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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대(NDU)가 최근 보고서에서 한일 양국과의 핵공유를 제안하고 나서 북한의 도발 재개와 맞물려 적지 않은 파장을 낳고 있다. 미국의 안보전략을 연구하고, 국방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대표적 군 싱크탱크의 주장인 만큼 실제 정책으로 수렴될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과거 이 기관이 발표한 북한 정권 붕괴 파장과 북 대량살상무기(WMD)의 군사적 제거 방안 등에 대한 보고서도 관련정책에 반영됐다는 게 정설로 통한다. 보고서에 제시된 한일과의 ‘핵공유(Nuclear Sharing) 협정’은 현재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서 적용되고 있다. 독일과 벨기에 등 5개 동맹국의 미군 기지에 B-61 전술핵탄두 150∼200여 기를 배치하고, 유사시 해당국 전투기로 투하하는 게 핵심이다. 핵탄두 소유권은 미국이 갖고 있어서 5개국은 비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지 않는 구조다. 핵탄두를 실전 태세로 전환하는 ‘최종 승인코드’는 미국이 통제하고, 5개국이 탑재 및 투발수단(전투기)을 제공해 ‘사실상 50%’의 사용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보고서는 한국, 일본과의 핵공유 협정이 북한의 핵·미사일을 억제하고 북한 도발을 사전에 억제토록 중국을 압박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 그러면서도 나토식 핵 공유를 그대로 모방(mirror)해서는 안 된다는 단서를 달았다. 한일 양국에 전술핵의 ‘공동 사용권’은 주되 핵폭탄의 투하도 미국이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군 소식통은 “남북 간 엄청난 재래식 전력이 대치 중이고, 핵까지 보유한 북한 위협을 고려해 비상시 전술핵의 실전 사용을 철저히 통제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미 국방부 산하기관이 한일과의 핵공유 협정을 제안한 것은 북한의 핵능력이 임계치를 넘었다는 방증인 동시에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 실패를 상정한 ‘플랜 B’로 봐야 한다는 분석도 많다. 실제로 다량의 핵탄두와 미 본토까지 도달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갖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군사적으로 일시에 제거하기란 불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따라서 ‘핵(核)을 핵으로’ 억지하는 현실적 대안이 부상할 수밖에 없고, 거점 도시를 초토화하는 핵탑재 ICBM과 같은 전략핵보다는 전선(戰線)에서 적을 무력화시키는 전술핵에 대헤 관심이 다시 쏠리고 있다는 것. 이를 통해 미국은 북핵 위협에 대처하고, 중국과 러시아의 핵전력 증강 상쇄 및 역내 영향력 차단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특히 미국으로서는 전략폭격기, 핵 항공모함 전개 등 핵우산 전력 유지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줄일 수도 있다. 내년 11월 재선 도전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서는 백인 지지층을 공략할 호재가 될 수도 있다. 한국 등 역내 동맹국의 핵무장론을 잠재우고, ‘전술핵 공동 사용’에 따른 핵탄두의 운영 관리비용도 해당국과 분담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하지만 현실적 제약도 크다. 핵공유는 결국 핵을 재반입하는 것이어서 북한의 핵 보유를 정당화하고,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도 정면으로 위배된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7년 9월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기를 개발하거나 전술핵을 다시 반입해야 한다는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심한 국론 분열과 동맹 균열 등을 초래할 개연성도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 주변국의 거센 반발도 예상된다. 정부 당국자는 “한국에 전술핵이 재배치되면 중국은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전방위적 압박에 나설 것이고, 러시아도 이에 가세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

27일 밤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온 북한 어선에 타고 있던 선원들이 강원 양양의 군항으로 이송된 시간은 28일 오전 2시 17분. 이후 NLL 남하 경위 등을 묻는 관계기관합동정보조사를 거쳐 북한 송환이 결정된 건 28일 오후 5시 이전으로 알려졌다. 북한 주민 3명이 한국 땅을 밟은 지 15시간도 되지 않아 북한 송환이 결정된 셈이다. 다만 28일 밤 이들을 NLL을 통해 송환하기에는 안전 문제가 있어 다음 날로 미룬 것으로 전해졌다. 통일부는 29일 오전 8시 18분 북측에 북한 주민과 어선을 인수해 갈 것을 요청하는 대북통지문을 개성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통해 전달했다. 해경 경비함은 어선을 양양 군항에서부터 NLL 인근까지 예인했다. 오후 3시 31분에는 NLL 이북에서 대기 중이던 또 다른 북한 어선에 어선과 주민들을 넘겨줬다. 이처럼 북한 주민이 양양에 도착한 지 약 30시간 만에 송환 절차가 시작되고 NLL을 넘은 지 40여 시간 만에 송환이 마무리됐지만 논란은 여전했다. 1명이 군복을 입고 있는 등 대공용의점이 의심되는 데다 목선 마스트(갑판의 수직 기둥)에 하얀 수건이 걸려 있는 등 귀순 의사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송환에만 급급한 것 아니냐는 것. 합동참모본부는 29일 브리핑을 열고 이 같은 각종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우선 군 당국은 “대공용의점이 없다는 점이 분명해 송환한 것”이라고 일축했다. 합참에 따르면 이들은 민간인으로 25일 오전 1시 오징어잡이를 위해 강원 통천항을 출항했다. 어선은 북한군 부업선으로 어획물 일부를 군에 상납하는 배였다. 이들은 27일 오전 4시 반까지 통천항 동쪽 157km 해상에서 조업했다. 오전 8시 통천항으로 돌아가기 위해 항해를 시작했다. 배에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없어 나침반으로 방향을 찾던 이들은 27일 밤 연안 불빛을 보고 강원 원산항 인근 해상일 것이라 판단했다. 그러나 이때는 NLL을 넘어 남쪽으로 내려온 뒤. 어선을 추적하던 우리 해군 고속정이 손전등을 깜빡이자 어선도 같은 신호를 보냈다. 합참 관계자는 “원산항 위수지역의 북한군이 ‘여기서 나가라’는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알고 주민들도 ‘나가겠다’는 뜻으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당시 엔진을 가동해 정남쪽으로 향한 건 원산 남쪽의 통천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고 진술했다. 마스트의 하얀 수건은 대형 선박과의 충돌을 막으려고 걸어 뒀다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선장이 군복을 입고 있어 대남 침투조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진 데 대해 합참은 “선장 아내가 장마당에서 군복 원단을 구입해 만들어준 것으로 3명 모두 군인이 아니었다”고 했다. 어선에선 오징어 20kg, 어구 등이 발견됐을 뿐 대남 침투 의도를 의심케 하는 장비는 없었다고 군은 밝혔다. 합참 관계자는 송환 전까지 조사가 너무 짧게 이뤄진 것 아니냐는 지적에 “조사에 걸린 시간과 방법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대공용의점과 남하 의도를 모두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조사했다”고 했다. 이어 “통상 실수로 NLL을 남하한 어선을 현장에서 북으로 돌려보내는 것과 달리 이번에 어선을 예인해 조사를 진행한 건 하얀 수건 등 의문점이 있어 이를 충분히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었다”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북한군 식량 조달에 쓰이는 목선 1척이 한밤중 동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왔다. 이 목선에는 북한 주민 3명이 타고 있었다. 군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해 남하 의도 등을 조사했다. 28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군은 27일 오후 11시 21분경 NLL을 넘는 목선을 식별했다. 곧바로 현장에 해군 함정 등을 출동시킨 뒤 28일 새벽 이들을 동해 해군1함대사령부로 이송했다. 이들은 귀순 의사를 묻는 우리 군에 “일없습니다(괜찮습니다)”라며 귀순 의사가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진술과 달리 군 당국은 목선 마스트(갑판의 수직 기둥) 끝에 귀순 의사를 뜻하는 흰색 천이 걸려 있었던 점 등으로 미뤄 귀순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조사 과정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강하게 밝혀 29일쯤 송환 절차가 진행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 한 명이 군복을 입고 있었지만 3명 모두 군인은 아닌 것으로 전해졌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군 부업선이라고 해서 군인만 승선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손효주 hjson@donga.com·조동주 기자}

27일 오후 10시 15분 육군의 해안 레이더에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북 5.5km 지점에 정지해 있는 목선이 포착됐다. 목선은 이내 엔진을 가동해 남쪽으로 항해를 시작했다. 육군은 해군과 함께 목선 동향을 밀착 감시하기 시작했다. 목선은 27일 오후 11시 21분 NLL을 통과해 남쪽으로 내려왔다. 군은 즉시 인근에서 작전 중이던 해군 고속정과 초계함을 현장으로 출동시켰다. 지난달 발생한 ‘삼척항 노크 귀순’ 사태 이후 군은 NLL 일대 동향에 대한 감시를 강화한 상태. 목선이 NLL 남쪽 6.3km까지 내려왔을 때 해군 특수전전단 고속단정이 투입됐다. 부대원들은 고속단정을 목선 옆에 계류시키고 해당 목선에 승선했다. 목선엔 북한 주민 3명이 타고 있었다. 1명은 북한군 군복을 입고 있었다. 배는 확인 결과 북한군이 고기를 잡을 때 쓰는 부업선이었다. 민간인들도 이 배를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군복을 입은 사람이 북한군인지는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합동참모본부는 전했다. 현장 확인 결과 목선 안에 각종 어구가 있었고 어창엔 오징어가 있었다. 배는 길이 10m로, 삼척항으로 ‘노크 귀순’해 온 북한 목선과 거의 같은 크기였다. 이들은 “방향을 잃었다”고 했다. 귀순 의사를 묻자 “아니요, 일없습니다(괜찮습니다)”라고 잘라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이들 진술과 달리 귀순 의사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도 있어 귀순 가능성에 무게가 실렸다. 우선 배 마스트(갑판의 수직 기둥) 끝에 흰색 수건이 걸려 있었다. 흰색 수건은 상대에 대한 공격 의도가 없으며 귀순할 의사가 있다는 뜻을 전할 때 쓰인다. 해군 고속정이 손전등으로 신호를 보냈을 때 목선에서도 불빛을 보이며 응답한 점, 항로 착오인 경우와 달리 정남쪽으로 내려온 점 등도 귀순 의도를 의심케 하는 부분이었다. 군 당국이 통상 NLL 인근에서 발견된 북한 목선을 현장에서 간단한 조사를 거친 뒤 퇴거 조치하는 것과 달리 이번엔 28일 새벽 목선을 인계하고 승선자들을 이송해 조사하는 것도 불법 조업을 하려고 남하한 것이 아닐 가능성을 염두에 뒀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은 이 같은 정황과 달리 정부 조사에서 “북한으로 돌아가겠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혔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들에게서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보고 이르면 29일 중 북한으로의 송환 절차를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군 관계자는 “북한의 경우 선박 항법 장비가 열악해 엔진을 가동해 기동하는 등 정상적인 항해 패턴을 보이고도 NLL을 남하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며 “다만 이번에는 통상적인 경우와 달리 몇 가지 특이점이 있어 신병을 확보해 조사를 진행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5월 말부터 28일 현재까지 동해 NLL 이남에서 불법 조업을 하다가 퇴거 조치된 북한 어선은 400여 척에 달한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40여 척이었다. 올해 불법 조업 어선이 대폭 늘어난 건 오징어 어장이 NLL 주위로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군 당국은 설명했다.손효주 hjson@donga.com·조동주 기자}
군 당국이 우리 해군의 호르무즈 해협 파병이 가능한지 법률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4일 청와대를 찾아 한국 정부와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협력 방안을 협의해 나가기로 한 가운데 군 당국의 법률 검토까지 전해지면서 파병 임박설에 불이 붙는 분위기다. 정부 소식통은 25일 “파병에 관해 결정된 건 없다”면서도 “이와 별개로 파병이 가능한지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하고 있는 건 맞다”고 전했다. 특히 군 당국은 별도 부대를 편성해 파병하는 대신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를 보내는 방안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별도의 부대를 파병하려면 국회로부터 파병 동의를 얻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지고 장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이미 파병 동의를 받아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작전 중인 청해부대에 임무를 추가하고 작전 구역을 확대하는 방안이 현실적이라고 판단하는 것. 더불어민주당 소속 안규백 국회 국방위원장도 이날 라디오에 출연해 “청해부대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 있어 국회에 파병동의안을 내지 않아도 가능할 걸로 판단한다”며 파병이 실현될 것임을 시사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한국과 러시아가 25일 러시아 군용기의 영공 침범 사건 경위 및 대응 문제점을 논의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열고 책임 소재를 가리는 절차에 들어갔다. 서울 국방부 청사에서 이날 오전 10시 반부터 1시간가량 진행된 협의에서 한국 측은 사건 당시 우리 군 레이더에 포착된 러시아 군용기의 비행 항적, 당시 출격한 한국 전투기의 디지털 비디오 레코드 기록 등 영공 침범을 입증할 증거 자료를 제공했다. 이원익 국방부 국제정책관 등은 주한 러시아대사관 무관부 무관대리인 니콜라이 마르첸코 공군대령 등에게 증거 자료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에 러시아 측은 “제공받은 자료를 러시아 정부가 진행 중인 조사에 참고할 수 있도록 본국에 충실히 보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국방부는 전했다. 러시아 측은 이날 실무협의가 자료를 제공받는 자리였던 만큼 “영공을 침범한 적이 없다”는 등 러시아 정부의 입장을 내세우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방부는 이날도 한국 영공을 침범한 러시아를 비판하는 입장문을 내지 않았다. 이번 사태를 두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일본에 대해 전날 대일 경고를 담은 입장문을 낸 것과 대조적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영토 침입 사실을 부인하는 러시아에 대해 비판부터 하게 되면 서로 감정적이 돼 정확한 조사 결과를 내놓지 않으려 할 수 있다”며 “입증 자료가 있는 만큼 냉정하게 대응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편 주한 러시아대사관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윤도한 대통령국민소통수석비서관의 실명을 거론하며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영토 침범이 군용기의) 기기 오작동으로 인한 사건이라며 유감을 표명했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윤 수석은 24일 브리핑에서 영공 침범이 발생한 23일 국방부로 초치된 무관이 기기 오작동 가능성을 제기하며 유감을 표명한 사실을 전하는 과정에서 이를 무관의 사견이 아닌 러시아 정부 공식 입장인 것처럼 밝혀 논란을 빚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청와대가 25일 오전 함경남도 호도반도에서 동해상으로 발사된 북한의 발사체를 ‘새로운 종류의 단거리 탄도미사일’로 확정하면서 큰 파장이 예상된다. 지난달 말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이후 고조됐던 남북, 북-미 유화 무드가 급격히 경색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는 유엔 결의를 명백히 위반한 것이고 9·19 남북 군사합의에도 정면으로 위배되는 ‘중대 도발’로 규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앞서 이날 오후까지만 해도 군은 북한이 쏜 미사일이 ‘새로운 형태의 단거리 미사일’이라고만 했을 뿐 정확한 기종이나 제원 등은 한미 양국 군이 추가 분석 중이라는 답변만 내놨다. 탄도미사일인지에 대해서도 확답을 피했다. 비행 궤적과 특성 등을 더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부터 군 안팎에선 단거리탄도미사일(SRBM)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한 소식통은 “정찰위성 등에 포착된 미사일의 외형과 레이더에 잡힌 초기 비행속도 등으로 볼 때 탄도미사일이 거의 확실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확한 기종이다. 일각에선 북한이 5월에 호도반도(1발)와 평북 구성 일대(2발)에서 쏴 올린 KN-23 신형 SRBM급 또는 그 개량형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비행고도와 사거리 등 전반적인 비행 패턴이 당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이날 발사한 두 발의 미사일은 50여 km 상공에서 정점을 찍은 뒤 430여 km와 690여 km를 각각 날아갔다. 5월에 북한이 쏜 KN-23도 같은 고도로 비행하면서 240∼420여 km의 사거리를 기록했다. 장영근 항공대 교수는 “KN-23의 탄두 무게를 줄여서 사거리를 더 늘린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최대한 고도를 낮춰 멀리 날려 보낸 뒤 종말(낙하) 단계에서 불규칙하게 비행하는 ‘요격 회피기동’을 테스트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군 소식통은 “690km를 날아간 미사일은 예상 탄착지점을 벗어난 곳에 떨어졌다”며 “그만큼 요격이 힘들다는 사실이 입증된 것이어서 한미 군 당국이 심각하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 미사일의 비행 상황을 미국의 다양한 탐지전력으로 분석했다고 우리 군이 밝힌 점도 낙하 시 비행고도가 너무 낮고, 궤적이 변칙적이어서 우리 군의 레이더망에 포착되지 않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은 핵탄두 장착이 가능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등 기존 방어수단으로도 요격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을 북한이 이번 발사로 증명한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CNN은 이날 발사된 미사일이 5월에 쏜 미사일과 유사하다는 미 국방부 당국자의 발언을 전했다. 북한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KN-23의 요격회피 기동 등 실전 성능을 최종 점검했을 개연성도 있다. 하지만 군은 최대한 신중을 기하는 분위기다. 합참 관계자는 “5월에 발사한 것과 같은 기종인지는 더 살펴봐야 한다. 현재로선 확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신형 SRBM으로 결론이 나도 정부가 발표할지 미지수라는 전망이 제기됐었다. 5월의 KN-23 발사 때처럼 정부와 군이 대북관계를 고려해 ‘시인하지도 부인하지도 않는(NCND)’ 태도를 취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북한이 23일 중국과 러시아 폭격기의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 내 연합훈련 일정을 통보받고 발사일을 조정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미사일 발사는 다음 달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반발과 판문점 북-미 정상 회동 이후 실무협상을 앞두고 기선제압 차원의 ‘무력시위’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손효주 기자}

러시아 군용기 등 외국 군용기가 1953년 정전협정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 영공을 침입한 사건이 발생한 이후 한-러 국방부가 영공 침입 여부를 두고 진실공방을 벌이고 있다. 한국 국방부는 24일 “영공 침입이 맞다. 러시아 군용기가 항법장치 오작동으로 위치를 착각했을 가능성은 없다”고 일축했다. 이에 러시아는 24일 러시아 정부의 공식 입장을 한국 국방부에 전하는 전문을 통해 “러시아는 한국 영공을 침입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국 공군이 러시아 군용기의 비행항로를 방해하고 (경고사격 등으로) 안전을 위협했다”고 주장했다. 이날 국방부는 오후 1시 45분 브리핑을 열고 영공 침입이 발생한 23일 국방부로 초치된 러시아 무관이 “정상 루트를 밟았다면 침입할 이유가 없다. 군용기 내 (항법장치 등) 기기가 오작동했을 가능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영공 침입을 전제로 재발 방지 약속을 했다는 게 국방부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에 기자들은 “이를 러시아 정부 공식 입장이라고 봐도 되느냐”라는 질문을 쏟아냈다. 국방부 관계자는 “공식 입장인지는 불명확하다”며 판단을 보류했다. 그러나 곧 러시아 국방부가 러시아 무관 발언과 정반대되는 입장을 내면서 수습 국면으로 접어든 것처럼 보인 한-러 갈등은 재점화됐다. 러시아 정부는 공식 전문을 통해 “러시아가 영공을 침입한 적이 없음에도 한국 공군이 비전문적 비행을 하는 등 과잉 대응을 보였다”는 취지로 항의했다. 러시아 군용기가 영공을 침입한 것에 대해 공군 전투기들이 교전을 막기 위해 차단 기동과 경고 사격으로 수위를 조절했지만 ‘비전문적 비행’과 ‘과잉 대응’이라며 적반하장식 반응을 보인 것. 이와 별도로 러시아 정부는 영공 침입이 발생한 23일 러시아에 파견된 한국군 무관을 초치해 “한국군이 영공을 침입하지도 않은 러시아 군용기에 대해 경고사격을 하는 등 공중 난동을 부렸다”며 항의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러시아 무관이 자국 군용기 기기의 오작동 가능성을 제시하며 고의성을 부인한 것과 관련해 국방부는 이날 오작동 가능성도 일축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24일 국방부 관계자는 “오작동일 수가 없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A-50)가 첫 번째 영공 침범 당시 독도로부터 13km 떨어진 지점까지 침범하는 등 영공을 9km가량 깊숙이 들어간 점, 두 번에 걸쳐 침입한 점 등을 들어 이런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전현직 공군 조종사들도 오작동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견해를 밝혔다. 한 예비역 공군 전투기 조종사는 “기기 오작동이면 1km 안팎으로 영공을 침범할 순 있지만 10km 가까이 깊숙이 침범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했다. 감시·정찰 임무 및 공중 지휘 통제 임무를 하는 군용기인 A-50은 공중의 타국 전투기 등 적 표적과 관련한 구체적인 위치 정보를 파악해 자국 전투기에 제공하는 등의 역할을 한다. 조기경보통제기를 ‘공중의 전투지휘사령부’라 부르는 이유다. 이 때문에 A-50에 장착된 레이더나 항법장치는 전투기 등 여타 군용기보다 더 정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대영 한국국가전략연구원 연구위원은 “A-50 등 조기경보통제기는 임무가 중대한 만큼 오작동에 대비해 위치를 알려주는 복수의 항법장치를 운영한다”며 “복수의 장치가 모조리 오작동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국방부는 25일 러시아 측과 이번 사안과 관련해 첫 실무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군 관계자는 “영공 침범이 중대한 국제법 위반으로 국제적인 비판을 받을 수 있는 사안인 만큼 러시아는 기기 오작동 또는 조종사 실수를 주장하는 식으로 사태를 단기간에 수습하려 할 수 있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23일 오전 6시 40분 전후. 중국 폭격기 H-62대가 이어도 북서쪽에서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으로 접근하는 모습이 공군 중앙방공통제소(MCRC) 레이더에 포착됐다. H-6 편대는 우리 공군에 사전 통보 없이 오전 6시 44분 KADIZ에 무단 진입했다. 공군 군산기지에선 곧바로 KF-16 전투기 2대가 출격했다. 이때만 해도 상황은 그리 엄중하지 않았다. 중국은 2월 군용기를 무단 진입시키는 등 수시로 KADIZ에 진입하고 있다. 지난해 KADIZ에 중국 군용기가 무단 진입한 사례는 140여 건에 달했다. 일상적인 작전 상황으로 여길 수도 있는 부분이었다.○ 중-러 폭격기 ‘KADIZ’에서 첫 연합비행 도발 사태는 오전 8시 33분부터 심각해졌다. KADIZ에서 이탈한 중국 폭격기가 KADIZ 북쪽 외곽에서 러시아 폭격기(TU-95) 2대와 합류한 것. 오전 8시 44분 중-러 폭격기 4대는 울릉도 북쪽 140km 지점에서 KADIZ에 진입했다. 중-러 군용기가 KADIZ에 동반 진입해 사실상 연합훈련을 실시한 건 처음이었다. 중-러 군용기는 연합 편대 비행을 시작했다. 전례 없는 상황에 군 당국에 긴장감이 흘렀다. 군산, 대구 등 4개 공군기지에서 KF-16, F-15k 전투기가 무려 20대 가까이 2대씩 순차 출격했다. MCRC에선 중국어, 러시아어로 긴박하게 경고방송을 반복했다. “대한민국 영공에 접근하지 말라. 경고사격 할 수 있다”는 압박이었다. 하지만 중-러는 이를 무시했다. 편대는 울릉도와 독도 사이 상공을 거쳐 남하하더니 오전 9시 4분 빠져나갔다. 24분간 KADIZ 내를 휘젓고 다닌 것. ○ 러 조기경보기, 우리 영공 첫 침범 최악의 상황은 양국 군용기가 KADIZ를 빠져나가기 직전 발생했다. 오전 9시 1분 이번엔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A-50)가 KADIZ로 진입했다. KADIZ를 넘어선 것도 모자라 영공에 바짝 접근했다. 이러자 공군작전사령부가 중앙 통제를 하며 일촉즉발의 상황에 실시간으로 대응했다. 경고방송이 이어졌고, 공군 전투기 2대는 KADIZ에 진입하지 못하도록 A-50 전방에서 지그재그로 비행하는 등 차단비행을 실시했다. 그러나 A-50은 오전 9시 9분부터 3분간 독도 동쪽 13km 영공까지 침입했다. 영공은 독도에서 12해리(약 22.2km) 상공까지인데 한참을 더 들어온 셈이다. 공군은 대공미사일 회피용 조명탄인 플레어 10여 발을 투하했다. 강력한 섬광을 내는 플레어로 시각적 압박을 주며 영공에서 나가라고 경고한 것. 이어 전투기 기총으로 80여 발을 경고사격하며 퇴거 작전에 나섰다. 영공에 타국 군용기가 침범한 일도, 플레어 투하와 경고사격을 한 것도 사상 처음이었다. 군 관계자는 “A-50을 엄호하겠다며 러시아 전투기 등이 투입돼 응사했을 경우 실전으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강경 대응에 A-50은 오전 9시 15분 KADIZ를 이탈했다. 그러나 9시 28분 KADIZ로 재진입하더니 9시 33분부터 또 영공을 침범했다. 독도 서쪽 16km까지 접근했다. 재침범을 하자 공군 대응은 단호해졌다. 플레어 10여 발을 투하한 뒤 1차 침입 때보다 3배 이상 많은 기총 사격 280여 발을 실시했다. A-50은 9시 37분 영공에서 물러났다. 9시 56분엔 KADIZ를 빠져나갔다. 교전으로 이어질 뻔한 상황을 겪고도 러시아는 이날 오후 한국군 대응 태세를 비웃듯 KADIZ에 재진입하는 과감한 행보를 보였다. 오전에 중국 군용기와 연합비행을 하다 KADIZ를 빠져나간 러시아 폭격기 2대가 돌아온 것. 폭격기는 오후 1시 11분 KADIZ에 재진입한 뒤 연합비행 경로를 거슬러 올라 복귀했다. 오후 1시 38분에야 KADIZ를 벗어났다. 사상 최초의 중-러 군용기 KADIZ 내 연합비행과 영공 침입 상황이 무려 7시간가량 이어진 셈.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합동참모본부와 공군 등엔 내내 긴장감이 흘렀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청와대는 23일 러시아 군용기가 우리 영공을 무단으로 침범한 사실에 대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나서 러시아에 강력하게 항의했다. 다만 청와대는 러시아와 중국이 나란히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을 침범한 배경에 대해서는 조심스러운 모습이다. 양국의 이번 행동이 우리 정부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까지 겨냥한 의도된 침범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러시아의 침범 의도에 대해 “지금 말씀드리는 것은 적절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러시아가) 의도를 가지고 한 것인지, 아니면 조종사의 실수인지 등을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지만, 우리 정부가 짐작하고 있는 러시아의 의도를 공개적으로 밝히기 어렵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군 내부에서도 “(러시아와 중국이) 미리 계획을 짠 뒤 의도적인 무력시위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팽배하다. 청와대와 군은 이번 러시아와 중국의 의도된 도발이 미국까지 염두에 둔 행동이라고 보고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단순히 우리 정부만을 고려한 조치는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인도태평양 전략을 강조하는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미국에 대한 견제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청와대 참모들이 ‘인태 전략’이라고 부르는 인도태평양 전략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수립 이후 미국 정부가 강조하는 경제·안보 전략으로 인도와 아시아 국가들과의 정치, 경제,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중국을 견제하겠다는 의도다. 일본을 거쳐 이날 한국을 찾은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입국 뒤 트위터를 통해 “인도태평양 안보와 번영에 매우 필수적인 우리의 중요한 동맹국 지도부와 생산적인 만남을 고대한다”고 밝혔다. 이런 미국의 전략에 맞서 중국과 러시아는 양국 간 긴밀한 협조를 이어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지난달 정상회담을 갖고 양국 관계를 ‘신시대 전면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는 데 합의했다. 양국의 이런 밀착된 흐름이 초유의 영공 침범이라는 시위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또 중국과 미국의 무역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러시아와 미국 역시 불편한 관계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정부 관계자는 “최근 불거진 한일 갈등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일본의 수출 보복 조치에 대한 맞대응으로 우리 정부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재검토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상황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한미일 3국 군사협력을 교란하겠다는 의도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일본 역시 러시아와는 쿠릴열도에서, 중국과는 센카쿠열도에서 각각 영토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이란에 대한 압박에 나선 미국이 호르무즈 해협에서의 국제 군사 공조에 나서고 있다는 점도 이번 도발의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은 미국의 공조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복합적인 상황들 때문에 청와대가 신중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는 셈이다. 한 외교 소식통은 “한일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청와대는 백악관과 긴밀하게 협조할 수밖에 없지만, 그럴수록 중-러 양국과의 관계 설정도 고민해야 한다”며 “미-일-중-러 4강 국가와 인접한 우리는 외교적 행동 하나하나가 낳을 후폭풍까지 철저하게 고려해 움직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상준 alwaysj@donga.com·손효주 기자}

러시아 군용기가 23일 독도 인근 우리 영공을 무단 침범해 우리 전투기가 기총 사격을 하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발생했다. 이에 앞서 중국과 러시아 군용기가 동시에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에 무단 진입해 연합 비행을 펼치기도 했다. 외국 군용기가 영공에 침입한 것과 중-러 군용기의 무단 KADIZ 동반 진입 모두 사상 최초다. 최근 한일 갈등으로 한미일 안보 협력이 흔들리자 중-러가 손을 잡고 ‘한반도 주변 안보 흔들기’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23일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9분부터 3분간 정찰 임무를 하는 러시아 조기경보통제기 A-50 1대가 독도 동쪽 13km까지 접근했다. 우리 영공인 독도 인근 12해리(약 22.2km) 이내로 깊숙이 들어온 것. 이후 KADIZ 너머까지 잠시 빠져나간 A-50은 오전 9시 33분부터 4분간 독도 영공을 재침입했다. 공군이 사상 최초의 사태에 KF-16 등 전투기를 순차 투입해 섬광탄(플레어)을 투하하고, 전투기 기총으로 경고 사격을 360여 발까지 했지만 러시아 군용기는 우리 영공을 7분간 비행한 뒤 빠져나갔다. 이에 앞서 중국과 러시아는 이날 오전 각각 폭격기 2대(총 4대)를 투입해 KADIZ 내에서 연합 비행을 하기도 했다. 중국 폭격기 2대가 먼저 KADIZ에 진입한 뒤 빠져나갔고 이후 러시아 폭격기와 합류한 뒤 KADIZ로 되돌아와 24분간 비행했다. 군 관계자는 “미리 세부 계획까지 짠 뒤 의도적으로 무력시위를 한 것”이라고 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이날 니콜라이 파트루셰프 러시아 연방안보회의 서기에게 “이 사태를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으며, 이런 행위가 되풀이될 경우 훨씬 더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항의했다.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는 서울 외교부 청사로 추궈훙(邱國洪) 주한 중국대사와 막심 볼코프 주한 러시아대사 대리를 초치해 우리 영공과 KADIZ 침범에 대해 항의했다. 국방부 역시 주한 중국 국방무관과 주한 러시아 공군무관을 각각 초치했다. 하지만 중-러 당국은 적반하장식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는 국방장관 성명을 통해 “(러시아 폭격기는) 국제 규정을 준수했으며 한국 전투기의 기동이 러시아 폭격기의 안전을 위협했다”고 밝혔다.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방공식별구역은 영공이 아니며 국제법에 따라 각국은 비행의 자유를 누린다”고 했다.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상은 정례 기자회견에서 ‘다케시마(독도) 영공을 러시아기가 침공했는데 왜 한국에 항의하느냐’는 질문에 “일본 영토여서 우리가 대응해야 하는데, 한국이 조치에 나선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답했다. 손효주 hjson@donga.com·신나리·박효목 기자}

2014년 8월 국방부 내 기자실. 군 관계자들이 군내 가혹행위 등 사건 10여 건을 동시에 발표했다. 후임병 입에 파리를 넣는 등 가혹행위에 이어 성추행까지…. 군내 불미스러운 사건을 한꺼번에 공개하는 전례 없는 모습에 기자들은 의아해했다. 당시는 ‘윤일병 구타 사망 사건’의 실상이 밝혀지면서 군이 은폐 의혹으로 여론의 집중 포화를 받던 때였다. 남경필 당시 경기지사 장남의 후임병 대상 가혹행위 사건을 은폐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면서 군은 은폐의 온상으로 낙인찍힌 상태였다. 당시 육군은 앞으로 불미스러운 사건이 확인되는 대로 모두 언론에 공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악화된 여론 수습책이었다. 실제로 군은 10여 건 공개 이후 각종 사건을 거의 매일 공개했다. 하지만 이는 오래가지 않았다.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함구하다 특정 사건이 언론에 먼저 보도되면 뒤늦게 공개하는 식의 관행이 다시 이어졌다. 요즘 군을 보면 5년 전이 떠오른다. 북한 목선의 삼척항 ‘노크 귀순’과 해군 2함대사령부의 거동수상자 발견 및 허위자백 사건이 연이어 터지고 은폐 의혹이 불거졌다. 군의 신뢰는 추락했다. 벼랑에 몰린 군은 5년 전 내놓았던 ‘신뢰 수습책’을 다서 꺼내 들었다. ‘노크 귀순’과 ‘거동수상자 사건’이 대공 용의점이 의심되는 사건이었던 만큼 군은 이들 사건 이후 벌어진 대공용의점 의심 사건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있다. 합동참모본부가 12일 강원 고성 해안가에서 북한 무인 목선이 발견된 사실을 공지한 것이 대표적이다. 13일 무인 목선 3척과 15일 1척이 발견된 사실도 알렸다. 무인 목선 발견은 올 들어 15일까지 동해에서 14척, 서해에서 2척 발견되는 등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17일에는 잠망경 추정 물체가 발견된 사실을 세 차례에 걸쳐 발표했다. 이는 어망 부표로 드러났다. 앞서 1일엔 “정체불명 항적이 레이더에 포착됐다”고 공지했다. 이 역시 새 떼로 밝혀지면서 해프닝으로 끝났다. 군이 사안의 경중을 따지지 않고 ‘일단 알리고 보자’며 발표를 쏟아내자 비판론도 나온다. 오인 신고나 새 떼를 무인기 등으로 착각하는 일은 1년에 수없이 발생하는 등 ‘뉴스’가 아닌데도 ‘뉴스화’한다는 것. 잠망경 해프닝 기사엔 “북한 잠수함인데 또 은폐한다”는 댓글이 많았다. “오인 신고였다”는 군 발표를 믿지 않고, 불신과 불안이 증폭되는 역효과도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군 내부에선 군 지휘부가 ‘은폐 노이로제’로 판단력이 흐려져 꼭 알려야 할 상황과 일상적인 작전 상황조차 구분하지 못하고 무조건 알리는 데 급급하다는 비판이 나온다. A 장교는 “일상적인 오인 신고까지 모두 알리기 시작하면 업무가 마비될 것”이라고 했다. B 장교는 “‘묻지 마 발표’는 알권리를 넘어 알 필요가 없는 정보까지 알려 국민의 안보 불안을 가중시킬 뿐”이라고 했다. 신뢰 회복을 위한 대국민 심리전이라도 하듯 ‘아무’ 발표나 쏟아내는 군의 모습은 정상이 아니다. 국민의 요구는 아무 사건이나 다 신속히 알려달라는 게 아니다. 삼척항 노크 귀순처럼 군에 치부가 될 것이 명백한 사건을 가려내 스스로 알리되, 있는 그대로 알려 달라는 것이다. 경계 실패를 경계 실패라고 인정하라는 것이다. 목선이 삼척항에서 발견됐으면 삼척항이라 발표하는 것이 ‘국민 눈높이’에 부합하는 적확한 발표다. ‘삼척항 인근’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쓴 뒤 “군은 원래 이런 용어를 쓴다”며 군내 회의가 아닌 대국민 브리핑 상황에서 군의 특수성을 주장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군은 19일 군 주요지휘관 워크숍을 열어 현 상황을 엄중하게 본다고 했다. “신뢰 받는 군으로 거듭나겠다”고도 했다. 그러나 군이 최근 보여주고 있는 ‘발표 쏟아내기’로는 신뢰를 얻기에 한계가 있다. 군이 신뢰를 회복하는 첫 단계는 왜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됐는지 그 원인부터 정확히 진단한 뒤 해법을 마련하는데 있다. 손효주 정치부 기자 hjson@donga.com}
군 당국이 한미가 다음 달 5일부터 진행할 예정인 ‘19-2 동맹’ 연습의 명칭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19일 군 소식통에 따르면 군 당국은 최근 당초 한미가 ‘19-2 동맹’으로 명명한 이 연습의 명칭을 ‘전시작전권 전환 검증 연습’ 등 연습 목적이 명확히 드러나는 명칭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 소식통은 “미국과 최종 조율은 거치지 않아 확정된 명칭은 아니지만 한국 군 당국이 명칭 변경을 적극 추진하고 있고 미 측도 긍정적으로 검토할 것”이라고 했다. 군 당국이 연습을 보름가량 앞두고 명칭 변경을 추진하는 건 북한의 반발을 줄이려는 뜻으로 풀이된다. 앞서 북한은 16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 등을 통해 “우리 공화국을 군사적으로 타고 앉기 위한 실동훈련”이라며 훈련 진행 시 핵·미사일 실험을 재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조미(북-미) 실무협상에 영향을 주게 될 것”이라며 훈련 진행과 실무협상을 연계하는 발언도 했다. 이번 연습은 전작권 전환을 위해 한국군의 연합작전 수행능력을 검증하는 1단계 절차인 기본운용능력(IOC)을 검증하기 위한 연습이다. 그러나 명칭에 들어가는 ‘동맹’이라는 단어가 연습 목적과 달리 북한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한미 동맹 및 한미 연합훈련의 이미지를 과도하게 부각시킬 수 있는 만큼 논의를 거쳐 동맹이라는 표현을 지우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명칭이 바뀌더라도 북한 반발을 누그러뜨리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번 연습은 전차 등 실제 전력은 동원되지 않는 지휘소연습(CPX)으로 한미 연합군의 작전 계획을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숙달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연습 내용은 북한의 남침 임박 상황을 가정한 위기 관리, 방어는 물론이고 한미 연합군의 반격, 북한 지휘부 축출, 대량살상무기(WMD) 제거 등이 시뮬레이션에 포함된다. 3월 실시한 또 다른 한미 연합 CPX인 ‘19-1 동맹’에선 북한 반발을 감안해 방어 후 반격부터는 생략한 바 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여권에서 일본 경제 보복 조치와 관련해 백악관을 확실히 움직일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호르무즈 해협 파병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 조심스레 확산되고 있다. 이란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고 있는 미국은 19일(현지 시간) 국무부에서 한국을 포함한 60여 개국 외교관들에게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체 구상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일본을 거쳐 23일 방한하는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정경두 국방부 장관 등을 만나 파병 요청을 꺼낼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파병에 대해 여전히 신중하지만 일각에선 “할 거라면 떠밀리듯 하지 말고 먼저 나서자”는 기류도 감지된다. 일본은 자위대를 보내더라도 호르무즈 해협에서 무력행사에 나설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고, 이란이 일본의 주요 원유 수입국이라는 점 때문에 머뭇거릴 수 있는 만큼 우리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논리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1일 “연합군 형성이 끝나가는 단계에서 참여한다면 파병은 협상 카드로서 효용 가치를 잃을 수 있다는 주장도 있지만 반대로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며 “참의원 선거가 끝났으니 일본의 후속 대응을 지켜본 뒤 종합적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도 “파병의 정치적 효력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우리가 (보내겠다고) 먼저 손들 수도 있는 것”이라고 했다. 군 당국은 아직 호르무즈 해협 파병 요청을 공식적으로는 받지 않았지만 공식 요청에 대비해 파병 여건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 있는 청해부대를 보내거나 한국에서 별도의 구축함을 보내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박효목 tree624@donga.com·손효주 기자}
중동 ‘호르무즈 해협’ 해상 호위를 위한 한국군 파병 여부가 한일 갈등 국면의 새로운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 미국이 연합군 구성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일본에 앞서 선제적으로 파병에 나서 한일 갈등 국면에 중립적인 백악관을 설득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러나 9년 만의 파병 결정에 대한 후폭풍도 만만치 않아 청와대 안에서도 찬반 주장이 맞서고 있다. 23일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방한하는 존 볼턴 미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보좌관의 행보를 기점으로 파병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 압박에 전방위로 나서고 있는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을 지키기 위한 국제 연합군 형성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백악관은 19일(현지 시간) 한국 등 60개국 관계자들을 상대로 호르무즈 해협의 상황과 보호 필요성, 호위 연합체 구성 등에 대한 브리핑을 열었다. 구체적인 파병 요청은 없었지만 사실상 각국에 파병을 요청하기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다. 이에 청와대도 관련 검토에 착수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21일 “선제적인 파병을 지렛대 삼아 백악관을 설득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파병이 백악관의 한일 관계 개입으로 직결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신중론도 있다”고 전했다. 설령 파병에 나선다고 하더라도 그 효용 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점까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파병을 주장하는 쪽은 한국 원유 수입 물량의 70%가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하는 만큼 “원유 공급처 확보와 미국의 측면 지원이라는 명분과 실리가 다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현 청와대 안에는 노무현 정부 당시 이라크 파병 결정 과정의 극심한 논란과 후폭풍을 직접 겪었던 참모가 적지 않다. 2010년 아프가니스탄에 ‘오쉬노 부대’를 파병한 이후 9년 만의 파병 결정엔 다양한 국내외적 고려 요소가 있는 셈이다. 만약 호르무즈 파병이 결정된다면 2009년부터 소말리아 아덴만 해역에서 보호 작전을 진행 중인 청해부대가 역할을 맡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군 일각에서는 “아덴만 해역의 전력 공백이 있을 수 있는 만큼 청해부대와 별도로 한국에서 4000t급 이상의 구축함을 별도로 보내는 방안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관측도 나온다.박효목 tree624@donga.com·손효주 기자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2016년 11월 발효된 협정이다. 미국을 통해 북핵 및 미사일 관련 대북 정보를 주고받던 한일은 협정 체결 이후 직접 정보를 교환할 수 있게 됐다. 일본이 정찰위성 등 감시 전력으로 수집한 정보와 한국이 군사분계선(MDL) 등 북한 지척에서 포착한 정보 등을 직접 주고받게 된 것. 분초를 다투는 긴박한 대북 군사 상황에 대해 한층 신속하고 정확한 대응이 가능해졌다는 평가가 많았다. 앞서 2012년에도 체결이 추진됐지만 국무회의에서 즉석 안건으로 상정시켜 비밀리에 통과시키는 등 여론 수렴 과정도 없이 밀실 추진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서명 직전 무산된 바 있다. 무산 이후에도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고도화된 북핵·미사일 위협에 보다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성을 내세워 협정 체결을 지속적으로 주문한 바 있다. 협정의 유효기간은 1년이지만 기한 만료 90일 전(올해는 8월 24일) 협정 종료 의사를 서면 통보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1년 연장된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합동참모본부가 해군 2함대사령부 거동수상자 허위 자수 사건을 처음 폭로한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을 사전에 회유하려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합참이 김 의원 측에게 기자회견과 이후 이어진 박한기 합참의장과의 통화 녹취록 공개를 하지 말아 달라며 회유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 측은 18일 “합참 작전본부장이 (사건이 공개된) 12일 오전 8시 44분경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안 하면 오후에 의원실에 직접 가 설명하겠다’고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김 의원이 12일 오전 8시 35분경 2함대 사건 관련 기자회견을 열겠다고 기자들에게 알린 지 10분도 안 돼 합참이 연락을 취해 온 것. 김 의원 측은 “국회의원 기자회견에 작전본부장이 개입하려는 건 부당하다고 생각해 ‘조건 달지 말고 와서 보고하라’며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이와 별개로 김 의원이 이날 오후 합참의장과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하기 직전 합참 고위 관계자가 김 의원 측에 또 전화를 건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 측은 “합참의장 녹취록을 공개하지 않으면 앞으로 김 의원에게 특별히 뭐든 가장 먼저 잘 보고하겠다고 회유해 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합참 관계자는 “관련해 별도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조동주 djc@donga.com·손효주 기자}
청와대가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은 먼저 손대지 않겠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의 조치에 항의하기 위해 협정 종료 통보 등을 먼저 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지난주 방미한 우리 외교 당국자에게 미국 측이 “한일 정보협정이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우려한 것에 앞서 정부가 일찌감치 “한일 갈등을 안보 분야로 확전하지 않는다”는 내부 방침을 정한 것이다. 16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청와대는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가 시작되기 전인 지난달 회의를 통해 이 같은 내부 방침을 정했다. 소식통은 “보복 조치가 진행 중인 현재도 정부 기류는 크게 바뀐 게 없다”고 했다. 2016년 11월 발효된 한일 정보협정은 양국 중 한쪽이 협정 만기 90일 전(8월 24일)까지 종료를 통보하지 않는 한 1년씩 연장된다. 과거 한일은 미국을 거쳐 북핵·미사일 관련 민감한 군사 정보를 교환했는데 협정 체결 이후엔 직접 교환할 수 있게 되면서 신속 정확한 대처가 가능해졌다. 하지만 일각에선 일본이 경제 보복 카드를 철회하지 않을 경우 정부가 협정 종료 통보라는 ‘안보 카드’로 맞불을 놓을 가능성이 제기돼 왔다. 반대로 일본이 자신들이 제공한 군사기밀이 북한으로 유출됐다는 근거 없는 의혹을 제기하며 협정 종료를 통보해올 가능성도 제기돼 왔다. 그러나 한일 양국 모두 협정 카드를 꺼내기가 부담된다는 평가도 나온다. 미 정부가 협정 체결을 적극 중재한 데다 이를 한미일 3국 안보 협력의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 중 하나로 보고 있는 만큼 미국이 등 돌리게 할 조치를 취하진 않을 것이란 것이다. 김성한 전 외교통상부 2차관은 “한일 정보협정을 건드리는 건 뇌관을 건드리는 것으로 미국이라는 우군을 잃는 자충수가 될 것”이라고 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서해 해상작전을 총괄하는 해군 2함대사령부에 정체불명의 인물이 침입했는데도 검거하지 못하자 해당 부대 장교가 병사에게 허위 자백을 종용하는 등 경계 실패를 은폐·조작한 사실이 드러났다. 특히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는 허위 자백 사건을 뒤늦게 보고받아 군 기강 해이가 도를 넘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권에선 정경두 국방장관 교체 가능성이 거론된다. 12일 해군에 따르면 4일 오후 10시 2분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 내 탄약고 초소에서 근무 중이던 경계병 2명은 거동 수상자를 발견했다. 경계병은 3차례에 걸쳐 암구호 확인을 시도했지만 거동 수상자가 그대로 달아나 검거에 실패했다. 그러나 해당 부대의 한 소령은 부대원이 일으킨 해프닝으로 판단하고 다음 날 병사들에게 허위 자백을 제안했다. 이에 한 병장이 거짓 자수했지만 9일 헌병 수사 과정에서 허위 자백 사실이 드러났다. 군은 이를 “수사 중인 사안”이라는 이유로 알리지 않다가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이 12일 “군내 경계 실패 및 은폐 시도가 또다시 발생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기자회견을 예고하자 회견 20분 전 사건을 언론에 브리핑했다. 정 장관은 11일 오후 늦게야 사건을 보고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문재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에게도 12일 오전에야 보고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리는 이날 국회에 출석해 “엉터리 같은 짓을 하다가 발각됐다. 엄중 조치하겠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번 사안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며 “조사 결과가 나오면 강도 높은 조치가 취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hjson@donga.com·문병기 기자}

4일 발생한 해군부대 ‘거동 수상자’ 도주 사건과 이를 처리하는 과정은 군 기강 해이의 종합판이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다양한 문제로 점철돼 있다. 허술한 경계 태세, 중대 상황에 대한 안일한 인식, 은폐·조작 시도, 보고 누락 등에서 군 기강 해이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난 것. 특히 북한 목선 ‘노크 귀순’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안 돼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자 군의 신뢰도가 회복 불가 수준으로 훼손됐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먼저 드러난 문제는 군이 거동 수상자가 도주했음에도 단기간에 “대공 용의점이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며 대수롭지 않은 문제로 치부했다는 점이다. 12일 해군 고위관계자 등에 따르면 5일 0시 50분 군은 ‘대공 용의점이 없다’며 상황을 1차 종결했다. 경기 평택시 해군 2함대사령부 내에서 거동 수상자를 발견한 시간은 4일 오후 10시 2분이었는데 약 3시간 만에 부대 안팎의 폐쇄회로(CC)TV 녹화 화면, 경계병 증언 등을 근거로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없다며 이같이 판단한 것. 당시 이 부대에는 적 침투 가능성이 높을 경우 내려지는 부대방호태세 1급이 발령됐다. 군 관계자는 “해상·육상을 통한 적 침투 가능성을 단시간에 일축해버렸다고 해도 할 말이 없게 됐다”고 했다. 비상 상황이 종결되자 상황 관리 책임은 합동참모본부에서 2함대사령부로 넘어갔고, 거동 수상자 발견 상황은 정경두 국방부 장관에게 보고되지 않았다. 박한기 합참의장에게도 5일 아침에야 전날 밤 상황이 보고됐지만 정작 박 의장은 보고받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일한 상황 인식은 ‘허위 자백’으로 이어졌다. 사건 후속 조치의 책임이 있는 2함대사령부 A 소령은 5일 병사 10여 명에게 허위 자백을 제안했다. 내부자 소행으로 보이고, 용의자를 찾는 과정에서 여러 사람이 곤란해질 수 있는 만큼 상황을 빨리 끝내자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자백을 해도 나중에) 불이익이 없도록 하겠다”고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다른 군 관계자는 “A 소령은 ‘거동 수상자’ 발생 상황을 암구호를 잊어버린 병사가 질책받을 것이 두려워 도망친 사건 정도로 여긴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에 다음 달 중순 전역을 앞둔 B 병장이 5일 허위 자백에 나섰다. 이 사건을 12일 폭로한 바른미래당 김중로 의원은 “B 병장이 ‘강요에 따라 자백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해군은 “B 병장이 전역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자진한 것으로 안다”고 밝혀 진실 공방도 이어졌다. 그러나 B 병장은 헌병대 수사 과정에서 사건 발생 시간 다른 간부와 함께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자 9일 허위 자백 사실을 실토했다. 12일 오후까지 실제 거동 수상자는 잡지 못한 상태다. 더 큰 문제는 허위 자백 사실이 확인된 뒤에도 정 장관 및 박 의장에게 즉각 보고되지 않은 점이다. 김중로 의원은 이 사건을 폭로하기에 앞서 11일 저녁 박 의장 및 정 장관과 통화했는데 그제야 두 사람이 상황을 인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실이 12일 공개한 박 의장과의 11일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김 의원이 “(2함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느냐”고 묻자 박 의장은 “저는 처음 듣는 말씀”이라고 답했다. 청와대 또한 12일 오전에야 관련 사실을 인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12일 국회 예결위에서 “(관련 보고를) 오늘 아침 9시 반에 받았다”고 말했다. 군 당국은 허위 자백을 종용한 A 소령에 대해서는 12일 오후 2시에야 직무 배제 조치를 취했다. 결국 북한 목선 귀순 사건에 이어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경계 실패 및 은폐·조작 시도 등으로 얼룩진 사건이 또다시 발생하면서 정 장관이 책임을 피할 수 없을 것이란 의견이 많다. 군 관계자는 “정 장관이 북한 목선 사건은 일부 장군들에 대한 경고 및 보직해임 등으로 넘어갔지만 뒤이은 사건으로 군의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진 만큼 어떤 식으로든 책임지는 행보를 보여야 할 것”이라고 했다. 손효주 hjson@donga.com·이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