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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른 아네르센 북한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55·노르웨이·사진)이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에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다고 밝혔다. 아네르센 감독은 계약 만료일인 지난달 31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경제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머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2016년 5월에 부임한 그는 1991년 팔 체르나이(헝가리) 이후 북한의 두 번째 외국인 감독이었다. 그의 부임 당시 노르웨이에서는 유엔 제재 대상인 북한 감독을 맡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논란이 일었다. 아네르센 감독의 연봉은 10억 원가량으로 알려졌고 부인과 평양 고려호텔 스위트룸에 머물며 차량과 운전사를 지원받았다. 당초 북한의 요청에 따라 2022년 카타르 월드컵까지 북한 팀을 이끌고 싶다던 그였지만 이날은 “머물고 싶지 않다”며 재계약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가 이끈 북한은 지난해 동아시안컵 본선(4위)에 올랐지만 유엔 제재 때문에 4위까지 주어지는 상금을 못 받기도 했다. 로이터통신은 “북한 경제에 큰 타격을 입힌 유엔 제재가 스포츠에도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에 앞서 그는 지난해 말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에 머물면서 가장 힘든 일은 외롭다는 것과 사고방식의 차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축구 국가대표팀의 측면 공격수 권창훈(24·사진)이 물오른 골 감각을 이어갔다. 지난달 25일 열린 북아일랜드와의 평가전(1-2 한국 패)에서 선제골을 넣었던 권창훈은 소속팀 디종에 복귀한 뒤 치러진 리그 경기에서도 골맛을 봤다. 권창훈은 1일 프랑스 디종에서 열린 리그1(1부 리그) 올랭피크 마르세유와의 안방경기에서 팀이 0-1로 끌려가던 후반 28분 동점골을 터뜨렸다. 이날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린 권창훈은 후반 27분 그라운드에 투입됐다. 그는 교체 투입 1분 만에 팀 동료가 상대 왼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왼발 발리슛으로 연결해 골망을 흔들었다. 디종 구단은 홈페이지를 통해 “경기에 투입되자마자 권창훈이 아름다운 발리슛으로 팬들을 기쁘게 했다. 경기 흐름에 빠르게 적응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권창훈은 2월 11일 니스와의 경기(1골) 이후 49일 만에 리그 7호 골을 기록했다. 유럽 축구 통계사이트 ‘후스코어드닷컴’은 권창훈에게 팀 내 최고 평점인 7.3점을 줬다. 디종은 권창훈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수비진이 집중력 부족으로 무너지면서 2골을 더 내줘 1-3으로 패했다. 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대회를 앞두고 동료들에게 메달 색은 상관없으니 제발 (메달을) 따서 내가 은퇴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메달 획득에 실패했으니 다시 도전해야죠.”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중 최고령이었던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드 정승원(60). 그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정승원은 19일 “나이가 많기 때문에 메달을 획득했다면 은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패럴림픽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면서 “2022년 베이징 겨울패럴림픽도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평창 패럴림픽에서 예선을 1위(9승 2패)로 통과했지만 준결승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연달아 패해 4위에 그쳤다. 정승원은 “그동안 해외 대회에 참가하면서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얻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는 것(은퇴)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 후배 장애인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정승원은 과거 패럴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세 번이나 탈락했다. 하지만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한 덕분에 평창 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 수 있었다. 그는 “후배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나처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패럴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새 인생을 준비하는 선수도 있다.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주장 한민수(48)다. 그는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의족을 찬 채 줄을 잡고 슬로프를 오르는 성화 봉송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대표팀이 승리한 후 빙판에 동료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누구? 챔피언!”이라고 외치며 용기를 북돋아주던 그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한민수는 “사실 메달을 못 따도 은퇴하려고 했는데…. 후배들이 은퇴 선물로 메달을 안겨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대표팀은 평창 패럴림픽에서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했다. 18년간의 선수 생활을 마친 한민수는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각오다.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면서 “장애인 선수 출신의 첫 국내 장애인아이스하키 지도자가 돼 후배들에게 내가 가진 기술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팀 동료들은 캡틴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 정승환(32)은 “한민수는 우리의 ‘레전드’다. 오랜 시간 팀을 위해 헌신한 그가 이제는 지도자로서 좋은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대회를 앞두고 동료들에게 메달 색은 상관없으니 제발 (메달을) 따서 내가 은퇴할 수 있게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결국 메달 획득에 실패했으니 다시 도전해야죠.”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에 출전한 한국 선수 중 최고령이었던 휠체어컬링 대표팀 서드 정승원(60). 그는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다. 정승원은 19일 “나이가 많기 때문에 메달을 획득했다면 은퇴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패럴림픽 메달을 목에 걸지 못했기 때문에 욕심을 버리지 않았다”면서 “2022년 베이징 겨울패럴림픽도 출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평창 패럴림픽에서 예선을 1위(9승 2패)로 통과했지만 준결승과 동메달결정전에서 연달아 패해 4위에 그쳤다. 정승원은 “그동안 해외 대회에 참가하면서 다양한 기술과 경험을 얻었기 때문에 여기서 멈추는 것(은퇴)은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이 후배 장애인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 했다. 정승원은 과거 패럴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세 번이나 탈락했다. 하지만 꾸준히 체력 관리를 한 덕분에 평창 패럴림픽에서 태극마크를 달수 있었다. 그는 “후배 장애인들에게 꿈과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 나처럼 포기 하지 않고,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패럴림픽을 끝으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새 인생을 준비하는 선수도 있다.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주장 한민수(48)다. 그는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의족을 찬 채 줄을 잡고 슬로프를 오르는 성화 봉송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안겼다. 대표팀이 승리한 후 빙판에 동료들을 모아 놓고 “우리가 누구? 챔피언!”이라고 외치며 용기를 북돋아주던 그의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 한민수는 “사실 메달을 못 따도 은퇴하려고 했는데…. 후배들이 은퇴 선물로 메달을 안겨준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이끄는 대표팀은 평창 패럴림픽에서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사상 첫 패럴림픽 메달(동메달)을 획득했다. 18년간의 선수생활을 마친 한민수는 지도자로서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각오다. 그는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이 있다. 끝은 언제나 새로운 시작이다”면서 “장애인 선수 출신의 첫 국내 장애인아이스하키 지도자가 돼 후배들에게 내가 가진 기술을 물려주고 싶다”고 말했다. 팀 동료들은 캡틴의 도전에 박수를 보냈다. 정승환(32)은 “한민수는 우리의 ‘레전드’다. 오랜 시간 동안 팀을 위해 헌신한 그가 이제는 지도자로서 좋은 길을 걷게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정윤철 trigger@donga.com}

경기에서 승리한 후 빙판 위에 태극기를 놓고 애국가를 불렀다. 감격스러운 승리에 선수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하늘나라에서 지켜보고 계신 아버지! 제가 해냈어요!”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를 비롯한 관중들도 선수들도 다 함께 눈시울을 붉힌 그때, ‘빙판 위의 메시’로 불리는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의 에이스 정승환(32·포워드·사진)이 가장 먼저 떠올린 사람은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2014 소치 패럴림픽을 앞두고 폐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반드시 패럴림픽 메달을 따겠다’고 말씀드렸다. 처음에 내가 운동을 하는 것을 반대하셨던 아버지가 그때는 응원을 해주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치에서 대표팀은 7위에 그쳤고 정승환은 메달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정승환은 “4년 만에 평창에서 메달을 목에 걸었다. 늦었지만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켜 행복하다”고 말했다. 정승환이 맹활약한 대표팀은 17일 강릉하키센터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이탈리아를 1-0으로 꺾었다.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사상 패럴림픽 첫 메달(동메달)이다. 정승환은 경기 종료 3분 18초 전에 상대 골대 뒤편으로 파고든 뒤 강력한 패스를 연결해 장동신(42)의 결승골을 도왔다. 정승환은 “내가 아니라 누구든 골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과거에 아픔을 안긴 이탈리아를 꺾어 더 기쁘다”고 말했다. 이탈리아는 소치 대회에서 정승환과 대표팀에 아픔을 안긴 팀이다. 당시 대표팀은 예선 1승 1패를 기록한 상태에서 이탈리아에 1-2로 져 준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정승환은 “아버지를 목포에 있는 봉안당에 모셨다. 대회가 끝났으니 동메달을 들고 당당히 아버지께 가겠다”고 말했다. 동료들과 애국가를 부른 정승환은 “내 인생 최고의 애국가였다”고 말했다. 정승환은 다섯 살 때 공사장에 쌓아 놓은 파이프 더미에 깔리면서 오른쪽 다리를 잃었다. 체격(167cm, 53kg)은 왜소하지만 스피드가 탁월하다. 상대팀은 그를 막기 위해 몸과 썰매를 부딪쳐 온다. 이날도 그는 진통제를 맞고 경기를 뛰었다. 정승환은 “경기 전날에는 진통제 주사를 맞았고, 경기 중에는 진통제 알약을 먹었다”고 말했다. 정승환은 체코와의 2차전 연장 결승골을 비롯해 팀 최다인 3골, 3도움을 기록했다.강릉=정윤철 trigger@donga.com·임보미 기자}
“그의 눈이 정말 여기까지(눈앞으로 손을 빼며) 튀어 나와 있었다. 엄청난 집중력이었다. 첫 바퀴를 돌 때부터 다른 나라 코치들이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을 정도였다.” 캐나다에서 온 한국대표팀 캐스퍼 위즈 코치는 신의현(38·창성건설)의 눈빛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신의현이 17일 2018 평창 겨울 패럴림픽 크로스컨트리 7.5km에 나섰을 때였다. 앞서 출전한 5개 종목에서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한 그는 “지고 싶지 않다”며 눈까지 부라리면서 레이스에 나섰다. 경기 후반부 한때 2위 대니얼 크노슨(38·미국)에게 2.6초 차까지 추격을 허용했지만 끝까지 힘을 잃지 않고 5.3초 차로 그토록 원하던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전쟁터에 나와서 이거 아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했습니다. 주행 당시에 5초 차가 난다고 하기에 제가 5초를 뒤지고 있는 줄 알았어요. 따라 잡으려고 열심히 했습니다. 피니시 직전까지도 2위인 줄 알고 들어왔는데 전광판을 보니 태극기가 있더라고요.” 신의현은 거듭된 좌절에도 지치지 않을 수 있던 원동력을 묻자 “제가 한 말이 있잖아요. 애국가 들려드린다고 말을 뱉었는데 약속을 안 지키는 사람이 될까 봐 잠이 안 왔어요. 제가 신용은 정말 좋은 사람인데”라며 웃었다. 3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천안시 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 크고 작은 단체들의 일을 돕던 행정 직원이었다. 당시만 해도 겨울 패럴림픽은 상상도 하기 힘든 무대였다. 그랬던 신의현의 운명이 바뀌게 된 건 우연하게 이어진 인연의 연속 때문이다. 2015년 창성건설 배동현 대표(현 평창 겨울패럴림픽 선수단장)는 장애인 노르딕스키연맹을 맡겠다며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장애인 체육과장이었던 현 정진완 평창 패럴림픽 총감독을 찾아갔다. 정 총감독은 대뜸 자신을 찾아온 배 대표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정 감독은 “장애인을 이용해 사업 좀 해보려는 양아치인 줄 알고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뭐 열심히 해보시면 인정단체 정도는 해 드리겠다며 돌려보냈다”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장애인노르딕스키에 배 대표가 애정을 쏟는 모습에 마음을 돌렸다. 선수 모집에 애를 먹자 정 감독은 충남장애인체육회에서 근무하던 시절 봤던 신의현을 떠올렸다. 힘 하나는 장사였던 그에게 노르딕스키(북유럽에서 발달한 종목으로 크로스컨트리, 스키점프 등이 있음)가 제격일 것 같았다. “노르딕스키를 권했더니 운동에만 전념하려면 먹고사는 게 문제라고 얘기를 하더라. ‘그럼 실업팀을 추진할 테니 해보겠느냐’고 했더니 ‘그러면 한번 해봐야지요’ 하더라. 그래서 바로 배 대표에게 전화를 해 ‘이런 선수가 있는데 실업팀 하나 있으면 좋지 않겠느냐, 기왕 지원하실 거면 하나 해주시죠’ 했다. 배 대표는 ‘해야 돼요? 그럼 할게요!’라고 단번에 OK 했다.” 정 총감독에게 강력한 임팩트를 남겼던 ‘힘’의 비결로 신의현은 농사일을 꼽았다. 신의현은 “집에서 밤 농사를 했는데 밤이 한 포대에 40kg씩 나간다. 창고에 많이 쌓을 때는 몇백 짝씩 쌓았는데 그러면서 허리 힘이 길러진 것 같다. 또 어머니가 칡즙 장사도 하셨는데 칡을 캐오면 kg당 500원씩 쳐주셨다. 친구들이랑 경운기 끌고 와서 3, 4시간씩 캐서 용돈을 많이 벌었다. 칡뿌리 캐느라 괭이질, 삽질 하면서 당기는 힘이 좋아진 것 같다”며 웃었다. 사고 후 인생의 낭떠러지에 떨어진 줄만 알았다던 신의현은 예전의 자신처럼 힘들어할 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도 전했다. “장애가 있으신 분들도, 사고로 병원에 계신 분들도 있을 텐데 제가 선수 생활 하는 동안 최대한 열심히 하면 그분들도 좋은 영향을 받지 않을까요. 일단 벌어진 일은 어쩔 수 없잖아요. 앞으로 좋은 일만 생길 거라는 생각을 하셨으면 합니다. 저도 제가 이렇게 될 줄 몰랐습니다. 모두 할 수 있습니다.” 신의현은 4년 뒤 베이징 겨울패럴림픽은 물론이고 2년 뒤 도쿄 여름패럴림픽의 핸드사이클 도전도 선언했다. 평창에서 크로스컨트리, 바이애슬론에 도전장을 냈던 ‘엄마 선수’ 이도연(46)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여름패럴림픽에서 은메달을 땄던 그 종목이다. 신의현은 “사이클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 나간 대회에서 도연 누나한테도 졌다. 그때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열심히 해서 외국 선수들을 이겨보고 싶다. 지금 생각해도 또 열 받는다. 그래서 도전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평창=임보미 bom@donga.com·정윤철 기자}

경기에서 패한 뒤 승자에게 축하의 악수를 건넬 때만 해도 담담한 표정을 짓던 그들이었다. 하지만 “괜찮아!”라고 외치는 관중들을 뒤로하고 경기장을 빠져나온 뒤에는 차오르는 슬픔을 숨길 수 없었다. 패배의 아쉬움과 힘겹게 대회를 준비했던 기간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한국휠체어컬링 대표팀 스킵(주장) 서순석(47)은 “(경기 후)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시면 그때는 꼭 메달을 따겠다고 빌었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대표팀은 17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캐나다와의 평창 패럴림픽 동메달 결정전에서 3-5로 패해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풀리그 예선을 1위(9승 2패)로 통과한 대표팀이지만 준결승부터 토너먼트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고비 때마다 샷 실수가 나오며 무너졌다. 백종철 대표팀 감독은 “노르웨이와의 준결승(6-8 한국 패)부터 승기를 잡아야 할 때 잡지 못하고 무너졌다. 앞으로 심리 컨트롤 등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백 감독은 “사실 오늘 아침부터 눈물이 났다. 선수들은 정말 힘든 훈련을 참아가며 최선을 다해 준비했다”고 말했다. 하반신 마비 선수들로 구성된 대표팀의 체력 훈련은 고통과의 싸움이었다. 체력 훈련은 경기 이천훈련원에서 10개월 동안 하루 2시간 30분씩 실시됐다. 서드 정승원(60)의 휠체어 손잡이에는 ‘죽지 않을 만큼 엎드려라’라고 적혀 있다. 이는 투구 시 최대한 허리를 숙이라는 뜻이다. 딜리버리 스틱으로 스톤을 밀 때 자세가 높으면 스톤이 흔들려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 백 감독은 “하반신 마비 선수들은 허리 아래쪽으로는 힘을 못 쓰기 때문에 허리를 구부렸다가 다시 펴는 데 고통이 따른다”고 말했다. 대표팀 선수들이 허리 근육의 가동 범위를 넓히기 위해 선택한 것은 ‘복싱’과 ‘탁자에서 공굴리기’다. 대표팀 관계자는 “상반신만 이용해 복싱을 하면 허리 주변 근육과 복근이 강화된다. 선수들의 스트레스 해소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선수들은 숙소에서도 긴 탁자 앞에 모여 틈틈이 허리 운동을 했다. 탁자 앞에 앉아 공을 앞으로 굴리면서 허리를 최대한 숙이는 훈련이다. 대표팀 관계자는 “이 훈련을 하고 나면 선수들의 유니폼이 땀으로 흠뻑 젖는다”고 말했다. 그는 “체력 훈련 중에는 벤치 프레스와 턱걸이도 있었다. 상반신만 사용하는 힘든 운동이었지만 선수들은 메달에 대한 간절함으로 모든 과정을 버텨냈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어느새 4년 뒤 베이징 패럴림픽을 향해 다시 뛰겠다는 각오다. 백 감독은 “세계선수권이든, 베이징 패럴림픽이든 지금보다 더 독하게 준비해서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살면서 여러 가지 고통을 겪기 마련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소아마비로 고생했고 지금은 치매와 싸우고 있다. 하지만 고통을 겪을 때마다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의지는 인간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30년 만에 안방에서 열리는 패럴림픽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황연대 성취상’의 시상자로 나서는 황연대 대한장애인체육회 고문(80·사진)이 16일 강원 평창 알펜시아리조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자신이 치매를 앓고 있다고 밝혔다. 황 고문은 “어떤 역경도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으니 이번에도 이겨내리라 생각한다. 패럴림픽 선수들도 후배 장애인들의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황연대 성취상은 소아마비 여성으로 의사가 된 뒤 장애인 권익운동을 펼쳐온 그가 1988 서울 패럴림픽 때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에 기부한 기금으로 만들어졌다. 장애 극복과 도전정신을 훌륭하게 발휘한 남녀 선수 각 1명에게 수여된다. 시상식은 18일 폐회식에서 진행된다. 역대 황연대 성취상 수상자 중 6명이 황 고문에게 감사패와 메달을 전달한다. 황 고문은 “제가 어릴 때 지나가는 사람이 ‘저러고 살아서 무엇 하나’라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초등학교 입학 때도 (소아마비라는 이유로) 떨어진 아픔이 있다.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여전히 장애인이라고 입학 때 불이익을 당한다는 소리가 들리는데 이런 미개한 수준에 있는 우리나라가 당사자로서 가슴이 아프다. 죽기 전에 이런 일이 개선되기를 간절히 부탁하고 싶다”고 말했다 평창 패럴림픽 수상자로는 애덤 홀(뉴질랜드)과 시니 퓌(핀란드)가 선정됐다. 척추 장애를 가진 홀은 알파인스키 선수로 뉴질랜드에서 장애인 어린이 지도에 앞장섰다. 이번 대회 슈퍼복합 남자 입식 스키 동메달을 땄다. 좌식 크로스컨트리스키에 참가한 퓌는 스키 선수로 활동하다 17세에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2회 연속 패럴림픽에 참가했고 패럴림픽 운동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한국의 신의현과 양재림을 포함해 9개국 13명이 후보로 올랐었다.평창=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이 18일 오후 8시 강원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리는 폐회식을 끝으로 막을 내린다. 49개국 570명의 참가 선수들은 열흘간의 무대를 신체의 한계와 역경을 뛰어넘는 뜨거운 축제의 장으로 만들었다.》 “빙판 위 전사가 되어서 모든 힘을 쏟아붓고 후회 없이 뛸게. 꼭 이겨서 메달을 걸어 줄 거야.”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 이지훈(29)은 17일 이탈리아와의 동메달 결정전을 앞두고 아내 황선혜 씨(31)에게 각오를 전했다. 둘은 지난해 10월 결혼식을 올렸다. 신혼여행도 미루고 이번 대회를 준비했던 이지훈은 마지막 경기를 끝낸 뒤 황 씨를 위한 ‘메달 세리머니’를 꿈꾼다. 이지훈은 장갑차 조종수로 군 복무 중이던 2010년 11월 제대를 두 달 앞두고 장갑차에 깔렸다. 사경을 헤매던 그는 두 다리를 잘랐다. 장애인이 된 그는 처음에는 “내가 왜 살아났을까”라며 좌절하다 3개월 방황 끝에 다시 일어섰다. “어차피 살 거라면 지금부터라도 즐겁게 살자는 마음이었죠. 일부러 웃고 더 좋은 생각만 떠올렸습니다.” 이지훈 특유의 ‘웃는 상(얼굴)’은 그렇게 탄생했다. 지금의 아내 황 씨가 반한 그의 트레이드마크 같은 표정이다. 이지훈은 2014년 아이스하키에 입문하며 운동선수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상체 근력을 키우기 위해 여름스포츠로 조정도 배웠다. 조정은 아내와의 인연을 맺어줬다. 이지훈이 조정 훈련을 위해 일주일간 합숙을 했던 2016년 10월. 황 씨는 당시 조정 코치로 이지훈을 포함해 장애인 선수들을 지도했다. 이지훈은 황 씨의 밝은 성격에, 황 씨는 이지훈의 당당한 모습에 호감을 느껴 교제를 시작했다. 황 씨에게는 이지훈의 따뜻하고 강인한 마음만 보였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엔 그의 장애만 보였던 모양이다. 황 씨에게 온갖 걱정이 쏟아졌다. 황 씨 부모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딸이 고생할까 봐 둘의 만남을 완강히 반대했다. “밥 한 번만 같이 먹어보자”는 황 씨의 간곡한 요청에 못 이겨 이지훈과 첫 만남이 이뤄졌다. “당시 장인어른은 ‘나중에 선혜가 힘들지 않겠나’라고 물었죠. 저는 ‘자신 있습니다. 그때는 그때고 선혜 제가 잘 보살필 수 있습니다’라고 당차게 답했습니다.” 이지훈은 그 자리에서 “예쁘게 만나라”는 허락을 받아냈다. 그리고 약 1년이 지나 장인 장모는 이지훈의 열렬한 지지자가 됐다. 장애인이란 편견이 가시자 이지훈의 진가가 보였다. 장인 장모는 사위 이지훈의 경기장을 찾아 “가문의 영광이다”고 주변에 자랑한다. 황 씨에겐 “천사 같은 아들이 생겼다”며 고마워한다. 황 씨는 “패럴림픽을 통해 남편이 살아있음을 느끼면서 뛸 수 있고, 또 무언가를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차있는 모습만 봐도 행복하다”고 말한다. 이지훈은 그런 황 씨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전했다. “신혼인데 집보다 밖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나 때문에 외롭고 힘들었지? 지금까지 잘 참고 이겨내 줘서 고마워. 이제 한 경기 동메달 결정전이 남았어. 자기한테 약속한 대로 꼭 이겨서 메달 걸어줄게.” 한편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예선 1위)도 17일 오전 9시 35분 강릉 컬링센터에서 캐나다(예선 2위)와 동메달 결정전을 치른다. 노르웨이와 중국이 결승에서 맞붙는다. 한국은 16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노르웨이(예선 4위)와의 준결승에서 연장 끝에 6-8로 졌다.김재형 monami@donga.com / 강릉=정윤철 기자}

관중석에서 “앵그리 버드 파이팅!”이라는 응원이 나왔다.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의 차재관(46)이 투구를 위해 양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굴릴 때였다. 투구 지점으로 향하는 그의 무뚝뚝한 표정과 짙은 눈썹이 게임 캐릭터 ‘앵그리 버드’와 닮았다는 이유다. 하지만 차재관은 환호가 쏟아져도 동요하지 않는다. 그는 “경기 중에는 게임 내용만 생각한다”고 말했다. 무표정이 트레이드마크인 차재관도 15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영국과의 평창 패럴림픽 예선 10차전이 끝난 뒤에는 활짝 웃었다. 한국은 영국을 5-4로 꺾고 준결승 진출을 확정했다. 승부처였던 8엔드에 대표팀 서드 정승원(60)이 6번 투구에서 상대 스톤보다 하우스 중앙에 가까운 멋진 샷을 구사해 역전승을 거뒀다. 차재관은 7, 8번 투구에서 상대 스톤의 경로를 막는 가드에 성공해 승리를 지켜냈다. 차재관은 “정승원의 멋진 샷 덕분에 모처럼 부담 없이 경기를 마무리했다”며 웃었다. 한국은 중국과의 예선 11차전에서도 7-6으로 승리해 1위(9승 2패)로 준결승에 올랐다. 한국은 16일 오후 3시 35분 노르웨이(4위)와 맞붙는다. 차재관은 “예선에서는 노르웨이에 일격(2-9 한국 패)을 당했지만 개의치 않는다. 자신감을 살리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말했다. 차재관의 포지션은 통상 3, 4번 투구를 하는 세컨드다. 하지만 한국은 국제 대회에서 높은 샷 정확도를 보여 온 그에게 최종 투구(7, 8번)를 맡겼다. 3, 4번 투구는 스킵(주장) 서순석(47)이 맡고 있다. 한국(세계 7위)이 예선에서 세계 4위 캐나다 등 강호를 꺾을 수 있었던 것은 고비마다 나온 차재관의 더블테이크 아웃(투구 한 번에 상대 스톤 2개를 하우스 밖으로 쳐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차재관은 최종 투구에 대한 큰 부담감에 시달렸다. 그는 스트레스로 인한 두통으로 평창 올림픽 선수촌의 물리치료실을 찾기도 했다. 차재관은 “승부를 결정지으려면 나 스스로를 믿어야 하는데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부담을 극복하는 비결은 든든한 버팀목인 아내와 자녀를 떠올리는 것이다. 차재관은 “큰아이가 11세, 작은애 둘은 쌍둥이로 8세다. 내가 국제 대회에서 메달을 따서 집에 가져갈 때마다 아내와 아이들이 너무 좋아한다. 그들을 떠올리면 힘이 생긴다”고 말했다. 그는 “큰아들 민규와 이름이 같은 선수가 평창 올림픽에서 은메달(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차민규)을 땄다. 그러니 민규 아빠인 나는 금메달을 따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들은 아빠에게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라며 동영상 응원 메시지를 보내줬다. 차재관은 2002년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다. 그는 “그동안 쌓아 올린 모든 것이 송두리째 무너진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찾은 재활병원에서 아내 오규재 씨(43)를 만났다. 오 씨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아픔을 겪고 재활병원에 입원한 상태였다. 함께 힘든 재활을 견뎌낸 둘은 결혼한 이후 복지관을 다니면서 다양한 스포츠를 접했다. 차재관은 2006년 휠체어컬링을 시작했다. 아내는 남편이 휠체어컬링에 전념할 수 있도록 했다. 오 씨는 “아이는 내가 키우고 남편은 컬링에만 집중하기로 했다. 대회를 마치고 올 때마다 남편이 좋아하는 지리산 표고버섯으로 요리를 해준다”고 말했다. 차재관은 “가족들이 직접 내 모습을 보지 않으면 답답하다면서 시간이 될 때마다 컬링센터를 찾아온다. 장애를 갖게 된 후 제2의 인생을 함께해 온 가족에게 꼭 금메달을 바치겠다”고 말했다. 강릉=정윤철 trigger@donga.com·강홍구 기자}

“죽을힘을 다해 (스톤을) 던졌는데 결과가 좋았어요!”(정승원) 15일 한국 휠체어컬링의 평창 패럴림픽 4강 진출이 확정된 영국전에서 ‘위닝샷’을 던진 선수는 맏형인 서드 정승원(60)이다. 그는 양 팀이 4-4로 맞선 최종 8엔드에 양 팀 스톤을 통틀어 하우스 중앙에 가장 가까운 1번 스톤을 만들어 냈다. 정승원은 중압감을 이겨낸 비결로 ‘심리 카드’를 꼽았다. 장창용 멘털 코치가 만든 카드에는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에 도움이 되는 글귀가 담겨 있다. 정승원의 카드 앞면에는 ‘D.W. S. N’ ‘L W 3 3 & 쭈우욱∼’이라고 적혀 있다. 정승원은 “D는 엎드려라(Down), W는 힘 조절을 해라(Weight), S와 N은 투구 거리가 짧으면(Short) 안 된다(Not)는 뜻이다. 자세를 낮춰 투구의 안정성을 높이고 힘 조절을 잘해서 하우스 중앙에 가깝게 가도록 스톤을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다른 문구는 ‘스킵의 지시대로 라인(Line)을 맞추고, 힘 조절을 해라(Weight). 그리고 마음속으로 숫자를 3까지 센 뒤 스톤을 던지면서도 3까지 세면서 천천히 하라’는 의미다. 내가 성격이 급해 꼭 숫자를 센 뒤 스톤을 던져야 한다”며 웃었다. 선수들은 경기 전과 4엔드 종료 후 휴식 시간에 심리 카드를 보며 마음을 다잡는다. 1, 2번 투구를 하는 리드 방민자(56)의 카드 뒷면에는 투구가 남은 동료들을 위한 행동 방식이 담겨 있다. 방민자는 “내 카드에는 ‘동료에게 긍정 에너지를 전달하자’는 말이 적혀 있다”고 했다. 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12분 13초.’ 주전 골리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한 출전 시간이다. 전날까지만 해도 “동료들 뒤에서 단단히 골문을 지키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던 그였다.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세계 3위)의 골리 유만균(44)은 13일 미국(세계 2위)과의 평창 패럴림픽 예선 B조 최종전(0-8 한국 패)에서 1피리어드에 교체됐다. 대표팀이 개인기가 좋은 미국에 ‘소나기 슈팅’을 허용하며 4골을 내준 뒤였다. 일본과의 1차전(세이브율 85.71%), 체코와의 2차전(세이브율 80%)에서 맹활약했던 그이지만 이날은 수비진의 붕괴 등으로 인해 제 몫을 다하지 못했다. 그러나 유만균은 미국전 패배가 남은 경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만들리라 믿었다. 유만균은 “감독님이 제가 받을 정신적 충격을 고려해 교체해주셨다. 하지만 정신력은 흔들림이 없다”면서 “지금도 더 많은 골을 막아줘야겠다는 생각뿐이다”고 말했다. 비장애인 아이스하키처럼 장애인아이스하키도 골리의 활약에 따라 승패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스틱 1개를 사용해 슈팅을 하는 비장애인과 달리 장애인아이스하키는 두 개의 스틱을 이용하기 때문에 더 다양한 각도에서 퍽이 날아온다. 유만균은 경기에 앞서 팀 동료가 골문 구석구석으로 날리는 다양한 퍽을 막는 훈련을 하면서 수비 감각을 끌어올린다. 대표팀은 15일 낮 12시 강릉 하키센터에서 캐나다(세계 1위)와 준결승을 치른다. 조직력이 뛰어난 캐나다는 다양한 루트로 상대의 골문을 위협한다. 유만균이 제 컨디션을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은 승리하면 패럴림픽 사상 최초 메달 획득에 성공한다. 유만균은 “어떤 팀이든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경기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유만균은 고교 시절에 야구부 포수로 활약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못 쓰게 되면서 프로 선수의 꿈을 접었다. 유만균은 “당시에는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걱정이 많았다. 지금도 야구 경기 중계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32세에 아이스하키에 입문하면서 다시 희망을 얻었다. 2014 소치 패럴림픽 때는 당시 세계 3위였던 러시아를 상대로 21개의 슈팅 가운데 19개를 막는 등 맹활약했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는 평창 패럴림픽에서 주목해야 할 선수 중 한 명으로 꼽았다. 경기를 마칠 때마다 그의 상반신은 멍투성이가 된다. 유만균은 “50개 정도의 슈팅을 막을 때도 있다. 그러면 다음 날 몸을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멍이 든다. 또 퍽을 막기 위해 순간적으로 빠르게 움직이다가 근육 경련이 일어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아이스하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는 메달 획득이라는 간절한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 유만균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게 한 아이스하키를 통해 패럴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고 싶다. 우리 팀은 세계적 아이스하키 강국의 벽을 뛰어넘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 꼭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혹시 경기 중에 실패에 대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지는 않았나요? 이제부터는 성공에 대한 이미지만 생각하세요. 그리고 꼭 푹 주무셔야 합니다!”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은 12일 밤 멘털 코치인 장창용 인천대 스포츠과학연구소 교수에게 이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다. 4연승 행진을 달리다가 독일에 첫 패배(3-4 한국 패)를 당한 직후였다. 장 교수는 대표팀이 결성된 지난해 6월부터 선수들의 심리 상담을 담당하고 있다. 대표팀 관계자에 따르면 메시지를 받은 선수들은 패배의 기억을 잊기 위해 노력했다. 선수들은 “오늘 경기는 빨리 잊자. 내일도 경기가 있다”며 서로를 독려했다. 투구 실수가 있었던 세컨드 차재관(46)은 가족들이 보낸 ‘아빠 힘내세요’ 영상 응원 메시지를 보며 기운을 얻었다. 분위기 반전에 성공한 휠체어컬링 대표팀 ‘오성(五姓) 어벤저스’(성이 모두 다른 다섯 명의 선수로 구성된 드림팀이라는 뜻)에 연패는 없었다. 세계 7위 대표팀은 13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핀란드(세계 9위), 스위스(세계 11위)와의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 휠체어컬링 예선 6, 7차전에서 각각 11-3, 6-5로 승리했다. 대표팀은 6승 1패로 중국과 공동 선두에 오르면서 4강 진출 전망을 밝혔다. 대표팀은 예선 11경기에서 8승 또는 9승 정도를 거두면 4강에 안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백종철 대표팀 감독(43)은 “매일 상대 팀의 전력과 현재 컨디션 두 가지 요소에 맞춘 분석 자료를 토대로 공략 방법을 연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스킵(주장) 서순석(47)은 세계컬링연맹과의 인터뷰에서 “독일에 진 뒤 긍정적인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패배는 금메달을 위한 값진 보약이며 이제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됐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핀란드전 승리가 전환점이 됐다. 백 감독과 상대를 초반부터 밀어붙여야 승기를 잡을 수 있다는 작전을 세웠다. 경기 초반 대량 득점에 성공하면서 쉽게 이길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강릉=정윤철 trigger@donga.com·강홍구 기자}
“캐나다와의 준결승에서는 반드시 선제골을 터뜨리고 싶다.”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 에이스 정승환(32)은 미국전을 마친 뒤 이를 악물었다. 2004년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이후 자신의 가장 큰 꿈이 세계 최강 캐나다를 꺾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표팀(세계 3위)이 평창 겨울패럴림픽 장애인아이스하키 4강전에서 캐나다(세계 1위)를 만나게 되면서 그의 각오는 더 단단해졌다. 대표팀은 13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미국(세계 2위)과의 예선 B조 최종전에서 0-8로 졌다. 승점 5에 머문 한국은 미국(승점 9)에 이어 B조 2위가 돼 15일 낮 12시 A조 1위 캐나다와 결승 진출을 다투게 됐다. 한국은 2015년부터 캐나다와 10번 싸워 모두 졌다. 대표팀은 이날 ‘선수비 후역습’ 전략을 내세웠지만 초반부터 상대의 개인기를 앞세운 전술에 수비진이 무너졌다. 정승환은 4강전에 대해 “강팀을 이기려면 반드시 먼저 득점을 해야 한다. 좀 더 공세적으로 나서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아이스하키를 시작한 후 캐나다 선수들의 경기 모습이 담긴 유튜브 동영상을 보며 공부했다”면서 “캐나다의 특성을 잘 아는 만큼 조직력을 살려 이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강팀을 만나면 우리는 더 강해집니다. 패럴림픽은 일반 대회와는 다르기 때문에 미국을 상대로 자신감 있게 경기하겠습니다.”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의 골리 유만균(44)은 강호 미국과의 경기를 앞둔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예선 B조에서 2연승을 기록한 대표팀(세계 3위)은 13일 낮 12시 강릉하키센터에서 세계 2위 미국과 예선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 이 경기 결과에 따라 조 1위가 결정된다. 12일 미국은 체코를 10-0으로 완파하고 조 선두(승점 6)에 올랐다. 이날 경기가 없었던 한국(승점 5)은 조 2위로 미국을 바짝 뒤쫓고 있다. 3위 체코가 승점 1에 머무르면서 한국은 미국전 결과와 상관없이 최소 조 2위를 확보해 패럴림픽 사상 첫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예선 B조 1위는 A조 2위와, B조 2위는 A조 1위와 4강전을 치른다. A조에서는 세계 1위 캐나다가 선두이기 때문에 한국은 미국을 꺾고 A조 2위와 맞붙어야 메달 획득의 목표에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다. 한국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미국과 8번 맞붙어 모두 졌다. 하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연승의 상승세와 안방 이점을 살려 미국을 꺾어 보겠다는 각오다. ‘빙판 위의 메시’로 불리는 대표팀 간판 공격수 정승환(32)은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해 미국을 꺾고 조 1위로 4강에 가겠다. 준비한 전략이 많으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1993년 어느 날 아침. 전기회사를 다니던 22세 청년 서순석(47)은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길에 올랐다. 신호 대기 중이던 그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뒤에서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차량은 뺑소니를 쳤다. 사고를 목격한 사람들은 서순석을 택시에 태워 병원으로 옮겼다. 앰뷸런스가 아닌 택시에 불안정하게 앉혀진 서순석은 척수가 심하게 눌렸고, 더는 두 발로 걷지 못하게 됐다. 중학교 시절 야구 선수로 활약했을 정도로 운동신경이 뛰어났던 그였다. 퇴원 후 그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시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웹마스터 자격증을 따며 취업을 준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우울증에 빠진 그는 동생 서현주 씨(46)에게 말했다. “나는 아직 젊어. 그런데 장애인이 된 나를 더는 세상이 받아주지 않아.” 서순석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고 협동을 해서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끼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 바람은 2009년 11월 휠체어컬링을 접하면서 이뤄졌다. 모두가 똘똘 뭉쳐 작전을 짜내는 컬링을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 사라졌던 자신감과 열정도 살아났다. 그는 휠체어를 타고 매일 운동장을 5km씩 달린 끝에 태극마크까지 달았다. 자신이 그토록 원했던 사람들과의 소통. 그리고 소통의 힘을 누구보다 잘 아는 서순석은 이런 경험을 살려 한국 휠체어컬링 대표팀을 이끌고 있다. 스킵(주장) 서순석이 이끄는 대표팀은 12일 강릉 컬링센터에서 열린 평창 패럴림픽 휠체어컬링 예선 4차전에서 캐나다를 7-5로 꺾었다. 캐나다는 패럴림픽 4회 연속 금메달을 노리는 강팀이다. 대표팀은 5차전에서는 독일에 3-4로 아쉽게 패해 영국, 독일 등과 공동 2위(4승 1패)를 기록했다. 백종철 대표팀 감독은 “전체적으로 혼전 양상이다. (예선 11경기에서) 8승 정도를 하면 4강에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 평창 겨울올림픽 때 한국 여자 컬링을 떠올리게 하는 한국 휠체어컬링의 선전을 이끌고 있는 서순석은 작전 회의 시간(팀당 38분)을 충분히 활용해 동료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작전을 수립한다. 스킵의 판단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다른 팀들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서순석은 “대표팀이 구성된 지 10개월밖에 되지 않아 서로 싸운 적도 있다. 하지만 포지션과 나이에 따른 대화법 교육까지 받아가며 팀을 융화시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컬링은 통상 스킵이 마지막 7, 8번째 투구를 하지만 서순석은 자신보다 투구 성공률이 높은 세컨드 차재관(46)에게 투구 순서를 양보했다. 그 대신 자신은 3, 4번째 투구를 한 뒤 작전 구상에 집중한다. 서순석은 “이기려면 욕심을 버려야 한다. 재관이가 너무 잘하고 있어 고맙다”고 말했다. 이날 캐나다와의 경기에서 서순석은 8엔드 차재관의 7번째 투구를 앞두고 “이것만 성공시키자. 믿고 있는 것 알지?”라고 말했다. 차재관은 “내가 책임질게!”라고 답했다. 차재관이 굴린 스톤은 상대 스톤 2개를 하우스 밖으로 쳐냈다. 승부를 뒤집을 수 없다고 생각한 캐나다는 패배를 선언했다. 차재관은 “서순석이 힘이 되는 말을 많이 해주기 때문에 최종 투구자로서 자신감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서순석은 경기 중에 좋은 샷을 해도 좀처럼 웃지 않는다. 그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런 그가 경기 중 환하게 웃을 때가 있다. 경기장을 찾아 자신을 응원하는 아내 유영은 씨(46)와 동생 현주 씨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 때다. 유 씨는 청각장애 1급으로 보청기를 착용하고 남편의 목소리를 듣고 있다. 서순석은 “아내가 ‘하던 대로만 해. 최선만 다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라고 항상 말해 준다. 가족 덕분에 용기를 얻고 있다”고 말했다.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당황했다. 예상보다 가팔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까지 내렸다. “혹시 미끄러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밀려왔다. 잘라낸 한쪽 다리에 의족을 끼고 머리에는 헬멧을 썼다. 헬멧에는 삶의 버팀목인 두 딸과 아내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태극마크를 단 아빠가 자랑스럽다”고 말하는 가족들을 떠올렸다. 슬로프 위에 놓인 줄을 잡았다. 주로 두 팔과 한쪽 다리의 힘에 의지한 채. 하체가 제대로 몸을 지지하지 못하므로 사실상 두 팔에 의지해 매달리듯 올라야 했다. 느렸고 절뚝였다. 균형을 잃고 기우뚱 넘어질까 우려하는 시선들, 침 넘기는 소리마저 들릴 듯한 긴장감 속에 그의 ‘생애 최고의 등반’이 계속됐다.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본 건 가족들뿐만이 아니었다. 한 발 한 발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발을 내딛는 그 모습에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눈물을 흘렸다. 기어코 성화 점화대 앞에 도착해 그가 두 팔을 번쩍 들며 환하게 웃는 순간 가족들은 “아빠 최고!”라고 외쳤다. 2018 평창 패럴림픽 개회식에서 최고의 감동을 안긴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 주장 한민수(48). 그는 성화를 등에 멘 채 줄을 잡고 슬로프를 올라 최종 공동 점화자인 평창 겨울올림픽 여자 컬링대표팀 주장 김은정과 휠체어컬링 대표팀 주장 서순석에게 전했다. 누리꾼들은 “역경을 극복한 장애인의 용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최고의 명장면이다”며 찬사를 보냈다. 한민수는 아이스하키 헬멧을 썼다. 등에 멘 성화봉의 불꽃이 바람에 날려 머리에 옮겨 붙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헬멧에는 두 딸(소연, 소리)과 아내(민순자) 등 가족의 이름이 있었다. 한민수는 “성화를 성공적으로 옮기자 우리 딸들이 너무 좋아했다. 팀 동료의 자녀들까지 멋있다고 한다. 내가 아이들한테 인기를 좀 얻은 것 같다”며 웃었다. 그가 장애를 극복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만든 사람이 가족들이다. 두 살 때 침을 잘못 맞은 뒤 관절염을 앓았다. 목발을 짚고 다녔던 그는 30세 때 무릎에 골수염이 생겨 왼쪽 다리를 절단했다. 결혼한 지 1년이 지난 때였고, 첫아이는 생후 4개월이었다. 한민수는 “다리를 절단한 상실감이 컸지만 가족을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휠체어농구와 역도 등을 하다가 2000년부터 아이스하키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민수는 “관중석 가까이에서 저를 보신 분들은 아마 제 표정을 보고 얼마나 당황했는지 아실 거다”고 말했다. 개회식 전에 줄을 잡고 슬로프를 올라가는 연습을 한 번도 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경기를 준비하는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 훈련이 없을 때 리허설에 참석하긴 했다. 그런데 그때마다 눈이 많이 와서 성화 봉송 연습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슬로프 등반 방식도 개회식 하루 전에야 확정됐다. 당초 한민수는 슬로프 3분의 1 정도를 계단을 이용해 오르기로 돼 있었다. 이문태 패럴림픽 개회식 총감독은 “무릎 구부리기가 자유롭지 않은 의족을 차고 경사가 급한 계단을 오르는 것이 위험해 보였다”며 줄을 잡고 오르는 방식으로 변경한 이유를 말했다. 개회식장 슬로프 길이는 약 42m이며, 경사도는 39도다. 한민수가 성화를 운반한 거리는 약 14m다. 한민수는 “부담이 컸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성공해 다행이다. 많은 국민이 감동을 받으셨다고 해서 만족한다”고 말했다. 그가 주장을 맡고 있는 한국 장애인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0일 강릉 하키센터에서 열린 일본과의 예선 B조 1차전에서 4-1로 이겼다. 수비수로서 온몸을 던졌다. 그는 “내 첫 국가대표 경기가 일본전이었는데 그때는 0-13으로 졌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패럴림픽 첫 경기를 승리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일본전 집중력이 흐트러질까 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도 하지 않아 자신에게 쏟아진 응원이 실감 나지 않았다는 그는 “한일전을 이겼으니 살짝 볼까 한다”며 웃었다. 한국은 11일 체코와의 2차전에서도 연장전에 터진 정승환(32)의 결승골에 힘입어 3-2로 이겼다. ‘빙판 위의 메시’ 정승환은 한쪽이 골을 넣으면 그대로 경기가 끝나는 ‘서든데스’ 방식으로 치러진 연장전 시작 13초 만에 골을 넣는 등 2골 1도움을 기록했다. 2연승을 달린 한국은 4강 진출이 밝아졌다. 극적인 승리에 한민수는 눈물을 터뜨렸다. 그는 “내 별명이 ‘울보’다. 경기가 끝난 다음에 가족들을 얼싸안고 함께 울었다”고 했다. 김정숙 여사는 이날 한민수 선수 가족들과 함께 경기를 본 뒤 “아버지가 자랑스럽네요”라며 축하했다. 18년간 아이스하키 선수를 해온 한민수는 “올림픽이 끝나면 지도자의 길을 준비할 생각이다. 마지막 올림픽에서 메달 목표를 이룬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강릉=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성화 점화대 앞에 놓인 경사진 슬로프 위에 한 가닥 줄이 놓여 있었다. 누군가가 그 줄을 잡고 힘겹게 오르기 시작했다. 등에는 타오르는 성화를 멘 채.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오르는 그의 왼쪽 다리는 의족이었다. 절뚝거리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슬로프를 끝까지 오른 그는 성화대 앞에 서 있는 최종 점화자에게 성화를 건넸다. 장애인 아이스하키 주장 한민수(48)였다. 30세 때 뒤늦게 골수염을 앓아 한쪽 다리를 잘라낸 그였다. 거친 숨을 몰아쉰 한민수로부터 성화를 건네받은 이의 얼굴이 조명 속에 드러나자 관중석에서 일제히 “와∼” 하는 함성이 터져 나왔다. 평창 겨울올림픽이 낳은 스타인 컬링 여자 대표팀 ‘팀 킴’의 주장 김은정이었기 때문이다. 김은정은 휠체어컬링 대표팀 주장 서순석과 함께 나란히 성화대 앞에 섰다. 김은정은 서순석이 탄 휠체어를 밀어 성화대 앞으로 갔고 둘은 함께 점화 지점에 불을 붙였다.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의 성화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동행’을 통해 활활 타올랐다. 9일 평창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패럴림픽 개회식 성화 점화는 고난을 극복한 장애인들의 열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많이 연출됐다. 장애인노르딕스키 대표 최보규와 북한 노르딕스키 선수 마유철이 함께 성화봉을 들고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이후 한국 장애인 크로스컨트리스키 여자 1호 국가대표 서보라미, 희귀 난치병으로 온몸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중증장애를 가진 박은총 군과 아버지 박지훈 씨, 알파인스키 양재림과 가이드러너 고운소리 등을 통해 전달됐다. 미끄럼틀 모양의 슬로프 계단을 절반쯤 올라간 양재림과 고운소리는 한민수가 등에 멘 특수 백팩에 성화봉을 꽂았다. 한민수는 의족을 낀 채 성화대까지 암벽 등반을 하듯 올라갔다. 가쁜 숨을 내쉬면서도 포기하지 않은 한민수의 모습에 관중은 큰 박수를 보냈다. ‘열정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Passion Moves Us)’란 주제를 내세운 패럴림픽 개회식은 영상 속에서 장애인아이스하키 선수가 날린 ‘불꽃 퍽’이 스타디움에 투사되면서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앤드루 파슨스 국제패럴림픽위원회(IPC) 위원장,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 피겨 스타 김연아, 이희범 대회조직위원장 등이 개회식을 지켜봤다. 휠체어장애인으로 구성된 18명의 휠체어합창단이 애국가를 불렀고, 시각장애 가수 이소정이 은하수의 꿈과 희망을 담아 연못에서 노래를 부르는 내용의 공연이 펼쳐졌다. 선수단은 한글 자음 순서에 따라 입장했다. 그리스가 가장 먼저 입장했고 북한이 34번째, 한국은 개최국으로서 가장 마지막인 49번째로 입장했다. 성화가 점화된 이후에는 소프라노 조수미와 가수 소향, 장애를 극복한 댄스 듀오 클론의 열정적인 무대가 펼쳐지며 뜨거운 무대를 마무리했다. 이번 대회에는 역대 최대인 49개국 570명이 참가한다. 18일까지 선수단을 비출 성화 아래서 관중과 선수들은 다함께 열정 속에 빠져들었다.평창=정윤철 trigger@donga.com·임보미 기자}

2018 평창 겨울올림픽에서 국내외 관람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던 ‘라이브 사이트’가 겨울패럴림픽 기간에도 운영된다. 평창동계패럴림픽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패럴림픽 개막일인 9일을 시작으로 대회가 끝나는 18일까지 평창 올림픽플라자, 강릉 올림픽파크 등에서 라이브 사이트가 개장된다. 조직위 관계자는 “라이브 사이트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패럴림픽 경기 생중계를 즐기는 동시에 다양한 문화 공연과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다. 경기 티켓을 구하지 못한 사람도 무료로 입장해 경기 관람과 문화 체험을 함께 즐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강릉 올림픽파크 내 라이브 사이트에서는 패럴림픽을 기념해 김근태 작가와 5대륙 9개국에서 온 36명의 장애 아동이 참여한 ‘들꽃처럼 별들처럼’ 전시회가 개최된다. 지적 장애를 지닌 아이들의 그림을 통해 평화를 향한 5대륙의 소망을 표현했다. 또한 10일에는 가수 빈지노, 제시, 비와이 등이 출연하는 콘서트가 열린다. 평창 올림픽플라자에는 ‘라이브 파빌리온(융복합콘텐츠전시관)’이 꾸려진다. 싸이, 지드래곤 등의 과거 콘서트 장면을 토대로 한 케이팝 가수들의 홀로그램 콘서트를 볼 수 있다. 또한 바이애슬론, 봅슬레이, 스키점프 등 5개 겨울스포츠 종목을 가상현실(VR)로 체험할 수 있다.평창=정윤철 기자 trigger@donga.com}

○ 기다렸던 뜨거운 승부 2018 평창 겨울패럴림픽의 성화가 밝게 타오른 가운데 한국 선수들은 대회 개막 후 첫날부터 뜨거운 승부를 펼친다. 결승 진출을 노리는 한국 장애인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10일 오후 3시 30분 강릉 하키센터에서 예선 B조 첫 경기로 일본과 ‘한일전’을 치른다. 비장애인(피리어드당 20분)과 달리 15분씩 3피리어드로 진행되는 장애인 아이스하키는 예선 A, B조(각 4팀)에서 각 조 2위까지 준결승에 진출한다. 대표팀은 1월 열린 일본 국제 장애인 아이스하키 선수권에서 5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상승세를 타고 있다. 대표팀의 핵심 공격수는 정승환(32)이다. 그는 다섯 살 때 공사장에 쌓아 놓은 파이프 더미에 깔리면서 오른 다리를 잃었다. 운동을 좋아했던 그는 의족을 차고 축구와 농구를 즐겼다. 2004년 대학에 입학한 뒤부터는 의족을 벗고 슬레지(sledge·썰매)에 앉아 아이스하키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독종’으로 불리는 그는 입문한 지 2년도 안 돼 태극마크를 달았고, 대표팀 에이스로 거듭났다. 정승환은 “‘빙판 위의 메시’라는 별명이 부끄럽지 않도록 멋진 드리블을 선보이겠다”고 말했다. 정승환과 함께 주목할 공격수는 ‘탈북 선수’ 최광혁(31)이다. 북한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 기차에 몰래 올라타 아이스크림을 파는 ‘꽃제비’ 생활을 했다. 열세 살 때 발을 헛디디는 바람에 기차에서 떨어졌다. 왼쪽 발목을 다친 그는 왼쪽 무릎 아래 부분을 절단했다. 2001년 한국 땅을 밟은 그는 지인의 소개로 아이스하키를 시작했고 지독한 연습 끝에 한국 국가대표가 됐다. 그는 “그동안 나를 도와준 모든 사람을 위해 이번 대회에서 꼭 좋은 성적을 거둬 보답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 25분부터 열리는 남자 좌식 바이애슬론 7.5km에서는 신의현(38)이 첫 금메달 사냥에 나선다. 그는 지난달 바이애슬론 세계선수권 7.5k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며 평창 패럴림픽에 대한 기대를 높였다. 11일 알파인스키 슈퍼대회전에서는 양재림(29)이 3년간 호흡을 맞춘 가이드러너 고운소리(23)와 함께 메달을 노린다. 이화여대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그간의 팀워크를 안방에서 뽐낼 각오다. 가이드러너가 먼저 출발하면 선수는 무선으로 전달받는 신호에 따라 슬로프를 내려간다. 두 명의 호흡이 그만큼 중요하다. 선수와 가이드러너가 함께 메달을 받는다.○ 장애 정도에 따라 기록 계산 달라진다 패럴림픽에서 속도 기록 측정은 ‘팩터 시스템’을 따른다. 장애 정도에 따라 일종의 가중치(팩터)를 주는 방식이다. 장애 등급이 다른 선수들끼리 속도를 겨룰 때 발생하는 불공정성을 해소하기 위해 적용된다. 적용되는 가중치는 그간 축적된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만들어졌으며 장애 등급마다 각각 다르다. 선수의 실제 기록에 이 팩터를 적용해 최종 기록과 순위를 정한다. 장애인 스키는 크게 좌식, 입식, 시각장애 스키로 나뉜다. 좌식 스키는 주로 하반신 마비 장애인이, 입식은 절단 장애인이 출전한다. 장애 정도에 따라 LW10(팔로 지지하지 않고 몸통 힘만으로 앉을 수 없는 상태)∼LW12(의족을 착용한, 입식·좌식 선택이 가능한 정도의 장애) 등급으로 나뉜다. 신의현은 LW12 등급이다. 팩터 시스템에 따르면 LW10.5 등급에 해당되는 선수들은 LW12 선수의 90%에 해당하는 기록으로 골인해도 같은 기록으로 인정받는다. 시각장애 등급은 B1∼B3로 나뉜다. B1(매우 낮은 시력, 빛 인식 불가)∼B3(패럴림픽 참가 가능한 선수들 중 최소 수준의 시력 손상, 눈가리개 착용) 등급으로 분류된다. 양재림은 중간 정도인 B2 등급이다.평창=정윤철 trigger@donga.com·임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