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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디지털인문학센터가 공동으로 8·15광복 이후 본보에 실린 기사 빅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대한민국 70년 동안 우리 사회·문화의 변화상이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 센터가 개발한 ‘동아일보 코퍼스(말뭉치)’ 분석 시스템은 1946∼2014년 발간된 동아일보 기사 260만 건(약 4억100만 어절) 전체를 분석할 수 있다.○ 문화재에서 소비재 된 명품 ‘명품(名品) 브랜드’, ‘명품 가방’…. 신문지상에서 명품이란 단어가 등장한 건 1970, 80년대다. 당시까지만 해도 지금처럼 고급 럭셔리 제품이 아니라 박물관, 전시회, 청자 등 문화재와 관련된 단어들과 함께 쓰였다. “명품을 갖고 있는 수장자들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물건을 팔려고 내놓지 않아 일반 사람들은 박물관이나 미술관 아니면 구경조차 할 수가 없다.”(동아일보 1985년 3월 2일) “고려청자의 빼어난 명품들을 한자리에 모은 ‘고려청자 명품전’.”(1985년 10월 15일) 최종택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1980년대는 발굴조사가 전국적으로 펼쳐지면서 각종 국보·보물급 문화재가 출토돼 문화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던 시기”라고 말했다. 명품이 백화점, 시계, 패션 등의 단어와 함께 쓰이기 시작한 건 1990년대 이후다. 2000년대에는 브랜드, 매장, 제품 등 ‘고급 소비재’를 지칭하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짝퉁 명품 밀수 단속 기사가 자주 등장하는가 하면 “샤넬 디오르 루이뷔통 프라다 페라가모 등 국내에서 ‘명품’으로 불리는 유명 해외 브랜드를 영어로 표현하면 럭셔리 혹은 프레스티지다”(2000년 1월 21일)처럼 명품의 정의를 소개하는 기사도 나왔다. ○ 혹한에서 폭염으로 요즘 냉방권이 기본권으로 등장할 만큼 더운 한국이지만 더위보다 추위가 큰 문제였던 시절도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60년대 “새해에 접어들어 십육 일째 계속되는 강설과 십삼 년래의 혹한으로 대부분 교통망이 두절돼”(1963년 1월 17일) “폭풍설 몰고 혹한 엄습―전선엔 영하 29도”(1965년 1월 11일) 같은 기사들이 사회면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1950년대 주요 키워드의 하나로 ‘동장군’이 꼽히기도 했다. 실제 1940∼1980년대까지는 기사에서 ‘혹한’이 사용된 빈도가 높다.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역전돼 ‘폭염’이 더 많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염’은 기록적 무더위를 맞은 1977, 1994, 2012년 사용이 급증했다. “35년래의 폭염이 밀어닥친 7월의 마지막 주말, 전국은 온통 용광로처럼 들끓어 올랐다.”(1977년 8월 1일)○ ‘공매’→‘학과’→‘게임’ 인기 이동 ‘인기’와 함께 쓰인 단어는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했을까. 예나 지금이나 ‘배우’ ‘가수’ ‘영화’ 등 대중문화의 주인공들이 상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1950년대에는 ‘비료 공매(公賣)에 최고 인기’(1958년 4월 30일) 기사처럼 ‘공매’도 한 문장에서 ‘인기’와 함께 자주 사용됐다. 1980년대 인기와 가장 관련된 단어는 ‘학과’였다. 1981년 대입 전형 방식이 본고사에서 학력고사로 바뀌며 선시험 후지원 방식이 도입됐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대학 지원에서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졌고 끝내는 ‘일류대 인기학과 미달’이라는 기현상이 빚어지고 말았다”(1981년 5월 25일)는 보도는 당시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산업화가 진전되며 취업이 비교적 유리한 상경계열, 공학계열 학과를 선호하던 현상도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990년대 이후부턴 정보기술(IT)의 발달과 함께 급격히 성장한 ‘게임’이 인기와 자주 쌍을 이뤘다.○ 여전히 입시 지옥 중인 대한민국 195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 ‘지옥’은 내내 ‘입시’와 함께했다. 1960년대 ‘입시 지옥’은 대학 입시보다는 중학 입시 관련 단어와 함께 쓰인 경우가 많았다. 1970년대에는 대중교통 관련 ‘승차’가 지옥과 높은 빈도로 자주 쓰였다. 1980년대까지 ‘팀장’이라는 단어의 사용 빈도는 ‘0’에 가까웠다. 2000년대 급증한 ‘팀장’은 2010년대에는 ‘과장’을 추월했고, ‘부장’과의 간격도 좁혔다. 과장과 팀장이 2000년대 각각 어떤 업무 관련 단어와 함께 자주 언급됐는지 살펴보면 정책, 행정, 지원 등은 ‘과장’이 주로 맡았다. 전략, 투자, 마케팅, 홍보, 분석 등은 ‘팀장’이 맡았다. 스포츠에서 ‘씨름’은 1980년대 평균적으로 ‘골프’보다 기사에서 더 자주 언급됐지만 1988년을 기점으로 역전된다. 1995년 무렵부터 급증한 골프의 사용 빈도는 1998년 이후 박세리가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잇달아 우승하며 정점을 찍었다.유원모 onemore@donga.com·조종엽 기자 ▼ 외환위기땐 ‘소주’, 2002 월드컵땐 ‘맥주’ ▼정말 맥주는 기쁨의 술, 소주는 슬픔의 술이었을까. 신문에 자주 실린 주류들을 비교하면 실제 관련성이 보인다. 대형 스포츠 이벤트가 있을 때 소비량이 는다는 속설처럼 올림픽, 월드컵 때 맥주는 신문에 가장 많이 언급됐다. 2002년이 최고치다. ‘서민의 술’ 소주는 외환위기를 겪던 1990년대 후반 언급이 급격하게 늘었다. 동아일보는 “국제통화기금(IMF) 체제 이후 소비 부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현상은 단연 저가 품목의 선호 경향이다. 주류시장도 맥주 위스키 시장 우위에서 소주의 약진 형태로 변모하고 있다”(1999년 1월 25일)고 보도했다. 사실 맥주는 1950년대 이후 신문에 가장 많이 언급된 주류다. ‘가짜 맥주’를 만들던 일당이 경찰에 붙잡히거나 1970년대 ‘한독맥주’의 주식 위조사건 등 사회 문제와 관련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막걸리는 1980∼2000년대에 별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가 2010년 ‘막걸리 붐’을 타고 다른 주류를 압도하면서 반짝 최고치를 찍은 후 다음 해부터 다시 빈도가 줄어들었다. 외식은 어떨까. 불고기는 1960, 70년대 부동의 1위였다. 1980, 90년대 들어 불고기를 추월한 햄버거와 피자는 인스턴트 음식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면서 2010년대 빈도가 하락했다. ‘서민 음식’ 삼겹살은 1990년대가 돼서야 빈도가 늘기 시작했다. 전형주 장안대 식품영양학과 교수는 “무역 자유화로 외국산 식품들이 들어오면서 가격이 낮아졌고 고기 전문점도 이때 많이 생겨났다”고 분석했다. 유행은 돌고 도는 듯하다. ‘미니스커트’의 빈도는 가수 윤복희가 미니스커트를 입고 나타나 신드롬을 일으킨 1967, 1968년이 최고치였다. 이후 1992, 1997, 2003, 2007, 2012년 등 약 5년 주기로 언급이 많아지는 현상이 반복됐다. ‘나팔바지’도 1993년 언급이 늘어난 뒤 비슷한 주기로 등락을 되풀이했다.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1950년대 신문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유엔’으로 밝혀졌다. 1960∼90년대에는 대한민국과 같은 문장에 등장한 단어로 ‘정부’가 1위였다가, 2000년대 들어 ‘국민’이 1위로 올라섰다. 정부에서 국민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한 것으로 해석된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지 70주년을 맞아 동아일보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디지털인문학센터가 공동으로 1946∼2014년 동아일보 기사에서 ‘같은 문장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를 분석한 결과 이렇게 나타났다. 1950년 3월 5일자 동아일보는 “대한민국은 유엔 감시하 선거를 통하여 수립되었던 것이며 유엔 총회는 한국의 유일한 합법적 정부로서 규정한 바 있는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번 연구는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이 구축한 ‘동아일보 코퍼스(corpus·연구를 위한 말뭉치)’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활용했다. 같은 문장에 함께 쓰인 정도가 높다는 건 두 단어의 연관성이 강하다는 걸 뜻한다. 이도길 민족문화연구원 교수는 “이 시스템은 직관이 아니라 철저히 단어의 양적 사용 양상을 토대로 추출된 결과를 보여 준다”고 말했다. 6·25전쟁 발발 뒤에는 유엔군 참전 관련 기사가, 1950년대 중후반에는 유엔 가입 시도와 좌절에 관한 기사가 많았다. 1950년대를 대표하는 키워드 중 하나로 유엔이 한국의 부흥과 재건을 돕기 위해 설립한 ‘운크라(UNKRA·유엔한국재건단)’가 꼽히기도 했다.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유엔은 1948년 12월 12일 한국 독립을 승인하는 등 한국의 새로운 탄생을 위한 산파였다”며 “막대한 전후 원조가 유엔의 이름으로 이뤄졌고, 도움받는 이들에게 유엔의 표지는 수호천사와 같은 이미지로 다가왔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빅데이터에는 민주화와 산업화를 모두 이룬 우리 현대사가 고스란히 담겼다. 1960년대까지도 ‘춘궁기’가 주요 키워드에 올랐고, 1980년대를 기점으로 단어 ‘전자’의 사용 빈도가 ‘쌀’을 앞섰다. ‘민족’이란 키워드 대신 ‘시민’이 점차 성장해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신문은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근현대의 가장 기본적인 사료다.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됐다가 1945년 12월 복간 이후 지속 발행하고 있는 정론지 동아일보는 사료로서 가치가 특히 높다. 그러나 방대한 자료도 분석 도구가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다. ‘동아일보 코퍼스’는 이도길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김일환 성신여대 국문학과 교수(민족문화연구원 공동연구원) 등이 2009년부터 연구해 탄생했다. 1946∼2014년 발간된 동아일보 약 260만 기사(약 4억1000만 어절) 전체를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연구팀은 같은 기간 ‘물결21’이라는 사업을 통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신문의 2000∼2013년 신문 기사 5억9200만 어절을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이미 공개하기도 했다. 신문 기사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기사 문장을 형태소로 분리하고, 품사 정보를 ‘태깅’(부착)하는 게 필요하다. 이 교수는 먼저 ‘KMAT’라는 기계학습 기반의 자동 형태소 분석, 품사 태깅 도구를 개발해 ‘21세기 세종계획’으로 확보된 한국어 언어 자료를 학습했다. 이를 통해 새로운 형태소 분석 모델을 만들어냈다. 이 교수는 “일제강점기 동아일보 기사는 맞춤법이 오늘날과 많이 달라 별도 작업이 필요하다”며 “추후 완성되면 100년가량의 시간대에서 언어적, 사회·문화적 변화를 추적할 수 있는 데이터가 확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공기어(共起語·문맥상 함께 등장하는 단어) 분석이 가능한 품사 범주를 확대하고 인명·지명·단체명·사건 명칭을 구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정교하게 보완하면 가까운 미래의 추세 예측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80년 ‘서울의 봄’은 짧았지만, ‘민주화’는 7년 뒤 마침내 봉우리를 이뤘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70주년을 맞아 본보와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디지털인문학센터가 공동으로 ‘동아일보 코퍼스(연구를 위한 말뭉치)’를 분석한 시스템은 연도별로 특정 단어가 본보 기사에 등장한 ‘빈도’를 그래프로 보여준다. 대한민국의 정치적 변화상을 상징하는 단어 ‘민주화’가 쓰인 빈도 그래프는 군부독재 시절 숨죽이던 민주화의 열망이 폭발하는 과정을 그대로 드러낸다. 4·19혁명이 일어난 1960년 ‘민주화’ 키워드의 빈도는 살짝 늘었다가 이내 수그러든다. 빈도가 그래프에서 작은 봉우리를 이룬 건 1980년 ‘서울의 봄’. 유신체제가 막을 내린 뒤 전국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벌어졌다. 당시 동아일보는 신년호 특집 기사에서 “경제성장을 다소 늦추고 생활수준 향상을 지연시키더라도 자유선거에 의한 국민의 정치 참여와 인권을 신장시키는 민주화가 바람직하다는 얘기다”(1980년 1월 1일)라고 보도했다. 신군부가 비상계엄으로 짓밟은 ‘민주화’가 다시 급증하는 건 1985년부터다. 오제연 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1985년 2월 총선에서 선명 야당의 기치를 내건 신한민주당이 직선제 개헌을 어젠다로 제시하고 돌풍을 일으킨 영향”이라며 “그래프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며 ‘민주화’가 정점을 찍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민족’보다 ‘시민’의 꾸준한 성장 민주주의의 성숙은 ‘시민’이란 단어의 사용 빈도 증가에서도 확인된다. ‘시민’은 1950∼2000년대 꾸준히 빈도가 늘었다. 처음에는 같은 문장에 ‘서울’ ‘회관’ 등이 함께 주로 등장하다가 1990년대 이후 ‘단체’와 ‘운동’ ‘연대’라는 단어와 함께 많이 쓰였다. 시민단체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벌인 낙천·낙선 운동의 위법 논란이 ‘뉴 밀레니엄’의 벽두부터 주요 뉴스로 등장하기도 했다. 오 교수는 “단순히 시(市)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었던 시민이 자율성과 자발성을 지닌 민주주의의 주체로 등장하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1980년대 시민과 함께 ‘광주’가 같은 문장에 가장 많이 쓰인 건 1980년 5·18민주화운동에서 희생된 ‘광주 시민의 한(恨)’에 대한 기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시민의 성장은 ‘민족’의 퇴조와 대조된다. 1940, 50년대 민족은 시민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쓰였고, 1980년대까지도 시민과 비슷한 추세로 사용됐으나 이후 계속 하락세다. 이는 글로벌화를 거치며 민족주의의 힘이 약화된 것을 보여준다. 감성적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주장의 호소력이 떨어진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성 평등의 부각, ‘반공 대(對) 진보’ ‘자유’는 1960, 70년대까지 ‘세계’와 같은 문장에서 함께 쓰인 경우가 많았다. 냉전 상황에서 자유민주주의 진영을 지칭한 ‘자유세계’라는 단어가 많이 사용됐던 것.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무역’의 비중이 높아졌다. ‘평등’과 함께 한 문장에 쓰인 연관어로는 ‘자유’ ‘사회’ ‘원칙’ ‘법’ 등이 많았다. 특히 1980년대 이후 ‘교육’이, 1990년대 이후 ‘양성’과 ‘남녀’가 함께 많이 등장한 건 평등한 권리의 내용이 확장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단어 ‘진보’의 출현 빈도가 늘면서 1989년부터 ‘반공’과 역전되는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박태균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민주화 이전에는 반공주의 내에서 여야가 갈라졌지만 민주화 이후 보수 대 진보로 정치 구도가 바뀌는 것과 관련이 있다”며 “이 구도는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자당이 생겨난 뒤 정착했다”고 말했다. 진보당을 창당한 조봉암(1899∼1959)이 간첩으로 내몰려 사형당한 뒤 1960년대에는 ‘혁신 정당’이라는 표현이 오히려 많이 사용됐으며, ‘진보 정당’이라는 말은 민주화 뒤 ‘민중당’ 등이 등장하면서 다시 쓰였다는 설명이다.○ ‘3김’의 정치 역정, 그래프에 그대로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의 이름이 기사에 언급된 빈도 그래프에는 그들의 정치 역정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원한 2인자’ 김종필이 본보 기사에 나타난 빈도는 1963년 권력의 2인자로 국회에 진입해 6·3한일회담반대운동으로 2차 외유를 떠나는 이듬해까지가 정점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은 1980년대까지 모두 ‘민주화’와 그래프 모양이 대체로 비슷해 ‘라이벌이자 동지’였음을 실감케 한다. 1987년 이들의 빈도는 정점을 찍었지만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된 뒤 하락했다가 당선(김영삼 1992년, 김대중 1997년) 시기 다시 번갈아 상승한다. 두 사람은 1980년 ‘서울의 봄’ 전후를 제외하면 유신 말기, 신군부 집권 초기인 1970년대 후반∼1980년대 초반 수감과 가택연금 등으로 신문에서 이름이 언급되는 횟수가 극도로 떨어진다. 당시 본보는 ‘재야인사’라고 에둘러 지칭하면서 두 사람의 소식을 전하기도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박대통령은 지난해 한해(旱害)로 인한 절량농가가 없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만약에 절량농가가 생길 경우에는 군수를 책임 지워 파면하겠다고 말했다.”(1969년 2월 6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즈음부터 70여 년간 동아일보에 나타난 빅데이터는 대한민국의 급속한 산업화와 이로 인한 사회변화를 그대로 보여준다.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팀이 분석한 1960년대 주요 키워드에는 ‘절량농가(絶糧農家)’도 있다. 양식이 떨어진 농가를 지칭하는 말이다. 연구팀은 논문에서 “춘궁기를 겪던 우리 사회가 식량생산조차 안정되지 못한 상황임을 보여 준다”고 설명했다.○ ‘쌀’에서 ‘전자’로 농업에서 공업으로 주요 산업이 변화하는 과정도 ‘쌀’ 등의 단어가 기사에 언급된 빈도 추이를 통해 파악할 수 있다. 광복 이후 1950년대까지 ‘쌀’의 중요성은 단연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쌀’의 빈도는 1970년대 ‘자동차’에 역전당하고, 1980년대에는 ‘전자’도 쌀을 앞선다. 2000년대 이후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원조’, ‘배급’, ‘차관’, ‘수출’의 사용 빈도는 우리 경제의 성격 변화를 그대로 드러낸다. 1940년대만 해도 사용 빈도가 원조-배급 순이었고, 수출과 차관은 단어 사용이 미미한 수준. 그러나 수출과 차관이 50년대 들어 배급을 앞서더니, 60년대 이후는 원조도 앞선다. 차관은 60년대, 수출은 70년대 단어 사용 그래프가 정점을 찍는다. 김낙년 동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1950년대 미국의 원조 물자와 미군 용역 등을 통해 투자 여력을 쌓기 시작한 한국 경제가 1950년대 말 원조 삭감 이후 해외 차관으로 필요한 자금을 끌어오고, 정책적으로 1980년대까지 ‘수출이 살길’이라고 강조하며 부족한 국내 저축을 커버하는 모습이 그래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고 말했다.○ 강남, ‘제비’에서 ‘아파트’로 부동산 뉴스의 한가운데에 서 있는 ‘강남’은 어떨까. 1950년대는 ‘강남’이란 단어의 사용 빈도 자체가 적었다. 그나마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오는 봄’이라는 문장이 많다. 1960년대까지도 ‘제비’나 ‘영등포’가 ‘아파트’나 ‘학원’보다 높은 빈도의 공기어로 등장해 한강 남쪽에 대한 인식이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70년경부터 ‘강남’의 사용 빈도는 급격한 증가한다. ‘부동산’, ‘고속버스’, ‘터미널’ 등이 같은 문장에서 함께 많이 사용됐다. 1990년대엔 ‘서초’, ‘송파’ 등 강남 주변 지역의 명칭이 10위 안에 들었고, 특히 2000년대 들어서는 ‘아파트’와 ‘부동산’이 ‘서울’과 ‘지역’을 제외하고 같은 문장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로 나타났다. 2010년대 강남과 한 문장에서 많이 등장한 ‘스타일’은 짐작하는 대로 싸이의 노래 ‘강남스타일’ 때문이다. 대중가요의 전 세계적인 유행을 통해서도 ‘강남’이 단순한 지역을 넘어 고유명사화(化)되고 사회·경제 및 차별화된 특정 문화 계층으로 규정됐다는 게 드러난다. ○ ‘애국’ 청년에서, 청년 실업 ‘청년’의 초상도 시대에 따라 변화했음이 동아일보 빅데이터 분석에서 드러난다. 청년과 함께 같은 문장에 쓰인 단어로 1950∼70년대에는 ‘애국’ ‘반공’ ‘경찰’ 등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서북청년단’, ‘조선민족청년단’과 같은 경찰을 보조하는 관제적 성격을 띤 단체가 활발히 활동했던 당시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1980∼90년대에는 ‘학생’과 ‘대학생’이 함께 많이 등장했다. 집회 시위와 관련된 보도들이 적지 않았다. 즉 학생운동의 주체로서 청년을 지칭하는 양상으로 변모한 것이다. 2000년대 이후에는 한 문장에서 쓰이는 연관어로 ‘일자리’와 ‘실업’ ‘취업’이 폭증해 선두그룹을 차지했다. 주목할 점은 소년, 장년, 노년과 같은 연령을 표현하는 단어들은 청년과 함께 등장한 단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기훈 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부원장)는 “‘청년’이란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단순한 연령이나 세대를 나타내는 개념이라기보다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집단을 의미했다”며 “2000년대 이후 젊은이들은 ‘비(非)주체화’되고 실업과 연결되는 사회 문제의 대상이 됐다”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1980년대 학생운동을 주도했던 세대가 지금까지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는 건 과거 한국 사회가 더 젊은 사회였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덧붙였다.조윤경 yunique@donga.com·조종엽 기자}
“경영진단평가…계속 나쁜 결과가 나와서 좋은 결과 나올 때까지 (평가)업체 바꿔가며 여러 번 했었죠.”(웹툰 ‘가우스 전자’에서) 개선점을 찾기 위한 테스트에서 좋은 평가를 받으려고 ‘골대를 옮기는’ 건 세계 최강 미군이라도 다르지 않나 봅니다. 신간 ‘레드팀’(마이카 젠코 지음·스핑크스)과 ‘레드 팀을 만들어라’(브라이스 호프먼 지음·토네이도)가 공통적으로 소개한 일화가 있네요. 2002년 미군 역사상 최대 비용이 들었다는 군사개념 개발 훈련 ‘밀레니엄 체인지 2002’. 가상의 적군인 ‘레드 팀’은 모의전쟁이 시작되자마자 쾌속정의 자살폭탄 공격으로 순식간에 미군의 첨단 이지스 시스템을 무력화하고 가상 함선 19척을 침몰시킵니다. 그러자 이 ‘워 게임’을 주관하는 군 고위층은 레드 팀의 대공사격과 무기고에 있는 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아예 레드 팀 사령관을 물러나게 합니다. 그리고 짜인 각본대로 이기지요. 요즘 뉴스를 보면 참 여러 분야에서 ‘독립성’이 필요하다 싶습니다. 시험지를 스스로 채점하면서 틀린 답을 고치는 아이의 모습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보수주의 원류로 꼽히는 18세기 영국 정치가 에드먼드 버크(1729∼1797)부터 미국의 네오콘까지 보수주의 사상을 결산한 개설서다. 책에 따르면 버크의 보수주의는 권력의 전제(專制)화를 막는 게 기본이었다. 제도와 관습을 지키고, 자유를 유지하며, 사회와 정치의 민주화를 바탕으로 질서 있는 점진적 개혁을 지향하는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추상적이고 자의적인 과거의 이미지에 바탕을 두고, 자유를 위한 제도를 파괴하고, 나아가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한다면 그것은 결코 보수주의라 말할 수 없다.” 이 같은 저자의 시각은 진창에 빠진 한국 보수주의에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저자는 보수주의의 지반이 흔들리는 건 역설적으로 진보주의라는 ‘라이벌’을 잃은 탓이라고 봤다. 보수주의는 일관된 이론 체계라기보다 프랑스혁명 이래 진보주의에 대항해 스스로의 논리를 구축했다. 그러나 오늘날 진보주의는 프랑스혁명의 자코뱅파, 사회주의 혁명을 목표로 했던 마르크스주의자, ‘큰 정부’ 주도의 사회 개량을 추진한 ‘리버럴파’ 등이 모두 크게 쇠퇴해 더 이상 예전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일본 도쿄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인 저자는 자신은 보수주의자가 아니고, 보수주의를 비판할 목적으로 책을 쓰지도 않았다고 했다. 비교적 평이하게 쓰였고, 두께에 비해 내용이 알찬 것도 매력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근 일본 책을 선호하는 독자층이 뚜렷하게 증가했다. 그런데 일본 작가의 저변은 그만큼 넓어지질 않았다. 이로 인한 출간 경쟁이 달아오르며 3∼5년 사이에 일본 작품의 선인세가 한 자릿수 이상 늘어났다.” 최근 출판계 관계자들의 하소연이다. 실제로 국내 서점가의 일본책 선호는 꾸준하게 오름세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2015년 베스트셀러 100위 내 일본 작가의 책은 9권이었고, 지난해에는 11권으로 늘었다. 소설 분야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표적인 작가는 히가시노 게이고다. 그의 책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현대문학)은 2012년 12월 번역 출간 이래 베스트셀러에 계속 올랐고, 지난달에는 누적 판매 100만 부를 돌파했다. 히가시노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 거물이 아니더라도 일본 작가들은 국내 시장에서 ‘타율이 좋다’. 2016년 여름 국내에 출간한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지음·비채)는 작가의 첫 작품인데도 1만2000부가 팔렸다. 2014년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 등 지음·인플루엔셜)로 시작된 일본 인문서의 인기가 자기계발서로 확대되는 경향도 눈에 띈다. 올 3, 4월 ‘만만하게 보이지 않는 대화법’(나이토 요시히토 지음·홍익출판사)과 ‘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와타나베 준이치 지음·다산초당)는 상반기 베스트셀러 70위권에 들었다. 감각적인 표지 디자인과 일러스트가 인상적인 일상 속 철학 에세이, 그림책 종류는 특히 20, 30대 여성들에게 인기가 좋다. 이렇다 보니 출간 경쟁이 격해지며 선인세는 계속해서 치솟는 분위기. 출판계에선 히가시노의 신간은 선인세가 이미 2억 원에 육박한다는 이야기도 나돈다. 책 1부가 1만 원이라고 치면 약 20만 부의 인세에 해당하는 금액. 출판계에선 그의 신간이 아니라 이미 국내에 출간됐다가 최근 출간권이 종료된 작품(구간·舊刊)들의 출간권을 따내려는 경쟁도 치열하다고 한다. 한 출판사 관계자는 “한 일본 여성 작가의 카툰에세이 선인세가 5년 전 300만∼400만 원 선이었는데 최근에는 1000만 원이 넘었다”며 “초판 1쇄를 2000부 안팎 찍는 요즘 출판 시장에서 1만 부 이상 판매가 예상된다면 그만큼 ‘베팅’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런 배경에는 한일 간 문화 동조 현상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선정 비채 편집장은 “과거 ‘일본이 트렌드에서 몇 년 앞서 있다’는 얘기를 흔히들 했지만 이제는 일본과 한국의 아이돌 시스템이 결합된 TV프로그램이 등장하고 K팝이 일본에 진출하는 등 거의 격차가 없어졌다”며 “한국과 일본의 유행과 관심사가 비슷해진 것이 원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강원 강릉시 대관령7터널을 빠져나오자 동풍이 태백산맥을 오르며 남긴 안개와 구름이 차창 오른쪽으로 펼쳐졌다.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운영하는 이동도서관 ‘책 읽는 버스’(책버스·문화체육관광부 주최, KB국민은행 후원)를 취재하러 3일 오후 강릉 오죽한옥마을에 가는 길이었다. 책버스는 한옥마을 내 ‘휴심정(休心亭)’ 앞에 서 있었다.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오죽헌이 지척이다. “책요? 결혼하고 나서도 한동안은 많이 봤지요. 요즘은 일에 지쳐 뭘 읽을 시간이 없었는데, 휴가 와서 책버스를 만나니까 정말 반갑네요.” 경기 부천시에서 가족과 왔다는 한옥마을 투숙객 정해영 씨(41)는 경포해변에서 해수욕을 한 뒤 책버스에 들렀다. 정 씨의 아들 승우 군(8)은 버스에서 신나게 학습만화를 읽었다. “독서를 하지 않으면 결코 올바른 사람이 될 수 없다”고 한 율곡 선생. 일에 떠밀려 독서가 어려워진 오늘날을 마주한다면 어떤 말씀을 하실까. 버스에 타보니 ‘#.무슨 책 읽어?’라는 제목의 게시판에 포스트잇이 빼곡히 붙어 있다. 책버스에 올랐던 이들이 남긴 책 소개다. “김애란의 ‘비행운’―현대인들, 특히 청춘의 삶 그 자체를 그려내고 있어요. 저는 슬퍼서 울었답니다. 엉엉” “이승희 시집 ‘거짓말처럼 맨드라미가’―죽고 싶을 때의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책” “클라라 마리아 바구스의 소설 ‘봄을 찾아 떠난 남자’―파랑새 같은 이야기. 나를 찾아 떠나서”…. 책버스는 일면식도 없는 이들이 서로 책을 추천하는 소통의 장이었다. 기자도 전날까지 강원도에서 휴가를 보냈다. 서울에서 챙겨온 책 몇 권은 영 잘못 골랐다 싶었던 차였다. 내부를 개조한 책버스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은 약 1000권. 무심코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남아 있는 나날’(민음사)을 뽑아들었다. 매미가 우렁차게 우는 가운데 시원한 버스에 앉자 책장이 절로 넘어갔다. 영국 저택 ‘달링턴 홀’의 집사로 평생을 보낸 주인공 스티븐스는 옛 동료를 만나러 휴가를 떠난다. 거기서 집사의 직분에만 맹목적으로 충실하게 보낸 자신의 삶이 잘못됐다는 걸 깨닫는다. 휴가 마지막 날 한 노인은 그에게 말한다. “우리 둘 다 피 끓는 청춘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계속 앞을 보고 전진해야 하는 거요. …하루 중 가장 좋은 때는 저녁이라고.” 문득 휴가 뒤 우리를 기다리는 일터도 스티븐스와 별반 다르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주인공의 말마따나 “언제까지 뒤만 돌아보며 내 인생이 바랐던 대로 되지 않았다고 자책해 본들 무엇이 나오겠는가.” 우연히 펼쳐 든 책은 새삼 삶의 자세에 관한 고민을 얹어놓았다. 누구라도 어딘가에서 책버스를 마주칠 기회가 있다면 주저하지 말고 들어가 보시길. 책버스는 명심보감과 탈무드를 비롯한 고전 포켓북도 무료로 나눠준다. 아이들을 위한 독서지도사의 동화 구연, 공연 실황이나 애니메이션 상영 등 다양한 프로그램 역시 마련돼 있다. 책버스는 평소 도서관이 없는 벽지를 주로 찾아간다. 8월 9∼12일엔 경남 통영시 한산대첩 축제 현장, 14∼19일 강릉시 연곡해변 솔향기캠핑장에서 휴양객을 기다린다. 강릉=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왕조실록은 그간 남북한이 대결을 하는 구도로 각기 따로 번역했습니다. 낭비였지요. 미 번역된 승정원일기의 정조 때 자료부터 남북이 함께 번역하는 걸 추진하고자 합니다.” 신승운 한국고전번역원장(67)은 7일 기자간담회에서 “번역을 통한 학술 교류로 남북한 단절을 극복하고 민족동질성을 회복하는 한편, 역사인식을 공유하고 통일을 위한 정신문화의 토대를 구축하고자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고전번역원은 공동번역 제안을 아직 북측에 공식적으로 한 것은 아니며, 통일부에 북한주민 접촉신청을 해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단계라고 밝혔다. 고전번역원이 북한과 고전 공동번역을 추진하는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4년 ‘동국여지지’ 등의 공동번역을 추진했고, 북측에서 긍정적인 답변이 왔지만 이후 남북관계 경색으로 무산됐다. 신 원장은 “내년 한국문집총간(526책)과 고전번역서(2384책)를 각각 10질씩 모두 29100책을 북한에 보내고 관련 학술대회를 여는 것부터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공동번역이 성사되면 북한 사회과학원 내 민족고전연구소와 2021년부터 연간 35책 분량을 번역할 계획이다. 고전번역원은 5월 30일 서울 은평구 진관1로 신청사로 이전했으며, 이달 10일 개관식을 가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젊은 날의 추억을 잠시 떠올리는 일은 감미롭다. 그러나 젊은 날의 고통과 방황과 어리석음을 세세하게 끄집어내어 천천히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일은 예상치 못한 통증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도 않고,…들려주었다. 상처로 얼룩졌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신간 ‘우리 기쁜 젊은 날’(1만5000원·삼인) 뒤표지에 쓰인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의 추천사다. 7월 초쯤 썼을 테니 아마 그가 남긴 마지막 책 추천사일 것이다. 자신과 1956년생 동갑내기 저자가 쓴 197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의 이야기를 읽으며 노 의원은 어떤 소회에 빠져들었을까.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25일 만난 저자 진회숙 씨(62)는 노 의원 빈소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노 의원과는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지만 제가 정의당 당원이니 추천사를 부탁해 보면 어떨까 했지요. 바쁘실 텐데도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추천사를 쓴 것 같아 새삼 참 성실한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여행 중 별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너무나 훌륭한 정치인이 이런 식으로 세상을 마감하는 것이….” 진 씨는 1988년 월간 ‘객석’에서 음악평론가로 등단해 평론과 칼럼을 썼고, KBS와 MBC에서 음악 프로그램 작가와 진행자로 일했다. 음악 관련 저서 10여 권을 내기도 했다. 이번 책은 대학 시절 이야기다. 책에는 1975년 이화여대 성악과에 입학한 새내기가 ‘전환 시대의 논리’(리영희), ‘피압박자를 위한 교육’(파울로 프레이리)을 읽고 충격을 받고, 우연한 기회에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의 야학 교사로 활동하게 되고, 학교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수배 중인 친구나 후배를 숨겨 주고, 김민기의 노래굿 녹음에 참여하는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이어진다. 함께 야학을 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심재철 국회의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 알 만한 이들과의 일화도 이어진다. 무엇보다 후일담 특유의 비장함이나 지나친 애틋함, 감상성이 보이지 않는 게 장점이다. 솔직담백한 문체가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나는 무슨 투사도 아니었고, 용기도 없었고, 운동권의 주변에서 머물렀던 사람이에요. 내가 그 시절 이야기를 쓰는 건 열심히 운동했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참고 있었지요. 그런데 ‘인생 3막’을 앞두니 글쟁이로서 젊은 날을 돌아본 글을 남기고 싶다는 열망을 누르기가 어렵더군요.” 진 씨는 인터뷰 중 되풀이해 ‘주변에 있었을 뿐’이라고 강조했지만 그 자신 역시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체포·구속돼 고문과 구타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서울의 봄’ 때는 수배자인 지인을 찾는 수사망을 피해 위장취업을 했다. 진 씨는 “책에 김지하 시인에 관한 얘기를 미처 쓰지 못했다”며 “김 시인이 군사독재의 폭압에 마음을 다치면서도 맡아 해낸 시대적 역할과 문학적 성과는 엄청난 것이었고, 폄훼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80년대 후일담’은 많았지만 앞선 70년대를 조명한 책은 별로 없다. “우리 대학 시절에는 운동권이 극히 일부였는데, 80년대에는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지요. 한데 전체주의적인 멘털리티나 조폭 같은 위계질서가 느껴지기도 했고, 소영웅주의적인 행태도 있었어요. 86세대의 역사적 공은 인정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저하고 안 맞는 점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래요.” 진 씨는 자식 세대들이 엄마 아빠 세대도 젊은 시절 웃음과 울음이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동물의 몸, 거대 도시, 기업 등은 모두 ‘복잡계’다. 이들은 엄청나게 많은 개별 요소들이 서로 연결되고 상호 작용하며 진화한다. 개미 한 마리의 움직임은 무의미해 보이지만, 개미 무리는 놀라운 건축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복잡계 과학의 대부’로 불리는 미국의 이론물리학자가 복잡계를 지배하는 규칙을 탐구한 흥미로운 책이다. 제목(SCALE)은 ‘규모’라는 뜻이다. 복잡계의 규칙은 규모에 달려있다. ‘맬서스의 인구론’은 비교적 익숙한 규모에 관한 이론이다. 그에 따르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파국을 피하려면 인구를 통제해야 한다. 이는 ‘왜 개미는 코끼리처럼 커질 수 없는가’와 비슷한 문제다. 개미가 커질 때 무게는 길이의 세제곱(부피)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데 비해 무게를 지탱할 수 있는 다리의 단면적은 제곱에 비례해서 넓어진다. 결국 코끼리만 한 개미는 자신의 무게를 지탱할 수 없다. 사실 이는 400여 년 전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논증한 것과 같다. 이런 ‘규모의 법칙’은 동물 종의 수명과도 관련된다. 여러 동물의 체중과 대사율(살기 위해 필요한 에너지의 양)은 정확한 수학 공식을 따른다. 코끼리는 쥐보다 약 1만 배 무겁지만 에너지는 약 1000배가 필요하다. 동물의 무게가 2배 무거워져도 에너지는 75%만 더 필요하고, 대사과정에서 생기는 세포 손상도 적기에 수명도 그만큼 길어진다. 포유류의 심장 박동 수는 평생 거의 동일하게 약 15억 번이다. 책에 따르면 도시 역시 규모에 따른 규칙이 있다. 도시의 인구가 2배로 늘면 주유소 수는 100%가 아니라 85%만 증가한다. 도로, 전선, 수도, 가스관의 총길이 등도 같은 규칙을 따른다. 한편 독감 환자 수, 범죄 건수, 환경오염 같은 지표는 115% 증가한다고 한다. 도시가 커지면 일부 효율성이 높아지지만 반대로 사람들이 도시를 떠나도록 만드는 압력도 더욱 거세지는 셈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번 주에는 ‘복잡계 과학의 대부’가 쓴 ‘스케일’(김영사)을 읽다가 고생 좀 했습니다. 책에 나온 수치가 좀 이상해 보였습니다. ‘이해를 잘 못했나?’ 싶어 머리를 싸매다 20여 년 만에 상용로그표를 찾아보는 사태까지 벌어졌지요. 한데 아뿔싸, 이런 미주가 달려 있었네요. “나(저자)는 쉽게 표현하기 위해, 이 (수치) 차이를 무시할 것이다.” 진작 주석을 볼 걸 그랬습니다. 세계적 스타로 떠오른 한 역사학자가 “수학 공부는 인공지능(AI)이 더 잘할 테니 가르치는 게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더군요.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계산이라면 사칙연산 외에는 평소 별로 할 필요가 없는, 저와 같은 이들이 대부분이겠지요. 그러나 인공지능이 ‘알아서’ 수학을 연구할 수 있을까요? 다른 공부나 일에는 수학적 사고가 필요 없을까요? 마침 수학을 다룬 ‘머리 아픈’ 신간이 3권이나 보이는군요. ‘보통 사람을 위한 현대 수학’(이언 스튜어트 지음·휴머니스트), ‘수학에 관한 어마어마한 이야기’(미카엘 로네 지음·클), ‘문제적 문제’(헨리 어니스트 듀드니 지음·한스컨텐츠)입니다. 주제와 난도가 다양하니 만약 사시려면 반드시 먼저 내용을 살펴보시길….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젊은 날의 추억을 잠시 떠올리는 일은 감미롭다. 그러나 젊은 날의 고통과 방황과 어리석음을 세세하게 끄집어내어 천천히 곱씹고 되새김질하는 일은 예상치 못한 통증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그 고통을 회피하지 않고, 자기연민에 빠져 허우적거리지도 않고,…들려주었다. 상처로 얼룩졌던 그 시절의 기억들을.” 신간 ‘우리 기쁜 젊은 날’(삼인·1만5000원) 뒤표지에 쓰인 고(故) 노회찬 국회의원의 추천사다. 7월 초 쯤 썼을 테니 아마 그가 남긴 마지막 책 추천사일 것이다. 자신과 1956년생 동갑내기 저자가 쓴 197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의 이야기를 읽으며 노 의원은 어떤 소회에 빠져들었을까.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 25일 만난 저자 진회숙 씨(62)는 노 의원 빈소에 가는 길이라고 했다. “노 의원과는 개인적 인연이 전혀 없지만 제가 정의당 당원이니 추천사를 부탁해보면 어떨까 했지요. 바쁘실텐데도 책을 끝까지 다 읽고 추천사를 쓴 것 같아 새삼 참 성실한 분이구나 싶었습니다. 여행 중 별세 소식을 듣고 얼마나 충격을 받았는지…. 너무나 훌륭한 정치인이 이런 식으로 세상을 마감하는 것이….” 진 씨는 1988년 월간 ‘객석’에서 음악평론가로 등단해 평론과 칼럼을 썼고, KBS와 MBC에서 음악 프로그램 작가와 진행자로 일했다. 음악 관련 저서 10여 권을 내기도 했다. 이번 책은 대학시절 이야기다. 책에는 1975년 이화여대 성악과에 입학한 새내기가 ‘전환 시대의 논리’(리영희), ‘피압박자를 위한 교육’(파울로 프레이리)을 읽고 충격을 받고, 우연한 기회에 영등포 도시산업선교회의 야학 교사로 활동하게 되고, 학교에서 유인물을 뿌리고, 수배 중인 친구나 후배를 숨겨 주고, 김민기의 노래굿 녹음에 참여하는 등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이어진다. 함께 야학을 했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심재철 국회의원, 서명숙 제주올레 이사장 등 알만한 이들과의 일화도 이어진다.무엇보다 후일담 특유의 비장함이나 지나친 애틋함, 감상성이 보이지 않는 게 장점이다. 솔직담백한 문체가 강한 설득력을 갖는다. “나는 무슨 투사도 아니었고, 용기도 없었고, 운동권의 주변에서 머물렀던 사람이에요. 내가 그 시절 이야기를 쓰는 건 열심히 운동했던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싶어 참고 있었지요. 그런데 ‘인생 3막’을 앞두니 글쟁이로서 젊은 날을 돌아본 글을 남기고 싶다는 열망을 누르기가 어렵더군요.” 진 씨는 인터뷰 중 되풀이해 ‘주변에 있었을 뿐’이라고 강조했지만 그 자신 역시 긴급조치9호 위반으로 체포·구속돼 고문과 구타를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서울의 봄’ 때는 수배자를 찾는 수사망을 피해 위장취업을 했다. 진 씨는 “책에 김지하 시인에 관한 얘기를 미처 쓰지 못했다”며 “김 시인이 군사독재의 폭압에 마음을 다치면서도 맡아 해낸 시대적 역할과 문학적 성과는 엄청난 것이었고, 폄훼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80년대 후일담’은 많았지만 앞선 70년대를 조명한 책은 별로 없다. “우리 대학 시절에는 운동권이 극히 일부였는데, 80년대에는 수가 폭발적으로 늘었지요. 한데 전체주의적인 멘탈리티나 조폭 같은 위계질서가 느껴지기도 했고, 소영웅주의적인 행태도 있었어요. 86세대의 역사적 공은 인정하지만 정서적으로는 저하고 안 맞는 점들이 있었고, 지금도 그래요.” 진 씨는 자식 세대들이 엄마 아빠 세대도 젊은 시절 웃음과 울음이 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삽화가 담긴 신간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한길사·33만 원)는 가로 28.5cm, 세로 42.3cm다. 크기와 무게 탓에 들고 움직이려면 두 손뿐 아니라 아랫배까지 써서 받치는 게 편하다. 전자책이 갈수록 일상이 되어가는 시대이고, 요즘엔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문고본 출판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어마하게 ‘큰 책’이 꾸준히 출간되면서 장서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귀스타브…’는 왼쪽 페이지에는 구약·신약 성경의 구절이, 오른쪽엔 관련 장면이 그려진 목판화가 인쇄돼 있다. 판화 241점은 극명한 명암 대비와 인물의 역동적인 제스처가 특징이다. 강렬한 인상은 시원한 크기의 도판으로 극대화된다. 책 제작에는 부피에 비해 무게가 덜 나가는 ‘문캔 프린트크림 115g’ 종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신상철 고려대 교수는 “귀스타브 도레는 책의 대량생산으로 값싼 삽화가 등장하던 시절, 역으로 삽화를 독립적인 회화 작품으로 승화시킨 19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설명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활자 미디어의 아름다움, 아날로그 책의 물성(物性)과 미학을 새롭게 구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책을 필두로 ‘큰 책 시리즈’를 계속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출간한 이탈리아 요리책 ‘실버 스푼’(세미콜론)도 1504쪽에 두께는 68mm, 무게는 3.2kg이 넘는다. 9만9000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지금까지 3000부 이상 팔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선명한 요리 사진이 식욕을 자극하는데, 뒷장의 사진이 비쳐 보이지 않는 재질의 종이를 사용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탈리아 요리가 거의 모두 담겨 있다고 할 만한 ‘바이블’ 같은 책”이라며 “국내에서도 관심을 가질 거라 내다보긴 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빠르게 2쇄를 찍었다”고 말했다. ‘크고 두꺼운 책’을 만들려면 그만큼 노력도 많이 들어가기 마련. 2015년 7월 첫 권이 나온 뒤 최근 4권으로 완간한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시공사·각 권 8만 원)은 모두 합치면 4024쪽에 이른다. 5명이 나눠 번역했는데 한 권을 옮기는 데 3년이 걸리기도 했다. 번역 뒤 편집에만 1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고 한다. 엄청난 두께에도 반응은 꾸준하다. 1∼3권 모두 중쇄(重刷)했고, 1권은 5쇄가 나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프랑스 삽화가 귀스타브 도레(1832~1883)의 삽화가 담긴 신간 ‘귀스타브 도레의 판화성서’(한길사·33만 원)는 가로 28.5㎝, 세로 42.3㎝다. 크기와 무게 탓에 들고 움직이려면 두 손 뿐 아니라 아랫배까지 써서 받치는 게 편하다. 전자책이 갈수록 일상이 되어가는 시대이고, 요즘엔 외투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문고본 출판이 활발하다. 하지만 이런 흐름을 거스르는 어마하게 ‘큰 책’이 꾸준히 출간되면서 장서가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귀스타브…’는 왼쪽 페이지에는 구약·신약 성경의 구절이, 오른쪽엔 관련 장면이 그려진 목판화가 인쇄돼 있다. 판화 241점은 극명한 명암대비와 인물의 역동적인 제스처가 특징이다. 강렬한 인상은 시원한 크기의 도판으로 극대화된다. 책 제작에는 부피에 비해 무게가 덜 나가는 종이를 사용했다고 한다. 신상철 고려대 교수는 “귀스타브 도레는 책의 대량생산으로 값싼 삽화가 등장하던 시절 역으로 삽화를 독립적인 회화작품으로 승화시킨 19세기 유럽의 대표적인 작가”라고 설명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활자 미디어의 아름다움, 아날로그 책의 물성(物性)과 미학을 새롭게 구현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책을 필두로 ‘큰 책 시리즈’를 계속 출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7월 출간한 이탈리아 요리책 ‘실버 스푼’(세미콜론)도 1504쪽에 두께는 68㎜, 무게가 3.2㎏이 넘는다. 9만9000원이라는 부담스러운 가격에도 지금까지 3000부 이상 팔렸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선명한 요리 사진이 식욕을 자극하는데, 뒷장의 사진이 비쳐 보이지 않는 재질의 종이를 사용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이탈리아 요리가 거의 모두 담겨있다고 할만한 ‘바이블’같은 책”이라며 “국내에서도 관심을 가질 거라 내다보긴 했지만 기대보다 훨씬 빠르게 2쇄를 찍었다”고 말했다. ‘크고 두꺼운 책’을 만들려면 그만큼 노력도 많이 들어가기 마련. 2015년 7월 첫 권이 나온 뒤 최근 4권으로 완간한 ‘움베르토 에코의 중세 컬렉션’(시공사·각 권 8만 원)은 모두 합치면 4024쪽에 이른다. 5명이 나눠 번역했는데 한 권을 옮기는데 3년이 걸리기도 했다. 번역 뒤 편집만 1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고 한다. 엄청난 두께에도 반응은 꾸준하다. 1~3권 모두 중쇄(重刷)했고, 1권은 5쇄가 나왔다. 이경주 시공사 편집자는 “공들이지 않은 책이라는 건 없겠지만, 특히 이 책은 독자들이 오래 소장하며 읽기를 원할 거라고 보고 양장본 커버나 세트 케이스 등의 고급화를 지향했다”고 말했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신간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지음·흔·1만3800원). 한 점의 가식도 보이지 않는 제목 때문에라도 일단 표지를 봤다면 쉽게 지나치기 힘들다. 책은 기분부전장애(가벼운 우울증)를 앓은 저자가 상담 치료를 받은 이야기다. 처음에는 ‘당신의 고통에 독자가 왜 관심을 가져야 하지?’라는 생각이 들지만 읽다보면 “착한 게 아니라 ‘찐따’ 같아요” 같은 솔직한 고백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타인의 작은 행동에 지나친 의미를 부여하며 마음 아파해 본 사람이라면 ‘내 얘기다’ 싶을 게다. 온라인서점 예스24에 따르면 ‘죽고 싶지만…’은 주간(7월 17∼23일) 종합 베스트셀러 3위, 에세이 부문 1위에 올랐다. 구매자 가운데 20, 30대 여성이 절반 이상이다. 이 책은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올해 2월 나온 ‘독립출판물’이다. 처음에는 책의 주민등록번호에 해당하는 국제표준도서번호(ISBN)도 없이 독립출판물 전문서점(인디 서점)에서 팔렸다. 독자의 호응을 눈여겨보던 한 출판사 편집자가 1인 출판사를 차려 정식으로 책을 냈다. 6월 20일 초판 1쇄가 나온 후 벌써 8쇄까지 찍었다. 인디 서점 중심으로 유통되던 독립출판물이 인터넷·대형 서점에서도 적지 않은 인기를 얻으며 ‘반란’을 일으키고 있다. 올해 3, 4월 만화·라이트노벨 분야 베스트셀러 3위(예스24 기준)까지 오른 책 ‘며느라기’(수신지 지음·귤프레스·2만 원)도 독립출판물이다. 불합리한 결혼문화를 소재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연재하던 웹툰을 묶었다. 저자는 이전에도 투병기를 담은 책 ‘3g’을 자비로 제작·판매했던 독립출판물 작가다. 이번에 달라진 건 ISBN을 등록해 유통된다는 것뿐이다. 독립출판물로 시작된 에세이 ‘달의 조각’(하현 지음·빌리버튼·1만3800원)도 지난해 11월 에세이 분야 11위에 올랐다. 양질의 독립출판물을 묶은 문고본 시리즈도 정식 출간됐다. 현재 15권까지 나온 ‘청춘 문고’(디자인이음)다. 기존 출판시장에서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개성 넘치는 에세이, 시, 논픽션 등이 포함됐다. 1만 권가량 판매된 책도 있다. 서상민 디자인이음 편집장(43)은 “독립출판물의 성격을 그대로 살리는 것을 목표로 실험적인 작품을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립출판물의 정의는 명확하지 않다. 원래는 기존 출판계에서는 출간되기 힘들 정도로 개성이 강하고 실험적이면서 인디 서점을 중심으로 유통되는 출판물을 뜻했다고 본다. ISBN을 등록하지 않아 법적 도서로 인정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대형 서점 유통을 염두에 두면서 적은 부수만 만들어 테마형 서점에 두고 독자의 반응을 보는 사례가 늘고 있다”며 “이런 경우는 1인 출판과 독립출판이 별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독립출판물은 상업성과 거리가 있다는 게 중론이다. 서점 ‘스토리지북앤필름’의 강영규 대표는 “독립출판물 작가들은 돈을 벌려는 것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꺼낸다는 게 우선”이라고 했다. 서점 ‘유어마인드’의 이로 대표도 “이들은 자신의 작업이 어떻게 지속될지 모르는 채 당장 하고픈 이야기에 집중해 책을 내는 편이다”고 했다. 독립출판이 더 활성화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서상민 편집장은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이를 책으로 출간하기가 수월해져 독립출판은 출판의 미래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단원 김홍도(1745∼1806?)가 순조의 천연두 완쾌를 기념해 1801년(순조 1년) 그린 ‘삼공불환도(三公不換圖)’가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고 문화재청이 24일 밝혔다. 삼성문화재단이 소장한 ‘삼공불환도’는 높은 벼슬과도 바꾸지 않을 만한 전원생활의 즐거움을 그린 8폭 병풍 그림이다. 강을 앞에 두고 산자락에 자리한 기와집과 논밭, 손님을 접대하고 있는 주인장, 심부름하는 여인, 일하는 농부, 낚시꾼 등이 짜임새 있게 담겼다. 문화재청은 “소박하고 꾸밈없는 인물들의 모습과 실물 그대로를 묘사한 듯한 화풍이 돋보인다”며 “김홍도 말년의 창작 활동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삼공불환도’는 당시 김홍도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병풍 4점 가운데 하나다. 그림 위에 적힌 홍의영(1750∼1815)의 발문에는 김홍도가 ‘신우치수도(神禹治水圖)’ 2점, ‘화훼영모도(花卉翎毛圖)’ 1점도 그렸다고 하나 현재 소재를 알 수 없다. 문화재청은 이와 함께 조선시대 불상 2건과 금속활자인쇄물 ‘자치통감(資治通鑑) 권129∼132’도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1665년 희장(熙壯) 등 승려 조각가 9명이 함께 만든 진도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17세기 불교 조각사를 대표하는 승려 현진(玄眞)의 작품인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木造阿彌陀如來三尊像)이 포함됐다. 자치통감은 1436년 주자소에서 간행한 판본으로 조선 전기 인쇄술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문화재청은 30일 동안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를 거친 뒤 보물로 최종 지정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에 실린 상반기 베스트셀러 분석 글을 읽었습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시나 짧은 글을 묶어 낸 책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합니다. 종합 3위를 차지한 ‘모든 순간이 너였다’(위즈덤하우스)를 비롯해 ‘너라는 계절’(니들북) ‘참 소중한 너라서’(RHK) ‘단 하루도 너를 사랑하지 않은 날이 없다’(쌤앤파커스) 등입니다. 너, 너, 너…. SNS를 통해 만들어진 베스트셀러는 한결같이 제목에서 ‘너’를 부르고 있네요. 또 다른 베스트셀러는 ‘나’로 사는 방법에 대한 책들입니다.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가나출판사)이 종합 1·2위권이고, ‘신경 끄기의 기술’(갤리온),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마음의숲)도 10위권 안쪽입니다. 팍팍한 세상에서 ‘나의 자존감’과 ‘너의 위로’에 고픈 우리네 모습이 책 소비에도 드러난 것이겠지요. 혹시 ‘너의 자존감을 지켜줘야 할 의무’와 ‘내가 해야 할 위로의 책임’을 강조하는 책은 널리 읽히기 어려울까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조선인들 삶의 여러 풍경을 보여줄 수 있는 신간이 잇따라 출간됐다. ‘조선의 잡지’는 유득공(1748∼1807)이 쓴 풍속지 ‘경도잡지(京都雜志)’의 ‘풍속’ 편을 뼈대로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의식주, 취미, 놀이, 의례 등 생활상을 들여다본 책이다. 책에 담긴 양반들의 ‘취향’은 놀라운 수준이다. 비둘기를 오늘날의 마니아처럼 극진히 사랑한 양반들도 있었다. 재력이 있는 서울 양반들은 8칸짜리 비둘기 집인 용대장(龍隊藏)을 호화롭게 장식하고 칸마다 다른 종류의 진귀한 비둘기를 키웠다. 누가 더 비싼 비둘기를 많이 사들이냐를 놓고 경쟁하기도 했다. ‘경도잡지’는 8가지 비둘기 종류를 소개하고 있다. 양반들의 매화나 국화 사랑도 정평이 나 있다. 18세기 화훼 재배가 성행했고, 관련 서적도 쏟아져 나왔다. 화초를 잘 기른다는 말을 들으려면 소철(蘇鐵) 정도는 능숙하게 관리할 줄 알아야 했다. 소철은 주로 중국 동남부, 일본 남부 등 더운 곳에서 자라는 나무로 당시에는 우리나라에서 키우기 쉽지 않았다. 양반들은 온실을 만들어서 이런 식물을 키웠다. 패물인 손칼(粧刀·장도)은 남성들도 차고 다녔다. 칼자루와 칼집을 만드는 데는 은, 옥, 코뿔소의 뿔, 바다거북의 등딱지, 나무, 검은 물소 뿔 등이 쓰였다. 구하기 어렵거나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는 재료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전통문화대 교수인 저자는 문방구, 지붕 장식 등 양반들의 고급스러운 취향뿐 아니라 꽃놀이, 과거 급제 축하 행사, 신입 관리의 ‘군기’를 잡는 면신례(免新禮) 습속 등을 세세하게 담았다. ‘조선 무인의 역사…’는 조선에서 문과(文科)에 비해 덜 조명된 무과(武科)에 대한 연구를 풀어쓴 책이다. 한국사를 연구한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교수가 2007년 미국에서 출간했다. 책에 따르면 무과는 평민들의 신분 상승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된 면이 강하다. 16세기부터는 서얼과 천민 출신도 곡물로 값을 치르면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1676년 무과에서 선발된 1만7000여 명의 합격자 가운데 양반 출신은 한 명도 없었다. 무과 급제자 수도 엄청났다. 1402∼1591년 동안 무과 급제자는 7758명이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15년(1592∼1607년) 동안 약 2만∼4만 명이 무과에 합격했다. 이후 무과가 폐지되는 1894년까지 급제자는 12만1623명이나 됐다. 이들이 모두 무관으로 임용된 건 아니다. 저자는 “조선은 피지배층에 잠재된 체제 전복적 요소가 봉기로 이어지는 것을 막아주는 장치로 무과를 활용했다”고 말한다. ‘법과 풍속으로 본 조선 여성의 삶’은 여성사에 착목한 충남대 명예교수의 책이다. 혼인, 이혼, 간통 등의 역사가 담겼다. 효종3년(1652년) 정호라는 이가 누이를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종과 간통했다는 게 이유였다. 효종은 “자기에게 누가 미칠 것을 면하려고만 했을 뿐 털끝만큼도 피붙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며 정호를 극형에 처하도록 했다. 저자는 “이때까지만 해도 국가의 대처는 여성의 정절 상실보다 정호의 패륜에 강한 분노를 보였다”며 “그러나 후대로 갈수록 체제의 위기에 봉착한 지배계급이 위신을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여성에 대한 성적 규제를 강화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