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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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11-25~2025-12-25
문학/출판25%
역사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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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정생 작가는 생명 억압하는 모든 것 고발”

    “권정생은 말로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글로 정착되는 시대를 경험한 작가다. 그의 문학은 말과 글이 혼재하는 커다란 저수지와 같다.”(아동문학평론가 엄혜숙) ‘강아지똥’ ‘몽실언니’를 쓴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사진)의 10주기인 17일을 맞아 그의 문학세계를 연구한 책이 발간되고 작품이 재출간되는 등 그의 삶과 문학이 재조명되고 있다. 권정생은 1968년부터 경북 안동시 일직면의 흙담집에 살며 동화 동시 소년소설 그림책 산문 등 광범위한 작품을 남겼다. ‘권정생의 문학과 사상’(소명출판)의 저자 엄혜숙 씨는 책에서 “권정생은 전근대와 근대를 아우르며 농경사회가 돈에 의해 변모해 가는 과정을 그려냈다”며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생명을 억압하는 모든 것들을 고발하고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책은 기독교 실존주의, 기독교 아나키즘, 생태 아나키즘을 키워드로 그의 사상 변화를 분석한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도 8월 중에 서울 강남구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서 그의 삶과 문학을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똘배어린이문학회 회원들의 추모 글을 엮은 문집 ‘그리운 권정생 선생님’(단비)도 출간됐다. 권정생의 작품들도 잇따라 재출간되고 있다. 이달에만 ‘빼떼기’(창비), ‘하느님의 눈물’(산하),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산하), ‘복사꽃 외딴집’(단비)이 발간되는 등 올해 7권의 작품이 다시 나왔다. 전시회도 열린다. 대전 중구 계룡문고는 8월 26일까지 유품과 작품을 모은 ‘보고 싶은 권정생’ 전시를 연다. 출판사 창비는 김환영 작가가 그린 ‘빼떼기’의 원화를 서울 서교동 창비서교빌딩에서 전시하고 있다. 다음 달 16일에는 권정생 연구자인 이기영 씨가 쓴 ‘작은 사람 권정생’의 북콘서트가 열린다. 권정생은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는 어린이에게 돌려주는 것이 마땅하다”고 했다. 그의 유언에 따라 설립된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은 소외지역 공부방에 책을 지원하고 북한 어린이들에게 급식을 지원하는 사업 등을 벌여왔다. 재단은 17일 오전 11시 경북 안동시 권정생동화나라에서 추모식을 열고 권정생창작기금을 동화 ‘할머니의 마지막 손님’의 작가 임정자 씨에게 수여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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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르 클레지오 “한강-김애란 작품서 소설의 신비로운 실체 발견”

    “이 세계적 차원의 시장에서 작가들은 고풍스러우면서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무언가를 표현한다. 이들을 자극하는 건 태고 이전의 까마득히 먼 곳에서 온 충동적 힘이다. 과거 바빌로니아와 오세아니아, 중앙아메리카의 원시림, 그리고 한반도의 금강산에서 수많은 신화를 탄생시켰던 그 동력이다.”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프랑스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가 23∼25일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에서 열리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서 발표 예정인 글이다. 2011년에 이어 6년 만에 열리는 이번 포럼에는 10개국에서 세계적 작가 13명이 참석해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를 논한다. 언론에 미리 공개된 작가들의 발제문을 살펴봤다. 르 클레지오는 ‘시장 속의 문학’이라는 글에서 한국에 각별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소설에는 신비로운 실체가 존재한다. 그것은 역사와 기억, 육체적 삶과 욕망, 그리고 꿈으로 이루어져 현실과 섞이며 현실을 변화시키는 영감”이라며 “나는 한강의 ‘채식주의자’나 김애란의 풍자적 소설 등 젊은 한국 작가들의 작품에서 이런 실체를 발견한다”고 덧붙였다. 르 클레지오는 인터넷의 확산 등 기술발전이 문학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봤다. 그는 “개인적인 창작물의 신비는 세계로 전파되며, 우리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이로움과 즐거움, 꿈의 대상을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201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벨라루스 지역을 오랫동안 취재해 기록한 일을 발표한다. ‘미래에 관한 회상’이라는 글에서 그는 “체르노빌 지대에는 우리의 지식과 상상력을 뛰어넘는 죽음이 도처에 숨어 있었다”며 “그것은 미래에 인간이 겪게 될 공포이기에 미래로부터 온 전쟁이고, 나는 미래를 기록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 조직위원장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기자간담회에서 “그의 글은 매체와 뉴스가 발달한 세상에서도 작가들이 구체적인 체험을 말하는 것이 얼마나 호소력이 큰지 알려 준다”고 했다. 폭력을 소재로 한 발표도 이어진다. 소말리아 출신의 소설가이자 극작가 누르딘 파라는 ‘나의 인생을 만든 갈등들’에서 1945년 소말리아의 오지에서 태어나 살아온 이야기를 전하며 “소말리족 내전에서 사람들은 … 이 위기의 거대함에 개인적으로 대처할 수 없기 때문에, 개인적으로든 국가적으로든 생존을 보장할 어떠한 일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도 출신의 소설가 아미타브 고시는 ‘인디라 간디의 흔적’에서 인디라 간디 총리 암살과 폭동을 소재로 문학이 폭력에 관해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벨기에 출신의 세계적 비평가 앙투안 콩파뇽은 문학 저널의 쇠락을 비롯해 읽기, 쓰기, 교육, 연구 등에서 디지털이 가져온 변화를 짚는다. 이 밖에 벤 오크리(세계화 시대 속의 문학, 문학과 문화의 신중첩 지대), 얀 코스틴 바그너(멀티미디어 시대 문학의 의미에 대한 소견), 로버트 하스(가격을 매길 수 없는 것: 시와 시장에 대한 몇 가지 기록), 히라노 게이치로(작가와 마케팅), 스튜어트 몰스롭, 하진, 오마르 페레스, 위화 등의 발표가 이어진다. 국내 작가 50여 명도 발제와 토론에 참여한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이번 포럼은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무료로 참관할 수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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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국 병합조약, 일본이 엉터리 문서로 밀어붙여”

    20여 년 동안 일본의 한국 강제 병합의 불법성을 연구해 온 저자(서울대 명예교수)가 식민지배 청산을 위해 알아야 할 점과 할 일에 대한 고찰을 모은 책이다. 20세기 한국인을 질곡으로 몰아넣은 식민지화는 엉터리 조약으로 이뤄졌다. 1905년 을사늑약은 국권 이관에 관한 조약으로 원수가 발부하는 비준서가 동반돼야 하지만 외부대신 직인만 찍혔을 뿐 비준서가 없다. 1910년 ‘한국 병합조약’은 조약문의 재질뿐 아니라 한국어와 일본어로 쓴 필체가 똑같다. 일본 측이 한국이 갖춰야 할 문건들을 일방적으로 준비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세계 조약 역사상 유례가 없다. 또 순종 황제는 병합을 국민들에게 알리는 공포 칙유(勅諭)에 서명하지 않음으로써 비준을 거부했다. 그러나 일본 신문은 한국 황제가 자진해 나라를 내놓기로 했다고 왜곡 보도했다. 저자는 일본의 근대 한국 침략의 사상적 기원으로 요시다 쇼인의 팽창주의를 꼽는다. 요시다 쇼인은 메이지 유신의 주도세력을 키운 인물로 ‘유수록(幽囚錄)’에서 일본이 서양 열강에 앞서 이웃 나라들을 선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책은 유수록의 내용을 자세히 소개한다. 당대 일본에도 평화적 해양국가로의 발전을 일본의 미래로 제시한 가쓰 가이슈 같은 인물이 있었지만 그는 팽창주의 세력에 밀려난다. 저자는 고종이 주권 수호를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기에 독살됐다고 본다. 저자는 “데라우치 총리대신은 ‘이태왕(고종)에게 1905년 11월의 보호조약을 추인하는 문서를 요구하고 이를 거부하면 독살하라’는 밀명을 조선 총독 하세가와에게 내렸다”며 “1919년 1월 19일 고종은 이를 거절했고 이틀 뒤인 21일 부푼 시신으로 발견됐다”고 말했다. 저자는 여전히 우리의 역사 인식에 잘못된 점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한반도 지배의 명분을 세우려고 명성황후를 권력욕에 불타는 여성으로, 고종을 유약하고 무능한 군주로 왜곡했다. 저자는 “일본은 최근 제국 팽창의 근원인 요시다 쇼인의 사상을 미화해 추존하고 있는 반면 한국은 100년 전 역사를 실패한 역사로 간주하고 군주에게 망국의 책임을 지우고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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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강아지똥’ 권정생 작가 10주기 추모 그림책

    암탉 깜둥이가 낳은 병아리 중 한 마리가 실수로 뜨거운 아궁이에 뛰어든다. 불에 덴 이 병아리는 부리가 문드러지고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 삐딱하게 걷게 되고, 순진이네 식구들에게 ‘빼떼기’라는 별명을 얻는다. 식구들은 어미 닭도 외면하는 이 새끼를 극진하게 보살피지만 어찌할 수 없는 이별의 순간이 닥친다. 생명이 다른 생명을 보듬을 때 생기는 온기와 생명의 숙명이 슬프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졌다. ‘강아지똥’ 등을 쓴 권정생 작가가 1988년 낸 작품으로 작가의 작고 10주기에 맞춰 다시 출간됐다. 김환영 화가가 시골에 내려가서 살며 본 닭의 모습이 강렬한 색감과 힘찬 붓질로 살아났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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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문번역 전문가들이 찾는 선생님

    “1년만 하기로 했는데 하다 보니 벌써 8년째네요. 여든 살이 넘으면 미래는 장담하지 못합니다. 현재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할 뿐이지요.” 족보나 편지, 책, 편액, 병풍 등에 쓰인 한문의 뜻을 물어오면 풀이해주는 한국고전번역원의 ‘한문 고전 자문 서비스’가 햇수로 10년째를 맞았다. 이 서비스는 2008년 시작돼 올 4월까지 이용건수가 1만3300건을 넘었다. 고전번역원 고전정보센터에 한문을 수십 년 공부한 전문가가 있어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한문의 뜻을 풀이해주지만 그 역시 막힐 때가 있다. ‘모른다’고 답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럴 때 찾는 이가 고전 번역의 ‘달인’ 노상복 고전정보센터 자문위원(80)이다. ‘전문가들의 전문가’인 그를 최근 고전번역원에서 만났다. “사서삼경을 오전에 배우면 밤 12시까지 100번을 읽어요. 반드시 100번을 읽고 다음 부분을 배웁니다. 그렇게 7서(書)를 배우고 난 뒤 재독을 합니다. 또 100번을 읽는 것이지요. 그리고 춘추 좌전 예기로 넘어가는데 역시 적어도 100번을 읽습니다.” 노 위원은 동아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중재(重齋) 김황(金榥·1896∼1978) 문하에서 한문을 공부하던 시절을 떠올렸다. 김황은 500만 자에 이르는 문집을 남긴 ‘마지막 유학자’로 스승인 면우(면宇) 곽종석(郭鍾錫·1846∼1919)과 함께 파리장서사건(유림이 1919년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독립을 호소한 사건)에 앞장섰던 인물이다. 노 위원은 “중재 선생님이 계시던 신고당(信古堂)에서 1961년경부터 10년 동안 한문을 배웠는데, 당시만 해도 한문 공부한다고 하면 ‘소배(笑背·비웃음과 따돌림)’당하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노 위원은 이후 한동안 사업을 하다가 ‘민족문화추진회(민추)’를 거쳐 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한문을 가르치며 승정원일기 번역을 교감(校勘·비교해 바로잡음)했고, 한국학중앙연구원에 한문교육기관인 청계서당을 설립하기도 했다. 2010년부터 고전번역원에서 심하게 흘려 쓴 초서나 이체자(異體字) 해독을 돕는다. 일반인들을 위한 한문 고전 자문 서비스뿐 아니라 일상적으로 고전을 번역하는 번역위원들도 그에게 자문한다. 노 위원은 “팽배한 물질만능주의 속에서 무너지는 윤리를 바로 세울 실마리는 고전 교육에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한시 ‘신고당을 회상한다(回想信古堂)’를 들려줬다. “왕년 신고당에서(回憶往年信古堂)/언제나 밤중까지 글 읽던 시절 생각난다(讀經勉勉夜常央)/화려한 문장으로 영달을 이루려는 마음은 없었고(藻-成達無心羨)/…/여러 제자들 훈도하는 스승님은 위대하셨다(賢愚甄導傳師皇)/실컷 소배당한 세월은 길었어도(剩當笑背多時月)/맛있는 샘물 지저귀는 새소리는 잊을 수 없어라(泉비鳥鳴不可忘)”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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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 美잡지 ‘세계 20대 영화학교’ 선정

    부산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가 미국의 영화전문잡지 ‘버라이어티’가 선정한 ‘세계 20대 영화학교(World top 20 film schools)’의 하나로 선정됐다고 동서대가 9일 밝혔다. 100년 전통의 잡지인 버라이어티는 4월호에서 명성이 높고 경쟁력 있는 영화학교를 소개했다. 미국 컬럼비아대, 예일대, 노스웨스턴대, 채프먼대, 폴란드 국립영화학교, 인도 영화&텔레비전 인스티튜트 등과 함께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를 세계 20대 영화학교로 꼽았다. 동서대 임권택영화영상예술대는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아시아영화아카데미(AFA)를 운영하고 있으며, 임권택 감독(사진)이 석좌교수로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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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위해 애국-애족-애민운동 실천한 선각자”

    고하 송진우(古下 宋鎭禹·1890∼1945) 선생 탄생 127주년 추모식이 8일 오전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서 열렸다. 고하 송진우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김창식)가 주최하고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동아일보가 후원한 이날 추모식은 선생의 장손인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 회장을 비롯해 김황식 전 국무총리, 남시욱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 이사장, 이인호 KBS 이사장,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 이대순 전 체신부 장관, 현병철 전 국가인권위원장,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 김유후 전 대통령사정수석비서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권오곤 전 국제유고전범재판소 부소장, 나중화 광복회 부회장, 조강환 동우회장(전 방송위원회 부위원장), 윤주 효창원7위선열기념사업회 상임고문, 윤종오 서울남부보훈지청장 등 각계 인사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수됐다. 김 이사장은 추모사에서 “선생은 일제강점기에도 밝은 미래를 직시하고 조국 광복을 위해 애국 애족 애민운동을 실천하며 역사의 선각자로서, 큰 지도자로서 역할을 다하셨다”고 말했다. 김종필 서울 중앙고 교장이 선생에 대한 약전(略傳·간략한 전기)을 봉독했고,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고하의 희생과 대한민국의 상생’을 주제로 추모 강연을 했다. 김 교수는 “극렬하게 생각이 대립해도 선생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며 상생의 대한민국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했다. 송상현 회장은 유족 인사에서 “고하는 1940년 동아일보 강제 폐간 뒤 광복까지 일제의 엄중한 감시 속에서도 현 서울 도봉구 창5동의 아들 내외 집에서 위당 정인보, 가인 김병로 선생을 만나 국제 정세를 분석하고 일제의 필망(必亡)을 전망하면서 조국의 미래를 준비했다”고 말했다. 고하 선생은 일제강점기 중앙학교 교장을 지내며 국내외 각계 지도자와 제휴해 3·1운동을 계획했고 동아일보 3대, 6대, 8대 사장을 지냈다. 광복 뒤 국민대회준비위원장, 한국민주당 수석총무로 활동하다 1945년 12월 극우 청년들에게 암살됐다. 1963년 건국공로훈장이 추서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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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5월, 가족에게 휴식같은 책 한권 선물한다면…

    아버지 어머니께 ◇시를 잊은 그대에게/정재찬 지음/휴머니스트·2015년백일장 앞두고 가족 모두 모여 시와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던 시간이 어느새 추억이 됐습니다. 어렸을 때보다 작아 보이는 아버지 어머니 모습을 뵐 때면 그 허전함을 무엇으로 채워드려야 할지 고민이 늘어납니다. ‘한 편의 시로부터 삶의 위로와 힘을 얻는다’고들 합니다. 시(詩)라는 새 가족을 맞이해보심은 어떨지요. 자주 접해 친숙할 시 46편에 저자의 해박하면서도 공감 가는 해설이 더해져 편안함을 안겨주는 책입니다. “시를 찾고, 노래를 하며, 누가 뭐래도 나를 믿어주는 한 사람을 떠올려 보라”는 저자의 외침에선 더욱 부모님이 생각나네요.  워킹맘인 나에게◇타임 푸어/브리짓 슐트 지음/더퀘스트·2015년“왜 이렇게 챙길 일이 많고, 늘 해야 할 일에 쫓기는 걸까?”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까지. 이번 달 내내 잇따른 행사를 치르다 보면 이런 말이 입에서 절로 나올 거야. 엄마, 아내로서의 삶은 하루에 한 시간도 마음 편히 쉴 틈이 없는 게 현실이더라. 그래도 휴일에 잠시 짬을 내 이 책을 다시 읽어보길 권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유능한 기자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저자가 ‘일하는 여성들은 왜 이렇게 시간이 부족한지’ 예리한 시각으로 짚어나간 책이지. 전문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꼭 내 모습 같은 저자의 ‘워킹맘 좌충우돌기’도 함께 담겨 있어. 처음 읽었을 때, 정말 가슴을 치면서 후련하게 공감했잖아.  아내에게 ◇어른 없는 사회/우치다 타츠루 지음/민들레·2016년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동네에서는 어디에서 누구와 놀아도 동네 어른들의 시선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동네’라는 게 행정구역 이상의 의미가 없는 지금은 도시에서 어린아이 혼자 나가 놀라고 하기가 영 부담스럽네요. 이 책의 부제는 ‘사회수선론자가 말하는 각자도생 시대의 생존법’이에요. 성장을 대가로 전통적 공동체의 미덕을 희생시킨 사회, 모두가 소비의 주체가 돼 버린 사회는 성장 신화가 붕괴한 시대에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지가 주제죠. 결국 “어른이 필요하다”고 하네요. 내가 버린 게 아니라도 발아래 떨어진 유리조각을 먼저 줍는 사람이, 어른인 거겠죠.  역사학도를 꿈꾸는 첫째에게 ◇하버드 중국사 남북조/마크에드워드루이스지음/너머북스·2016년아들아. 나는 네가 사료(史料)만 추종하는 역사학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가끔 아비는 역사책을 읽을 때 이른바 ‘사료 비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단다. 승자의 기록답게 사료엔 팩트 왜곡이 포함되기 일쑤지. 이것을 구별하려면 사료에 매몰되지 않고 거시적인 주변 연구를 통해 역사적 맥락을 파악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런 측면에서 아비가 최근 읽은 이 책은 퍽 흥미로웠다. 저자는 단순히 역사뿐 아니라 도교, 불교 사상사와 시(詩) 부(賦) 등의 고대 문학, 가족 제도까지 포함한 다양한 시각으로 남북조시대를 조망하고 있어. 이 책의 독특한 접근 방식을 네가 배웠으면 한다.  어머니께 ◇마음의 소리 레전드 100/조석 지음/위즈덤하우스·2016년며칠 전 저녁식사 자리에서 못난 마음에 “좋은 날이 올까요?” 여쭙는 제게 말씀하셨죠. “늘 오늘뿐이다. 오늘을 살아갈 수 있으면 감사한 일이다.”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제가 가까운 이들에게 기쁨과 도움은커녕 슬픔과 어려움만 더하는 사람임을 뒤늦게 돌아보고 있습니다. 또 꾸짖음을 듣겠지만 어머니께 어떤 자식일지, 생각하기도 두렵습니다. 왁자지껄 웃는 사람들이 부러울 때가 많습니다. 저 어릴 때 만화책만 본다고 야단하시던 어머니께 그래서 이 책을 드립니다. 잠시라도 시름 잊고 가볍게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조금이라도 웃겨드려야, 아버지께도 덜 혼날 듯하고요.유원모 기자·장선희 기자·조종엽 기자·김상운 기자·손택균 기자}

    • 20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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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여행길 따라 산책하듯 나를 만나네

    “보이지 않는 손이 삶을 강하게 구부릴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지? 더 낮게, 더 낮게, 엎드리는 것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뿌리는 흙을 향해 더 맹렬하게 파고드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엎드렸던 흔적을 나무도 사람도 지니고 있다.” 심하게 굽은 들판의 나무 한 그루에서 누군가는 조형미를 느끼고, 또 다른 이는 이 지역의 바람이 거센 이유를 생각하겠지만 저자는 인간이 맞이하는 운명의 흔적을 본다. ‘어두워진다는 것’을 비롯한 여러 시집으로 사랑받아 온 시인의 산문 45편이 책에 담겼다. “그가 그린 어떤 길은 벌목의 상처를 지니고 있어/내 발길을 오래 머물게 하네/…/길을 그리기 위해서는/…/그 쓸쓸한 소실점을 끝까지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여는 시 ‘길을 그리기 위해서는’에서) 세계 각지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는 저자의 행위는 자신의 내면을 산책하는 일과 같다. 사람들의 평범한 뒷모습도 시인의 눈을 거치면 새삼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타인의 시선에 무방비로 노출된 등을 가졌다는 것. 자신이 알지 못하고 어찌할 수도 없는 신체의 영역이 있다는 것이 왠지 두렵고도 안심이 된다.” 비 오는 중국 옌지의 한 들판에서 아기를 업고 걷는 여윈 노인, 영국 런던에서 자선 가게의 계산원으로 일하는 장애인, 개에게 담요를 내어주고 책을 읽는 유럽의 노숙자, 터키의 앙카라에서 만난 한 무리의 아이들을 시인은 만난다. 카프카 고흐 안네 등 비극적인 삶을 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이들의 발자취를 따라나서기도 한다. 책에는 시인이 찍은 사진도 함께 담겼다. 글의 내용과 직접 관련된 사진이어서 저자가 어떤 풍경을 보고 글과 같은 생각을 떠올린 것인지 바로 다가온다. 마치 함께 산책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꼭 여행지에 관한 정보가 없어도, 심오한 철학이 담긴 게 아니라도 좋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과장 없고 따스한 시선이 담긴 문장이 독자의 가슴도 따듯하게 만든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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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나는 누구일까?” 아기 곰은 쑥쑥 자라요

    “내가 누구지?” 멋진 숲속의 작은 벌레는 나무에 등을 긁을 때마다 키가 자랐고, 털에서는 팔과 다리가 자라났지만 아주 중요한 것을 잃어버린 것만 같다. 숲은 말한다. “넌 곰이잖아!” 세상과 구분된 ‘나’는 정말 존재할까, 나는 어떤 개성을 갖고 있을까? 곰은 자기가 보지 않아도 숲속의 꽃과 나무가 쑥쑥 자란다는 것을 알게 되고 도롱뇽, 펭귄, 거북 등을 만나면서 자신을 발견해 나간다. “길을 잃고 헤매는 것도 앞으로 가기 위한 과정”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림은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의 작가가 그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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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외교 가장 큰 문제점은 위시풀 싱킹”

    “한미관계는 사실 평온했던 적도, 한국이 바라는 대로 이뤄진 적도 별로 없습니다. ‘위시풀 싱킹(wishful thinking·바라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한국 외교의 가장 큰 문제입니다.” 한미관계사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인 박태균 교수(51·서울대 국제대학원 부원장·사진)의 말이다. 최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비용 분담을 요구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박 교수는 한국 정부의 외교 정책과 행태를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옌칭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활동하고 동 대학에서 한국현대사를 강의했으며 ‘우방과 제국, 한미관계의 두 신화’(2006년) 등의 저서를 냈다. 1일 서울대 연구실에서 만난 그는 ‘미국은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의 손을 들 것’ ‘한중관계가 근접해도 미국은 방관할 것’ ‘중국은 북한을 포기할 것’과 같은 전망을 이른바 ‘위시풀 싱킹’의 대표적인 사례로 들었다. 그는 “트럼프의 최근 발언은 지지자들을 고려한 것이고 시간이 지나면 방침이 달라질 것이라고 보는 건 우리만의 착각”이라며 “지미 카터 행정부도 의회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공약대로 주한미군 철수를 1976∼1979년 아주 강하게 밀어붙였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사드 비용 분담 요구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 아버지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군 주둔지 재조정을 시작했고, 아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주한미군을 신속기동군으로 전환한 것과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한동안 잠잠했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트럼프 대통령이 들고나온 건 더 큰 문제의 시작”이라고 경고했다. 박 교수는 또 리처드 닉슨 행정부 당시 한미관계가 현재 상황과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강조했다. 1969년 당선된 닉슨 대통령은 베트남전쟁으로 미국의 ‘곳간’이 비게 되자 해외 분쟁 개입을 줄이는 한편 동아시아의 긴장을 완화하겠다고 나섰다. 박정희 정부는 한국군이 베트남에 파병한 동안에는 주한미군을 감축하지 않고, 감축한다 해도 사전 협상키로 미국과 협의한 상태였다. 그러나 닉슨은 일방적으로 주한미군 감축을 통보한다. “이후 한미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았던 건 닉슨의 생각을 읽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박 대통령이 닉슨에게 ‘뒤통수를 맞은’ 것과 같은 상황이 지금도 연출될 수 있습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도 그 이상의 보호무역주의가 트럼프 재임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박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주한미군 감축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들고나올 가능성이 크다며 새 정부의 대미 정책에 관해서도 조언했다.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은 한국 쪽에서 먼저 얘기를 꺼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우리의 바람과 관계없이 미국은 주한미군을 감축하거나 철수하고, 그에 따라 전시작전권을 이양하고자 할 것입니다. 과거 노무현 정부가 민족주의 감정에 편승해 전작권 환수가 우리 측에 이익인 것처럼 호도하고, 정치 문제화한 건 큰 잘못입니다.” 현재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전시작전권 조기 전환’을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박 교수는 향후 한미동맹의 양태는 다양한 형태가 될 수 있다며 대비가 필요하다고 했다. “지금 우리는 미국 중국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조차 모른다는 게 정확할 겁니다. 새 정부가 탄생하면 당장 책임자를 만나 그들이 어떤 카드와 옵션을 갖고 있는지부터 먼저 봐야 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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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인 300여명 사드 배치 철회 촉구…“美로 돌려보내라”

    문인 300여 명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를 2일 촉구했다. 염무웅 영남대 명예교수와 이시영 전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드 장비를 미국으로 돌려보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사드 배치를 반대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작가들’ 명의의 성명에서 “사드가 북한의 핵 위협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줄 것이라지만 그 효용성이 검증된 바도 없고 실제 상황에서 무용할 것”이라며 “사드가 지키는 건 지배자의 평화”라고 주장했다. 김종철 문학평론가, 정우영 김해자 황규관 박성우 시인, 백가흠 소설가 등이 대표 발의했으며 문인 353명이 서명했다. 이들은 또 북한에 대해서도 “한반도 비핵화 대의에 복귀하라”고 촉구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 201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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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 학술교류 재개 위한 중장기 로드맵 수립을”

    “남북 학술교류가 정치·군사 상황에 관계없이 진전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남북역사학자협의회 공동위원장인 안병우 한신대 교수는 지난달 29일 학술대회 ‘남북한 민간 및 학술 교류의 현황과 미래 지향적 전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국역사연구회와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등이 공동 주최한 이날 대회에서 기조발제를 맡은 안 교수는 “북한의 핵실험 등을 이유로 남북 학술교류가 전반적으로 축소됐고, 지난해 4차 핵실험 뒤에는 모든 교류와 협력 사업이 중단됐다”고 말했다. 대표적 학술 교류 사례인 겨레말큰사전 편찬은 2015년 12월 중국 다롄에서 회의를 연 것이 남북 학자들의 마지막 공동 회의였다. 2007년 시작된 개성 만월대 공동 발굴조사 사업도 일곱 차례 공동 발굴을 했지만 2015년 11월 사업단이 철수해 중단된 상태다. 안 교수는 학술 교류의 목표를 민족의 동질성 회복에 국한하지 말고 평화 정착의 수단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의 역사 왜곡이나 중국의 북한 지원 때문에 양국과 학술 교류를 중단하지 않는 것처럼 남북 학술 교류도 계속돼야 한다”며 “적극적인 교류협력의 의지를 담은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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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희생자 아닌 투쟁하는 유대인의 삶

    “그들은 지쳐 있었고 가난하고 더러웠지만 패배하지는 않았다. 상인, 재봉사, 랍비와 성가대 선창자의 자식들이었으며 독일군에게 빼앗은 무기로 무장을 했다.” 제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이라면 보통 홀로코스트와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연기를 떠올리지만 ‘지금이 아니면…’은 독일군과 싸웠던 러시아와 폴란드계 유대인들의 빨치산 투쟁을 그린 소설이다. 수동적 희생자가 아니라 거악과 맞서는 유대인들의 모습이 담겼다. 책에서는 마치 유격대원들과 함께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대원들의 고뇌도 그대로 드러난다. 주인공 ‘멘델’은 독일군에게 아내를 잃고 참상을 겪은 뒤 유대인의 신은 어디에 있는지 묻는다. “그날 이후 난 사람을 죽이는 게 나쁜 일이지만 독일군은 죽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게 됐어.…내가 독일인을 한 명 죽여야만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을 다른 독일인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우리에게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율이 있어.” 반면 또 다른 낙오병 레오니드는 말한다. “차라리 독일인들 공장에 일하러 갈 거라고.…더 이상은 총을 쏘지 않을 거야.…당신도 나하고 똑같은 거 원하잖아. 집, 침대, 의미 있는 삶, 가족, 당신 고향 같은 마을.” 유격대 안에서도 유대인은 처지가 달랐다. 러시아인은 전쟁에서 이기면 돌아갈 집이 있었지만 유대인은 대학살로 마을이 사라지거나 잿더미가 돼 돌아갈 곳이 없었다. 멘델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유격대 합류를 거절당하기도 한다. 대원들의 인간적인 한계도 가감 없이 묘사된다. 유격대장 울리빈은 작은 성공에 도취돼 대원을 잃거나 경험이 없는 대원에게 지뢰를 옮기라는 무모한 명령을 내린다. 열일곱 살 난 대원이 집에 갔다가 늦게 돌아오자 총살하기도 한다. 우리 빨치산 문학이 유격대를 다소 이상화하거나 영웅적인 모습 위주로 그린 것과는 사뭇 다르다. 한국의 작품이 분단 상황에서 억눌렸던 역사 속 패배자들의 기억을 되살린 것인 데 비해 이들은 결과적으로 전쟁에서 이겼다는 차이도 아마 한 이유일 것이다. 이탈리아에서 태어난 유대인인 저자(1919∼1987)는 실제 파시즘에 저항하는 지하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아우슈비츠로 이송됐다가 살아남았고, 수용소에서 겪은 일을 그린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를 쓴 현대 증언 문학의 대표적 작가다. ‘지금이 아니면…’은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1982년 발표했다. 영역본을 저본으로 중역한 것이 한국에도 출간됐었지만 이번 번역본은 이탈리아어 원본을 저본으로 했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드러난 인간의 여러 면모를 군더더기 없고 힘 있는 문장으로 깊이 파고든 걸작이다. 등장인물은 오늘날 주변에서 만날 수 있을 것처럼 생생하다. 함께 발간된 ‘릴리트’는 저자의 아주 짧은 단편소설 36편이 담겼다. 표제작은 구전 유대신화 속 인물로 하와 이전에 창조된 인류 최초의 여성이지만 신의 저주로 끝없이 변신하며 사는 악마에 관한 이야기다. 소설집에는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다룬 작품뿐 아니라 환상적인 성격이 강한 작품, 미래 세계에 관한 소설들이 묶였다. 인간 본성의 양면성에 관한 통찰이 곳곳에서 번득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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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도교 독립군 10만명 양성” 최시형 아들, 소련에 비밀서한

    “단원 수는 작년(1923년) 4월 초부터 그해 7월 말까지 조직된 것이 3만 명에 가까웠는데, 그 후 금년 2월 말까지 다시 2만 명의 단원이 증가되었다는 비밀 보고를 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의 아들 최동희(1890∼1927)가 1924년 4월 13일 러시아의 조선전권위원인 이델슨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최동희가 국내 천도교 비밀결사를 기반으로 소련에서 독립군 양성을 시도하며 소련 당국의 협조를 요청한 자료를 27일 공개했다. 최동희는 편지에서 천도교가 약 10만 명 규모의 비밀결사를 은밀히 양성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동희는 또 1924년 8월 25일 소련 외교위원장에게 서한을 보내 15개 여단 규모의 ‘고려국민혁명군’을 결성할 계획을 세우고 지원을 요청했다. 편지는 ‘고려 국민 혁명군’에게 총포, 폭발물, 탄환, 기병장비, 운반 용품, 군수품을 충분히 공급할 것, 혁명군의 근거지는 러시아 남동부 치타 부근 금광으로 할 것 등을 요청하고 있다. 최동희는 1927년 중국 상하이에서 사망했으며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됐다. 국편은 “이서행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부원장이 기증한 자료”라며 “3·1운동 뒤 조직적 항일운동이 상당한 규모로 준비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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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주영 “위로는 문학의 역할이자 내가 글을 쓰는 이유”

    “작가가 쓰면서 재미있어야 작품도 재미있게 나오거든요. 이 소설은 제가 지금까지 쓴 소설 중에 가장 재미있을 겁니다.” 소설가 김주영 씨(78)가 ‘객주’(전 10권) 완간 이후 4년 만에 첫 장편 ‘뜻밖의 生(생)’(문학동네)을 출간했다. 2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내가 내 작품 갖고 말을 잘 안 한다”면서도 너스레를 떨었다. 소설은 천진한 소년이 파란만장한 삶 끝에 지혜로운 노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그렸다. 소년 박호구는 도박판에 목숨을 거는 ‘타짜’ 아버지와 무당을 신봉하는 어머니 사이에서 따뜻한 손길을 받지 못한 채 자란다. 어린 나이에 고향을 떠난 그는 노숙하며 지내다 곡예단에 들어가게 되고, 뜻하지 않게 딸을 얻고 행복을 느끼지만 오래가지 못한다. 작품에는 등단 47년이 된 작가의 통찰이 담겼다. 김 씨는 “주인공은 때리면 맞고, 밀면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면서도 세상을 원망하지 않은 고귀한 이”라며 “‘(작은) 여울물이 흘러도 산그늘의 흔적은 남는다’는 긍정적인 철학의 소유자”라고 말했다. 우리 나이로 여든 살을 목전에 둔 작가는 작품을 쓰면서 자신의 나이를 실감했다고 했다. “한참 열정이 쏟아져 나올 때는 단편 하나를 하룻밤에 쓰기도 했는데, 이 작품은 1년이 걸렸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 작품이 마지막 장편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제가 쌍소리에도 능숙하고 정사(情事) 장면을 쓰는 데도 소질이 있거든요(웃음). 이번 작품도 하층민들의 이야기니 쌍소리도 많이 담고 아주 질퍽하게 쓰고 싶었는데 그때마다 망설여지더군요. 이 나이에 이런 것을 쓰면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요.” 작가는 5년 전부터는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고 했다. “어젯밤에도 잠을 못 이루다 TV에서 우연히 옛날 영화에서 활약했던 배우가 (나이 들어) 출연한 ‘스파이 게임’(2001년 영화로 로버트 레드퍼드가 주연으로 출연했다)을 봤습니다. 주인공이 옛날에는 굉장히 핸섬했는데 참 실망했어요. 사람이 늙으면 우선 나처럼 볼살이 밑으로 처집니다. 머리숱도 적어지고요. ‘그런 모습으로 이 사람이 아직도 총질을 하고 있구나, 저게 아직도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 씨는 “그럼에도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있다”며 10여 년 전 러시아 답사의 기억을 떠올렸다. “황제와 영웅의 웅장한 동상들이 있는 모스크바 붉은광장 한쪽 구석에 조그만 동상이 있습니다. 다른 동상 앞에는 다 조화(造花)가 있는데 그 동상 앞에는 생화가 놓여 있어요. 농부들이 시인 푸시킨의 동상 앞에 갖다 놓은 것이랍니다.” 김 씨는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는 러시아 촌부들도 모두 암송한다”면서 “어두운 곳에 사는 사람, 추위에 떠는 사람, 그래서 더 이상 키가 자라지 않는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는 것이 문학의 역할이고 내가 글을 쓰는 이유”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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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심훈의 ‘상록수’ 첫 회 실린 동아일보 지면 만난다

    1930년대 동아일보가 벌인 ‘브나로드(민중 속으로) 운동’의 문학적 대표작인 심훈(1901∼1936)의 ‘상록수’ 1회가 실린 신문 지면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도서관은 6월 18일까지 ‘매일 읽는 즐거움―독자가 열광한 신문소설’ 전시를 서울 서초구 국립중앙도서관 본관 1층에서 연다. ‘상록수’는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공모전에 당선돼 1935년 9월 10일부터 이듬해 2월 15일까지 동아일보에 연재됐다. 삽화는 청전 이상범 화백(1897∼1972)이 그렸다. 이 신문 지면은 국립중앙도서관 귀중본 서고에 보관된 것으로, 보존에 끼칠 영향을 고려해 28일까지는 당대 발행된 실제 지면이 전시되지만 이후에는 복사본이 전시된다. ‘혈의 누’(이인직·1906년) ‘무정’(이광수·1917년) ‘자유부인’(정비석·1954년) 등 근대 주요 소설의 상당수가 신문에서 탄생했다. 신문 연재로 인기를 모았던 최인호 소설가(1945∼2013)는 “신문은 작가들의 호흡을 길고 강한 체질로 만들어주는 하드 트레이닝의 무대이며, 무명의 가수들을 화려한 프리마돈나로 데뷔시키는 카네기홀”이라고 쓰기도 했다. 이번 전시는 이 같은 신문소설 110여 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됐다. 신문소설에 들어간 삽화, 신문소설을 원작으로 한 드라마와 영화 등도 소개되며 관람객의 체험 활동도 마련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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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크 외쾨터 “中 미세먼지로 괴롭다고요? 공해물질은 국경을 모릅니다”

    대선 공약으로 미세먼지 대책이 나오는 등 한국에서도 환경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요즘이다. 서구권에서는 환경운동의 역사가 깊다. 47년 전인 1970년 4월 22일 미국 전역에서 자원 낭비와 자연 파괴에 항의가 벌어진 것을 계기로 지구의 날이 제정됐고, 유럽 의회는 1970년을 ‘유럽 자연보전의 해’로 선포했다. 이에 따라 인간과 자연이 상호 작용한 역사를 연구하는 ‘환경사(環境史)’도 발전해 왔다. 22일 한국생태환경사학회 참석차 방한한 독일 출신의 중견 환경사학자 프랑크 외쾨터 영국 버밍엄대 교수(47)를 19일 서울 광화문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공해 물질은 국경을 모릅니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 발생한 미세먼지도 한국인에게 고통을 주고 있다고 하자 외쾨터 교수는 “유럽도 1970, 80년대 이산화황 문제가 국제 이슈로 떠올랐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산화황은 주로 석탄, 석유에 포함된 황화합물이 연소할 때 생긴다. 말하자면 영국의 공장이나 화력발전소에서 생긴 이산화황이 스웨덴에 산성비를 내리게 만든 것이다. 그는 유럽은 각국 시민들의 오랜 시위와 협력을 통해 이산화황 규제에 관한 국가 간 협정을 이끌어 냈다고 했다. “처음부터 문제 해결의 정교한 청사진이 필요한 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약한 수준의 협정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협상은 가속됐습니다. 한국도 차근차근 시도하는 게 중요합니다.” 다만 그는 역사적으로 이처럼 환경에 관한 초국가적 규제가 성공한 사례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외쾨터 교수는 유럽의 대표적 환경사학자인 요아힘 라트카우의 제자로 독일 유수의 대학에서 환경학 교재로 쓰이는 ‘19∼21세기 환경사’를 비롯해 환경사 관련 저서 10여 권을 낸 중견 학자다. 단일 작물 재배(monoculture)가 토양에 미친 영향 등이 주요 연구 주제다. 그는 “많은 전근대 사회는 오늘날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자연(자원)의 한계와 불안정성에 대해 많이 느꼈다고 본다”고 말했다. 외쾨터 교수의 스승인 라트카우는 저서 ‘자연과 권력’에서 “환경사는 너무 도덕적이 돼서도, 끝없이 이어지는 죄의 고백이 돼서도 안 될 것”이라며 환경운동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환경사 연구와는 거리를 뒀다. 외쾨터 교수도 “환경사는 진보와 인간의 (자연) 지배에 대한 신화를 해체하려는 학문”이라며 “환경운동과 관심 분야가 비슷하지만 학자들은 정치적 주장을 마냥 받아들이지는 않는다(never fraternize with a political cause)”고 말했다. 그는 최근 서구의 환경사학계는 비서구의 문제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다고 했다. “서구에서는 환경오염을 특정 기술이나 법의 필요성에 관한 문제로만 얘기하는 경향이 있지만 남반구에서 이 문제는 차별과 소외라는 커다란 문제의 한 측면입니다.” 먼저 근대화와 산업화를 이룬 북반구 국가들(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접근은 다를 수밖에 없으며, 환경 문제가 사회경제적 불만과 결합된 형태로 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환경사는 최근에야 태동하고 있다. 2010년 세계환경사대회가 한국에서 열렸고, 2015년 한국생태환경사학회가 만들어졌다. “인간이 환경 없이 존재할 수 없는 이상 우리가 이 주제의 역사 연구에 어째서 그토록 오랫동안 무관심했는지 의문입니다. 지구적 환경사는 ‘여러 방이 있는 집 한 채’와 같습니다. (환경사라는) 글로벌 트렌드에 합류하세요(Join the global trend)!”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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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가가 된 가장 큰 기쁨은 인생을 나 주도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삶의 가장 큰 목적은 ‘나눔’에 있어요. 연주자는 음악의 아름다움을 나누어 주는 사람이죠.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뭔가를 나누어 주기 위해선 먼저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해요. 어떻게 본인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거울을 들여다보고 외쳐요. ‘잘생겼다!’(웃음) 그리곤 피아노 앞에 앉아 내면의 감정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내가 피아노로부터 무엇을 끌어낼 수 있을까, 또 이것들이 내 삶과 어떤 관계가 있을까, 항상 질문하는 거죠. 피아노를 치는 이유가 곧 삶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음악과 삶을 떼어놓지 마세요. 먼저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더 나은 음악가가 될 수 있고, 비로소 남에게 아름다움을 나눠줄 수 있으니까요.” 오늘, 4월 24일은 미국의 세계적 피아니스트 시모어(세이모어) 번스타인이 90세를 맞는 생일입니다. 1927년 태어났지요. 위의 말은 번스타인이 지난해 방한 당시 마스터 클래스(저명 음악가가 재능이 뛰어난 학생들을 가르치는 수업) 현장에서 학생들에게 한 것으로 ‘월간 객석’이 보도한 것입니다. 번스타인은 최근 영화배우 에단 호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의 주인공으로 출연하기도 했습니다. 번스타인은 한국과 특별한 인연이 있습니다. 그는 지금으로부터 꼭 66년 전인 1951년 4월 24일, 그러니까 자신의 24세 생일에 인천에 도착합니다. 왜냐고요? 6·25전쟁에서 싸웠거든요. 그는 바이올리니스트 케네스 고든과 함께 100회가 넘는 클래식 공연으로 전선에서 전투를 벌이는 장병들을 위로했습니다. 지난해 6월 국가보훈처의 초청으로 다시 방한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홍보영상을 볼까요? 번스타인과 한국의 인연은 그 뿐만이 아닙니다. 그는 1960년 4.19 혁명 당시에도 한국에 있었습니다. 지난해 6월 14일 동아일보가 보도한 인터뷰를 볼까요? “저 스스로 ‘나와 한국의 인연은 정말 특별하다’고 느낍니다. 1960년 방한했을 때 4·19혁명이 터져 모든 공연이 취소됐어요. 저와 같이 공연하기로 했던 월터 매카너기 당시 주한 미국대사(클라리넷 담당)에게 ‘나를 데모하다가 부상당한 학생들이 있는 병실로 데려다 달라’고 요청했고 병원에서 그들을위해 연주했습니다. 우리(미국 시민)는 민주주의를 위해 항거하는 당신(학생)들의 편임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거든요.” 기자는 사실 클래식 음악에는 문외한입니다. 번스타인의 이름을 알게 된 건 지난 1월 18일 동아일보가 주최하는 신춘문예 시상식에서였습니다. 은희경 소설가가 번스타인이 주인공으로 나온 영화의 한 부분을 인용해서 당선자들을 위한 격려사를 해 주셨거든요. 사실 은희경 소설가는 격려사를 맡는 것을 거의 마지막까지 고사하셨는데, 기자가 청탁을 되풀이하자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헌데 일단 맡으시니, 구구절절 가슴을 울리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미세먼지도 어느 정도 가시고 모처럼 봄 같은 봄날이 며칠째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일 신춘문예 시상식 행사장에서 은희경 소설가의 격려사를 노트북으로 받아 적은 것은 기자밖에 없었기에 늦었지만 ‘은희경 소설가의 생애 첫 신문춘예 격려사’를 올려봅니다. 도전과 새로운 일의 시작을 꿈꾸고 있는 이들이 각오를 다지게 해 줄 겁니다. 봄은 해마다 새 봄이네요.◇은희경 소설가의 격려사―2017년 1월 18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상식에서 안녕하세요. 1995년 신춘문예 당선자 은희경입니다. 정말 22년이나 지났네요. 지금 옆에 계신 오정희 선생님과 잠깐 말씀 나눴는데, 선생님은 신춘문예 당선 시기의 기억이 별로 없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선생님은 대학교 2학년 때 20대 초반에 그 때부터 문재를 빛내시고 일찍부터 시작하셨기 때문에 그러셨으려나요’하고 말씀드렸어요. 저는 35살에 작가가 돼서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때 서대문에 있는 (동아일보) 사옥에서 (시상)식이 있었고요, 소프라노가 와서 ‘꽃구름 속에’라는 노래를 불러주고…. 아까 수상자들 소감에도 있었지만, 정말 글로만 뵙던 선생님들이 제 시상에 박수를 쳐 주시고, 너무나 꿈만 같은 순간이었어요. 근데 가끔 그 때를 떠올리면 그 노래가 ‘꽃구름 속에’여야 했을까, ‘웰컴 투 정글’ 뭐 이런 거 아니었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많아요. 물론 지금 받는 축하만큼이나 여러분이 앞으로 시작해야 할 시간 속에 너무나 많은 고민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잘 썼는데, 왜 사람들이 못 알아보지 하는 고민도 있고, 이렇게 재미있고 중요한 글을 독자들은 왜 읽지 않는 거지 하는 고민도 있고, 평론가들은 또 내가 호랑이를 그렸는데 사자를 잘 그렸다거나 혹은 기린을 그리다 실패했다거나 이런 말을 하지, 이런 고민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가장 큰 고민은 나에게 재능이 있는 것일까, 작가로서 내 마음에 드는 글을 쓸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많은 순간 그런 고민에 시달려 왔고요. 작가가 된지 22년이 됐지만 조금도 변하지 않았어요. 두렵지요. 예전에 박완서 선생님 인터뷰를 보니까, 선생님도 그러셨다고 해요.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처음 하는 일이고, 그렇게 때문에 굉장히 두렵지만 그래서, 그래서… 계속할 수 있는 거 같아요. 그런 것이 문학의 매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제가 최근에 새해 결심으로 ‘지금까지 내가 읽었다고 생각하지만 안 읽은 책들을 좀 읽자’ 이런 결심을 해서 첫 번째로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 마감을 앞두고 있는데, 역시 두려운 마음에 서사 연구를 새로 하겠다는 핑계를 가지고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 모두가 이미 다 밝혀진 이야기를, 1800년대 쓰인 소설이니까 좀 너무 낡은 얘기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는데, 역시 중간 지나면서 굉장히 빨려 들어서 읽게 됐어요. 특히 안나가 특히 브론스키를 만나고 와서 기차에서 마중 나온 남편을 보는 순간에, 다른 남자를 알게 된 뒤에 자기 남편을 보니까 ‘저 사람이 저렇게 귀가 못생겼나’ 하는 장면이 나오거든요. 그 시대가 어떻든 간에, 1800년대 쓰인 소설이지만, 귀족으로 살아온 아저씨지만 톨스토이라는 사람이 작가일 때는 좀 다른 모습으로 인생을 볼 수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꼈습니다. 제가 축사를 끝까지 사양했는데 그래도 한번 시키면 열심히 해서, 저도 그 중에서 몇 구절을 찍어왔습니다. 짧은 글이니까 읽어드릴게요. 이것은 여러분, 새로 작가로서 출발하는 분들을 톨스토이가 딱 통찰한 그런 글 같아요. 결혼을 곁에서만 보다가 실제로 결혼한 사람의 그런 심정인데, 그냥 다른 작가의 작품을 읽다가 실제로 작가가 된 여러분의 마음하고 공감이 될 것 같아서 짧은 글이니까 읽어보겠습니다. “그는 행복했다. 그러나 이 생활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매순간 그는 자기가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 걸음마다 그는 호수 위를 미끄러져가는 작은 배의 매끄럽고 행복한 진행을 넋을 놓고 바라보던 사람이, 자기가 그 작은 배에 탔을 때 느끼는 것과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말하자면 몸을 흔들리지 않게 하고, 가만히 타고 있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 어느 쪽을 향해서 갈 것인지를 한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발밑에는 물이 있고, 그 위를 노 저어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익숙하지 않은 손에는 그것이 몹시 아프다는 것. 그저 보고만 있을 때에는 손쉬운 것 같았지만, 막상 자기가 해보니까 썩 즐겁기는 해도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게 여러분 심정하고 같은가요?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면허증을 갖게 되신 것,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저는 작가가 돼서 가장 좋은 게 이렇게 아름다운 배의 흐름을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내 스스로가 배를 몰아볼 수 있다는 것, 그렇게 내 인생을 뭔가 나 주도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 제가 작가가 된 가장 큰 기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최근에 영화에서 한 장면을 굉장히 인상 깊게 봤는데, 세이모어(시모어)라는 피아니스트의 전기 영화였는데요. 거기서 ‘예술이란 재능으로 되는 게 아니라 자기 노력으로 되는 것’이라는 말은, 너무 단순한 것 같지만 20년도 더 된 소설가에게, 그리고 신춘문예 당선된 지 20년 된 소설가에게 그것은 너무나 항상 새로운 깨달음입니다. 방법이 있다는 게 다행이지 않은가요? 거기서는 피아니스트들에게 죽어라고 연습하라고 말하는데 작가에게 피아니스트의 훈련과 연습은 무조건 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쓸 때 행복했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영화의 끝 장면에서 그런 게 나와요. ‘음악을 통해서, 예술을 통해서 내 손이 하늘을 만질 수 있다니’ 하고 환희에 젖는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 표정을 자주 짓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진짜 축하드립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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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별〉부끄러움〉성찰…

    탄생 100주년을 맞는 시인 윤동주(1917∼1945·사진)에게 독자들이 많이 떠올리는 이미지는 ‘별’과 ‘부끄러움’인 것으로 나타났다.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최근 ‘윤동주 하면 떠오르는 단어나 이미지’를 설문조사(인터넷 이용자 1086명 대상)한 결과 312명이 ‘별’을 꼽았고, ‘부끄러움’(249명) ‘성찰’(78명) 등이 뒤를 이었다. 이번 조사 결과는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27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교보빌딩에서 열리는 ‘2017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 심포지엄에서 발표된다. 대산문화재단은 27, 28일 ‘2017년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연다. 2001년부터 열린 이 문학제의 올해 주제는 ‘시대의 폭력과 문학인의 길’이다. 윤동주뿐 아니라 ‘통일시인’으로 불린 시인 이기형(1917∼2013) 등 1917년에 태어난 작가들의 삶과 문학 세계를 되짚어볼 예정이다. 6·25전쟁 때 월북했다가 폭격으로 숨진 시인 최석두(1917∼1951), 모더니스트 시인 조향(1917∼1984), 한글 보급 운동에 헌신한 시조시인 박병순(1917∼2008), 여성 수난이라는 주제를 심화시킨 손소희(1917∼1986) 등이 조명된다. 27일 심포지엄에서 작가론이 발표되고, 28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연희문학창작촌에서 문학의 밤 행사가 열린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7-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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