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택

정성택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구독 43

추천

안녕하세요. 정성택 기자입니다.

neone@donga.com

취재분야

2025-11-15~2025-12-15
정치일반37%
정당30%
선거10%
인물7%
대통령7%
국방3%
국회3%
사회일반3%
  • “눈부시게 발전한 조국에 감격… 큰절 올리고 싶어”

    “태어나 처음 온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한 나라인지 몰랐습니다. 자랑스러운 조국에 큰절을 올리고 싶습니다.” 일제강점기이던 1937년. 러시아 포시예트 지역에 살고 있었던 당시 세 살의 니가이 아나스타샤 씨(81)는 가족을 따라 카자흐스탄으로 향했다. 22일 그토록 그리던 고국 땅을 밟은 그는 2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조국과 지금 살고 있는 카자흐스탄이 세계 1등 국가가 되게 해달라고 늘 신께 기도한다”며 “카자흐스탄에서도 고려인이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은 우리 민족이 지닌 고유한 힘 덕분”이라고 말했다. 부모가 카자흐스탄으로 강제 이주된 이후에 태어난 유카로프 씨(73)도 니가이 씨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두 사람 모두 부모의 고향이 북한 지역이라고 막연하게 기억할 뿐이었다. 니가이 씨는 지금도 카자흐스탄 국제기술대에서 철학 교수로 일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25년간 군 복무를 한 유카로프 씨는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살고 있다. 일본은 일제강점기에 한국인들을 옛 소련 지역으로 강제로 이주시키고 탄광 등에서 혹독한 노동을 시켰다. 당시 강제로 고향을 떠나야 했던 한국인은 18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니가이 씨는 강제 이주 당시의 얘기를 이렇게 전했다. “어머니 말씀으로는 강제 이주를 당해 기차를 타고 가던 두 달 동안 제 울음소리가 가장 컸다고 합니다. 빵 달라, 밥 달라고 하도 울어대서…. 그 빵 이름이 ‘칼레’였는데, 여전히 칼레라는 말을 기억합니다.” 어린 시절 가장 힘들었던 것은 가난이었다. 유카로프 씨는 “내가 태어난 1942년은 전쟁 중이어서 먹을 것이 없었다. 움직이질 않는 나를 보고 부모님이 굶어 죽었다고 생각해 이불에 싸서 땅에 묻으려고 했다. 누나가 거울을 가져와 내 입에 대 보고 김이 올라오는 걸 본 덕분에 가까스로 죽음을 면했다”고 회상했다. 통일은 이들에게도 빼놓을 수 없는 바람이다. 유카로프 씨는 “남북이 통일을 이룬다면 온 세계에 우리 민족의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재외동포재단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민족 공동체로서의 자긍심을 고취하기 위해 러시아독립국가연합(CIS) 지역 고려인 동포 모국 초청행사를 열었다. 니가이 씨와 유카로프 씨를 포함해 5개국에서 23명이 방문했다. 22일 방한한 이들은 26일까지 독립기념관과 경복궁 등 역사문화유적을 둘러보고 청계천과 삼성이노베이션뮤지엄 등에서 고국의 문화를 체험한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全장병 8월부터 오른쪽 팔에 태극기 단다

    올 8월부터 군의 모든 장병 군복에 태극기가 부착된다. 국방부는 6·25전쟁 65주년 및 광복 70주년을 맞아 군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높이기 위해 올 초부터 군복에 태극기를 부착하는 방안을 추진해 왔다. 국방부는 25일 “8월 1일부터 9월 말까지 전군의 전투복에 달 태극기 패치와 패치를 붙일 벨크로(일명 찍찍이)를 전 부대에 보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무와 근무 형태 등을 고려해 태극기를 부착하는 구체적인 시기는 각 군이 결정토록 했다. 태극기는 모든 군이 통일해 전투복 오른쪽 팔 부분에 달기로 했다. 태극기의 크기는 국기법 시행령에서 정한 3 대 2 비율을 적용해 가로 8cm, 세로 5.3cm로 정했다. 현재 미군 군복에도 이와 비슷한 위치에 비슷한 크기의 성조기가 부착돼 있다. 국방부 관계자는 “현재 군복 왼쪽 어깨 윗부분에 태극기를 부착하고 있는 해병대 등은 올해까지만 두 가지 군복을 허용하고 내년부터는 오른쪽 팔에 붙이는 것으로 통일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병들은 일반 태극기와 위장색 태극기 패치를 1개씩 지급받는다. 일반 태극기는 평시에, 위장색 태극기는 전시 및 훈련 기간에 부착한다. 국방부는 이를 위해 태극기 부착 첫해인 올해 37억 원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다. 내년부터 매년 새로 입대하는 장병들의 군복에 태극기를 부착하는 비용은 연간 8억 원가량으로 예상된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칭찬-감사는 전우를 춤추게 한다

    경기 6포병여단 본부근무대에서 복무 중인 이현우 일병(20)은 군에 와서 새삼 감사의 의미를 깨달았다. 입대 후에야 태어나서 처음 씻겨 드린 부모님의 발.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부모님을 다시 생각하고 은혜를 느낀 기회였다. 지난해 9월 육군에서 시작한 ‘감사 나눔 125운동’의 작은 결실이다. ‘감사 나눔 125운동’은 △주(週) 1선(善)=일주일에 한 번 착한 일을 하고 △월(月) 2독(讀)=매달 좋은 책을 두 권 읽으며 △일(日) 5감사=하루에 다섯 가지 감사한 일을 말하자는 캠페인이다. 지난해 잇따른 총기 난사 및 폭행 사망 사건 등을 계기로 육군 병영문화 개선 차원에서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1월부터 이 운동에 동참한 6포병여단은 가장 모범적으로 참여하는 부대 중 하나다. 입대 후 첫 면회를 하는 이등병들을 대상으로 부모님의 발을 씻겨 드리는 세족식 행사를 했다. 의외로 반응이 좋고 성과가 있어 이젠 여단장을 비롯한 전 장병이 어버이날 행사와 참전용사 초청 행사에도 세족식을 실시하고 있다. 매달 2권의 책을 꾸준히 읽도록 격려하기 위해 6포병여단은 모든 간부와 병사들에게 독후감을 쓰게 했다. 독서노트를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등 자격증 시험에 응시해 합격하는 장병이 늘었다. 6포병여단 정훈공보참모 유일호 소령(35)은 “감사 나눔 125운동으로 병영 분위기가 한층 밝아졌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아이디어를 통해 부대의 감사 나눔 125운동을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밝혔다. 감사 나눔 125운동이 육군 전체로 확대돼 정착한 것은 2012년 제일 먼저 이 운동을 시작한 2작전사령부 덕분이기도 하다. 이순진 2작사 사령관(대장)은 생활관에 고구마·감자·양파를 심어 좋은 말을 할 때와 나쁜 말을 할 때 식물들이 자라는 데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병사들이 느끼도록 했다. 신기하게도 좋은 말을 들은 식물의 성장이 좋았다. 이 사령관은 “감사 나눔 운동의 본질은 부대가 행복해져야 강해진다는 것”이라며 “이 운동을 사령부 및 예하 부대에서 활발히 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2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단독] 6·25 영웅 밴 플리트 美8군 사령관의 전시 자필 메모 첫 공개

    미8군 사령관으로서 6·25전쟁을 이끈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1892∼1992)이 한국 정부에 당시 전황을 알린 것으로 추정되는 자필 메모가 24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메모 작성 시기로 추정되는 1953년 초 밴 플리트 장군은 전쟁이 두 달이면 끝날 것으로 분석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등에 따르면 동아일보가 입수한 2장의 메모는 밴 플리트 장군이 사령관으로서 전체적인 전쟁 판세를 파악한 메모의 일부로 보인다. 연필로 쓴 것으로 보이는 이 메모의 맨 윗부분에는 ‘육군 사령관 메모(Army Commander Memo)’라는 표시가 인쇄돼 있다. 메모 한 장의 좌측 상단에는 ‘외부용(ON)’, 다른 메모지의 좌측 상단에는 ‘내부용(OFF)’이라는 표시가 있다. ‘ON’이라고 표시된 메모에는 밴 플리트 장군이 한국 정부에 알리고자 하려던 것으로 보이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다. 외부용으로 보이는 메모는 미8군을 뜻하는 단어인 ‘EUSAK(Eighth U.S Army in KOREA)’로 시작된다. 밴 플리트 장군은 이어 “또 한 달 (성과가) 아주 좋은 타격이었다. 적군 상황은 훨씬 더 나쁘다(Reds in a much worse condition). 현 전황이 유엔군에 가장 좋다”라고 썼다. 메모 아래에는 한국군 이름 2명과 ‘훈장(medal)’이라고 적었다. 그중 한 사람은 6·25전쟁 당시 초대 12사단장을 맡았던 윤춘근 장군이다. 이 같은 내용을 종합해 볼 때 당시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알리기 위한 메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게 군사편찬연구소 측의 설명이다. 내부용으로 보이는 문건에서 밴 플리트 장군은 6가지 이유에서 적군이 앞으로 버틸 수 있는 기간을 60일로 분석했다. 6가지 이유를 다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정치적인(Political) 변수와 △점령한 고지(Hills) △포병(artillery)과 보병(infantry)의 합동 작전(Try Art. Inf. team) 등을 꼽았다. 이어서 강원도 철원 지역에서 벌어진 대표적 전투였던 켈리(Kelly)고지 전투와 백마(Whitehorse)고지 전투를 표시한 뒤 ‘전환(Diversions)’이라고 적었다. 이들 고지전으로 국면 전환을 이뤘다는 뜻으로 보인다. 백마고지 전투가 1952년 10월이었던 만큼 이 메모를 쓴 시기는 1953년 초로 추정된다. 군사편찬연구소 남보람 소령은 “연합군을 지휘했던 밴 플리트 장군이 직접 전황을 분석한 기록은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사료”라며 “메모광으로 알려진 그가 6·25전쟁 관련 기록을 더 많이 남겼을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적극적인 사료 발굴이 필요하다”고 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88세 빨간마후라, 60년만에 출격

    “조종석에 앉으면 무념무상(無念無想)입니다. 오직 할 일은 출격뿐입니다.” 6·25전쟁 당시 한국 공군 조종사 처음으로 100회 출격(1952년 1월 11일)을 달성한 제11대 공군참모총장 김두만 예비역 대장(88)은 이같이 말했다. 6·25전쟁 6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23일 최초의 국산 전투기인 FA-50을 타고 성공적으로 비행을 마친 직후다. 당시 공군 주력 전투기였던 F-51D(머스탱)를 탔던 그가 60여 년 만에 다시 전투기 조종간을 잡은 것이다. 김 전 총장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비행을 위해 거쳐야 하는 중력 적응훈련 등을 모두 통과해 녹슬지 않은 체력을 과시했다. 조종사 복장을 갖추고 FA-50 전투기 앞에 선 김 전 총장은 잠시 지난날을 떠올렸다. 그는 “거의 매일 밤낮으로 출격하며 오직 조국 수호라는 목표 하나로 사력을 다해 싸웠다”고 회상했다. 당시 김 전 총장은 총 102회 출격하며 임진강 철교 폭파 작전, 승호리 철교 폭파 작전 등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대동강에 설치된 승호리 철교를 폭파한 작전은 당시 미군이 실패한 작전이기도 하다. 목숨을 걸고 지켜낸 조국의 하늘을 후배 조종사와 함께 비행한 김 전 총장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화된 전투기를 조종하는 후배 조종사들이 자랑스럽고 든든할 따름”이라며 “평화는 저절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능력과 노력 여하에 달렸다”고 강조했다. 김 전 총장과 함께 FA-50 전투기를 탄 한성우 소령(37·공사 51기)은 “선배님의 헌신과 희생정신을 이어받아 혼신의 힘을 다해 대한민국 영공을 수호하겠다”고 결의를 다졌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2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6·25 미군 전술 총망라한 戰場기록 첫 공개

    미군은 6·25전쟁에서 처음으로 병력과 환자 수송을 위해 헬기를 활용했고 연대 이하 부대에 의무중대를 고정적으로 편성했다. 군견은 제2차 세계대전에 처음 활용했지만 체계적으로 군견병을 두고 운용한 것도 6·25전쟁이 최초였다. 6·25전쟁 당시 미군이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야전의 전투 사례들을 구체적인 작전 전술과 교리로 발전시켰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공개됐다. 미군 전투 교범이 1950년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룬 배경이 6·25전쟁이라는 추론은 있었지만 어떤 기록과 절차를 거쳐 이뤄졌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문서가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동아일보가 23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로부터 입수한 미 육군의 군사(軍史)파견대(MHD·Military History Detachment) 문건에 따르면 6·25전쟁 당시 미군 부대 운용 등에 대해 MHD가 기록하고 분석한 결과를 보고받은 상급기관은 “해당 사례를 교리로 만들어 교육하거나 바로 관련 부대에 전달하라”고 회신을 보냈다. 100년 만의 추위라던 6·25전쟁 당시 혹한기의 전투 과정을 면밀하게 살펴본 MHD는 소총중대의 방어진지 구축 과정을 기록하고 연구했다. MHD는 “겨울에 탄약이 다 얼어서 발사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참호 안에 별도의 구멍을 파서 저장하라”고 현장 방문을 바탕으로 한 권고안을 만들었다. 미 육군 작전처는 “차량을 운용하는 모든 장교와 부사관들이 전선에 투입되기 전 이 연구 결과를 참고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각종 전투에서 얻은 유용한 전훈(戰訓) 등을 해당 부대에서만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전군 차원의 교리 등으로 발전시키는 통로 역할을 MHD가 한 것이다. MHD 문건은 미군이 6·25전쟁을 기록한 문서 중 가장 방대하고 객관적인 1차 사료로 평가받고 있다. 군사편찬연구소는 올해 6·25전쟁 65주년을 맞아 이들이 작성한 ‘6·25전쟁 연구분석 프로젝트’ 문건 총 38편 자료 전량을 확보했다. 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美 헬기 처음 투입해 병력 수송… 베트남전 강습전술 향상

    6·25전쟁 중이던 1950년 10월 창설돼 1955년 3월까지 활동한 미국 극동군사령부 소속 8개 군사파견대(MHD)는 전쟁 현장의 사관(史官)이었다. 총 38편에 걸친 미 육군 MHD의 ‘6·25전쟁 연구 분석 프로젝트’ 자료는 동계 전투를 비롯해 고지전, 보급과 수송, 병력의 적정 규모, 장병들의 급여와 사기(morale)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2012년부터 3년여간 미국 국립문서보관소(NARA) 등에서 MHD 사료와 관련 문건을 발굴하고 수집해 정리한 군사편찬연구소의 남보람 소령(40·학군 35기)은 “미국에서 발간된 6·25전쟁 역사서는 대부분 이 자료를 기초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벌어진 마지막 전면전인 6·25전쟁을 담은 연구 결과인 만큼 60년이 지난 현재의 한국군에도 시사점을 준다”고 말했다.○ 군견병·중대 단위 의무대… 현대전 교리의 씨앗 6·25전쟁은 미국의 합동참모본부가 틀을 잡은 뒤 제2차 세계대전에 이어 치른 두 번째 전쟁이다. 명령 체계와 전투 교리가 다듬어지지 않았던 상황에서 미국은 6·25전쟁 경험을 바탕으로 군 전술을 체계화했다. MHD 사료에 드러난 헬기와 군견병, 그리고 중대 단위의 의무부대 운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6·25전쟁에서 처음 헬기를 활용한 미군의 실험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대형 수송기가 들어갈 수 없는 지형에서도 짧은 시간 안에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헬기가 수직으로 내려와 병력을 내려 주거나 태우면 적의 공격에 쉽게 노출된다는 단점이 있었다. 미군은 이 경험을 토대로 베트남전쟁에서 수송 헬기 강습착륙(적진에 특수부대원 등을 기습적으로 내려 주는 것)을 할 때 사선 방향으로 기동하는 교리를 발전시켰다. 군견은 2차 세계대전 때도 미군이 전방 부대의 정찰 활동을 돕는 데 운용했다. 하지만 군견의 훈련과 관리를 전담하는 특기를 가진 군견병을 별도로 편성한 건 6·25전쟁이 최초다. MHD 기록에 따르면 당시 미 8군 예하 26군견대가 운용한 군견 27마리가 모두 독일산 셰퍼드였고 1952년 3월부터 각 사단에 배치됐다. 총 400여 회에 걸쳐 적군의 매복을 파악하는 정찰 임무를 수행했다. 당시 개를 무서워한 중공군을 상대로 한 작전에서 효과가 컸다. 의무부대 운용도 새로운 시도였다. 미군이 본부 등 안전한 후방 지역이 아닌 사단급 부대에서 외과병원을 운용하는 개념은 2차 세계대전 이전에 개발했지만 6·25전쟁 때 본격적으로 실시했다. 미군은 특히 부상자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처음으로 중대급 부대에도 의무부대를 편성하고 이동식 외과 병동을 운용하기도 했다.○ 한국인 특수부대 ‘켈로부대’ MHD는 3편에서 6·25전쟁 당시 활약했던 8240부대(켈로부대) 부대장들의 인터뷰까지 실었다. 6·25전쟁 초기 미군은 적 후방을 교란할 수 있는 유격부대가 없었다. 반면 북한은 빨치산 등의 후방 교란 작전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피부색이 달랐던 미군은 북한 지역 출신 한국인들이 자생적으로 만든 유격부대를 켈로부대로 흡수했다. 미 특수전사령부는 부대의 모체를 켈로부대로 소개하고 있다. 당시 켈로부대의 규모는 3만여 명으로 ‘울팩’ ‘동키’ 등 30개 예하 부대로 구성됐다. 주로 서북도서 등 동·서해상의 북한 군사 거점 지역에서 대북 첩보를 모으고 적군의 주요 군 시설을 파괴하거나 포로 및 난민을 데려오는 임무를 맡았다. 6·25전쟁 중 6000여 명이 전사하고 2000여 명이 다치거나 행방불명된 것으로 추산된다. 남 소령은 “MHD에서 별도의 편으로 켈로부대를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부대가 전세를 바꾸는 데 미친 영향이 컸음을 입증하는 것”이라며 “켈로부대는 전투에서 핵심 요인인 북한군 사단장 납치에 성공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보여 북한군이 이들을 막기 위해 전선에 투입돼 있던 2개 사단을 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중공군이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한 백마고지 전투 미군이 치른 고지전이 아니어서 MHD의 38편 기록에는 들어가 있지 않지만 MHD 참고자료로 백마고지(395m) 자료가 포함돼 있다. 백마고지 전투는 국군 9사단과 중공군 3개 사단이 강원 철원군 북쪽의 요충지를 놓고 1952년 10월 6일부터 10일간 치른 전투다. 무려 24번이나 고지의 주인이 바뀔 정도로 치열한 전투였다. 이 전투는 중공군이 6·25전쟁을 기록한 ‘항미원조 전쟁 경험 총결’에서 유일하게 패배를 인정한 전투이기도 하다. 이 자료에 따르면 국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사전불퇴(死戰不退)’, 즉 죽을 때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정신에 있었다고 기술하고 있다. 당시 미 8군 사령관인 제임스 밴 플리트 장군은 미군에게 전쟁에서 정신력이 승패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강조하기 위해 이 전투에 대한 사후검토보고서(AAR)를 만들어 부대에 배포하기도 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실수 반복 않겠다” 패전도 꼼꼼히 기록

    MHD는 미군이 패한 전쟁도 기록하고 있다. 비록 졌지만, 다시는 같은 패배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공식적인 군사(軍史)로 남기고 있는 것이다. 3편에서 다루고 있는 ‘스맥작전(Operation SMACK)’은 6·25전쟁에서 미군이 패한 대표적인 전투다. 스맥작전은 1953년 1월 25일 경기 연천 티본(T-Bone) 고지의 감자 고개(Spud-Hill)를 점령해 중공군 포로를 잡아오는 작전이었다. 미군이 처음으로 공중과 지상전력 합동 공격작전을 시도한 전투실험이기도 했다. 당시 한국에서 작전을 수행한 미 5공군 소속 전투기 8대와 미 7사단 31연대 예하 1개 소대가 투입됐다. 미군은 당시 언론까지 초청할 정도로 작전 성공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F-84 선더제트 전투기가 약 2만1770kg의 폭탄을 투하했지만 중공군에 별다른 타격을 입히지 못했다. 미군의 공격을 예상하고 폐광 안 깊숙이 들어가거나 지하 깊이 참호를 파고 숨었기 때문이다. 이후 미군은 중공군의 역공에 밀려 사상자 64명을 낸 채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패전을 지켜봤던 한 미국 언론이 “(미군은) ‘쇼’를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컬러로 인쇄된 유인물에 시나리오까지 소개하기도 했다”고 보도하자 미국 현지 여론은 걷잡을 수 없이 비판적인 기조로 돌아섰다. 클레어 호프먼 당시 미 상원의원은 이 작전에 대해 “미군들이 콜로세움에 갇힌 검투사와 뭐가 다를 게 있느냐. 미군이 목표도 없는 전투를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결국 1953년 2월, 6·25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로턴 콜린스 미 육군 참모총장이 미 상원 국방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MHD는 스맥작전의 예행연습부터 작전계획 수립, 현지 정찰, 작전명령 하달 등 전 과정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다. MHD는 이 작전에서 합동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예상과 다른 상황이 발생했는데도 최초의 작전 시나리오대로 전투를 강행했다”고 지적하고 “지휘관들이 전장 상황에서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지휘관의 민첩성과 유연성을 강조하는 교리는 현대전에서도 미군의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를 잡았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2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함께 하는 미래” 합창… 관계개선 해법엔 아직 온도차

    같은 듯 달랐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2일 상대국 정부 주최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행사에서 한일 관계 진전을 위한 해법을 두고 미묘한 의견 차를 보였다. 양국 정상 모두 한일 관계의 ‘새로운 미래’를 강조하면서도 박 대통령은 과거사 문제 해결에, 아베 총리는 상호 신뢰와 안보 협력에 방점을 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한일 관계가 동상이몽(同床異夢)에서 구동존이(求同存異)로 나아가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차이점을 별도로 떼어 놓되 같은 점을 공동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한일 정상의 첫걸음에 담긴 미래 지향적 메시지다. ○ 朴, “과거사 풀어라” vs 아베, “안보 협력 강화” 박 대통령의 축사에는 과거사와 관련한 키워드가 적지 않았다. 과거사를 “가장 큰 장애 요소”라며 “화해와 상생의 마음으로 (과거사 문제를) 내려놓을 수 있도록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베 총리가 과거사의 매듭을 풀어야 한다는 의미다. 박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아베 총리의 특사 자격으로 방한한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일한의원연맹 회장을 만나서도 “이번 8·15에 양국이 화해와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아베 총리가 1965년 이후 일본 역대 내각이 견지해 온 인식을 확실히 계승하게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화답하듯 누카가 회장은 “아베 총리가 (일본의 전쟁범죄와 식민지배에 대해 사죄하는) 고노·무라야마 담화를 계승하겠다고 했고,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에 대해서도 ‘고통스러운 경험을 한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는 생각을 표명했다”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간 국장급 협의를 통해 진전을 이룰 수 있도록 정치권 차원에서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 발언은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아베 총리는 축사에서 “서로 신뢰하면서 (한일)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과거보다는 미래, 한일 간의 안보 협력에 방점이 찍혔다. 이어 “양국이 지역과 세계 과제에 협력해 함께 국제사회에 공헌하는 것은 양국의 새로운 미래 모습으로 연결된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는 ‘적극적 평화주의’라는 이름 아래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고, 세계 분쟁 지역에서 일본의 군사적 기여를 확장하려는 아베 내각의 전략에 대해 이해를 구한 것으로 풀이된다. 또 아베 총리는 “외할아버지인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와 기시 전 총리의 동생인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가 양국 국교 정상화에 깊이 관여했다”고 언급했다. 1965년 한일협정 체결 당사자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인 박 대통령과의 특별한 인연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동상이몽’에서 ‘구동존이’로 ‘부물지부제 물지정야(夫物之不齊 物之情也·천지에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3월 말 보아오(博鰲) 포럼에서 ‘맹자’의 이 같은 구절을 인용하며 “서로 다른 문명 사이에 우열은 없다. 오직 특색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실리를 위해 차이점을 덮어 두자는 접근법으로 냉랭하던 중일 관계 개선의 물꼬를 텄다. 한일 정상의 이날 메시지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한일 관계 진전의 전제 조건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하지만 지난달 4일 “과거사에 매몰되지 말고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짚고, 한미 동맹과 한일, 한중 관계 등 외교 문제는 다른 차원에서 추진해야 한다”며 ‘분리 대응’ 원칙을 공식화했다. 이어 박 대통령은 최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있어 상당한 진전이 있고, 현재 협상의 마지막 단계”라고 밝혀 한일 관계가 급물살을 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일각에서는 일본 정부에 대한 압박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그래서 한일 관계가 동상이몽에서 구동존이로 나아가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강상중 일본 도쿄대 정치학과 명예교수는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한일경제인회의에서 “위안부 등 과거 청산이나 독도 분쟁과 별도로 한일 양국이 직면한 안전보장과 경제 문제를 두고 조정과 협력 관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경제 협력 단초 될 수도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제 회복을 위해서도 한일 관계의 진전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양국이 2001년부터 유지해 온 한일 통화 스와프(맞교환)가 올해 2월 중단된 배경엔 양국의 외교적 갈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송의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앞으로 그리스 부채 문제가 미칠 파장을 예단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한일 통화 스와프를 재개할 필요가 있다”며 “양국 정부 간에 우호적 기류가 조성되면 한국에 대한 일본 기업의 직접 투자도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양국의 무역 분쟁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가능성이 높다. 외교부 관계자는 “일본산 수산물 금수 조치에 대한 일본 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문제도 관계 개선에 따라 언제라도 취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이재명 egija@donga.com·정성택 기자 / 도쿄=배극인 특파원}

    • 2015-06-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北 국군포로 죽을때까지 강제노동… 현충원에 추념탑 세워 희생 기려야”

    “국군포로로 북한에 잡혀 있던 47년 가운데 37년을 광산에서 노예처럼 살았습니다. 혹독한 노동에 시달리다 매일 국군포로들이 죽어 나갔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유영복 귀환국군용사회장(85·사진)은 17일 북한에서 겪은 고통이 떠오르는 듯 이같이 말했다. 이날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열린 사단법인 물망초의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 기자회견에서다. 유 회장은 6·25전쟁 막바지인 1953년 강원 김화지구 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혔다가 2000년 북한을 탈출했다. 북한은 처음에 국군포로가 8만 명이라고 했다가 막상 휴전 협상이 시작되자 5만 명이라고 말을 바꿨다. 한국 정부는 전쟁이 끝난 뒤 북한군 포로 7만5000여 명을 북한에 돌려보냈지만 돌아온 국군포로는 8343명에 그쳤다. 유 회장은 “6·25전쟁에서 많은 젊은 남성이 죽었기 때문에 북한은 휴전 후 폐허를 복구할 노동력이 부족했다”며 “전후 복구에 필수적이었던 석탄과 광석을 캘 노동력으로 쓰기 위해 국군포로를 강제 동원했다”고 전했다. 대외적으로 더이상 국군포로가 없다고 주장하던 북한은 당시 내무성 건설대에 1701∼1709부대를 만들어 국군포로를 집단 수용했다. 유 회장은 아연 등을 캐는 검덕광산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 북한은 검덕광산과 인근 용양광산에 국군포로 1000여 명을 투입했다고 한다. “지하 600m∼1km 깊이로 내려가 거리가 10∼20km 되는 막장에 들어가면 가만히 서 있어서도 땀이 났고 피부가 쓰렸다. 생산목표를 채우지 못하면 거기서 먹고 자면서 일하다 보니 거의 매일 사람이 죽었다.” 그는 “미국은 죽어서 북한에 묻힌 미군 유해를 찾기 위해 그토록 노력하는데 한국 정부는 살아있는 국군포로에 대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며 “그들의 희생을 기릴 수 있도록 국립현충원에 국군포로 추념탑이라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망초는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귀환국군용사회, 인간성 회복운동 추진협의회와 함께 포로 송환을 규정한 제네바 협약 위반을 이유로 김정은을 ICC에 제소할 계획이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주한미군, 감염병원 다녀온 장병-가족 3명 격리조치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가 지속되면서 주한미군 중에서도 처음으로 격리자가 나왔다. 16일 군 관계자에 따르면 주한미군 내 경기 평택기지에서 근무하는 장병 1명과 경기 성남기지 소속 장병 1명, 서울 용산기지에서 근무하는 장병의 가족 1명이 각각 격리돼 있다. 평택기지 소속 주한미군 장병은 최근 메르스에 노출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발열 등 감염 증세를 보였다. 이후 검사를 했지만 1차 음성 판정을 받았다. 주한미군 측은 잠복기가 끝날 때까지 이 병사를 기지 내 별도 시설에서 격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나머지 2명은 모두 발열 등 감염 증세를 보이진 않았지만 메르스와 관련된 병원을 다녀왔다고 신고하고 예방적 차원에서 자가 격리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성남기지 소속 장병은 기지 밖, 용산기지에서 생활했던 군 가족은 기지 안에 있는 집에서 자가 격리됐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군대=썩는 곳’은 옛날말

    “군대 가면 푹 썩고 온다고요? 전역 후에도 같은 일을 하는 직장에 취업하기 때문에 군에 있는 매일이 배움의 장(場)입니다.” 아직도 군대를 가지 않으려고 ‘꼼수’를 쓰다가 적발되는 사례가 있지만 지난해 5월 입대한 정광철 상병(23)에겐 남의 얘기다. ‘맞춤특기병’ 1호 입대자인 그는 현재 1101공병여단에서 용접기계공병으로 복무 중이다. 맞춤특기병 제도는 병무청과 고용노동부가 고졸 이하 병역 의무자에게 적성에 맞는 기술 교육을 해주고 전역 후엔 취업도 도와주는 제도다. 정 상병은 막막했던 군 생활에 대해 ‘버리는 시간’이라고 생각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본인이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찾았다. 자신의 경력이나 학업이 단절된다는 이유로 젊은이들 사이에 만연하고 있는 병역 기피 의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모범 사례다. 정 상병 소속 부대의 중대장 안정현 대위는 “다른 부대원들보다 부대 적응도 빠르고 리더십도 있어 분대장으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맞춤특기병 제도는 고졸 출신의 취업률과 병역 이행률을 높이기 위해 지난해 처음 도입됐다. 고졸 이하 18∼24세, 징병검사 신체등위 1∼3급의 대상자는 누구나 병무청 홈페이지(www.mma.go.kr)나 가까운 지방병무청을 방문해 개인의 적성에 맞는 맞춤형 상담을 받을 수 있다. 직종에 따라 기술훈련 기간은 3개월에서 1년 미만이며 훈련을 마치고 취업하고 싶으면 24세까지 입대를 미루고 일할 수 있다. 취업하면 최대 100만 원의 취업성공수당도 받을 수 있다. 조기 입대를 원하면 6개월 내 입영도 가능하다. 복무 기간도 경력으로 인정된다. 병무청은 지난해 맞춤특기병 1000명을 선발하고 장기적으로 5000명까지 늘릴 계획이었다. 하지만 올해 3월까지 933명만 혜택을 보는 데 그쳤다. 맞춤특기병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입영 대상자가 아직 많은 탓. 대학에 다니다 입대한 장병들이 사회와의 끈을 유지하는 제도도 마련돼 있다. 내년부터 대학 재학 중에 입대한 병사들이 대학 원격강의를 들으면 수강료의 50%를 지원받는다. 또 군 내 대학 원격강의에 참여하는 대학도 현재 전체 대학의 30% 수준(115곳)에서 2017년까지 50%로 늘어난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땀 배출 잘되는 여름 전투복 나온다

    국방부가 내년 말까지 땀 배출이 잘되는 새 여름용 전투복을 개발할 예정이라고 15일 밝혔다. 3억86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개발하는 이번 사업은 계절에 맞는 전투복을 개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2011년부터 보급된 신형 전투복은 사계절용으로 개발됐다. 항균성과 내구성이 강해 전투에 적합한 장점을 갖고 있지만 재질이 구형 전투복보다 두꺼워 여름엔 땀이 많이 나고 통풍이 잘되지 않는 단점이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기존 전투복은 원단에 기능성 원료를 입히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 개발하는 전투복은 처음부터 기능성 원단을 사용해 옷의 두께를 줄일 수 있다”며 “우리 기후에 맞게 동계 전투복은 내구성, 하계 전투복은 통풍과 땀 배출 등에 초점을 맞출 계획”이라고 밝혔다. 국방부는 이르면 2017년 장병들에게 새 여름·겨울용 전투복을 각각 2벌씩 지급할 계획이다. 전투복을 입는 방식도 기후 등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예를 들어 비가 올 때는 현재 장병들이 전투복 상의 안에 입고 있는 디지털무늬 러닝셔츠만 입고 그 위에 판초 우의를 입는 방식을 허용한다는 것이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병무청 사상 첫 여성 고위공무원 홍승미씨…임명 배경은?

    병무청은 홍승미 부이사관(행시 41회·사진)을 부산지방병무청장(국장급)에 임명했다고 15일 밝혔다. 사상 첫 여성 고위공무원이다. 홍 신임 청장은 병역자원과장, 대변인, 산업지원과장, 운영지원과장 등 지냈다. 홍 청장은 “앞으로도 국민 소통하는 병무행정을 펴 나가겠다”고 밝혔다. 병무청 관계자는 “연공서열을 폐지하고 능력 위주로 발탁하는 인사혁신 정책에 따른 것”이라고 임명 배경을 설명했다.정성택기자 neone@donga.com}

    • 2015-06-15
    • 좋아요
    • 코멘트
  • 軍 장병 휴가 - 외출 15일부터 정상화

    국방부는 군 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상황이 진정된다고 보고 메르스 위험이 낮은 지역은 지휘관 판단 아래 장병들의 휴가와 외출·외박, 면회를 15일부터 정상적으로 시행하기로 했다. 메르스 여파로 국민의 불안감이 가중되고 지역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국방부 관계자는 14일 “휴가 등으로 부대 밖으로 나가는 장병은 메르스 감염이 우려되거나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은 가급적 피하도록 하는 등 적극적인 사전교육을 실시할 것”이라며 “부대로 복귀할 때 발열 검사 등 메르스 차단 조치를 철저히 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군 내 메르스 확진환자는 없다. 의심환자는 2명, 밀접 접촉자는 8명이며 예방 관찰 대상자는 170여 명이다. 하지만 장병들이 조심을 한다 해도 작은 부주의로도 감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성급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도 없지 않다. 사전교육만으로는 예방이 부족하고 잠복기가 2주 동안 지속되기 때문에 아무런 증상 없이 부대에 들어오면 집단생활을 하는 부대에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앞서 국방부는 4일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지역과 그 인근 지역에 있는 군부대 장병의 휴가와 외출·외박·입영 행사를 금지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국군포로 억류… 北김정은 ICC 제소”

    국군포로송환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는 사단법인 물망초의 박선영 이사장(사진)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한다. 포로 송환을 규정한 제네바협정을 위반하고 아직까지 국군포로를 억류하고 있는 책임을 묻기 위해서다. 박 이사장은 17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밝힐 예정이다. 그는 14일 “이달 말 ICC가 있는 네덜란드 헤이그로 출국해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이사장은 2013년에도 국군포로 송환을 위해 김정은의 ICC 제소를 추진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법리적인 보완을 거쳐 제소하는 것이다. 일각에선 국군포로는 김일성 주석이 저지른 범죄이기 때문에 손자인 김정은에게 책임을 묻기 힘들다는 견해도 있다. 이에 대해 박 이사장은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고 불법적으로 강제 구금하고 있는 것은 범죄가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지속적인 전쟁 범죄(continuing war crime)’”라며 “지속되고 있는 범죄이기 때문에 김정은을 공동 정범으로 제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박 이사장은 국군포로를 송환하지 않는 것은 국제법 위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산가족 상봉처럼 국군포로 송환도 인도주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다 보니 정부가 해법을 찾지 못하는 것”이라며 “제네바협정 위반이라는 국제법으로 북한을 압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북한에는 국군포로 500여 명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이사장은 “이번 제소를 계기로 정부도 김정은을 ICC에 제소하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17일 기자회견에는 귀환국군용사회 회장을 맡고 있는 유영복 씨(85)를 비롯한 귀환 국군용사 5명이 참석한다. 유 씨는 1953년 강원 김화지구 전투에서 포로로 붙잡혔다가 2000년 7월 탈출했다. 그는 12일 한 세미나에서 “2000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했을 때 ‘이번엔 돌아갈 수 있겠지’라고 생각했지만 국군포로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며 “국가가 국군포로를 외면한다면 누가 목숨을 바쳐 싸우겠는가”라고 지적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北, 단거리 미사일 3발 동해 발사

    북한이 6·15 공동선언 15주년을 앞두고 다양한 도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북한은 14일 강원 원산 인근에서 동해상으로 KN-01 단거리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합동참모본부에 따르면 북한은 이날 오후 4시 21분부터 47분까지 원산 호도반도 인근에서 함남 신포의 마양도 방향으로 KN-01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미사일은 100여 km를 날아가 마양도 앞에 떨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미사일 발사 위치가 호도반도에서 가까운 곳이어서 군 정보 당국은 북한이 지대함 미사일을 함정에서 쏜 것인지 지상에서 쏜 것인지 정밀 분석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올 들어 2월 6일과 5월 9일에 이어 세 번째로 이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 군 관계자는 “서북도서상의 우리 함정에 대한 전력을 보강하기 위해 KN-01 미사일의 정확도를 높이는 차원에서 시험발사 횟수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북한은 이와 함께 서해 연평도에서 약 4.5km 앞에 있는 갈도에 벙커 형태의 군사 시설물을 완공한 데 이어 함정이 정박할 수 있는 부두와 계류장 등 접안시설을 건설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군 당국은 북한이 갈도에 해안포나 방사포(다연장로켓포)를 배치하기 위한 본격 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보고 관련 동향을 주시하고 있다. 현재의 공사 진척 속도로 볼 때 이르면 두 달 뒤에 시설이 완공될 것으로 보인다고 이 소식통은 전했다. 한편 북한은 최근 두 달째 모든 전선의 군사분계선(MDL) 근처에서 귀순자가 지나간 곳에 지뢰 매설로 보이는 작업을 하는 것이 포착됐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정성택 기자}

    • 2015-06-1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군내 메르스 진정세…軍, 15일부터 외박 정상화

    공군 오산기지 소속의 김모 원사 퇴원 뒤 군 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진자는 더 이상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의심환자와 밀접 접촉자도 각각 1명씩 줄었다. 군 내 메르스 상황이 진정세를 보임에 따라 국방부는 15일부터 장병들에 대한 휴가와 외출을 정상화하기로 했다. 14일 국방부에 따르면 현재 군 내 메르스 확진환자는 없다. 의심환자와 밀접접촉자는 각각 2명, 8명이다. 메르스 검사를 의뢰한 간호장교 1명이 음성으로 나오면 예방 관찰대상자 178명 중 50여 명도 격리해제될 계획이다. 국방부는 이날 완치된 김 원사의 혈장 헌혈 지원은 추가로 계획된 건 없다고 밝혔다. 12일 완치된 후 현재 항공우주의료원에서 요양을 취하고 있는 김 원사는 본인의 뜻에 따라 “치료에 써달라”며 메르스 항체가 있는 자신의 혈청을 충남 천안 병원에 헌혈했다. 한민구 장관은 이날 오산 공군기지 내 항공의무전대의 메르스 격리시설을 방문해 의무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8개의 병상을 갖춘 이 곳에는 현재 3명의 예방 관찰대상자가 격리 관찰 중이다. 한 장관은 이 자리에서 “한 발 빠르고 과감한 대응만이 메르스의 군내 확산을 차단할 수 있다”며 “과도한 불안감은 오히려 메르스 극복에 장애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방부는 메르스 위험이 낮은 지역은 지휘관 판단 하에 장병들의 휴가와 면회, 외출 외박 등을 정상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 국방부는 12일부터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대전 대청병원에 24명의 군의관과 간호장교 파견했다. 이 중 2명은 에볼라 바이러스 퇴치 활동을 위해 아프리카에 파견됐던 인력이다. 국방부 관계자는 “국군대전병원을 메르스 전담지원 병원으로 지정해 응급·외래진료 없이 메르스 밀접접촉자와 의심환자만 격리 수용해 진료하고 있다”며 “예비역 간호장교 8명도 추가 투입 준비를 마쳤다”고 밝혔다. 한편 한 장관은 이날 오산 주한미군 7공군사령부의 항공의학전대를 찾아 지난달 탄저균 배달 사고와 관련된 사안을 보고받았다. 한 장관은 “북한의 생화학전 위협이 존재하는 만큼 이를 막을 수 있는 ‘주피터’ 방호 프로그램은 계속 발전돼야 한다”며 “다만 주피터 프로그램의 정보 공유 및 절차의 투명성을 위해 양국이 더욱 협력해야 한다”고 말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4
    • 좋아요
    • 코멘트
  • “한번 해병은 손자까지 해병”

    해병대에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아들까지 3대째 복무를 이어가는 ‘해병대 명문가’ 집안이 7가족이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해병대에 따르면 연평부대에서 감찰관으로 근무하는 강웅대 원사(51)의 작은할아버지 고 강동구 씨는 해병 1기로 6·25전쟁에 참전해 전공을 인정받아 충무무공훈장을 받았다. 강 원사의 아버지 고 강재룡 씨는 베트남전에서 활약했다. 두 사람 모두 준위로 전역한 뒤 현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서울의 서쪽을 방어하는 해병대 2사단에는 같은 중대에서 근무하는 3대 해병이 2명 있다. 두주호 상병(22)과 김경복 일병(22)이다. 두 상병은 “훈련병 시절 아버지가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다. 아버지와 해병대 정신을 함께 나누게 된 것을 환영한다’고 딱 여섯 줄 편지를 써주셨다”며 “당시 짧고 굵게 전해 오던 아버지의 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 일병은 전역 후에도 지역 봉사활동에 전념하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에 이끌려 3번의 지원 끝에 해병대원이 됐다. 권혁규 일병(21)은 할아버지 고 권경찬 씨가 있었던 서해 최북단 백령도의 6여단에서 복무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 권위달 씨(48)는 2사단에서 복무했다. 김남균 상병(23)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해병대 1사단에서 국방의 인연을 맺었다. 김 상병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강한 정신력과 인내력을 보고 해병정신을 본받고 싶었다”며 “3대 해병대는 혈육으로 이어진 가족이면서 동시에 전우”라고 말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1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여군 간호장교, 의료 지원 나섰다가…軍 메르스 의심환자 4명으로

    군 내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의심환자가 1명 늘어났다. 10일 국방부에 따르면 이번에 추가된 의심환자는 육군 소속의 여군 간호장교다. 이 장교는 5일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대전 지역의 한 병원에서 의료 지원 활동을 했다. 이에 따라 현재 군에서 메르스 의심환자는 모두 4명으로 늘어났다. 기존 의심환자인 국방부 소속 육군 대위와 공군본부 소속 공군 소령, 해군 여 하사는 음성판정을 받은 상태다. 밀접 접촉자는 3명이 추가돼 총 7명으로 늘어났다. 추가된 밀접 접촉자 중 2명은 육군 간부, 1명은 군무원이다. 대전 지역 부대 소속의 육군 A소령은 지난달 30일 메르스 환자와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 장례식장에서 식사를 함께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군 C 중사는 7일 강원도 지역에서 메르스 환자와 식사를 했고 군무원 C 씨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한 대전의 한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메르스 의심환자와 밀접 접촉자가 늘어나면서 이들의 주변에 있었던 장병을 포함해 군의 예방관찰 대상 인원은 134명에서 147명으로 늘었다.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 2015-06-10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