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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난해 국방예산 지출 규모가 344억 달러(약 38조700억 원)로 세계 10위를 차지했다고 영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가 11일 정례보고서에서 밝혔다. 한국은 2012년 12위, 2013년 11위에 이어 지난해 10위권에 진입했다. 미국이 5810억 달러(약 643조 원)로 부동의 1위를 지켰다. 2위는 중국으로 지난해 1294억 달러를 국방비로 지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국방예산과 관련돼 가장 눈길을 끄는 국가는 사우디아라비아다. 인구 2700만 명에 병력 23만 명을 보유한 사우디는 지난해 808억 달러의 국방비를 지출해 러시아(700억 달러), 영국(618억 달러) 등 군사 강국을 제치고 3위를 차지했다. 2004년 사우디의 국방비는 193억 달러로 세계 9위였다. 일본은 477억 달러로 프랑스에 이어 세계 7위에 올랐다. 이번 국방비 지출 순위에 북한은 포함되지 않았다. 하지만 IISS는 북한에 대해 “미사일 기술과 대량살상무기 능력을 크게 늘렸다”고 평가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대표적인 유럽 부자 나라인 노르웨이에서는 앞으로 거지에게 돈을 주면 감옥에 가는 법이 만들어진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노르웨이 정부가 구걸하는 사람뿐 아니라 그들에게 돈이나 음식, 숙소를 제공하는 사람까지 처벌하는 법안을 의회에 제출해 15일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고 4일 보도했다. 일명 ‘구걸 금지법(Anti-Begging Law)’으로 불리는 이 법안은 지난해 말부터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실행에 옮기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전국적으로 구걸은 물론이고 거지에게 돈을 주는 행위도 금지된다. 노르웨이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6만5000달러로 세계 6위(2013년 세계은행 기준)다. 사회복지 제도도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이런 부자 국가가 거지의 구걸을 막으려는 이유는 최근 외국에서 거지들이 몰려들면서 사회적 골칫거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원래 노르웨이에는 ‘구걸 금지법’이 존재했다가 2005년 폐기됐다. 법이 사라지자 거지가 늘었다는 불만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에 2013년 9월 집권한 중도 우파 정부는 구걸하는 사람을 도와주는 행위까지 최소 1년형에 처하는 더욱 강화된 법안을 마련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매년 평균 500∼1000명의 외국 거지가 자국에서 생활하고 있으며 이들이 조직적 범죄의 근원이 되고 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구걸 금지 법안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거지들의 삶을 조사해 보면 거지들은 대부분 조직적이지 않으며 오직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독립적으로 구걸할 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반론이다. 좀 더 중요한 반대 이유는 노르웨이의 국가 이미지가 추락하고, 유럽 인권협약에도 위배된다는 것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노르웨이 국민의 60%는 구걸 금지 법안에 찬성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파죽지세로 세력을 확장하던 이슬람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세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지난해 9월 시작된 미국 등 서방의 공습으로 IS 조직의 핵심 간부들이 대거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2일 IS 지도자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사진)의 핵심 이너서클 18명 중 이미 9명이 공습으로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6월 30일 IS 출범을 선포할 당시 바그다디를 ‘칼리파(지도자)’로 선출한 이슬람 ‘슈라 위원회’ 멤버가 바로 이 18인이다. 사망자 중 가장 고위 인물은 IS의 2인자이자 바그다디의 오른팔인 아부 무슬림 알 투르크마니. 이라크군 특수부대 중령 출신인 투르크마니는 군사총책으로 이라크 지역을 담당해 왔다. IS 조직의 종교 및 전략담당 고문인 아부 알 빌라위도 지난해 공습으로 사망했다. 이 밖에 바그다디가 가장 신뢰하는 참모인 아부 하자르 알 수피도 지난해 9월 연합군의 첫 공습 때 숨졌다. 바그다디도 지난해 7월부터 행적이 묘연하다. 그가 공습으로 심각한 중상을 입고 치료 중 숨졌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이 신문은 “IS는 바그다디가 신뢰하는 부하들을 통해 지시를 내리는 극단적으로 폐쇄된 조직 체계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심복의 절반이 사망하면 지휘 체계가 급격히 흔들릴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다른 부하가 사망자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지만 수년간의 전투를 통해 끈끈한 전우애를 쌓은 기존 멤버들에 비해 신뢰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하지만 여전히 서방이 노리고 있는 주요 인물 몇 명은 건재한 것으로 전해졌다. 가장 상징적인 제거 대상은 일본인 기자 고토 겐지 씨를 참수한 지하디 존이라는 참수 전문가다. 지하디 존은 18인 지도부는 아니지만 지난해부터 영국인과 미국인 인질을 참수하며 악명을 떨쳤다. 미국은 그에게 1000만 달러(약 110억 원)의 현상금을 걸었고 영국도 특수부대를 파견했지만 그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 밖에 IS의 핵심 거점인 이라크 안바르 주 책임자 아부 와히브와 시리아 군사총책인 아부 알 시스하니도 여전히 살아있다. 이 둘은 28세에 불과하다. 서방의 공습으로 지난 5개월간 IS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대원도 6000여 명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급로도 막히고 있다. 내륙 지역을 차지한 IS는 사막을 통해 보급품을 조달하는데, 서방의 공습으로 이미 차량 1000여 대가 파괴됐다. 중무장한 호송부대를 보내자니 공습이 무섭고, 공습을 피해 소규모로 은밀히 움직이자니 반(反)IS 세력의 공격에 노출돼 피해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IS의 악행이 이어지면서 민심도 급격히 이탈하고 있다. 며칠 전 이라크 티크리트에서 IS에 처형된 아들의 복수를 위해 60대 노인이 자동소총을 들고 IS 검문소를 습격해 7명의 대원을 사살한 뒤 자신도 총에 맞아 숨졌다. IS는 지난달 노인의 18세 아들을 정부군 스파이로 몰아 다른 7명과 함께 공개 처형한 뒤 이 장면을 인터넷에 공개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에서 석 달 넘게 계속되는 에볼라 방역 소동을 보면 내가 더 황당해진다. 북한은 지구상에서 가장 고립되고 폐쇄적인 나라인 데다 에볼라 발병지인 아프리카 기니와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에서 제일 멀리 있다. 이웃 13억 인구의 중국도 조용하고, 한국과 일본 등 주변국도 무탈한데 유독 북한만 당장 에볼라 바이러스가 국경에서 입국 수속이라도 밟고 있는 듯이 생난리다. 노동신문과 중앙방송은 주기적으로 지면과 시간을 크게 할애해 에볼라의 위험성을 다루고, 주민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에볼라 방역 상식 교육도 대대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질병을 놓고 이렇게 호들갑인 모습은 처음 봤다. 과거 홍역, 장티푸스, 파라티푸스 같은 전염병이 전국에 창궐할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외국에서 들어온 사람은 예외 없이 무조건 격리된다. 영문 모르고 입국했던 중국인 관광객들도 21일간이나 호텔에 감금됐다. 심지어 명목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 최룡해 노동당 비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같은 북한 최고 실세도 외국에 다녀와선 외진 곳에 21일간 격리됐다. 에볼라 최장 잠복기가 21일이기 때문이란다. 북한에서 열리기로 예정된 각종 국제대회도 올 8월까지 줄줄이 취소됐다. 북한이 에볼라를 이유로 지난해 10월 24일 국경을 전격적으로 폐쇄했을 때만 해도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볼라 공포를 이용해 집권 3년이 넘도록 성과가 없는 김정은에게 주민의 불만이 쏠리는 것을 막고 반미 감정도 북돋우려 할지 모른다고 추정했다. 하지만 이후 상황을 지금까지 지켜본 결과 북한은 진짜로 에볼라에 끔찍한 공포심을 갖고 있는 것 같았다. 오죽하면 남쪽에 에볼라 예방 의약품을 달라고 요구했을까. 이번 소동을 보며 2년 전 개봉된 좀비 영화 ‘월드워Z’가 떠올랐다. 영화 속 미국 중앙정보국(CIA) 요원은 이런 말을 한다. “지금 세계에서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지 않은 유일한 나라가 북한이다. 이에 물리면 좀비가 되기 때문에 당국이 하루 만에 주민 2300만 명의 이를 모두 뽑아버렸다.” 영화를 볼 땐 작가의 상상력과 재치에 감탄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요즘의 북한을 보니 에볼라가 들어오는 걸 막을 수만 있다면 진짜로 주민의 이라도 다 뽑아 버릴 기세다. 이번 호들갑의 배후엔 김정은이 있는 게 분명하다. 그가 에볼라에 엄청난 관심을 돌리며 열심히 부채질하지 않고서야 북한이 저렇게 일사불란하게, 최고위 실세까지 가둘 정도로 소동을 벌일 순 없다. 그렇다면 김정은은 왜 에볼라를 그토록 두려워할까. 노동신문의 9월 7일자 ‘에볼라는 미국의 생물무기’, 11월 7일자 ‘에볼라 비루스를 전파시킨 장본인은 누구인가’ 기사에서 일말의 단초를 발견했다. 기사에서 북한은 에볼라 바이러스는 미국이 생물무기용으로 개발한 것이며 아프리카에서 시험했음이 분명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정은은 미국이 에볼라를 북한에 퍼뜨릴 수 있다고 진심으로 믿을지 모른다. 공공보건이 마비된 북한에 에볼라가 퍼지게 되면 아프리카 못지않게 막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민심이 크게 흔들리면서 김정은 체제도 매우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올 1월 22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북한은 결국엔 붕괴될 것”이라고 말한 뒤 북한의 공포감은 더욱 커졌을 것이다. 더 큰 이유도 있을 것 같다. 미국이 외국에 온 북한 고위 인사에게 몰래 에볼라 바이러스를 감염시킬지 모른다는 공포다. 이들이 돌아가 김정은을 만나 감염시킬 수도 있고 최소한 지도부에 에볼라를 퍼뜨릴지 모른다. 최룡해조차 예외 없이 격리되는 것을 보면 이런 공포는 진짜로 있는 것 같다. 제아무리 신격화된 김정은이라 해도 에볼라 앞에선 한갓 인간에 불과하니 말이다. 요즘 북한엔 “김정은이 과거엔 시찰 때 인파와 어울리는 것을 즐겼지만 요즘엔 악수도 꺼린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이쯤에서 하나 궁금해진다. 러시아 정부는 5월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제2차 세계대전 승전 70주년 행사에 김정은이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에볼라가 무서워 진짜 갈 수 있을까. 동행한 대표단에 악수 금지령이 내려질지 모른다. 숙소의 모든 물건을 에볼라 바이러스 취급해 북한에서 별걸 다 바리바리 싸들고 갈지 모른다. 귀국해 북한에 발을 딛자마자 동행했던 고위층을 모두 격리시켜 21일간 가둬두고 혼자 집에 갈 김정은을 상상해봤다. 해외 언론이 반길 엽기 기록이 또 하나 생길 것 같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탈북자 신동혁 씨(33)의 증언을 거짓이라고 주장한 데 이어 이번엔 탈북자 박연미 씨(22)의 증언을 문제 삼았다. 두 사람 모두 국제무대에서 북한 인권의 문제점을 널리 알려온 유명 탈북자다. 북한의 대외선전용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지난달 29일 북한 인권 증언으로 조명을 받고 있는 박 씨의 증언을 반박하는 동영상을 공개했다. 북한은 ‘인권모략극의 꼭두각시 박연미’라는 제목의 동영상에 박 씨의 큰아버지 고모 외삼촌 등 친인척들을 출연시켜 박 씨의 주장을 날조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1월 제14호 정치범수용소 출신이라고 주장한 신 씨의 증언을 북에 사는 아버지를 내세워 반박한 것과 방식이 판박이다. 우선 북한은 박 씨의 아버지 박진식 씨는 중국에 건너간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박진식 씨의 형은 동생이 구리를 밀수하다 2003년 교화 10년형을 받았으며 2007년 췌장암에 걸려 병보석으로 풀려나 그해 남포에서 숨졌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박진식 씨의 죽음을 최초로 확인했다는 남포 강서구역 양탄진료소 소장 인터뷰도 내보냈다. 이 같은 북한의 주장은 “함께 탈북했던 아버지가 중국에서 사망해 눈도 감지 못한 아버지를 겨울에 묻어야 했다”며 눈물 흘렸던 박 씨의 주장과 배치된다. 북한은 또 할리우드 영화를 보았다는 죄로 친구 어머니가 경기장에서 기관총으로 처형되는 장면을 9세 때인 2002년에 목격했다는 박 씨의 주장과 관련해 “경기장에서 처형이 진행되진 않는다”고 반박했다. 북한의 주장과는 별개로 국내 탈북자 사회에서도 박 씨의 증언 중 일부가 과장된 게 아니냐는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탈북자는 “미국 영화를 봤다고 해서 총살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박 씨는 지난해 ‘세계 젊은 지도자 회의’에 참석하고 영국 의회의 증언대에 서면서 ‘북한 인권의 아이콘’으로 새롭게 떠올랐다. 또 지난해 영국 BBC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에 포함되기도 했다. 그의 수기는 미국의 유력 출판사에서 곧 발간될 예정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내전이 한창인 시리아에서 시민으로 구성된 다국적 민병대가 이슬람수니파원리주의 ‘이슬람국가(IS)’를 치열한 교전 끝에 몰아내 국제사회의 화제가 되고 있다. 쿠르드족 민병대를 주축으로 한 국제동맹군이 26일 시리아 북부 전략 요충지 코바니의 도심에서 IS 병력을 완전히 몰아냈다. 131일 동안 1500명이 넘는 전사자가 발생한 치열한 교전 끝에 얻어 낸 ‘값진 승리’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발호한 IS를 장기전투 끝에 격퇴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IS의 코바니 공세 개시 IS가 코바니 진격을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 17일. 탱크를 앞세운 IS의 파상공세 앞에 코바니 인근 마을들은 추풍낙엽처럼 IS 수중에 들어갔다. IS는 공격 첫날에만 코바니 인근 24개 마을을 함락시켰고 이후 이틀 사이에 39개 마을을 추가로 점령했다. IS가 코바니 시내 외곽 4km까지 밀고 들어오자 다급해진 미군은 9월 27일을 기해 코바니 일대에 공습을 시작했다. IS의 공격으로 코바니에서 살던 쿠르드 주민 4만5000명은 터키로 피란을 떠났다. 쿠르드계 터키 청년 1800여 명은 위기에 처한 쿠르드 민병대 인민수비대(YPG)를 돕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 10월 2일 코바니 주변 마을 354곳 중 350곳을 장악한 IS가 시내 진입을 시도하면서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이날 IS 측은 하루 최다인 57명이 전사했다. 쿠르드 여성 전사는 폭탄을 안고 적진에 뛰어들었다. 10월 4일까지 코바니 주민 거의 전부가 터키로 넘어갔고 이날 마지막 외신기자도 코바니를 떠났다. 이때부터 건물 하나, 언덕 하나를 두고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시가전의 결정적 순간들 10월 10일 코바니 절반이 IS의 수중에 떨어지면서 수비대가 최대 위기를 맞았다. IS의 탱크가 코바니 시내를 휘젓는 가운데 YPG 사령부까지 점령당했다. 수비대는 서쪽 외곽의 톨세어 언덕으로 후퇴했다. 이곳도 이틀 전까지 IS 수중에 있었으나 미군의 공습 덕분에 되찾았다. 톨세어 언덕까지 IS가 장악하고 있었다면 코바니 방어 자체가 붕괴됐을 수 있었다. 코바니 수비대는 한 걸음씩 후퇴하면서도 주유소와 우물 등을 파괴했다. IS 탱크들은 연료가 바닥이 났다. 치열하게 버티던 수비대에 10월 말 드디어 지원군이 도착했다. 시리아자유군 400여 명과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 군사조직 페시메르가 소속 160명의 정예 병력이 수비대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수비대는 후퇴를 멈췄다. IS도 점점 지쳐 갔다. 미군 주도의 연합군 공습에 보급로도 끊겼다. 올해 1월 2일에는 코바니 전투를 지휘하던 IS의 세이크 알 나지 사령관이 공습으로 목숨을 잃었다. 이를 계기로 수비대는 총반격을 개시했다. 25일 IS는 마지막 예비군 140명을 투입했다. 대부분이 18세 미만 소년이었다. 전세는 바뀌지 않았다. 이날 IS 대원 41명이 전사했다.○ 물러설 수 없는 자존심 전략적 요충지인 코바니는 양측 모두에 자존심이 걸린 상징적 도시였다. 국제동맹군은 이곳에서 IS의 불패 신화를 깨려 했고, IS는 파죽지세의 기세가 깨지는 걸 원치 않았다. 이런 점에서 치열했던 코바니 시가전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스탈린과 히틀러의 군대가 혈투를 벌였던 스탈린그라드 방어전을 연상시킨다. 터키로 건너간 코바니 주민들은 매일 고향이 보이는 언덕에 올라 YPG를 응원했다. 이들은 자기 집이 미군 공습에 날아가도 박수를 쳤다. 반면 IS가 공격할 때면 불안한 표정으로 변했다. 코바니 전투 패배로 IS가 수세에 몰릴지도 관심사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신동혁.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지난해 9월 면담한 뒤 “북한 인권탄압을 알리는 산 표본”이라고 했던 탈북 청년이다. 신 씨의 증언을 쓴 책 ‘14호 수용소 탈출’은 북한 인권 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는 대표적 저서가 됐다. 유엔 북한인권결의안 통과에도 신 씨의 증언이 기여한 바가 크다. 하지만 며칠 전 신 씨가 자신의 저서에 부분적 오류가 있다고 고백하면서 그의 증언 전체가 신뢰를 잃었다. 신 씨의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은 크게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당장 북한은 탈북자 증언이 모두 거짓이라며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탈북자인 기자의 입장에선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하지만 신 씨가 ‘일부 오류’라는 표현을 쓰며 내용을 번복한 부분과 관련해, 기자의 판단엔 오류 차원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14호 수용소 출신이 아닌 18호 수용소 출신이라고 정정했다. 일각에선 18호 수용소면 어떻고 14호면 어떠냐고 하지만 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여러 18호 수용소 출신 탈북자들의 증언을 종합해보면 1958년에 생겨난 북창 18호 수용소는 초기에 정치적 숙청을 당한 사람들과 국군포로 등을 수감했다. 대다수 정치범수용소가 그렇듯 수감자들은 여러 마을에 분산 거주하며 농장과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했다. 그러다 1975년 정치범 대다수가 다른 수용소로 옮겨가면서 18호 수용소는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사회안전부(현 인민보안부) 관할로 넘겨졌다. 이때부터는 주로 경제범과 출신 성분이 나쁜 ‘신해방지구’ 추방자들이 수감됐다(‘신해방지구’는 6·25전쟁 이후 북한 땅이 된 황해남도 남부 및 개성 지역을 말한다). 1980년대 초반부터 18호에선 사안이 경미한 사람들의 죄수 신분을 벗겨주었다. 이들을 ‘해제민’이라고 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해제민을 받기 꺼려 보통 그대로 수용소에 눌러앉았다. 이때부터 18호 수용소에는 ‘이주민’ ‘해제민’ ‘외부인’이라 불리는 3가지 신분의 주민들이 섞여 살았다. 이주민은 아직 죄수 신분인 사람들로 공민권과 이동의 자유 등이 박탈됐으며, 외부인은 탄광 등에서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1990년대 중반까지 18호 수감자 약 5만 명 중 80%에 해당하는 4만 명이 해제됐다고 한다. 나머지 1만 명은 봉창리라는 곳에 여전히 격리됐다. 2000년대 중반 마지막까지 해제가 안 된 봉창리 정치범 5000여 명이 개천 14호 수용소로 이전되고 18호 수용소는 완전히 사라졌다. 신 씨는 이런 곳에서 나서 자랐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이 언제 해제민이 됐는지는 밝히진 않는다. 그걸 밝히는 순간 김일성도 모르고 자랐다는 등의 그의 대다수 증언은 거짓말이 되게 된다. 신 씨가 나이도 숨겼다는 증언까지 있다. 물론 그가 마지막 격리지역이었던 봉창리 출신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면 그가 1999년과 2001년 두 차례나 탈북했다가 체포됐다는 것은 설명되지 않는다. 격리지역에선 탈북하다 체포되면 총살이다. 북한이 공개한 신 씨의 6세 때 사진이 본인이 맞는다면 그의 가족은 1980년대에 해제됐다고 볼 수 있다. 신 씨의 증언 중 특히 충격적이었던, 1996년 어머니와 형을 고발해 처형되게 했다는 대목도 사실과 다르다는 증언이 있다. 당시 처형장에 있었던 탈북자가 훗날 한국에 온 것이다. 그는 신 씨의 어머니와 형은 살인죄로 총살됐다고 기억한다. 이외에도 신 씨의 증언엔 의문점이 많다. 다만 확실한 것은 그가 자란 곳이 북한에서 출신 성분이 가장 나쁜 사람들이 살았던 열악한 지역이란 사실이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이 바로 이를 역설적으로 증명한다. 북한은 신 씨가 중학교까지 졸업했다고 주장하면서도 그가 동창들과 찍은 사진을 한 장도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 그곳은 졸업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할 정도로 천대받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란 의미다. 신 씨가 처음부터 진실을 이야기했다 해도 국제사회의 공분을 얻었을 것이다. 수용소가 존재했던 시절 북창 수감자들은 짐승보다 못한 가혹한 박해를 받았다. 신 씨의 책을 보면 그가 자라면서 들었을 과거 수용소 시절의 이야기가 자신의 체험담처럼 둔갑돼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 10여 년 전에도 14호 정치범수용소 출신임을 주장하며 “그곳에서 기독교인들에게 쇳물을 부어 죽인다”고 했던 탈북 여성이 있었다. 하지만 그 역시 14호 출신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거짓 간증으로 큰돈을 벌어 지금은 미국에서 상점을 운영한다고 한다. 북한 인권과 관련해 자극적인 거짓 증언은 진짜 증언까지 의심을 받게 하는 범죄이다. 거짓으론 악을 이길 수 없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이 설날 첫 방문지로 평양육아원과 애육원을 찾아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며 나는 노동당 선전부서의 녹슬지 않은 치밀함에 새삼 놀랐다. 그걸 보니 한 50대 탈북 여성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마 대다수 북한 주민은 이 말에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김일성은 눈물이 많았어. 아이 때 봤는데 애들이 ‘아버지 원수님’ 하며 뛰어갔더니 그가 ‘내가 이 애들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아버지라고 하누먼’ 하면서 그러안고 눈물을 흘리더군. 하지만 김정일이 우는 걸 한 번이라도 봤어? 김일성이 사망한 지 며칠 만에 사람들 앞에서 크게 웃는 걸 봐. 피도 눈물도 없는 것 같아. 그러니 인민이 굶어 죽어도 꿈쩍도 안 하지.” 정치인이 흘리는 눈물의 힘은 남쪽 사람들도 잘 알고 있다. 외모에서부터 할아버지 향수를 노린 것이 역력한 김정은은 집권 이후 눈물 흘리는 모습을 자주 노출했다. 이것이 우연이란 말인가. 고아를 돌보는 이미지는 또 어떤가. 북한 교과서엔 김일성과 고아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 김일성이 빨치산 시절과 6·25전쟁 때도 부대와 집무실에서 고아를 돌봤다는 것이다. 특히 고아인 최영옥 4남매에게 돌려주었다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모르는 사람이 없다. 이런 이야기는 교과서와 강연 등으로 전해 내려오며 “김일성은 인자했다”라고 끝없이 세뇌하고 있다. 김정은이 보육원에 깊은 관심을 돌리는 것도 우연일까. 물론 치밀한 이미지 메이킹 전략이라고 해도 설날 군부대에 가기보다는 보육원이 낫다고 평가하고 싶다. 보육원은 부모가 죽어 꽃제비가 된 아이들을 키우는 곳이다. 어려서 구걸하며 살다 보니 보육원 아이들의 평균 키는 세 살 밑의 또래와 비슷하다. 고아가 많다는 것은 북한이 선전처럼 인민의 낙원이 아니라는 것을 반증해 주는 생생한 증거다. 그래서인지 김정일은 보육원을 찾아간 적이 없고 관심을 가진 적도 없다. 하지만 김정은은 아버지 시대의 치부를 수용하는 용기를 보여주었다. 대동강 기슭의 노른자위 땅에 보육원도 건설했다. 또 김정은은 고아를 돌보라는 지시를 전국에 하달했다. 중국에서 구걸하던 꽃제비들이 재작년 초부터 거의 보이지 않기에 알아보니 “북한 보육원에서 이젠 밥은 먹여 준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김정은이 요즘 고아는 물론이고 홀몸노인에게까지 관심이 크다니 이런 점은 얼마든지 환영할 수 있다. 물론 그 순수성엔 의심이 간다. 김정은이 보육원에 처음 간 때는 공교롭게 장성택을 처형하고 한 달 남짓 지난 지난해 2월 3일이다. 따뜻하고 인자한 지도자라는 것을 보여줄 필요가 절실할 때였다. 왠지 올해 설맞이 무대에 북한의 명곡인 ‘세상에 부럼 없어라’를 부르는 고아 합창단이 등장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고아들이 “우리의 아버진 김정은 원수님, 우리의 집은 당의 품”이란 가사를 눈물 펑펑 흘리며 부르고 김정은도 같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전국에 중계된다면. 이런 장면은 분명 주민들을 크게 감동시킬 수 있을 것이다. 노동당 선전 담당자들 역시 모를 리가 없다. 하지만 쇼라고 해도 좋다. 그 덕분에 전국의 꽃제비들이 따뜻한 밥과 숙소를 얻을 수 있다면 다른 쇼보단 낫다고 생각한다. 나는 기차역에 방치된 꽃제비들의 시체 앞에서 주먹을 쥐어 본 사람이다. 석탄재 속에서 자고 나온 꽃제비 아이들에게 밥을 나눠주며 눈물을 흘려본 사람이다. 그래서 솔직한 심정은 이렇다. “좋다. 이용해도 좋으니 애들을 제발, 죽게 내버려두지 말라. 그리고 진짜로 사랑을 주면 좋겠다.” 김정은은 아는지 모르겠다. 지난해 김정은 지시로 갓 개장한 송도원야영소에 갔던 원산 보육원 아이들이 야영이 끝난 뒤 옷과 배낭은 물론이고 신발과 양말까지 다 바쳐야 했었던 것을. 다음 차례로 갈 아이들이 입어야 했기 때문이다. 누구 앞에서나 “원수님의 배려로 부러운 것 없이 지낸다”고 줄줄 대답하는 아이들이 실은 선생만 보면 겁에 질려 입을 다문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솔직히 배가 고파요”라는 고백을 들으려면 최소한 며칠간 친분이 쌓여야 한다. 그나마 김정은이 찾은 평양 보육원은 지방보다 사정이 훨씬 낫다. 이곳은 평양 꽃제비만 받기 때문이다. 꽃제비마저 차별을 받는 셈이다. 현재 이뤄지는 보육원 지원도 김정은의 관심이 식는 순간 끝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그러면 꽃제비는 또다시 거리로 내몰리게 된다. 개인적으론 김정은에게 꼭 묻고 싶은 말이 있다. 과거 탈북했다 체포돼 북송된 뒤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간 이들 중엔 18세 미만의 미성년자 고아들도 있다. 김정은이 보육원에서 눈물을 흘릴 때 어느 수용소에선 철모르는 고아가 채찍 아래 죽어가고 있다. 당신은 정치범이 된 그 고아들을 위해서도 울어줄 수 있는가.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독일에서 한 남성 간호사가 심심하다는 이유로 입원 환자들에게 과다한 약물을 주입해 30여명을 살해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 주장이 사실일 경우 2차 대전 이후 독일의 최대의 연쇄 살인범으로 ‘죽음의 천사’로 불렸던 20대 후반의 남자 간호사 슈테판 레터가 노인 환자 28명을 살해해 2006년 종신형에 처해진 사건보다 더 큰 충격적인 사건이 된다. 8일 독일 북부 도시 올덴부르크에서 열린 재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정신의학 전문가는 살인죄로 기소된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한 남성 간호사(38)를 면담하는 과정에 그가 30명을 살해했음을 고백했다고 밝혔다. 문제의 간호사는 2005년 환자에게 약물을 주입하다가 동료들에게 발각돼 2008년 살인미수 혐의로 7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작년 9월 환자 3명 살해와 다른 2명에 대한 살인 미수 혐의가 추가로 밝혀져 재판을 받고 있는 상태다. 이 간호사는 2003년부터 2005년 사이에 올덴부르크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면서 심장박동을 교란시키고 혈압을 낮추는 약제를 환자들에게 주입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관들은 이 남자 간호사가 자신의 심폐소생술을 과시하기 위해 응급상황을 만들려 했거나 심심하다는 이유로 환자들에게 약물을 과다 주입한 것으로 보고 있다. 법원 대변인에 따르면 이날 증언에 나선 정신의학 전문가는 피고가 3명 살인과 2명에 대한 살인 미수를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다른 90명의 환자들에게 약물을 과다 주입해 이 가운데 30명을 숨지게 했다는 것도 시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피고를 최근 4차례 면담했으며 피고가 다른 병원과 노인요양원, 응급의료센터 등에서도 근무했지만 이들 기관에서는 살인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내용도 증언했다. 법원 대변인은 그러나 정신의학 전문가의 증언은 법적으로 피고 본인의 자백으로 간주되지 않는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 간호사는 지금까지 법정에서 일절 발언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이슬람 극단주의 추종자들에 의해 자행되는 테러에 대한 공포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지난해 12월 15일에 발생한 호주 시드니 인질극에 7일 발생한 파리 참사는 세계 최고 관광지의 중심부가 공격을 당했다는 점에서 지구촌에 안전지대가 없다는 것을 다시금 확인시켜 준 사건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이슬람 테러 최근 공격을 받고 있는 나라들은 프랑스를 포함해 캐나다 호주 등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공격에 동참한 국가라는 공통점이 있다. 프랑스에선 이미 지난해 12월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자생적 테러 공격이 이틀 연속 잇따라 발생해 대형 테러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팽배해있었다. 지난해 12월 21일 프랑스 동부 디종에선 40세 남성이 이슬람 신앙고백인 ‘알라후 아끄바르(알라는 위대하다)’를 외치며 군중을 향해 돌진해 2명이 중상을 입는 등 11명이 다쳤다. 전날엔 이슬람으로 개종한 20세 남성이 프랑스 중서부 도시 주레투르 교외지역의 경찰서에서 흉기를 휘둘러 경찰관 3명이 다쳤다. 아프리카 부룬디 태생의 프랑스 국적자인 이 남성 역시 ‘알라후 아끄바르’라는 말을 반복해 외쳤으며 결국 경찰에게 사살됐다. 호주 시드니에선 지난해 12월 15일 IS를 추종하는 이란계 50대 남성이 도심 카페에서 17시간 동안 인질극을 벌여 범인을 포함해 3명이 사망하고 여러 명이 부상을 당했다. 캐나다 오타와에선 지난해 10월 22일 이슬람으로 개종한 32세 남성이 경찰을 사살한 뒤 총리가 일하는 의사당으로 난입해 총격전을 벌이다 사살되기도 했다. 영국 런던에서도 2013년 5월 이슬람 극단주의자 2명이 대낮에 거리 한복판에서 군인을 참수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서방국가가 아닌 지역에서도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공격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16일 파키스탄 페샤와르 지역에서 탈레반 반군 6명이 정부군 부설 학교를 공격해 학생 130여 명과 교사 9명 등 140여 명이 숨진 사건이 대표적이다. 올해 들어서도 4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국제공항 인근에서 차량을 이용한 자살 폭탄테러가 발생해 시민 4명이 숨졌다. 서방국가에서 벌어지는 테러가 주로 테러 단체와의 연계가 없이 자생적으로 벌이는 ‘외로운 늑대형’ 테러라면 파키스탄 나이지리아 등 이슬람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테러는 IS와 보코하람 같은 악명 높은 테러조직의 소행이라는 특징이 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1년 동안 보코하람에 의해 목숨을 잃은 사람은 1만340명에 달한다. 또 유엔 통계에 따르면 같은 기간 IS에 테러로 희생당한 사람은 1만733명이다.○ 이번 일로 반이슬람 증오 범죄도 빈발할 듯 샤를리 엡도 테러를 계기로 유럽에서 또다시 반(反)이슬람 정서가 고조돼 극우정당들이 힘을 얻고 이슬람 증오 범죄가 빈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반이슬람 정서는 다시 이슬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테러의 악순환을 만들게 된다. 독일에선 지난해 12월 반이슬람 시위에 1만7000여 명이 모이기도 했다. 이들은 “무슬림 이민자가 너무 많아 서구의 전통적인 기독교문화와 전통이 퇴색되고 있다”며 “피부색이나 종교가 다른 사람들은 우리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현재 유럽 인구의 3% 정도가 무슬림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과거 유럽의 식민지배를 받던 북아프리카 출신이다. 유럽에 부는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 공포증)’는 극단적 이슬람 증오 범죄를 낳는다. 스웨덴에선 연말연시 일주일 동안 세 차례나 모스크 방화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에선 지난해 6월 이슬람 복장인 아바야를 입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여성이 산책 중에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장 대표적인 이슬람 증오 범죄는 2011년 7월 노르웨이에서 안데르스 브레이비크(32)가 “이슬람의 침공을 받은 유럽을 구출하겠다”며 무고한 시민과 학생 76명을 사살한 사건이다. ‘톨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도 반이슬람 정서 확산에서 예외는 아니다. 프랑스의 무슬림 인구는 500만 명이 넘는다. 서유럽에서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은 나라이다. 프랑스에선 지난해 5월 반이슬람 정책을 표방한 국민전선(FN)이 유럽의회 선거에서 선전해 프랑스 제1당에 올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군 탈영병이 중국으로 넘어가 주민 4명을 살해한 사건이 벌어진 허룽(和龍) 시 난핑(南坪) 촌은 기자가 2000년대 초반 탈북할 때 두만강을 건너 반나절가량 머물던 바로 그곳이다. 탈영병이 강을 건넌 지점도 기자가 강을 건넜던 바로 그 장소이다. 이번 사건 소식을 듣고 기자는 10여 년 전 목숨을 걸고 북한을 빠져나온 탈북의 기억이 새삼 떠올랐다. 안내인의 재촉 속에 대낮에 무릎 깊이의 두만강을 전력 질주해 건너던 기억, 난핑 뒷산에 올라 북한 쪽을 바라보며 안도하는 한편으로, 과연 내 운명이 어찌 될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밤을 기다리던 순간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했다. 어둠이 깔리고 주위가 어두워진 뒤 기자는 난핑 마을로 내려와 미리 소개받은 집을 찾으려 돌아다녔지만 수십 채의 농가가 비슷비슷하고 문패마저 없어 찾기 어려웠다. 할 수 없이 어느 민가에 들어가 “이러이러한 집을 찾고 있다”고 했더니 집주인으로 보이는 중년 여인이 친절하게 알려줬다. 기자가 탈북자라는 것을 아는 눈치였다. 조선족 마을이라 한국말로 통할 수 있었다. 기자가 마침내 소개받은 집을 찾아 들어가 “집을 가르쳐준 중년 여인이 나를 신고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했더니 “숟가락까지 몇 개인지 서로들 알고 있는 뻔한 동네에서 그런 짓은 안할 테니 걱정 말라”는 답이 돌아와 안심했다. 음식을 푸짐하게 얻어먹고, 여비까지 얻어 밤길을 타고 다음 목적지인 허룽 시내로 가기 위해 마을 입구에서 버스를 타려 했지만 검문하는 군인들 때문에 탈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산길을 타고 걷다가 산에서 노숙을 하고 다음 날 저녁까지 걷고 또 걸었다. 너무 배고파 외딴 집으로 들어가 “탈북자이다. 먹을 것을 좀 줄 수 있느냐”고 하자 집주인인 한족 남자가 직접 된장찌개를 끓여 주었다. 그때만 해도 옌볜의 민심은 탈북자들에게 비교적 동정적이었다. 기자는 두만강을 다섯 번이나 건너고 탈북에 성공했다. 처음 강을 건넜을 때 허룽 시내에서 중국 공안에게 체포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서글서글한 눈매였던 공안은 조사를 마친 뒤 내게 “김일성대 졸업생이라고? 그러면 우리 베이징대 졸업생이나 마찬가지”라며 “인재가 북에 끌려가서 죽는 걸 바라지 않아 풀어주니 다시는 잡히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금 북-중 국경의 민심은 기자가 탈북할 때와는 판이했다. 국경에는 감시카메라가 설치됐고, 집집마다 비상신고 전화가 지급돼 있다. 이웃 주민들이 탈북자들에게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일을 겪은, 그 인심 좋던 난핑 촌 주민들은 앞으로 탈북자를 보면 분노하지 않을까. 목숨을 걸고 두만강을 건넌 탈북자들 역시 살기 위해 더 극단적인 행동을 서슴지 않을지 모른다. 어쩌면 북-중 국경의 이 같은 현실은 통일에 대한 장밋빛 꿈에 대한 경종일지도 모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2008년부터 교도소에 수감됐던 천수이볜(陳水扁·64) 대만 전 총통이 6년 2개월 만에 병보석으로 풀려 나왔다. 대만 법무부는 5일 우울증과 뇌 수축 증세를 보이고 있는 천 전 총통에 대한 병보석 신청을 비준했다고 밝혔다. 천 전 총통은 이날 오후 수감 중인 타이중(臺中) 교도소 밖으로 나왔으며 1개월 간 외부 의료기관에 입원해 정밀 검사를 받게 된다. 그 이후에는 계속 치료를 받게 할지, 아니면 재수감돼 남은 형기를 마저 채울지가 다시 결정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부터 8년간 대만을 이끌던 천 전 총통은 2008년 11월 공문서 위조와 수천 만 달러의 뇌물 및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0년 형을 선고받고 이날까지 복역해 왔다. 그의 아내도 같은 혐의로 20년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프란치스코 교황이 4일 추기경 20명을 새로 임명했다. 이 중 15명은 교황 선출권을 가지는 80세 미만 추기경이다. 한국인 신임 추기경은 포함되지 않았다. 교황이 추기경을 새로 임명한 것은 지난해 1월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19명의 신임 추기경에 염수정 대주교(71)도 이름을 올리면서 한국은 세 번째 추기경을 배출한 바 있다. 바티칸 라디오에 따르면 교황 선출권이 있는 신임 추기경 15명의 출신지는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에티오피아 파나마 멕시코 우루과이 통가 뉴질랜드 베트남 미얀마 태국 카보베르데로 유럽과 북미가 아닌 지역 출신이 다수 포함됐다. 특히 미얀마와 통가, 카보베르데에서 추기경이 배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페데리코 롬바르디 교황청 대변인은 “이번 새 추기경 임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요국의 큰 도시에서만 추기경을 배출하는 것을 당연시하는 관행에 얽매여 있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신임 추기경 서임식은 다음 달 14일 바티칸에서 열릴 예정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1일 신년사에서 ‘북남 최고위급 회담’은 물론이고 각종 남북대화 개최 가능성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 조건을 달았다. 실제 남북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상당한 진통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김정은은 또 정부가 지난해 12월 29일 제안한 통일준비위원회를 통한 당국 간 회담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 대신 남북 정상회담 카드를 꺼내 ‘통 큰 제안’으로 자신이 남북 대화를 주도하려는 점을 과시했다. 정부도 조심스러워하면서도 관계부처 회의를 거친 뒤 북한의 제안을 적극 활용하자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적극적인 호응으로 북한의 태도 변화를 끌어낼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대화 언급 의미 있다고 판단”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남북이) 더이상 무의미한 언쟁과 별치 않은 문제로 시간과 정력을 헛되이 하지 말아야 하며 북남(남북)관계의 역사를 새롭게 써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해 말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를 내세워 제안한 남북 당국 회담 승부수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박근혜표 대북정책’에 끌려가지 않으려는 ‘역제안 공세’의 성격이 짙어 보였다. 하지만 남북이 모두 대화 의사를 공개적으로 밝힌 만큼 적극적으로 나서면 된다는 방향으로 정부 대응 기조가 정리됐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정부는 김정은 제1비서가 신년사를 통해 남북 간 대화와 교류에 진전된 자세를 보인 것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고 평가한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다. 불과 3시간 전 통일부가 “북한이 신년사에서 구체적 입장을 밝힌 것을 평가한다”고 자료를 냈던 것과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 박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외신 인터뷰에서 ‘분단의 고통을 해소하고 평화통일 준비를 위한 진정성과 실천 의지’를 전제로 김정은과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실질적으로 남북 현안을 풀 수 있는 정상회담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남북 간 현안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논의를 할 수 있으면 정상회담이 가능하고, 정상회담을 위한 논의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상회담의 형식은 남북이 협의하는 과정에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5월 러시아 전승 70주년 기념행사에 박 대통령과 김정은을 모두 초청한 상태여서 남북 정상 간 만남이 다자 무대에서 성사될 수도 있다. 다만 정부 내부에서도 남북 정상회담을 한다면 굳이 해외에서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물론 북핵 문제 등 정상회담까지 가기에는 넘어야 할 과제도 많다.○ “제도통일 추구하지 말라”며 흡수통일 우려 정부는 김정은이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주장하면서 “전쟁연습이 벌어지는 분위기에서 대화가 이뤄질 수 없고 남북관계도 진전할 수 없다”는 태도를 되풀이한 점도 주시했다. 여전히 걸림돌이 많다는 얘기다. “체제 대결을 추구하지 말라” “남북 사이 불신과 갈등을 부추기는 제도통일을 추구하지 말라” 등의 주장도 여전했다. 김정은이 “자기의 사상과 제도를 상대방에게 강요하려 해서는 언제 가도 조국통일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며 거론한 제도통일에 대한 거부감은 흡수통일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도 탈(脫)냉전의 정세 변화로 위기감을 느낀 1990년 신년사를 통해 남북 최고위급회담을 제안했다. 당시 남측이 호응했지만 정상회담은 성사되지 않았다. 그 대신 분단 이후 처음으로 서울과 평양을 오간 남북 고위급회담이 8차에 걸쳐 진행됐다.○ 고립 탈피, 돈 필요한 북한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년사에서 남북관계를 다룬 분량이 지난해(1216자)에 비해 두 배 가까이(2109자)로 늘어났다. 김정은 통치에서 남북관계가 그만큼 중요해졌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갑자기 남북관계가 중요해졌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도 있다. 집권 4년 차를 맞은 김정은이 경제 개혁에 다시 한 번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어야 할 필요성도 남북대화에 나서게 만든 요소라는 것. 정부 관계자는 “김정일 3주기 이후 홀로서기가 시급한 김정은이 외교적 고립과 인권압박 등 대외환경 악화로 위기감을 느끼자 러시아 중국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으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윤완준 zeitung@donga.com·주성하 기자}

1996년 초겨울, 연변은 몹시 추웠다. 피골이 상접한 탈북자들이 밤마다 두만강을 넘어 몰려왔다. 거리와 마을은 동냥하는 탈북자로 넘쳐났다. 그때 머리 흰 50대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연길에선 가장 넓은 축에 속하는 120m²짜리 아파트를 3채나 사서 탈북 고아들을 데려가 돌봤다. 1999년까지 3년 동안 그곳을 거친 탈북 고아는 200명이 넘었다. 그의 이름은 박준재. 미국 시민권자로 제프리 박이라고도 불렸다. 그는 한중수교가 막 이뤄졌던 1992년 즈음 중국에 처음 왔다. 초기엔 흑룡강 성에서 사비를 들여 50여 개의 교회를 만들어 농민들을 전도했다. 미국에서 모텔 사업으로 남부럽지 않게 살던 그가 무엇에 끌려 중국 전도에 나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던 중 박 씨는 연변에 탈북자들이 몰려든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곧바로 연길로 자리를 옮긴 박 씨는 흑룡강 성에서 전도했던 조선족들의 도움을 받아 탈북 고아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꽃제비의 존재를 세상에 처음 알린 것이 박 씨라는 주장도 있다. 당시엔 연변에서 활동하는 한국인도 없었다. 탈북 고아를 돌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중국 공안에 두 번씩이나 체포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미국에 가서 잠깐 돈을 벌고는 그 돈을 들고 다시 태평양을 넘어 지구 반대편 중국으로 날아오기를 50여 차례나 반복했다. 그럼에도 2004년경부턴 더이상 탈북자를 돌볼 수 없었다. 당시 탈북자의 공관 진입이 잇따르자 중국 당국은 대대적으로 탈북자를 검거했다. 박 씨는 도와주던 조선족에게 계속 탈북자를 돌본다는 조건으로 연길의 집 세 채를 넘겨주었다. 2004년 11월 23일 그는 마지막까지 돌보던 10대 부흥이를 포함한 6명의 탈북자를 데리고 연길에서 한국행 길에 올랐다. 하지만 유일한 길이던 베트남 루트는 그 즈음 한국 정부가 베트남에 머무르던 탈북자 468명을 한꺼번에 데려오면서 막혀버렸다. 박 씨는 미얀마 쪽으로 새 루트를 개척하기로 결심했고 12월 초 중국 국경을 넘어 미얀마에 도착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미얀마 주재 한국 대사관에 두 차례나 연락했지만 도와줄 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정글 속에서 오도 가도 못한 이들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미얀마를 거쳐 라오스로 가기로 계획을 바꾸었다. 박 씨는 어느덧 63세의 노인이 됐지만 항상 일행의 맨 앞에서 열대림을 헤쳤다. 정글에서 헤맨 지 7일 만에야 드디어 라오스가 건너다보이는 메콩 강에 도착했다. 밀항선을 구해 보았지만 1인당 1만 위안을 불렀다. 돈이 없었다. 고민하던 박 씨는 마을 시장에 가 튜브를 사려 했다. 시장을 다 돌아봐야 4개밖에 살 수 없었다. 강을 넘기 전 일행은 시장의 한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박 씨가 기도했다. “하나님, 천국에 가게 해 주세요. 아내에게 미안하고…. 제 아들이 계속 선교활동을 하게 해 주세요.” 무엇을 예감했을까. 그는 이것이 ‘최후의 만찬’이라 몇 번이고 되뇌었다. 일행은 가장 연장자인 박 씨에게 튜브를 양보했다. 그러나 그는 “내가 이래 보여도 미군 출신이다”라고 주장하며 기어코 여성과 아이들에게 튜브를 넘겨주었다. 그러곤 자신은 배낭만 메고 메콩 강에 뛰어들었다. 유유하게 흐르는 듯했던 메콩 강은 막상 사람이 뛰어들자 사납게 변했다. 일행은 40분 가까이 정신없이 떠내려가다 강 가운데서 보트를 만나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다. 일행 중 막내였던 부흥이는 이렇게 회상했다. “물살이 세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어느 정도 정신이 든 뒤 돌아보니 할아버지는 안 보이고 배낭만 물에서 들락날락하는 것이 보였어요.” 부흥이는 나중에 알았다. 박 씨는 헤엄을 잘 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가에서 몇 시간째 할아버지를 부르며 목 놓아 울었지만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일행은 라오스 경찰에 체포됐고 한국 대사관에 통보가 됐다. 하지만 라오스 대사관도 이들을 무시했다. 이들은 목숨 걸고 넘어왔던 메콩 강을 다시 넘어 미얀마 경찰에 넘겨졌다. 미얀마는 이들을 북송하려 했다. 하지만 박 씨의 넋이 이들을 끝까지 지킨 것일까. 미국 시민권자의 실종 사실을 알게 된 미국 정부가 미얀마 한국 대사관에 박 씨의 생사 확인을 요청했다. 그제야 한국 외교관이 나타났다. 미얀마 경찰이 말했다. “여기 들어온 북한 사람은 다 북에 보냈지만 너희는 한국 외교관이 왔으니 한국에 가게 될 것이야.” 정글을 헤맨 지 석 달 뒤 그들은 한국에 왔다. 그리고 10년이 흘렀다. 2005년 1월 2일 메콩 강에서 탈북자들을 위해 목숨을 바친 박준재, 제프리 박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는 거의 없다. 잊어서는 안 될 그 이름을 다시 부르며 소박한 이 글을 그가 머물고 있을 천국에 바친다. “박준재 할아버지. 당신이 나침반을 들고 처음으로 헤쳤고, 어디엔가 넋이 머무르며 지금도 지켜주는 그 루트를 따라 2만 명의 탈북자가 한국에 왔습니다. 메콩 강에서 당신의 배낭을 건져 올리고 엉엉 울던 막내 부흥이는 얼마 전 컬럼비아대에 입학해 탈북자 최초의 아이비리그생이 됐답니다.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시죠?”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로 “악천후와 기류 변화를 만나 심하게 흔들리다가 원을 그리며 바다로 추락했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포스트는 구조당국인 국가수색구조청의 발표를 인용해 에어아시아 소속 QZ8501 여객기의 추락 상황을 이같이 묘사했다. 국가수색구조청이 밝힌 추락 추정 지점은 자바 해역의 벨리퉁 섬에서 약 145km 떨어진 남위 3도22분46초 동경 108도50분7초 해상이다. 현지 언론들은 해당 항공기가 벨리퉁 섬 남쪽 해상에서 선회하다 심한 난기류를 만나 바다에 추락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며 연락두절 직전 ‘비정상적 항로(unusual route)’로의 운항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조코 무리요아트모조 인도네시아 교통부 항공국장대행은 이날 자카르타 공항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항공기가 약 3만2000피트(약 9750m) 상공에서 운항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구름을 피하겠다며 3만8000피트로 상승하겠으니 받아들여달라고 요구했다”고 밝혔다. 월스트리트저널, 가디언 등 외신은 QZ8501기가 이 같은 교신을 하고 6분(AP통신은 4분) 뒤 레이더에서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해 해당 항공기가 기상 악화에 따른 갑작스러운 악천후를 극복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에어아시아는 성명을 통해 “해당 항공기는 미리 제출된 항로를 따라 운항 중이었는데, 도중에 기상 사정 때문에 항로 변경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CNN도 “사고 지역은 인도네시아 제2의 도시 수라바야 일대로 사고 당시 거대한 천둥을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며 악천후를 사고 원인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악천후는 이미 예고된 상황이어서 기상 악화에도 불구하고 비행을 강행한 기장의 부주의가 사고 원인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메리 샤이보 전 미국 교통부 감독관은 “기장은 보통 관제탑으로부터 최신 기상정보를 제공받고, 항공기 레이더를 통해서도 날씨정보를 알 수 있다”며 기장이 기상정보를 충분히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아 악천후 자체가 사고 원인은 아닐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사고 항공기 기장은 비행시간이 6100시간에 이르는 베테랑이고 항공기는 지난달 16일 예정된 정비를 마쳤지만 조종사의 조작 미숙이나 기체 결함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여객기가 출발한 수라바야는 동자바의 주도이자 인도네시아 제2도시로 인구는 약 300만 명이다. 한국 교민과 주재원도 1500여 명이 사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객기 실종 사실이 알려진 뒤 수라바야 주안다 국제공항과 싱가포르 창이 공항에 탑승자 가족 수백 명이 몰려와 눈물바다를 이뤘다. 사고 직후 인도네시아 당국은 헬기 2대와 선박 6척을 추락 추정 지점으로 급파했다.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도 수색작업에 동참했다.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간부터 12시간이 지나 밤이 되도록 잔해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수색을 주로 항공기를 사용한 육안 확인에 의존하기 때문에 어둠이 깊어지면 수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28일 오후 5시 반(현지 시간) 기상 사정과 어둠 때문에 수색작업 중단을 선언하고 29일 오전 7시부터 재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3월 실종된 말레이시아 항공 MH370편과는 달리 이번의 경우 추락 사고가 유력한 정황이 계속 나오고 있어 조만간 잔해는 발견될 것으로 보인다. 자바 해역은 평균 수심이 40∼50m밖에 되지 않아 잔해를 찾기는 그리 어렵지 않아 보인다. 사고 여객기는 유럽 에어버스사에서 생산된 320-200 기종이다. 이 기종은 좌석이 좌우로 3개씩 있는 소형 여객기로 탑승 정원이 180명이며 최대 항속거리는 5700km이다. 이 때문에 에어버스 320 모델은 중·단거리 노선에 많이 투입되는데 세계적으로 4000여 대가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에 실종된 비행기는 2008년 9월 25일 첫 비행을 시작한, 도입한 지 6년밖에 안 된 비교적 새 여객기다.주성하 zsh75@donga.com·유덕영 기자}

▼김정은이 감추고 싶은 ‘독재의 허상’ 고발▼신석호 워싱턴 특파원·북한학 박사김정은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북한 당국자들은 사이버테러와 협박을 통해서라도 영화 상영을 막을 만했다. 김정은 자신이 평양에 불러들인 두 명의 미국 언론인에게 목숨을 잃고 북한이 해방된다는 결말은 비록 코미디 영화라지만 체제에 대한 도전이다. 헬기를 탄 극 중 김정은이 미국 언론인들이 쏜 대포알에 맞아 불타 죽어가는 장면이나 브래지어와 팬티만 걸친 기쁨조와 밤을 즐기는 김정은의 모습이 공개적으로 상영되는 것을 그대로 두는 것은 비록 영화에서라도 ‘수령’의 존엄이 침해되는 것을 막을 것을 강요하는 ‘유일사상 10대 원칙’에 어긋난다. 하지만 북한 당국이 특히 민감했을 대목은 북한을 전혀 모르는 외부인들이 ‘수령 절대주의 독재체제’의 진실을 알아가는 과정일 듯하다. 김정은을 처음 인터뷰하는 특종을 잡게 된 앵커 데이브 스카이라크(제임스 프랭코 분)는 평양에 들어가 김정은과 식사와 농구를 함께하고 기쁨조와 환락을 경험한 뒤 ‘독재 권력의 마력’에 빠져 허우적댄다. 스카이라크는 김정은을 암살하라는 미 중앙정보국(CIA)의 지령을 거부하려 한다. 하지만 그는 국영상점 식품진열대에 놓인 과일과 음식이 모두 전시용 가짜라는 것을 확인하면서 눈을 뜨게 된다. 북한 체제의 허구성을 깨달은 스카이라크가 김정은의 생방송 인터뷰 도중 “왜 국민을 굶기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하는 대목에서 영화는 절정으로 치닫는다. 영화는 “저급한 상업주의 저작물”이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북한 체제에 대한 회의야말로 김정은과 북한 당국이 가장 두려워하는 적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 전혀 北같지 않은 무성의한 설정에 실망 ▼주성하 기자·김일성대 졸업영화 ‘인터뷰’는 한국에서 상영됐다면 성공하지 못할 영화로 보인다. 후하게 쳐서 10점 만점에 3, 4점 정도 줄 수 있겠다. 일단 영화 전체에서 제작자들이 북한을 모른다는 것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인들이 알고 있는 평균적 북한 상식에도 못 미친다고 생각한다. 북한 군복을 입은 동양인 배역들을 제외한다면 전혀 북한다운 냄새가 풍기지 않는 배경에서 북한 같지 않은 설정이 이어졌다. 영화 제작자들이 북한 관련 책은 읽어보고 제작했는지 의문이다. 코미디 영화라는데 웃기지도 않았다. 김정은을 암살한다는 요소를 빼면 작품성은 평가하기 민망한 수준으로 보였다. 영화를 본 뒤 2003년 초 한국에서 흥행 참패를 했던 ‘007 어나더데이’가 생각났다. 당시 영화에 동남아 물소가 밭을 가는 한국 농촌 풍경이 잠깐 등장하자 한국 누리꾼들은 “한국을 비하했다”며 관람 보이콧 운동을 벌였다. 역시 북한 주민들이 이 영화를 본다면 엄청나게 화가 날 것 같다. 그래서 ‘김정은이 오히려 이 영화를 북한에서 상영하고 싶어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미제(미국)가 우리를 얼마나 왜곡 중상하고 조선 사람을 멍청하게 묘사해 조롱하는지 생생한 증거가 여기 있다”면서 말이다. 북한 쪽에서 이 영화만큼 훌륭한 반미 교재가 또 있을까 싶다. 마음에 드는 대목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영화가 이렇게 목달개(깃받이)까지 붙어 있는 북한 군복을 제대로 만들어낼 줄 몰랐다. 정체 모를 군복에 견장마저 거꾸로 단 북한군이 등장하는 한국 영화들은 이것만큼은 따라 배웠으면 좋겠다. ▼ ‘최고존엄’ 희화화… 번뜩이는 풍자는 없어 ▼강유정 영화평론가수준을 논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이전에도 사담 후세인이나 오사마 빈라덴 등 독재자나 테러리스트를 악당으로 그리는 B급 패러디 영화는 많았다. 그런 영화들은 독재자를 극단적인 악당으로 묘사해 B급 영화다운 전복성을 지녔다. 하지만 ‘인터뷰’는 김정은이라는 인물에 대한 태도가 애매하다. 김정은이 겉으로는 미국 타도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미국 문화에 경도된 오타쿠처럼 희화화하지만 동시에 김정은이 “이런 연극놀이에 지쳤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웃기기 위해 독재자로서 김정은의 이미지를 소비할 뿐 김정은이라는 인물이나 북한 체제를 날카롭게 풍자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이렇게 김정은을 강력한 적으로 그리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북한 정권의 심기를 거슬렀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할리우드 배우인 제임스 프랭코와 세스 로건의 연기는 볼만하다. 하지만 중간 중간 어색한 한국어가 등장하는 데다 김정은 역할의 랜들 파크와 실제 김정은의 일치도가 낮아 이질감이 느껴진다. 한국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하기가 다소 어려운 영화다. 북한의 협박과 개봉 취소 등 일련의 해프닝이 없었다면 그냥 “이런 영화가 있었구나” 하고 잊혀졌을 영화다. 정리=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파나마 운하와 세계 2위 운하의 지위를 놓고 경쟁을 벌일 니카라과 운하가 22일 태평양쪽 진입로인 브리토 강에서 착공의 첫 삽을 떴다. 1800년대부터 여러 번 추진됐다가 무산된 불운의 역사를 끝내고 드디어 본격적인 공사에 들어갔다. 니카라과 운하의 길이는 278km로 확정됐으며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만2000개를 실은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파나마 운하에 비해 2배 이상 큰 컨테이너 2만5000개 수송 선박도 통과할 수 있다. 운하가 건설되면 미주 대륙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니카라과는 25만 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발생하고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300달러에서 배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운하 건설 및 운영권을 따낸 홍콩니카라과운하개발(HKND)은 앞으로 5년간 약 500억 달러를 들여 완공한 뒤 2020년부터 운영할 계획이다. HKND는 2012년 8월 홍콩에서 설립됐으며 이사장은 베이징신웨이(信威)통신산업그룹의 왕징(王靖) 이사장이 겸임하고 있다. HKND는 50년간 운하 운영권을 확보했고 보조도로와 항만 공항 철도까지 건설하면 추가로 50년 운영권을 더 받는다. 하지만 건설이 예정대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HKND의 자금 동원 능력이 베일에 가려져 있고 건설 예정지에서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주민 2만9000여 명은 보상금이 충분치 않다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최근 석 달간 북한은 ‘최고 존엄 사수’라는 틀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스스로를 포박하고 있다. 10월 초 북한은 황병서 최룡해 김양건 3인방의 파격적인 인천 방문으로 모처럼 고립의 탈출구를 찾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최고 존엄’ 김정은을 모독하는 대북 전단 살포 중단을 요구하며 스스로 문을 걸어 잠갔다. 북한 인권 유린 책임자의 국제형사재판소(ICC) 회부 권고가 담긴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해서도 북한은 최고 존엄 모독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북한 외무성은 20일 “한반도 비핵화 무효, 6자회담 거부, 9·19 공동성명 무효”를 발표했다. 최근엔 김정은 암살 소재 영화 상영을 막으려다 해킹 주범으로 지목돼 뜻하지 않게 테러지원국 재지정 위기에 몰렸다. 이와 동시에 체제 생존에 필요한 남한과의 관계 개선도, 미국과의 대화도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커졌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졌을까. 많은 전문가들은 지난해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의 숙청 바람이 수그러들지 않는 데서 그 원인을 찾는다. 한국 정보당국은 최근 몇 달 새 노동당 고위간부 수십 명이 김정은 지시에 대한 태만 등을 이유로 평양 근교 강건군관학교에서 다른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북한 사정을 잘 아는 탈북자들은 “이런 분위기에선 ‘최고 존엄이 모욕당할 때 너희는 무엇을 했느냐’는 불호령이 떨어지고 ‘우리는 이렇게 필사적으로 싸웠습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누구나 안간힘을 쓸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은 고모부인 장성택조차 “박수를 건성건성 쳤다”는 것이 처형 이유가 되는 현실에서 김정은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것은 숙청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도 북한은 전국이 최고 존엄 사수에 매달리고 있다. 대외담당 기관들의 경쟁적인 충성 과시용 성명과 대외 협박이 이어지고 주민은 충성결의 대회와 기강 단속에 시달리고 있다. 이는 김일성 김정일 생전에도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이런 상태에서는 북한의 생존전략도 뒷전으로 밀릴 수 있다. 북한의 과민 반응이 장기적으로 이어지면 김정은은 더욱 궁지로 몰릴 수 있다. 한 북한 소식통은 “북한은 이번에 자신들이 가장 아파하는 것이 무엇인지, 얼마나 아파하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냈다”며 “영화 ‘인터뷰’ 상영 취소 뒤 김정은을 패러디한 비디오 게임이 나온 것처럼 앞으로 외부의 조롱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북한이 최고 존엄 사수를 부르짖으며 극단으로 대응한다면 세계를 상대로 무한전쟁을 벌이게 되고 경제특구 활성화와 관광을 통한 외화 획득 등 김정은식 개혁도 물 건너간다는 것이다. 김정은 집권 3년을 맞은 북한의 민심 동요도 변수다. 북한 사정에 밝은 한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3년을 기다려 보았지만 김정은 시대도 기대할 게 없다, 체제를 바꾸어야 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소식통은 “이런 때에 김정은에게 목숨 걸고 직언할 수 있는 간부가 보이지 않는 점도 김정은 체제의 치명적 결점”이라고 분석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쿠바와 미국은 양국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우리는 문명화된 방법으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공존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라울 카스트로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83)이 국영TV 생중계를 통해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를 특별성명으로 발표하는 동안 쿠바는 환희에 휩싸였다. 성당들에서 울리는 종소리와 들뜬 사람들이 거리로 달려 나와 얼싸안으며 터뜨리는 환호성이 수도 아바나에 울려 퍼졌다. 수업을 중단한 학교에서도 박수와 함성이 터져 나왔다. 수십 년의 고립으로 지쳐 있던 쿠바에 이번 발표는 오랜 가뭄에 쏟아진 단비와 같았다. 형 피델 카스트로의 시대에서 단절돼 오랫동안 악연으로 이어져 왔던 미국과의 관계는 동생 라울의 시대에서 해빙을 맞았다.○ 미국 신뢰 얻은 라울의 뚝심 개혁 2008년 병으로 쓰러진 형으로부터 권력을 넘겨받은 라울 의장은 집권 첫날부터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의장 취임 연설에서 국유산업의 비효율성을 신랄하게 비판한 뒤 ‘위로부터의 쿠바 개혁개방’ 노선을 선언했다. 이후 6년 동안 라울 의장은 시장경제 체제를 꾸준하게 도입하고 정치범을 잇달아 석방하는 등 국제사회의 신뢰를 얻는 개혁 행보를 뚝심 있게 밀고 왔다. 2009년 대규모 정부조직 개편을 단행해 개혁의 걸림돌이 됐던 막강한 ‘형님 사단’을 축출하고 개혁 성향의 인물들을 중용했다. 그 뒤에도 식량배급제 및 정부 보조금의 점진적 축소, 자영업자 육성, 주택 및 중고 자동차 매매 허용, 자본주의식 소유권 도입, 부정부패 척결 등 굵직굵직한 개혁을 주도했다. 2013년엔 해외여행 허가 제도를 없앴으며 2014년엔 신외국인 투자법을 도입해 해외로 망명한 쿠바인의 투자까지 허용하는 등 개방에도 박차를 가했다. 서아프리카에서 에볼라가 창궐하자 쿠바는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인 256명의 의료진을 파견해 미국의 찬사를 받았다. 이런 노력 끝에 쿠바는 미국의 신뢰를 얻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17일 성명에서 “쿠바를 붕괴로 몰아가는 것은 미국의 국익에도, 쿠바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쿠바를) 실패한 국가로 몰아붙이는 정책보다 개혁을 지지하고 독려하는 것이 더 낫다는 교훈을 어렵게 얻었다”고 밝혔다.○ 피델 카스트로와 미국의 악연 이번 결정으로 미국과 쿠바의 과거 악연이 모두 청산되는 것은 아니다. 1962년 만들어진 미국의 대(對)쿠바 금수 조치는 미 의회에서 법을 개정해야 풀리게 된다. 양국 관계 정상화로 쿠바 경제 파탄의 근본 원인으로 지목된 금수조치도 해제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과 쿠바의 악연은 1959년 피델 전 의장이 사회주의를 선언하고 미국계 설탕 및 석유회사들을 국유화하면서 시작됐다. 미국은 1961년 국교를 단절했고 그해 4월 쿠바 망명자로 피델 정권을 전복시키기 위한 피그스 만 침공을 단행했으나 실패했다. 미국이 피델 전 의장을 암살하기 위해 집권 48년 동안 638번의 암살 시도를 했지만 실패했다는 보고서가 나올 정도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이 과정에서 쿠바 경제는 파탄이 났고 과거 50년 동안 거의 200만 명이 미국으로 탈출했다. 양국의 수교는 미국의 쿠바 사회에도 희망의 메시지를 보낼 것으로 보인다. 쿠바 인구는 1100여만 명에 불과하지만 미국에 사는 쿠바 난민은 200만 명이 넘는다. 이들 대부분은 쿠바에서 145km 떨어진 플로리다에 살고 있다. 이들이 고국에 해마다 보내는 돈은 20억 달러가 넘는다. 망명자 사회 일각에선 관계 정상화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몇 달 전 한 대학에서 조사한 결과 쿠바 이민자의 68%가 외교관계 복원에 찬성했고 젊은 층은 90%가 절대적 지지를 보냈다. 이번 결정으로 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의 야시엘 푸이그 선수처럼 우수한 쿠바 인재들이 앞으론 더이상 목숨을 걸고 국경을 넘지 않아도 될 것으로 보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