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임수

정임수 부장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구독 39

추천

안녕하세요. 정임수 부장입니다.

imsoo@donga.com

취재분야

2026-05-08~2026-06-07
칼럼100%
  • [횡설수설/정임수]‘코리안 미러클’ 새벽배송

    조선시대 한양 양반들이 즐겨 먹던 음식 중 효종갱(曉鍾羹)이라고 있다. 글자 그대로 새벽종이 칠 때 먹던 국이다. 조선 후기 문인 최영년이 쓴 ‘해동죽지’를 보면, 남한산성 사람들이 배추 콩나물 송이 소갈비 전복 해삼 등을 밤새 푹 끓여 새벽녘 통금해제를 알리는 종이 울리면 도성 안 양반집에 내다 팔았다 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배달 해장국인 셈이니, 우리 배달·배송 문화의 시작은 빨라도 너무 빨랐다. ▷택배와 배달대행업이 성행하면서 동네 맛집 음식부터 잔심부름까지 배달되지 않는 게 없다. 인터넷에서 ‘배달의 민족’을 검색하면 우리 겨레를 이르는 말보다 배달 앱(애플리케이션)이 먼저 뜬다. 온라인 마켓에서는 당일배송, 정기배송에 이어 새벽배송 경쟁이 치열하다. 밤 11시까지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 7시 전에 집 앞에 갖다 준다. 잠들기 전 고른 메뉴가 아침 식탁에 오르는 시대가 된 것이다. ▷새벽배송은 4년 전 마켓컬리가 ‘신선식품 샛별배송’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문을 열었다. 당시 택배는 2∼3일, 빠른 배송도 최소 하루가 걸릴 때였다. 공산품도 아닌 신선식품을 전날 밤 주문받아 몇 시간 만에 배송하는 서비스를 내놓자 업계 사람들은 미친 짓이라 했지만 소비자들은 호응했다. 유통업 배송 전쟁을 촉발시킨 쿠팡은 물론이고 신세계 롯데마트 현대백화점 같은 유통 공룡들까지 새벽배송에 뛰어들어 맞벌이 부부와 1, 2인 가구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꿔놓고 있다. ▷2015년 100억 원에 불과했던 새벽배송 시장 규모는 지난해 4000억 원을 넘었고 올해 800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고 한다. 갓 만든 반찬, 산지에서 직송된 제철 식재료, 아이들 장난감, 학용품 등 새벽배송 쇼핑 품목도 다양해지고 있다. 한국의 새벽배송 서비스는 세계 유일무이한 성공 사례로 혁신적 물류 시스템과 정보기술(IT), 빅데이터 기술들이 결합된 ‘코리안 미러클’이라 할 만하다. ▷하지만 찬사를 받는 만큼 그림자도 있는 법. 택배 기사들은 대개 자기 차량으로 회사와 계약한 개인사업자인데, 과열되는 새벽배송 경쟁으로 살인적 노동 강도에 시달리고 있다. 신선식품 신선도를 위해 사용되는 스티로폼, 보랭팩 등 일회용 포장재의 과도한 사용도 골칫거리다. 해외에선 자율주행차·로봇·드론 배송 등 배송 수단의 혁신이 화두인데 우리는 속도전에만 치중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저임금 노동을 앞세워 배달천국이 된 중국도 이미 드론 배송을 시작했다. 한국의 아침 풍경을 바꾼 새벽배송이 이런 논란들을 극복하고 어떻게 진화할지 지켜볼 일이다.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子正과 0시, 12시

    “자정이 훨씬 넘었네. 도대체 잠은 안 오네.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닭이 울고 말았네.” 1980년 가수 이장희가 부른 노래에서처럼, 자정(子正)은 흔히 하루를 마감하는 시간으로 여겨진다. 세월이 지나 래퍼 버벌진트도 “분명히 귀가시간은 자정이 훨씬 지난 후였지”라고 읊조렸다. 이런 통념을 반영하듯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자정을 “자시(子時)의 한가운데. 밤 열두 시를 이른다”고 풀이한다. ▷한데 끝은 곧 시작이기도 하다. 자정을 ‘밤 12시’가 아니라 하루의 시작점인 ‘0시’라고 표현하는 사전들도 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펴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시간을 가리키는 말에 오정(午正) 자정(子正)이 있는데 오정은 낮 12시, 자정은 0시 정각이다”라고 한다. 이쯤 되면 헷갈리는 사람들이 생긴다. 선생님이 과제를 ‘25일 자정’까지 제출하라고 했다면 24일에서 25일로 넘어가는 밤 12시(또는 0시)까지 내야 하는지, 25일에서 26일로 넘어가기 직전까지만 내면 되는 것인지. ▷일상적 용례로 보면 하루를 끝맺음한 후자가 맞는 것 같지만, 원칙적으로 25일 자정은 24일이 끝나고 25일을 시작하는 ‘25일 0시’가 정답이다. 이는 ‘24일 밤 12시’와도 같은 뜻이다. 이 같은 혼동이 없도록 언론 매체에서는 자정이라는 표현을 극히 삼간다. 어제 자 신문들이 25일부터 음주운전 단속기준과 처벌이 강화된다고 보도했는데, ‘25일 0시부터’라고 쓴 기사나 ‘24일 밤 12시부터’라고 한 곳이나 다들 맞다. 또는 ‘25일 자정부터’라고 해도 맞다. ▷하루를 밤과 낮 12시간씩 24시간으로, 1년을 12개월로 나눈 것은 고대 이집트인들이 황도 12개 별자리 움직임을 따른 데서 유래한다. 동양 문화권에서도 하루를 ‘자축인묘… 술해’로 12등분하고 이를 다시 초(初), 정(正)으로 세분화해 자정(0시) 축초(1시) 축정(2시) 인초(3시)… 해정(22시) 자초(23시)로 24등분했다. 예부터 자정을 저문 날의 마지막이 아니라 새날의 첫 시간으로 삼은 것이다. ▷해가 뜨는 아침이 아니라 깜깜한 자정을 하루의 시작으로 본 것은 음양(陰陽) 사상에 따라 밤이 가장 깊었을 때 아침의 기운이 시작된다고 봤기 때문이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신관들이 하루를 시작하는 정화의식을 치를 때 새벽을 시작으로 삼았다. 반면 정통파 유대인들은 해가 진 오후 6시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금요일 이 시간부터 안식일에 들어간다. 하루의 시작 설정은 종교, 문화적 믿음에서 비롯된 것이니, 결국 우리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6-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바다가 미래다

    조선 태종실록 1431년에는 섬진강 하구에서 굴을, 여수 여자만에서 꼬막을 처음 양식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따지면 우리 수산양식 역사는 거의 600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굴, 꼬막에 이어 오래된 양식 품종은 김이다. 인조 때인 1640년 김여익이 광양만을 떠내려 온 참나무에 김이 붙어 자라는 것을 보고 양식법을 개발했다. 수산 강국인 일본의 김 양식 보다 30년 이상 앞서는 것이다. ▷1970년대까지 수산업은 수출의 10%를 차지하는 주력 수출산업이자 국민들에게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는 효자 식품산업이었다. 하지만 이런 바다의 풍요로움이 퇴색된 지 오래다. 명태가 자취를 감추고 오징어가 금(金)징어가 되면서 10년 전 128만 t이던 연근해 어획량은 최근 100만 t으로 줄었다. 지난해 수산물 수출이 사상 최대(23억8000만 달러)였다지만 세계 경쟁력은 오히려 뒷걸음질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 통계상 수산물 수출 6위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21위로 밀렸다. ▷바다에서 다시 희망이 싹트고 있다. 2015년부터 새끼 명태를 양식해 동해에 방류하는 ‘명태 살리기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는데, 올봄 잡힌 명태 일부가 이렇게 방류된 것이었다. 새끼 오징어가 뭘 먹는지 몰라 양식이 불가능했던 갑오징어도 최근 양식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참치(참다랑어) 양식에 투자하는 50억 원 펀드도 처음 만들어졌다. 일본이 세계 양식 참치의 절반(연 1만5000t)을 생산하는데, 이를 따라잡을 발판을 마련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의 기술력을 활용한 바다의 ‘스마트화’에 거는 기대가 높다. 경남 하동군 중평항 인근의 숭어 양식장에는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한 첨단 스마트양식 플랫폼이 처음 도입됐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기술을 활용한 무인선(無人船)인 자율운항선박은 내년 개발에 들어간다. 수산업을 비롯해 해운 항만 해양관광 등에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잘 접목하면 블루오션이 될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오늘까지 사흘 일정으로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열리는 국내 최대 해양수산·양식·식품 수출박람회 ‘2019 Sea Farm Show’에도 이런 희망과 기대가 엿보였다. ‘바다가 미래다’를 주제로 동아일보와 채널A, 해양수산부가 마련한 박람회에는 해양수산 분야 창업을 꿈꾸는 청년들을 비롯해 신기술을 개발한 스타트업들이 참가했다. 해외 10개국에서 온 바이어 48명은 우리 수산물에 뜨거운 러브콜을 보냈다. 이런 동력들이 결집되면 우리 바다에서 혁신성장도, 새 일자리 창출도 가능해질 것이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6-2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 슬로벌라이제이션

    1994년 11월 17일 김영삼 대통령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직후 호주 시드니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정목표를 ‘세계화’에 두겠다고 선언했다. 세계화에 대한 개념조차 생소해 “국제화를 세게 하면 세계화가 된다”는 말이 나오던 때였다. 한국뿐 아니라 냉전이 종결된 1990년 이후 세계는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세계화) 물결이 거셌다. 미 하버드대 경제학자 시어도어 레빗 교수가 1983년 처음 사용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은 경제를 넘어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전반의 패러다임 변화를 이끌었다. ▷그런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세계화의 동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 이는 통계지표로도 고스란히 나타난다. 국경을 넘나드는 재화·서비스 교역량은 2008년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61%에서 지난해 58%로 줄었다. 국가 간 은행대출도 2006년 60%에서 지난해 36%로 급감했다. 금융위기 무렵부터 지난해까지 무역·투자·인력 교류 등 12개 세계화 연관지표 중 8개에서 세계화 수준이 후퇴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세계화 둔화 현상을 ‘슬로벌라이제이션(Slowbalization)’이라고 명명했다. 느린(slow)과 글로벌라이제이션의 합성어다. ▷미국을 필두로 자국 우선주의와 통상 마찰이 확산되면서 세계 경제 질서에 균열이 생긴 결과다. 연초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이 ‘세계화 4.0’을 화두로 던진 것도 같은 이유다. 보호무역주의에 맞서 새로운 글로벌 협력 체제를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슬로벌라이제이션에 따라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다자주의 채널이 힘을 잃고 있고 자유무역협정(FTA) 등 양자협력도 보호무역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미국이 이끄는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에 맞서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등이 설립되는 등 국제기구 분화 움직임도 뚜렷하다. ▷슬로벌라이제이션 시대에 대한 전문가 진단은 비관적이다. 달러화를 중심으로 구축된 국제금융 시장이 균열되는 과정에서 또 다른 위기가 생길 수 있고 저숙련 노동자의 실직, 난민 갈등 같은 세계화가 낳은 문제도 해결이 어렵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대외 환경에 크게 의존하는 국가일수록 불리하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최근 슬로벌라이제이션을 연급하며 “무역 의존도가 높고 내수 기반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신흥국 경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했다. 슬로벌라이제이션이 본격화되기 전에 ‘중진국 함정’에 빠진 우리 경제를 도약시킬 해법을 서둘러 찾아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6-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월가 女風

    몇 년 전 세계경제를 움직이는 최고 권력인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과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독일 총리 자리를 여성이 차지하자 우머노믹스(여성이 주도하는 경제) 시대가 열렸다고 떠들썩했다. 그 무렵 뉴욕 월가의 상징인 황소상 앞에는 ‘두려움 없는 소녀상(Fearless Girl)’이 등장했다. 127cm의 키에 허리춤에 두 손을 얹고 고개를 치켜든 소녀의 당당한 모습은 백인 남성이 지배하는 월가의 성불평등을 고발하기 위함이었다. 2017년 3월 세워진 소녀상은 한 달만 전시되고 사라질 운명이었지만 폭발적 인기를 얻으면서 지금도 월가를 지키고 있다. ▷작은 소녀상이 이끌어낸 성과일까. 지난해 5월 뉴욕증권거래소가 226년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 최고경영자(CEO)를 배출한 것을 시작으로 남성 중심적이던 월가에 변화가 일고 있다. 최근 미 최대 은행 JP모건은 역대 최대 규모로 여성 고위급 간부를 승진시켰다. 소비자대출 담당 CEO와 최고재무책임자(CFO)도 여성이 맡았다. 이 두 여성 리더 중 1명이 2005년부터 JP모건 수장을 맡아 ‘월가 황제’로 군림하는 제이미 다이먼 회장의 뒤를 이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미 은행권 최초의 여성 수장이 된다. ▷한국 금융계도 우먼파워가 세지고 있다. 작년 말 박정림 KB증권 사장이 증권업계 최초의 여성 CEO가 된 데 이어 은행권에서도 여성 임원이 잇따라 배출됐다. 여성 특유의 꼼꼼함과 신중함이 빛을 발하는 리스크관리와 자산관리 분야에서 여성 리더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외환위기 전만 해도 금융회사 여직원은 결혼하면 퇴사하는 게 당연시됐지만 2000년대 들어 팀장 부장을 다는 여성이 많아졌고 2013년엔 권선주 전 기업은행장이 첫 여성 은행장에 올랐다. 모두 높고 단단한 유리천장을 깬 이들이다. ▷한국은 미국보다 앞서 여성 은행장, 여성 대통령까지 낸 나라지만 사회 전반적으로 여풍을 말하기엔 여전히 민망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매년 조사하는 ‘유리천장지수’에서 한국은 올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9개 회원국 중 꼴찌였다. 남녀 임금격차가 크고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52.9%에 그친 데다 여성 관리자(12.5%), 여성 임원 비율(2.3%)이 낮은 탓이다. 육아휴직을 하고 자녀를 돌보는 ‘라테파파’가 넘쳐나는 스웨덴이 1위고 미국은 20위다. 세계 금융위기를 촉발한 ‘리먼 브러더스’가 ‘리먼 시스터스’였다면 조화와 균형이 좀 더 강조돼 큰 위기로 번지지 않았을 거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여성 리더들이 바꿔갈 금융의 미래가 궁금하다.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4-2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스파이 ‘비자전쟁’

    중국의 우주개발은 1955년 미국에서 활동하던 첸쉐썬 박사가 귀국하면서 시작됐다. 중국 최초의 원자탄, 수소폭탄 실험에 이어 첫 인공인성, 첫 유인우주선 발사 성공 뒤엔 늘 그가 있었다. 2009년 첸의 장례식은 공산당 중앙위원회 차원에서 국보급 예우로 거행됐다. 하지만 ‘중국 우주개발의 대부’로 추앙받는 첸 박사를 미국에선 자국 군사기술을 탈취해간 ‘중국 스파이의 원조’라고 본다. 캘리포니아공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2차 세계대전 때 미 국방과학위원회에서 미사일 개발에 참여했던 첸이 미 최초의 대륙간탄도미사일 기밀을 중국으로 빼돌렸다는 것이다. ▷옛 소련 붕괴 이후 스파이 세계에서 중국이 미국의 제1 공적(公敵)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미 국가방첩관실(ONCIX)은 2011년 연방수사국(FBI), 중앙정보국(CIA) 등 14개 정보기관의 견해를 취합해 “중국 산업스파이들이 미국의 경제 정보와 기술을 훔쳐 국익에 심각한 손해를 끼치고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의회에 전달했다. 미 정부가 중국 산업스파이를 노골적으로 지목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2017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베이징을 방문했을 때는 중국이 ‘우정의 핀’을 선물했지만 도·감청을 우려한 미국 대표단은 아무도 달지 않았다. ▷중국의 스파이 행위를 우려하는 트럼프 정부의 경계심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중국 최대 정보기술(IT) 기업 화웨이의 통신장비가 스파이 행위에 활용될 수 있다며 사용금지령을 내린 데 이어 최근 중국인 학자들의 미국 입국을 막기 위한 ‘방첩(防諜) 작전’까지 펼치고 있다. FBI가 중국 정보기관과 연계된 것으로 의심되는 사회과학 분야 교수, 연구원 등 30여 명의 미국 비자를 취소하거나 취소 검토 대상에 올린 것이다. 이에 맞서 중국 정부도 지난달 미국 싱크탱크 학자들의 중국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배서하다’ ‘보증하다’ 등의 뜻을 가진 라틴어 ‘vise’가 어원인 비자(visa)는 1차 세계대전 때 군사 스파이의 입국을 막기 위해 제도화됐지만 비자 면제 협정을 체결하는 나라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미중은 1년 넘게 무역전쟁을 치르면서 신(新)냉전시대 버전의 ‘비자전쟁’에 돌입한 양상이다. 게다가 최근 독일 영국 등 동맹국들이 ‘화웨이 보이콧’을 거부하자 미국은 플랜B 모색에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이 “4주 내에 무역전쟁이 결판난다”고 했지만 지금 분위기로는 잘해야 어설픈 봉합에 그칠 공산이 커 보인다. 언제 끝날지 모를 초강대국의 패권 다툼 속에서 우리에게 피해가 돌아오지 않도록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4-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건설업자 → 건설사업자

    남한 면적의 1%를 늘린 서산간척사업은 한국 건설사(史)의 거대한 도전이었다. 1984년 천수만 물살이 너무 빨라 공사에 진척이 없자 현대건설은 대형 유조선을 가라앉히는 방법으로 물길을 막아 방조제 연결에 성공했다. 공사 기간을 3년이나 단축시킨 이 공법은 ‘정주영 공법’으로 이름 붙여져 뉴욕타임스 등 외신에 소개됐다. 이때 “이봐, 해봤어?”라는 어록을 남긴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건설은 창조’라는 말을 자주 썼다. 1970, 80년대 경부고속도로 건설, 중동 신화로 상징되는 건설사를 돌이켜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한국 경제 고도성장의 초석이 된 건설업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가 큰 것도 사실이다. 창조, 혁신보다는 마구 밀어붙이는 불도저나 삽질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잖다. 건설 현장의 근로자를 속칭 ‘노가다’라고 폄하해 부른 지 오래고, 최근엔 ‘토건족’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한강의 기적’을 위해 이뤄진 숱한 공사와 수주 과정에서 불법, 비리, 혼탁 행위 등이 부지기수로 빚어진 결과다. 그래서일까. 건설업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법정 용어도 ‘건설업자’였다. 업자는 표준국어대사전에서 “업자와 결탁해 공금을 빼돌리다”는 예시를 제시할 정도로 부정적 뉘앙스가 짙다. ▷그런데 최근 건설업자라는 법정 용어를 ‘건설사업자’로 바꾸는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1958년 건설업법 제정 때부터 건설업자 명칭이 쓰인 지 61년 만의 변화다. 건설업 종사자를 비하하는 업자라는 말을 바꿔달라고 업계가 힘쓴 결과다. ‘사’자 하나 붙었을 뿐인데 업계에선 “건설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일깨워줬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건설업 이미지를 개선하는 차원에서 지난해 8월엔 건설기술자를 건설기술인으로 바꾸는 법 개정도 이뤄졌다. ▷하지만 업자에서 사업자로 격상된 종사자들과 달리 한국 건설업의 글로벌 위상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최근 공개된 ‘건설산업 글로벌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 순위는 재작년 6위에서 지난해 12위로 급락했다. 10위 밖으로 밀려난 건 평가를 시작한 2011년 이후 처음이다. 밖에선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의 공세에 밀리고, 안에선 정부의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 건설·부동산 규제 강화가 이어진 탓이다. 국가 중추 산업인 건설업의 경쟁력 추락을 정부는 그냥 두고 봐서는 안 된다. 건설사업자들도 권력자의 스폰서로 이름을 올리는 구태 이미지를 완전히 벗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발맞춘 신산업으로 도약할 길을 모색해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4-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손님 갑질과 워커밸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세계적 호텔 체인 리츠칼턴의 창업자이자 근대 호텔의 아버지로 불리는 세자르 리츠가 가장 먼저 썼다. 그가 1898년 파리에 베르사유 궁전을 본뜬 리츠호텔을 처음 열었을 때 진짜 왕족이나 귀족이 주 고객이었다. 리츠는 ‘평민이라도 왕처럼 돈을 쓰는 손님은 왕처럼 모신다’는 당시로선 파격적인 서비스 정신을 담아 이 말을 만들었고, 이후 오랜 세월 골목식당부터 대기업까지 ‘고객 만족 경영’의 모토로 삼았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선 이 말이 변질되고 지나쳐 정말 손님이 왕 노릇을 하려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돈 몇 푼 냈다고 서비스 종사자들에게 갑질을 하는 ‘진상 손님’들이다. 지난해 11월 울산의 패스트푸드 매장에서 중년 남성 손님이 주문한 음식을 봉투째 20대 여성 직원 얼굴에 집어던지는 영상이 퍼져 공분을 샀다. 서울 패스트푸드 매장, 경기 용인의 백화점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 반말 욕설은 물론이고 폭행 협박 성희롱을 일삼는 ‘소비자 갑질’이 고질적인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다. ▷그래서 최근 등장한 것이 근로자와 손님 사이의 균형을 찾자는 ‘워커밸’이다. ‘worker-customer balance’의 줄임말로,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저서 ‘트렌드 코리아 2019’에 처음 등장했다.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이 직장인의 저녁 있는 삶을 추구했다면 워커밸은 서비스직 종사자들의 감정노동 보호를 내세운다. 고객을 위해 자기감정을 관리해야 하는 감정노동자는 국내에 740만 명, 전체 임금근로자의 30%를 웃돈다. 이들은 1983년 감정노동의 개념을 처음 만든 미국 사회학자 앨리 혹실드가 표현한 대로, 지금도 “감정을 파는 대신 죽음을 사고 있다”. ▷다행히 아주 조금씩 변화가 일고 있다. 백화점 곳곳에 ‘직원을 존중해 주세요’라는 안내문이 걸렸고 ‘남의 집 귀한 자식’이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는 식당도 등장했다. ‘반말로 주문하심 반말로 주문받음’이라고 써 붙인 커피숍도 화제다. 하지만 한 아르바이트 포털의 설문조사 결과, 80%가 워커밸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도 실제 현장에 정착될 것이라는 응답은 18%에 불과했다. 결국 감정노동자 보호법이나 기업 매뉴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소비자들의 인식 변화다. 갑질하는 사회라고 분노하는 나도 뒤돌아서면 언제든 알바생에게 갑질하는 고객이 될 수 있다. ‘손놈’이 아닌 손님으로 대접받고 싶다면 상대 직원을 먼저 존중하는 매너 있는 소비자가 돼야 한다.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4-0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폭스 품은 디즈니

    한국 영화의 ‘천만 관객’처럼 할리우드에선 ‘수익 10억 달러’를 흥행 대박의 척도로 삼는다. 10억을 넘어 20억 달러를 돌파한 초대박 영화는 단 4편, 이 중 20세기폭스의 ‘아바타’와 ‘타이타닉’이 1, 2위다. 메릴린 먼로의 전속 회사로 이름을 알린 20세기폭스는 경영난을 겪다가 1985년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에게 인수돼 메이저 영화사로 거듭났다. 21세기 들어 머독은 영화사 이름을 바꿔야 하나 고민한 끝에 영화·방송 사업을 총괄하는 모(母)회사의 이름만 21세기폭스라고 붙였다. ▷이제 20세기폭스는 머독의 미디어 제국을 떠나 미키마우스로 출발한 96년 역사의 월트디즈니 품에 안겼다. 월트디즈니는 21세기폭스의 영화·방송 부문을 710억 달러(약 80조 원)에 인수하는 메가딜을 20일 완료했다. 영화 팬들은 디즈니의 마블 시리즈 영화 ‘어벤저스’에 폭스가 만든 ‘엑스맨’ ‘데드풀’이 등장할 날을 기대하고 있다. 데드풀의 주연배우 라이언 레이놀즈는 “첫 출근을 하는 기분”이라며 미키마우스 모자를 쓴 데드풀 인증샷을 올리기도 했다. ▷미국 6대 메이저 영화사 중 유일하게 비(非)유대인이 설립한 디즈니는 몇 년 새 공격적인 경영으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콘텐츠 왕국을 이뤘다. ‘토이스토리’의 픽사스튜디오, ‘스타워즈’ 시리즈의 루커스필름, 스파이더맨 아이언맨 등 슈퍼히어로 군단을 거느린 마블코믹스를 잇달아 사들인 것이다. 모두 유대인 밥 아이거 회장이 2005년 디즈니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뒤 진행된 인수합병(M&A)이다. ▷이번 M&A는 디즈니가 세계 최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와 정면승부를 벌이겠다는 뜻이 담겼다. 이미 넷플릭스에 자사 콘텐츠 공급을 중단한 디즈니는 폭스 인수로 미국 3위 OTT 훌루의 최대 주주가 됐고, 연내 새로운 OTT ‘디즈니플러스’도 선보인다. 넷플릭스의 세계 가입자가 1억5000만 명인데, 디즈니플러스가 1억6000만 명을 확보할 것이라는 분석이 월가에서 나왔다. 넷플릭스도 최근 “우린 기술기업이 아닌 디즈니 같은 미디어기업”이라며 맞불을 놨다. 승자를 예측하기 힘들 만큼 치열한 글로벌 공룡들의 콘텐츠 플랫폼 전쟁이 불붙었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3-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빼앗긴 ‘첫 5G’ 타이틀

    국내에 휴대전화가 처음 개통된 건 서울 올림픽 직전인 1988년 7월 1일이다. 무게가 요즘 신형 폰의 5배가량 되는 771g으로 ‘벽돌폰’이라 불린 첫 휴대전화는 아날로그 방식이었고, 단말기 가격에 개통비까지 더하면 승용차 한 대 값(약 500만 원)과 맞먹었다. 그 후 벽돌폰은 스마트폰으로, 이동통신 기술은 5G(5세대)까지 진화했다. ▷5G 시대의 개막은 현 4G(LTE)보다 통신망 속도가 20배 빨라진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5G는 인간의 오감보다도 빠른 0.001초의 반응 속도로 자율주행차, 가전기기, 공장 설비, 원격 의료로봇 등 세상의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연결한다는 점에서 3G, 4G가 바꿔놓은 세상과 차원을 달리한다. 4G가 손 안의 인터넷 시대를 열었다면 5G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대동맥이 된다. 세상을 바꾸고 산업 지형을 뒤흔들 5G의 경제적 가치는 2035년 12조300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니 5G 주도권을 놓고 패권 다툼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중국 화웨이의 5G 장비 보안 문제를 두고 미국과 중국이 극한 대결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12월 세계 첫 5G 주파수 송출에 성공한 데 이어 3월에 5G 상용화 시대를 열겠다고 공언해왔다. 문재인 대통령도 “3월 5G 서비스를 세계 최초로 시작한다. 디지털시대 선두주자가 됐다”고 했다. 하지만 상용화 목표가 최근 다음 달로 미뤄졌다. 5G 전용 스마트폰 출시도, 요금제 결정도 늦어지고 있어서다. 정부는 사실상 가격 인하를 압박하며 이동통신사의 5G 요금제 인가 신청을 반려했다. ▷그러는 새 미국 최대 통신사 버라이즌이 다음 달 11일 5G 상용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세계 최초 타이틀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평가도 있지만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역량을 확인하고 세계 시장과 기술표준을 선점하는 효과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버라이즌이 2개 도시에서만 서비스를 시작하고 모토롤라의 LTE용 스마트폰에 별도 모듈을 달아야 하는 반쪽짜리 5G폰을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이제 우리가 주력해야 할 것은 최초 타이틀을 넘어 완벽한 5G 서비스를 개통하는 일이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3-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SNS 먹통

    14일 오전 1시쯤부터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와츠앱 등 주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접속이 아예 안 되거나 일부 기능이 제한됐다. 한국뿐 아니라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적으로 발생한 먹통 사고였다. 전날 구글의 이메일, 클라우드 서비스가 3시간 넘게 접속이 안 된 데 이어 세계적 정보기술(IT) 기업의 서비스가 연이어 문제를 일으킨 것이다. ▷‘글로벌 먹통’이 된 SNS들은 실은 한 식구다. 인스타그램은 페이스북이 2012년 인수한 사진 중심의 SNS이고, 와츠앱은 페북이 2014년 190억 달러에 사들인 모바일 메신저다. SNS 접속 장애는 종종 있었지만 세계 27억 명이 쓰는 ‘페북 패밀리’가 한꺼번에 불통됐다는 점에서 이번이 최악의 사고라 할 만하다. 이용자들은 트위터 등 다른 SNS에 ‘#facebookdown’이라는 메시지를 올리며 불만을 쏟아냈다. 페북, 인스타그램을 끼고 사는 스마트폰 세대는 ‘멘붕’ 상태였다. SNS의 ‘좋아요’ 클릭과 댓글은 페북 공동 창업자인 숀 파커 스스로 ‘도파민’에 비유할 만큼 중독성이 강하다. ▷먹통 사고로 체면을 구겼지만 IT 기업들은 여전히 기고만장했다. 9시간 만에 복구된 인스타그램은 “우리가 돌아왔다(We’re back)”는 글과 함께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환호하는 사진만 달랑 올렸다. 재발 방지나 소비자에 대한 사과는 전혀 없었다. 페북 측도 장애 원인에 대한 설명을 내놓지 않았다. 전날 구글도 마찬가지였다. 구글은 지난해 10월 자회사 유튜브가 먹통이 됐을 때도 원인이나 규모에 대해 함구했다. ▷이러니 IT 공룡에 대한 반감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최근 미 민주당 대선주자인 엘리자베스 워런 의원은 “거대 IT 기업이 경쟁을 없애버렸다”며 페북 구글 아마존 등을 해체해 규제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플랫폼 제국의 미래’를 쓴 스콧 갤러웨이 뉴욕대 교수 등 지식인들도 분할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그러자 페북은 워런의 대선 캠페인 광고를 삭제하는 식으로 맞섰고, IT 기업의 초권력 논란을 키우는 꼴이 됐다. SNS의 먹통도 문제지만 IT 공룡들의 소통의 먹통이 더 문제다.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3-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보잉 공포

    비행기 사고의 80%는 이륙 3분 내, 착륙 8분 전부터 발생해 이 시간을 ‘마의 11분’이라고 한다. 최근 통계상 상업용 비행기 사고로 사망하는 확률은 1억 명당 2명꼴로, 1960년대 133명에서 크게 줄었다. 200명 이상이 숨진 대형 참사는 1974년 터키항공 981편 사고가 세계 최초다. 파리 오를리공항을 이륙한 981편은 기체 결함으로 엔진이 꺼져 파리 근교에 추락했다. 항공기 제작사 맥도널 더글러스는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었고, 1997년 보잉에 인수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번에는 보잉의 차세대 주력기 ‘보잉 737 맥스8’이 비행기 탑승객들을 공포로 몰아넣고 있다. 이 항공기는 지난해 10월 말 인도네시아에서 이륙 13분 만에 추락해 탑승자 189명이 모두 숨진 데 이어 10일에도 에티오피아에서 이륙 6분 만에 떨어져 157명 전원이 사망했다. 맥스8은 보잉이 가장 많이 판매한 제트여객기 737의 최신형으로, 2017년 5월 상업 비행을 시작했다. 출시 후 5000여 대의 주문이 몰릴 정도로 인기이며 현재 350대 정도가 운항 중이다. ▷지난해 10월 추락 후 사고조사단은 감속방지장치의 오작동이 원인일 수 있다고 했지만 보잉 측은 항공사의 정비 과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이번 사고 직후에도 미 정부와 보잉은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며 급히 진화에 나섰지만 불과 5개월 사이에 최신 기종이 연이어 추락하면서 기체 결함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보잉의 최대 고객인 중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브라질 등 10여 개국이 맥스8의 운항을 중단시켰다. 각국 항공사에는 탑승 예약을 변경하거나 환불해 달라는 요청이 빗발치고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맥스8 항공기 2대를 들여와 제주 일본 태국 노선 등에 투입해 온 이스타항공도 13일부터 운항을 중단한다. 그런데 대한항공 제주항공 티웨이항공 등이 이미 104대의 맥스8 구매계약을 맺었고 이 중 14대를 올해 들여올 예정이다. 비행기 사고가 발생하면 90초 내에 승객을 기내에서 탈출시켜야 한다는 ‘운명의 90초’ 룰이 있다. 하지만 이 골든타임도 항공기 결함 앞에선 무용지물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3-1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불끄기 일자리

    스웨덴 제2도시이자 스칸디나비아반도 최대 항구도시, 예테보리는 바이킹 후예답계 세계 조선업의 중심지였다. 1980년대 한국과 일본의 공세에 밀려 쇠퇴하기 전까지 말이다. 몰락한 조선 도시였던 예테보리는 이제 4차 산업혁명의 메카로 불린다. 도심에선 세계 최대 규모의 자율주행 운행 프로젝트가 가동되고 있고, 미래차를 개발하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속속 둥지를 틀었다. ▷첨단 IT 도시로 탈바꿈한 예테보리에서 현재 또 하나의 실험적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 이름은 ‘영원한 고용’, 2026년 완공되는 코르스베겐 기차역에서 일할 종신 직원을 뽑는 것이다. 이 직원이 할 일은 아침마다 출근해 승강장 형광등을 켜고, 해가 지면 불을 끄고 퇴근하는 게 전부다. 출퇴근 사이엔 영화를 보든, 잠을 자든, 역 밖에 있든 상관없다. 월급은 2만1600크로나(약 260만 원). 여기에 연봉 인상, 휴가, 퇴직연금까지 보장된다. ▷별다른 자격 없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는 이 일자리는 코르스베겐역 디자인 공모전에서 당선된 스웨덴 예술가 2명의 아이디어에서 나왔다. 이들의 응모작에는 자신들이 설계한 역사(驛舍)에 이 ‘비생산적’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 핵심 콘셉트로 포함돼 있다. 이들은 상금 700만 크로나(약 8억4000만 원)로 재단을 만들고 돈을 굴려 직원 월급을 충당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아 인간이 쓸모없어질 것이라는 위협이 커지고 있다. 우리도 머잖아 코르스베겐역 직원의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이들이 밝힌 프로젝트의 취지다. ▷AI 시대 일자리의 미래에 대한 경고를 담은 이 실험을 두고 “세금 낭비”라는 비판도 있지만 “노동의 본질과 가치를 고민케 하는 예술적 표현”이라는 평가가 많다. 전등 끄기 일자리는 최근 한국에서도 등장한 바 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부터 두 달간 빈 국립대 강의실의 불을 끄는 일자리를 만들어 1인당 32만 원의 월급을 줬다. 이런 공공 일용·임시직 일자리 5만여 개를 만드는 데 쓴 예산만 1200억 원. 기술 발달에 따른 ‘노동의 종말’을 경고하려는 스웨덴과는 불끄기 일자리를 만든 취지와 철학이 달라 씁쓸하기만 하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3-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폴더블폰에 담긴 독립선언서

    기미년 3월 1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학생대표 정재용이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으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자 두 손 높이 선언서를 치켜든 군중의 만세 함성이 거리를 뒤덮었다. 전국 곳곳에 뿌려진 독립선언서 3만5000장은 이틀 전까지 보성학교 교내에 있는 천도교 인쇄소 보성사에서 비밀리에 찍어낸 것이다. 종로경찰서의 악질 형사 신철이 인쇄소에 들이닥쳤지만 33인 중 한 명인 손병희가 거금 5000원을 주고 간신히 위기를 넘겼다. ▷그로부터 100년 후인 1일 서울 광화문광장 ‘3·1절 기념식’에 참석한 학생들의 손에도 독립선언서가 들려 있었다. 그런데 이들이 손에 든 건 인쇄물이 아닌 접히는 스마트폰 ‘폴더블폰’이었다. 박유철 광복회 회장은 무대에 설치된 LG전자의 돌돌 말리는 ‘롤러블TV’ 화면을 보고 선언서를 읽었고, 미래세대를 대표한 중앙고 보성중·고 경기고 학생 6명은 삼성전자의 폴더블폰을 펴서 민족대표 33인의 이름을 낭독했다. 학생들은 폴더블폰을 반으로 접는 것으로 순서를 마쳤다. ▷두 제품은 아직 시중에 판매되지 않지만 주최 측 요청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LG전자가 1월 라스베이거스 ‘CES 2019’에서 세계 최초로 선보인 롤러블TV는 최고 화제작으로 뽑혔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샌프란시스코에서 ‘갤럭시 폴드’를 공개하며 폴더블폰 시대를 선언했다. 세계 최초 타이틀은 중국 스타트업 로욜이 선점했지만 완성도 면에선 비교가 안 된다. 중국 화웨이는 화면이 밖으로 접히는 ‘메이트X’로 도전장을 내밀었고, 애플도 폴더블폰을 준비하고 있다. ▷뭔가를 펴고 접는 기술은 일찍이 아시아 문화권에서 앞서갔다. 접는 우산은 고대 중국에서, 접는 부채는 6∼9세기 일본에서 발명됐다. 종이학으로 대표되는 종이접기는 삼국시대 때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최첨단 폴더블폰을 놓고 한국이 2, 3위들과 초격차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목숨 걸고 밤을 새워가며 독립선언서를 인쇄 배포하던 100년 전 청년들이 첨단기기로 선언서를 읽는 후손을 본다면 감개무량할 것이다. 기미년 선열들의 용기와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 혁신기술을 선도하는 대한민국도 가능했으니.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3-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세계가 주목하는 김치

    음식을 탐구하는 긴 여정을 담은 마이클 폴란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의 ‘요리를 욕망하다’에는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러 한국을 찾은 이야기가 나온다. 요리 선생인 이현희 씨와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 배춧잎 양면에 빨간 양념을 꼼꼼히 바르며 ‘손맛’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무한히 복잡한 맛의 경험? 요리하는 사람의 개성?…. 마침내 폴란 교수는 김치 맛을 좌우하는 손맛의 수수께끼를 푼다. ‘그때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손맛은 사랑의 맛이라는 걸.’ ▷김치는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인의 대표 음식이다. 중고교 가정 시험에는 전통반상의 반찬 첩 수를 세는 문제가 나온다. 밥 국 찌개 장류와 더불어 김치는 반찬 가짓수에 포함시키지 않아야 하는데, 이를 헷갈려 오답을 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반찬이 아니라 한국인 밥상의 ‘기본’으로 분류되는 김치가 케이푸드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세계 어딜 가도 쉽게 김치를 맛볼 수 있고 서구 언론은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어제 결렬된 베트남 하노이 제2차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27일 만찬에서도 배속김치가 주요 메뉴였다. 배를 쪼개 속살을 파낸 뒤 백김치를 말아 넣은 북한 향토 음식이다. ▷김치 수출액은 지난해 9750만 달러로 1억 달러에 육박했다. 1년 새 20% 늘어난 성과이자, 김치 수출 실적을 집계한 2006년 이후 최고 성적이다. 일본으로 수출되는 김치가 여전히 절반을 넘지만 수출 국가도 68개국으로 늘었다. 여기엔 김치의 다양한 버전업이 영향을 미쳤다. 서구인의 브런치 식탁에 오를 ‘샐러드용 김치’,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Vegan·완전 채식) 김치’가 수출되고 있고, 새우젓 멸치젓 같은 젓갈을 전혀 쓰지 않는 비건 김치도 일반 김치와 똑같이 발효돼 감칠맛이 돈다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김치는 수출보다 수입(작년 1억3800억 달러)이 많은 무역적자 품목이다. 우리 김치의 3분의 1 가격인 중국산 김치가 국내 식당들을 잠식한 탓이다. 가정에서도 김치 소비는 제자리걸음. 김치를 찾는 세계인이 늘어나는 것과는 정반대로 값싼 중국산에 밀려, 규제에 치여 김치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릴까 우려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3-0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엘리엇의 탐욕

    미국계 세계 최대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가 홈페이지에 밝힌 기업문화에서 눈에 띄는 단어는 ‘thoroughness(철두철미)’와 ‘tenacity(집요함)’이다. 2001년 재정위기에 처한 아르헨티나의 국채를 헐값에 사들인 뒤 10년여의 소송 끝에 막대한 돈을 받아낸 엘리엇의 속성이 그대로 담겼다. 이 일로 아르헨티나는 국가부도를 맞았고 엘리엇은 ‘벌처(vulture·동물 사체를 먹는 독수리) 펀드’라는 악명을 얻었다. 기업 투자전략도 비슷하다. 취약한 지배구조나 낮은 주가 등 약점을 파고들어 수익을 올린다. ▷하버드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 출신의 폴 싱어 회장(75)이 1977년 설립한 엘리엇이 한국에 널리 알려진 건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제동을 걸면서다. 합병은 결국 성사됐지만 엘리엇은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까지 제기했다. 지난해부턴 현대자동차그룹을 타깃 삼아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무산시킨 데 이어 경영 간섭을 노골화하고 있다. ▷엘리엇은 최근 현대차와 현대모비스에 8조 원대 고배당을 요구하고 나섰다. 사측이 제시한 배당금의 5, 6배에 달하는 액수이며 지난해 현대차 순이익의 3배가 넘는다. 또 현대차의 경쟁사인 중국계 전기차 회사 임원 등을 사외이사로 추천했다. 기업의 장기 발전이나 미래 경쟁력엔 관심 없고 단기 이익만 챙기려는 행동주의 펀드의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아시아 기업을 겨냥한 헤지펀드들의 공격은 6년 새 10배 넘게 급증했다. ‘한국 기업 사냥’이 일상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이유다. ▷엘리엇 이전에도 2003년 소버린의 SK 공격, 2006년 칼 아이컨의 KT&G 공격이 있었지만 법이나 제도가 전혀 바뀐 게 없다는 점이 뼈아프다.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같은 경영권 방어 장치는 도입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을 담은 상법 개정안이 국회 통과를 앞두고 있다. 소액주주 권리를 강화한다는 취지지만 현실에선 헤지펀드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큰 제도들이다. 엘리엇에 더 당하기 전에 지금이라도 이를 손봐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2-2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졸업식 축사

    대학 캠퍼스의 ‘마지막 수업’은 졸업식 축사다. 유명 인사의 통찰이 담긴 축사는 새로운 출발을 앞둔 졸업생에게 때론 위로가, 때론 인생의 길잡이가 된다. 그래서 해마다 졸업식 명연설은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이던 1941년, 단 두 마디였던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의 옥스퍼드대 졸업식 축사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인생 지침으로 통한다. “포기하지 말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 ▷서구 대학에선 문화예술계 인사도 단골 초청연사다. 무명 시절의 실패와 좌절을 딛고 꿈과 도전의 인생을 살아온 이들의 축사는 전·현직 대통령이나 기업인, 정치인 못잖게 인기다. 가난한 이혼녀에서 베스트셀러 ‘해리포터’ 작가가 된 조앤 롤링은 2008년 하버드대에서 “누구나 실패할 수 있지만 실패가 두려워 시도하지 않는다면 그 자체가 실패”라고 역설했다. 미국 코미디언 코넌 오브라이언의 2011년 다트머스대 축사, “실패로 새롭게 태어나라”는 메시지도 여전히 회자된다. 배우 로버트 드니로는 2015년 뉴욕대 예술대 졸업식에서 “여러분은 해냈다. 그리고 엿 됐다”는 파격으로 시작해 오디션에서 거절당하더라도 “다음에(Next)”라는 주문을 되뇌라고 당부했다. ▷국내 대학의 졸업식은 내외 귀빈을 일일이 호명하며 참석자들을 졸게 만드는 뻔한 축사가 많았지만 요즘 변화가 일고 있다. 26일 서울대 졸업식에선 아이돌그룹 방탄소년단(BTS)의 제작자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47)가 축사를 한다.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한 방 대표는 재학 때인 1994년 한 음악경연대회에서 수상하며 가요계에 발을 들인 뒤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냈다. 2005년 자신의 회사를 세우고 2013년 방탄소년단을 데뷔시켜 세계적 그룹으로 키워냈다. ▷방 대표의 축사는 문화예술계 인맥이 두꺼운 오세정 서울대 총장이 직접 부탁해 성사됐다고 한다. 그동안 현직 대통령이나 정부 고위 인사, 교수, 기업인들이 서울대 졸업 축사를 맡아온 것과 비교하면 신선한 러브콜이라 할 만하다. 우리 대학에서도 유명 인사의 솔직한 자기 고백과 성공·실패의 경험담이 담긴 품격 있는 축사가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2-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인공강우

    비를 염원하는 의식은 지역과 민족을 막론하고 농경사회에서는 예외 없이 이어졌다. 고대 로마시대에는 사랑의 신 큐피드에게 비를 내리게 해 달라고 신전에서 제사를 지냈고, 중세 영국에서는 대기를 뒤흔들어 비를 부르겠다며 마을에 있는 모든 교회의 종을 한꺼번에 울리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선 동물을 제물로 바치고 기도를 하거나 산에 장작을 쌓아 연기를 피우는 방식이 흔했다. ▷현대사회 들어 과학적 방법이 동원된 것이 ‘인공강우’다. ‘구름씨(cloudseed)’로 불리는 요오드화은, 염화칼슘 같은 화학물질을 구름에 뿌려 인위적으로 비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최초의 인공강우는 1946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과학자 빈센트 셰퍼가 비행기를 타고 4000m 상공에서 드라이아이스를 살포해 성공했다. 이후 세계 각국이 연구에 뛰어들며 ‘기후 조작’ 시대를 열었다. 인공강우 목적도 가뭄 해소, 산불 예방, 수자원 확보 등으로 다양해졌다. ▷인공강우 활용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중국이다. 현재 인공지능(AI)과 드론을 이용한 인공강우 기술까지 갖췄다. 1970년대부터 기술 개발에 나선 중국은 2007년 랴오닝성 대가뭄 때 두 차례에 걸쳐 인공강우용 로켓 2100여 발을 발사해 무려 8억 t 이상의 비를 내리게 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인공강우를 동원해 흐린 날씨를 맑게 하고 미세먼지까지 걷어냈다. ‘미세먼지와의 전쟁’에서 인공강우가 주목받은 건 이때부터다. 태국도 최근 방콕의 미세먼지를 씻어내기 위해 인공강우를 실시했다. ▷우리 기상청도 25일 서해 하늘에서 미세먼지 저감을 위한 인공강우 실험을 시작한다. 그동안 내륙 지방에서 하다가 실험 무대를 중국발(發) 미세먼지의 이동 통로인 서해로 옮긴 게 눈길을 끈다. 하지만 국내 기술력이 걸음마 단계여서 당장 뿌연 하늘을 씻어줄 인공 비를 기대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기상청마저 “현재 기술로 당장 미세먼지 개선에 활용하는 건 무리”라고 했다. 미세먼지는 기상천외한 방법 ‘한 방’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인공강우는 그것대로 잘 발전시켜 보되 대책의 핵심은 국내에 방치된 오염원과 중국발 미세먼지 문제에 모아져야 한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1-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구글세

    디지털 세계는 국경이 없다. 구글이든 페이스북이든 카카오든 사용자는 본사가 미국인지 한국인지 알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세무당국은 다르다. 어디서 돈을 버는지 따져 세금을 매겨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디지털 세계는 매출이 발생하는 물리적 공간이 따로 없다. 그래서 정보기술(IT) 기업은 ‘서버’가 있는 곳에 세금을 물리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나라도 국내에 고정사업장(서버)이 있는 IT 기업을 대상으로 국내에서 올린 매출에 법인세를 과세하고 있다. ▷구글은 이런 허점을 이용해 서버를 법인세율이 낮은 싱가포르, 아일랜드에 두고 있다. 이 때문에 구글은 2017년 한국에서 4조9000억 원의 매출을 올리고도 대부분의 세금을 서버가 있는 나라에 냈다. 한국에 낸 세금은 고작 200억 원 정도였는데 그것도 앱스토어, 검색 사업 같은 주요 수익원이 아니라 구글코리아가 계약한 온라인광고 매출에 대해서만 낸 법인세였다.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다른 IT 기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이런 행태에 분노한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그래서 나온 게 이른바 ‘구글세’다. 글로벌 IT 기업이 자국에서 벌어들이는 전체 매출에 ‘디지털세’를 매기자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은 당초 2020년 도입을 목표로 IT 기업에 매출의 3%를 별도 법인세로 매길 계획이었다. 그런데 자동차 등 다른 수출품에 대한 미국의 무역 보복을 두려워한 독일과 북유럽 국가들이 반대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자국 대표기업 ‘FAANG(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가 구글세 표적이 되자 “조세법을 재검토하겠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우리 정부도 ‘구글세’ 도입을 검토했으나 유보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다국적 IT 기업에 과세를 준비 중”이라고 밝힌 지 3개월 만에 방향을 튼 것이다. 구글이 얄밉긴 하지만 글로벌 IT 기업으로부터 세금 더 걷자고 우리 수출이 타격을 받을 구글세를 도입하기는 당분간 쉽지 않아 보인다. 냉혹하게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국제무역의 속쓰린 단면이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1-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횡설수설/정임수]투잡 시대

    퇴근 후 고단한 몸을 이끌고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직장인이 많아졌다. 전자상거래업체 쿠팡이 지난해 8월 시작한 ‘쿠팡 플렉스’는 자기 차를 이용해 심야 배송을 하는 아르바이트인데 모집 70여 일 만에 지원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부업으로 PC방을 하려는 직장인을 겨냥해 낮에는 본사에서 원격관리해 주고 밤에는 퇴근한 주인이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회사까지 등장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고용동향을 보면 지난해 ‘시간관련 추가 취업가능자’는 62만9000명으로 1년 전보다 10.3% 늘었다. 시간관련 추가 취업가능자란 근로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 취업을 원하는 ‘투잡 희망자’다. 지난해 한 아르바이트 포털이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중소기업 직장인의 41.2%가 투잡을 뛰고 있다고 답했다. 2016년 조사 때(19.9%)보다 크게 늘었다. ▷일본도 투잡을 뛰는 사람이 최근 3년간 210만 명이나 늘어 지난해 말 700만 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이유가 한국과는 딴판이다. ‘잃어버린 20년’을 벗어나 경제호황을 구가하고 있는 일본에선 일자리는 넘쳐나는데 일할 사람을 못 찾는다. 그러니 투잡족이 늘 수밖에 없다. 일본 정부는 직장인의 투잡을 막았던 ‘표준취업규칙’을 바꿨고 공무원의 투잡을 인정한 지방자치단체도 등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지난해 7월부터 시행된 주 52시간 근무제의 영향으로 야근, 잔업 등 특근 수당이 많았던 일부 정규직 근로자들까지 소득이 줄자 생계형 투잡에 내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도입된 제도가 줄어든 수입을 벌충하기 위해 또 다른 일자리에서 밤을 보내는 근로자들을 만든 것이다. 여기에다 올해부터 최저임금에 주휴수당이 포함되면서 아르바이트생도 투잡, 스리잡을 뛰어야 할 형편이다.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지급해야 하는 주휴수당을 피하기 위해 업주들이 여러 명을 짧은 시간 고용하는 ‘쪼개기 알바’를 쓰고 있는 탓이다. ‘주경야독’ 대신 직장인의 밤을 빼앗은 투잡 시대가 안쓰럽다. 정임수 논설위원 imsoo@donga.com}

    • 2019-01-1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