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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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바흐-쇼스타코비치 함께 선보여… 자유와 사랑의 창문 열릴것”

    지휘자로 활동 영역을 넓혀 온 그리스의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레오니다스 카바코스(57)가 내년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레볼루션’ 예술감독으로 축제를 이끈다. 내년 8월 말에서 9월까지 열리는 제6회 ‘클래식 레볼루션’은 독일 바로크 음악의 완성자인 요한 세바스찬 바흐(1685∼1750)와 구소련을 대표한 작곡가 드미트리 쇼스타코비치(1906∼1975)의 작품을 집중 소개할 예정이다. 카바코스는 올해 ‘클래식 레볼루션’ 피날레 무대인 11일 콘서트에서 사오치아 뤼 지휘 KBS교향악단과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했고 앙코르로는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1번 3악장을 연주했다. 12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바흐와 쇼스타코비치의 작품은 자유나 사랑 등 우리가 바라는 가치들의 창문을 열어 줄 수 있는 음악”이라며 “두 사람의 곡을 함께 들을 경우 두 작곡가가 한층 특별하게 들릴 수 있다”고 소개했다. 쇼스타코비치는 1950년 러시아 피아니스트 타티야나 니콜라예바가 라이프치히 바흐 콩쿠르에서 연주한 바흐의 건반음악을 듣고 감명을 받아 ‘24개의 전주곡과 푸가’를 작곡하는 등 바흐의 음악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바흐는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음악을 창조했죠. 신과의 대화가 음악으로 이뤄졌습니다. 반면 쇼스타코비치는 인간의 고뇌와 고통을 배경으로 음악을 썼죠. 소련 체제로 인한 우울함일 수도 있고 인간의 미성숙함 자체가 빚어내는 불행일 수도 있습니다. 두 사람의 음악을 통해 시대의 문제를 극복할 방향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이 축제를 통해 관객이나 젊은 음악가들과 많은 생각을 공유하고 싶다”는 희망을 밝혔다. “공연 외 마스터클래스도 진행할 계획입니다. 관객과 만나거나 토론하는 자리도 만들고 싶습니다. 음악에 있어서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에서 지휘로 활동 영역을 넓힌 것도 연주가들과 생각을 나누는 ‘상호작용’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카바코스는 1985년 시벨리우스 국제콩쿠르, 1988년 파가니니 국제콩쿠르에서 1위를 차지하며 국제무대에 이름을 알렸다. 1991년 시벨리우스 바이올린협주곡 초연 버전을 세계 최초로 녹음해 BIS 레이블로 발매하면서 화제가 됐다. 2011년 리카르도 샤이 지휘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에서 드보르자크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했고 2013, 2020년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등 한국 무대에 자주 서 왔다. 지휘자로서 카메라타 잘츠부르크의 예술감독을 지냈고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프랑스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등을 지휘했다.2018년 유럽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롯데콘서트홀에서 가진 내한공연에서는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 5번 등의 솔로를 맡는 한편 베토벤 교향곡 3번 ‘영웅’등을 지휘하며 지휘자로서의 면모를 전했다. 그는 “여러 차례 롯데콘서트홀에 서면서 건축적이나 기능적, 음향적인 면, 운영 등에서 훌륭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멋진 곳에서 축제를 열 수 있게 돼 행복하다”며 미소를 지었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첫해인 2020년부터 독일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바이올린 교육가, 지휘자인 크리스토프 포펜이, 2023년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수석 클라리네티스트이자 지휘자인 안드레아스 오텐자머가 예술감독을 맡았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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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7개국 32명 피아노 부문 1차 예선무대 올라

    동아일보사와 서울시가 공동 주최하는 ‘LG와 함께하는 제19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피아노 부문)’ 1차 예선 경연에 참가할 7개국 32명이 가려졌다.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 동아일보 사옥에서 10, 11일 열린 참가자 제출 영상 예비심사에는 주희성 서울대 교수, 김진욱 한양대 교수, 조지현 단국대 교수, 최경아 가천대 교수가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다. 손민수 뉴잉글랜드음악원 교수는 일정상 별도로 영상을 심사했다. 심사위원들은 16개국 140명의 지원자가 제출한 연주 영상을 보며 예선 출전 가능 여부를 ○×로 표시하는 방식으로 채점한 뒤 합산해 예비심사 합격자를 정했다. 합격자 32명의 국적은 한국이 20명으로 가장 많았고 중국 4명, 미국 2명, 일본 2명, 러시아 2명, 체코 1명, 터키 1명 등이다. 심사위원들은 “여느 해보다 독자적인 개성을 갖추고 특징 있는 연주를 펼친 지원자가 많이 눈에 띄었다. 특히 중국 지원자들의 기량 발전이 눈에 띄었다”고 평가했다. 예비심사 합격자들은 12월 1일부터 서울 서초구 서울교육대 종합문화관에서 열리는 1차 예선에 참가한다. 예비심사 결과는 13일 콩쿠르 홈페이지에 공지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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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K클래식의 미래 이끌 주인공

    제8회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본선 경연이 서울 서초구 서울교대 종합문화관에서 4, 5일 열렸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고 서울교대와 라율아트홀이 후원한 이번 콩쿠르는 초·중·고등부의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부문으로 치러졌다. 8월 26∼28일 예선을 거친 48명이 본선에 올라 각 부문 1위 7명 등 29명이 수상했다. 중등부 각 부문 최상위 입상자는 서울 서초구 라율아트홀(대표 최연우·바이올리니스트)이 선정하는 라율인재상을 함께 수상하며 라율아트홀이 제공하는 무료 독주회 특전을 받는다. 중등부 첼로 부문에서 1위에 입상한 김지우 양(13·예원학교 1년)은 올해 라율 영재&영아티스트 오디션에 합격해 5월 독주회를 연 바 있다. 본선에서 쇼스타코비치의 첼로 협주곡 1번 4악장을 연주한 그는 “곡이 기교적으로 요구하는 면들을 담아내면서 느낀 벅찬 감동까지 표현하려 했다”며 “한 가지씩 차분하게 풀어 나가면서 계속 노력하는 첼리스트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9일 오후부터 동아주니어음악콩쿠르 홈페이지(www.donga.com/concours/juniormusic)에서 채점표를 확인할 수 있다. 심사평도 함께 게재된다. 다음은 입상자 명단. ◇고등부 ▽피아노 △1위 신은원(17·서울예고 2년) △3위 윤채원(17·서울예고 2년) ▽바이올린 △1위 이예솔(16·홈스쿨링) △2위 김현정(16·서울예고 1년) △3위 박시후(16·서울예고 2년) ▽첼로 △2위 소아림(18·서울예고 3년) △3위 이원영(17·선화예고 3년) ▽플루트 △2위 성상민(16·선화예고 1년) △3위 박루린(17·선화예고 3년) ◇중등부 ▽피아노 △2위 이연송(15·부산예중 3년) △3위 정해인(14·예원학교 2년) ▽바이올린 △2위 김동휘(15·전주예중 3년) △3위 김다비(15·예원학교 3년) ▽첼로 △1위 김지우 △2위 김규리(14·예원학교 3년) △3위 최성현(14·예원학교 3년) ▽플루트 △1위 유지우(15·예원학교 3년) △2위 박지인(15·예원학교 3년) △3위 김진(14·예원학교 2년) ◇초등부 ▽피아노 △2위 김하민(11·예일초 5년) ▽바이올린 △1위 박제인(12·낙생초 6년) △2위 백수현(11·대치초 5년) △3위 김서윤(12·서울도성초 6년) ▽첼로 △1위 장세인(11·봉은초 6년) △2위 홍서영(11·계성초 6년) △3위 고채원(11·내발산초 6년) ▽플루트 △1위 박혜륜(11·인천송천초 6년) △2위 주가원(12·인천부평동초 6년) △3위 이재아(11·언북초 6년)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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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사님이 동료 교수 됐다고 이름 부르래요”

    첼리스트 이정현(33·사진)이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명문 커티스 음악원 첼로 교수로 임용됐다. 국제무대에서 ‘크리스틴 정현 리’로 활동해 온 그는 최근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종신 단원으로 임용돼 경사가 겹친 셈이다. 이정현은 커티스 음악원에서 학사를,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플로브디프 콩쿠르, 윤이상 국제콩쿠르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크론베르크 실내악 축제와 말버러 페스티벌, 여수 ECO 국제음악제 등 국내외 무대에서 활동해 왔다. 5일 전화로 만난 이정현은 “어제 첫 수업을 했다”며 즐거워했다. “열 살 때 처음 미국에 와서 수업을 들었던 제 모교거든요. 은사이신 피터 와일리 교수님이 ‘동료가 되었으니 피터라고 불러라’라고 하시더군요.” 그는 “커티스 음악원에 오면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전했다. “캠퍼스부터 고풍스러운 건물들이에요. 학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원하면 피아노 교수님의 실내악 레슨도 받을 수 있고 성악 레슨까지도 받을 수 있죠. 교수들이 연주가로도 대단한 분들이어서 그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도 일찍이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단원으로 임용되기 전 그는 1년간의 트라이얼(수습) 기간을 거쳤다. 정식 종신 단원으로 임용되면서는 ‘50년 만의 여성 첼로 단원이자 최초의 동양 여성 단원’으로 화제가 됐다.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특유의 밀도 높은 소리가 매력적이에요. 20세기 초반 스트라빈스키나 버르토크 같은 대작곡가의 곡을 많이 위촉 초연해서 이들의 곡에는 특히 자부심을 가진 악단입니다.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가 매우 온화하고 세심하게 연습을 이끌어 나가죠.” 이정현은 2022년부터 현악 4중주단 ‘모나 콰르텟’ 첼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교단과 오케스트라, 실내악, 독주 활동까지 모두 가능할까. “모나 콰르텟은 유럽이 본거지여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죠. 최근 저 대신 새 첼리스트를 뽑았어요. 제가 실내악을 매우 좋아하는데 다행히 커티스 안에서 교수진끼리 다양한 실내악 활동이 가능하죠. 다양한 활동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아가려 합니다.” 그는 국내 무대에 최소한 1년에 두세 번은 서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의 큰 목표 중 하나는 ‘첼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배운 게 있다면 꿈을 크게 꾸는 것이었고, 꿈을 크게 꾸면 도움을 받게 되더라고요. 첼로와 음악을 통해 인종 등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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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리스트 이정현, 美 명문 커티스 교수 임용

    첼리스트 이정현(33)이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명문 커티스 음악원 첼로 교수로 임용됐다. 국제무대에서 ‘크리스틴 정현 리’로 활동해온 그는 최근 미국 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종신 단원으로 임용돼 경사가 겹친 셈이다. 이정현은 커티스 음악원에서 학사를, 줄리아드 음악원에서 석사를 취득했고 플로브디프 콩쿠르, 윤이상 국제콩쿠르 등에서 1위를 차지했다. 크론베르크 실내악 축제와 말보로 페스티벌, 여수 ECO 국제음악제 등 국내외 무대에서 활동해 왔다.5일 전화로 만난 이정현은 “어제 첫 수업을 했다”며 즐거워했다. “열 살 때 처음 미국에 와서 수업을 들었던 제 모교거든요. 은사이신 피터 와일리 교수님이 ‘동료가 되었으니 피터라고 불러라’고 하시더군요. ”그는 “커티스 음악원에 오면 옛날로 돌아간 느낌”이라고 전했다. “캠퍼스부터 고풍스러운 건물들이에요. 학교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원하면 피아노 교수님의 실내악 레슨도 받을 수 있고 성악 레슨까지도 받을 수 있죠. 교수들이 연주가로도 대단한 분이어서 그들이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도 일찍이 보고 배울 수 있었어요.”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 첼로 단원으로 임용되기 전 그는 1년간의 트라이얼(수습)기간을 거쳤다. 정식 종신 단원으로 임용되면서는 ‘50년 만의 여성 첼로 단원이자 최초의 동양 여성 단원’으로 화제가 됐다.“보스턴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특유의 밀도 높은 소리가 매력적이에요. 20세기 초반 스트라빈스키나 버르토크 같은 대작곡가의 곡을 많이 위촉 초연해서 이들의 곡에는 특히 자부심을 가진 악단입니다. 음악감독 안드리스 넬손스가 매우 온화하고 세심하게 연습을 이끌어나가죠.”이정현은 2022년부터 현악 4중주단 ‘모나 콰르텟’ 첼리스트로 활동해 왔다. 교단과 오케스트라, 실내악, 독주 활동까지 모두 가능할까. “모나 콰르텟은 유럽이 본거지여서 시간을 내기 쉽지 않죠. 최근 저 대신 새 첼리스트를 뽑았어요. 제가 실내악을 매우 좋아하는데 다행히 커티스 안에서 교수진끼리 다양한 실내악 활동이 가능하죠. 다양한 활동 사이에서 밸런스를 찾아가려 합니다.” 그는 국내 무대에 최소한 1년에 두세 번 이상은 서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그의 큰 목표 중 하나는 ‘첼로 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배운 게 있다면 꿈을 크게 꾸는 것이었고, 꿈을 크게 꾸면 도움을 받게 되더라구요. 첼로와 음악을 통해 인종 등 다른 배경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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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실내악과 만나는 마포 M클래식축제… 손일훈 “자유로운 예술혼 만끽하길”

    “보헤미아는 오늘날의 체코 서부를 뜻하는 지명이죠. 하지만 ‘보헤미안’은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방랑자들과 자유로운 예술혼을 상징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작곡가 손일훈(34)이 마포문화재단이 주최하는 제9회 M 클래식축제 ‘보헤미아의 숲에서’ 예술감독을 맡았다. M 클래식 축제는 국내 기초 지방자치단체 주최 클래식 축제로는 예외적으로 8년 동안 480여 회 공연을 통해 아티스트 6000여 명이 참여하고 관객 66만 명을 동원했다. 올해는 지난달 31일 마포아트센터 아트홀 맥에서 열린 ‘모던가곡 I’을 시작으로 12월 10일까지 총 22개 공연을 마련했다. 이 축제에 예술감독이 위촉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 마포문화재단의 요청을 받아 두 차례 ‘보헤미아의 숲에서’라는 제목의 공연을 제작했죠. 전석 매진됐고, 당시의 호응이 올해 M 클래식축제 ‘보헤미아의 숲에서’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이번 축제에서 특히 공을 들인 부분은 여섯 차례 열리는 실내악 시리즈 ‘보헤미아의 숲에서’다. 축제 제목과 시리즈 제목이 같다. 피아니스트 박종해, 플루티스트 조성현, 호르니스트 김홍박 등 출연자들을 그가 섭외했고 선곡도 출연자들과 함께 하나하나 공을 들였다. 10월 23일 시리즈 네 번째 콘서트 ‘림(林)’에는 정가 조윤영 등 국악인들이 출연해 음악을 통한 동과 서의 만남을 선보인다. 10월 29일 ‘아시아 피아노 트리오’에는 중국 바이올리니스트 장팅슈오, 일본 피아니스트 오사다 유스케가 한국 첼리스트 이호찬과 호흡을 맞춘다. “‘보헤미아의 숲에서’는 본디 안토닌 드보르자크가 작곡한 피아노 연탄곡 제목이죠. 그중 ‘고요한 숲’이라는 곡이 특히 유명합니다. 야나체크, 라이하, 마르티누, 수크 등 수많은 작곡가들이 보헤미아의 풍광과 정신을 음악에 담아냈어요. 그들의 작품을 다양하게 소개하는 시간이 될 겁니다.” 10월 18일 열리는 교향악 시리즈 메인 콘서트 프로그램도 그의 손에서 나왔다. 권민석 지휘 M 클래식 페스티벌 오케스트라가 말러 교향곡 1번과 브람스 ‘이중 협주곡’을 바이올린 이재형, 첼로 채훈선 협연으로 연주한다. 손일훈은 “이중 협주곡은 브람스 특유의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라는 보헤미안적 정신을 구현한 곡이다. 말러 교향곡 1번도 초기 가곡집 ‘방랑하는 젊은이의 노래’ 선율들이 들어 있는 만큼 방랑하는 보헤미안의 정신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그는 네덜란드 헤이그 왕립음악원 재학 시절 작곡 교수 얀 판더퓌터와 함께 피아노를 치면서 공부한 손때 묻은 피아노 연탄용 악보를 펼쳐 보였다. 손일훈은 헤이그 왕립음악원 석사와 최고과정을 마쳤다. 10인조 실내악 연주단체 클럽M의 상주 작곡가이며 서울시립국악관현악단의 음악극 ‘숨’ 작곡을 맡는 등 작곡가와 기획자로 다양한 활동을 펼쳐 왔다. 올해 M 클래식축제에서는 개막 공연인 8월 31일 ‘모던가곡 I’ 콘서트에서 그가 나태주 시에 곡을 붙인 가곡 ‘소망’을 바리톤 양준모가 노래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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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클래식感]‘오텔로’ 이아고와 ‘토스카’ 스카르피아, 누가 진짜 악당인가

    “이아고에게는 손수건이 있었지, 내게는 부채가 있다.”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1900년) 1막에 나오는 악당 스카르피아의 노래 일부다. 이아고는 17세기 초에 초연된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오셀로’를 바탕으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1887년)를 서울 예술의전당이 8월 18∼25일 공연하고 이어 서울시오페라단이 이달 5∼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푸치니 ‘토스카’를 올림으로써 서울의 오페라 팬들은 오페라 역사상의 두 대표 악한들을 잇달아 만나게 되었다. 왜 손수건이고 왜 부채일까? ‘오텔로’에서 베네치아 장군 오텔로의 부하 이아고는 여주인공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이용해 주군 오텔로를 질투와 파멸로 이끈다. ‘토스카’에서 로마 경시총감 스카르피아는 늘 성당에 나와 기도하는 아타반티 부인의 부채를 미끼로 삼아 여주인공 토스카의 질투를 유발하고 그에게 덫을 놓는다. 두 악당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토스카’의 1막 성당 장면에 나오는 테데움(찬미가)에서 스카르피아는 거룩한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토스카, 너는 내가 신도 잊게 만드는구나”라며 여인에 대한 불붙는 욕망을 토로한다. 그에게 악행은 욕구를 배설하기 위한 수단이다. 한편 ‘오텔로’에 나오는 노래 ‘크레도’(신앙고백)에서 이아고는 “나를 자신과 닮게 창조한 잔혹한 신을 믿노라”라고 노래한다. “씨앗이나 사악한 원자의 비겁함으로부터 나는 비열하게 태어났다. 인간이기에 악당이 되었고 내 안에 깃든 원초적인 더러움을 느낀다. 맞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이런 이아고에게 악(惡)이란 수단이라기보다는 행동 원칙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이다. 살면서 이런 인물을 만나기 쉬울까? 두 오페라 모두 소름 끼칠 정도로 긴박하고 극적이며, 두 작품에 나오는 음악도 팽팽하게 폭발하기 직전의 긴장과 그 밖의 아름다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악당이 빚어내는 인물의 현실성에 있어서는 푸치니와 그의 대본 작가 자코사·일리카, 원작자 사르두가 만들어낸 스카르피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베르디의 ‘오텔로’에 형상화된 이아고를 함부로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아고의 노래 ‘크레도’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없다. 오페라의 대본을 썼고 스스로 작곡가이기도 했던 아리고 보이토가 창작해 대본에 집어넣은 노래다. 보이토는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메피스토펠레’(1868년)에서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해 악마의 전형을 창조한 바 있다. 그가 21세 때인 1863년에 쓴 시 ‘이원론(二元論·dualism)’은 선악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본성을 다뤘다. 말하자면 이 오페라의 대본 작가는 당대 대표 ‘악(惡) 전문 사상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악행 대부분은 악 자체를 숭상하고 찬양하는 악의 화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못 이겨 남의 희생 따위는 깔아뭉개는 인간들에 의해 집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며 만났던 크고 작은 악인들을 떠올려 보면, 역시 그렇다. 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에서 악당 스카르피아는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양준모가 노래한다. 사무엘 윤은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는 인간이 갖는 악한 감정의 극한을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할 때마다 내 몸 안에 이렇게 어둡고 악한 에너지가 있다는 걸 느끼며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스카르피아가 남주인공 카바라도시의 처형을 지시하는 장면에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이라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사람은 늘 그런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해 왔어요. ‘능숙한 잔인함’을 보여줘야 하죠. 오페라의 수많은 빌런(악당) 역 중에 이렇게 잘 표현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악에 자신을 바치고 악의 추구 자체에 가치를 두는 이아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악행을 거듭하는 스카르피아,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일까. 두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하지만 분쟁이 있을 때 상대방을 ‘타협할 수 없는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나와 비슷한 인간’으로 보면 문제가 더 잘 풀려 나갔다. 그것이 지상의 악에 대한 나의 작은 믿음의 고백이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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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페라 최고의 빌런은…‘오텔로’의 이아고? ‘토스카’의 스카르피아?[유윤종의 클래식感]

    ‘오텔로’ 이아고와 ‘토스카’ 스카르피아, 누가 진짜 악당인가“이아고에게는 손수건이 있었지, 내게는 부채가 있다.”푸치니 오페라 ‘토스카’(1900) 1막에 나오는 악당 스카르피아의 노래 일부다. 이아고는 17세기 초에 초연된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에 등장하는 악당이다. ‘오셀로’를 바탕으로 한 베르디의 오페라 ‘오텔로’(1887)를 서울 예술의전당이 8월 18~25일 공연하고 이어 서울시오페라단이 이달 5~8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무대에 푸치니 ‘토스카’를 올림으로써 서울의 오페라 팬들은 오페라 역사상의 두 대표 악한들을 잇달아 만나게 되었다.왜 손수건이고 왜 부채일까? ‘오텔로’에서 베네치아 장군 오텔로의 부하 이아고는 여주인공 데스데모나의 손수건을 이용해 주군 오텔로를 질투와 파멸로 이끈다. ‘토스카’에서 로마 경시총감 스카르피아는 늘 성당에 나와 기도하는 아타반티 부인의 부채를 미끼로 삼아 여주인공 토스카의 질투를 유발하고 그에게 덫을 놓는다.두 악당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많다. ‘토스카’의 1막 성당 장면에 나오는 테데움(찬미가)에서 스카르피아는 거룩한 성가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토스카, 너는 내가 신도 잊게 만드는구나”라며 여인에 대한 불붙는 욕망을 토로한다. 그에게 악행은 욕구를 배설하기 위한 수단이다.한편 ‘오텔로’에 나오는 노래 ‘크레도’(신앙고백)에서 이아고는 “나를 자신과 닮게 창조한 잔혹한 신을 믿노라”라고 노래한다. “씨앗이나 사악한 원자의 비겁함으로부터 나는 비열하게 태어났다. 인간이기에 악당이 되었고 내 안에 깃든 원초적인 더러움을 느낀다. 맞다, 이것이 나의 신앙이다!” 이런 이아고에게 악(惡)이란 수단이라기보다는 행동 원칙이자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이다.살면서 이런 인물을 만나기 쉬울까? 두 오페라 모두 소름 끼칠 정도로 긴박하고 극적이며, 두 작품에 나오는 음악도 팽팽하게 폭발하기 직전의 긴장과 그 밖의 아름다움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악당이 빚어내는 인물의 현실성에 있어서는 푸치니와 그의 대본 작가 자코사·일리카, 원작자 사르두가 만들어낸 스카르피아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베르디의 ‘오텔로’에 형상화된 이아고를 함부로 재단하려는 것은 아니다. 이아고의 노래 ‘크레도’는 셰익스피어의 원작에 없다. 오페라의 대본을 썼고 스스로 작곡가이기도 했던 아리고 보이토가 창작해 대본에 집어넣은 노래다. 보이토는 자신이 작곡한 오페라 ‘메피스토펠레’(1868)에서 주인공 메피스토펠레스를 통해 악마의 전형을 창조한 바 있다. 그가 21세 때인 1863년에 쓴 시 ‘이원론(二元論·dualism)’은 선악을 동시에 가진 인간의 본성을 다뤘다.말하자면 이 오페라의 대본 작가는 당대 대표 ‘악(惡) 전문 사상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수많은 악행 대부분은 악 자체를 숭상하고 찬양하는 악의 화신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못 이겨 남의 희생 따위는 깔아뭉개는 인간들에 의해 집행되는 것처럼 보인다. 최소한 지금까지 살며 만났던 크고 작은 악인들을 떠올려보면, 역시 그렇다.서울시오페라단의 ‘토스카’에서 악당 스카르피아는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과 양준모가 노래한다. 사무엘 윤은 “‘토스카’의 스카르피아는 인간이 갖는 악한 감정의 극한을 표현한 오페라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할 때마다 내 몸 안에 이렇게 어둡고 악한 에너지가 있다는 걸 느끼며 깜짝 놀라곤 한다”고 했다. “스카르피아가 남주인공 카바라도시의 처형을 지시하는 장면에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이라고 말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이 사람은 늘 그런 방식으로 욕망을 해소해 왔어요. ‘능숙한 잔인함’을 보여줘야 하죠. 오페라의 수많은 빌런(악당) 역 중에 이렇게 잘 표현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악에 자신을 바치고 악의 추구 자체에 가치를 두는 이아고, 자신의 욕망을 성취하기 위해 악행을 거듭하는 스카르피아, 어느 쪽이 더 현실적일까. 두 오페라를 관람하는 관객이 판단할 몫이다. 하지만 분쟁이 있을 때 상대방을 ‘타협할 수 없는 악의 화신’으로 여기는 것보다는 ‘자신의 욕망과 목표를 위해 움직이는, 나와 비슷한 인간’으로 보면 문제가 더 잘 풀려나갔다. 그것이 지상의 악에 대한 나의 작은 믿음의 고백이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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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스카는 극중 가수, 저 자신을 연기하는 것 같죠”

    “오페라 ‘토스카’에서 여주인공 토스카는 극 중 오페라 가수죠. 이 작품에 출연할 때면 저 자신을 연기하는 것 같아서 더 특별한 느낌이 듭니다.” 루마니아 출신 오페라 스타인 소프라노 안젤라 게오르규(59)가 서울시오페라단이 5∼8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에 출연한다. 게오르규는 2002년 당시 남편이었던 테너 로베르토 알라냐와의 듀오 무대를 시작으로 여러 차례 한국 무대를 찾았으며 2012년에는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정명훈 지휘로 열린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에서 미미 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베로나 야외오페라, 빈 국립오페라 등에서 주역으로 활동한 소프라노 임세경이 나란히 토스카 역을 맡는다. 지난달 30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로비에서 열린 ‘토스카’ 제작발표회에서 게오르규는 “푸치니 서거 100주년을 기념하는 해에 한국에서 이 오페라에 참여하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말했다. “제 조국 루마니아와 ‘토스카’는 남다른 인연이 있어요. 1900년 이 오페라가 로마에서 초연될 때 루마니아 소프라노 하리클레아 다르클레가 토스카 역을 노래했고, 2막의 유명한 아리아 ‘노래에 살고 사랑에 살고’는 푸치니가 다르클레의 요구에 따라 작곡해 넣은 곡이거든요.” 그는 “푸치니는 여성의 특징과 성격, 열정과 질투 등 모든 사람이 느끼는 감정을 가장 잘 묘사한 작곡가”라며 “‘토스카’는 특히 원작의 긴 내용을 줄이고 24시간 이내 진행되는 사건에 극적으로 집중해 더 매력적이다”라고 말했다. 게오르규는 베누아 자코 감독의 2001년 영화판 ‘토스카’에 출연해 열정적인 연기로 격찬을 받은 바 있다. 게오르규는 “어제 임세경 씨의 노래를 들었는데 환상적인 목소리에 놀랐다”고 전했다. 임세경은 “홀수 날짜 출연진과 짝수 날짜 출연진의 개성이 너무나 다르다. 청중이 두 출연진을 비교하며 들어볼 수 있다면 매우 흥미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공연을 맡은 표현진 연출가는 “전쟁이라는 키워드로 무대를 펼쳐낼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 오페라는 1800년 나폴레옹 전쟁이 배경이죠. 1막이 열리면 신성한 공간인 성당이 파괴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 순간에도 우리는 전쟁의 공포 속에 살고 있음을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토스카의 연인인 화가 카바라도시 역에는 테너 김재형과 김영우, 악당인 스카르피아 역에는 바리톤 사무엘 윤과 양준모 등 유럽 주요 무대와 한국을 오가며 활동해온 성악가들이 출연한다. 사무엘 윤은 2016년 영국 로열오페라 ‘토스카’ 공연에 게오르규와 함께 출연한 바 있다. 제작발표회에서 3막 아리아 ‘별은 빛나건만’을 열창한 김영우는 “올해만 유럽 등에서 ‘토스카’에 50여 회 출연하게 되는데 서울시오페라단 공연은 30회째 정도가 될 것”이라고 소개했다. 반주는 부천시립교향악단이 맡으며 울름 시립극장 수석지휘자를 지낸 지중배가 지휘한다. 지중배는 “‘토스카’에 나타난 인물들은 허구이지만 실제 역사적인 사실이 상세히 담겨 있어 인물들에게 공감이 된다. (임세경이 소개한 것처럼) 두 팀의 색깔이 크게 달라 한 팀만 관람하면 정말 후회될 수 있다”고 말했다. 5일 오후 7시 반, 8일 오후 5시에는 게오르규, 김재형, 사무엘 윤이, 6일 오후 7시 반, 7일 오후 5시에는 임세경, 김영우, 양준모가 무대에 오른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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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고도로 계산된 상징과 은유… 수학, 수사학이 되다

    “군인 10명이 적군 15명을 물리치고 4명의 사상자를 낸다고 생각해 보자. 15 나누기 4는 3.75이므로 승리한 군대의 투지가 3.75배 크다고 할 수 있다.” 작가 톨스토이가 ‘전쟁과 평화’에서 한 말이다. 그는 “다양한 역사적 단위를 방정식에 적용하면 특정 법칙이 존재해야 하고, 일련의 숫자를 발견할 수 있다”고 선언한다. 문학과 수학은 얼핏 만나는 점이 별로 없어 보인다. 하지만 ‘시는 일종의 영감을 받은 수학으로 인간 감정의 방정식을 묘사한다’(에즈라 파운드)같은 말을 들으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2020년부터 3년 동안 영국수학사학회 회장을 지낸 저자는 “수학이 문학적 비유를 사용하듯 문학에도 수학자의 눈으로 간파하고 탐구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많다”고 소개한다. 책에 나오는 수학적 개념 모두가 톨스토이의 ‘투지 방정식’처럼 쉽게 파악되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을 쓰는 동기가 된 멜빌의 소설 ‘모비 딕’에는 화자(話者) 이슈메일이 말하는 곡선 ‘사이클로이드’가 나온다. “냄비 속의 비눗돌을 보면서 나는 사이클로이드를 따라 미끄러지는 모든 물체가 정확히 같은 시간에 어느 지점에서 내려올 것이라는 놀라운 사실을 깨달았다.” 사이클로이드란 원을 직선 위에서 굴렸을 때 원 위의 한 점이 그리는 곡선을 말한다. 이 개념은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나 스턴의 ‘트리스트럼 섄디’에도 등장한다. 걸리버는 날아다니는 섬 라퓨타에서 사이클로이드 모양으로 자른 푸딩을 먹는다. 3부로 구성된 책의 1부는 시의 운율 등 문학의 밑바탕에 존재하는 수학을 탐구한다. 압운(押韻)과 음보(音步)가 있는 서구 시의 경우 수많은 조합의 형식이 가능하다. 레몽 크노가 1961년 발표한 ‘100조(兆) 편의 시’엔 14행으로 된 10개의 소네트(짧은 시의 일종)가 실려 있다. 각각의 행을 임의로 조합해 읽으면 10의 14제곱, 즉 100조 편의 시가 나올 수 있다. 만약 저자가 한국 전통 문학을 탐구했다면 ‘3-4-3-4(…)’의 음수율을 기본으로 하는 시조에 대해 언급했을 듯하다. 2부에서는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수학적 은유와 암시들이 소개된다. 단테 ‘신곡’의 연옥편과 천국편은 33개 장으로 돼 있지만 지옥편만은 34개 장으로 되어 있다. 3은 ‘성삼위일체’와 연관된 숫자로 여겨졌으며 이를 깨뜨린 것은 지옥의 상징이 된다. 수학자 루이스 캐럴이 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엔 42개 삽화가 있고 앨리스의 나이는 7세 6개월, 7과 6을 곱하면 42가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체스 게임 여왕의 나이는 날짜로 환산해 3만7044일인데 이는 42의 세제곱을 2로 나눈 것이다. 3부는 수학과 수학자가 직접 등장하는 작품들을 소개한다. 코넌 도일의 ‘셜록 홈즈’에 나오는 악당 모리아티는 수학자다. 수학적인 지적 능력에서 홈즈와 동등하기 때문에 함께 폭포에서 떨어져 죽는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앨리스 먼로는 ‘너무 많은 행복’에서 주인공인 수학자 코발렙스카야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수학을 건조하고 메마른 과학이라고 생각하지. 하지만 영혼의 시인이 되지 않고는 수학자가 될 수 없어.” 2023년 나온 이 책의 원제는 ‘Once upon a prime’이다. ‘옛날 옛적에’를 뜻하는 ‘Once upon a time’을 살짝 비튼 것으로 ‘prime’은 수학에서 소수(素數)를 뜻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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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로와 피아노, 낭만이 넘치는 무대 기대하세요”

    현악기와 피아니스트의 듀오 연주는 ‘기술적으로’ 어느 쪽이 비중이 크다고 하기 힘들다. 고전주의 이전의 현악 소나타는 ‘첼로(또는 바이올린)가 딸린 피아노 소나타’로 흔히 표기되기도 했을 정도로 피아노의 역할은 크다. 그런데도 듀오 리사이틀에는 흔히 ‘○○○ 첼로(바이올린) 리사이틀’이라는 제목이 붙기 일쑤다. 9월 8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무대에 오르는 첼리스트 이원해(33)와 피아니스트 최형록(31)은 ‘이원해 & 최형록 듀오 리사이틀 로맨틱 로드’를 제목으로 내세웠다. 23일 화상으로 만난 두 사람 중 이원해는 “프로그램을 정할 때 피아니스트의 비중이 큰 곡들이라고 느꼈다. 첼리스트와 피아니스트가 같은 조명을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 두 사람은 슈만의 환상소곡집 작품 73과 쇼팽의 첼로 소나타 G단조, 라흐마니노프의 첼로 소나타 G단조를 연주한다. ‘로맨틱 로드’라는 리사이틀 제목 그대로 19세기 중반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는 낭만주의 감성이 전해지는 선곡이다. 의외로 이원해는 “학창 시절에는 감성적인 음악이 편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개인적인 감정을 표출하는 게 어려웠고 현대곡이 더 편했죠. 이번 공연에서는 감정 표현에서도 더 성장했음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쇼팽과 라흐마니노프의 소나타는 각각 두 작곡가의 유일한 첼로 소나타다. 쇼팽의 소나타는 그가 생전에 출판한 마지막 작품이며, 피아노곡에 몰두했던 이 작곡가가 드물게 현악기를 사용한 작품이기도 하다. 최형록은 “세 곡 모두 피아노의 비중이 높다. 소리의 층을 섬세하게 구분해서 더 잘 들려야 하는 소리와 조금 덜 들리게 해야 하는 소리의 밸런스를 맞추는 데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해는 프랑스 루아르 국립오케스트라 첼로 부수석을 지냈고 현악4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의 첼로 연주자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최형록은 일본 센다이 국제 콩쿠르 피아노 부문에서 우승했으며 독일 뮌스터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에서 명교사 아르눌프 폰 아르님을 사사하고 있다. 누나인 가수 최해든(최효인)과 2인조 그룹 ‘블리쉬 녹턴’으로 활동하는 특이한 경력도 가지고 있다. 악기 소개를 부탁하자 이원해는 “1715년산 마테오 고프릴러 첼로를 사용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저음은 파고드는 듯한 묵직한 소리가 나고, 고음은 크고 울림이 좋은 홀에선 걷잡을 수 없이 좋은 소리가 납니다. 이번에 연주할 IBK챔버홀은 악기와 홀이 서로를 잘 받는 것 같아 기대하고 있습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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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2년만에 만나는 초절정 피아노 기교

    ‘가장 학구적인 음반사’ 하이피리언 소속으로 60여 장의 음반을 발매해 온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마르크앙드레 아믈랭(63)이 9월 8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다. 10년 만의 방한 예정이었던 2022년 리사이틀이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무산되고 2년 만이다. 아믈랭의 레퍼토리는 하이든에서 현대곡까지 방대하다. 이번 리사이틀에는 슈만 ‘숲의 정경’, 라벨 ‘밤의 가스파르’,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21번 등 세 곡을 메인 프로그램으로 들고 온다. ‘밤의 가스파르’는 2022년 예정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로 아믈랭이 한국 청중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어 프로그램에 넣었다고 공연 주최사인 더브리지컴퍼니는 밝혔다. 이 곡의 3악장 ‘스카르보’는 ‘기교파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아믈랭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캐나다의 프랑스어 지역인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태어난 아믈랭은 아마추어 피아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20세기의 기교파 피아노 작곡가인 알캉, 고도프스키, 소라브지 등의 작품을 연마했다. 11번이나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에코 클래식 피아노 부문 올해의 연주자상, 디아파송 올해의 음반상 등을 받았다. 그가 직접 작곡하고 연주한 에튀드(연습곡) 음반은 독일 음반비평가상을 수상했다. 미국 뉴요커 매거진의 음악평론가 앨릭스 로스는 ‘아믈랭은 엄청난 기교뿐 아니라 깊이 있는 탐구로도 존중받는 피아니스트’라고 평했다. 올해 6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을 연 피아니스트 샤를 리샤르아믈랭(35)과는 친인척 관계가 아니고 이름의 띄어쓰기도 다르지만 두 사람은 종종 피아노 듀오로 함께 무대에 선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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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로의 황금기’를 만나다

    ‘첼로의, 첼로에 의한, 첼로를 위한 페스티벌’을 표방하는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인 서울’이 네 해째 축제를 마련한다. ‘첼로 스쿨(유파)의 역사’를 주제로 9월 6, 8, 10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세 차례 공연을 연다. 이 축제 홍채원 음악감독(첼리스트)은 “화려한 기교와 폭넓은 음역을 보여줄 수 있는 첼로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거장들의 도전으로 발전을 거듭했는지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올해 축제엔 심준호, 이호찬 등 한국 첼리스트 11명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유다윤, 비올리스트 김규현 이해수, 호르니스트 김홍박 이석준 등이 출연한다.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와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대 교수로 활동 중인 옌스 페터 마인츠는 10일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협연 무대를 가지며 8일 콘서트에도 출연한다. 6일 ‘첼로의 황금기’ 콘서트에서는 베토벤과도 영향을 주고받은 뒤포르 형제, 안톤 크라프트 등 첼로의 기교를 크게 확대한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8일 ‘첼로 연주의 근본’ 콘서트에서는 모차르트 ‘음악의 농담’,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D장조, 판브레이 ‘네 현악4중주를 위한 알레그로’ 등 다양한 악기가 등장하거나 한층 편성이 큰 작품들을 연주한다. 마인츠의 리사이틀인 10일 ‘베토벤과의 그랑 듀오’에서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1, 3, 4번과 그에게 첼로 기법의 영향을 준 크라프트의 ‘그랑 듀오’, 장피에르 뒤포르의 소나타를 감상할 수 있다. 2021년 시작된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인 서울’은 2022년 첼리스트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72곡의 새 작품을 선보였으며 2023년에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들을 위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세르비아 등 동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을 서울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소개했다. 올해엔 공연 외 정상급과 어린 첼리스트들이 함께 하는 첼로 페다고지(교육법) 세미나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축제의 홍채원 음악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과 인디애나대 음대 전문연주자 과정, 미시간주립대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아람 하차투랸 국제 첼로 콩쿠르 3위와 청중상, 최고 베토벤 특별상을 수상했다. 마인츠는 1994년 당시 17년 동안 우승자를 내지 못했던 독일 ARD 국제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최연소 우승했으며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악단 및 아티스트들과 협연해 왔다. 독일 음반 비평상과 프랑스 디아파종 황금상, 에코 음반상 등을 수상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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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로의, 첼로에 의한, 첼로를 위한’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첼로의, 첼로에 의한, 첼로를 위한 페스티벌’을 표방하는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인 서울이 네 해 째 축제를 마련한다. ‘첼로 스쿨(유파)의 역사’를 주제로 9월 6, 8, 10일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세 차례 공연을 연다. 이 축제 홍채원 음악감독(첼리스트)은 “화려한 기교와 폭넓은 음역을 보여줄 수 있는 첼로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거장들의 도전으로 발전을 거듭했는지를 다양한 작품들을 통해 소개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올해 축제엔 심준호, 이호찬 등 한국 첼리스트 11명과 바이올리니스트 김다미 유다윤, 비올리스트 김규현 이해수, 호르니스트 김홍박 이석준 등이 출연한다. 독일 베를린 국립음대와 스페인 마드리드 왕립음대 교수로 활동 중인 옌스 페터 마인츠는 10일 피아니스트 김태형과 협연 무대를 가지며 8일 콘서트에도 출연한다. 6일 ‘첼로의 황금기’ 콘서트에서는 베토벤과도 영향을 주고받은 뒤포르 형제, 안톤 크라프트 등 첼로의 기교를 크게 확대한 거장들의 작품을 선보인다. 8일 ‘첼로 연주의 근본’ 콘서트에서는 모차르트 ‘음악의 농담’, 하이든 첼로 협주곡 2번 D장조, 반 브리 ‘네 현악4중주를 위한 알레그로’ 등 다양한 악기가 등장하거나 한층 편성이 큰 작품들을 연주한다. 옌스 페터 마인스의 리사이틀인 10일 ‘베토벤과의 그랑 듀오’에서는 베토벤의 첼로 소나타 1, 3, 4번과 그에게 첼로 기법의 영향을 준 안톤 크라프트의 ‘그랑 듀오’, 장피에르 뒤포르의 소나타를 감상할 수 있다. 2021년 시작된 ‘모스틀리 첼로 페스티벌 인 서울’은 2022년 첼리스트 작곡가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72곡의 새 작품을 선보였으며 2023년에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나라들을 위로하기 위해 우크라이나와 폴란드, 세르비아 등 동유럽 작곡가들의 작품을 서울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에서 소개했다. 올해엔 공연 외 정상급과 어린 첼리스트들이 함께 하는 첼로 페다고지(교육법) 세미나도 개최할 예정이다. 이 축제의 홍채원 음악감독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과 인디애나 음대 전문연주자 과정, 미시건 주립대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아람 하차투리안 국제 첼로 콩쿠르 3위와 청중상, 최고 베토벤 특별상을 수상했다. 옌스 페터 마인츠는 1994년 당시 17년 동안 우승자를 내지 못했던 독일 ARD 국제콩쿠르 첼로 부문에서 최연소 우승했으며 로얄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등 세계 정상급 악단 및 아티스트들과 협연해 왔다. 독일 음반 비평상과 프랑스 디아파송 황금상, 에코 음반상 등을 수상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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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토벤은 나의 음악 선생이자 인생 스승”

    “베토벤은 제 음악의 선생님이죠. 그다음으로는 인생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수원시립교향악단 최희준 예술감독(51·사진)이 롯데콘서트홀의 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에 ‘올 베토벤’ 프로그램을 들고 온다. 다음 달 8일 열리는 클래식 레볼루션 이틀째 콘서트에서 베토벤 ‘피델리오 서곡’과 피아노협주곡 3번(김태형 협연),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그는 자신에게 베토벤이 갖는 의미와 이번 프로그램에 담은 의미를 담담히 풀어놓았다. “베토벤의 교향곡은 논리적이고 구조적이어서 수백 년을 갈 수 있는 단단한 건축물과 같습니다. 또한 치명적인 청각장애를 예술로 극복해낸 그의 일생 앞에 음악가들은 겸허히 고개를 숙이게 되죠.” 이번 콘서트 첫 곡인 ‘피델리오’ 서곡은 베토벤이 쓴 유일한 오페라의 서곡으로 프랑스 혁명기의 계몽적이고 해방적인 시대 분위기가 들어 있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클래식의 혁명이라는 뜻이죠. 이 오페라에서 피델리오가 보여준 용기와 사랑의 힘이 바로 혁명의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베토벤의 교향곡 중 초기 작품에 속하는 교향곡 2번은 ‘올 베토벤 프로그램’ 메인곡으로 흔한 선택은 아니다. “이 교향곡에는 정적인 에너지가 많이 느껴집니다. 베토벤이 치명적인 청각장애로 고민하던 시기에 작곡됐죠. 전체적으로 밝지만 어두움이 공존하고, 절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서는 의미를 담은 작품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쓰인 피아노협주곡 3번에도 ‘나는 음악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것이다’란 의지가 드러납니다.” 최희준은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과 드레스덴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고, 바트 홈부르크 지휘 콩쿠르에서 1위로 입상했다. 독일 작센 주립극장 부지휘자를 지냈으며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현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전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현재 한양대 교수도 맡고 있다.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수원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은 그를 ‘역대 베스트 지휘자’로 꼽은 바 있다. “단원들이 지금의 음악적인 소통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편이고, 단원들은 함께 가려고 하는 의지가 크게 느껴지거든요. 그런 의지들이 모여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올해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은 9월 7일 인천시립교향악단 콘서트로 시작해 8일 최희준 지휘 수원시향을 거쳐 9일 최수열 지휘 한경아르테필, 10일 김선욱 지휘 경기필, 11일 사오자 뤼 지휘 KBS교향악단 콘서트로 이어진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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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토벤은 음악의 선생님이자 인생의 선생님”

    “베토벤은 제 음악의 선생님이죠. 그 다음으로는 인생의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다.”수원시립교향악단 최희준 예술감독(51)이 롯데콘서트홀의 음악축제 ‘클래식 레볼루션’에 ‘올 베토벤’ 프로그램을 들고 온다. 다음 달 8일 열리는 클래식 레볼루션 이틀째 콘서트에서 베토벤 ‘피델리오 서곡’과 피아노협주곡 3번(김태형 협연), 교향곡 2번을 들려준다. 19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만난 그는 자신에게 베토벤이 갖는 의미와 이번 프로그램에 담은 의미를 담담히 풀어놓았다.“베토벤의 교향곡은 논리적이고 구조적이어서 수백 년을 갈 수 있는 단단한 건축물과 같습니다. 또한 치명적인 청각 장애를 예술로 극복해낸 그의 일생 앞에 음악가들은 겸허하게 고개를 숙이게 되죠.”이번 콘서트 첫 곡인 ‘피델리오’ 서곡은 베토벤이 쓴 유일한 오페라의 서곡으로 프랑스 혁명기의 계몽적이고 해방적인 시대 분위기가 들어있다. “‘클래식 레볼루션’은 클래식의 혁명이라는 뜻이죠, 이 오페라에서 피델리오가 보여준 용기와 사랑의 힘이 바로 혁명의 에너지가 아니었을까 합니다.”베토벤의 교향곡 중 초기 작품에 속하는 교향곡 2번은 ‘올 베토벤 프로그램’ 메인곡으로 흔한 선택은 아니다. “이 교향곡에는 정적인 에너지가 많이 느껴집니다. 베토벤이 치명적인 청각 장애로 고민하던 시기에 작곡됐죠. 전체적으로 밝지만 어두움이 공존하고, 절망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서는 의미를 담은 작품입니다. 비슷한 시기에 쓰인 피아노협주곡 3번에도 ‘나는 음악가로서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이겨낼 것이다’라는 의지가 드러납니다.”최희준은 독일 베를린 한스아이슬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과 드레스덴 국립음대 최고연주자 과정을 졸업했고, 바트 홈부르크 지휘 콩쿠르에 1위로 입상했다. 독일 작센 주립극장 부지휘자를 지냈으며 코리안심포니 오케스트라(현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전주시립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냈다. 현재 한양대 교수도 맡고 있다.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수원시립교향악단 단원들은 그를 ‘역대 베스트 지휘자’로 꼽은 바 있다.“단원들이 지금의 음악적인 소통에 대해 만족하고 있다는 뜻인 것 같습니다. 저는 많은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편이고, 단원들은 함께 가려고 하는 의지가 크게 느껴지거든요. 그런 의지들이 모여서 그런 얘기가 나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올해 롯데콘서트홀 ‘클래식 레볼루션’은 9월 7일 인천시립교향악단 콘서트로 시작해 8일 최희준 지휘 수원시향을 거쳐 9일 최수열 지휘 한경아르테필, 10일 김선욱 지휘 경기필, 11일 샤오 치아 뤼 지휘 KBS 교향악단 콘서트로 이어진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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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버 ‘마탄의 사수’, 악마의 곡예로 다시 태어나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1821년)에서 여주인공 아가테는 “구름이 하늘을 가려도 태양은 그 위에 빛난다”며 “그곳은 맹목의 우연(blindem Zufall)을 받들지 않고 거룩한 의지(heiliger Wille)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노래한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의 호숫가 무대에서 지난달 16일 공개된 브레겐츠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의 ‘마탄의 사수’는 거룩한 의지의 승리를 노래한 원작을 뒤집었다. 이달 11일 브레겐츠 현장에서 이 작품을 관람했다. 원작에서 2막의 마술탄환 제조 장면에만 등장하는 악마 자미엘은 이번 무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누비며 주인공들의 행위를 조종했다. 마치 ‘이 지상은 마성과 맹목의 우연이 지배하는 곳’임을 선언하는 것 같았다. 파격적인 무대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TV 드라마와 영화, 연극 무대에서 전방위로 활약해온 연출가 필리프 슈퇼츨이었다. 2021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베르디 ‘리골레토’로 화제를 몰고 왔던 그는 이번 무대에도 수많은 서커스적 장치를 끌어들였다. 원형의 불길이 물속에서 악당 카스파르를 둘러싸고, 악마는 해골로 된 말과 마차를 달린다. 여주인공 아가테는 기울어진 침대에서 히스테리에 시달린다. 이런 정도까지는 미리 예상할 만한 슈퇼츨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발짝 더 나갔다. 첫 부분부터 총 맞은 아가테와 교수형 당하는 남주인공 막스를 보여준다. 이후 극은 일종의 ‘플래시백’이 되고, 끝부분에서 연출가는 또는 악마 자미엘은 처음에 제시한 결말을 스스로 철회한다. 그 모든 과정이 악마의 계획과 지배 아래 이뤄진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20세기 중반 이후 노골화된 급진적 연출 경향 ‘레지테아터(Regietheater)’는 기존 오페라의 배경은 물론이고 기본적 플롯까지 뒤집어 왔다. 이번 ‘마탄의 사수’에선 음악에까지 칼날이 가해졌다. 서곡부터 주인공 막스와 아가테의 중요 아리아들은 중간이 뚝 잘린 채 새롭게 창작된 대사들이 삽입됐다. 무대 오른쪽에는 첼로와 하르모늄(풍금과 비슷한 건반악기), 타악기로 구성된 밴드가 새로 창작된 민속풍 선율을 연주했다. 이런 공연물을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로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차라리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변용해 만든 새 장르의 공연물’임을 표방하는 것이 나은 것처럼 보였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마탄의 사수’는 17일까지 공연됐고 내년 7∼8월로 이어진다. 이 공연에 앞서 9일 이탈리아 토스카나주의 토레델라고에서 열린 푸치니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의 ‘토스카’를 관람했다. 흑백의 프로젝션 장치는 무대 위에 실제 입체 설치물을 구현한 듯한 효과를 주었다. 카바라도시 역의 테너 알레한드로 로이는 또렷하고 맑은 서정적 테너와 드라마티코(극적) 테너를 오가는 발성으로 배역에 몰입감을 선사했다. 10일 이탈리아 베로나 야외극장에서는 1913년 이곳에서 열린 베르디 ‘아이다’ 공연을 오마주한 ‘아이다 1913’ 공연이 열렸다. 기존의 익숙한 ‘아이다’에 비해 약하게 설정된 조명과 다양한 색감의 무대장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라다메스 역의 테너 표트르 베차와의 영웅적이고 또렷한 음성은 무대를 사로잡았다. 지휘자 다니엘 오렌의 무대 장악력은 2005년 베로나에서 처음 관람한 ‘아이다’에서처럼 여전히 경탄스러웠다. 오렌은 10월 12∼19일 서울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공연을 지휘한다. 브레겐츠·토레델라고·베로나=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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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수 위의 오페라… 그것은 ‘베버의 마탄의 사수’가 아니었다

    카를 마리아 폰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1821)에서 여주인공 아가테는 “구름이 하늘을 가려도 태양은 그 위에 빛난다”며 “그곳은 맹목의 우연(blindem Zufall)을 받들지 않고 거룩한 의지(heiliger Wille)가 지배하는 곳”이라고 노래한다. ‘우연’과 ‘의지’의 대비는 게르만 부족사회에서 유래한 자연신적, 주술적 세계관과 기독교의 유일신적 세계관 사이의 대립을 상징한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의 호숫가 무대에서 지난달 16일 공개된 브레겐츠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의 ‘마탄의 사수’는 거룩한 의지의 승리를 노래한 원작을 뒤집었다. 이달 11일 브레겐츠 현장에서 이 작품을 관람했다. 원작에서 2막의 마술탄환 제조 장면에만 등장하는 악마 자미엘은 이번 무대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무대를 누비며 주인공들의 행위를 조종했다. 마치 ‘이 지상은 마성과 맹목의 우연이 지배하는 곳’임을 선언하는 것 같았다. 파격적인 무대를 탄생시킨 주인공은 TV 드라마와 영화, 연극 무대에서 전방위로 활약해온 연출가 필립 슈퇼츨이었다. 2021년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베르디 ‘리골레토’로 화제를 몰고 왔던 그는 이번 무대에도 수많은 서커스적 장치를 끌어들였다. 원형의 불길이 물속에서 악당 카스파르를 둘러싸고, 악마는 해골로 된 말과 마차를 달린다. 여주인공 아가테는 기울어진 침대에서 히스테리에 시달린다. 마을이 불길에 휩싸이고 교회탑이 폭발한다. 이런 정도까지는 미리 예상할만한 슈퇼츨의 몫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러 발짝 더 나갔다. 첫 부분부터 총 맞은 아가테와 교수형당하는 남주인공 막스를 보여준다. 이후 극은 일종의 ‘플래시백’이 되고, 끝부분에서 연출가는, 또는 악마 자미엘은 처음에 제시한 결말을 스스로 철회한다. 그 모든 과정이 악마의 계획과 지배 아래 이뤄지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악마 자미엘이 무대를 끌고 가는 만큼 원작에 대한 조롱은 피할 수 없다. 아가테의 친구 엔헨은 레즈비언으로 설정되었고, 막스는 사냥꾼이 아닌 마을 서기(書記)가 된다. 원작에서 경건의 상징과도 같았던 순결한 아가테는 막스의 아기를 가진다. 베버의 음악이 그려내는 경건함은 ‘불경한’ 미장센과 계속해서 마찰을 빚는다. 그런 마찰음도 연출가의 성과라면 성과다. 20세기 중반 이후 노골화된 급진적 연출 경향 ‘레지테아터’(Regietheater)’는 기존 오페라의 배경은 물론 기본적 플롯까지 뒤집어 왔다. 이번 ‘마탄의 사수’에선 음악에까지 칼날이 가해졌다. 서곡부터 주인공 막스와 아가테의 중요 아리아들은 중간이 뚝 잘린 채 그 사이에 새롭게 창작된 대사들이 삽입됐다. 무대 오른쪽에는 첼로와 하르모늄(풍금과 비슷한 건반악기), 타악기로 구성된 밴드가 새로 창작된 민속풍 선율을 연주했다. 이런 공연물을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로 부를 수 있는 것일까. 차라리 ‘베버 오페라 마탄의 사수를 변용해 만든 새 장르의 공연물’임을 표방하는 것이 나을 것처럼 보였다. 이번 공연의 성격은 슈베르트 가곡집 ‘겨울 나그네’를 편집한 한스 젠더의 음악극 ‘겨울 나그네’와 비교할 만했다. 삽입된 민속 선율의 느낌도 젠더의 음악극과 비슷했다. 브레겐츠 페스티벌의 ‘마탄의 사수’는 17일까지 공연됐고 내년 7~8월로 이어진다. 이 공연에 앞서 9일 이탈리아 토스카나 주의 토레델라고에서 열린 푸치니 야외 오페라 페스티벌의 ‘토스카’를 관람했다. 높은 해상도에 치중한 흑백의 프로젝션 장치는 무대 위에 실제 입체 설치물을 구현한 듯한 효과를 주었다. 카바라도시역 테너 알레한드로 로이는 또렷하고 맑은 서정적 테너와 드라마티코(극적) 테너를 오가는 발성으로 배역에 몰입감을 선사했다. 토스카역 소프라노 에리카 그리말디는 평소의 ‘날이 선’ 토스카보다 힘이 떨어지는 모습을 나타냈다. 스카르피아 역 에르빈 슈로트는 전형적인 악역으로는 음성이 밝은 편이었지만 절묘한 강약의 배합과 공들인 연기로 갈채를 받았다. 10일 이탈리아 베로나 야외극장에서는 1913년 이곳에서 열린 베르디 ‘아이다’ 공연을 오마주한 ‘아이다 1913’ 공연이 열렸다. 기존의 익숙한 ‘아이다’에 비해 약하게 설정된 조명과 다양한 색감의 무대장치들이 눈에 들어왔다. 라다메스 역 테너 표트르 베차와의 영웅적이고 또렷한 음성은 무대를 사로잡았다. 반면 아이다 역 마리아 호세 시리는 음성연기와 무대 위에서의 존재감 모두 큰 인상을 주지 못했다. 지휘자 다니엘 오렌의 원숙한 무대 장악력은 2005년 베로나에서 처음 관람한 ‘아이다’에서처럼 여전히 경탄스러웠다. 오렌은 10월 12~19일 서울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2024 오페라 투란도트 아레나 디 베로나 오리지널’ 공연을 지휘한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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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 번째 ‘랑데뷰 드 라 무지크 페스티벌’ 22일 개막

    세 번째 해를 맞은 한여름 실내악의 향연 ‘랑데뷰 드 라 무지크 페스티벌’이 22~25일 서울 예술의전당 음악당에서 열린다. 2005년 17세로 부소니 국제 콩쿠르 3위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김혜진이 예술감독을 맡고,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미 백주영, 첼리스트 이호찬 김민지, 플루티스트 박예람, 피아니스트 그레이스 여와 예수아, 현악4중주단 이든 콰르텟과 리수스 콰르텟, 앙상블 에드무지카 등이 출연한다.올해 페스티벌의 주제는 ‘RE:sonance 울림의 발견’이다. 시간의 흐름을 초월해 음악의 여정을 재탐구하고 소리를 넘어선 감동의 울림을 전하겠다는 뜻이라고 김혜진 음악감독은 설명했다.22일 오프닝 공연은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다. ‘랑데뷰 살롱’이라는 제목으로 스메타나의 피아노 3중주 G단조, 바버 네 손을 위한 피아노 모음곡 ‘추억’ 등을 소개한다. 23일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메타모르포젠’ 콘서트에서는 국내 초연하는 존 윌리엄스의 ‘노래와 소박한 선물’로 시작해 앙상블 에드무지커가 연주하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메타모르포젠’으로 끝을 맺는다.주말 공연인 24, 25일 공연은 오후 2시에 열린다. 24일 열리는 ‘사운즈 리바이벌: 앙코르 2022’ 공연에서는 2022년 이 축제에서 국내 초연된 아이브스의 피아노 3중주와 김택수 ‘디포 베이의 일몰’ 등을 소개한다. 축제는 25일 인춘아트홀에서 열리는 클로징 콘서트 ‘경이로운 환상: 오마주’에서 라벨의 피아노 3중주와 국내 초연곡인 리나 에스메일의 피아노 3중주 등으로 문을 닫는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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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클래식感]오페라 대스타의 집에서 어린 시절의 우상을 만나다

    모데나는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 남쪽에 자리 잡은 인구 18만 명의 도시다. 대성당과 궁전이 있는 아름다운 도시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5km 남짓 떨어진 평원 한가운데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집 박물관’이 있다. 세계인을 사로잡은 전설적인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1935∼2007)가 만년을 보내고 삶을 마친 곳이다. 2015년 지금의 모습과 같은 박물관이 되었다. 10일 찾은 이곳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 이어 열 달 만이다. 박물관 홈페이지의 소개에 특별히 덧붙일 말은 없다. “이 집에는 파바로티가 사랑했던 물건들이 있으며 가족, 친구, 학생들과 보낸 나날들의 추억이 전시되어 있다. 따뜻한 빛이 공간을 채우고 하늘을 바라보는 거대한 창문이 방을 비추며 프랭크 시나트라, 다이애나 공주와 같은 친구들의 사진과 그림, 편지를 볼 수 있다. 오페라 의상과 독특한 기념품, 수많은 상패가 그의 빛나는 경력을 보여주지만 일상적인 물건들은 이 위대한 예술가 뒤에 있는 소박한 인물을 보여 준다.” 모데나에서 태어난 파바로티는 1970년대 초반 예술적 정점에 올랐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지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주빈 메타 지휘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함께한 푸치니 ‘투란도트’ 등이 이 무렵 녹음됐고, 세계 음악 팬들은 파바로티의 마법에 사로잡혔다. 어린 나도 대기권으로 태양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듯한 파바로티의 목소리에 매혹됐다. 1977년 늦가을, 파바로티는 대한민국의 이화여대 대강당을 찾아왔다. 그가 부른 모든 노래가 세부까지 정확히 머릿속에 남아 있다. 조르다니 ‘카로 미오 벤’, 토스티 ‘마레키아레’, 앙코르로 노래한 도니체티 오페라 ‘사랑의 묘약’ 중 ‘남몰래 흐르는 눈물’…. 공연장에 간 것은 아니었다. 주최사인 MBC는 공연 실황을 TV로 중계했고 성악 팬인 나와 형은 처음부터 끝까지 꼬박 앉아 이 공연을 시청했다. 공연은 며칠 뒤 라디오로 방송됐고 형제는 카세트 리코더로 공연을 녹음했다. 그해 겨울 내내 닳고 닳도록 이 테이프를 들었다. 언젠가부터 이 카세트의 행방을 찾을 수 없게 됐다. 아쉽긴 했지만 아쉬움이 크지는 않았다. 그 공연의 모든 것이 머릿속에 그려지듯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약간은 놀라운, 조금은 의아한 발견도 있었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몬트리올의 파바로티, 1977’이라는 음원을 보게 됐다. 글루크 오페라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에우리디체 없이 어찌 할까’, 베토벤 ‘이 어두운 무덤 속에’, 도니체티 ‘뱃노래’ 등 세 곡이 들어 있었다. 세 곡 모두 파바로티가 같은 해 서울에서 부른 곡이다. 사소한 강약 변화나 가사(딕션)의 사소한 부분까지 머릿속에 남아 있는 노래와 일치했다. 물론 파바로티가 그 시절 세계 곳곳에서 닳고 닳도록 노래한 레퍼토리이니 똑같이 들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혹시 이 음원을 게시한 사람은, 실은 서울에서 녹음된 ‘출처불명’의 노래들에 그럴싸한 지명을 붙인 것은 아닐까? 모데나는 파바로티와 동갑내기인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1935∼2020)의 고향이기도 하다. 프레니 역시 일세를 풍미한 대가수였으며 두 사람은 남다른 인연이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탈리아를 지배한 파시스트는 사회 효율화의 일환으로 여성들을 공장에 보냈다. 엄마가 일하는 동안 어린 아기들은 ‘전담 유모’의 젖을 먹었다. 파바로티와 프레니에게 젖을 먹인 유모는 같은 여성이었다. 프레니는 ‘덩치 큰 파바로티가 젖을 독차지하지 않았을까?’라는 물음에 “루치아노(파바로티)는 10월생이고 저는 2월생이거든요. 제가 누나고 그땐 덩치도 더 컸겠죠”라며 웃음을 지었다. 나는 5년 전 다큐멘터리 영화 ‘파바로티’를 소개하면서 ‘프레니가 (파바로티에 대해) 한마디도 들려주지 않은 점이 의아하다’고 적었다. 다큐 제작 당시 프레니가 병석에 누워 있었던 점을 몰랐던 것이다. 오늘날 한류가 전 세계를 열광시키고 있지만 반세기 전 대한민국의 한 어린이는 ‘이탈리아류’, ‘I-오페라’에 열광했다. 그 시대를 회상하는 한 남자는 파바로티가 웃고 떠들며 특유의 ‘살인미소’를 짓던 그 공간에서 어린 시절의 우상을 만난다. ―이탈리아 모데나에서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 2024-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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