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효주

손효주 기자

동아일보 정치부

구독 142

추천

안녕하세요. 손효주 기자입니다.

hjson@donga.com

취재분야

2026-01-08~2026-02-07
국방48%
정치일반22%
대통령9%
남북한 관계9%
국제교류3%
외교3%
미국/북미3%
칼럼3%
  • 극단적 선택 빈번한 모텔서 치매노모가 사라지는데…

    시골 국도변 외진 곳에 자리한 허름한 모텔. 이 모텔에선 1년이면 서너 번 극단적 선택을 한 손님이 발견된다. 모텔을 운영하는 40대 미혼 남성 도우(이중옥)는 목맨 시신을 보고도 별 반응이 없다. 익숙한 듯 시신을 보는 공허한 눈은 그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황폐한지를 보여준다. 객실을 개조한 방에선 치매에 걸린 노모가 짐승처럼 울부짖고 주기적으로 난동을 부린다. 도우에겐 절망이 곧 일상이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감정을 표출하는 일이 거의 없다. 누르고 삭여내길 거듭할 뿐이다. 18일 개봉한 영화 ‘파로호’는 도우가 노모가 실종된 후 더 깊은 절망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도우는 효자상까지 받았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를 의심한다. 오랜 간병에 지쳐 노모를 살해했을 것이란 의심이다. 임상수 감독(41·사진)은 장편 데뷔작인 ‘파로호’에서 기존 스릴러물처럼 긴박한 속도로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는다. 도우의 무기력한 눈빛과 소심한 행동을 무심히 보여주는 한편 똑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 등 적막을 깨는 음향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긴장감이 천천히 스미게 만든다. 임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불안과 긴장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데 중점을 뒀다”며 “관객들이 무심코 영화를 보다가 자세를 살짝 고쳐 앉으며 어느새 몰입하게 하는 것이 연출 목표였다”고 했다. 감독은 노모는 어디로 간 것인지, 도우가 범인이 맞는지 좀처럼 답을 알려주지 않고 혼란을 증폭시킨다. 도우와 정반대되는 성격을 가진 미스터리한 젊은 남성 호승(김대건)을 모텔 손님으로 등장시키며 범인이 누구인지 더 헷갈리게 만든다. 임 감독은 “노모의 실종 이후 도우의 신경쇠약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설정을 더해 호승이 실존하는 인물인지 아닌지조차 짐작하기 어렵게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파로호는 강원 화천에 있는 호수 이름. 6·25전쟁 당시 중공군 시신이 대거 수장된 곳이다. 임 감독은 제목을 ‘파로호’로 정한 이유에 대해 “파로호는 고요하고 아름다운 호수지만 그 아래에 부패된 것들이 침전돼 있는 곳이기도 하다”며 “스스로를 가둔 채 억눌린 욕구나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살아가는 도우와 닮은 공간”이라고 말했다. “관객들이 각자의 심연에 억눌러 둔 게 무엇인지, 이를 애써 가라앉혀만 두고 외면하며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밑바닥에 쌓아두기만 하다가 언젠가는 수면 위로 폭발하듯 올라오는 순간을 맞닥뜨릴지도 모르니까요.”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2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모든 게 부모 탓? ‘정상적 양육법’에 던지는 물음표

    엄마 ‘라비’는 생후 4개월 된 딸을 아예 쳐다보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딸의 손가락을 마구 만져도 관심이 없다. 모유 수유를 할 때가 돼서야 무표정한 얼굴로 젖을 먹일 뿐이다. 나이지리아 하우사족 여성들은 자신의 장남이나 장녀와 이야기하거나 눈을 마주치는 것을 금지하는 ‘친족 회피 관습’을 따른다. 라비도 이를 따른 것. 일부 선진국 부모들은 경악할지도 모른다. 영아가 엄마와의 애착 형성에 실패하면 정서적으로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의 부부 인류학자. 이들은 하우사족 장남 장녀들에게 별다른 정서적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전한다. 이 중 똑똑하고 매력적인 이들을 소개하며 제대로 된 양육법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케냐의 구시족은 아기가 울면 즉각 반응한다. 반면 미국 엄마들은 아기가 울면 잠깐이라도 그대로 두는 편이다. 무엇이 옳을까. 각자의 양육 목표와 문화, 인구학적 맥락 등이 다를 뿐이다. 1997년 뉴욕 경찰은 덴마크 출신의 한 엄마가 식당에서 밥을 먹는 동안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식당 밖에 있게 했다며 그를 체포했다. 그는 “내 고향에선 관례”라고 주장했고 이는 사실이었다. 한 사회에서 허용될 수 없는 일이 다른 사회에서는 정상적인 육아법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과학적이라는 이름하에 제공된 기존 (양육 및 아동발달 관련) 이론들은 부모가 아동발달에 미치는 영향력과 아이를 기를 때 직면하는 위험을 극도로 과장해왔다.” 저자들의 주장은 이 한마디로 요약된다. 부모의 양육태도가 자녀의 정신을 병들게 할 수 있다며 공포감을 키우는 정신건강의학적 관점 중심의 육아법이 부모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것. 아기가 커가며 얻게 되는 회복 탄력성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도 강조한다. 이들은 남미, 유럽, 아시아에 이르기까지 인류학적 관점에서 양육법이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준다. “양육에 대한 일반적인 이론을 만들고자 하는 시도는 미숙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양육은 과학이 될 수 없고 ‘정상적 양육법’은 매우 다양하다는 것. 자녀에게 애정을 쏟아붓고도 자신이 자녀를 망치고 있는 건 아닌지 불안과 걱정을 달고 사는 부모들의 죄책감을 덜어줄 ‘부모 위로서’라 할 만하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2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8년만에 방한한 ‘빵 형’…“영화보다 한국 음식 먹으러 왔어요”

    “사실 영화 때문이 아니라 한국 음식 먹으러 온 겁니다.” 24일 개봉하는 영화 ‘불릿 트레인’ 홍보 차 방한한 배우 브래드 피트(59)의 첫마디는 한국 음식 예찬이었다. 19일 서울 영등포구 콘래드 서울 호텔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취재진 100여 명 앞에서 너스레로 분위기를 띄웠다. 청색 셔츠에 청바지 차림으로 무대에 선 그는 환갑을 앞둔 나이에도 20, 30대 시절 못지않은 건재함을 과시했다. 피트가 방한한 건 2014년 영화 ‘퓨리’ 개봉 당시 방한한 이후 8년 만. 이번이 4번째 방한이다. 한국 팬들 사이에서 ‘빵 형’으로 불리는 그는 “한국 같은 좋은 나라에 오면 시간이 금방 가버린다. 한국에서의 시간은 엄청난 마법 같다”고 말하는 등 들뜬 모습을 보였다. 그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다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취재진들 모습을 촬영하기도 했다. 피트는 할리우드 제작사 ‘플랜B’를 이끌며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와 배우 윤여정에게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겨준 영화 ‘미나리’를 제작하는 등 한국인 및 한국계 감독이 연출한 작품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왔다. 봉 감독의 차기작인 ‘미키7’ 제작도 플랜B가 맡았다. ‘불릿 트레인’은 피트가 특급 킬러 ‘레이디버그’로 출연한 영화로 3년 만의 주연 작. 레이디버그가 서류가방 하나를 찾아오면 된다는 간단한 임무를 받은 뒤 올라탄 일본 고속열차에서 세계에서 몰려든 일류 킬러들을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도쿄에서 교토로 향하는 고속열차 내 일등칸 등 다양한 공간에서 킬러들의 화려한 고난도 액션이 펼쳐진다. 피트는 “팬데믹으로 인한 록다운(봉쇄) 기간이라 어렵게 촬영했다”며 “여름에 딱 들어맞는 액션 영화로 엄청난 액션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이어 “팬데믹 기간 힘들고 외롭고 기이하기까지 한 시간을 보내셨던 만큼 이 영화를 통해 즐거움을 되찾을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영화는 과거 그가 출연한 ‘파이트 클럽(1999년)’ ‘오션스 일레븐(2002년)’ 등에서 스턴트 대역을 맡으며 오랜 기간 피트와 우정을 쌓아온 데이비드 레이치 감독이 연출했다. 피트는 “과거에 내가 레이치 감독의 상사 격이었다면 이번엔 입장이 바뀌었다. 스턴트를 하던 사람이 감독으로 성장하는 건 흔치 않은 일”라고 말했다. 또 “이번 영화의 액션과 연기는 나와 감독이 존경하는 배우 성룡과 찰리 채플린을 벤치마킹했다”며 “이 영화를 통해 그분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고 했다. 함께 방한한 배우 에런 테일러 존슨(32)은 피트에 대한 존경심을 여러 차례 드러냈다. 그는 영화에서 피트와 정면대결을 벌이는 킬러 탠저린 역할을 맡았다. 존슨은 “그는 전설이고 아이돌이며 훌륭한 멘토”라며 “영화에서 여러 액션신을 소화했는데 그중에서도 피트와 맞붙었던 액션이 최고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영화는 엔터테인먼트적인 요소로 꽉 차있는데다 피트라는 대배우가 나오는 만큼 믿고 기대해도 좋다”고 강조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9
    • 좋아요
    • 코멘트
  • 파산 직전 가장 앞에 나타난 시신-돈다발, 전혀 모범적이지 않은 ‘모범가족’ 운명은?

    1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모범가족’은 주인공 가족이 얼마나 모범적이지 않은지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대학교 시간강사 동하(정우)는 교수가 되겠다며 어린 아들의 심장 수술비를 뇌물로 갖다 바치지만, 결국 교수도 되지 못하고 돈도 다 날린다. 온갖 빚을 끌어 쓰던 가족은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다. 아내 은주(윤진서)는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남편에게 지쳐 이혼을 요구한다. 중학생 딸은 나쁜 길로 빠진다. 겉으로는 법 없이도 살 남편과 똑 부러지는 아내가 만든 모범가족 같지만 실제로는 부스러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가족이었던 것. ‘모범가족’을 연출한 김진우 감독은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외부에서 모범가족이라고 평가받는 가족의 실제 모습이 그렇지 않은 데는 가족 간의 소통 부재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며 “이들 가족이 겪는 문제를 사실적인 우화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연출 의도를 밝혔다. 10부작인 드라마는 1부 초반부터 동하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몬다. 한적한 도로 차량 안에서 절망에 몸부림치던 동하의 차 뒤를 다른 차가 들이받는다. 문제의 차엔 시신 두 구와 거액의 돈이 실려 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동하는 돈을 모두 챙긴다. 이 돈은 동하는 물론 동하 가족을 더 깊은 수렁으로 내몬다. 문제의 돈은 마약 조직의 검은돈이었던 것. 동하와 가족들은 마약 조직 2인자 광철(박희순) 등의 추격에 목이 죄이는 신세가 된다. 김 감독은 주인공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지만, 음악은 컨트리풍의 서정적인 음악을 사용했다. 음악으로 불안감을 고조시키던 기존의 한국 범죄 스릴러물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김 감독은 “음악이 배우들 연기보다 앞서 가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특정 감정을 몰아붙이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발 떨어져 상황을 관조하는 듯한 담담한 음악은 시청자들이 극 중 인물들과 그들의 심리에 한층 더 몰입하게 만든다. 범죄 조직이 시리즈의 주요 축을 담당하지만 이들을 폼 나지 않게 그린 점도 돋보인다. 김 감독은 “조폭의 외형에 집중하면 조폭만 보일 뿐 사람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며 “사람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긴장감을 10부까지 이끌어가는 일등공신은 배우 정우다. 그는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얼굴 근육이 마구 떨리는 연기를 선보이는 등 ‘벼랑 끝 동하’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그는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시청자들이 ‘이 이야기는 진짜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연기에 정성을 쏟았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둘이서 팝콘 먹으며 영화보면 4만원 훌쩍… 극장 가기 겁나요”

    대학생 김예성 씨(23)는 올해 제 돈을 다 내고 영화관에 간 적이 없다. 통신사 무료 혜택을 받아 2번 간 게 전부다. 팬데믹 이전 한 달에 한 번꼴로 영화관에 갔다는 그는 “관람료가 크게 오른 뒤로는 영화관에 가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팬데믹 기간 영화 관람료가 세 차례에 걸쳐 가파르게 오르면서 영화관 방문을 부담스러워하는 관객들이 늘어난 분위기다. 영화 관람료는 CGV 기준 2020년 10월 1만2000원(이하 주말 일반관 기준)에서 1만3000원으로 8.3% 올랐다. 지난해 4월과 올해 4월에 걸쳐 1000원씩이 더 올라 현재는 1만5000원이다. 영화 관람료가 2001년 8000원에서 2016년 1만1000원으로 3000원 인상되는 데 15년이 걸린 반면 2018년 4월 1만2000원으로 올린 관람료가 1만5000원이 되는 데는 불과 4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직 상승이라 해도 될 정도다. 16일 서울 용산구 CGV용산아이파크몰을 찾은 장원재 씨(27)와 그의 여자친구는 이날 평일 관람료 2만8000원(2인)과 핫도그와 콜라 구입에 쓴 돈 1만1500원을 합쳐 4만 원 가까이를 썼다. 장 씨는 “관람료가 비싸다 보니 영화 관람을 예전보다 망설이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2인이 주말에 영화를 보면 팝콘 등 간식비를 포함해 4만 원이 넘게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만 원인 IMAX관 등 특별관을 이용하면 5만∼6만 원이 나간다. 여름 성수기 개봉한 한국 영화 ‘빅4’ 중 ‘비상선언’과 ‘외계+인’이 흥행에 참패한 원인 중 하나로도 관람료가 지목된다. 비싼 관람료 탓에 관객들의 눈이 높아졌고 초반 입소문이 안 좋을 경우 아예 지갑을 닫아버리게 된다는 것. 탄탄한 시나리오와 화려한 볼거리, 빈틈없는 만듦새 등으로 중무장해 호평이 쏟아지는 대작이 아니면 외면받는 분위기다. 호평받고 있는 ‘한산: 용의 출현’의 경우 개봉 22일째인 17일까지 63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지만 과거 1000만 영화들에 비해선 흥행 속도가 느린 편이다. ‘헌트’ 등 대작 4편이 줄줄이 개봉한 영향도 있지만 관람료 여파를 무시할 수 없다는 분석이다. 높은 관람료의 영향으로 관객들의 영화관 방문 결정이 어느 때보다 신중해지면서 향후 1000만 영화는 더욱 귀해질 것으로 보인다. 영화 한 편 관람료가 세계 각국 영화와 시리즈로 가득한 넷플릭스 한 달 구독료(스탠더드 기준 1만3500원)와 맞먹는 만큼 영화관에 갈 필요를 못 느낀다는 젊은층이 늘고 있는 점 역시 1000만 영화의 탄생 가능성을 낮추는 요소다. 관람료를 인하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지만 영화관 업계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CGV와 롯데시네마는 지난해 각각 1634억 원, 1224억 원에 달하는 영업적자를 냈다. CGV 매출 중 티켓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66%였다. 영화관 업계의 한 관계자는 “올해 2분기 각 극장사 영업이익이 흑자 전환했지만 부채 규모가 막대해 관람료를 내릴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관람료를 내리기 어렵다면 할인 혜택 등의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기용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은 “높은 관람료가 장기적으로 영화계를 침체시킬 수 있다는 우려에 공감하고 있다”며 “청년 할인권 발급 등을 통해 관람료를 내리지 않고도 영화관에 더 많은 이들이 갈 수 있게 하는 보조 방안을 강구해 볼 것”이라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파산 직전 눈앞에 거액의 돈과 시신이 나타났다

    12일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K드라마 ‘모범가족’은 주인공 가족이 얼마나 모범적이지 않은지를 보여주며 시작한다. 대학교 시간강사 동하(정우)는 교수가 되겠다며 어린 아들의 심장수술비를 뇌물로 줬지만 교수도 되지 못하고 돈도 다 날린다. 온갖 빚을 끌어 쓰던 가족은 파산 직전까지 내몰린다. 아내 은주(윤진서)는 가능성이 거의 없는 교수 자리만 고집하며 가족을 제대로 돌보지 않는 남편에 지쳐 이혼을 요구한다. 중학생 딸은 나쁜 길로 빠진다. 겉으로는 교통 범칙금 한 번 낸 적 없는 법 없이도 살 남편과 똑 부러지는 아내가 만든 모범가족 같지만 실제로는 부스러지기 직전의 위태로운 가족이었던 것. ‘모범가족’을 연출한 김진우 감독은 최근 화상인터뷰에서 “외부에서 모범가족이라고 평가받는 가족의 실제 모습이 그렇지 않은 데는 가족간의 소통 부재 문제가 있었을 것”이라며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아니라 이들 가족이 겪는 문제를 사실적인 우화로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10부작인 드라마는 1부 초반부터 동하를 최악의 상황으로 내몬다. 한적한 도로 차량 안에서 절망에 몸부림치던 동하의 차 뒤를 다른 차가 들이받는다. 문제의 차엔 산 사람은 없고 시신 두 구와 거액의 돈이 실려 있다. 가족을 지켜야 한다는 절박함에 동하는 돈을 모두 챙긴다. 시신은 집 마당에 파묻어버린다. 이 돈은 동하는 물론 동하가족을 더 깊은 수렁으로 내몬다. 문제의 돈은 마약 조직의 검은 돈이었다. 동하와 가족들은 마약조직 2인자 광철(박희순) 등의 추격에 목이 죄이는 신세가 된다. 김 감독은 주인공들을 극단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면서도 정작 음악은 긴박한 상황과 정반대인 컨트리풍의 서정적인 음악을 사용했다. 음악으로 불안감을 고조시키던 기존의 한국 범죄스릴러물들과 차별화되는 지점. 김 감독은 “음악이 배우들 연기보다 앞서가는 것도, 시청자들에게 특정 감정을 몰아붙이는 것도 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한발 떨어져 상황을 관조하는 듯한 담담한 음악은 시청자들이 극중 인물들과 그들의 심리에 한층 더 몰입하게 만든다. 범죄조직이 시리즈의 주요 축을 담당하지만 이들을 폼 나지 않게 그린 점도 돋보인다. 이들의 액션은 지극히 사실적이고 대화나 행동에도 허세가 없다. ‘생활 밀착형’ 조폭에 가깝다. 김 감독은 “조폭의 외형에 집중하면 조폭만 보일 뿐 사람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며 “사람 이야기에 집중하게 하고 싶었다”고 했다. 박희순 역시 힘을 뺀 연기로 광철의 심리 변화를 세밀하게 그려낸다. 긴장감을 10부까지 이끌어가는 일등공신은 배우 정우다. 그는 극도의 불안과 스트레스로 얼굴 근육이 마구 떨리는 연기를 선보이는 등 ‘벼랑 끝 동하’를 완벽하게 소화해낸다. 유약한 가장을 표현하기 위해 5kg 가까이 감량하기도 했다. 그는 최근 화상인터뷰에서 “동하가 겪는 상황을 두고 어디선가 봤을 법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듯하다. 그런 전형적인 상황을 제대로 납득시키는 건 배우의 섬세한 연기와 감정일 것”이라며 “시청자들이 ‘이 이야기는 진짜다’라고 느낄 수 있도록 진정성 있게 다가가려고 정성을 쏟았다”고 말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8
    • 좋아요
    • 코멘트
  • ‘빵 형’다운 빵빵한 액션… 수위 높은 잔혹함-‘왜색’ 우려도

    감각적인 창의력이 돋보인다며 환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온갖 게 뒤엉켜 중구난방이라고 인상 찌푸릴지도 모른다. 뭣보다 ‘왜색’ 짙은 이 영화, 한국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24일 개봉하는 영화 ‘불릿 트레인’은 여러모로 주목은 제대로 끌 작품이다. 일단 국내에서 ‘빵(브레드) 형’이라 불리는 브래드 피트가 2019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이후 3년 만에 주연으로 돌아왔다. 19일, 8년 만에 한국도 방문해 빵 형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 특급 킬러 레이디버그(피트)는 일본 도쿄에서 고속열차를 탄 뒤 서류가방 하나를 찾는 간단한 임무를 받았다. 때마침 역시 일류 킬러인 레몬(브라이언 타이리 헨리)과 탠저린(에런 테일러존슨)도 같은 목적을 갖고 탑승했다. 알고 보니 이 가방의 주인은 일본 최대 야쿠자 두목 ‘백(白)의 사신(화이트 데스)’. 게다가 또 다른 킬러 울프(배드 버니)까지 가세하면서 평범했던 기차는 유혈 낭자한 잔혹 액션의 전장으로 탈바꿈한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가 극명하게 엇갈린다. 초반은 등장인물의 사연 소개에 한참을 할애한다. 레몬과 탠저린이 티격태격하며 미국식 B급 유머를 꽤나 쏟아내지만, 다소 산만하면서도 지지부진하게 흘러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반면 킬러들 간의 관계가 드러나는 후반부는 고난도 액션의 성찬이다. 일등칸부터 화장실까지 열차 구석구석의 공간은 물론이고 열차 위와 역 승강장까지 활용한 액션신은 다채롭다 못해 머리가 핑핑 돌 정도로 현란하다. 뭣보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선보이는 독창적인 액션과 고속열차의 속도감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건 이 영화의 최대 장점. 여기에 피트 특유의 능글맞음을 곁들인 액션이 버무려지며 최대치의 몰입을 끌어낸다. 곳곳에서 카메오로 등장하는 할리우드 스타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청소년 관람 불가인 액션 수위는 상당히 잔혹한 편. 역시 일본이 주요 배경 무대였던 ‘킬 빌1’(2003년)급으로 유혈 낭자하다. 일본 TV 예능 프로그램처럼 화려한 일본어 자막이 자주 등장하고, 사무라이 의상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 같은 일본 콘텐츠가 지속적으로 노출되기도 한다. 2011년 국내에도 출간된 일본 소설 ‘마리아비틀’이 원작임을 감안해도, 이게 일본 영화인지 미국 영화인지 헷갈릴 정도. 요즘처럼 반일 정서가 강한 분위기를 감안한다면 흥행은 살짝 고개가 갸우뚱거려진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8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군사분계선 넘어간 1등 로또는 누구 품에?

    말년병장 천우(고경표)가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웃고 다닌다. 무표정한 얼굴로 만사를 귀찮아하던 모습과 딴판. 최전방 감시초소(GP) 위병소에서 주운 로또가 1등에 당첨돼서다. 당첨금은 무려 57억 원. 그러나 기쁨도 잠시, 로또가 바람을 타고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쪽으로 날아가 버린다. 비무장지대(DMZ)에서 근무 중이던 북한군 용호(이이경)는 이를 줍고도 종이 쪼가리로 여긴다. 그러나 곧 어마어마한 종이임을 알게 되고 동료들과 당첨금을 찾을 방법을 궁리한다. 천우 등 한국군 3명과 용호 등 북한군 3명은 DMZ에서 당첨금 분배를 위한 ‘남북 회담’을 연다. 이들은 모두가 만족할 합의를 도출해 남북 공동의 번영을 이룰 수 있을까. 영화 ‘육사오’는 기발한 소재에, 여름 극장가에서 종적을 감췄던 코미디 영화여서 관심을 끌고 있다. 영화 ‘달마야 놀자’(2001년), ‘박수건달’(2003년)의 시나리오를 써 ‘웃기는 능력’을 검증받은 박규태 감독 작품이어서 더 크게 주목받는 분위기다. ‘육사오(6/45)’는 45개 숫자 중에 6개를 맞히면 1등이라는 의미다. 영화는 코미디라는 한 길만 보고 나아간다. 후반부 남북 군인들 사이에 싹트는 우정을 다루면서 신파로 흐를 조짐이 보이지만 감독은 이를 과감히 쳐내며 코미디에 집중한다. 고경표 이이경 음문석(강 대위 역) 등 배우들은 애써 웃기려 하지 않는다.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이들의 모습은 황당무계한 설정과 대비되며 관객을 피식피식 웃게 만든다. 2년 전 전역한 고경표는 말년병장이 생활관에서 TV를 보는 자세까지 재현하며 군필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한국군은 물론 북한군 역할을 맡은 배우들은 저마다 맛깔 나는 연기를 보여주면서도 한 팀처럼 어우러져 보는 재미를 더한다. MDL에 철조망이 줄처럼 설치돼 남북이 나뉘는 장면이 나오는 등 시각적·극적 효과를 높이기 위해 DMZ 풍경을 사실과 다르게 연출한 부분도 많다. 실제 MDL은 일정 간격을 두고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 게 전부다. 남북 군인들이 GP 철책을 넘어 MDL까지 비교적 자유롭게 다니는 등 판타지에 가까운 설정도 있다. 그러나 영화가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다루는 만큼 ‘영화적 허용’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코믹 웹툰 보듯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화로 복잡한 머리를 비우고 싶은 이들이 반길 만한 영화다. 24일 개봉.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7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영화평은 호불호… 임시완엔 ‘호호호’

    3일 개봉한 항공 재난 블록버스터 ‘비상선언’에 대한 관객 평가 중엔 혹평이 많다. 전반부에선 긴장감 있는 전개로 관객을 몰입시키지만, 후반부는 과도한 신파와 전체주의 미화로 해석될 수 있는 장면 등으로 실망시켰다는 평가가 많이 나온다. 혹평 속에서도 이 배우에 대한 평가만큼은 호평 일색이다. 항공기 내에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테러범 진석을 연기한 배우 임시완(사진)이 그 주인공. 관객들과 평단은 그를 두고 “소름 끼치는 악역 연기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며 한목소리로 극찬하고 있다. 최근 화상 인터뷰에서 임시완은 “관객들 평가 중에 ‘임시완 눈빛이 돌아 있더라’는 평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캐릭터로서 칭찬해주신 거라 생각해 감사하다”고 말했다. 진석은 기존 재난영화 속 테러범과 달리 처음부터 자신의 정체를 밝히며 영화 시작부터 긴장감을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영화에선 정작 진석이 왜 승객 100여 명을 모두 죽이고 싶어 하는지, 그가 왜 그렇게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을 혐오하고 하찮게 여기게 됐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서사가 나오지 않는다. 이처럼 별다른 명분이 없는 테러임에도 설득력이 부족하지 않은 데에는 광기 어린 진석을 밀도 있게 표현한 임시완의 연기력 영향이 컸다. 임시완은 극 중 피해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정반대로 우월감에 취하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모습으로 관객을 긴장시킨다. 그는 “당위성이 약하거나 없으면 연기하기가 어려운데 진석은 당위성이 아예 없더라.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그 백지를 마음대로 채울 수 있는 자유로움이 있었다. 진석의 자세한 서사를 스스로 만들어가며 연기했다”고 말했다. 그간 작품에서 주로 선한 캐릭터를 맡아온 그는 악역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고 고백했다. 그는 “선한 역할은 뭔가를 지켜내야만 하는 등 악역에 비해 기대감이 크지 않나”며 “악역은 상대적으로 그런 게 덜하다 보니 연기할 때 마음껏 뛰어놀 수 있어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비상선언’을 연출한 한재림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그를 두고 “혐오스럽지 않으면서도 어딘가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섬뜩한 면을 훌륭하게 보여줬다”며 칭찬했다. 극 중 형사팀장 인호 역으로 출연한 배우 송강호 역시 인터뷰에서 “영화 ‘범죄도시2’에 (악역) 손석구(강해상 역)가 있다면 ‘비상선언’에는 임시완이 있다”며 그의 연기를 극찬했다. 임시완은 “손석구 선배 연기를 봤는데 나와 비교 선상에 놓을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며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이어 “송강호 선배가 현장에서 내 연기를 칭찬해준 적이 있는데 큰 힘이 됐다. 연기 잘하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배우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건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답했다. “개봉 전에는 제가 연기를 정말 ‘연기처럼 한 것은 아닌가’ 싶어서 걱정했어요. 많은 분들이 좋게 얘기해 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만 영화 속 캐릭터와 실제 제 성격은 다르다는 것, 다시 한번 말씀드리고 싶네요.(웃음)”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창의적 예술 싹트는 공간”…출범 3주년 맞은 관악문화재단

    서울 관악구(구청장 박준희)의 관악문화재단이 1일 출범 3주년을 맞았다. 차민태 관악문화재단 대표는 “‘모두의 예술이 찬란한 문화로’를 비전으로 새롭고 창의적인 예술이 싹 트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힘써 왔다”며 “주민과 직접 소통하는 ‘청책(聽策)’을 기본으로, 문화예술 기획에 주민의 요구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악구는 청년인구비율이 높은 만큼 청년에 초점을 둔 프로젝트를 추진해왔다. 거리 문화를 현대 예술 관점에서 해석한 청년문화예술축제 ‘그루브 인 관악페스티벌(GIG)’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열린 ‘2022 GIG-스트리트 댄스 페스티벌’에는 전국 스트리트 댄서 및 청소년 댄서 지망생 등 600여 명이 참가했다. 현대무용가 김설진 씨가 연출한 이 행사는 5만여 명이 관람했다. 아동에서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전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프로젝트도 마련했다. 관악구에 자리한 ‘관천로 문화플랫폼 S1472’에서는 가정의 달맞이 어린이주간 축제가 열렸고, 클래식 입문을 위한 ‘하우스콘서트’, ‘스트리트댄스 사진전’이 개최됐다. 관악구 내 여러 공원에서는 인디음악, 재즈, 국악 등 각 분야 예술인이 버스킹을 해 주민이 가까이에서 예술을 즐기고 있다. 도서관을 문화 교류 공간으로 바꾸기도 했다. 자녀가 있는 여성들이 소통하고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맘스타트’가 대표적이다. 글빛정보도서관은 인문학콘서트를 열어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와 청년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했다. 강감찬 장군을 새롭게 해석한 웹툰 ‘별을 품은 아이’를 연재하는 등 지역의 역사 콘텐츠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차 대표는 30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리는 ‘2022 국민공감 캠페인 선정식’에서 고객만족경영부문 국민공감 경영대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차 대표는 올해 3월 ‘대한민국 창조경영 2022’의 ‘리더십경영’ 부문에 선정되기도 했다. 관악문화재단도 지난해 케이블TV 방송대상 SO 특별상 ‘지역 파트너스’ 수상자로 선정됐다. 차 대표는 “‘가장 개인적이며 지역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재단의 출범 신념을 적극적으로 실현해 나가겠다”고 밝혔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1
    • 좋아요
    • 코멘트
  • ‘자폐 음악가’ 가족의 11년, 카메라에 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변호사가 주인공인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인 가운데 자폐성 장애가 있는 음악가를 다룬 영화가 18일 개봉한다. 다큐멘터리 영화 ‘녹턴’이다. 주인공은 실내악 연주단체 ‘드림위드 앙상블’ 수석단원 은성호 씨(38). ‘녹턴’은 중증 자폐를 지녔지만 피아니스트와 클라리네티스트로 꾸준히 무대에 서고 있는 은 씨와 그의 어머니 손민서 씨(65), 동생 건기 씨(32)의 일상을 담았다. 2008년부터 11년간 촬영해 영화로 만들었다. 손 씨는 성호 씨가 유독 음악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알고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 등 여러 악기를 가르쳤다. 건기 씨 역시 피아노를 공부했지만 손 씨는 아픈 아들에게 정성을 쏟았다. 건기 씨가 카메라 앞에서 엄마에게 오랫동안 가진 서운함과 분노를 여러 번 털어놓은 이유다. 형에게 밀려 늘 후순위였던 건기 씨는 음대를 다니다 중퇴했다. 건기 씨는 엄마가 형의 음악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을 “부질없는 일”이라 여기고 형 연주를 듣기 싫어한다. 극 중 건기 씨가 “엄마는 나도 버리고 다 버리고 형한테 올인했다”고 말하듯 영화는 장애인 가족이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갈등과 희생에 초점을 맞춘다. 장애인 가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체감하게 한다. 시간이 흐르며 갈등도 완화될 조짐을 보인다. 카메라는 건기 씨가 형과 함께 러시아에서의 연주를 준비하며 형과 형의 음악을 대하던 태도가 조금이나마 바뀌는 듯한 순간들을 포착해낸다. 엄마는 형밖에 모르는 것 같지만 사실 건기 씨 음악이 더 좋다고 수차례 말해왔다. 제목 ‘녹턴’은 두 형제가 연주하는 쇼팽의 녹턴(야상곡)을 두고 엄마가 “건기 연주가 더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죽으면 제삿날 들려 달라”고 말하던 것에서 착안했다. 정관조 감독은 9일 본보와의 통화에서 “성호 씨의 음악에는 감정이 없는데 오히려 그런 점이 사람이 마음을 비워내게 만들더라”며 “성호 씨의 음악이 좋아 영화로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성호 씨의 어머니는 절망스러운 상황에서 음악을 통해 인생의 빛을 발견하고 싶어 했다. 관객들도 그 빛을 발견하게 된다면 이 영화는 제 역할을 한 것”이라고 했다. 서울 용산구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음악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에 성호 씨가 답했다. “피아노와 클라리넷이 좋아서 두 개 다 하는 겁니다. 음악은 시간의 예술입니다.” 손 씨에겐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어떻게 봤느냐”는 질문도 나왔다. 그는 “비슷한 부분도 있지만 우영우가 판타스틱하다면 우리는 현실이라고 할 정도로 차이가 크다”며 “성호는 음악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뼛속까지 자폐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힘든 점이 많다”고 했다. “마라톤처럼 뭔가 해야 해서 출발한 게 음악이었어요. 오랜 세월 힘든 게 많았고 행복했던 순간은 강하고 짧았습니다. 성호에게 음악은 공기 같은 존재가 됐지만, 성호가 음악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어 하지 않는지 늘 살펴보고 있습니다.”(손 씨)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10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육아… 출퇴근… 싱글 워킹맘 일상 스릴러처럼 연출

    프랑스 영화 ‘풀타임’은 잠 든 쥘리(로르 칼라미)의 숨소리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언제라도 일어날 것처럼 잠은 얕고 숨소리는 힘겹다. 쥘리는 싱글맘이자 워킹맘이다. 이혼한 전 남편은 연락두절에 양육비도 주지 않는다. 은행에선 대출금 상환이 밀렸다며 독촉 전화가 온다. 육아는 온전히 쥘리의 몫이다. 두 아이는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다. 쥘리는 아이들을 베이비시터에게 맡겨놓고 파리의 한 호텔로 쫓기듯 출근해 하우스키퍼로 일하며 숨 가쁜 하루를 보낸다. 홀로 겨우 지탱해온 그의 일상은 대규모 교통 파업으로 최악의 상황이 된다. 대중교통이 끊기면서 쥘리는 차를 얻어 타는 등 갖은 방법을 동원했지만, 지각을 반복한다. 결국 직장에서 해고 위기에 처한다. 게다가 교통편이 없어 귀가 시간이 늦어지자, 베이비시터는 쥘리에게 화를 내며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출산 전 유통 등 시장 조사 업무를 했던 쥘리는 이 분야 회사에서 면접 볼 기회가 생기지만 누구도 그와 근무를 바꿔주지 않는다. 꿈을 되찾을 기회가 날아갈 판이다. 에리크 그라벨 감독은 교통 파업과 직장 면접이라는 변수가 생기며 힘겨움을 넘어 공포가 돼버린 쥘리의 일상을 빠른 편집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활용해 긴장감 넘치게 담아냈다.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다. 관객은 쥘리의 상황에 몰입하며 절박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영화는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오리촌티(새로운 경향) 부문 감독상을 받았다. 한 여성의 일상을 스릴러처럼 담아낸 연출력이 돋보인다. 배우 로르 칼라미는 모두에게 죄인 취급을 받으면서도 버텨내는 쥘리의 모습을 절제력 있게 표현하며 공감을 끌어낸다. 바닥에 주저앉아 울거나 화를 내고 싶지만 꾹꾹 눌러내는 칼라미의 눈빛과 표정을 보면 그가 지난해 영화제 같은 부문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유를 알 수 있다. 18일 개봉.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0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책의 향기]오징어게임 속 상우는 왜 기훈에게 화를 냈을까

    “아 ×× 기훈이 형!” ‘오징어게임’에서 상우(박해수)가 기훈(이정재)을 향해 내지르는 이 유명한 욕설 대사가 나온 배경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자. 상우는 기훈이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에서 상우가 앞사람을 밀어 죽인 것을 비난하자 “어차피 저 돈(상금 465억 원) 가지고 나가려면 다른 놈들 다 죽어야 돼”라며 자기 합리화에 나선다.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신념과 실제 행동이 충돌하는 인지부조화가 발생하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명분을 내세워 죄책감을 씻으려 한 것. 그러나 기훈은 “넌 그냥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것”이라며 비난을 이어간다. 상우의 욕설은 빠른 자기합리화가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를 방해하는 답답한 말만 해대는 기훈에 대한 분노의 일갈이었다. 저자는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인문과학 저널리스트. 그는 상우가 보여준 다양한 행동을 제시하며 그를 “인지부조화 해소에 탁월한 인물”로 분석한다. 반면 기훈은 “게임에서 우승을 하고도 죄책감을 털어내지 못하는 등 인지부조화에 빠져 폐인이 된 인물”이다. 저자는 심리학의 다양한 이론을 가져와 ‘오징어게임’ 속 캐릭터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여러 게임에 대해 분석한다. 일남(오영수)이 정체를 숨기고 게임에 직접 참가한 이유 중 하나는 어린 시절 하던 놀이를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가 구슬치기, 옛 골목 등 과거의 것에 집착하는 이유는 현재가 그만큼 허무하다는 반증. 과거 미화가 극에 달하는 시기는 50대인데, 그즈음 틈만 나면 “나 때는”으로 시작해 옛 시절을 소환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선 ‘회상의 정점’이라 부른다. 우승할 확률, 즉 살아남을 확률이 456분의 1로 매우 희박함에도 자신의 운을 과신하며 허세를 부리는 이들도 보인다. 덕수(허성태)가 대표적. 우연히 행운이 잇따른 것을 두고 다음에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을 심리학에선 ‘핫 핸드 효과’라고 한다. 과거 게임 우승자였던 프런트맨(이병헌)이 게임 관리자로 돌아온 것은 인질이 인질범 편에 서는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오징어게임’의 심리적 허점을 분석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게임 진행요원, 일명 ‘가면남’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칙, 서로에 대한 밀착 감시를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이는지를 설득할 대목이 부족하다는 것. 황동혁 감독이 올해 6월 시즌2 제작을 공식화하며 가면남들의 대장 격인 프런트맨 이야기가 공개될 것이라고 밝힌 만큼 가면남들의 사연도 일부나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적 분석 외에도 ‘오징어게임’에 세계인이 열광한 이유에 대한 분석과 드라마가 내던진 화두인 공정, 선과 악, 인간성, 경쟁 등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분석까지 촘촘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던 프랑스의 석학이 ‘오징어게임’만을 심층 분석한 책을 썼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 드라마가 세계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한국을 알리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06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13년 만의 바깥세계, 다짐만큼 멋지게 살까

    11일 개봉하는 일본 영화 ‘멋진 세계’가 그리는 세계는 멋지지 않다. 살인죄로 13년간 복역한 후 출소한 야쿠자 출신 미카미(야쿠쇼 고지)는 “이번엔 진짜 건실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그러나 세상은 좀처럼 기회를 주지 않는다. 전과 10범에 수감 생활만 총 28년을 한 그는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눈빛을 두고 “쓰레기를 보는 눈빛”이라고 말한다. 그가 누군가 조금만 챙겨줘도 눈물이 터지는 마음 여리고 정에 굶주린 사람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물다. 몇몇 이웃만이 그를 편견 없이 대할 뿐.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로 고혈압 등 갖은 지병까지 안고 출소한 그는 취업에 성공해 뒤늦게나마 사회의 평범한 일원이 될 수 있을까. 영화의 원작은 1990년 출간된 사키 류조의 장편소설 ‘신분장(身分帳)’. 신분장은 교도소에서 재소자의 이력 등을 모아둔 장부로, 소설은 실제 인물 이야기를 바탕으로 했다. 니시카와 미와 감독(사진)은 최근 본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사키 작가가 2015년 돌아가신 뒤 이 소설에 대해 알고 읽게 됐다”며 “특별한 보석을 찾아낸 기분이었다. 이 이야기의 매력으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고 싶었다”고 말했다. 감독은 현 시대에 맞춰 일부 설정은 각색했다. 실제 이야기를 토대로 한 만큼 게이샤인 미혼모 아들로 태어나 보육원에서 자란 성장 과정, 각종 범죄에 가담하다 14세에 처음으로 소년원에 수감된 사연 등 미카미가 살아온 이야기는 매우 사실적이고 디테일하다. 그 덕분에 이야기에 더 몰입하게 된다. 니시카와 감독은 미카미의 사연을 세세하게 보여주면서도 그를 연민하거나 범죄를 정당화하지 않는다. 출소 후 삶을 담담하게 따라갈 뿐이다. 감독은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만든 영화제작사 ‘분복(分福)’에서 일하고 있고, 앞서 고레에다 감독의 스태프로 일하는 등 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고레에다 감독 작품처럼 ‘멋진 세계’ 역시 현실에 대한 냉철한 직시가 돋보인다. 니시카와 감독은 “야쿠자는 조직을 떠나도 계좌를 만들 수 없고 본인 이름의 휴대전화를 개통할 수 없다. (여러 제한 탓에) 이들은 조직에도, 사회에도 속하지 못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직 야쿠자들이 맞닥뜨리는 딜레마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싶었다는 것. 그는 결코 멋지지 않은 세계를 담은 영화의 제목을 ‘멋진 세계’로 정했다. 그는 “이 영화는 함정과 기만으로 가득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어려움을 그리지만 삶에는 아름다운 순간과 인연들이 존재하기에 이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을 택했다”고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이 영화가 2021년 2월 일본에서 개봉할 당시 “냉정함 속에서도 동시에 미카미를 향한 강렬한 인간적 연민에 휩싸이게 된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가? 그저 이 영화의 불가해한 매력이라고 말할 도리밖에…”라며 극찬했다. 니시카와 감독은 “원작 ‘신분장’을 읽고 무의미한 인간은 없다는 생각을 했다”며 “한국 관객들도 흔히 사회에서 불필요하게 여겨지는 존재들에 대해 더 가까이 들여다보게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05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무비줌인]‘비상선언’ 속 신파가 그렇게 나쁩니까

    납득 가능한 수준인가 눈 뜨고 못 볼 수준인가. 3일 개봉한 영화 ‘비상선언’을 두고 신파 논란이 뜨겁다. 개봉 전 시사회로 영화를 접한 관객 상당수는 “신파가 과도하다”고 지적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신파 수위가 대체 어느 정도냐”는 질문이 쏟아진다. “‘신과 함께’ ‘7번방의 선물’ 정도인가요?”라는 질문도 많다. ‘신과 함께’ 시리즈, ‘7번방의 선물’, ‘국제시장’, ‘해운대’는 ‘1000만 영화’라는 영예와 별개로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서 한국 영화계에 억지·과잉 신파를 퍼뜨린 영화라는 불명예스러운 딱지가 붙어 있다. 신파와 ‘절친’인 클리셰와의 상승 작용까지 일으켰으니 “영화 좀 본다”는 이들의 욕받이가 될 만도 하다. ‘비상선언’은 그런 면에서 조금 억울할 듯하다. 이 영화는 하와이행 비행기 내에 치명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바이러스가 퍼지는 이야기를 다룬 재난영화다. 한재림 감독은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테러범을 알려주는 등 항공 재난영화의 클리셰에 편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정부 각 부처 고위 관계자들은 각자 할 수 있는 대응을 신속하게 해낸다. 기존 재난영화처럼 무능한 모습을 부각해 분노를 유발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공식 깨기로만 일관하진 않는다. 그랬다가 상업영화의 미덕인 최대 다수의 공감을 얻는 대신 감독만의 독창적인 성에 갇혀 버리는 ‘영화적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 흥행 ‘안전장치’, 신파를 일정 부분 활용하는 등 재난영화의 공식을 일부 따라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객들이 신파로 꼽는 대표적인 장면은 승객들이 가족에게 그간 하지 못한 말을 영상통화로 전하는 장면. 관객에게 “울어라”라며 주문하는 장면 같지만 9·11테러 등 참사 당시 희생자들이 실제로 한 행동이다. 관객을 울리려고 억지로 만들어냈다기보다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것. 참사 희생자들의 마지막 메시지를 실제 들어보면 ‘비상선언’ 승객들 연기는 과하지 않다. 게다가 재난영화는 장르 특성상 사람 이야기가 반이다. 재난 발생 과정을 묘사하는 것이 한 축이라면 승객과 지상에 있는 가족의 고군분투 등 드라마를 보여주는 건 다른 한 축이다. 죽음을 목전에 둔 상황은 삶이 곧 신파가 되는 상황이다. 가족이 떠오르고 눈물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가족에게 인사를 남기는 장면 등을 들어내야 할까. 승객들의 연대 등 신파로 보일 만한 사람 이야기를 모두 배제했다면 정반대 평가가 나왔을지도 모른다. “재난만 있고 사람은 없는 반쪽짜리 재난영화”라는 혹평 말이다. 슬픈 장면이 실종되고 모두가 씩씩하거나 무반응한 재난영화는 오히려 괴작이 될 수 있다.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의 경우 전작 ‘명량’에서 지적이 쏟아진 과도한 신파와 ‘국뽕’을 절제하고 군사 전략을 생생하게 보여줬다는 호평이 나온다. 반대로 신파를 아낀 나머지 군사 다큐멘터리 같아 지루하다는 평도 있다. “명량이 더 좋았다”는 것. 김한민 감독 입에서 “어쩌라는 거야”라는 말이 나올 법하다. 상업영화가 성공하려면 가족 단위 관객을 모으기 위한 영화적 장치를 곳곳에 넣는 전략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영화 관람 경험이 많은 젊은 관객이 진부한 신파라며 혐오하는 장면이 노년층이나 어린 관객에게는 새롭거나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영화 ‘부산행’과 드라마 ‘지옥’으로 세계적인 스타 감독이 된 연상호 감독은 영화 ‘반도’가 신파로 지탄받을 때 인터뷰에서 말했다. “사람들이 왜 신파를 싫어하는지도 알지만 영화에서 감정적인 장면은 필요하다. 연출자 입장에선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감정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연출할 수밖에 없다.” ‘반도’ 역시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선 신파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러나 팬데믹으로 바이러스 공포가 극에 달해 극장가가 텅 비다시피 했던 2020년 7월 개봉작임에도 380만 명 넘게 관람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한국에서는 비난받는 ‘K신파’가 해외에서는 “신선하다”는 반응을 얻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오징어게임’은 국내에선 신파로 호불호가 갈렸지만 해외에선 “신선하다”고 호평했다. 해외 시장을 노리는 한국 영화가 재발견된 ‘K신파’를 완전히 버릴 수 없는 이유다. 물론 ‘비상선언’은 신파적 요소를 제외한 모든 것이 완벽한 영화라고 보긴 어렵다. ‘뻔하되 뻔하지 않게’ 이끌어 가려 한 연출력과 뛰어난 기술적 완성도 등 장점이 있는 반면 후반부의 다소 늘어지는 전개, 정치적인 오해를 부를 장면 등 아쉬운 점도 있다. 그럼에도 영화의 일부분에 불과한 신파에 유독 관심과 비판이 집중되며 영화가 ‘신파 프레임’에 갇힌 이유는 뭘까. 역대 1000만 한국 영화 상당수가 보여준 억지·과잉 신파에 당하고 당한 나머지 관객들에게 개연성을 떠나 조금의 신파도 용납하지 못하는 ‘신파포비아’가 생겨버린 건 아닐지 생각해 볼 일이다. 물론 이는 관객 탓은 아니다. 손효주 문화부 기자 hjson@donga.com}

    • 2022-08-04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DMZ서 바이러스가 퍼지다

    “새로운 영역의 액션 영화라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날것 그대로다.”(배우 주원) “거친 수묵화 같은 액션을 담았다.”(정병길 감독) 감독과 주연배우는 5일 전 세계에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카터’(사진)를 이같이 요약했다. 서울 종로구의 한 호텔에서 2일 열린 ‘카터’ 제작보고회 현장에서다. 영화는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바이러스가 퍼지면서 북한은 물론 미국까지 초토화된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남북이 치료제 개발을 위해 협력에 나서는 가운데 서울의 한 모텔에서 모든 기억을 잃은 정체불명의 남성 카터(주원)가 깨어난다. 귓속 장치를 통해 누군가 카터에게 미 중앙정보국(CIA) 무장 요원 등 카터를 쫓는 이들을 제압하라는 지시를 연이어 내린다. 지시를 거부하면 입속에 설치한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협박에 그는 영문도 모른 채 시키는 대로 임무를 수행한다. 그의 임무는 치료제 개발의 핵심 인물인 한 북한 소녀를 찾아 신의주까지 데려가는 것. 영화는 도입부부터 액션 물량 공세를 펼친다. 카터가 티팬티 한 장만 걸친 채 낫을 들고 목욕탕에서 100여 명을 제압하는 장면을 포함해 다양한 공간을 활용한 액션 장면들은 난도가 매우 높다. 액션 장면은 몰입감을 끌어올리기 위해 한 번에 찍는 원테이크로 대부분 촬영됐다. 2017년 영화 ‘악녀’에서 독창적인 액션 장면을 선보이며 액션 영화 팬덤을 확보한 정 감독은 이날 원테이크 촬영을 두고 “한 번 틀리면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시간과 노력을 많이 썼다”며 “땀 냄새가 나는 영화”라고 설명했다. ‘인간병기’ 카터 역을 위해 주원은 4개월 가까이 액션 훈련을 받았다. 주원은 이날 “시나리오를 처음 보고 ‘이게 가능한 액션인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며 “촬영장에 갈 때마다 ‘오늘은 몇 명하고 싸울까. 몇 명을 다치게 할까’라는 마음으로 갔다”고 했다.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03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부천만화대상 ‘미래의 골동품가게’

    웹툰 ‘미래의 골동품가게’(사진)가 올해의 부천만화대상을 받았다.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은 “네이버웹툰으로 현재 연재하고 있는 구아진 작가의 ‘미래의 골동품가게’를 2022년 부천만화대상 수상작으로 선정했다”고 1일 밝혔다. ‘미래의 골동품가게’는 한 저주받은 섬에 사는 소녀가 그 저주를 풀고 세상의 소중한 것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얘기를 담았다. 이날 신인만화상은 좀비가 창궐한 뒤 건물에 갇혀 사는 이들의 모습을 코믹하게 그린 이명재 작가의 ‘위 아 더 좀비’가 수상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국어 대사에 웬 자막? “대사 정확하게 전달돼” 관객들 호평 쏟아졌다

    개봉 닷새째인 지난달 31일까지 관객 227만 명을 모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한산)에는 압도적인 해상 전투 장면 외에도 눈길을 사로잡은 부분이 있다. 해전이 본격화되는 영화 후반부, 조선 수군이 대사를 할 때 한글 자막이 나온 것. 이순신 장군 역의 배우 박해일이 “준비시켜 놓은 나머지 배들도 내보내거라”라고 말할 때 이 대사가 스크린 하단에 자막으로 뜨는 식이다. 한국어 대사를 한글 자막으로 처리한 전례 없는 장면에 대해 관객들은 대체로 호평을 쏟아냈다. 영화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김한민 감독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자막 덕에 대사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센스 있고 영리한 선택이다”, “그간 한국 영화를 볼 때 잘 안 들리는 대사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장면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그럴 일이 없어 좋았다”는 의견이 다수다. 김 감독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전쟁의 밀도감을 높이려면 사운드의 힘이 필요한데, 대사를 잘 전달하려면 이 사운드를 눌러버려야 했다”며 “무슨 말인지 안 들린다는 원망도 듣기 싫었고, 전쟁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 끝에 자막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운드가 큰) 전쟁 장면에서 시도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는 것. 실제 그의 전작 ‘명량’(2014년) 개봉 당시에도 전투 사운드 때문에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자막으로 보완하고 대사 외의 사운드를 살리는 데 집중한 덕에 화포 및 조총 발사 소리, 함선 격파 소리를 최대한으로 담아낸 ‘한산’의 해상전투 장면이 어느 영화보다 생생하고 웅장하다는 평가가 많다. 자막 활용은 ‘한산’이 여름 극장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로도 꼽힌다. 최근 개봉한 ‘헤어질 결심’ ‘브로커’ ‘외계+인’ 등 한국영화 대작을 두고 관객들 사이에서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지적이 종종 나왔기 때문. 명확한 대사에 대한 갈증이 고조된 시점에 일부 장면에서나마 자막을 단 한국 영화가 나온 셈이다. 일부 관객들은 “‘한산’처럼 다른 한국 영화도 자막을 넣어주면 좋겠다”거나 해외 애니메이션을 더빙판, 자막판으로 분리 편성하듯이 한국 영화도 자막판을 따로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건 김 감독 말대로 ‘선택의 딜레마’ 탓도 있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사운드 믹싱을 할 때 대사를 더 명확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효과음 등 나머지 사운드가 약해져 영화의 분위기가 죽는다”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 창작자들은 대사냐 사운드냐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를 겪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 기간 넷플릭스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이용이 확산된 영향도 있다. 넷플릭스 등은 자국 콘텐츠에도 자국어 자막을 넣어 감상할 수 있게 해 많은 관객들이 여기에 익숙해져버린 것. 일각에선 “OTT의 자막 서비스가 모국어 듣기 능력을 퇴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영화 속 자막을 비판하는 의견도 없진 않다. ‘한산’의 자막에 대한 호평이 대다수인 가운데 “자막 때문에 몰입이 깨졌다”, “한국 영화에 한글 자막이 왜 필요하냐”는 의견도 나온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자막은 편리하지만 외국 영화를 볼 때 자막을 읽느라 미장센 등 영화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 감상에 있어 양날의 검”이라며 “‘한산’처럼 불가피한 경우에 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면 자막 활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02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
  • ‘한글 자막’으로 해전 생생함 살린 ‘한산’…호평 속 “몰입 깨져” 일부 의견도

    개봉 닷새째인 지난달 31일까지 관객 227만 명을 모으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한산: 용의 출현(이하 한산)’에는 압도적인 해상 전투 장면 외에도 눈길을 사로잡은 부분이 있다. 해전이 본격화되는 영화 후반부, 조선수군이 대사를 할 때 한글 자막이 나온 것. 이순신 장군 역의 배우 박해일이 “준비 시켜놓은 나머지 배들도 내보내거라”라고 말할 때 이 대사가 스크린 하단에 자막으로 뜨는 식이다. 한국어 대사를 한글 자막으로 처리한 전례 없는 장면에 대해 관객들은 대체로 호평을 쏟아냈다. 영화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김한민 감독의 세심함이 돋보이는 자막 덕에 대사를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센스 있고 영리한 선택이다”, “그간 한국영화를 볼 때 잘 안 들리는 대사에 집중하느라 중요한 장면을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번엔 그럴 일이 없어 좋았다”는 의견이 다수다. 김 감독은 지난달 인터뷰에서 “전쟁의 밀도감을 높이려면 사운드의 힘이 필요한데, 대사를 잘 전달하려면 이 사운드를 눌러버려야 했다”며 “무슨 말인지 안 들린다는 원망도 듣기 싫었고, 전쟁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고민 끝에 자막을 쓰기로 했다”고 말했다. “(사운드가 큰) 전쟁 장면에서 시도해볼 필요가 있겠다 싶어 용기를 냈다”는 것. 실제 그의 전작 ‘명량(2014년)’ 개봉 당시에도 전투 사운드 때문에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지적이 있었다. 이를 자막으로 보완하고 대사 외의 사운드를 살리는데 집중한 덕에 화포 및 조총 발사 소리, 함선 격파 소리를 최대한으로 담아낸 ‘한산’의 해상전투 장면이 어느 영화보다 생생하고 웅장하다는 평가가 많다. 자막 활용은 ‘한산’이 여름 극장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 중 하나로도 꼽힌다. 최근 개봉한 ‘헤어질 결심’ ‘브로커’ ‘외계+인’ 등 한국영화 대작을 두고 관객들 사이에서 “대사가 잘 안 들린다”는 지적이 종종 나왔기 때문. 명확한 대사에 대한 갈증이 고조된 시점에 일부 장면에서나마 자막을 단 한국영화가 나온 셈이다. 일부 관객들은 “‘한산’처럼 다른 한국영화도 자막을 넣어주면 좋겠다”거나 해외 애니메이션을 더빙판, 자막판으로 분리 편성하듯이 한국영화도 자막판을 따로 편성해야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 건 김 감독 말대로 ‘선택의 딜레마’ 탓이 큰 부분이 있다. 한 영화 제작사 대표는 “사운드 믹싱을 할 때 대사를 더 명확하게 처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효과음 등 나머지 사운드가 약해져 영화의 분위기가 죽는다”며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 창작자들은 대사냐 사운드냐를 놓고 선택해야 하는 딜레마를 겪기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팬데믹 기간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이용이 확산된 영향도 있다. 넷플릭스 등은 자국 콘텐츠에도 자국어 자막을 넣어 감상할 수 있게 해 많은 관객들이 여기에 익숙해져버린 것. 일각에선 “OTT의 자막 서비스가 모국어 듣기 능력을 퇴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영화 속 자막을 비판하는 의견도 없진 않다. ‘한산’의 자막에 대한 호평이 대다수인 가운데 “자막 때문에 몰입이 깨졌다”, “한국영화에 한글 자막이 왜 필요하냐”는 의견도 나온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자막은 편리하지만 외국영화를 볼 때 자막을 읽느라 미장셴 등 영화 자체에 몰입하지 못하는 것처럼 영화 감상에 있어 양날의 검”이라며 “‘한산’처럼 불가피한 경우에 한한 전략적 선택이 아니라면 자막 활용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8-01
    • 좋아요
    • 코멘트
  • ‘비상선언’ 이병헌 “팬데믹 현실, 영화가 앞서… 감정이입돼”

    하와이행 비행기에서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퍼지는 생화학 테러가 발생한다는 설정의 이 영화는 시작부터 범인이 누구인지 관객에게 알려준다. 김이 빠질 것도 같지만 오히려 범인을 알게 된 뒤 극의 긴장감은 배가된다. 140분에 달하는 러닝타임 대부분에 고도로 몰입하고 긴장하게 된다. 관객은 꼼짝없이 갇힌 승객이 된 듯 공포감에 짓눌리는 경험도 하게 된다. 3일 개봉하는 영화 ‘비상선언’ 얘기다. 영화는 칸 영화제 주연상 수상자인 송강호, 전도연은 물론이고 이병헌 김남길 등 한국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해 화제가 된 작품이다. 하지만 배우들보다 더 주목하게 되는 건 이야기 자체와 한재림 감독의 연출력이다. 친구들과의 여행길이 즐거운 중년 여성들 등 승객 면면을 보면 과거 들뜬 마음으로 비행기에 탄 경험이 소환된다. 기내 세트장은 미국에서 가져온 비행기 본체와 부품으로 만든 만큼 진짜 비행기 같다. 이 세트장은 관객들이 도망칠 곳이 없다는 절망감과 공포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만드는 1등 공신. 기체 흔들림을 재현하기 위해 모든 장면은 시종일관 카메라를 손으로 들고 찍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촬영했다. 비행기 추락 장면에선 세트를 360도로 회전시키고, 세트에 몸을 묶은 스태프들이 이를 촬영해 실제로 추락하는 것처럼 담아냈다. 영화는 딸 치료를 위해 비행기에 탄 재혁(이병헌) 등 승객 및 승무원들이 이끄는 기내 상황과 국토교통부 장관(전도연), 문제의 비행기에 아내가 탑승한 형사 인호(송강호) 등이 이끄는 지상의 재난 대응 상황을 번갈아 보여준다. 장면이 수차례 전환되지만 다큐멘터리처럼 담아낸 촬영 기법과 일관된 사운드 활용 덕에 이질감이 없다. 시나리오는 팬데믹 이전에 완성됐다. 그러나 팬데믹이 끝난 뒤 시나리오를 쓴 것처럼 바이러스 확진자에 대한 혐오, 각국의 봉쇄 조치가 부른 외교문제 등 팬데믹 국면을 꼼꼼하게 담아냈다. 주연 배우 이병헌은 28일 인터뷰에서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는 팬데믹 전이었는데 영화가 현실을 앞서가는 상황이 생겼다”며 “영화를 봤을 땐 팬데믹을 겪고 나서인지 심하게 감정이입이 됐다”고 말했다. 임시완의 광기 어린 테러리스트 연기와 딱딱한 언론 브리핑 말투까지 그대로 살려낸 전도연의 섬세한 연기 등 배우들의 탄탄한 기량은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영화 ‘변호인’에서 임시완과 함께했던 송강호는 최근 인터뷰에서 “임시완이 너무 잘해줬다. 영화 ‘범죄도시2’에 손석구가 있다면 ‘비상선언’엔 임시완이 있다”고 극찬했다. 별다른 이유 없는 테러를 동기가 분명한 테러보다 더 설득력 있게 그려낸 시나리오, 기내라는 답답한 공간을 스펙터클하게 활용한 촬영 방법, 뻔한 재난 영화로 만들지 않기 위해 절제를 거듭한 연출이 버무려져 전에 없던 깊이 있는 재난 영화가 탄생했다. 한 감독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특정한 재난이 아니라 재난 자체의 속성을 더 들여다보면 영화에서 더 많은 함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 2022-07-29
    • 좋아요
    • 코멘트
    PDF지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