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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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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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2-28~202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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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최근 20년간 독자들이 도서관서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는?

    최근 20년 동안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는 8·15해방 뒤 이념갈등과 전쟁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나타났다. 이는 본보가 도서관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도서관 정보 나루’와 함께 1999년부터 올 8월까지 이뤄진 도서 대출 9억6600만 건을 분석한 결과다. ‘도서관 정보 나루’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예산 지원으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개발해 201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도서관 이용자들은 소설을 특히 많이 빌렸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을 비롯해 상위 1~6위가 모두 소설이다. 권정생(1937~2007)의 동화 ‘강아지똥’, 혜민 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10위 안에 들었다. 서점가 베스트셀러가 신간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도서관 빅데이터는 꾸준히 읽히는 책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많이 빌려간 도서(초중고 참고서 제외) 목록 추이에서는 독자들의 ‘마음’이 얼핏 엿보인다. 4년 단위로 나눠 살펴보니 1999~2002년에는 빈부를 대비해 삶의 모순성을 그린 소설 ‘모순’(양귀자), 팔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의지를 잃지 않았다는 에세이 ‘오체 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 췌장암에 걸린 아버지를 소재로 한 소설 ‘아버지’(김정현) 등이 각각 대출 순위 1~3위를 차지했다. 책 ‘베스트셀러 30년’을 펴냈던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위기 이후의 불경기와 직장에서 밀려난 가장 등 어두운 현실이 반영된 책,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책이 상위에 랭크됐다”고 해석했다. 2003~2006년에는 상상력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팩션’의 유행을 이끈 ‘다 빈치 코드’(댄 브라운)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가 1, 2위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출도서 목록에도 여파를 남겼다. 2007~2014년에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힐링 자기계발서’로 등장한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등이 5위권 안에 들었다. 한 소장은 “2007년 등장한 ‘88만 원 세대’ 담론과 함께 큰 성공을 바라기보다 작은 행복이라도 유지하길 바라는 청년의 마음, 금융위기 이후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도 고독한 개인의 처지가 목록에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2015~2018년에는 ‘아들러 심리학’ 붐을 일으킨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와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 ‘채식주의자’(한강) 등이 많이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관 정보 나루’ 알고리즘이 추출한 20년간 대출 상위 1~100위 도서의 핵심 키워드로는 ‘사람’ ‘세계’ ‘시작’ ‘자신’ ‘사랑’ 등이 꼽혔다. ‘도서관 정보 나루’는 2018년 9월 현재 전국 도서관 845곳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공공도서관 1000여 곳 가운데 600여 곳이 포함돼 있다. 이 데이터는 도서관에 비치할 도서를 구매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하며, 이용자들에게 지역·성·연령별 인기 대출 도서를 알려주는데도 쓰인다. 김혜선 KISTI 책임연구원은 “참여 도서관을 확대하고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모으는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민간 데이터와 연계해 분석하면 활용 분야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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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평범해서 특별한… 뒷골목에서 만난 ‘인생’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다들 평범하고, 주변에 있을 법한 이웃이다. 일본의 명문대를 졸업한 ‘루이스’는 음식점이나 술집에 가면 종업원을 가능한 한 배려한다. 새벽에 일하는 종업원을 보면 접시라도 대신 닦아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이 취업할 때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일어났고,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음식 체인점에 간신히 취업했다가 고생했던 기억 때문이다. ‘리카’도 그렇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조상 무덤에 성묘하러 갔다가 “나중에 함께 묻히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날아오를 것처럼 기뻐했다. ‘마유’는 고교 시절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절친’을 질투했던 기억이 있다. ‘요시노’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이혼한 전남편이 자신 명의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낮에 파트타이머로 일한다. ‘니시나리’는 조선소 직공, 막노동꾼, 배달, 용접공, 경비원을 비롯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각자 다소 ‘특이한’ 점도 없지는 않다. 루이스는 일본계 남미인으로 청소년기에 부모를 따라 일본에 온 동성애자다. 마유는 음식을 씹기만 하고 뱉는 섭식 장애를 겪었다. 리카는 트랜스젠더로 바에서 쇼를 한다. 요시노는 밤에는 출장 마사지사로 일하며 성매매를 한다. 니시나리는 공원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오래 했다. 일본의 사회학자와 그 제자인 대학원생들이 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책에 담겼다. 정확히는 인터뷰한 내용‘만’ 담겼다. 저자는 특정한 이론적 틀로 이들의 삶을 섣불리 재단하고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니시나리의 삶을 망가뜨린 주요인은 도박과 사채”라는 식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화자가 더 말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 나간다. 책은 독자가 마치 만화 ‘심야식당’의 한구석 자리에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인터뷰 내용이 푸념 같은 개인적 맥락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니시나리가 생활보호 제도를 ‘복지 맨션’(일본에서 전문가나 자원봉사자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지역 사회의 맨션)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는 것, 이후 맨션은 대형화됐지만 오히려 커뮤니티는 무너졌다는 것, 소비자금융이 너무 쉽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 등 제도적 문제 역시 화자의 말 속에서 자연스레 그 편린을 드러낸다. 소수자의 삶에 대한 호기심 내지 동정이 책을 펼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속의 그들은 리카의 말처럼 “쓸쓸하지만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강하게 살아온 이들”이다. 요시노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런 일도 하고 있는 거죠”라고 했다. 오롯이 담긴 소수자의 목소리가 편견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보통 사람들도 섹스 측면에서 특별한 버릇이 있기도 하잖아. …스트레이트한 사람(이성애자)들은 우리와 분리되고 싶어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도긴개긴’이야. 그렇지 않아?”(리카)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인 저자는 오키나와 사람의 노동력 이동과 정체성, ‘부라쿠민(部落民)’이라고 불리는 하층민에 대한 차별 등을 연구했다. 2016년 낸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돼 꽤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출간 순서가 바뀌었지만 일본에서는 ‘거리의 인생’이 이보다 앞선 2014년에 나왔다. “우리가 공상으로 그려 내는 세계보다 감추어진 현실이 훨씬 더 심오하다.”(야나기다 구니오의 ‘산의 인생’에서) 읽다 보면 머리말에 인용된 이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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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미국 대선 자금 모금엔 어떤 데이터 필요했을까

    수식 없이 데이터 분석을 쉽게 설명한 입문서다. 미국 시카고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가 썼다. ‘무작위비교시행(RCT)’, ‘회귀불연속설계법(RD디자인)’, ‘집군 분석’…. 저자가 소개하는 데이터 분석 방법이다. 무시무시하게 어려워 보이는 명칭이지만 겁먹을 건 없다. RCT는 집단을 무작위로 나눠 하는 실험이다. 예를 들어 전기요금을 올리면 사람들이 전기를 아낄지 알아보려면 요금을 올린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행동을 비교해야 하는데, 이때 두 집단을 무작위로 나눠야 한다. 그래야 다른 원인이 결과에 편향을 만드는 걸 막을 수 있다. RD디자인은 인위적인 실험을 할 수 없을 때 실험과 비슷한 상황을 이용해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일본에서 70세를 경계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급격히 많아지는 이유는 70세에 의료비 본인부담금이 갑자기 낮아지기 때문이다”와 같은 문제를 증명할 때 사용된다. 이 같은 급격한 변화에 다른 변수가 영향을 준 게 아니라는 걸 검증한다. 책은 데이터에서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는 방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래프만 가지고 설명한다. 저자는 데이터 분석을 초밥 장인의 작업에 비유했다. 훌륭한 재료(양질의 데이터)와 장인의 칼솜씨(분석)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 미국의 대선 자금 모금부터 첨단 기업의 마케팅까지 데이터 활용이 필수가 된 시대다. 꼭 초밥을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그 맛을 음미하기 위해 장인의 칼솜씨를 알아보는 눈을 키우려는 이들에게 ‘딱’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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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서재]빵과 평화

    이른 아침 광화문네거리 비둘기들이 잠시 빈 도로를 차지했다가 이내 날아갑니다. 왠지 노래 ‘정동진1’(박은옥 정태춘)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운 것이 저리 멀리 아니 가까이….’ 소중한 건 잡힐 듯 잡히지 않네요. 신간 ‘서울 평양 스마트 시티’(민경태 지음·미래의 창)는 “북한을 4차 산업혁명의 중심으로 만들자”는 혁신적인 상상력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부진한 북핵 폐기 탓에 ‘저기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려옵니다. 주요 이슈의 무게중심이 ‘적폐 청산’과 평화에서 경제와 부동산으로 이동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민중이 ‘빵과 평화’를 간절히 원하며 혁명이 일어났지요. 요즘 우리 사회는 안보 위협의 체감도는 이전 같지 않고, ‘빵’은 더욱 중요해진 듯 보입니다. ‘빵’이 ‘집과 양질의 일자리’로 바뀐 것뿐이죠. 이번 주에도 ‘나를 위로하자’는 주제의 신간이 열 권 가까이 눈에 띄는 것도 그와 관련 있을 겁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독재자와 협상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라고 봅니다. 그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집값 급등을 해결하고 멀어져가는 민심을 돌려세워야 할 겁니다. ‘북핵 폐기와 경제건설의 병진’ 노선이 절실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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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장 뒷받침된 복지로 가야 무리 없어”

    “우리 사회는 경제 발전 정도에 비해 복지 수준이 뒤져 있는 편입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경제 형편이 어려운 계층의 소득 보장에 힘쓰면서 인적 자원에 투자하는 복지정책을 펴서 노동의 부가가치를 올려야 합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겸 부총리로 일했던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77)가 제자인 정무권(연세대) 신동면(경희대) 양재진 교수(연세대) 와 함께 연구서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다산출판사·사진)을 최근 냈다. 강원 고성군에서 농사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그를 4일 전화로 만났다. 안 교수는 최근 이슈가 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지금은 ‘저부담 중급여’지만 앞으로 ‘중부담 중급여’로 가야 한다”며 “받는 수준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되,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안 교수는 “연금개혁은 인기가 없는 정책이다. 서구에서도 많은 정부가 다음으로 미루고자 했고, 쉽게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시간을 끌다가 시기를 놓친 나라도 많다”며 “그러나 어느 정부인가는 반드시 해야 하고,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책에서 앞으로 복지 급여뿐 아니라 사회 서비스의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인·영유아 돌봄 서비스와 같은 것을 말한다. 안 교수는 “한국의 복지는 소득 보장 측면에서는 일정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데, 사회 서비스는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국가와…’는 역사적 측면에서,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한국의 사회복지가 어디쯤 와 있는가를 다룬 책이다. 책은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나 사회복지 정책이 쟁점으로 부상할 때 논의가 실용적, 실질적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탄탄한 소득 보장 제도를 확립하고, 시민들이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게 성인들에게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안 교수는 “그러나 국민 합의도 없이, 좌우파의 고정된 이념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면 정책적인 뒷받침을 못한 채 허둥댄다”고 비판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나 우파는 복지가 독이 된다며 효율성만 강조합니다. 반대로 옛 유럽의 사민주의 나라나 좌파는 경제 발전이 복지를 견인하는 건 생각지 않고 ‘복지 급여’를 통한 평등의 실현에만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어요. 양쪽 다 무리한 생각입니다.” 안 교수는 한국 사회가 ‘사회투자적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투자적 복지국가란 인적 자원 투자를 계속해 성장과 고용을 유지하면서, 적정 수준의 소득 보장을 통해 구성원의 삶을 안정시키는 걸 병행하는 구조를 일컫는다. 그는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제3의 길’이나,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신중도 노선처럼 적정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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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득이’ 와 ‘먹깨비’의 추억… 2040, ‘액체괴물’에 푹 빠지다

    《 ‘아, 이 쫀득한 것은 무엇인가, 이 알록달록하고 부드럽고 잘 늘어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왠지 반가운 느낌이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어슴푸레하고 희미하게 뇌 속의 뭔가를 자극하는 감각이다. 서울 마포구의 ‘슬라임’ 카페 ‘릴리데이지’에서 1일 기자는 얼토당토않게도 백석(1912∼1996)의 시 ‘국수’를 떠올렸다. 말랑말랑하고 잘 늘어나는 장난감 슬라임과 국수는 묘하게 닮았다. 찰지면서도 심심한 느낌이 푸근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카페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해 봤다. 양푼에 물풀을 붓고 ‘액티’(베이킹소다를 물에 녹인 것이라고 직원이 설명했다)를 넣은 뒤 주걱으로 젓는다. 콘택트렌즈 세척액을 조금 넣고 다시 저으면 기본 슬라임이 완성된다. 여기에 원하는 향이나 색소, ‘토핑’(슬라임 안에 넣도록 만들어진 구슬 모양 등의 작은 플라스틱. ‘파츠’라고도 한다)을 더하면 된다. 》 ○ “‘키덜트’족이 눈치 안보는 시대” 40대라면 말캉말캉한 촉감에, 던지면 벽에 달라붙던 어릴 적 장난감 ‘먹깨비’가 떠오를 것이다. 20, 30대라면 풍선 속에 녹말가루가 들어있는 ‘만득이’를 추억할 수도 있다. 슬라임은 유행한 지 좀 된 아이들 장난감이지만 최근 아이들을 넘어 ‘키덜트’족의 놀잇감으로 떠올랐다. 기자가 방문한 ‘릴리데이지’ 카페도 성인끼리 오는 이들이 전체 손님의 20%가량 된다고 했다. 이날도 20대 남녀 커플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때 문방구에서 파는 ‘액체괴물’이 있었거든요. 그것과 같아요. 추억도 떠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고 놀면 한두 시간이 금방 갑니다. 아이들만 갖고 놀기에는 아까운 아이템이죠.”(황은선 씨·21) “보기에도 예쁘고 이렇게 슬라임에 토핑을 많이 넣으면 주무를 때 ‘빠지직’ 하고 크게 소리가 납니다. 독특한 쾌감이 있지요.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모두 자극하는 장난감이에요.”(김예찬 씨·21) 황 씨는 “풀이나 토핑을 따로 사서 자신만의 슬라임을 만들고 노는 친구가 적지 않다”고 했다. ‘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은 몰두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안정감과 쾌감을 느낍니다. 슬라임을 갖고 노는 건 이 같은 ‘자기 통제’ 느낌과 관련이 있어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으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슬라임의 특성이 스트레스를 낮춰 준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장난감으로 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라임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계란 모양의 초콜릿 속에 장난감이 들어있는 과자를 개봉하면서 어떤 장난감이 나오는지 계속 보여주는 콘텐츠도 인기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별로 없다”며 “슬라임 카페는 키덜트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원하는 걸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안전하게 갖고 놀려면… 슬라임 카페가 성업 중이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슬라임을 만들다가 손이 빨갛게 변했다거나 피부염이 생겼다는 이들도 있다. 슬라임이 젤 같은 특성을 갖게 하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인 붕사도 문제가 된다. 붕사는 물에 녹으면 강한 염기성을 띤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붕사는 만진다고 해서 바로 탈이 나지는 않지만 피부가 민감한 이들은 장시간 만지면 피부가 붓거나 빨갛게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슬라임 카페는 붕사 대신 렌즈 세척액을 넣어 슬라임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붕사가 없을까. 이 교수는 “미국에서 만드는 렌즈 세척액에는 붕산이나 붕사를 보존제로 소량 첨가하지만 그 자체로 인체에 위험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슬라임을 만들며 여러 화학물질이 섞이면 서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이 교수는 △슬라임을 맨손으로 너무 오래 갖고 놀지 말고 △슬라임을 만진 손을 입에 넣거나 눈을 만지지 말고 △놀 때 비닐장갑을 끼는 게 좋다고 권했다. 조종엽 jjj@donga.com·신규진 기자}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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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캉말캉·‘빠지직’에 쾌감…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 들여다보니

    ‘아, 이 쫀득한 것은 무엇인가, 이 알록달록하고 부드럽고 잘 늘어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왠지 반가운 느낌이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어슴푸레하고 희미하게 뇌 속의 뭔가를 자극하는 감각이다. 서울 마포구의 ‘슬라임’ 카페 ‘릴리데이지’에서 1일 기자는 얼토당토않게도 백석(1912~1996)의 시 ‘국수’를 떠올렸다. 말랑말랑하고 잘 늘어나는 장난감 슬라임과 국수는 묘하게 닮았다. 찰지면서도 심심한 느낌이 푸근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카페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해 봤다. 양푼에 물풀을 붓고, ‘액티’(베이킹소다를 물에 녹인 것이라고 직원이 설명했다)를 넣은 뒤 주걱으로 젓는다. 콘택트렌즈 세척액을 조금 넣고 다시 저으면 기본 슬라임이 완성된다. 여기에 원하는 향이나 색소, ‘토핑’(슬라임 안에 넣도록 만들어진 구슬 모양 등의 작은 플라스틱, ‘파츠’라고도 한다)을 더하면 된다. ●“‘키덜트’족이 눈치 안보는 시대” 40대라면 말캉말캉한 촉감에, 던지면 벽에 달라붙던 어릴 적 장난감 ‘먹깨비’가 떠오를 것이다. 20, 30대라면 풍선 속에 녹말가루가 들어있는 ‘만득이’를 추억할 수도 있다. 슬라임은 유행한지 좀 된 아이들 장난감이지만 최근 아이들을 넘어 ‘키덜트’족의 놀잇감으로 떠올랐다. 기자가 방문한 ‘릴리데이지’ 카페도 성인끼리 오는 이들이 전체 손님의 20% 가량 된다고 했다. 이날도 20대 남녀 커플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때 문방구에서 파는 ‘액체괴물’이 있었거든요. 그것과 같아요. 추억도 떠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고 놀면 한두 시간이 금방 갑니다. 아이들만 갖고 놀기에는 아까운 아이템이죠.”(황은선 씨·21세) “보기에도 예쁘고 이렇게 슬라임에 토핑을 많이 넣으면 주무를 때 ‘빠지직’하고 크게 소리가 납니다. 독특한 쾌감이 있지요.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모두 자극하는 장난감이에요.”(김예찬 씨·21세) 황 씨는 “풀이나 토핑을 따로 사서 자신만의 슬라임을 만들고 노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은 몰두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안정감과 쾌감을 느낍니다. 슬라임을 갖고 노는 건 이 같은 ‘자기 통제’ 느낌과 관련이 있어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으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슬라임의 특성이 스트레스를 낮춰준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장난감으로 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라임 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계란 모양 초콜렛 속에 장난감이 들어있는 과자를 개봉하면서 어떤 장난감이 나오는지 계속 보여주는 콘텐츠도 인기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별로 없다”며 “슬라임 카페는 키덜트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원하는 걸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안전하게 갖고 놀려면… 슬라임 카페들이 성업 중이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슬라임을 만들다가 손이 빨갛게 변했다거나 피부염이 생겼다는 이들도 있다. 슬라임이 젤 같은 특성을 갖게 하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인 붕사도 문제가 된다. 붕사는 물에 녹으면 강한 염기성을 띤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붕사는 만진다고 해서 바로 탈이 나지는 않지만 피부가 민감한 이들은 장시간 만지면 피부가 붓거나 빨갛게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슬라임 카페들은 붕사 대신 렌즈세척액을 넣어 슬라임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붕사가 없을까? 이덕환 교수는 “미국에서 만드는 렌즈세척액에는 붕산이나 붕사를 보존제로 소량 첨가하지만 그 자체로 인체에 위험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슬라임을 만들며 여러 화학물질이 섞이면 서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 교수는 △슬라임을 맨손으로 너무 오래 갖고 놀지 말고 △슬라임을 만진 손을 입에 넣거나 눈을 만지지 말고 △놀 때 비닐장갑을 끼는 게 좋다고 권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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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뇌를 알면 마음까지 정복할 수 있을까

    자아는 신경세포 전기 신호의 작용의 총합과 마찬가지인 것일까? 뇌 과학과 사회생물학, 진화심리학의 발전은 인간을 이해하는 지평을 크게 넓혔다. 그러나 그에 따라 인간 정신을 모두 그 같은 방식으로 해명할 수 있다는 믿음도 커졌다. ‘나는 뇌가 아니다’는 28세에 독일 본대학 철학과 석좌 교수가 된 철학자가 이 같은 편향을 반박하는 책이다. 신경중심주의는 “인간의 중추신경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계속 늘리면 우리 자신을 알 수 있다”, “종의 진화 과정에서 생겨난 장점들을 재구성하면 인류의 행태를 이해할 수 있다”는 믿음을 말한다. 이런 관점에서는 사랑은 호르몬의 작용이고, 진화해 온 짝짓기 행동의 일종이다. 문학, 건축, 음악 등은 동물이 지닌 놀이 충동의 복잡한 버전에 불과하다. 그러나 저자는 인간은 번식과 생존 투쟁에 내몰린 동물에 불과한 것이 아니며, 정신적 자유에서 존엄이 비롯된다고 강조한다. 물론 뇌가 없다면 정신도, 의식도 없다. 그러나 뇌가 곧 정신은 아니다. 두 다리로 페달을 밟아 자전거를 타지만, 다리를 이해한다고 자전거 운전법을 이해할 수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심야의 철학 도서관’도 인간의 의식을 탐구하는 심리철학자들의 책이다. 책은 도서관에 숨어든 두 학생의 대화 형식을 빌린다. “공기 중에 어떤 화학물질이 있느냐는 객관적 사실의 문제지만, 그 물질의 냄새는 우리 마음이 그 물질을 어떻게 지각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거야” “그저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의 문제야”와 같은 식이다. 과학은 마침내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과 의식을 모두 설명해 낼 수 있을까? ‘물리적인 것이 전부’라는 물리주의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책은 이 같은 물리주의가 참인지 거짓인지를 결정할 수 있는 틀이 과학 내에는 없다는 논증을 소개한다. 또 데카르트, 앙투안 아르노, 데이비드 흄 등 철학자와 신학자의 주장을 통해 의식에 대한 철학적 접근을 시도한다. ‘로봇도 사랑을 할까’는 결이 좀 다르다. 프랑스의 기술철학자인 장 미셸 베스니에와 ‘트랜스휴머니스트’의 대화 형식인 이 책의 부제는 ‘트랜스휴머니즘, 다가올 미래에 우리가 고민해야 할 12가지 질문들’이다. 트랜스휴머니즘은 과학과 기술을 이용해 인간의 능력을 개선할 것을 주장한다. 생물학적으로 완전히 인간인 시대인 휴머니즘 시대가 지나가고, 첨단 기술로 신체 능력을 증강한 인간들이 나타나는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기술만이 해결책이라는데 반대하는 베스니에는 인공지능을 경계한다. “모든 지능이 계산으로 환원되고, 모든 생명체는 충분히 계산을 한 후에 방향을 정하고 반응하며 결정한다…. 한데 그 과정을 아주 신속하게 해치우는 기계들이 있다. 그런 기계들을 구상해 제작한 건 우리의 지능이었지만, 이제는 우리의 발명품에 의해 추월당했다.” 반면 로랑 알렉상드르는 “인공지능의 발달과 트랜스휴머니즘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라며 “지체 없이 수용해야 한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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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칭찬은 무조건 좋다? 약처럼 용법 지켜야

    칭찬과 비난을 30년 이상 연구해 온 영국 케임브리지대 심리학과 교수의 책이다. ‘인정받고 싶지만 평가에 매달리긴 싫은 당신에게’라는 프롤로그 제목이 눈길을 끈다. 사실 저자에 따르면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여기든 상관없다’라고 생각하는 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다. ‘내가 나를 어떻게 여기느냐’는 타인의 판단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 자체가 타인과의 다양한 관계 속에서 생겨난다. 인간의 뇌는 다른 사람의 판단에 주목하도록 진화돼 왔다. 중요한 건 스스로에 대한 올바른 판단이다. 저자는 “대체로 자기 방어와 편견은 스스로의 자존감은 보호하면서 상대방의 자존감은 약화시킨다”며 “이를 정확히 분별해야 올바른 판단에 이를 수 있다”고 했다. 칭찬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도 아니다. 칭찬은 약과 같아서 적절한 용법과 용량을 지키지 않으면 부작용이 크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는 과제의 결과물보다 해결하려는 끈기와 노력에 칭찬의 초점을 맞추는 게 좋다. 부모의 칭찬이 자신을 통제하는 수단이라고 느끼는 아이는 오히려 반발하기도 한다. ‘타인의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인 삶을 사는 법’을 소재로 한 책들이 적지 않게 출간되고 있는 요즘이다. 이 책에는 딸 둘을 키운 어머니의 따스한 성찰이 배어 있다. 원제는 ‘Passing Judgement’.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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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영근 서울대 명예교수 “남북한, 언어문화 통합부터 반드시 이뤄내야”

    원로 국어학자인 고영근 서울대 명예교수(82·사진)가 고대부터 오늘날 남북한과 재외동포의 우리말 문법을 망라한 ‘우리말 문법, 그 총체적 모습’(집문당)을 최근 펴냈다. 950쪽에 이르는 이 책은 우리말의 역사적 변화형과 방언, 여러 공간적 변이형을 5년에 걸쳐 연구해 담은 노작(勞作)이다. 27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명예교수실에서 만난 고 교수는 “외솔 최현배 선생(1894∼1970)이 지은 ‘우리말본’을 20대 중반에 꼼꼼히 읽으며 ‘나도 이런 책을 써봤으면…’ 하는 꿈을 가졌는데, 이제 내 학문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고 생각해 책을 냈다”고 말했다. “중앙아시아와 연해주의 고려인들은 ‘여기, 거기’라는 말을 ‘잉에, 긍에’라고 하기도 합니다. 15세기 중세 국어의 모습이 남아 있는 것이지요. 특히 변방인 옛 6진(六鎭·조선 세종 때 두만강 하류 지역에 설치한 여섯 진) 지역 출신의 말이 그러합니다. 고려인의 말은 러시아어와 중국어의 영향도 받았습니다.” ‘우리말’은 한국어와 조선어(북한·중국 동포의 말), 고려어 등으로 분화한 것을 모두 포괄한다. 고 교수는 이번 책이 “이 같은 변이와 그 원인을 한 체계 위에서 총체적으로 서술했다”고 강조했다. 북한의 표준어인 문화어 문법도 서술 대상으로 삼았다. 고 교수는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는 공동으로 위원회를 구성해 모두가 사용할 독일어 규정을 합의한다”며 “남북한의 정체(政體)가 통일될지는 알 수 없지만, 언어문화는 통합할 수 있고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석국어학상(2004년), 삼일문화상(2008년) 등을 받은 고 교수는 현재 국제학술지 ‘형태론’ 편집고문과 ‘이극로박사기념사업회’ 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그는 언어 연구에서 ‘계통론(공통의 조어·祖語나 언어 사이의 친족 관계를 연구)의 시대’는 지나갔다고 봤다. “일례로 모음조화 현상이 과거에는 알타이 어족의 특징이라고 했지만 아프리카의 여러 언어나 프랑스 방언에도 다 나타난다는 게 드러났지요.” 고 교수는 “우리말은 종결어미로 문장의 형태가 결정되는 특징이 있다”며 “언어 유형론(계통에 관계없이 구조를 기준으로 언어의 보편성과 개별성을 연구)의 측면에서도 몽골어, 만주어와도 다른 주목할 만한 언어”라고 강조했다. 정년퇴임한 지 16년이 지났지만 노(老)학자의 학구열은 ‘마르지 않는 샘’이다. 그는 이번 책을 쓰기 위해 2013년부터 매일 5, 6시간씩 작업했다. 기초연구 성격의 논문도 해마다 서너 편씩 발표했다. 고 교수는 “옛날 같으면 세상을 떴을 수도 있는 나이지만, 마냥 놀 수는 없고 원래도 공부가 취미다”며 “이제 한국 언어철학사를 써볼까 싶다. 우리 것을 연구해 성과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보다 더 보람 있는 일이 없더라”라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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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손으로 AI스피커 만드는 세상, 이미 와 있죠”

    “공장에서 대량으로 물건을 찍어내고 이를 대량 소비하는 시대는 저물고 있습니다. 이제 ‘메이커’(제품을 직접 만들고 개발하는 이)들의 시대가 올 거예요.” 지난해 창간된 만들기 키트 중심의 과학 잡지 ‘메이커스’(동아시아) 책임편집자 이동현 팀장(37)이 말했다. 메이커스는 1, 2호에서 미니 플라네타륨(별자리 투영기)과 이안 반사식 카메라를 독자가 만들어보는 키트를 배송하더니 3호인 최근호에서는 ‘무려’ 인공지능(AI) 스피커를 내놨다. 최근 서울 중구 소파로 사무실에서 만난 이 팀장은 ‘메이커’들이 각종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고, 개발한 제품을 사업화하는 문화가 국내에도 생기고 있다고 했다. “메이커들은 라면 수프를 뜯어서 털어주는 로봇을 만들기도 하고, 3차원(3D) 프린터로 장난감 전자레인지를 딸에게 만들어 주기도 합니다. 메이커들의 1차적인 동기는 재미죠. 하지만 이런 흐름이 모여 산업 구조의 변화가 일어날 거라고 봅니다.” 이 팀장은 잡지 메이커스가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과학은 손으로 하는 것”을 표방하며 창간됐다고 설명했다. 일본에는 이 같은 ‘키트 잡지’가 활성화돼 있지만 국내에는 거의 없다. 메이커스 1, 2호는 일본의 키트 잡지 ‘어른의 과학’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일본의 키트를 들여왔다. 이번 AI 스피커 키트는 KT와 협업해 처음으로 국내에서 기획해 만들었다. 잡지와 동봉된 박스를 열면 초소형 컴퓨터인 ‘라즈베리파이’와 음성인식 보드(보이스키트), 마이크, 스피커, SD카드 등이 들어 있다. 설명서를 따르면 조립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 다운로드한 운영체제(OS)와 예제 프로그램 코드를 가동하면 KT의 ‘기가지니’와 동일한 음성인식 AI로 연결돼 일반 AI스피커와 마찬가지로 작동한다. 홈페이지에 공개된 코드를 입력하면 음성 명령을 통해 레고로 만든 자동차를 제어할 수도 있다. 코딩을 공부하면 무궁무진한 활용이 가능하다. 이 팀장은 “KT의 음성인식 기술을 활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려는 스타트업 기업과 전문 개발자들도 이번 키트를 많이 찾고 있다”며 “음성인식 기술이 생활을 크게 바꿀 것으로 전망되는데, 완성품을 사서 쓰기보다 직접 제품을 만들어보면서 변화에 앞서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커스는 드론이나 3D프린터를 만들 수 있는 키트를 향후 아이템으로 준비하고 있다. 이 팀장은 포스텍을 졸업하고 철강 제조 기업에서 일하다가 수년 전 출판 편집자로 전직했다. “제가 과학책을 많이 좋아했거든요. 대학 시절 일본 잡지 ‘어른의 과학’을 보고, 우리도 이런 잡지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그런 잡지를 만들게 됐네요. ‘덕업일치’(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신조어)인 셈이죠.” 이 팀장은 한국인도 일본인 이상으로 특이한 물건을 좋아하는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계기가 없어서 그렇지, 한번 뭔가를 만들어보고 ‘손맛’을 느끼면 계속하게 될 겁니다. 뭔가를 만들고 싶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잘 모르는 초심자를 위한 안내자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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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대왕 애독서 ‘성리대전’ 완역 출간…윤용남 교수팀 8년간 작업

    중국 송나라 성리학설을 집대성한 책으로 세종대왕의 애독서이기도 했던 ‘성리대전(性理大全)’이 최근 전 10권으로 완역 출간(도서출판 학고방·사진)됐다. 윤용남 성신여대 윤리교육과 교수가 이끈 연구진은 2010년부터 8년간 작업한 끝에 성리대전을 완역했다. 성리대전은 중국 명나라 영락제 대인 1415년 편찬돼 1419년(세종 1년)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성리학뿐 아니라 문학 역사 역학(易學) 예학(禮學) 음악 교육학 어학 정치학 천문학 등 당시 사상이 총망라돼 있다. 세종은 유교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성리대전의 도입과 보급에 힘썼다. 윤 교수는 역주자 서문에서 “인간 중심의 서양 철학이 일군 서양 문명을 넘어 미물과 사람이 어우러지는 세상을 향한 길이 성리대전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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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알고 마시면 더 맛있다… 시원 쌉싸래한 맥주 여행

    알고 마시면 더 맛있는 게 맥주다. 유럽의 수많은 양조장과 맥주 공장 순례 경험을 바탕으로 맥주에 얽힌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기원전 1800년경 만들어진 수메르의 점토판에는 현존 최고(最古)의 맥주 제조법이 새겨져 있다. 오늘날 라거 맥주가 맥주의 표준처럼 자리 잡은 건, 한자동맹(14세기 결성된 북부 독일 중심의 도시 동맹) 상인들이 영주가 독점한 ‘그루트’(허브 혼합물) 대신 홉(hop·삼과의 덩굴식물)을 넣고 발효 방식을 바꿔 보존성을 높인 데서 연원한다. 19세기 초 흑맥주 기네스의 탄생은 영국이 아일랜드에 부과한 무거운 양조세와 관계가 있다. 세금을 피하려고 맥아 대신 볶은 보리를 사용했기에 기네스는 탄 맛이 난다. 맥주를 사랑했던 ‘가곡의 왕’ 슈베르트(1797∼1828)는 맥줏집을 무대 삼아 새 가곡을 발표하기도 했다. 일간지 기자를 거쳐 국내에서 처음으로 하우스맥줏집을 창업한 저자의 필력이 좋은 맥주만큼이나 시원 쌉싸래하다. 부제는 ‘맥주에 취한 세계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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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누가 고흐를 쐈나”… 법의학이 밝혀낸 진실은?

    둘 모두 ‘칼잡이’가 쓴 피비린내 나는 책이다. ‘진실을…’은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범 오즈월드의 재부검에 참여했던 미국 법의학자가 본 여러 사건의 진실을 다뤘다. ‘메스를…’은 네덜란드 외과 의사가 수술이 발전해 온 역사 속의 여러 흥미로운 장면을 포착했다. 인상주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알려진 대로 스스로 옆구리에 총을 쏴 목숨을 끊은 것일까? ‘진실을…’ 저자 빈센트 디 마이오는 어느 여름날 한 통의 전화를 받는다. 반 고흐가 사실은 총을 가지고 놀던 10대 청소년들로부터 총을 맞았다는 주장을 2011년 책으로 펴낸 저자들의 전화다. 논쟁이 심화하자 총상 전문가에게 자문한 것. 기록을 검토한 디 마이오는 “모든 의학적 가능성을 고려하면 반 고흐는 자신을 쏘지 않았다”고 했다. 먼저 고흐의 총상 부위다. 왼쪽 팔을 내리면 팔꿈치가 닿는 가슴 부위에 총알이 들어갔는데 권총 자살자 중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더구나 오른손잡이인 고흐가 그 부위에 총을 쏘는 건 상당히 어색하다. 만약 그랬다면 총구가 피부와 직접 닿거나 5cm 이내여서 피부가 뜨거운 가스와 그을음, 흑색 화약의 부스러기에 의한 화상을 입었어야 하지만 상처 부위 피부 상태에 대한 증언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 옷에 그을음이 있었다는 증언도 없다. 이는 총이 적어도 50cm 이상 떨어진 곳에서 발사됐다는 뜻이다. 저자는 “반 고흐가 죽고 싶어 했는지, 죽음을 기꺼이 수용했는지 어땠는지 나는 모른다”며 “그러나 법의학적 사실은 그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걸 가리킨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맡았던 많은 사건에서 사람들은 법의학적 진실보다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었다고 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암살범이 오즈월드가 아니라 그와 똑같이 생긴 소련 요원 알렉이라는 음모론이 1975년 제기됐을 때도 그랬다. 법정 다툼 끝에 1981년 10월 4일 오즈월드의 시신을 무덤에서 파내 두 번째 부검에 들어간다. 그 결과 치아의 모양도 기록과 일치했고, 저자가 머리를 분리하고 두개골을 조사하자 오즈월드가 어릴 적 유양돌기염 치료를 받았던 흔적이 그대로 나타났다. ‘메스를…’에도 오즈월드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번에는 암살 용의자인 그가 미국 댈러스의 경찰서 주차장에서 호송차로 이동하다가 잭 루비라는 남자에게 총을 맞고 죽기 직전 수술을 받은 이야기다. 저자는 공개된 수술 기록을 바탕으로 수술 과정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집도의는 오즈월드의 대동맥에 생긴 구멍을 자신의 손가락으로 막고 클램프(수술 도구의 하나)를 설치하는 등 지혈에 성공했으나 끝내 오즈월드는 사망했다. 저자는 외과 의사들이 최악의 악몽으로 여기는 것이 바로 ‘mors in tabula’(수술 중 사망)라고 했다. 이 밖에도 포경 수술 전문가로부터 치료받은 프랑스의 루이 16세, 특이한 병으로 사망한 교황들, 출산의 고통으로 수술에 마취를 도입하는 결정적 계기를 만든 영국 빅토리아 여왕, 내시경을 사용한 수술의 발전 등 수술 역사에서 중요한 28개의 이야기가 나온다. 외과 의사가 수술 전 손을 씻기 시작한 것이 불과 150년밖에 안 됐지만 오늘날은 수술실을 멸균 환경으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한 규칙이 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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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서재]다시 태어난 책

    신간을 중심으로 소개하는 ‘책의 향기’이다 보니 개정판이나 증보판은 아무래도 눈길이 덜 가게 마련입니다. 이번 주에는 눈에 띄는 책들이 있네요. ‘작가정신’은 신화연구가였던 고(故) 이윤기 작가(1947∼2010)의 8주기를 맞아 그가 남긴 소설, 에세이, 인문서를 1종씩 개정해서 출간했습니다. 각각 ‘진홍글씨’ ‘이윤기가 건너는 강’ ‘이윤기 신화 거꾸로 읽기’입니다. 이윤기 작가의 글을 좋아하던 독자들에게 좋은 선물이 될 겁니다. ‘의학계의 계관 시인’으로 불렸던 올리버 색스(1933∼2015)의 책 ‘색맹의 섬’(알마)도 개정판으로 나왔습니다. 주민들 상당수가 색맹인 사회를 찾아 저자가 미크로네시아를 여행한 기록이 담겼습니다. 색스가 생전에 가장 사랑하는 책으로 꼽았다고 하네요. 개정판은 새 장정과 판형으로 단장하거나 문장과 맞춤법을 다듬어 냅니다. 글이 들어가고 빠지거나 출판사가 바뀌기도 합니다. 공들인 개정판은 책이 거의 새로 태어난 셈이지요. 이윤기 작가의 기일은 27일, 올리버 색스는 30일입니다. 작가는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여행을 떠났지만, 그들이 이 세상에 남긴 책은 새로운 생명을 얻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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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이 왜 잘못된 선택을 할까요? 직관을 믿기 때문이죠”

    “직관을 믿지 마세요. 판단과 결정에서 편향을 피하려면 데이터를 가지고 확인해야 하고, 그럴 수 없다면 다른 이의 판단을 가지고 확인해야 합니다.” 행동경제학이 탄생하는 과정을 다룬 신간 ‘생각에 관한 생각 프로젝트’(김영사·1만8500원)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58)는 e메일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평소 직관을 믿는다”며 이렇게 말했다. 경제학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는 주체를 가정하고, 그 바탕 위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84)과 아모스 트버스키(1937∼1996)가 창시한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의 판단에 감정과 심리가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걸 밝혔다. 루이스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 책을 쓰겠다고 한 뒤 카너먼이 인터뷰를 편하게 받아들이기까지는 거의 5년이 걸렸다고 한다. 루이스는 “카너먼은 책에 자신이 너무 드러나 망자인 트버스키의 역할이 과소평가될까 우려했다”고 말했다.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는 전기요금 고지서를 바로 이해할 수 있게 직관적으로 도안하는 것부터 남자 소변기에 파리를 그려 넣어 변기 가운데로 볼일을 보게 하는 ‘넛지’ 디자인, 미국의 연금 자동 가입 방식 등 각 분야의 변화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두 학자는 ‘지난 200년 동안 경제학적 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들’로 평가되기도 한다. “카너먼과 트버스키는 거의 한 몸처럼 협력하며 연구 성과를 냈습니다. 논문에서 각자가 기여한 부분이 어디인지 정확히 구분이 안 될 정도였죠.” 둘은 ‘애증’의 관계이기도 했다. 200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건 생존한 카너먼뿐이었지만 사실 소심한 성격의 카너먼보다 자기 확신이 강한 트버스키가 오랫동안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루이스는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구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체계적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선수를 재평가해 좋은 성적을 내는 과정을 그린 논픽션 ‘머니볼’(2003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본질을 추적한 ‘빅숏’(2010년)의 저자이기도 하다. 두 책은 모두 영화로 만들어졌다. “‘머니볼’에서는 왜 선수들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는지 구체적인 설명이 안 나오지만 카너먼과 트버스키의 연구는 이 같은 인간의 오판에 답을 제시합니다.” 그는 학부에서 예술사를 전공하고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경제학자들보다 인지심리학자들과 함께 있을 때 마음이 더 편하고, 심리학자들의 이야기가 더 흥미롭고 중요하게 들린다”고 덧붙였다. 책의 원제를 ‘언두잉 프로젝트(The Undoing Project)’로 지은 이유는 “두 사람의 연구가 인간 본성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다룬 위대한 ‘되돌리기(Undoing)’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판단의 편향에 관해 내공이 깊은 그도 오류를 피할 수는 없는 듯하다. 자신의 삶을 행동경제학적으로 돌아볼 때 후회되는 판단이나 비합리적인 결정이 있는지 물었다. “연애나 주식 투자에서 ‘매몰비용’을 무시하는 데 실패했어요. 단순히 내가 그것에 투자를 했다는 것 때문에 적절한 기간보다 더 오래 그 상태를 유지하려 했거든요.”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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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19년 건국론은 남한 정통성 강조 위해 이승만이 주도한 것”

    그동안 건국 시점 관련 논쟁이 역사적 사실과 이를 기념하는 일조차 구별하지 못한 채 정치적 논리에 얽매여 왜곡돼 왔다는 연구가 나왔다. 1948년 건국은 역사적 ‘사실’이며 ‘1919년 건국론’은 오히려 이승만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이 ‘한반도 유일의 중앙정부’라고 강조하기 위해 만든 기억과 기념의 방식이라는 주장이다. 도진순 창원대 사학과 교수(60·사진)는 22일 한국근현대사학회 학술대회 ‘독립운동, 그 기록과 기념의 역사’에서 발표할 예정인 ‘역사적 시간과 기억의 방식: 건국 원년과 연호 문제의 관점 전환을 위하여’에서 이같이 밝혔다. 도 교수는 주해본과 정본 백범일지를 편찬한 백범 김구 연구의 권위자다. 도 교수는 “‘1919년 건국론’은 긴 논쟁에서 오해가 생긴 것처럼 김구와 임시정부가 주도한 게 결코 아니다”라며 “이 전 대통령이야말로 이러한 기억의 창시자이자 주도자였다”고 밝혔다. 그는 전화 통화에서 “이 글로 지금껏 벌어진 논쟁이 끝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1919년 건국론, 반공 위해 제기” “이 국회에서 건설되는 정부는 즉 기미년에 서울에서 수립된 민국(民國) 임시정부의 계승이니, 이날이 29년 만에 민국의 부활일임을 우리는 이에 공포하며, 민국 연호(年號)는 기미년에서 기산(起算)할 것이오….” 이 전 대통령은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의 의장으로서 발표한 ‘개회 식사(式辭)’에서 1919년 건국을 분명히 했다. 도 교수는 “이처럼 ‘1919년 대한민국 건국, 1948년 재건’이 기본 기조”라며 “임시정부 부활을 강조한 건 대한민국이 ‘완벽하게 한국 전체를 대표하는 중앙정부’라고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조선노동당과 인민위원회가 아니라 대한민국 정부에 정통성이 있다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1948년 7월 24일 이승만 대통령 취임사, 8월 15일 정부수립 기념사, 이승만이 주도해 삽입한 제헌헌법 전문(前文) 등에서도 1919년 건국론이 줄곧 유지됐다. 도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건국 원년을 1919년으로 끌어올리려 한 건 분단된 한반도가 남(南)에 의해 통일돼야 한다는 욕망의 표현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1919년 건국론에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의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대한민국이 임정의 법통을 계승했다는 취지도 담겨 있다. “기미년 3월 1일을 기하여… 4월 16일 13도 대표가 경성에 비밀히 모여 국민대회를 열고 임시정부를 조직하여 전문(全文)을 인쇄하여 세계에 발포하니 이로써 임시정부는 귀한 피로 만들어진 것이다.”(1945년 11월 28일 이 전 대통령의 임정 요인 귀국 환영사) 도 교수는 “이 전 대통령은 1919년 3·1운동은 그가 정부의 영수인 ‘집정관 총재’로 추대된 한성임시정부로 귀결됐다고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반쪽 기억으로 미래 감당 못해” 도 교수는 역사적 사실은 ‘1948년 건국’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1919년을 건국으로 보면) 신채호 등 임시정부에 반대했던 독립운동가는 어떻게 되며 1945년까지 일제 국적을 가지고 한반도에서 신음하던 2000만∼3000만 동포는 어떻게 규정해야 하는가”라고 반문했다. ‘1948년 건국’을 주장하면 ‘친일부역의 은폐’를 위한 것이란 기계적 도식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비약이 심하다는 게 도 교수의 판단이다. 역사적으로 김구와 임시정부는 ‘임정 법통론’을 통한 건국을 도모했지만 실패했고 이승만은 5·10선거를 통한 대한민국의 건국을 주도했다. 도 교수는 “1948년 8월 15일을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건 국민적 합의가 필요한 ‘기억’의 문제”라며 “‘1919년 건국’이 ‘사실’이라며 반대 의견을 제기한 게 적잖은 혼란을 야기했다”고 덧붙였다. 오랫동안 ‘1919년 건국론’을 이끌어온 한시준 단국대 교수는 “(1919년 건국론으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인정하면 민족의 정통성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것,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괴뢰국이라는 것이 명확히 드러난다”고 강조한 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광복절 경축사에서 지난해와 달리 “2019년 건국 100주년을 맞는다”는 표현을 하지 않은 건 한반도 정세와 관련해 북한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북한은 임시정부를 “정치적 야욕을 채워 보려는 투기 행위의 산물” 등으로 비난해 왔다. 도 교수는 “건국 연도 문제는 남북과 좌우가 민족운동사를 공동으로 기억, 기념하는 과제와 연결돼 있다”며 “친일과 반일, 우익과 좌익, 남과 북의 대립 구도의 ‘반쪽’ 역사 기억 방식으로는 향후 역사적 변화를 감당하기 힘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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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돈가스-조미료… 일상 지배하는 ‘번안된’ 근대화

    “양복쟁이 바지에 대님을 써야 될 건가/…/연미복 입고 당나귀를 타야만 격인가.” 1930년대 유행한 ‘꼴불견 주제가’다. 일본과 서양에서 건너온 근대 문물과 조선의 전통이 식민지 조선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꼴불견’이라며 풍자했다. 새로울 것 없는 얘기지만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 근대’로 시작됐다. 일제 강점을 겪은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서구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다. 예술 분야뿐 아니라 언어, 기술, 학문, 교육, 종교 등 각 분야의 식민지적 근대성을 ‘번안’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했다. ‘번안’은 원래 특정 장르의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바꾸거나, 배경과 인물을 바꿔 현실에 맞는 배경과 형태를 갖추는 작업이다.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인 저자는 번안을 예술 작품뿐 아니라 사회변동기에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문화를 수용자에 맞게 바꾸는 일을 지칭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번안은 밀가루, 패션, 고무신, 모자, 주택, 라디오, 대중미술, 만화, 유흥업 등 일상 속 문화 전반에서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근대어, 이 기사를 쓰는 데 사용한 단어에도 일본어 ‘번안’의 흔적이 가득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근대 사상을 번역하기 위한 개념어를 만드는 데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이 번역한 개념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重譯)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 그건 약이면서 독이었다. ‘번역의 고통’을 건너뛴 대가로 구어와 문어의 틈이 더 벌어지고 한자어는 더욱 늘어났다.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도 ‘번안’은 계속됐다. 요즘도 조미료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미원’은 식민지 때 이식된 일본의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산업화 시기 국내 기업들의 손에 재이식된 것이다. 기업들은 1930년대 아지노모토가 조선에서 펼친 광고 방식을 모방하고 상표 디자인과 용기를 차용했다. 이 같은 ‘식민지적 근대성’을 단순히 청산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돈가스’ 역시 애당초 일본이 ‘번안’한 서양 요리로 1930년대 조선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음식이다. 이제 돈가스는 일상의 우리 음식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원천이 서양이든 일본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돈가스의 근원을 확인하고, 변형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 배경과 앞으로 변형할 모양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돈가스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게다. 모방에서 독창성도 나온다. 일본 가수 사카모토 규가 1961년 발표한 노래 ‘위를 보고 걷자’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1963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이시스터즈’가 ‘위를 보고 걸어요’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저자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였던 ‘맥과이어 시스터즈’와도 스타일이 유사한 이시스터즈의 번안 가요 음반은 재즈 연주와 편곡이 아주 뛰어나며 가사의 번역도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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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서재]“고생 많으셨습니다”

    8·15 광복절이 있던 이번 주에는 일제의 식민지배와 관련 있는 책들이 꽤 되네요. ‘한중일 역사인식 무엇이 문제인가’(오누마 야스아키 등 지음·섬앤섬)는 일본 도쿄대 명예교수의 책입니다. 그는 전쟁 책임을 지는 데서 독일이 일본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건 “국가 지도자가 알기 쉬운 형태로 자기반성과 사죄를 표명해 왔기 때문”이라고 봤습니다. 파도와 바닷바람을 견디며 독도의 ‘주민’으로 살고 있는 식물을 관찰해 소개한 ‘독도의 사계절 식물 리포트’(김철환 등 지음·지오북)도 나왔습니다. ‘민초종용’은 세계적 희귀식물인 ‘초종용’의 일종인데, 국내에서는 울릉도와 독도에만 산다고 합니다. 독도의 식물들은 육지 식물처럼 화려하거나 환경의 영향으로 아름드리 그늘을 만들 만큼 자랄 수 없지만 ‘독도가 무너지지 않게’ 견고히 지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30대 만화가 지망생이 전국 75곳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그린 그림을 담은 ‘평화의 소녀상을 그리다’(김세진 지음·보리)도 나왔네요. 애쓰신 분들께 지면을 빌려 “정말 고생 많으셨다”는 말씀 전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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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민지 조선에선 ‘꼴불견’이라 했지만…일상 가득한 ‘번안’

    “양복쟁이 바지에 대님을 써야 될 건가/…/연미복 입고 당나귀를 타야만 격인가” 1930년대 유행한 ‘꼴불견 주제가’다. 일본과 서양에서 건너 온 근대 문물과 조선의 전통이 식민지 조선에서 충돌하는 모습을 ‘꼴불견’이라며 풍자했다. 새로울 것 없는 얘기지만 한국의 근대는 ‘식민지 근대’로 시작됐다. 일제 강점을 겪은 한국은 일본을 통해 서구 근대 문물을 받아들였다. 예술 분야 뿐 아니라 언어, 기술, 학문, 교육, 종교 등 각 분야의 식민지적 근대성을 ‘번안’이라는 키워드로 조명했다. ‘번안’은 원래 특정 장르의 작품을 다른 장르의 작품으로 바꾸거나, 배경과 인물을 바꿔 현실에 맞는 배경과 형태를 갖추는 작업이다. 서울과학기술대 기초교육학부 교수인 저자는 번안을 예술 작품 뿐 아니라 사회변동기에 바깥으로부터 들어온 문화를 수용자에 맞게 바꾸는 일을 지칭하는 말로 폭넓게 사용한다. 이런 맥락에서 번안은 밀가루, 패션, 고무신, 모자, 주택, 라디오, 대중미술, 만화, 유흥업 등 일상 속 문화 전반에서 일어났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근대어, 이 기사를 쓰는 데 사용한 단어에도 일본어 ‘번안’의 흔적이 가득하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 근대 사상을 번역하기 위한 개념어를 만드는데 박차를 가했다. 그리고 우리는 일본이 번역한 개념어를 다시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重譯)으로 서양 문물을 받아들였다. 그건 약이면서 독이었다. ‘번역의 고통’을 건너 뛴 대가로 구어와 문어의 틈이 더 벌어지고 한자어는 더욱 늘어났다. 196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도 ‘번안’은 계속됐다. 요즘도 조미료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미원’은 식민지 때 이식된 일본의 조미료 ‘아지노모토’가 산업화 시기 국내 기업들의 손에 재이식된 것이다. 기업들은 1930년대 아지노모토가 조선에서 펼친 광고 방식을 모방하고 상표 디자인과 용기를 차용했다. 이 같은 ‘식민지적 근대성’을 단순히 청산의 대상으로 생각하면 곤란하다. ‘돈가스’ 역시 애당초 일본이 ‘번안’한 서양 요리로 1930년대 조선에서 보급되기 시작한 음식이다. 이제 돈가스는 일상의 우리 음식으로 폭넓게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원천이 서양이든 일본이든 상관없다. 그러나 돈가스의 근원을 확인하고, 변형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그 배경과 앞으로 변형할 모양을 찾는 일이 중요하다”고 했다. 돈가스 뿐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일 게다. 모방에서 독창성도 나온다. 일본 가수 사카모토 큐가 1961년 발표한 노래 ‘위를 보고 걷자’는 미국으로 건너가 ‘스키야키’라는 제목으로 1963년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4년 ‘이시스터즈’가 ‘위를 보고 걸어요’라는 제목으로 소개했다. 저자는 “당시 미국에서 인기였던 ‘맥과이어 시스터즈’와도 스타일이 유사한 이시스터즈의 번안 가요 음반은 재즈 연주와 편곡이 아주 뛰어나며 가사의 번역도 독특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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