데도 그렇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 작품을 읽지 않고는 마블 세계관의 향배를 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또한 아쉽다곤 했지만 ‘형만 한 아우 없다’는 뜻이지 졸작이란 얘긴 아니다. 엔드게임은 의외로 ‘슬펐다’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 원래 그런 것 아니겠나. 하지만 우리는 안다. 1세대가 떠났다고, 디즈니나 마블이 그리 호락호락 물러설까. ‘시빌 워Ⅱ’는 또 다른 시작일 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글자 한 자 떼기가 참으로 조심스럽다. 300쪽도 되지 않는 이 얇은 책은 손 위에서 자꾸만 부풀어 오른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어쭙잖은 깜냥에 누가 되진 않을까. 돌덩이가 켜켜이 쌓여간다. 그래도… 그간 그 무게를 비켜난 채 살아왔기에. 지금이라도 귀를 열고 문장을 곱씹는다. 이 책은 알지 못하는, 어쩌면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에 대한 기록이다. 2014년 대기업에서 일하다 목숨을 끊은 김동준 군. 2017년 생수공장에서 사고로 숨진 이민호 군. 그리고 또 수많은 청소년의 죽음. 그들은 특성화고나 마이스터고 등을 다니다 ‘현장실습생’이란 이름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린 건 장시간 노동과 차별, 게다가 폭력까지. 주 원인이 사고였든 자살이든, 결국 사회가 빚은 그늘에 갇혀서 삶을 멈춰버렸다. 세상의 잔인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들을 ‘예외’로 치부한다. 감추고 외면하고 회피한다. 오히려 상처를 후벼 판다. 다른 아픔을 양산할지 모를 시스템도 여전히 돌아간다. 심지어 아이를 가슴에 묻은 부모를 가족이나 친구조차 보듬지 못한다. 그 굴레는 반복을 넘어 더 거세지고 인정 없다. 그리고 그걸 이 땅은 ‘현실’이라 부른다.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일상적인 폭력 안에 놓여 있어요. 일상적인 폭력이 수많은 종류로 뻗어 있어서 온갖 죽음으로 발현되고 외로움으로 발현돼요. 우리가 얼마나 무뎌져 있는지조차도 모르는 거예요. 이게 이 사건의 본질 중 하나예요.” 물론 이 책은 절망만을 되풀이하지 않는다. 남겨진 이들과 또 다른 ‘아이들’의 헌신과 용기를 보며 내일을 꿈꾼다. 그 미래를 잃어버린 아이들의 희생을 헛되이 하지 말자며…. ‘겸손한 목격자’를 자처하는 저자는 2년 넘게 취재와 집필에 공들였다고 한다. 이런 인터뷰 정리가 여간 까다롭지 않는데, 소문으로 들어 갖고 있던 기대보다 훨씬 대단한 필력을 지녔다. 그건 분명 고뇌와 진심의 산물이리라. 문득 책을 덮고 나니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겉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아마 김동준 군의 유품인 듯한 노트 한 권. 거기엔 ‘Be Happy’란 글자가 큼지막하다. 제발, 그러길. 그곳에선 행복해라.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간만에 통쾌한 ‘무협지’를 만났다. 검객은 한자와 나오키. 은행원이다. 거품경제시대 끝자락에 대형 은행에 입사. 세상이 내 맘대로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조직 생활이 그런가. 이젠 고만고만한 중간간부.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한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자 상사들은 모든 책임을 그에게 돌린다. 그냥 고분고분히 따라야 하나. 인생이 걸린 문제. 그럴 순 없다. 한자와는 오랫동안 벼려왔던 칼을 뽑는다. 물론 소설에 진짜로 칼이나 초식이 등장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웬만한 무협 세계보다 더 박진감이 넘친다. 주제는 한자와의 한마디에 다 녹아 있다. “상대가 선의를 가지고 호의를 보인다면 성심성의껏 대응해. 하지만 당하면 갚아주는 게 내 방식이야. … 열 배로 갚아줄 거야. 그리고 짓눌러버릴 거야. 다시는 기어오르지 못하도록.” 그게 상사건, 가진 자건, 악당이건. 칼은 춤추고, 꽃잎은 우수수. 그래서 더욱 이 소설은 무협지다. 한국이나 일본이나, 일개 회사원이 그렇게 하고 싶은 말 다 할 수 있는 조직이 얼마나 되겠나. 아마 현지에서 원작소설은 물론 드라마까지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던 이유도 그게 아닐까. 현실엔 존재하지 않는 슈퍼 히어로지만, 누구나 망토 두르고 하늘을 날고 싶은 맘. 21세기도 한참 지났지만 여전히 이 작품은 우리네 현실에 비추면 SF(공상과학)에 가깝다. 거창한 문학성은 없을지 몰라도, 흡입력 하나만큼은 만렙(최고 레벨)이다. 대형 은행에서 일했던 전문성을 살려, 일반인에겐 낯선 금융계의 속살을 흥미롭게 들춰낸 점도 매력적이다. 일본 문학은 노벨 문학상도 질투 나지만, 이런 다양성이야말로 진짜 힘이 아닐까. 조만간 나온다는 3, 4권이 기다려진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요즘 극적인 스포츠 경기나 희한한 사건을 마주하면 꽤나 쓰는 말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였으면 막장이라고 욕먹었겠다.” 너무 의외라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인식 범위를 벗어나면 현실감이 떨어진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이들도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리라. 이게 진짜 실제로 벌어진 일일까. 일단 ‘전쟁 말고…’의 뼈대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개천에서 용 난 성공 신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빈민가에서 태어난 사내.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굳은 신념으로 역경을 뚫고 대박을 터뜨린다. 지금 당장 서점에 달려가도 닮은꼴 수백 권은 찾을 만큼 뻔한 스토리다. 하지만 발라냈던 살을 다시 붙여 가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주인공 목타르 알칸샬리는 예멘계 미국인이다. 이슬람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하류층에서 자랐다. 예멘에 가면 미국인이라서, 미국에선 아랍인이라고 눈총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공부는 뒷전인 문제아였지만 타고난 재능은 있어 어디에 내놔도 제 밥벌이를 하긴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유레카’를 외칠 일이 생긴다. 커피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한다. 커피의 발상지가 예멘인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커피는 와인만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단 것도. 하지만 ‘모카’의 기원일 정도인 예멘은 오랜 전쟁을 치르며 세계 커피 시장에서 미미한 존재가 된 지 오래. 게다가 여전히 그곳의 치안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결론적으로 그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긴 했다. 목타르가 어렵사리 미국 수입에 성공한 ‘하이마 농장산 커피’는 “천사의 노래”란 극찬을 받으며 2017년 커피 평가지 역사상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커피는 최근 한국에서도 화제인 블루보틀에서 한 잔에 16달러(약 1만9000원)에 내놓았다. 그런데도 없어서 못 판단다. 그런데 좀 기분이 께적지근하다. 이 ‘위대한’ 인물에 경의를 표할 맘은 좀처럼 들질 않는다. 목타르가 성공을 위해서만 한 몸을 바친 게 아니란 건 안다. 천대받는 예멘 커피를 세계에 알리려 했던 사명감도 이해한다. 근데 그게 수류탄을 들고 현지 고리대금업자와 담판을 지어야 할 정도로 꼭 필요한 일이었을까. 게다가 꽤 여러 번 요행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가족과 친구는 그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를 뻔했다. 특히 애들에겐 전혀 들려주고 싶은 영웅담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기상천외한 모험이 드러낸 세상의 속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손쉽게 마시는 커피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스며 있는지 괜스레 경건해질 정도다. 또 미국이건 중동이건, 종교 인종 빈부 갈등 아래 신음하는 많은 이들의 희생을 소스라치게 일깨운다. 아마도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 역시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다시 한번 되짚어 보자. 이건 훌륭한 농장에서 커피를 수입해 걸맞은 가격으로 팔아 성공한 이의 이야기다. 이토록 간명한 사업이 왜 자칫하면 목숨을 잃고 수많은 감시와 검사를 받아야 할 일이 돼 버린 것일까. 어쩌면 목타르는 커피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미국으로 가져온 게 아닐는지. 불공평과 비도덕이 관행과 현실로 포장되는 세상을. 설탕과 우유로 아무리 가린들, 커피는 원래 쓰고 시큼하다. 우리가 오랫동안 길들여졌을 뿐.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요즘 극적인 스포츠경기나 희한한 사건을 마주하면 꽤나 쓰는 말이 있다. “영화나 드라마였으면 막장이라고 욕먹었겠다.” 너무 의외라 장삼이사(張三李四)의 인식 범위를 벗어나면 현실감이 떨어진다. 아마 이 책을 읽는 이들도 비슷한 체험을 하게 되리라. 이게 진짜 실제로 벌어진 일일까. 일단 ‘전쟁 말고…’의 뼈대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개천에 용 난 성공신화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빈민가에서 태어난 사내. 가진 건 쥐뿔도 없지만 굳은 신념으로 역경을 뚫고 대박을 터트린다. 지금 당장 서점에 달려가도 닮은 꼴 수백 권은 찾을 만큼, 뻔한 스토리다. 하지만 발라냈던 살을 다시 붙여 가면 분위기는 180도 달라진다. 주인공 목타르 알칸샬리는 예멘 계 미국인이다. 이슬람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미국 하류층에서 자랐다. 예멘에 가면 미국인이라서, 미국에선 아랍인이라고 눈총을 받는다. 어릴 때부터 공부는 뒷전인 문제아였지만, 타고난 재능은 있어 어디에 내놔도 제 밥벌이를 하긴 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유레카’를 외칠 일이 생긴다. 커피에 인생을 걸기로 결심한다. 커피의 발상지가 예멘인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리고 좋은 커피는 와인만큼 비싼 값을 받을 수 있단 것도. 하지만 ‘모카’의 기원일 정도인 예멘은 오랜 전쟁을 치르며 세계 커피 시장에서 미미한 존재가 된 지 오래. 게다가 여전히 그곳의 치안은 불안하기 그지없다. 결론적으로 그는 대단한 성공을 거두긴 했다. 목타르가 어렵사리 미국 수입에 성공한 ‘하이마 농장산 커피’는 “천사의 노래”란 극찬을 받으며 2017년 커피 평가지 역사상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 이 커피는 최근 한국에서도 화제인 블루보틀에서 1잔에 16달러(약 1만9000원)에 내놓았다. 그런데도 없어서 못 판단다. 그런데 좀 기분이 께적지근하다. 이 ‘위대한’ 인물에 경의를 표할 맘은 좀처럼 들질 않는다. 목타르가 성공을 위해서만 한 몸을 바친 게 아니란 건 안다. 천대받는 예멘 커피를 세계에 알리려 했던 사명감도 이해한다. 근데 그게 수류탄을 들고 현지 고리대금업자와 단판을 지어야 할 정도로 꼭 필요한 일이었을까. 게다가 꽤 여러 번 요행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가족과 친구는 그가 어디서 죽었는지도 모를 뻔했다. 특히 애들에겐 전혀 들려주고 싶은 영웅담이 아니다. 하지만 그의 기상천외한 모험이 드러낸 세상의 속살은 결코 가볍지 않다. 우리가 손쉽게 마시는 커피에 얼마나 많은 땀과 눈물이 스며 있는지 괜스레 경건해질 정도다. 또한 미국이건 중동이건, 종교 인종 빈부 갈등 아래 신음하는 많은 이들의 희생을 소스라치게 일깨운다. 아마도 소설가이자 사회운동가인 저자 역시 개인의 성공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을 게다. 다시 한번 되짚어보자. 이건 훌륭한 농장에서 커피를 수입해 걸맞은 가격으로 팔아 성공한 이의 이야기다. 이토록 간명한 사업이 왜 자칫하면 목숨을 잃고 수많은 감시와 검사를 받아야 할 일이 돼버린 것일까. 어쩌면 목타르는 커피가 아니라 ‘삶의 진실’을 미국으로 가져온 게 아닐는지. 불공평과 비도덕이 관행과 현실로 포장되는 세상을. 설탕과 우유로 아무리 가린들, 커피는 원래 쓰고 시큼하다. 우리가 오랫동안 길들여졌을 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5년이 지난 뒤에는 첫발을 디뎠던 곳과 겉보기에 매우 다른 어딘가에 도착했다. 길을 잃었을 때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그 끝이 어디든, 당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갔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미국인은 ‘돌+아이’다. 비하할 맘은 없지만 일반적이진 않다. 세계를 방랑하던 소설가로서 북한에 흥미를 느낄 수야 있다. 근데 시기가 2016년이었다. 그해 1월, 오토 웜비어(1994∼2017)가 억류된 그때 말이다. 그런데 평양으로 1개월 어학연수를 간다고? 친동생이면 머리끄덩이 잡고 다리몽둥이를…. 어쨌건 그는 갔다. “집착은 사람을 이상한 길로 돌아가게 만들고 그렇게 돌아간 길은 한 사람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짓기도 한다”는 저자 말마따나, 이 비정상적인 관심은 세상 누구도 하기 힘든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다. 실은 2012년부터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꽤 친숙한 편이긴 했지만, 관광과 체류는 또 다르니까. 익숙하다고 어색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쨌든 저자는 평양에서 ‘외계인’이다. 시내를 걸어가면 모두가 쳐다보지만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 하지 말란 것도, 가면 안 되는 곳도 많다. 수업 때 한글 발음을 익히려고 동영상을 찍었는데, 뒤쪽에 걸린 김정일 초상화가 일부 잘렸다는 이유로 삭제 요구를 받는 나라. 저자가 자책하자 함께 수업 듣던 외국인 동료는 이렇게 대꾸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항상 이걸 기억해요. 그들이 이상한 겁니다. 우린 아니에요.” 바로 이 지점이, 어쩌면 ‘시-유 어게인…’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리라. 저자는 뭔가를 고발하거나 혹은 옹호하려고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정치나 도덕이란 잣대를 들이밀려고 평양에 가지 않았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거기에 어떤 ‘사람들’이 사는가가 보고 싶어서다. 서로 너무나 다른, 심지어 상대가 ‘적국(敵國)’이기까지 한 그는 어디까지 소통할 수 있을까. 판문점에서 만난 한 젊은 병사는 말한다. “미국인도 사람은 사람이네요.” 딱 그대로 저자는 그 말을 돌려주고 싶은 게다. 물론 이 책은 한계도 자명하다. 웬만한 자유국가도 겨우 한 달로 무슨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그런데 어딜 가든 감시원(또는 안내원)이 달라붙는 체제 아래서 뭐 대단한 속내를 파헤칠 수 있겠나. 심지어 저자가 만난 대다수는 ‘평양 시민’이다. 북한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 본 셈인데, 아무래도 편향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허점이 이 책의 매력을 깡그리 없애진 못한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이었다 해도, 본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떤 공감과 이해가 벌어질지 누구도 모르는 거 아닌가. 실제로도 이 책이 들려주는 체험은 의외로 놀라운 구석이 많다. 게다가 다녀온 뒤로 짐작되지만, 저자는 아주 열심히 한반도의 정세와 역사를 공부했다. 그 노력은 동의 여부를 떠나서 함부로 폄하할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평양은 “매일 아침 온통 안개로 뒤덮인다”. “마치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어 마법의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그 도시는 언제쯤이면 햇살이 비치며 환하게 실체를 드러내려나. 아니면 더 짙은 연무와 어둠 속으로 윤곽조차 감춰버릴까. 저자도 우리도 답은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곳엔 사람이 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5년이 지난 뒤에는 첫발을 디뎠던 곳과 겉보기에 매우 다른 어딘가에 도착했다. 길을 잃었을 때의 묘미가 여기에 있다. 그 끝이 어디든, 당신이 가고자 했던 길을 갔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 미국인은 ‘돌+아이’다. 비하할 맘은 없지만 일반적이진 않다. 세계를 방랑하던 소설가로서 북한에 흥미를 느낄 수야 있다. 근데 시기가 2016년이었다. 그해 1월, 오토 웜비어(1994~2017)가 억류된 그 때 말이다. 그런데 평양으로 1개월 어학연수를 간다고? 친동생이면 머리끄덩이 잡고 다리몽둥이를…. 어쨌건 그는 갔다. “집착은 사람을 이상한 길로 돌아가게 만들고 그렇게 돌아간 길은 한 사람의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결정짓기도 한다”는 저자 말마따나, 이 비정상적인 관심은 세상 누구도 하기 힘든 독특한 경험을 선사했다. 실은 2012년부터 북한을 여러 차례 방문해 꽤 친숙한 편이긴 했지만, 관광과 체류는 또 다르니까. 나름 익숙하다고 어색하지 않은 건 아니다. 어쨌든 저자는 평양에서 ‘외계인’이다. 시내를 걸어가면 모두가 쳐다보지만 누구도 말을 걸지 않는다. 하지 말란 것도, 가면 안 되는 곳도 많다. 수업 때 한글 발음을 익히려 동영상을 찍었는데, 뒤쪽에 걸린 김정일 초상화가 일부 잘렸다는 이유로 삭제 요구를 받는 나라. 저자가 자책하자 함께 수업 듣던 외국인 동료는 이렇게 대꾸한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항상 이걸 기억해요. 그들이 이상한 겁니다. 우린 아니에요.” 바로 이 지점이, 어쩌면 ‘시-유 어게인…’이 지닌 가장 큰 미덕이리라. 저자는 뭔가를 고발하거나 혹은 옹호하려 이 책을 쓴 게 아니다. 정치나 도덕이란 잣대를 들이밀려고 평양에 가지 않았다. 누가 옳고 그르냐가 아니라, 거기에는 어떤 ‘사람들’이 사는가를 보고 싶어서다. 서로 너무나 다른, 심지어 상대가 “적국(敵國)”이기까지 한 그는 어디까지 소통할 수 있을까. 판문점에서 만난 한 젊은 병사는 말한다. “미국인도 사람은 사람이네요.” 딱 그대로 저자는 그 말을 돌려주고 싶은 게다. 물론 이 책은 한계도 자명하다. 웬만한 자유국가도 겨우 한달로 무슨 평가를 내리긴 어렵다. 그런데 어딜 가든 감시원(또는 안내원)이 달라붙는 체제 아래서 뭐 대단한 속내를 파헤칠 수 있겠나. 심지어 저자가 만난 대다수는 ‘평양 시민’이다. 북한에서도 선택받은 이들만 본 셈인데, 아무래도 편향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허점이 이 책의 매력을 깡그리 없애진 못한다. 형식적이고 가식적이었다 해도, 본질은 ‘사람과 사람’이 만났기 때문이다. 어디서 어떤 공감과 이해가 벌어질지 누구도 모르는 거 아닌가. 실제로도 이 책이 들려주는 체험은 의외로 놀라운 구석이 많다. 게다가 다녀온 뒤로 짐작되지만, 저자는 아주 열심히 한반도의 정세와 역사를 공부했다. 그 노력은 동의 여부를 떠나서 함부로 폄하할 수 없다. 저자에 따르면 평양은 “매일 아침 온통 안개로 뒤덮인다.” “마치 다시 꿈속으로 빠져들어 마법의 세상에 들어온” 것처럼. 그 도시는 언젠가 햇살이 비치며 환하게 실체를 드러내려나. 아니면 더 짙은 연무와 어둠 속으로 윤곽조차 감춰버릴까. 저자도 우리도 답은 모르지만, 하나는 확실하다. 그곳엔 사람이 산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깃털 도둑이라…. 게다가 실화라니. 깃털같이 하찮은 것을 훔쳐서 대체 어디다 쓴다는 걸까?” 그간 ‘옮긴이의 말’을 옮긴 적은 없었다. 한데 이번만큼은 예외로 해야겠다. 이 책을 마주한 느낌을 너무 적확하게 표현했기에. 도대체 이게 뭔지. 왜 굳이 책으로 쓴 건지 가늠이 안 갔다. ‘깃털 도둑’이 다루는 전모도 별거 없다. 2009년 영국 자연사박물관에서 새 표본 299점이 사라졌다. 1년 넘게 지난 뒤 잡힌 범인은 런던왕립음악원 학생인 에드윈 리스트. 절도 행각을 벌인 이유는 어이가 없다. 플라이낚시 끝자락에 매다는 깃털을 갖고 싶어서였다. 여기까지 보면 술자리에서 안줏거리나 될 만한 ‘황당 에피소드’ 수준일 터. 실제로도 리스트는 당시 19세 청년의 치기와 정신미약을 근거로 집행유예 12개월을 선고받았다. 그리고 모든 게 일단락. 하지만 저자는 이 짤막한 사건에서 뭔가 불편한 냄새를 맡는다. 훔친 새 표본은 어떻게 됐나. 집행유예란 판결은 적절했나. 그리고 뭣보다, 왜 그는 박물관 유리창까지 깨고 들어가 새를 훔쳤을까. 무려 5년 동안 미국과 유럽을 돌며 취재한 내용은 더 충격적이다. 스포일러일 테니 자세히 말하긴 그렇다. 다만 순진무구한 어린애 장난으로 여길 건 아니다. 실은 플라이 타이어(fly tier·플라이낚시 제조자)의 세계는 생각보다 저변이 넓다. 이 때문에 희귀한 깃털은 예상보다 큰 ‘돈’과 ‘명성’을 안겨준다. 그리고 밀렵과 밀매라는 짙은 그림자도 드리워져 있다. 그럼 깃털 탐욕은 일부 ‘덕후’만 해당될까. 실은 18∼19세기엔 훨씬 심했다. 중요한 패션 소재였으니. 화려한 모자 등을 꾸미려 수없이 많은 새들을 죽였다. 결국 여성들이 스스로 동물보호를 천명하며 잦아들긴 했지만, ‘취향’을 위해 동물을 마구잡이로 해친 건 틀림없다. “이 이야기 속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은) 수세기에 걸쳐 새들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들에게 새들은 마땅히 지켜야 하는 것이었다. 인류의 미래에 도움이 될 거라는 신념과 과학은 계속 발전할 것이므로… 또 다른 쪽에는 에드윈 리스트가 속하는, 깃털을 둘러싼 지하세상이 있었다. 거기에서는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지려는 탐욕과 욕망에 사로잡혀 더 많은 부와 더 높은 지위를 탐하며, 몇 세기 동안 하늘과 숲을 약탈해온 수많은 사람이 있었다.” 이 책은 지금까지 읽은 어느 범죄 논픽션보다 독특하다. 상대적으로 소소한 소재를 가지고 엄청난 통찰력을 발휘했다. 게다가 난민 시민운동가 출신인 저자가 전문도 아닌 분야를 파헤친 열정은 감탄밖에 나오지 않는다. 하나 더. 이건 깃털과 서양만의 문제가 아니다.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코끼리 상아나 코뿔소 뿔, 호랑이 눈썹…. 우리도 그리 떳떳하진 않다. 인류가 지구상에서 이기적이고 잔인했던 게 어제오늘 일이겠느냐만. 이 죗값을 어떻게 치를지. 괜히 더 울적하고 미안하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모든 중생이 공경하고 정성으로 받드나니 깨달음을 이루는 일 부처님만 아시리라. 나도 이제 대승법을 이 세상에 널리 펼쳐 괴로운 중생을 구제하고 해탈시키리라.’ ―‘법화경’에서 》 12일은 불기 2563년 부처님오신날. 탄신일을 며칠 앞둔 8일 오전, 서울 은평구 진관사는 하늘에도 땅에도 꽃이 피었다. 부처님은 언제나 중생에게 길을 알려주려 하셨다. “절망하지 말고 우울해하지 말라. 모든 고통에는 빠져나갈 문이 있다. 네 마음속에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가 있다.” 멀리 스님 곁에서 아기 불상의 염화미소가 중생을 다독인다.글=정양환 기자 ray@donga.com · 사진=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하루에 한 번씩만 해운정사(海雲精寺) 도량을 밟고 가도 발복(發福·운이 틔어 복을 받다)한다.”(고 손석우) 부산 해운대구에 있는 해운정사는 1971년 장수산에 터를 잡은 뒤 현재 6만6000여㎡(약 2만 평)에 이르는 대가람을 이뤘다. ‘육관도사’라 불렸던 풍수지리의 대가 손석우(1928∼1998)가 극찬한 이곳은 불교계 최고 어른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대한불교조계종 종정 진제 스님이 ‘간화선 대중화’의 원력으로 중생을 제도하고 법제자를 양성하기 위해 창건했다.세계 명상의 중심 허브로 발돋움 해운정사는 풍수에 조예가 없더라도 한눈에 알아볼 만큼 근사하다. 태백산맥에서 이어진 장수산은 거대한 코끼리 형상을 하고 있고, 해운대에서 바라보는 앞모습은 새끼를 품은 암사자 형상이다. 앞으로 망망대해까지 펼쳐져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해운대 10대 관광명소로 지정돼 1년 내내 유명인사를 포함해 내외국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다. 가히 부산경남 지역의 대표적 사찰이라 할 수 있는 해운정사는 3개의 선원을 갖춘 것으로 유명하다. 스님 20여 명이 끊임없이 정진하는 금모선언이 ‘상(上)선원’, 재가불자들이 여름과 겨울 안거기간에 3개월씩 정진하는 ‘하(下)선원’, 그리고 매주 토요일 일반인들이 철야 정진하는 ‘시민선원’이 있다. 많으면 1000명 이상의 대중이 함께 참선하는 국내 최고의 도량이다. 해운정사가 품고 있는 보물도 눈여겨봐야 한다. 부산광역시 시문화재자료 제78호로 지정된 ‘해운정사 선문 염송집’ 30권 10책과 제79호인 해운정사 현수제승법수 11권 1책이 있다. 부산시 유형문화재 제149호인 해운정사 전법게(傳法偈) 3종 6점 등도 귀중한 문화재다. 아울러 천수천안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 법당과 부처님 진신사리 33과를 모신 ‘관음보궁’, 1만 옥불 지장보살을 모신 ‘대불전’, 주요 조사 스님 10명을 석상으로 모신 ‘불조심인전’도 인상적이다. 매월 음력 초하루와 18일(지장재일)에 열리는 정기법회 때는 종정인 진제 스님이 직접 법문을 내려준다. 선지식의 고준한 법문은 일반 시민에게도 정신적으로 소중한 밑거름이 된다. 매월 음력 24일인 관음재일에는 남해 성담사로 가서 방생을 하고 법문을 듣는 방생법회를 봉행한다. 해운정사 측은 “최근 방탄소년단 열풍처럼 세계에서 한류에 대한 관심이 크다. 그와 더불어 서구에선 명상 붐도 일고 있다”며 “한국의 대표적인 참선도량인 해운정사는 장차 국제명상참선센터를 건립해 세계 명상의 중심 허브로 발돋움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간화선을 통해 극락정토와 세계평화에 이바지 한반도에서 불교는 1700년 동안 한국 정신문화의 근간을 이뤄왔다. 특히 간화선(看話禪·화두를 들고 수행하는 참선법)은 한국에서 오롯이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인류정신문화유산의 정수다. 진제 스님이 이끄는 ‘사단법인 대한불교조계종 진제선세계화회(진제선회)’는 부처님의 심인법(心印法)을 잇고 간화선 정신과 수행법을 한국은 물론 세계 곳곳에 널리 보급하고 있다. 누구나 일상생활에서 각자의 심성을 계발하는 참선수행을 행함으로써 화목하고 평화로운 극락정토를 구현해 인류 행복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려는 취지로 설립했다. 진제선회는 자비보살도를 실천하는 사업도 적극적이다. 빈곤과 질병, 자연재해로 고통받는 국내외 이웃을 위한 인도적 구호와 지원 활동을 벌인다. 2013년 필리핀 태풍피해 이주민, 2014년엔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해 성금을 기탁했다. 초등학생 이하 3자녀 이상을 둔 가정 100가구를 선정해 해마다 100만 원씩 10년 동안 장학금 10억 원을 지급했다. 이 밖에도 남북평화통일 사업과 청소년 장학사업 등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진제선회에 가입을 원하는 이들은 해운정사 종무소로 문의할 수 있다. 가입 회원들에게 진제 스님이 친필로 쓴 선심(禪心) 액자를 선물로 증정한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역사가 시작되면서 ‘과거’는 있는 그대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중요한 자산이자 권력의 도구로 이용되어 왔다. … 역사가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이 거창한 머리말에 떨지 말자. 이 책은 에드워드 카(1892∼1982)의 ‘역사란 무엇인가’가 아니다. 꽤나 긴 제목이 엔간히 말해준다. 그래, 방바닥에 드러누워 배 두드리며 봐도 아무 문제 없다. 그렇다고 한때 유행했던 ‘오락물’에 가까운 흥미 위주 역사서냐면 고건 또 아니다. 물론 저자는 지난해 전작 ‘역사는 재미난 이야기라고 믿는 사람들을 위한 역사책’에 이어 “재미난 옛날이야기”를 들려줄 뿐이라 겸양한다. 하지만 군산대 사학과 교수인 그의 글엔 ‘뭔가’ 있다. 편안한 웃음 뒤춤에 잘 벼린 칼이 숨겨져 있다고나 할까. 자, 일단 이 근거 없는 음모론을 이어가련다. ‘역사를…’은 역사 속 유명인 7명을 다룬다. 골리앗과 싸운 다윗, 로마 황제 네로, 아메리카를 발견한 콜럼버스 등 대체로 그리 낯설지 않다. 그런데 ‘실제’ 그들은 세상에 흔히 알려진 것과 다르다고 쓰윽 포석을 깐다. 오호라. 감춰진 얘기를 까발리는 일만큼 신나는 게 어디 있겠나. 이를테면, 네로는 정말 폭군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이런 오명은 억울한 면이 많다. 그가 핏줄도 정적이면 잔인하게 죽인 건 맞다. 한데 ‘왕좌의 게임’에서 그건 특별한 사례가 아니다. 오히려 네로는 평민이 사랑했던 황제였다. 사후에도 대중에 영합해 그의 후예를 자처한 정치인이 나올 정도였다. 문제는 네로가 ‘가진 자’에게 적이었단 점이다. 귀족은 세금 부담과 (자신들에게 유리한) 전통의 붕괴를 두려워했다. 당연히 그들이 주도한 역사서가 네로에게 우호적일 리 없었다. 게다가 영화로도 유명한 19세기 소설 ‘쿠오바디스’가 최악의 폭군으로 묘사한 게 결정적으로 머리에 박혀버렸다. 저자가 ‘선택한’ 여타 인물도 마찬가지다. 현재 찬사를 받든 비난을 받든 다 뒤집어 생각해볼 여지가 많다. 그런데 공통점이 있다. 그게 남성이건 주류이건 강대국이건, ‘힘’을 지닌 세력에 따라 역사는 일그러진다. 하나 더. 이 굴곡은 남 일이기만 할까. 책 행간엔 너무나 많은 거울이 숨어 있다. 어떤 문장은 21세기 대한민국에 너무 맞춤이라 눈이 동그래진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를…’은 재미가 우선이다. 크기도 앙증맞고 띠지 같은 꾸밈도 없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겨울밤 구들방에서 들려주신 할머니의 옛얘기엔 곱씹을 통찰과 교훈이 배어있다. 그런 뜻에서 엉뚱하지만, 저자가 전작에서 쓴 한 글귀를 인용한다. “재미난 이야기의 기준은 무엇일까? … 삶에 대해 조금이라도 생각해볼 수 있는 ‘영양가’가 있어야 한다. … 우리의 인식 구조에 자리 잡고 있는 허위의식을 밝혀주는 이야기가 재밌을 때가 많다.” 국내 ‘역사’ 요리사가 차린 서양식 별미를 흐뭇하게 즐겨보시길.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아이라고 감정이 단순하진 않다. 어른만큼 말로 구분해서 표현하지 못할 뿐이다. 용기 슬픔 분노 행복 질투 외로움 부끄러움 흥분 두려움…. 알고 보면 다 자연스러운 감정인 것을. 하루에도 여러 번씩 바뀌는 감정. 그게 바로 나 자신이다. 이 그림책은 형식 자체가 주는 메시지도 크다. 표지부터 마지막 직전까지 뻥 뚫려 있다. 그 속엔 작고 어린 ‘내’가 있다. 어떤 감정이 밀려와도 “내가 느끼는 감정이 곧 나 자신”이란 뜻.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이가 타인도 귀하게 여길 수 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이 유고집은 천국에서 온 편지일까. 저자가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4년. 수많은 독자가 사랑했던 그의 글을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는 건 분명 슬프다. 그런데 미공개 산문 7편을 포함한 에세이집이 다시 찾아오다니. 팬들에겐 축복이자 선물일 터. 의사이자 과학자였던 저자를 새로이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홀로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북미 대륙을 횡단한 20대부터 시력을 잃어가면서도 ‘종이 책’에 대한 사랑을 접지 못한 말년까지. 그의 글은 여전히 종이 책이 전하는 질감만큼 온기가 넘친다. 하지만 100% 만족스럽느냐고 묻는다면 다소 망설여진다. 다 따로 썼던 걸 ‘짜깁기’했단 점을 감안해도, 너무 천차만별이다. 특히 발표하지 않았던 작품은, 이유나 사정이 있었을 텐데 싶기도 하다. 저자는 “뼛속까지 독자였다”고 자신할 만큼 책의 물성(物性)을 사랑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 종합선물세트는 누군가에겐 ‘소소(so so)한’ 러키 박스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어쩌랴. 물어도 준치요 썩어도 생치다. “82년 전 나를 이 세상에 데려다 주었듯이, 조만간 나를 이 세상에서 데려갈 테니” 같은 문장들을 발견하는 것만으로도, 책을 집어들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올리버 색스는 올리버 색스니까. 모든 게 그 자리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지구는 돌아가고 삶은 이어진다. RIP.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2017년 ‘5·18문학상’ 동화 부문 신인상을 수상한 저자의 첫 작품집. 표제작을 포함해 다섯 편의 동화를 실었다. 저자는 특수학급 교사로서 겪은 경험을 잘 녹여냈는데,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아이의 시선에서 산뜻하게 풀었다. 책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장애를 지녔지만, 조금 불편할 뿐 결코 남과 다르지 않다. 밝고 적극적이며 매력적이다. 삐뚤어진 잣대를 갖다대는 건 어른과 그에 영향을 받은 다른 아이들이 아닐는지. 함께 실린 개구쟁이 같은 그림이 글맛을 더욱 살려준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제왕이 돌아왔다. ‘아키라’ ‘공각기동대’와 함께 1980, 90년대 일본 3대 SF만화로 꼽히던 ‘총몽’이 무삭제 버전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90년대 초반 팬들은 ‘사이버펑크(cyberpunk) 장르의 걸작’이라 불리던 이 만화를 불법 해적판으로 접하기도 했다. 요즘엔 올해 2월 국내 개봉한 미국 할리우드 영화 ‘알리타: 배틀 엔젤’ 원작으로 유명하다. 작품은 지금 봐도 신선하다. 선택받은 자들만 사는 공중도시와 무법천지인 지상사회. 인간의 뇌를 가졌으나 온몸이 기계인 사이보그. 기억을 상실했지만 극강의 무술을 지닌 여주인공. 쉼 없이 활극이 펼쳐지면서도 인간의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잃지 않는 서사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왜 미국 할리우드가 21세기에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들었는지 수긍이 간다. 물론 90년대 작품인지라 ‘촌스러운’ 면도 있다. 그림체는 컴퓨터그래픽을 동반한 요즘 작품만큼 깔끔하지 않다. 흐름이 매끄럽지 않고 엉성한 대목도 눈에 띈다. 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반갑다. 공장에서 찍어내지 않고, 장인이 공들인 ‘핸드메이드’의 매력이 물씬하다. 이번에 출간한 버전은 원래 9권이었던 작품을 지난해 일본에서 새롭게 5권으로 엮은 완전판. 1, 2권이 먼저 나왔고 여름까지 나머지를 순서대로 선보인다. 출판사는 “완전 판 다음엔 또 다른 시리즈인 ‘총몽 외전’과 ‘총몽 라스트 오더’ 그리고 지금도 현지에서 연재하는 ‘총몽 화성전기’도 출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정양환 기자 ray@donga.com}

“지금 한국사회는 세대와 계층, 이념 간의 갈등과 분열로 인해 나라를 견인하고 미래로 끌어가야 할 에너지를 소진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를 다시 회복시키고 일어나게 하는 원천인 부활 신앙이 어느 때보다 사회 전 영역에 필요합니다.” 오정현 사랑의교회 담임목사는 부활절을 앞두고 가진 17일 인터뷰에서 “적지 않는 사람들이 상처입고 고통 받는 현실”을 줄곧 걱정했다. 오 목사는 “갈등 에너지를 민족과 사회를 위한 건강한 에너지로 바꾸려면, 한국교회가 십자가를 지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올해 부활절을 맞아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기독교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신앙의 본질입니다. 모든 인생은 살다가 결국은 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희망과 소망과 회복의 보증이 되셨습니다. 부활 신앙 위에 있는 기독교 안에서는 우리가 호흡하고 있는 한 언제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사회를 향한 부활절의 메시지가 아닐까요.” ― 한국사회에 만연한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우리는 현재 갈등해소 비용이 너무 많아요.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1인당 GDP의 27%를 사회적 갈등 관리 비용으로 쓴다고 합니다. 물론 갈등은 지금만의 문제가 아니지만, 교회가 지금 폭발하는 사회적 갈등 해결의 선두에 서야 하는 이유는 ‘통일 시대’를 앞뒀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갈등은 통일 이후의 갈등에 비하면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할지 모릅니다. 교회가 해결의 물꼬를 트지 못하면 통일시대의 갈등을 어찌 감당할 수 있을까요.” ― 통일 시대, 사랑의교회가 지닌 비전은… “피 흘림 없이 복음적 평화통일입니다. 통일은 더 이상 탁상공론이 아닙니다. 실체입니다. 2003년 서울 사랑의교회로 부임해 제가 맡은 역할 중 하나가 ‘복음적 평화통일’입니다. 한국교회는 애국·애족하는 교회였습니다. 정치나 경제가 아니라,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강력한 보호하심으로 지켜졌다고 믿습니다. 통일 시대를 여는 저와 사랑의교회의 꿈은 평양과 신의주, 개성에서 모두가 민족을 위한 푸른 꿈을 안고 세계를 위해서 일하는 것입니다.” ― 지금 한국사회가 당면한 가장 시급한 사회 문제는 뭐라고 보십니까. “저출산 문제라고 봅니다. 이는 한국교회가 앞장서야 할 긴급한 사명 가운데 하나입니다. 단순히 아이를 많이 낳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를 향한 올바른 교육을 위해 물꼬를 열어줘야 합니다. 모세혈관처럼 뻗어 있는 한국교회가 아이들을 안심하고 키울 수 있는 장이 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사랑의교회는 이를 위해 구체적 실천 방안을 세우고 있습니다. 미세먼지도 심각합니다. 이 문제에 교회가 앞장서야 하는 이유는 빈부의 문제를 심화시키기 때문입니다. 가진 자는 여러 방식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폐해를 고스란히 입을 수밖에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 고통받는 사람을 도울 책무가 있는 교회는 마땅히 미세먼지를 해결하는 일의 중심에 서야 할 것입니다.” ― 목회 사역의 힘은 어디에서 나오십니까. “목회자의 힘의 원천은 위로부터 임하는 성령의 능력입니다. 이 은혜가 없으면 목회를 힘 있게 할 수 없습니다. 그 다음으로 성도들의 사랑과 신뢰입니다. 교인들의 절대적인 신뢰 없이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습니다. 2003년 사랑의교회에 부임해 16년 사역한 뒤, 올해 3월 재신임 성격의 투표에서 성도들이 96.42%의 신뢰를 보여줬습니다. 제 사역의 힘은 오롯이 성도들의 사랑과 절대적인 신뢰에서 비롯합니다.” ― 사랑의교회는 한국교회와 함께 사회와 민족을 위해 어떤 일을 할지 기대됩니다. “사랑의교회의 시대적 소명은 우리 교회만 잘하는 게 아니라 한국교회와 함께 민족을 섬기는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지난해 ‘생명비상 사명비상 은사비상’이란 목표를 가졌는데, 이제는 ‘생명나눔 사명나눔 은사나눔’으로 국가와 지역사회를 섬길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세워진 교회는 하나이며, 서로의 연약함을 채우고 도와야 할 책무가 있습니다. 사랑의교회와 한국교회는 주님 안에서 하나입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