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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게 뻗은 백사장 위에서 아이들이 해맑은 표정으로 내달리고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조선 최고의 해수욕장으로 해외에 알려져 외국인 별장 등이 들어섰던 송도원 해수욕장(함경남도 원산시)의 모습이 담긴 1973년 사진이다. 국립해양박물관(부산 영도구)은 22일부터 10월 13일까지 2019년 기획전 ‘잊힌 바다, 또 하나의 바다, 북한의 바다’를 개최한다. 북한 바다의 역사적·지리적 현황, 해양문화 관광명소와 개발, 수산물과 어로, 해안생물 분포 양상 등을 조명하는 국내 첫 전시다. 전시에서는 남북역사학자협의회 등을 통해 확보한 북한의 바다 사진을 비롯해 국내 주요 박물관과 연구기관에서 모은 희귀 자료 360여 점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은 “분단 이후 거의 잊혀버린 북한 바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설명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강점기 조선을 사랑한 일본인이 그린 한국 문화와 풍경을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수림문화재단은 26일까지 ‘가토 쇼린(加藤松林)이 보는 신(新) 팔도유람: 컬렉터 김용권 전’을 서울 동대문구 ‘김희수 기념 수림아트센터’에서 연다. 가토 쇼린은 1918년 한국에 건너와 1945년까지 살며 풍경화, 기행문 화첩, 서민의 생활상 등을 그린 화가다. 전국을 유람하며 조선의 아름다움을 그렸고, 한국 근대미술의 태동기에 작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일본에 돌아가서도 한국을 소재로 한 그림만 그렸고, 한일 국교 정상화 이전인 1963년 일본인으로는 처음으로 우리 정부의 초대를 받아 방한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는 재일동포가 수집한 그의 작품 64점이 전시된다. 오전 10시∼오후 6시. 주말 휴관. 무료.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한 맞대응으로 시작된 일본 제품 불매 움직임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초반에는 일부 제품의 매출 하락에 그쳤지만 현재는 산업계 전반으로 퍼지면서 매출에 직격타를 주고 있다. 21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대형마트, 편의점 등에서 판매하는 주류, 라면 등 일본 제품 매출이 급감했다. 이달 1∼18일 이마트의 일본 맥주 판매량은 전월 동기 대비 30.1% 감소했다. 불매 움직임이 시작된 이달부터 매주 10% 이상씩 매출이 빠진 셈이다. 올해 상반기(1∼6월) 수입 맥주 매출 2위를 기록한 아사히맥주는 이달 판매 순위가 6위로 떨어졌고 기린 등 다른 일본 브랜드도 하위권으로 순위가 하락했다. 롯데마트에서도 일본 라면(―26.4%), 낫토(―11.4%), 일본 과자(―21.4%) 매출이 감소했다. 수입 맥주 ‘4캔 1만 원’ 마케팅을 하는 편의점에서도 일본 제품의 매출이 감소했다. 편의점 GS25에 따르면 이달 1∼17일 일본 맥주 매출은 불매 움직임이 본격화된 2주 전에 비해 24.4% 줄었다. 소비자 여론이 악화되면서 일본 상품을 판매대에서 치우는 곳들도 나타나고 있다.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제품이 안 팔리는 게 가장 큰 문제겠지만 소비자 항의가 많아서 매대 한쪽으로 일본 제품을 치우는 사례가 늘었다”고 말했다. 여행업계에서는 일본 여행을 거부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회원 수 약 130만 명의 국내 최대 일본 여행 주제 인터넷 카페인 ‘네일동(네이버 일본 여행 동호회)’은 일본 제품에 대한 불매를 지지하며 17일 운영을 잠정 중단했다. 실제로 주요 여행사의 일본 여행 신규 예약자가 감소했다. 하나투어는 일본 여행 패키지 상품의 신규 예약자가 하루 평균 1100명 선에서 이달 중순 400∼500명 선으로 하락했다고 밝혔다. 예정된 여행을 취소하는 사례도 일부 늘었다. 노랑풍선 여행사는 이달 들어 18일까지 예약 취소 비율이 전년 동기보다 1.5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아직 7, 8월 항공권 취소 비율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신규 예약 감소 추세가 지속된다면 9월부터 일본 방문객 수가 급감할 것으로 관광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일본 상품 불매 리스트’가 퍼지면서 부정확한 정보로 기업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일본 제품 정보를 제공하는 ‘노노재팬’ 사이트엔 편의점 등에서 판매되는 삶은 계란 ‘감동란’이 불매 리스트에 올랐다. 그러나 제조 기술만 일본에서 빌렸을 뿐 일본에 보내는 비용이 전혀 없고 수익은 전부 한국에서 사용한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불매 목록에서 삭제됐다. 노노재팬은 속옷 브랜드 ‘와코루’와 보안 서비스 브랜드 ‘세콤’을 불매 리스트에 올렸다가 삭제했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대규모 투자를 한 쿠팡도 일본 기업 논란에 휩싸이면서 최근 홈페이지에 ‘쿠팡에 대한 거짓 소문에 대해 알려드립니다’라는 제목의 설명문을 올리고 “쿠팡은 우리나라에서 설립해 성장했으며 99% 이상의 사업을 한국에서 운영한다”고 해명했다. ‘조지아 커피’와 ‘토레타’를 생산·판매하는 한국코카콜라도 일본 제품 논란이 일자 “조지아 커피와 토레타는 일본코카콜라가 아닌 코카콜라 본사에서 브랜드에 관한 모든 권리를 소유하고 있는 제품”이라며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다이소도 “일본 다이소가 2대 주주지만 대주주는 한국 기업이고 별도의 로열티도 없다”고 해명했다. 유니클로, 아사히, 무인양품 등 일본과 합작해 사업을 운영하고 있는 롯데도 난감한 상황이다. 주말 서울 시내 곳곳에선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가 열렸다. 20일 서울 종로구 옛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선 일본의 경제보복을 규탄하고 과거사 왜곡을 비판하는 ‘경제보복 아베 규탄 촛불집회’가 열렸다. 정의기억연대와 한국진보연대 등 100여 개 시민단체 회원 1500여 명(주최 측 추산)은 이날 오후 6시부터 약 1시간 동안 “강제징용 사죄하라” “경제보복 중단하라” “아베 정권 규탄한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참가자들은 ‘노(No) 아베’ ‘일본정부 사죄하라’ 등의 피켓을 함께 들었다. 집회가 마무리될 무렵에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인 대형 욱일기를 함께 찢는 퍼포먼스를 펼쳤다. 주최 측은 27일 오후 7시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제2차 경제보복 아베 규탄 촛불집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강승현 byhuman@donga.com·박상준·조종엽 기자}

억만금과 바꿔서라도 젊음과 영생을 갈망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웰빙’ 열풍이 헬스케어 산업에 휘둘린 결과가 아닌지 의심하는 책이다. 미국의 사회비평가인 저자는 먼저 각종 의료 검진의 효용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일례로 유방 조영 검사로 유방암 발병률이 현저히 감소했다는 증거도, 전립샘암 검진이 사망률을 낮췄다는 증거도 없다는 것이다. 고해상도 촬영 기술의 발전과 산업적 이해관계, 소비자들의 ‘건강 염려증’ 등이 얽혀 불필요한 검사가 횡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매년 미국의 건강검진 비용은 2015년 약 100억 달러(약 11조7000억 원)로 추산된다고 한다. 나이를 거꾸로 먹게 해준다는 뷰티 상품 역시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고 한다. “멋진 근육과 날씬한 몸매가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피트니스 산업도 비판 대상이다. 미국에서 이 산업은 ‘가난한 사람은 몸을 돌보지 않는다’는 계급적 편견과 더불어 확산했다. 그러나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개인의 식습관보다는 가난 자체가 수명을 줄이는 주범일 가능성이 있다. 금세기 들어 미국에서 빈부격차가 빠르게 커지면서 백인 가운데서도 빈곤층은 사망률이 급속히 높아졌다고 한다. 저자는 현대 의학이 이룩한 성과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생명 현상인 노화와 죽음을 ‘악’처럼 다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나무토막과 줄기에 남아 있는 도끼의 흔적들이 일본인들의 약탈 행위를 입증하고 있었다. 기슭에서 정상까지 거목으로 덮여 있던 산들이 지금은 일본인들의 도끼에 의해 서서히 무너지고 있다.” 1903년 9월 초 러시아 군사수송함 야쿠트호에 통역관으로 동승해 울릉도를 조사한 레베제프(당시 블라디보스토크 동방대 3학년)의 울릉도 조사보고서다. 대한제국은 1900년 칙령 제41호를 내려 울릉도 도감을 군수로 격상해 일본인의 울릉도 불법 거주와 삼림 벌채를 근절하려 했지만 피해는 여전히 극심했다. 보고서는 “성인 양팔 길이의 5배가 되는 거목을 찾을 수 없다”며 “계곡에 방치된 거목의 그루터기를 통해 일본인의 약탈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고 했다.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 연구위원(교육연수원 교수)은 일본과 러시아 제국이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바라보고 침략하려 했는지 조명한 연구서 ‘제국의 이중성: 근대 독도를 둘러싼 한국·일본·러시아’를 최근 발간했다. 김 연구위원은 “제국은 자국 수산업자, 상인의 경제 활동과 이권을 비호하는 동시에 이들을 군사적 침략의 도구로 활용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1896년 울릉도의 삼림벌채권을 획득했고, 러일전쟁에 대비해 동해의 전략거점으로 주목한 울릉도의 삼림과 지형을 여러 차례 조사했다. 1903년 야쿠트호의 조사도 그 일환이었다. 레베제프는 울릉도에서 불법 거주하고 있는 일본인의 행패도 기록했다. 보고서는 대략 한국인 2500명, 일본인 180명 정도가 울릉도에 산다면서 “일본인들은 한국인을 업신여겼고 무장한 일본인 2, 3명이 한국인의 집에 나타나서 살림을 자기 물건처럼 다루며 폭력을 행사했다”고 썼다. 일본은 도동항에 불법적으로 경찰서까지 설치하고 있었다. 레베제프는 또 “일본인은 총알이 없어서 한국인과 맞서지 못했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집을 지나갈 때 한국인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렸다”고 기록했다. 김 연구위원은 “불법 벌목을 가로막는 한국인을 몰아내고, 울릉도를 아예 점령하고 싶었던 일본인의 내심이 포착된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이 독도를 영토로 편입했다고 주장하는 1905년 ‘시마네현 고시 40호’가 공식 고시됐다는 증거는 없다고 봤다. 시마네 현청은 1945년 8월 현청사가 전소될 때 고시 40호 원본이 소실됐다고 주장한다. 김 연구위원은 “고시 40호의 사본은 필기체인 표지와 달리 인쇄체이고 현지사의 도장과 서명도 없으며, 현지사는 고시가 이뤄졌다는 1905년 2월 22일에 앞서 19일부터 3월 1일까지 도쿄 출장으로 부재했다”며 “고시 사본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피아노 한 곡쯤은 하루 만에 완성한다?” “수영은 잘 못해도 하루 만에 서핑한다?” 짧은 시간을 투자해 효율적으로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하루 만에 특정 분야를 배우는 수업)가 뜨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5∼6시간 동안 자기계발을 하는 동시에 소소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데이 클래스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2030 직장인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정기휴가를 이용하기보다는 평일 반차나 주말 시간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KTX, 저비용항공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원데이 클래스 생활권은 전국 단위로 확장하는 추세를 보인다.》 회사원 이희찬 씨(32)는 최근 ‘피아노 1곡 완성’ 원데이 클래스에 등록했다. “살면서 한 곡쯤은 피아노로 자신 있게 연주하고 싶다”는 그만의 버킷리스트 때문. 평소 그가 좋아하는 이루마의 ‘Kiss the Rain’을 2시간 동안 배운 그는 연습을 거쳐, 편곡된 1분 분량의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어렸을 때 잠시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라 한 곡을 연주하는 게 가능할지 걱정했는데, 쉬운 버전의 곡을 연주하면서 소박한 꿈을 이뤘다”고 했다. 자신감을 찾은 그는 다음 단계의 클래스에 등록해 다른 곡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음악에 대한 기초가 없는 사람도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 시간에 따라 2만 원에서 5만 원까지 가격 부담도 적은 편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피아노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최보경 씨(28)는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도 손가락마다 번호를 기입해 양손 연주가 가능하도록 가르친다”며 “보통 3분이 넘는 곡을 1분 내외로 쉽게 편곡하면 누구든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강생의 90% 이상인 20, 30대 직장인들이 주로 평일에 찾아온다. 갑자기 연주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연주하고 싶은 곡을 들고 오는 사람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서핑 붐을 타고 강원 강릉과 양양, 울산, 제주의 당일치기 서핑 클래스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양양 ‘서프 오션스’에서 서핑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곽성태 씨(42)는 “수영을 못 하는 사람도 안전한 지역에서 이론, 지상, 실전 교육을 통해 2시간이면 서핑보드에 서도록 가르친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KTX를 타고 오는 수강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에서 서핑을 배우기 위해 양양을 찾은 이정호 씨(33)는 “완벽하진 않지만 평생 꿈꿔 왔던 서핑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지방에 위치한 사찰도 쉽게 갈 수 있게 되면서 당일 체험형 템플스테이도 확대되는 추세다. 사찰 탐방을 비롯해 사찰음식, 108배 교육 등 당일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인 통도사(경남 양산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코스의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통도사 관계자는 “경북, 경남권의 젊은층을 비롯해 수도권에서도 직장인들이 하루 동안 사찰을 탐방하고 불교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인기 있다”고 설명했다. 원데이 클래스의 종류는 세분되고 있다. 플라워 케이크 만들기, 캔들 만들기, 캘리그래피 등 기초 지식이 없어도 도전할 수 있는 분야부터 작곡, 디제잉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수업도 많다. ‘원데이 클래스 중독자’라고 밝힌 한 직장인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매주 ‘도장 깨기’ 하듯 새로운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회사에서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현재 취미 애플리케이션 ‘프립(Frip)’과 ‘탈잉(Taling)’에서는 수십 개의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효율적으로 성취감과 재미를 찾으려는 2030세대의 특징과 맞닿아 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는 긴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분야만 취사선택해서 배우려는 세대의 특징이 녹아 있다”며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원데이 클래스 등 자기계발 열풍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에서 여가 사용을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소소한 성취감을 찾으려는 이들이 늘어날 것”이라며 “유럽, 미국에서는 ‘퇴근 후 1시간 그림 그리기’처럼 일반인이 참여하는 예술, 스포츠 프로그램이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말했다.김기윤 pep@donga.com·조종엽 기자}

“피아노 한 곡쯤은 하루 만에 완성한다?” “수영은 잘 못해도 하루 만에 서핑한다?” 짧은 시간을 투자해 효율적으로 새로운 취미를 배우는 ‘원데이 클래스(하루만에 특정 분야를 배우는 수업)’가 뜨고 있다. 저렴한 비용으로 짧게는 2시간부터 길게는 5~6시간 동안 자기계발을 하는 동시에 소소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원데이 클래스의 주요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2030 직장인들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정기휴가를 이용하기보다는 평일 반차나 주말 시간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KTX, 저가항공 등 교통수단의 발달로 원데이 클래스 생활권은 전국 단위로 확장하는 추세다. 회사원 이희찬 씨(32)는 최근 ‘피아노 1곡 완성’ 원데이 클래스에 등록했다. “살면서 한 곡쯤은 피아노로 자신 있게 연주하고 싶다”는 그만의 버킷리스트 때문. 평소 그가 좋아하는 이루마의 ‘Kiss the Rain’을 2시간 동안 배운 그는 연습을 거쳐, 편곡된 1분 분량의 곡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그는 “어렸을 때 잠시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라 한 곡을 연주하는 게 가능할지 걱정했는데, 쉬운 버전의 곡을 연주하면서 소박한 꿈을 이뤘다”고 했다. 자신감을 찾은 그는 다음 단계의 클래스에 등록해 다른 곡에도 도전할 계획이다. 음악에 대한 기초가 없는 사람도 원데이 클래스에서는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다. 시간에 따라 2만 원에서 5만 원까지 가격 부담도 적은 편이다. 서울 양천구에서 피아노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 중인 최보경 씨(28)는 “처음 피아노를 배우는 사람도 손가락마다 번호를 기입해 양손연주가 가능하도록 가르친다”며 “보통 3분이 넘는 곡을 1분 내외로 쉽게 편곡하면 누구든 배울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수강생의 90% 이상인 20, 30대 직장인들이 주로 평일에 찾아온다. 갑자기 연주해야 하는 사람보다는 연주하고 싶은 곡을 들고 오는 사람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최근에는 서핑 붐을 타고 강원 강릉과 양양, 울산, 제주에 당일치기 서핑 클래스를 찾는 사람도 늘고 있다. 강원 양양에서 서핑 원데이 클래스를 운영하는 곽성태 씨(42)는 “수영을 못하는 사람도 안전한 지역에서 이론, 지상, 실전 교육을 통해 2시간이면 서핑보드에 서도록 가르친다”고 했다. 수도권에서 KTX를 타고 오는 수강생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서울에서 서핑을 배우기 위해 양양을 찾은 이정호 씨(33)는 “완벽하진 않지만 평생 꿈꿔왔던 서핑에 도전한 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지방에 위치한 사찰도 쉽게 갈 수 있게 되면서 당일 체험형 템플스테이를 확대하는 추세다. 사찰 탐방을 비롯해 사찰음식, 108배 교육 등 당일 템플스테이를 운영 중인 통도사(경남 양산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6시간 코스의 템플스테이를 진행한다. 통도사 관계자는 “경북, 경남권의 젊은층을 비롯해 수도권에서도 직장인들이 하루 동안 사찰을 탐방하고 불교를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인기”라고 설명했다. 원데이 클래스의 종류는 세분화되고 있다. 플라워 케이크 만들기, 캔들 만들기, 캘리그라피 등 기초 지식이 없어도 도전할 수 있는 분야부터 작곡, 디제잉처럼 전문성이 필요한 수업도 많다. ‘원데이 클래스 중독자’라고 밝힌 한 직장인은 “많은 시간을 들이지 않아도 매주 ‘도장 깨기’ 하듯 새로운 클래스에 참여하면서 회사에서보다 더 큰 성취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현재 취미 애플리케이션 ‘프립(Frip)’과 ‘탈잉(Taling)’에서는 수십 개의 원데이 클래스를 찾아볼 수 있다. 이는 효율적으로 성취감과 재미를 찾으려는 2030 세대의 특징과 맞닿아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이런 현상에는 긴 노력과 시간을 들이지 않고 필요한 분야만 취사선택해 배우려는 세대의 특징이 녹아 있다”며 “‘워라밸’을 중시하는 분위기와 소셜미디어의 영향으로 원데이 클래스 등 자기계발 열풍은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주 52시간 근무제도의 영향으로 평일 중 반차와 자기계발 시간을 장려하는 직장 문화도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직장에서 여가 사용을 장려하는 문화가 정착하면서 직장 밖에서 소소한 성취감을 찾으려는 풍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바닷가 마을에 사는 빌리는 동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가 진행하는 자연 다큐멘터리를 좋아하는 소년이다. 엄마는 아프고, 나이키 운동화는 또래에게 빼앗겼다. 돌고래들에게 사냥당하는 고등어처럼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놀림을 받기도 한다. 수영을 좋아하는 빌리. 아이들은 그가 항상 입을 벌리고 있다며 ‘물고기 소년’이라고 놀리지만 빌리는 이게 싫지만은 않다. “내 피부는 마치 파도처럼 오르내려. 내 마음은 마치 바다처럼 드나들지.” 가방으로 얻어맞아 나자빠진 빌리를 일으켜 준 건 키 작은 아이 패트릭. 빌리는 바다에서 말하는 고등어를 만나고, 긴장한 순간 패트릭에게 이를 털어놓고 만다. 빌리는 걱정에 빠진다. 패트릭도 나를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하겠지. 학교에 소문을 내지 않았을까. 버뮤다 삼각지대에서 사라진 이들처럼 아픈 엄마는 결국 실종되는 걸까. 열두 살 소년의 세계를 다룬 영국의 성장 소설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청소년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조금은 불안하고,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는 그 시간은 어른이 돼서도 사실 끝나지 않는다는 걸 누구나 알 터. 환상적인 소재로 이 세계를 따스하게 풀어냈다. 다만 소설에 등장하는 낯선 사물들이 어떤 느낌을 주는 것인지 한국 독자에게는 잘 전달되지 않을 때가 있어 아쉽다. 사물들의 심상이 소년의 일상과 세계에 작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기에 더욱 그렇다. 역자가 주석을 달아 의미를 전하려 애쓰지만 독자의 경험 차이라는 장벽을 훌쩍 넘기는 어려운 것 같다. 원제 ‘FISH BOY’.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남선은…조선의 독립은 시대의 대세에 순응하고 인류 공동생존권의 정당한 발동으로 하물(何物)이라도 저지 억제키 불능함으로 차 목적을 성(成)키 무의(無疑)함으로 조선 민족은 정당히 최후의 일인 최후의 일각까지 독립의 의사를 발표하고….” 동아일보 1920년 4월 8일자에 실린 기사 ‘47인 예심결정서’다. 기미독립선언서의 문장이 거의 그대로 드러나 있다. 일제는 검열을 통해 3·1운동의 진상이 알려지는 것을 극구 막으려 했다. 그러나 동아일보는 창간 직후인 1920년 4월 6∼18일 8회에 걸쳐 민족대표 ‘47인 예심결정서’를 연재하는 등 판결문 전재와 공판기의 형식을 빌려 3·1운동의 주체와 경과에 대한 진상을 알렸다. 한기형 교수(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는 최근 발간한 저서 ‘식민지 문역(文域)’의 ‘3·1운동과 법정서사―조선인 신문의 반검열 기획에 대하여’ 편에서 일제의 검열에 저항한 동아일보의 노력을 조명했다. 한 교수는 “실정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교묘히 제국 일본의 권력을 부정한 전복적 법정 서사”라고 설명했다. 한 교수에 따르면 판결문은 3·1운동에 대한 제국 일본의 단죄를 기록한 자료로 식민권력의 언어였기에 검열의 대상이 되지 않았다. 한 교수는 “동아일보는 그 약점을 파고들었다”면서 “동아일보의 보도는 제국의 눈을 찌르려는 반(反)식민 정치 전략이자 피(被)검열 주체의 적극적인 반(反)검열 시도였다”고 평가했다. “강우규는…얼굴에는 여전히 붉으려한 화기를 가득히 띠었으며 위엄 있는 팔자수염을 쓰다듬으며 서서히 들어오더니….” 이 같은 전략은 사이토 마코토 총독의 암살을 기도한 강우규 의사의 공판기(1920년 4월 15일∼5월 28일 5회 연재)에도 이어졌다. 동아일보는 공판기를 통해 강 의사를 구속한 식민지 실정법의 문제점을 폭로했다. 동아일보의 대한청년외교단·대한애국부인단 공판 방청 속기록 보도(1920년 4월 24일∼6월 11일 6회 연재)는 식민지 민간신문 공판기의 전범을 보여준다고 한 교수는 평가했다. 이 공판기는 이들 단체의 반제국주의 운동의 전말을 드러내고, 검사 논고의 비합리성과 피고가 겪은 고문 등을 폭로했다. 또 임시정부와 비밀연락을 하던 조직인 연통제 사건의 공판기(1920년 8월 22∼31일 7회 연재)는 표제문 15개 가운데 검사 발언은 단 한 개뿐이고, 나머지를 “조선은 곧 조선인의 조선이니 조선인이 통치함이 당연할 일” 같은 피고들의 주장으로 채웠다. 한 교수는 “당대 법정서사의 극점을 보여준다”며 “조선 지배에 대한 직설적 비판을 신문 지면에 담아 동아일보가 과연 식민지의 매체인가를 의심하게 할 만큼 파격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 근대문학은 왜 왜소한가.’ 문화제도사(史) 시각에서 식민지 근대성의 구조를 규명하는 데 힘써 온 한기형 교수(57·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장)는 이 화두를 풀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특히 일제의 검열이 근대문학에 미친 영향을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한 교수의 화두는 ‘한국 근대문학은 과연 왜소한가’로 바뀌었다. 한 교수는 최근 식민지 검열 연구의 결정판이라고 할 만한 ‘식민지 문역(文域)’(성균관대 출판부·3만5000원)을 출간했다. 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원장실에서 만난 한 교수는 “일제의 검열이 익숙한 주제 같지만 실제로 어떻게 문학의 내부로 파고들어와 질서를 비틀었는지는 제대로 탐구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일제는 ‘내지(內地)’의 제도들을 식민지에 그대로 이식했지만 이중적 방식으로 운용한 것이 꽤 많다. 대표적인 게 언론(신문)과 출판에 관한 법률이다. 한 교수는 “일본인은 사후검열, 조선인은 사전검열을 받았다”면서 “이 차별은 표현의 자유와 가능성에서 본원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일본 작가는 사회주의 서적이나 포르노그래피 등 ‘불온’하거나 ‘풍속을 괴란(壞亂)’하는 문서를 만들고 출판할 수 있었다. 당국이 압수해도 지하시장에서 유통할 수 있기 때문. 반면 조선 작가는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내용은 인쇄 자체가 불가능했다. “굵은 바늘을…한번 찌를 때마다 강력한 전기에 감전된 듯이 순간 몸이 구두점처럼 조그맣게 줄어드는 것 같았다.” 한 교수는 일본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가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참혹한 고문을 묘사한 소설 장면을 예로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무수한 고문을 겪었음에도 일제강점기 우리 문학에서는 이런 묘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 교수는 “조선에서는 이런 작품의 발표가 불가능했다”면서 “당시 문학이 애매하거나, 모호하거나, 어슴푸레하거나, 회색적인 것은 오히려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작가들의 자구책”이라고 설명했다. 시인 임화(1908∼1953)가 추구한 정치문학의 정수가 담겨 있다고 평가받는 시 ‘담(曇)―1927’ 역시 일본 잡지 ‘예술운동’에서 발표할 수 있었다. 임화는 조선에서는 혁명을 애상(哀想)이나 친족 간 유대 같은 감정에 가둔 시를 발표했다. 이 같은 억압을 전제하면 일제강점기 작품은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게 한 교수의 주장이다.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마음속 소리를 외치진 못했으나 어떻게든 작품에 은밀히 내심의 한 자락을 남겼다. 한 교수는 대표적인 작가로 염상섭(1897∼1963)을 꼽는다. 한 교수는 “염상섭은 소설 ‘만세전’을 통해 식민지라는 곤경을 마주했으나, 더 깊이 파고든다면 작품 출간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우회로를 찾았다”며 “‘광분’(1929년 발표)처럼 막장드라마 같은 설정으로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통속소설에도 식민지 자본주의의 무도함과 저열함을 드러내는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문학과 문장으로 드러난 표층 아래 국가 권력과 시장이라는 심층을 오래 응시해온 한 교수는 이 책에서 일제의 검열을 이겨내기 위한 한국 근대문학의 성취와 문학 작가들의 분투를 소개하면서 근대성 자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한 교수는 “식민지 근대문학의 주역이었던 토착서사처럼 한국 근대문학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들이 숱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춘향전은 1930년대 해마다 수만 권씩 팔렸다. 구소설이 조선 출판문화의 진짜 대세였던 것. 한 교수는 “열여섯 살 소녀가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심청전을 읽으며 독자는 삶과 죽음을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심청전이 근대 한국인에게 남긴 심상에 관해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고 그저 소멸하던, 전근대적인, 구태의연한 전통 서사의 잔재로 치부해 버린다”고 꼬집었다. 당대 조선어 출판물은 일본어 매체에 포위돼 있었다. 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판매 상위 30개 출판물 가운데 조선어 매체는 동아일보 등 4종에 불과했다. 당대 작가나 언론인들이 어떤 중층적 억압에 놓였는지를 의식하고 텍스트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한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의 근대성을 영미 이론이나 설익은 탈근대론, 심지어 제국의 관점으로 분석해왔다”면서 “한국의 역사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기준과 미학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 근대문학은 왜 왜소한가.’ 문화제도사(史) 시각에서 식민지 근대성의 구조를 규명하는데 힘써 온 한기형 교수(57·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원장)는 이 화두를 풀기 위해 연구를 거듭했다. 특히 일제의 검열이 근대문학에 미친 영향을 파고들었다. 그 과정에서 한 교수의 화두는 ‘한국 근대문학은 과연 왜소한가’로 바뀌었다. 한 교수는 최근 식민지 검열 연구의 결정판이라 할 만한 ‘식민지 문역(文域)’(성균관대 출판부, 3만5000원)을 출간했다. 9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 원장실에서 만난 한 교수는 “일제의 검열이 익숙한 주제 같지만 실제로 어떻게 문학의 내부로 파고들어와 질서를 비틀었는지는 제대로 탐구되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일제는 ‘내지(內地)’의 제도들을 식민지에 그대로 이식했지만 이중적 방식으로 운용한 것이 꽤 많다. 대표적인 게 언론(신문)과 출판에 관한 법률이다. 한 교수는 “일본인은 사후검열, 조선인은 사전검열을 받았다”면서 “이 차별은 표현의 자유와 가능성에서 본원적인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일본 작가는 사회주의 서적이나 포르노그래피 등 ‘불온’하거나 ‘풍속을 괴란(壞亂)’하는 문서를 만들고 출판할 수 있었다. 당국이 압수해도 지하시장에서 유통할 수 있기 때문. 반면 조선 작가는 당국이 허가하지 않은 내용은 인쇄 자체가 불가능했다. “굵은 바늘을…한번 찌를 때마다 강력한 전기에 감전된 듯이 순간 몸이 구두점처럼 조그맣게 줄어드는 것 같았다.” 한 교수는 일본 작가 고바야시 다키지(1903~1933)가 사회주의자들에 대한 참혹한 고문을 묘사한 소설 장면을 예로 들었다. 독립운동가들이 무수한 고문을 겪었음에도 일제강점기 우리 문학에서는 이런 묘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한 교수는 “조선에서는 이런 작품의 발표가 불가능했다”면서 “당시 문학이 애매하거나, 모호하거나, 어슴푸레하거나, 회색적인 것은 오히려 검열을 피하기 위한 작가들의 자구책”이라고 설명했다. 시인 임화(1908¤1953)가 추구한 정치문학의 정수가 담겨있다고 평가받는 시 ‘담(曇)―1927’ 역시 일본 잡지 ‘예술운동’에서 발표할 수 있었다. 임화는 조선에서는 혁명을 애상이나 친족 간의 유대 같은 감정에 가둔 시를 발표했다. 이 같은 억압을 전제하면 일제강점기 작품은 전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게 한 교수의 주장이다. 작가들은 작품을 통해 마음속 소리를 외치지는 못했으나 어떻게든 작품에 은밀히 내심의 한 자락을 남겼다. 한 교수는 대표적인 작가로 염상섭(1897~1963)을 꼽는다. 한 교수는 “염상섭은 소설 ‘만세전’을 통해 식민지라는 곤경을 마주했으나, 더 깊이 파고든다면 작품 출간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우회로를 찾았다”며 “‘광분’(1929년 발표)처럼 막장드라마 같은 설정으로 높이 평가받지 못하는 통속 소설에도 식민지 자본주의의 무도함과 저열함을 드러내는 작가의 진정한 의도가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문학과 문장으로 드러난 표층 아래 국가권력과 시장이라는 심층을 오래 응시해온 한 교수는 이 책에서 일제의 검열을 이겨내기 위한 한국 근대문학의 성취와 문학 작가들의 분투를 소개하면서 근대성 자체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시도했다. 한 교수는 “식민지 근대문학의 주역이었던 토착서사처럼 한국 근대문학은 알려지지 않은 세계들이 숱하게 남아있다”고 말했다. 일례로 춘향전은 1930년대 해마다 수만 권씩 팔렸다. 구소설이 조선 출판문화의 진짜 대세였던 것. 한 교수는 “열여섯 살 소녀가 죽음을 향해 질주하는 심청전을 읽으며 독자는 삶과 죽음을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그런데 심청전이 근대 한국인에게 남긴 심상에 관해서는 아무도 질문하지 않고 그저 소멸하던, 전근대적인, 구태의연한 전통서사의 잔재로 치부해버린다”고 꼬집었다. 당대 조선어 출판물은 일본어 매체에 포위돼 있었다. 한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판매 상위 30개 출판물 가운데 조선어 매체는 동아일보 등 4종에 불과했다. 당대 작가나 언론인들이 어떤 중층적 억압에 놓였는지를 의식하고 텍스트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한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그동안 한국의 근대성을 영미 이론이나 설익은 탈근대론, 심지어 제국의 관점으로 분석해 왔다”면서 “한국의 역사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기준과 미학으로 설명해야 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바닥에 투영된 지중해의 푸른 바닷길을 건너면 기원전 4세기 말 조각한 저승의 문지기 ‘반트’ 석상이 정면에서 관객을 맞이한다. 그러나 전시실 안은 죽음의 세계가 아니다. 유물 상당수는 무덤에서 출토된 것이지만 오히려 현세 지향적인 느낌으로 가득한 에트루리아인들의 삶이 눈앞에 펼쳐진다.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은 10월 27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특별전 ‘로마 이전, 에트루리아’를 연다. 에트루리아는 로마 이전에 이탈리아 반도 중북부 지역을 중심으로 성장했던 고대 국가. 기원전 10세기경부터 1000년 가까이 지속한 지중해 문명이다. 그리스 문명의 영향을 받았지만 독특하고, 특히 권력과 종교적 상징에서 로마 문화에 큰 흔적을 남겼다. “그들은 삶의 어떤 충만함을 가지고, 자유롭고 즐겁게 숨 쉬도록 내버려둔다. …즉, 편안함, 자연스러움, 그리고 삶의 풍요로움. 지성이나 영혼을 어떤 방향으로도 강요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것이다.” ‘채털리 부인의 사랑’으로 익숙한 D H 로런스(1885∼1930)가 사후 출간된 ‘에트루리아 유적 기행기’(1932년)에 남긴 글이다. 에트루리아의 기원과 언어, 종교는 여전히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무덤 벽화와 부장된 유물을 통해 그들이 시와 음악, 무용, 연회를 즐겼다는 걸 알 수 있다. 전시에 보이는 에트루리아인들은 유골단지에 자신들의 소박한 오두막을 묘사했고, 유골함에 저승으로 가는 개선 행진을 조각했으며, 석관 뚜껑에는 여전히 비스듬히 누워 술잔을 들고 연회를 즐기는 모습을 남겼다. ‘죽음 뒤에도 즐거움은 여전할 것’이라 믿었을 터이니, 필경 살아서도 유쾌한 이들이었을 것이다. 청동으로 만든 전투용 정강이 보호대는 실용성보다는 용사의 멋을 추구했는지 종아리 근육의 굴곡까지 표현하고 있다. 그들은 금세공의 달인이기도 했다. 황금 귀걸이, 월계관을 비롯한 장신구는 세밀한 표현과 기교, 화려함이 압도적이다. 전시는 이 밖에도 피렌체국립고고학박물관, 과르나치 에트루리아박물관 등에서 엄선한 유물 약 300점을 볼 수 있다. 에트루리아인들이 세운 불치 신전과 루니 신전의 페디먼트(서양 건축 정면 상부에 있는 삼각형 벽)가 이탈리아 밖으로 외출한 건 오랜만이라고 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항일독립 문화유산 2건이 문화재로 등록됐다. 문화재청은 ‘이자해자전 초고본’과 ‘한국독립운동사략(상편)’ 등 2건을 문화재로 등록했다고 9일 밝혔다. ‘이자해자전 초고본’(등록문화재 제756호)은 독립운동가 이자해(1894∼1967)의 자서전이다. 이자해는 의사(醫師)로 일하던 중 평안북도 중강진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중국으로 망명해 대한독립단 광복군사령부 등에서 활동했다. 자전에는 중국 서간도 지역 대한독립단의 조직과 변화, 내몽골 지역 내 한인들의 거주 및 일제 패망 뒤 한인회 조직 활동, 한국광복군의 연계 병력 모집 활동 등이 담겨 있다. 중국 베이징 이북에서 내몽골 바오터우(包頭)에 이르는 지역의 독립운동 관련 내용을 자세히 수록해 사료적 가치가 크다. ‘한국독립운동사략(상편)’(등록문화재 제757호)은 3·1운동 민족대표 가운데 한 명인 김병조(1877∼1948)가 3·1운동의 배경, 각 지방에서 발표한 독립선언서와 국내외 운동의 전개 상황, 일제 탄압 실태, 임시정부 수립과 통합 과정 등을 담은 책이다. 문화재청은 이 밖에 근대문화유산 가운데 1963년 건립한 ‘익산 구 이리농림고등학교 본관’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일본식 가옥에 서양식 주거 공간을 절충한 ‘군산 구 십자의원’(1936년 건립)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결국 남북관계는 호전돼 나갈 것이라 기대하고 있다. 문화, 체육, 관광 교류를 직접 담당할 ‘남북문화교류추진단’을 구성하는 방안을 관계부처와 협의 중이다.”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취임 100일을 사흘 앞둔 8일 세종시 문체부 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통일부 등과 협의하겠지만 남북 교류 문제는 문체부가 계속 콘텐츠를 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판문점 남북미 정상 회동 이후 재개될 가능성이 있는 문화 교류에 대비하겠다는 뜻이다. 박 장관은 12일 개막하는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할지에 대해 “아직 북한 측의 답변이 없지만 마지막까지 문은 열려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게임산업에 대한 적극적인 지원을 표명하기도 했다. 박 장관은 “게임이 문화이자 레저로 자리 잡았는데도 아직 부정적으로 간주하는 시선이 있다”면서 “게임의 사회적 가치를 적극적으로 재조명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출 기여도가 큰 게임산업을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 e스포츠 육성과 게임 관련 기업에 대한 금융 투자와 세제 지원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최근 세계보건기구(WHO)가 게임이용장애(게임중독)를 질병코드로 분류한 결정에 관해서는 국무조정실 중심의 민관협의체를 통해 지혜롭게 풀어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박 장관은 스크린 독과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크린상한제’를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스크린이 6개 이상인 복합상영관은 관객이 집중되는 오후 1∼11시 특정 영화를 50% 넘게 상영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 박 장관은 “영업 자유의 제한이라는 우려가 있지만 국회와 협력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영비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처리되도록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독립예술영화에 대한 제작 지원을 내년까지 74억 원으로, 유통 지원을 68억여 원으로 대폭 늘릴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또 박 장관은 5세대(5G) 기술과 관련된 실감형 콘텐츠를 육성하는 등 관광 벤처를 발굴하고 금융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한국 수출 규제 조치와 관련해 실태를 파악한 결과 관광과 문화산업 분야에는 아직 큰 변화가 없다고 설명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에서 북한으로 건너간 월북자 중 최고위급 인사인 최덕신 전 외무부 장관의 차남 최인국 씨(73·사진)가 북한에 영구 거주하기 위해 6일 평양에 도착했다고 북한 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가 보도했다. 정부는 북한 매체에서 월북 사실을 보도하기 전까지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7일 우리민족끼리는 최 씨가 평양 순안국제공항에 도착해 “가문이 대대로 안겨 사는 품, 고마운 조국을 따르는 길이 돌아가신 부모님 유언을 지켜드리는 길이고, 자식으로서의 마땅한 도리이기에 늦게나마 공화국에 영주할 결심을 내리게 되었다”는 소감을 밝혔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양복 차림의 최 씨가 북측 인사들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도착 소감을 읽는 장면 등이 담긴 1분 35초 분량의 영상도 공개했다. 최 씨 부모는 최덕신·류미영 부부다. 최덕신은 박정희 정부에서 외무장관과 서독 주재 대사를 지냈으나 박 전 대통령과의 갈등으로 류미영과 함께 미국을 거쳐 1986년 월북했다. 광복 이후 월북한 한국 인사 중 최고위급으로 ‘남한판 황장엽’ 사건으로 불리기도 했다. 최덕신은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부위원장,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등에 임명되는 등 북한에서도 고위직으로 활동했다. 류미영은 상하이 임시정부 국무위원 겸 참모총장을 지낸 천도교 독립운동가 류동열 선생의 외동딸로 1989년 남편 사망 후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을 이어받았으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 등을 지냈다. 북한은 류미영을 체제 선전에 적극 이용해 왔다. 2016년 류미영 사망 당시 김정은이 화환을 보내기도 했다. 최 씨는 류미영 사망 후 공석인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직책을 이어받을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최 씨는 2001년 이후 가족 상봉 등을 목적으로 지난해 11월까지 총 12차례 방북했다. 특히 2017년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으로 방북이 허가된 민간인으로 북한을 방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통일부에 방북 신청을 하지 않았다. 최 씨는 종종 주변에 월북 의사를 드러내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최 씨가 기획 월북을 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정부 관계자는 “통일부에 사전 방북 신청을 하지 않으면 정부가 개개인의 소재를 파악하기 어렵다”며 “방북 경위를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당국은 최 씨에 대해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 중이다.박효목 tree624@donga.com·조종엽 기자}

6일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의 서원(書院)’. 문화재청에 따르면 한국의 서원은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등재 요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조선시대 서원은 요즘으로 치면 사립 고등교육기구다. 지성의 요람이자 성리학 발전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각 지역의 교육과 문화, 여론의 구심점이었다. 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은 경북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다. 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도 살아남은 47곳 가운데 일부이며 모두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현재 한국에는 670여 곳의 서원이 있다. 서원에서는 강학(講學)과 제향(祭享)이 이뤄졌다. 강학은 학문을 닦고 연구하는 일. 옥산서원 필암서원 등에서는 지금도 정기적으로 지역 유림의 강학이 열린다. 제향은 사당에 지역이나 학파를 빛낸 선현의 신위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일이다. 서원별로 여러 명의 선현을 모시는 곳도 많다. 이에 따라 보통 앞쪽에는 강학을 위한 강당과 기숙사, 뒤쪽에는 선현을 기리는 사우(祠宇)가 배치돼 있다. 우리나라 서원의 역사는 소수서원으로 시작된다.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이 1543년 안향을 배향하는 사당을 세우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세운 데서 비롯됐다. 이후 풍기군수로 부임한 이황이 조정에 사액(賜額)을 요청하고 명종이 1550년 소수서원이라는 현판을 내렸다. 명칭은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라는 뜻을 담았다. 조정이 서원의 사회적 기능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된 건 자랑스러운 일이나 지자체별로 흩어져 있는 서원의 체계적인 보존 계획을 세우는 것이 향후 과제다. 서원을 관광상품 정도로 인식하고 이용하려 하면 자칫 주변 경관과의 조화를 해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서원은 원래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으로서 가치가 높다. 중국 서원이 보통 마을 중심지에 있는 데 비해 한국의 서원은 심신을 수양하도록 산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유네스코도 등재와 동시에 9개 서원에 대한 통합 보존 관리 방안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또 서원의 세계유산 등재가 단순히 ‘자랑할 만한 유산이 하나 더 늘었다’는 수준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서원의 철학을 제대로 계승하도록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일도 과제라는 의견이 나온다. 국가브랜드위원장 시절인 2011년부터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앞장서 온 이배용 한국의 서원 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72)은 “서원에는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생각이 담겨 있다”고 강조했다. 이 이사장은 한국서원세계문화유산등재추진준비위원장, 문화재위 세계유산분과위원장 등으로 일했다. “잘 가르쳐서, 심성의 인재를 키워, 사회에 선한 실천을 하도록 만드는 게 중요하다는 거지요. 서원은 민간에서, 지역에서 미래를 향해 교육을 힘을 펼쳤다는 점에서 전통 유산인 동시에 인재 양성의 나침반이라고 생각합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월북자의 자식.’ 6일 북한의 대남선전매체 ‘우리민족끼리’의 보도로 밝혀진 최인국 씨의 불법 월북에는 1986년 부모가 월북한 뒤 최 씨에게 찍힌 낙인과 한국에서의 신산스러운 삶 역시 한 가지 원인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 씨의 아버지인 최덕신(1914~1989)은 6·25전쟁 때 사단장으로 참전했고 박정희 정권에서 외무장관, 서독 주재 대사를 지냈다. 1967년부터 제7대 천도교 교령을 맡기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과 갈등 끝에 아내 류미영(1921~2016)과 1976년 미국에 이주한 뒤 여러 차례 평양을 드나들며 김일성을 만났고, 1986년 북한으로 망명했다. 최덕신과 류미영은 북한에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역시 천도교인인 최인국 씨는 월북 전 송범두 현 천도교 교령을 만나 “내가 여기(한국)서 살기도 힘들고, 할 수 있는 일도 없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본보는 송 교령을 최근 만나 최 씨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송 교령은 “최인국 씨가 현행법을 어기고 북한에 넘어간 것을 유감으로 생각한다”면서도 “최 씨가 남북간 종교 교류가 활성화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송 교령은 최 씨가 어머니 류미영 씨가 2016년 세상을 뜬 뒤 비워놓았던 북한 천도교청우당 중앙위원장 자리를 이어받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했다.―부모가 북한으로 간 뒤 최 씨의 생활은 어땠나. “최 씨가 대학 졸업하고 직장을 가졌는데, 그것도 얼마 안돼서 그리됐으니까(부모가 입북했으니까). 자기가 벌어놓은 돈도 없고, 움직이면 정보망(대공 수사팀)이 따라붙고…. 누가 최 씨를 도와주고 싶어도 못 도와줬을 거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을 것이다. 한동안 자기 어머니(류미영)가 용돈이라도 좀 보내주고 했던 거 같은데, 돌아가신 뒤에는 그것도 없어졌고. 한국에서 뭐를 해서 자기가 밥을 먹고 살아. 그러니까 고뇌를 많이 했겠지.” 최 씨는 부모의 월북 이후 직장을 10번 넘게 옮겨야 했고, 사실상 제대로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송 교령은 올 3월 경 최 씨가 자신을 찾아와 마지막으로 만난 적이 있다고 했다.―만나면 최 씨가 어떤 얘기를 하든가. “이런 얘기지. ‘지금 자기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없다. 도저히 살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대한민국이, 민주주의가 마음에 안 드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내가 실질적으로 할 게 없고 삶이 핍박하다’고 하더라. 언젠가 한번은 ‘내가 저쪽(북)에 가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한번씩 (북한에) 갔다 올 때마다 자꾸 마음이 흔들리는 거 같았어. 봐서는 (북한 측에서 미리) 언질이 있지 않았겠느냐 싶고.” 최 씨는 2016년 11월 어머니인 류 씨가 사망했을 때 방북했고, 이후에도 1, 2주기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방북한 일이 있다.―교령은 뭐라고 했나? “지금 거기 가서, 그 쪽 활동을 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느냐고 했지. 그런데 ‘그건 순전히 청우당 일이고, 천도교 일이기 때문에…크게 내가 이 나이에 그쪽을 뭐 찬양하거나 그럴 수는 없지만…내가 가서 남쪽하고 통일의 통로가 되는, 그런 단초는 안 만들겠느냐’고 하더라고.” 천도교 신자는 1945년 해방 당시에도 북한 지역에 더 많았고, 지금까지도 천도교청우당으로 이어지고 있다. 남북 천도교는 뿌리는 같지만 교류는 별 진척이 없다. 최 씨의 월북에는 자신이 남북 천도교 교류의 고리가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최 씨가 북한에서 어떤 일을 할 것으로 예상하나? “류미영 위원장 사후에 지금까지 천도교청우당 위원장직을 비워놨지. 들리는 얘기로는 그쪽(북한)에서는 가문을 중요시하잖아. 혈통을. 그 자리는 아무나 앉힐 수가 없다는 그런 얘기가 북한에서 있었어.”―최 씨와 가까웠나? “어쩌다 소식 왕래하는 정도지. 최 씨는 지금까지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가 알아서 찾아왔고, 우리가 먼저 연락하거나 그러질 않았어. 노출을 싫어하는 사람이었어. 자기 부모 넘어간 뒤부터 체질화 된 거지. (개인 신상에 대해) 뭐 물으면 딴전 피운다고. 먼 산보고. 다른 얘기하고. 가족에 대해서도 안 밝혀.”―최 씨가 동학민족통일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천도교로서는 최 씨의 월북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거 같다. “얽히고설킨 선대부터의 인연 아니요. 할아버지 대부터 얽힌 것이지. 최 씨에게 우리가 이래라 저래라 얘기할 수도 없고.” 최 씨의 할아버지이자 최덕신의 아버지인 독립운동가 최동오 장군(1892~1963)은 김일성이 잠시 다녔던 화성의숙의 교장 선생님이었다. 최동오 장군은 6·25전쟁 때 납북됐고,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최 씨의 외할아버지(류미영의 수양 아버지)이자 임시정부의 참모총장 등을 지낸 유동열 장군(1879~1950) 역시 6·25전쟁 중 납북돼 마찬가지로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의 서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6일 최종 등재됐다. 이번 등재로 우리나라는 모두 14건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문화재청은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됐다”고 이날 밝혔다.문화재청에 따르면 한국의 서원은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되고 있는 한국의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등재 요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이번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은 경북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등 9곳이다.서원은 조선시대 사립 고등교육 기구로, 지성의 요람이자 성리학 발전의 중심지였을 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교육과 문화, 여론의 구심점이었다. 현재 한국에는 이번에 등재된 서원 9곳을 비롯해 670여 개의 서원이 있다. 중국에도 서원이 있지만 제향(祭享) 기능이 없고, 과거에도 정부 중심으로 운영되는 관료 배출 학원에 가까웠다고 평가된다.국가브랜드위원장 시절인 2011년부터 서원의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앞장서 온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은 바쿠에서 본보와 전화 통화를 하고 “이번 세계유산 등재로 바른 인성을 키워내고, 따듯한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 서원의 교육 이념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이 현대에도 울림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서원 실사를 나온 전문가들을 비롯해 세계 각국 인사들이 서원을 보고 실제 감동을 많이 했다”면서 “우리나라가 선진문화국가의 전통과 품격을 인정받았다는 점에서도 뜻 깊다”고 말했다.이번 서원의 문화유산 등재는 재도전 끝에 이룬 것이다. 문화재청은 3년 전인 2016년 4월 유네스코 자문·심사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반려(Defer)’ 의견에 따라 세계유산 신청을 자진 철회했다.지금까지 유네스코에 등재된 우리나라의 세계유산은 ‘한국의 서원’을 비롯해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 창덕궁, 화성,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 조선왕릉,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 남한산성, 백제역사 유적지구,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등 문화유산 13건과 자연유산 1건(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전 지구적 참사의 가장 미더운 단골 관리자는 기후와 해양에 가해지는 극적인 변화이며, 그 변화의 동력은 지질활동 자체인 것으로 드러난다. …대륙을 통째로 뒤집을 힘이 있는 화산은 기후와 해양에도 종말이라고 할 만한 혼돈을 일으킬 수 있다. 이 드문 분출성 격변이 일어나는 동안에 대기에는 화산성 이산화탄소가 꾸역꾸역 채워진다. 그럼으로써 역대 최악의 대멸종이 벌어지는 사이 행성은 지옥처럼 썩어가는 무덤이 되고, 뜨거운 해양은 산성화되며 산소에 굶주린다.” 대멸종이라고 하면 보통 소행성의 충돌로 인한 공룡의 멸종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공룡은 친숙하고, 충돌은 강렬하니까. 맞다. 그러나 나머지 4번의 대멸종의 원인은 그렇게 극적이지는 않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주범은 우리가 매일 숨을 쉴 때도 내뿜는 이산화탄소다. 이산화탄소는 지구의 온도조절 장치다. 이산화탄소는 지구 복사열을 흡수해 지구를 덥게 만든다. 그러나 농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면 비에도 많이 녹아 빗물의 산성도가 높아지고, 암석을 더 많이 녹여 바다로 흘러든다. 이를 해면 산호 플랑크톤 생물체들이 흡수해 바다 밑에 탄산칼슘 석회암의 형태로 매장한다. 그 결과 이산화탄소의 농도가 낮아지면 지구는 다시 식는다. 한데 이 온도조절 장치는 가끔 고장이 난다. 첫 대멸종으로 꼽히는 4억4500만 년 전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대멸종 때도 그렇다. 이산화탄소의 급격한 감소가 빙하시대를 불러왔고, 대멸종으로 이어졌다. ‘대 생물 다양화 사건’이라고 불릴 정도로 약 4000만 년에 걸쳐 다양한 생물이 번성했던 시대가 순식간에 끝난 것. 그리고 지구가 대멸종에서 완전히 회복되는 데 500만 년이 걸렸다. 저자는 행성과학이 전문인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다. 전문가를 만나고 지질학적 사건을 보여주는 현장을 누비며, 위트 있는 문장으로 대멸종의 범인을 쫓는다. 엄청난 규모의 화산 폭발이 대멸종의 주범으로 꼽힌다는 점은 우리를 두렵게 만든다. ‘인류세’의 인류는 그와 맞먹을 정도로 온실가스를 분출해대고 있으니 말이다. 낯선 고생물의 화석 사진이나 그림이 없는 점은 아쉽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북 유림의 실천 정신을 보여주는 전시 2건이 잇달아 열린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8월 17일까지 경기 성남시에 있는 연구원 장서각에서 기획전시 ‘임청각, 그리고 석주 이상룡’을 연다고 3일 밝혔다. 경북 안동의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살림집이며, 고성 이씨 집안 종택이다. 조선 말기 애국계몽운동을 펼쳤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1858∼1932·사진)의 집이기도 했다. 석주는 1911년 전 재산을 처분한 뒤 가솔을 이끌고 서간도로 망명해 신흥무관학교의 전신인 신흥학교와 서로군정서 등을 설립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이 선생이 서간도에 독립운동 기지인 경학사를 세우면서 지은 ‘경학사취지서’, 독립운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임청각과 선산을 판 매매문서 등을 볼 수 있다. 500년 역사를 지닌 임청각이 소장해 온 여러 문헌과 그림도 전시에 나온다. 1456년 조선 공신들이 회맹하면서 작성한 ‘오공신회맹축’, 1684년 이후영이 문과에 급제하고 받은 홍패, 1763년 낙동강 연안의 명승을 그린 ‘허주부군산수유첩’ 등이다. 전시 운영 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 일요일 휴무. 한편 유림이 1919년 프랑스 파리평화회의에 보낸 독립청원서(장서) 초안을 수록한 ‘흑산일록’을 비롯해 인동 장씨 남산파 문중의 유물을 볼 수 있는 전시도 열린다. 한국국학진흥원은 내년 2월 28일까지 안동에 있는 진흥원 유교문화박물관에서 문중 기탁 유물 특별전 ‘실천을 꿈꾼 도덕군자’를 연다. ‘흑산일록’은 파리 장서 초안을 작성한 회당 장석영(1851∼1926)이 징역 2년형을 받고 대구교도소에서 옥고를 치르며 남긴 일기다. 오전 9시∼오후 6시 관람할 수 있다. 월요일 휴무.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