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욱

이기욱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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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에 익숙해질 때쯤 다시 경찰서로 돌아왔습니다. 유물이 들려주는 이야기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여러분의 이야기를 담겠습니다.

71wook@donga.com

취재분야

2026-01-08~2026-02-07
사건·범죄35%
정치일반20%
사회일반15%
인사일반12%
정당5%
교통5%
건강2%
검찰-법원판결2%
지방뉴스2%
노동2%
  • “너라도 살아서 나가”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요”…안타까운 사연들

    “김OO야, 너라도 살아서 나가. 수영 잘하잖아.” “엄마,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6일 오전 물이 급격하게 들이차던 경북 포항시 남구 우방신세계타운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 가족에 따르면 수영을 할 줄 알았던 아들 김모 군(15)은 이 말을 남기고 헤엄쳐 입구 쪽으로 향했다. 수영을 못하는 엄마는 아들을 보내고 죽음을 각오한 채 천장 모서리 배관 위에 엎드려 있었다가 오후 9시 41분경 14시간 만에 구조됐다. 천장과 배관 사이에 형성된 에어포켓(산소가 남은 공간) 덕분이었다. 하지만 실종자 중 두 번째로 늦게, 17시간 만에 발견된 아들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 병원서 ‘우리 아들’만 찾은 엄마7일 경북 포항 북구 포항의료원에는 전날 사망한 채 발견된 실종자 7명의 빈소가 마련됐다. 전날 극적으로 구출된 김모 씨(52)의 아들 김모 군(15)의 빈소도 차려졌다. 전날 극적으로 구조된 김 씨는 체온이 35도까지 떨어지며 저체온증에 시달리면서도 “우리 아들 어딨어?”라며 연신 아들을 찾았다고 한다. 가족들도 먼저 헤엄쳐 나간 김 군이 당연히 생존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김 군의 아버지는 이날 오전 병원을 찾아 아들의 사망 소식을 아내에게 직접 전해야 했다. “당신이 마음을 단디(단단히) 먹어야 우리 아(아이) 마지막을 볼 수 있다.” 청천벽력과 같은 남편의 말을 들은 김 씨는 그 자리에서 오열했다고 한다. 김 군은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엄마를 유독 따르던 ‘껌딱지 아들’이었다. 김 군 빈소를 찾은 친구 최모 군(15)은 “어머니가 드라이브를 가든, 장보러 가든 같이 따라가던 아들이었다”고 기억했다. 6일 새벽 지하주차장에 있는 차량을 옮기라는 관리사무소 방송이 나왔을 때도 엄마가 걱정됐던 김 군이 먼저 따라가겠다고 나섰다고 했다. 6일 김 군과 함께 냉천에서 물놀이를 하기로 약속했다는 최 군은 “오전 9시에 보기로 했는데 연락이 안 됐다. 계속 문자를 보냈는데 답이 없었다”며 마지막 문자를 하염없이 바라봤다. 빈소를 찾은 친구 정모 군(15)은 “노래방 가는 걸 참 좋아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하고 고개를 떨궜다.● “형, 차 못 갖고 나가겠다” 마지막 전화 김 군보다 1분 먼저 발견된 서모 씨(22)는 올 3월 해병대에서 갓 전역한 예비역 병장이었다. 서 씨는 독도에서 근무하는 경찰관 형이 두고 간 차를 물려받았는데 6일 오전 이 차를 옮기러 지하주차장에 갔다가 참변을 당했다. 당시 서 씨의 어머니는 “차 포기하고 그냥 올라와”라는 메시지를 보냈지만 아들의 답은 끝내 오지 않았다. 서 씨 고모에 따르면 서 씨는 사망 직전 형에게 마지막 전화를 걸어 “형, 차를 못 갖고 나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서 씨는 전역 후 한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성실함을 눈여겨 본 회사 측이 이달부터 정직원 전환을 결정한 상태여서 안타까움을 더했다. 해병대에서 함께 근무한 A 씨는 “힘들 때 끝까지 웃고 견디며 군 생활을 잘했던 친구였다”고 전했다. 이날 포항의료원에는 40년을 해로한 남모 씨(71)와 권모 씨(65) 부부의 빈소도 마련됐다. 빈소에선 노부부의 아홉 살 손자와 여섯 살 손녀는 “할아버지랑 할머니를 살려내요”라며 빈소에서 울음을 터트려 보는 이들이 눈시울을 적혔다. 권 씨의 동생은 “화장실 두 개짜리 새 아파트를 분양받아 좋아했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아직 공사 중이라) 입주도 못한 상태에서 이렇게 됐다”고 흐느꼈다. 일부 유족들은 “막을 수 있었던, 정말 어이없는 사고”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서 씨의 고모는 ”관리사무소에서 ‘차를 빼라’고 방송하지만 않았다면 이럴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포항=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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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장 배관위 엎드려 숨쉴 공간 확보… 14시간 버텨

    “아이고. 나온다, 나온다!” 6일 오후 8시 15분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우방신세계타운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 11호 태풍 힌남노가 퍼부은 폭우로 실종된 7명의 생환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주민들은 전모 씨(39)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너 나 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다. 이날 오전 7시 41분 포항남부소방서에 첫 실종 신고가 접수된 이후 12시간 34분 만에 첫 생존자가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던 전 씨는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에 전 씨는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천장에 달린 파이프를 잡고 숨 쉴 공간을 확보한 뒤 구조를 기다렸다고 한다. 오후 늦게 배수펌프 가동 소리와 구조대 소리를 들은 전 씨는 “살려 달라”고 계속 소리쳤고, 구조 작업에 투입된 해병대 특수수색대 대원들이 오후 7시 10분경 외부로 연결된 창문을 통해 전 씨를 발견해 구조했다. 상의를 벗은 채 밖으로 나온 전 씨는 들것에 실려 근처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을 찾은 전 씨의 회사 동료는 “저체온증을 호소했으나 상태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첫 생존자가 나타나자 주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주차장 입구에서 구조 현장을 지켜봤다. 1시간 반가량이 지난 오후 9시 41분경 다시 주민 김모 씨(52·여)가 구조됐다. 밖으로 나온 김 씨는 “너무 추워, 너무 추워”라고 말할 정도로 의식이 또렷했고 두 팔로는 몸을 꼭 감싸고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구조대가 지하주차장에 있는 물을 일정 수준 퍼낸 후 구명보트를 타고 들어갔는데, 김 씨가 주차장 천장 모서리 부분 배관 위에 엎드린 채 있었다”고 구조 상황을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생존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적 같은 일”이라며 “가용 자원을 총동원해 수색 및 구조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고 강인선 대통령실 대변인이 전했다.포항=김화영 기자 run@donga.com포항=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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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건희 박사논문, 다른 교수 논문과 9개문단 똑같아

    “역경과 역전을 통해 후대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주역을 연구 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2008년 2월 발표한 박사 논문에서 ‘주역(周易)’을 설명한 문장이다. 이 문장은 앞서 2005년 온라인 지식 거래 사이트 ‘해피캠퍼스’에 올라온 보고서와 띄어쓰기가 잘못된 부분까지 같았지만 인용 표시는 없었다. 이를 포함해 김 여사의 논문 중 주역을 설명한 59개 문장이 이 보고서와 동일했지만 인용 표시는 없었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그 밖에도 김 여사의 박사 논문에는 숙명여대 구연상 교수의 2002년 논문과 똑같은 문단이 9개에 달했지만 역시 인용 표시가 안 돼 있었다. 논문 제목의 ‘회원 유지’를 ‘member Yuji’로 표기해 논란이 됐던 학술지 논문(2007년)의 10개 문단은 2006년 한 언론사가 쓴 기사와 문장 및 문단 순서가 거의 같았다. 한국사립대학교수회연합회 등 진보 성향 14개 교수 단체로 이뤄진 ‘김건희 여사 논문 표절 검증을 위한 범학계 국민검증단’(검증단)은 6일 기자회견을 열고 “김 여사의 박사 논문 860문장 중 220문장이 (다른 글을) 그대로 베꼈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김 여사 논문 4편에 대한 표절 의혹을 검증한 국민대는 박사 학위 논문과 2007년 논문을 포함한 학술지 논문 2편을 검증한 결과 “표절이나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날 정도의 연구 부정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

    • 2022-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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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이프 잡고·배관에 엎드려 버텨…포항 주차장 실종자 2명 ‘기적 생환’

    “아이고. 나온다, 나온다!” 6일 오후 8시 15분 경북 포항시 남구 인덕동 우방신세계타운1차 아파트 지하주차장 입구. 11호 태풍 힌남노가 퍼부은 폭우로 실종된 7명의 생환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주민들은 전모 씨(39)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오자 너나할 것 없이 탄성을 질렀다. 이날 오전 7시 41분 포항남부소방서에 첫 실종 신고가 접수된 이후 12시간 34분 만에 첫 생존자가 극적으로 구조된 것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이날 오전 차를 이동시키기 위해 지하주차장에 내려갔던 전 씨는 물이 급격히 불어나면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이에 전 씨는 물에 빠지지 않기 위해 천장에 달린 파이프를 잡고 숨 쉴 공간을 확보한 뒤 구조를 기다렸다고 한다. 오후 늦게 배수펌프 가동 소리와 구조대 소리를 들은 전 씨는 “살려달라”고 계속 소리쳤고, 구조 작업에 투입된 해병대 특수수색대 대원들이 오후 7시 10분경 외부로 연결된 창문을 통해 전 씨를 발견해 구조했다. 상의를 벗은 채 밖으로 나온 전 씨는 들것에 실려 근처 병원으로 이송됐다. 병원을 찾은 전 씨의 회사 동료는 “저체온증을 호소했으나 상태는 크게 나쁘지 않았다”고 했다. 첫 생존자가 나타나자 주민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주차장 입구에서 구조 현장을 지켜봤다. 1시간 반 가량이 지난 오후 9시 41분경 다시 주민 김모 씨(52·여)가 구조됐다. 밖으로 나온 김 씨는 “너무 추워, 너무 추워”라고 말할 정도로 의식이 또렷했고 두 팔로는 몸을 꼭 감싸고 있었다. 소방 관계자는 “구조대가 지하주차장에 있는 물을 일정 수준 퍼낸 후 구명보트를 타고 들어갔는데, 김 씨가 주차장 모서리 부분 배관 위에 엎드린 채 있었다”고 구조 상황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생존자가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기적같은 일”이라며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수색 및 구조에 최선을 다해 달라”고 말했다고 강인선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포항=김화영 기자 run@donga.com포항=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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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교통 ‘출근길 대란’ 없었지만…서울 주요도로 통제에 시민들 불편

    태풍 ‘힌남노’가 6일 오전 동해안을 빠져나간 가운데, 출근 시간대 서울 도심 주요 도로 통제가 지속되며 일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다만 대중교통은 모두 정상 운행된 데다 일부 회사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하거나 출근 시간을 늦추면서 우려했던 수준의 ‘출근길 대란’을 벌어지지 않았다. 6일 서울시와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 기준 올림픽대로(가양대교~동작대교) 구간, 강변북로(마포대교~한강대교) 등 서울 10개 주요 도로의 통행이 전면 통제됐다. 취재팀이 오전 8~9시 사이 동작, 마포, 영등포, 종로 등 주요 도심 출근길을 확인한 결과 차량 진입이 막힌 올림픽대로와 강변북로 주변의 정체가 심했다. 특히 동작구 일대는 올림픽대로로 진입하려는 차들과 현충로에 지체된 차들이 뒤섞이면서 극심한 정체를 빚었다. 이날 자동차를 타고 동작구 흑석동 중앙대병원을 찾은 시민 A 씨는 “평소엔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를 오늘은 2시간 30분이 걸려서 왔다”라며 “차가 막힐 걸 우려해서 일찍 나오긴 했지만 막혀도 너무 막힌다”라고 토로했다. 다만 서울 지하철과 시내버스 모두 정상 운행하면서 대중교통으로 출근하는 시민 불편은 거의 없었다.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 있는 직장을 다니는 김모 씨(26)는 “매일 아침 8시까지 회사로 버스 타고 출근하는데, 오늘 출근길도 평소와 다름없었다”라고 했다. 일부 회사들이 재택근무로 전환하거나 출근 시간을 늦추면서 평소보다 대중교통 수요가 줄어든 점도 출근길 대란을 피한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회사 지침에 따라 평소보다 한 시간 늦게 출근한 직장인 박모 씨(26)는 “출근 시간이 늦어서 그런지 버스 안 승객도 별로 없고 길도 거의 막히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이날 오전 11시 35분 강변북로(한강대교~한강철교 북단)와 동부간선도로(성수JC~군자교), 내부순환도로(마장~성수JC) 3개 주요 도로의 일부 구간 통제가 해제됐다. 이승우기자 suwoong2@donga.com김윤이기자 yunik@donga.com이기욱기자 71wook@donga.com이소정기자 sojee@donga.com}

    • 2022-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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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씨앗 채취용” 대마 재배 허가받아… 30억어치 빼돌려 불법유통

    당국의 허가를 받아 대마초를 재배한 뒤 환각 성분이 있는 잎을 빼돌려 불법 유통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경찰청 마약범죄수사대는 경북의 한 야산에서 대마를 대규모로 재배해 불법 유통한 30대 A 씨 등 일당 4명과 이를 구입해 흡연한 13명 등 총 17명을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4일 밝혔다. 주범 A 씨 등 2명은 구속됐다. 경찰이 이들로부터 압수한 대마초 약 29.3kg(시가 29억 원 상당)은 지난해 전체 국내 대마 압수량(49.4kg)의 절반 이상으로, 약 9만7000명이 동시에 흡연할 수 있는 양이다. 대마초 10kg 이상을 얻을 수 있는 재배 중의 대마 691주도 압수했다. 지역 선후배 사이인 A 씨 일당은 대마 종자를 채취하겠다며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 지난해 11월∼올해 6월 야산 3006m²에 대마를 재배했다. 대마 종자는 환각 성분이 거의 없어 건강기능식품 등을 만드는 데 쓰이며 마약류관리법상 규제 대상이 아니다. 일당은 지자체가 파종과 수확 시 점검하지만 정확한 재배 상황을 파악하진 못한다는 점을 이용해 점검 전 대마잎 약 30kg을 미리 따 숨겼던 것으로 파악됐다. 빼돌린 대마는 텔레그램 등을 통해 수도권 일대에서 팔아넘겼다. 경찰은 대마 재배 허가 후 관리 감독이 허술하다고 보고 주무 관청인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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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성착취물 추적단까지 사칭…텔레그램 ‘제2 n번방’ 가해자 최소 8명

    경찰이 미성년자를 협박하고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한 뒤 온라인 메신저 ‘텔레그램’에 유포한 혐의를 받는 용의자 ‘엘’(가칭)을 추적 중인 가운데 범죄에 가담한 인물이 적어도 8명이 더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중에는 공범으로 추정되는 인물도 있다. 경찰은 2019년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해 유포했던 조주빈 일당의 ‘n번방’과 비슷한 수법으로 보고 전담팀까지 꾸려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엘’과 성착취물 유포…“3년 전보다 진화”2일 동아일보 취재진이 주범 ‘엘’이 활동했던 텔레그램 방 중 하나를 분석한 결과, ‘엘’이 만든 성착취방에서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성착취 영상 유포 등에 가담한 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최소 8명이었다. ‘엘’은 ‘n번방’ 사건을 취재했던 활동가 ‘불꽃’(전 추적단 불꽃)이 피해자 보호와 경찰 수사를 위해 임의로 붙인 이름이다. 이들 중에는 스스로 “엘과 같은 방에 있었다”고 밝힌 사람을 포함해 ‘엘’이 만든 영상을 다른 방에 올리거나, 또 다른 성착취방을 만들어 운영한 정황이 확인된 사람도 있었다. ‘엘’과 이들은 약 5000명의 이용자가 모인 텔레그램 방에서 성착취 피해자의 영상을 유포하는 방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엘’은 텔레그램방에 스스로 성착취를 한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밝히면서도 “나는 절대 안 잡힌다. 잡힐 수가 없다. 내가 잡히면 다크웹이라는 데가 있으면 안 된다”고 자신했다. 다크웹은 인터넷주소(IP주소) 추적이 안 되는 음성적 웹 공간인데, ‘엘’은 추적이 불가능한 다크웹처럼 자신은 텔레그램을 통해 동영상을 유포하기 때문에 ‘경찰 수사를 피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박사’ ‘갓갓’ 등 자신의 활동명을 딴 고정 채팅방에서 성착취 영상을 유포했던 2019년 ‘n번방’과는 달리 ‘엘’은 대화명을 수시로 바꾸고 여러 채팅방을 옮겨 다녔다. ‘n번방’을 파헤쳐 공론화했던 불꽃의 원은지 에디터(대안미디어 ‘얼룩소’ 소속)는 1일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범죄 수법이 n번방 때보다 더 진화했다”며 “텔레그램 닉네임을 수차례 세탁하는 수법으로 추적을 피했다”고 설명했다.● 텔레그램 탈퇴 뒤 잠적…경찰 ‘늑장 수사’ 논란지금까지 확인된 피해 여성만 6명이고 유포된 영상물도 수백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엘’은 ‘추적단 불꽃’이나 ‘최은아’라는 이름을 사용해 피해 여성들을 안심시킨 뒤 “텔레그램에서 당신의 사진과 개인정보가 퍼지고 있다. 가해자와 사진을 주고받으며 시간을 끌면 (가해자에게) 바이러스를 심겠다”고 속였다. 이런 방식으로 피해 여성과 무려 8시간 가까이 대화하면서 자신의 텔레그램으로 성착취 영상물을 전송받기도 했다. 경찰이 수사에 나서자 ‘엘’은 지난달 30일 오후 6시경 갑자기 텔레그램을 탈퇴하고 자취를 감췄다. 경찰은 수사팀을 확대해 ‘엘’의 행방을 쫓고 있지만 ‘늑장 수사’ 논란이 일고 있다. 불꽃에 따르면 피해 여성 중 한 명은 올 1월 경찰에 피해 신고를 했다. 유포 정황이 있는 디지털 성착취범죄는 지방경찰청 사이버수사팀에서 맡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사건의 경우 일선 경찰서 여성청소년계에서 수사를 했고 8개월이 지났지만 수사는 속도를 내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착취물이 유포된 정황이 없어서 일반 수사팀에 배정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엘’ 등이 여러 공범과 오랜 기간 조직적으로 범행을 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청 사이버범죄수사대는 전담수사팀을 구성하고 수사 인력을 6명에서 35명으로 증원하는 등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전혜진 기자 sunris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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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회 장한 고대 언론인상’ 시상식 개최

    고려대 출신 전·현직 언론인 모임인 고려대언론인교우회(회장 곽영길 아주뉴스코퍼레이션 회장)는 지난달 31일 고려대에서 ‘제28회 장한 고대 언론인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김진오 CBS 사장(60), 김병직 문화일보 발행인(57), 추승호 연합뉴스TV 보도본부장(55)이 상을 받았다. 행사에는 정진택 총장과 전·현직 고려대 언론인 등 20여 명이 참석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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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교사 “식판 맞아도 참는다”… 교권침해 3년간 6128건, 고발 14건뿐

    《교권침해 당해도 참는 교사들 스승이라는 이유로 제자의 무례를 견뎌야만 하는 걸까. 최근 충남 홍성군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수업 중 스마트폰을 들고 교단에 선 교사 뒤에 드러눕는 영상이 퍼지면서 ‘교권 침해’가 만연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제자가 던진 색연필이나 식판에 맞았다는 교사도 있다. 이 같은 ‘교육활동 침해 행위’가 전국의 유초중고교에서 해마다 2000건 넘게 발생하고 있지만 2019년 개정된 교원지위법에 따라 교육청이 학생이나 학부모 등 가해자를 고발한 건 최근 3년을 통틀어 14건뿐인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교사 A 씨는 학생들의 불법 촬영으로 고통을 받았다. 학생들은 출근해 계단을 오르는 A 씨의 치마 속과 수업 중인 뒷모습 등을 몰래 스마트폰으로 촬영했고 메신저를 통해 돌려 보기까지 했다. A 씨는 뒤늦게 이 사실을 알고 혼자 끙끙 앓다 최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에 제보했다. 충남 홍성군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수업 중 스마트폰을 들고 교단에 드러눕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 확산되면서 교권 추락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교권침해(교육활동 침해행위)를 줄이기 위한 제도적 방안 마련 없이는 유사한 사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교권침해에 끙끙 앓는 교사들2019년 개정된 ‘교원의 지위 향상 및 교육활동 보호를 위한 특별법’(교원지위법)은 교육활동 침해행위가 벌어진 경우 학교장 등이 교원의 치유 및 교권 회복에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규정했다. 교사에 대한 폭행 등 형법상 범죄, 성폭력 범죄, 불법 영상물 촬영·유포 등이 발생하면 관할 교육청이 수사기관에 학생이나 학부모를 고발할 수 있다. 하지만 교육부에 따르면 2019∼2021년 이 법을 근거로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학생이나 학부모를 고발한 건 총 14건에 불과했다. 같은 기간 교육부가 전국에서 집계한 교육활동 침해행위 건수는 6128건에 달한다. 이 때문에 현장에선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많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형법 위반 행위가 명백한 사안만 고발하기 때문에 건수가 적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교사들은 학교가 학부모와의 마찰, 소송 등을 피하기 위해 사건을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초등학교 교사 B 씨는 올 7월 자율배식 중 동급생과 다투는 6학년 학생을 타이르다 학생이 짜증을 내며 던진 식판에 얼굴을 맞았다. 피가 흐르고 상처가 났지만 학부모는 면담에서 “아이가 우리의 말도 안 듣는다”며 모르쇠로 일관했다. 학교는 교권보호위원회(교보위)를 열지 않으며 일이 커지는 걸 피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B 씨는 “제자에게 맞았다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웠는데 참는 것 말고는 별 방법이 없었다”고 했다.○ “학부모 민원 들어오면 교사 탓”피해를 입은 교사가 오히려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교사 C 씨는 올 3월 수업을 방해하는 5학년 학생을 타이르다 학생이 던진 색연필에 머리를 맞았다. 학생을 꾸짖자 이후 학부모가 찾아와 “교사가 학생에게 소리 지른다”며 민원을 냈다. 이 학교 교감은 C 씨를 불러 ‘주의하라’고 했다. 초등학교 교사 D 씨는 “올 6월 여학생을 성추행한 남학생에 대해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를 열기 위해 남학생 학부모에게 연락했다가 오히려 ‘무고죄로 신고하겠다’는 말과 함께 폭언을 들었다”고 하소연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관계자는 “현재는 교육활동 침해행위를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하지 않는데, 이를 가능하게 해야 그나마 교권 침해를 줄이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창립된 서울교사노동조합은 “학생에 대한 교원의 생활지도권한을 명시한 생활지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교육청 관계자는 “교보위에서 결정이 나기 전까지 가해 학생과 피해 교사가 같은 공간에 머무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학생과 교사를 분리할 제도적 근거라도 시급하게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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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업중 학생이 교단 드러눕고, 상의 벗고, 교총 “교권침해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줘”

    최근 충남 홍성군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수업 중 스마트폰을 들고 교단에 드러눕는 영상이 확산되면서 ‘교권 침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6일 동영상 플랫폼에 올라와 온라인에서 확산된 12초 분량 영상에는 남학생이 교단에서 칠판에 글씨를 쓰는 여성 교사 뒤에 드러누운 채 촬영하는 것처럼 휴대전화 뒷면을 교사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이 올라온 계정에는 수업 중 한 남학생이 상의를 벗은 채 여성 교사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게재됐다. 해당 중학교 관계자는 2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학생이 교탁 쪽 콘센트에 휴대전화를 연결해 충전하다가 교사가 판서를 하기 위해 이동하자 비켜주기 위해 드러눕는 자세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교사 사진을 찍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 학교는 등교 후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게 한다. 이 관계자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던 이유와 수업 중 교단에 올라간 경위 등에 대해선 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수업 중 상의를 벗은 학생에 대해선 “이전 수업이 체육이라 땀을 식히기 위해 그랬던 것”이라며 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장은 “최근 교권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주는 것”이라며 “학생을 야단치면 학대 등으로 고소, 고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문제 학생을 통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충남도교육청은 해당 학교를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벌일 방침이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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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업중 교단 드러누워 휴대폰…교권침해 영상 논란 확산

    최근 충남 홍성군의 한 중학교에서 학생이 수업 중 스마트폰을 들고 교단에 드러눕는 영상이 확산되면서 ‘교권 침해’가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6일 동영상 플랫폼에 올라와 온라인에서 확산된 12초 분량 영상에는 남학생이 교단에서 칠판에 글씨를 쓰는 여성 교사 뒤에 드러누운 채 촬영하는 것처럼 휴대전화 뒷면을 교사 쪽으로 향하는 모습이 담겼다. 영상이 올라온 계정에는 수업 중 한 남학생이 상의를 벗은 채 여성 교사에게 말을 거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게재됐다. 해당 중학교 관계자는 29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남학생이 교탁 쪽 콘센트에 휴대전화를 연결해 충전하다 교사가 판서를 하기 위해 이동하자 비켜주기 위해 드러눕는 자세를 취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교사 사진을 찍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했다. 이 학교는 등교 후 학생들에게 휴대전화를 제출하게 한다. 이 관계자는 “휴대전화를 갖고 있었던 이유와 수업 중 교단에 올라간 경위 등에 대해선 조사할 방침”이라고 했다. 수업 중 상의를 벗은 학생에 대해선 “이전 수업이 체육이라 땀을 식히기 위해 그랬던 것”이라며 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해명했다. 현장 교사들은 이 같은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전한다. 경기도 지역의 초등학교 교사 A 씨(27)는 “동료 교사가 지난 달 6학년 학생이 던진 급식판에 얼굴을 맞았다”며 “‘배식을 너무 조금 준다’며 큰 소리로 불만을 제기하는 학생을 타이르자 식판을 던져 피가 날 정도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김동석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교권본부장은 “최근 교권 침해가 얼마나 심각한지 보여 주는 것”이라며 “학생을 야단치면 학대 등으로 고소·고발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 문제 학생을 통제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했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교사에 대한 교육활동 침해행위는 지난해 총 2269건 발생했다. 이중 학생에 의한 것이 2098건(92.5%)이었다. 침해 유형별로는 모욕·명예훼손이 1271건(56.0%)으로 가장 많았고, 상해·폭행 239건(10.5%), 성적 굴욕감·혐오감을 일으키는 행위 207건(9.1%) 등 순이었다. 충남도교육청은 해당 학교를 대상으로 진상조사를 벌일 방침이다. 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기욱 기자71wook@donga.com}

    • 2022-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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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호종료아동’ 2명중 1명꼴 극단선택 생각, 왜?… “고아라서 끈기 없다” 편견에 멍들어

    “보육원 출신이라는 걸 다른 사람에게 말하려면 ‘목숨을 걸 정도’의 용기가 필요해요.” 15년간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다가 2016년 퇴소한 A 씨(29)는 25일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같이 말했다. A 씨는 아르바이트를 하던 식당에서 보육시설 출신이라고 밝힌 후 사장으로부터 “고아라 끈기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A 씨는 “그 말이 마음에 비수처럼 박혔다”며 “무엇보다 자립준비청년(아동보호시설 등에서 퇴소한 청년)에 대한 사회의 편견이 가슴 아프다”고 털어놨다. 이달 18일과 24일 올해 대학에 입학한 광주의 자립준비청년 2명이 잇달아 극단적 선택을 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계기로 자립준비청년이 처한 현실을 사회가 돌아보고, 필요한 지원을 확충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보육시설 출신이라는 ‘낙인’자립준비청년들은 사회의 편견과 차별 탓에 보육시설 출신임을 밝히려면 소속된 곳이나 인간관계에서 배제될 각오를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출신을 밝히는 것을 성소수자의 정체성 공개에 빗대 ‘고밍아웃’(고아+커밍아웃)이라고 표현할 정도다. B 씨(19)는 태어난 후 보육시설에서 자라다가 올 2월 퇴소했다. B 씨는 기자에게 “보육원에 산다는 이유로 중학생 때 따돌림을 당한 이후 지금까지 보육시설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A 씨는 “지인이 결혼을 앞두고 상대방 부모에게 보육시설 출신이라는 걸 밝히자 ‘헤어지라’는 말을 들었다”며 씁쓸해했다. 자립준비청년들은 우울과 불안감에 시달려도 의지할 곳이 없는 게 특히 힘들다고 했다. 2020년 진행된 ‘보호종료아동 자립실태 및 욕구조사’에 따르면 자립준비청년 2명 중 1명꼴로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B 씨는 “가끔 우울감이 찾아오는데 누구한테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어서 혼자 꾹 참는다”고 했다. ○ “심리·정서적 지원 부족”기존에는 만 18세가 되면 자신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육시설을 떠나야 했지만 올 6월부터는 만 24세까지 시설에 머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심리·정서적 지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A 씨는 “자립준비 전담기관이 5년간 퇴소한 이들을 관리해야 하지만 1년에 한 번 안부 연락 오는 것이 전부”라고 했다. 자립준비청년을 돕는 전담 기관도 부족하다. 정부는 지난해 7월 자립준비청년 전담 기관을 전국 17개 시도에 설치하겠다고 했지만 1년이 지났음에도 서울과 세종에는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인력도 부족하다. 2017∼2021년 청년 1만2256명이 시설에서 사회로 나왔는데, 전담기관에서 어려움이 있는 청년을 상담하는 인력은 전국을 합쳐 120명뿐이다. 이상정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아동정책연구센터장은 “자립에 성공한 청년들과 갓 독립한 청년들을 일대일로 연결하는 ‘또래 멘토링’ 등 실효성 있는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 후원자를 정부가 연결해주면서 자립준비청년이 사회에서 의지할 곳을 만들어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송진호 기자 jino@donga.com김소영 기자 ksy@donga.com}

    • 202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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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5년만에… “형제복지원,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국가책임 인정

    1970, 80년대 대표적 인권 유린 사건인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국가 기관이 국가 책임을 처음 인정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위원회)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진상조사를 통해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고 밝혔다. 1987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무려 35년 만이다.○ “38년 만에 아버지 한 풀었다”부산 소재 사회복지법인이었던 형제복지원은 1975∼1987년 부랑인 선도를 내걸고 수용자를 감금한 뒤 강제노역과 구타, 학대를 일삼았다. 사망하면 암매장해 흔적 없이 처리했다. 경찰과 부산시 공무원 등은 내무부 훈령을 근거로 멀쩡한 이들을 형제복지원에 끌고 가며 인권침해에 가담했다. 자개장 기술자였던 김종화 씨는 1984년 1월 처가에 있는 자녀들을 데리러 부산에 갔다가 형제복지원에 끌려가 사망했다. 김 씨의 딸 외순 씨(50·부산 해운대구)는 23일 위원회의 발표 내용을 전해 듣고 동아일보 기자에게 “38년 만에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게 됐다. 이제야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다”고 밝혔다. 위원회의 조사 결과 김 씨처럼 일정한 거주지와 가족이 있는 이들이 강제 수용된 사례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1973년 9세 때부터 12년간 수용됐던 강모 씨는 조사에서 “시청 차가 갑자기 싣고 데려갔다. 시청에서 (부산) 영도가 집이라고 말했는데도 형제복지원에 보냈다”고 진술했다.○ “인권침해 사실 파악하고 악용”진상조사 과정에선 당시 정부가 형제복지원의 인권침해 사실을 파악한 상태에서 이를 악용한 정황도 드러났다. 위원회는 1986년 국군보안사령부 요원이 형제복지원을 조사한 뒤 상부에 보고한 3쪽 분량의 문건을 입수했다. 문건에는 “형제복지원은 부랑자 3000여 명을 강제 격리 수용하고 있는 시설로 교도소보다 더 강한 규율과 통제가 이뤄진다”, “재소자 대부분이 탈출하지 못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해당 요원은 1985년 납북됐다가 귀환한 어부 김모 씨가 형제복지원에 입소하자 감시하기 위해 형제복지원에 위장 입소했다. 위원회는 “보안사는 이 수사공작을 ‘갈채공작’으로 명명하고 승인했다”며 “박인근 형제복지원 원장으로부터 서약서를 받고 지속적으로 관리체계를 구축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위원회는 정부가 일부 공안사범을 ‘신원특이자’로 구분해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하고 감시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군사안보지원사령부 존안 자료 등을 분석해 보니 국가보안법, 반공법 위반 이력이 있는 이들이 경범죄 등으로 검거됐을 때 형제복지원에 수용해 강도 높은 감시를 한 정황이 발견됐다는 것이다.○ “숨겨진 죽음 105명 더 있었다”위원회는 이번 조사를 통해 숨겨져 있던 사망 피해자 105명을 추가로 밝혀냈다. 강제노역과 구타 등으로 숨진 형제복지원 사망자는 기존 조사에서 552명으로 파악됐는데, 명단 등을 새로 종합한 결과 657명으로 늘었다. 피해자들은 이번 진상조사 결과가 국가의 정식 사과 및 공식 손해배상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모임 대표는 “국가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피해자에게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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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버지 한을 이제야”…‘형제복지원 사건’ 35년 만에 국가책임 첫 인정

    “38년 만에 아버지의 한을 풀어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김외순 씨(50·부산 해운대구)의 아버지 고(故) 김종화 씨는 김 씨가 국민학교 5학년이던 1984년 1월 부산에서 실종된 뒤 사망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알려온 곳은 부랑자와 걸인 등을 수용하던 부산 소재 사회복지법인 ‘형제복지원’이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최근 진상조사를 벌인 결과 ‘형제복지원 사건’이 국가의 부당한 공권력 행사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지었다고 24일 밝혔다. 1987년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지 35년 만에 국가 기관이 처음으로 ‘국가 폭력에 따른 인권침해 사건’으로 인정한 것이다. ‘형제복지원 사건’은 1975~1987년 경찰 등이 내무부 훈령에 따라 부랑인으로 지목된 사람들을 민간 사회복지법인에 강제수용하고 강제노역과 폭행, 가혹행위, 사망 등 중대한 인권침해를 일으킨 사건이다. 김 씨는 23일 동아일보와 전화 통화에서 “그동안 아버지가 돌아가신 영문도 제대로 모른다는 걸 주변에 털어놓기가 어려웠다”며 “거의 40년이 다 돼서야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진상을 알 수 있게 됐다.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38년 전 형제복지원서 사망한 아버지 경북 청도군에 살던 김 씨는 당시 겨울방학을 맞아 부산 외갓집에서 지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김 씨와 남동생을 데리러 부산에 왔다가 연락이 두절된 뒤 10일 만에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했단 소식이 전해졌다. 김 씨는 당시엔 아버지가 형제복지원에서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전보를 받고 아버지를 찾아 형제복지원에 갔던 삼촌으로부터 제대로 설명을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삼촌을 따라 나섰던 어린 남동생은 훗날 ‘아버지 시신에 구타와 고문 흔적이 있었다’고 했다. 삼촌은 한동안 부산의 구청과 경찰서를 전전하며 아버지가 어떤 경위로 숨졌는지를 알아봤지만 소득이 없었다고 한다. 할아버지를 모시기로 했던 선산 묏자리에 아버지 유골을 묻던 날, 삼촌은 김 씨를 불러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돼서 아버지 명예를 되찾아 달라’고 했다. 김 씨는 아버지가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2020년 피해자모임을 찾아갔다. 조언에 따라 사망자 제적등본을 떼어 보니 아버지의 사망 장소로 기재된 주소가 형제복지원 주소라는 것을 알게 됐다. 진실화해위는 이번 조사를 통해 김 씨 부친처럼 평범한 사람이 형제복지원에 강제 수용된 경우가 적지 않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김 씨는 “아버지는 고향에서 자개장 만드는 사업을 하던 기술자셨다”며 “부랑아나 걸인이 수용됐다던 형제복지원에서 돌아가셨을 거라곤 오랫동안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첫 정부 차원 진상조사 진실화해위는 24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고 해당 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위원회는 “이 사건은 경찰 등 공권력의 허가와 지원, 묵인 하에 부랑인으로 지목된 불특정 민간인을 적법한 절차 없이 단속해 형제복지원에 장기간 자의적으로 구금한 상태에서 강제노동, 가혹행위, 성폭력, 사망, 실종 등 인권침해가 발생한 사건”이라고 했다. 이번 조사에선 △부랑인 단속 규정의 위헌·위법성 △형제복지원 수용과정의 위법성 및 운영과정의 심각한 인권침해 △정부의 형제복지원 사건 인지 사실 및 조직적 축소·은폐 시도 등이 드러났다. 주윤정 부산대 사회학과 교수는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해 처음으로 국가의 책임성을 밝혀냈단 점에서 의미 있는 조사 결과”라고 했다. 형제복지원 입소자는 해당 법인이 부산시와 부랑인 수용 보호 위탁계약을 체결한 1975년부터 1986년까지 총 3만8000여 명에 달했다. 이번 조사 결과 이 기간 형제복지원에서 사망한 이는 총 657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진실화해위 조사에선 피해자 포함 경찰 공무원 등 관계자 진술을 통해 형제복지원의 실상이 상당 부분 드러났다. 특히 고 김종화 씨와 유사하게 일정한 거주지가 있는 이가 무분별하게 단속, 수용된 사례가 적지 않았다. 한 형제복지원 피해자는 이번 조사에서 “1980년 어느 날 오후 10시쯤 식당 일을 마치고 고향인 경북 김천에 가려고 부산역에서 열차를 기다리던 중 경찰이 파출소로 끌고 갔다”며 “차표를 보여주며 고향 가는 길이라고 했는데도 강제 연행됐다”고 진술했다.●피해자 손해배상 길 열릴까 이번 조사 결과로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손해배상이 이뤄질지에 관심이 모인다. 피해자 30명을 대리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인 박태동 변호사는 “뒤늦게나마 형제복지원 사건에 대한 국가적 해결의 실마리가 마련돼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피해자들은 손해배상 소송에서 진실화해위 조사 결과가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종선 형제복지원 피해자모임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번 진실규명으로 피해당사자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 드러났고, 국가는 이 사건에 책임을 지고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한편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국민에게 약속해야 한다”고 밝혔다.조응형 기자 yesbro@donga.com이기욱 기자71wook@donga.com}

    • 2022-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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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방 속 아동 시신 2구’ 뉴질랜드 경찰, 한국에 공조수사 요청

    최근 뉴질랜드에서 중고로 판매된 여행가방에서 아시아계 아동 시신 2구가 나왔는데 가방이 보관됐던 창고를 임차했던 사람이 40대 한국계 뉴질랜드인 여성으로 드러났다. 뉴질랜드 경찰은 이 여성이 한국에 있다고 보고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를 통해 한국 경찰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22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뉴질랜드 경찰은 해당 여성이 숨진 아동들의 어머니라고 추정하고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과거 뉴질랜드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2018년 한국에 입국한 기록은 있지만 출국 기록은 없어 한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언론 ‘뉴질랜드 헤럴드’에 따르면 11일(현지 시간)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부의 한 가족은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은 물건을 창고 회사가 처분하는 창고 물건 경매에서 유모차와 장난감, 여행가방 2개 등을 샀다. 그런데 이 여행가방에 각각 심하게 부패한 어린이 시신 1구씩이 담겨 있었다. 현지 경찰은 아동들이 적어도 3년 전 5∼10세로 숨진 것으로 분석했다. 뉴질랜드 경찰이 추적 중인 여성은 가방이 보관돼 있던 창고를 장기 임차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의 거주지 등을 확인하려면 뉴질랜드 법원 영장이 필요해 뉴질랜드 측에 서류 보완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만약 뉴질랜드 경찰이 살인 등 중범죄 혐의로 해당 여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경우 인터폴에서 적색수배를 내리게 된다. 이후 뉴질랜드 측이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 법원 심사를 거쳐 검사가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뒤 구속해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 절차다. 사망한 아동들이 한국 국적일 경우 한국 수사당국이 별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인터넷에선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 여성이 출산한 두 영아를 살해한 후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뒤늦게 발각된 ‘서래마을 영아 유기 사건’(2006년)과의 유사성이 거론되고 있다.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2-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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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방 속 아시아계 아동 시신 2구가…뉴질랜드 경찰, 수사공조 요청

    최근 뉴질랜드에서 중고로 판매된 여행가방에서 아시아계 아동 시신 2구가 나왔는데 가방이 보관됐던 창고를 임차했던 사람이 40대 한국계 뉴질랜드인 여성으로 드러났다. 뉴질랜드 경찰은 이 여성이 한국에 있다고 보고 국제형사경찰기구(인터폴)을 통해 한국 경찰에 공조 수사를 요청했다. 22일 경찰청 등에 따르면 뉴질랜드 경찰은 해당 여성이 숨진 아동들의 어머니라고 추정하고 행방을 추적하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이 여성은 과거 뉴질랜드 국적을 취득한 뒤 한국 국적을 포기했다. 2018년 한국에 입국한 기록은 있지만 출국 기록은 없어 한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추정된다. 현지 언론 ‘뉴질랜드 헤럴드’에 따르면 11일(현지 시각) 뉴질랜드 오클랜드 남부의 한 가족은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은 물건을 창고 회사가 처분하는 창고 물건 경매에서 유모차와 장난감, 여행가방 2개 등을 샀다. 그런데 이 여행가방에 각각 심하게 부패한 어린이 시신 1구씩이 담겨 있었다. 현지 경찰은 아동들이 적어도 3년 전 5~10세로 숨진 것으로 분석했다. 뉴질랜드 경찰이 추적 중인 여성은 가방이 보관돼 있던 창고를 장기 임차한 기록이 있다고 한다. 경찰 관계자는 “여성의 거주지 등을 확인하려면 뉴질랜드 법원 영장이 필요해 뉴질랜드 측에 서류 보완 요청을 했다”고 밝혔다. 만약 뉴질랜드 경찰이 살인 등 중범죄 혐의로 해당 여성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받을 경우 인터폴에서 적색수배를 내리게 된다. 이후 뉴질랜드 측이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면 법원 심사를 거쳐 검사가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뒤 구속해 인도하는 것이 일반적 절차다. 사망한 아동들이 한국 국적일 경우 한국 수사당국이 별도 수사에 착수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인터넷에선 서울 서초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 여성이 출산한 두 영아를 살해한 후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뒤늦게 발각된 ‘서래마을 영아유기 사건(2006년)’과의 유사성이 거론되고 있다.이기욱 기자71wook@donga.com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 2022-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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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는 당신들에 빚졌습니다”…美, ‘제복의 유족’ 보상부터 치유까지 최고 예우[히어로콘텐츠/산화]

    “유가족을 돌보는 전담 조직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소방관 유가족) “정부 조직을 늘리는 건 쉽지 않아요. 재단이나 단체를 만들려고 해도 근거와 예산이 필요합니다.”(정부 관계자) 국가보훈처는 매달 보훈 대상자 수를 공개한다. 순직 군인과 경찰, 소방관 등 ‘제복 공무원’ 유가족으로 보훈처에 등록된 사람은 1만5630명(7월 기준). 보훈처는 물론이고, 국방부 경찰청 소방청과 민간 사단법인 등이 유가족 예우와 처우 업무를 맡고 있지만 전담 조직의 기능이 약한 탓에 유가족 지원이 체계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미국의 경우 유가족 지원을 전담하는 연방 단위 비영리단체가 분야별로 설립돼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군 유가족 지원기관인 ‘TAPS(Tragedy Assistance Program for Survivors)’와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단체는 제복 공무원(MIU·Men In Uniform)이 순직하면 유가족에게 보상금 지급 등을 안내하는 책자를 보내며 ‘맞춤형 돌봄’을 시작한다. 장례를 끝낸 유가족이 외부 활동을 시작하면 ‘유가족 치유 캠프’ 등에 참여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처지가 비슷한 유가족들이 자연스레 연결돼 서로의 치유를 돕는다. 특히 미국은 군 소방 경찰 모두 별도의 추모 기간을 정해 촛불추모제 등 다양한 행사를 성대히 개최한다. 전사자 유가족을 ‘골드스타 패밀리’라 부르며 예우하고, 이들을 위한 24시간 상담 전화를 운영하는 것 역시 국내에선 찾아볼 수 없는 문화와 시스템이다. 반면 한국은 유가족 지원을 전담하는 전국 단위 단체나 재단이 사실상 전무하다. 사단법인 성격의 유족회 등이 있지만 조직이 작고 예산도 적어 맞춤형 돌봄에 나설 여력이 없다. 실제 순직 소방관 유가족 모임인 ‘마음 돌봄 캠프’는 소방청 직원 1명이 홀로 나서 기업 후원을 유치하며 마련됐다. 켈리 린치 NFFF 이사는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유가족을 치유하기 위해선 그들의 마음을 잘 아는 전문가로 조직을 구성해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美 “슬픔엔 시간표 없다” 유족 24시간 상담… 韓, 치유 시스템 없어 美 “우리는 당신들에 빚졌습니다”… ‘제복의 유족’ 위한 프로그램 다양‘같은 아픔’ 만남 통해 소통-치유… 유족으로 구성된 ‘돌봄전담팀’도韓, 전담조직 없고 보상금도 적어… “정부 지원 한계… 비영리단체 필요” “우리는 당신들에게 빚졌습니다. 이 자리에 나올 용기를 내주어서 감사합니다.” 미국의 순직 경찰 추모 주간인 ‘내셔널 폴리스 위크’ 나흘째인 올해 5월 15일 워싱턴 국회의사당 앞. 전국에서 유가족 수천 명이 모인 가운데 조 바이든 대통령이 추모식 연단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공동체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람들에게 최고의 예우와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함께 참석한 부인 질 바이든 여사도 이날 남편의 발언을 경청했다. 바이든 여사는 군 유가족 지원 비영리기관 ‘TAPS(Tragedy Assistance Program for Survivors)’ 행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제복 공무원 유가족 지원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유가족들은 자신들을 향한 대통령 부부의 진심 어린 행보에 뜨거운 박수로 화답했다.○ “우린 당신들에게 빚졌습니다”폴리스 위크에 참석한 유가족들은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의 지원을 받았다. COPS는 왕복 항공료부터 숙소 등 모든 비용을 제공한다. 또 고인과 친분이 있는 전담 에스코트 경찰관을 배정해 주간 내내 유가족을 에스코트하도록 한다. 올해 폴리스 위크엔 순직 경찰 유가족과 친구, 동료 등 미 전역에서 6000여 명이 참석했다. 한 주간 대통령 참석 추모행사는 물론이고 순직자의 이름을 한 명씩 부르는 촛불추모제, 자녀들을 위한 경찰 체험과 ‘키즈 캠프’ 등 다채로운 행사가 이어졌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도 비슷한 추모 행사를 매년 10월 4일간 열고 있다. COPS와 NFFF는 유가족을 위한 각종 ‘치유 프로그램’도 수시로 개최한다. 순직자 자녀를 연령대로 구분해 며칠씩 진행하는 캠프가 대표적이다. 캠프 참가가 내키지 않는 유가족도 문자메시지, 이메일 등으로 다른 유가족과 연결될 기회가 늘 열려 있다. 고인의 남편, 아내, 형제 등 비슷한 관계의 사람들끼리 그룹을 만들도록 지원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유가족들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과 자연스레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서로를 치유해 나간다. 한국도 유족 지원 민간단체로 순직경찰유족회,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 등이 있다. 그러나 인력과 예산이 턱없이 부족한 탓에 1회성 추모행사 외에 다른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 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는 사무총장 1명이 모든 일을 도맡고, 1년 예산은 1억 원 안팎에 불과하다. 반면 NFFF는 매년 100억 원(2019년 기준)을 유가족 지원에 쓴다. 정부가 유가족에게 주는 보상금도 한국과 미국은 크게 차이가 난다. 미국은 경찰이 순직하면 약 5억 원을 유족에게 지급하고 주별로 추가로 지원한다. 반면 한국 경찰의 ‘일반 순직’ 보상금은 1억 원, ‘위험 순직’ 보상금은 3억 원에 불과하다.○ “슬픔에는 시간표가 없다”TAPS는 순직 군인 유가족으로 구성된 ‘돌봄 전담팀’까지 두고 있다. 돌봄 및 소통 방식을 전문적으로 배운 유가족들이 다른 유가족을 케어하는 시스템이다. 순직 사건이 발생하면 전담팀이 유족을 제일 먼저 접촉하고 앞으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한다. 유족이 가장 극심한 고통을 겪는 순직 초기의 심리 안정을 돕는 것도 이들 몫이다. 군 유가족은 TAPS가 ‘슬픔에는 시간표가 없다’는 기조로 구축한 ‘헬프라인’도 24시간 이용할 수 있다. 유가족이 아무 때나 전문가에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긴급 상담전화다. 한국엔 이런 시스템이 전무하다. 한 순직 군인 유가족은 “군으로부터 들은 건 보건소 상담을 받으면 비용을 보전하겠다는 게 전부였다”고 했다. 미국은 군 유가족을 예우하는 극존칭도 널리 사용한다. 순직 유가족은 ‘골드스타 패밀리’, 자살 유가족은 ‘화이트스타 패밀리’, 부상·실종자 가족은 ‘레드스타 패밀리’로 부르는 식이다. 한국은 제복 공무원 유가족을 예우하는 별도의 호칭이 없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유가족을 직접 지원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처럼 비영리단체로 유가족 지원을 일원화하고 전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이윤수 부산외국어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정부는 아무래도 유가족을 불편하게 느낄 수밖에 없다”며 “이들을 편견 없이 전문적으로 지원하고 돌보기 위한 재단, 단체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모두가 소윤이 아빠… 제복 헌신-유가족 잊지 않을게요” ‘남겨진 사람들’ 시리즈 독자들 공감보훈처 “제복 공무원 예우 강화” “이 사회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세워졌다는 걸 다시 한 번 새기겠습니다.” 동아일보 히어로콘텐츠팀이 5회에 걸쳐 보도한 ‘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시리즈를 경험한 독자들은 자신의 몸을 던져 국민을 구한 제복 공무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남겨진 사람(가족)들에겐 깊은 위로와 진심 어린 응원을 보냈다. 독자들은 “제복 공무원의 헌신과 유가족의 고통을 절대 잊지 않겠다”고 입을 모았다. 한 독자(아이디 hana****)는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가족들은 용기 잃지 마시길 당부드린다”는 댓글을 적었다. 다른 누리꾼(seo****)은 “그저 잘 이겨내고 계셔서 감사하고, 가족분들의 희생 잊지 않겠다”고 썼다. 박선민 KAIST 인문사회학과 초빙교수는 “소방관 남편을 둔 저로서는 감정이입이 안 될 수가 없었다”며 “순직 소방관 자녀를 위해 온라인 교육 등 뭐라도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밝혔다. ‘마음 돌봄 캠프’(유가족 모임)에 대해서도 후원 방법을 묻는 연락이 이어졌다. 취재에 응한 유가족들은 “뜨거운 격려가 삶의 밑거름이 될 것 같다”고 밝혔다. 박현숙 씨(45)는 “‘우리 모두가 소윤이 아빠’라는 응원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며 “가족을 잃고 살아가는 모든 분들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좋겠다”고 했다. 독자들은 ‘남겨진 사람들’을 치유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주문도 내놨다. 한 누리꾼(tric****)은 “심리 지원이 꾸준히 이뤄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고, 어떤 독자는 “마돌캠처럼 유가족들이 연대할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일부 누리꾼들은 순직소방관추모관 홈페이지를 방문해 추모글을 남기기도 했다. 국가보훈처도 9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암, 희귀질병으로 인한 사망자도 순직으로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제복 공무원 예우 범국민 캠페인을 이어나가겠다고 밝혔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신고 접수부터, 현장 출동이 끝난 후까지 이어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 ▽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 ▽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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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화]④‘마돌캠’, 순직 소방관 유족들의 버팀목이 되다[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2017년 9월 강원 강릉의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불이 났다. 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내부로 들어갔던 이영욱 소방경과 이호현 소방교가 건물이 무너지면서 사망했다. 영욱의 아내 이연숙과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는 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에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고, 홀로 아픔을 삼킨 채 살아갔다. 그리고 소방청 조인담 주임의 설득으로 딸 소윤과 함께 소방관 유가족 모임에 참석한 박현숙. 영혼 없이 앉아 있던 현숙은 갑자기 한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얘네도 소방관 아빠 없어요?” 서울에서 이틀간 열린 소방관 유가족 모임.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가 끝났다. 태백으로 돌아온 박현숙은 딸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고 큰 숨을 내쉬었다. 쉴 틈 없이 짜인 레크리에이션을 소화하느라 딸아이를 어르고 달랜 기억 외엔 머릿속에 남은 게 별로 없었다. 소윤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도 없었다. 현숙은 다음 날 눈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청 조인담 주임이 만들어둔 단체 카톡방을 열고는 캠프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소방관 아내와 남편 등 12명이 모여 있는 카톡방이 잠시 활발해지다 곧 잠잠해졌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던 현숙은 ‘쩝’ 소리를 냈다. 이틀 뒤였다. 현숙은 연이어 울리는 ‘카톡’ 소리에 재빨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관 가족 중 한 명이 보낸 메시지였다. ‘주변에 한부모 가정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제 말에 공감해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 “안동 산다고 했던 엄마네….” 레크리에이션 때 현숙의 옆자리에 앉았던 엄마였다. 그녀의 둘째 딸이 소윤과 동갑내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재빨리 답장을 썼다. ‘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1, 2시간 거리에 사시는 분들은 가끔 모이면 괜찮지 않을까요?’같은 슬픔끼리 만났다…조금씩 마음이 열렸다2018년 출범 ‘마음돌봄 캠프’ 계기, 또래 유족들 단톡방 ‘마돌캠’ 개설각자의 고민 꺼내며 유대감 형성… 망설였던 ‘자녀 심리상담’도 시작모임 낯가리던 아이들 금세 친구돼 “보다 많은 가족 참여하게 합시다” ○ 같은 모양의 슬픔 시간이 지나며 대화는 더 깊어졌다. 사는 곳이나 나이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 [하재웅] [오후 3:26] 퇴근길에 하늘나라로 간 와이프 폰 해지하고 왔어요. 서류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누구 휴대전화냐고 계속 물어보는 직원이 너무 미웠습니다. ㅠㅠ 슬픈 이야기 꺼내서 죄송해요. 현숙은 캠프에서 재웅을 만난 것도 기억이 났다. 유일한 아빠였다. 그는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 소방관 부부였던 재웅은 몇 달 전 혼자가 됐다. 아내는 119센터로 출근하기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아내가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받은 스트레스 외에는 세상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본 현숙의 코끝이 찡해졌다. [김포맘] [오후 3:30] 음 ㅠㅠ 맘이 안 좋으셨을 듯. 저도 신랑 폰 해지할 때 그 마음이 생각나네요∼ 괜찮아요! 그런 마음 우리 말고 누가 알아주겠어요. [서울맘] [오후 3:41] 저는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고 말았어요. 다른 젊은 남자가 그 전화를 받는 게 순간 너무 서글퍼서 대성통곡을 했네요. ㅠㅠ [박현숙] [오후 4:26] 재웅님 미안해하지 마요. ^^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에요. 현숙은 남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곳에서 모두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후 11시 넘어 끝난 대화는 다음 날 오전 7시부터 다시 시작됐다. “엄마, 전화기 그만 봐!” 또래보다 말을 빨리 배운 소윤이 종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현숙에게 소리를 쳤다. 현숙은 소윤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 [안동맘] [오후 11:34] 그런데 우리 모임 이름은 뭘까요? 저는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를 줄여서 ‘마돌캠’이라고 적어놨어요. ㅋㅋ 인담은 한 달 넘도록 카톡방을 지켜봤다. 가족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점점 확신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다음 사업을 시작했다. 가족들의 심리상담 지원이었다. [안동맘] [오후 1:29] 심리상담을 하면 내용이 기록에 자세히 남나요? 상담 간다고 하니 식구들이 기록에 남는 거 아니냐고 껄끄러워하시더라고요…. [조인담] [오후 1:34] 1. 상담센터는 의료 행위가 아니라 예민한 개인정보가 남지 않음. 2. 상담은 일단 무조건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 생각보다 상담사님 의견에 공감됨. 현숙도 망설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 주변에서 상담을 권했지만 받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상담사가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정해진 기준에 맞춰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도 싫었다. 카톡방에선 인담의 설득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온 가족들이 남긴 후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예상보다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현숙의 마음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한번 가볼까.’ 현숙은 소윤을 데리고 인담이 연결해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 “소윤 어머니, 꼭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돼요. 아이도 엄마의 슬프고 기쁜 감정을 다 볼 수 있어야 해요. 아빠의 죽음에 관해서도 조금씩 설명을 시작하는 게 좋아요.” 그동안 현숙이 애써 외면했던 이야기를 상담사가 먼저 꺼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소윤도 친구들을 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때였다. 이제 현숙은 소윤이 아빠에 대해 물으면 숨기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 “소윤아, 아빠는 구급차를 타고 출동하는 소방관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간 거야. 아빠는 소윤이에게 나비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꽃으로 보일 수도 있어. 어디에든 아빠가 있는 거야.” 이야기를 들은 소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현숙은 딸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 “엄마도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소윤이도 많이 보고 싶지?” “엄마 니 아빠는 누군데?” 소윤의 엉뚱한 대꾸에 현숙은 울다가 웃곤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돌캠 가족들은 더 자주 만나고 더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소방청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도 가족들은 즉석 모임을 했다. 각자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주변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없는 친구들을 형제자매처럼 생각했다. [안동맘] [오전 9:52] 유가족들이 모여서 저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아요. 조각나서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하나씩 모여 맞춰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 가족들이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인담은 후원 기업과 기관에 선언했다. “우리 이거 계속하시죠. 정기적으로 모이게 하고,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하게 해요.”○ 다른 이에게 내민 손마돌캠 결성 직후 현숙은 경기 김포에서 소방관 2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봤다. 출동을 나간 수난구조대의 보트가 전복되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소방관 한 명은 돌이 갓 지난 쌍둥이 자녀를 남겨놓고 떠났다. 남겨진 아내가 걱정된 현숙은 인담에게 전화했다. “주임님, 저는 마돌캠에서 다른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다른 소방관 가족에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일단 조의금부터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 “얼마나 해야 할까요.”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죠.” 현숙은 2년 전을 떠올렸다. 남편의 빈소에 앉아서 눈물을 참아내려 애쓰던 자신의 모습.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 그 마음은 현숙이 제일 잘 알았다. 현숙은 인담을 통해 조의금을 전하고 마돌캠의 존재를 알렸다. “혼자 슬퍼하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가족이 이렇게 모여 있다”는 얘기를 조의금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았다. 얼마 후 인담이 먼저 현숙에게 전화를 했다. “소윤 엄마, 원주에 이연숙 여사님이라고 계세요. 소방관 남편이 1년 전에 강릉에서 순직했는데, 사는 곳도 가까우니 자주 연락하며 지내보세요.” 현숙도 기억하는 사건이었다. 남편 순직 1년 후 강릉 경포호 앞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 뉴스를 보며 현숙도 남편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실까. 영결식을 마치고 돌아온 날 밤은 정말 공허할 텐데. 그때 현숙은 당장 강릉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유가족들을 안아주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 그때는 아기 엄마가 유난을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겁이 났다. 이번에 인담의 전화를 받고 현숙은 마음을 먹었다. 공감의 퍼즐을 찾은 사람들 “더 아픈 사람 도울 것” 마돌캠 만든뒤 김포서 소방관 순직… 현숙 “다른 유족에 도움되고 싶다”인담 통해 조의금 전달-마돌캠 소개… 연숙과도 알게 되며 연락 이어가7월 서울서 코로나로 미뤘던 모임… 아이도, 어른도 서로를 안아줬다 ‘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 그해 10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 소방관 합동 추모 행사가 열렸다. 매년 같은 시기에 열리는 행사였다. 현숙이 묘역에 도착하자 남편 묘비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이연숙 여사님 맞으시죠? 조인담 주임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 “아, 태백 허승민 소방관…?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남편들이 같은 소방본부 소속인데, 여태 인사도 못 했네.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 나야 고맙지. 매일 집에만 있는데….” 그때부터 현숙과 연숙은 연락을 이어갔다.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나이가 달랐어도 소방관 남편을 잃은 아픔은 똑같았다. “소윤 아빠가 소파 앞에 누워서 야구 중계를 봤는데, 딸이 그 자세를 똑같이 따라 하는 거예요. 그걸 안 보고 자랐는데, 신기해갖고.” “아니, 우리 손녀도 식성이며 이런 게 다 할아버지를 닮았어. 하는 짓도 그렇고. 진짜 깜짝깜짝 놀라. 아주 웃긴다니까.” 연숙과 현숙은 서로 마음이 힘들 때마다 전화를 했다. 한번 통화를 시작하면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남편에 대한 그리움, 상처를 주는 사람들에 대한 서운함. 가족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를 했다. 현숙과 연숙 모두 답답했던 마음이 풀리는 기분을 느꼈다. 올해 2월. 현숙은 연숙의 권유로 평생 살아왔고 남편과의 추억이 남아 있는 태백을 떠나 원주로 이사를 왔다. ‘마돌캠이 없었으면 내가 어떻게 살았을까. 이젠 정말 상상도 안 된다.’ 현숙은 마돌캠 가족들을 만난 것이 운이라고 생각했다. 인담이 가족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면, 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 “주임님, 마돌캠을 비영리단체 같은 걸로 만들어서 다른 유가족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순직 사고 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함께 위로해주고…. 마돌캠 2기, 3기 이렇게 계속 만들면 좋잖아요.” 인담은 현숙의 이야기가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 ‘아파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픔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 하는구나.’ 현숙의 아이디어는 미국에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이자 제도였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과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은 남겨진 가족이 모여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패밀리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아픔을 가진 사람은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 문화다. 국내에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1년에 한 번씩 소방관 유가족과 추모식을 열지만 미국처럼 가족끼리 모일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그러나 인담은 현실적인 답을 줄 수밖에 없었다. 인담은 갑작스러운 인사로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다. 관련 제도나 예산도 없었다. “소윤 엄마, 마음은 좋은데요. 그렇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요. 현실적으로 큰돈도 필요하고요. 저도 더 고민해 볼 테니, 다른 가족들이랑 논의도 해보고 잘 생각해 봐요.” 인담의 답을 들은 현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흩어진 조각이 모였다2022년 7월 1일. 마돌캠 4주년. 현숙은 원주에서 서울행 고속철도(KTX)에 몸을 실었다. “많이 컸네, 우리 소윤이.” 소윤은 좌석 끝에 걸터앉은 채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4년 전에는 열차에 앉아도 발이 바닥에 닿질 않았는데 어느새 참 많이 컸다는 생각에 현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코로나19 탓에 거의 1년 만에 열린 마돌캠 모임이었다. 소윤과 묶여 세쌍둥이로 불리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둘도 왔다. 소윤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어색했는지 잠시 엄마 뒤에 숨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세 아이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나선 잠자리에 들 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튿날 마돌캠 가족들은 함께 롯데월드로 향했다. 고양이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한 세 아이는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을 붙잡고 걸었다. 회전목마를 탈 때도 접착제로 붙여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나 고양이다? 야옹.” 다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소윤이 갑자기 양손을 오므리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야옹, 야옹, 야옹.” 다른 아이는 강아지를 따라 했다. “멍멍! 멍멍! 멍멍!” 까르르. 세 아이가 동시에 웃었다. 같이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듯 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롯데월드에 이어 수영장까지 다녀온 아이들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빠졌다. 아이들을 재운 어른들은 그때서야 숙소에 모여 야식을 시켜놓고선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전에 말한 그건… 잘되고 있어?” 현숙이 재웅에게 물었다. 재웅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을 공무상 재해로 인정받기 위한 행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 “변호사와 같이 자료 모으고 있어요. 아내가 일하면서 얼마나 소방관으로서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을 느꼈는지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요.”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래, 애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게 우리 일인 것 같아.” 현숙과 다른 가족들이 재웅의 등을 토닥였다. 밤이 깊도록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 일요일이 왔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박 3일간 6명의 아이를 함께 돌본 마돌캠 가족 5명은 서울역 근처 카페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 “우리 한동안 만나지 말자. 어우, 힘들어 죽겠다.”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키우는 안동맘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현숙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 “나도 딱 그 얘기 하려고 했어. 너무 덥다. 우리 여름에는 만나지 않는 걸로!” 그러면서도 그들은 홍대 앞, 석촌호수 등 이번에 가보지 못한 곳들을 이야기했다. 힘들다고, 만나지 말자고 투덜거린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또 가을에 모일 일정을 잡았다. 기차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내려가야 하는 안동맘이 현숙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숙은 같이 손을 흔들다가 그녀에게 다가가 안동맘을 꼭 끌어안았다. 안동맘도 현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고생 많았어. 건강히 지내고 있어.” 현숙과 안동맘은 서로를 토닥였다. 세쌍둥이처럼 지낸 아이들도 그 옆에서 어른들을 따라 서로를 안아줬다. 현숙이 뒤이어 기차를 타러 뛰었다. 계단을 내려가다가 현숙은 뒤를 돌아봤다. 다른 가족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현숙과 눈을 마주치자 다들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현숙도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소윤의 손을 잡고 남은 계단을 내려갔다. 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신고 접수부터, 현장 출동이 끝난 후까지 이어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original.donga.com/2022/firefighter/part01)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전영한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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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방관 유가족이 모여, 퍼즐이 완성됐다[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2017년 9월 강릉의 60년 된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불이 났다.화재를 진압하기 위해 건물 내부로 들어갔던 이영욱 소방경과 막내 대원 이호현 소방교.갑자기 건물이 무너져 내렸고, 두 소방관의 목숨을 앗아갔다.남겨진 가족인 영욱의 아내 이연숙, 그리고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주변 사람들이 무심코 던진 말은 이들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됐고, 세상과 단절한 채 슬픔과 상처를 홀로 안고 살아가고 있다.소방청 조인담 주임의 설득으로 딸 소윤과 소방관 유가족 모임에 참석한 박현숙.영혼 없이 앉아 있던 현숙은 갑자기 한 아이의 외침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얘들도 소방관 아빠 없어요?서울에서 이틀간 열린 소방관 유가족 모임.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가 끝났다. 태백으로 돌아온 박현숙은 딸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고 큰 숨을 내쉬었다. 쉴 틈 없이 짜인 레크리에이션을 치르느라 딸아이를 어르고 달랜 기억 외엔 머릿속에 남은 게 별로 없었다.소윤과 비슷한 또래 아이들을 키우는 가족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는데, 그런 기회도 없었다.현숙은 다음 날 눈뜨자마자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청 조인담 주임이 만들어둔 단체 카톡방을 열고는 캠프에서 찍은 사진들을 올렸다. 소방관 아내와 남편 등 12명이 모여 있는 카톡방이 잠시 활발해지다 곧 잠잠해졌다. 알림이 울리지 않는 화면을 바라보던 현숙은 ‘쩝’ 하고 소리를 냈다.이틀 뒤였다. 현숙은 연이어 울리는 ‘카톡’ 소리에 재빨리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소방관 가족 중 한 명이 보낸 메시지였다.‘주변에 한부모 가정이 없어서 친구들이랑 이야기를 나눠도 제 말에 공감해주지 못하더라고요.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과 더 가까이 지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안동 산다고 했던 엄마네….”레크리에이션 때 현숙의 옆자리에 앉았던 엄마였다. 그녀의 둘째 딸이 소윤과 동갑내기라고 했던 게 기억났다. 재빨리 답장을 썼다.‘저도 같은 생각을 했어요. 1, 2시간 거리에 사시는 분들은 가끔 모이면 괜찮지 않을까요?’● 같은 모양의 슬픔시간이 지나며 대화는 더 깊어졌다. 사는 곳이나 나이를 묻는 것도 조심스러워했던 사람들은 조금씩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놓기 시작했다.[하재웅] [오후 3:26] 퇴근길에 하늘나라로 간 와이프 폰 해지하고 왔어요. 서류에 다 나와 있는데, 굳이 누구 휴대전화냐고 계속 물어보는 직원이 너무 미웠습니다. ㅠㅠ 슬픈 이야기 꺼내서 죄송해요.현숙은 캠프에서 재웅을 만난 것도 기억이 났다. 유일한 아빠였다. 그는 소윤과 동갑내기인 딸을 홀로 키우고 있다고 했다.소방관 부부였던 재웅은 몇 달 전 혼자가 됐다. 아내는 119센터로 출근하기 전 극단적 선택을 했다. 그는 아내가 잦은 인사이동 등으로 받은 스트레스 외에는 세상을 떠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메시지를 본 현숙의 코끝이 찡해졌다. [서울맘] [오후 3:41] 저는 얼마 전에 하늘나라로 간 남편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고 말았어요. 다른 젊은 남자가 그 전화를 받는 게 순간 너무 서글퍼서 대성통곡을 했네요. ㅠㅠ[박현숙] [오후 4:26] 재웅님 미안해하지 마요. ^^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에요. 현숙은 남들에게 하지 못한 이야기를 이곳에서 모두 풀어내기 시작했다. 오후 11시 넘어 끝난 대화는 다음 날 오전 7시부터 다시 시작됐다.“엄마, 전화기 그만 봐!”또래보다 말을 빨리 배운 소윤이 종일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는 현숙에게 소리를 쳤다. 현숙은 소윤을 보며 머쓱하게 웃었다.[안동맘] [오후 11:34] 그런데 우리 모임 이름은 뭘까요? 저는 소방 가족 마음 돌봄 캠프를 줄여서 ‘마돌캠’이라고 적어놨어요. ㅋㅋ 인담은 한 달 넘도록 카톡방을 지켜봤다. 가족들이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보였다. 점점 확신이 생겼다. 조심스럽게 다음 사업을 시작했다. 가족들의 심리상담 지원이었다.[안동맘] [오후 1:29] 심리상담을 하면 내용이 기록에 자세히 남나요? 상담 간다고 하니 식구들이 기록에 남는 거 아니냐고 껄끄러워하시더라고요….[조인담] [오후 1:34] 1. 상담센터는 의료 행위가 아니라 예민한 개인정보가 남지 않음. 2. 상담은 일단 무조건 받아보시는 것을 추천. 생각보다 상담사님 의견에 공감됨.현숙도 망설였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직후 주변에서 심리상담을 권했지만 받지 않았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상처를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눈물을 보이는 것도 싫었다. 상담사가 자신과 딸의 이야기를 정해진 기준에 맞춰 받아들이고 마음대로 해석하는 것도 싫었다.카톡방에선 인담의 설득으로 심리상담을 받고 온 가족들이 남긴 후기가 조금씩 올라왔다. 예상보다 좋았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현숙의 마음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다들 좋다고 하는데… 한번 가볼까.’현숙은 소윤을 데리고 인담이 연결해준 심리상담센터를 찾았다.“소윤 어머니, 꼭 씩씩한 모습만 보여주지 않아도 돼요. 아이도 엄마의 슬프고 기쁜 감정을 다 볼 수 있어야 해요. 아빠의 죽음에 관해서도 조금씩 설명을 시작하는 게 좋아요.”그동안 현숙이 애써 외면했던 이야기를 상담사가 먼저 꺼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소윤도 친구들을 보면서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때였다. 이제 현숙은 소윤이가 아빠를 물으면 숨기지 않고 말하기 시작했다.“소윤아, 아빠는 구급차를 타고 출동하는 소방관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을 도우려다가 나비가 되어 하늘로 훨훨 날아간 거야. 아빠는 소윤이에게 나비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고, 꽃으로 보일 수도 있어. 어디에든 아빠가 있는 거야.”이야기를 들은 소윤이 엉엉 울기 시작했다. 현숙은 딸을 끌어안고 같이 눈물을 흘렸다.“엄마도 아빠 많이 보고 싶어. 소윤이도 많이 보고 싶지?”“엄마, 내 아빠는 내 아빤데… 엄마 니 아빠는 누군데?”소윤의 해맑은 대꾸에 현숙은 울다가, 웃곤 했다.마돌캠 가족들은 더 많이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며 어울리길 원했다. 소방청에서 자리를 마련해주지 않아도 가족들은 즉석 모임을 했다. 각자의 집에 모여 새벽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도 자연스럽게 나왔다. 아이들도 아빠, 엄마가 없는 친구들을 형제자매처럼 생각했다.[안동맘] [오전 9:52] 유가족들이 모여서 저는 잃어버린 퍼즐 조각을 찾은 것 같아요. 조각나서 흩어져 있던 퍼즐이 한 조각씩 모여 맞춰지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가족들이 서서히 회복하는 모습을 직접 확인한 인담은 후원 기업과 기관에 선언했다.“우리 이거 계속하시죠. 정기적으로 모이게 하고, 더 많은 가족이 참여하게 해요.”● 다른 이에게 내민 손마돌캠 결성 직후 현숙은 김포에서 소방관 2명이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봤다. 출동을 나간 수난구조대의 보트가 전복되면서 발생한 사고였다. 소방관 1명은 돌이 갓 지난 쌍둥이 자녀를 남겨 놓고 떠났다. 남겨진 아내가 걱정된 현숙은 인담에게 전화했다.“주임님, 저는 마돌캠에서 다른 가족들을 만나면서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았거든요. 이번에는 다른 소방관 가족에게 저도 도움이 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일단 조의금부터 보내면 되지 않겠어요?”“얼마나 해야 할까요.”“음.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되죠.”현숙은 2년 전을 떠올렸다. 남편의 빈소에 앉아서 눈물을 참아내려 애쓰던 자신의 모습. 가장 힘들고 아플 때. 누가 어떤 말을 해도 들리지 않고 어떤 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 시간. 그 마음은 현숙이 제일 잘 알았다.현숙은 인담을 통해 조의금을 전하고 마돌캠의 존재를 알렸다. “혼자 슬퍼하지 말고 당신과 똑같은 가족이 이렇게 모여 있다”는 소식을 조의금 봉투에 꾹꾹 눌러 담아 전했다. 얼마 후 인담이 먼저 현숙에게 전화를 했다.“소윤 엄마, 원주에 이연숙 여사님이라고 계세요. 소방관 남편이 1년 전에 강릉에서 순직했는데, 같은 강원 지역이고 사는 곳도 가까우니 자주 연락하며 지내고 만나보세요.”현숙도 기억하는 사건이었다. 강릉 경포호 앞 목조 건물 석란정에서 발생한 화재. 남편이 세상을 떠나고 1년 정도 지나서 발생한 사고였다. 불을 끄던 소방관들이 순직했다는 뉴스를 보며 현숙도 자신의 곁을 떠난 남편이 떠올라 눈물을 흘렸다. 얼마나 힘드실까. 영결식을 마치고 현충원에서 돌아온 날 밤은 정말 공허할 텐데.그때 현숙은 당장 강릉 장례식장으로 달려가 유가족들을 안아주고 싶었다. 아이를 어머님께 맡기고 다녀올까. 시동생에게 강릉까지 운전을 좀 부탁할까.강릉을 가는 방법까지 고민해 봤지만 결국 가지 못했다. 그때는 아기 엄마가 유난을 떤다는 이야기를 들을까 겁이 났다.인담의 전화를 받고 현숙은 마음을 먹었다.‘이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지.’그해 10월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순직 소방관 합동 추모 행사가 열렸다. 매년 같은 시기에 열리는 행사였다. 현숙이 묘역에 도착하자 승민의 묘비에서 두 칸 떨어진 곳에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현숙은 두 손을 모으고 그녀의 옆으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혹시 이연숙 여사님 맞으시죠? 조인담 주임님 통해서 말씀 많이 들었어요.”“아, 태백 허승민 소방관…? 저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남편들이 같은 소방본부 소속인데, 여태 인사도 못 했네.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 나야 고맙지. 매일 집에만 있는데….”현숙과 연숙이 통화를 하면 1시간이 훌쩍 넘었다. 남편을 향한 그리움과 세상으로부터 받은 상처를 이야기했다. 현숙은 연숙의 권유로 평생 살아온 태백을 떠나 원주에 자리를 잡았다.현숙은 마돌캠 가족들을 만난 것이 운이라고 생각했다. 인담이 가족들을 불러 모으지 않았다면, 그가 내민 손을 뿌리쳤다면 어땠을지 생각하기도 싫었다.“주임님, 마돌캠을 비영리단체 같은 걸로 만들어서 다른 유가족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순직 사고 나면 우리가 가장 먼저 달려가서 함께 위로해주고… 마돌캠 2기, 3기 이렇게 계속 만들면 좋잖아요.”인담은 현숙의 이야기가 정말 고맙고, 반가웠다.‘아파했던 사람이, 이제는 아픔을 가진 다른 사람에게 손을 내밀려 하는구나.’현숙의 아이디어는 미국에선 이미 20여 년 전부터 자리 잡은 문화이자 제도였다. 전미순직소방관재단(NFFF)과 경찰유가족돌봄재단(COPS)이 남겨진 가족이 모여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패밀리 네트워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국내에선 순직소방공무원추모기념회가 1년에 한 번씩 소방관 유가족과 추모식을 열지만 미국처럼 자조 모임을 만들어 지원하진 않는다.속마음과 달리 인담은 현실적인 답을 했다. 인담 역시 그때는 갑작스럽게 인사발령이 나 완전히 다른 업무를 하고 있었다. 관련 제도나 예산이 없는 상황에서 쉽게 나설 수 없는 환경이었다.“소윤 엄마, 마음은 좋은데요. 그렇게 하려면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해요. 현실적으로 큰돈도 필요하고요. 저도 더 고민해볼 테니, 다른 가족들이랑 논의도 해보고 잘 생각해봐요.”인담의 답을 들은 현숙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흩어진 조각이 모였다2022년 7월 1일. 마돌캠 첫 모임 후 4년이 되는 날이었다. 현숙은 원주에서 서울행 KTX에 몸을 실었다.“많이 컸네, 우리 소윤이.”소윤은 좌석 끝에 걸터앉은 채로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 4년 전에는 기차에 앉아도 발이 땅에 닿지 않았는데, 어느새 많이 컸다고 현숙은 생각했다. 딸을 바라보던 현숙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코로나19 탓에 거의 1년 만에 보는 마돌캠 가족이었다. 소윤과 묶여 세쌍둥이로 불리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둘도 와 있었다. 소윤은 오랜만에 보는 친구들이 어색했는지 잠시 엄마 뒤에 숨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세 아이는 놀이터에서 한바탕 어울려 놀고 나선 잠자리에 들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하룻밤이 지나고 마돌캠 가족들은 함께 롯데월드로 향했다. 뾰족한 고양이 귀 모양의 머리띠를 한 세 아이는 기차놀이를 하는 것처럼 손을 꼭 붙잡고 걸었다. 회전목마 같은 놀이기구를 탈 때도 접착제를 붙여 놓은 것처럼 떨어지지 않았다.“나 고양이다? 야옹”다른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줄을 서 있던 소윤이 갑자기 양손을 오므리며 고양이 흉내를 냈다. “야옹, 야옹, 야옹.”다른 아이는 강아지를 따라 했다.“멍멍! 멍멍! 멍멍!”까르르.세 아이가 동시에 웃었다. 같이 줄을 서 있던 사람들도 그 모습에 기분이 좋아진 듯 세 아이를 쳐다보며 미소를 지었다.롯데월드에 이어 수영장까지 다녀온 아이들은 밤 12시가 넘어서야 잠에 빠졌다. 아이들을 재운 어른들은 그때서야 숙소에 모여 야식을 시켜 놓고선 못다 한 이야기를 시작했다.“그러고 보니, 전에 말한 그건… 잘되고 있어?”현숙이 재웅에게 물었다. 재웅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죽음이 공무상 재해라는 것을 인정받기 위한 행정 절차를 준비하고 있었다.“변호사와 같이 자료 모으고 있어요. 아내가 일하면서 얼마나 소방관으로서 스트레스를 받고 압박감을 느꼈는지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어요.”잠시 정적이 흘렀다.“그래, 애 엄마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건 다 해야지. 그게 우리 일인 것 같아.”현숙과 다른 마돌캠 가족들이 재웅의 등을 토닥였다. 밤이 깊도록 그들의 대화가 이어졌다.일요일이 왔다. 이제 각자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2박 3일간 6명의 아이를 함께 돌본 마돌캠 가족 5명은 서울역 근처 카페에 축 늘어져 앉아 있었다.“우리 한동안 만나지 말자. 어우, 힘들어 죽겠다.”소윤과 동갑내기 딸을 키우는 안동맘이 눈을 크게 뜨고 말했다. 현숙이 손뼉을 치며 대꾸했다.“나도 딱 그 얘기 하려고 했어. 우리 무더운 여름에는 만나지 않는 걸로!”그러면서도 그들은 홍대 앞, 석촌호수 등 이번에 가보지 못한 곳들을 이야기했다. 힘들다고, 만나지 말자고 투덜거린 뒤 10분도 지나지 않아 자연스럽게 또 다음 모임 일정을 잡고 있었다.기차 출발 시간이 다가왔다. 먼저 기차 타는 곳으로 내려가야 하는 안동맘이 현숙에게 손을 흔들었다. 현숙은 같이 손을 흔들어주다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안동맘을 꼭 끌어안았다. 안동맘도 현숙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고생 많았어. 건강히 지내고 있어.”현숙과 안동맘은 서로를 토닥였다. 세쌍둥이처럼 지낸 아이들도 그 옆에서 어른들을 따라 서로를 안아 줬다.현숙이 뒤이어 기차를 타러 뛰었다. 급한 마음에 동동거리며 계단을 내려가다가 현숙은 뒤를 돌아봤다. 다른 마돌캠 가족들이 여전히 그곳에 서 있었다. 현숙과 눈을 마주치자 다들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했다. 현숙도 조용히 미소 지으며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소윤의 손을 꼭 붙잡고 남은 계단을 내려갔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119 신고 접수부터, 현장 출동이 끝난 후까지 이어지는 소방관들의 이야기를 담은 ‘당신이 119를 누르는 순간’()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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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얘네도 아빠가 없대”… 같은 아픔과 만났다[히어로콘텐츠/산화]

    지난 이야기소방관 남편 허승민이 태백 강풍 피해 현장을 수습하다 눈을 감은지 2년.박현숙은 누구보다 단단하게 살려고 발버둥쳤다.버티고 버텼지만 공황장애 진단을 받았고시어머니와 딸 소윤 앞에서 2년 간 삼켜왔던 눈물을 쏟아냈다.얼마 후 그녀에게 걸려온 전화 한 통.순직자 예우와 유가족 지원 담당자 조인담 주임이었다.느닷없이 소방관 유가족들이 모이는 캠프에 참여하라면서 전화를 끊은 인담.다른 사람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던 현숙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2017년 9월 17일.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에 인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순직 소방관 예우와 유가족 처우를 담당하는 인담에게 이 시간에 전화가 올 일은 많지 않았다. 불안한 마음으로 받았다. “주임님, 강원 강릉에서 화재 진압 중에 순직 사고가 발생했는데요….”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소방청 상황실에서 걸려온 긴급 전화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출근할게요.” 국민안전처 중앙소방본부에서 외청(소방청)으로 나온 지 두 달 만에 생긴 일이었다. 인담이 그토록 피하고 싶던 순직 사고 업무를 처음으로 맡게 된 것이다. 장례식장에 놓을 훈장을 준비해 강릉으로 먼저 보냈다. 윗선에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고 대통령, 총리 명의의 조화와 조의금을 신청했다. 강릉에는 이틀 뒤 영결식 당일 아침에야 도착할 수 있었다. 검은 정복을 입은 소방관들이 이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소방관 두 명의 얼굴이 수천 송이의 하얀 국화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 위에 적힌 하얀색 글씨. 고 이영욱 소방경, 고 이호현 소방교.‘보상금 부자’ 됐다며? 툭 던진 한마디, 비수가 됐다‘강릉 석란정 화재’서 남편 잃은 연숙… 시댁식구가 꺼낸 보상금 헛소문목숨값부터 따지는 현실이 원통… 갈수록 선명해지는 남편과의 추억‘당신 없는 세상 모든 것이 싫어요’… 오늘도 ‘소방청 추모관’을 찾는다○ 남편이 받을 수 없는 편지아내 이연숙은 영욱의 죽음을 믿지 못했다. 몇 달 전 강원 지역에 큰 산불이 났을 때 정강이뼈가 드러나 보일 정도로 다치고서도 집에 돌아와 웃던 남편이었다. 소방관으로 30년 가까이 일하며 홀로 외지에 있을 때도 힘든 내색 한 번 안 했던 그이였다. 휴가 때 큰불이 나면 연숙과 여행을 떠났다가도 소방서로 부리나케 돌아가던 양반이었다. ‘이렇게 빨리 가려고 평생 줄 정을 미리 쏟아준 걸까.’ 영욱과 연숙은 서로에게 늘 다정했다. 어쩌다 연숙이 홀로 마트에 장을 보러 가면 직원들이 웬일로 혼자 왔냐고 물었다. 비가 오는 날엔 안목해변으로 드라이브를 나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며 커피거리를 거닐었다. 강릉 어디에나 남편과의 추억이 묻어 있었다. 연숙이 그토록 사랑하는 영욱을 국립대전현충원에 묻고 온 다음 날이었다.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장례식장에서 어떤 사람이 너 벼락부자 됐다고 그러더라? 나라에서 주는 보상금이 그렇게 많다던데? 너는 이제 딴 놈 만나서 잘 살겠다.” 연숙은 머리가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명절마다 함께 웃던 시댁 식구는 영욱이 떠나자마자 연숙의 가슴에 비수를 꽂았다. 그녀가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일시 보상금은 2억 원 수준. 다른 돈을 받은 게 있다면 전국 소방관들이 1만 원씩 모아 유가족들에게 전해주는 조의금 정도다. 시댁 식구가 연숙에게 한 이야기는 완전히 잘못된 사실이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허위사실로 목숨값부터 따지고 드는 현실이 연숙은 원통했다. ‘남편만 살아서 돌아올 수 있다면 보상금 같은 것들이 다 무슨 소용이야.’ 궂긴 일은 연이어 찾아왔다. 남편이 떠나고 한 달 만에 시누이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연숙은 초췌한 얼굴로 빈소에 앉아 있었다. “이 집 남동생이 소방관인데 지난달에 죽었잖아.” “그러면 지난달에 죽은 동생이 누나도 데려간 거야?” 얼굴도 모르는 조문객들은 그 소방관의 아내가 빈소에 앉아 있는지도 모르는 듯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이어갔다. 연숙은 슬픔을 속으로만 삼킨 채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자리에 앉아 속으로 되뇌었다. ‘내 남편은 그저 불을 끄러 갔을 뿐이야. 그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남편의 영결식이 끝난 직후 외아들 이인이 사는 원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도 연숙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복도에서 발소리라도 들리면 영욱이 바뀐 비밀번호를 몰라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연숙은 퇴근한 아들과 마주 앉아 남편에 대한 시시콜콜한 기억을 나누곤 했다. 처음엔 아들 앞에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눈물의 양만큼 슬픔이 옅어지지는 않았다. 연숙은 어느 날 “아들 앞에서 이렇게 맨날 울면 안 되는 건데”라고 혼잣말을 했다. 둘 사이에 영욱 이야기는 점점 줄어갔다. 어느 순간부터 아들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늦어졌다. 이유를 물어보면 “친구를 만났다”거나 “야근하느라 늦었다”고 했다. 아무리 무뚝뚝한 아들이라지만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과 다를까. 연숙은 아들의 마음을 가늠할 수 없었다. 아들이 없는 집에서 마음껏 슬퍼할 수 있으니 편한 것도 있었다. 하지만 아들이 남편을 잊어가는 것 같아 야속했다. 하루는 아들을 붙잡고 물었다. “너는 아빠 생각 안 나?” 아들이 놀란 표정으로 연숙을 바라봤다. “엄마, 내가 아빠 자식인데 왜 생각이 안 나겠어요. 그렇다고 계속 울 순 없으니까….” “네가 표현을 안 하니 아빠를 잊은 것 같아서 서운하잖아.” “내가 아빠를 어떻게 잊어요. 그냥 마음속에 묻어두고 사는 거죠. 엄마 앞에서 매일 아빠 보고 싶다고, 슬픈 표정 지으면 엄마만 더 힘들잖아요….” 감정을 꾹꾹 담아 하는 말에 연숙은 뭐라 더 대꾸할 수가 없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을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졌다. 연숙의 불면증은 갈수록 심해졌다. 남편과의 기억은 매일 그녀의 몸과 마음을 후벼 팠다. 잠을 청하기 위해 홀로 술을 마셔 봐도 3시간 이상 잠들지 못했다. 그럴 때마다 연숙은 순직 소방관 추모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그 시간만큼은 외롭지 않다고 연숙은 느꼈다. 떠난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연결된 기분이 좋았다. ‘당신 없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싫어요. 그래서 밖을 잘 안 나가게 돼요. 당신의 빈자리가 점점 더 나를 힘들게 하는데, 나는 당신 전화번호를 누르고 있네요.’(2018년 1월 27일 0시 27분)○ 아들의 목숨값을 묻는 사람들연숙에게서 영욱을 앗아간 건 경포호 앞 작은 목조 건물에서 난 화재였다. 그날 석란정에선 화재 신고가 두 번 접수됐다. 화염과 싸우고 돌아온 소방관들은 불이 다시 났다는 신고를 받고 두 시간 만에 다시 출동했다. 어둠 속에서 하얀 연기가 계속 피어올랐다. 건물 바닥에서 나는 듯했다. 팀장인 영욱이 마루를 확인하러 안으로 들어갔다. 임용 8개월 차 막내 이호현이 영욱을 따라 들어갔다. “시너인가?” 소방관들은 본능적으로 가스 냄새를 느꼈다. 연기도 솟아올랐다. 마룻바닥을 뜯어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너 방화복 위에만 입었잖아. 이제 물길 트러 가니깐 얼른 나가.” 호현은 화재 진압 지원을 나온 소방학교 동기를 내보낸 뒤 영욱과 함께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호현이 형!!” 목재 건물을 지탱하던 나무더미들이 순식간에 영욱과 호현을 덮쳤다. 현장에 있던 소방관이 모두 달려들어 18분 만에 이들을 잿더미 속에서 끄집어냈다. 심폐소생술을 받는 호현의 입에선 피가 뿜어져 나왔다. 영욱과 호현은 그대로 눈을 감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한 호현의 사촌들은 소방서 직원들에게 따졌다. 그 위험한 곳에 왜 소방관들을 들어가게 했냐고 물었다. 그러자 호현의 아버지 이광수가 조카들에게 소리쳤다. 아들 앗아간 사고, 왜 일어났는지…끝내 알 수 없었다‘강릉 석란정 화재’서 아들 잃은 광수… “사고원인 밝혀달라” 소방서 방문“보상금 부족한가요” 예상 못한 말… 화났지만 참았다, 아들 명예 위해친구도 친척도 만남 피하게 됐다… 외로울 때면 아들의 추모비 찾아 “너희들 조용히 안 해? 내가 가만히 있는데.” 광수는 사람의 목숨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당장 누구의 잘잘못을 따질 일이 아니었다. 그는 표정 없는 얼굴로 조문객을 맞았다. 대학이라도 나와야 한다며 대형마트에서 일하던 아들을 소방관의 길로 이끈 건 광수 자신이었다. 아들에게 해양경찰이 되어 보면 어떻겠냐고 물었다. 군대도 해병대를 나왔으니 어울리지 않겠나 싶었다. 곰곰이 자신의 앞날을 그려보던 호현은 어느 날 말했다. “아빠, 내 길을 찾았어.” “뭔데?” “나 소방관 할래.” “그래, 네가 하고 싶은 걸 해. 대신 후회는 하지 마.” 호현이 떠난 뒤, 몇 번이고 자신이 아들에게 했던 말을 곱씹고 곱씹었다.○ 매일같이 석란정을 찾는 아버지석란정에 누가 일부러 불을 냈을까. 아니면 갑자기 불이 난 걸까. 경찰은 사고 한 달 만에 수사를 마무리하며 화재 원인은 알 수 없다고 밝혔다. 소방본부도 방화가 의심된다는 내용으로 조사를 끝냈다. 광수는 아들을 앗아간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알고 싶었다. 광수는 경찰서와 소방본부 홈페이지에 들어가 정확한 원인을 밝혀 달라고 민원을 넣었지만 별다른 답변을 받지 못했다. 안 되겠다 싶어 소방서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설명하려 입을 떼려던 순간이었다. “아버님, 혹시 돈이 부족하셔서 그러십니까?” 광수는 소방서 간부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와닿지 않았다. 가족들과 보상금이나 연금 등을 나누는 절차가 끝나지 않은 때였지만, 소방서에 돈 이야기를 꺼낸 적은 없었다. ‘보상을 더 받고 싶어서 따지는 줄 아는구나. 내가 말을 꺼내면 안 되는 일이었구나.’ 그는 아무런 대꾸 없이 허공만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대로 돌아서 소방서를 빠져나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술에 취해 바닥에 뒹굴고 싶었다. 누군가가 미친 사람이라고 손가락질을 하더라도 그 원통한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거기서 멈췄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 아들이 떠올랐다. 내가 모든 걸 표현하면 아들의 이름에 먹칠을 하게 되겠지. 화가 나더라도 그저 참아야 했다. 아비보다 먼저 떠난 아들은 매달 돈을 보냈다. 임용된 지 불과 8개월 만에 순직했기에 호현의 연금은 큰 액수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광수는 그 돈이 낯설고 무서웠다. 들어오는 연금은 그대로 적금으로 빠지도록 했다. 집에서 홀로 술을 마시며 슬픔을 삼키다가 지칠 땐 친구들을 만나 소주잔을 기울였다. 하루는 친구가 광수에게 말을 꺼냈다. “근데, 언제부터 네가 목걸이를 차고 다녔어?” 친구는 광수가 차고 있는 금목걸이를 바라봤다. 아들이 떠나기 몇 년 전부터 월급에서 매달 20만 원씩 꼬박꼬박 낸 계모임에서 받은 목걸이였다. 그저 광수의 순서가 왔을 뿐이었다. ‘아들 목숨값으로 금붙이 차고 다니네.’ 광수는 주변 사람들이 자신을 쏘아붙이는 것 같았다. 뭐라 대꾸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야기할수록 구차한 사람이 되는 기분이었다. 집에 돌아와 목걸이를 벗어 던졌다. 그때부터 광수는 말수가 점점 줄었다. 친구나 친척들도 애써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자신의 아픈 상처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대신 광수는 외로움이 커질 때마다 석란정이 있던 자리를 찾았다. 아들과 영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추모비가 있는 곳. 이틀에 한 번씩 새벽같이 일어나 추모비를 닦고 주변 쓰레기를 쓸어 담는다. 그곳에 있는 소나무엔 여전히 그을린 자국이 남아 있다. 추모비를 예쁘게 꾸며보려 꽃잔디를 심어도, 타버린 흙을 몇 달 견디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그리고 왼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보이는, 아들의 처음이자 마지막 근무지. 이곳에만 오면 어쩔 수 없이 아들의 마지막을 배웅한 영결식이 떠오른다. “영욱이 형님! 호현아!” 영욱, 호현과 같은 119센터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대표로 조사를 읽었다. 강당 안에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리에 앉아 있던 인담도 눈물을 흘렸다. 헌화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던 연숙은 몇 걸음 걷지 못한 채 주저앉았다. 직원들이 붙어 그녀를 가까스로 지탱했다. 그녀를 대신해 아들이 하얀 국화를 아버지의 영정 앞에 놓고 왔다. 뒤이어 광수가 단상에 올랐다. 성큼성큼 걷던 발걸음이 아들의 영정 사진 앞에 멈췄다. 광수는 꽃을 내려놓고 외쳤다. “호현아!” 아들을 향한 광수의 마지막 인사가 추모 음악에 파묻혔다. 인담은 멀찍이 떨어져 연숙과 광수를 지켜봤다. 곧 그들에게 연락해 보상 절차를 꺼내야 했다. 미리 인사를 해두면 앞으로 일 처리가 조금 수월할지도 몰랐다. 인담은 가까이 다가갈까 망설이다가 결국 포기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무너진 가족들. 홀로 남겨진 그들에게 무슨 이야기부터 꺼내야 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 “쟤네도 아빠 없어요?”인담이 소방관 유가족을 모이도록 한 서울 행사장엔 수십 명이 와 있었다. 소방관 가족을 잃은 배우자나 자녀들이었다. 박현숙은 주위를 둘러봤다. 옆자리엔 모두 처음 보는 낯선 사람들이었다. 어디서 왔는지, 어떤 사연이 있는지 알지 못했다. 서로를 소개할 시간도 없이 일정이 시작됐다. 카드 게임, 소방차 그리기 같은 어린이 프로그램이 쉴 틈 없이 이어졌다. 아침 일찍부터 출발한 탓에 배고프고 졸리다고 칭얼거리는 소윤을 보며 현숙은 유독 피로감을 느꼈다. ‘참 어설프다, 어설퍼. 이런 건 왜 하는 거야.’ 현숙이 성의 없이 손뼉을 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억지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른들은 자신처럼 영혼 없어 보였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즐거운 표정이었다. 옆에 앉은 아이들은 왠지 소윤과 비슷한 또래처럼 보였다. 망설이던 현숙이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아기가 몇 살이에요?” 모두 세 살이라고 했다. 소윤과 나이가 같았다.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소윤도 옆에 있는 아이들이 동갑내기 친구들이라는 사실을 알더니 조금은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행사장과 호텔 곳곳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때 대여섯 살쯤 돼 보이는 남자아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아저씨, 여기 애들은 다 아빠 없어요?” 현숙은 깜짝 놀라 아이가 소리친 곳을 바라봤다.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귀를 의심했다. 아이가 천진난만한 눈으로 묻고 있었다. 인담은 조금 당황한 기색이었다. 인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또 한 번 질문했다. “쟤네도 저랑 똑같이 아빠가 없는 거예요?” 인담이 대답을 망설이자 주변에 있던 엄마들이 대신 답했다. “그래, 우리도 아빠가 없어. 너랑 똑같아.” 아이는 신이 나서 자신의 엄마에게 달려갔다. “엄마! 여기 있는 애들은 다 나처럼 소방관 아빠 없대! 나랑 똑같대!” 현숙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슬픈 이야긴데, 저렇게 기뻐할 일인가.’ 여태껏 엄마 뒤에 숨어서 낯을 가리던 아이들도 슬그머니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 시작했다. 마음을 연 아이들의 표정이 전보다 밝아졌다. 어른들의 입가에도 옅은 미소가 번졌다. “다른 애들이 소윤이한테 아빠 없냐고 물어봤으면 마음이 아팠을 텐데…. 진짜 다 똑같은 처지라고 하니 마음이 한결 편하네….” 묘한 감정을 현숙은 느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와 있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기분. 그녀는 문득 이곳에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동아일보는 창간 100주년을 맞은 2020년 ‘히어로콘텐츠팀’을 런칭하며 저널리즘의 가치와 디지털 기술을 융합한 차별화된 보도를 선보이고 있습니다. 특히 ‘디 오리지널’은 디지털 공간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참신한 기사를 모은 사이트입니다. QR코드를 스캔하면 순직 소방관·경찰·군인들이 세상에 남기고 간 물건들을 모은 특별한 추모 공간, ‘그들은 가족이었습니다()’ 기사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히어로콘텐츠팀▽팀장: 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취재: 김예윤 이소정 이기욱 기자▽프로젝트 기획: 위은지 기자▽사진: 홍진환 송은석 기자▽편집: 이승건 기자▽그래픽: 김충민 기자▽사이트 개발: 임상아 뉴스룸 디벨로퍼 신성일 인턴▽사이트 디자인: 김소연 인턴히어로콘텐츠팀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김예윤 기자 yeah@donga.com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이기욱 기자 71wook@donga.com}

    • 2022-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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