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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을 독재자로 비판하는 내용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사라진 것으로 21일 확인됐다. 김정은이 올해 1월 1일 신년사에서 평창 겨울올림픽에 대표단을 파견할 용의가 있음을 내비치기 전에 군 당국이 먼저 이 같은 조치를 내린 것이다. 자유한국당 소속 김학용 국회 국방위원장에 따르면 국군심리전단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이름 석 자를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김정은 체제 비판도 하지 않거나 언급하더라도 수위를 대폭 낮췄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군 측이 ‘대놓고 김정은과 북을 비판하면 반감만 산다’고 보고했다”고 전했다. 대북 확성기 방송은 2015년 8월 북한의 지뢰 도발 후 11년 만에 재개됐다가 8·25남북합의로 일시 중단됐다. 그 후 2016년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전면 재개됐다. 내용도 김정은 개인과 체제를 비판하는 것이 주를 이뤘다. “김정은은 나이도 어리고 능력도 부족하다” “국산 타령을 하지만 수입병에 걸린 사람은 독재자 김정은과 부인 리설주”라는 내용 등이 방송 내용에 포함됐다. 하지만 현재는 “미사일에 돈을 써서 주민이 고생한다”는 수준으로 방송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창 겨울올림픽 기간에는 올림픽 소식을 전하거나 한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있다.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비판을 자제하라는 결정은 합동참모본부 차원에서 내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하반기에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핵실험 도발을 이어갔는데도 대북 확성기 방송에서 김정은 비판을 자제하도록 한 것은 지나치게 북한을 신경 쓴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북한은 최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북한이 핵무기를 사용할 경우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라고 원칙론을 밝히자 “친미 대결광의 무모한 망동”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대북 심리전의 최후 보루인 대북 확성기 방송에조차 김정은에 대한 비판이 빠진 것은 확성기 방송 중단을 위한 선제 조치로 보인다”고 지적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송영무 국방부 장관이 20일 미국이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기지 비용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을 언급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무역 압박 드라이브와 맞물려 미묘한 논란이 일고 있다. 송 장관은 이날 국회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해 자유한국당 경대수 의원이 “미국이 사드 기지 비용도 방위비 분담 차원에서 부담하라고 제기할 가능성은 없느냐”고 묻자 “그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방위비 협정을) 총액형으로 할지, 소요형으로 할지 전략을 구상 중”이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군 당국은 사드 배치 비용과 관련해 미국 부담 원칙을 고수해 왔다. 송 장관은 다음 달 하와이에서 열릴 제10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협상과 관련해선 “외교부와 실무자들끼리 전략회담을 하는데 (총액형과 소요형 중) 확정을 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총액형은 연간 지급하는 금액을 정해 놓고 부족분은 미군이 메우는 방식이다. 소요형은 미군이 항목별로 소요되는 비용을 전달하면 이를 검증해 해당 항목을 전액 부담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송 장관은 한미 연합 군사훈련 시작 시기에 대해선 “평창 겨울패럴림픽이 끝나는 다음 달 18일부터 4월 이전에 한미 양국 장관이 발표할 것이다. 훈련 시작 전까지는 이 기조를 유지하고 그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발표 전까지 NCND(긍정도 부정도 안 함)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한국당 백승주 의원이 “누가 한미 연합 훈련에 대해 NCND 하기로 했느냐”고 묻자 송 장관은 “특별한 기억은 안 나는데 내가 먼저 했다”고 말했다. 다만 송 장관은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연합 훈련 시작 시기를) 못 밝히는 것은 아니다”라며 “(한미 동맹 간에는) 1mm도 오차가 없다”고 답했다. “북한이 올림픽 참가 조건으로 연합 훈련 연기를 요청했느냐”는 질의에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한편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한미 군사 당국 간에 군사훈련을 (올림픽 후) 재개하는 방향으로 협의 중인 것으로 안다. (군사훈련 재개에 대해) 반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이 윤성빈 선수의 스켈레톤 경기장 제한구역에 들어간 것을 둘러싼 특혜 논란이 국회의원 ‘롱 패딩’ 지급 논란으로 옮아 붙고 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관계자들에 따르면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 전 대한체육회는 교문위 소속 여야 의원 28명 전원에게 흰색 롱 패딩을 지급했다. 이 패딩은 하얀색 바탕에 ‘팀 코리아’ 글자가 새겨진 것으로 한국 선수단이 입은 것과 같다. 박 의원은 이 롱 패딩을 입은 채 스켈레톤 피니시 구역에 들어갔다. 자유한국당 김진태 의원은 19일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박 의원이 멋진 롱 패딩을 입고 있던데 그것도 국가대표나 감독 정도는 돼야 입을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김영란법 위반이다.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으면 즉각 형사 고발하겠다”고 했다. ‘팀 코리아’ 패딩은 60만 원 정도이지만 국가대표 의류 공급사가 비매품으로 선수단에 협찬한 것이어서 시중에서는 구입할 수 없다. 대한체육회 측은 “의원들에게 지급하기 전 국민권익위원회에 김영란법 저촉 여부를 문의한 것이어서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안다”고 했다. 김영란법에 따르면 10만 원 이상의 선물을 공직자에게 주는 것은 불법이지만 패딩의 경우 비매품이어서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한체육회가 국정감사 소관 상임위인 교문위 의원들에게, 그것도 국가대표 선수용 선물을 제공한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논란이 일자 일부 교문위 소속 의원은 패딩 반납까지 거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의원 측은 "동료 의원이 준 패딩을 입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 의원은 교문위가 아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이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자유한국당 박찬우 의원(충남 천안갑)이 13일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6·13지방선거 때 재·보궐선거가 치러지는 국회의원 지역구가 7곳으로 늘면서 원내 제1당을 놓고 더불어민주당(121석)과 자유한국당(116석)이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박 의원에 대한 상고심에서 당선무효형인 벌금 300만 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박 의원은 20대 총선을 앞둔 2015년 10월 선거구민 750명이 참석한 단합대회를 열어 사전 선거운동을 한 혐의로 기소됐다. 공직선거법상 국회의원이 선거법 위반으로 100만 원 이상 벌금형이 확정되면 당선이 무효가 된다. 재판부는 “단합대회가 통상적인 정당 활동의 일환으로 이뤄졌다는 박 의원의 주장을 배척하고 유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에는 잘못이 없다”고 판단했다. 13일 현재 재·보선이 확정된 지역은 서울 노원병과 송파을, 부산 해운대을, 울산 북, 전남 영암-무안-신안, 광주 서갑 등 7곳이다. 모두 야당이 당선됐던 지역구로 서울과 영호남, 충청 등 전국에 고루 분포돼 있다. 여기에 현역 국회의원의 지방선거 도전이 잇따르면서 의원직 사퇴가 늘 경우 재·보선은 ‘미니 총선급’인 10석 안팎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전주영 기자}

국가정보원과 군 당국으로 구성된 정부 합동신문반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한 북한군 운전병 오청성 씨(24)가 만취한 상태에서 음주 교통사고를 내고 우발적으로 귀순한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11일 국회 정보위원회 등에 따르면 오 씨는 지난해 11월 13일 친구인 운전병 이모 씨와 함께 개성 시내에서 북한 소주 12병을 나눠 마신 것으로 조사됐다. 운전병은 다른 보직에 비해 개인 시간이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혼자서 7병 정도 마신 오 씨는 만취한 상태에서 “판문점을 구경시켜 주겠다”며 이 씨를 지프차에 태우고 판문점으로 향했다. 이 과정에서 2, 3차례 추돌 사고를 일으킨 오 씨가 시설물을 크게 파손했거나 사람을 친 것으로 판단해 귀순한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오 씨는 신문 과정에서 “배수로에 빠진 지프차 안에 친구가 남아 있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정보당국이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북한군이 지프차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이 씨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오 씨는 판문점을 통해 귀순한 원인과 동기에 대해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진술을 회피했다고 한다. 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사도 밝히지 않았다. 오 씨는 휴대용저장장치(USB메모리)에 담긴 드라마와 가요 파일로 한국 문화를 접했다고 밝혔다. 한국 드라마 ‘동이’, ‘드림하이’ 등을 저장해 다니면서 즐겨 봤다고 진술했다. 북한에선 한국 대중문화를 저장한 USB메모리나 DVD를 중국을 통해 수입하고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이명박 전 대통령은 9일 강원 평창 용평리조트에서 열린 평창 겨울올림픽 개회식 리셉션에 참석했다. 이 전 대통령은 오후 5시 45분경 리셉션장에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 시각 문재인 대통령은 외국 정상급과 인사를 하고 있었다. 이 전 대통령은 외국 정상급이 아니어서 일반 출입구로 입장해 문 대통령과 악수할 기회가 없었다. 이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은 2년 3개월 만에 조우했다. 2015년 11월 김영삼 전 대통령 빈소에서 만난 이후 처음이다. 이 전 대통령은 앞에서 두 번째 줄 테이블에 황교안 전 국무총리, 장하성 대통령정책실장과 나란히 앉았다. 장 정책실장과는 자주 대화를 나눴다. 부인 김윤옥 여사는 불참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달 31일 한병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전달한 문 대통령의 올림픽 행사 초청장을 받았다. 하지만 바로 참석 여부를 확정하지 않았다. 초청장을 받은 이후 검찰이 국가정보원 특수활동비 수수 의혹과 관련해 이 전 대통령을 ‘주범’으로 지목하고 핵심 참모들에 대한 압수수색 및 소환 조사에 들어가자 참석 여부를 놓고 고민했다. 결국 행사 전날인 8일에야 참석을 확정했다. 이날 이 전 대통령 비서실은 보도자료를 내고 “세 번의 도전 끝에 유치를 이뤄낸 지구촌 축제가 성공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참석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전 대통령의 재임 시절인 2011년 삼수 끝에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에 성공했다.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영국을 지키는 처칠의 모습에서 진정한 지도자상을 봤습니다.”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지난달 30일 오후 11시경 페이스북에 직접 올린 글의 일부분이다. 영국의 전설적인 총리 윈스턴 처칠을 다룬 영화 ‘다키스트 아워’(Darkest Hour·어둠의 시간)를 가족과 함께 보고 난 직후였다. 홍 대표는 “히틀러의 위장 평화 공세에 속아 평화협상을 주장하는 (전임 총리) 네빌 체임벌린에게 (처칠이) 맞섰다. 북한의 위장 평화 공세에 넘어가 나라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꼭 봐야 할 영화”라고도 했다. 홍 대표가 제2차 세계대전 때 영국 총리를 지낸 체임벌린과 처칠 이야기를 동시에 꺼내기 시작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4월 대통령 선거 유세 때부터였다. 홍 대표는 “힘의 우위를 통한 무장평화만이 북한을 제압할 수 있다”며 경쟁자였던 문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어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쏘던 지난해 문 대통령의 한반도 평화 관련 광복절 경축사에도 강하게 반발했다. 최근에도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으로 만들면서 김정은이 하고 있는 위장 평화 공세에 같이 놀아나고 있다”고 몰아세웠다. 이런 언급에선 문 대통령을 실패한 유화론자 체임벌린에 가두고, 홍 대표 자신을 불도저와 같은 영웅 처칠에 견주려는 의도가 보인다. 물론 홍 대표는 최근 사석에서 “내가 (스스로를) 처칠이라고 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체임벌린이 문 대통령이면, 처칠은 대표라는 이야기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이었다. 기자가 실제로 처칠의 전기를 읽어보니 홍 대표와 처칠은 다른 점이 더 많다. 처칠은 영국의 명문 사립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주류 중의 주류였다. 스스로 ‘변방’을 자처한 홍 대표와는 차이가 난다. 처칠의 진면목 중 하나는 바로 말과 글의 품격이다. 2차 세계대전을 진두지휘한 자신만의 경험과 철저한 고증을 접목한 그는 ‘2차 세계대전’을 집필했다. 이 책으로 1953년 정치인으로서 노벨평화상이 아닌 노벨문학상을 이례적으로 수상했다. 한 언론이 ‘필설(筆舌) 양면에 걸친 유려한 언어 구사로 반세기 이상 그의 찬미자들을 기쁨에 넘치게 하였다’고 극찬할 정도였다. 처칠은 시간이 날 때마다 글 쓰는 일을 즐겼다. 히틀러의 독일 재무장 야욕을 알리기 위해 신문에 열심히 글을 기고하고, 대중 집회에서 열정적으로 연설했다. 독자는 히틀러가 위험한 인물임을 깨닫고, 청중은 맞서 싸우면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슴에 품었다. 대중을 어떻게 설득할지를 밤낮으로 연구하고 노력한 결과였다. 반면 홍 대표의 필설은 자주 논란에 휩싸인다. 당내에선 홍 대표가 보좌진의 도움 없이 곧바로 입력하는 페이스북 글쓰기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다. 즉흥적이고 과하다는 것이다. 당 차원에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팀을 구성해 사전에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는 제안까지 나온다. 둘 다 히틀러와 북한이라는 적을 앞두고 있고, 보수정당 소속이라는 것은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안보환경은 처칠 당시의 영국보다 더 혼란스러울 수 있다.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면 대화가 중요한지, 압박 일변도가 효과가 있는지 누구도 알기 어렵다. 홍 대표가 보수 야당 대표로 진정 영웅이 되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페이스북을 멈추고 처칠처럼 대중을 설득할 각고의 노력부터 하면 어떨까. ‘포스트 올림픽’을 고민해야 할 이 시기에도 홍 대표의 안보정책보다 페이스북 발언 실수가 더 관심을 끌 때가 많기 때문이다. 이는 홍 대표에게도 손해다.박훈상 정치부 기자 tigermask@donga.com}
북한이 가상통화 거래소 해킹과 함께 국내외 금융기관에 대한 해킹에도 주력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부도 관련 대책을 추가로 마련했다. 핵·미사일 도발에 따른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외화벌이 자금줄이 마르자 ‘사이버 은행털이’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국내 금융결제망에 대한 보안관리를 강화하기로 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6일 국무조정실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국무총리실 산하 정보통신기반보호위원회는 지난달 12일 전체회의를 열고 글로벌 결제망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망에서 한국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이용하는 네트워크를 주요정보통신기반시설로 신규 지정하기로 했다. 기반시설로 지정되면 은행이 아니라 정부가 해당 시설의 보안 실태를 직접 관리하게 된다. 심 의원은 “한은, 수은이 사용하는 SWIFT망을 기반시설로 지정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금융기관의 사이버 보안 조직을 재정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 연방 검찰은 2016년 뉴욕 연방준비은행에 있는 방글라데시 중앙은행 계좌에서 8100만 달러(약 910억 원)를 훔쳐간 사건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한 바 있다. 북한은 SWIFT망을 해킹해 가짜 지급 요청서를 보내 이를 필리핀 소재 4개 은행계좌로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북한은 국내 금융기관도 꾸준히 공격했다. 지난해엔 한국은행을 대상으로 7, 8차례에 걸쳐 해킹했다. 국가정보원은 지난해 11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북한이 최근 외화벌이 여건이 악화되자 이를 타개하기 위해 방글라데시 등 해외 은행을 해킹했다. 국내 금융기관에 대한 북한의 해킹 시도도 여러 차례 포착됐다”고 보고한 바 있다. 국정원은 북한의 해킹 시도가 정찰총국 산하의 해킹 조직 주도로 이뤄지는 것으로 보고 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평창 겨울올림픽 개막일인 9일 북한의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오는 김영남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여태껏 방남한 북한 인사 가운데 최고위급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5일 “북한이 진지하고 성의 있는 자세를 보였다”고 환영했다. 김정은이 꺼내 든 ‘김영남 카드’가 평창 너머로 남북 대화의 모멘텀을 확장시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아흔 살에 처음 남한 땅 밟는 김영남 김영남에게는 ‘명목상 국가수반’이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북한 사회주의헌법은 김영남이 맡고 있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 대해 “국가를 대표하며 다른 나라 사신의 신임장, 소환장을 접수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김영남은 1998년 9월부터 19년 넘게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맡고 있다. 앞서 1983년부터 15년 동안 외교부장을 지내며 ‘북한의 얼굴’ 역할을 했다. 하지만 방남은 이번이 처음이다. 공교롭게도 방남이 전해진 4일은 그의 아흔 번째 생일이었다. 신년 들어 강한 유화 공세를 펼치고 있는 김정은에게 김영남은 가장 안정적인 카드 중 하나일 수 있다. 각종 핵·미사일 도발에도 지금까지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에 오르지 않았을 정도로 그는 실권이 없다고 봐야 한다. 뒤집어 보면 북한 정권의 숱한 숙청에서도 살아남았을 만큼 1인자의 의중을 가감 없이 전달하는 역할을 충실히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영남이 김정은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지가 가장 중요하다”며 “그런 역할은 김영남이면 충분하지 최룡해 노동당 조직지도부장이 할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외교관 출신의 한 고위 탈북자는 김영남의 스타일에 대해 “김일성이 벽을 가리키며 ‘저것은 문이다’라고 한다면 김영남은 그 말을 믿고 기어이 벽을 뚫고 밖으로 나가려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동시에 김영남의 역할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에 앞서 김영남을 만났다. 2007년 정상회담 때 노무현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였다. 국회 정보위원회 한 관계자는 “김영남은 나이가 아흔인데도 유연하다. (김정은이) 그래서 보냈다”고 설명했다. ○ 문재인 대통령, 김영남 단독 접견하나 이제 관심은 문 대통령이 김영남을 단독 접견할지에 쏠리고 있다. 김 대변인은 “다양한 소통의 기회를 준비해 나가고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며 문 대통령과 김영남의 회동을 추진할 방침임을 밝혔다. 김 대변인은 “어젯밤 늦게 (김영남의 방남을) 통보받았고, 오늘 대통령을 비롯한 실무진이 어떤 수위에서 어떤 내용을 갖고 만날지 현재 논의 중”이라며 “확정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했다. 특히 김영남은 김정은의 친서를 갖고 방남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결국 문 대통령과 단독 회담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는 문 대통령과 김영남 간 만남의 격(格)을 검토 중이다. 김영남이 헌법상 국가수반이긴 하지만 정상회담이라고 하긴 어려운 만큼 남북 정상급 회담으로 부르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 정부는 아직 북측이 공개하지 않은 대표단 단원들의 구성을 살피면서 북한과의 접촉 방식 및 수위를 정할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대표단원 3명에 사실상 북한의 ‘2인자’ 자리를 굳힌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이나 최휘 국가체육위원장이 포함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북한은 한 명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집중시킨다. 김영남이 온 마당에 최룡해까지 오면 시선이 분산된다”고 말했다. 이어 “(김정은의 동생) 김여정은 안 올 가능성이 높다. 백두혈통은 한 번도 방남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북측 대표단과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방문 기간이 겹치는 만큼 관련국들과의 조율도 필요한 상황이다. 김영남은 개회식에 앞서 열리는 공식 리셉션에 참석해 자연스럽게 미국, 일본 등의 대표단과 마주칠 가능성이 있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평창 올림픽 기간 중 북-미 대화 가능성에 대해 “커 보이지 않지만 닫아 놓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며 “(우리가) 그런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간접적으로 노력할 수는 있겠으나 직접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황인찬 hic@donga.com·홍정수·박훈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5일 대통령 개헌안 발의 준비를 지시한 것은 “국회가 개헌에 나서지 않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겠다”는 정치적 압박으로 볼 수 있다. 국회 개헌 논의가 “아직도 원칙과 방향만 있고 구체적 진전이 없어서 안타깝다”며 문 대통령이 직접 개헌론에 불을 지피겠다는 것이다. 6월 개헌 투표가 실시되려면 3월 중순까지는 국회 개헌안 또는 대통령 개헌안이 마련돼야 한다. 개헌안 발의, 공고, 의결 등의 법적 절차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이날 ‘개헌 선언’으로 향후 정국은 개헌 이슈로 뒤덮일 공산이 커졌다. ○ 文, “정책기획위가 개헌 맡아라” 지시 당초 이날 수석·보좌관회의 안건은 평창 겨울올림픽 준비 상황 점검 하나뿐이었다. 문 대통령이 안건에 없었던 개헌을 강하게 언급한 것은 더 이상 국회 논의만을 기다릴 수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신년 기자회견에서 “국회 개헌특위 논의가 2월 정도 합의를 통해 3월쯤 발의가 가능하다고 판단된다면 국회 논의를 지켜보면서 기다리겠다”고 했지만 한 달여가 지나도록 국회에서 구체적인 진전이 없다고 본 것. 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 “여러 차례 말씀드린 바와 같이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의 약속인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청와대 관계자는 “평창 올림픽과 북핵 문제 등 현안이 있지만, 개헌은 시간표가 정해진 이슈라 다른 현안을 이유로 무작정 방치할 수는 없다”며 “대통령 개헌안까지 준비할 만큼 개헌에 강한 의지가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정책기획위원회에 대통령 개헌안 마련 작업에 나서라고 지시했다. 6월 개헌 투표 추진이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다. 개헌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 또는 대통령의 발의로 제안된다. ○ 靑, “권력구조 개편 없어도 개헌” 대통령 개헌안에 담길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 청와대는 “국민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지금으로서는 예측하기 힘들다”며 신중한 반응이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가장 민감한 권력구조 개편은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개헌안에 포함되기 힘들다는 분위기다. 대신 청와대는 기본권, 자치 분권을 강화하는 내용은 포함될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분야이자, 여야 이견이 상대적으로 덜한 지점이라 ‘핀셋 개헌’이 가능하기 때문. 여권의 한 친문(친문재인) 핵심 인사는 “행정권, 예산권을 과감하게 지방자치단체에 이양하는 자치 분권은 노무현 정부 때부터 문 대통령이 갖고 있던 소신”이라며 “대선 때 모든 후보들이 개헌을 약속한 만큼 이번 기회를 놓치면 개헌이 힘들어진다는 판단을 문 대통령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핀셋 개헌’으로 야당의 반개헌 공세를 다소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투표까지는 산 넘어 산 문제는 문 대통령이 직접 개헌안을 발의해도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다. 개헌안은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석수(121석)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결국 민주평화당은 물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체인 미래당, 자유한국당의 일부 협조까지 있어야 가능한 것. 이 때문에 대통령 개헌안이 발의되더라도 6월 투표는 무산되고 개헌 무산을 놓고 무한 정쟁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당장 한국당은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지지율 급락에 초조한 문 대통령이 개헌을 통해 지방선거에서 조금이라도 이익을 보려는 정치적 공세일 뿐”이라고 비난했다.한상준 alwaysj@donga.com·박훈상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발 ‘개헌 드라이브’를 5일 공식화하자 여야 정치권은 180도 다른 반응을 내놨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6월 국민개헌을 국민과 수차례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의 당연한 지시”라고 말했다. 이어 “정부 개헌안이 나온다면 결국 국회는 직무유기라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야당을 압박했다. 반면 야당은 국회가 특별위원회까지 구성해 개헌 논의를 진행하는 중에 대통령이 정부안 마련을 지시한 것에 발끈했다. ‘관제개헌 독재’ ‘호헌세력’ 등 논평도 거칠었다.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는 동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사실상 개헌을 하지 말자는 것”이라고 했다. 김 원내대표는 “권력의 힘으로 국민 개헌을 발로 걷어차고, 제왕적 대통령제를 이어가겠다는 것은 대단히 불행한 일”이라고 꼬집었다. 한국당 장제원 수석대변인은 “어렵게 여야 합의를 통해 이제 갓 출발한 국회 개헌특위를 무력화하면서까지 개헌을 밀어붙이려는 태도는, 대통령의 민주주의에 대한 기본적 소양마저 의심케 한다”고 지적했다. 국민의당 이행자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호헌 세력임을 자인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변인은 “문 대통령이 진정으로 개헌을 원한다면, ‘권력구조 개편안은 국회의 몫’임을 결단하고 선언하라”고 덧붙였다.박훈상 tigermask@donga.com·박성진 기자}
최근 일본 가상통화 거래소에서 사상 최대인 5700억 원어치의 가상통화가 해킹당한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추정돼 정보당국이 조사 중이라고 국가정보원이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또 북한은 지난해 12월 한국의 가상통화 거래소 최소 두 곳을 이미 해킹해 수백억 원 상당의 가상통화를 탈취했다고 국정원이 밝혔다. 국정원은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 전체회의 업무보고에서 북한의 가상통화 해킹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설명한 뒤 이로 인한 국내외 피해 사례를 집중적으로 보고했다. 회의에 참석한 복수의 정보위원에 따르면 일본의 가상통화 해킹도 피해사례 중 한 곳으로 지목됐다. 일본의 코인체크는 지난달 26일 580억 엔(약 5700억 원) 상당의 가상통화 해킹 피해를 보았다. 당시 일본 당국은 “해외 해커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지만, 북한의 개입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 정보위원은 “일본의 가상통화 탈취 사건이 북한 소행으로 추정된다는 보고를 국정원이 했다”고 전했다. 반면 다른 정보위원은 “그렇게 의심하고 조사 중에 있다가 정확한 표현”이라고 전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은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와 회원 대상으로 해킹 메일을 보내 회원의 비밀번호를 절취했다. 북한은 이 과정에서 백신 무력화 기술을 사용했고, 거래소가 신입 직원을 수시로 채용한다는 점에 착안해 입사지원서를 위장한 해킹 메일을 발송하기도 했다. 한 정보위 위원은 “북한이 최소 2곳의 국내 가상통화 거래소를 해킹했는데, 그 가운데 A거래소의 전산망은 완전 장악한 뒤 260억 원 상당의 가상통화를 탈취해갔다고 국정원이 보고했다”고 전했다. 국정원은 피해를 당한 국내 거래소의 이름은 시장 혼란을 고려해 공개하지 않았다. 국정원은 한 정보위원이 ‘해킹당한 업체가 우리나라 업체가 맞느냐’고 질문하자 “맞지만 어떤 업체인지까지 공개할 수 없다. 피해가 개인들에게 통보됐는지는 보고받지 못했다”고 답했다. 더불어민주당 정보위 간사인 김병기 의원은 “(일부 업체가) 탈취당한 것은 맞지만 국정원이 나머지는 유의미하게 차단하고 있다고 한다. 사이버팀 능력이 우수하다고 한다”고 평가했다. 야당은 북한의 가상통화 시장 교란행위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한 정보위원은 “국정원이 정부기관에 보고를 했지만 보안 상황 때문에 계속 덮어버렸다. 북한이 가상통화 거래소에 침투해 마구잡이로 날강도처럼 몇 백억 원을 절취해가는데, 왜 방치했느냐. 국민에게 안 알린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북한에 책임을 지라고 요구할지 엄중하게 지켜보겠다”고 말했다. 유근형 noel@donga.com·박훈상 기자}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이 청와대에 특수활동비 4억 원을 전달한 것은 이 전 대통령(77)의 요구와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고 검찰이 결론을 내렸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특활비 수수와 사용에 개입한 김백준 전 대통령총무기획관(78·구속 기소·사진)을 5일 ‘방조범’으로 기소하면서, 김 전 기획관의 공소장에 이 전 대통령을 ‘주범’이라고 명시했다. 이에 따라 평창 겨울올림픽이 끝나는 3월경 이 전 대통령의 소환조사, 그에 이은 기소가 불가피해졌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2부(부장검사 송경호)는 이날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및 국고손실 혐의로 김 전 기획관을 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2008년 4, 5월경 이 전 대통령이 김성호 당시 국정원장(68)에게 돈을 요구하자 김 전 원장이 김주성 당시 국정원 기조실장(71)에게 지시해 국정원 예산관이 청와대 부근 주차장에서 1만 원권 현금 2억 원이 든 여행용 캐리어를 김 전 기획관에게 전달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그 무렵 이 전 대통령이 김 전 기획관에게 ‘국정원에서 돈이 올 것이니 받아 두라’고 직접 지시했다”며 “김 전 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돈을 수수한 것이란 점을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진술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2010년 7, 8월에는 이 전 대통령이 원세훈 전 원장(67·구속 기소)에게 돈을 요구해 김 전 기획관의 부하 직원이 청와대 인근에서 1억 원(1만 원권)이 든 쇼핑백 2개를 건네받았다고 밝혔다. 김 전 기획관은 지난달 17일 구속되기 전까지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국정원 예산관 등 관련자들의 진술을 계속 부인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자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고 자신은 지시에 따라 돈을 받고 전달했을 뿐이라고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기획관은 자신의 청와대 사무실에 있는 금고에 국정원 돈을 보관해 왔고 일부는 청와대 수석실과 장관실 등에 전달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에 대해 “검증과 분석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날 이 전 대통령 측은 입장을 내 “당사자들의 진술도 엇갈리는 상황에서 확인도 없이 전직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주범이라고 규정한 것은 모욕을 주기 위한 전형적인 짜 맞추기 수사”라며 “절차와 법적 논리에서도 경악을 금할 수 없다”고 반발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이 평창 올림픽에 초대해서 가려고 했으나 검찰을 동원해 이렇게 수사를 하는 상황에서 과연 참석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 심각한 회의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황형준 constant25@donga.com·박훈상 기자}
자유한국당은 2일 전국위원회를 열고 6·13지방선거에서 여성과 청년, 정치 신인을 우대하고 선거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전략공천을 확대하는 내용 등을 담은 당헌·당규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지방선거 후보 경선에서 여성, 청년, 정치 신인에게 본인이 얻은 득표수에 20%를 가산하도록 했다. 여성, 정치 신인처럼 두 가지 조건이 중복되면 최대 30%를 가산한다. 전략공천 확대 차원에서 중앙당 공천관리위원회가 선거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적절하다고 판단한 지역은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하도록 했다. 지방선거 단체장뿐만 아니라 국회의원 총선거 때도 이 규정이 적용된다. 경선 때는 책임당원 전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일반 여론조사와 책임당원 투표 결과 반영 비율은 현행 7 대 3에서 5 대 5로 조정한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국회가 최근 대형 화재 참사의 원인을 메울 입법 미비 문제를 장기간 방치했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여야 의원들이 뒤늦게 소방 안전 관련 법안 발의에 나섰다. 충북 제천 화재 참사 피해를 키운 건축 외장재 ‘드라이비트’의 교체 비용을 지원하는 내용도 담았다. 더불어민주당 송영길 의원은 31일 건축법,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도로교통법 개정안 등 3건을 대표 발의했다. 법안에는 민주당 김태년 정책위의장, 이춘석 사무총장, 문희상 의원 등 22명이 이름을 올렸다. 건축법 개정안은 건축주가 방화 기능을 갖춘 마감 재료로 건축물을 교체하게 되면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비용 일부를 보조하거나 융자할 수 있도록 했다. 현행법도 건축물 외벽 마감재료를 방화에 지장이 없는 재료로 시공하도록 규정했지만, 법 개정 이전에 지어진 건축물에는 적용되지 않던 빈틈을 메우겠다는 것이다. 또 다중이용업소의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소방대상물의 높이가 31m 이하인 경우에도 승강기 승강장에 제연 설비를 의무화한다. 소방 관련 시설 주변 도로에 불법 주차를 하면 과태료를 기존 20만 원에서 30만 원으로 상향하는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발의했다. 자유한국당 권석창 의원은 지난달 30일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제출했다. 제천과 밀양 참사와 같이 다중이용업소 등의 화재로 인명피해가 발생했을 때 특별재난구역으로 선포되지 않더라도 피해자와 그 가족을 지원할 수 있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국회 자성론이 나왔다. 유재중 행안위원장은 “국민 안전을 책임지는 위원회로서 국민들께 면목이 없다”며 제천 화재 참사 희생자를 위한 묵념을 했다. 한국당 이명수 의원은 법안 처리가 지연돼 화재 참사가 반복됐다는 지적에 “법안 처리는 국회 권한일 뿐만 아니라 의무이기도 하다. 상임위 법안 처리가 지체되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했다. 그러나 제천 화재 참사의 명확한 책임을 규명하기 위한 청문회 개최 여부를 놓고선 다시 싸웠다. 한국당 행안위 간사인 홍철호 의원은 “피해가 커진 원인을 현장 책임자의 어리석음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간사인 권은희 의원도 청문회는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민주당 간사인 진선미 의원은 “진상 규명과 후속 조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지만, 유족들은 사고가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도 반대한다”고 맞섰다. 한국당 소속 유 위원장은 “저도 청문회가 필요하다고 본다. 여야 간사 간 협의를 해 달라”고 했다. 한편 소방청은 국회 업무보고를 통해 1주일 전 사전 통보 후 실시하던 소방특별조사를 사전 예고 없이 불시에 수시로 진행하기로 했다. 특히 비상구 폐쇄로 사망자가 생기면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거나 1억 원 이하의 벌금을 물게 할 방침이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나 고령자가 이용하는 병원은 요양 병상 수에 관계없이 스프링클러 설비를 설치하는 방안도 추진된다.장관석 jks@donga.com·박훈상 기자}

“(초청에 대해) 여러 이야기가 있지만 긍정적으로 (참석을) 생각해보겠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31일 한병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전달한 문재인 대통령의 평창 겨울올림픽 행사 초청장을 받고 이같이 말했다. 서울 강남구 이 전 대통령 사무실로 찾아간 한 수석이 초청장을 전달하며 “문 대통령이 정중히 예우를 갖춰 찾아뵙고 이 전 대통령 내외분을 초청하라고 했다”고 하자 이렇게 밝힌 것. 이 전 대통령은 공개 면담에선 “대한민국이 화합하고, 국격을 높일 좋은 기회이니 이번 정부가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해야 한다”고 덕담을 건네기도 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한 수석이 문 대통령의 초청장을 건네자 “초청장이 왔으니 봐야지”라며 잠시 열어보곤 금세 초청장을 다시 봉투에 집어넣었다. 이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언급한 ‘여러 이야기’는 적폐청산 수사에 대한 이 전 대통령의 불편한 심경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은 최근 검찰의 특수활동비 수사에 대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밝혔고 문 대통령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맞대응해 전현직 대통령 간 갈등은 최고조로 치솟은 상황이다. 일각에선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여 과정에서 보수층이 반발하고 있는 가운데 이 전 대통령의 행사 참가를 유도해 통합 효과를 부각하려 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 전 대통령의 한 참모는 “검찰 수사는 그대로 진행하면서 올림픽에 나와 달라고 하니 순수성이 의심된다”고 했다. 청와대는 이 같은 해석에 선을 긋고 있다. 이 전 대통령의 초청은 문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참모가 “야당에서 ‘쇼 한다’고 비판할 수 있다”고 반대했지만 문 대통령은 “이 전 대통령이 올림픽 유치를 위해 노력하셨는데 정치적 상황 때문에 초청을 못 하면 되겠느냐”고 말했다는 후문이다. 한 수석은 이 전 대통령과 20여 분간의 비공개 면담을 마친 뒤 “이 전 대통령이 참석하겠다고 확답했다”며 “이 전 대통령이 ‘이 정부가 잘됐으면 좋겠다. 잘 통합하고 화합하고 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충북 제천에 이어 경남 밀양 화재 참사를 계기로 국회의 관련 입법 직무 유기가 논란이 되고 있는 가운데 화재 안전을 관할하는 국회 행정안전위원회가 이른바 ‘소방안전 5개 법안’을 법안심사소위에 상정하고도 길게는 300일 넘게 한 번도 논의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동아일보가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분석한 결과 2016년 11월 21일 발의된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지난해 2월 14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돼 이달 10일 심사가 이뤄지기까지 311일이나 걸렸다. 법안들을 놓고 의원들 간 이견이 있었던 게 아니라 다른 일을 핑계로 손을 놓고 있었던 것. 국회의 늑장 대처가 법안 처리 지연을 가져왔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행안위, 오늘 소방 법안 11건 소위 회부 도로교통법 개정안도 지난해 9월 18일 소위에 회부된 뒤 10일이 돼서야 논의가 이뤄졌다.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도 지난해 2월 14일 소위에 회부된 뒤 아무런 추가 논의가 없다가 10일 처리됐다. 법제사법위원회를 아직 통과하지 못한 채 계류 중인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지난해 9월 18일 소위에 올라간 이후 논의되지 않았다. 소방산업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아예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에 회부되지도 못한 채 방치되다 10일 처음 논의됐다. 행안위 관계자는 “행안위에 계류된 법안이 늘 1000건이 넘는다. 기계적으로 법안을 처리할 수는 없기 때문에 우선순위에 따라 심사할 수밖에 없다”고 해명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국회에선 소방관 처우 개선이 시급한 과제여서 관련 법안부터 처리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행안위는 지난해 12월 제천 화재 참사가 터지고도 전체회의를 당초 이달 3일에서 10일로 일주일 미루기도 했다. 행안위는 공식적으로는 “제천 참사 현장을 조사한 소방합동조사단 일정 등을 감안해 조정한 것”이라고 설명하지만 일부 의원의 지역구 일정이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걸로 알려졌다. 또 다른 행안위 관계자는 “새해 들어 지역구 관리를 해야 한다는 의원이 적지 않아 전체회의 일정을 미룬 걸로 안다”고 말했다. 행안위는 31일 전체회의를 열고 소방안전 법안 11건을 추가로 소위에 회부할 계획이다.○ 일부 법안은 첨예하게 이익 충돌해 처리 장기화 해당 법안을 둘러싼 관련 업계 내부의 이익이 서로 충돌하는 것도 화재 안전 관련 법안의 신속한 처리를 저해하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10일 행안위 법안심사소위엔 소방안전 5개 법안이 급하게 올라왔다. 이들 법안 가운데 유독 지난해 5월 국민의당 장정숙 의원이 발의한 소방시설공사업법 개정안을 놓고 야당 의원들끼리 설전이 벌어졌다 “소방시설공사 ‘분리 발주’는 상임위에서 수차례 논의됐지만 계속 계류시킨 사안이다. 오늘 논의되기에 적절치 않다.”(A 의원) “그동안 여러 차례 논의됐다고 또 늦추는 게 적절한가. 분리 발주는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일단 논의하자.”(B 의원) A 의원과 같은 당인 C 의원도 “일부 부처에서 반대하고 있고 오늘 논의하기에 시간상 제약이 있다”고 했다. 논란이 된 소방시설 공사 분리 발주는 건물 공사에서 방염(防炎) 내·외장재 설치 같은 소방시설 공사를 전문 업체가 따로 수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규정. 그동안 건물과 소방시설 공사를 한꺼번에 수주한 일부 대형 건설사가 소방시설 업체에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단가를 후려쳐 부실공사가 우려된다는 지적을 감안한 것이다. 한국소방시설협회에 따르면 국내 소방시설 공사 시장 규모는 약 4조3000억 원으로 설계와 시공, 감리, 방염 처리에 걸쳐 총 6000여 개의 중소기업이 영업하고 있다. 물론 분리 발주에 대해선 정부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소방청은 “소방시설 공사의 품질을 높일 수 있다”며 분리 발주에 찬성하지만 국토교통부는 하자 책임이 불분명해지고 시공 효율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19대 국회 때도 업체 간의 대립 등으로 법안 처리가 되지 않았다. 장 의원은 3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분리 발주를 저지하려는 대형 건설사들의 입김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 의원 측은 “분리 발주는 건설업자와 소방공사업자들 사이에 첨예한 의견 대립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한 것일 뿐”이라고 반박했다.○ 朴정부 시절 국민안전처 둘러싼 여야 갈등도 한몫 여야 정쟁도 입법 처리 지연의 주요 원인이다. 2014년 10월 당시 여당 소속이던 조원진 의원이 발의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은 박근혜 정부가 신설한 국민안전처를 놓고 벌어진 여야 간 기 싸움이 법안 처리에 영향을 끼친 사례다. 조 의원 측은 “화재 안전 컨트롤타워인 국민안전처에 힘을 실어주는 내용이 일부 포함됐는데 당시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문제 삼았다”고 주장했다. 이 법안은 그해 5월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사건을 계기로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에 재실자의 나이와 피난 속도를 반영할 수 있도록 화재안전영향평가를 실시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화재안전영향평가 조항이 빠져 결과적으로 밀양 세종병원은 설치 대상에서 제외됐다. 화재안전영향평가제가 박근혜 정부가 신설한 부처인 국민안전처의 권한을 강화시킬 것으로 보고 야당이 강하게 반대했다는 것이다.장관석 jks@donga.com·박훈상·김상운 기자}
국가정보원의 적폐청산 작업을 주도했던 개혁발전위원회(위원장 정해구) 민간위원들이 비밀 취급 인가 없이 국정원 내부 자료를 열람한 게 논란이 되자 자유한국당이 이를 방지하기 위해 ‘신원조사법’을 만들기로 했다. 국정원은 정 위원장 등에 대해 신원 조사를 거치지 않고 비밀 취급 인가를 내준 의혹도 받았다. 한국당 소속인 강석호 국회 정보위원장은 28일 “국가보안을 위한 신원 조사가 대통령령인 보안업무규정과 그 시행규칙에만 규정돼 있다. 법률적 근거 없이 정보기관장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만큼 신원조사법을 발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강 위원장이 발의하는 신원조사법에는 신원 조사 대상자에 ‘비밀(국가안전보장에 해를 끼칠 우려가 있는 국가 기밀)의 취급 또는 열람을 위해 인가를 받으려는 사람’을 포함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지난해처럼 민간인이 신원 조사도 받지 않고 비밀 취급 인가를 받거나 국가 기밀을 취급·열람하면 불법이 된다. 현행 보안업무규정에도 비밀은 비밀 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만 다룰 수 있다. 또 비밀 취급 인가를 받은 사람 중 그 비밀과 업무상 직접 관계가 있는 사람만 열람할 수 있다. 하지만 당시 국정원은 “보안업무규정 24조 2항에 따라 비밀 취급 미인가자도 국정원장이 정하는 바에 따라 보안 조치를 하면 열람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동시에 신원조사법은 비밀과 연관이 없는 사람에 대한 신원 조사는 최소화한다. 비밀에 접근이 어려운 일반 공무원 임용 때는 간이 신원 조사를 도입한다. 또 신원 조사 항목에서 기존 규정 등에 있는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삭제하고 이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대한 신념’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거세게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관계자는 “법안이 발의된 뒤 구체적인 논의를 거쳐봐야겠지만 여권에선 ‘지금이 어느 때인데 민간위원의 사상 검증을 하자는 것이냐’고 나올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여야 정치권이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직후 경쟁적으로 현장에 달려가 “네 탓” 책임 공방을 벌였지만 정작 중요한 소방안전 관련 법안들을 1년 넘게 통과시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잇단 화재 참사 원인이 스프링클러 미설치와 방염(防炎) 외·내장재 같은 시스템 문제인데도 정작 국회가 관련 입법을 방치해 결과적으로 희생을 키운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밀양 참사의 주요 원인인 스프링클러와 비상탈출 로프 설치 규정이 대표적이다. 2014년 10월 건물규모가 아닌 재실자의 나이와 피난 속도 등을 기준으로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을 선진국형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이 개정안은 반영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밀양 세종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에서 빠졌다. 2015년 1월 경기 의정부 아파트 참사의 주요 원인을 시정하는 불연재 사용 법안은 논의조차 못 하고 이듬해 5월 자동 폐기됐다. 제천 참사의 원인인 소방차 진입구역 내 일반 차량 주차를 막기 위해 과태료 부과를 강화하는 법안도 비슷한 처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길게는 14개월간 잠자고 있던 관련 법 개정안 5개를 제천 참사가 나자 이달 10일 한꺼번에 통과시켰지만, 법제사법위원회는 아직 상정도 안 했다.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감안하면 상반기 내 시행은 물 건너갔다.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입법 공백’을 계속 방치할 경우 제2의 제천, 밀양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을 늘리는 등 관련 법령부터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국회가 조속한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김상운 sukim@donga.com·박훈상 기자}

여야 정치권이 밀양 세종병원 화재 참사 직후 경쟁적으로 현장에 달려가 “네 탓” 책임 공방을 벌였지만 정작 중요한 소방안전 관련 법안들을 1년 넘게 통과시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잇단 화재 참사 원인이 스프링클러 미설치와 방염(防炎) 외·내장재 같은 시스템 문제인데도 정작 국회가 관련 입법을 방치해 결과적으로 희생을 키운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밀양 참사의 주요 원인인 스프링클러와 비상탈출 로프 설치 규정이 대표적이다. 2014년 10월 건물규모가 아닌 재실자의 나이와 피난 속도 등을 기준으로 스프링클러 설치 기준을 선진국형으로 바꾸자는 제안이 있었다.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이 그것이다. 하지만 국회에서 이 개정안은 반영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밀양 세종병원은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대상에서 빠졌다. 2015년 1월 경기 의정부 아파트 참사의 주요 원인을 시정하는 불연재 사용 법안은 논의조차 못 하고 이듬해 5월 자동 폐기됐다.제천 참사의 원인인 소방차 진입구역 내 일반 차량 주차를 막기 위해 과태료 부과를 강화하는 법안도 비슷한 처지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길게는 14개월간 잠자고 있던 관련 법 개정안 5개를 제천 참사가 나자 이달 10일 한꺼번에 통과시켰지만, 법제사법위원회는 아직 상정도 안 했다. 6개월의 유예기간을 감안하면 상반기 내 시행은 물 건너갔다.전문가들은 정치권이 ‘입법 공백’을 계속 방치할 경우 제2의 제천, 밀양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박청웅 세종사이버대 교수(소방방재학)는 “스프링클러 설치 대상을 늘리는 등 관련 법령부터 대대적으로 점검하고 국회가 조속한 입법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방기준 강화법안 1년 넘게 방치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가 터지고 20일 뒤인 이달 10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 소방차의 화재현장 진입을 원활하게 하는 내용의 소방기본법과 도로교통법 개정안 심사가 진행됐다. “의견 있으신 위원님들 말씀해주세요.”(소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 (그런데) 앞당겨도 문제없잖아요? 준비가 필요합니까?”(자유한국당 황영철 의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동주택 대상을 정하려면 대통령령을 개정해야 됩니다. 대상이 안 정해져 즉시 시행할 수 없습니다.”(소방청 우재봉 차장) “알겠습니다.”(황 의원) 여야 간 쟁점이 없던 소방기본법 개정안 중 법안심사소위가 제시한 유일한 의견은 간단히 봉합됐다.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발의된 지 1년 2개월이 흘렀지만 아무런 진척이 없었다. 그러나 하루 동안 오전에는 법안심사소위(2시간 26분), 오후에는 전체회의(5시간 10분)가 열렸다. 국회가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해 7시간 36분 만에 이 개정안을 포함한 법안 5건을 벼락치기하듯 처리한 것이다. 행안위가 통과시킨 법안을 보면 화재 예방과 관련해 중요한 내용이 적지 않다. 예컨대 2016년 11월 발의된 소방기본법 개정안은 공동주택에 소방차 전용구역을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했다. 소방차 전용구역에 일반 차량을 주차하거나 진입을 가로막으면 최대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다. 그러나 해당 법안들은 우여곡절 끝에 행안위는 통과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법제사법위원회에는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법사위를 거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도 통상 6개월∼1년의 유예기간이 있는 만큼 이 법안들이 올 상반기 안에 시행되긴 어렵다. 법사위 관계자는 “솔직히 여야 모두 의지가 없었다. 임시회가 열리지 않는 기간이라도 여야가 합의하면 얼마든지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법사위원장인 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30일 임시회가 열리자마자 이 법안들을 검토한 뒤 우선 처리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밀양 화재 참사의 주요 원인 중 하나인 스프링클러나 비상탈출 로프 설치 의무 규정은 과거 국회 논의 과정에서 완화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2014년 10월 발의된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법 개정안은 그해 5월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사고를 계기로 요양병원에도 스프링클러 설치를 의무화했다. 건물 규모가 아닌 병원 환자들의 나이와 피난 속도를 설치 기준에 반영하도록 한 것. 그러나 국회 논의 과정에서 연면적 5000m² 이상 혹은 수용인원 500명 이상인 경우에만 스프링클러를 설치하도록 수정됐다. 밀양 세종병원은 결국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지난해 6월 발의된 같은 법 개정안도 숙박시설이나 밀폐된 영업장 등에 대해 스프링클러와 비상탈출 로프 설치를 규정했지만, 중소 상공인의 부담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지난해 말 자동 폐기됐다. 제천 참사의 주요 원인인 외벽 마감재와 관련해선 19대 국회 때 유관 법안이 발의됐지만 해당 상임위인 위원회(현재는 국토교통위원회)에서 제대로 된 심사과정 없이 폐기됐다. 2015년 4월 “6층 이상인 건축물과 도시형생활주택 등은 외벽 마감재로 반드시 불연 재료를 사용하도록 하자”는 취지로 건축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그러나 건축주의 경제적 부담이 크고, 낮은 층은 불이 나도 상대적으로 대피가 쉽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결국 이 법안은 소위에서 단 한 차례도 논의가 이뤄지지 않다가 2016년 5월 자동 폐기됐다. 김상운 sukim@donga.com·박성진·장관석 기자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