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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도 중요하지만 그에 앞서 너무나 흐뭇한 마음으로 콩쿠르를 ‘즐기고’ 있습니다. 신인 시절 떨리던 느낌이 기억나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해요.” ‘LG와 함께하는 제15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은 소프라노 신영옥(57)은 24,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1차 예선 심사를 끝낸 뒤 이렇게 소감을 말했다. 올해 성악 부문으로 열리는 이 콩쿠르는 1차 예선 출연자 61명 가운데 6개국 24명이 2차 예선에 진출했다. 그는 “동아음악콩쿠르로 시작된 동아일보와의 인연이 이어져 더욱 기쁘다”고 말했다. 그는 선화예고 2년에 재학하던 1978년 제18회 동아음악콩쿠르 성악 부문에 출연해 여러 대학생 출연자들을 제치고 3등으로 입상했다. “여러 콩쿠르에 나갔지만 1등을 못한 콩쿠르는 동아음악콩쿠르뿐이었죠. 하지만 고등학생이 권위 있는 콩쿠르에서 입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여러 분들이 도와주셔서 미국 줄리아드음악원으로 유학을 가게 됐습니다.” 그는 24명의 2차 예선 진출자에게 “완벽한 노래를 들려주려 애쓰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노래를 즐길 수 있을 때 심사위원에게서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신영옥은 1990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오디션에서 우승했고 이후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의 상대역으로 출연한 베르디 ‘리골레토’ 질다 역, 도니체티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타이틀 롤 등을 통해 메트로폴리탄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중 하나로 인정받았다. “올해 출연자들은 특히 성악의 기본인 목소리 자체가 너무 좋아요. 기량이 크게 떨어지는 출연자가 없습니다.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너무 실망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나 자신도 메트로폴리탄 오디션에서 좌절을 경험해 보았고 거듭 도전해 원하던 것을 얻었죠.” 그는 커리어를 시작하는 젊은 성악가들에게 “여러 제안이 오더라도 욕심내지 말고 자기 자신의 컬러에 잘 맞는 역할부터 차근차근 넓혀 가는 것이 좋다”고 권했다. 이번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는 최상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테너), 김우경 한양대 교수(테너)와 역사상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불린 독일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에다 모저, 바흐에서 현대음악에 이르는 음반으로 여러 음반상을 수상한 독일 바리톤 안드레아스 슈미트 등 10명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26일 2차 예선, 28일 준결선, 30일에는 장윤성 지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협연하는 결선 경연이 열린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부제는 ‘프랑스 화보가 본 중국 그리고 아시아’다. 19세기 중반 이후 서구에서는 컬러 화보를 앞세운 ‘삽화신문’이 앞다퉈 등장했다. 컬러 그림 인쇄가 정교하면서 빨라졌고 제작비도 내려갔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현장성을 높이기 위해 ‘화가 겸 기자’를 각지에 특파원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1840∼1842년 1차 아편전쟁 이후 중국이 열강들의 먹잇감이 되면서 이 저널들의 중국 관련 보도도 급증했다. 책은 1850∼1937년 ‘르 프티 주르날’ 등 프랑스 삽화신문들에 실린 중국 관련 화보 400여 점을 해설과 함께 실었다. 청 황제와 관료들의 근엄한 모습이 있고, 전쟁과 반란으로 피 흘리는 병사와 민중이 있다. 책머리에 실린 중국 인사들의 추천사에서 보듯 이 삽화들은 자주 ‘예술의 경지를 오간다’. “서태후, 광서제 등의 이미지는 중국에 남아 있는 자료와 상당히 다르다. 프랑스인이 가진 심미안의 독특함과 스타일을 느낄 수 있다.” 제국주의의 제물로 놓인 한 세기 전의 이웃이 단지 ‘타자(他者)’일 수는 없다. 우리 땅을 배경으로 펼쳐진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삽화도 여럿 실렸다. ‘르 프티 주르날’ 1894년 8월 13일자 1면은 남대문처럼 보이는 성문과 초가를 배경으로 중국인과 서양인, 일본인들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삽화를 담았다. 청일전쟁이 발발한 지 19일 뒤였다. 조선인의 모습은 없다.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막상 우리는 국외자였음을 적시한 것처럼 느껴진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2010년 4월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교향악축제. 서울예고 1학년에 재학하던 15세의 깜찍한 소녀가 장윤성 지휘 대전시립교향악단과 쇼팽 피아노협주곡 2번을 완숙한 솜씨로 협연해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교향악축제 역대 최연소 협연자였던 그는 2009년 예술의전당 음악영재 콩쿠르에서 금호영재대상을 수상한 피아니스트 김정은이었다. 협연 다음 해 유학을 떠나 독일 하노버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에서 베른트 괴츠케 교수를 사사하고 있는 그가 30일 오후 7시 반 서울 서대문구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리사이틀을 갖는다. 모차르트 소나타 13번 K 333, 드뷔시 ‘기쁨의 섬’, ‘판화’, 슈베르트 소나타 19번 D 958 등 네 곡을 연주한다. “모차르트는 연주 생활 중 늘 초심(初心)을 일깨워 줬습니다. 13번 소나타는 어릴 때 좋아한 곡인데 최근 그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됐죠. 드뷔시는 저를 가르치고 계신 괴츠케 교수님을 통해 그 세계에 깊이 매료됐습니다. 그의 작품을 연주하다 보면 한 폭의 그림이 다가오곤 해요. 그 공간을 몸으로 느끼는 짜릿함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김정은은 독일 함부르크 폴란드음악가협회가 주는 쇼팽상과 연주상, 문화상을 받았다. 2016년 북스테후데 음악축제에서는 ‘올해의 젊은 음악가상’을 수상했다. 독일 라인네카 신문은 “잔잔한 서정시가 흐르는 김정은의 연주에는 엄청난 마력이 자리하고 있다”고 평했다. “하노버국립음대 생활도 이제 막바지에 접어들었어요. 최고연주자과정의 매 순간을 더 충실히 채우고,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레퍼토리를 폭넓게 소화하는 게 올해의 목표입니다.” 금호아트홀 연세 리사이틀에 앞서 24일에는 ‘2019 스타인웨이 초청 시리즈’로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독주회를 연다. 모차르트 소나타 13번 말고도 드뷔시 ‘영상’ 1권 등을 연주한다. 30일 독주회 수익금 전액은 ‘좋은 일을 하는 곳’에 전액 기부하기로 했다. 금호아트홀 연세 리사이틀 2만∼3만 원. 코스모스아트홀 연주회는 전석 무료.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내가 살리에리를 ‘마술피리’가 공연되는 극장으로 데려갔지. 살리에리는 집중해 감상했고, 서곡에서부터 마지막 장면까지 한 부분도 빼놓지 않고 ‘브라보! 아름다워!’라고 외쳤어.” 모차르트가 죽은 해인 1791년에 아내 콘스탄체에게 보낸 마지막 편지다. 교향곡과 피아노협주곡을 비롯한 기악만으로도 이미 천재였지만, 오페라만 놓고 보아도 모차르트는 푸치니, 베르디와 함께 ‘3대 흥행 작곡가’로 꼽힌다. ‘마술피리’ ‘돈 조반니’ ‘피가로의 결혼’ 등 이른바 그의 3대 오페라는 음악적으로 걸작일 뿐 아니라, 당대의 사회 이슈와 지식계 흐름까지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된다. 모차르트의 3대 오페라 가운데 두 작품이 이달 말 서울에서 동시에 공연된다. 사뭇 대조되는 두 작품의 공연 형태가 눈길을 끈다. 고(古)음악 거장 레네 야콥스가 지휘하는 프라이부르크 바로크 오케스트라(FBO)는 29, 30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무대장치 없는 콘서트 형식의 ‘돈 조반니’를 선보인다. 국립오페라단은 가수들의 숨소리까지 느낄 수 있는 중형극장인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무대에 28∼31일 ‘마술피리’를 올린다. 롯데콘서트홀이 야콥스 지휘 FBO와 함께 선보이는 모차르트 오페라는 이젠 핵심 팬층을 보유한 ‘기다리는 공연’이 됐다. 2017년 ‘여자는 다 그래’, 2018년 ‘피가로의 결혼’에서 이들은 의자 등 간단한 소도구만을 사용한 미니멀하면서도 세련된 연출뿐 아니라 악단 및 연주자들의 탁월한 가창으로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난봉꾼의 행각과 파멸을 그린 ‘돈 조반니’의 이번 공연에는 소프라노 임선혜(체를리나)를 비롯해 바리톤 요하네스 바이서(돈 조반니)가 출연한다. 기사장의 딸 돈나 안나 역은 소프라노 폴리나 파르티르크사크, 그의 약혼자 돈 오타비오 역은 테너 데이비드 피셔가 맡았다. 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는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헨젤과 그레텔’에서 호흡을 맞췄던 독일 연출가 크리스티안 파데와 디자이너 알렉산더 린틀이 다시 한 번 힘을 합치는 무대다. 상상 속 고대 이집트가 무대인 이 작품은 주역들의 선악이 헛갈리는, 마치 중간에 작가가 바뀐 듯한 줄거리와 비밀 결사를 암시하는 듯한 무대 때문에 초연 후 두 세기가 넘도록 그 창작 배경에 대한 분석과 토론이 이어져 왔다. 연출가 파데는 “사랑이라는 이상과 권력이라는 현실 속에서 시험을 당하는 인간이, 어떻게 세상과 사회에 쓸모 있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해 국립오페라단 ‘유쾌한 미망인’을 지휘했던 오스트리아 지휘자 토마스 뢰스너가 지휘봉을 든다. 테너 타미노 역에 허영훈 김성현, 그의 연인인 소프라노 파미나 역에 김순영 윤상아, 그의 어머니인 소프라노 밤의 여왕 역에 소니아 그라네가 출연한다. 서울시립교향악단도 28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여는 ‘모차르트 스페셜’ 콘서트로 ‘3월의 모차르트’에 가세한다. ‘티토 황제의 자비’ ‘피가로의 결혼’ 등 두 오페라의 서곡과 교향곡 38번 ‘프라하’를 영국 고음악 아카데미(AAM) 음악감독 리처드 이가가 지휘하고 피아노협주곡 24번에서는 피아노 솔로도 겸한다. 롯데콘서트홀 ‘돈 조반니’ 5만∼16만 원. 국립오페라단 ‘마술피리’ 3만∼10만 원. 서울시향 ‘모차르트 스페셜’ 1만∼7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마신다’는 것이 수분 섭취만을 뜻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음료란 친목과 사교의 핵심 요소이며, 알코올과 카페인이라는 중독성 물질이 이에 개입된다. 여기서 여러 문제가 비롯되는 것도 누구나 알고 있다. 사람은 무슨 이유로 ‘마셔댈’까? 갖가지 향과 색으로 장식한 음료들은 어떤 역사를 갖고 있을까? ‘술 취한 원숭이’ 저자는 ‘어떤 이점 때문에 인간이 알코올을 찾게 되었을까’라는 진화심리학적 관점에서 논지를 펼쳐 나간다. 과일이 주식이던 시절, 영장류는 잘 익은 과일을 찾아 나무 사이를 누볐다. 농익어서 발효가 시작된 과일은 알코올 냄새를 사방에 풍기는데, 이는 적당히 익은 과일보다 더 분명한 ‘표지’가 된다. 알코올 냄새를 따라가면 높은 열량이라는 보상을 받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우리는 알코올에 탐닉하게 되었다는 분석이다. 인간은 선택적인 발효를 통해 술을 제조하고, 심지어 증류를 통해 그 농도를 높인다. 이는 생각보다 오래된 행위일지 모른다. 중국에서는 원숭이들이 알코올을 만들기 위해 바위틈에 과일을 숨겨놓는 행동이 보고됐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나무 사이를 누비던 때와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이제 진화적으로 알코올의 부작용이 이점보다 훨씬 많은 것이다. 그러나 알코올의 강제적인 규제는 역사상 성공한 사례가 드물다는 점도 저자는 강조한다. ‘저급한 술과 상류사회’는 논의의 대상인 ‘음료’를 주류에 국한하지 않고 커피와 차(茶)까지로 넓힌다. 그 대신 저자가 다루는 역사는 영국이라는 지역으로 한정된다. 술을 매개로 상업 활성화에 기여한 중세의 ‘여관’, 예술가와 정치가들의 인맥 풀을 형성한 ‘와인바’, 여성 참정권 운동의 중심이 된 근대의 티 하우스 등을 소개하며 음료가 영국 사회에 끼친 역할을 꼼꼼히 조감한다. 150여 장의 컬러 일러스트가 시각적으로 풍성한 재미를 준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미국 로스앤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이자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음악교육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가 낳은 스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38)이 LA필을 이끌고 내한공연을 갖는다. LA필과는 2015년에 이어 두 번째이고 2008년 엘 시스테마 악단인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온 것까지 합하면 세 번째 내한이다. 16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오늘날 미국 사회에서 두다멜의 이름은 지휘자 한 사람의 위상을 거뜬히 넘어선다. ‘아마존 비디오’가 2014∼2018년 방영한 미드 ‘모차르트 인 더 정글’은 두다멜을 모델로 한 라틴계 ‘뽀글 머리 지휘자’ 로드리고를 등장시켜 인기를 끌었다. 유년기부터 친구였던 아내와 이혼하고 2년 만인 2017년 스페인 배우와 재혼하는 등 사생활도 대서특필됐다. 지난달 미국 아카데미상 시상식은 그가 지휘하는 LA필이 함께했다. 그러나 두다멜과 그가 이끄는 LA필이 ‘대중문화 감성에 얹혀가는 악단’이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말러 교향곡 1, 5, 7, 9번을 비롯해 그가 LA필을 지휘해 도이체그라모폰(DG) 레이블로 내놓는 음반들은 ‘광대하고 여유 있는 연출, 잘 설계된 템포, 음량 배분, 리듬감’을 인정받고 있다. 2015년 공연에서 말러 교향곡 6번 ‘비극적’을 선보였던 두다멜은 2009년 LA필 취임 연주회에서 연주했던 말러 교향곡 1번 ‘타이탄’을 이번에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유자왕은 미국 현역 작곡가 존 애덤스가 그를 위해 쓴 신작 ‘악마가 좋은 소리를 다 가져야 할까?(Must the devil have all good tunes?)’를 연주한다. 두다멜은 LA필 취임 연주회에서도 애덤스의 곡 ‘시티 누아르’를 연주한 바 있다. 두다멜의 조국인 베네수엘라는 최근 고난에 처해 있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베네수엘라 출신 피아니스트 가브리엘라 몬테로는 2014년 두다멜을 향해 “독재정권에 영합한다”고 돌직구를 날린 바 있다. 2017년 17세 바이올리니스트가 시위 중 사망하자 두다멜은 “정부가 국민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지난해 스페인 국적을 취득한 뒤에는 한층 과감해졌다. 올해 1월 미 할리우드 ‘명예의 거리’에 이름이 오르는 행사에서도 그는 “국민 다수의 소리가 존중받아야 한다. 그들과 함께 한다”고 말했다. 17일 오후 5시 서울 송파구 올림픽 체조경기장에서는 두다멜이 지휘하는 LA필의 존 윌리엄스 영화음악 콘서트도 열린다. 6만∼18만 원. 16일 예술의전당 콘서트는 7만∼3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8일 저녁 서울 서초구 남부터미널역 부근의 한 카페. 음악 팬 30여 명이 피아노처럼 보이는 고풍스러운 악기 주변에 모여 앉았다. 조율을 마친 악기로 간단한 음계가 연주되기 시작하자 지켜보던 이들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흔히 듣는 피아노 소리 같으면서도 어딘가 소박하게 들리는 이 악기는 옛 시대의 피아노인 ‘포르테피아노’였다. 이날 행사는 옛 건반악기 수입 및 대여업체 토미하프시코드가 주최한 포르테피아노 시연회. 모차르트 시대의 유명 피아노 제작자 요한 안드레아스 슈타인(1728∼1792)의 악기를 복제한 1985년산 포르테피아노가 주인공이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서 ‘슈타인의 악기는 어느 건반을 치든 고른 소리가 난다’며 격찬한 바 있다. 시연회에서는 구민수 토미하프시코드 대표가 포르테피아노와 슈타인 악기의 특징을 설명한 뒤 피아니스트 이은지가 하이든과 모차르트, 디아벨리 등의 피아노 작품을 연주했다. 이어 바로크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영과의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7번 협연이 이어졌다. 연주가 끝난 뒤 참석자들은 번갈아 악기를 연주해보거나 관찰하면서 현대 피아노와의 차이를 음미했다. 무릎으로 페달 조작을 하는 등의 특징도 눈길을 끌었다. 참석자들은 인터넷 클래식 카페 ‘슈만과 클라라’ 운영자인 전상헌 씨가 가져온 포르테피아노 도록을 살펴보며 시대별 악기의 특징에 대해 대화에 열중하기도 했다. 포르테피아노는 1700년경 이탈리아의 악기장인 크리스토포리가 피아노를 발명한 뒤부터 대체로 19세기 초 베토벤 시대까지의 피아노를 뜻한다. 전 씨는 “소리가 길게 지속되는 현대 피아노와 달리, 특히 슈타인 악기 같은 빈(Wien) 식 포르테피아노는 소리가 선명하게 시작돼 빨리 사라지기 때문에 음표 사이의 간격을 다양한 뉘앙스로 섬세하게 표현하는 데 유리하다”고 말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의 피아노 음악을 포르테피아노로 연주한 음반들이 소개되면서 이 악기들의 소리는 국내 음악팬들에게도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국내 무대에 포르테피아노가 등장하는 일은 아직 흔치 않다. 구 대표는 “피아노의 조상인 하프시코드가 국내에 수백 대 보급된 데 비해 초기 피아노인 포르테피아노는 아직 10여 대에 불과하다. 연주회장이나 단체가 보유한 것은 없고 모두 개인 소장 수준”이라고 전했다. 전 씨는 “옛 악기의 소리를 알면 그 시대에 활동한 작곡가의 의도를 더 정확히 알 수 있다. 음악팬들이 포르테피아노에 대한 관심을 가지면 고전주의 시대 건반음악을 새롭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벨기에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폴란드 쇼팽 콩쿠르, 러시아 차이콥스키 콩쿠르 등 세계 최고 권위의 콩쿠르를 잇달아 석권하며 세계 클래식 강국으로 떠오른 대한민국. 그 수도 서울에서 열리는 유일한 국제음악대회인 ‘LG와 함께하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가 24∼30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다. 15회째인 올해 콩쿠르는 한국인들이 세계무대에서 유독 강세를 보여온 성악 부문의 다섯 번째 대회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연주가와 음악교육자를 여럿 배출해 왔다. 서울대 음대 최초의 외국인 교수인 아비람 라이케르트(피아노)와 네덜란드 로열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악장인 리비우 프루나우(바이올린), 서울대 교수 백주영(바이올린),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바이올린)을 비롯해 성악 분야 역대 우승자인 루마니아의 스테판 마리안 포프, 한국의 공병우(바리톤) 김범진(테너) 김기훈(바리톤)도 국내외 오페라와 리사이틀 무대에서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다. 이번 콩쿠르에는 3년 전보다 58명이 많은 17개국 235명이 참가 신청을 했다. 이 가운데 예비심사를 통과한 12개국 64명(국내 45명, 해외 19명)이 24일부터 열리는 1차 예선에 출전한다. 올해도 세계 유명 콩쿠르의 역대 우승자와 상위 입상자가 여럿 나온다. 2017년 이탈리아 잔루카 캄포키아로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칠레 소프라노 알리손 로살레스, 2013년 체코 드보르자크 국제콩쿠르 오페라 부문 1위와 2014년 독일 브람스 국제콩쿠르 2위인 독일 바리톤 펠릭스 룸프, 2018년 북한 평양 국제성악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한 몽골 테너 밧자르갈 바야르사이한 등의 이름이 눈에 띈다. 한국인으로는 2018년 스웨덴 스텐함마르 국제콩쿠르 우승자인 테너 김요한, 2017년 독일 페로티 국제콩쿠르에서 1위와 청중상을 수상한 카운터테너 김태규, 2016년 이탈리아 치타 디 마젠타 콩쿠르 우승자인 베이스 김현민, 2016년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콩쿠르와 2017년 독일 노이에슈팀멘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베이스 조찬희 등이 불꽃 경연을 예고하고 있다. 2010, 2013년 연달아 서울국제음악콩쿠르에서 4위를 차지한 뒤 2013년 노이에슈팀멘 콩쿠르에서 우승하고 유럽 무대에서 활약하는 테너 이명현도 다시 우승을 향해 도전장을 냈다. 심사위원 면면도 화려하다. 미국 메트로폴리탄을 비롯한 미국과 유럽의 오페라극장을 중심으로 활약해온 소프라노 신영옥, 최상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테너), 김우경 한양대 교수(테너)와 역사상 최고의 ‘밤의 여왕’으로 불린 독일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에다 모저, 바흐에서 현대음악에 이르는 여러 음반으로 수많은 음반상을 수상한 독일 바리톤 안드레아스 슈미트, 이탈리아 나폴리 산카를로 오페라극장 프란체스코 안돌피 예술감독 등 세계에서 인정받아온 성악가와 오페라극장 디렉터 11명이 참여한다. 입상자에게는 1위 5만 달러(약 5700만 원)의 상금과 국내 정상급 오케스트라와의 협연 등 특전을 제공한다. 2위 이상 한국인 입상자에게는 병역특례 혜택을 준다. 대회 일정 △1차 예선 24, 25일 △2차 예선 26일 △준결선 28일 △결선 및 시상 30일(협연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 장윤성) 2만∼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단독주택이 좋은가, 아파트가 좋은가? 시내가 좋은가 전원주택이 좋은가? 3인이나 4인 가족에게 적당한 집의 넓이는 어느 정도인가?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독자라면 다른 책을 택하는 것이 좋다. 스위스 기자 겸 에세이스트인 저자의 시선은 ‘집이 인간 존재의 실현에 주는 역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긴 여정을 거쳐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온다. 첫 장의 고백에 따르면, 저자는 집에 박혀 사는 ‘방콕’족이다. 저널리스트로서 미덕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칩거와 평온한 일상이 없다면 글은 탄생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그는 집에서 보내는 고독을 자신만만하게 옹호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가장 우선시하는 장소는 ‘서재’다. 독서를 위한 공간은 몸을 웅크리고 쉴 수 있는 둥지이자 관찰과 관조의 장소여야 한다. 그러나 세상과 서재의 관계는 바뀌고 있다. 책상 위 컴퓨터로 세상이 쏟아져 들어온다. 유용한 정보들을 벽에 붙여두던 취미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담벼락을 장식하는 것으로 바뀌어간다. 고립 속에 안온했던 나만의 서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고독이 필수영양소인 글쟁이의 ‘내 집 예찬’ 정도로 이 책을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작가는 대문을 나서 ‘집’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고 간다. 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적절한 집을 허용할까.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집을 사며 진 빚을 갚는 기간은 2000년대 첫 14년 동안 13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났다. 안락한 집이란 삶의 출발이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평생 노력해도 도달할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안락한 집을 결국 구하고 나면, 충만한 삶이 가능할까. 종일 일터에서 시달리다 보면 저녁이나 주말에 집은 안락한 시간을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가 집에 시간을 들이기를 요구한다. 시간 분배의 왜곡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집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불평등한 성(性) 정치학도 작동한다. 프랑스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거하는 커플 중 남성은 하루 1시간 17분, 여성은 2시간 59분을 집안일에 썼다. 모두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얘기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간다. ‘집’이란 남성과 여성,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위한 그릇일까. 그런 생각은 “다양성과 대담함이 부족한 행복 이미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직접 답을 주기보다 독신자 등 여러 모습의 ‘가정’들로 구성된 공동체적 주거, 개인의 독립을 더 폭넓게 제공하는 주거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3자의 입을 들어 소개한다. 마지막 장 ‘이상적인 집을 상상하기’에서 저자는 개인의 영역으로 되돌아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집을 ‘상상’한다. 이 장에서는 ‘검소함, 투박한 재료,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능력’을 가진 일본 건축에 대한 경모가 읽힌다. 너무 부러워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인용한 “아름다움은 말이 많아서는 안 되며, 침묵의 요소를 포함해야만 한다”는 말은 일본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말이다. 야나기는 한국 민예의 소박성에 깊이 매료됐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을 회사에서 마감에 쫓기며 읽었다. 저자의 말대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 누운 채 집 안팎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천장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몽상에 잠길” 수 있는 날, 집의 서재에서 천천히 다시 읽고 싶어졌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단독주택이 좋은가, 아파트가 좋은가? 시내가 좋은가 전원주택이 좋은가? 3인이나 4인 가족에게 적당한 집의 넓이는 어느 정도인가? 그런 물음에 대한 답을 구하는 독자라면 다른 책을 택하는 것이 좋다. 스위스 기자 겸 에세이스트인 저자의 시선은 ‘집이 인간 존재의 실현에 주는 역할’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긴 여정을 거쳐 바로 그 지점으로 돌아온다. 첫 장의 고백에 따르면, 저자는 집에 박혀 사는 ‘방콕’족이다. 저널리스트로서 미덕은 아닌 셈이다. 그러나 “칩거와 평온한 일상이 없다면 글은 탄생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그는 집에서 보내는 고독을 자신만만하게 옹호한다. 그러므로 저자가 가장 우선시하는 장소는 ‘서재’다. 독서를 위한 공간은 몸을 웅크리고 쉴 수 있는 둥지이자 관찰과 관조의 장소여야 한다. 그러나 세상과 서재의 관계는 바뀌고 있다. 책상 위 컴퓨터로 세상이 쏟아져 들어온다. 유용한 정보들을 벽에 붙여두던 취미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담벼락을 장식하는 것으로 바뀌어간다. 고립 속에 안온했던 나만의 서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까지 읽으면 고독이 필수영양소인 글쟁이의 ‘내 집 예찬’ 정도로 이 책을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다음 장에서 작가는 대문을 나서 ‘집’이라는 주제를 사회적 공론의 장으로 끌고 간다. 사회는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적절한 집을 허용할까.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집을 사며 진 빚을 갚는 기간은 2000년대 첫 14년 동안 13년에서 20년으로 늘어났다. 안락한 집이란 삶의 출발이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에게는 평생 노력해도 도달할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다. 안락한 집을 결국 구하고 나면, 충만한 삶이 가능할까. 종일 일터에서 시달리면 저녁이나 주말에 집은 안락한 시간을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리가 집에 시간을 들이기를 요구한다. 시간 분배의 왜곡에서 벗어나기 전에는 집에서 자신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이다. 불평등한 성(性) 정치학도 작동한다. 프랑스의 최근 설문조사에 따르면 동거하는 커플 중 남성은 하루 1시간 17분, 여성은 2시간 59분을 집안일에 썼다. 모두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얘기다. 저자는 한발 더 나아간다. ‘집’이란 남성과 여성, 자녀로 구성된 가족을 위한 그릇일까. 그런 생각은 “다양성과 대담함이 부족한 행복 이미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직접 답을 주기보다 독신자 등 여러 모습의 ‘가정’들로 구성된 공동체적 주거, 개인의 독립을 더 폭넓게 제공하는 주거 등 다양한 가능성을 제3자의 입을 들어 소개한다. 마지막 장 ‘이상적인 집을 상상하기’에서 저자는 개인의 영역으로 되돌아와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집을 ‘상상’한다. 이 장에서는 ‘검소함, 투박한 재료, 시간과 함께 변화하는 능력’을 가진 일본 건축에 대한 경모가 읽힌다. 너무 부러워 할 필요는 없다. 저자가 인용한 “아름다움은 말이 많아서는 안 되며, 침묵의 요소를 포함해야만 한다”는 말은 일본 민예연구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의 말이다. 야나기는 한국 민예의 소박성에 깊이 매료됐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을 회사에서 마감에 쫓기며 읽었다. 저자의 말대로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자리에 누운 채 집 안팎에서 들려오는 희미한 소리에 귀 기울이고, 천장을 쳐다보며 이런저런 몽상에 잠길” 수 있는 날, 집의 서재에서 천천히 다시 읽고 싶어졌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쿵, 무거운 저음으로 시작해 비극을 예고하듯 한숨을 토해내는 전주. 회상하는 듯한 장식적인 음형. 이어 낯설지 않은 선율이 긴박하고 둔중한 왼손 화음 위에 흐른다. 이바노비치 ‘다뉴브강의 잔물결’. 일제강점기 소프라노 윤심덕(1897∼1926)이 노래한 ‘사의 찬미’로 알려진 선율이다. ‘거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왔느냐….’ 피아니스트 박종훈(50)에게 15일 서울 서초구 페리지홀에서 연주할 자작곡 ‘윤심덕 사의찬미 주제에 의한 쇼팽 스타일의 발라드’를 들려달라고 했다. 이룰 수 없는 사랑에 절망해 어두운 바다에 뛰어들려는 윤심덕을 쇼팽이 만나 쓴 듯한 극적인 피아노곡이 흘러갔다. 왜 윤심덕일까. “소나타 2번을 비롯한 쇼팽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하다 보니, 이바노비치의 이 선율이 딱 맞는 분위기를 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난해 TV에서 윤심덕과 관련된 드라마를 인상적으로 보기도 했고요. 그래서 쇼팽 발라드 1번의 스타일을 따 곡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리사이틀은 2017년 ‘Back to Bach’를 시작으로 열 차례 공연하는 ‘박종훈 신작 리사이틀 시리즈’의 다섯 번째 쇼팽 편이다. ‘작곡하는 피아니스트’로 알려진 그는 이 시리즈에서 언제나 자기 스타일의 곡을 선보여 왔다. 바흐 때는 바흐 인벤션을 낭만주의 스타일로 편곡해 연주했고, 베토벤 때는 ‘그대를 사랑해(Ich liebe dich)’ 주제에 의한 변주곡을 쳤다. 슈만 리사이틀에서는 슈만의 광기에 착안해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편곡 연주했다. “앞으로도 저만의 색깔이 드러난 곡을 더 많이 쓸 생각이에요. 나이가 들면서 작곡으로 표현하고 싶은 것이 많아지더군요. 슈만 리사이틀 때 연주한 ‘세 개의 짧은 환상곡, 에드거 앨런 포를 읽고’ 같은 곡은 다른 누구에 대한 오마주 없이 제 내면만을 표현한 작품이죠.” 그는 연주계의 중심을 벗어나지 않아 왔다. 예술의전당 교향악축제에 네 차례 협연자로 섰다. 그러면서 대중과의 접점이 가장 다채로운 피아니스트로 꼽힌다. TV 자연다큐멘터리 음악을 제작하고 여러 방송사의 드라마에서 음악 편곡과 연주를 맡았으며 피아노 교수, 지휘자 역으로 출연했다. “30대 초반에 지방 순회공연을 한 적이 있어요. 피아노 콘서트를 처음 오는 관객이 대부분이었는데, 열심히 듣고 순수하게 반응을 보이시더군요. 그때 마음먹었죠. 처음 경험하는 사람도 음악을 좋아할 수 있도록 뭐든 하겠다고.” ‘박종훈 신작 리사이틀 시리즈 V. 쇼팽과 자작 피아노 음악’은 15일 오후 8시 서울 서초구 페리지홀에서 열린다. 2만5000∼5만 원.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건반 위의 구도자’가 이번에 택한 순례 길은 고즈넉한 밤길이다. 피아니스트 백건우(73)는 ‘피아노의 시인’ 쇼팽의 녹턴(Nocturne·야상곡) 전 21곡을 담은 음반을 5일 발매했다. 지난해 9월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녹음한 앨범. 녹턴 중 여섯 곡과 발라드 1번 등 쇼팽 작품들로 전국 리사이틀도 연다. 12일 서울 마포구 마포아트센터를 시작으로 다음 달 20일 경기 안산문화예술의전당까지 11개 도시를 순례한다. 여정 중간에는 다음 달 2일 롯데콘서트홀을 비롯한 세 곳에서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교향악단과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한다. 그가 5일 마포아트센터에서 새 음반과 리사이틀에 담긴 생각들을 풀어놓았다. “베토벤의 소나타들을 녹음할 때, 마침 스튜디오에 쇼팽 녹턴의 악보가 있기에 훑어보았어요. 줄리아드음악원에 다니던 시절 이미 쳤던 곡이지만 새롭게 보이더군요.” 새롭게 열린 시각으로 쇼팽의 세계를 다시 해석해 보고 싶어 그에게서 영향 받은 작곡가들 작품까지 들여다보다가 다시 돌아왔다. “무엇이 쇼팽의 세계를 가장 잘 대변하는지 생각하다 보니 결국 야상곡으로 돌아오게 됐죠.” 쇼팽은 큰 홀에서 연주하는 것을 싫어했다. 작은 살롱에서, 친구들 앞에서 자기 곡을 치고 내면의 대화를 나누기를 좋아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직접 들은 사람의 기록에 의하면 어떨 때는 잘 안 들릴 정도로 조용하게 쳤다고 하죠. 그러나 그 감동은 너무나도 컸답니다.” 절대 일정한 볼륨을 넘어서지 않는 그의 말투를 생각나게 한다. 이번 녹턴 앨범은 연주자 스스로 생각한 순서를 따랐다. 1번으로 시작하지만 11번, 12번, 2번 식으로 이어진다. “쇼팽은 순서대로 연주할 걸 의식하고 쓰지 않았어요. 어떻게 작품을 제시할 때 더 제대로 들릴 것인지가 (번호순보다) 중요하죠.” 그는 새로운 레퍼토리에 도전할 때마다 전국을 돌았다. 외딴섬 학교에서도 공연을 펼쳤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 문화의 혜택을 잘 누리기를 꿈꾸죠. 들어볼 기회가 없으면 알지 못하게 되니까,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음악 하는 사람의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공연장과 피아노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도 종일 음향을 체크하며 최적의 소리를 찾기로 정평이 났다. 앞으로는 음반 작업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를 의식한 생각으로도 들렸다. “연주는 순간에 끝나지만 녹음은 남아요. 학생 시절에 드뷔시 오페라 ‘펠레아스와 멜리장드’를 방에서 종일 들으며 가슴이 뛴 일이 있는데, 그런 감흥은 음반만이 줄 수 있죠.” 차이콥스키 협주곡 1번을 협연하는 러시아 국립 스베틀라노프 교향악단은 과거 ‘소련 국립 교향악단’으로 알려진 오케스트라다. 지휘자 파보 예르비가 ‘카리스마 넘치고 명확하다’고 칭찬한 아르망 티그라니얀이 지휘봉을 든다. 마침 5월 24일 KBS교향악단과 협연하는 피아니스트 카티아 부니아티시빌리도, 6월 20일 서울시립교향악단과 협연하는 베조드 압두라이모프도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협연곡으로 선택했다. 백건우는 지난해 1월 서울시향 신년음악회에서 이 곡을 협연한 바 있다. 그는 “연주 역사를 살펴보면 대가들의 소리는 따로 있다. 음악세계가 뚜렷하지 않으면 수많은 연주자들과 다를 게 없다”며 색깔이 뚜렷한 연주를 자신했다. 부인 윤정희 씨는 이번 간담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백건우는 “아내가 당뇨로 병원에 있어서 자리를 함께하지 못했다”고 전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눈의 성찬을 기대했는데 귀가 먼저 호강했다. 인천 연수구 아트센터인천에서 1일 공연된 스페인 카탈루냐 공연그룹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하이든 ‘천지창조’는 음색이 잘 어울리는 솔리스트들과 기량이 탁월한 악단, 좋은 소리를 가진 합창단이 정밀한 화음을 쌓아올린 무대였다. 바로크·초기 고전주의 음악 전문 앙상블인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은 김성진 지휘자의 리드 아래 매끈한 합주를 선보였다. 비브라토를 억제한 날씬한 현과 단단한 맬릿(북채)을 사용한 팀파니가 하이든 시대의 음색을 날렵하게 구현해냈고, 관악기는 1시간 50분 내내 한 점의 흔들림이 없었다. 오페라 전문 합창단인 그란데 오페라 합창단도 초기 고전주의의 발성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소프라노 임선혜의 ‘에지 있는’ 콜로라투라 기교와 서늘한 발성은 공연 내내 귀를 즐겁게 했다. 베이스바리톤 토마스 타츨은 공명점이 높은 순수한 음색을 선보였고, 특히 테너 로빈 트리츨러와 앙상블을 이룰 때 절묘하게 어울리는 호흡을 이뤄냈다. 1700석 규모의 아트센터인천 콘서트홀도 ‘천지창조’를 담기에 잘 맞는 그릇이었다. 세부 음향이 살아나면서도 풍요한 울림을 이뤄냈다. 볼거리 면에서는 홍보의 중심이었던 9m 높이 크랭크와 1000L 수조보다는 오히려 풍선 36개가 효자 역할을 했다. 풍선들은 모이고 흩어지면서 무대 아래와 위, 2층 객석 바로 앞까지 공연장 전체 공간을 부지런히 오가며 프로젝션 조명과 멋진 하모니를 이뤘다. 공연 중간 풍선 두 개가 자리를 이탈해 무대 중간을 가로막은 건 옥에 티였다. 프로젝션 조명은 빅뱅을 연상시키는 빛의 폭발에서부터 행성들, 유전자, 동식물의 탄생과 생장 등을 효과적으로 묘사했다. 고통받는 난민들을 묘사한 철조망 이미지와 함께 유관순 열사의 모습이 투사되었다. 3월을 맞은 한국인들을 위한 배려 깊은 선물이었다. 다만 ‘천지창조’ 가사나 성경과 무관한 ‘nature is the mother and daughter of herself’ 같은 추상적인 텍스트가 자주 투사돼 정보의 과잉으로 느껴졌다. 다채로운 감각과 메시지의 향연은 음악과 조형들로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솔리스트들에게 ‘극한직업’을 체험하게 한 크랭크와 수조는 효과적인 장치였지만 무대 중앙에 붙박이로 배치돼 쓰임새가 한정적이었다. 전후좌우로 이동할 수 있었다면 더욱 효과적인 연출이 가능했을 법했다. 이 장치들 때문에 솔리스트들의 노래가 흐트러진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없었다. 가사(리브레토) 자막을 제공하지 않은 것은 이점보다는 아쉬움이 많은 결정이었다.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건 성장시대의 경구였다. 그러나 이 책의 원제는 ‘세상은 닫혀 있고 욕망은 무한하다’(Le Monde est clos et le d´esir infini)이다. 현대인은, 특히 1960년대 이후의 한국인은 더욱, ‘경제성장’이야말로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증수표라고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저자에 의하면 앞으로 지속적인 경제성장이란 가능하지 않다. 가장 큰 위기는 기계와 인공지능(AI)이 인력을 대체하는 데 있다. 20세기의 경제성장은 농업 인력이 다른 산업으로 이동하면서 생산성을 계속 높임으로써 가능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노동자는 이미 서비스 부문으로 옮겨와 있고, 인공지능이 그 일자리들을 가져가고 있다. 이제 일자리의 이동은 생산성 제고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20세기의 발명품들은 수많은 소비와 성장을 창출했다. 전구, 자동차, 비행기, 영화, 에어컨 등은 큰 수요를 낳았고 현대인의 삶을 변혁시켰다. 그러나 오늘날 인류가 체감하는 변화란 스마트폰을 비롯한 모바일 기기 정도다. 매력적인 기계이지만 20세기의 변혁들만큼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 로봇, 3D프린터, 무인자동차, 드론 등이 앞으로의 ‘기대주’이지만 이들도 우리 삶의 양식을 크게 바꾸지는 못할 것이다. 무한한 성장을 약속하기에 지구라는 별이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중국인들이 미국식으로 살면 세계 곡물 생산량의 3분의 2를 소비하게 된다. 환경적으로 가능한 성장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어떻게 할 것인가? 저자는 무한성장의 욕망을 포기하는 대신 사회 갈등의 압력이 적고 실직이 자연스러운 ‘덴마크형’ 사회로 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또 비슷한 계층의 그룹끼리만 소통하는 ‘사회적 족내혼(族內婚)’을 벗어나야 하며 도시를 친환경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논리적으로 꼼꼼하다고 알려진 프랑스인의 저작이지만 무한 경제성장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 상황 인식과 ‘바람직하지 않다’는 윤리의식이 구분 없이 뒤섞여 아쉽다. 책 표지에 쓰인 원제의 ‘d´e sir’는 ‘d´esir’(욕망)의 오기(誤記)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영국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수석지휘자 블라디미르 유롭스키가 ‘자신의 악기’인 런던 필과 11년 만에 서울에 온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3월 7일 오후 8시 열리는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 협연 런던 필하모닉 연주회다. 유롭스키는 취임 첫 시즌인 2008년 이 악단과 서울에서 프로코피예프 교향곡 5번 등을 연주한 바 있다. 런던 필과 열두 번째 시즌을 맞은 그를 e메일로 만났다. ―런던은 이른바 5대 오케스트라가 각축하는 치열한 공간이죠. 수준 높은 연주 외에 오늘의 런던 필만이 가진 개성으로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런던 필의 강점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명료한 표현, 반응과 음색을 만들어 내는 ‘완벽한 귀’입니다. 매년 여름 글라인드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오페라 네 편씩을 공연하며 레퍼토리에 대한 유연성도 늘리고 있습니다.” 유롭스키 시대의 런던 필은 자체 레이블인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레이블로 브람스에서 홀스트, 쳄린스키에 이르는 방대한 앨범을 쏟아내고 있다. 실연과 음반을 망라한 그의 연주에는 ‘악단을 장악하는 솜씨가 농익었다’는 찬사가 곁들여진다. 성부 사이의 능란한 색상 배합으로 또렷한 음의 팔레트를 빚어내며 특히 후기 낭만주의 레퍼토리에서 극적인 구도를 만들어 나간다. 그는 음악 가족의 일원이기도 하다. 증조부와 아버지, 동생이 지휘자, 할아버지는 영화음악가다. 아버지 미하일 유롭스키는 지난해 내한해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아버지는 제가 어떤 음악이든 자유롭게 탐험할 수 있도록 격려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머리와 마음속에 음악을 키울 수 있는 환경에서 자라도록 해주셨죠.” 이번에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할 독일 바이올리니스트 율리아 피셔는 한국 팬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여러 차례의 오케스트라 협연 외에 2016년에는 리사이틀 무대도 가졌고, 올해 7월에는 미하일 잔덜링이 지휘하는 드레스덴 필하모닉과 브람스의 협주곡을 협연한다. “피셔는 훌륭한 바이올리니스트이고 본능적인 아티스트죠. 명석한 두뇌, 완벽한 테크닉, 진중하고 탐색적인 접근법을 바탕으로 뛰어난 해석을 펼칩니다. 우리가 이전에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멘델스존을 들려줄 것입니다.” 이번 공연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교향시 ‘틸 오일렌슈피겔의 유쾌한 장난’으로 시작해 전원의 목가와 같은 브람스 교향곡 2번으로 끝을 맺는다. 6만∼26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지난해 평양에서 열린 공연 ‘봄이 온다’ 오프닝에 출연해 주목받은 무용가 석예빈(사진)이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브라질 카니발에서 우리 춤을 선보인다. 브라질 한국문화원(원장 권영상)은 3월 1일 한인타운이 있는 브라질 상파울루 봉헤치루 지역에서 ‘아리랑―카니발’을 연다고 밝혔다. 이날은 3월 6일까지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등 브라질 전역에서 열리는 카니발 첫날이다. 석예빈은 특설무대에서 최승희 춤을 바탕으로 한 태극부채춤과 방탄소년단의 ‘아이돌’을 콜라보한 오고무, 유관순 열사에게 헌정하는 ‘유관순의 꽃잎’을 선보인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지난해 3월 25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LG와 함께하는 제14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시상식. 결선 진출자 6명 중 최연소인 김동현(당시 19세)의 이름이 우승자로 호명되자 객석에서는 “와아∼” 하는 함성이 터졌다. 결선에서 장윤성이 지휘하는 인천시립교향악단과 시벨리우스 협주곡 D단조를 협연했던 김동현은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강동석 심사위원장은 “나이답지 않게 완벽한 기교와 여유 넘치는 연주가 돋보인다”고 평했다. 그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이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28일 열리는 ‘아름다운 목요일 금호악기 시리즈’로 팬들을 만난다. 그는 2016년 오디션을 거쳐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의 ‘금호악기은행’에서 임차한 1763년 과다니니 파르마 악기를 사용하고 있다. “따뜻하고 열정 있는 소리를 표현해 주는 악기예요. 반응이 빠르죠. 처음 봤을 때부터 차원이 다른 소리를 들려줘서 바로 매료됐습니다.” 이번 공연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전반부 연주곡은 드뷔시의 소나타와 쇼송의 시(Po‘eme), 이자이의 ‘생상 왈츠 형식의 에튀드에 의한 카프리스’입니다. 주변에서 프랑스 작곡가들의 감각이 제 연주와 맞닿은 면이 있다고들 해요. 프랑스적 감수성을 마음껏 표현해 보려 합니다. 후반부에 연주할 프로코피예프의 소나타 1번도 프랑스 작곡가들의 영향이 서려 있는 작품이에요. 제2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 작곡되어 전쟁의 잔인함과 고통이 녹아 있죠.” 그는 17세였던 2016년, 루마니아 에네스코 국제콩쿠르에서 2위에 입상했다. 갓 20대가 된 만큼 도전해 보고 싶은 게 많다. 지난해 7월에는 서울국제음악콩쿠르 결선곡인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포르투갈 마르방 음악축제에서 크리스토프 포펜이 지휘하는 마르방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협연해 격찬을 받았다. 내년 이맘때면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유학할 계획인데 어떤 나라로 갈지 치열하게 고민 중이라고 했다. 이번 리사이틀에서는 평창대관령음악제 등에서 반주자로 활동해온 피아니스트 강형은과 호흡을 맞춘다. 28일 오후 8시. 3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오늘날 세계 예술가들의 참여정신을 가장 자극하는 문제 중 하나가 ‘난민’이다. 다음 달 1, 2일 인천 연수구 아트센터인천에서 공연되는 하이든 ‘천지창조’가 난민 문제를 무대 위에 끌어들인 데 이어, 현대의 난민 문제를 정조준한 오페라가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선을 보인다. 다음 달 29, 30일 오후 5시 경남 통영시 통영국제음악당 블랙박스에서 공연되는 호소카와 도시오(細川俊夫)의 오페라 ‘바다에서 온 여인’이다. 중동의 전장에서 도망쳐 온 젊은 난민 여인이 지중해의 낯선 연안에 도착한다. 여인은 전쟁의 고통과 사랑을 잃은 아픔을 노래하고, 그러는 동안 고대 여성의 혼이 여인의 안에 깃든다. 작곡가 호소카와는 21세 때부터 베를린예술대에서 작곡가 윤이상을 사사한 그의 수제자다. 작품은 일본 전통 가무극 노(能) 작품인 ‘후타리 시즈카(二人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고대 여성의 혼과 난민 여성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40분이 약간 넘는 작은 규모의 오페라다. 이번 공연에선 성시연 지휘 TIMF 앙상블이 반주를 맡고 소프라노 사라 베게너가 난민 여성으로, ‘노’ 가수인 아오키 료코가 옛 여인의 혼으로 출연한다. 이 오페라를 비롯한 올해 통영국제음악제의 전체 프로그램은 3월 29일부터 4월 7일까지 펼쳐진다. 올해 주제는 ‘운명(Destiny)’. 내년 탄생 250주년을 맞는 악성(樂聖) 베토벤을 한발 앞서 조명하겠다는 의도가 읽힌다. 개막공연은 29일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 콘서트. ‘운명’이라는 제목으로 널리 알려진 베토벤 교향곡 5번과 윤이상 생전 최고의 협력자였던 오보이스트 겸 작곡가 하인츠 홀리거의 ‘장송 오스티나토’(아시아 초연), 베조드 압두라이모프가 협연하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을 미하엘 잔데를링 지휘로 연주한다. 이 밖에 명문 실내악단 자그레브 솔로이스츠(3월 30, 31일), 아르디티 현악4중주단(4월 3일), 정치용 지휘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윤이상 교향곡 3번(4월 4일), 미샤 마이스키 첼로 리사이틀(4월 6일), 가족 기타앙상블 로스 로메로스(4월 6일) 등의 무대가 초봄의 통영을 수놓는다. 폐막공연으로는 4월 7일 알렉산더 리브라이히 지휘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바그너 음악극 ‘발퀴레’ 1막을 콘서트 형식으로 연주한다. 세계 바그너 무대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소프라노 서선영, 테너 김석철, 베이스 전승현이 출연한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어린 축구 꿈나무는 자신의 영웅을 만나고 싶다. 그 영웅은 해외 팀에서 활동하는 프로 선수. 기적처럼 그 일이 일어난다. 선수는 소년의 움직임을 보며 조언해 주고, 소년이 날리는 슛에 몸을 피하고, 둘은 손을 마주친다. 실제의 공간이 아닌 가상현실 속에서. 최근 방영되고 있는 이동통신사 TV 광고다. 공상영화 같은 이런 광경은 이미 일부 현실이 됐고, 어쩌면 생각보다 빨리 우리 삶 깊이 확산될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가상인간상호작용연구소장인 저자는 가상현실(VR)이 가져올 새로운 미래의 여러 단면을 보여준다. 가상현실은 실제의 경험을 급속히 대체하고 있다. 스포츠, 연설, 협상, 기계수리, 춤, 음악 등 많은 분야에서 가상현실 교습으로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여행도 상당 부분 대체할 수 있다. 물론 실제 여행과 똑같지는 않지만 가상현실 여행은 연료 소비를 줄여 지구를 지켜준다. 가상현실 교실에서는 교사의 아바타가 학생 각각에게 대응할 수 있어 참여와 몰입도를 높여준다. 뉴스도 혁명적 변화를 겪을 수 있다. 뉴스 수용자가 참상들을 체험한 것처럼 분노하게 될 수 있으므로 ‘실제 같은’ 감정을 제어하는 것이 과제일 것이다. 물론 가상현실을 실제로 믿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가상 캐릭터에게 전기 충격을 주는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대상이 실제인 것처럼 행동했고, 심박수 등의 측정치도 같은 결과를 나타냈다. 대뇌가 실제의 경험과 비슷하게 행동하는 것이다. 2015년 공개된 가상현실 360도 다큐멘터리 ‘시드라에게 드리운 구름’은 요르단의 시리아인 난민 캠프 속으로 카메라를 가져가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가상현실은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를 치료하는 데도 쓰인다. 트라우마를 겪은 환자에게 가상현실을 통해 충격을 회피하지 않고 다시 대면하게 하면 우울증상이 줄어든다. 드레싱 치료 중 큰 고통을 겪는 화상 환자에게 치료 중 거미공포증 환경을 체험하게 했더니 통증에 대해 생각한 비율이 2%로 줄었다. 가상 세계의 진정한 혁명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가상현실을 통해 ‘실제’ 어디에 있든지 만날 수 있다. ‘지금 여기의 내 모습’일 필요도 없다. 내 모습을 입힌 아바타를 상대방이 보며 대화하면 보내야 하는 정보량이 크게 줄어든다. 카메라를 보고 눈을 맞출 필요도 없다. 물론 아바타는 ‘나’의 실제 표정도 표현하게 된다. 이런 가상현실이 가져올 미래는 장밋빛이기만 할까. “우라늄은 집 안을 따뜻하게 덥히는 데에도 쓰일 수 있지만 도시를 파괴하는 데도 악용될 수 있다. 결국 다른 모든 기술처럼 가상현실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수단’이다”라는 게 저자의 조언이다. ‘좋은’ 가상현실 콘텐츠를 만드는 원칙으로 두 가지를 제시한다. 만들려는 것이 가상현실에 있을 필요가 있는지 자문해보고,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책처럼 디지털과 미래학이 결합된 저작물은 금세 새로운 정보로 대체되기 쉽다. 이 책은 지난해 미국에서 출간된 뒤 바로 번역돼 최신 내용을 담았다. 인지심리학자인 저자는 가상현실이 가져올 사회구조의 변혁과 같은 미래학적 문제까지는 건드리지 않는다. 그러나 불확실한 예언보다는 분명한 현상 진단이 오히려 값지다. 원제는 ‘Experience on demand’(주문형 경험).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

“대한독립 만세! 대한독립 만세!” 비장한 선율을 입은 함성에 대답하듯 긴박한 셋잇단음표의 리듬이 이어졌다. “막아라 막아라 폭도들을 막아라, 찔러라 찔러라, 쏴라 쏴라….” 18일 저녁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예술동 서울시합창단 연습실이 태극기 숲을 이뤘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해 3월 2일 오후 5시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사진) 연습 현장.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시민합창단 80명이 함께 무대에 선다. 1월부터 연습을 이어온 시민합창단은 이날 처음으로 ‘프로’들인 서울시합창단과 자리를 함께했다. “자, 여기서는 백성들과 순사들이 갈립니다. ‘독립 만세’ 하고 선율이 올라갈 때는 이렇게 손을 앞으로 내뻗고요, 내려갈 때는 팔을 내리면서 이렇게!” 이 곡을 만든 작곡가 이용주 씨가 연출가로 연습을 주도했다. 지휘를 맡은 강기성 서울시합창단 예술총감독은 뒤에서 지휘봉을 휘두르며 리듬과 강약을 다듬었다. 장면이 바뀌어 유관순 역의 소프라노 서선영 씨가 “내 귀와 손이 다 잘리고 부러진다 해도 나라를 뺏기고 짓밟힌 현실은 인정할 수 없다”고 노래하고 합창단이 허밍으로 따라 부르며 이날 연습은 막을 내렸다. 시민합창단원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이 작품은 서곡으로 시작해 매봉교회 예배당에서 기도하는 유관순 열사의 모습부터 정동교회에서의 장례식까지, 짧지만 뜨거웠던 삶과 3·1운동의 격랑을 음악극으로 담아냈다. 합창단이 무대 한가운데 자리 잡고, 그 앞으로 주인공인 유관순과 일본 순사 등 출연자들이 연기를 펼친다. 서선영 씨는 “슬프고 답답해서 때로는 잊고 싶은 역사였는데, 옛 분들의 숭고한 희생 덕에 오늘날 우리가 세계에서 어깨를 펴고 살 수 있게 된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그는 “외침과 노래가 섞인 연기가 쉽지 않아 열심히 연습 중이다”고 덧붙였다. 강기성 서울시합창단 예술총감독은 “지난해 취임 직후 3·1운동 100주년의 숭고한 뜻을 오늘날 적합하게 되새길 수 있는 공연을 만들어 보고자 작품을 기획했다”고 말했다. 작곡과 연출을 맡은 이용주 작곡가는 오페라 뮤지컬 ‘윤동주’, 일본군 위안부를 소재로 한 오페라 ‘이화 이야기’ 등을 쓴 바 있다. 그는 “노래에 열성이 있는 사람이면 소화할 수 있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연극적 요소가 많다 보니 사뭇 극적인 음악이 펼쳐지게 됐다”고 말했다. 시민합창단으로 참여한 유승완 씨(45)는 “박경리 작가의 ‘토지’를 최근 다시 읽으며 현대사에 대한 생각을 깊이 하고 있던 중 오디션 공고를 보고 함께하게 됐다. 일본 순사 역으로도 선발돼 개인적으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대학 동문합창단 선배의 권유로 참여한 조정숙 씨(57)는 “퇴근 뒤 광화문에 나와 연습하는 것이 일상의 행복이 됐다. 아마추어 합창단이지만 때로 프로 못지않은 실력이 나와 서로 깜짝 놀라곤 한다”며 웃음 지었다. 1만∼5만 원.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