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종엽

조종엽 차장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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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조종엽 차장입니다.

jjj@donga.com

취재분야

2025-11-24~2025-12-24
문학/출판30%
역사21%
정치일반10%
문화 일반10%
사회일반10%
칼럼7%
검찰-법원판결3%
인사일반3%
산업3%
만화3%
  • [책의 향기]“빅데이터 시대, 기술혁명의 흐름에 동참하라”

    산업혁명 이래 신기술이 기존 산업과 결합하면 새로운 산업이 탄생했다. 빅데이터와 기계지능(인공지능)이 발전해 온 역사와 함께 이 신기술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에 관해 비교적 평이하게 서술한 책이다. 2013년 12월 샤오미(小米) 휴대전화의 창립자 레이쥔은 전통 가전업체인 거리(格力)전자의 최고경영자(CEO) 둥밍주와 내기를 했다. 레이쥔은 샤오미가 당시 연 매출이 10배가 넘는 거리전자를 5년 내에 추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리전자는 여러 해 동안 지식재산권의 확보와 기술 기반의 핵심 경쟁력 확보에 노력해 온 기업.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2015년 샤오미는 세계적 벤처투자회사에 의해 기업가치가 450억 달러(약 50조 원)라고 평가됐다. 샤오미는 2013년부터 저가 휴대전화를 보급해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겉으로는 가격 인하 위주의 경쟁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샤오미는 다른 데 주목했다. 휴대전화 판매는 가입자 확보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샤오미는 모바일 커뮤니티를 개발했고, 가입자 데이터를 확보했으며 다른 일반 가전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샤오미는 사용자의 행위 분석과 데이터의 역할을 중요시하면서 가입자로부터 장기적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 이런 측면에서 샤오미는 단순한 제조업체가 아니다. 중국 IT기업 텐센트에서 검색을 총괄하고, 구글에서 컴퓨터 자동 문답 프로젝트를 이끈 저자는 빅데이터 기술이 마주치는 난점과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다뤘다. 먼저 데이터의 수집이다. 빅데이터 등장 전까지는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게 매우 어려웠지만 빅데이터는 전체를 수집하기에 그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필요한 데이터가 다 공개된 경우가 드물다는 것. 구글은 셋톱박스 모델의 구글TV를 출시해 시청 데이터를 확보하고 광고 시장에 진입하려 했지만 판매가 부진했다. 그러자 2014년 적자에 허덕이던 스마트 에어컨 제어기 회사 ‘네스트(nest)’와 가정용 폐쇄회로(CC)TV 업체 ‘트롭캠’을 인수했다. 사람들이 몇 시에 집에 들어와 TV를 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기계학습은 매우 방대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구글의 알파고만 해도 이세돌과 대국하기 전 훈련할 때는 서버가 1만 대 넘게 필요했다. 특히 다차원적이고 전면적인 데이터에서 특정 개인의 생활상이나 조직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기에 보안과 사생활 보호는 빅데이터 사업을 오래 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저자는 “빅데이터의 본질은 정보를 이용해 불확정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경고한다. 빅데이터 시대에 사고방식이 여전히 하드웨어와 제품 판매에 집착하는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 시대’에 머무른다면 주요 특허를 다수 확보한 기업도 도태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반도체에 수출이 집중돼 있고, 그마저도 호황이 끝나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저자의 경고는 가볍지 않다. 지능혁명이 가져올 산업구조의 변화도 문제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농부는 공장노동자가 될 수 있었지만 ‘스마트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 기계의 연구, 개발 및 제조라는 신산업에 참여할게 확실하다. 이 기술혁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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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재개발구역 고양이들… 쫓겨나 어디로 갈까요

    재건축이나 재개발이 진행되는 동네의 길고양이들은 어떻게 될까? 사람들은 안녕이라는 말도 없이 떠났지만 고양이들은 동네를 지킨다. 철거가 시작되자 무시무시한 장비들이 나타나더니 땅이 울리고, 돌덩이들이 쏟아지고, 계단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고양이들은 새집을 찾기 위해 조심해서 찻길을 건너고, 달리고 달려 산을 넘고, 어두운 터널도 지나지만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고양이를 기르는 작가가 실제 재건축이 이뤄지는 옆 단지를 보면서 ‘고양이들의 안전한 이주’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리고 썼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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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이 책]“오늘은 오늘뿐이니까” 나비가 알려준 소중함

    시간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질까, 나비의 시간도 사람과 같이 흐를까? 할 일도, 볼 것도, 알아봐야 할 것도 아주 많은 나비지만 살아갈 시간이 별로 없기에 ‘오늘’ 다 해보고 싶다. 꽃은 ‘어제’와 ‘내일’을 말하지만 나비는 무슨 뜻인지 모른다. 새가 일주일을 말해도, 오리가 1년을 말해도 알아듣지 못하는데 바위가 만 년 전에 이곳에 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나비가 어찌 알까. ‘최고의 날’로 만들 수 있는 건 바로 오늘뿐…. 다른 나비가 말한다. “나비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간이라는 걸!”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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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오미 매출, 5년 내 거리전자 추월” 자신감…빅데이터 사업 필수 조건은?

    산업혁명 이래 신기술이 기존 산업과 결합하면 새로운 산업이 탄생했다. 빅데이터와 기계지능(인공지능)이 발전해 온 역사와 함께 이 신기술이 앞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킬지에 관해 비교적 평이하게 서술한 책이다. 2013년 12월 샤오미(小米) 휴대전화의 창립자 레이쥔은 전통 가전업체인 거리(格力)전자의 최고경영자(CEO) 둥밍주와 내기를 했다. 레이쥔은 샤오미가 당시 연 매출이 10배가 넘는 거리전자를 5년 내에 추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거리전자는 여러 해 동안 지식재산권의 확보와 기술 기반의 핵심 경쟁력 확보에 노력해 온 기업. 아직 승부는 나지 않았지만 2015년 샤오미는 세계적 벤처투자회사에 의해 기업가치가 450억 달러(약 50조 원)라고 평가됐다. 샤오미는 2013년부터 저가 휴대전화를 보급해 시장 점유율을 높였다. 겉으로는 가격 인하 위주의 경쟁에 몰두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샤오미는 다른데 주목했다. 휴대전화 판매는 가입자 확보를 위한 수단일 뿐이었다. 샤오미는 모바일 커뮤니티를 개발했고, 가입자 데이터를 확보했으며 다른 일반 가전으로 사업을 확대했다. 샤오미는 사용자의 행위 분석과 데이터의 역할을 중요시하면서 가입자로부터 장기적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 이런 측면에서 샤오미는 단순한 제조업체가 아니다. 중국 IT기업 텐센트에서 검색을 총괄하고, 구글에서 컴퓨터 자동 문답 프로젝트를 이끈 저자는 빅데이터 기술이 마주치는 난점과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도 다뤘다. 먼저 데이터의 수집이다. 빅데이터 등장 전까지는 표본의 대표성을 확보하는 게 매우 어려웠지만 빅데이터는 전체를 수집하기에 그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필요한 데이터가 다 공개된 경우가 드물다는 것. 구글은 셋톱박스 모델의 구글TV를 출시해 시청 데이터를 확보하고 광고 시장에 진입하려 했지만 판매가 부진했다. 그러자 2014년 적자에 허덕이던 스마트 에어컨 제어기 회사 ‘네스트(nest)’와 가정용 폐쇄회로(CC)TV 업체 ‘트롭캠’을 인수했다. 사람들이 몇 시에 집에 들어와 TV를 보고, 밥을 먹고, 잠을 자는지 등에 대한 데이터를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데이터의 저장과 처리도 아직 갈 길이 멀다. 기계학습은 매우 방대한 계산을 필요로 한다. 구글의 알파고만 해도 이세돌과 대국하기 전 훈련할 때는 서버가 1만대 넘게 필요했다. 특히 다차원적이고 전면적인 데이터에서 특정 개인의 생활상이나 조직의 정보를 알아낼 수 있기에 보안과 사생활 보호는 빅데이터 사업을 오래 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다. 저자는 “빅데이터의 본질은 정보를 이용해 불확정성을 제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경고한다. 빅데이터 시대에 사고방식이 여전히 하드웨어와 제품 판매에 집착하는 ‘무어의 법칙(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이 2년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법칙) 시대’에 머무른다면 주요 특허를 다수 확보한 기업도 도태를 면치 못할 것이라고. 반도체에 수출이 집중돼 있고, 그마저도 호황이 끝나가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저자의 경고는 가볍지 않다. 지능혁명이 가져올 산업구조의 변화도 문제다. 저자는 “산업혁명 이후 농부는 공장노동자가 될 수 있었지만 ‘스마트시대’에는 소수의 사람만 기계의 연구, 개발 및 제조라는 신산업에 참여할게 확실하다. 이 기술혁명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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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DP 중독, 불평등 키우고 환경 해쳐… 삶의 질이 성장 기준 돼야 인류 생존”

    “20세기에는 국내총생산(GDP)이 끝없이 증가하는 걸 인류의 진보로 생각했습니다. 마치 ‘절대 떨어지지 않고 고도를 높여만 가는 비행기’ 같은 모델이지요. 이런 성장 중독은 세계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지구 환경에 큰 부담을 안기고 있습니다.” ‘인간 개발 보고서’ 등 유엔개발계획(UNDP)의 주요 보고서를 쓴 영국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48)가 27일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서울미디어시티 비엔날레 2018’에서 강연했다. 레이워스는 가난한 나라 사람들의 공정무역 거래, 의료와 교육 등을 돕는 국제구호단체 옥스팜에서 일했고, 인류의 번영과 지속 가능한 발전을 시각화한 새로운 경제 프레임인 ‘도넛 모델’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해 낸 책 ‘도넛 경제학’의 국내 출간(학고재·1만4800원)을 기념해 방한했다 . 레이워스는 이날 ‘도넛 모델’에 대해 “도넛을 너무 많이 먹으면 몸에 나쁘지만 이 도넛만은 인류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농담을 던지며 개념을 설명했다. 그가 가운데 구멍이 있는 도넛으로 형상화한 개념은 다음과 같다. 도넛의 안쪽 원을 ‘인간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사회적 기초’라고 볼 때, 뻥 뚫린 원 안의 공간은 물이나 식량 보건 교육 에너지 주거 등 필수적인 요소가 부족한 ‘인간성 박탈’의 세계다. 반면 바깥쪽 원은 ‘치명적 환경 위기를 막는 생태적 한계’다. 이 테두리 바깥으로 넘어서면 담수 고갈, 대기 오염, 해양 산성화 등이 벌어져 인류가 지구에서 살기 어려워진다. 인류는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도넛에 머물러야 한다. 하지만 현재 인류는 도넛 안팎으로 한계에 직면한 상태다. “전 세계 인구의 12%는 내일 먹을 음식이 부족하고, 9%는 깨끗한 물을 못 마시고 있어요. 동시에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손실, 비료의 지나친 사용으로 인한 질소와 인 축적, 토지 개간 측면에서는 생태적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레이워스는 이날 인류가 도넛에 머물기 위한 대안으로 재생형·분산형 경제를 제시했다. 이런 사례로 케냐에 설치된 자원순환형 화장실이라든지 버리는 옷가지의 섬유를 재활용하는 의류, 가구처럼 집에서 조립할 수 있는 자동차 등을 소개했다. 그는 “‘성장이란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묻는 것이 이 시대 진정한 경제학적 질문”이라며 “성장의 기준은 GDP가 아니라 ‘삶의 질’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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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은 이색 문집서 ‘천부경’ 언급… 고려말에 이미 존재한 정황”

    고려 말의 대학자 목은 이색(1328∼1396)이 단군조선 이전부터 전해 내려온다는 ‘천부경’을 공부한 정황을 그의 시편에서 밝힌 연구가 나왔다. 천부경은 환인(桓因)이 환웅(桓雄)에게 전해 백성에게 가르쳤다는 대종교의 경전이다. 학계에서는 오늘날의 천부경이 20세기 초에 위조됐다고 본다. 하지만 고려 말 ‘모종의 천부경’이 실존했다는 해석이어서 파장이 예상된다. “비밀스러운 책 처음 나왔을 땐 귀신도 놀랐겠지(秘書初出鬼神驚)/…/‘독단’, ‘천부경’ 내용과도 부합하니(獨斷與天符契合)”(이색, ‘백악산·白嶽山에 호종·扈從하여 짓다’에서) 신라 최치원 사상 연구의 권위자인 최영성 한국전통문화대 교수는 발표 예정인 논문 ‘목은 이색의 역사의식과 민족사상’에서 “간단한 언급이지만 이 시구에서 이색이 천부경을 공부했다는 것과 당대 천부경의 존재를 알 수 있다”고 26일 밝혔다. ‘목은집’의 기존 번역에는 이 부분이 “내 독단은 하늘과 부계가 서로 합하고”라고 번역돼 무슨 뜻인지 알기 어렵다. 최 교수는 ‘독단’은 중국 후한 때 인물 채옹(蔡邕·133∼192)이 지은 책 이름이기에 ‘천부’도 천부경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 풀어야 옳다고 봤다. ‘독단’에는 하늘을 아버지로, 땅을 어머니로 하는 ‘부천모지(父天母地)’의 사상이 본디 동이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나온다. 이색은 동이족의 천손(天孫)의식이 서술된 책과 함께 천부경을 거론한 것이다. 최 교수는 “이색은 천부경이 진짜 경전이라고 의도적으로 높이려던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본디 천자(天子)의 나라라는 점을 밝히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시에 언급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 교수에 따르면 천부경 등의 내용과 부합한다는 ‘비밀스러운 책’(秘書)은 도선국사(道詵國師·827∼898)의 비기도참(秘記圖讖)이고 이색이 천도(遷都)와 관련해 공민왕을 호종해 백악산에 갔다는 건 ‘고려사절요’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이색은 해동 고려 땅이 천하의 정기가 한군데 뭉친 곳이고, 도읍을 어디에 정하느냐에 따라 고려가 ‘천자국(天子國)’의 지위를 누릴 수 있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전해지는 천부경은 위조된 것이라는 게 학계 정설이다. 계연수(?∼1920)라는 이가 1916년 묘향산의 석벽에 새겨진 것을 발견해 단군교(대종교가 만주로 기반을 옮긴 뒤 조선에 남은 분파)에 전했다고 하지만 앞뒤가 안 맞는 요소가 적지 않다. 일제강점기 민족사학자인 단재 신채호(1880∼1936)도 이 천부경을 “후인의 위조”라고 단정했다. 계연수는 때로 실존 인물인지조차 의심을 받는다. 흥미로운 건 “이색이 천부경을 주해(註解)했다”는 서술이, 역시 위서(僞書)라는 게 정설인 계연수의 ‘환단고기’ 가운데 이맥(조선 중기 문신·1455∼1528)이 썼다는 ‘태백일사’에 나온다는 점이다. 환단고기에는 이맥의 고조부인 행촌 이암(1297∼1364)이 단군의 치세 2000여 년을 1363년에 기록했다는 ‘단군세기’도 실려 있다. 이암은 이색의 스승 격이다. 최 교수는 “오늘날 전하는 천부경과 이색이 본 천부경의 내용이 일치하는지는 알 수 없다”면서 “이색은 ‘천인합일(天人合一)’이라는 고유사상을 바탕으로 성리학을 주체적으로 이해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최 교수의 논문은 목은연구회와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가 10월 5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에서 개최하는 ‘목은 사상의 재조명’ 학술대회에서 발표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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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자폐증은 인지적 변이… 기술-문화 발전에 이바지”

    1989년 5월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자폐증 전문가들이 모인 학회가 열렸다. 연단에 축산 장비 디자이너이자 콜로라도주립대 교수인 40대 여성이 섰다. 그는 자신이 자폐인이라며 말했다. “(어릴 적) 어른들이 말을 걸 때 저는 그 말을 전부 이해할 수 있었어요.… 하고 싶은 말을 입 밖에 꺼낼 수 없었지요. 비명을 지르는 게 의사를 전달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답니다.” 여성의 이름은 템플 그랜딘(현재 71세). 그는 자폐인이 경험하는 현실에 대해 수십 년간 의사들이 관찰해온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줬다. 저자는 자폐증과 아스퍼거 증후군(언어와 인지능력은 비교적 정상인 자폐증의 일종)에 얽힌 역사를 다뤘다. 그랜딘 교수는 “누군가 고양이라는 단어를 말하면 일반적인 의미의 고양이가 아니라 이미 알고 있거나 책에서 본 구체적인 고양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며 “이 같은 시각적 사고는 장비 디자이너로서 아주 요긴한 능력”이라고 했다. 일에 유용한 자신의 범상치 않은 재능을 소개한 것이다. 학회가 열린 2년 뒤에는 신경과 의사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올리버 색스(1933∼2015)가 그랜딘을 찾아갔다. 색스는 책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자폐인인 그랜딘이 동물에게 느끼는 깊은 연대감을 탐구했다. 그랜딘은 엄청난 노력을 통해 사회적 규범에 적응하는 법을 배운 드문 사례다. 자폐인은 오랫동안 오해와 근거 없는 치료법에 내몰려왔다. 여기에는 1943년 ‘자폐증(autism)’이라는 이름을 붙인 미국의 소아정신과 전문의 레오 카너(1894∼1981)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자폐증이 냉담한 부모들의 잘못된 양육법으로 발병한다고 주장했다. 자폐증이 있는 아들을 둔 심리학자 버나드 림랜드(1928∼2006)는 자폐증은 선천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지만 잘못된 치료법을 옹호하기도 했다. 반면 ‘아스퍼거 증후군’에 이름을 남긴 오스트리아의 소아과 의사 한스 아스퍼거(1906∼1980)는 자폐인을 포용적인 방법으로 교육하면 능력이 향상되고 사회에 기여하며 살 수 있다고 믿었다. 자폐인들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어떨까. 터무니없이 예측 불가능하고, 혼란스러우며, 끊임없이 굉음이 들려오고, 개인 공간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저자는 말한다. “윈도 운영체제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컴퓨터가 고장 난 것은 아니다. 인간의 운영체제 역시 흔히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모든 기능이 버그라고 할 수는 없다. 자폐증의 기준에서 볼 때 ‘정상적인’ 뇌는 쉽게 산만해지고, 강박적일 정도로 사교적이며, 아주 작은 세부사항과 항상 일정한 방식으로 진행돼야 하는 것에 대한 주의력이 부족하다.” 또 자폐증, 난독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은 능력 부족과 기능 이상이 아니라, 독특한 장점을 지니고 인류의 기술과 문화 진보에 이바지해 온 인지적 변이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시 그랜딘 교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는 최초로 돌화살을 발명한 인간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이러쿵저러쿵 잡담을 늘어놓던 정상인이 아니라, 동굴 후미진 구석에서 여러 바위의 차이를 강박적으로 파고들던 자폐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럴 법한 얘기다. 물론 자폐인 가운데 특정 분야에서 아주 특출한 재능을 나타내는 건 ‘서번트 증후군’이라고 불리는 소수에만 해당되니 오해는 하지 말자. 원제 ‘NeuroTribes’.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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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서재]측은지심과 위업

    아이가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을 부르다가 물었습니다. “그런데 신라 김유신은 왜 말의 목을 잘랐어?” 천관녀(天官女) 이야기를 해주자 아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제 눈물까지 글썽입니다. 김유신이 나중에 장군이 돼 ‘삼한일통’의 위업을 이뤘다는 게 아이에게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그저 애꿎게 죽은 말이 불쌍하겠지요. “옛날이야기들이 다 좀 이상해”라며 얼버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문을 빛내기 위해 정인(情人)을 버렸으니, 이렇게 보면 김유신은 비정한 사내입니다. 소위 ‘역사의 위업’ 뒤에 얼마나 많은 비정함이 숨어 있을까요. 고(故) 노회찬 의원의 특강을 정리한 책 ‘우리가 꿈꾸는 나라’(창비)가 ‘지혜의 시대’라는 시리즈 도서 가운데 한 권으로 나왔네요. 노 의원은 책에서 “저 같은 고참이 개인을 생각해서 편한 길을 찾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정책을 떠나 그 어느 정치인보다 서민의 정서와 가까웠고, 따스한 마음을 가진 그였습니다. 아이의 측은지심(惻隱之心)을 잃지 않은 정치인이 ‘위업’을 이루지 못하고 비정한 정치판에서 스러졌습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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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지에 분점”… “양서 아니면 안 팔아”

    “중국의 유구한 역사는 농촌에 있습니다. 개혁개방 40년 동안 도시화로 인구가 줄고, 옛 서원(書院)도 전란과 재해로 망가졌습니다. 지식인들이 향촌(鄕村)으로 돌아가 문화를 생산하고 향촌의 질서를 재건하는 데 기여하고자 합니다.” 중국 난징(南京)의 대표적 민영 인문서점인 셴펑(先鋒)서점의 첸샤오화(錢小華·54) 대표는 14일 ‘파주북시티 국제출판포럼’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이 포럼은 ‘파주 북소리’ 축제와 함께 16일까지 경기 파주시에서 열렸다. 각종 매체에서 ‘아름다운 서점’으로 여러 차례 꼽힌 셴펑서점은 1996년 17m²의 작은 서점으로 시작해 현재 14곳으로 늘었다. 최근 중국 오지나 소수민족 거주지에도 분점을 냈다. 안후이(安徽)성 황산(黃山)시, 저장(浙江)성 쑹양(松陽)현과 퉁루(桐廬)현 등이다. 윈난(雲南)성과 구이저우(貴州)성에도 내년 개점을 앞두고 있다. 첸 대표는 “향촌 진흥 전략에 따라 시골에는 정부가 서점을 지어준다”며 “외지에서도 젊은이들이 시골 서점을 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첸 대표는 중국에서 거의 매일같이 새로운 서점이 문을 열고 있으며, 질적으로도 도약하고 있다고 했다. 정부가 전 국민 독서를 대대적으로 장려하면서 서점 개업을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것. 그는 서점은 “정신의 안식처를 찾아 떠도는 ‘이향인(異鄕人)’의 고향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포럼에는 일본 도쿄, 오사카에 있는 어린이 책 전문서점 ‘크레용하우스’를 운영하는 오치아이 게이코(落合惠子·73) 대표도 참석했다. 1976년 문을 연 크레용하우스는 좋은 책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베스트셀러도 안 판다. 또 일단 팔기로 결정하면 잘 안 팔려도 반품하지 않고 오래 진열한다. 여성을 위한 공간과 페미니즘, 평화 등을 주제로 한 도서도 구비돼 있다. 여행객이 ‘가보고 싶은 일본 서점’을 꼽을 때 빠지지 않는다. 반전(反戰), 차별 반대 운동에도 적극적인 오치아이 대표는 “우리 서점이 책을 매개로 소수민족이나 여성을 비롯한 ‘타자(Others)’들이 목소리를 내고, 자신을 소중한 존재로 바라보고 의견을 나누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치아이 대표는 서점이 추구하는 목표와 안정적인 경영을 어떻게 조화시키느냐고 묻자 “한 번도 조화가 된 적이 없다(웃음). 42년 동안 (에세이 집필 등) 다른 데서 번 돈으로 적자를 충당해 왔다”며 “우리 서점이 다음 세대인 어린이들이 책이라는 존재에 대해 계속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파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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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 보수의 위기, 모든 계층 감싸는 영국식 보수주의로 극복해야”

    《 국내 대표적 영국사 연구자인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65)의 연구실 서가는 듬성듬성 이가 빠진 듯했다. 40여 년의 연구 생활을 마치고 지난달 정년퇴임한 박 교수는 책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대표적 보수 성향 지식인인 그를 서울 관악구 서울대 연구실에서 18일 만났다. 》  “보수주의의 핵심은 각자 자기 위치에서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보상받고, 공동체를 위해 애쓰며 너무 개인주의로 빠져들지 않는 것입니다. 잘하는 사람에게 수월성(秀越性)의 대가를 인정해주면 전체의 몫이 커지죠. 그러면서 못하는 사람을 감싸 안는 겁니다. 우리나라 보수정당은 바로 감싸 안는 데서 많이 모자라요.” 6월 지방선거에서 보수 야당이 궤멸에 가까운 성적표를 낸 뒤 100일가량이 흘렀다. 지난해 ‘정당의 생명력: 영국 보수당’(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을 출간한 박 교수는 자연스럽게 ‘한국 보수의 위기’ 이야기를 꺼냈다. 영국 보수당이 200년 가깝게 당명을 유지하며 꾸준히 국민의 선택을 받아 온 힘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쉽다. ‘노동당은 노동계급만의 정당이지만 보수당은 모두의 정당’이라고 내세운다. 그게 오늘날까지도 호소력을 갖는다”고 말했다. “19세기 후반 영국 노동계급은 상층부부터 참정권을 갖기 시작했어요. 당시 보수당의 리더였던 벤저민 디즈레일리(1804∼1881)가 노동자들을 보수주의로 끌어들입니다. 열심히 일한 이에게 보상하는 사회를 만들고, 애국심과 공동체 의식을 심어준 거예요. 이게 디즈레일리 이후 150년 동안 보수당의 일관된 전략입니다. 한데 우리나라 보수당은 기득권과 엘리트 계층만 대표하는 것처럼 돼 있죠? 그러면 안 됩니다.” 박 교수는 좌파 정당이 계층 등으로 국민을 분리하고 약자를 위한 정부를 표방한다면, 보수당은 모든 사람을 아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느 계층이든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는 것. 최근 박 교수는 자신의 영국사 연구를 응축한 ‘제국의 품격’(21세기북스·2만5000원)을 냈다. 부제는 ‘작은 섬나라 영국은 어떻게 세계를 지배했는가’. 부제목이 너무 ‘제국주의적’이라고 농담을 건네자 “출판사에서 단 제목인데,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며 “강조하고픈 건 영국이 근대적 제도의 기반을 닦고 산업혁명을 일으킨 과정”이라고 말했다. 책은 먼저 근대 영국이 만든 법과 제도를 강조한다. 영국은 개인의 재산권을 확립하고 보장하면서 제임스 와트(1736∼1819) 같은 이들이 기술을 개발하고 특허를 출원해 경제적으로 보상받는 구조를 잘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기술자들의 등장에는 측정과 관찰, 경험적 증거를 중시하는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과 창의적이고 자유로운 사고의 장을 연 개신교 정신이 배경에 깔려 있다. 박 교수는 “영국인들은 지식과 과학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의 삶을 더 낫게 만드는 것이라는 데 공감했다”며 “과학자와 기술자가 사회적 신분을 건너뛰어 동아리를 만들어 함께 실험하고 토론하는 독특한 문화가 영국에는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인터뷰 중 사회 발전에 있어서 엘리트 리더십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대중의 잠재력이 있어도 허무하게 스러진 것이 굉장히 많아요. 영국에서 1830, 40년대 노동자들이 정치권력을 획득하려는 ‘인민헌장’ 운동에도 수백만 명이 참여했지만 제대로 규합하고 이끄는 지도자가 없어 결국 실패했지요.” 보수적 역사 인식을 설파하는 박 교수지만 유학시절만 해도 좌파에 가까웠다. 그는 1978년부터 미국 스토니브룩 뉴욕주립대에서 저명 보수주의 학자인 버나드 세멀 교수(1928∼2008) 아래서 공부했다. “당시에는 교수님이 가르치는 것마다 모두 마음에 안 들었지요. 논문 자료 수집차 영국에 갔다가 마르크스주의 역사가인 에릭 홉스봄 교수(1917∼2012)를 만나 노동사 연구에 푹 빠졌습니다. 홉스봄 교수는 돌아가실 때까지 영국 공산당을 떠나지 않고 좌파 정치활동을 했지만 저작에서는 마르크스주의를 도식적으로 적용하지 않았어요.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요.” 박 교수는 거대 담론과 도식으로 역사를 보는 것에 회의적이다. 역사 연구는 인간의 다양한 면모를 찾아내는 게 1차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근대는 ‘자유’를 매개로, 목표로 하는 제도입니다. 대부분 영국에서 생겨나 퍼져나갔습니다. 수많은 영국의 ‘최초’들이 어떤 상황에서 가능했는지 돌아봤으면 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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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도서 미역 따고…’ 거문도 주민들의 기록 찾았다

    “거문도 사람들은 독도에서 미역도 따고 가지어(可支魚·강치)를 포획하여 기름을 내어 농가의 수용에 긴요하게 쓴다.” 거문도(전남 여수시 삼산면)에서 평생을 산 김병순 옹(1915∼2010)이 남긴 기록이다. 영남대 독도연구소는 올 초 거문도 현지를 조사한 결과 거문도 주민들이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독도에서 어렵 활동을 했다는 기록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호남 어민이 독도로 출어를 나간 것은 독도 영유권과 관련돼 있다. 우리 학계에서는 전라도 남해안 지역에서 돌섬을 ‘독섬’이라고 부르는데, 이 지역 어민들이 독도로 출어하면서 독도의 어원이 됐다고 본다. 이 시기 거문도와 초도의 주민들이 독도로 가서 어렵 활동을 했다는 건 구술을 통해서 알려져 있지만 관련 기록은 없었다. 박지영 독도연구소 연구교수는 “김 옹의 기록에서는 독도에서 채취한 미역 등을 배로 실어와 국내 농가에 판매했다는 것까지 알 수 있다”며 “주민이 직접 기록한 자료가 확인된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강치 기름은 주로 농가에서 등유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소가 김 옹의 아들 태수 씨(76)를 통해 입수한 이 기록에는 거문도와 인근 초도 등 주민들의 생활사와 관련해 울릉도 독도에 관한 여러 귀중한 기억이 담겨 있다. 기록광인 김 옹은 본인이 인지하고 있는 사실과 주민들로부터 들은 내용을 1960년대부터 기록했다. “거문도인들은 1800년대에 울릉도를 왕래하여 본도의 생산물인 미역 약초 등을 운반했었다. … 도민들은 원목을 선박용으로 벌채할 때는 독기(도끼)로 반경(半徑)쯤 찍어서 높은 끝에 줄을 매고 몇 사람이 잡아당기면 통나무의 반쪽이 갈라진다. 일본인들이 들어와서 톱을 써서 도벌(盜伐)을 해간다고 한다.” 김 옹은 거문도 주민들이 울릉도에서 가져온 목재를 사용해 만든 주택과 함지박의 사진도 남겼다. 박 연구교수는 “거문도 주민들이 울릉도에 다녀왔다는 물증”이라고 설명했다. 여수와 순천 지역민들이 조선시대 울릉도와 독도에서 어로 활동을 했다는 건 1693년 안용복 등이 일본으로 납치됐을 때의 진술에도 나온다. 안용복은 당시 울릉도로 건너가게 된 경위를 말하면서 울릉도에서 배 3척이 조업하고 있었는데 그중 1척이 순천의 배라고 했다. 숙종실록도 안용복이 1696년 일본으로 도항했을 때 일행 가운데 ‘순천승(順天僧)’ 5명이 포함됐다고 기록했다. 독도연구소는 김 옹이 남긴 자료 원본을 사진으로 촬영해 ‘울릉도·독도 관련 거문도 자료 Ⅰ,Ⅱ’(도서출판 선인)로 최근 간행했다. 20일 오후 2시에는 여수시 오동도로 마띠유호텔에서 출간 기념 세미나를 연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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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최근 20년간 대출 상위 도서 키워드는 ‘사람-세계-시작-자신-사랑’

    최근 20년 동안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는 8·15 광복 뒤 이념 갈등과 전쟁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나타났다. 이는 본보가 도서관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도서관 정보나루’와 함께 1999년부터 올 8월까지 이뤄진 도서 대출 9억6600만 건을 분석한 결과다. ‘도서관 정보나루’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예산 지원으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개발해 201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도서관 이용자들은 소설을 특히 많이 빌렸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을 비롯해 상위 1∼6위가 모두 소설이다. 권정생(1937∼2007)의 동화 ‘강아지똥’, 혜민 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10위 안에 들었다. 서점가 베스트셀러가 신간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 데 비해 도서관 빅데이터는 꾸준히 읽히는 책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많이 빌려간 도서(초중고교 참고서 제외) 목록 추이에서는 독자들의 ‘마음’이 얼핏 엿보인다. 4년 단위로 나눠 살펴보니 1999∼2002년에는 빈부를 대비해 삶의 모순성을 그린 소설 ‘모순’(양귀자), 팔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의지를 잃지 않았다는 에세이 ‘오체 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 췌장암에 걸린 아버지를 소재로 한 소설 ‘아버지’(김정현) 등이 각각 대출 순위 1∼3위를 차지했다. 책 ‘베스트셀러 30년’을 펴냈던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의 불경기와 직장에서 밀려난 가장 등 어두운 현실이 반영된 책,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책이 상위에 랭크됐다”고 해석했다. 2003∼2006년에는 상상력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팩션’의 유행을 이끈 ‘다빈치 코드’(댄 브라운)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가 1, 2위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출도서 목록에도 여파를 남겼다. 2007∼2014년에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힐링 자기계발서’로 등장한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등이 5위권 안에 들었다. 한 소장은 “2007년 등장한 ‘88만 원 세대’ 담론과 함께 큰 성공을 바라기보다 작은 행복이라도 유지하길 바라는 청년의 마음, 금융위기 이후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도 고독한 개인의 처지가 목록에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2015∼2018년에는 ‘아들러 심리학’ 붐을 일으킨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와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 ‘채식주의자’(한강) 등이 많이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관 정보나루’ 알고리즘이 추출한 20년간 대출 상위 1∼100위 도서의 핵심 키워드로는 ‘사람’ ‘세계’ ‘시작’ ‘자신’ ‘사랑’ 등이 꼽혔다. ‘도서관 정보나루’는 2018년 9월 현재 전국 도서관 845곳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공공도서관 1000여 곳 가운데 600여 곳이 포함돼 있다. 이 데이터는 도서관에 비치할 도서를 구매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하며, 이용자들에게 지역별 성별 연령별 인기 대출 도서를 알려주는 데도 쓰인다. 김혜선 KISTI 책임연구원은 “참여 도서관을 확대하고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모으는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민간 데이터와 연계해 분석하면 활용 분야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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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설 ‘피네간의 경야’ 세 번째 번역 출간

    아일랜드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1882∼1941)가 17년간 집필한 역작 ‘피네간의 경야’가 한국어로 세 번째 번역 출간됐다. ‘복원된 피네간의 경야’(4만8000원·어문학사)를 낸 김종건 고려대 명예교수(84·사진)는 전화 통화에서 “제임스 조이스 문학을 전공한 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함께 ‘피네간의 경야’를 읽는데, 4시간 동안 4쪽 정도 진도가 나갔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2002년 처음으로 이 책을 번역한 뒤 2012년 개역에 이어 다시 한번 출간했다. 이번에는 2014년 펭귄 출판그룹이 내놓은 ‘The Restored Edition of Finnegans Wake’를 토대로 했다. 잘못된 철자와 구두점, 누락된 어귀 등 약 9000개의 오류를 바로잡아 낸 판본이다. 김 교수는 1973년 조이스 연구센터가 있는 미국 털사대에서 네덜란드의 리오 크누스 교수로부터 ‘피네간의 경야’를 배우기 시작했다고 했다. 40년 이상 이 책의 연구와 번역에 매달린 셈이다. 김 교수는 역자 서문에서 “기존 번역에서 읽기 어려운 한자나 표현이 맞지 않는 신조어를 다수 지우고, (일부) 한자 조어를 한글로 해체함으로써 산문화했다”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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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최근 20년간 독자들이 도서관서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는?

    최근 20년 동안 도서관에서 가장 많이 대출한 도서는 8·15해방 뒤 이념갈등과 전쟁을 다룬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으로 나타났다. 이는 본보가 도서관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 ‘도서관 정보 나루’와 함께 1999년부터 올 8월까지 이뤄진 도서 대출 9억6600만 건을 분석한 결과다. ‘도서관 정보 나루’는 국립중앙도서관의 예산 지원으로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이 개발해 2016년부터 운영하고 있는 시스템이다. 분석 결과에 따르면 도서관 이용자들은 소설을 특히 많이 빌렸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 지음),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히가시노 게이고)을 비롯해 상위 1~6위가 모두 소설이다. 권정생(1937~2007)의 동화 ‘강아지똥’, 혜민 스님의 에세이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도 10위 안에 들었다. 서점가 베스트셀러가 신간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는데 비해, 도서관 빅데이터는 꾸준히 읽히는 책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많이 빌려간 도서(초중고 참고서 제외) 목록 추이에서는 독자들의 ‘마음’이 얼핏 엿보인다. 4년 단위로 나눠 살펴보니 1999~2002년에는 빈부를 대비해 삶의 모순성을 그린 소설 ‘모순’(양귀자), 팔다리 없이 태어났지만 의지를 잃지 않았다는 에세이 ‘오체 불만족’(오토다케 히로타다), 췌장암에 걸린 아버지를 소재로 한 소설 ‘아버지’(김정현) 등이 각각 대출 순위 1~3위를 차지했다. 책 ‘베스트셀러 30년’을 펴냈던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위기 이후의 불경기와 직장에서 밀려난 가장 등 어두운 현실이 반영된 책, 고난을 이겨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담긴 책이 상위에 랭크됐다”고 해석했다. 2003~2006년에는 상상력이 강조되는 사회 분위기와 함께 ‘팩션’의 유행을 이끈 ‘다 빈치 코드’(댄 브라운)와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나무’가 1, 2위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대출도서 목록에도 여파를 남겼다. 2007~2014년에는 소설 ‘엄마를 부탁해’(신경숙)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공지영), ‘힐링 자기계발서’로 등장한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등이 5위권 안에 들었다. 한 소장은 “2007년 등장한 ‘88만 원 세대’ 담론과 함께 큰 성공을 바라기보다 작은 행복이라도 유지하길 바라는 청년의 마음, 금융위기 이후 가족이란 울타리 속에서도 고독한 개인의 처지가 목록에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2015~2018년에는 ‘아들러 심리학’ 붐을 일으킨 ‘미움 받을 용기’(기시미 이치로)와 맨부커상을 받은 소설 ‘채식주의자’(한강) 등이 많이 대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도서관 정보 나루’ 알고리즘이 추출한 20년간 대출 상위 1~100위 도서의 핵심 키워드로는 ‘사람’ ‘세계’ ‘시작’ ‘자신’ ‘사랑’ 등이 꼽혔다. ‘도서관 정보 나루’는 2018년 9월 현재 전국 도서관 845곳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공공도서관 1000여 곳 가운데 600여 곳이 포함돼 있다. 이 데이터는 도서관에 비치할 도서를 구매할 때 참고 자료로 사용하며, 이용자들에게 지역·성·연령별 인기 대출 도서를 알려주는데도 쓰인다. 김혜선 KISTI 책임연구원은 “참여 도서관을 확대하고 더욱 정확한 데이터를 모으는 체제를 구축하는 한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민간 데이터와 연계해 분석하면 활용 분야가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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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평범해서 특별한… 뒷골목에서 만난 ‘인생’

    책에 등장하는 이들은 다들 평범하고, 주변에 있을 법한 이웃이다. 일본의 명문대를 졸업한 ‘루이스’는 음식점이나 술집에 가면 종업원을 가능한 한 배려한다. 새벽에 일하는 종업원을 보면 접시라도 대신 닦아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자신이 취업할 때쯤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일어났고, 혹독하게 일을 시키는 음식 체인점에 간신히 취업했다가 고생했던 기억 때문이다. ‘리카’도 그렇다. 결혼하고 싶은 사람과 함께 조상 무덤에 성묘하러 갔다가 “나중에 함께 묻히면 좋겠다”는 말을 듣고 날아오를 것처럼 기뻐했다. ‘마유’는 고교 시절 주변 사람들로부터 주목받는 ‘절친’을 질투했던 기억이 있다. ‘요시노’는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이혼한 전남편이 자신 명의로 빌린 돈을 갚기 위해 낮에 파트타이머로 일한다. ‘니시나리’는 조선소 직공, 막노동꾼, 배달, 용접공, 경비원을 비롯해 안 해본 일이 없다. 각자 다소 ‘특이한’ 점도 없지는 않다. 루이스는 일본계 남미인으로 청소년기에 부모를 따라 일본에 온 동성애자다. 마유는 음식을 씹기만 하고 뱉는 섭식 장애를 겪었다. 리카는 트랜스젠더로 바에서 쇼를 한다. 요시노는 밤에는 출장 마사지사로 일하며 성매매를 한다. 니시나리는 공원에 텐트를 치고 노숙을 오래 했다. 일본의 사회학자와 그 제자인 대학원생들이 이들을 인터뷰한 내용이 책에 담겼다. 정확히는 인터뷰한 내용‘만’ 담겼다. 저자는 특정한 이론적 틀로 이들의 삶을 섣불리 재단하고 해석하려 들지 않는다. “니시나리의 삶을 망가뜨린 주요인은 도박과 사채”라는 식으로 몰고 가지 않는다는 얘기다. 다만 화자가 더 말할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 나간다. 책은 독자가 마치 만화 ‘심야식당’의 한구석 자리에서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그렇다고 인터뷰 내용이 푸념 같은 개인적 맥락에서 그치는 것도 아니다. 이를테면 니시나리가 생활보호 제도를 ‘복지 맨션’(일본에서 전문가나 자원봉사자의 지원을 받아 운영되는 지역 사회의 맨션)에 와서야 처음 알았다는 것, 이후 맨션은 대형화됐지만 오히려 커뮤니티는 무너졌다는 것, 소비자금융이 너무 쉽게 돈을 빌려준다는 것 등 제도적 문제 역시 화자의 말 속에서 자연스레 그 편린을 드러낸다. 소수자의 삶에 대한 호기심 내지 동정이 책을 펼치도록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책 속의 그들은 리카의 말처럼 “쓸쓸하지만 스스로를 타이르면서 강하게 살아온 이들”이다. 요시노는 “아이들이 있으니까 이런 일도 하고 있는 거죠”라고 했다. 오롯이 담긴 소수자의 목소리가 편견을 조금씩 무너뜨린다. “보통 사람들도 섹스 측면에서 특별한 버릇이 있기도 하잖아. …스트레이트한 사람(이성애자)들은 우리와 분리되고 싶어 하지만, 내가 볼 때는 ‘도긴개긴’이야. 그렇지 않아?”(리카) 일본 리쓰메이칸대 교수인 저자는 오키나와 사람의 노동력 이동과 정체성, ‘부라쿠민(部落民)’이라고 불리는 하층민에 대한 차별 등을 연구했다. 2016년 낸 ‘단편적인 것의 사회학’은 국내에도 번역 출간돼 꽤 화제를 모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출간 순서가 바뀌었지만 일본에서는 ‘거리의 인생’이 이보다 앞선 2014년에 나왔다. “우리가 공상으로 그려 내는 세계보다 감추어진 현실이 훨씬 더 심오하다.”(야나기다 구니오의 ‘산의 인생’에서) 읽다 보면 머리말에 인용된 이 글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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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미국 대선 자금 모금엔 어떤 데이터 필요했을까

    수식 없이 데이터 분석을 쉽게 설명한 입문서다. 미국 시카고대 공공정책대학원 교수가 썼다. ‘무작위비교시행(RCT)’, ‘회귀불연속설계법(RD디자인)’, ‘집군 분석’…. 저자가 소개하는 데이터 분석 방법이다. 무시무시하게 어려워 보이는 명칭이지만 겁먹을 건 없다. RCT는 집단을 무작위로 나눠 하는 실험이다. 예를 들어 전기요금을 올리면 사람들이 전기를 아낄지 알아보려면 요금을 올린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의 행동을 비교해야 하는데, 이때 두 집단을 무작위로 나눠야 한다. 그래야 다른 원인이 결과에 편향을 만드는 걸 막을 수 있다. RD디자인은 인위적인 실험을 할 수 없을 때 실험과 비슷한 상황을 이용해 인과관계를 분석하는 방법이다. “일본에서 70세를 경계로 병원을 찾는 환자 수가 급격히 많아지는 이유는 70세에 의료비 본인부담금이 갑자기 낮아지기 때문이다”와 같은 문제를 증명할 때 사용된다. 이 같은 급격한 변화에 다른 변수가 영향을 준 게 아니라는 걸 검증한다. 책은 데이터에서 원인과 결과를 밝혀내는 방법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그래프만 가지고 설명한다. 저자는 데이터 분석을 초밥 장인의 작업에 비유했다. 훌륭한 재료(양질의 데이터)와 장인의 칼솜씨(분석)가 모두 필요하다는 것. 미국의 대선 자금 모금부터 첨단 기업의 마케팅까지 데이터 활용이 필수가 된 시대다. 꼭 초밥을 직접 만들지 않더라도 그 맛을 음미하기 위해 장인의 칼솜씨를 알아보는 눈을 키우려는 이들에게 ‘딱’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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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화문 서재]빵과 평화

    이른 아침 광화문네거리 비둘기들이 잠시 빈 도로를 차지했다가 이내 날아갑니다. 왠지 노래 ‘정동진1’(박은옥 정태춘)이 떠올랐습니다. ‘그리운 것이 저리 멀리 아니 가까이….’ 소중한 건 잡힐 듯 잡히지 않네요. 신간 ‘서울 평양 스마트 시티’(민경태 지음·미래의 창)는 “북한을 4차 산업혁명의 중심으로 만들자”는 혁신적인 상상력을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지부진한 북핵 폐기 탓에 ‘저기 멀리’ 있는 이야기처럼 들려옵니다. 주요 이슈의 무게중심이 ‘적폐 청산’과 평화에서 경제와 부동산으로 이동했습니다. 1917년 러시아 민중이 ‘빵과 평화’를 간절히 원하며 혁명이 일어났지요. 요즘 우리 사회는 안보 위협의 체감도는 이전 같지 않고, ‘빵’은 더욱 중요해진 듯 보입니다. ‘빵’이 ‘집과 양질의 일자리’로 바뀐 것뿐이죠. 이번 주에도 ‘나를 위로하자’는 주제의 신간이 열 권 가까이 눈에 띄는 것도 그와 관련 있을 겁니다. 평화를 위해서라면 독재자와 협상하는 것도 가능한 선택지라고 봅니다. 그 이니셔티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집값 급등을 해결하고 멀어져가는 민심을 돌려세워야 할 겁니다. ‘북핵 폐기와 경제건설의 병진’ 노선이 절실합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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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장 뒷받침된 복지로 가야 무리 없어”

    “우리 사회는 경제 발전 정도에 비해 복지 수준이 뒤져 있는 편입니다. 정부가 국민들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기 위해 더 노력을 해야 합니다. 경제 형편이 어려운 계층의 소득 보장에 힘쓰면서 인적 자원에 투자하는 복지정책을 펴서 노동의 부가가치를 올려야 합니다.” 김영삼 정부에서 교육부 장관, 노무현 정부에서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겸 부총리로 일했던 안병영 연세대 명예교수(77)가 제자인 정무권(연세대) 신동면(경희대) 양재진 교수(연세대) 와 함께 연구서 ‘복지국가와 사회복지정책’(다산출판사·사진)을 최근 냈다. 강원 고성군에서 농사와 연구를 병행하고 있는 그를 4일 전화로 만났다. 안 교수는 최근 이슈가 된 ‘국민연금 개혁’에 대해 “지금은 ‘저부담 중급여’지만 앞으로 ‘중부담 중급여’로 가야 한다”며 “받는 수준은 지금과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되,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정부는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더 내고, 더 받는’ 방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안 교수는 “연금개혁은 인기가 없는 정책이다. 서구에서도 많은 정부가 다음으로 미루고자 했고, 쉽게 개혁에 성공한 나라는 없다. 시간을 끌다가 시기를 놓친 나라도 많다”며 “그러나 어느 정부인가는 반드시 해야 하고, 빠를수록 좋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책에서 앞으로 복지 급여뿐 아니라 사회 서비스의 확대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노인·영유아 돌봄 서비스와 같은 것을 말한다. 안 교수는 “한국의 복지는 소득 보장 측면에서는 일정 단계에 진입하고 있는데, 사회 서비스는 뒤처져 있다”고 지적했다. ‘복지국가와…’는 역사적 측면에서,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 한국의 사회복지가 어디쯤 와 있는가를 다룬 책이다. 책은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나 사회복지 정책이 쟁점으로 부상할 때 논의가 실용적, 실질적 정책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함께 탄탄한 소득 보장 제도를 확립하고, 시민들이 변화하는 노동시장의 수요에 부응할 수 있게 성인들에게 교육과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안 교수는 “그러나 국민 합의도 없이, 좌우파의 고정된 이념에 따라 방향이 정해지면 정책적인 뒷받침을 못한 채 허둥댄다”고 비판했다.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지향하는 국가나 우파는 복지가 독이 된다며 효율성만 강조합니다. 반대로 옛 유럽의 사민주의 나라나 좌파는 경제 발전이 복지를 견인하는 건 생각지 않고 ‘복지 급여’를 통한 평등의 실현에만 중점을 두는 경향이 있어요. 양쪽 다 무리한 생각입니다.” 안 교수는 한국 사회가 ‘사회투자적 복지국가’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사회투자적 복지국가란 인적 자원 투자를 계속해 성장과 고용을 유지하면서, 적정 수준의 소득 보장을 통해 구성원의 삶을 안정시키는 걸 병행하는 구조를 일컫는다. 그는 “블레어 전 영국 총리의 ‘제3의 길’이나, 슈뢰더 전 독일 총리의 신중도 노선처럼 적정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 2018-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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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득이’ 와 ‘먹깨비’의 추억… 2040, ‘액체괴물’에 푹 빠지다

    《 ‘아, 이 쫀득한 것은 무엇인가, 이 알록달록하고 부드럽고 잘 늘어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왠지 반가운 느낌이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어슴푸레하고 희미하게 뇌 속의 뭔가를 자극하는 감각이다. 서울 마포구의 ‘슬라임’ 카페 ‘릴리데이지’에서 1일 기자는 얼토당토않게도 백석(1912∼1996)의 시 ‘국수’를 떠올렸다. 말랑말랑하고 잘 늘어나는 장난감 슬라임과 국수는 묘하게 닮았다. 찰지면서도 심심한 느낌이 푸근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카페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해 봤다. 양푼에 물풀을 붓고 ‘액티’(베이킹소다를 물에 녹인 것이라고 직원이 설명했다)를 넣은 뒤 주걱으로 젓는다. 콘택트렌즈 세척액을 조금 넣고 다시 저으면 기본 슬라임이 완성된다. 여기에 원하는 향이나 색소, ‘토핑’(슬라임 안에 넣도록 만들어진 구슬 모양 등의 작은 플라스틱. ‘파츠’라고도 한다)을 더하면 된다. 》 ○ “‘키덜트’족이 눈치 안보는 시대” 40대라면 말캉말캉한 촉감에, 던지면 벽에 달라붙던 어릴 적 장난감 ‘먹깨비’가 떠오를 것이다. 20, 30대라면 풍선 속에 녹말가루가 들어있는 ‘만득이’를 추억할 수도 있다. 슬라임은 유행한 지 좀 된 아이들 장난감이지만 최근 아이들을 넘어 ‘키덜트’족의 놀잇감으로 떠올랐다. 기자가 방문한 ‘릴리데이지’ 카페도 성인끼리 오는 이들이 전체 손님의 20%가량 된다고 했다. 이날도 20대 남녀 커플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때 문방구에서 파는 ‘액체괴물’이 있었거든요. 그것과 같아요. 추억도 떠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고 놀면 한두 시간이 금방 갑니다. 아이들만 갖고 놀기에는 아까운 아이템이죠.”(황은선 씨·21) “보기에도 예쁘고 이렇게 슬라임에 토핑을 많이 넣으면 주무를 때 ‘빠지직’ 하고 크게 소리가 납니다. 독특한 쾌감이 있지요.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모두 자극하는 장난감이에요.”(김예찬 씨·21) 황 씨는 “풀이나 토핑을 따로 사서 자신만의 슬라임을 만들고 노는 친구가 적지 않다”고 했다. ‘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은 몰두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안정감과 쾌감을 느낍니다. 슬라임을 갖고 노는 건 이 같은 ‘자기 통제’ 느낌과 관련이 있어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으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슬라임의 특성이 스트레스를 낮춰 준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통제할 수 없는 것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장난감으로 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라임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계란 모양의 초콜릿 속에 장난감이 들어있는 과자를 개봉하면서 어떤 장난감이 나오는지 계속 보여주는 콘텐츠도 인기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별로 없다”며 “슬라임 카페는 키덜트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원하는 걸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안전하게 갖고 놀려면… 슬라임 카페가 성업 중이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슬라임을 만들다가 손이 빨갛게 변했다거나 피부염이 생겼다는 이들도 있다. 슬라임이 젤 같은 특성을 갖게 하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인 붕사도 문제가 된다. 붕사는 물에 녹으면 강한 염기성을 띤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붕사는 만진다고 해서 바로 탈이 나지는 않지만 피부가 민감한 이들은 장시간 만지면 피부가 붓거나 빨갛게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슬라임 카페는 붕사 대신 렌즈 세척액을 넣어 슬라임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붕사가 없을까. 이 교수는 “미국에서 만드는 렌즈 세척액에는 붕산이나 붕사를 보존제로 소량 첨가하지만 그 자체로 인체에 위험한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슬라임을 만들며 여러 화학물질이 섞이면 서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는 알 수 없다. 이 교수는 △슬라임을 맨손으로 너무 오래 갖고 놀지 말고 △슬라임을 만진 손을 입에 넣거나 눈을 만지지 말고 △놀 때 비닐장갑을 끼는 게 좋다고 권했다. 조종엽 jjj@donga.com·신규진 기자}

    • 2018-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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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캉말캉·‘빠지직’에 쾌감…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 들여다보니

    ‘아, 이 쫀득한 것은 무엇인가, 이 알록달록하고 부드럽고 잘 늘어나고 심심한 것은 무엇인가.’ 왠지 반가운 느낌이 손바닥에서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어슴푸레하고 희미하게 뇌 속의 뭔가를 자극하는 감각이다. 서울 마포구의 ‘슬라임’ 카페 ‘릴리데이지’에서 1일 기자는 얼토당토않게도 백석(1912~1996)의 시 ‘국수’를 떠올렸다. 말랑말랑하고 잘 늘어나는 장난감 슬라임과 국수는 묘하게 닮았다. 찰지면서도 심심한 느낌이 푸근한 정서를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말이다. 카페 직원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해 봤다. 양푼에 물풀을 붓고, ‘액티’(베이킹소다를 물에 녹인 것이라고 직원이 설명했다)를 넣은 뒤 주걱으로 젓는다. 콘택트렌즈 세척액을 조금 넣고 다시 저으면 기본 슬라임이 완성된다. 여기에 원하는 향이나 색소, ‘토핑’(슬라임 안에 넣도록 만들어진 구슬 모양 등의 작은 플라스틱, ‘파츠’라고도 한다)을 더하면 된다. ●“‘키덜트’족이 눈치 안보는 시대” 40대라면 말캉말캉한 촉감에, 던지면 벽에 달라붙던 어릴 적 장난감 ‘먹깨비’가 떠오를 것이다. 20, 30대라면 풍선 속에 녹말가루가 들어있는 ‘만득이’를 추억할 수도 있다. 슬라임은 유행한지 좀 된 아이들 장난감이지만 최근 아이들을 넘어 ‘키덜트’족의 놀잇감으로 떠올랐다. 기자가 방문한 ‘릴리데이지’ 카페도 성인끼리 오는 이들이 전체 손님의 20% 가량 된다고 했다. 이날도 20대 남녀 커플이 눈에 띄었다. “초등학생 때 문방구에서 파는 ‘액체괴물’이 있었거든요. 그것과 같아요. 추억도 떠오르고, 아무 생각 없이 만지작거리고 놀면 한두 시간이 금방 갑니다. 아이들만 갖고 놀기에는 아까운 아이템이죠.”(황은선 씨·21세) “보기에도 예쁘고 이렇게 슬라임에 토핑을 많이 넣으면 주무를 때 ‘빠지직’하고 크게 소리가 납니다. 독특한 쾌감이 있지요. 시각 청각 촉각 후각을 모두 자극하는 장난감이에요.”(김예찬 씨·21세) 황 씨는 “풀이나 토핑을 따로 사서 자신만의 슬라임을 만들고 노는 친구들이 적지 않다”고 했다. ‘다 큰 어른이 뭐하는 짓’이냐고? “사람은 몰두하고,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다고 느낄 때 안정감과 쾌감을 느낍니다. 슬라임을 갖고 노는 건 이 같은 ‘자기 통제’ 느낌과 관련이 있어요.”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손으로 쉽게 변형할 수 있는 슬라임의 특성이 스트레스를 낮춰준다고 말했다. 그는 “세상에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생기는 상실감과 스트레스를 장난감으로 푸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슬라임 뿐만이 아니다. 유튜브에서는 계란 모양 초콜렛 속에 장난감이 들어있는 과자를 개봉하면서 어떤 장난감이 나오는지 계속 보여주는 콘텐츠도 인기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어른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별로 없다”며 “슬라임 카페는 키덜트들이 오프라인으로 나와 원하는 걸 즐길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안전하게 갖고 놀려면… 슬라임 카페들이 성업 중이지만 안전에 대한 우려는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슬라임을 만들다가 손이 빨갛게 변했다거나 피부염이 생겼다는 이들도 있다. 슬라임이 젤 같은 특성을 갖게 하기 위해 첨가하는 물질인 붕사도 문제가 된다. 붕사는 물에 녹으면 강한 염기성을 띤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붕사는 만진다고 해서 바로 탈이 나지는 않지만 피부가 민감한 이들은 장시간 만지면 피부가 붓거나 빨갛게 된다”고 말했다. 상당수 슬라임 카페들은 붕사 대신 렌즈세척액을 넣어 슬라임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는 붕사가 없을까? 이덕환 교수는 “미국에서 만드는 렌즈세척액에는 붕산이나 붕사를 보존제로 소량 첨가하지만 그 자체로 인체에 위험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슬라임을 만들며 여러 화학물질이 섞이면 서로 어떤 작용을 일으킬지 여부는 알 수 없다. 이 교수는 △슬라임을 맨손으로 너무 오래 갖고 놀지 말고 △슬라임을 만진 손을 입에 넣거나 눈을 만지지 말고 △놀 때 비닐장갑을 끼는 게 좋다고 권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

    • 2018-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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