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재

장원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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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입사해 사회부 경제부 정치부 등을 거쳤습니다.

취재분야

2025-11-21~2025-12-21
칼럼100%
  • 日 “파병 자위대에 ‘출동경호’ 임무 추가”

    일본의 안보법안이 19일 의회를 통과하자마자 일본 정부가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한 자위대에 동맹국 무력 경호 임무를 새로 맡기는 등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20일 NHK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집단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하는 11개 안보법 시행을 앞두고 아프리카 남수단에 파견된 자위대의 임무에 타국 부대를 무력으로 경호하는 ‘출동 경호’를 새롭게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방위성은 이를 위해 출동 경호 시 휴대할 수 있는 무기의 종류, 활동 범위 등을 논의하는 작업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 자위대는 지금까지 해외 파병 시 동맹국을 위한 보급물자 수송 등 후방 지원 임무를 맡아왔다. 자위대가 직접 공격을 받지 않는 한 근처의 동맹국 군대가 공격을 받아도 지원 사격에 나설 수 없었다. 마이니치신문은 12월 사이타마(埼玉) 현 항공자위대 기지에서 자위대 창설 이후 처음으로 해외에 억류된 일본인 구출을 위한 훈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예전에는 미군 등이 일본인을 구출할 때 차량으로 외국군 수송을 지원하는 훈련만 했다. 일본 정부는 안보법제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후방 지원을 대폭 확충하는 ‘물품·역무 상호제공 협정(ACSA)’ 개정도 서두르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올해 안에 제도 정비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아베 신조 총리는 29일 유엔 총회 연설에 이어 각국 정상과의 회담에서도 안보법의 취지를 설명하고 이해를 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도 총회 기간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회담을 갖고 새 안보제도와 관련해 언급할 것이라고 전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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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석]“日, 한국이 ‘그만 됐다’ 용서할 때까지 사죄의 마음 가져야”

    《 광복 70주년을 앞둔 지난달 12일 한국인들은 처음 보는 한 전직 일본 총리의 모습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서울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찾아 순국선열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큰절로 참배한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68) 전 총리 얘기다. 도쿄(東京)에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8일 그를 찾았다. 1년 8개월 만이었다. 아카사카에 있던 그의 사무실은 일본의 정치 일번지로 불리는 나가타(永田) 정의 한 오피스텔 건물로 이전해 있었다. 맞은편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안보법제 강행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포위한 총리 관저와 의회였다. 건물 로비에 들어서자 왼쪽 우편함에 입주 법인들의 문패가 붙어 있었다. 하지만 하토야마 전 총리 사무실 우편함은 ‘○호실’이라는 숫자 외에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일본에서 ‘국적(國賊)’으로까지 비판받는 하토야마 전 총리 측의 자구책일 터이다. 묘한 긴장감이 느껴졌다. 사무실 입구에서 잠시 기다리자 하토야마 전 총리가 직접 나와 악수를 청했다. 여전히 젊어 보였다. 예정시간을 넘겨 1시간 반가량 이어진 인터뷰 내내 그는 의자 끝에 바짝 당겨 앉아 기자의 눈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답했다. 》진짜 억지력은 군사력 아닌 외교력먼저 서대문형무소 방문 이유부터 들었다. “아베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를 앞두고 우려가 커지고 있던 가운데 이부영 선생의 권유로 방문하게 됐다. 헌화대 앞에 막상 서니 선 채로 참배할 수는 없다는 마음이 들었다. (큰절을) 계획했던 것은 아니다. 대단하게 얘기할 것은 없고 자연스러운 사죄의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일본 국내에서는 국익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있었다. “그런 생각밖에 할 수 없는 사람들이 불쌍하다. 진정 용기가 있다면 우리가 과거 잘못된 행동을 한 것에 대해 솔직하게 사죄하는 기분이 드는 게 당연하다. 일본 사상가 우치다 다쓰루(內田樹)는 ‘무한책임’이라는 말을 쓰는데 상대가 용서해 이제 더는 사과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할 때까지는 사죄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나는 한일 우호 발전이 국익이라고 생각한다. 한국분들이 일본에 하토야마 같은 사람도 있다는 점을 알고 마음이 조금이라도 풀린다면 이는 장기적인 의미에서 (일본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국적이라는 등의 말에 상처받을 일이 전혀 없고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이 불쌍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도 사죄 행보를 이어 왔다. “중국 난징 대학살도 일부 우익이 없었다고 하는데 꼭 가서 직접 보길 바란다. 많은 민간인이 학살됐는데 이를 당시 언론은 좋다면서 선동했다. 이런 현대사를 일본은 너무 가르치지 않아 많은 국민이 모른다. 모르기 때문에 진짜 화해를 못하고 있다.” ―일본 국민 중 우파가 늘어난 것 같다. 확실히 변한 것인가. “일본은 전후 경제 일변도로 성장해 왔으나 최근 20여 년간 갑자기 성장을 멈췄다. 그런 가운데 주변 국가가 점점 발전하는 것을 때로는 질투하게 됐고 그게 이른바 ‘강한 나라’로 보이고 싶다는 정치적 요구로 나타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결코 약한 나라가 아니라 강한 나라라는 허세가 국민 사이에 확산됐다는 것이다.” 인터뷰 시점은 아베 정부가 추진하는 안보법제가 의회에서 논란이 되던 시기였다. 사무실로 가던 길에 택시 안에서 본 안보법제 반대 시위대를 떠올리며 질문을 이어 갔다. ―일본 내 중국 위협론은 어떻게 생각하나. “물론 중국이 군사력을 매년 크게 증강하고 있지만 일본도 중국 위협론을 이용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용인하려 하고 있다. 나는 군사력이 억지력을 높이기보다 긴장을 높여 억지력을 잃게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진짜 억지력이라는 것은 군사력이 아니라 외교력을 얼마나 높이느냐, 아니면 공동체를 얼마나 실현하느냐에 달려 있다.”아베의 ‘가치관 외교’ 틀렸다 ―아베 총리는 ‘가치관 외교’를 앞세우고 있다. “가치관 외교는 가치관이 같은 나라끼리 협력해 가치관이 다른 나라를 억제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가치관이 다른 나라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다름을 인정하고 의견을 나눠 가며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게 인간 사회의 지혜다. 그러므로 가치관 외교의 생각하는 방식이 틀렸다고 생각한다.” 19일 새벽 안보법제가 강행 통과됐다. 비서를 통해 e메일로 소감을 묻자 “분노를 금치 못한다”며 다음과 같은 답이 왔다. “법안에 의회가 견제하는 조항이 있지만 자민당이 중·참의원에서 압도적 의석을 가진 현재 상태라면 무용지물이다. 다만 이번 사태를 통해 국민, 특히 젊은 층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는 등 일본에 새로운 민주주의가 시작되고 있다. 과거 역사를 확실히 청산하고 동아시아의 평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일본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 아베 총리가 ‘가치관 외교’를 외친다면 하토야마 전 총리의 외교 노선은 ‘우애(友愛) 외교’다. 1955년 창당한 자민당 초대 총재를 지낸 조부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전 총리의 ‘공동체’ 사상을 이어받았다는 평가다. 그는 2013년부터 명함의 한자 이름도 ‘由紀夫(유키오)’에서 ‘友紀夫’로 바꿨다. 일본어 발음은 똑같다. ―우애 외교는 조부의 영향인가. “조부가 붓글씨로 우애라는 글자를 자주 써 주셨지만 직접 가르쳐 준 것은 아니다. 나의 출발점은 조부가 ‘자유와 인생’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 니콜라우스 폰 쿠덴호프칼레르기의 책이다(쿠덴호프칼레르기는 유럽 통합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스트리아의 정치인이다. 책의 원제는 ‘전체주의 국가 대 인간’). 20세기는 자유와 평등이 방종에 빠진 자본주의와 전체주의에 빠진 공산주의라는 양 극단이 충돌한 시기다. 이를 극복하고 자유와 평등을 양립시키기 위해 쿠덴호프칼레르기가 주목한 것은 우애다. 그 핵심이 ‘자립과 공생’이다. 국가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으니 주변 국가와 공생해야 한다는 게 우애다. 체제와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고 싫어할 게 아니라 다르기 때문에 서로 좋은 점을 배워 더 좋은 사회를 만들어 나가자는 게 우애다.” 하토야마 전 총리는 정치 명문가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나고도 공학을 전공했다.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그건 50년 전 얘기인데 일본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엔지니어링이나 기술 부문 인재가 요구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에 적합한 인간이 되고 싶었다. 나는 불행하게도 이런(내성적) 성격이기 때문에 정치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로 떠드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흥미를 가진 쪽은 바이오 테크놀로지나 컴퓨터 분야였다.”정치가는 이상을 말해야 ―그런데도 정치인이 됐다. “유학차 미국에 가서 보니 일본이 너무 보이지 않았다. 당시 미국은 건국 200주년을 맞아 자부심을 갖고 있었지만 일본인은 일본인인 점에 그다지 자부심을 갖지 않았다. 일본인이란 게 어떤 의미인가 생각해 나가는 중에 호불호와는 별개로 정치의 세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또 하나는 아내가 ‘나 응원할 거야’ ‘나는 사람 관리에 자신이 있으니 하세요’라고 말해 줬다. 보통은 (남편이) 정치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하면 아내가 반대하는 법인데….” 부인 미유키(辛) 여사는 소문난 한류 팬이다. 지금도 한류 드라마를 즐기는지 물어봤다. “70회나 100회짜리 긴 드라마를 보기 시작하면 하루 종일이다. 요즘은 인터넷으로도 보고 있다. 배우 이서진이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며 즐거워하고 있다.” 다소 자극적인 질문을 마지막에 던졌다. “도련님이랄까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이 많다.” 그는 빙그레 웃었다. “하토야마 가문에서 태어난 데다 (외가 기업인) 브리지스톤 덕에 제법 풍족한 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 ‘도련님’이라고 불릴 만한 응석 같은 게 제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런 비판은 달게 받겠지만 그렇다고 내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졌느냐 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오히려 약자에게 좀 더 많은 빛을 비추는 게 (올바른) 정치다. 지금처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한 자가 더 강하게 되는 일본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풍족한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상주의자라고 불리지만 정치가는 이상을 말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의 일본 정치인은 이상을 너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큰 방향 전환을 할 수 없다.” 인터뷰가 끝나고 “시간을 내줘 고맙다”고 하자 오히려 “여러 가지를 생각할 기회를 줘 고맙다”고 답했다. 짐을 챙겨 사무실을 나오자 배웅하겠다며 복도 엘리베이터 앞까지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다른 사무실에서 한 젊은 여직원이 급히 나오자 황급히 버튼을 눌러 세웠다. 그 여직원이 타자 기자에게 “미안하다. 고맙다”며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허리를 숙였다. 인간 하토야마의 진면목을 보는 기분이었다.하토야마 유키오 前총리는‘일본의 케네디가(家)’로 불리는 정치 명문 하토야마 집안의 장남으로 1947년 2월 도쿄에서 출생. 군부 독재에 반대한 의회 민주주의자였던 하토야마 이치로(鳩山一郞) 전 총리가 조부다. 조부는 1955년 당시 사회주의 세력 확대에 위기감을 느낀 자유주의 진영과 보수 세력이 합당해 결성한 자민당의 초대 총재를 지냈다. 세계적인 타이어업체 브리지스톤 창업자인 이시바시 쇼지로(石橋正二郞)는 외조부다. 도쿄대 공대를 나와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1년 일본 센슈(專修)대 경영학부 조교수를 지내다 정계에 입문해 1986년 자민당 후보 로 중의원 선거에 처음 당선했다. 1993년 자민당을 탈당해 1996년 옛 민주당을 창당했고 2009년 현 민주당으로 정권을 교체해 총리에 올랐다. 집권 당시 전향적인 역사인식으로 한국과 중국의 주목을 받았지만 주일미군 기지인 후텐마 비행장을 미국과의 약속과 달리 오키나와 밖으로 이전한다고 발언하면서 1년 만에 총리에서 물러났다. 2012년 정계 은퇴 뒤로도 우파 정권에 거슬리는 행보를 계속해 ‘우주인’ ‘국적(國賊)’ 등으로 비판받아 왔다. 현재는 자신이 설립한 동아시아공동체연구소에서 이사장으로 일하고 있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장원재 특파원}

    •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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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벌 북카페]일본은 어떻게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되돌아갔나

    일본 자민당은 19일 새벽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11개 안보 관련 법률 제정·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쉽게 말하면 일본이 이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뜻에 따라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 60%가 안보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80%가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수만 명이 국회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통에 자민당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왜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이나’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인은 여론을 의식하기 마련인데 아베 총리는 왜 지지율이 떨어질 게 뻔한 일을 강행한 걸까. 이 책 ‘군사입국에의 야망’을 읽고 나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8월 초 출간된 이 책은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 도쿄대 교수, 야마다 아키라(山田朗) 메이지대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21 사무국장 등 각 분야의 ‘아베 저격수’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모여서 쓴 책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면에서 아베 정권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도움이 됐던 부분은 집단자위권 법안의 배경을 다룬 1장과 아베 총리의 사상적 배경을 알 수 있는 3장이었다. 1장에서 고모리 교수는 올해 아베 총리의 방미를 맞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한 4월 27일을 일본이 ‘전쟁하는 나라로 전환된 날’로 꼽는다. 이후 법안 처리는 아베 총리가 미국에 한 약속을 지키려는 후속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집단자위권 법안이 그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91년 걸프전 당시 평화헌법을 이유로 군사 지원 대신 재정 지원을 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후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해외 파병의 길을 넓혀 왔다. 물론 더 올라가면 무력행사와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에 대한 불만은 전쟁 직후부터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6·25전쟁이 일본에 자위대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일본을 점령했던 미군이 갑자기 6·25전쟁에 투입되면서 질서 유지를 위해 1950년 8월 경찰예비대가 결성됐고 이 조직이 나중에 자위대로 탈바꿈했다. 책에는 우익인사들이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역사를 보여준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배경이 궁금한 이들은 3장을 보면 된다. 다와라 국장은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화된 1990년대 이후 아시아 국가들과의 화해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1993년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 1995년 과거사 사과의 모범으로 불리는 무라야마담화가 나왔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역사수정주의적 색채를 가진 우익이 세력을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난징(南京) 대학살을 부정하고 이 사실이 교과서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 왔다. 고노담화가 나온 1993년 처음 의원 배지를 단 아베 총리는 우익 원로들의 지원 아래 우익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일본회의’ ‘일본의 앞길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 등 각종 우익단체가 그를 지원했고 그 결과 극우세력의 상징적 존재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소속된 의원연맹은 12개에 이르는데 대부분 우익 단체다. 그와 비슷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지금의 아베 내각에 포진해 있다는 분석에 이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책에 따르면 지난해 출범한 아베 3기 내각에서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소속 장관은 19명 중 15명에 이른다. 아베 총리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자리를 채울 후보들은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참고로 책의 2장은 군사 및 무기 분야를 언급하며 일본의 방위 실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4장은 군사 대국화에 대한 재계의 반응을 다루고 있으며 5장은 태평양전쟁 이후 일본이 어떻게 전후 처리를 했는지를 언급한다. 아베 총리는 9월 초 자민당 총재로 재선돼 다시 3년의 임기를 앞두게 됐다. 호불호와는 별개로 그와 그의 세력들을 더 잘 알아야 하는 이유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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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 파병 한국동의’ 규정 불분명

    안보법안이 의회를 통과하자마자 일본 정부가 동맹국 무력 경호를 가능하게 하는 지침을 논의하는 등 준비된 카드를 하나둘씩 꺼내고 있다.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예상된 수순이기는 하지만 주변국들은 일본의 발 빠른 후속 조치를 우려하고 있다. 해외 언론들은 일본이 70년간 지켜온 평화주의 노선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타전했다.○ 안보법제 후속 조치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유엔평화유지활동(PKO)에 참가한 자위대에 무기를 지급했지만 무기 사용은 ‘자위대가 직접 공격을 받을 때’만 가능했다. 하지만 이번에 안보법제 시행을 앞두고 함께 파병된 타국 부대가 공격받을 때 무기를 사용하며 경호하기 위한 지침 마련을 서둘러 논의하고 있다. 집단자위권의 핵심은 이처럼 동맹국 등이 공격을 받을 때 무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를 위한 실험과 대비 작업에는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카타니 겐(中谷元) 방위상은 법안 통과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연구에서 실제 검토 단계로 들어갔다”고 밝혔다.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가 한국의 동의 없이 파병될 수 있다는 논란도 불식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불가능하다”고 밝혔지만 이번에 일본 의회를 통과한 법안에는 동의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나와 있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반도 유사시 일본인 구출이나 미군 지원을 명분으로 한국의 동의 없이 자위대를 보낼 것이라는 우려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일본이 후속 조치를 서두르는 것이 국내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20일 발표된 교도통신의 긴급 여론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0%대로 떨어졌으며 응답자의 80% 이상은 “법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야권 반발도 변수 무라야마 담화의 주인공인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전 총리는 19일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을 무시한 폭거로 용서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일본 도쿄(東京)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안보법제 반대 시위를 주도한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의 중심인물 오쿠다 아키(奧田愛基) 씨가 “(다음) 선거에서 찬성한 의원들을 심판하고 법을 다시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이날 사설에서 “국권의 최고기관인 입법부가 무참한 모습을 드러냈다”며 “입헌주의에 대한 도전이며 국회에 대한 신뢰가 손상됐다”고 지적했다. 소송도 잇달아 제기될 것으로 보인다. 헌법학자들은 새 법이 교전권과 군사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에 어긋난다며 100여 명을 모아 소송을 내겠다고 밝혔다. 야권은 ‘반(反)아베 연대’를 내걸고 후보 단일화 등을 통해 내년 참의원 선거를 준비하겠다는 구상이다. 독자 행보를 이어오던 일본 공산당이 19일 “야권 연대에 동참하겠다”고 밝히면서 논의가 급진전되고 있다. 무력 충돌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자위대 지원자는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니치신문은 20일 “해외에 파견된 자위대의 위험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돼 자위대와 가족들 사이에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아베 총리는 법안 통과 직후 “국민들에게 성실하고 끈기 있게 설명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은 반발, 미국 영국은 환영 일본 안보법안 통과에 대해 각국은 이해관계에 따라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미국 국무부는 “지역과 국제 안보활동에서 더 적극적인 역할을 맡으려 하는 일본의 노력을 환영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필립 해먼드 영국 외교장관은 “일본 의회가 국제 평화와 안보에 더욱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법안을 통과시킨 것을 축하한다”고 말했다고 교도통신은 전했다. 반면 훙레이(洪磊)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19일 법안 통과 직후 “일본이 최근 군사력을 강화하며 안보 정책을 바꾼 것은 평화, 발전, 협력의 시대 조류와 전혀 맞지 않는다”는 논평을 발표했다. 미국의 CNN은 “70년에 걸친 일본 평화주의에 중요한 변화”라며 “미국 같은 동맹국은 환영하지만 주변국 및 일본 국내 여론의 반발, 군비 부담으로 인한 재정 부담 가중으로 아베 정권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권재현 기자}

    • 2015-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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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쟁할 수 있는 나라’…아베, 여론과 다른 법안 강행한 이유?

    일본 자민당은 19일 새벽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한 11개 안보 관련 법률 제정·개정안을 강행 처리했다. 쉽게 말하면 일본이 이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뜻에 따라 ‘전쟁할 수 있는 나라’가 됐다는 뜻이다. 그런데 여론조사를 보면 일본 국민 60%가 안보법안 처리에 반대하고 80%가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매일 수만 명이 국회 앞에서 항의 시위를 하는 통에 자민당을 지지하는 이들 사이에서도 ‘왜 이렇게 무리하게 밀어붙이나’라는 얘기가 나온다. 정치인은 여론을 의식하기 마련인데 아베 총리는 왜 지지율이 떨어질 게 뻔한 일을 강행한 걸까. 이 책 ‘군사입국에의 야망’을 읽고 나면 어느 정도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8월 초 출간된 이 책은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 도쿄대 교수, 야마다 아키라(山田朗) 메이지대 교수, 다와라 요시후미(俵義文) 어린이와 교과서 전국 네트21 사무국장 등 각 분야의 ‘아베 저격수’로 일컬어지는 이들이 모여서 쓴 책이다. 그런 만큼 다양한 면에서 아베 정권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을 접할 수 있다. 특히 개인적으로 도움이 됐던 부분은 집단 자위권 법안의 배경을 다룬 1장과 아베 총리의 사상적 배경을 알 수 있는 3장이었다. 1장에서 고모리 교수는 올해 아베 총리의 방미를 맞아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을 개정한 4월 27일을 일본이 ‘전쟁하는 나라로 전환된 날’로 꼽는다. 이후 법안 처리는 아베 총리가 미국에 한 약속을 지키려는 후속 절차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물론 집단 자위권 법안이 그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은 아니다. 일본은 1991년 걸프전 당시 평화헌법을 이유로 군사지원 대신 재정지원을 했지만 국제사회에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고, 이후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해외파병의 길을 넓혀 왔다. 물론 더 올라가면 무력행사와 전력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에 대한 불만은 전쟁 직후부터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6·25전쟁이 일본에 자위대가 만들어진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일본을 점령했던 미군이 갑자기 한국전쟁에 투입되면서 질서 유지를 위해 1950년 8월 경찰예비대가 결성됐고 이 조직이 나중에 자위대로 탈바꿈했다. 책에는 우익인사들이 자위대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 역사를 보여준다. 아베 총리의 정치적 배경이 궁금한 이들은 3장을 보면 된다. 다와라 국장은 일본 기업들이 글로벌화된 1990년대 이후 아시아 국가들과의 화해가 필요했고 이 때문에 1993년 위안부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담화, 1995년 과거사 사과의 모범으로 불리는 무라야마담화가 나왔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역사수정주의적 색채를 가진 우익세력이 세력을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와 난징(南京) 대학살을 부정하고 이 사실이 교과서에 들어가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쳐 왔다. 고노담화가 나온 1993년 처음 의원배지를 단 아베 총리는 우익 원로들의 지원 하에 우익 엘리트 교육을 받았다. ‘일본회의’ ‘일본의 앞길과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의 모임’ 등 각종 우익단체가 그를 지원했고 그 결과 극우세력의 상징적 존재로 성장했다는 것이다. 책에 따르면 아베 총리가 소속된 의원연맹은 12개에 이르는데 대부분 우익 단체다. 그와 비슷한 교육을 받은 이들이 지금의 아베 내각에 포진해 있다는 분석에 이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책에 따르면 지난해 출범한 아베 3기 내각에서 우익단체인 일본회의 소속 장관은 19명 중 15명에 이른다. 아베 총리가 사라진다고 해도 그의 자리를 채울 후보들은 차고 넘친다는 뜻이다. 참고로 책의 2장은 군사 및 무기 분야를 언급하며 일본의 방위 실태에 대해 상세히 설명한다. 4장은 군사대국화에 대한 재계의 반응을 다루고 있으며 5장은 태평양 전쟁 이후 일본이 어떻게 전후처리를 했는지를 언급한다. 아베 총리는 9월 초 자민당 총재로 재선돼 다시 3년의 임기를 앞두게 됐다. 호불호와는 별개로 그와 그의 세력들을 더 잘 알아야 하는 이유다.도쿄=장원재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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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다시 ‘전쟁가능 국가’로 돌아갔다

    패전 70년 만에 일본 자위대가 전쟁할 수 있는 군대로 돌아갔다. 일본의 전후 평화헌법 체제가 무너지면서 동북아 외교안보 질서에 큰 변화가 예고된다. 일본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은 19일 오전 2시 20분경 참의원 본회의에서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기 위한 11개 안보 관련 법안 제정·개정안을 가결했다. 17일 참의원 특별위원회에서 6분 만에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데 이은 것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내각불신임안 등으로 통과 저지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실패했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오직 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할 수 있다는 전수방위(專守防衛) 원칙은 폐기되고 일본은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거듭났다. 안보법안의 핵심은 평화헌법 해석을 변경해 그동안 금지됐던 집단자위권 행사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일본은 자신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미국 등 밀접한 제3국에 대한 무력 공격에 개입할 수 있게 됐다. 또 자위대가 일본 주변 지역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군사작전을 전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확보했다. 이 같은 조항들은 일본 헌법 9조의 ‘전쟁 포기’ 조항을 정면으로 위반한 위헌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해석 개헌으로 입헌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었다는 것이다. 이날 본회의에서 야당은 중의원과 참의원에 내각불신임안,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문책결의안 등을 줄줄이 제출하며 저항했다. 양원 여대야소의 구도에서 이들 안건은 부결됐지만 다른 안건보다 우선 심의하게 돼 있는 불신임결의안 등을 통해 안보법안 표결을 최대한 늦추기 위한 전략이었다. 중의원에서는 이미 7월 안보법안이 통과됐다. 이날 국회 의사당 주변에서는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시민단체와 대학생 등이 집결해 “아베 정권은 파시스트다. 전쟁과 파시즘이 다가오고 있다”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법안이 통과되면서 동북아 안보 환경은 완전히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됐다. 일본은 ‘전범국가’에서 벗어나 미군과 함께 언제 어디서든 군사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중국과의 긴장이 고조되는 것은 물론이고 한반도 유사시 한국 정부의 동의를 조건으로 언제든지 개입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 안보법제 통과에 대해 한국 정부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정부 당국자는 “일본 방위안보정책의 중대한 변경으로 보고 예의주시할 것”이라며 “집단자위권 행사도 평화헌법의 정신을 견지하면서 지역의 평화·안정을 해치지 않게 투명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일본이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때 한반도 안보나 한국 국익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반드시 한국의 요청 또는 동의가 없는 한 결코 용인될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미국은 안보법안 통과와 관련해 “우리는 지역 및 국제안보 활동에서 일본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며 환영했다. 하지만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의 가상 적국인 중국은 강하게 반발했다. 도쿄=배극인 bae2150@donga.com·장원재 특파원}

    • 20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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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만주사변 일으킨 날 軍國 야욕… 국회밖 4만명 “아베 퇴진을”

    18일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위한 안보법안 최종 표결이 진행된 일본 국회에서는 여야 의원들의 치열한 힘겨루기 공방이 벌어졌다. 오전 9시 민주당 등 야권 5당 당수들은 내각 불신임안을 중의원에 제출하고, 참의원에는 총리 문책결의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불신임안과 문책결의안이 법안보다 우선 심의되는 것을 ‘최후의 무기’로 삼은 것이다. 일본은 19∼23일이 연휴여서 야권은 법안 처리를 연휴 기간으로 넘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자민당은 단상 발언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는 동의안을 제출해 통과시키며 응수했다. 오후 1시부터 참의원에서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출석한 가운데 총리 문책결의안이 논의됐다. 전날 참의원 특별위 날치기 통과 후 ‘자민당이 죽은 날’이라는 플래카드를 들었던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郞) 생활의 당 대표는 상복을 입고 참배 퍼포먼스를 하면서 투표함까지 극도로 천천히 걷는 우보(牛步) 전술을 폈다. 아베 총리는 굳은 표정으로 지켜보다 오후 2시 45분 문책안이 부결되자 벌떡 일어나 회의장을 나갔다. 중의원은 오후 4시 반부터 내각불신임안 심의에 돌입했다. 민주당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간사장은 “아베 내각은 민주 정부로서 이성을 잃고 폭주하고 있다”면서 두 시간 가까이 발의를 하며 시간을 끄는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전략을 썼다. 그럼에도 안보법안 통과가 확실한 것은 자민당이 공명당과 군소 정당을 합쳐 참의원 의석의 60% 이상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한편 교도통신에 따르면 아베 정권은 전날 특별위 날치기 처리를 위해 위원장석을 에워싸는 리허설까지 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되고 있다. 이날 국회 앞에서는 강행 처리 임박 소식을 듣고 전국에서 모인 시위대 4만 명(주최 측 추산)이 ‘아베 정권 퇴진’을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강행 처리로 가닥이 잡히자 “내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심판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베 총리는 안보법제 통과로 외할아버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전 총리의 숙원이었던 ‘전후체제 탈피’의 과업을 사실상 달성했다. 이제 남은 것은 교전권과 군사력 보유를 허용하지 않는 일본 헌법 9조를 개정해 쐐기를 박는 것이다. 아베 총리는 최근 한 방송사와의 인터뷰에서 개헌에 대해 “비원(悲願·비장한 소원)”이라는 표현을 쓰며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개헌은 국민투표를 통과해야 하는데 국민 다수가 반대하는 데다 이번 안보법안 강행 처리로 반발이 더 커질 것이 확실해 성사 여부는 불투명하다. 아베 총리는 이달 말 유엔총회 참석을 위해 미국을 찾는다. 올 4월 방미 때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약속한 안전법제 정비를 마친 만큼 발걸음이 가벼울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일본의 집단 자위권 확대를 통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전쟁 억지력이 높아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당분간 긴장은 오히려 고조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지역에서 일본과 안보 부담을 나눠 지려는 미국은 안보법제 통과를 환영하고 있지만 타깃이 되는 중국과 북한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84년 전 일본의 중국 침략 전쟁인 만주사변이 일어났던 날(9월 18일)에 안보법제가 통과됐다는 사실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기에 충분하다. 당장 22일 미국을 방문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관심사다. 북한이 다음 달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앞두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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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재무장 고비마다 빌미 안겨준 北

    일본의 군사 팽창 시도가 있을 때마다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한 것은 북한이었다. 지난달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안보법안 밀어붙이기에 화난 국민들 때문에 정권 지지율이 급락하던 때 지뢰 도발과 준전시상태 선포로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북한이었다. 예상대로 아베 총리는 지난달 24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어디서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좀처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 환경”이라며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정당화했다. 이달 15일 북한의 핵 개발과 미사일 발사 시사는 아베 정권에 안보법안 통과를 위한 절호의 기회를 제공했다. 이날 즉각 자민당과 공명당은 16∼18일에 걸쳐 참의원에서 안보법안을 통과시킨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일본의 자위대 창설부터가 북한의 도발을 계기로 이뤄졌다. 일본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위대의 전신인 경찰예비대를 창설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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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日 안보법안 6분만에 날치기… 빗속 시위 시민들 ‘울분’

    일본 여당이 집단자위권 행사를 골자로 하는 안보법안을 참의원에서 6분 만에 통과시켰다. 17일 오후 4시 28분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국회의사당. 참의원 평화안전법제 특별위원회 회의실에 들어선 고노이케 요시타다(鴻池祥肇) 위원장이 자리에 앉자 사토 마사히사(佐藤正久) 의원 등 건장한 자민당 남성 의원 10여 명이 의원석에서 뛰어나갔다. 이들이 스크럼을 짠 채 위원장을 감싸자 민주당 의원들이 달려들었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고노이케 위원장은 자민당 의원들에게 둘러싸인 채 법안을 하나씩 올렸고, 사토 의원의 손짓에 따라 자민당과 공명당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찬성 의사를 표시하자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집단자위권 법제화 등 11개 안보 관련 법률 제정·개정안이 6분 만에 처리됐다. 여야 의원들이 격렬한 몸싸움을 벌이는 사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민주당 의원들은 육탄전으로 나가다 판세가 기울자 TV 카메라를 향해 ‘자민당이 죽은 날’이라는 팻말을 들고 항의했다. 일본 국민의 과반수가 반대하는 안보법안은 본회의 통과라는 마지막 관문만 남겨두게 됐다. 국회 앞에서 밤샘시위가 벌어지고 민주당이 의사 진행을 지연시켰지만 큰 이변이 없는 한 이르면 18일 본회의를 통과할 것으로 예상된다. 17일 자민당은 오전 9시부터 특위를 개회하려 했지만 민주당 등의 반대로 오후 1시가 돼서야 회의를 열었다. 전날 3만5000여 명이 비를 맞으며 국회 앞에서 시위를 벌인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전날 민주당은 인간 바리케이드를 치며 저항했고 아베 총리는 오전 4시 반까지 국회에서 자리를 지키다가 성과 없이 떠났다. 하지만 다음 날은 달랐다. 민주당은 고노이케 위원장에 대한 불신임 동의안을 내면서 3시간 반 동안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를 활용해 회의를 지연시켰지만 불신임안 부결 직후 자민당에 허를 찔렸다. 이날 날치기 소식이 전해진 뒤 국회 앞에서는 3만 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아베 정권 퇴진’ 등을 주장하며 격렬히 저항했다. 그럼에도 자민당은 오후 8시 10분부터 본회의를 열었다. 이에 민주당 등은 나카가와 마사하루(中川雅治) 운영위원장 해임결의안 등을 참의원에 제출하는 등 지연전술을 펴고 있다. 하지만 자민당은 18일에는 강행 처리를 할 태세다. 일본은 19∼23일이 연휴다. 이 때문에 지역구로 돌아가는 의원이 많은 데다 시위가 격화될 가능성도 있어 자민당은 법안 처리 강행 시점을 19일 이전으로 잡아 놓았다. 안보법안이 시행되면 자위대가 전 세계 어디서나 미군 등 외국 군대를 후방 지원할 수 있고 일본의 존립이 위협받는 등 특정 조건에서는 무력행사도 할 수 있다. 그동안 ‘전수방위(오직 방어를 위한 무력만 행사)’를 근간으로 해온 일본의 전후 안보 체제가 ‘먼저 공격을 받지 않아도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근본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무력행사와 전력 보유를 금지한 헌법 9조 위반이라는 헌법학자 등의 반발이 있었지만 아베 내각은 헌법 해석을 바꾸는 편법으로 이를 비켜 나가고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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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P, 日신용등급 강등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16일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에서 ‘A+’로 한 계단 낮췄다. S&P는 “지난 3∼4년간 일본의 국채 신용도를 지탱하기 위한 경제적 지원은 계속 약해졌다. 일본 정부의 경제 회생 및 디플레이션 종식 전략은 향후 2∼3년간 약세를 되돌리기 어려워 보인다”고 등급 강등 이유를 밝혔다. 신용등급 전망은 ‘안정적’으로 제시했다. 이번 등급 강등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막대한 돈을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물경제가 아직 살아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천문학적인 나랏빚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화를 위한 소비세율 인상시기를 2017년 4월로 1년 6개월 연기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239%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본의 등급이 ‘A+’로 강등됨에 따라 한국보다 낮아지게 됐다. S&P는 전날 한국의 신용등급을 ‘A+’에서 ‘AA―’로 한 단계 올렸다. 다른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가 부여한 한국의 신용등급은 각각 ‘Aa3’와 ‘AA―’로 일본(무디스 A1, 피치 A)보다 높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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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레이, LG화학 오창공장 일부설비 인수

    일본 화학회사 도레이가 한국 LG화학으로부터 리튬이온 충전지의 핵심 소재인 ‘세퍼레이터(분리막)’ 공장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6일 보도했다. 세퍼레이터는 리튬이온 전지의 양극과 음극을 분리해 전해질 이온을 통과시키는 박막(薄膜) 소재다. 보도에 따르면 도레이는 충북 오창에 있는 LG화학 공장 설비를 30억 엔(약 294억 원)에 인수할 계획이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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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침묵 깬 日 젊은층, 反아베 중심에

    14일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헌정기념관 앞. 젊은이 100여 명이 야광봉을 손에 들고 삼삼오오 모였다. 오후 6시가 되자 검은색 티셔츠를 입은 한 여학생이 확성기 앞에 섰다. CNN 등 내외신 카메라가 일제히 여학생을 향했다. 여학생은 실즈(SEALDs·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한 학생 긴급행동) 멤버인 조치대 3학년 시바타 마나(芝田万奈) 씨였다. 유튜브에 올라온 그의 연설 영상이 조회수 수만 건을 기록한 유명 인사이다. ‘쟤들이 실즈인가 봐.’ 주위에 있던 중장년 시위 참가자들이 속닥거렸다. 프리타(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젊은이) 초식남(연애나 결혼에 소극적인 젊은 남성) 사토리(돈벌이나 출세에 관심이 없는 젊은이) 등 부정적 이미지로 젊은이들을 바라봤던 일본 기성세대들은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휴대전화를 꺼내 연신 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일본에서는 최근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안보법제에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연일 언론을 장식하는 중이다. 지난달 30일에는 12만 명, 14일에는 4만5000명이 국회 앞에 모여 ‘아베 정권 퇴진’을 외쳤다. 1960년 안보투쟁 이후 55년 만에 시위대가 국회 앞 도로를 점거한 모습에 일본인 스스로도 놀라고 있다. 하지만 시위 양상은 반세기 전과 확연히 달라졌다. 1960년대 일본의 학생 시위가 각목과 헬멧으로 대표되는 과격 조직 위주였다면 지금은 첨단기기와 대중문화를 활용하는 느슨한 연대체계에 가깝다. 변화의 한가운데에 ‘실즈’라는 조직이 있다. 안보법제 반대를 목적으로 5월에 결성된 학생모임 ‘실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소통하고 랩으로 구호를 외친다. 14일 마이크를 잡은 시바타 씨는 시위에 처음 나온 학생들을 위해 “무리하지 말고 빠지고 싶으면 언제든 빠지라. 몸이 아프거나 법적 도움이 필요하면 스태프를 찾으라”는 친절한 주문부터 했다. 자상한 태도에 시위 참가자들 사이에 흐르던 긴장감도 조금씩 풀리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왜 거리로 나왔을까. 고교 3학년이라는 스즈키 다이키(鈴木大樹·18) 군은 “자위대에 입대한 선배가 있고 입대를 준비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법안이 통과되면 이들이 전쟁터에 파견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남의 일이 아니라는 불안감이 생겼다”고 했다. 이어 “아베 총리가 국민을 속이면서까지 위헌 법률을 밀어붙이는 걸 보면서 더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던 중 트위터에서 실즈 멤버로부터 초대를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난달 30일 처음 시위에 나왔는데 그전에는 시위 비슷한 것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시위대 중에는 지방에서 온 이들도 상당수였다. 오사카(大阪)에서 신칸센을 타고 왔다는 노지마 사토코(野島聰子·28) 씨는 “안보법제에도 반대하지만 무엇보다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생각에 거리로 나왔다. 연금은 줄고, 일자리는 마땅치 않다. 의료와 복지 서비스도 줄고 있다. 나이 먹는 것 자체가 두렵고 마음대로 아프지도 못하는 현실에 나 같은 젊은이들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팝아트풍의 포스터를 피켓 대신 들고 나왔다. 시위가 시작되자 이들은 원을 그리고 신나는 음악과 함께 드럼을 치며 랩을 하는 것처럼 구호를 외쳤다. “전쟁 멈춰, 헌법 지켜, 아베 총리 이제 그만!” BBC는 실즈의 활동을 두고 “일본의 젊은 세대가 침묵을 거부하고 눈을 떴다”고 평가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주부들은 유모차에 ‘누구의 아이도 죽게 하지 않겠다’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주부 지하라 마리(千原麻里·31) 씨는 “아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전쟁으로 몰고 가는 법안에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날 시위는 경찰과 대치하며 격렬해졌다. 경찰은 시위대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자 물러나 국회의사당 앞에 차벽을 쳤다. 시위대는 승리 표시로 야광봉을 머리 위로 흔들었다. 시위는 안보법안 통과가 예정된 이번 주 내내 이어질 예정이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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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퇴진” 日 4만여명 국회앞 시위

    14일 오후 7시경 일본 도쿄(東京) 지요다(千代田) 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일본 시민 4만5000여 명(주최 측 추산)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는 이달 18일 안보법안 처리를 앞두고 준비됐지만 시위 현장에서 많이 나온 구호는 ‘안보법안 철회’가 아니라 ‘아베 정권 퇴진’이었다. 일본 경찰은 곳곳에 바리케이드를 치고 시위대를 막았지만 집회 참여 인파가 급속히 늘면서 저지선이 무너졌다. 시위대는 차도로 밀려나와 미리 준비한 야광봉을 머리 위로 휘두르며 “폭정을 당장 멈춰라” “아베 정권은 물러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날 집회가 시작되자 주최 측이 무대를 마련한 곳에는 인파가 가득해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집회에 참가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郞) 씨는 “내 인생 80년 중 70년은 평화헌법하에서의 삶이었다. 법안이 통과되면 이런 일본이 사라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시위대는 안보법안 통과가 예정된 이번 주에는 매일 국회 앞에서 연좌농성과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베 총리는 이날 국회에서 “반드시 이번 국회에서 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결의는 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는 15일 공청회를 개최하고 늦어도 18일에는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계획이다. 민주당 등 야당은 참의원에서 법안 처리 저지를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지만 연립 여당이 참의원 242석 중 과반인 135석을 차지하고 있어 시간을 끄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상황이다. 이날 아사히신문 조사에서 아베 내각 지지율은 36%로 정권 출범 이후 가장 낮았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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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인3명 ‘의문의 추락사’ 요양원에 몰카 설치했더니

    일본의 한 요양시설 직원이 입소자를 폭행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논란이 일자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이 요양시설은 지난해 말 입소자 3명이 뚜렷한 이유 없이 추락사해 ‘죽음의 요양원’이라고 불려왔던 곳이다. 경찰은 추락사 원인도 석연치 않다고 보고 이 부분에 대해서도 조사하기로 했다. 문제가 된 요양원은 도쿄(東京) 인근 가와사키(川崎) 시의 ‘S아뮤 가와사키 사이와이초’. 정원 80명의 이 요양시설은 식비 관리비 등 한 달 비용이 22만 엔(약 220만 원)에 달해 주로 중산층 노인이 입소한다. 85세 여성 입소자의 장남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녹화한 영상이 10일 언론에 공개되면서 이 요양원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이 영상에서 직원은 손으로 입소자의 머리를 강하게 내려쳤고, 안고 있던 몸을 침대에 던졌다. 시설 측은 논란이 확산되자 “입소자와 가족들에게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그런데 이 요양원에서 지난해 11월과 12월 80, 90대 남녀 입소자 3명이 베란다에서 추락해 사망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오전 1시 반~4시 반 사이 시설의 4~6층에서 떨어졌고 유서는 발견되지 않았다. 이 중 지난해 12월 31일 6층에서 추락사한 96세 여성은 자신의 방이 아닌 다른 방에서 떨어졌는데 이 여성은 노쇠해 걸을 때도 부축을 받아야 할 정도여서 타살 의혹이 제기돼 왔다. 언론 취재 결과 이 요양원에는 예전에도 직원들의 학대와 도난 사고가 빈발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요미우리신문은 20~40대 남성 직원 4명이 80대 여성 입소자에게 ‘죽어라’라며 폭언을 퍼붓거나 머리를 때렸다고 보도했다. 올해 3월에는 혼자 목욕하던 80대 남성이 실신 상태로 발견됐고, 5월에는 입소자 방에서 돈을 훔친 직원이 체포됐다. 일본 언론에서는 수도권의 요양시설 부족으로 서비스의 질을 담보할 수 없게 된 것이 이번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일본에서는 고도성장기 수도권에 상경한 베이비붐 세대의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 중이다. 수도권 지바(千葉) 현의 도키와다이라(常盤平) 지역의 경우 65세 이상 고령자 비율이 44%에 이른다. 하지만 땅값과 인건비가 비싸다 보니 의료 및 요양시설을 필요한 만큼 늘릴 수 없는 상황이다.도쿄=장원재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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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폭피해자 특별법 10년째 낮잠

    “광복 70주년은 다른 의미로 원폭 피해의 고통이 70년이나 됐다는 뜻입니다. 마냥 기뻐할 수 없는 이유죠.” 8일 오후 7시 서울 종로구 평화박물관에서 만난 한정순 씨(56·여)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그는 한국원폭2세환우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한 씨의 부모는 1945년 일본 히로시마(廣島)에 있다가 피폭됐다. 2세대인 한 씨는 대퇴부 무혈성 괴사증으로 4차례나 수술을 받는 등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그의 아들도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를 앓고 있다. 이날 박물관에는 한 씨 등 피폭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피해자들이 모였다. 마침 이날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는 한국 내 원폭 피해자에게도 일본 정부가 치료비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고대하던 소식이 전해진 직후 열린 만남이었지만 현장 분위기는 마냥 밝지 않았다. 원폭 피해자의 고통이 과거와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이어질 것이라는 불안감 때문이다. 원폭 피해자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원자폭탄피해자 및 피해자 자녀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이다. 피해자와 자녀를 대상으로 정기적으로 실태 조사를 벌이고 의료·생활 지원을 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당 법안은 2005년 첫 발의 이후 번번이 통과되지 못한 채 폐기됐다. 19대 국회에서도 새로 발의됐으나 아직 해당 상임위(보건복지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새로운 특별법 신설이 까다로운 데다 다른 전쟁 피해자와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현재 원폭 피해자들이 받는 금전적 지원은 일본 정부가 제공하는 원호수당(재해수당)과 의료비, 국내 정부가 지급하는 진료보조비 등이다. 고령으로 피해자가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어 특별법 제정을 더 늦춰선 안 된다는 의견이 많다. 원정부 한국원폭피해자협회 서울지부장(77)은 “원폭 피해자의 명예와 인권 차원에서도 하루빨리 (특별법)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1945년 당시 4만 명으로 추정된 국내 원폭 피해자는 70년이 지난 현재 2545명(한국원폭피해자협회 등록 인원 기준)으로 줄었다. 협회 회원의 평균 연령은 82.5세다. 피폭 후유증의 대물림으로 고통받고 있는 2, 3세대를 위한 장기적인 지원정책도 절실하다. 2005년 당시 보건복지부가 집계한 원폭 피해자 2세대는 7698명. 이는 피해를 등록한 1세대를 기준으로 집계한 것이라 실제 2세대 피해자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현재 원폭2세환우회에 가입한 1300여 명을 제외하고는 파악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현재 정부 차원의 피해 2세대 지원은 전무하다. 한편 이번 최고재판소 판결을 놓고 일본 언론들도 당연하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9일 사설에서 “법 아래 평등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당연한 판단”이라며 “피폭자들의 고령화가 진행 중인 만큼 이번 판결을 마지막으로 임시변통의 역사에 마침표를 찍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판결 직후 홈페이지에 “판결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신속한 의료비 심사 지급 절차가 진행되도록 오사카(大阪) 부(府)와 함께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또 “소송 당사자가 아닌 재외피폭자에게도 의료비 지급을 위한 세칙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강홍구 기자 windup@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 2015-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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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8년만의 승리”… 국내 피폭자 2500명 혜택

    일본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본 피해자가 한국에서 치료를 받더라도 일본 정부가 의료비 전액을 지급해야 한다는 일본 최고재판소(한국의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를 일본인과 외국인으로 구별하지 않고 의료비 전액 지원을 인정한 일본 최고재판소의 첫 판결로, 일본이 1957년 피폭자 지원을 시작한 이후 58년 만에 외국인 차별이 해소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 최고재판소 제3부(재판장 오카베 기요코)는 8일 한국에 살고 있는 히로시마(廣島) 원폭 피해자 이홍현 씨(69)와 피폭자 유족 2명이 오사카 부(府)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의료비 전액을 지급하라는 2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 씨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미쓰비시조선소에서 일하던 강제징용 노동자였으며 이 씨는 1945년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어머니 배 속에서 피폭을 당했다. 가족은 그해 12월 한국에 돌아와 경북 김천에 정착했고 이듬해 1월 이 씨가 태어났다. 이 씨는 어릴 때부터 코피를 자주 흘렸고 고혈압과 만성심부전증 등에 시달렸다. 이 씨의 부모도 기관지염 등을 앓다가 어머니는 1993년, 아버지는 1996년 차례로 세상을 떠났다. 이 씨는 2008년 일본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지원 수준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자신이 지출한 의료비 2700만 원을 보전해 달라는 소송을 일본 법원에 냈다. 일본의 ‘원자폭탄 피폭자에 대한 원호에 관한 법률(피폭자원호법)’은 피해자의 의료비를 국가 부담으로 규정했지만, 해외 거주자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나와 있지 않다. 일본은 해외 거주 피해자가 해외에서 진료를 받을 경우 일본과 의료 체계가 다르다는 이유로 연간 30만 엔(약 300만 원, 2014년 기준)까지만 지원했다. 외국에 거주하는 피폭자는 올 3월 말 기준으로 4280명이며 한국 거주자는 8월 말 기준으로 2500여 명이다. 한국 원폭 피해자는 1945년 당시 4만 명으로 추정됐지만 고령과 치료비 부족에 따른 사망으로 급격히 줄었다. 원고 이 씨는 이날 자료를 내고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의료비 지급을 미룬 일본 정부와 오사카 부는 앞으로 생명의 중요함을 공유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본 후생노동성은 이날 판결 직후 “원고 이외의 해외 피폭자에 대해서도 의료비 지급을 전면 인정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번 판결은 히로시마나 후쿠오카 등에서 진행 중인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 원폭피해자를 돕는 시민모임’의 이치바 준코(市場淳子)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피폭자에게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의료비 지원인데 여기까지 40년이 걸렸다는 것은 일본 정부가 반성해야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성낙구 한국원폭피해자협회 회장은 “그동안 몸이 아파도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했던 피해자들에게 반가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이 협회 회원 등 120여 명은 이날 오후 국회의사당 앞에서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강홍구 기자}

    • 2015-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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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韓日, 정상회담 앞두고 ‘위안부 해결’ 공감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첫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일 양국이 최대 현안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조율하기 위해 국장급 회의를 9월에 갖기로 했다. 7일 외교소식통은 “한일 국장급 협의를 이달 중 서울에서 재개하기로 했다”며 “구체적인 날짜를 조정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 측 이상덕 외교부 동북아국장과 일본 측 이하라 준이치(伊原純一) 외무성 아시아대양주국장이 참여하는 국장급 협의는 지난해 4월 시작돼 올해 6월 11일까지 8차례 열렸다. 일부 진전이 있었다. 특히 8차 협의 하루 뒤인 6월 12일 박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한일 간) 상당한 진전이 있으며 협상의 마지막 단계(final stage)에 있다”고 밝혀 타결 기대감이 커지기도 했다. 하지만 핵심 쟁점에서 입장 차를 좁히지 못하면서 3개월가량 중단된 상태다. 한일 양국이 협의 재개에 합의한 것은 10월 말 또는 11월 초로 예정된 한중일 정상회의를 계기로 열릴 첫 한일 정상회담에서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에 가시적인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박 대통령은 한일 정상회담 얘기가 나올 때마다 위안부 문제를 거론하며 일본 측의 ‘성의 있는 조치’를 요구해 왔다. 사실상 위안부 문제 해결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셈이었다. 아베 총리에게도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해 어떤 형태로든 넘어야 하는 산이다. 지난달 발표한 아베 담화에 간접적인 형태로나마 위안부 문제를 언급한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일 양측은 2012년 3월 이명박 정부 당시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이 제안한 일명 ‘사사에 안(案)’을 기준으로 해법을 모색해왔다. 이 안의 골자는 △일본 총리의 사죄 △사죄 편지를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전달 △일본 정부 예산으로 위로금 지급 등 3가지다. 한국 정부는 사사에 안을 기본으로 하되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 인정 등을 요구하는 위안부 피해자 측이 납득할 수 있는 형태가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일본 정부는 이번이 최종적 해결이라는 점을 한국 정부가 보증해야 한다는 등의 요구를 내걸고 맞서고 있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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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무투표 재선은 막아야” 반기 든 ‘여걸’ 노다

    ‘아베 총리에게 반기를 든 여걸.’ 일본 집권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여성 중진인 8선의 노다 세이코(55·野田聖子·사진) 중의원 의원이 유일하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대항마를 자처하고 나서자 이런 평이 나왔다. 노다 의원은 5일 지역구인 기후(岐阜) 시에서 기자들에게 “무투표는 당의 상식이 아니다”며 출마를 공식화했다. 현재 자민당 내 모든 파벌이 아베 총리를 지지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라 아베 총리의 재선은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노다 의원 본인도 아베 총리 정책에 맞설 대안은 보여주지 못하고 있지만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 이시바 시게루(石破茂) 지방창생담당상 등 아베 총리의 잠재적 대항마로 꼽히던 인사들이 모두 출마하지 않는 상황에서 무계파 여성 의원이 출마하려는 것 자체가 일본 정가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노다 의원은 1987년 기후 현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1993년 중의원 의원에 당선되면서 중앙 무대에 진출했다. 1998년 37세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내각에서 우정상을 맡았고 2008∼2009년 아소 다로(麻生太郞) 내각에선 특명담당 대신을 맡아 소비자 문제 등을 담당했다. 2012년 12월 출범한 제2차 아베 정권에서 자민당의 3역 중 하나인 총무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는 임신과 유산을 거듭한 자신의 경험을 담아 2004년 ‘나는 낳고 싶다’라는 제목의 책을 쓰기도 했으며 2011년 1월 50세의 나이에 체외수정으로 아이를 낳기도 했다. 향후 일본 정가의 관심은 노다 의원이 총재 입후보에 필요한 추천인 20명의 서명을 받아 20일로 예정된 경선에 나설 수 있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는 “협력해주는 동지들에게 꾸준히 (추천인으로 나서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고 말했으나 만일 서명을 받지 못할 경우 아베 총리는 8일 ‘무투표 당선’으로 다시 추대된다. 일부에서는 노다 의원이 추천인 20명을 모아 출마하는 것 자체가 ‘자민당의 건강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현재로서는 어려울 것이라고 대체적으로 전망한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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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베 “한일정상회담도 꼭 하고 싶다”

    아베 신조(安倍晋三·사진) 일본 총리가 한중일 3국 정상회의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일 정상회담을 꼭 하고 싶다는 입장을 4일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아베 총리는 이날 오사카의 민방 요미우리TV에 출연해 10월 말 또는 11월 초 개최가 유력하게 검토되고 있는 한중일 정상회의를 거론하며 “그때 한일 정상회담도 꼭 하고 싶다”고 말했다. 아베 총리는 방송에서 한국을 ‘중요한 이웃 나라이자 경제 파트너’라고 지칭하면서 “(일본과 한국은) 이웃 나라로, 문제가 있을수록 (회담을) 해야 한다”고 회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정치 외교 경제 등 다양한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양국 국민과 세계가 바라고 있는 것이며, 협력해 대처해야 할 국제적인 과제도 있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2일 정상회담에서 중단된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한국 개최에 합의한 이후 일본 정부가 원론적인 수용 입장을 밝힌 적은 있었으나 아베 총리가 자신의 생각을 직접 밝힌 것은 처음이다. 박 대통령과 시 주석에 이어 아베 총리까지 강한 개최 의사를 밝힘에 따라 정상회의가 성사될 가능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된다. 의장국인 한국은 중국과 일본을 상대로 10월 31일 또는 11월 1일에 서울에서 3국 정상회의를 열자는 방안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중 정상의 한중일 정상회의 개최 합의를 아베 총리가 선뜻 받아들인 것은 그동안 공을 들여 온 한일 정상회담 개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한일 정상회담 개최의 전제조건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측이 먼저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해 왔다. 다만 위안부 문제는 어떤 형태로든 정상회담 의제로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국 외교당국은 이를 감안해 사전 의견 조율을 위한 준비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도쿄=장원재 특파원 peacechaos@donga.com}

    • 2015-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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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젠 한미일 공조 중심축 강화… 訪中성과 내실 다져야”

    3일 중국 전승절 열병식이 진행될 때 박근혜 대통령은 톈안먼(天安門) 성루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사열하기 위해 자리를 떴을 때나 인민해방군의 분열이 이어지는 동안에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성루에 오른 다른 국가 정상들이 서 있는 모습과 대조적이었다. 관람 모드를 연출한 셈이다. 미국과 일본을 의식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방중을 앞두고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성루에서 어떤 제스처를 취할지 상당히 고심했다는 후문이다. 중국 전승절 행사에 참석한 박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이 외교적으로 미칠 파장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박 대통령이 내디딘 ‘신(新)외교’ 앞에 놓인 과제는 만만치 않다.○ ‘한국, 중국에 기울었다’ 의구심 극복해야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달 31일(현지 시간) 미국에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을 만나 “한국의 중국 열병식 참석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케리 장관의 발언은 외교적 수사로 봐야 한다는 시각이 많다. 실제로 미국 조야에는 박 대통령의 전승절 행사 참석을 계기로 ‘한국의 중국 경도론’에 쏠리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 보수 강경파 목소리를 대변하는 헤리티지재단의 브루스 클링너 박사는 최근 동아일보 기자를 만나 “올해 전승절은 종전을 기념하기보다 일본을 두들겨 패는 중국식 민족주의 행사다. 한국을 침공한 중국 군대를 박 대통령이 사열한다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전승절 참석을 한중 관계에 질적인 변화를 가져올 ‘게임 체인저’(판도를 바꿔 놓을 결정적 사건)로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방중의 결과를 실제 성과로 만들기 위한 내실화 작업이 중요하다.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장거리로켓(미사일) 발사 등 추가 도발에 나설 때에도 중국이 전승절을 앞둔 시점에서처럼 단호하게 대응할지는 미지수다.○ 한중일 정상회의 준비 한중 정상이 의견을 모은 ‘10월 말 또는 11월 초 한중일 3국 정상회의 개최’ 약속도 차분한 준비가 필요하다. 교도통신은 3일 외교 소식통을 인용해 “한국이 10월 31일, 11월 1일 이틀 일정으로 한중일 정상회의를 개최하자는 안을 제시해 일정을 조율 중”이라며 “아베 신조 총리가 10월 중순 중앙아시아를 순방할 계획이어서 11월 초 이후로 연기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전반적으로는 일본은 바쁠 게 없다는 반응이다. 일본의 틈새 파고들기도 우려된다. 전승절 참석을 두고 일본이 만든 ‘한중 대 미일’이라는 구도를 깨는 과제도 남았다. 정부가 선택한 후속작업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협력 강화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3일 “한미중, 한미일 간 외교적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달 말 유엔 총회를 계기로 한미일 외교장관 회의와 한미일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추진하고 있다.○ 북, 한중 정상회담에 ‘무엄하다’ 반응 북한은 3일 한중 정상회담에 대해 공식적으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북한 대남 기구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는 3일 “남조선(한국) 집권자가 북남 합의 정신에 저촉되고 무책임한 발언을 내뱉는 것은 매우 심각한 사태”라며 “극히 무엄하고 초보적인, 정치적 지각도 없는 궤변”이라고 주장했다. 박 대통령이 시 주석에게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도발을 거론하며 “중국의 건설적 역할”에 감사를 표시한 것을 두고 반발했다. 당장 판을 깨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 실무 접촉 등 남북 대화 국면에 차질을 빚을 수 있음을 위협한 것이다.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 도쿄=장원재 특파원}

    • 2015-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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