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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일본 한국 중국 순방이 10일 막을 내렸다. ‘미국 우선주의’를 부르짖는, 예측 불가하고 충동적인 미국 정상을 맞은 3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경쟁적으로 의전에 많은 공을 들였다. 모두가 다 국익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나라는 동서양의 조화를 꾀하는 절제된 의전과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는 ‘진심 의전’으로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선사했다. 특히 멜라니아 여사는 백악관 관계자들이 “이렇게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처음 본다”고 했을 정도로 3국 중 한국에서 가장 많이 말하고 웃었다는 평이 뒤따랐다. 이번 아시아 순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가장 먼저 맞이한 일본은 특유의 ‘오모테나시(극진한 대접)’ 외교를 선보이며 정상 간 친밀감을 끌어올리는 데 주력했다. 특히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5일 골프광인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세계적 골퍼 마쓰야마 히데키를 섭외해 황제 골프 접대를 펼쳤다. 중국은 8일 오후 미국 대통령 부부만을 위해 자금성을 통째로 휴관하는 ‘황제급 의전’과 284조 원짜리 돈 보따리를 내밀어 껄끄러웠던 미국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전환하는 성과를 거뒀다. ‘총성 없는 전쟁’이 펼쳐졌던 한중일 의전의 세계로 들어가 보자.》● 품격과 절제취타대-사물놀이 가락에 트럼프 어깨 들썩… 청와대 만찬땐 술 대신 다이어트 콜라 준비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름다웠다.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극찬한 전통 의장대의 환영 퍼레이드는 사실 작은 실수와 함께 시작됐다. 7일 오후 미 대통령 전용 리무진인 ‘캐딜락원’이 청와대 인근 분수광장에 다다르자 조선시대 ‘왕의 위엄’을 세웠던 취타대가 아리랑 연주를 시작했다가 이내 멈췄다. 의전팀이 탄 차량을 트럼프 대통령이 탄 차량으로 착각한 것. “아! 아니었네.” 짧은 탄식이 흘렀지만 취타대는 긴장하지 않고 트럼프 대통령 내외가 도착하자 힘차게 연주를 시작했다. 캐딜락원은 조선시대 어가행렬처럼 호위를 받으며 청와대 본관으로 들어서 ‘국빈방문’의 서막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 기간 내내 이 장면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검소하되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되 사치스럽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을 맞았던 한국 정부의 마음가짐을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이렇게 표현했다. 트럼프 대통령 취향에 맞추려고 했던 일본이나 화려함을 앞세운 물량공세로 나온 중국과 달리 한국적 색채를 담은 절제된 의전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국빈만찬은 동서양의 조화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물이었다. 메인 메뉴인 가자미구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좋아하는 생선요리인데, 문재인 대통령의 고향인 거제도 가자미로 만들었다. 미국은 6월 백악관 만찬에서 문 대통령을 위해 가자미구이를 내놓았다. 만찬 공연에서 연주자 정재일 씨와 유태평양 씨는 ‘축원과 행복’을 기원하는 비나리를 사물놀이 가락 위에 현대적으로 재구성해 연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리듬을 타면서 어깨를 들썩거렸고, 공연 후 손을 높게 들어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청와대 의전비서관실은 술을 마시지 않는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다이어트 콜라’를 내놓는 세심한 의전을 준비하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참가자들이 서로 술을 따라주다 보면 트럼프 대통령도 잔을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의전팀이 직접 만찬 초반 트럼프에게 콜라를 담은 잔을 서빙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화려함보다는 정성스럽게 우리 색채를 충실히 전함으로써 한미동맹을 강조할 수 있는 의전을 고려했다”고 말했다. 절제된 의전 속에서 의외의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7일 김정숙 여사와 멜라니아 여사는 청와대 경내를 산책했다. 자연스러운 대화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통역 없이 걷는 구간을 준비한 것인데, 김 여사가 적극적으로 영어로 대화에 나서자 멜라니아 여사가 편안함을 느꼈던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멜라니아 여사가 그렇게 웃는 것을 백악관 관계자들이 처음 본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중국 베이징으로 향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출국이 다소 지연되자 인도네시아로 가는 자신의 출국 시간을 15분가량 늦출 만큼 트럼프 대통령 예우를 끝까지 챙겼다. 미국 언론의 방한 취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일부 차질이 생겼지만 양측의 협조로 잘 마무리된 일도 있었다. 미국 대통령이 방한할 때 백악관은 청와대에 풀기자단(전체 기자단 중 대표로 행사에 들어가 취재하는 기자) 명단을 방한 일주일 전에는 보내는 게 관행이다. 하지만 이번에 백악관은 명단을 방한 당일인 7일 제출했다. 미국 측의 실례였지만 청와대는 빠른 행정처리로 업무 공백을 메웠고, 차후 백악관 측으로부터 “미안했다. 진심으로 감사했다”는 인사를 들었다. ● 위엄과 과시황제 건륭제 걸었던 동선따라 자금성 안내… 베이징 동물원 문닫고 멜라니아에만 개방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맞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외교 코드는 ‘극진한 대접 속에 감춘 역사적 우월감 과시’로 요약된다. 2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의 대통령에게 수천 년간 세계 최강국으로 군림했던 중국의 찬란한 역사를 보여줌으로써 중국은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라는 인식을 심어주려는 계획이었다. 여기에는 2050년 미국을 뛰어넘는 세계 1위 국가를 꿈꾸는 시 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을 은연중에 과시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만을 위해 8일 베이징(北京) 자금성을 휴관해 통째로 비우는 ‘황제급 의전’을 베푼 것도 이런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철저히 계산된 것이었다. 시 주석은 청나라 최전성기 황제 건륭제의 전용 동선을 그대로 따라 걸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자금성 구석구석을 안내했다. 그러고는 문물보존센터에 들러 화려하고 정교한 도자기와 서화 등을 보여줬다. 시 주석은 대뜸 트럼프 대통령에게 황금색 종을 가리키며 “들어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무게 때문에 들지 못하자 시 주석은 그제야 “(실은 들지 못할 정도로) 정말 무겁다”며 웃었다.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 앞에서 펼쳐진 화려한 의장대 사열에 감동한 트럼프 대통령은 인민대회당에 들어서며 또다시 놀랐다고 한다. 전통악기 연주가 울려 퍼지며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했기 때문이었다. 베이징 외교 소식통은 “자금성은 중국의 최전성기 황제의 공간이다.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미국 대통령에게 이를 보여준 것은 ‘현재는 미국이 강하지만 중국이 역사 문화적으로 유구하고 강력한 국가였다’는 사실을 말하려 했던 것”이라고 풀이했다. 실제로 중국은 중화민족 부흥을 내세울 때마다 아편전쟁 이후 100여 년 동안 서방으로부터 당한 굴욕을 딛고 굴기하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AFP통신에 따르면 8일 자금성에선 미중 정상 사이에 흥미로운 대화가 오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역사가 5000년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고 하자 시 주석이 “기록된 역사는 3000년”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러면 8000년의 이집트가 더 오래된 것이군요”라고 하자 시 주석은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된 단일 문명이다. 우리는 스스로 ‘용의 자손’이라 부른다”고 받아쳤다. 중국의 ‘역사 우월감’ 의전 코드를 극대화하는 장치는 비밀주의다. 중국 정부는 외신들이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방중 첫날(8일) 만찬을 자금성에서 함께한다고 잇따라 보도해도 트럼프 대통령의 자금성 방문 때까지 이를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7일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가 관영 중국중앙(CC)TV 인터뷰에서 “Forbidden City(자금성)”라고 말한 대목을 ‘명승고적’이라고 번역해 자막에 넣었을 정도였다. CCTV는 10일 멜라니아 여사의 만리장성과 베이징 동물원 방문 계획 역시 애써 감췄다. 8일 저녁 보도에서 두 곳이 10일 하루 개방하지 않는다고 공고했다는 사실만 전하는 방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만 풍겼을 뿐이다. 중국은 자국에 비판적인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자 트럼프에게 영향력이 큰 것으로 알려진 장녀 이방카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의 환심을 사기 위해 상당한 공을 들였다. 중국은 이방카만을 위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와의 행사까지 준비했지만 이방카의 중국 방문은 이번엔 성사되지 못했다. ● 배려와 감성골프-햄버거로 ‘정상 대 정상’ 친밀함 강조… 트럼프 딸 이방카의 지난 생일까지 챙겨줘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정상외교는 ‘정상 대 정상’의 개인적 친밀함을 강조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왔다. 가장 많은 공을 들여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는 사실상 ‘절친’ 사이가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중일 순방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 방문 첫날인 5일 아베 총리와 느긋하게 골프를 즐기며 장시간 환담을 나눈 것이 대표적이다. 2월 미국 마러라고에서 첫 골프를 친 뒤 두 번째 라운드였다. 이를 성사시키기 위해 일본 측은 트럼프 대통령의 첫 방문국을 일본으로 할 것과 주말을 낀 일정을 잡아 달라고 미국에 거듭 요청했다고 한다. 아베 총리는 6일 만찬에선 자신의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와 골프를 쳤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미국 대통령이 남긴 “골프는 좋아하는 사람하고만 칠 수 있다”는 발언을 소개하며 “두 번이나 함께 골프를 치는 건 굉장히 좋아하는 사이가 아니고는 어렵다”고 특별한 관계를 강조했다. 일본 의전의 특징은 세심한 배려와 철저한 준비로 요약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2박 3일 일정으로 일본에 머물면서 아베 총리와 4차례 함께 식사했다. 쇠고기를 좋아하는 트럼프의 식성을 고려해 5일 점심은 미국산 쇠고기 햄버거를, 만찬은 와규 철판구이를 내놓았다. 순방 기간이 기니 친숙한 음식(햄버거)을 대접하기로 했다거나, 굽기 정도로 ‘웰던’을 좋아하는 트럼프를 위해 눈앞에서 고기를 구워주는 철판구이를 골랐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쇠고기도 낮에는 미국산, 밤에는 일본산을 대접해 양국 간 균형을 맞췄다. 사실 트럼프에 대한 접대는 아버지에 앞서 2일 ‘국제여성회의 2017’ 참석차 일본을 찾은 장녀 이방카에서부터 시작됐다. 트럼프에 대한 영향력이 큰 이방카의 마음을 사기 위해 아베 총리가 직접 만찬을 대접했고 나흘 전에 지나간 생일까지 챙겨주기도 했다. 아베 총리가 ‘이방카 기금’에 5000만 달러 출연을 약속하자 이방카는 연설에서 “아베노믹스는 우머노믹스(여성이 주도하는 경제)”라고 화답했다. 아베 정부의 외교력이 제대로 발휘된 예는 2016년 11월 미 대선 직후 뉴욕 트럼프 타워를 방문했을 때였다. 주미 일본대사관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의 당선을 예상하면서도 공화당 후보로 나선 트럼프 쪽에도 네트워크 만들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주미 대사는 개표 당일 트럼프 당선이 확실해지자 즉각 ‘막후 실세’로 불리던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인맥을 동원해 트럼프와 아베 총리의 면담 일정을 잡았다.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돌발 상황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5일 골프 중에 아베 총리가 벙커에서 나오다 구르는 장면, 6일 두 정상이 잉어에게 먹이를 주다 트럼프 대통령이 먹이를 한꺼번에 쏟아붓는 장면 등이 취재 카메라에 포착됐다. 일본 정부는 행사의 홍보를 생각하고 방송 취재를 허가했겠지만 예기치 않은 망신살이 뻗친 꼴이 됐다. 극진한 대접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의 불공정 무역을 비판하고 방위장비 구매를 종용한 것에 대해 비판론도 적지 않다. 9일 발간된 한 주간지 제목은 ‘아베 총리, 트럼프 부녀의 발을 핥았다’였다. 또한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다걸기(올인)’하는 것에 대해서도 일본 내에서 “위험하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도쿄=서영아 특파원}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부터 자유무역을 확대하고 포용적 성장을 이뤄내자고 제안한다.”(문재인 대통령) “세계화를 위해 더 개방적이고 포용적이며 더 공평하고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APEC 정상회의를 하루 앞둔 10일 오후, 베트남 다낭에 도착한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한목소리로 자유무역과 포용적 성장을 강조했다. 1시간여 차이를 두고 나란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우선주의 정책으로 높아지고 있는 보호무역주의 기류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나선 것.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은 11일 정상회담을 갖는다. 7월 독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가진 첫 만남 이후 넉 달 만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중일 순방에 이어 열리는 이번 한중 정상회담은 동북아 외교 ‘슈퍼위크’의 화룡점정이 될 것으로 보인다.○ 사드 갈등 넘고 만나는 韓中 정상 “문재인 정부 들어 중국과의 관계는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베를린 회동도 사드만 제외하면 나쁘지 않았다.” 청와대 관계자는 11일 한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이같이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대 걸림돌이었던 사드 논란이 일차적으로 해소된 만큼 양국이 갈등을 빚을 특별한 이슈가 없다는 것이다. 장기 집권체제를 공고히 한 시 주석이 향후 골칫거리인 북핵 문제 해결에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중국 내부의 분위기도 이 같은 청와대의 기대를 뒷받침하는 양상이다. 중국은 문 대통령이 트럼프 미 행정부가 일본과 추진하는 ‘인도 태평양 전략’에 적극적인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을 고무적으로 보고 있다는 후문이다. 중국은 이를 자신들의 굴기를 막아 아시아 내부의 패권국가로만 국한시키려는 미국의 ‘중국 봉쇄(containment) 정책’으로 이해하고 있다. 시 주석은 9일 트럼프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인도 태평양 정책을 직접 거론하지 않았지만 “태평양은 중미 양국을 받아들일 만큼 충분히 넓다”며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시 주석은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북 압박을 지속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데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양해를 얻었다. 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를 해결한다는 문 대통령과 협력의 여지가 이전보다 커졌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통상 압박 속에 사드 경제 보복 해제로 경제협력 여지가 커진 점도 긍정적이다. 문 대통령은 APEC 기업인자문위원회와의 대화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의 조속한 체결을 위해서도 적극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RCEP는 중국이 주도해 추진하는 아태지역 최대의 자유무역협정이다.○ “장밋빛 낙관론은 경계해야” 우려도 그러나 양국 간 논란의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중국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사드 추가 배치는 없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 참여하지 않으며, 한미일 군사동맹을 추진하지 않는다’는 ‘3NO’ 원칙을 다시 꺼내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3NO 원칙은 미국의 인도 태평양 전략과 충돌하는 면이 적지 않다. 청와대가 인도 태평양 전략에 거리를 두면서도 협력 여지를 남겨 놓은 만큼 문 대통령으로서도 고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또 중국이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등 트럼프 대통령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만남에서 실효적인 대북 제재와 해법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한상준 alwaysj@donga.com / 다낭=문병기 기자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9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뒤 공동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이 더 강한 스탠스로 북한 핵문제에 대응하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두 정상이 북한이 핵을 포기하도록 공동 압박을 계속하기로 뜻을 모았음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나와 시 주석은 우리의 공통된 약속, 즉 한반도 비핵화 실현에 대한 약속을 논의했고 우리는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데 동의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우리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모든 대북제재 결의를 전면적으로 실천하는 데 동의했고 (북한이) 경솔하고 위험한 행동을 포기하도록 대북 견제와 압박을 가하기로 했다”면서 “모든 국가가 이런 노력에 참여하고 금융 분야에서도 대북 관계를 중단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어 “(중국과 러시아 등이) 북한의 무장화를 돕거나 재정을 지원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며 “살인적인 북한 정권과의 무역을 멈춰야 한다”고도 했다. 이에 시 주석은 △한반도 비핵화 △핵 확산 방지 △엄격한 안보리 결의 이행 △대화와 담판을 통한 북핵 해결 등 원론적 입장을 강조했다. 이를 위해 “관련국들이 장기적인 관점에서 소통과 협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기업가 면담 직후 시 주석 앞에서 “중국은 쉽고 빠르게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시 주석이 더 열심히 하기를 기대한다”며 “만약 시 주석이 열심히 한다면 성공할 것이며 의심할 게 없다”고 압박했다. 또 북한을 지칭해 “이 불량국가(rogue state)가 다른 나라를 핵으로 위협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과 중국 기업을 거론하며 “(북한과의) 무역을 줄이고 금융 거래를 끊은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면서도 “시간이 많지 않다. 중국이 더 빠르게 효과적으로 행동해 주길 바란다”고 요청했다. 이날 두 정상의 공개 발언에는 중국의 대북 원유 수출 금지 등 구체적이고 추가적인 대북 압박 방안은 없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정상회담 전 백악관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잠시라도 대북 원유 수출을 중단하고 중국 내 은행의 북한 계좌를 폐쇄하고 중국 내 북한 노동자를 돌려보내라고 말할 것”이라고 보도했으나 기자회견에선 이런 내용이 거론되지 않았다. 워싱턴 외교 소식통은 “중국은 안보리 대북제재 결의를 충실하게 이행하고 있고,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점을 인정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기존 제재를 충실하게 이행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의 핵 포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데 방점을 두고 원칙을 준수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한편 백악관은 일각에서 제기되는 주한미군 철수 가능성에 대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악관 고위 관계자는 8일 베이징으로 향하는 기내에서 기자들과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국회 연설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무기는 미국과 동맹국을 협박해 제재를 해제시키고 미군을 한반도에서 철수시키고, 궁극적으로는 한국을 적화통일하려는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서)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매우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말했다. 북한이 핵·미사일을 완성한 뒤 평화협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요구하고 종국엔 적화통일을 추구하는 시나리오가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북한과의 대화 조건에 대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위협의 완화’ ‘도발 중단’ ‘총체적 비핵화’를 분명히 했다”며 “북한은 핵무기를 대화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선 (대화를) 시작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또 “미 정부는 처음부터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했지만, 북한은 대화에 관심이 있다는 신호를 거의 보여주지 않았다”며 “지금 당장은 비핵화를 위한 조짐조차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앞서 최선희 북한 외무성 국장은 지난달 러시아에서 “비핵화를 목표로 한 대화에는 응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하루 이틀 전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순방 말미에 재지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워싱턴=박정훈 sunshade@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시 할아버지, 펑 할머니 안녕하세요?” 9일 저녁 중국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 공식 만찬장에 소녀의 앳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축사에 이어 트럼프의 깜찍한 외손녀 아라벨라(6)가 만찬장 무대 대형 스크린에 깜짝 등장해 유창한 중국어로 인사를 건넨 것이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이 자금성에서 시 주석과 차를 마시며 보여줬던 바로 그 영상이었다. 분홍색 치파오(중국 전통의상)를 입고 올림머리를 한 아라벨라는 중국 가요 ‘우리들의 들판(我們的田野)’을 부르고 송나라 때 한자 학습용 아동교재인 삼자경(三字經)과 고시를 읊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대견하다는 듯 지켜봤고 시 주석도 미소를 지으며 끝까지 영상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중국의 ‘황제급 의전’은 마지막 저녁 만찬까지 계속됐다. 만찬장인 인민대회당 황금홀 중앙은 크리스털 샹들리에로 장식됐고 주변으로 중국식 등불이 줄지어 달렸다. 홀 앞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에서는 시 주석이 올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초대를 받아 미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를 방문했던 영상과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방중 주요 장면이 담긴 영상이 재생됐다. 이날 만찬에는 전 미국프로농구(NBA) 선수 야오밍(姚明)도 참석했다. 만찬에 참석한 샤오미(小米) 최고경영자(CEO) 레이쥔(雷軍)이 웨이보에 공개한 식단에 따르면 가정식 쓰촨 요리인 궁바오지딩과 지더우화(鷄豆花)가 올라 예상보다 ‘검소한’ 메뉴가 포함됐다. 미국 측 방문단의 입맛을 고려해 크림소스 해물 그라탱, 토마토 쇠고기볶음 등도 제공됐다. 메인 메뉴로는 고급 생선 요리인 무늬바리(바릿과의 바닷물고기)찜이 나왔다. 이날 만찬 준비에 160여 명의 요리사가 동원됐다고 중국 매체들은 전했다. 두 정상은 만찬 시작 전 축사를 통해 우정을 과시했다. 시 주석이 먼저 “중국과 미국의 관계가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 (두 국가 간) 도전 과제보다는 성장 가능성이 더 크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트럼프 대통령도 “(양국 간 유대관계는) 점점 강해질 것”이라며 시 주석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시 주석은 전날 자금성을 통째로 비운 데 이어 이날 오전에는 인민대회당 앞 의장대 사열을 위해 톈안먼(天安門) 광장을 통째로 비우고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위한 황금 연단을 마련하는 파격적인 의전을 베풀었다.위은지 기자 wizi@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중의 백미는 9일 오전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미중 기업 대표들을 만나는 장면이었다. 두 정상이 붉은색 주석단에 근엄하게 앉은 가운데 중국의 대표적 국유에너지업체인 중국석유화공그룹(中國石化·시노펙), 통신기기 업체 샤오미(小米) 등이 미국의 퀄컴 보잉 포드 제너럴모터스 최고경영자(CEO)들에게 2535억 달러(약 284조 원)어치 투자 약속을 하는 각서를 주고받았다. 실로 ‘바이 아메리카(Buy America)’라 칭할 만한 엄청난 투자 규모가 보여 주듯 트럼프 대통령이 주요 2개국(G2) 중국을 상대로 지난해 대선 구호인 ‘미국 우선주의’를 실천하는 상징적인 순간이었다. 적과 동지를 불문하고 실리 추구를 제1의 목표로 삼는 냉정한 국제정치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했다. 전날 자금성에 이어 이날 톈안먼(天安門)으로 이어진 ‘황제 의전’에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까지 받아낸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비난해 온 중국을 옹호하기까지 했다. 의전과 돈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막는다는 시 주석의 전략이 주효한 것.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이 “과거 무역관행이 불공정하다고 맹비난해 온 중국을 지나치게 칭찬했다”고 꼬집을 정도였다. 그가 조약식 체결 이후 이어진 인사말에서 “나는 중국을 비난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참석자들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는 “자국 국민들을 위해 다른 국가로부터 이익을 취하려는 나라를 누가 비난할 수 있겠는가”라며 “난 중국을 (오히려) 인정한다”고 말했다. 특히 “(중국이 아니라) 과거 (미국) 정부가 이런 (미국의 대중국) 무역적자를 발생하게 하고 커지게 한 것을 비난한다”며 전임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렸다. 이어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절실한 행동을 통해 중국 시장 진입 문제 등 만성적인 무역 불균형을 고쳐야 한다”며 “커다란 무역 왜곡을 해결하기 위해 중국과 구체적인 단계(스텝)를 밟기로 했다”고 합의 내용을 소개했다. 시 주석은 “미중 관계가 매우 중요하다. 중국의 발전은 미국에 많은 취업 기회를 제공했다. 양국 기업가들의 협약 체결은 양국이 윈윈할 수 있음을 입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과 한국에서도 북핵 위협에 공동 대응하는 것과 별도로 대규모 무기 구입과 불공정한 무역 관행 개선을 요구해 성과를 거두는 등 3국에서만 수백조 원의 경제적 이득을 챙겼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조은아 기자}
9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단독 정상회담 뒤 이어진 확대 정상회담장. 이날 핵심 이슈가 중국의 대규모 미국 투자로 압축되면서 배석한 측근 가운데 경제통상 분야 참모들에게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시 주석 바로 오른쪽에 최고지도부인 상무위원(7명)에 새로 진입한 경제전문가 왕양(汪洋) 부총리가 앉았다. 왕 부총리는 이번 트럼프 방중에서 윌버 로스 상무장관과 별도 회담을 통해 트럼프 방중의 최고 성과인 2535억 달러(약 284조 원)어치 양국 기업 간 계약을 성사시켰다. 그의 옆에는 시 주석의 최측근 경제 책사로 이번에 새로 정치국 위원에 진입한 신실세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이 자리했다. 정상회담에 배석한 중산(鐘山) 상무부장도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를 다뤄 왔다. 기업인 출신으로 중국의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 낸 로스 상무장관은 확대 정상회담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무역 장벽을 쌓는 중국의 무역 전략을 꾸준히 비판해온 인물로 이번 방중 때도 에너지와 원자재 부문으로 이뤄진 29명의 기업 대표단을 동행시켜 “즉각적인 성과와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고 큰소리쳤다. 회담장에 얼굴을 드러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는 중국 기업의 지식재산권 침해와 불공정 무역관행 조사를 지휘하고 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왼쪽에는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오른쪽에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가 앉았다. 브랜스태드 대사 옆에는 정통 군인 출신으로 안보 전문가로 분류되는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자리했고 틸러슨 장관 옆에는 라이트하이저 대표,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인 핵심 실세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보좌관이 차례로 앉았다. 배석자 중 한 명인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틸러슨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기간 중 연설문 작성에도 깊숙하게 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의 왼쪽에는 역시 최측근으로 정치국 위원(25명)에 발탁된 딩쉐샹(丁薛祥) 당 중앙판공청 주임이 앉았다. 시진핑 1기에서 정상회담 등 국내외 일정에 빠짐없이 시 주석 양옆에 배석했던 리잔수(栗戰書)와 왕후닝(王호寧)이 상무위원에 오르면서 배석자에서 빠지는 대신 리잔수 후임인 딩쉐샹과 시 주석 1기부터 경제무역 외교를 지휘해온 왕양 구도로 바뀐 것이다. 역시 이번에 정치국 위원이 된 미중 관계 전문가 양제츠(楊潔지) 외교담당 국무위원,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 등 외교안보 라인이 참석했다.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중국석유화공그룹(中國石化·시노펙)이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 개발에 430억 달러를 투자합니다. 석유화공그룹 장젠화(章建華) CEO 계약에 서명해 주세요. 중국항공기재집단공사(CASC)가 보잉사 비행기 370억 달러(300대)어치 구입을 계약합니다. CASC 자바오쥔(賈寶軍) CEO 서명해 주세요. 샤오미(小米) 등이 120억 달러어치 반도체를 퀄컴으로부터 구입합니다. 샤오미 레이쥔(雷軍) CEO 서명해 주세요.” 9일 베이징 인민대회당.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정상회담 직후 두 정상이 참석해 열린 미중 기업대표 회담에서 중산(鐘山) 중국 상무부장은 이처럼 미중 간 계약 내용과 액수를 일일이 언급하며 계약 서명을 독려했다. 미중 최고경영자(CEO)들은 붉은색 표지의 협정서에 잇달아 서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따라 방중한 기업 골드만삭스 포드 제너럴모터스 제너럴일렉트릭 등 29개 미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은 전날에 이어 총 2535억 달러 투자 계약이라는 대박을 쳤다. 중산 부장은 “양국의 협력 중시를 십분 구현하고 양국 지도자의 리더십에 따라 양국 기업들이 기적을 창조했다”며 “중미 무역 협력이 세계 경제 무역 협력의 신기록을 창조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퍼부은 시 주석의 ‘바이 아메리카’가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샀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흥분한 듯 마이크를 잡은 트럼프는 “(불공평한 미중 무역을) 고쳐야 한다. 위대한 미국 노동자를 위해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도 “노동자들을 위한 공평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기를 원한다. 공정하고 호혜적인 무역관계를 원한다”고 말했다. 과거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에 대해 공격적으로 일관했던 그는 이날 시 주석에 대한 압박 대신 자신의 ‘엄청난 성과’에 집중했다. 다분히 미국에 있는 자신의 지지자들과 국내 여론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북핵 해법이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을 강하게 압박하지 않고 시 주석과 협력을 강조했다. 시 주석이 준 선물 보따리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미국이 압박 대신 실리를 택한 배경에는 미국의 대중 통상 압박이 계속되면 중국의 통상보복이 상당할 것으로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미국콩수출위원회는 9월 중국 농업부와 상무부로부터 ‘우리 통상이 방해받으면 상당히 불편해질 것’이란 경고를 받았다. 중국과 사업하는 파트너 리인슈런스의 태드 워커 회장은 WSJ에 “대통령의 레토릭이 덜 강하길 바란다”며 우려했다. 무엇보다 러시아 대선 개입 등 스캔들로 최악의 지지율에 직면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대규모 투자유치와 일자리 창출을 통해 입지 회복이 절실한 시점이다. 제현정 한국무역협회 통상협력실 박사는 “중국에 대한 미국 무역의존도가 높아 미국도 중국에 쓸 무역공격 카드가 마땅치 않다. 무역보복 파워가 크지 않은 한국이 대신 불똥을 맞을 가능성이 커졌다. 미국 기업들이 정부의 보호무역 기조에 편승해 통상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집권 2기를 시작하며 협력을 강조한 ‘신형국제관계’를 성공시키기 위해 갈등 회피가 필요한 시 주석은 ‘황제 의전’과 ‘돈 폭탄’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파고들었다. 이날 공동 기자회견에서 “(미국 기업의) 중국 시장 접근을 증진시키기 위한 수많은 조치를 발표했다”며 “양국 국민들에게 더 큰 이익을 가져다줄 경제 무역 협력을 위한 더 큰 공간을 뜻한다”고 말해 트럼프 대통령의 입을 벌어지게 만들었다. 시 주석은 “중미 관계의 미래 방향을 설정했다”고 강조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어떤 나라도 중국의 굴기를 막을 수 없음을 미국이 깨달았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일본 방문에서도 아베 신조 총리와의 공동 기자회견 중에 “일본이 미국에서 대량의 방위장비를 사는 게 바람직하다. 그래야 한다”며 일본 정부의 추가 무기 구입을 기정사실화했다. 문재인 대통령도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직후 총 748억 달러(약 84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 및 수입 계획을 발표하는 등 한미동맹의 굳건함을 확인해 준 트럼프 대통령에게 화답했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세종=박재명 기자 / 도쿄=서영아 특파원}

“아라벨라에게 A+를 줄 수 있어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8일 오후 중국을 처음 국빈 방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베이징 쯔진청(자금성) 내 남서쪽의 보온루(寶蘊樓)에서 차를 마시고 환담하며 이렇게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이패드를 꺼내 외손녀 아라벨라(이방카의 딸)가 중국어로 노래 부르고 송나라 때 아이들에게 문자 교육용으로 사용한 교과서 삼자경(三字經)과 중국 옛 시를 암송하는 동영상을 보여주자 “아라벨라의 중국어 실력이 늘었다”고 칭찬하며 이렇게 말한 것이다. 시 주석은 아라벨라가 이미 중국에서 ‘꼬마 스타’라며 “외손녀도 중국에 올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고 중국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두 정상 부부는 차를 마시며 환담한 뒤 황제가 관료들을 접견하던 정전(正殿)인 태화전을 둘러보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특히 두 정상 부부는 태화전-중화전-보화전으로 이어지는 쯔진청의 주요 전각을 과거 황제들만 다녔던 동선을 따라 걸으며 관람했다. 시 주석이 쯔진청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자 트럼프 대통령이 감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고궁문물복원센터를 방문해 중국 문물을 둘러보면서 서화 제작과 도자기 채색 등 체험도 했다. 이어 청나라 시대 연극 공연장이었던 쯔진청 내 창음각(暢音閣)에서 손오공 이야기인 미후왕 등 경극을 관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극을 보며 간혹 박수를 치긴 했지만 특별히 환호하거나 웃음을 짓지는 않았다. 매일 수만 명의 관람객이 몰리던 쯔진청은 이날 하루 임시 휴관해 미중 정상 부부만을 위한 공간이 됐다. 경극을 본 두 정상은 쯔진청 북서쪽의 건복궁(建福宮)으로 자리를 옮겨 만찬을 함께했다. 건복궁은 청나라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건륭제의 화원으로 쯔진청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화원으로 꼽히는 곳이다. ‘황제 의전’을 통해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외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을 사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베이징 서우두공항에 도착해 곧바로 쯔진청으로 향했다. 미국 대통령이 쯔진청에서 중국 최고지도자와 만찬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11월 쯔진청을 방문해 내부를 관람하기만 했다. 미중 정상 부부는 애초 알려졌던 양심전(養心殿) 내 삼희당(三希堂)이 아니라 보온루에서 차담을 나눴다. 보온루는 1915년에 완공된 서양식 건물로, 청나라 황실의 보물 23만여 점을 보관하던 곳이다. CNN은 멜라니아 여사가 10일 오전 중국을 떠나기 전 만리장성과 베이징 동물원을 방문해 중국 시민들과 교류할 것이라고 전했다. 트위터광인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서는 트위터 생중계를 하지 않았다. 중국에서 트위터 접속이 금지됐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이세형 기자}
8일 오후 2시 36분(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 에어포스원이 베이징(北京) 서우두(首都)공항에 도착했을 때 영접 나온 인사는 이번에 권력 핵심인 공산당 정치국 위원(총 25명)에 진입한 양제츠(楊潔篪) 외교담당 국무위원이었다. 2014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방중 때는 정치국 위원보다 급이 낮은 중앙위원인 왕이(王毅) 외교부장이 맞이했다. 양제츠는 미중 관계 전문가로 그의 정치국원 발탁은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2기에서 미중 관계를 가장 중시할 것이라는 신호로 읽혔다. 양제츠의 영접은 시 주석이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과시하려는 제스처로 풀이된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트럼프 대통령 도착 직후인 2시 42분 첫 보도를 내보낸 뒤 반복해서 도착 사실을 알리면서 “정상회담 등 공식활동 이외에 매우 높은 수준의 의전으로 준비한 비공식 상호 활동(쯔진청 방문)이 있다”며 이를 “‘국빈방문+’(국빈방문 이상이라는 뜻)”로 표현하며 한껏 분위기를 띄웠다. 공항에서는 대규모 의장대와 군악대가 출동했으며 중국 어린이들이 미국 성조기와 중국 오성홍기를 번갈아 흔들었다. 대통령 내외가 탄 차량 행렬이 공항을 떠나는 순간까지 어린이들은 펄쩍펄쩍 뛰며 환영의 뜻을 표했다. AP통신은 이를 “중국이 신경 쓴 흔적이 보였다”고 평가했다. 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에 버금가는 권력 집중에 성공한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부흥인 ‘중국몽(中國夢)’을 실현하기 위해 강조한 상호 공영과 협력의 신(新)국제관계의 성공 사례로 미중 협력을 강조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중국은 19차 당 대회 이후 첫 국빈방문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러시아 대선 개입 수사 등으로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며 국내 정치 기반이 취약해진 트럼프 대통령도 무역·투자와 북핵 문제에서 방중 성과가 필요한 만큼 시 주석과의 우애를 연출했다. 중국이 7일 전격적으로 중국인 관광객의 평양 여행을 잠정 금지한 것도 주목된다. 대북 압박을 강화하라는 트럼프의 요구에 화답하는 모양새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북한 여행 금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 결의안에 포함되지 않아 중국의 독자 제재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대북 소식통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에 포함되지 않은 여행 금지를 중국 당국이 내린 것으로 파악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북한은 매년 4400만 달러의 외화를 관광을 통해 벌어들이며 그중 80%가 중국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또 시 주석은 최고경영자(CEO) 29명 등 대규모 기업 방문단을 이끌고 온 트럼프 대통령에게 수십억 달러의 투자 협정 및 수입 확대 약속이라는 선물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8일 미국 측과 90억 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계약을 체결한 왕양(汪洋) 부총리는 “오늘 협약은 몸풀기에 불과하고 내일은 더 좋은 일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 NBC는 “에너지 농산물 비행기 등 제품 수입 및 투자 협정이 발표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9일 오전 회담에서 시 주석이 북핵과 미중 불균형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체면을 세우는 정도의 선물보다 더 실질적인 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MCP)는 “국내외에서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약해진’ 트럼프 대통령이 당 대회 이후 ‘강해진’ 시 주석에게서 원하는 걸 얻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이 당 대회를 통해 강조한 ‘하나의 중국’, 즉 대만이 중국의 일부라는 원칙을 존중하고 중국과 영유권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는 남중국해 문제를 거론하되 시 주석과 대립하는 모양새는 피할 가능성이 있다. 시 주석 역시 북핵 문제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되 북한에 대한 일방적인 압박이나 정권 붕괴는 결코 안 된다며 대화 복귀를 강조할 것으로 관측된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한기재 기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 베이징(北京)에 도착한 8일 중국 왕양(汪洋) 부총리가 윌버 로스 미국 상무장관과 생명과학, 항공, 스마트 제조 등 분야의 90억 달러(약 10조 원) 규모의 무역 계약을 체결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보도했다.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시의 A여행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당국이 전날 여행사들에 하루나 한나절 일정의 신의주 여행을 제외한 평양 등 다른 북한 지역 여행객 모집을 별도의 통지가 있을 때까지 중단하라고 통지했다”고 전했다. 지난달 유엔 대북제재 결의안 2371호의 철저 이행 방침을 밝힌 중국은 최근까지 대북 금수 품목 수출입에 관여했던 자국민 수십 명을 체포하거나 조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공산당 대회에서 권력을 강화하고 집권 2기를 시작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맞이해 무역과 대북 압박 분야에서 다양한 성의를 보였다. 8일 한국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 내외를 쯔진청(紫禁城·자금성)으로 초대해 만찬을 함께하며 경극을 보여주면서 양국 정상 간 우호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과 차를 마시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의미가 중대하다. 중미 양국뿐 아니라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경제 발전이 이룬 성과에 찬사를 보낸다”고 화답했다. 한국 국회 연설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상대로 “북한과의 외교관계를 격하하고 모든 무역, 기술 관계를 단절하라”고 촉구한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2시 36분(현지 시간) 국빈방문으로 베이징 서우두(首都)공항에 도착했다. 관영 중국중앙(CC)TV는 9일 오전으로 예정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미중 정상회담의 핵심 의제로 북핵 문제와 미중 간 무역 투자 문제를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시 주석에게 대북 압박과 미중 간 무역 불균형 문제 해소를 요구해왔다. 시 주석은 집권 2기 청사진으로 제시한 상호공영 협력의 ‘신형 국제관계’가 미중관계에 적용될 수 있음을 과시하기 위해 미중 간 협력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권력 강화에 성공해 ‘강해진’ 시 주석과 달리 국내 지지율이 최악으로 떨어져 입지가 ‘약해진’ 트럼프 대통령은 성과가 필요하기 때문에 일방적 압박보다 실리를 취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공식 환영행사 뒤 시 주석과 본격적인 정상회담에 돌입한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트럼프 대통령이 방문한다는 통지를 받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준비를 하는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 7일 중국 베이징(北京) 쯔진청(紫禁城·자금성)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굳은 얼굴로 “삼희당(三希堂)이 있는 양심전(養心殿) 및 건복궁(建福宮)은 개방하지 않는다”며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두 곳 모두 내부에 공사를 위한 가림막이 설치돼 있어 외부에 무언가를 보여주지 않으려는 인상을 풍겼다. 삼희당과 건복궁은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8일 중국을 처음 국빈 방문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위해 준비한 비밀의 공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오전 한국 방문 일정을 마친 뒤 오후 베이징에 도착해 곧바로 쯔진청으로 이동한다. 시 주석 부부는 삼희당에서 트럼프 대통령 부부에게 환영 차를 대접한 뒤 건복궁에서 성대한 만찬을 베푼다. 9일 오전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북핵, 미중 무역 불균형 문제 등 까다로운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기에 앞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연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삼희당과 건복궁의 공통점은 두 곳 모두 청나라 최전성기를 이끈 건륭제가 생활했던 공간이라는 점이다.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은밀한 장소에서 ‘황제처럼’ 트럼프 대통령을 맞이하겠다는 것이다. 절대 권력자에 오른 자신과 건륭제를 동일시하려는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시 주석이 차를 대접할 공간은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양심전 내 삼희당.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 하루 전인 7일까지도 준비 상황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양심전으로 들어가는 준의문(遵義門)은 ‘2015년 10월부터 내부 수리로 개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과 함께 굳게 닫혀 있었다. 양심전 내부에도 공사를 위한 설비가 여전히 놓여 있어 하루 뒤 시 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차를 마실 장소가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이날도 수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쯔진청을 찾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방문 사실을 아는 이는 거의 없었다. 중국이 트럼프 대통령의 쯔진청 방문 사실을 아직 공식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대사는 이날 관영 중국중앙(CC)TV와 인터뷰에서 쯔진청 방문 사실을 밝히면서 “멜라니아 여사는 만리장성에도 갈 것”이라고 말했다. CCTV는 브랜스태드 대사가 “Forbidden City(쯔진청)”라고 말한 대목을 ‘명승고적’이라고 번역해 자막에 넣었다. 실제 방문 때까지 국민들에게 쯔진청 방문을 비공개에 부치려는 의도로 보인다. 삼희당은 청나라 최전성기 황제였던 건륭제의 서재다. 건륭제의 집무실이었던 양심전 내에 마련된 면적 8m²짜리 이 작은 서재는 “선비는 현인을 희망하고 현인은 성인을 희망하며 성인은 하늘의 뜻을 아는 이를 희망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쉬지 않고 부지런히 노력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매주 월요일만 정기 휴관하던 쯔진청은 이날 홈페이지에 ‘중요한 행사로 8일 하루 동안 개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 부부는 차를 마신 뒤 시 주석 부부의 안내로 쯔진청을 관람한다. 하루 입장 인원을 8만 명으로 제한할 정도로 관광객이 붐비던 이곳에서 세계에서 영향력이 가장 큰 두 지도자만이 거닐며 어떤 담소를 나눌지 주목된다. 두 정상 부부는 삼희당에서 북쪽으로 200여 m 떨어진 건복궁에서 만찬을 함께한다. 건복궁으로 향하는 문 역시 7일 오전 굳게 잠겨 있었다. 건복궁 주변은 폐쇄된 채 내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주변 벽에는 인부들이 붉은색 페인트를 새로 칠하고 있었다. 1740년 건륭제의 화원으로 지어진 건복궁은 건륭제가 자주 찾아와 쉬면서 시를 읊은 곳이다. 1923년 화재로 화원 전체가 불탄 뒤 2011년 복원됐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 둥젠화(董建華) 당시 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이 이곳에서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에게 만찬을 베풀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영문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쯔진청 방문이 “국빈 방문 이상이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정동연 채널A 특파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일 일본에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와 함께 내놓은 ‘인도 태평양 전략’에 중국이 발끈하고 나섰다. 인도 태평양 전략은 미국 일본 호주 인도 간 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자는 것으로 아시아에서 미일동맹과 중국 간 패권 경쟁이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 자매지 환추(環球)시보는 6일 ‘트럼프의 아시아행이 오바마의 전철을 다시 밟으면 안 된다’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인도 태평양 전략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신문은 “트럼프의 인도 태평양 전략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아시아 태평양 재균형 전략을 따르고 있지만 아태 재균형 전략은 중국의 굴기를 막지도 못했고 미국에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트럼프가 가장 관심을 보이는 경제, 무역과 북핵 문제가 큰 진전을 이룰 수 있는지는 중국의 협조 여부에 달려 있다”며 “중국 견제가 과하면 견제자(미국)가 중국보다 더 괴로워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9일 베이징(北京) 인민대회당에서 열리는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트럼프 대통령이 인도 태평양 전략을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시하는 북한 핵·미사일 문제 해결과 미중 간 무역균형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으려면 중국을 포위해 억제하려는 접근방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우려를 직접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은 6일 미일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수십 년간 (대중무역이) 매우 불공정했다”며 미중 정상회담에서 중국 측을 강하게 압박할 뜻을 분명히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식재산권을 포함하지 않고도 (중국과) 무역적자가 수천억 달러에 이른다”고 말한 뒤 “줄어들어야 한다”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했다. 이어 “나는 자유, 공평, 호혜적 무역 중 ‘호혜적’이라는 표현을 가장 좋아한다”며 “미국이 매우 강력한 행동을 취하는 것을 곧 보게 될 것이다. 곧 큰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미 (해당 조치들이) 시작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중국은 미일의 포위전략에 맞서 동남아국가들과의 전방위 관계개선에 나서고 있다. 왕이(王毅) 외교부장은 시 주석의 베트남 개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에 앞서 4일 베트남을 방문해 응우옌푸쫑 공산당 서기장, 응우옌쑤언푹 총리를 차례로 만나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 참여를 약속받았다. 베트남 측은 “누구도 베트남-중국 간 양자관계 발전을 약화시킬 수 없다”며 미국을 겨냥했다.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6일 정례 브리핑에서 중국-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가 중국 총리로서 10년 만에 처음 필리핀을 방문하는 데 대해 “중국과 아세안 동아시아 지역 협력을 새로운 단계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의의”라고 말했다. 한국 역시 미일의 중국 견제 전선을 깨뜨리기 위해 중국이 공략하는 대상이다. 최근 한중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봉합하고 관계개선을 발표한 데다 문재인 정부가 중국 견제 성격의 인도 태평양 전략에 반대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이 반기고 있다. 청와대는 미일 동맹을 주축으로 한 인도 태평양 전략이 중국과의 동아시아 주도권 경쟁으로 확산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무리 미국이라도 한반도 평화와 안보를 위한 공조를 넘어서는 전략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는 것이 우리의 외교 기조”라고 말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 문병기 기자}
군 당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을 이유로 2014년 이후 한 번도 열지 못한 한중 군 당국 간 차관급 회의체인 한중 국방전략대화를 이달 안에 개최하자고 중국 측에 제안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관계 개선 합의문 발표 이후 양국 관계 정상화가 급물살을 타면서 단절됐던 군 당국 간 대화 채널 복원에도 시동이 걸리고 있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6일 “통상 한중 국방부 국장급이 수석대표인 국방정책실무회의를 먼저 연 뒤 이보다 윗급인 국방전략대화를 열었지만 빠른 관계 회복이 요구되는 만큼 국방전략대화부터 이달 시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4일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ADMM-Plus)’를 계기로 2년 만에 필리핀에서 한중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면서 양국 군 당국 간 교류 재개를 시사한 바 있다. 한중 국방전략대화는 우리 국방부 차관과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 등 중국군 차관급 인사가 수석대표를 맡아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등 한반도 안보 정세를 논의하고 군사 교류 문제를 논의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군 당국 이외의 당국 간 교류도 회복되고 있다. 산둥(山東)성 검찰원은 다음 달 4∼7일 대구지방검찰청을 방문하고, 한국 대검찰청 대표단은 이달 중순 베이징(北京), 선양(瀋陽) 공안 당국을 찾는다. 사드 갈등 이후 연기된 한중 어업 당국 간 회의도 연내 개최된다. 고위급 인적 교류도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 베이징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은 제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결과를 한국 정치권에 설명하기 위해 당 고위 관계자를 대표로 하는 대표단을 이달 하순 한국에 파견한다. 중국 고위급 인사의 방한은 지난해 7월 사드 갈등 이후 처음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도 30일부터 다음 달 3일 베이징에서 열리는 ‘중국 공산당-세계 정당 고위급 회의’에 참석하며 양국 정당 간 교류의 불씨를 되살린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중국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을 앞두고 군복 차림으로 군 지휘센터를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의 사진을 4일 공개했다.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전날 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 연합작전지휘센터를 시찰한 자리에서 “신(新)시대 강군 목표를 실현해야 한다. 인민해방군을 전면적인 세계 일류 군대로 만들기 위해 반드시 싸워 이기는 능력을 확보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중앙군사위원들에게 “강군 건설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인 중국몽(夢)을 위한 전략적 받침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통신은 “시 주석이 이번 시찰에서 전투 준비 태세를 고도로 중시했다”며 “일단 일(전쟁)이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해 국가 주권과 안전을 확실히 수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전했다. 시 주석은 18일 당 대회 개막식 업무보고에서 2050년 일류 군대를 건설하겠다는 3단계 강군몽(强軍夢)을 제시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8∼10일 중국을 방문하며 한중일 및 베트남 순방 전체 일정에서 중국 견제를 강조할 뜻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 주석은 미국과 협력을 강조하되 군사 전략 경쟁에서는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군복 차림 시찰로 과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방문 기간 동안 북한에 도발하지 말라는 압박 메시지를 던졌다는 관측도 있다. 시 주석은 지난해 4월 중앙군사위 연합작전지휘 총사령관에 오른 뒤 올해 7월 건군 90주년 기념 열병식 등에 군복을 입고 등장했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이 이긴 것도 아니고 한국이 진 것도 아닙니다. 다른 견해도 있겠지만 (한중이) 적어도 대화의 궤도로 돌아와 대립의 길로 폭주하지 않게 됐습니다. 매우 좋은 개선의 기미입니다. 지역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국과 중국 양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봉합하고 관계 개선 의지를 발표한 지 사흘 뒤인 3일. 과거 사드에 대해 “북핵과 같은 악성종양”이라고 주장했던 중국 환추(環球)시보 소속 자오창(趙强) 부편집장은 “합의를 적극 환영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를 포함해 ‘한중일 국민 상호이해의 촉진’을 주제로 베이징(北京) 뉴센추리 호텔에서 열린 이날 한중일 3국 공동 세미나에 참석한 중국 측 관계자들은 합의 이전보다 태도가 한층 부드러웠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가 ‘사드 철수라는 입장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한국과 관계 개선을 합의한 배경’을 묻자 후지핑(胡繼平) 현대국제관계연구원 부원장은 “중국은 주권, 원칙의 문제에서 양보하지 않으면서도 19차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이후 (한국 등) 주변 국가와의 관계를 더욱 중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중국이 국익이 부딪치는 와중에도 대화와 협력이 가능하다는 대답으로 이해한다”고 평가했다. 동아일보 화정평화재단·21세기평화연구소(이사장 남시욱)와 중국 현대국제관계연구원, 일본 아사히신문이 공동 주최한 이날 심포지엄에서 한국 측은 중국 측이 사드 문제 봉합을 위해 한국에 약속을 요구했다는 이른바 ‘3NO’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남 이사장은 “한국에서는 ‘3NO’ 가운데서도 한미일 군사협력이 군사동맹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 약속한 데 대해 안보 주권 침해라는 비판이 있다”며 “한국에 이런 여론이 있다는 걸 중국이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오 부편집장과 후 부원장은 “양국 외교 과정에 어떤 구체적인 언급이 오고 갔는지는 잘 모른다”고 즉답을 피했다. 진징이(金景一) 베이징대 교수는 “미국은 냉전 이후 미일한(한미일)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한반도 냉전 구조를 조성하려고 한다”며 중국 측의 ‘3NO’ 요구 배경이 한미 및 미일 동맹 견제에 있음을 시사했다. 그는 “미일동맹은 미국 아시아 전략의 초석이고 미국은 아시아 동맹을 통해 패권을 실현하고자 한다”며 “중일한(한중일) 3국이 운명공동체가 되려면 미국의 요소를 최소화시키는 것이 우리의 출구”라고 말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은 “중국은 한국과 일본이 느끼고 있는 북핵 미사일에 대한 절박한 무력감을 이해해야 하고 국제사회는 북핵 문제에 대해 한국 국민이 안정감을 느끼게 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후 부원장은 “북핵에 대한 한국의 불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며 “이 때문에 중한 사드 배치 갈등 때도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는 적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미국은 제재와 군사 타격에만 흥미가 있는 것 같다. 다른 방법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하종대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환추시보가 사드 갈등에서 민족주의 경향이 강하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자오 부편집장은 “자국 이익과 관련된 경우 어떤 매체도 민족주의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없고 국제주의에만 충성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면서도 “이것이 초래한 결과가 각국 국민들 사이를 멀어지게 하고 경계하게 하고 원망하게 하고 심지어 적대심을 갖게 하는 점에 대해서는 언론인으로서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마오쩌둥(毛澤東) 전 주석이 김일성의 6·25전쟁을 승인하지 않았다면 북-미 갈등이 지금과 같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신석호 동아일보 국제부장의 지적에는 “중국이 전쟁을 조장했는지에 대해서는 국가마다 다른 의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지즈예(季志業) 현대국제관계연구원장은 “3국 관계가 회복의 기미를 보이는 지금 상황은 15년간 계속돼온 이 심포지엄의 공동 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한기흥 21세기평화연구소장은 “3국이 그동안 상호 불행한 일도 많았지만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생각하면 지금처럼 세 나라 간 교류가 활발한 시기가 없었다”며 “우리는 같은 미래를 펼쳐 나가야 할 공동 주역임에 틀림없다. 좋은 이웃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쿠라 이즈미(櫻井泉) 아사히신문 오피니언 편집부 위원은 “일중한(한중일) 관계가 좋은 추세를 보이고 있다”며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3국 정상이 서로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원장은 “2018년 평창 올림픽, 2020년 도쿄 올림픽, 2022년 베이징 올림픽이 이어 열리는 일은 앞으로 100년 내에 다시 없을 것”이라며 “새로운 시대를 열고 세계 번영에 기여하는 이벤트로 만들자”고 제안했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지난달 31일 한중이 관계 개선 방침을 공동으로 발표한 이후 한국 정부가 중국 정부에 ‘평창 올림픽 때까지 도발을 중단해 달라는 메시지를 북한에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1일 베이징에서 특파원 간담회를 열고 “전날 중국을 방문한 이도훈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한국 측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이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 겸 한반도사무특별대표(중국 측 6자회담 수석대표)에게 이 같은 메시지를 ‘북한과 접촉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전해 달라’고 요청했다”고 전했다. 한국 정부가 평창 올림픽 때까지 북한의 도발을 막는 데 우선순위를 두고 있으며 “북한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일이 없도록 한중이 상황 관리를 해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 당국자는 “남북 대화 통로가 끊겨 있어 중국을 통해 하겠다는 것”이라면서도 중국 측이 북한에 언제 어떤 식으로 메시지를 전하겠다고 한국 측에 답했는지는 전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불거진 한중 갈등이 완화된 것을 환영했다. 헤더 나워트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한국과 중국이 긴밀한 관계를 갖게 된 것을 환영한다”며 “북한 위협과 역내 및 세계적 불안정에 좋은 일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워트 대변인은 “사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며 “(사드는) 한미 동맹의 결정에 따른 것으로 공격을 위한 게 아니라 방어 메커니즘”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인식 변화를 묻는 질문에 “중국은 북한을 ‘가시(thorn)’로 인식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일본도 일단 환영했지만 한중 관계 개선의 조건처럼 내걸린 3개 항에 대해서는 경계심을 감추지 않았다. 아사히신문은 1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직전의 합의에서 중국의 전략적 의도가 엿보인다”며 “중국이 미국 일본으로부터 대북 강경노선을 압박받는 가운데 북한과의 대화에 적극적인 문재인 정권과 힘을 합해 대응하려 할 것”이라는 외무성 관계자의 말을 전했다. 신문은 또 중한 관계 개선은 중일 관계에도 영향을 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를 앞당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한중이 교류 정상화에 합의함에 따라 중국인의 한국 단체관광은 평창 올림픽과 춘제(春節·중국의 설)가 있는 내년 2월 본격 재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씨트립’, ‘투뉴’ 등 중국 대형 여행사들은 춘제에 맞춰 한국 관광 상품 판매를 재개할 것으로 알려졌다.베이징=윤완준 zeitung@donga.com / 도쿄=서영아 / 뉴욕=박용 특파원}

한국에 출판되지 않은 책 ‘대국외교’는 꼭 읽어볼 만하다. 중국 외교부 직속 교육기관인 외교학원 왕판 부원장이 지난해 냈다. “(자신을 낮추는) 도광양회에서 (적극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국외교로 중대 변화가 발생했다”며 ‘중국 특색 대국외교’의 30년 방향을 제시한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지난달 19차 당 대회에서 천명한 대외전략과도 같다. 시진핑 시대 중국의 동북아 한반도 전략을 추적할 중요한 단서들이 많다. 인상적인 대목을 소개한다. “미국이 주도하는 양자동맹 관계망은 다른 국가들(중국)의 안보를 민감하게 만들고 상호 신뢰를 어렵게 만든다. 아시아에서 이런 냉전 구조가 심화되고 있다. … 북핵 포기가 당면한 주요 임무이지만 북핵 포기는 동북아 안보문제의 근본 목표가 아니다. 관건은 다자 안보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북핵 해결은 반드시 다자 안보 기구 설립과 연결돼야 한다. 중국은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구실로 미국의 지역 동맹 체계를 강화하는 걸 반대하고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를 반대한다.” 한미, 미일 동맹은 냉전의 산물이니 해체하고 이를 대체하는 다자 안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동북아에서 중국의 가장 중요한 전략 목표가 무엇인지 엿볼 수 있다. 한반도 문제에 이해가 깊은 중국 전문가 역시 통화에서 ‘냉전적 사고’를 얘기했다. “사드 배치는 냉전적 사고이고 중국의 대외전략은 냉전적 사고를 돌파하는 것이다.” 시 주석도 당 대회 업무보고에서 냉전적 사고를 꺼내 들었다. “냉전사유와 강권정치를 단호히 버리고 동반자가 되되 동맹을 맺지 않는 국가 관계의 새로운 길을 가야 한다.” 중국에 냉전적 사고와 한미, 미일, 한미일 동맹은 같은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입을 통해 시 주석에게 약속한 △미국 MD에 가입하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는다는 ‘3NO’는 한미, 미일 동맹에 대한 시 주석의 날카로운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중국은 한미 동맹은 북한 문제에만 국한돼야 한다는 속내를 드러냈다. 런민일보는 강 장관의 여러 발언 가운데 “한미일 안보협력의 범위가 북핵 미사일 위협 억제와 대응 범위를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는 발언에 초점을 맞췄다. 환추시보는 “의도적으로 한미 군사동맹을 확대하는 미국의 대국게임을 한국이 모른 척하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중국과의 동북아 전략 경쟁에서 대척점에 서 있는 미국은 반대다. 동맹을 북한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지역동맹 글로벌동맹으로 발전시키기를 원한다. 실제 내용은 “중국 견제에 협력하자”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이런 동맹의 기차에 올라탔다. 문 대통령은 9월 말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동북아가 다자적인 안보협력 체제가 돼야만 근원적이고 항구적인 평화체제가 될 수 있다”며 “우리가 꿈꾸는 좀 더 원대한 미래”라고 밝혔다. 공교롭게도 중국이 주도하길 꿈꾸는 미래 다자 안보 구조와 같다. 따라서 사드 봉합은 단지 한중관계 개선을 위한 마지막 발걸음이 아니라 미국에 기울었던 몸을 돌려 문재인 정부가 중국으로 성큼 내디딘 첫 발걸음이다. 정부는 한중관계 개선이나 북핵 협력에 국한해 설명하지만 중국은 이미 한국의 전략 변화를 감지했다. 이에 대해 관영 중국중앙(CC)TV는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원 소속 전문가의 입을 빌려 이렇게 표현했다. “한국이 MD와 한미일 동맹이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정책을 조정했다.”윤완준 베이징 특파원 zeitung@donga.com}
한국과 중국 정부가 31일 한중 관계 개선에 전격 합의한 것은 2050년 미국을 넘어서겠다는 비전을 드러낸 중국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과 공산당 지도부가 미국과의 동북아 전략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한국과의 갈등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중국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인 국가안전위원회는 지난달 24일 폐막한 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 전 시 주석 집권 2기 대외정책 방향을 검토하면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스인훙(時殷弘) 런민(人民)대 교수는 31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은 사드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중한 관계가 장기적으로 악화되는 걸 원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중국중앙(CC)TV, 신화통신 등 관영 매체는 일제히 중국 외교부가 이날 오전 9시(현지 시간) 홈페이지에 올린 한중 관계 개선 관련 한중 발표문 전문을 보도했다. 시 주석이 당 대회에서 협력과 윈윈을 강조하는 ‘신형국제관계’를 천명한 만큼 한중 관계 개선은 시진핑 2기의 첫 외교 성과로 선전될 가능성이 높다. 화춘잉(華春瑩)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사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은 명확하고 일관되고 변화가 없다”고 못 박았다. 스 교수는 “중국 정부는 여전히 결연히 사드를 반대한다”며 “중한 합의문이 어떻든 (사드 철수를 요구하는) 중국 정부의 마음속 생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런민일보의 자매지 환추시보도 31일 사설에서 “사드가 해결됐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중국이 바라는 것은 사드가 중국에 위해를 미치지 않도록 통제하는 것뿐 아니라 한국에서 철수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사드 철수를 한국에 대한 보복이나 압박으로 이뤄낼 수 없기 때문에 한국과의 관계는 개선하면서도 사드 문제는 미중 관계 속에서 해결하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란 설명이 나온다. 환추시보는 “이(사드 한반도 배치) 문제를 만든 쪽은 미국이기 때문에 철저히 (사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훨씬 큰 교섭이고 게임”이라고 주장했다. 런민일보는 이날 1면 톱기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문을 매우 기대한다”며 “중-미가 서로 이익과 우려를 고려하고 적절히 이견과 갈등을 제거하기를 원한다”는 시 주석의 발언을 소개했다. 미국과의 전략 경쟁 속에서 동북아에서 미국 중심의 동맹구조를 약화시키려는 중국은 한국을 다시 중국 쪽으로 끌어당기는 게 급선무다. 이런 방향 설정 과정에서 중국은 관계 개선을 간절히 바라는 한국에 ‘3NO’ 약속을 얻어냈다. △미국 미사일방어체계(MD)에 가입하지 않는다 △한미일 군사협력을 군사동맹으로 발전시키지 않는다 △사드 추가 배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날 국정감사에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공개 발언을 통해 중국에 약속한 것으로 동북아에서 벌어지는 미중 간 전략 경쟁에서 한국이 중국의 전략적 이익을 침해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시 주석은 사드 문제로 인한 한중 관계 악화로 한국이 미국에 치우치는 것이 중국 국익을 해치고 있다는 내부의 우려를 해소할 수 있게 됐다. 화춘잉 대변인은 한국에 “언행일치”를 촉구했다. 환추시보는 “미국의 아시아 태평양 MD 전략에 대해 중국이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한국이 깨달았을 것이다”라며 “중국은 한국이 한미 군사동맹의 범위를 한반도 문제에 국한시키면서 (미중 간) 대국 게임에서 중립 입장을 얼마나 철저히 지키는지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볼 것”이라고 주장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중국과 미국 관계는 결혼과 같다. 그렇다고 내가 당신과 동성 연인 관계가 되는 걸 뜻하지는 않는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집권 2기의 최고지도부 상무위원에 진입한 왕양(汪洋·62) 부총리는 2003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전략경제대화에 중국 측 수석대표로 참석했을 때 미국 측 수석대표인 제이컵 루 당시 미 재무장관에게 이렇게 익살을 부렸다. 당시 외신은 유머감각 없고 단조로운 중국 고위관료들의 이미지를 깨는 위트였다고 평가했지만 중국 지도부에서는 “국가를 대표하는 활동은 개인이 박수 받고 웃기기 위한 것이 아니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사례는 왕양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개혁적인 성향을 잘 보여준다. 그의 시장주의적 개혁 성향은 2007∼2012년 중국의 공업 발달 지역인 광둥(廣東)성 당 서기로 있을 때 날개를 폈다. 예산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호적제도를 개혁해 가난한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쉽게 했다. 광둥성 경제를 값싼 제조업 중심에서 고품질 하이테크 산업 경제로 전환했다. 새장을 비워 새를 바꾼다는 등롱환조(騰籠換鳥)를 강조하며 개혁을 밀어붙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는 “시대에 뒤처진 기업을 억지로 살려두면 안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의 개혁은 ‘광둥 모델’로 불렸다. 이는 국유기업 중심으로 전통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추진한 당시 중국 권력의 실력자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당 서기의 ‘충칭 모델’과 대비됐다. 당시 두 사람은 “케이크를 키우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 나누는 것은 핵심이 아니다”(왕양) “케이크는 먼저 공평하게 나눠야 더 커진다”(보시라이)라고 설전을 벌였다. 보시라이는 부패 혐의로 숙청됐고, 2012년 18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 대회)에서 후진타오(胡錦濤)계인 공청단 출신으로 유력한 상무위원 후보였던 왕양도 최고 지도부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시 주석 집권 1기 5년간 왕양은 농업, 수리, 홍수 및 가뭄 방지, 상무, 관광, 대외무역 분야 전반에 관여하면서 충성심을 인정받았다. 국무원 탈빈곤개발영도소조 조장으로 활동하면서 시 주석의 최우선 내치 정책인 빈곤 퇴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이 때문에 시 주석이 집권 2기에서 왕양을 경제개혁의 ‘조커’로 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그가 맡은 상무위원 서열 4위가 경제정책과 관계없는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실제 그가 어떤 역할을 맡을지는 지켜봐야 알 수 있다. 왕양은 젊은 시절부터 능력을 인정받으며 두각을 나타냈다. 덩샤오핑(鄧小平)은 1990년대 안후이(安徽)성 퉁링(銅陵)시장이었던 37세의 왕양을 만난 뒤 “왕양은 매우 특출한 재능을 가지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국내 관광·문화 업계는 한중 관계 개선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 이후 침체됐던 대중국 사업의 빠른 회복으로 이어지길 기대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취한 사드 보복 조치 중 대표적인 것이 금한령(禁韓令)이다. 올해 3월 15일부터 중국 여행사는 일제히 한국행 단체관광 상품을 팔지 않았다. 한류 콘텐츠도 제재했다.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3∼9월 중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3% 줄었다. 호텔과 여행사를 포함한 관광산업, 면세점과 면세점 의존도가 큰 화장품 제조업체 등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금한령으로 인한 국내 관광산업 손실을 약 7조6000억 원으로 분석했다. 한국여행업협회의 한 관계자는 “중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겨 중국 전담 여행사 대부분이 잠정 휴업 상태였다. 한중 냉전이 풀릴 기미가 보여 업계가 들뜬 분위기”라고 말했다. 중국인 매출 의존도가 70%에 이르는 면세점업계 역시 환영하는 분위기다. 내년 2월 9일 개막하는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이 중국 춘제(春節·설·2월 16일)와 맞물려 중국인 관광객이 대거 유입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높다. 한국관광공사 베이징(北京)지사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한국 단체관광을 허용하면 곧바로 평창 올림픽과 연계한 관광 홍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문화콘텐츠 산업도 중국 방송업계의 금한령 조치로 크게 위축돼 있었다. 이날 문화콘텐츠 업계에서는 “얼어붙은 황해가 녹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금한령이 해제되면 잠정 중단되거나 지연됐던 각종 협력 사업이 활기를 띨 것으로 전망된다. CJ E&M 관계자는 “그동안 중국에서 개봉하려고 기획, 개발 중이었던 영화 예닐곱 편이 사실상 ‘홀딩’ 상태였다. 문화예술 분야의 후속 조치를 지켜볼 것”이라고 했다. 게임업계는 중국 수출이 재개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올해 3월부터 국산 게임에 대한 ‘판호’(중국시장에 게임, 영상, 출판물 등을 유통하기 위한 유통허가) 발급이 중단됐다. 넷마블 관계자는 “올해 초 신청한 판호가 나오기만 하면 즉시 서비스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만 대중국 사업이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부 중국 여행사가 국내 호텔 및 면세점에 관광 상품을 문의하고 있지만 각 지방 여유국(관광국)의 최종 상품 판매 허가라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국 대형 여행사 내 한국 전담 부서 조직도 해체된 상태다. 전효식 한국관광공사 국제관광실장은 “국내 여행사들도 끊겼던 관광 코스 채널을 새로 마련한 후에야 상품을 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금한령 해제가 완전한 사업 정상화를 담보하지 못한다는 예측도 나온다. 우선 중국이 자국 콘텐츠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한류 콘텐츠를 제한했다는 분석이 있다. 관광업계의 경우 소득 수준이 높은 중국인 여행객은 이미 일본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실제 일본 관광업계는 한중 사드 갈등의 최대 수혜자였다. 면세점업계 고위 관계자는 “현재 중국인 관광객은 일본으로 가고, 한국 면세점에는 보따리상만 가득하다. 다양한 관광 콘텐츠를 지닌 일본 여행에 맛 들인 중국인 여행객이 다시 한국으로 올지 걱정”이라고 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 손가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