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

유윤종 전문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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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음악 분야를 전담하고 있습니다. '푸치니:토스카나의 새벽을 무대에 올린 오페라의 제왕'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등의 책을 썼습니다.

gustav@donga.com

취재분야

2025-11-16~2025-12-16
음악67%
칼럼10%
문학/출판10%
문화 일반7%
연극3%
기타3%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굴드와 닮은듯 다른 ‘프레이’의 피아노 연주

    피아노 앞에 다가앉은 피아니스트. 머리를 깊이 숙여 건반에 닿을 듯 가까이 댑니다. 머리를 흔들고, 눈을 찌푸리고, 선율을 콧노래로 흥얼거립니다. 피아노 팬이라면 기억나는 이름이 있죠? 캐나다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입니다. 그런데 왕성하게 활동 중인 현역 피아니스트 가운데도 비슷한 무대 매너로 눈에 뜨이는 인물이 있습니다. 올해 36세인 프랑스 피아니스트 다비드 프레이(사진)입니다. 그 역시 고개를 피아노 가까이 가져다 대고, 머리를 흔들고, 콧노래를 부릅니다. 기인(奇人)스럽다 할 만한 그의 모습에 피아노 팬들은 ‘제2의 굴드’라는 별명을 붙였습니다. 생전의 굴드를 필름에 담았던 다큐멘터리 감독 브뤼노 몽생종이 프레이에 주목한 것도 우연한 일은 아닙니다. 2004년 프레이가 몬트리올 콩쿠르에서 입상한 뒤 몽생종 감독은 그의 연주와 개인적 면모를 담은 ‘흔들고, 노래하고, 생각하라’라는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왜 연주 중에 그런 특이한 포즈가 나올까요? 프레이 자신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연주자의 몸은 음악과 함께 진동하고 공명해야죠. 성악가들은 그렇게 노래하지 않습니까. 피아니스트도 그래야 합니다.” 하지만 그가 자아내는 음악은 굴드와 다릅니다. 다르다기보다는 차라리 굴드와 대비됩니다. 두 사람 모두 바흐를 사랑하지만, 한 음 한 음이 분명하게 딱딱 떨어지는 굴드의 바흐와 달리 프레이가 연주하는 바흐는 유연하고 냇물처럼 흐르는 편입니다. 그가 연주하는 바흐는 감각적으로 유려하며 투명한 아름다움을 지녔다는 평을 듣습니다. 그렇게 ‘굴드 같으면서도 굴드 아닌’ 프레이가 서울에 옵니다. 15∼18일 여수, 부산, 인천에서 연주를 펼쳤고 오늘(19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세종솔로이스츠와 바흐의 건반악기 협주곡 세 곡을 협연합니다. 현역 바흐 스페셜리스트가 조선의 명군주 ‘세종’의 이름으로 활약하는 악단과 함께 자아내는 유려한 바흐에 기대가 큽니다. 마침 세종솔로이스츠를 창립한 강효 줄리아드음악원 교수가 제31회 인촌상 수상자로 결정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군요. 큰 축하를 드립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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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무민’과 함께 듣는 시벨리우스의 음악들

    어린 시절 TV로 본 디즈니 애니메이션에 잊히지 않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한밤, 무덤에서 해골들이 나와 춤을 추다가 닭이 울자 황급히 무덤으로 들어가는 단편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해골이 정강이뼈를 들고 다른 해골을 실로폰 치듯이 치는 장면은 우습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습니다. 자라서 이 장면이 디즈니의 어떤 작품에 나오는지 몹시 궁금했습니다. 여기 쓰인 음악도 궁금했고요.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아닌가 싶었지만 음악이 전혀 달랐습니다. 궁금증은 인터넷으로 동영상을 검색할 수 있게 된 1990년대에 풀렸습니다.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의 단편 애니메이션 시리즈 ‘실리 심포니’ 중 첫 작품인 ‘해골의 춤’(1929년)이었고, 여기 쓰인 음악은 그리그의 ‘서정 소곡집’ 5집(1891년)에 나오는 ‘트롤의 행진’이었습니다. 트롤이 무엇일까요? 스칸디나비아 전설에 나오는 거인족입니다. 나라마다 다르게 묘사되지만 대체로 못생겼고 사람을 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자연과 친하고 명상적이며 음악을 좋아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얼마간 두려운 존재였던 이 트롤을 친숙한 존재로 만든 것이 핀란드 작가 토베 얀손이 1945년 창조한 캐릭터 ‘무민’(사진)입니다. 무민 가족은 트롤이지만 괴기스럽거나 무서운 점은 없습니다. 소박하고 때로 소심하며 사람과 같은 생활을 영위하는 우리의 친구죠. 이 무민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는 ‘무민 원화전’이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습니다. 핀란드 독립 100주년을 축하하는 의미도 담은 전시입니다. 옛 트롤 전설에서 두려움을 뺀 무민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리그의 ‘트롤의 행진’보다는 핀란드 작곡가 시벨리우스의 ‘카렐리아 모음곡’ 같은 유쾌한 선율들이 떠오릅니다. 무민 가족이나 시벨리우스의 음악작품 모두 올해 비로소 100년이 된 핀란드 공화국의 정체성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공헌을 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강소국’으로 알려진 핀란드는 여러 면에서 우리의 역할모델로 여겨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 가을에 무민과 벗하며 시벨리우스의 아름다운 선율들을 들어보면 어떨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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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브람스와 드보르자크의 우정

    1874년, 요하네스 브람스는 41세에 불과했지만 오스트리아 제국을 대표하는 작곡가였습니다. 이 해에 그는 제국 정부가 주관하는 음악가 장학금의 심사위원이 되었습니다. 여러 신진 작곡가들이 보낸 악보들 속에서 방대한 분량의 악보 꾸러미가 눈에 띄었습니다. 당시 33세였던 보헤미아(체코) 작곡가가 보낸 것이었습니다. 분량도 압도적이었지만 브람스는 그 낱낱의 작품이 드러내는 탁월한 예술성에 감탄했습니다. 시골풍으로 소박함이 드러나면서도 인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하고, 화음이나 악기 사용법에 있어서도 치밀하지 않은 부분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젊은 안토닌 드보르자크는 오스트리아 정부가 공식적으로 지원하는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 뒤 ‘제국 장학금 수혜 작곡가’ 드보르자크와 만난 브람스의 도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작품을 출판하던 짐로크 출판사에 드보르자크를 소개해 줘 그의 작품이 안정적으로 출판되고 소개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또 한 가지, 브람스는 젊은 작곡가 드보르자크의 생활이 안정될 수 있도록 매우 실질적인 ‘팁’ 하나를 주었습니다. “내가 피아노 연탄곡(두 사람이 피아노 한 대에 앉아 치는 피아노곡)인 ‘헝가리 춤곡집’을 썼더니 악보가 잘 팔리더란 말일세. 자네는 슬라브 민족인 보헤미아 출신이니 ‘슬라브 춤곡집’을 써보게.” 브람스의 충고대로 드보르자크는 ‘슬라브 춤곡’ 전 16곡을 썼고 이 악보들은 잘 팔려나가 청년 작곡가의 살림에 든든한 보탬이 되었습니다. 당시 산업혁명의 영향으로 중부 유럽에 중산층이 두꺼워졌고, 날마다 달마다 늘어나는 피아노로 연주할 ‘새 작품’이 필요했습니다. 브람스와 드보르자크가 여기 맞춤한 악보들을 공급했던 것입니다. 오늘(5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열리는 ‘피아니스트 문용희 & 탁영아의 함께 가는 길’ 연주회에서도 슈베르트 환상곡 f단조,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등과 함께 드보르자크 ‘슬라브 춤곡’ 중 세 곡이 연주됩니다. 두 피아니스트는 스승과 제자로 만나 이제는 미국 명문 음대에서 나란히 교수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브람스와 드보르자크의 각별했던 사이처럼, 두 음악가의 나란히 달리는 네 손이 아름답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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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영화 ‘마지막 4중주’와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4년 전 이맘때 ‘마지막 4중주’라는 미국 영화를 보았습니다. 예술가와 노화, 가족관계를 통해 인생의 숨은 면모를 들여다보는, 다소 ‘무거운’ 영화였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유명 현악4중주단인 ‘푸가 4중주단’은 창단 25주년 기념 연주회를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기가 닥칩니다. 팀 내 최연장자이자 멘토인 첼리스트 피터가 파킨슨병에 걸려 원활한 연주가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네 명의 연주자는 예정된 연주회를 피터의 고별 콘서트로 준비하지만, 지금까지 없던 문제들이 불거집니다. 제2바이올린 주자는 제1바이올린과 자리를 바꾸고 싶습니다. 두 바이올린 연주자는 한 여성을 상대로 경쟁했던 사이이고, 가족 관계의 삐거덕거림까지 끼어듭니다. 네 사람은 문제없이 연주회를 열 수 있을까요? 이 영화를 본 뒤 여러 현악 연주자들께 영화에 대한 느낌을 물었습니다. 영화를 본 연주자들은 대체로 ‘불편했다’고 말했습니다. 특정 ‘전문직’을 묘사한 영화는 그 직종 종사자들에게 터무니없이 느껴지는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의사들은 의료 영화를, 법률가들은 법률 영화를 불편해하죠. 그런데 그것뿐만은 아니었습니다. 많은 연주자가 ‘연주가끼리 앙상블을 이룬 팀에 개인적 감정이 끼어들어서 불편해지는 것은 생각하기도 싫은 악몽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영화의 배경에 깔리는 음악이자 네 연주자가 콘서트에서 연주할 작품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4번 C샤프단조입니다. 통상 4악장제인 일반적 현악사중주와 달리 7개나 되는 악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허둥대는 듯한 독특한 스케르초가 들어가는 등 여러 가지로 개성이 강한 작품입니다. 명상적이면서 환한 느낌을 주는 4악장은 특별한 감동을 전해줍니다. 22일부터 전국 순회 연주회를 열고 있는 젊은 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이 콘서트 마지막 곡으로 선보이는 작품도 이 베토벤의 현악사중주 14번입니다. 오늘 29일에는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연주합니다. 모차르트 국제 실내악 콩쿠르에서 우승했고 전 세계 주요 공연장과 음악축제의 초청을 받고 있는 이 악단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실내악 연주단체로 장수하기를 기원합니다.유윤종 gustav@donga.com}

    •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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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말러 위상 높인 지휘자, 번스타인 탄생 99주년

    이달 6일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체코 칼리슈테 생가를 다녀왔습니다. 기념관 겸 펜션으로 쓰이고 있는 그 집의 주인은 일요일인데도 문을 열고 커피를 대접해 주었습니다. 함께 간 분들과 뜰의 잔디를 바라보면서 말러의 삶, 그리고 그의 음악 얘기를 한참이나 나누었습니다. 서구에서 말러의 인기가 치솟는 데 큰 역할을 한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1918∼1990·사진) 얘기도 빠지지 않았습니다. 말러는 생전에 (작곡가로서) ‘나의 시대가 올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시대가 쉽게 오지는 않았습니다. 말러가 죽은 뒤 사람들은 길고 복잡한 그의 교향곡을 어려워했고, 1933년 독일 나치 집권 이후에 유대인이었던 그의 음악이 금지되면서 유럽에서 그의 음악을 떠올리는 일은 더욱 드물어졌습니다. 그런 말러의 교향곡이 오늘날 베토벤과 맞먹는 위상을 갖게 된 데는 번스타인의 역할이 컸습니다. 전적으로 그의 힘만은 아니었을지라도 말이죠. 1957년 미국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취임한 번스타인은 당대 미국인의 우상이었습니다. 유럽 출신 지휘자들이 주요 악단의 지휘대를 장악한 시절에 ‘순수 미국산 30대 젊은 피’로 미국 최고 악단을 짊어지게 되었으니 그럴 만했죠. 마침 1960년은 말러 탄생 100주년, 1961년은 말러 사망 50주년이었고, 번스타인은 말러 교향곡 전곡을 정기연주회 프로그램에 올리는 한편 이를 전집 음반으로 발매하기 시작했습니다. 1958년 스테레오 LP음반이 등장하면서 좋은 음질로 큰 규모의 교향곡을 듣기에도 맞춤한 조건이 마련된 때였습니다. 번스타인이 녹음한 전설적인 말러 음반들은 오늘날 ‘추천음반 목록’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말러를 접하는 ‘첫 경로’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번스타인이 해석한 말러는 그 자신만의 색채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죠. 오히려 수많은 다른 지휘자의 말러 해석을 충분히 접한 뒤 번스타인이 해석한 말러를 만나보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이달 25일은 번스타인의 99번째 생일입니다. 지휘자로서뿐 아니라 음악이론가로, 뮤지컬 ‘웨스트사이드 스토리’를 작곡한 작곡가로 뜨겁게 살았던 그의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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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작곡가들 사랑받은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

    ‘템페스트(폭풍우)’는 셰익스피어 로맨스극의 마지막 작품입니다. 셰익스피어가 연극계에서 은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썼다고 하죠. 그런 만큼 인생과 세계를 관조하는 성숙한 작가의 시선이 두드러진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극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밀라노 대공 프로스페로는 나폴리 왕 알론조의 음모로 섬에 추방됩니다. 섬에서 마법의 힘을 얻게 된 프로스페로는 알론조와 그의 아들이 탄 배가 가는 것을 보고 폭풍을 일으켜 난파시킵니다. 그러나 난파한 알론조의 아들이 프로스페로의 딸 미란다와 사랑에 빠지게 됩니다. 자식을 이기는 부모도, 사랑을 이기는 난관도 없다고 하죠. 프로스페로는 결국 알론조를 용서한 다음 밀라노 대공으로 복귀합니다. 이 극을 길게 소개한 이유는 이 내용을 여러 작곡가가 음악으로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와 같은 세기의 작곡가 퍼셀이 오페라를 쓴 것을 비롯해 19세기의 차이콥스키는 이 ‘템페스트’를 교향적 환상곡으로, 시벨리우스는 극의 공연 때 연주하는 극부수음악(incidental music)으로 만들었습니다. 2004년에는 ‘지휘자 사이먼 래틀이 가장 좋아하는 작곡가’로 알려진 토머스 아데스가 오페라를 작곡해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베토벤은 그의 피아노소나타 17번의 ‘내용’이 뭐냐는 비서 신들러의 질문에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어보라’고 답했다고 알려졌지만, 이 말을 전한 신들러의 기록들이 오늘날 전반적으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쨌건 이 소나타도 ‘템페스트’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은 10일 부지휘자 최수열 씨의 지휘로 서울 장충동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서울시향의 음악극장―템페스트’ 공연을 엽니다. 차이콥스키의 교향적 환상곡을 토대로 배우의 연기와 무용수의 춤을 곁들여 음악의 내용을 극적으로 표현할 예정입니다. ‘서울시향의 음악극장’ 시리즈는 작곡가가 악보로만 표현한 음악을 한층 입체적으로 풀어내고자 하는 시도입니다. 공연 초반에 무대에 등장하는 셰익스피어가 펜을 들어 일으킬 폭풍우가 궁금해집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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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푸치니 ‘투란도트’와 그의 하녀 ‘도리아’

    푸치니의 유작 오페라인 ‘투란도트’에는 타이틀 롤인 투란도트 공주 외에 두 번째 히로인이 등장합니다. 망명해 떠도는 칼라프 왕자의 시녀 ‘류’입니다. 류는 ‘왕자의 이름을 대라’는 투란도트 공주의 강요를 거부하다 자기 가슴을 찔러 죽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에 흔한, 비련의 히로인이죠. 푸치니가 죽고 2년 뒤인 1926년 이 오페라가 초연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이 가엾은 류의 모습에서 실제 인물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푸치니의 하녀였던 도리아 만프레디였습니다. 1908년 말, 푸치니의 부인인 엘비라는 하녀 도리아가 남편과 관계했다며 마을 사람들 앞에서 심한 모욕을 주었습니다. 도리아는 새해가 밝은 며칠 뒤 농약을 마시고 목숨을 끊었습니다. 가족들의 요구로 부검이 실시되었습니다. 의사는 도리아가 처녀라고 말했습니다. 이 일로 전 유럽이 떠들썩했습니다. 가엾은 도리아의 희생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된 것은 그가 죽고 99년이 지난 2008년의 일이었습니다. 이해 ‘푸치니의 여인’이라는 영화가 세상에 나왔습니다. 2006년, 파올로 벤베누티 감독이 푸치니가 살던 집 근처에서 식사를 하다가 귀가 번쩍 뜨이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푸치니의 사생아라는 남자가 이 피자집에 들르곤 했다는 것입니다. 벤베누티 감독은 이 얘기의 진실을 추적하다가 근처 치사넬로 마을에 있는 집을 방문했습니다. 푸치니 사생아의 딸이라고 밝힌 나디아라는 여인의 집이었습니다. 나디아가 벤베누티 감독에게 보여준 트렁크에서는 편지 40여 통이 나왔습니다. 푸치니가 보낸 편지였습니다. 수신인은 줄리아 만프레디. 나디아의 할머니이자, 푸치니의 하녀 도리아 만프레디의 사촌이었습니다. 진실은 이랬습니다. 도리아는 사촌 줄리아와 푸치니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지만 이를 누설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이 비밀을 무덤에 가져가기로 마음먹고 목숨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투란도트’에 나오는 류도 ‘이름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목숨을 끊습니다. 26∼29일 대구오페라하우스가 푸치니의 ‘투란도트’를 공연합니다. 이제는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 류의 모습을 보면서, 가엾은 도리아 만프레디의 모습을 떠올리게 될 듯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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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프랑스 시골 정취 오롯이 느껴지는 ‘오베르뉴의 노래’

    여름이면 이 코너에서 ‘휴가지에 가져갈 만한 음악’을 종종 추천해 드렸습니다. 물(水)의 느낌을 짙게 주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집, 초원의 저녁과 밤을 연상시키는 보로딘의 음악들, 말러의 ‘밤의 노래’ 교향곡, 바다를 연상시키는 라벨과 드뷔시의 관현악곡 등을 소개했었죠. 이번에는 음악과 함께 제가 가보지 않은 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프랑스 지도 가운데에 있는 오베르뉴 지방입니다. 지도상으로는 프랑스의 한복판이지만 산이 많아서 농업과 목축업을 주로 하는 한적한 시골이라고 합니다. 제가 밟아본 적 없는 이 프랑스 시골을 소개하는 이유는, 이곳 출신 작곡가 마리조제프 캉틀루브(1879∼1957)의 민요집 ‘오베르뉴의 노래’ 때문입니다. 캉틀루브는 고향인 이 지역의 민요들을 수집해 다섯 권의 민요집으로 묶어 냈습니다. 선율은 단순하지만 관현악 반주부는 자연의 원색이 모두 드러나는 듯 화려하면서도 명료해서 듣는 재미가 큽니다. 프랑스 다른 지역 사람들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사투리 가사도 독특한 감칠맛을 더합니다. 이 민요집에서 가장 유명한 곡은 1권의 두 번째 곡인 ‘바일레로’입니다. 로렌스 올리비에가 주연한 1944년 작 영화 ‘헨리 5세’에 사용된 후 수많은 영화에 등장했다는 곡이죠. “목동아, 개울을 건너서 내게로 오렴. 들판에는 꽃이 가득 피었네…”라는 단순한 가사를 읊조리는 가운데 현과 목관, 피아노의 분산화음이 신비한 전원의 여름을 선명한 음색으로 묘사합니다. 이외에도 다섯 권의 곡집에는 숲과 들판의 비와 햇살, 고요히 풀을 뜯는 양떼들, 시골 농부와 목동의 사랑, 실연한 여성의 한탄, 아기를 달래는 자장가 등 마음을 평화롭게 해주는 정경이 가득합니다. 심지어 옆 동네 리무쟁 지방 사람들에 대해 경쟁심을 드러내는 가사도 있답니다. 이 사랑스러운 민요들을 듣는 데는 미국 메조소프라노 프레데리카 폰 슈타데의 순수한 목소리를 특히 추천합니다. 예전에는 음반점에서 구하기 힘든 앨범이어서, “왜 살 수도 없는 연주를 골라줬어!”라는 질타도 받았지만 인터넷을 통한 음원 구입이나 음반 해외주문이 일상화된 오늘날, 예전보다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연주가 되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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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그날, 평양을 적신 거슈윈의 재즈 음악

    벌써 10년이 되어 가는군요. 2008년 2월 26일, 로린 마젤이 지휘한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평양의 동평양 대극장에서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미국 오케스트라의 북한 연주는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이 “이 콘서트가 동아시아의 긴장을 해소하고 평화로 가는 길을 열었으면” 하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보는 바와 같이 그 일로 한반도 정세가 변하지는 않았습니다. 뉴욕 필이 평양에서 연주한 곡은 북한과 미국의 국가,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 그리고 조지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이었습니다. 공들인 선곡으로 느껴졌습니다. 드보르자크의 ‘신세계에서’는 체코인 작곡가가 ‘미국의 고유한 음악을 수립하는 데 도움을 달라’는 부탁을 받고 뉴욕 내셔널 음악원 원장으로 부임한 뒤 미국의 풍토와 선율로부터 영감을 받고 쓴 곡입니다. 거슈윈의 ‘파리의 미국인’은 미국인 여행자가 프랑스 수도에 가서 느낀 이국의 감흥과 고국인 미국에 대한 향수를 그린 작품입니다. 체코인 작곡가 드보르자크에게 미국 음악 수립의 도움을 부탁한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미국 음악은 19세기 사람들이 전혀 상상하지 못한 대중음악 분야에서 세계를 장악했습니다. 그 대신 클래식 무대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음악이 조지 거슈윈의 작품들입니다. 거슈윈은 자신에게 익숙한 재즈의 향취를 고전적인 오케스트라를 통해 구현하기를 원했습니다. 그 결과 ‘랩소디 인 블루’, 피아노 협주곡 F장조, ‘파리의 미국인’ 같은 걸작들이 탄생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음악이지만 진짜 재즈는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재즈는 즉흥성이 중요한데, 이 ‘교향악적 재즈’들은 고전음악 전통에 맞춰 악보 그대로 연주하니까요. 하지만 재즈의 색깔을 대편성 교향악단이 내도록 한 그의 시도는 수많은 사람을 매혹시켰고, 그는 미국 음악의 중요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오늘(11일)은 거슈윈이 39세의 짧은 생애를 마친 지 80년째 되는 날입니다. 오늘은 ‘파리의 아메리카인’을 들으며 그가 이국에서 느꼈던 잔잔한 우울을 느껴보고 싶습니다. 이 한없이 미국적인, 셔츠 단추 두세 개 푼 듯한 음악이 평양 청중에게 어떻게 느껴졌을까도 상상해 보면서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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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말러 교향곡을 비브라토 없이 들어보면

    지난달 17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필리프 헤레베허 지휘 샹젤리제 오케스트라가 베토벤의 교향곡 5번과 7번을 연주했습니다. 이 악단은 이른바 ‘시대악기’ 또는 ‘원전(原典)연주’ 악단의 하나입니다. 19세기 중반에 서양 악기들이 크게 변화했으므로, 그 이전의 음악은 옛 악기와 연주법을 되살려 연주한다는 콘셉트입니다. 키(누름쇠)가 없거나 적은 관악기 등 오늘날과 다른 악기의 모습 외에도 눈에 띄는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비브라토(소리를 떠는 것)가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바이올린을 비롯한 현악 연주자들은 거의 예외 없이 지판(손가락 판)에 댄 왼손을 앞뒤로 떨어 비브라토를 냅니다. 그러나 시대악기 연주자들은 비브라토를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베토벤 시대에는 현악기 비브라토가 거의 쓰이지 않은 것으로 본 것입니다. 그러면 언제부터 현악기 연주자들이 늘 비브라토를 쓰게 되었을까요? 여기에 대해 설명한 문헌이 많지 않고, ‘현악 연주자들은 과도한 비브라토를 자제할지어다’(레오폴트 모차르트)라는 등의 구절이 나와도 이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립니다. 그래도 최소한 20세기 초반 구스타프 말러가 교향곡을 쓸 때에는 현악 연주자들이 왼손에 비브라토를 달고 살았다는 것이 무언의 합의였습니다. 그런데 말러 교향곡도 비브라토를 쓰지 않고 연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휘자 로저 노링턴(사진)입니다. 그는 2010년 발매한 말러 교향곡 9번 음반에서 현악기의 비브라토를 배제하고 연주를 이끌어 경탄과 혹평을 한번에 들었습니다. 그에 따르면 “20세기 초 바이올린 연주가 크라이슬러가 집시 바이올린에서 모방한 비브라토를 확산시키기 전에는 현악기 연주자들이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지휘자와 음악학자들의 다수는 그의 의견에 문헌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꼬집습니다. 어느 쪽의 의견이 옳을까요? 맞고 틀리고를 떠나서, 노링턴이 연주하는 말러 교향곡이 처음부터 끝까지 훌륭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중간중간 처음 들어보는 현의 신비한 음색이 귀를 즐겁게 합니다. 평범한 음악 감상자로서는 ‘골라 듣는’ 재미가 있다고 할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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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질허가 노래한 로렐라이 언덕

    한때 독일 구석구석을 누비고 다녀 ‘독일 관광’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습니다. “로렐라이 언덕이 순 사기라며?”라고 묻는 분도 많이 만나보았습니다. 요정이 뱃사람을 홀렸다는 유명한 언덕인데, 막상 가보면 볼 것도 없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런가? 제 느낌은 반반입니다. 가보면 주변에 비해 특별한 것도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높은 언덕에서 굽이진 라인강을 바라보는 느낌은 각별하죠. ‘언덕’ 하나만 집중해서 볼 것이 아니라 중세시대 성들을 비롯한 주변 풍경까지 여유롭게 즐긴다면 로렐라이 ‘일대’는 분명 평생 한 번, 가보아야 할 관광지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로렐라이 언덕이 유명해진 것은 작곡가 프리드리히 질허(1789∼1860)가 작곡한 노래 ‘로렐라이’ 덕분입니다. 그는 19세기 초중반 독일에서 유행한 합창운동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여러 노래를 지었을 뿐 아니라 각 지역에서 애창되는 노래들을 악보로 정리했죠. 예전 이 코너에서 ‘깊은 산속 옹달샘’이란 노래가 질허가 채보한 민요이며, 슈베르트가 이 선율에서 ‘미완성교향곡’ 2악장 주선율의 영감을 얻었을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질허의 노래 중 한국에서 널리 애창되는 노래가 또 있습니다. “노래는 즐겁구나, 산 너머 길…”이라는 가사로 익숙한 ‘노래는 즐겁다’입니다. 소박하면서도 유쾌한 느낌의 선율도 인상 깊죠. 그런데 이 노래의 원래 가사는 즐거운 노래가 아닙니다. “내가 이 도시에서 떠나야 하나. 그대는 남아 있고?”라는 쓸쓸한 이별의 노래입니다. 선율의 느낌만 보면 우리말 가사가 더 들어맞는 것도 같습니다. 질허는 익숙한 노래를 합창곡으로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슈베르트 가곡집 ‘겨울 나그네’(Winterreise·겨울여행)에 나오는 ‘보리수’도 원곡은 ‘서있는 보리수’의 ‘수’ 부분이 음계의 주음(계이름 도)으로 내려가게 되어 있죠. 하지만 이 부분이 계이름 ‘미’로 올라가는 걸로 기억하는 분이 많습니다. 질허가 합창곡으로 편곡하면서 살짝 바꾸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27일은 독일 합창음악의 큰 인물 질허의 228번째 생일입니다. ‘로렐라이’나 ‘노래는 즐겁다’를 흥얼거리면서 그의 이름을 기억해볼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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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한번에 13도 음정 짚던 ‘큰 손’ 피아니스트들

    올해 3월,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 심사위원으로 오신 세계 각국 11명의 피아니스트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렸습니다. ‘한 사람만 피아니스트 아님’이라는 설명도 곁들였습니다. 지인들은 바로 댓글을 달았습니다. “척 보고도 알겠어요. 귀하만 손이 작은데요.” 제가 올린 사진을 다시 들여다보니 역시 손 크기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났습니다. 역사상 큰 손으로 기억되는 피아니스트로는 누가 있을까요? 영국 ‘클래식 FM’ 인터넷 사이트가 정리한 것을 보니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와 리스트 프란츠(1811∼1886)가 한 손으로 13도 음정을 짚었다는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13도라면 오른손으로 엄지손가락이 ‘도’ 음을 짚을 때 새끼손가락은 다음 옥타브의 ‘라’를 짚을 수 있었다는 뜻이 됩니다. 한국 사람은 일반적으로 ‘도’에서 다음 ‘도’까지 짚을 수 있을 정도이니 그것보다 5개 건반을 더 짚을 수 있는 큰 손을 가졌다는 얘기죠. 현역 피아니스트 중에서는 중국의 랑랑이 12도, 즉 도에서 다음 옥타브의 솔까지 짚을 수 있다고 클래식 FM 사이트는 전했습니다. 그런데 손이 무척 컸던 라흐마니노프와 리스트는 작곡가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피아노곡에서는 큰 손으로 소화할 수 있는 온갖 어려운 기교를 악보에 써넣었죠. 이 악보를 따라 쳐야 하는 후배 음악가들의 애환은 그다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최근 미국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우예권 씨는 결선에서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협주곡 3번을 협연했습니다. 영화 ‘샤인’을 통해 ‘세상에서 가장 연주하기 어려운 피아노협주곡’으로 알려진 작품이기도 하죠. 길이도 다른 협주곡들의 30분 남짓을 훨씬 뛰어넘는 50분에 달하는 데다 특히 3악장에서는 피아노로 표현할 수 있는 온갖 어려운 테크닉이 펼쳐집니다. 어려운 만큼 기교의 완성도를 과시할 수 있어 서울국제음악콩쿠르를 비롯한 여러 국제콩쿠르 결선 진출자들이 선택하는 작품이지만, ‘삐끗’ 하는 순간 컨트롤을 잃기도 쉬운 작품입니다. 최고난도의 도전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둔 선우예권 씨에게 박수를 보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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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미완성작 ‘레퀴엠’과 ‘테 데움’

    영화 ‘아마데우스’ 후반부. 자루에 담긴 모차르트의 시신이 마차에 실려 가는 가운데 슬픈 합창이 울려 퍼지죠. 모차르트 ‘레퀴엠’(진혼미사곡)에 나오는 ‘라크리모사’(눈물의 날)입니다. 마침내 자루에 싸인 시신이 구덩이에 떨어지면서 강렬한 ‘아멘’과 함께 과거를 회상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선율은 모차르트가 작곡한 것이 아닙니다. 모차르트는 이 ‘라크리모사’의 첫 여덟 마디까지 쓰고 세상을 떠났죠. 이후 모차르트의 제자 쥐스마이어가 작업을 이어받아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완성했습니다. 많은 음악학자와 작곡가들이 쥐스마이어의 악보를 ‘모차르트답지 않다’고 여겨 자기 나름의 ‘모차르트 레퀴엠’ 악보를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나와 있는 이 곡의 음반 대부분은 쥐스마이어의 악보대로 연주하지만, 요제프 아이블러, 프란츠 바이어, 리처드 몬더, 로빈스 랜던 등이 완성한 다른 악보를 사용하는 음반이나 연주회도 많습니다. 당연히 ‘라크리모사’도 여덟 마디 이후의 선율은 각양각색입니다. 13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서울오라토리오합창단이 이 모차르트의 ‘레퀴엠’을 연주합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쥐스마이어의 완성 악보를 사용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곡 이외에 브루크너의 합창곡인 ‘테 데움’(찬미가)도 연주한다는 점입니다. ‘테 데움’은 브루크너가 생전에 완성한 합창곡이지만 이 곡도 다른 ‘미완성 작품’과 관계가 있습니다. 올 초 이 코너에서 간략히 소개하기도 했지만, 브루크너는 마지막 교향곡인 9번 교향곡을 3악장까지만 완성했고 4악장 작업 도중에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는 “내가 이 곡을 끝맺지 못하거든 3악장까지 연주한 뒤 ‘테 데움’을 연주하도록 해주게”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래서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할 때는 그의 ‘테 데움’으로 콘서트를 닫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브루크너의 9번 교향곡은 종교적이고 평화로우며 사색적인 3악장까지만 연주해도 훌륭한 마무리를 지은 듯한 느낌이 들죠. 그래서 그의 뜻과 달리 이 곡만 연주하는 일도 많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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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오페라 주역이 갑자기 ‘펑크’ 낸다면…

    지난해 크리스마스 다음 날이었습니다. 19세기 초의 위대한 오페라 작곡가였던 벨리니의 고향, 시칠리아의 카타니아에서 식당에 들렀습니다. 갑자기 몰려든 동양인들에게 주인아저씨가 ‘어디서 왔느냐? 무슨 일로 왔느냐?’ 물었습니다. 한국에서 온 오페라 팬들이라고 했더니 그의 눈이 빛났습니다. “테너 살바토레 리치트라를 아세요?” “그럼요, 서울에서 저와 저녁도 함께 먹었는데요.” 식당 아저씨 포르투나토 씨는 내실로 들어가 스크랩북을 가져왔습니다. 2011년 오토바이 사고로 죽은 테너 리치트라의 간(肝)이 자신에게 이식되었다는 기사였습니다. 리치트라는 2002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푸치니 오페라 ‘토스카’의 남주인공 카바라도시 역을 맡을 예정이었던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감기로 공연에 나오지 못하게 되자 긴급 투입되어 공연을 대성공으로 이끌면서 깜짝 스타로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9년 뒤 고향 근처인 이곳에서 사고를 당했고, 뇌사에 빠진 그의 몸은 일곱 사람에게 새로운 삶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리치트라의 예에서 보듯 오페라 주역가수가 컨디션 이상으로 공연을 취소하면 새로운 스타에게 기회가 열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달 28일 제가 런던 로열 오페라에서 마주친 상황은 이와 달랐습니다.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 개막을 기다리고 있는데, 예정에 없이 극장 관계자가 마이크를 들고 무대 앞에 섰습니다. “여성 주역 엘리자베타 역을 맡은 소프라노 크리스틴 루이스가 몸의 이상으로 갑자기 출연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입장권은 전액 환불해 드리겠습니다. 대신 엘리자베타가 안 나오는 장면들로 90분 하이라이트 공연을 해 드리겠습니다.” 그 나름대로 일행에게는 나쁘지 않은 추억이 되었습니다. 아쉬움도 남았지만 수준 높은 공짜 공연을 즐겼고, 중간 휴식까지 4시간 반이라는 일말의 부담감도 줄였고, 남는 저녁 시간을 알차게 보냈으니까요. 저와 함께 하는 여행에서는 이 같은 예상하지 못한 일화들도 종종 마주치게 됩니다. 8월 4∼12일에는 유럽 양대 야외오페라 축제인 브레겐츠와 베로나 오페라축제를 보고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고향도 둘러보게 됩니다. 같이 가실 분?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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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기타의 제왕’ 안드레스 세고비아의 연주

    세고비아라는 이름을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기타와 관련된 이름’이란 느낌은 받으실 겁니다. 우리나라에도 기타 상표 ‘세고비아’가 있으니까요. 학생 시절 이 브랜드의 기타를 가진 친구에게 “값이 세 곱이냐”고 물어보았던 기억이 납니다. 아저씨가 되기도 전에 시쳇말로 ‘아재력’(썰렁한 농담을 쏟아내는 능력)을 자랑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기타 팬들은 잘 아시겠지만 안드레스 세고비아(1893∼1987·사진)는 오늘날의 기타 음악과 뗄 수 없는 이름입니다. 단지 한 사람의 기타리스트를 넘어 기타라는 악기의 위상을 바꾸어 놓은 인물로 꼽히죠. 기타를 스페인의 민속악기 정도로 치부하던 사람들도 세고비아의 리사이틀을 본 뒤에는 이 악기가 넓은 표현력과 진지함, 깊이를 가진 정통 클래식 악기로 손색이 없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기타의 역사에서 저수지와 같은 인물이기도 했습니다. 스승이 없이 독학으로 기타를 마스터했지만 선대의 작곡가 소르와 타레가의 음악을 깊이 있게 해석해서 후대에 물려주었습니다. 젊은 세고비아의 연주에 탄복한 타레가가 제자로 삼겠다고 했지만, 갑자기 그가 세상을 떠나 실제로 사제 관계를 맺지는 못했죠. 이후 연주가로 성공한 세고비아는 줄리언 브림, 크리스토퍼 파크닝, 존 윌리엄스 같은 20세기 기타의 대가들을 제자로 키워냈습니다. ‘아란후에스 협주곡’을 쓴 작곡가 호아킨 로드리고는 그를 위해 ‘어느 귀인을 위한 환상곡’을 작곡했고, 이탈리아의 마리오 카스텔누오보테데스코, 브라질의 에이토르 빌라로부스도 그에게 작품을 헌정했습니다. 사람들이 스페인 민속 기타의 화려한 기교를 보여 달라고 요청해도 거절하고 한층 진지한 작품 연주에만 몰두한 세고비아였지만 그가 전통에만 얽매인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나일론 현이 짐승 창자를 꼬아 만든 기존의 기타 현을 대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그는 새로운 기타줄의 장점을 앞장서 전파했고, 기타는 예전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면서 표현력이 넓은 악기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다가오는 6월 2일은 기타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영원히 기억될 안드레스 세고비아가 세상을 떠난 지 30년 되는 날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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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요하게 시작해 찬란하게 마무리… 관현악으로 듣는 해돋이

    며칠 동안 아침 햇살이 무척 밝았습니다. 예전에 쓴 글들을 찾아보니 매년 이맘때가 되면 아침마다 햇살에 마음이 설렜던 모양입니다. 지난 주말에는 일찍 눈을 떠서 가족들이 깨지 않도록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었습니다. 가장 먼저 집어든 음반은 라벨(사진)의 발레음악 ‘다프니스와 클로에’(1912년)에 나오는 해돋이 장면이었습니다. 고요하게 곡이 시작되고 가만가만 움직이는 현악을 배경으로 플루트가 잔잔한 물의 흐름 같은 분산화음을 연주합니다. 새벽, 연인을 해적들에게 빼앗긴 양치기 다프니스가 님프의 동굴 앞에서 실신해 잠들어 있습니다. 아침 안개가 점차 걷히고, 피콜로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목동의 피리 소리를 묘사합니다. 천천히 미동하던 현의 움직임은 점차 빨라지고, 마침내 전체 관현악의 찬란한 합주가 지평선 위로 떠올라 만물을 비추는 태양의 축복을 나타냅니다. 이 곡이 나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는 오케스트라의 기능이 복잡해지고 음악에서도 눈으로 보는 듯한 세밀한 묘사, 즉 ‘회화성’이 중요한 이슈가 되었던 시대입니다. 해돋이 같은 자연현상을 음악으로 나타낸 작곡가들도 많았죠. 폰키엘리의 오페라 ‘라 조콘다’에 나오는 ‘시간의 춤’이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에도 멋진 해돋이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푸르게 펼쳐진 봄에서 초여름, 하루를 함께 시작할 만한 해돋이 음악으로는 이 라벨의 작품만 한 것이 없게 느껴집니다. 음악감독 미코 프랑크가 지휘하는 프랑스 라디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25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내한 콘서트에서 이 발레음악에서 발췌한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을 연주합니다. 미코 프랑크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을 자주 객원 지휘해 한국 청중에게도 친숙한 인물입니다. 손열음이 협연하는 거슈윈의 피아노 협주곡 F장조와, 시벨리우스의 극(劇)음악에서 딴 ‘크리스티안 2세’ 모음곡도 연주됩니다. 라벨의 다른 모음곡인 ‘어미 거위’ 모음곡까지, 이날 모음곡만 세 곡이 선을 보입니다. 오케스트라 연주 하면 흔히 연상하는 엄숙함이나 장중함보다는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채가 앞서는 콘서트가 될 듯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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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말러 교향곡 4번의 ‘조금 이상한’ 천국 풍경

    오늘날 베토벤과 함께 전 세계 교향곡 연주회장을 장악하고 있는 구스타프 말러(사진)는 생전에 지휘자로 명성을 날렸지만 작곡가로서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건 말건 그는 2번 교향곡에서 기존 표준(2관편성) 오케스트라의 두 배 정도 규모의 오케스트라에 합창단과 독창자 두 명을 추가했고 악장 수도 5개로 늘렸습니다. 연주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나 되었습니다. 이어 3번 교향곡은 6개 악장에 연주 시간이 1시간 40분에 이르렀습니다. 이 작곡가의 ‘확대지향’은 어디까지 갈까요? 사람들은 마른침을 삼켰습니다. 그런데 그는 4번 교향곡에서 간소해진 오케스트라에 50분 정도의 길이로 ‘다이어트’를 감행했습니다. 마지막 4악장에만 여성 독창이 들어갑니다.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천상의 평화를 누리네/ (…) 성 요한이 어린 양을 보내면/가축 잡는 헤로드가 기다리고 있지/우리는 순진하고 착한 어린 양을/죽인다네/성 누가는 암소를/걱정 하나 없이 잡지 (…)’ 평화로운 정경인가요? 하지만 어딘가 이상한 느낌도 듭니다. 양과 암소가 찍소리 없이 목을 내놓는 정경을 일부러 천국적인 평화를 묘사하는 앞쪽에 내놓다니. 작곡가는 그러나 이 악장에 ‘풍자는 없다’며 비꼬는 느낌 없이 순수한 기분으로 노래하라고 주문했습니다. 이 노래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이 악장은 독일 낭만주의 문학가 아르님과 브렌타노가 1805년에 편찬한 독일 민요집 ‘아이의 이상한 뿔피리’에서 가사를 땄습니다. 옛 독일 민중의 꾸밈없는 꿈과 욕망을 반영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말러가 ‘풍자는 없다’고 말한 노래가 마냥 평화롭게 들리지만은 않습니다. ‘교향곡은 세계를, 우주를 담아야 한다’고 생각한 말러는 사람들이 꿈꾼 이상세계의 모순이나 경악스러운 점까지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25, 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는 성시연이 지휘하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이 말러 교향곡 4번을 소프라노 임선혜 협연으로 연주합니다. 이번 주 목요일인 18일은 말러가 세상을 떠나고 106년 되는 날이군요. 그는 천상에서 고기를 들며 평화를 누리고 있을까요? 짓궂게 묻고 싶어집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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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작곡자 의도 완벽 해석… ‘헌정받기의 대가’ 이자이

    19세기 후반은 음악가들에게 ‘교류의 시대’였습니다. 유럽 전역이 기차로 연결되고, 새롭게 열린 전신망과 정비된 우편망도 빠른 원거리 소통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다른 나라 도시로 연주 여행을 간 기악 연주자들이나 지휘봉을 든 작곡가들은 그 도시의 유명 음악가들을 찾아 음악관을 토론하거나 친구 되기를 청했습니다. 작곡가들은 새로 친구가 된 연주가들에게 신작을 헌정하기도 했습니다. 벨기에의 바이올리니스트 겸 작곡가 외젠 이자이(1858∼1931)는 ‘명곡 헌정받기의 역사’에서 챔피언으로 꼽을 만합니다. 인상주의 음악의 선구자로 불리는 클로드 드뷔시가 자신의 유일한 현악사중주곡을 이자이에게 헌정했고, 프랑스 국민주의 음악운동의 선구자였던 카미유 생상스도 첫 번째 현악사중주곡을 그에게 주었습니다. 작곡가 세사르 프랑크는 1886년 9월의 어느 아름다운 날 아침 이자이에게 바이올린 소나타 A장조의 악보를 불쑥 건넸습니다. 프랑크 64세, 이자이 28세 때였습니다. “뭔가요, 프랑크 선생님?” “자네에게 주는 결혼 선물일세.” 그날은 이자이의 결혼식 날이었던 것입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이었지만 이자이는 악보를 읽자마자 이 곡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결혼식 하객으로 온 친한 피아니스트와 함께 다른 하객들 앞에서 연주했습니다. 이 곡은 오늘날 세계의 바이올리니스트뿐 아니라 첼리스트, 플루티스트들까지 즐겨 연주하는 인기곡이 되었습니다. 왜 그가 유독 많은 작곡가들로부터 작품을 헌정받았을까요? 작곡가들의 의도에 맞춰 작품을 해석해 주는 유능한 바이올리니스트였기 때문이겠죠. 한편으로 이자이 자신도 수많은 바이올린 곡을 작곡해 다른 바이올리니스트에게 주었습니다. 그가 바이올린 독주를 위해 작곡한 여섯 곡의 소나타는 당대의 명바이올리니스트인 시게티, 티보, 에네스쿠, 크라이슬러, 크릭붐, 키로가의 연주 스타일에 맞춰 썼고 이들 각각에게 헌정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인 12일은 이자이가 세상을 떠난 지 86년 되는 날입니다. 그는 세상에 없지만 인터넷을 통해 그가 헌정받은 곡과 그가 헌정한 곡은 물론이고 그가 생전에 남긴 연주도 어렵지 않게 들어볼 수 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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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쿵작 쿵작 쿵작작∼” 피아노곡 ‘고양이 춤’ 들어보셨나요?

    피아노 곡 ‘고양이 춤’을 들어보셨나요? 제목이 생소할 수 있지만, 들어보셨거나 심지어 쳐보신 분도 많을 겁니다. 피아노를 정식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이 치는 ‘3대 명곡’ 중 하나라는 우스개도 있으니까요. 참고로 ‘고양이 춤’ 외 ‘젓가락행진곡’ ‘마음과 영혼(Heart and Soul)’이 이 세 곡에 속합니다. 저도 피아노를 배우기 전 누나 친구 집에 갔다가 ‘따라해 봐’라는 강요(?)로 ‘고양이 춤’을 재미있게 쳐본 기억이 납니다. 왼손 오른손이 모두 검은 건반만 누르면서 ‘쿵작 쿵작 쿵작작’ 하는 흥겨운 리듬을 수놓는 곡입니다. 이 곡은 전 세계에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로는 ‘벼룩 왈츠(Flea Waltz)’라고 합니다. 과거 독일에서 나온 악보에 작곡자가 ‘F. Loh’라고 나와 있었는데, 이는 실제 작곡자의 이름이 아니라 벼룩(Floh)이라는 말로 장난을 친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벼룩 왈츠’라고 부르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언제 누가 실제 이 곡을 만들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영어나 독일어 제목과 달리 ‘왈츠’도 아닙니다. 4분의 2박자이니 ‘폴카’에 가깝죠. 이런 쉬운 곡도 콘서트 연주곡이 될까요? 6일 경기 성남 티엘아트센터에서 열리는 피아니스트 박종훈의 ‘박종훈의 클래식데이트3―성남’에서 이 곡이 연주됩니다. 물론 누구나 치는 악보 그대로의 연주가 아니라 연주자가 자신의 색깔을 더해 편곡한 작품입니다. 피아니스트 박종훈 씨는 기존의 명곡 외에 자신이 직접 작곡한 친근한 소품들도 연주회에서 선을 보이면서 팬을 넓혀 왔습니다. 이날도 자작곡 ‘점프’ ‘잠자리’ ‘안녕 봄(Hello Spring)’ 등을 함께 무대에 올립니다. 첫 곡으로는 쇼팽의 왈츠 작품 64-1 일명 ‘강아지 왈츠’를 연주하니 강아지와 고양이가 함께 무대에 소개되는 셈입니다. 연주회 후반부에는 동요 메들리와 영화음악 메들리도 연주한다고 하니 온 가족이 가벼운 마음으로 찾을 수 있는 콘서트가 될 듯합니다. 마침 연주회 다음 날이 일요일이군요. 피아노가 있는 집이라면 온 가족이 한 번씩 ‘고양이 춤’의 쉬운 원곡을 치면서 ‘나도 피아니스트’라고 자부해 보면 어떨까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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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부활절이면 떠오르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

    올해 부활절은 지난 16일이었죠. ‘춘분이 지난 첫 음력 보름달 직후의 일요일’이라는 복잡한 규정 때문에 매년 날짜가 다르지만, 대체로 부활절은 꽃이 처음 피는 아름다운 계절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부활절이면 기억나는 오페라도 있습니다.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입니다. 지난겨울, 이 오페라의 무대인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의 햇살이 쏟아지는 들판을 차로 달리며 이 오페라를 들었습니다. 지난 주말 서울에서 맛본 환한 햇빛보다 1.5배쯤 강렬한 햇살이었습니다. 오페라 시작부터 고요한 멜로디가 깔리다가는 느닷없이 모든 악기가 강한 포르테(최강주)를 쏟아내다가 잠잠해지기를 거듭했습니다. 운전자 옆에서 볼륨을 올렸다 내리기를 반복해야 했습니다. “왜 이렇게 조용했다 시끄러웠다 하죠?” 동행인이 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고요함과 광폭함의 선명한 대비는 이 오페라의 특징이자 힘입니다. 마치 시칠리아의 찬란한 태양과 그늘의 대비와도 같게 느껴집니다. 줄거리는 어디선가 들어본 이야기 같습니다. 뜨겁게 사랑하던 두 사람. 남자가 군대에 가자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버린 여자. 남자에게는 새 여인이 생겼지만 제대 뒤 다시 가까워진 옛 연인들. 쌓여가는 질투. 갈등과 절규의 사이사이 부활절을 상징하는 경건하고도 평화로운 멜로디들이 가슴을 헤집습니다. “왜 하필 부활절일까요?” 다시 질문이 들어옵니다. 잔인함과 거룩함의 선연한 대비를 주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유럽 시골에 사람들이 가득 모이는 곳이 부활절 교회 앞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죠. 한 마을 사람들은 다 가족으로 여기는 친밀한 전통사회가 배경이기에 마지막의 살인극은 더욱 충격적입니다. 무대 위에 직접 그려지지는 않지만. 솔오페라단이 다음 달 26∼28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와 레온카발로의 ‘팔리아치’를 무대에 올립니다. 둘 다 짧은 오페라이고 작곡 시대도 비슷하며 줄거리에도 공통점이 있어 자주 함께 공연되는 작품들입니다. 한 달 앞서 이달 27일 성남아트센터 콘서트홀에서는 ‘금난새의 오페라이야기―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가 성남시립교향악단과 성악가들이 참여하는 해설음악회 형식으로 공연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 2017-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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