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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8시 반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산을 태우던 불길이 불과 15분 만에 중턱에 있는 요양원까지 내려왔다. 불길을 피해 즉시 떠나라는 대피령이 떨어졌다. 입소자 대부분이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라 차 없이는 대피가 불가능했다. 오후 9시경 정모 할머니(80) 등 입소자 4명과 요양원 여성 직원 2명이 탄 차가 요양원을 빠져나갈 때 주변은 이미 화마가 삼키고 있었다. 정 할머니 일행이 탄 차는 10분도 못 가 달려든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불이 도로를 달군 탓에 타이어가 녹아 먼저 터졌고 이후 차가 폭발했다. 정 할머니 등 3명이 숨졌고 나머지 탑승자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들보다 앞서 요양원을 출발해 인근 교회로 필사적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진 입소자들은 정 할머니 일행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산불이 방사포처럼 마을로 쏟아져” 25, 26일 이틀간 21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북동부 산불 현장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25일 오후 6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오원인 이장(57)은 마을 뒷산에서 밀려오는 화염을 보고 경악했다. 경북 의성에서 번진 불이 안동을 거쳐 영양까지 덮쳤다. 불길은 산과 바람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불과 5분 전 “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켜 달라”는 군청의 연락을 받은 오 이장은 다급하게 움직였고, 이내 주민들의 휴대전화에는 “즉시 대피하라”는 오 이장의 스마트 음성 메시지가 속속 도착했다. 한 주민은 “이장이 보낸 메시지를 받고 집을 뛰쳐나왔더니 마당에 불이 붙고 있었다”고 말했다. 50대 주민 김모 씨는 “불이 그냥 천천히 번지는 게 아니라 뉴스에서나 봤던 북한 방사포처럼 불꽃 수천 개가 미사일처럼 마을로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후 마을 전기와 통신망도 끊겼다.같은 시간 옆 마을 석보면 삼의리 권모 이장(64)도 아내 우모 씨(59)와 함께 다급하게 차에 올랐다. 마을 도로는 이미 여기저기 날리는 불씨와 검은 연기 탓에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로 옆의 낙엽이 땔감 역할을 하며 타오르자 마치 도로는 용암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권 이장 부부는 인근에 사는 친척들과 연락이 두절됐다. 오후 8시경 권 이장의 동생이 형의 행방을 찾아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권 이장의 차는 도로변 배수로에 고꾸라져 검게 탄 채 발견됐다. 차가 향하던 방향은 대피소가 아니라 삼의리 쪽이었다. 평소 권 이장과 친하게 지냈다는 오 이장은 “아마 다른 마을 주민들을 구하러 가다가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보인다”며 슬퍼했다.● 희생자 대부분 거동 어려운 노인이번 화마에 스러진 희생자 상당수는 거동이 어려운 노약자였다. 대부분 70, 80대로 집 안이나 마당, 도로 위 불탄 차 안에서 발견됐다. 영덕읍 매정리에서는 80대 노부부가 집 앞에서 불과 1분 거리의 내리막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불을 피해 집을 나섰지만 거동이 불편해 결국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장손 이모 씨(30)는 “산불이 난 뒤 교통도 통제돼 동네가 무질서 그 자체였다”면서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모두가 자책하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 안동시 임하면 신덕리 이덕마을에서는 지체장애인 안모 씨(75)가 집을 나서지 못하고 불길에 숨졌다. 그는 요양보호사 도움 없이는 밖에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하는 처지였다. 연락을 받고 조카가 안 씨를 구하기 위해 황급히 찾아갔으나 이미 숨진 뒤였다. 이웃 주민은 “대피 연락을 받았어도 움직일 수가 없어 갇혀 있었을 것”이라며 “그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인접한 임하면 임하1리에서는 80대 권모 씨(85) 부부가 화재로 무너진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권 씨의 시신이 먼저 발견됐고 아내 김모 씨(87)는 현장에서 찾을 수 없었다. 자녀들은 여러 병원을 찾아다니다가 굴착기를 동원해 집을 수색했다. 무너진 잔해에서 김 씨로 추정되는 시신이 발견됐다. 영덕군 축산면 대곡리에서도 80대 남성이 산불로 무너진 자택에 매몰돼 숨졌다. 청송군 파천면과 진보면에서는 각각 80대 여성과 70대 남성이 집 안과 마당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대피를 준비하거나 대피 중에 급속도로 번진 불길의 피해를 입으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산불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집 안이나 주변에서 숨진 채 뒤늦게 발견되는 희생자들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마음이 참담합니다. 사찰을 지키지 못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운사 보장 스님) 26일 오후 1시 반경 경북 의성군 ‘고운사(孤雲寺)’. 어제까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 사찰이 있던 자리는 시꺼먼 잔해와 재만 가득했다. 대웅전과 명부전은 불길을 피했으나 국가유산 보물인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가운루 건너편엔 범종만 금이 간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주변도 참혹했다. 나무들은 검게 타 쓰러졌고, 남은 잔불들에선 연기가 피어올랐다. 가운루 자리에 허망한 표정으로 있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어제 오후 4시쯤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며 불씨가 날아왔다”며 “급히 피했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왔는데, 손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한숨지었다.피해 소식에 달려온 신도들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한금 씨(60)는 “산불이 걱정돼 24일부터 와 있었다”며 “절에 있던 보물 옮기는 작업도 도왔는데 다 지키지 못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고운사에서 30년 동안 석축 공사를 했다는 70대 김모 씨는 “가운루가 지난해 보물로 승격돼 너무 기뻤는데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 고운사 앞 최치원문학관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19년 세운 문학관 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 다행히 지하 방화문을 닫아둬 수장고 유물들은 손상되지 않았다. 고운사가 무너지자 인근 국가유산이 있는 지역들도 초긴장 상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10시 현재 병산서원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지역까지 산불이 근접했다. 만일에 대비해 서원에 물을 계속 뿌리고 있으며, 류성룡 선생 위패 등을 옮길 준비도 하고 있다. 앞서 이날 오전 찾아간 안동하회마을은 밤새 서풍이 불어준 덕에 산불이 비켜 갔다. 하지만 멀리서 넘어온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언제 바람 방향이 바뀔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북 청송의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사남고택’은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다. 산불이 퍼지고 있는 안동과 의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외에도 국보 5건과 보물 50건이 밀집한 지역이다. 특히 봉정사의 국보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다. 대웅전도 국보이며, 보물인 화엄강당과 고금당도 나무로 지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전날 사찰의 주요 유물을 긴급 이송했으며, 극락전 등엔 방염포를 씌워 뒀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입구가 많아 화염이 빠르게 번진다. 발열과 연기량도 많아 진압하기가 특히 까다롭다.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도 안심할 순 없다. 2005년 강원 양양 화재 당시 보물 ‘낙산사 동종’은 쇠인데도 녹아내렸다. 인근의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등도 위험하다. 한 박물관 방재전문가는 “금속보다 내열성이 강한 석조조차 고열이 지속되면 터질 수 있다”며 “운 좋게 형태를 유지해도 돌의 경도가 떨어져 결국 부서진다”고 했다. 이원수 국립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방염포가 있어도 겨우 30분가량 시간을 번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엔 소용없다”며 “문화유산 주위에 폭 1m 이상 해자(垓子)를 파두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의성=조승연 기자 cho@donga.com}

25일 오후 8시 반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산을 태우던 불길이 불과 15분 만에 중턱에 있는 요양원까지 내려왔다. ‘즉시 떠나라’는 대피령이 떨어졌다. 입소자 대부분이 거동 불편한 노인이라 걷거나 뛰어서 대피할 수 없었다. 한 명 씩 요양원 앞 차량에 모였고, 오후 9시경 정모 할머니(80) 등 입소자 4명과 요양원 여성 직원 2명을 태운 차가 요양원을 빠져나갔다. 하지만 주변은 이미 화마가 삼키고 있었다. 정 할머니 일행이 탄 차는 10분도 못 가 달려든 불길을 피하지 못했다. 불이 도로를 달군 탓에 타이어가 녹아 먼저 터졌다. 이후 차에 불이 붙어 폭발했다. 정 할머니 등 3명이 숨졌고 나머지 탑승자 3명은 중상을 입었다. 이들보다 앞서 요양원을 출발해 인근 교회로 필사적으로 대피해 목숨을 건진 입소자들은 정 할머니 일행의 죽음을 애통해했다. ● “산불이 방사포처럼 마을로 쏟아져”25, 26일 이틀간 20명의 목숨을 앗아간 경북 북동부 산불 현장은 ‘아비규환 전쟁터’를 방불케했다. 25일 오후 6시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오원인 이장(57)은 마을 뒷산에서 붉게 밀려오는 화염을 보고 경악했다. 의성에서 번진 불이 안동을 거쳐 영양까지 덮쳤다. 불길은 산과 바람을 타고 무서운 속도로 다가왔다. 불과 5분 전 “빨리 주민들을 대피시켜달라”는 군청의 연락을 받은 오 이장은 다급하게 움직였고, 이내 주민들의 휴대전화에는 “즉시 대피하라”는 오 이장의 스마트 음성 메시지가 속속 도착했다. 한 주민은 “이장이 보낸 메지를 받고 집을 뛰어나왔더니 마당에 불이 붙고 있었다”고 말했다. 화매2리 50대 주민 김모 씨는 “불이 그냥 천천히 번지는 게 아니라 뉴스에서나 봤던 북한 방사정포처럼 불꽃 수 천 개가 미사일처럼 마을로 쏟아졌다”고 말했다. 이후 마을 전기와 통신망도 끊겼다.같은 시간 옆 마을 삼의리 권모 이장(64)도 아내 우모 씨(59)와 함께 다급하게 차에 올랐다. 마을 도로는 이미 여기저기 날리는 불씨와 검은 연기 탓에 앞을 거의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도로 옆의 낙엽이 땔감 역할을 하며 타오르자 마치 도로는 용암이 흘러드는 것 같았다. 권 이장 부부는 인근에 사는 친척들과 연락이 두절됐다. 오후 8시경 권 이장의 동생이 형님의 행방을 찾아 나섰을 때는 이미 늦었다. 권 이장의 차는 도로변 배수로에 고꾸라져 검게 탄 채 발견됐다. 차가 향하던 방향은 대피소가 아니라 삼의리 쪽이었다. 산불 연기 등으로 시야 확보가 안돼 방향을 잘못 잡은 것으로 보인다. 평소 권 이장과 친하게 지냈다는 오 이장은 “아마 다른 마을 주민들을 구하러 가다가 불길에 휩싸인 것으로 보인다”며 슬퍼했다.● 희생자 대부분 거동 어려운 노인이번 화마에 스러진 희생자 상당수는 거동이 어려운 노약자였다. 대부분 70, 80대로 집 안이나 마당, 도로에 불 탄 차 안에서 발견됐다.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에서는 80대 노부부가 집 앞 내리막길에서 숨졌다. 이들은 산불을 피해 집을 나섰지만 거동이 불편해 미처 불길을 피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부부는 집에서 불과 도보로 1분 거리에 쓰러진 채 가족들에게 발견됐다. 장손 이모 씨(30)는 “산불이 난 뒤 교통도 통제돼 동네가 무질서 그 자체였다”며 “조금만 더 빨리 도착했다면 살릴 수 있었을 것이란 생각에 모두가 자책하고 있다”며 눈물을 훔쳤다.안동시 임하면 신덕리 이덕마을에서는 70대 여성 지적장애인이 집을 나서지 못하고 불길에 숨졌다. 그는 요양보호자 도움이 없이는 밖에 한 발자국도 내딛지 못하는 처지였다. 이웃 주민은 “대피 연락을 받았어도 움직일 수가 없어 갇혀있었을 것”이라며 “그 고통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영덕군 축산면 대곡리에서는 80대 남성이 산불로 무너진 자택에 매몰돼 숨졌다. 청손 파천면과 진보면에서는 80대 여성과 70대 남성이 집 안과 마당에서 숨진채 발견됐다. 경북소방본부 관계자는 “나이가 많은 어르신들이 대피를 준비하거나 대피중에 급속도로 번진 불길의 피해를 입으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산불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앞으로도 집안이나 주변에서 숨진 채 뒤늦게 발견되는 희생자들이 늘어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영양=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영덕=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영덕=천종현 기자 punch@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시골에 살아서 어릴 때부터 산불은 많이 겪었지만 이런 산불은 처음입니다. 마치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굉음과 함께 불덩이가 비닐하우스와 집을 덮쳤고 겨우 몸만 빠져나와 마을회관 쪽으로 도망쳤습니다”26일 경북 영양군 석보면 화매2리 마을회관. 주민 황호진 씨(66)는 불에 까맣게 타버린 집을 바라보며 연신 눈물을 훔쳤다. 화마에서 가까스로 살아나온 사람들은 참담한 마음을 금치 못했다. 경북 의성 산불이 번진 석보면에서는 여러 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연기와 화염에 뒤덮인 마을을 가까스로 빠져나온 주민들은 “평생 처음 보는 산불”이라며 당시의 참혹한 순간을 전했다.이번 산불로 전국 2만7000여 명이 대피한 가운데 경북 청송시 주민들도 가까운 대피소로 몸을 피했다. 청송시 파천면에 사는 김미외 씨(62)는 “창밖을 보니 약 200m되는 거리 앞산에 불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솟고 있었다. 깜짝 놀라 내복 차림으로 뛰쳐나오다가 미끄러져 왼쪽 다리를 크게 다쳤다”고 말했다.25일 밤 산불은 산맥을 넘어 동해안 해안가 경북 영덕까지 번졌다. 불길을 피해 방파제로 달아난 주민들은 바다와 불길 사이에 고립됐다. 울진해양경찰서는 방파제와 해안가 등에 갇힌 104명을 구조했다. 구조에는 낚시 어선 등 민간 선박도 동원됐다. 또 다른 마을에선 주민 9명이 한 차량에 타 급히 탈출을 시도했지만 뜨거워지 도로 표면 탓에 타이어가 터지면서 차가 도로 한복판에 멈춰섰다. 이들은 불길과 연기를 피해 인근 하천에 몸을 던져 물 속에서 버티다 지나가던 경찰에 구조돼 목숨을 건졌다.이번 화재에서 재난문자가 제때 도착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부 지역에서는 화재를 알리는 재난문자가 불길이 이미 마을에 번진 뒤에야 도착한 곳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몇몇 마을에서 이장과 주민들이 동네 노인들을 일일이 찾아가 대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렸다. 화매1리 이장 김모 씨는 “마을 여기 저기 불이 붙기 시작한 뒤에야 재난문자가 도착했다”고 했다. 그는 “불길을 본 뒤 마을에 대피방송을 2번 했다”며 “마을에 불이 붙은 뒤에야 면사무소에서 직원의 대피 요청과 재난문자가 도착했다”고 밝혔다. 다른 주민도 “문자가 (화재가 덮친) 뒤늦게 많이 왔다. 문자보단 뉴스로 산불 소식을 주로 접했다”고 말했다.의성군 관계자는 “(행정) 직원이 직접 (어르신들을) 모시고 나올 상황이 못돼 이장을 포함한 동네 지도자, 부녀회, 젊은 사람들이 주도해 대피를 도왔다”고 설명했다. 일부 노인들은 스스로 대피했다. 석보면에서 만난 김숙자 씨(84)의 경우 화재로 갑자기 정전이 돼 TV도 꺼져 약만 챙겨 혼자 걸어나와 동네 주민 차를 빌려 타고 대피소로 이동했다. 김 이장은 “가까운 집부터 어르신 집까지 찾아다니면서 집집마다 불러내 대피소로 이동시켰다”며 “눈 앞에 다니는 차를 무조건 붙잡아 세워두고 어르신들을 태워드렸다”고 말했다.영양=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청송=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

“마음이 참담합니다. 사찰을 지키지 못하다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고운사 보장 스님)26일 오후 1시 반경 경북 의성군 ‘고운사(孤雲寺)’. 어제까지 의상대사가 창건한 천년사찰이 있던 자리는 시꺼먼 잔해와 재만 가득했다. 대웅전과 명부전은 불길을 피했으나 국가유산 보물인 ‘가운루(駕雲樓)’와 ‘연수전(延壽殿)’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가운루 건너편엔 범종만 금이 간 채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주변도 참혹했다. 나무들은 검게 타 쓰러졌고, 남은 잔불들에선 연기가 피어 올랐다. 가운루 자리에 허망한 표정으로 있던 고운사 주지 등운 스님은 “어제 오후 4시쯤 거센 회오리바람이 불며 불씨가 날아왔다”며 “급히 피했다가 오후 11시쯤 돌아왔는데, 손 쓸 수 없는 지경이었다”면서 한숨지었다.피해 소식에 달려온 신도들도 눈물을 글썽거렸다. 조한금 씨(60)는 “산불이 걱정돼 24일부터 와 있었다”며 “절에 있던 보물 옮기는 작업도 도왔는데 다 지키지 못해 눈물이 난다”고 했다. 고운사에서 30년 동안 석축 공사를 했다는 70대 김모 씨는 “가운루가 지난해 보물로 승격돼 너무 기뻤는데 이렇게 무너져 버렸다”며 안타까워했다.고운사 앞 최치원문학관도 화마를 피해 가지 못했다. 2019년 세운 문학관 건물은 모두 불에 탔다. 다행히 지하 방화문을 닫아둬 수장고 유물들은 손상되지 않았다.고운사가 무너지자 인근 국가유산이 있는 지역들도 초긴장 상태다. 소방 당국에 따르면 26일 오후 10시 현재 병산서원에서 직선거리로 약 3㎞ 떨어진 지역까지 산불이 근접했다. 만일에 대비해 서원에 물을 계속 뿌리고 있으며, 류성룡 선생 위패 등을 옮길 준비도 하고 있다.앞서 이날 오전 찾아간 안동하회마을은 밤새 서풍이 불어준 덕에 산불이 비켜 갔다. 하지만 멀리서 넘어온 연기가 자욱한 데다, 언제 바람 방향이 바뀔지 몰라 마음을 놓을 수 없다. 경북 청송의 국가민속문화유산인 ‘사남고택’은 전소된 것으로 확인됐다.산불이 퍼지고 있는 안동과 의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외에도 국보 5건과 보물 50건이 밀집한 지역이다. 특히 봉정사의 국보 ‘극락전’은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과 함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 건축물이다. 대웅전도 국보이며, 보물인 화엄강당과 고금당도 나무로 지어졌다. 국가유산청은 전날 사찰의 주요 유물을 긴급 이송했으며, 극락전 등엔 방염포를 씌워뒀다.전문가들에 따르면 오래된 목조 건축물은 입구가 많아 화염이 빠르게 번진다. 발열과 연기량도 많아 진압하기가 특히 까다롭다. 금속이나 돌로 만든 유물도 안심할 순 없다. 2005년 강원 양양 화재 당시 보물 ‘낙산사 동종’은 쇠인데도 녹아내렸다. 인근의 국보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등도 위험하다. 한 박물관 방재전문가는 “금속보다 내열성이 강한 석조조차 고열이 지속되면 터질 수 있다”며 “운 좋게 형태를 유지해도 돌의 경도가 떨어져 결국 부서진다”고 했다.이원수 국립순천대 건축학부 교수는 “방염포가 있어도 겨우 30분가량 시간을 번다. 산불 같은 대형 화재엔 소용 없다”며 “문화유산 주위에 폭 1m 이상 해자(垓子)를 파두는 등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의성=조승연 기자 cho@donga.com}

22일 시작된 경북 의성 산불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위협하고 경북 포항까지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다. 25일 경북 안동시와 청송군은 초유의 주민 전원 대피령을 발령했다. 경북 전 지역에 강풍특보와 건조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날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8km 앞까지 불길이 확산됐다. 소방당국은 고택 초가지붕에 물을 뿌리는 등 사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산불로 가운루 등 국가유산 보물이 있는 천년고찰 고운사도 전소됐다. 문화유산청은 이날 국가유산 재난 국가위기 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의성 산불이 청송 주왕산국립공원을 비롯해 영양, 영덕, 포항 등 경북 5개 시군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인근 지역 고속도로 차량 통행과 철도 운행도 중단됐다. 일부 지역에선 전기와 통신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청송에서는 60대 여성이 불에 타 숨진 채 발견됐다. 소방청은 의성 산불의 비상 대응 단계를 기존 2단계에서 3단계로 상향했다. 닷새째 이어진 경남 산청 산불은 지리산국립공원 경계선 500∼600m 앞까지 접근했고, 경남 하동 진주 등으로 확산돼 이곳에도 주민 대피령이 떨어졌다. 울산 울주에서도 산불로 10개 마을 주민들이 대피했고, 전북 정읍에서도 산불로 주택과 시설이 탔다. 산림청은 “강풍, 고온, 건조한 공기까지 3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불은 꺼졌다 다시 붙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진화 장비가 부족하고 진화대원들도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의성, 산청, 울주 등 3곳의 산불 피해 면적은 총 1만4693ha(헥타르)에 달했다. 서울 전체 면적(6만5200ha)의 4분의 1에 가깝다. 의성 산불만 해도 피해 면적으로 역대 3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울산=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일단 문화재 위주로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25일 국가민속문화유산인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화경당 고택 앞에서 안동시청 관계자가 류세호 씨(74)에게 말했다. 서애 류성룡의 후손인 류 씨는 1797년 지어진 이 고택을 9대째 지켜 왔다. 낙동강 너머 산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류 씨는 착잡한 얼굴로 갓집, 함 같은 오랜 유물들을 차로 옮겨 실었다. 그는 “불길이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며 “갑자기 대피 지시를 받고 이웃들과 말도 못 나누고 떠나는 길”이라고 했다.● 청송에서 불에 탄 시신 발견돼이날 오후 7시경 하회마을 주민들은 이미 상당수가 마을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골목엔 남은 주민 몇 명만 불안한 얼굴로 낙동강 너머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동소방서와 예천소방서 소방관 30여 명이 2시간째 전통가옥 지붕에 물을 뿌리는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안동시청 등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60여 명은 주민 대피를 돕느라 마을 곳곳을 뛰어다녔다. 하회마을 주민이자 119의용소방대에서 8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유모 씨(45)는 “여기는 건물들이 다 목조주택이라 불이 한 번 붙으면 살아남기 어려워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 경북 청송군 파천면에서는 불에 탄 60대 여성의 시신을 가족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산불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이날 오후 경북북부 제1∼3교도소(옛 청송교도소), 경북직업훈련교도소, 안동교도소 재소자 총 3500여 명을 대피시켰다.21일부터 닷새째 이어지고 있는 경남 산청 산불은 경남 하동·진주로 계속 확산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에선 인근 대단지 앞까지 산불이 번지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주민들이 소화전에 호수를 연결해 직접 불을 끄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전북 정읍시 소성면 금동마을에서도 산불이 나 주택 13개 동을 태웠고 주민 25명이 대피했다. 산불이 커지면서 일부 고속도로와 철도가 통제됐다. 코레일은 중앙선 및 동해선 일부 구간 열차 운행을 멈췄다고 밝혔다. 서산영덕고속도로 서의성 나들목∼영덕 나들목 구간과 중앙고속도로 의성 나들목∼서안동 나들목 구간, 포항∼영덕∼울진을 잇는 국도 7호선도 전면 차단됐다.● 계속 되살아나는 불… 진화대원들 한계 국가동원령까지 내린 진화 작전에도 불구하고 산불이 계속 확산되는 이유는 강풍에 건조한 공기, 고온까지 세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꺼진 불이 되살아나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의성과 산청, 울주를 삼킨 산불은 갈수록 진화율이 떨어지거나 정체 상태에 빠졌다. 산림청에 따르면 의성 산불은 24일 오전 진화율이 65%까지 올랐으나, 25일 오전 다시 54%로 떨어졌다. 산청 산불도 한때 진화율이 90%까지 올랐지만 이후 다시 불이 번졌다. 울주 산불도 25일 오전 98%까지 진화됐으나 오후 들어 불길이 다시 살아나며 진화율이 92%로 후퇴했다. 산불 진화 인력들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24일 오후 2시경 상주소방서 소속 40대 소방관이 진화 작업 도중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 국방부는 이날 병력 1500여 명, 군 헬기 45대를 투입해 산불 진화 및 의료 지원에 나섰다. 산불이 발생한 후 현재까지 진화 작업에 투입된 병력은 5000여 명, 군 헬기는 총 146대다. 비 소식은 27일에야 예정돼 있다. 하지만 화재 피해가 심각한 경북에는 최대 10mm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여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상청에 따르면 경상권에는 26일 밤부터 경남 남해안 5∼20mm, 부산 울산 경남내륙과 경북서부내륙 5∼10mm, 대구 경북에 5mm 미만의 비가 예보됐다. 경북과 경남 내륙은 27일 새벽 잠깐 소강 상태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의성=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산청 산불이 아직 안 잡혔는데 사전에 협의도 없이 헬기를 빼면 어떡합니까.”(박완수 경남도지사)“경북 의성 산불 상황이 너무 급하니 양해 바랍니다.”(임상섭 산림청장)전국 동시다발적인 산불로 진화 장비가 부족해지면서 산불 진화 헬기를 두고 관계 기관 간에 마찰까지 빚어졌다.25일 경남도 등에 따르면 산청군 시천면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에서 박완수 경남도지사는 임상섭 산림청장에게 전화를 걸어 사전 협의 없이 헬기를 재배치한 것에 대해 항의했다. 산림청이 산청 산불 현장에 투입된 헬기 32대 중 국방부 소속 헬기 등 6대를 의성 산불 현장으로 보낸 데 따른 것이다. 임 청장은 의성 산불 상황의 긴급성을 이유로 양해를 구했다. 결국 박 지사는 전남도, 전북도, 부산시 등으로부터 임차 헬기 7대를 지원받아 총 33대를 산불 진화 현장에 투입했다.산불 진화 헬기가 부족해진 데는 외부 영향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산림청 진화헬기는 총 50대인데 이 중 KA-32 카모프(3000 L급) 기종의 러시아제 대형 헬기 29대 중 8대(28%)는 운용할 수 없는 상태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헬기 부품 수급이 어려워진 탓이다. 산림청은 헬기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27년까지 헬기를 8대 더 확충할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헬기 확충은 물론 조종사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병두 국립산림과학원 환경연구부장은 “대형 산불이 번지는 와중에 또 다른 산불이 발생하면 헬기는 당연히 부족하다”며 “산불에 대한 대응 능력을 키우기 위해선 헬기 수를 늘리고 조종사도 더 많이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기연 산불학회장은 “효율적인 산불 진압을 위해 더 많은 군 헬기를 동원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일단 문화재 위주로 옮겨야 하지 않겠습니까.”25일 국가민속문화유산인 경북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 화경당 고택 앞에서 안동시청 관계자가 류세호 씨(74)에게 말했다. 서애 류성룡의 후손인 류 씨는 1797년 지어진 이 고택을 9대째 지켜 왔다. 낙동강 너머 산에서 피어오르는 검은 연기를 바라보며 류 씨는 착잡한 얼굴로 갓집, 함 같은 오랜 유물들을 차로 옮겨 실었다. 그는 “불길이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며 “갑자기 대피 지시를 받고 이웃들과 말도 못 나누고 떠나는 길”이라고 했다.● 청송에서 불에 탄 시신 발견돼이날 오후 7시경 하회마을 주민들은 이미 상당수가 마을을 빠져나간 상태였다. 골목엔 남은 주민 몇 명만 불안한 얼굴로 낙동강 너머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안동소방서와 예천소방서 소방관 30여 명이 2시간째 전통가옥 지붕에 물을 뿌리는 작업을 벌이고 있었다. 안동시청 등 지방자치단체 관계자 60여 명은 주민 대피를 돕느라 마을 곳곳을 뛰어다녔다. 하회마을 주민이자 119의용소방대에서 8년째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는 유모 씨(45)는 “여기는 건물들이 다 목조주택이라 불이 한 번 붙으면 살아남기 어려워 걱정이 크다”고 한숨을 쉬었다.경북 청송군 파천면에서는 불에 탄 60대 여성의 시신을 가족이 발견해 신고했다. 경찰은 산불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무부 교정본부는 이날 오후 경북북부 제1~3교도소(옛 청송교도소), 경북직업훈련교도소, 안동교도소 재소자 총 3500여 명을 대피시켰다.21일부터 닷새째 이어지고 있는 경남 산청 산불은 경남 하동·진주로 계속 확산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 언양읍에선 인근 대단지 앞까지 산불이 번지면서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들과 주민들이 소화전에 호수를 연결해 직접 불을 끄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날 전북 정읍 소성면 금동마을에서도 산불이 나 주택 13개동을 태웠고 주민 25명이 대피했다. 산불이 커지면서 일부 고속도로와 철도가 통제됐다. 코레일은 중앙선 영주~경주역 간 열차 운행을 멈췄다고 밝혔다. 서산영덕고속도로 서의성나들목(IC)∼영덕나들목 구간과 중앙고속도로 의성나들목∼서안동나들목 구간, 포항~영덕~울진을 잇는 7번 국도도 전면 차단됐다.● 계속 되살아나는 불… 진화대원들 한계국가동원령까지 내린 진화 작전에도 불구하고 산불이 계속 확산되는 이유는 강풍에 건조한 공기, 고온까지 세 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꺼진 불이 되살아나기를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의성과 경남, 울주를 삼킨 산불은 갈수록 진화율이 떨어지거나 정체 상태에 빠졌다. 산림청에 따르면 의성 산불은 24일 오전 진화율이 65%까지 올랐으나, 25일 오전 다시 54%로 떨어졌다. 산청 산불도 한때 진화율이 90%까지 올랐지만 이후 다시 불이 번졌다. 울주 산불도 25일 오전 98%까지 진화됐으나 오후 들어 불길이 다시 살아나며 진화율이 92%로 후퇴했다. 산불 진화 인력들의 피로도도 높아지고 있다. 24일 오후 2시경 상주소방서 소속 40대 소방관이 진화 작업 도중 어지럼증과 구토 증세를 보여 병원으로 이송됐다.국방부는 이날 병력 1500여 명, 군 헬기 45대를 투입해 산불 진화 및 의료 지원에 나섰다. 산불이 발생한 후 현재까지 진화 작업에 투입된 병력은 5000여 명, 군 헬기는 총 146대다.비 소식은 27일에야 예정돼 있다. 하지만 화재 피해가 심각한 경북에는 최대 10mm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여 불길을 잡을 수 있을지 미지수다. 기상청에 따르면 경상권에는 26일 밤부터 경남 남해안 5~20mm, 부산 울산 경남내륙과 경북서부내륙 5~10mm, 대구 경북에 5mm 미만이 예보됐다. 경북과 경남 내륙은 27일 새벽 잠깐 소강 상태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이축복 기자 bless@donga.com}

22일 시작된 경북 의성 산불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하회마을과 병산서원을 위협하고 포항까지 무서운 속도로 번지고 있다. 경북 안동시와 청송군은 초유의 주민 전원 대피령을 발령했다. 경북 전 지역에 강풍특보와 건조특보가 발효된 가운데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이날 안동 하회마을과 병산서원 8km 앞까지 불길이 확산됐다. 소방당국은 고택 초가지붕에 물을 뿌리는 등 사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산불로 가운루 등 국가유산 보물이 있는 천년고찰 고운사도 전소됐다. 문화유산청은 이날 국가유산 재난 국가위기 경보 ‘심각’ 단계를 발령했다. 의성 산불이 청송 주왕산 국립공원을 비롯해 영양, 영덕, 포항 등 경북 5개 시군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인근 지역 고속도로 차량 통행과 철도 운행도 중단됐다. 일부지역에선 전기와 통신 장애가 발생하기도 했다. 청송에서는 60대 여성이 불에 타 숨진채 발견됐다.소방청은 의성 산불의 비상 대응 단계를 기존 2단계에서 3단계로 상향했다.닷새째 이어진 경남 산청 산불은 지리산국립공원 경계선 500~600m 앞까지 접근했고, 경남 하동 진주 등으로 확산돼 이곳에도 주민 대피령이 떨어졌다. 울산 울주에서도 산불이 재확산돼 10개 마을 주민들이 대피했고, 전북 정읍에서도 산불로 주택과 시설이 탔다. 산림청은 “강풍, 고온, 건조한 공기까지 3가지 악재가 겹치면서 불은 꺼졌다 다시 붙기를 반복하고 있다”며 “진화 장비가 부족하고 진화대원들도 피로도가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의성, 산청, 울주 등 3곳의 산불 피해 면적은 총 1만4693ha(헥타르)에 달했다. 서울 전체 면적(6만5200ha) 4분의 1에 가깝다. 의성 산불만 해도 피해 면적으로 역대 3위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안동=조승연 기자 cho@donga.com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울산=최창환 기자 oldbay77@donga.com}
“웃으며 귀촌했다가 울면서 귀도(도시로 돌아감)하게 생겼습니다.” 24일 오전 11시경 경북 의성군 안평면 신월리에서 만난 이상달 씨(69)는 검게 그을린 채 엿가락처럼 휘어진 농기구 창고를 바라보며 말했다. 창고에 있던 경운기, 트랙터는 물론 1t 트럭도 완전히 불탔다. 의성 산불이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신월리 전체 78가구 중 이 씨를 포함한 19가구가 피해를 입었다. 7년 전 이 마을로 귀농한 이 씨는 “이제 겨우 적응해 농사가 제법 잘되고 있었는데 자식처럼 가꿔 온 마늘밭과 복숭아나무가 숯 더미가 됐다. 반려견도 까맣게 불타 죽었다”며 눈물을 훔쳤다. 의성체육관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 머물고 있는 166명 중 62명은 지역 요양원에 머물고 있다가 산불 뒤 긴급 대피한 이들이다. 고령의 입소자들은 차가운 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워 있기가 불편한 듯 수시로 자세를 고쳐 누웠다. 한 요양보호사는 “외부인들이 많이 오가는 대피소에서 장시간 머무르면 감염병에 취약한 어르신들이 위험해질 수도 있다”고 걱정했다.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고 있는 경남 산청에서도 이재민들의 속이 타들어 갔다. 산청군 시천면 중태마을에서 만난 정종대 씨(70)는 “10년 전 정성을 다해 지은 집이 재만 남았다. 건축비가 많이 올라 새집을 짓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했다. 특산물인 곶감으로 유명한 시천면 점동마을 주민들은 불탄 감나무를 바라보며 망연자실했다. 배익선 이장은 “주민 90% 이상이 감 농사를 짓는데 전체 감나무 가운데 50%가량이 불에 타 올해 농사를 망쳤다. 산불이 꺼져도 생계가 막막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날 경남 창녕군 창녕국민체육관에 차려진 산청군 산불 희생자 합동 분향소에는 유족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희생자 유가족들은 검은 상복과 흰 마스크를 쓰고 분향소에서 추모객들을 맞았다. 가장 먼저 헌화한 유족들은 지인들의 부축을 받으며 영정 앞에 서서 눈물을 닦았다. 창녕군민 안모 씨(65)는 “희생자분과 전혀 인연이 없지만 같은 군민으로서 가족 같은 기분에 분향소를 찾았다”며 “우리가 해야 하는 일까지 그분들이 대신 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죄송하고 미안하다”고 했다의성=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산청=조승연 기자 cho@donga.com산청=도영진 기자 0jin2@donga.com창녕=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4일 경북 지역 산불 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재민들을 위로했다.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으로 87일 만에 권한대행 직무에 복귀한 뒤 나선 첫 현장 일정이다.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후 경북 의성군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를 방문해 임상섭 산림청장으로부터 산불 진화 및 대응 상황을 보고받았다. 한 권한대행은 이 자리에서 “강풍과 연기 속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화마와 사투를 벌여온 산불 특수진화대, 소방관,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군·경, 자원봉사자 등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며 “산불 진화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화재 진화 인력의 피해가 더 이상 발생하지 않는 것이니 안전조치에 만전을 기해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경남 산청군에서 산불 현장에 투입된 진화대원 3명과 공무원 1명 등 4명이 사망했다.한 권한대행은 이어 산불로 대피한 주민들이 임시로 거주하고 있는 의성체육관을 방문해 “뜻하지 않은 산불로 인해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분들 그리고 의성군민 여러분께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고 했다. 지자체 및 관계부처에는 “유가족과 피해자 지원, 이재민의 일상 회복에도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더욱 세심하게 살피고 임시 주거, 급식, 생필품 등 지원에 있어 부족함이나 불편함이 없도록 하라”며 “주거비 등 직접 지원과 함께 세제‧금융 지원 등 제도적으로 가능한 모든 수단을 주민들에게 상세히 안내하라”고 주문했다.한 권한대행은 “대부분의 산불이 부주의에 의해 발생하는 만큼 입산 시 화기 소지, 영농부산물 소각 금지 등 산불 방지 국민 행동 요령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달라”고 관계기관에 지시했다.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 당일 헌법재판소 반경 100m 이내를 ‘진공 상태’로 만들겠다고 밝힌 경찰이 24일 국회의원을 포함해 예외를 두지 않겠다는 방침을 강조했다. 헌재 주변에서 집회·시위를 원천 차단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박현수 서울경찰청장 직무대리는 이날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헌재 앞을) 진공 상태로 만들어야 하고 어떤 분도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경찰은 “윤 대통령 탄핵 선고일 헌재로부터 100m 이내는 집회 금지구역이라 차벽으로 둘러싸겠다”고 밝혔다. 최근 여야는 헌재 앞에서 각각 윤 대통령 탄핵 각하·기각 요구 릴레이 시위와 윤 대통령 파면 촉구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박 직무대리는 선고 당일 국회의원들이 헌재 앞을 지키면 대책이 있느냐는 질문에 “예외 없이 적용하겠다”며 “의원들과 협의할 방침”이라고 답했다. 1인 시위를 막을 법적 근거를 묻자 ‘경찰관 직무집행법’ 제5조와 제6조,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5조 1항 등을 언급하며 “폭행이나 손괴가 예상되거나 공공안전 위험이 예상될 경우에는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다”고 말했다.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지며 찬반 집회를 관리하는 경찰 기동대의 피로도도 커지고 있다. 박 직무대리는 이에 대해 “상황이 종료되면 대대적 포상휴가 등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의 결과는 이르면 이번 주 선고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경찰은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선고일에 ‘갑호비상’을 발령하고 전국 경찰 기동대 1만4000명을 헌재 근처 등에 배치하기로 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2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안 기각 결정으로 87일 만에 대통령 권한대행 직무에 복귀한 한덕수 국무총리가 “이미 현실로 닥쳐온 통상전쟁에서 우리나라의 국익을 확보하는 데 모든 지혜와 역량을 쏟아붓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극한으로 치닫는 정치권에는 “달라져야 한다”며 통합을 강조했다. 한 권한대행은 복귀 첫 일정으로 전국 산불 대응상황을 점검했다.한 권한대행은 이날 오전 대국민담화를 내고 “마지막 소임을 다하기 위해 저의 자리로 돌아왔을 때 대한민국을 위해서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가 숙고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한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을 공모·방조했다는 사유 등으로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13일 만인 지난해 12월 27일 탄핵이 소추됐다. 하지만 헌재는 이날 한 총리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를 기각(5인 기각, 1인 인용, 2인 각하)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총리공관에 머물고 있던 한 총리는 헌재의 기각 결정이 나온 뒤 곧장 출근했다.한 권한대행은 “지금 세계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함께 미중 패권경쟁이 격화되고 새로운 지정학적 대변혁과 경제질서 재편에 직면하고 있다”며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헌법과 법률에 따라 안정된 국정운영에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이어 “남은 기간, 제가 내릴 모든 판단의 기준을 대한민국 산업과 미래세대의 이익에 두겠다”며 “전 내각이 저와 함께 뛸 것”이라고 말했다. 또 “초당적 협력이 당연한 주요 국정 현안들을 안정감 있게, 동시에 속도감있게 진척시킬 수 있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한 권한대행은 국민통합을 당부하며 정치권 등을 향해 “여야와 정부가 정말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권한대행은 “제가 50년 가까이 모신 우리 국민 대다수는 나라가 왼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오른쪽으로 치우치는 것도 원치 않고 위로 앞으로 올라가고 나아가길 원하셨다”며 “극단으로 갈라진 사회는 불행으로 치달을 뿐, 누구의 꿈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한민국이 지금의 위기 국면을 헤치고 다시 한번 위와 앞을 향해 도약할 수 있도록 여야의 초당적 협조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당부했다. 이에 앞서 한 권한대행은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첫 메시지로 “급한 일부터 추스려 나가도록 하겠다”며 “제가 앞장서서 통상과 산업 담당 국무위원과 민간과 같이 민관 합동으로 세계의 변화에 대응하면서 대응을 준비하고 실천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이제 좌우는 없다고 생각한다”며 “국민들은 극렬히 대립하는 정치권에 대해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를 확실하게 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래 세대와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서 국민과 정치권, 국무위원 모두와 함께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다. 한 권한대행은 복귀 직후 전국 산불 대응상황을 점검하고 안보·치안 유지에 대해서도 긴급 지시를 내렸다. 산불진화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은 한 권한대행은 ”산불이 완전히 진화될 때까지 기관간 유기적인 협력체계를 구축해 범정부적 총력 대응을 실시해야 한다“며 “경북 의성, 울산 울주 등에 대한 특별재난지역도 신속히 선포해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했다. 또 현장 지휘관들에게 산불진화 인력의 안전관리 확보도 당부했다. 오후에는 산불 현장을 직접 찾아 이재민을 위로할 예정이다. 안보와 관련해선 “국민의 생명과 안보를 흔들림 없이 지킬 수 있도록 전군의 경계태세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외교부 장관에겐 “불확실한 국제정세 속 한·미 공조와 우방국 협조를 공고히 하는 한편,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 기조에 변함이 없음을 국제사회에 알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했다.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과 경찰청장 직무대리에 “과격시위 등으로 인한 재난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질서 유지에 각별히 유의하고, 이와 관련한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엄정 대응해달라”고 당부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민간인 신분인 진화대원이 주로 하는 일은 잔불 정리인데, 왜 위험한 산 위로 올라간 건지 모르겠습니다.” 23일 경남 창녕군 창녕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는 경남 산청군 산불 진화 중 숨진 창녕군 공무원 1명과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 3명 등 희생자 4명의 유족들이 오열했다. 창녕군 소속 산불전문예방진화대원으로 활동하다 이번에 숨진 공모 씨(60)의 죽마고우인 차모 씨는 “어제 오전 9시 30분에 친구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면서 “전문가도 아닌 민간인이 대형 산불을 끄려다 변을 당했다”며 황망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만 태웠다. 우리나라에서 산불로 진화대원이 2명 이상 숨진 것은 1996년 4월 경기 동두천 산불 이후 29년 만이다.● 산불 사망자 유족-지인 “대형 산불에 무방비 노출” 공 씨는 창녕군에 살던 평범한 주민이자 2003년 출범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의 일원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진화대는 민간인으로 구성된다. 평시에는 산불 예방 활동을 하다가 불이 나면 잔불 정리, 뒷불 감시 등을 도맡았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산불이 나면 먼저 가서 진화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7만 원가량의 임금을 받는다. 거주지나 인근 지역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일부 인원이 ‘산불광역관리대’로 차출되기도 한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평소 공 씨 같은 진화대원들은 분무기 물통 등을 들고 다니면서 잔불을 끄기도 했다고 한다. 공 씨 등 진화대원들은 22일 오전 11시경 산불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당시 불은 이미 소규모 화재가 아니라 대형 산불 수준이었다. 불을 끄며 서서히 올라가던 대원들은 갑자기 불어온 역풍을 타고 퍼진 불길에 포위됐고 그중 공 씨는 불을 피해 도망가다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다리를 다친 공 씨는 이후 화마에 휩싸였다. 차 씨는 “화재 대응 전문가도 아닌 친구가 대형 산불에 사실상 무방비로 노출된 것”이라며 “산청 다녀오면 ‘친구야 얼굴 보자’고 했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같은 진화대에서 근무하다 이번에 숨진 이모 씨(64)의 친척도 “진화대원은 민간인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민간인으로서 산불 감시하고 잔불을 끄곤 했던 것”이라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납득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형님은 창녕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던 평범한 농부”라며 “큰아들을 귀하게 살피던 홀어머니는 쓰러져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소방관도 아닌데 최전방에… “무리하게 투입” 이번 산불로 숨진 공무원 강모 씨(33)의 친척 안모 씨는 “소방교육도 안 받은 말단 8급 군청 공무원을 마스크만 씌워서 8분 능선까지 보낸 건 죽으라는 것 아니냐.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불길로 향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 씨는 22일 진화대와 함께 산청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그는 당일 근무가 아니었지만 “진화대를 인솔할 담당 공무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연락이 두절된 뒤 경남 창원에서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산청까지 가서야 아들의 변고를 들었다. 안 씨는 “그 집은 아들 하나였는데 대가 끊겼다. 이제 막 꽃피울 나이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강 씨가 숨진 22일은 그의 조카가 태어난 지 100일째였다고 한다. 노조 등에서도 초동 대처나 잔불 정리 등 비교적 덜 위험한 작업에 투입됐어야 할 민간인이나 비전문가들이 소방관도 아닌데 화재 최전방에 무리하게 투입됐다가 변을 당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는 23일 입장문에서 “대형 산불은 헬기를 이용한 진화가 우선이고, 공무원 및 진화대는 큰 불길이 잡힌 후 잔불 정리 등에 투입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초기 진화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투입하여 발생한 사고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창녕=조승연 기자 cho@donga.com창녕=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대전=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산청 다녀오면 ‘친구야 얼굴 보자’고 했는데…….”23일 경남 창녕군 창녕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산청군 산불 진화 중 숨진 창녕군 공무원 1명과 산불예방진화대원 3명 등 희생자 4명의 유족들이 오열했다. 창녕군 소속 산불전문예방진화대로 활동하다 이번에 숨진 공모 씨(60)의 죽마고우인 차모 씨는 “어제 오전 9시 30분에 친구와 마지막 통화를 했다”며 “곧 보자고 했는데 변을 당했다. 지금도 믿을 수가 없다”며 황망한 표정으로 연신 담배만 태웠다. 우리나라에서 산불로 진화대원이 2명 이상 숨진 것은 1996년 4월 경기도 동두천 산불 이후 29년 만이다.● 산불 사망자 유족-지인 “다녀와서 보자고 했는데”공 씨는 창녕군에 살던 평범한 주민이자 2003년 출범한 산불전문예방진화대의 일원이었다.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진화대는 민간인으로 구성된다. 평시에는 산불예방 활동을 하다가 불이 나면 잔불 정리, 뒷불감시 등을 도맡았다. 비교적 작은 규모의 산불이 나면 먼저 가서 진화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루 7만 원 가량의 임금도 받는다. 거주지나 인근 지역에서 대형 화재가 발생하면 일부 인원이 ‘산불광역관리대’로 차출되기도 한다. 인근 주민들에 따르면 평소 공 씨 같은 진화대원들은 분무기 물통 등을 들고 다니면서 잔불을 끄기도 했다고 한다.공 씨 등 진화대원들은 22일 오전 11시경 산불 현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당시 불은 이미 소규모 화재가 아니라 대형 산불 수준이었다. 불을 끄며 서서히 올라가던 대원들은 갑자기 불어온 역풍을 타고 퍼진 불길에 포위됐고 그중 공 씨는 불을 피해 도망가다 절벽에서 뛰어내렸다. 다리를 다친 공 씨는 이후 화마에 휩싸였다.차 씨는 공 씨의 죽음을 황망해하며 “진화대원이 주로 하는 일은 잔불 정리인데 왜 위험한 산 위로 올라간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같은 진화대에서 근무하다 이번에 숨진 이모 씨(64)의 친척도 “진화 대원은 민간인이다. 전문가가 아니라 주민들이 산불 감시하고 잔불을 끄곤 했던 것”이라며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납득이 안된다”고 했다. 그는 “형님은 창녕에서 홀어머니를 모시던 평범한 농부”라며 “큰 아들을 귀하게 살피던 홀어머니는 쓰러져서 눈물만 흘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 소방관도 아닌데 최전방에… “무리하게 투입”이번 산불로 숨진 공무원 강모 씨(33)의 친척 안모 씨는 “소방교육도 안 받은 말단 8급 군청 공무원을 마스크만 씌워서 8부 능선까지 보낸 건 죽으라는 것 아니냐. 제대로 된 안전 장비도 갖추지 못하고 불길로 향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강 씨는 22일 진화대와 함께 산청 산불 현장에 투입됐다. 그는 당일 근무가 아니었지만 “진화대를 인솔할 담당 공무원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현장에 투입됐다고 한다. 강 씨의 아버지는 아들과 연락이 두절된 뒤 창원에서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인 산청까지 가서야 아들의 변고를 들었다. 안 씨는 “그 집은 아들 하나였는데 대가 끊겼다. 이제 막 꽃피울 나이였는데”라며 안타까워했다. 강 씨가 숨진 22일은 그의 조카가 태어난 지 100일째였다고 한다. 일각에선 초동 대처나 잔불 정리 등 비교적 덜 위험한 작업에 투입됐어야 할 민간인이나 비전문가들이 소방관도 아닌데 화재 최전방에 무리하게 투입됐다가 변을 당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경남지역본부는 23일 입장문에서 “대형 산불은 헬기를 이용한 진화가 우선이고, 공무원 및 진화대는 큰 불길이 잡힌 후 잔불 정리 등에 투입하는 것이 상식”이라며 “초기 진화에 급급한 나머지 무리하게 투입하여 발생한 사고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창녕=조승연 기자 cho@donga.com창녕=전남혁 기자 forward@donga.com대전=이정훈 기자 jh89@donga.com}

더불어민주당이 야4당과 함께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21일 발의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민주당이 주도한 30번째 탄핵안이다. 이에 앞서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을 뇌물죄 및 공갈죄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하기도 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가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당내 위기감이 커지자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최 권한대행을 향한 압박 수위를 최고조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민주당과 야4당(조국혁신당·진보당·사회민주당·기본소득당)은 이날 오후 국회 본청 의안과를 방문해 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제출했다. 최 권한대행의 탄핵 사유는 △12·3 비상계엄과 관련한 공범 혐의 △마은혁 후보자 미임명 △마용주 대법관 미임명 △내란 상설특검 임명 불이행 등 크게 네 가지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 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소가 마 후보자 임명 보류에 대한 권한쟁의심판을 인용한 것을 언급하며 “헌재 판단을 행정부가 대놓고 무시하고 능멸하고 있다”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탄핵안을 제출한다”고 했다.이재명 대표도 같은 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안을 발의하는 배경을 묻는 말에 “헌법재판소가 판결로 확정한 헌법 수호 의무, 즉 헌법재판관 임명 의무가 있다는 판결을 3주째 무시하고 있다”며 “헌법을 지켜야 할 공직자의 책임, 그중에서도 최고 공직자가 헌법을 이렇게 무시하면 이 나라의 질서가 유지될 수 있겠냐는 생각이 강하지 않나 싶다”고 했다. 이 대표는 19일엔 최 권한대행이 마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을 ‘직무 유기’라고 비판하며 “현행범 체포할 수 있기 때문에 몸조심하라”고 했다. 탄핵소추안은 본회의 보고 24시간 후 72시간 이내에 표결해야 한다. 당초 본회의는 27일로 예정돼 있다. 민주당 노종면 원내대변인은 표결 시점에 대해 “발의한 이상 늦출 이유는 없다”며 “(국회)의장과 여러가지 문제를 짚어가면서 빨리 열자고 요구할 방침”이라고 했다. 이어 “그거(27일)보다 당겼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내부에 있다”고 했다. 국무위원 탄핵안은 재적의원 과반(151명) 찬성으로 의결된다. 이에 거대 야당(192석) 단독으로 통과가 가능하다. 최 권한대행 탄핵 시 다음 권한대행은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맡게 된다. 다만 헌재가 24일 한덕수 국무총리 탄핵심판 선고를 예고하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헌재가 ‘기각’ 결정을 내려 한 총리가 복귀한다면 최 권한대행 탄핵안이 큰 의미가 없어질 것이란 지적이다. 또 ‘줄탄핵’으로 중도층 반감만 살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노 원내대변인은 “한 총리 직무 복귀 여부와 무관하다는 점을 최 대행 탄핵안 발의라는 진행 절차를 통해 국민께 알리고 싶었다”고 했다. 김 부대표는 ‘경제사령탑 공백’ 우려에 대해선 “헌정 질서를 지킨다는 게 제일 중요하다”며 “경제 문제는 최 대행이 더 망치고 있다”고 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더불어민주당은 최상목 대통령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농단 사건에 적극 가담했다며 뇌물죄와 공갈죄 혐의로 21일 고발했다. 국민의힘은 즉각 민주당 이재명 대표 등을 강요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맞대응했다. 민주당 법률위원회는 이날 오전 고위공직자수사처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최 권한대행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적극 가담했던 자로 행정부의 책임자로서 심각한 결격사유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어 “민주당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중대한 책임이 있는 최 권한대행의 뇌물죄와 공갈죄를 국민의 이름으로 고발하고자 한다”며 “최 권한대행의 잘못에 대해 지금이라도 진실을 확인하고 국정농단 내란 지속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고자 온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이 국정농단 사태가 발생한 2016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재직하면서 16개 기업으로부터 486억 원의 출연금 공여를 받아냈는데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법률위는 “최 권한대행이 회의를 열어 미르재단 설립방안을 논의했고 자신이 주도해 각 그룹이 분담할 액수를 정했다”며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출연금을 요구했다”고 했다. 이에 응하지 않으면 위협을 느끼도록 했다는 주장이다. 이에 해당하는 뇌물죄 공소시효는 15년이다.하지만 당시 국정 농단 수사 특검팀은 최 권한대행에 관련 혐의가 없다고 보고 불기소 처분했다. 법률위는 이에 대해 “범죄행위가 명백함에도 당시 윤석열 검사 등은 자의적으로 기소권을 행사해 불기소 처분한 것”이라며 “박근혜와 안종범이 각각 뇌물수수, 강요죄 등으로 처벌받은 것을 고려할 때 최 권한대행에 대한 검찰의 봐주기 수사가 있었다는 의혹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했다. 민주당 법률위는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 사태 관련 판결문을 근거로 들기도 했다. 민주당은 최 권한대행이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것을 국정농단 사태와 연관 지어 압박에 나섰다. 박균택 법률위원장은 “최 권한대행은 무거운 죄에도 윤석열 검사를 잘 만난 탓에 지금까지 처벌받지 않고 피해왔다”며 “최 권한대행이 헌법을 어기고 법률을 어기고 국민에게 화병을 안기는 데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위 소속 박희승 의원은 “최 권한대행이 윤석열 피소추인에 발목이 잡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민의힘은 이 대표와 박 위원장을 강요죄 혐의 등으로 고발할 방침이다. 국민의힘 법률자문위원장인 주진우 의원은 이날 “최 부총리 임명 시 민주당은 인사청문회 보고서까지 채택했다”며 “마 후보자를 임명하도록 협박·강요함으로 탄핵 재판의 결과를 조작하려는 시도”라고 주장했다. 이 대표를 고발하는 이유에 대해선 “이 대표 지시 없이는 이뤄지기 힘든 일”이라며 이 대표가 19일 최 권한대행에 ‘몸조심하라’고 발언한 것도 강요죄 혐의로 고발하겠다고 전했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수도검침원의 남다른 판단력이 혼자 생활하던 80대 노인의 생명을 구했다.20일 경북 의성군에 따르면 상수도검침대행관리소 소속 검침원 최순연 씨(47·여)는 16일 오후 9시경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지역 내 수도사용량을 점검하던 중 춘산면 신흥리에 거주하는 A 씨(88·여) 집에서 수돗물 사용량이 갑자기 늘어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최 씨는 이튿날 오전 9시경 A 씨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연결되지 않자 위급 상황이라고 판단해 마을 이장에게 연락했다. 이장은 곧바로 A 씨 집을 찾아가 집안에 쓰러져 있던 할머니를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당시 욕실 수도는 잠겨 있지 않은 상태였다고 한다. A 씨는 영양실조로 쓰러졌으나 현재는 건강이 호전된 상태다. 최 씨는 “혼자 사는 할머니 댁에 말도 안 되는 물 사용량이 발생해 이상한 상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주수 의성군수는 “검침원의 빠른 판단과 이장님의 도움 덕분에 어르신을 구했다”며 “원격검침 시스템을 활용해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더욱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겠다”고 말했다.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

‘김건희 상설특검’(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의 주가조작 사건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요구안)과 ‘마약수사 외압 의혹 상설특검’(인천세관 마약 수사외압 의혹 사건 등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수사요구안)이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주도로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다만 상설특검은 대통령이 특검 후보를 임명해야 실질적으로 가동된다.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김건희 상설특검’을 재석 265명 중 찬성 179명, 반대 85명, 기권 1명으로 가결했다. ‘마약수사 외압 의혹 상설특검’은 재석 255명 중 찬성 175명, 반대 76명, 기권 4명으로 통과됐다. 두 상설특검은 재적 의원 과반 출석에 출석 의원 과반 찬성으로 의결될 수 있다. 국민의힘은 대다수 의원이 참석해 반대표를 던졌으나 수적 열세로 통과를 막진 못했다. 일반 특검과 달리 상설 특검은 2014년 이미 제정된 법률을 근거로 구성되기 때문에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수도 없다.두 상설특검은 이종호 전 블랙펄인베스트 대표가 연관돼 있어 사실상 김 여사를 정조준하고 있다. 이 전 대표는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으로 항소심까지 유죄를 선고받았다. 김건희 상설특검의 수사 대상에는 김 여사의 주가조작, 명품 가방 수수, 인사 개입 의혹 등이 포함됐다. 마약수사 외압 의혹 상설특검은 세관 직원들이 연루된 마약 조직 연루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 외압이 있었다는 의혹이 수사 대상이다. 민주당은 이 전 대표가 외압 당사자로 지목된 조병노 경무관을 자신이 속한 단체 채팅방에서 언급한 점 등을 들어 “김 여사가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해 왔다.상설특검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특검을 임명하지 않으면 가동되지 못한다. 이에 활동이 곧바로 시작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상설특검은 국회 특검후보자추천위원회가 후보 2명을 추천하면 대통령이 이 가운데 1명을 임명하도록 한다. 이에 따르지 않더라도 강제할 수는 없다. 민주당은 특검 임명을 두고 최 권한대행을 강하게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이를 통해 민주당이 탄핵 명분을 쌓을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민주당은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고 이날 밝힌 상태다. 조혜선 기자 hs87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