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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프라인과 극장 인근에서 주로 진행되던 공연 마케팅이 점차 온라인과 장소 불문으로 진화하고 있다. 극장 안팎에 옥외 광고물을 걸거나 공연장 인근에 포스터를 붙이는 전통적 마케팅에서 탈피해 투자상품, 전자책, 포토존, 웹툰 등과 결합하고 있다. 최근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공연 중인 서울 구로구 디큐브아트센터. 이곳에서는 공연 전 스마트폰을 통해 공연 소개 도슨트북을 읽는 관객들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다. 제작사 EMK뮤지컬컴퍼니는 최근 월정액 독서 애플리케이션(앱) 밀리의 서재와 협업해 뮤지컬 도슨트북을 출시했다. 국내에서 전시용이 아닌 공연용 도슨트북이 서비스된 건 처음이다. 관객들은 앱을 통해 관람 전 알아야 하는 배경지식을 10분 안팎이면 찾아볼 수 있다. 극 중 ‘마리 앙투아네트’ 역의 김소현과 ‘페르젠’ 배역의 손준호가 직접 녹음에 참여했다. 밀리의 서재 회원이라면 누구든 도슨트북을 이용할 수 있다. 12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의 월드투어 내한공연을 앞둔 클립서비스는 최근 카카오페이와 협업해 투자 상품을 내놨다. 총 모집금액은 20억 원으로 투자하면 6개월 뒤 ‘오페라의 유령’ 수익금을 돌려받는데 예상 수익을 10%(세전)로 내다보고 있다. 문화콘텐츠 투자 상품으로는 카카오페이 포트폴리오에 처음 올라왔다. 극장 안에서만 볼 수 있던 포토존은 이젠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12월 초연하는 뮤지컬 ‘빅 피쉬’의 제작사 CJ ENM은 서울 을지로, 광화문, 이태원에 ‘움직이는 포토존’ 마케팅을 들고나왔다. 박종환 CJ ENM 공연커뮤니케이션팀장은 “‘일상에서 만나는 판타지’를 주제로 사람들이 많이 찾는 카페, 식당의 한편에 포토존을 마련해 뮤지컬 분위기를 느끼도록 하는 게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웹툰과 공연의 컬래버레이션도 활발하다. 국립발레단은 창작발레 ‘호이 랑’의 서울 공연을 앞두고 ‘약치기 그림’으로 유명한 양경수 웹툰 작가와 ‘인스타툰’을 선보일 예정이다. 김현아 국립발레단 홍보팀장은 “문턱이 높은 발레를 일반 관객이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을 통해 웹툰을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김풍 웹툰 작가도 뮤지컬 ‘스쿨 오브 락’의 홍보 웹툰을 제작했으며, ‘유미의 세포들’로 인기를 끌고 있는 이동건 웹툰 작가도 뮤지컬 ‘시라노’를 앞두고 ‘시라노의 세포들’을 공개했다. CJ ENM은 업계 최초로 ‘시라노’의 뮤지컬 홍보용 웹드라마 ‘잘빠진 연애’를 제작해 선보인 바 있다. 3년 전부터 뮤지컬 티켓 등을 팔아온 홈쇼핑도 달라지고 있다. 쇼호스트가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소형 뮤지컬쇼나 야외 생방송으로 시청자를 불러 모으고 있다. 공연 마케팅의 진화는 공연시장 침체와 맞물려 전통 홍보수단에 한계를 느낀 제작·기획사의 고민이 녹아 있다. 또한 보는 사람만 계속 보는 ‘회전문’ 관객에게 의존하는 시장구조가 한계에 봉착하면서 새로운 관객 발굴이 공연계의 당면 과제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원종원 뮤지컬 평론가는 “공연은 영화나 드라마처럼 사전 완성자료가 상대적으로 적을뿐더러 가공할 수 있는 콘텐츠가 부족해 전통적 마케팅을 선호해왔다. 단기 공연 위주인 국내 공연계가 외부 관객층을 끌기 위한 새로운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적어도 현대무용이 관객들을 ‘의문의 방’으로 이끌진 말아야죠.” 현대무용을 한 편 보고 난 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하고 빠졌던 고뇌는 관객의 몫이자 큰 숙제였다. 그만큼 현대무용은 일반 관객층이 다가가기 어려운 불친절한 장르라는 인식이 강했다. 다행히 최근 국립현대무용단을 필두로 이런 분위기가 서서히 변화하고 있다. 2016년 말 안성수 예술감독(57) 부임 후 국립현대무용단 공연 객석에는 ‘생기가 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른바 ‘무용 좀 즐기는’ 일반 관객층이 늘고 있기 때문. 10일 서울 서초구 국립현대무용단에서 만난 안 감독은 “무용계 저변을 확대하려면 뭣보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재미있는 무용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변화는 수치로도 나타난다. 2011년부터 2016년까지 77.6%를 기록하던 무용단의 평균 객석점유율은 그가 부임한 뒤 96.2%까지 껑충 뛰었다. 유료 객석 점유율도 같은 기간 평균 66%에서 86%로 높아졌다. 일반 관객에게 한 발 더 다가가려는 그의 노력이 통한 셈이다. “공연장에 나가 보면 알아요. 자주 보던 무용계 관계자 얼굴보다 낯선 얼굴을 볼 때 참 반갑더라고요. 하하.” 안 감독은 “국립현대무용단이 해야 할 것, 하지 않아도 될 것, 해서는 안 될 것을 철저히 구분해 지켰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무가 육성과 해외무용단과의 교류에 힘썼다. ‘오픈―업 프로젝트’ 등을 통해 일반 관객과의 접점을 꾸준히 찾았다. 예술교육은 타 기관의 몫으로 남겨 두고, 친목 도모 성격의 공연은 과감히 배제했다. “무용계의 친선 도모는 고질적 병폐이자 단점이죠. 무용계가 프로페셔널이 되려면 이를 넘어서야 해요.” 그는 뒤늦게 미국에서 무용에 입문한 ‘늦깎이 무용수’였다. 영화를 공부하러 떠난 미국에서 우연히 발레를 수강하다 매력에 빠졌단다. “군대에서 다친 허리 때문에 근력을 키우려고 발레 수업을 들었어요. 그런데 남자 무용수들을 보니 ‘나도 할 수 있겠는데?’라는 자신감이 불쑥 생겼죠.” 이후 줄리아드대학에서 무용 공부를 마치고, 무용단을 결성했다. 안무가로 활동하며 귀국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를 맡았다. 그는 “2분 동안 장면에 진전이 없으면 재편집에 들어가는 영화의 ‘2분 룰’을 무용 안무에도 적용해 속도감을 추구한다. 먼저 배운 영화가 은근히 도움이 됐다”고 했다. 해외 교류도 그가 중시하는 포인트다. “한국 무용수의 기량을 알릴 필요가 있다”는 그는 최근 초청을 받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새 안무 작 ‘검은 돌: 모래의 기억’을 먼저 선보였다. “겹겹이 쌓이는 시간과 흔적 끝에 남은 우리의 존재를 무용으로 표현했다”는 작품은 국악기를 베이스로 한 음악 위에 무용수들의 몸짓을 녹였다. 11월 국내 관객과도 만난다. “이번 작품만큼은 그동안 제가 하고 싶었던 모든 걸 다 쏟아부었습니다. 재밌는 몸의언어를 느껴보세요.” 11월 1∼3일 서울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1만∼5만 원. 8세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저가 티켓 마케팅을 앞세운 ‘상업연극’이 대학로를 점령하고 있다. 상업연극은 오락이나 흥행에 초점을 맞춘 작품으로, 예술성에 치중한 ‘순수연극’과 구분하는 개념. 그런데 인건비마저 충당하기 힘든 요즘 세태에, 그나마 이윤을 남기며 연극판을 버티는 작품은 대다수가 상업연극이다. 전문가들은 최근 작품 수준도 비교적 높아졌고, 저렴하게 즐길 수 있다는 걸 장점으로 꼽는다. 하지만 과도한 저가경쟁과 호객행위가 연극계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상업연극 전성시대… 퀄리티도 나쁘지 않아 12일 서울 대학로 한 소극장. 수년째 ‘오픈런’(끝나는 날짜 지정 없이 이어지는 공연) 코미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이날 100석 규모인 객석은 절반이 좀 못 미치는 자리만 채워졌다. 공연이 임박하자 일부 극장 관계자가 밖으로 나가기 시작했다. 행인들에게 “싸게 드릴게. 진짜 재밌어요”라며 파격적인 저가 티켓을 제안했다. 막이 오르자 ‘분위기 메이커’가 무대에 올라 박수와 함성을 유도했다. 관객을 중간 중간 무대로 불러내 극에 참여시킬 때도 있다. 극의 짜임새는 살짝 엉성했지만 그래도 진정성 있는 배우들의 열연에 관객들은 웃음을 터뜨리거나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한 남성은 “저렴한 비용으로 연극을 보다 보니 웬만한 ‘흠’은 넘어가주게 되더라”고 했다. 또 다른 소극장에서는 선정적 ‘성인 코미디’를 무대에 올렸다. 꽤나 수위 높은 대사가 오가는데 커플로 보이는 관객이 많다. 배우들은 짓궂은 질문으로 관객들을 당혹시키기도 했다. 역시 관객들의 만족도는 나쁘지 않았다. 상업연극의 인기몰이가 물론 최근에 벌어진 기현상은 아니다. 사실 비용을 덜 들이되 싼 티켓 값으로 관객을 유혹하는 방식은 이미 대학로의 오랜 관행. 입장료를 대폭 깎더라도 수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잘나가는 공연은 지방공연을 포함해 한 달에만 수천만 원대의 매출을 올리기도 한다. 정부나 예술계 지원 없이도 이미 독자적 생존법을 갖춘 작품이 많다”고 했다. 상업연극의 장르 다변화도 한몫했다. 코미디, 공포나 멜로, 성인물 등으로 세분화했다. 관객 참여를 유도하고, 퀴즈를 통해 초대권이나 상품도 나눠준다. 한 연극계 원로는 “과거엔 상업연극을 ‘뒷골목 연극’이라 폄하하기도 했다”며 “요즘은 딱히 비난하기 어려울 정도로 배우 연기나 짜임새의 수준이 올라와 놀랐다”고 했다.○ 과도 경쟁으로 ‘제 살 깎아먹기’가 되진 말아야 당연히 이런 흐름이 장기적으로 옳다고 볼 순 없다. 저가 티켓 마케팅은 결국 ‘제 살 깎아먹기’다. 한 연출가는 “‘연극=저가’라는 인식이 고착화되면 연극계의 전반적 질적 저하를 불러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소셜커머스 사이트에는 공연 티켓이 4900원인 작품도 여럿이며, 1만 원대 이하 티켓도 많다. 평일 평균 할인율은 70∼80%에 이른다. 한 극단 관계자는 “대다수 관객이 소셜커머스를 통해 티켓을 구입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은 이미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고 털어놨다. 몇몇 극장 대표가 ‘최저 가격선’을 논의하기도 했으나 공염불이 됐다. 만연한 호객행위도 문제다. 이날 대학로 인근에선 잠깐 서 있는 동안 티켓 호객꾼 7, 8명이 말을 걸어왔다. “저한테 오시면 더 싸게 드려요. 제가 수당도 받으니 꼭 다시 와 주세요”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이은경 연극평론가는 “상업성에 치중한 작품들을 무조건으로 비판할 수도 없고, 소셜커머스 경쟁을 막을 방법도 없다”면서도 “다만 배우에게 시급을 지급하며 공장에서 작품을 찍어내듯 만드는 상업공연이 기존 관객층마저 떠나보내지 않도록 최소한의 예술성, 대중성은 담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건표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는 “연극적 품위를 고민하되 가격 경쟁을 위해 싼 좌석만으로 관객을 모으는 시장 교란 행위는 지양할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제목이 직관적으로 내용을 관통한다. 평화보다 전쟁을 택했던 독일 미국의 자본과 권력자 히틀러의 공생 관계를 다뤘다. 포드, IBM, 제너럴모터스(GM) 등 미국 대표 기업의 이름이 나치와 함께 서술된 대목에서는 낯선 느낌마저 든다. 이들의 은밀한 공조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귀결됐다. 캐나다 토론토대, 워털루대 등에서 유럽사를 연구한 저자는 대자본가와 파시즘의 결합을 조명해왔다. 전작 ‘좋은 전쟁이라는 신화’에서도 미국의 참전이 정의 때문이 아니라 이익 때문이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독일은 전쟁에서 적국으로 만나 희생을 치렀지만, 사실 양국 자본가에게 전쟁은 공동의 이익을 추구할 기회였던 셈이다. 저자에 따르면 히틀러의 등장도 결코 우연은 아니다. 히틀러는 자본에 의해 ‘고용된’ 독재자에 가까웠다고 말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폴란드 소설가 올가 토카르추크(57·여)와 오스트리아 소설가 페터 한트케(77)가 2018년과 201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각각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지난해 한림원 미투 파문으로 수상자를 내지 않아 10일(현지 시간) 올해 2명을 함께 발표했다. 한림원은 토카르추크에 대해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열정과 서사적 상상력을 갖췄다. 소소한 일상을 파고드는 동시에 멀찍이서 삶을 바라보는 작가”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한트케에 대해서는 “소설, 에세이, 단편,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했다. 언어학적 독창성을 지닌 작품으로 인간 경험의 특수성과 그 경계를 탐구했다”고 설명했다. 파문을 겪은 한림원의 수상자 선정을 놓고 문학계에서는 “동유럽권의 여성 작가와 소수자성을 지향하는 작가의 조합”이라고 해석했다. 심하은 은행나무 해외문학팀 편집장은 “폴란드 수상자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1996년) 이후 20여 년 만이다. 지역 안배 기준에는 적합하지만 비교적 젊은 나이라 의외”라고 했다. 안장혁 동의대 문학인문학부 교수는 “한트케의 정체성은 ‘시대의 비주류’다. 전위적 문학을 추구하는 논쟁적 작가지만 한림원이 저항 정신에 주목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여성 작가로는 15번째 수상자인 토카르추크는 대중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고 있다. 바르샤바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1993년 장편소설 ‘책의 인물들의 여정’을 출간했다. 심리치료사로도 활동하다 시로 데뷔해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사실주의에 신화와 전설, 비망록 등 다양한 장르를 덧입혀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평을 받는다. 대표작으로는 장편 ‘E.E’ ‘태고의 시간들’ ‘낮의 집, 밤의 집’ ‘방랑자들’과 단편집 ‘옷장’ ‘여러 개의 작은 북 연주’가 있다. ‘방랑자들’로 2018년 맨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을 수상했다. 국내에는 여성의 삶을 충실히 복원해낸 장편 ‘태고의 시간들’이 올해 처음 출간됐다. 단편 ‘눈을 뜨시오, 당신은 이미 죽었습니다’가 수록된 동명의 단편집도 국내에 번역, 출간됐다. 한트케는 소설, 희곡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논란을 일으켰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에서 법학을 전공한 한트케는 첫 소설 ‘말벌들’(1965년)이 출간되자 마지막 학기를 남겨두고 전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한트케는 기존의 문학적 가치와 방법을 거부하며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쓴다. 시에 미학적인 문구를 넣는 것은 구역질이 난다”고 말했다. 가장 많이 읽힌 책은 1972년 발표한 ‘소망 없는 불행’으로 어머니가 자살한 후 쓴 작품이다. 전쟁과 가난으로 몸과 마음이 병들자 목숨을 끊은 어머니를 보며 한 인간이 자아에 눈뜨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감독 빔 벤더스와 함께 ‘베를린 천사의 시’(1987년) 각본을 썼다. 줄거리 없이 배우들이 관객에게 욕설을 퍼붓는 희곡 ‘관객모독’(1966년)은 국내에서도 자주 공연된다. 소설 ‘페널티 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반복’ 등이 국내에 출간됐다. 한편 한트케는 2006년 세르비아의 독재자인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의 장례식에서 그를 옹호하는 연설을 발표해 비판을 받았다. 한트케는 “밀로셰비치는 영웅이 아닌 비극적인 인물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2014년에는 오스트리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노벨상은 문학의 잘못된 성역화”라며 “폐지돼야 한다”고 했다. 한림원은 그가 “훌륭한 예술성으로 숨겨진 영역과 경계를 탐험했다”고 평가했다.이설 snow@donga.com·김민·김기윤 기자}

‘뮤지컬은 안 봤어도 넘버는 다 안다’는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7년 만에 한국에 온다. ‘오페라의 유령’ 월드투어팀은 12월부터 관객과 만난다. 서울 중구 한 호텔에서 10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주역 배우들과 연출진은 “‘오페라의 유령’을 보고 나면 머릿속에서 다른 작품 생각은 싹 사라질 것이다. 한국 관객들이 잠시 다른 뮤지컬과 사랑에 빠졌더라도 7년 만에 옛 연인 ‘오페라의 유령’에게 돌아와 달라. 우린 헤어질 수 없는 사이”라고 입을 모았다. 간담회에는 ‘유령’ 역의 조너선 록스머스, ‘크리스틴’ 역의 클레어 라이언, ‘라울’ 역의 맷 레이시를 비롯해 라이너 프리드 협력연출가, 데이비드 앤드루스 로저스 음악감독이 참석했다. ‘오페라의 유령’은 뮤지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메가 히트작이다. 1986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된 후 41개국에서 1억4000만 명의 관객을 끌어 모았다. 올해는 브로드웨이 최초로 1만3000회 공연을 돌파했다. 지난해 뉴욕 브로드웨이 공연 30주년을 맞아 월드투어를 시작했고 이스라엘을 거쳐 한국에 왔다. 연출진은 30년이 넘는 작품의 성공비결로 ‘완성도’를 꼽았다. 프리드 협력연출가는 “초연부터 모든 게 탄탄하게 잘 맞아떨어졌다. 30년 동안 크게 수정할 필요도 없이 완성도가 높았다”고 떠올렸다. 무대 기술적인 부분만 보완했을 뿐 이번 공연에서도 원작의 탄탄함을 그대로 보여줄 예정이다. 한국에서 이 작품의 의미는 각별하다. 2001년 초연 당시 대형 뮤지컬의 전성기를 연 작품으로 ‘팬텀 신드롬’까지 일으키며 꾸준히 사랑받았다. 7년 전 한국 무대를 경험한 배우들과 연출진의 한국 사랑도 각별하다.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한 앤드루 로이드 웨버의 ‘뮤즈’로 불리는 라이언은 “아직 한국 문화를 경험하지 못한 배우들을 데리고 서울에 있는 제 단골 식당과 찜질방에도 데려갈 생각”이라며 웃었다. 이번 투어는 12월 13일 부산 드림씨어터에서 시작한다. 내년 3월 서울 블루스퀘어에서 공연한 뒤 7월부터 대구 계명아트센터 무대에 오른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집 천장이 낮아서 차마 리프팅(들어올리기) 연습까지는 못 하겠더라고요.” 직장 동료가 배우자라 좋은 점은 24시간 함께하며 최고의 호흡을 선보일 수 있다는 것. 물론 나쁜 점도 없지 않겠지만. 집, 연습실, 무대를 오가며 12년째 발레 파트너로 호흡을 맞춰 온 유니버설발레단의 간판 무용수 강미선(36), 콘스탄틴 노보셀로프(34) 부부가 3년 만에 창작발레 ‘심청’으로 돌아왔다. 최근 서울 광진구 유니버설발레단에서 만난 이들은 “리프팅 동작만큼은 발레단에 와서 할 수밖에 없겠더라. 배우자와 안무 연습을 원 없이 할 수 있는 건 큰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웃었다. ‘심청’은 한국 발레의 아름다움을 세계에 알리며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심청의 우아한 안무와 심청전에 바탕을 둔 탄탄한 스토리가 강점이다. 올해 강미선은 심청을, 노보셀로프는 캐스팅 일정에 따라 선장과 용왕 배역을 맡는다. 두 무용수가 같이 무대에 오를 때 쏟아지는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그럼에도 “심청이 주는 무게감이 남달라 새 각오를 다지게 만든다”고 했다. 강미선은 “학창 시절부터 평생을 꿈꿔 오던 작품이다. 꼭 하고픈 작품을 꼽으라면 단연코 심청”이라고 했다. 노보셀로프는 “한국 문화의 영혼, 슬픔, 행복이 함께 녹아 있는 심청은 보물 같다”고 했다. 처음 ‘심청’으로 두 사람이 무대에 설 때 강미선에게는 별도 과제가 있었다. ‘심청전’의 장면별 상세한 의미를 러시아 태생인 남편에게 잘 설명해 이해시켜야 했다. “심청이가 제물로 팔려갈 때 ‘순결’을 위해 심청을 보호하는 대목이 있어요. 코스차(노보셀로프의 애칭)를 비롯한 외국 단원들이 ‘선원이 심청을 좋아한다’고 잘못 생각하더라고요.”(강미선) 노보셀로프는 “의미를 다 알진 못했어도 감동적 서사라는 건 충분히 느꼈다. 보통 남녀의 사랑을 말하는 발레와 달리 심청은 특별하다”고 했다. 공연을 앞두고 심적, 체력적 부담이 큰 두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건 뭣보다 서로의 존재다. 강미선은 “힘들어도 남편에게 의지하면 다시 에너지가 생긴다”고 했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없을까. 강미선은 “연습 때 지적을 하면 남편은 ‘잔소리’로 듣는 것 같다. 더 젠틀해졌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반면 노보셀로프는 묘하게 웃으며 완벽한 모범답안을 내놓았다. “아쉬운 건 절대 없어요. 제 아내는 모든 게 완벽해요.” 11∼13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3만∼12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사회의 부조리, 전쟁과 재난, 여성에 대한 억압…. 우리 시대의 불안을 다룬 세계 공연 거장의 작품들이 서울로 몰려온다. 3일 개막한 제19회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는 20일까지 ‘시대를 조명하다’라는 주제로 작품 19편을 선보인다. 덴마크, 러시아, 이스라엘, 벨기에, 독일, 프랑스 등 10개국 작품이 서울 종로구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세종문화회관, 한국예술종합학교 일대에서 무대에 오른다. 연극과 무용이 각각 9편씩 선정됐고 장르가 복합된 다원극도 1편 있다. 한국의 대표적 공연예술 축제인 SPAF는 예술경영지원센터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공동 주최한다. 벨기에 연극 ‘잊혀진 땅: 포인트 제로’(18∼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는 19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를 정면으로 마주한 작품이다. ‘자연방사능보호구역’이라는 이름이 붙은 불가사의한 지역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유령도시처럼 방사능에 오염된 농작물, 동물, 그리고 일부 지역민만이 사는 곳을 그리기 위해 연출진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를 직접 방문했다. 원전의 위험성을 조명하기 위해 체르노빌 사고로 고통받는 지역민들을 만났고 이들의 증언과 기억을 토대로 작품을 만들었다. 2018년 한 벨기에 언론은 이 작품을 최우수 공연으로 선정하며 “기억 속으로 사라진 진실, 알 수 없는 미래의 두려움을 그린 한 편의 시”라고 설명했다. 일본 연출가 히라타 오리자의 연극 ‘그 숲의 심연’(19∼20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는 한국 프랑스 일본의 배우들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아프리카 마다가스카르 소재 연구실에서 영장류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을 통해 다문화, 공생이라는 주제를 다룬다. 일본의 수출 규제를 비롯해 8월 일본 아이치트리엔날레에서 벌어진 소녀상 전시 중단으로 한일 관계가 급격히 경색되면서 주최 측은 작품을 초청하는 과정에서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한국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했다. 김도일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예술은 그 자체로 존중받아야 한다. 양국 간에 정치 경제로 인한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이를 문화적 현상으로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내 연극 작품도 눈여겨볼 만하다. 극공작소 마방진의 ‘낙타상자’(17∼20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는 인력거꾼의 비참한 인생을 담은 작품이다. 1937년 발표된 중국 장편소설을 각색했다. 극단 떼아뜨르 봄날의 ‘해피투게더’는 1980년대 부산 형제복지원에서 일어난 일을 적나라하고 속도감 있게 그렸다. 극단 서울괴담의 ‘보이지 않는 도시’는 평생 가꿔온 집을 재개발로 잃게 된 노인이 철거에 맞서는 이야기를 통해 추억을 담은 공간인 집의 의미와 도시 개발을 돌아보게 한다. 무용 작품도 탄탄하다.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차세대 안무가 인발 핀토는 신작 ‘푸가’(12∼13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로 한국을 찾는다. 다양한 색상과 감각, 소리를 통해 잃어버린 과거와 세계, 내면의 소리를 찾아가는 작품이다. 유럽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핀란드 출신 무용가 수산나 레이노넨의 ‘네스티: 여성, 억압과 해방’(12∼13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은 여성의 몸을 주제로 여성에게 가해지는 일상적 잔인함을 폭로한다. 왕 라미레즈 컴퍼니의 ‘보더라인: 경계에서’(18∼19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는 프랑스와 독일 안무가의 합작품으로 애크러배틱한 움직임을 기반으로 중력을 거스르는 이색적인 무대를 선보인다. 최상철 SPAF 무용 프로그래머는 “국가 간의 분쟁, 이민자로서 정체성, 뜨거운 이슈인 여성의 몸 등 지금 이 시대에 대해 무용가들이 어떤 고민을 하는지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 처음 선보였던 개막작 ‘카프카’는 러시아 고골센터의 작품으로, 카프카의 글에 나타난 부조리와 20세기의 광기를 연결지었다. 시대와 지역을 막론하고 공연자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을 연구하는 ‘연극인류학’의 창시자인 에우제니오 바르바 연출가와 그가 이끄는 오딘극단의 ‘크로닉 라이프’도 5일까지 무대에 오르며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2031년 제3차 세계대전 이후를 상상해 전쟁, 실업, 경제적 위기를 그렸다. 한국을 찾은 에우제니오 바르바 연출가는 “불확실성과 모든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체험이 이해 불가능한 것들을 수용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정치권의 망국적 포퓰리즘.” “안보·복지 포퓰리즘 심각.” 일상에서 접하는 기사, 콘텐츠에서 포퓰리즘은 더 이상 낯선 단어가 아니다. ‘대중영합주의’ ‘인기몰이 정치’라는 부정적 어감을 내포한 이 말은 좌우 진영논리에 상관없이 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최근 많은 국가에서는 ‘포퓰리즘 정당’으로 일컬어지는 정치 세력이 국민의 지지를 받아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다. 일부 정치 후진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저자는 2016년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파의 승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도 포퓰리즘의 일환으로 봤다. 도미노처럼 프랑스, 네덜란드, 독일에서도 벌어진 포퓰리즘 정당의 세 확장은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 선거를 통해 이뤄졌다. 저자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포퓰리즘은 진정 민주주의의 적인가? 개혁의 희망인가?” 일본 지바대 법정경학부 교수로 유럽정치사, 비교정치학을 전공한 저자는 민주주의와 포퓰리즘의 양면적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책은 포퓰리즘의 개념, 역사, 현재를 집약한 정치 학술서에 가깝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포퓰리즘의 양태를 다채롭게 소개해 기사처럼 쉽게 읽히는 편이다. 일단 포퓰리즘의 정의부터 짚고 시작한다. 그는 포퓰리즘을 크게 “고정적인 지지 기반을 넘어 폭넓게 국민에게 직접 호소하는 정치 스타일” 또는 “국민의 입장에서 기성 정치나 엘리트를 비판하는 정치 운동”으로 나눠 설명했다. 책에서 그는 포퓰리즘을 ‘엘리트와 국민’의 비교를 중심으로 하는 후자의 관점을 택했다. 많은 포퓰리즘 운동이 기성 정당과 엘리트층에 대항하는 ‘아래’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다룬 주 무대는 포퓰리즘이 빠르게 진행 중인 영국, 네덜란드, 프랑스, 스위스 등 유럽이다. 중남미, 미국의 이야기도 덧붙였다. 풍부한 사례들은 ‘아직까지는’ 포퓰리즘이 미약한, 그러나 곧 힘을 얻게 될 수도 있는 한국과 일본을 향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에서 기성 정당의 약체화, 외국인 노동자 증가로 인한 배외주의 확대, 무당파의 증가는 우파 포퓰리즘에 대한 지지를 확산시킬 수 있다. 사회 격차의 확대는 좌파 포퓰리즘이 가까운 장래에 호소력을 갖게 만들지 모른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식스팩으로 무장한 ‘상남자’ 백조들이 나타났다. 우아한 발레복 상의는 벗어던지고 그 자리를 섹시한 근육으로 채운 ‘백조의 호수’가 9년 만에 한국을 찾는다. 9일 내한공연을 앞두고 e메일로 인터뷰한 안무가 매슈 본(59·사진)은 “24년 된 작품이지만 새 게스트와 해석을 더했고, 수백 가지 디테일을 계속 손보며 신선한 변화를 주고 있다”고 했다. 매슈 본 버전의 ‘백조의 호수’는 무용계에서 신(新)고전 반열에 올랐다. 유약한 왕자와 그가 갖지 못한 강인함, 아름다움, 자유를 가진 환상 속 존재인 백조 사이의 슬픈 드라마를 담았다. 배경은 현대 영국 왕실로 옮겼다. 영화 ‘빌리 엘리어트’에서 주인공이 비상하는 공연 장면이 삽입되며 작품은 더욱 유명해졌다. 그가 안무를 짜면서 꾀한 가장 큰 변화는 ‘남성 백조’였다. 그는 “남성 백조는 기억 속 ‘백조의 호수’ 이미지를 완전히 지워버릴 만큼 상징적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1995년 영국에서 상의를 벗은 남자 무용수가 무대를 뛰어다닐 때는 현실의 벽을 체감해야 했다. 통념을 깼다는 호평보다 ‘게이들의 백조’라는 비웃음이 더 컸다. 남성 백조와 왕자의 2인무를 견디지 못해 퇴장하는 관객도 많았다. 그럼에도 그는 “이미 비슷비슷한 백조의 호수가 너무 많다”며 신념을 꺾지 않았다. ‘백조의 호수=발레’라는 고정관념도 깨야 했다. 그는 “뮤지컬, 영화, 탭댄스 등 이야기 전달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표현법은 뭐든 적용했다”고 했다. 백조 영상을 보면서 치밀하게 연구했다. “막상 헤엄치는 생명체를 보니 생각보다 우아하지 않아 이를 아름답게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며 웃었다. 작품이 단순히 무용이 아니라 ‘댄스 뮤지컬(Dance Musical)’로 불리는 이유다. 최근 미국의 한 앵커가 “영국 조지 왕자가 발레 수업을 좋아하는데 얼마나 오래갈지 보자”고 발언한 데 대해 300여 명의 남자 무용수들은 항의 차원에서 야외 발레 군무를 펼쳤다. ‘편견을 깼다’던 그의 도전은 현재 진행형이다. “저는 춤을 통한 도전을 좋아합니다. 우리가 이 작품을 계속하는 이유죠.” 9∼20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6만∼14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400년 동안 사랑을 기다리며 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드라큘라’. 이 배역을 다시 맡기 위해 13년을 기다린 ‘레전드’ 신성우(51)가 무대로 돌아왔다. 서울 서초구 한전아트센터에서 최근 뮤지컬 ‘드라큘라’ 연습 중 만난 신성우는 “2006년 무대를 끝으로 제게 미완으로 남아있던 드라큘라의 비극적 사랑, 인간의 숙명, 처절한 피 맛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했다. 신성우는 국내 뮤지컬계 ‘최장수 드라큘라’다. 1998년 국내 초연을 시작으로 연이어 무대에 올라 이번이 네 번째 도전이다. 초연 후 20년이 흘렀지만 다시 흡혈귀 변신을 택한 데에는 1초의 망설임도 없었다. “가수였던 제게 처음으로 연기자를 꿈꾸게 해준 작품입니다. 마지막 공연이 ‘흡혈귀’라는 선입견에만 갇혀 늘 아쉬움이 있었죠.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언젠가 꼭 다시 하고 싶었습니다.” 작품은 브람 스토커의 동명 소설(1897년)을 각색한 체코 뮤지컬이 원작이다. 흡혈귀의 운명을 거부하고 사랑을 택했다는 이유로 저주에 고통받는 드라큘라 백작을 그렸다. 전 세계에서 500만 명이 관람한 고전이다. 올해 초 뮤지컬 ‘잭 더 리퍼’에서 연출가로 데뷔한 그는 “드라큘라가 왜 사람을 죽이고 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는지 작품 연출가, 음악 감독과 논의해 연기하는 데 집중했다”며 “캐릭터를 관객 친화적으로 그렸다”고 했다. 솔로 곡도 이번에 새로 추가됐다. 수도원 사제들이 부르던 넘버는 드라큘라와 대립하는 인물 ‘반 헬싱’의 야욕을 드러내는 곡으로 바뀌었다. 그는 “근본부터 달라진 드라큘라가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는 동명의 뮤지컬 ‘드라큘라’와의 차별성도 강조했다. “다른 ‘드라큘라’가 팝에 기반한 브로드웨이 감성을 보여준다면 저희는 동유럽의 무겁고 클래식한 감성을 강조한 ‘진지한 드라큘라’를 작품에 녹였습니다.” 신성우를 논할 때 ‘로커’라는 정체성도 빼놓을 수 없다. 팬들이 그의 가수 복귀를 고대한다는 걸 그 역시 잘 알고 있다. ‘슬슬 시동을 걸 때가 됐다’는 마음가짐을 내비쳤다. “며칠 전 무작위로 노래를 듣는데 자꾸 제 옛날 노래들이 재생되면서 저도 모르게 푹 빠져들었어요. ‘할 때가 된 것 같다’는 느낌이 왔죠. 제작자는 ‘준비됐으니 몸만 오면 된다’더라고요. 하하.” 다만 무대에서 드라큘라의 처절함을 토해낸 뒤에야 그의 록을 다시 볼 수 있을 듯하다. 록에는 다른 종류의 감성충전 시간이 필요하단다. “록 발성 덕분에 뮤지컬 무대에서 강력한 캐릭터를 맡아왔지만 음악인이 되려면 감성이 ‘찰랑찰랑’ 차오를 때까지 따로 시간이 필요해요. 먼저 드라큘라의 연기를 맛보시고 나면 로커 신성우도 새롭게 보일 겁니다.” 5일∼12월 1일. 서울 한전아트센터. 6만∼14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우리도 독서율 급락에 고심하고 있습니다. 해답은 독서 조기교육밖에 없어요.” 85.7%. 2015년 스웨덴의 독서율(만 15세 이상 국민 중 1년에 책을 1권 이상 읽는 비율)은 세계 1위다. 같은 해 8.4%에 그친 한국에 비하면 10배를 웃돈다. 그런데도 스웨덴 정부는 독서율 급락을 막는 것을 주요 과제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2013년 90%였던 독서율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서 26일(현지 시간) 만난 아만다 린드 스웨덴 문화부 장관(39·사진)은 “유튜브, 인터넷 때문에 독서율이 떨어지는 건 세계적 흐름이라 막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는 올 1월 문화부 장관에 취임했다. 그의 말에서 스웨덴 정부가 그간 이룬 독서정책에 대한 자신감보다는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한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졌다. “독서장려 예산에만 매년 수백만 달러를 투입해요. 도서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책에서 멀어진 젊은층을 끌어들여야 하고…. 계속 고민해야죠.” 스웨덴 정부가 내놓은 정책의 핵심은 독서교육의 시작을 앞당기는 것이다. 그는 “입학 전의 프리스쿨은 물론이고 보건소에서 아기와 부모에게 책을 보급하고 있다”며 “가정에서도 부모가 책과 멀어지지 않도록 해야 독서 조기교육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스웨덴 정부가 독서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이유는 뭘까. 그는 “독서가 곧 민주주의의 실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독서는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실천할 수 있는 배움의 방법이자 자아실현의 수단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도서전에 주빈국으로 참가한 한국의 문학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번역의 어려움으로 그간 한국의 작품이 스웨덴에 많이 소개되지 않았어요. 독특한 매력을 가진 한국 문학이 스웨덴 독자들에게 소중한 보물이자 신선한 자극이 되길 바랍니다.”예테보리=김기윤 기자 pep@donga.com}

‘K-문학’이 스웨덴에서 날갯짓을 시작했다. 26일부터 29일까지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열린 ‘예테보리 국제도서전’에서 한국 문학은 “독특하면서 깊은 매력이 있다”는 평을 받으며 독서율 1위 국가에 신선한 자극을 불어넣었다. 북유럽권 최대 문화축제로 꼽히는 이번 도서전에 한국은 ‘한-스웨덴 수교 60주년’을 맞아 주빈국으로 초청받았다. 한강 김언수 현기영 신용목 등 9명의 작가는 ‘인간과 인간성’을 주제로 현지 독자와 대화하며 한국 문학의 매력을 알렸다. 28일(현지 시간) 작가와의 대담에 참석한 이들은 “한국 문학에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깊은 여운이 있는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남북 분단, 민주화운동과 ‘미투 운동’에 대한 질문도 이어졌다. 김행숙 시인은 “스웨덴 사람들이 문학 작품 속 낯선 역사적 맥락을 경청하고 이해하려는 태도가 인상적이다”고 했다. 한국관에 전시된 도서 가운데 77종은 사회역사적 트라우마, 국가폭력, 난민과 휴머니즘, 기술문명과 포스트휴먼 등 소주제와 관련된 책으로 구성됐다. 박광수 작가의 미디어아트와 헤드셋을 이용한 특별전시는 관객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한강 작가의 인기는 뜨거웠다. 그가 향하는 곳에는 항상 긴 줄이 이어졌다. 한국 문학의 불모지였던 이곳에서 2017년 출간한 ‘채식주의자’ 스웨덴어 번역본은 K-문학의 싹을 틔운 작품이다. 오디오북, 전자책을 포함해 약 2만5000부가 팔렸다. 그에 대한 관심은 약 2주 전 현지에 출간된 ‘흰’으로도 이어졌다. ‘흰’은 소설, 시, 에세이의 성격을 복합적으로 지닌 작품이다. “지금까지 작품 중 가장 자전적인 아픔을 이야기했다”는 그의 설명에 진지하게 메모하는 관람객도 많았다. 한 관람객은 “정말 아름답게 책을 쓴 작가를 만나 큰 영광이다”고 말했다. ‘스릴러 강국’ 스웨덴에서 김언수 작가의 범죄스릴러 ‘설계자들’도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도서전 주최 측이 현지 인기를 감안해 김 작가의 참석을 별도로 요청했을 정도다. 김 작가는 “한국의 국력과 문화의 위상이 올라가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진 데 따른 결과 같다”며 몸을 낮췄다. ‘설계자들’의 스웨덴어판 편집자 한스올로브 외베리는 “하드보일드한 북유럽 문학과 다르게 한국 스릴러는 서정성과 짜임새를 고루 갖춘 ‘이상한 매력’이 있다”고 설명했다. ‘말괄량이 삐삐’가 탄생한 그림책 강국 스웨덴에서 한국 그림책의 약진도 눈에 띄었다. 이수지 작가는 “작품이 아직 스웨덴어로 출간되지 않았는데도 작가를 먼저 알아볼 정도로 제법 큰 팬덤이 있어 놀랐다. 북유럽에는 ‘그림책=아동책’이라는 고정관념이 없어 성인도 독특한 서사와 그림으로 구성된 한국 그림책을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몇 권이라도 팔리긴 할까’라고 걱정하며 이명애 작가가 한국에서 가져온 그림책 ‘플라스틱 섬’은 수십 권이 모두 동났다. 현지 출판 관계자들도 작가들을 찾아와 북유럽권 출간을 논의했다. 지금까지 스웨덴에 번역된 한국 문학은 33종에 불과하지만 앞으로 인기는 더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김사인 한국문학번역원장은 “과거 역사적 특수성에 갇혀 있던 한국 작품이 점차 세계적 수준의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다. 역동성과 깊은 철학을 갖춘 한국 문학이 북유럽에도 바람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예테보리=김기윤 기자 pep@donga.com}

“20세기는 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에 많은 상처를 남긴 시간이었습니다.” 한강 작가(49)가 27일(현지 시간) 스웨덴 ‘예테보리 국제도서전’ 세미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세미나는 ‘사회역사적 트라우마’를 주제로 한강 작가와 진은영 시인(49)이 스웨덴 저널리스트, 시인과 대담을 진행했다. 한 작가의 소설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흰’은 스웨덴에서 출간돼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한 작가는 “6·25전쟁, 5·18민주화운동, 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바르샤바에 가해진 폭격까지…. 가깝게는 2014년 봄 한국에서 (세월호가 침몰한) 비극적 사건이 있었는데 애도조차 마음대로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진 시인도 “세월호 사건으로 상처를 겪은 청소년, 유가족을 위한 시를 집필하는 과정에는 용기가 필요했다”고 했다. 이튿날 진행된 한 작가의 개인 세미나에서도 375석의 유료 좌석이 가득 찼다. 50여 명은 끝내 입장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가 말을 시작할 때면 객석은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흰’을 낭독하는 시간에 청중은 ‘낭독을 더 원한다’는 취지로 “Yes! Yes!”라고 외치며 그의 음성을 한마디라도 더 귀에 담길 원했다. 스웨덴 진행자가 ‘흰’과 관련해 “고통, 상처가 한강 작가의 시작인 것 같다”고 하자 한 작가는 “저는 그냥 썼을 뿐인데 만약 책에서 고통이 느껴졌다면 제가 느끼는 삶의 핵심에 고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답했다. 이어 ‘흰’에 수록된 글 65편 가운데 몇 편을 더 낭독하자 청중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스웨덴에서 출간된 한 작가의 책 3권의 편집을 맡은 니나 아이뎀 씨는 “한강 작가의 작품은 어떤 책도 따라가지 못하는 ‘오리지널’이다. 그의 다른 저서와 다른 한국 작가의 작품도 출간하고 싶다”고 말했다.예테보리=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콧대 높은 독일 발레 무용수들이 한국 춤을 춘다? 독일 올덴부르크 국립극장 산하 발레단이 한국 전통춤에 기반한 창작무용 ‘달에 홀린 피에로’(Pierrot Lunaire)를 2019∼2020 시즌 정기공연으로 선보인다. 안무를 맡은 이혜경 안무가(45·사진)는 2015년 오스트리아에서 무용극 ‘결혼’의 안무를 지도하며 한국 무용가 최초로 유럽 국립극장의 시즌 공연을 맡았다. 10월 12일 첫 공연을 앞두고 독일 현지에서 안무를 지도 중인 이 안무가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그는 “한국 춤을 알릴 수 있어 감격스럽다. 당당하게 실력으로 박수받겠다”고 했다. 그가 구상한 ‘달에 홀린 피에로’는 벨기에 시인 알베르 지로의 작품 ‘달에 취하여’를 한국적으로 해석한 작품이다. 그는 “지친 현대인을 상징하는 피에로에 한국적 움직임과 미장센을 입혔다”며 “무용수들은 감태나무 지팡이를 짚고 등장하는 피에로의 모습을 특히 좋아한다”고 했다. 한국 무용이 해외 축제, 투어에서 단기 공연을 한 적은 많지만 유럽 내 국립극장이 한국 춤 안무가를 공식 초청해 ‘간판 창작물’을 선보이는 건 파격이자 이례적인 일이다. 공연은 2020년 5월까지 총 15회가 예정돼 있다. 무용수들이 특히 어려워하는 건 날숨 호흡법이다. 한국 춤은 호흡을 뱉어 ‘비워진 상태’를 최고의 멋으로 여기는 반면, 힘과 기술을 강조하는 유럽의 무용은 상대적으로 날숨 운용에 서툴다. 이 안무가는 “숨을 내뱉고 근육이 이완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유독 낯설어해 이를 중점적으로 지도한다. 두 달 가까이 매일 3시간씩 가르쳤더니 무용수들이 이제 좀 춤을 이해하는 것 같다”며 웃었다. 그를 초청한 발레단장 앙투안 쥘리도 “무용수들이 한국 춤의 질감, 철학, 호흡법을 통해 움직임의 어법을 확장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유럽의 국립극장에 한국 춤 공연을 올리는 게 믿기지 않지만 부담감도 만만치 않다. 그는 “정말 소중한 기회다. 이번에 한국 춤이 인정받아야 지속적으로 우리 춤을 알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콧대 높은 관객도 걱정이다. 1833년 개관한 독일 올덴부르크 국립극장은 중소 도시에 있지만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이는 곳으로 유명하다. 무용 매거진 ‘탄츠(Tanz)’는 올덴부르크 발레단을 ‘올해의 5대 유럽무용단’으로 선정할 만큼 무용수의 실력도 출중하다. “매일 각오를 다질 수밖에 없다”는 말에서 그가 느끼는 무게감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의 목표는 원대하면서 명료하다. ‘한국의 아크람 칸’이 되는 것이다. “인도 전통춤을 현대화해 세계적인 안무가가 된 아크람 칸이 간 길을 걷고 싶어요. 한국 전통춤이라고 해서 이국적 색채만 강조하거나 보여주기식 안무에 그치지 않도록 해야겠지요. 모든 이가 공감할 수 있는 한국 춤을 만들 겁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뻔해진 북핵과 분단 문제, 이제 새롭게 볼 때도 되지 않았나요?” 영화 ‘강철비’ ‘변호인’ 등 화제작을 낳은 양우석 감독(50)이 30일부터 연재하는 다음웹툰 ‘정상회담: 스틸레인3’를 통해 ‘스틸레인’ 유니버스를 확장한다. 전작에서 핵전쟁 시나리오가 포함됐다면, 이번에는 핵잠수함에 갇힌 남북미 정상의 내밀한 대화와 상상력이 동원됐다. 그의 세계관에서 동북아는 다시금 요동친다. 양 감독을 21일 서울 광화문 동아일보사 사옥에서 만났다. 양 감독은 “독자들이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분단이라는 실체를 새롭게 바라봤으면 한다”고 했다. 그는 8월 말부터 같은 시나리오에 기반한 영화 ‘정상회담’을 촬영하며 웹툰과 영화 제작을 병행 중이다. 작화는 김태건 작가가 맡았다. 장르는 달라도 두 작품은 모두 ‘분단의 키치화’를 경계한다. 그는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분단은 일상이 됐어요. 특히 젊은층이 북한이나 북핵 문제를 바라보는 ‘키치화’(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난)된 시선도 깰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가 그린 세계에서 한반도에 드리운 전쟁의 기운은 오롯이 남북한만의 것은 아니다. 오히려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이 짜놓은 판에서 “한반도 문제는 종속변수”가 된다. 양 감독이 분단 문제에 천착한 건 어렸을 적 겪은 트라우마 때문이다. 1993년 1차 북핵 위기를 지켜본 그는 “전쟁이 실제로 날 뻔했고, 언제든 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순간을 평생 못 잊는다”고 했다. 이때부터 한반도 정세에 호기심이 생긴 그는 ‘닥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섭렵했다. 이때 체득한 지식은 요즘도 시나리오 창작의 좋은 원천이 된다. “한 사건이 발생하면 어떤 일이 뒤따라 나올지 시나리오별로 전부 시뮬레이션을 돌려봐요. 그럴듯한 시나리오가 정해지면 그 위에 상상력이 발붙일 만한 적당한 곳을 찾습니다.” 양 감독은 영화 이전 ‘브이’ ‘스틸레인’ 등의 웹툰 스토리 작가로 명성을 날렸다. 그는 “출판만화가 초토화되고 웹툰 시장은 동호회 수준일 때 취미 삼아 웹툰 작가로 발을 들였다. 제가 구상한 세계를 표현하는 게 너무 재밌어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고 했다. 취미 수준이었다지만 김정일 사망을 비롯해 그가 만화에서 그린 정세는 현실에서도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예측가’라는 별명도 생겼다. 인터뷰 당일도 그는 “트럼프의 미국 내 상황이 핵심인데 조만간 남북, 북-미 회담이 실현될 것으로 본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드러냈다. 양 감독은 앞으로도 영화와 웹툰을 모두 놓지 않을 참이다. “내수 한계로 결국은 영화든 웹툰이든 수출형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그는 한국형 무협물의 웹툰, 영화화를 구상 중이다. 다만 스트레스가 덜한 웹툰에 조금 더 마음이 간다고 했다. “웹툰 작업은 부담 없이 내 세상을 그릴 수 있잖아요. 반면 영화에서 남의 큰돈을 투자받은 걸 생각하면…. 하하. 다 열심히 해야죠.”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이 책은 한마디로 ‘책이라는 종의 기원’이라 할 만하다. 책 이전의 책부터 “종이책의 시대는 끝났다”는 사망선고가 내려진 오늘날에도 이어지는 책의 변천을 담았다. 인간이 만든 저급한 종이가 인간다움을 만드는 최고의 발명품이 되기까지 진화 과정이 흥미진진하다. ‘파이낸셜 타임스’ ‘허핑턴 포스트’ 등에 기호학, 문장부호에 관한 글을 쓰던 저자는 책의 하드웨어에 집중했다. 종이는 활자, 인쇄, 출판, 제본 기술과 만나며 훌륭한 기록물로 거듭났다. 종이책은 “과학과 기술의 최전선이 빚어낸 산물”이 됐다. 책의 역사는 약 2000년으로 잡을 수 있다. 오늘날 책의 주재료인 종이가 만들어지기까지 고대 이집트 파피루스와 양피지를 거쳤다. 문자의 출현과 인쇄술의 발명으로 지식 생산의 토대가 구축됐다. 디자인·삽화 기술까지 가미되면서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책의 외형적 이미지가 완성됐다. 갖춰진 외형에 영혼을 꽉꽉 채워 넣은 것도 인간의 몫이었다. 필경사, 수도사, 발명가, 인쇄 장인 등 ‘출판인’은 매번 수없는 고민 끝에 책을 만들고 변천을 이끌었다. 이 때문에 책의 역사를 훑어보는 건 곧 인간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이기도 하다. 책은 긴 시간 속에서 인간에게 많이 읽히기 위한 나름의 해답을 도출했다. 저자는 “책이 직사각형인 이유는 소, 염소, 양의 가죽이 직사각형이며 다루기 편한 적정 크기로 만든 이유는 오늘날 사람들이 이 크기의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서술했다. 스스로 책이라는 물건의 외형적 진화를 담고 있는 책인지라 책의 질감, 디자인도 특별하다. ‘애서가’라면 소장 욕심이 들 정도다. 표지에 판지를 그대로 노출했으며, 부제는 검정 실크스크린으로 인쇄했다. 마치 건물 설계도를 보듯 표지에 ‘책머리’ ‘표지보강재’ ‘책등’ ‘출판사 로고’ 등 명칭도 충실히 적었다. 풍성한 시각자료도 페이지를 술술 넘기게 만든다. 책 후반부에 실린 ‘콜로폰(Colophon)’도 매력 포인트다. 저자는 “책을 자연스럽게 마무리하려면 보통은 여기에 에필로그를 쓴다. … 그러나 인쇄술이 처음 선을 보인 초창기에는 독자가 마지막으로 보는 것이 콜로폰이었다”는 설명을 붙였다. 책 뒤편 한쪽 자리 면을 뜻하는 콜로폰은 과거 인쇄업자가 회사 이름, 회사 문장(紋章), 발행 장소 등을 촘촘히 기록한 페이지다. “책은 산 성분이 없는 중성지에 인쇄, 636×900밀리미터 규격의 종이, 1제곱미터당 90그램의 무게, 경기 고양시 인쇄소에서 생산, SM신신명조체, 10.3포인트 … 포켓북 스타일의 8절판으로 누구나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가격을 책정했다.” 구구절절 이어지는 ‘책의 책’에 관한 설명은 요새 말로 ‘TMI(Too Much Information·굳이 알지 않아도 되는 정보)’에 가까우나,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한다. 갓 태어난 아이의 출생기록 차트를 보듯 뜨거운 생명력이 느껴진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돈이나 처먹어라(Let Them Eat Money)!” 인류의 미래에 대한 연극을 만들기 위해 ‘도이체스 테아터(DT)’와 훔볼트 포럼이 개최한 워크숍. 참가자들은 ‘인류의 미래 식량’을 주제로 토론하며 저마다 돈, 식량무역, 경제위기에 대한 생각을 말했다. 정작 인류가 씹고 맛보며 영양분을 섭취하는 식량의 본질은 잊혀진 지 오래. 이에 한 참가자가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돈만 얘기하면 다 해결되나요? 그럼 당신들은 차라리 돈이나 드세요!” 작품 이름이자 극 중 저항단체의 이름이 된 ‘렛 뎀 잇 머니’는 이렇게 탄생했다. 전문가, 시민의 토론을 거쳐 극본을 완성한 연극 ‘렛 뎀 잇 머니’가 한국을 찾았다. 유럽 최고의 제작극장으로 꼽히는 도이체스 테아터와 훔볼트 포럼이 2년에 걸쳐 만들었다. 작품을 연출한 안드레스 바이엘(60)은 1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준비 과정은 토론의 연속이었다. 세대별, 계층별로 떠올린 미래는 달라도 위협에 맞서 인류의 존재론적 고민이 필요하다는 점에는 모두 공감했다”고 밝혔다. 작품이 그린 미래는 2028년까지다. 그럴싸하면서도 ‘에이, 설마’ 하는 의구심도 들게 한다. 2020년 이방카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캘리포니아의 독립 선언. 2022년 가뭄과 내전으로 이란 난민 100만 명 발생, 유럽해역 인공섬 건설 등 모든 아이디어는 토론 중 나왔다. 극은 미래를 상상하는 재미를 주면서도 현재 우리 모습을 돌아보게 하는 묵직한 화두를 투척한다. 디스토피아만 펼쳐지는 건 아니다. 바이엘은 “앞으로 나아갈 기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토피아적 시각도 있다. 적어도 인류가 ‘충돌시험용 마네킹’처럼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피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지구상 모든 문제를 열거하는 듯한 고루함은 피했다. 무대에는 인간, 생명의 본질이자 황폐함, 파괴를 동시에 의미하는 소금을 깔았다. 미래 사회를 그린 영화처럼 배우들은 와이어에 매달려 공중 연기를 펼치기도 한다. 뒤편 스크린에 배우의 라이브 방송이 중계되면서 이를 지켜보는 시민들이 올리는 댓글도 비추는 등 현대적 장치가 다양하게 활용된다. 극은 무대 밖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해외 공연을 마치는 2020, 2021년 중 전문가들이 다시 토론회에서 뭉친다. “그래서 우린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죠(Which Future)?” 이들이 마주할 질문이다. 20, 21일. 서울 LG아트센터. 4만∼8만 원.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끝없는 연구와 훈련 끝에 탄생한 프랑스 표 웃음이 무대에 나타났다.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 중인 ‘스카팽’은 ‘프랑스 연극은 노잼’이라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깨뜨린다. 극작가 몰리에르의 희곡 ‘스카팽의 간계’를 각색한 작품으로 임도완 연출(59)이 현대적 매력을 가미했다. 객석의 웃음 타율도 높다. 최근 서울 용산구 국립극단에서 만난 임 연출은 “프랑스 코미디에 녹아있는 서브텍스트(숨겨진 의미나 개념)가 어렵고 한국 정서와 맞지 않는다는 편견이 있다. 관객 맞춤형 각색과 배우들의 ‘훈련된 웃음’을 통해 편견을 깰 것”이라고 했다. 원작은 귀족 부모가 아들에게 정략결혼을 강요하자, 하인 스카팽이 꾀를 내 아들이 사랑하는 여성과 결혼하게 된다는 해피엔딩이다. 출생의 비밀이 등장하는 전형적인 통속극이다. 임 연출의 ‘스카팽’은 원작의 큰 줄거리를 따르되 귀족을 회장님으로 대체하고 난리가 났을 때 ‘태풍 링링이 온 것 같다’고 하는 등 대사 표현을 현대화했다. 또 원작에 없는 작가 몰리에르가 하나의 배역으로 직접 무대에 올라 극을 이끌도록 했다. 스카팽 배역을 맡은 이중현 배우에 대해서는 “과도하게 까불대는 원작 속 캐릭터 대신 댄디한 연기를 주문했더니 너무 어렵다며 고통스러워했다”면서 웃었다. 그는 “어떤 대상을 풍자하려면 세세한 부분에서 관객의 간지러운 곳까지 치밀하게 긁는 맛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임 연출에게는 배우의 신체가 중요한 연극 언어다. 신체극·마임의 대가로 불리는 그는 “시적인 신체를 통해야만 연극을 시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다”고 했다. 다소 난해한 그의 말은 배우의 동작에도 함축과 상징이 십분 담겨야 한다는 뜻. 그의 극에선 배우의 동작을 곱씹는 맛이 있다. 이번에도 풍자의 대상이 되는 ‘회장님’은 늘 뒤뚱대면서 걷고, 우스꽝스러운 동작을 반복한다. 무대 위에서 배우들이 소품을 던지고 받을 때도 정확한 타이밍과 각도를 강조했다. 수없이 합을 맞추고 훈련된 동작이 잔웃음을 보장한다는 것. “1988년 극단 ‘사다리’를 만들고, ‘사다리움직임연구소’에서 마임을 계속하면서도 연기에 대한 갈증을 느껴 무대 위 움직임을 더 공부하고 싶었죠. 모든 걸 내려놓고 1993년 프랑스 자크 르코크 국제연극마임학교로 유학을 떠났어요. 움직임, 가면, 오브제만을 전문적으로 배우며 움직임이 극의 구조, 텍스트, 색깔까지 표현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는 관객에게 모든 걸 던져주고 설명하는 연기를 지양한다. 서울예술대 공연학부 교수인 그는 제자들에게도 이를 거듭 강조한다. “대사와 표정으로 ‘나 화났다’고 연기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죠. 진정한 연기는 훈련을 통해 나오되 절대 설명하려고 하면 안 돼요. 배우 알 파치노가 분노를 표현하려고 인상을 찌푸리는 것을 본 적 있나요?” 29일까지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 2만∼5만 원. 8세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왕이 돌아왔다. 왕좌를 내려놓은 적은 없으나, 2년 만에 새로운 ‘왕관’을 들고 스스로 시험대에 올랐다. 웹툰계 시조새이자 역사인 조석 작가(36)가 최근 네이버웹툰 신작 ‘행성인간’을 선보였다. 그는 “5, 6년 전부터 상상만 하다 ‘설마 진짜 그리겠어’라고 생각하던 내용이 정말 웹툰으로 나와 버렸다”며 웃었다.》 조 작가가 새 작품을 내놓은 건 ‘조의 영역’ 이후 2년 만이다. SF스릴러 장르로 학교폭력 피해자인 주인공 ‘정황지’와 그의 몸속에 태어나 그를 ‘행성’으로 부르는 미지의 존재가 공존한다는 줄거리다. 벌써부터 댓글에는 “신작 들고 와줘서 눈물나게 고맙고 사랑한다”는 고백이 줄을 잇고 있다.“식음 전폐해도 그리고 싶은 거 다 그릴 것”‘행성인간’ 첫 회분을 공개한 뒤 10일 서울 용산구 작업실에서 만난 조 작가는 “신작은 소년만화의 문법을 따르되 최소 2, 3년 연재를 목표로 한 장편이 될 것”이라고 했다. 2006년 9월부터 연재하고 있는 최장수 인기 웹툰 ‘마음의 소리’와 병행 연재한다. 요새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도대체 잠은 언제 자느냐’다. 매주 작품 두 편의 콘티와 작화까지 홀로 완성하는데, 전문가에게도 너무나 힘겨운 극한 작업이다. 심지어 ‘어시’(보조작가)도 따로 두지 않는다. “한 컷마다 수제쿠키를 굽듯 장인정신을 담고 싶다”는 고집 때문. 그 대신 막대한 작업량을 감내할 수밖에 없다. “매일 2, 3시간밖에 못 자요. 그런데 메시도 경기장에서 매주 실력을 증명하잖아요. 고 정주영 회장은 심지어 저보다 더 많이 주무시면서 ‘현대’를 만드셨더라고요. 고작 일주일에 만화 두 편 그리는 저는 식음을 전폐하고 일해야죠.” 이번 작품은 ‘마음의 소리’와는 판이하다. 초월적 존재, 인간관계라는 추상적 개념도 등장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이어진다. 그만큼 “하나부터 열까지 그리고 싶은 거 다 해봐야겠다”는 열망이 담겼다. 작품을 놓고 독자 해석도 다양하다. 조 작가는 “모든 디테일마다 상징적 의미를 넣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행성인간’의 제목 글씨체를 두고도 의견이 많은데, 그냥 장인어른이 쓰신 글씨에 내가 쓴 글자를 하나 추가했을 뿐”이라며 웃었다. 연재기간을 2년 이상으로 잡은 건 장편을 끌고 가며 작가로서 성장하고픈 욕심 때문이다. 에피소드 위주의 작품을 하다 보니 ‘장편작가는 내가 갖지 못한 뭔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부러움도 컸다고…. 유독 이번엔 “조석이 진짜 스토리 열심히 썼다”는 칭찬이 고프다. 그런 그를 움직이는 건 예나 지금이나 독자 댓글이다. “이전보다는 무뎌지고 쿨해졌다”지만 13년째 웹툰을 연재해도 떨리는 건 마찬가지다. “종종 스토리 전체를 예측하는 댓글을 보면 ‘와, 이 사람 뭐지’ 싶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제일 좋은 건 ‘ㅋㅋㅋㅋㅋ’처럼 그냥 재밌어하는 댓글입니다. 모든 스트레스가 사라져요.” 좋은 웹툰을 묻는 질문에 그는 최근 크게 한 방 먹은(?) 경험을 꺼냈다. “얼마 전 ‘어? 어?’ 하다가 다른 웹툰을 끝까지 봐버렸어요. ‘아차, 당했다’는 생각이 스쳤죠. 억지로 보는 순간 작품의 생명력은 끝이 나요. 어영부영하다 끝까지 보게 되는 웹툰을 만들고 싶어요.”“쳇바퀴 도는 삶이라도 작가인 게 행복해”“고료 드릴 테니 새로 출시하는 게임에 맞게 만화 한 편 그려주시겠어요?” 어느 날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작가들이 원고료도 없이 인터넷 게시판에 만화를 올리던 시절. 당시 조 작가는 “만화 그리면 돈 주겠다는 제안이 사기 같았다”며 웃었다. 이후에도 한 부동산사이트에서 홍보용 만화를 그려달라는 제안이 있었다. “그걸 받아들였으면 네이버 연재는 아마 못 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2006년 9월 네이버웹툰 ‘마음의 소리’가 탄생하기 전 한국 웹툰시장은 불모지에 가까웠다. 첫 연재 때도 독자는 많지 않았다. 하지만 건강상 휴재한 시기를 빼고는 지각이나 휴재 없이 13년째 한 작품을 밀고 나갔다. 이따금씩 ‘조의 영역’ ‘문유’ ‘조석축구만화’ 등을 병행했다. 그런 성실함이 그를 오늘날 한국 웹툰시장을 만들고 떠받치는 작가로 만든 게 아닐까. 그는 거창한 의미 대신 “그저 후배들을 안심시키고 싶다”고 했다. “저처럼 그림을 못 그려도 만화로 먹고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웹툰은 특정 장르가 인기면 쏠림현상이 심한데, 누구든 눈치 보지 않고 원하는 작품을 그려야죠. ‘타인은 지옥이다’가 인기라면 ‘타인은 지옥일까?’라는 개그만화를 해도 되는 풍토가 필요해요.” 매주 최장수 웹툰 신기록을 갈아 치우며 1200회를 앞둔 ‘마음의 소리’. 어느덧 연재기간도 큰 관심사다. “독자들이 그만하라 할 때까지”라고 공언한 적이 있지만, 최근 심경은 다소 복잡하다. 은연중에 ‘끝’이란 말도 나왔다. “나이 먹고 공감이라는 게 생기면서 까불며 살지 못하겠어요. 앞뒤 생각 안 했던 제가 이제 생각이란 걸 하니 만화가 이전 같지 않다고 느껴져요. 내장까지 긁어내 억지로 연장할 작품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슬슬 끝날 때가 오지 않을까요. 독자의 사랑이 증오로 바뀌는 것도 한순간이잖아요?” 물론 조 작가의 웹툰 사랑이 식은 건 절대 아니다. 오히려 육아를 하며 사랑이 더 활활 타올랐단다. “장기휴재 중 아이와 보낸 시간이 정말 소중했다”면서도 “펜을 놓고 육아 스트레스로 초라해진 자신을 볼 땐, 작가로 쳇바퀴 도는 삶을 살던 시간이 정말 큰 행복이란 걸 느꼈다”고 했다. 그런 조 작가는 요즘 조금 ‘가벼운’ 목표가 생겼다고 한다. “얼마 전 버스 뒷자리 학생들이 ‘걔 요즘 뭐하냐?’ ‘아프대’라고 안부를 묻는 대화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듣다 보니 그게 웹툰 주인공 얘기라는 걸 알고 엄청 웃겼어요. 일상에서 모두가 지인 얘기를 하듯, 제 웹툰 주인공을 걱정하는 날이 오면 좋겠어요.” 조석이라면 실현 가능해 보이긴 하나, 그리 쉽지만은 않은 도전일 터. 그때까진 계속 그의 마음의 소리를 듣고 싶다. 시원하게 낄낄대고 싶지만, 손으로 터지는 웃음을 콱 틀어막고서라도. 13년 곁을 지켜준 ‘반려’만화니까.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