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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3일. 많은 사람들이 불운을 연상하는 날짜죠. 13일의 금요일은 아닙니다만, ‘쫄깃 클래식감’ 코너는 화요일에 실리기 때문에 금요일만 기다렸다가는 13일의 금요일 얘기는 쓸 수 없죠. 그래서 오늘 그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13일의 금요일 얘기가 문헌에 처음 나오는 것은 1869년 영국의 헨리 에드워즈 서덜랜드가 쓴 작곡가 조아키노 로시니(1792∼1868·사진)의 전기로 알려졌습니다. 서덜랜드는 ‘로시니는 늘 금요일을 불운한 요일이라고 생각했고 13이라는 숫자도 불운하다며 피했다. 그러므로 그가 13일의 금요일에 죽은 일은 예사롭지 않다’고 책에 적었습니다. 이 책 때문에 사람들이 13일의 금요일을 피하기 시작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다른 기원을 찾기 힘든 것도 사실입니다. 죽은 날만큼이나 로시니의 생일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이달 2월은 그가 태어나고 226년 되는 달이지만, 이달에 그가 태어난 날은 없습니다. 고개를 갸웃하시겠죠. 그가 태어난 날은 윤년인 1792년의 2월 29일이었습니다. 로시니는 아직 생일을 60차례도 지내지 않은 셈입니다. 후년인 2020년 2월 29일에야 그의 ‘다음 번’ 생일이 돌아옵니다. ‘세비야의 이발사’를 비롯해 유쾌한 오페라를 여럿 작곡한 로시니답게 생일부터 유머 코드를 담은 것 같습니다. 생일과 서거일 얘기로 얘기를 풀어보았지만 로시니는 그 외에도 흥미로운 점이 많은 작곡가입니다. 전성기 그의 인기는 빈 시민들이 베토벤까지 잊게 만들 정도여서, 실망한 베토벤이 9번 교향곡 ‘합창’을 연고가 없는 베를린에서 초연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로시니는 음악사상 가장 부유한 작곡가 중 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37세 때 ‘기욤 텔(윌리엄 텔)’을 발표한 뒤 남은 37년은 수입을 위한 작곡을 하지 않고 놀다시피 여유롭게 보냈습니다. 만년은 주로 파리에서 지냈는데, 맛집 탐구에도 정열을 불태워 오늘날에도 파리의 몇몇 식당에 ‘로시니 메뉴’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올해는 로시니가 세상을 떠난 지 150년 되는 해입니다. 서거일인 11월 13일을 전후해 그의 고향인 이탈리아 페사로를 비롯해 세계 곳곳에서 기념 콘서트가 열릴 예정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이탈리아의 관현악 거장 오토리노 레스피기(1879∼1936·사진)는 ‘소리로 로마를 그려낸 풍경화가’로 불립니다. 교향시 3부작 ‘로마의 분수’ ‘로마의 소나무’ ‘로마의 축제’ 덕분이죠. 로마의 경치와 문화유산을 담아낸 곡들을 듣고 있으면 ‘영원의 도시’ 로마가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것 같습니다. 1924년 발표한 ‘로마의 소나무’ 첫 번째 악장은 ‘빌라 보르게세의 소나무’입니다. 로마 중심가에서 북쪽에 있는 ‘빌라 보르게세 공원’에서 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각자 뛰어노는 듯 소란스러운 음향이 이어지더니, 이내 술래잡기라도 하는 듯 천진한 멜로디가 따라옵니다. ‘도 미파 솔 라 솔 미파 솔 라 솔….’ 이 선율을 알고 있던 중 레스피기의 모음곡 ‘새’(1928년)를 처음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첫 악장 ‘전주곡’ 첫 부분에 똑같은 멜로디가 나왔기 때문입니다. A장조로 음높이도 같습니다. ‘로마의 소나무’에서는 얼핏 들렸다가 이내 사라지는 선율이지만, ‘새’에서는 작품 시작부터 당당하게 행진곡처럼 울려 퍼집니다. 왜 레스피기는 두 작품에 똑같은 선율을 썼을까요? 사실 이 멜로디는 레스피기가 지은 것이 아니라 두 세기 앞선 작곡가 베르나르도 파스퀴니(1637∼1710)의 ‘두 아리아’라는 작품에 나오는 선율입니다. 레스피기는 옛 악보를 깊이 연구하는 음악문헌학자이기도 했습니다. 옛날 작곡가들이 쓴 선율을 편곡해 자신의 작품 속에 집어넣기를 즐겼죠. 물론 원작곡자는 분명히 밝혔습니다. ‘새’ 모음곡도 이탈리아와 프랑스 바로크 작곡가들의 선율을 편곡해서 뻐꾸기, 나이팅게일, 비둘기의 울음소리로 묘사해낸 작품입니다. 다만 먼저 발표한 ‘로마의 소나무’에서는 이 선율이 파스퀴니 작품의 인용이라는 점을 악보에 표시하지 않았습니다. ‘알아들을 사람은 알아들어라. 이 오래된 선율을 통해 로마의 오랜 역사를 상기시키고 싶었다’라는 생각이었을 듯합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이달 9, 1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티에리 피셔 지휘로 열리는 ‘티에리 피셔와 르노 카퓌송, 꿈’ 콘서트에서 ‘로마의 소나무’ 1, 4악장을 연주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말괄량이 길들이기 서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 음악 애호가들 대부분은 들어보지 못한 곡목일 것입니다. 그래도 유쾌하고 발랄한 멜로디가 펼쳐질 것 같지 않습니까. 네덜란드 작곡가 요한 바헤나르(1862∼1941)의 관현악 작품 제목들입니다. 아시다시피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성격이 대조적인 자매의 결혼 이야기를 다룬 셰익스피어의 희극이고,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는 코가 크다는 콤플렉스 탓에 사랑에 어려움을 겪었던 17세기 프랑스 작가죠. 바헤나르가 살았던 시대는 후기 낭만주의 음악의 절정기였고 오케스트라로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치던 시기였습니다. 오스트리아의 교향곡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 독일의 관현악과 오페라 거장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핀란드의 잔 시벨리우스, 이탈리아의 오페라 대가 자코모 푸치니가 이 시기를 대표했죠. 이때 상대적으로 위축되어 보였던 네덜란드 작곡계를 대표한 인물이 바헤나르였습니다. 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음악계에 입문해 나중에는 헤이그 왕립음악원 원장으로 제자들을 길러냈습니다. 그의 이름이 오늘날 자주 거론되지 않는 데는 작품에 뚜렷한 개성이 부족하다는 점이 큰 이유로 꼽힙니다. 바헤나르는 독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쓴 교향시들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슈트라우스는 바헤나르보다 두 살 아래였지만, 10대 시절부터 유럽을 대표하는 작곡 신동으로 영향력을 떨쳤습니다. 바헤나르의 서곡들을 처음 듣는 음악 팬들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초기 작품인가?’라며 고개를 갸웃거리기 일쑤입니다. 휘황하게 흐르는 현악, 조를 바꾸어 가며 헤매듯 흐르는 선율선이 영락없이 슈트라우스를 연상시킵니다. 그래도 이 곡들의 도취적인 매력은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서울시립교향악단이 2월 1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안토니 헤르뮈스 지휘로 ‘말괄량이 길들이기’ 서곡을 연주합니다. 2013년 경기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로테르담 필하모닉 연주회에서 야니크 네제세갱이 지휘한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서곡을 재미있게 들은 음악 팬이라면 이번 연주곡들에도 기대를 거실 만할 듯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올겨울은 북미와 유럽에서 폭설 소식이 유독 많은 듯합니다. 서울에서도 다른 해에 비해 잦은 눈발을 봅니다. 어릴 때는 눈이 오면 무조건 즐거웠지만, 어른이 되니 눈발을 보면서 출퇴근 걱정도 하고 눈을 치우는 사람들의 노고도 생각하게 됩니다. 피아노 소리의 명징함이 찬 느낌하고도 통하기 때문일까요. 겨울을 묘사한 음악 중에는 피아노곡이 많은 편입니다. 겨울과 관련된 피아노 연습곡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음악도 있습니다. 쇼팽의 연습곡 작품 25 중 열한 번째 곡인 이른바 ‘겨울바람’입니다. 음울하고 느릿한 시작 부분에 이어, 느닷없이 높은 음에서부터 쏟아져 내리는 듯한 빠른 선율이 그야말로 매서운 겨울바람을 연상하게 합니다. ‘피아노의 시인’으로 불린 쇼팽에게 ‘겨울바람’이 있다면, 같은 시대 ‘피아노의 귀신’으로 불린 리스트에게는 ‘눈 치우기’가 있습니다. 그의 ‘초절기교 연습곡’ 열두 곡 중 마지막 곡인 ‘눈 치우기(Chasse-neige)’입니다. ‘눈 치우기’라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시나요? 어린 시절, 눈이 약간 잦았을 때 삽이나 넉가래로 눈을 밀어내시던 아버지가 떠오르시나요? 또는 플라스틱 빗자루를 쓸며 아파트 출입구로 길을 내는 경비 아저씨들이 떠오르시나요? 그런데 리스트가 묘사한 ‘눈 치우기’는 ‘폭설에 대항하기’에 가깝습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왔던 황제가 듣는다면 분명 ‘음표가 너무 많아’라고 얘기했을 겁니다. 손을 털어내듯이 여러 음을 번갈아 짚는 트레몰로 주법은 하늘에서 걷잡을 수 없이 속수무책으로 떨어지는 눈 폭탄을 연상하게 합니다. 남자들이라면 군대 시절 경험한 눈 치우기의 고난이 떠오를 법도 합니다. 올해도 벌써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군요. 남은 겨울에도 눈이 인간에게 주는 ‘고난’은 가급적 피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직 눈이 주는 따뜻한 느낌만 남기는 겨울이 되었으면 싶습니다. 서울 금호아트홀에서 28일 열리는 피아니스트 왕혜인의 ‘피아노 인 컬러스 3, 화이트 온 화이트’에서 첫 곡으로 리스트의 ‘눈 치우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880년대 이탈리아 오페라계는 위기감에 빠졌습니다. 이탈리아 오페라의 아이콘인 주세페 베르디가 나이 들어 신작을 뜸하게 내놓는 동안 프랑스를 비롯한 외국 오페라가 인기를 끌면서 오페라 공연 작품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이탈리아 오페라 신인을 발굴하고자 ‘오페라 작곡 콩쿠르’가 열렸고 마스카니의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1890년) 같은 야심작을 탄생시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이탈리아 오페라의 다음 제왕 자리는 1893년부터 ‘라보엠’ ‘토스카’ ‘나비부인’의 3연타석 홈런을 기록한 자코모 푸치니에게 돌아갔습니다. 그 사이의 공백을 메운 프랑스제 ‘수입’ 오페라들은 무엇이었을까요? 구노의 ‘파우스트’, 마스네의 ‘베르터’ 같은 작품들이었습니다. 마스네보다 한 세대 선배였던 샤를 구노(1818∼1893·사진)는 경건한 가톨릭 신자였고, 오페라 외에 수많은 교회음악도 썼습니다. 그는 한국과도 묘한 인연이 있습니다. 가톨릭 선교단체 ‘파리 외방전도회’의 사제들과 친했던 구노는 이 신부들의 해외 파견을 축복하는 성가를 썼고, 1839년 한국에서 일어난 ‘기해박해’로 프랑스 신부 세 명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뒤엔 이들의 순교를 기리는 성가를 쓰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이 곡이 구노의 ‘아베마리아’라고 설명하는 글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만, 실제로는 ‘아베마리아’와 다른 곡입니다. 올해는 1818년 6월 17일 파리에서 태어난 구노의 탄생 200주년입니다. 그의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 등은 국내에서도 종종 공연되는 작품들이지만, 올해에도 무대에 올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19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리는 세종문화회관과 서울시향의 ‘2018년 신년음악회’에서는 테너 강요셉이 구노의 ‘로미오와 줄리엣’ 중 ‘아 태양이여, 솟아올라라’를 노래합니다. 3년마다 돌아오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성악부문 경연에서 젊은 테너들이 경연곡으로 자주 선택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와 함께, 새롭게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환한 한 해를 거듭 기원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2년 전의 1월 12일, 검색엔진 ‘구글’을 열었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구글 로고가 동화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서 왕자가 잠자는 공주를 찾아오는 장면의 그림으로 바뀌어 있었거든요. “차이콥스키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초연된 날인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그림은 동화 ‘신데렐라’의 호박마차로 바뀌었습니다. ‘아 그렇군.’ 그때야 감이 왔습니다. 그날은 프랑스 동화작가 샤를 페로(1628∼1703·사진)의 생일이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은 그의 390번째 생일이군요. 페로가 직접 줄거리를 지은 동화는 많지 않다고 합니다. 민중 사이에서 전래되어 온 구전동화를 수집한 뒤 프랑스 옛 도시나 성, 자연 배경을 섞어 생생한 묘사를 더한 점이 사랑을 받았죠. 그런 페로의 동화는 21세기에도 동화책과 애니메이션, 게임 소재로 사랑받고 있을 뿐 아니라 시대를 넘어선 음악작품 소재로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차이콥스키의 발레 ‘잠자는 숲속의 미녀(원 제목은 잠자는 미녀)’, 로시니의 오페라 ‘체네렌톨라(신데렐라)’, 버르토크의 오페라 ‘푸른 수염의 성’ 등이 페로의 동화에서 소재를 가져온 인기곡입니다. 라벨의 피아노모음곡 ‘어미 거위’도 페로 동화집 부제목에서 제목을 가져왔죠. ‘빨간 모자’나 ‘장화 신은 고양이’는 없느냐고 물을 수도 있겠죠? 어린 시절 친숙했던 이 친구들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에 조연으로 등장합니다. 오늘날까지 페로의 이름을 기억하게 만드는 동화 정리 작업은 한편으로 ‘노익장’의 산물이기도 합니다. 루이 14세 때 재상 콜베르의 비서였던 그는 상관이 죽자 67세 때 은퇴 생활로 들어갑니다. 노년의 소일거리 겸 후손들에게 재밋거리를 주고자 동화를 정리하기 시작했는데 이 일이 오늘까지 그의 명성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페로의 작업은 동화에 대한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 19세기 초 독일 그림 형제의 동화 정리에도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 새해, ‘또 한 살 먹었어’라고 한숨만 쉴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주변에 나눠줄 수 있는 지혜는 늘어난다는 사실을 상기하게 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862년, 러시아 역사상 첫 음악원이 당시 수도였던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문을 열었습니다. 3년 뒤 열린 첫 졸업식에서 최고상을 받은 학생은 법무 공무원으로 일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 사표를 낸 남자로, 동급생들에 비해 나이가 약간 많은 24세였습니다. 음악원장의 동생이 모스크바에도 음악원을 열자 그는 새 학교의 교수로 임용되어 모스크바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콥스키(사진)의 모스크바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연고가 없던 모스크바에서의 생활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차이콥스키는 니콜라이 루빈시테인 원장 집에 방 하나를 빌려 살기 시작했습니다. 큰 방을 얇은 판자로 막은 공간이어서 옆방 루빈시테인 원장이 기침하는 소리까지 들렸다고 합니다. 원장은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차이콥스키는 타고난 소심함 때문에 숨을 죽이며 이곳에서 첫 번째 교향곡을 악보 위에 사각사각 써 나갔습니다. 교향곡 1번 G단조 ‘겨울날의 환상’(1866년)이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이 곡을 ‘차이콥스키의 재능이 충분히 발휘된 명곡’이라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주제 선율의 전개에 미숙함이 보인다거나, 장황한 부분이 있다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세상에 새로 나온 작곡가의 가슴 설레는 풋풋함이 있습니다. ‘겨울 여행의 몽상’이라는 제목이 있는 1악장, ‘음산한 땅, 안개의 땅’이라는 제목으로 구슬픈 서정을 노래하는 2악장, 훗날 차이콥스키의 발레곡을 연상하게 하는 3악장, 밝고 역동적인 희망을 노래하는 듯한 4악장 모두 처음 듣는 사람도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1악장은 장난감들의 전쟁이라는 특이한 소재를 다룬 영화 ‘토이즈’ 시작 부분에 쓰여 세계 영화팬들의 귀를 사로잡기도 했습니다. 새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나간 일은 ‘리셋’할 수 없는 게 인생이지만 지난 실수를 교훈 삼아 밝은 미래를 설계할 수는 있겠습니다. 모든 이에게 세상이 ‘안녕? 올해는 처음이지?’라고 인사하는 듯합니다. 새로운 희망과 함께하는 계절에 풋풋한 차이콥스키의 첫 교향곡을 들으며 새로운 계획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유명 지휘자들이 매년 번갈아 지휘대에 오르는 빈 신년음악회가 새해 2018년에는 이탈리아의 거장 리카르도 무티 지휘로 열린다고 합니다. 무티에게는 1993년 처음 이 콘서트를 지휘한 이후 다섯 번째 자리입니다. 올해도 슈트라우스 집안 작곡가들을 비롯한 빈 왈츠와 폴카들로 콘서트가 채워질 것입니다. ‘슈트라우스 집안’이라고 했지만 ‘왈츠의 아버지’ 요한 슈트라우스 1세에게는 아들 셋이 있었습니다. 장남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자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음악 수업을 계속하자 아버지 슈트라우스는 집을 나가 새 살림을 차렸습니다. 결국 둘째 아들인 요제프 슈트라우스,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사진)도 왈츠와 폴카의 작곡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요제프가 1870년 세상을 떠난 뒤 이 ‘음악 명가’의 명성은 위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막내 에두아르트를 깔보았던 지휘자 겸 작곡가 카를 미하엘 치러는 ‘구(舊) 에두아르트 슈트라우스 오케스트라’라는 유령악단을 만들어 인기를 얻기까지 했습니다. 에두아르트는 소송을 걸어 치러가 ‘슈트라우스’라는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지만, 이미 치러의 인기는 슈트라우스 가문의 인기를 뛰어넘고 있었습니다. 1899년, 맏형인 요한 슈트라우스 2세도 세상을 떠나자 실의에 잠긴 에두아르트는 2년 뒤 자신의 악단을 해산하고 은퇴해 버렸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1916년이 저물어가던 12월 28일, 그는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눈을 감았습니다. 전쟁에 진 오스트리아는 한동안 빈 왈츠의 영광을 돌아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슈트라우스 가문의 라이벌이었던 치러도 1922년 가난 속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오늘날 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빈 신년음악회에서는 요한 슈트라우스 1세, 2세의 왈츠나 폴카 외에도 에두아르트나 치러의 작품이 연주되곤 합니다. 구스타보 두다멜이 지휘한 올해(2017년) 음악회에서는 에두아르트의 ‘즐거운 폴카’, 치러의 오페레타 ‘보석명장’ 삽입곡 등이 연주되었지만, 미리 공개된 2018년 신년음악회 프로그램에서는 이 두 사람의 작품을 찾을 수 없어 아쉬움도 듭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935년 이탈리아 북부 도시 모데나. 이발사의 아내 잔나는 딸을 낳은 뒤 생활비가 부족하자 동네 담배공장에 취직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총통(두체)이었던 무솔리니는 ‘사회 효율화’를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전속 유모를 두도록 했습니다. 잔나의 딸 미렐라도 엄마 젖과 함께 담배공장 소속 유모의 젖을 먹고 뽀얗게 커나갔습니다. 몇 달 뒤 이 공장에서 잔나의 단짝이던 아델레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델레의 아들 루치아노도 같은 유모의 젖을 먹고 부쩍부쩍 자랐습니다. 신기한 일이죠. 이 유모의 젖을 먹은 두 아이가 세계적인 성악가가 된 것은. 잔나의 딸은 소프라노 미렐라 프레니, 아델레의 아들은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였습니다. 둘은 어려서도 친구였고, 자라서는 전 세계의 수많은 오페라 극장과 녹음 스튜디오에서 호흡을 맞추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누가 그 젖을 다 차지했을지!” 훗날 프레니는 깔깔거리며 얘기하곤 했습니다. 파바로티의 체구가 유독 큰 것을 빗댄 농담이었습니다. 하지만 프레니가 2월생으로 누나였고 파바로티는 10월생이었으니 파바로티 때문에 프레니가 쫄쫄 굶는 일은 없었을 것 같습니다. 연말을 맞아 우리나라 곳곳에서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 공연이 열리고 있습니다. 파바로티는 시대를 대표하는 ‘라보엠’ 테너 주연 로돌포였고, 프레니는 시대를 대표하는 소프라노 주연 미미였죠. 최근 이 코너에서 ‘푸치니가 라보엠에 자기 고향의 모습을 집어넣었다’고 소개하기도 했지만, 모데나 한 동네 출신의 명테너와 소프라노가 호흡을 맞춘 카라얀 지휘의 ‘라보엠’ 전곡판을 들어보며 그들의 환상적인 목소리에 심취해 보아도 좋을 듯합니다. 올해는 파바로티가 2007년 9월 6일 세상을 떠나고 10년이 된 해이기도 합니다. 프레니는 만 70세가 된 2005년 오페라 무대에서 내려왔지만 건강하다고 합니다. 오늘 (19일) 부산 금정문화회관에서는 테너 하만택, 이동명, 지명훈 씨 등이 출연하는 ‘리멤버,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기리다’ 콘서트가 열립니다. 앞서 11월 17, 18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도 소프라노 신영옥, 안젤라 게오르기우 등이 출연하는 ‘파바로티 추모 기념콘서트’가 열린 바 있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남녀 몇 쌍이 보이다 사라지곤 한다. 구름이 걷히면, 춤추는 사람들로 가득 찬 넓은 홀이 나타난다. 차츰 밝아지며, 샹들리에가 일제히 켜진다. 1855년경, 어느 궁전의 모습이다.”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사진)이 쓴 피아노곡 ‘라 발스’ 악보에 적혀 있는 작품의 묘사입니다. ‘라 발스’는 프랑스어로 왈츠라는 뜻입니다. 라벨은 왈츠를 사랑했고, 특히 그 본고장인 오스트리아 수도 빈의 왈츠를 자기 식으로 표현해보고 싶었습니다. 그가 이런 생각을 처음 가진 것은 1906년이었지만 작업은 미뤄졌고 14년이 지나 1920년 오늘, 12월 12일에야 처음으로 이 작품이 연주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나요? 두어 세대 전 다른 나라의 모습을 묘사했다고 하지만, 왜 ‘소용돌이치는 구름’ 사이로 왈츠를 추는 사람들이 보일까요? 뭔가 초월적인, 현실과 벗어난 것을 표현하려 했기 때문일까요? 음악도 딱 그 묘사와 같습니다. 조용히 시작되는 첫 부분은 모호하고도 희미해서 왈츠인지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어렵습니다. 결국 ‘구름이 걷힘’을 표현하듯이 솟아오르는 듯한 힘찬 왈츠가 변주되고, 결국 쿵쾅대며 넘어지듯이 소란스럽고도 갑작스럽게 작품은 끝을 맺습니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환상적이면서도 기괴한 분위기의 작품을 썼을까요, 그것도 우아하기 이를 데 없는 빈 왈츠를 모방했다면서? 라벨이 처음 이 작품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때는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이른바 ‘벨 에포크(아름다운 시대)’의 절정기였습니다. 그러나 1914년 전쟁이 발발하면서 유럽은 파국을 맞았고, 전쟁 전과 같은 우아한 시대는 사라졌습니다.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을 때 세상은 효율과 기능을 강조하는 강철과 석유냄새의 ‘현대’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이런 시대에 라벨은 이미 지나가고 없는, 돌아가고 싶지만 허깨비같이 사라진 옛날을 묘사하고 싶었던 듯합니다. 올해 밴 클라이번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피아니스트 선우예권이 15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20일 서울 예술의전당 IBK홀에서 열리는 피아노 리사이틀에서 이 라벨의 ‘라 발스’를 프로그램 마지막 곡으로 연주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가 마지막 길을 가던 장면을 기억하시는지요. 매서운 바람과 눈발이 휘날리던 날, 1791년 12월 5일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시신이 관도 없이 차가운 구덩이에 떨어지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죠. 오늘이 그가 세상을 떠나고 22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그런데 영화가 보여주지 않는 장면이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부인 콘스탄체는 그 뒤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차르트의 전기에 흔히 묘사되는 얘기가 콘스탄체는 낭비벽이 심하고 판단력이 흐려 남편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영화 ‘아마데우스’에 묘사된 경박한 콘스탄체도 이런 평가에 바탕을 둔 모습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모차르트 사후 그의 모습을 살펴보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콘스탄체는 죽은 남편의 곡들로 콘서트를 열어 모차르트 생전보다도 나은 수입을 거뒀고, 남편의 악보를 정리해 출판했고 두 아들을 프라하에 보내 좋은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모차르트가 죽고 6년 뒤, 콘스탄체는 덴마크 외교관인 니센을 만나 11년 뒤 결혼했습니다. 니센은 온화하고 진지한 신사였다고 합니다. 그는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모차르트의 생애를 전기로 정리했고, 아내와 함께 모차르트의 고향 잘츠부르크로 이사해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 ‘그로브 음악사전’은 콘스탄체에 대해 “지성과 음악적 이해가 없으며 게으른 아내였다는 평가는 모든 면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썼습니다. 모차르트의 무덤이 오늘날 남아 있지 않다는 점에서 콘스탄체의 무심함을 지적하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 구의 시신을 함께 매장하는 것은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에서 전염병이 유행할 때 흔히 행해지던 관습이었습니다. 모차르트의 두 아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큰아들은 공무원, 작은아들 크사버는 아버지를 따라 음악가가 되었고 당대에 제법 명성도 누렸습니다. 두 사람 모두 아이를 남기지 않아서 모차르트의 후손은 아들 대에서 끊어졌습니다. 콘스탄체와 니센 사이에 아이는 없었습니다. 정리하면, 아이들을 잘 키웠고 금전 감각도 있었으며 모차르트에 대한 기억도 잘 정리했던 콘스탄체에 대해 ‘경박하다’ ‘생각없다’는 누명은 이제 거두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푸치니 오페라 ‘라보엠’을 보다 보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일이 있습니다. 2막,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파리의 카페를 찾은 주인공들이 길옆의 바깥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습니다. 파리도 크리스마스이브엔 춥기 때문에 굳이 밖에 앉을 이유는 없습니다. 밖에 앉는다는 설정이 무대 구성을 위해 자연스럽기는 합니다. 2막에서는 카페에 앉은 주인공들뿐 아니라 길을 다니는 장난감 장수, 군악대 행진 등에도 눈길이 가기 때문이죠. 주인공들과 길거리의 군중이 ‘같은’ 실외에 드러나는 쪽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주인공들이 카페 건물 내부에 앉도록 무대를 배치하는 것이 특별히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푸치니 전기 작가들은 이 장면이 사실은 ‘상상의 파리’일 뿐이라고 얘기합니다. 푸치니의 고향인 이탈리아의 루카는 12월 말에도 기온이 온화했고, 크리스마스이브에는 사람들이 원형광장의 카페에 앉아 있곤 했다는 겁니다. 3막에 나오는 ‘호플라’라는 합창도 루카가 있는 토스카나주 사람들만 쓰는 말이라고 합니다. 푸치니는 ‘라보엠’을 쓰면서 집 근처 호수 주변의 오두막을 사들이고는 ‘클럽 라보엠’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는 여기에 피아노 한 대를 놓고 작곡을 계속했고, 동네 사냥꾼과 화가들이 밤마다 모여 옆에서 카드놀이를 하도록 했습니다. ‘정숙 금지, 합법적 도박 금지’라는 ‘클럽훈(訓)’도 걸었습니다. 오페라 대본에 나오는 친구들의 시끌벅적한 분위기가 작품에 배어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클럽 라보엠’ 회원이었던 동네 화가 판니는 훗날 ‘라보엠’이 완성되던 날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푸치니가 작곡이 끝났으니 들어 보라고 말했다. ‘클럽 라보엠’ 안은 조용해졌다. 마지막 화음을 연주한 뒤 푸치니는 ‘가엾은 미미는 이렇게 죽었다’고 말하며 건반 앞에 얼굴을 파묻었다. 다시 일어난 그의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12월이면 특히 사랑을 받는 ‘라보엠’을 국립오페라단이 12월 7∼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합니다. 여주인공 미미 역에 소프라노 윤정난 홍주영, 남주인공 로돌포 역에 테너 허영훈 김경호 씨 등이 출연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음악 방송을 듣다가 ‘베토벤 교향곡 5번 C단조 들려드리겠습니다’ 하는 아나운서의 말에 ‘번호는 알겠는데 C단조는 뭐지…’ 할 때가 있죠. 우리가 노래를 부를 때 자기 목소리에 맞게 음높이를 올리거나 내려 부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클래식 작품은 작곡가가 음높이를 정해 놓습니다. 해당 작품이 장조이고 계이름 ‘도’가 ‘C’음에 올 경우 이 작품은 ‘C장조’가 됩니다. 만약 작곡가가 작곡 도중 마음이 변해 한 음을 높여 다시 쓴다면 이 작품은 ‘D장조’가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조마다 각각의 ‘색깔’ 또는 ‘성격’이 있다고 말합니다. 20세기 초 프랑스 음악학자인 알베르 라비냐크(사진)는 ‘C장조는 단순, 소박, 단조로움’, ‘F장조는 목가적’이라는 등 모든 장단조가 특별한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 설명했죠. 하지만 이런 해석에는 의구심도 듭니다. 브람스의 교향곡 4번,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9번 ‘신세계에서’는 모두 같은 E단조입니다. 하지만 세 작품의 분위기에는 공통점이 없습니다. 첫 번째 곡은 찬 바람이 불어오는 늦가을처럼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두 번째 곡은 울적하면서 외로운 느낌, 세 번째 곡은 낯선 곳을 휘휘 둘러보는 느낌이랄까요. 더군다나, 음높이 자체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습니다.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 조금씩 높아졌다고 보아도 되겠습니다. 오늘날의 C음은 모차르트 시대에 비해 반음 높다고 보면 거의 정확합니다. 그렇다면 모차르트의 교향곡 41번 C장조 ‘주피터’를 모차르트 자신은 오늘날의 B장조에 해당하는 음높이로 느끼고 있었다는 말이 되죠. 그런데 모차르트가 느낀 C장조도 ‘단순, 소박, 단조로움’, 우리가 느끼는 C장조도 그와 같은 느낌이라는 얘기는 이상합니다. 얘기가 길었습니다만 24일 인천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는 정치용 지휘 인천시립교향악단이 19세기 말 세 곡의 ‘위대한’ E단조 교향곡 중 하나인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5번을 연주합니다. 첼리스트 마르틴 뢰어가 ‘역시’ E단조인 엘가의 첼로 협주곡을 협연합니다. 들으면 느끼시게 되겠지만, 조가 같아도 두 곡의 분위기는 매우 다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월드컵 결승에 오른 두 축구팀이 서로 감독을 바꿔 경기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또는,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 야구팀이 감독을 서로 바꿔 보면 어떨까요? 최고의 성적이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흥미진진한 경기 내용을 선보일 수는 있을 듯합니다. 물론 상상에서나 가능한 얘기입니다. 그런데 오케스트라의 세계에서는 이런 일이 가능합니다. 연주를 하는 사람들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이지만,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자신의 음악적 해석을 투사하는 ‘악기’와 같거든요. 한 오케스트라의 ‘수장’인 예술감독 또는 상임지휘자만이 그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다른 곳에서 온 ‘객원’ 지휘자가 특정 콘서트만을 맡아서 지휘하는 일도 늘 벌어집니다. 그러다 보니 ‘라이벌’이라고 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와서 지휘봉을 잡는 일도 생깁니다. 오늘날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곳들이 독일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 네덜란드의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 등입니다. 물론 듣는 귀에 따라 호불호는 갈리죠. 그런데 신흥 강자인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음악감독인 피셰르 이반이 전통의 강호인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대에 올라가는 일도 벌어집니다. 예를 들어 12월 21일 베를린 필하모니 홀에서 열리는 콘서트가 그렇습니다. 이날 베를린 필 연주는 이 악단의 ‘라이벌 감독’이라고 할 수 있는 피셰르(사진)가 지휘봉을 잡습니다. 피셰르는 베를린의 또 하나 명문악단인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이기도 합니다. 흥미로운 콘서트가 되지 않을까요. 바이올리니스트 빌데 프랑이 이날 헝가리 작곡 거장 버르토크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협연하고, 멘델스존 ‘한여름 밤의 꿈’ 등도 연주됩니다. 동아일보사가 주최하는 ‘연말을 유럽에서, 베를린필, 조성진과 함께’ 투어에 참여하시면 이 명품 콘서트 외에 피아니스트 조성진 씨의 빈 콘체르트하우스 리사이틀 등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12월 16일부터 8일 동안 오스트리아 빈, 헝가리 부다페스트, 독일 베를린 등 유럽 3대 음악 수도를 돌아보는 코스입니다. 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음악가들의 탄생 100주년, 200주년, 서거 100주년 등 이른바 ‘기념연간’은 작가나 화가 등 다른 장르의 예술가들에 비해 떠들썩하게 치러지게 마련이죠. 음악계가 유독 떠들썩한 걸 좋아하기 때문은 아닙니다. 문학작품은 어느 때나 책으로 만날 수 있고, 명화도 늘 일반에 공개되지만 음악작품은 연주하지 않으면 들을 수 없습니다. 대작곡가의 기념연간에는 그 주인공의 작품을 연주할 기회가 많아지고, 그 주인공을 집중 조명하는 ‘축제’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작곡가들에 대해선 다른 장르의 예술가에 비해 ‘탄생 몇 년’ ‘서거 몇 년’을 한층 특별히 기념하게 됩니다. 내년인 2018년에는 어떤 음악가들이 ‘특별한 한 해’를 갖게 될까요? 프랑스 바로크 작곡가의 대표자로 꼽히는 프랑수아 쿠프랭(사진)이 탄생 350주년을 맞고, 이탈리아 오페라 거장 조아키노 로시니가 서거 150주년, 프랑스 오페라와 교회음악의 대가인 샤를 구노가 탄생 200주년을 맞는군요. 마침 쿠프랭과 로시니의 기념일은 이 계절에 몰려 있습니다. 이번 주 금요일인 10일이 쿠프랭 탄생 349주년, 다음 주 월요일인 13일은 로시니 서거 149주년입니다. 내년 이맘때는 전 세계가 이들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겠군요. 한편 구노의 탄생일은 6월입니다. 쿠프랭이란 이름은 제게도 각별합니다. 어릴 때 집 서가에 꽂혀 있던 ‘101인의 음악가’라는 책 가장 앞 장(활동 시기 순으로)에 나와 있던 이름이 쿠프랭이었거든요.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보다도 17년 앞서 태어난 겁니다. 제가 어릴 때는 이 바로크 작곡가들보다 앞서 활동한 작곡가들은 ‘연구용’으로 의미가 있을 뿐이지 ‘감상용’ 작곡가는 아닌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이후 바로크 및 르네상스 음악 연구와 감상의 열풍이 유럽에서 일어나 오늘날에는 쿠프랭보다 훨씬 ‘선배’ 작곡가들의 음악도 널리 연주되고 있습니다. 프랑스 부르봉 왕가의 왕실 음악가였던 쿠프랭의 건반악기 모음곡을 비롯한 여러 작품도 최근에는 여럿 음반으로 나왔고 즐겨 듣는 사람도 많아졌지만, 우리나라에서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적었습니다. 내년에는 국내 무대에서도 그의 음악을 접하는 기회가 많았으면 하는 소망을 가져봅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클래식이 20세기 만들어진 대중음악 장르들과 다른 점은? “악보를 바꿀 수 없고 악보 그대로 연주한다는 점이죠!” 한 분이 대답합니다. 다른 분은 “악보 그대로만 연주하는데도 연주자마다 다른 느낌이라는 점이 더 매력 있고 신기해요!”라고 말합니다. 틀린 얘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악보를 전혀 바꿀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편곡’은 클래식에서도 예부터 흔했으니까요. 리스트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리아나 다른 선율들을 따와서 여러 개의 피아노곡으로 만들었습니다. 리스트의 이른바 ‘패러프레이즈(paraphrase)’ 작품들입니다. 피아노곡을 오케스트라용으로 편곡하기도 합니다. 무소륵스키의 피아노곡 ‘전람회의 그림’은 프랑스 작곡가 라벨이 관현악용으로 편곡했습니다. 선율과 화음은 같지만, 소리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졌죠. 화가 뭉크의 대표작 ‘절규’를 유화나 파스텔화 외에 흑백 판화로 보는 것과 비슷한 차이입니다. 러시아 피아니스트 겸 지휘자인 미하일 플레트네프도 편곡에 관심이 많습니다. 쇼팽이 젊은 시절 작곡한 피아노협주곡 두 곡은 관현악 파트가 음향적으로 ‘아름답게’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죠. 그래서 플레트네프는 관현악 파트에 손을 댄 쇼팽 협주곡의 새로운 악보를 만들었습니다. 최근 플레트네프가 지휘한 말러 체임버 오케스트라가 러시아 피아니스트 다닐 트리포노프와 함께 이 버전을 음반으로 내놓았습니다. 수요일인 다음 달 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첫 내한 리사이틀을 갖는 조지아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슈빌리도 플레트네프가 편곡한 작품을 연주합니다. 차이콥스키의 ‘호두까기 인형’ 모음곡을 피아노 독주용으로 편곡한 곡입니다. 화려한 관현악을 한 사람이 치는 피아노용으로 바꾸면 단조롭게 들리지 않을까요? 글쎄요, 편성의 크기를 늘리든 줄이든, 예전에 듣지 못했던 새로운 음색과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 편곡의 묘미 아닐까 싶습니다. 한편 11월 7일 서울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열리는 박수진 & 이해영 피아노 듀오 연주회도 오케스트라곡으로 익숙한 곡들을 피아노 두 대를 위한 편곡판으로 들어볼 수 있는 기회입니다. 뒤카 ‘마법사의 제자’, 홀스트 ‘행성’ 모음곡 중 ‘금성’ ‘목성’ 등이 연주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오늘은 1945년 유엔이 설립된 것을 기념하는 ‘유엔의 날’입니다. 설립 4년 8개월 만에 일어난 6·25전쟁 당시 유엔의 결의에 의해 16개국 군대로 구성된 유엔군이 대한민국의 자유를 위해 싸웠고, 이후 한국은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하는 등 유엔은 우리나라에 각별한 의미가 있죠. 1971년 유엔 총회장에 94세의 노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사진)가 첼로를 들고 들어왔습니다. 유엔 평화 메달을 수상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는 연주에 앞서 짧은 연설을 했습니다. “평화는 늘 제게 가장 큰 관심사였습니다. 어릴 때 어머니는 늘 평화에 대해 얘기하셨는데, 당시에는 실로 많은 전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최근 나는 오랫동안 청중 앞에서 연주하지 못했는데, 오늘 민요 한 곡을 연주하려 합니다. ‘새의 노래’라는 곡입니다. 새들은 하늘에서 ‘평화, 평화, 평화(Peace, Peace, Peace)’라고 노래합니다. 이 소리는 바흐, 베토벤과 수많은 대작곡가들이 사랑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선율은, 제 고향 카탈루냐에서 온 것입니다.” 총회장을 가득 채운 청중은 갈채를 아끼지 않았고, 첼로 노대가가 연주하는 고향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의 연주가 유독 심금을 울린 것은 노경에 이른 그가 오래 고향을 떠나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1939년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장군이 승리하고 독재정부가 수립되자 고향 카탈루냐를 떠나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스페인은 카살스가 유엔총회 연주 2년 뒤 타계하고 다시 2년 뒤 프랑코가 사망한 뒤에야 민주화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최근 카탈루냐의 독립을 갈망하는 세력과 이를 반대하는 스페인 중앙정부 사이의 갈등을 보면서, 46년 전 카살스가 희구했던 ‘평화’를 떠올립니다. 부디 더 많은 사람의 행복을 가져오는 길로 평화롭게 문제가 해결되기 바랍니다. 당시 카살스가 역설한 평화는 핵무장 확대 반대를 포함해 세계 모든 나라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했습니다. 한반도를 중심으로 번지고 있는 불안한 구름을 걷어내는 데도 탄생 72주년을 맞이한 유엔이 더욱 큰 역할을 하기를 소망합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엄마, 저거 오징어 다리 같아.” 음악회에서 옆자리에 앉은 꼬마 숙녀의 말에 그만 픽 소리가 나게 웃고 말았습니다. 아이가 오징어 다리 같다고 한 것은 은빛으로 빛나는 플루트였습니다. 복잡한 키(누름쇠) 장치가 오징어 빨판처럼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과연 그렇게 보였습니다. 하지만 플루트가 본디 그렇게 복잡하게 생긴 악기는 아니었습니다. 오늘날 사용되는 복잡한 플루트는 금속세공사 출신인 독일의 테오발트 뵘이 1840년대에 발명했습니다. 그 이전의 플루트는 세로로 부는 ‘리코더’처럼 손가락으로 직접 구멍을 막는 단순한 구조였습니다. 이런 플루트를 바로크 시대에 ‘트라베르소’(가로피리·사진)라고 불렀습니다. 그냥 플루트라고 부르지 않은 이유는, ‘트라베르소’와 ‘리코더’ 두 가지를 모두 합쳐 플루트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리코더라면 낯설지 않죠. 학교에서 교육용으로 쓰는, 호루라기 비슷한 취구(吹口)가 달린 악기 바로 그것입니다. 바로크 시대 플루트 곡은 대부분 트라베르소나 리코더 어느 것으로 불어도 좋았습니다. 오히려 리코더가 더 인기였죠. 그런데 리코더는 상대적으로 소리가 작았고 강약 표현도 제한되었습니다. 그래서 고전주의 시대 이후 잊혀졌고, 20세기 초반에야 교육용 악기로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습니다. 가로피리 트라베르소는 19세기에 뵘식 플루트로 대체되면서 더 크고 화려한 소리를 내게 되었고 플루트는 예전보다 큰 인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옛날식 트라베르소가 가진 목가적이고 청순한 소리에 더 큰 매력을 느끼는 사람도 많습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 슈만과 멘델스존이 알던 플루트 소리도 실제로는 옛날식 트라베르소의 소리였답니다. 21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페리지홀에서는 ‘트라베르소(바로크플루트) 콘체르토의 세계’ 콘서트가 열립니다. 옛 플루트 트라베르소로 연주하는 비발디, 라모, 바흐, 그리고 올해 서거 250주년을 맞은 텔레만의 협주곡들을 옛 악기와 느낌 그대로 들을 수 있는 기회입니다. 트라베르소 연주자 강인봉 씨와, 역시 바로크 시대 그대로를 되살린 악기들로 연주하는 현악 연주자들이 호흡을 맞춥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100년 전인 1917년,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귀족과 기업가들 외에도 많은 인물들이 국외로 탈출했습니다. 그중에는 음악사에 이름을 남긴 명작곡가들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위 사진)와 세르게이 프로코피예프(1891∼1953·아래 사진)를 꼽을 수 있습니다. 두 ‘세르게이’의 음악은 달랐습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위대한 낭만주의자’ 차이콥스키의 후예를 자처했고 차이콥스키의 감수성과 짙은 센티멘털리즘을 이어받았습니다. 프로코피예프는 제1차 세계대전 무렵 붐을 이룬 현대적 경향을 작품에 반영했습니다. 망명 이후의 생활이 순탄치 않았던 점은 두 사람이 공통됩니다. 망명 이전 피아노 협주곡 2, 3번 등 수많은 인기작을 내놓았던 라흐마니노프도 미국 망명 이후에는 작곡만으로 생활을 이어가기 어려웠습니다. ‘피아노 명인’이라는 장기를 살려 콘서트 피아니스트로 미국 전역과 세계 곳곳을 누비지만 작곡가로서의 역할은 크게 줄어듭니다. 프로코피예프는 프랑스를 중심으로 한 서유럽에서 작곡가로서의 활로를 찾지만 1930년대 대공황이 닥치면서 신작을 발표할 통로가 크게 줄어들고 맙니다. 결국 1934년 고국인 러시아, 즉 소련으로 되돌아갑니다. 프로코피예프의 소련 생활은 처음 성공적이었습니다. 바이올린 협주곡 2번, ‘피터와 늑대’ 등이 거듭 성공을 거두었고 쇼스타코비치와 함께 소련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지위를 굳혔습니다. 그러나 1948년, 소련 음악가 회의는 그를 ‘인민에 대한 고려가 없는 형식주의자’라고 비판합니다. 프로코피예프는 ‘프라브다’지에 반성문을 기고하고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수적인 스타일로 돌아갑니다. 서방에서 삶을 마친 라흐마니노프와 소련으로 돌아간 프로코피예프, ‘두 세르게이’의 첼로 소나타가 12일 나란히 연주됩니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요요마 첼로 리사이틀입니다. 이 두 작곡가의 소나타를 나란히 프로그램에 올렸습니다. 프로코피예프에게 많은 영감을 준 스트라빈스키의 ‘이탈리아 모음곡’도 연주합니다. 역시 러시아인이었던 스트라빈스키는 혁명기에 서방에서 활동 중이었으며, 고국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

기다리던 한가위 연휴가 다가왔군요. 한가위는 달과 친해지는 때죠. 바쁜 생활 속에서 하늘을 잊고 살던 사람들도 사랑하는 이들과 모처럼 보름달 한번 쳐다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프랑스인 제롬 랄랑드(1732∼1807)는 달과 친한 사람이었습니다. 천문학자였으니까요. 지구의 자전에 따라 달의 각도가 달라지는 시차(視差)를 연구해 한층 정밀하게 달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게 했고, 그 공로로 독일 베를린 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습니다. 핼리혜성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예측한 것도 그의 공적으로 꼽힙니다. 그런데 그의 이름은 유명한 음악 작품과 연관을 맺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바로크 작곡가 주세페 타르티니(1692∼1770)가 쓴 바이올린 소나타 ‘악마의 트릴’입니다. 랄랑드가 쓴 ‘프랑스인의 이탈리아 여행’이라는 글에 그는 타르티니가 한 말을 그대로 들려준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습니다. “어느 날 꿈에 악마가 나의 하인이 되었다. 그가 나에게 바이올린 소나타를 들려주었는데 너무나 멋져서 매혹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에서 깬 뒤 이 곡을 생각나는 대로 악보에 옮겨 적었지만 도저히 악마가 들려준 그 멋진 음악에 미치지 못해서 바이올린을 부수고 음악을 접을 생각까지 했다….” 이것이 타르티니의 소나타 G단조 ‘악마의 트릴’이 세상에 남게 된 배경입니다. 재빠른 트릴(두 음 사이를 떨듯이 빨리 오가는 장식음)이 인상적이어서 이런 별명이 붙었습니다. 실제로 타르티니가 이런 말을 했는지, 순전히 랄랑드의 상상에서 나온 얘긴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악마가 연주해 들려주었다’는 이 곡은 오늘날도 음악 팬들을 매혹시키고 있습니다. 오늘(26일)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임지영 & 임동혁 듀오 리사이틀에서 모차르트의 두 바이올린 소나타,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9번 ‘크로이처’와 함께 타르티니의 이 ‘악마의 트릴’ 소나타가 연주됩니다. 연주회에 참석하시는 분들은 즐거운 시간 가지시길 바라고, 독자 여러분도 즐거운 한가위 연휴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달을 보면서 ‘천문학자와 악마 이야기’라는 기묘한 조합도 한번 떠올려 보시고요.유윤종 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