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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국민이 묻는다-2019 국민과의 대화’에서 첫 질문자로 나선 고(故) 김민식 군의 부모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민식이법’ 통과를 눈물로 호소했다. 김 군은 9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다 차에 치여 숨졌다. 김 군의 어머니 박초희 씨는 이날 영정사진을 들고 “스쿨존에선 아이가 차량에 치여 사망하는 일이 없어야 하고 놀이공원 주차장에서도 차량이 미끄러져 사망하는 아이가 없어야 한다”며 “희생된 아이들 이름으로 법안을 만들었지만, 단 하나의 법도 통과 못 하고 국회 계류 중이다. 어린이가 안전한 나라가 이뤄지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어머니가 보는 가운데 사고가 나서 더욱 가슴이 무너졌을 것 같다. 국회와 협력해서 법안이 빠르게 통과되도록 하고, 스쿨존에서 아이들의 안전이 더 보호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답했다. 앞서 김 군의 부모는 18일 방송된 채널A 프로그램 ‘아이콘택트’에서 아픈 심경을 전하며 시청자들을 울렸다. 눈맞춤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아이콘택트’에서 박 씨는 “세상을 떠난 아들을 더 좋은 곳으로 보내주기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민식이는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런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며 눈물을 흘렸다. ‘민식이법’은 스쿨존 내 무인 과속 단속 장비와 횡단보도 신호기의 설치를 의무화하고 구역 내 교통사고 사망 발생 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제이 개츠비 씨가 보낸 파티 초대장이 도착했습니다. 드레스 코드는 정장입니다.” 이것은 연극인가, 파티인가. 공연장에 들어선 순간, 관객들은 개츠비가 주최한 미국 대저택 무도회 속 귀빈이 된다. 오직 초청받은 이에게만 허락된다는 초호화 파티. 관객들은 재즈 선율에 맞춰 소설 ‘위대한 개츠비’ 등장인물과 춤을 춘다. 배우와 4층짜리 극장 건물을 같이 돌아다니고 대화도 나눈다. 이쯤 되면 공연이라기보단 한바탕 축제에 가깝다. 작품의 시대적 배경에선 금주법을 시행하지만, 비밀(?)스럽게 가벼운 술도 허락된다. 전통적 관극(觀劇)에 반기를 든 연극 ‘위대한 개츠비’가 다음 달 21일 서울을 찾는다. 영어 제목이 원작의 ‘The Great Gatsby’가 아니라 ‘Immersive Gatsby’인 대목은 이 연극의 지향점을 분명히 한다. 14일 서울 중구 그레뱅뮤지엄에서 만난 알렉산더 라이트 총연출(45)은 “개츠비 파티에 초대받았는데 가만히 앉아만 있을 건가요?”라며 웃음 지었다. ‘위대한…’은 영국 역사상 ‘관객참여형(이머시브) 연극’ 가운데 가장 롱런하는 작품이다. 2015년 요크시에서 흥행에 성공한 뒤 현재 런던에서도 인기가 멈추지 않는다. 아일랜드와 벨기에, 호주 등에서 공연했으며, 한국 라이선스 공연은 아시아 국가 가운데 처음이다. 이 작품은 라이트가 고향 친구들과 어울리다 우연히 탄생했다. 영문학을 전공한 뒤 연출과 PD, 극작가, 작곡가로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술을 마시다 “지금 있는 3층짜리 펍이 곧 폐업할 것”이란 얘길 들었다. 어차피 문 닫을 곳이라면 뭐라도 해보자는 생각에 평소 도전하기 힘든 실험극을 떠올렸다. 술과 흥겨움이 넘치는 펍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극의 메인 테마는 고전 ‘위대한 개츠비’를 택했다. “곧 망할 가게라 건물을 공짜로 쓸 수 있었던 덕분이죠, 하하. 작업에 착수한 뒤 우리가 내린 결론은 객석에 가만히 앉아 박수만 치는 전통적인 공연 관람은 ‘진짜’ 소통하는 방식과는 큰 차이가 있다는 겁니다. 친구와 대화할 때 가만히 듣고만 있나요?” ‘위대한…’은 태생부터 정식 공연장에서 출발한 게 아닌 만큼, 한국에서도 4층짜리 박물관인 그레뱅뮤지엄을 택했다. 배우나 관객의 동선이 복잡해 공연장 특성에 따라 극을 전개하는 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공연장을 옮길 때마다 극은 완전히 새로운 작품이 됩니다. 서울 공연장은 4층 구조에 다양한 공간이 있어 활용도가 높아요. 통로는 원형 구조라 관객이 돌아다녀도 결국 한곳에 쉽게 모이는 특성이 있죠. 파티에 ‘딱’입니다.” 공간 구상과 활용에 도가 튼 라이트에게 진짜 난관은 따로 있었다. 한국어였다. 영어권 국가에선 소설 원작의 영어 대사를 그대로 살렸다. 그런데 한국에서 쓰는 번역 대사는 반말과 존댓말이 존재해 뉘앙스 차이가 상당했다. 그는 “개츠비가 관객에게 존댓말로 할지, 반말로 할지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며 웃었다. 라이트는 영국과 마찬가지로 한국 공연도 관객에게 ‘정장 드레스 코드’를 권할 방침이다. 다른 나라 공연도 일부 관광객을 제외하면 90% 이상이 구두와 정장을 제대로 갖춰 입고 온단다. 그는 “관객과 배우 모두가 같은 시공간 속으로 떠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며 “집에서 옷을 갖춰 입고 나온 순간부터 관객은 이미 극의 일부가 되는 여정을 시작한 셈”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말끝을 흐리던 라이트는, 결국 한마디 덧붙였다. “위대한 개츠비는 전통적 공연장의 권위적인 행동수칙이나 격식을 극복하려는 작품이죠. 그런데 정작 제 공연에서 드레스 코드를 요구할 줄은 몰랐네요, 하하.” 12월 21일부터 내년 2월 28일까지 서울 중구 그레뱅뮤지엄. 전석 7만7000원. 17세 이상.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인간은 무엇인가. 인간이 무엇이지 않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거대한 나무 벽을 설치한 텅 빈 무대. 귀를 찢는 듯한 굉음이 한 차례 들리면 모든 시공간이 뒤엉킨다. 배우들은 절규하듯 소설 속 문장을 외치거나, 최루가스 같은 밀가루를 던지고 스스로 뒤집어쓴다. 형언하기 어려운 동작을 반복하다 이윽고 벽에 부딪힐 때까지 내달리는 자기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온몸으로 바닥을 쓸어내듯 무대를 나뒹구는 배우들 뒤로 뚝, 뚝 끊어지는 피아노 건반 소리만 울려 퍼진다. 연극 ‘휴먼 푸가’는 배우의 신체 언어와 오브제로 한강 작가의 소설 ‘소년이 온다’ 속 문장을 되살려낸 작품이다. 한 작가의 작품을 무대화한 건 이번이 국내 최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계엄군의 집단 발포로 숨을 거둔 15세 소년 ‘동호’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제목의 ‘푸가(fuga)’는 멜로디가 반복, 교차하며 규율적으로 모방 변주되는 작곡법. 수많은 삶 안에서 지금도 5·18의 고통이 반복, 변주되고 있다는 뜻을 지녔다. 작품은 관객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다. 난해함에 당혹감마저 들 수 있다. 하나의 일정한 서사 대신 예기치 못한 사건이 하나 던져지면 그 위엔 몸부림과 오브제만 남는다. 원작 텍스트가 있다 해도 배우들이 선보이는 35개의 움직임, 라이브 푸가 연주, 증언 같은 대사들을 열심히 쫓는 게 쉽지 않다. 알 수 없는 불편함이 객석까지 전이된다면 “고통의 소리를 마주해야 한다”는 원작자와 연출의 의도가 꽤나 맞아떨어진 셈이다. “말로 할 수 없는 것을 말해야 한다”는 작품의 태생적 어려움이 불편하더라도 작품은 마주할 가치가 있다. 어떠한 고통이 실재했고, 지금도 이어진다는 걸 감각적으로 일깨우기 때문이다. 물론 이 미제(謎題)에 대한 답은 정해져 있지 않다. 공은 객석으로 넘어온다. “당신은, 나와 같은 인간인 당신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7일까지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전석 3만 원. 14세 관람가.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넌 헤르만(남편)을 많이 닮았어. 너도 불행해질 거야.” 한 여인이 처음 본 소년에게 저주 섞인 말을 내뱉는다. 작품 내내 한 무대에 있지만, 마주 보지 못했던 여인과 소년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서로의 눈을 바라본다. ‘이미 너를 잘 알고 있다’는 듯 덤덤한 말투지만 팽팽하던 긴장감이 이 순간 폭발한다. 연극 ‘맨 끝줄 소년’에서 이를 연기한 두 배우는 ‘연극계 찰떡 남매’ 우미화(45)와 전박찬(37)이다.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이들은 “이 짧고 강렬한 장면을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작품은 현실과 허구가 혼재된 글을 쓰는 소년 ‘클라우디오’(전박찬, 안창현)와 소년의 작문 실력에 빠져 점점 위험한 글쓰기를 주문하는 교사 ‘헤르만’(박윤희), 그리고 이들을 위태롭게 바라보는 아내 ‘후아나’(우미화)의 이야기다. 극적 사건은 없어도 대사와 연극적 상상력으로 묘한 스릴러를 구현해냈다. 유명 극작가 후안 마요르가의 희곡으로, 손원정 연출가가 2년 만에 무대에 다시 올렸다. 우미화가 “작품은 우리 삶 속 허구와 실재의 경계를 묻는다”고 하자 전박찬은 “그 물음 끝에서 끔찍함을 느꼈다”고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8년 시작됐다. 사흘짜리 워크숍 공연에서 연인 역으로 처음 만났다. 우미화는 “아기 같았던 전박찬 씨가 어느덧 믿고 기댈 정도로 내공이 단단한 동료가 됐다. 조금 더 기름진 배우가 된 것 같다”며 웃었다. 전박찬은 “처음에는 대학로에서 유명한 선배와 호흡을 맞추는 게 너무 떨렸다. 요즘에는 연습이 끝나면 술이 고플 때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술자리로 데려가는 좋은 선배”라고 맞장구쳤다. 이후에도 둘은 연극 ‘말들의 무덤’ ‘아유 오케이’ ‘썬샤인의 전사들’ ‘낫심’에서 동고동락했다. 이들은 ‘연극은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야 한다’는 철학을 공유해 왔다. 오래도록 같은 작품에서 땀을 흘릴 수 있었던 이유다. 우미화는 “근현대사의 아픔으로부터 연극인도 자유로울 수 없으니 늘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답했다. tvN 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에 출연해 존재감을 드러낸 전박찬은 “사회적 참사를 담은 이야기여서 배우로서 좋은 기회였다”고 답했다. “작품이 매번 새롭다”며 토론을 이어가던 두 사람은 인터뷰 후 “산책을 다녀오겠다”며 자리를 옮겼다. ‘연극의 맨 끝줄’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이들 덕택에 오늘도 객석에서는 ‘명품 연기’라는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12월 1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2만∼5만 원. 14세 이상 관람가.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뮤지컬 프로듀서, 다시 태어나면 절대 못 할 일이죠.” 남들은 “이젠 좀 쉬엄쉬엄 하라”지만 그의 채찍질은 정상에서도 멈출 줄을 모른다. 엄홍현 EMK뮤지컬컴퍼니 대표 겸 총괄프로듀서(43)는 올해 상반기 대형 창작뮤지컬 ‘엑스칼리버’를 올렸고, 현재 ‘마리 앙투아네트’를 공연하고 있다. 16일 개막하는 ‘레베카’와 내년 초 ‘웃는 남자’까지 대작 공연을 줄줄이 앞두고 있다. 서울 종로구 EMK사옥에서 최근 만난 그의 입에서는 정작 푸념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는 “‘죄송하다’며 사과할 일이 더 많고 작품에 대한 책임과 욕까지 다 프로듀서의 몫”이라고 손사래 치면서도 “얼마 전 김준수 씨 팬 3명이 공연장 밖에서 제게 ‘고맙다’고 할 때는 좀 짜릿했다”며 웃었다. 2010년 EMK를 설립한 엄 대표는 영미 뮤지컬이 주를 이루던 국내에 유럽 뮤지컬을 들여왔다. 대본과 음악을 구입해 재창작하는 ‘스몰 라이선스’ 형태로 무대에 올려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엘리자벳’ ‘모차르트!’ ‘몬테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가 대표적이다. 거의 매해 대형 창작뮤지컬을 선보이며 연 400∼500억 원대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그는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나름 고집이 생기더라. 그런데 모든 게 빨리 변하는 문화계에서는 잘되는 공식만 고집하는 순간 곧 죽는 길임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는 공연을 앞두고 마음에 드는 장면이 나올 때까지, 음악이 귀에 꽂힐 때까지 작업한다. 사람들은 그를 ‘완벽주의자’라고 하지만 엄 대표는 스스로를 ‘구멍이 많은 사람’이라고 했다. “빈틈이 정말 많아요. 공연을 앞두고 작품에 성에 차지 않는 부분이 많이 보이면 예민해져서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데, 공연 후 이를 챙기는 것도 프로듀서의 일이더라고요.” 그의 또 다른 별명은 ‘미다스의 손’. 뮤지컬 배우 발굴에 일가견이 있다. 김준수, 박효신을 주연으로 기용해 스타로 키웠고, 최근에는 세븐틴의 도겸, 뉴이스트의 황민현을 무대에 올렸다. “무대 위 그림을 상상했을 때 잡지책 넘기듯 술술 대본이 넘어가는 캐릭터가 있어요. 제 자랑 같지만 딱 촉이 와요. 물론 그 촉이 틀린 적도 있지만 외모, 연기, 가창력 등 뮤지컬 배우의 가능성을 보는 눈이 제게 있다고 믿습니다.” 뮤지컬 때문에 힘든 적이 정말 많다지만 그의 마음 한 구석에는 뮤지컬에 대한 애정이 더 커 보였다. 특히 관객의 박수에서 그 사랑을 느낀다고 했다. “무대 위 배우에게로 향하는 관객의 박수 깊숙한 곳에는 제 지분도 조금은 있지 않을까요?”(웃음)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민족공동체가 이 유전병 환자에게 일생 동안 써야 하는 돈이 6만 마르크다. 국민 동지여. 이 돈은 그대의 돈이기도 하다.” 과거 독일 나치는 장애인이 국가의 경제 부담을 가중시킨다고 여겼다. 선천성 질환이나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 국가가 세금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건강한 일가족의 하루 생활비라고 구구절절 설명하는 선전물까지 배포했다. 지금 보면 숨이 턱 막힐 정도로 말도 안 되는 얘기라 생각하겠지만, 불과 약 90년 전 인간의 머리에서 나온 발상이다. 그리고 이 같은 차별논리는 지금도 우리 사회 속에 교묘히 파고들어 있다. 장애인 운동에 앞장서 온 김도현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가 인간 사회 내 뿌리박힌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편협한 사고를 지적했다. 저자는 복지재단 비리에 반발해 청각장애인들이 직접 농성을 벌인 1996년 ‘에바다복지회’ 사태 때부터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 ‘당신은 장애를 아는가’ ‘장애학 함께 읽기’ 등 전작에 이어 비(非)장애인 중심 사회의 단면을 조목조목 짚는다. 특히 본인이 직접 현장에서 겪은 경험과 느낀 바를 얘기하듯 풀어내며 “장애인이기 때문에 차별받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기 때문에 장애인이 된다”고 일갈한다. 책은 ‘장애학(學)’의 연원을 짚는 학술서이기도 하다. 세계적으로 장애를 인식하는 철학적 관점과 장애학의 흐름에 대해서도 깊게 조명했다. ‘격리’ ‘구분’ 등을 내포한 우생학은 앞선 나치 사례처럼 차별의 근거가 됐다. 국가가 주도한 ‘장애인 안락사 프로그램’ ‘유전적 결함을 지닌 자손의 예방에 관한 법률’ 같은 정책은 미국이나 유럽에서도 “신자유주의와 공모하는 우생주의”와 맞물려 대중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 저자는 “한 인간을 ‘장애인’이라는 하나의 정체성으로 환원하는 것은 곧 장애인차별주의”라고 비판했다. 또한 저자는 ‘모든 사람은 예비 장애인’이라는 식의 논리도 오히려 장애 차별의 본질을 흐린다고 봤다. 본질은 차별받는 대상이 아니라 이를 차별하는 사회의 문제라는 것. 나아가 “장애인은 자립적 존재라고 맞서는 대신, 자립과 의존이란 이분법 자체를 깨야 한다”고 강조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대학로식 코미디가 오페라와 버무려졌다. 농도 짙은 대사, 슬랩스틱 코미디에 오페라 곡이 곁들여진 전개에 객석에서는 웃음이 빵빵 터진다. 연극 ‘테너를 빌려줘’는 소극장에서 오페라 곡이 울려 퍼지는 독특한 코미디다. 뮤지컬 거장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1986년 영국 초연 당시 프로듀싱한 음악을 활용했으며, 25개국에서 공연한 히트작이다. 국내에서도 여러 극단이 각색해 꾸준히 무대에 올렸다. 이탈리아 출신의 유명 테너 ‘티토’의 미국 공연 당일. 오페라 단장과 그의 조수 ‘맥스’는 공연을 앞두고 술과 약에 취해 잠든 티토를 보고 죽은 것으로 오해한다. 이들은 공연을 취소하는 대신 맥스를 티토의 배역 ‘오셀로’로 분장시켜 무대에 세운다. 어이없게도 오페라는 대성공으로 마무리되고 뒤늦게 깨어난 티토와 대타 오페라 배우를 둘러싸고 소동이 벌어진다. 박준규, 성병숙, 정수한 등은 능청스럽게 배역을 소화한다. 극의 매력은 속도감이다. 예상 가능한 전개에 억지웃음을 끌어내는 과장된 연기도 있지만 빠른 장면 전환으로 이를 만회한다. 무대 위 문, 벽으로 구분된 연극적 공간을 자연스레 오가는 배우들의 연기에 객석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온다. 호흡이 빠른 대사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12월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자유극장. 전석 5만5000원. 14세 이상 관람가. ★★★(★ 5개 만점)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무대 연기자들의 전성시대다. 극장 무대를 벗어나 영화, 드라마로 옮긴 연극·뮤지컬 배우들이 주인공을 꿰차 성공하는가 하면 ‘신 스틸러’로 거듭나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드라마 PD 및 작가, 영화감독 및 캐스팅디렉터들이 ‘숨은 보석’을 찾기 위해 연신 서울 대학로 연극무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tvN ‘응답하라’ 시리즈와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연출한 신원호 PD는 내년 상반기 신작 ‘슬기로운 의사생활’ 여주인공으로 연극배우 전미도를 전격 캐스팅했다. 전미도의 상대 배우는 조정석과 유연석이다. 전미도는 시청자들에게는 다소 낯선 배우다. 주로 연극과 뮤지컬 무대에 섰던 그는 공연계에서는 “압도적일 정도로 탄탄한 연기력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뮤지컬 ‘닥터지바고’ ‘스위니토드’ ‘맨 오브 라만차’ ‘베르테르’에서 전미도와 상대역으로 호흡을 맞췄던 조승우가 “전미도는 내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이자 가장 닮고 싶은 배우”로 꼽았을 정도다. 신원호 PD는 전작 ‘슬기로운 감빵생활’에서도 주인공 제혁 역에 연극배우 박해수를 기용했었다. 신 PD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시청률과 화제성을 감안한다면 스타 배우를 쓰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지만, 기존 작품들을 보면 새로운 인물이 주는 영향이 결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신 PD는 박해수가 주인공을 맡은 연극 ‘남자충동’을 관람하고 그 자리에서 박해수를 드라마 주인공 제혁 역으로 캐스팅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김지영의 옛 직장 상사 ‘김 팀장’ 역을 맡은 배우 박성연, 직장 동료 혜수 역의 이봉련 역시 연극배우 출신이다. ‘82년생 김지영’의 김도영 감독은 이들을 캐스팅한 이유로 ‘현실감’을 꼽았다. 김 감독은 “연기력은 출중하지만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두 배우의 출연으로 관객들에게 ‘우리의 이야기’로 더 다가갈 수 있게 현실감을 높여줬다”고 평했다. 최근 종영한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도 무대 출신 배우들의 활약이 컸다. 마고신 역의 서이숙, 객실장 최서희 역의 배해선, 사신 역의 강홍석이 대표적이다. 강홍석은 오디션 없이 그가 출연한 뮤지컬을 본 연출가의 제안으로 출연하게 됐다. 강홍석의 소속사 씨제스 관계자는 “오충환 PD가 강홍석 씨가 출연한 뮤지컬 ‘데스노트’를 관람한 뒤 캐스팅 제안을 했다”고 전했다. SBS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 ‘의문의 일승’ ‘녹두꽃’ 등을 연출한 신경수 PD 역시 연극배우를 자주 캐스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드라마 ‘쓰리데이즈’에서 배우 진선규를, ‘육룡이 나르샤’에서는 박해수, ‘의문의 일승’과 ‘녹두꽃’에서는 윤나무와 김정호를 각각 발탁했다. 신 PD는 ‘공연 덕후’라 불릴 정도로 많은 연극을 관람하고 다양한 배우를 선별해 자신의 작품에 세운다. 신 PD는 “새롭고 실력 있는 배우를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가 연극무대”라고 강조했다. 대학로 극단에서 연기를 시작해 영상매체에서 성공을 거둔 배우들은 과거에도 있었다. 황정민 김윤석(극단 학전), 송강호 이성민 문소리(극단 차이무), 유해진(극단 목화), 손현주(극단 미추)가 1세대라면, 주로 뮤지컬 무대에서 활동하다 영화배우로 변신한 조정석, 강하늘, 김무열이 이런 계보를 잇는 2세대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종합편성채널, 케이블 등 방송 채널이 늘면서 20, 30대 젊은 배우들은 물론이고 영화 ‘기생충’의 이정은, 드라마 ‘나의 아저씨’, ‘쌉니다 천리마마트’의 박호산 등 잔뼈 굵은 중견 배우들 역시 무대와 드라마 영화를 왕성하게 오가며 활약 중이다. 김정은 kimje@donga.com·김기윤 기자}

‘성량 깡패’의 재림(再臨). 188cm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와 극장을 뚫을 듯 뻗는 발성이 매력인 배우 최재림(34)이 뮤지컬 ‘아이다’로 돌아왔다. 그가 맡은 주역 ‘라다메스’는 아이다를 사랑하는 이집트 장군. 전투에 능하고 용맹하나 사랑 앞에선 누구보다 약한 인물이다. 최근 서울 서초구 한 연습실에서 만난 최재림은 “사랑을 위해 모든 걸 퍼주는 ‘사랑 바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다른 게 안 보이는 점이 좀 닮았다”며 웃었다. ‘아이다’는 누비다 공주 아이다와 이집트 파라오 딸 암네리스, 그리고 두 여인의 사랑을 받는 장군 라다메스의 운명을 다뤘다. 엘턴 존이 넘버를 작곡해 팝 색채가 강하며 화려한 조명과 무대 장치를 곁들여 ‘눈 호강’ 뮤지컬로 유명하다. 2005년 국내 초연부터 2016년 네 번째 시즌까지 73만 관객을 끌어모았다. 실은 이런 사랑 연기는 최 배우에게 꽤나 낯설다. 2009년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11년 차 배우지만 첫 로맨스 도전이기 때문. “괴팍한 할머니 교장, 흑인 여장 남자처럼 이른바 센 역할이나 ‘상 남자’만 주로 맡았죠. 비교적 정상적(?)인 로맨스 연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어요. 그래도 ‘최재림은 평범한 역은 안 어울릴 것’이란 시선을 극복할 기회로 여깁니다.” 도전을 즐기는 성격 덕에 그는 마치 요즘 신인으로 돌아간 것처럼 연습실에서 설렘을 느낀다. “이전에는 무대에 올라 박수를 받을 때 짜릿했는데, ‘아이다’는 연습실에서부터 짜릿짜릿한 순간이 와요. 아직 설익은 상태지만 우연히 감정과 노래, 연기 모든 게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딱 와요. 오늘도 한 번 있었어요. 이 맛에 합니다.” ‘아이다’와는 숨겨진 인연도 있다. 2010년 ‘아이다’ 공연 때 라다메스의 언더스터디(주연 대신 출연하는 배우)로 연습에 참여했다. 아쉽게 무대에 오를 기회는 없었지만, 늘 마음 한구석에 라다메스를 품고 지내왔다. “잊은 줄 알았는데 드문드문 10년 전 연습 장면이 기억나요. ‘내가 진짜 하고 싶었구나’ 새삼 느끼고 있죠. 연습을 하면 할수록 팝 감성이 짙은 넘버가 정말 사랑스럽습니다.” 약 9년이 흘러 주연을 맡은 그는 “배우로서 더 성장한 지금 라다메스를 연기해 다행”이라고 했다. KBS 예능 ‘남자의 자격’에 출연하는 등 인지도는 올라갔지만, 줄곧 자신의 연기에 대한 불만이 컸다. 결국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에 진학했다. “뮤지컬 배우에게 춤과 연기, 노래, 무대 동화능력 등의 능력치가 1부터 10점까지 있다면, 그때 저는 마이너스 5점 수준이었죠. 그래도 지금은 이전보다 경험과 배움이 쌓여 조금은 더 나은 배우가 됐다고 생각해요.” ‘아이다’는 제작사인 디즈니 시어트리컬 프로덕션이 올해를 끝으로 브로드웨이 레플리카 공연을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본의 아니게 최 배우는 ‘문을 닫는’ 마무리투수가 됐다. “수많은 선배들이 선보인 아이다의 명성에 조금이라도 흠이 되지 않도록 잘 마무리하고 포장해야죠. 물론 관객이 나중엔 저만 기억할 겁니다. 하하.” 13일부터 2020년 2월 23일까지.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6만∼14만 원. 8세 이상 관람가.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방금 했던 대사, 주변에 보이는 물건을 아무거나 활용해서 진짜처럼 연기해 보실래요?” 면접관의 기습 질문에 지원자의 입에선 “네?”라는 당혹감이 먼저 튀어나온다. 하지만 이 상황마저도 능청스럽게 연기해야 하는 게 배우의 숙명. 뮤지컬 ‘렌트’의 ‘마크’ 역에 지원한 이들은 몇 초 만에 텅 빈 오디션장을 뉴욕 재개발 지역에 있는 한 낡은 다락방으로 뒤바꿔 놓는다. 방을 활보하며 둘러보던 배우들은 다시 ‘진짜’ 연기를 시작한다.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뮤지컬 ‘렌트’ 2차 공개오디션 현장. 배우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렌트’의 1막 첫 장면이 수십 번씩 재탄생하고 있었다. 한 지원자는 오디션장 창문 커튼을 들추며 대사 속 ‘로큰롤 포스터’가 있는 듯 손으로 가리켰다. “난방을 할 돈이 없어 곧 얼어 죽고 말 겁니다”라는 대사를 뱉으며 마임으로 가상의 벽난로를 표현해내는 이도 있었다. 반주자의 피아노 위에 놓인 작은 펜이나 악보 보면대도 즉석 연기소품이 됐다. 극 중 주역 ‘마크’ ‘로저’의 1막을 연기한 지원자들은 “잘 봤습니다”라는 심사위원들의 말과 함께 땀을 닦고 퇴장했다. 올해 ‘렌트’ 오디션에선 8개 주요 배역과 앙상블 총 23명을 선발하는데 1300여 명이 지원했다. 서류, 자유곡 심사를 통과한 지원자들은 2차 오디션에서 지원 배역에 따라 지정곡을 1∼4개 선보인다. 최종 3차까지 통과한 23명의 배우가 내년 6월 무대에 오른다. ‘렌트’ 오디션장에는 벽을 바라본 채 혼자 말하듯 노래하고, 목을 푸느라 고함을 치는 지원자가 유독 많다. 대사 없이 발라드, R&B, 록 등 다양한 장르의 노래로 구성된 ‘송 스루(Song-through)’ 뮤지컬이기 때문. 많은 가창으로 목도 쉽게 건조해지므로 물 한 통도 필수품이다. “○○○번 ‘마크’, 들어오세요”라는 말에 떨지 않는 강심장이 얼마나 될까. 오디션장 안에선 연출, 음악감독, 안무감독, 기록 스태프, 반주자 등 10명의 시선이 한 명의 지원자에게 꽂힌다. 2차 오디션 심사에 참여한 앤디 세뇨르 주니어 해외 협력연출(45)은 “당신이라는 인간을 보여 달라”는 가장 어려운 주문을 내놓았다. 작품 속 에이즈, 동성애, 죽음 등 무거운 주제를 얘기하려면 겉으로 보이는 연기 기술로는 한계가 있다는 취지다. ‘자신을 보여주기 위한’ 지원자들의 자기 고백이 줄을 이었다. “제 배역 ‘마크’는 잃는 게 많은 사람”이라는 나름의 배역 분석도 내놓고, “요즘에는 자기만 사랑하는 사람만 가득한 것 같다”며 사회 이슈를 두고 토론도 벌어졌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묻는 질문에 한 남성 지원자는 “군 생활”이라고 답해 심사위원들 사이에 웃음도 터졌다. “상대 배역과 같이 연기해 보라”는 기습 요구에 ‘마크’ ‘로저’ 역에 지원한 생면부지의 두 배우는 “어, 왔네”라는 즉흥 대사와 함께 하이파이브를 했다. “원래 친구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로 자연스럽게 연기한 것. 한편 아쉬움이 남은 이들은 “다른 넘버도 해보겠다”며 1초라도 더 어필하려고 했으나 면접관은 “필요한 건 충분히 본 것 같다”며 돌려보냈다. 제작진은 “가능성이 보이는 배우에게 더 많은 걸 끌어내는 게 목적”이라고 했다. ‘렌트’의 무게감도 지원자들을 긴장케 한다. 1990년대 말 브로드웨이를 휩쓸고 토니상을 거머쥔 이 작품은 많은 배우가 “렌트 때문에 뮤지컬 배우가 되기로 했다”고 할 정도로 배우들의 로망으로 꼽힌다. ‘미미’ 역할에 지원한 한 배우는 “렌트는 설명이 필요 없다. 미칠 듯 무대에 서고 싶다”고 했다. “다른 곡도 해볼 수 있겠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준비가 안 됐다”며 고개를 푹 숙인 한 지원자는 “내로라하는 기성 배우들과 오디션에서 ‘렌트’ 넘버로 호흡을 맞춘 것만으로도 너무 소중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9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오른다. 남경주, 최정원, 조승우 등이 거쳐 갔다. 오디션 후 만난 앤디 세뇨르 주니어 연출은 “지원자가 어떤 인간인지 아는 게 핵심”이라며 “자신의 모습에 뭔가 더하려는 사람보다 덜어내려는 지원자에게 눈길이 갔다”고 했다. 그가 오디션 중 유독 “왜?” “어떤 상처를 받았나”라는 질문을 반복해 내면을 끌어내려 했던 이유다. 그는 1997년 ‘렌트’에서 ‘엔젤’ 역할로 데뷔한 뒤 2011년부터 연출로 나섰다. “렌트는 곧 저 자신”이라 할 만큼 애정이 깊다. 쿠바계 이민자 가정 출신이자, 동성애자로서 미국 사회 주변부가 안고 있는 아픔을 몸소 겪었다. 원작 연출 마이클 그리프로부터 연출 지도를 받은 그는 “미국 청년들의 불안감을 그렸지만 미국보다 요즘 한국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표현력이 풍부한 한국 배우들이 잘 소화해낼 것”이라고 했다. 매일 렌트 공연의 조각을 맞춰 나가야 하는 그에게 일정이 고되지 않으냐고 묻자 웃으며 답했다. “삶에도 렌트에도 내일은 없어요, 오늘뿐입니다(No day, but today).”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내가 밥 먹고 공만 찼으면 저것보단 낫겠다.” “발만 대면 골인데 저걸 날려?” 월드컵 시즌이면 모두가 TV 앞에서 ‘입 축구’계 메시가 된다. 이 각도에서 접고 감아 찼어야 한다는 둥 패스가 아니라 슛을 쐈어야 한다는 둥 탄성이 빗발친다. 과거 한 선수가 질책에 못 이겨 “답답하면 너희들이 뛰든가”라는 말을 뱉어도 진짜 대신 필드로 나갈 순 없는 노릇. 그렇다면 우리가 잘하는 ‘입 축구’를 조금 더 고급지게 즐길 방법은 없을까. ‘조널 마킹(Zonal Marking)’은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제목은 ‘지역 방어’라는 의미인 동시에, ESPN 등에서 활약하는 유명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운영하는 축구전술 사이트 이름이다. 책은 30년간 변화한 유럽축구 전술의 흐름을 짚었다. 책은 선수의 순간적 선택이나 결과보다는 그 선택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전술적 움직임에 집중한다. 나아가 당대 축구판에서 ‘먹히는’ 전술 트렌드도 볼 수 있는 총체적 시야를 선사한다. 수백 개의 선수·감독·구단 이름이 등장해 입문서라기엔 다소 버겁다. 다만 생생한 필치와 실감 나는 장면 묘사 덕분에 마니아에겐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텍스트로 된 유튜브’이자 축구 역사서라 할 만하다. 저자는 1992년부터 2020년까지 28년을 4년 단위로 쪼갰고, 분기별로 7개 국가에 타이틀을 부여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순이다. “최근 국제대회 성적과 자국 리그 경쟁력을 고려해 7개국이 유럽축구를 주도했다”는 기준을 밝혔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네덜란드가 ‘토털 사커’를 바탕으로 1990년대 현대 유럽축구를 주도했고, 이탈리아는 수비 중심의 전술 논의를 심화시켰다. 프랑스는 특정 유형의 선수를 꾸준히 배출하며 유럽을 제패했고, 포르투갈은 까다로운 윙어들을 배출해 강국으로 도약했다. 이윽고 ‘티키타카’로 요약되는 스페인이 국제무대를 휩쓸었고, ‘게겐프레싱(전방압박)’과 재창조를 통해 거듭난 독일은 최강자가 됐다. 현 시기 타이틀을 거머쥔 잉글랜드는 타 국가의 다양한 전술을 수용하며 최고의 리그를 보유했다. 4년 단위 작위적 구분에 ‘그때 그 나라가 정말 최강자였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프랑스(2000∼2004년)의 경우 1998 월드컵, 유로 2000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2002, 2004년엔 쓴맛을 봤다. 저자는 “이민자로 구성된 다양한 선수단 색채, 천재성을 가진 ‘10번’ 플레이어, 이를 떠받치는 수비형 미드필더”가 당대 유럽축구를 주도한 흐름이라고 봤다. 책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전환기’라는 챕터를 넣어 한 국가의 주도권이 다른 국가로 넘어가는 장면을 설명했다. 어느 학문이든 업계든 시간이 지나면 강자를 꺾는 신흥 강호가 등장하는 법. 저자의 구분법처럼 축구판 주기가 4년 단위로 유독 짧은 건, 그만큼 선수나 감독의 치열한 고민이 필드 위에서 시시각각 반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내가 밥 먹고 공만 찼으면 저것보단 낫겠다.” “발만 대면 골인데 저걸 날려?” 월드컵 시즌이면 모두가 TV 앞에서 ‘입 축구’계 메시가 된다. 이 각도에서 접고 감아 찼어야 한다는 둥 패스가 아니라 슛을 쐈어야 한다는 둥 탄성이 빗발친다. 과거 한 선수가 질책에 못 이겨 “답답하면 너희들이 뛰든가”라는 말을 뱉어도 진짜 대신 필드로 나갈 순 없는 노릇. 그렇다면 우리가 잘하는 ‘입 축구’를 조금 더 고급지게 즐길 방법은 없을까. ‘조널 마킹(Zonal Marking)’은 이에 대한 해답이 될 수 있다. 제목은 ‘지역 방어’라는 의미인 동시에, ESPN 등에서 활약하는 유명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운영하는 축구전술 사이트 이름이다. 책은 30년 간 변화한 유럽축구 전술의 흐름을 짚었다. 책은 선수의 순간적 선택이나 결과보다는 그 선택이 나올 수밖에 없었던 전술적 움직임에 집중한다. 나아가 당대 축구판에서 ‘먹히는’ 전술 트렌드도 볼 수 있는 총체적 시야를 선사한다. 수백 개의 선수·감독·구단 이름이 등장해 입문서라기엔 다소 버겁다. 다만 생생한 필치와 실감나는 장면 묘사 덕분에 마니아에겐 더할 나위 없이 빼어난 ‘텍스트로 된 유튜브’이자 축구 역사서라 할 만하다. 저자는 1992년부터 2020년까지 28년을 4년 단위로 쪼갰고, 분기별로 7개 국가에 타이틀을 부여했다. 네덜란드와 이탈리아, 프랑스, 포르투갈, 스페인, 독일, 잉글랜드 순이다. “최근 국제대회 성적과 자국리그 경쟁력을 고려해 7개국이 유럽축구를 주도했다”는 기준을 밝혔다. 거칠게 요약하면 이렇다. 네덜란드가 ‘토털 사커’를 바탕으로 90년대 현대 유럽축구를 주도했고, 이탈리아는 수비중심의 전술 논의를 심화시켰다. 프랑스는 특정 유형의 선수를 꾸준히 배출하며 유럽을 제패했고, 포르투갈은 까다로운 윙어들을 배출해 강국으로 도약했다. 이윽고 ‘티키타카’로 요약되는 스페인이 국제무대를 휩쓸었고, ‘게겐프레싱(전방압박)’과 재창조를 통해 거듭난 독일은 최강자가 됐다. 현 시기 타이틀을 거머쥔 잉글랜드는 타 국가의 다양한 전술을 수용하며 최고의 리그를 보유했다. 4년 단위 작위적 구분에 ‘그때 그 나라가 정말 최강자였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도 있다. 프랑스(2000~4년)의 경우 1998월드컵, 유로2000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2002, 2004년엔 쓴 맛을 봤다. 저자는 “이민자로 구성된 다양한 선수단 색채, 천재성을 가진 ‘10번’ 플레이어, 이를 떠받치는 수비 형 미드필더”가 당대 유럽축구를 주도한 흐름이라고 봤다. 책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전환기’라는 챕터를 넣어 한 국가의 주도권이 다른 국가로 넘어가는 장면을 설명했다. 어느 학문이든 업계든 시간이 지나면 강자를 꺾는 신흥 강호가 등장하는 법. 저자의 구분법처럼 축구판 주기가 4년 단위로 유독 짧은 건, 그만큼 선수나 감독의 치열한 고민이 필드 위에서 시시각각 반영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무용협회가 주최하는 서울무용제가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현대무용, 한국무용, 발레가 어우러지는 행사로 132개 단체, 1100여 명의 무용수가 참가한다. 10월 12일부터 사전행사가 시작됐으며 11월 13일 본격적으로 개막해 11월 29일까지 이어진다.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이화여대 삼성홀, 상명아트센터 대신홀 등에서 다양한 무대가 펼쳐진다. 무용계 창작 산실로 기능해온 서울무용제는 무용계만의 잔치라는 지적도 받았다. 하지만 2017년부터 시민이 참여하는 ‘4마리 백조 페스티벌’ 등을 통해 대중과 함께하는 축제로 변신했다. 11월 13일 개막공연으로는 역대 서울무용제 최고상 수상자 김화숙 이정희 최은희 안신희가 ‘무.념.무.상.’ 파트1을 선보인다. 17일 ‘명작무극장’에서는 김백봉의 ‘부채춤’, 은방초의 ‘회상’, 조흥동의 ‘한량무’, 배정혜의 ‘풍류장고’, 국수호의 ‘장한가’ 등이 관객과 만난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아빠, 나도 죽는 거야? 나도 좀비가 된 거야?” 딸이 좀비가 됐다. 믿기 힘들지만 딸은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다. 좀비의 급작스러운 출현으로 초토화될 뻔했던 대한민국은 사태를 빠르게 진정시키며 공식적으로 좀비가 없는 안전한 땅이 됐다. 돼지혈액으로 인한 감염, 임상실험 부작용 등 온갖 유언비어가 퍼졌지만, 확실한 건 이를 치료할 백신이 없다는 것. 그런데 알고 보니 마지막 좀비가 살아남아 있었다. 그 좀비는 누군가의 딸이기도 했다. 좀비는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삶을 이어간다. 최근 연재 중인 네이버웹툰 ‘좀비딸’은 한 아버지가 좀비인 딸을 죽이려는 이웃으로부터 지킨다는 설정으로 부성애와 혐오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좀비 소재의 웹툰이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좀비 웹툰 전성시대’라는 말까지 낳았다. 좀비, 뱀파이어 등의 소재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놓여 있다는 매력적 특징 때문에 고전소설, 영화, 게임 등 콘텐츠 소재로도 활용됐다. 동시에 일부 마니아층만 찾는 컬트적인 소재라는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독자 접근성이 높은 웹툰 속으로 좀비가 파고들고 있다. 비교적 친숙한 그림체나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택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다각도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네이버웹툰, 다음웹툰, 카카오페이지 등 대형 플랫폼을 비롯해 유료웹툰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좀비 소재 웹툰은 10여 편에 달한다. 최근 연재를 마치거나 별도 연재 중인 작품을 더하면 20편 이상이다. 작품 대다수가 조회수, 인기도 순위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영화, 드라마로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연재 중인 좀비 웹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고립’이다. 현대인의 고립과 그로 인한 공포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네이버웹툰 ‘극야’는 남극 한중일 합동 연구기지로 파견을 간 한 안전요원이 좀비들과 맞닥뜨린다는 설정이다. 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고 밤이 계속되는 남극에 폭설, 강풍과 같은 극한 상황이 더해지며 외부와의 고립은 심화한다.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1호선’은 감기에 걸려 외부와 고립돼 있던 주인공이 좀비와 좀비처럼 약탈을 일삼는 인간들과 마주한다는 내용이다. 어둡고, 기괴한 좀비물과는 달리 친숙한 그림체나 현실적 소재로 좀비를 표현한 점은 최근 눈에 띄는 변화다. 다음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가벼운 ‘일상 웹툰’을 보듯 단순화한 그림체를 택했다. 70세 할머니가 마을 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자살을 시도하려다 한 소녀와 만나 서로 의지하게 되고, 좀비가 가득해진 세상을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좀비딸’은 가족애는 물론 개그코드도 넣어 좀비물에서 찾기 힘든 독자의 웃음을 뽑아낸다. 이윤창 작가는 “제 몸을 무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울 정도로 반려 고양이가 제 자식처럼 소중한 존재가 됐다. 이를 보며 아버지의 헌신적 사랑에 좀비물을 입힌 작품을 떠올렸다”고 했다. 좀비 웹툰의 인기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좀비로 재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웹툰 속 좀비로 재현되는 괴물의 양상’에서 김은정 만화연구가는 “좀비라는 메타포를 통해 한국사회에 커다란 이슈가 되고 있는 여러 소외계층을 상기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좀비물은 단순 유희를 넘어 사회의 고립, 혐오 같은 어두운 단면을 내포하고 있어 한동안 좀비물의 인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아빠, 나도 죽는 거야? 나도 좀비가 된 거야?” 딸이 좀비가 됐다. 믿기 힘들지만 딸은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다. 좀비의 급작스런 출현으로 초토화될 뻔했던 대한민국은 사태를 빠르게 진정시키며 공식적으로 좀비가 없는 안전한 땅이 됐다. 돼지혈액으로 인한 감염, 임상실험 부작용 등 온갖 유언비어가 퍼졌지만, 확실한 건 이를 치료할 백신이 없다는 것. 그런데 알고 보니 마지막 좀비가 살아 남아있었다. 그 좀비는 누군가의 딸이기도 했다. 좀비는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으며 삶을 이어간다. 최근 연재 중인 네이버웹툰 ‘좀비딸’은 한 아버지가 좀비인 딸을 죽이려는 이웃으로부터 지킨다는 설정으로 부성애와 혐오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최근 좀비 소재의 웹툰이 독자들로부터 큰 인기를 끌면서 ‘좀비 웹툰 전성시대’라는 말까지 낳았다. 좀비, 뱀파이어 등의 소재는 인간과 비인간 사이에 놓여있다는 매력적 특징 때문에 고전소설, 영화, 게임 등 콘텐츠 소재로도 활용됐다. 동시에 일부 마니아층만 찾는 컬트적인 소재라는 한계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독자 접근성이 높은 웹툰 속으로 좀비가 파고들고 있다. 비교적 친숙한 그림체나 다양한 스토리텔링 방식을 택하며 사회의 부조리를 다각도로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네이버웹툰, 다음웹툰, 카카오페이지 등 대형 플랫폼을 비롯해 유료웹툰 플랫폼에서 연재 중인 좀비 소재 웹툰은 10여 편에 달한다. 최근 연재를 마치거나 별도 연재 중인 작품을 더하면 20여 편 이상이다. 작품 대다수가 조회수, 인기도 순위에서 좋은 성적을 냈고, 영화, 드라마로 제작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연재 중인 좀비 웹툰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키워드는 ‘고립’이다. 현대인의 고립과 그로 인한 공포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네이버웹툰 ‘극야’는 남극 한·중·일 합동 연구기지로 파견을 간 한 안전요원이 좀비들과 맞닥뜨린다는 설정이다. 오랫동안 해가 뜨지 않고 밤이 계속되는 남극에 폭설, 강풍과 같은 극한 상황이 더해지며 외부와의 고립은 심화한다. 카카오페이지에 연재 중인 ‘1호선’은 감기에 걸려 외부와 고립돼 있던 주인공이 좀비와 좀비처럼 약탈을 일삼는 인간들과 마주한다는 내용이다. 어둡고, 기괴한 좀비물과는 달리 친숙한 그림체나 현실적 소재로 좀비를 표현한 점은 최근 눈에 띄는 변화다. 다음웹툰 ‘닭은 의외로 위대하다’는 가벼운 ‘일상 웹툰’을 보듯 단순화한 그림체를 택했다. 70세 할머니가 마을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해 자살을 시도하려다 한 소녀와 만나 서로 의지하게 되고, 좀비가 가득해진 세상을 살아간다는 내용이다. ‘좀비딸’은 가족애는 물론 개그코드도 넣어 좀비물에서 찾기 힘든 독자의 웃음을 뽑아낸다. 이윤창 작가는 “제 몸을 무는 모습마저도 사랑스러울 정도로 반려 고양이가 제 자식처럼 소중한 존재가 됐다. 이를 보며 아버지의 헌신적 사랑에 좀비물을 입힌 작품을 떠올렸다”고 했다. 좀비 웹툰의 인기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좀비로 재현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웹툰 속 좀비로 재현되는 괴물의 양상’을 연구한 김은정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연구원은 “‘다르다’는 이유로 사람, 사회로부터 배척당하거나 ‘비인간’으로 규정되는 존재들이 슬픔과 분노에 가득 차 곧 좀비로 표현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좀비물은 단순 유희를 넘어 사회의 고립, 혐오 같은 어두운 단면을 내포하고 있어 한동안 좀비물은 인기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

“자막 보려고 구독해요.” “자막이 제 취저(취향저격)입니다.” 유튜브에서 자막이 새 생명을 얻었다. 출연자의 발언을 있는 그대로 화면 하단에 옮겨 적거나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던 자막은 인터넷에서 그 자체로 콘텐츠가 됐다. 문법이나 글자 형태를 파괴, 해체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의 얼굴을 활용하는 등 변화 양상을 보인다. 일부 지상파, 케이블 채널도 영향을 받아 유튜브 자막문법을 이용한 유머코드를 썼다. 수많은 채널이 경쟁하면서 자막이 혁신 중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출연자의 얼굴을 활용한 자막이다. 출연자의 대사나 감탄사, 속마음 등을 설명할 때 얼굴 모양을 활용하는 형태다. 주로 동그란 머리 모양이나 입 모양을 자음 ‘ㅇ’ 또는 ‘ㅎ’으로 활용한다. 구독자가 288만 명에 달하는 인기 유튜브 채널 ‘백종원의 요리비책’에는 최근 백종원의 얼굴을 활용한 자막 장면이 화제가 됐다. “넣을까요?”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자막 ‘을’ 속 ‘ㅇ’을 그의 얼굴로 활용한 자막을 넣어 웃음을 줬다. 방탄소년단(BTS)의 얼굴도 자막 유머코드에 활용됐다. 팔로어가 1500만 명에 이르는 네이버의 ‘VLIVE’ BTS 채널에서는 멤버 진이 “우와”라고 감탄하는 장면이나 “아침 9:00”시를 설명하는 장면에서 그의 머리, 코 등 신체 부위가 활용됐다. 화면 하단 혹은 해당 출연자 바로 옆이던 자막의 위치도 변화했다. 인물 얼굴을 뒤덮어버리는 자막은 물론이고 몸짓, 발짓을 따라 자막이 움직인다. 심지어 화면 밖으로 날아가는 물체 옆에도 움직이는 자막이 사용된다. ‘하승진’ 유튜브 채널에서는 웃음 포인트에서 “ㅋㅋㅋㅋㅋㅋㅋㅋ”를 화면 전체에 뒤덮는 편집도 사용됐으며, 하승진의 동작에 따라 움직이는 자막이 활용됐다. 한글 표기나 문법에서도 유튜브 채널은 비교적 자유로운 모습을 보인다. 출연자의 발음이 부정확하더라도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해 웃음을 준다. 한글과 영어 알파벳을 섞은 표기도 쓰인다. 감탄사 ‘Aㅏ’ 또는 한글 ‘혹시’ 대신 ‘HOXY’ 등을 쓰는 것이 용례다. GOD 멤버 박준형의 ‘와썹맨’, ‘하승진’ 채널 등에서 활용이 많다. 한 유튜브 채널 편집자는 “이전엔 자막의 디자인, 형태에 신경을 썼다면 최근에는 영상과 연관성을 갖추면서도 자막 자체에 ‘애드리브’나 ‘개그’를 넣는 것을 고민하게 됐다”고 했다. 이에 영향을 받아 지상파, 케이블 채널에서도 자막의 변화가 감지된다. MBC나 tvN 채널에서도 유튜브식 자막문법을 활용하고 있다. 한 지상파 방송 PD는 “유튜브보다 시청층이 넓다 보니 정신없이 들어가는 유튜브식 자막을 그대로 쓰긴 어려우나 이를 참고해 전보다 자막 양을 늘리고, 크기도 키우고 있다”고 했다. 한 종편방송 PD 역시 “유튜브에서 일어난 자막 혁신이 방송 편집에도 영향을 미치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자막을 보다 자유롭게 사용하면서 맞춤법 외에 아직까지 자막의 형태, 활용에 대한 논란은 적은 편이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부수적 역할에 그치던 자막이 컴퓨터그래픽(CG) 기술과 맞물려 유희성을 추구하는 수단으로 더 인기를 끌고, 자막 양도 늘어날 것”이라며 “다만 자막의 남발로 프로그램의 깊이까지 떨어뜨리는 수준은 지양해야 한다”고 했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피할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대신하게 하라.’ 껄끄러움, 민망함, 미안함, 귀찮음…. 이 같은 감정을 ‘스킵(Skip)’할 수는 없을까. 불편한 감정을 감내하는 대신에 돈을 지불하고 이를 타인에게 맡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감정 대행을 주문받은 업체들은 퇴사 등 전문 절차부터 이별, 사과, 역할 대행 등 업무를 세분하며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대면 접촉과 감정 소모에 피로감을 느끼는 세태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퇴사 대행 평균 10만∼20만 원에 해결 “껄끄러운 퇴사, 다 맡기세요” “쓰던 노트북 퀵으로 보내요.”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김모 씨(40)는 최근 택배 한 건을 전달받았다. 퇴사한 후배 A 씨가 보낸 노트북과 사무기기였다. “직장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던 A 씨는 사직서 발송부터 퇴직금, 실업급여 정산 등을 대행업체를 통해 진행하고 있다. 김 씨는 “처음엔 사무실이 술렁일 정도로 모두 당황했지만 나름의 고민이 많았을 A 씨 심정도 이해가 간다”고 했다. 최근 늘고 있는 퇴사 대행 절차는 대략 이렇다. 희망퇴직일을 정하면 퇴사플래너와의 상담을 거쳐 사직서 등 문서를 작성한다. 대행업체는 고객 대신 사직 의사를 전달하고 사직서와 반납할 물품을 발송한다. 사직서가 수리되면 퇴직금 정산, 근로소득원천징수영수증 등 서류를 전달받는다. 추가 요청에 따라 사무실 짐을 대신 빼는 경우도 있다. 한 퇴사 대행 서비스 이용자는 “상사의 폭언과 과도한 업무 지시로 사직서를 냈지만 수리조차 안 됐다. 서비스를 이용해 회사를 찾거나 인사팀과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잘 조율됐다”고 했다. 다른 이용자는 “회사 입장만 강요해 퇴사일도 정하기 어려웠다. 서비스 이용 후 번거로운 일이 사라져 이직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가격은 보통 10만∼20만 원 선이다. 회사 관계자와의 대면 접촉 같은 추가 대행 업무가 필요하면 50만 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한 퇴사플래너는 “회사 규모, 긴급성, 근로 형태에 따라 비용 차이가 나며 2030세대와 여성 직장인 이용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흰 봉투에 사직서를 넣어 직접 전달하는 기존 사표 제출 공식도 변화하고 있다. 사직서 발송만을 대행하는 ‘립(Leave) 서비스’ ‘출근길 사직서’ 같은 애플리케이션(앱)에서는 양식에 맞게 부서, 이름, 사유만 기입하면 PDF파일 사직서가 e메일로 발송된다. 제출 예정일도 설정할 수 있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표방하며 ‘입사와 동시에 사표를 작성한다’는 그 나름의 규칙도 적혀 있다.○ 내밀한 영역까지 침투, 이별·사과·질투심 유발도 대행 “택배 보내듯 감정도 대신 전달” 이별, 사과, 질투심 유발 등을 대행하는 서비스도 인기 있다. 이 업무만을 전문적으로 수행하는 업체는 따로 없으나, 주로 역할 대행 업체들이 맡는다. 과거 애인·하객 대행 등을 주로 수행했다면 최근 이별, 사과 통보 등 좀 더 감정적인 영역의 일을 대행하는 게 특징이다. 의뢰인 대신 유선으로 이별을 통보하기도 하지만 업체 직원들이 상대를 만나 부모, 친인척 역할을 하며 정중히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연인의 과도한 집착, 안전한 이별, 집안 반대 등이 주된 서비스 이용 사유다. 가격은 보통 10만∼30만 원대. 요구 사항에 따라 수백만 원까지 높아지기도 한다. 역할대행119 대표는 “대학생, 여성 이용객이 많다. 시기적으로 크리스마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깔끔한 이별을 원하는 일이 많은데, 대면 접촉을 꺼리고 이별 과정에서 상대 반응이 두려운 이들이 저희를 찾는다”고 했다. 사과 대행의 경우 과실 때문에 ‘진상’ 손님을 상대하기 힘들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많다. 또 돈을 제때 갚지 못할 때 공손하고 정중하게 갚지 못하는 불가피한 이유와 사과를 전해 달라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역할극을 통해 연인 사이에서 질투심을 유발해 달라는 요청도 꽤 들어온다. 전문가들은 대면 접촉이 점점 사라지는 사회에서 대행 서비스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능력이 떨어진 현대인이 정신적 압박감, 상처로부터 탈피하고픈 심리가 반영된 현상이다. 서비스는 향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누군가와 마주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고 감정 전달에 서툰 사회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정해주는 과외, 학원에 맞춰 살아온 젊은층은 앞으로도 대리인을 내세운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김기윤 pep@donga.com·조종엽 기자}

‘피할 수 없다면 누군가에게 대신하게 하라.’ 껄끄러움, 민망함, 미안함, 귀찮음…. 이 같은 감정을 ‘스킵’(Skip) 할 수는 없을까. 불편한 감정을 감내하는 대신 돈을 지불하고 이를 타인에게 맡기는 이들이 늘고 있다. 감정 대행을 주문받은 업체들은 퇴사 등 전문절차부터 이별, 사과, 역할대행 등 업무를 세분화하며 생활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대면 접촉과 감정소모에 피로감을 느끼는 세태가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퇴사 대행 평균 10~20만 원에 해결 “껄끄러운 퇴사, 다 맡기세요.” “쓰던 노트북 퀵으로 보내요.” 한 중소기업에 근무하는 김모(40) 씨는 최근 택배 한 건을 전달받았다. 퇴사한 후배 A 씨가 보낸 노트북과 사무기기였다. “직장 분위기가 맞지 않는다”던 A 씨는 사직서 발송부터 퇴직금, 실업급여 정산 등을 대행업체를 통해 진행 중이다. 황 씨는 “처음엔 사무실이 술렁일 정도로 모두 당황했지만 나름 고민이 많았을 A 씨 심정도 이해가 간다”고 했다. 최근 늘고 있는 퇴사대행의 절차는 대략 이렇다. 희망퇴직일을 정하면 퇴사플래너와 상담을 거쳐 사직서 등 문서를 작성한다. 대행업체는 고객 대신 사직의사를 전달하고 사직서와 반납할 물품을 발송한다. 사직서가 수리되면 퇴직금 정산, 근로소득원천징수 등 서류를 전달 받는다. 추가요청에 따라 사무실 짐을 대신 빼는 경우도 있다. 한 퇴사대행 서비스 이용자는 “상사 폭언과 과도한 업무지시로 사직서를 냈지만 수리조차 안됐다. 서비스를 이용해 회사를 찾거나 인사팀과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잘 조율됐다”고 했다. 다른 이용자는 “회사 입장만을 강요해 퇴사일도 정하기 어려웠다. 서비스 이용 후 번거로운 일이 사라져 이직에만 전념할 수 있었다”고 털어놨다. 가격은 보통 10만~20만 원선이다. 회사 관계자와의 대면접촉 같은 추가 대행 업무가 필요하면 50만 원까지 오르기도 한다. 한 퇴사플래너는 “회사규모, 긴급성, 근로형태에 따라 비용 차이가 나며, 2030세대와 여성 직장인 이용비율이 높다”고 설명했다. 흰 봉투에 사직서를 넣어 직접 전달하는 기존 사표 제출공식도 변화 중이다. 사직서 발송만을 대행하는 ‘립(Leave) 서비스’ ‘출근길 사직서’ 같은 애플리케이션(앱)에서는 양식에 맞게 부서, 이름, 사유만 기입하면 PDF파일 사직서가 e메일로 발송된다. 제출 예정일도 설정할 수 있다. “깔끔하고 아름다운 마무리”를 표방하며 “입사와 동시에 사표를 작성한다”는 나름의 규칙도 적혀있다. ● 내밀한 영역까지 침투, 이별·사과·질투심 유발도 대행 “택배 보내듯 감정도 대신 전달” 이별, 사과, 질투심 유발 등을 대행하는 서비스도 인기다. 이 업무만을 전문 수행하는 업체는 따로 없으나, 주로 역할대행 업체들이 맡는다. 과거 애인·하객 대행 등을 주로 수행했다면 최근 이별, 사과 통보 등 보다 감정적 영역의 일을 대행하는 게 특징이다. 의뢰인 대신 유선상으로 이별을 통보하기도 하지만 업체 직원들이 상대를 만나 부모, 친인척 역할을 하며 정중히 의사를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연인의 과도한 집착, 안전한 이별, 집안 반대 등이 주된 서비스 이용 사유다. 가격은 보통 10만~30만 원대. 요구사항에 따라 수백만 원까지 높아지기도 한다. 역할대행119 대표는 “대학생, 여성 이용객이 많다. 시기적으로 크리스마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를 앞두고 깔끔한 이별을 원하는 일이 많은데, 대면접촉을 꺼리고 이별과정에서 상대 반응이 두려운 이들이 저희를 찾는다”고 했다. 사과대행의 경우 과실 때문에 ‘진상’ 손님을 상대하기 힘들어 느껴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이 많다. 또 돈을 제때 갚지 못할 때 공손하고 정중하게 갚지 못하는 불가피한 이유와 사과를 전해달라고 의뢰하는 경우도 있다. 역할극을 통해 연인 사이에서 질투심을 유발해달라는 요청도 꽤 들어온다. 전문가들은 대면접촉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사회에서 대행 서비스가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인간관계를 맺고 끊는 능력이 떨어진 현대인이 정신적 압박감, 상처로부터 탈피하고픈 심리가 반영된 현상이다. 서비스는 향후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누군가와 마주하는 것 자체를 불편해하고 감정전달에 서툰 사회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가 정해주는 과외, 학원에 맞춰 살아온 젊은층은 앞으로도 대리인을 내세운 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것”이라고 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집 밖으로 몇 걸음만 나가도 운동장, 길거리, 화단, 놀이터에서 흔히 밟히는 게 모래다. 집에 돌아올 때면 모래는 더러운 흙먼지쯤으로 여겨져 깨끗하게 털어내고 일상생활과 분리해야 하는 껄끄러운 존재가 된다. 그런데 지구 한편에서는 이 모래 때문에 싸움이 난다. 한 줌이라도 더 모래를 차지하려고 도둑질, 살인까지 난다는 사실이 믿어지는가. 이는 흔해 빠진 줄 알았던 모래가 지구에서 점차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모래시계 속 모래가 다 떨어져 간다”고 경고한다. 그리고 모래가 사라진다는 건, 인간이 그 위에 쌓아올린 인간 문명에도 위기가 닥쳤음을 뜻한다. 미국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모래가 유한한 자원임을 일깨우기 위해 책을 썼다. 뉴욕과 플로리다는 물론이고 인도, 아랍에미리트, 중국 내몽골 등 모래를 둘러싼 세계 이곳저곳을 취재하며 우리가 몰랐던 모래의 진짜 모습을 들려준다. 책은 모래를 찾아 떠나는 가이드북이자 인간의 문명을 짚은 역사서인 동시에 알찬 환경서이기도 하다. 모래라고 다 같은 모래는 아니다. 입자 크기, 재질, 성분 구성비에 따라 인간에게 더 유용한 모래가 있다. 지질학 척도에 따르면 모래는 통상 0.0625mm에서 2mm 크기의 단단한 알갱이를 말한다. 보통 200만 년에 이르는 일정 주기를 반복하며 생성된다. 지질학자 레이먼드 시버는 “모래 알갱이는 영혼은 없지만 환생한다. 침전, 퇴적, 융기, 침식 과정에서 새로 태어나고 조금 더 둥글어진다”고 썼다. 지금 밟고 지나간 모래의 출생을 되짚어 올라가다 보면 인류의 역사도 초월할 가능성이 높다. 모래의 70%는 석영이라는 광물로 이뤄져 있다. 반도체, 스마트폰, 유리 등에 활용하는 이 물질은 ‘실리카(silica)’로도 불리며 현대문명에서 쓰임새가 많다. 석영은 지구상에서 가장 풍부한 산소와 규소의 화합물이다 보니 모래를 사실상 무한한 자원으로 여기는 것도 틀린 건 아니다. 미 하와이대의 한 연구원은 세계 해변에 각각 1mm³의 모래가 뒤덮여 있다고 가정해 모래 알갱이가 750경(京)에 이를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써도, 써도 남아돌 것 같은 모래의 고갈은 현실이 됐다. 인간이 그만큼 모래를 무분별하게 채취했기 때문이다. 채취한 모래 대다수는 급속한 도시화와 맞물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에 쏟아부어졌다. “지구상 사람 한 명당 콘크리트가 40t씩 존재한다”는 지적처럼 인류의 70%가 콘크리트 건물에 살며, 도시 인구는 매년 6500만 명씩 늘고 있다. 인류가 연간 소비하는 모래와 자갈은 500억 t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를 덮을 수 있는 양이다. 두바이, 카타르에서 진행한 인공 섬 프로젝트는 모래 소비의 신기원이 됐다. 그뿐만 아니라 나라의 역사 자체가 곧 간척의 역사인 네덜란드, 한국 서해안에서도 간척사업은 활발하다. 저자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 만들어진 새로운 대지에서는 공기를 제외한 모든 게 인공”이라고 말한다. 모래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자 모래는 곳곳에서 역습을 벌인다. 모래 해변은 사라졌고, 채취장 인근 생태계는 망가졌다. 지난 10년간 인도, 스리랑카에서는 물에서 숨쉴 수 없게 된 악어들이 강변에 출몰해 6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모래로 땅을 매립한 베트남 난사군도 등은 영토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모래 위에 세운 누각을 뜻하는 ‘사상누각(沙上樓閣)’이란 말은 어쩌면 인간 문명 그 자체를 일컫는 말일지 모른다.김기윤 기자 pep@donga.com}
한국연극협회는 15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문예위)가 지역 문화예술계의 균형적인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고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협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문예위의 올해 공연예술 중장기 창작지원사업 공모에 지원한 전국 226개 연극단체가 지원했으나 선정된 23개 단체 중 21개가 서울 소재이며 나머지 2개 단체도 활동 영역이 서울”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사업 목적이 국내 문화예술생태계의 상생과 안정적 제작 환경기반 조성이라는 데에 있음에도 서울 지역의 단체만 선정한 것은 지역 단체에 성장의 기회가 간절하다는 사실을 무시한 행태”라고 지적했다. 협회는 이번 사업 심의위원으로 서울 지역에서 활동하는 전문가로만 구성된 점에도 문제를 제기하며 “지역 배제 의도가 있는 게 아닌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협회는 정확한 선정 사유, 문제 해결방안을 비롯한 문예위의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