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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서울 은평구 진관사 칠성각에서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가 등록문화재 지정 이후 처음 전시된다. 동국대 박물관(관장 최응천)은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근대 불교계 인사들의 유물 98점을 선보이는 특별전 ‘근대 불교의 수호자들’을 15일부터 12월 13일까지 서울 중구 박물관에서 개최한다. 진관사 태극기는 1919년 진관사 승려이자 독립운동가인 백초월 선생(1878∼1944)이 사용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을 수리하기 위해 벽체를 뜯다가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3·1운동 당시 항일 지하신문과 함께 발견됐다. 안중근 의사 유묵 ‘一日不讀書 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친다)’와 만해 한용운의 친필, 염주도 공개한다. 이 밖에도 민족대표이자 한용운의 사형인 백용성 관련 유물, 임정에서 활동했던 프랑스 유학승 김법린의 유품 등을 선보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有約江湖晩(유약강호만) 강호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지 오래되지만/紅塵已十年(홍진이십년) 어지러운 세상에서 지낸 것이 벌써 10년이네/白鷗如有意(백구여유의) 갈매기는 그 뜻을 잊지 않은 듯/故故近樓前(고고근루전) 기웃기웃 누각 앞으로 다가오는구나” 임진왜란 발발 13년이 지난 1605년. 승병장으로 활약한 사명대사(법명 유정·惟政·1544∼1610)가 강화와 포로 송환 협상을 위해 종전 뒤 일본에 갔을 때 남긴 한시다. 일본의 사찰이 보관하던 사명대사의 유묵 5점이 약 400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으로 공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BTN불교TV와 공동 기획해 ‘일본 교토 고쇼지(興聖寺) 소장 사명대사 유묵’을 15일부터 11월 17일까지 서울 용산구 박물관 상설전시실에서 특별 공개한다. 불교TV가 지난해 사명대사 다큐멘터리 촬영차 일본 취재 중에 그 존재를 파악한 유묵들이다. 사명대사는 전란 뒤 조일 양국의 평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 외교가였다. 1604년 선조의 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간 그는 이듬해 교토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담판을 지어 강화를 맺고, 조선인 포로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했다. 그가 도술로 일본인의 기세를 꺾었다는 야담이 다수 전해지지만 이번 유묵은 실제 활동 흔적으로 주목된다. 사명대사는 초서에 빼어난 서예가이기도 했다. 유묵 ‘有約江湖晩(유약강호만)…’에서도 그런 면모가 뚜렷이 드러난다. 사진으로 이 유묵을 본 서예가 김병기 전북대 교수는 “필법 면에서도 그 어떤 서예가 못지않고, 서품의 격조 면에서도 고도의 문인정신이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한시에는 전란 속에서도 구도자(求道者)로서의 본분을 잊지 않은 그의 내면이 드러난다. 사명대사는 선조가 승려의 신분을 버리고 퇴속(退俗)할 것을 권했지만 거절했다. 유새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옛 글에서 갈매기는 은둔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종종 쓰였다”며 “일본에서의 임무를 잘 마무리한 뒤 속세를 정리하고 선승(禪僧)의 본분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지가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畵角聲中朝暮浪(화각성중조모랑) 나팔 소리 들리고 아침저녁으로 물결 일렁이는데/靑山影裏古今人(청산영리고금인) 청산의 그림자 속을 지나간 이 예나 지금 몇이나 될까” 신라 말 문장가 최치원(857∼?)의 시 ‘윤주 자화사 상방에 올라’ 가운데 두 구절을 적은 사명대사의 유묵 내용이다. 고쇼지의 분위기가 탈속적이라는 뜻을 담아 시구를 남긴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도 사명대사가 고쇼지를 창건한 엔니 료젠(円耳了然·1559∼1619)에게 ‘虛應(허응)’이라는 도호(道號)를 지어 주며 써준 글씨와 편지, 고쇼지에 소장된 중국 남송의 승려 대혜종고(大慧宗杲)·1089∼1163)의 전서(篆書)를 보고 감상을 적은 글이 사명대사의 진영(동국대 박물관 소장)과 함께 전시된다. 엔니가 선종의 기본 개념과 임제종의 가르침에 대한 이해를 10개의 질문과 답변으로 정리한 글 ‘자순불법록(諮詢佛法錄)’도 있다. 엔니는 자신이 이해한 내용이 옳은지 사명대사에게 이 글을 보이고 가르침을 받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의 유지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제33회 인촌상 시상식이 1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 크리스털볼룸에서 열렸다. 이 상은 암울한 일제강점기에 동아일보를 창간하고 경성방직과 고려대를 설립한 민족 지도자 인촌 선생의 뜻을 잇기 위해 1987년 제정됐다. 재단법인 인촌기념회(이사장 이용훈)와 동아일보사는 매년 인촌 선생의 탄생일(10월 11일)에 맞춰 시상식을 열고 있다. 이날 수상자인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교육) △한강 소설가(언론·문화)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인문·사회) △박병욱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과학·기술)는 각각 상장과 기념메달, 상금 1억 원을 받았다. ▶수상자 공적은 9월 5일자 A8면 참조 이용훈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3·1운동의 책원지’였던 중앙학교의 교주 인촌 선생은 동료들에게 ‘성실, 정려, 근면’을 당부했다”며 “어려움을 무릅쓰고 남다른 열정과 신념으로 업적을 쌓으며 사회에 보탬이 된 수상자 네 분이 더욱 역량을 발휘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민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은 축사에서 “수상자들은 인촌 선생이 평생을 추구한 애국애족 정신과 민족자강에 부합하는 존경받는 분들”이라며 “국제적으로도 큰 업적을 남기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안병영 인촌상운영위원회 위원장이 수상자 선정 경위를 보고했다. 앞서 인촌상운영위는 외부 심사위원 15명을 위촉하고, 7월부터 회의를 열어 최종 후보를 선정한 뒤 수상자를 확정했다. 국내 대표적 교육철학자이자 현장까지 아우른 학자로 꼽히는 이돈희 서울대 명예교수(82)는 “민족의 역량을 키우고자 여러 학교를 세운 인촌 선생의 위업을 기리는 상을 받을 만한지 스스로 돌이켜보니 마음이 편치 않다”며 “적지 않은 나이지만 오늘 수상을 계기로 교육철학 공부를 더 열심히 하겠다”고 밝혔다. 작품을 통해 역사와 폭력성을 비롯한 인간 근원의 문제를 성찰해 온 한강 소설가는 최근 ‘책을 계속 써 달라’는 독자 편지를 받았다고 했다. 한 소설가는 “자전거를 배울 때 균형을 잡고 달리는 것만 알게 되면 방향은 자연스럽게 틀 수 있었던 경험이 떠올랐다”며 “자전거처럼 마음이 기우는 대로 삶이 흘러가기를 바라며 10년 이상, 허락된다면 그보다 더 오래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내 중앙유라시아사 연구의 선구자이자 몽골제국사 연구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김호동 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64)는 “은사인 고 민두기 교수께서는 추상같은 엄격함으로 제자들을 이끌어주셨고, 아내는 아름다운 청춘의 나날을 저를 위해 희생했다. 이처럼 큰 상을 받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한국의 대표적 통계학자 가운데 한 명인 박병욱 서울대 통계학과 교수(58)는 “데이터과학 시대는 통계학이 또 다른 차원으로 성장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며 “오늘 수상은 통계학을 한층 발전시키라는 격려의 뜻이라고 생각하며, 학자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각계 인사 약 300명이 참석했으며, 올해와 지난해 동아뮤지컬콩쿠르 수상자인 장민제 이현지 씨가 축하 공연을 펼쳤다.○ 주요 참석자 명단 ▽정·관·법조계=고건 전 국무총리, 김종훈 변호사, 송상현 유니세프한국위원회장, 이광범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이희범 전 산업자원부 장관, 정성진 전 법무부 장관, 조완규 전 교육부 장관,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현인택 전 통일부 장관 ▽학계·교육계=강정애 숙명여대 총장, 국양 대구경북과학기술원 총장, 공정식 고려대 관리처장, 권순달 수원대 교수, 권재일 서울대 명예교수,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김규태 고려대 디지털정보처장, 김도연 전 포스텍 총장, 김동기 대한민국학술원 회장, 김병준 강남대 교수, 김병철 전 고려대 총장, 김상호 고려대 입학홍보처장, 김성훈 동국대 교수, 김승환 포스텍 교수, 김영 고려대 세종부총장, 김용학 연세대 총장, 김우철 서울대 명예교수, 김정배 전 고려대 총장, 김정호 고려대 국제처장, 김종필 중앙고 교장, 김진성 고려사이버대 총장, 김학주 서울대 명예교수, 김흔 전 중앙고 행정실장, 나홍석 고려사이버대 기획홍보처장, 박규택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이사, 박대하 고려사이버대 총무처장, 박영국 경희대 총장 직무대행, 박지향 서울대 명예교수, 박찬욱 전 서울대 총장직무대리, 박희등 고려대 기획예산처장, 반웅렬 고대부중 교감, 백순근 서울대 교수, 백승필 고려대 세종산학협력단장, 백완기 고려대 명예교수, 서문경애 고려대 간호대학장, 석영중 고려대 도서관장, 송창범 고대부중 교장, 신동렬 성균관대 총장, 신수정 서울대 명예교수, 안동준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장, 안효질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장, 양재룡 우송대 교수, 우용재 서울대 교수, 유재봉 성균관대 교수, 유준상 한국정보기술연구원 원장, 유진희 고려대 교무부총장, 윤석준 고려대 보건대학원장, 윤영철 연세대 미래캠퍼스 부총장, 이기수 전 고려대 총장, 이기열 고려대 연구교학처장, 이기형 고려대 의무부총장, 이남진 고대부고 교감, 이성균 울산대 교수, 이용균 중앙고 교감, 이윤미 홍익대 교수, 이윤정 고려대 연구처장, 이의길 고려사이버대 연구개발처장, 이재창 고려대 명예교수, 이종태 고려대 보건과학대학장, 이진한 고려대 연구부총장,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 이홍식 고려대 의과대학장, 이홍우 상명대 특임교수, 임현나 가천대 교수, 장승문 중앙중 교장, 전종우 서울대 명예교수, 전치혁 포스텍 특임교수, 정구종 동서대 석좌교수, 정순영 고려대 연구기획본부장, 정진택 고려대 총장, 조경진 고려사이버대 미래교육원장, 조대엽 고려대 노동대학원장, 진덕규 이화여대 명예교수, 최용석 중앙중 교감, 최형재 고려대 교수, 허도영 고대부고 교장, 허준 고려대 산학협력단장, 홍성대 상산학원 이사장, 황호택 서울시립대 교수 ▽경제계=김병윤 미래에셋대우 혁신추진단 대표, 김병휘 삼양염업사 회장, 김선휘 삼양염업사 고문, 김준 경방 회장, 김한 전 JB금융지주 회장, 안병모 유창건축사무소 사장, 오세정 금융투자교육원장, 윤재엽 삼양홀딩스 사장, 이병연 세화애드컴 대표 ▽언론·출판·문화·체육계=강지희 문학평론가, 고승철 문학사상 사장, 김건형 문학평론가, 김광희 전 대한언론인회 부회장, 김기경 한국오리엔티어링연맹 명예회장, 김달수 울산김씨대종회 회장, 김병건 동아꿈나무재단 이사장, 김복수 전 동아일보 관리국 부국장, 김상준 울산김씨대종회 부회장, 김소영 문학동네 대표이사, 김은 인촌기념회 이사, 김정일 전 동아애드넷 대표, 김종규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김종기 푸른나무 청예단 명예이사장, 김종태 평화의마을 대표, 김태곤 동아꿈나무재단 상임이사, 김태선 동우회 명예회장, 김헌곤 호암재단 상무, 김형영 시인, 노한성 전 동아일보 이사대우 광고국장, 박문두 전 동아일보 사진부장, 박진오 동아일보 감사, 배인준 전 동아일보 주필, 성낙오 전 영남일보 사장, 신근철 동우회 이사, 심규선 전 동아일보 상무, 안평선 한국방송인회 회장, 양철화 전 동아일보 총무국장, 여해룡 시인, 염현숙 문학동네 대표이사, 오명 전 동아일보 회장, 이대훈 전 동아일보 이사, 이두환 전 동아일보 출판영업국장, 이병대 대한언론인회 회장, 이연택 전 대한체육회 회장, 이종세 전 한국체육언론인회장, 이현자 문학동네 국장, 인아영 문학평론가, 전만길 전 서울신문 사장, 전용호 한국어문언론인협회 부회장, 조강환 동우회 회장, 천진환 화정평화재단 이사, 최동욱 전 한국방송디스크자키협회장, 최명우 동우회 이사, 최맹호 전 동아일보 부사장, 한승원 소설가, 한종우 성곡언론문화재단 이사장, 한태숙 극단 물리 대표, 허승호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 홍공선 동우회 이사, 홍민규 동우회 이사, 홍성훈 전 동아꿈나무재단 이사, 홍인근 전 동아일보 편집국장, 홍찬식 전 동아일보 수석논설위원(가나다순) 조종엽 jjj@donga.com·김정은 기자}

재개발이 진행 중인 을지로는 서울 구도심인 사대문 안 지역을 동서로 관통하는 4개의 큰 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흔적은 거의 없고 19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의 건물과 길, 도시 공간이 확인된다는 점에서 영등포 강남 등 사대문 바깥 서울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저자는 “이렇게 복잡하게 뒤엉킨 모습이야말로 서울다운 모습”이라고 했다. 답사기인데 고궁은 안 나오고 재개발 예정지의 ‘불량 주택’과 오래된 건물의 머릿돌, 일제강점기 전봇대 같은 것들이 주인공이다. 조선 양반 문화가 아닌 근현대 서민 문화를 중심에 뒀기 때문이다. 전작 ‘서울 선언’(2018년)에 이어 서울에 인접한 경기도까지 범위를 넓혔다. 저자가 살핀 ‘대서울’(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서울의 영향력 안에 있는 서울과 주변 권역)은 제목처럼 갈등으로 가득하다. 하다못해 화장실 낙서에도 같은 도시의 다른 구에 사는 이들에게 “××거지들 ○○로 넘어 오지 마”라며 배제하고 차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서울의 역사가 배제와 추방의 역사인 탓이다. 서울의 역사는 “서울이 발전하는 데 방해가 되고 서울 시민이 보기에 좋지 않다고 간주되는 수많은 시설과 사람들을 경기도로 밀어낸 역사”라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빈민과 한센인, 혐오시설과 군사시설뿐 아니라 서민들이 삶의 터전을 잡고 살아온 문화와 역사까지 지워졌다. 저자는 이를 두고 ‘기억과 계급의 전쟁’이라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국의 서원(書院)’은 조선시대 지성의 요람이자 성리학 발전의 중심지였을 뿐 아니라 각 지역의 교육과 문화, 여론의 구심점이었다. 우리 서원이 올 7월 열린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건 이 같은 가치를 세계가 인정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서원은 16세기 중반부터 17세기까지 조선시대 지방 지식인들이 건립한 사립 성리학 학교다. 무심히 보면 전통 건축의 하나일 뿐이지만, 우리나라가 선진문화국가의 전통과 품격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는 증거다. 특히 한국의 교육 전통을 상징하는 민족 정신문화의 대표적 자산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가 나온다. ‘존현양사’(尊賢養士·어진 이를 높여 선비를 기른다). 서원의 기능을 함축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다. 조선은 16세기부터 고유의 성리학 학맥이 형성되고, 이들 학파를 중심으로 성리학 연구가 심화 발전했다. 훌륭한 스승이 세상을 떠나면 제자들은 자발적으로 성리학 사립 교육기관인 서원을 건립해 스승을 위해 제향(祭享)을 올렸다. 지역의 대표적 성리학자를 제향하면서 학파의 결집을 도모하기도 했다. 제향은 후속 세대에게 ‘롤 모델’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었다. 스승이 추구했던 훌륭한 성리학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강학을 하는 건 서원의 기본이었다. 유학자들은 서원에서 강학을 통해 성리학적 가치관을 공유하며 세계를 이해했고, 학문을 계승함으로써 학맥을 형성하기도 했다. 지역사회 공론 형성은 서원의 또 다른 중요 기능이다. 선비들은 교류를 통해 성리학에 부합한 향촌 교화활동을 주도했다. 이 같은 실천을 통해 서원은 조선의 성리학 교육과 사회적 확산을 주도했던 교육기관이자 성리학적 이상을 구현하기 위한 장소로 발전했다. 서원은 교육 시스템이자 물리적 시설이었고, 성리학자들은 서원을 사회 교화와 정치 활동 등 각종 활동의 근거지로 활용했다. 서원은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학교라는 점에서 국가 차원에서 건립한 성균관이나 향교와는 차이가 있었다. 서원은 정착하는 과정에서 건축적으로도 정형을 뚜렷하게 완성했다. 이번에 세계유산에 등재된 서원은 한국 최초의 서원인 경북 영주 소수서원(1543년 건립)을 포함해 경남 함양 남계서원(1552년), 경북 경주 옥산서원(1573년), 경북 안동 도산서원(1574년), 전남 장성 필암서원(1590년), 대구 달성 도동서원(1605년), 경북 안동 병산서원(1613년), 전북 정읍 무성서원(1615년), 충남 논산 돈암서원(1634년) 등 9곳이다. 이들 서원은 각자 개성을 지니면서도 서원이 건축적 정형성을 확립하는 과정을 드러낸다. 서원은 제향 인물의 연고가 있는 지역에 자리를 잡았고, 성리학자의 전인적 교육에 적합한 환경을 선택했다. 서원 내 제향과 강학, 회합 등 각각의 영역은 지형과 경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해 뚜렷한 하나의 서원 건축 전형을 완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강당, 사당인 사우(祠宇), 누마루의 건축물을 중심으로 구성한 각각의 영역이 지형, 외부 공간, 기단, 담장, 대문 등을 이용해 유기적으로 결합했다는 점에서도 탁월하고 특출한 가치를 지닌다. 이처럼 문화전통을 건축적으로 구현했다는 점이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도 높이 평가됐다. 주변 경관, 자연과 조화를 이룬 건축으로서도 가치가 높다. 중국의 서원이 보통 마을 중심지에 있는 데 비해, 대체로 한국의 서원은 심신을 수양하도록 산수가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세계유산 등재 전 유네스코에서 실사를 나온 전문가들이 서원을 보고 감동을 유난히 많이 표현했다는 후문도 전해진다. 우리 서원은 성리학이 동아시아 전역에 확산돼 지역적인 특색을 가지면서 꽃피웠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한국적으로 진화한 유학 교육시설의 특징을 보여준다는 뜻이다. 서원은 민간에서, 지역에서 미래를 향해 교육의 힘을 펼쳤다는 점에서 전통 유산인 동시에 인재 양성의 나침반이라는 의견도 나온다. 바른 인성을 키워내고, 따듯한 공동체 사회를 지향하는 서원의 교육 이념과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추구하는 철학이 현대에도 울림을 준다는 것이다. 이배용 한국의서원통합보존관리단 이사장(72)은 “서원에는 제일 중요한 건 사람이라는 철학이 담겨 있다”면서 “서원처럼 심성의 인재를 키워내 사회에 선한 실천을 하도록 만드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원이 현대의 가치관 혼란을 극복할 수 있는 교육 공간이나 고품격 전통문화 학습장 등 오늘날에도 새롭게 살아 움직이는 공간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배경의 옥색 비단과 어울린 먹빛이 장중하다. 당대 손꼽히는 문장가가 글을 짓고, 명필이 글씨를 썼으며, 최고 수준의 장인들이 돌에 새기고 먹을 바른 뒤 비단으로 표구한 조선 왕실 탑본(탑本·석비와 목판을 먹으로 찍어내거나 글씨를 베껴 쓴 것)들의 모습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8일부터 12월 21일까지 경기 성남시 연구원 장서각에서 조선 왕실문화의 정수 가운데 하나인 ‘조선왕실의 비석과 지석(誌石) 탑본’ 특별전을 개최한다. 전시품은 조선 광해군 대부터 대한제국 시기까지 약 300년 동안 제작된 왕실 탑본 556점 가운데 아름답고 중요한 45점을 고른 것이다. 봉모당(奉謨堂·1776년 정조가 설치한 규장각의 시설)에 봉안됐다가 연구원이 소장 중인 이들 탑본 실물이 대거 관객을 만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왕릉의 비석과 지석은 제작 당시 왕실 주도로 탑본을 만들어 보관했기에 탑본을 통해 원형을 알 수 있다. 왕릉을 만들 때는 무덤의 주인을 알려주는 비석을 세우고 망자의 생애를 기록한 지석을 땅에 묻는다. 지석은 발굴하지 않는 이상 볼 수 없고, 비석도 시간이 흐르면서 마모된다. 전시품 가운데 가장 큰 것은 태종 헌릉 신도비(神道碑) 뒷면 탑본으로 가로 약 1.5m, 세로 약 4m다. 1424년 세운 신도비를 기초로 숙종 때인 1695년 다시 새긴 비석을 탑본한 것이다. 비문의 앞면은 태종과 원경왕후의 공덕, 자손에 관한 글이 담겼고, 뒷면에는 건립 내역을 비롯해 개국공신 등 여러 공신의 명단을 기록했다. 영조가 후궁의 묘비를 만들기 위해 손수 쓴 표격지(標格紙)도 볼 수 있다. 표격지는 묘비를 만들기 전 글씨를 한 자씩 네모 칸에 나란히 배치한 종이다. 비문의 주인공은 딸 둘과 장남 효장세자를 낳은 정빈 이씨다. 8세 때 궁에 들어온 동갑내기 ‘솔 메이트’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영조가 글을 짓고, 글씨를 썼다. 판석(板石)이 아니라 청화백자로 구운 현종 때 지석 시제품 3점도 이번에 처음 공개한다. 지석으로 썼던 판석은 보통 가로세로 1.5m 크기로, 만들고 옮기는 데 백성들의 어려움이 적지 않았다. 현종이 효종의 영릉(寧陵)을 여주로 옮기면서 지석을 시범적으로 도자기로 만들어 판석과 함께 묻었다. 평안도 선천과 경북 경주 등의 백토(白土)를 가지고 시제품 3개를 만들었는데, 기록과 특징이 일치해 이번 전시하는 지석이 현종이 어람(御覽)했던 시제품으로 보인다. 이후 지석으로는 판석을 계속 썼지만 왕실은 시제품을 계속 보관했고, 나중에 이를 본 영조가 정성왕후 승하 시부터 당분간 청화백자로 지석을 만들었다. 오늘날에는 실물을 자유로이 확인할 수 없는 북한 지역 조선 왕실 기적비(紀蹟碑) 탑본도 전시에 나온다. 기적비는 숙종 이후 왕실 중심의 역사를 강조하며 조선의 창업과 관련된 장소에 세운 것으로 대부분 황해도 개성이나 함경도 지역에 있다. 독서당(讀書堂) 구기(舊基)비 탑본은 태조 이성계가 책을 읽던 함흥 동쪽 귀주(歸州) 설봉산(雪峰山)의 초당 자리에 1797년 다시 세운 비석의 탑본이다. 글도 글씨도 정조의 것이다. 전통 최고급 장황의 진짜 모습도 알 수 있다. 장황은 서화에 비단이나 두꺼운 종이를 발라 족자 병풍 두루마리 책첩 등의 형태로 꾸미는 것이다. 박용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왕실문헌연구실장은 “장황에 사용된 비단, 비단 문양, 가로세로 비율 등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잃어버렸던 전통 장황의 원형을 확인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니은, 리을, 미음, 비읍, 이응…. 한글 자음 명칭은 ‘자음+ㅣ’를 첫 자로, ‘으+자음’을 다음 자로 쓴다. 기본 모음인 ‘ㅣ, ㅡ’를 활용해 첫소리 자음과 끝소리 자음을 동시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왜 ‘ㄱ, ㄷ, ㅅ’만 ‘기윽, 디K, 시읏’이 아니라 ‘기역, 디귿, 시옷’일까. 이는 자음의 이름을 한자로 적을 때 대응되는 한자가 없었기에 생겨났다. ‘윽, K, 읏’을 한자의 소리를 빌리거나, 이두식으로 뜻을 빌려 ‘其役(기역)’ ‘池末(지말·‘지’의 발음은 디였고, ‘말’은 ‘끝’이라는 뜻을 빌림)’ ‘時衣(시의·‘의’는 ‘옷’이라는 뜻을 빌림)라고 적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한자식 표기에 따라 예외적 명칭이 생겨났지만 이는 과학적인 한글 정신에 위배된다”며 “‘기윽’ ‘디K’ ‘시읏’으로 명칭을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40여 년간 한글운동에 헌신해 온 한글학자가 한글에 관한 교양이 되는 지식을 정리했다. 한글은 누가 창제했을까. 세종대왕과 집현전 학사들이 함께 지었다는 게 통설이고, 최근에는 숨은 주역이 있다는 내용의 영화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저자는 세종이 단독으로 창제하고 집현전 학사들을 비롯한 인재들이 간접으로 도왔다고 단언한다. 한글은 정말 과학적인가, 맞춤법에는 어떤 원리가 담겼나, 일제강점기 우리 말글을 어떻게 지켰나를 비롯해 14가지 물음과 답을 담았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오래전부터 준비한 한일 문화 교류 행사가 10월 들어 잇따라 개막하고 있다. “외교는 경색돼도 한일 문화 교류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는 평가다. 일본 오사카에서는 4일 한일 양국의 전통 소리와 음악, 무용이 어우러지는 공연 ‘동행’이 열린다. 2012년부터 8회째로 한국과 일본에서 번갈아 열리는 공연이다. 공연을 주최하는 민간 문화 교류 협의체 한일문화교류회의의 정구종 위원장은 “외교, 경제 갈등에도 불구하고 문화 교류는 ‘운명적 이웃’인 양국이 서로를 이해하는 창구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피날레로 한일 창작 협연 ‘휘황(輝煌)’을 선보인다. 한국의 생황(이한석)과 판소리(안숙선, 장서윤), 일본의 비파(구보타 아키코)와 전통 가면무용인 ‘노(能·사쿠라마 우진)’가 한 무대에서 어우러진다.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인 강상구 씨가 곡을 만들었다. ‘노’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예능으로 1400년 전 백제인 미마지가 일본 나라현 사쿠라이시에 있는 쓰치부타이(土舞臺)에서 기악무를 전수한 것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 ‘동행’의 한국 공연단은 5일 사쿠라이시를 방문해 미마지의 업적을 기리는 공연도 펼친다. 한일문화교류회의는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 전 일본 총리의 파트너십 선언에 따라 양국 문화계 인사가 1999년 설립했다. 이번 공연은 주오사카 한국문화원이 공동 주최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일한문화교류기금이 후원한다. 일본의 문화재가 대한해협을 건너오고, 한국의 문화재가 건너가는 양국 박물관의 공동 전시나 순회 전시도 잇따르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윤성용)은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역박)과 공동 특별전시 ‘미역과 콘부(다시마)―바다가 잇는 한일 일상’을 2일부터 2020년 2월 2일까지 연다. 민속박물관과 일본 역박을 비롯한 양국 연구자들이 2015년부터 5년 가까이 함께 해변을 걷고, 어촌과 시장을 찾아다니며 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기획한 전시다. 한국과 일본의 생선가게 비교를 시작으로 ‘미역과 다시마처럼 다른 듯 닮은’ 해산물 소비 문화와 어업, 바다 관련 신앙 등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일본 국가지정중요민속문화재 ‘청새치 작살 어구’와 ‘마이와이’(풍어 때 선주가 나눠주는 축하복)이 전시에 나오고, 일본 전통 다시마 채취선인 ‘이소부네’ 등 볼거리가 적지 않다. 구루시마 히로시(久留島浩·65) 일본 역박 관장은 1일 서울 종로구 민속박물관에서 열린 간담회에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의 관계가 적어도 12세기까지 말할 수 없이 긴밀했다는 것을 올해 우리 박물관을 개편하면서 새삼 깨달았다”며 “지금은 양국의 정치적 관계가 좋지 않지만 양국이 문화 교류를 계속해 나가면 언젠가 이를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전시는 내년 3∼5월 일본 지바현에 있는 역박에서도 선보인다. 국립진주박물관(관장 최영창)도 1일 한일 문화 교류 특별전 ‘조선 도자, 히젠(肥前)의 색을 입다’를 개막했다. 히젠은 일본 규슈 북부 사가현과 나가사키현 일대의 옛 지명으로 임진왜란 이후 조선 도공들이 자기를 만들며 일본 자기의 발생지가 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본 사가현립 규슈도자문화관이 소장한 ‘백자 청화 국화·넝쿨무늬 접시’ 등 등록유형문화재를 비롯해 규슈 소재 8개 기관이 소장한 히젠 자기 71점을 선보인다. 국내외에서 모두 200여 점이 나오는 이번 전시는 12월 8일까지 열린다. 일본의 여러 박물관이 소장한 가야 문화재도 국립중앙박물관이 올 12월 여는 ‘가야본성―칼과 현’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이 전시도 내년에 일본 역박과 규슈국립박물관을 순회하며 열린다.조종엽 jjj@donga.com·정성택 기자}

800세가 넘은 ‘돌리는 불교 경전’이 국보가 된다. 문화재청은 경북 예천군 용문사의 윤장대(輪藏臺)와 이를 보호하는 건물인 대장전(大藏殿)을 국보로 승격 예고했다고 1일 밝혔다. 두 문화재는 현재 보물이며, 이를 한 건의 국보로 통합한다. 윤장대는 불교 경전을 보관하는 회전식 경장(經藏)으로 전륜장이라고도 한다. 용문사 윤장대는 고려 명종 3년(1173년) 국난(김보당의 난) 극복을 위해 조응대선사(祖膺大禪師)가 발원하고 만든 것으로, 대장전 내부에 좌우 대칭으로 1좌씩 설치돼 있다. 각각 8각형의 불전(佛殿) 형태로, 가운데 목재기둥을 축으로 돌릴 수 있다. 8면의 창호 안쪽에 경전을 넣는 공간이 있다. 오랜 시간이 흐르며 적어도 17세기까지 여러 차례 수리됐다. 윤장대를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 번 읽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신앙이 전해져왔다. 문화재청은 “용문사 윤장대는 간결함과 화려함을 대비한 한편 음양오행과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사상을 내재한 조형물이라는 점에서 독창적이고 예술적”이라며 “건축과 조각, 공예, 회화 등 당대 기술과 예술적 역량을 결집한 종합예술품”이라고 밝혔다. 용문사 대장전은 경장을 보관하는 국내 유일한 건축물이다. 맞배지붕 건물로 8차례 이상 중수를 거치면서 현재는 17세기 말 모습을 하고 있지만 처음 만들 당시 규모와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대들보의 단면이나 짧은 기둥의 모양에서 여말선초의 양식이 확인된다. 국보 가운데 건축물은 지금까지 24건이며, 대장전이 국보가 되면 2011년 ‘완주 화암사 극락전’ 이후 8년 만의 국보 건축물 탄생이다. 문화재청은 “건립시기, 의미, 특징 등을 종합해 볼 때 윤장대와 대장전 두 보물은 일체성을 갖는 문화재로 한 건으로 통합해 국보로 승격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국보 승격은 예고 기간(30일) 의견 수렴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결정된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국내 사상 최대의 말 모양 토기와 성대한 제사 흔적이 경북 경주시 금령총에서 새로 발굴됐다. 이에 따라 이전까지 어린 왕족이 묻힌 것으로 추정했던 이 무덤이 왕릉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관장 민병찬)은 “일제강점기 발굴했던 금령총을 최근 다시 발굴한 결과 호석(護石) 둘레에서 30여 개의 제사용 토기를 수습했다”고 밝혔다. 금령총은 5세기 후반∼6세기 전반에 축조한 신라 고분으로 역사 교과서에도 사진이 자주 등장하는 국보 제91호 ‘기마인물형 토기’ 한 쌍이 출토된 곳이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높이가 56cm에 이르는 말 모양 토기가 머리부터 앞다리까지 출토됐다. 높이 약 25cm인 국보 제91호와 제작 기법은 거의 동일하다. 그러나 입을 벌려 혀를 내민 모습과 얼굴, 턱, 목, 발굽 등의 부위가 정밀하게 표현돼 있는 점이 다르다. 각 부위의 비율도 실제 말과 비슷하다. 제사용 토기 위에서 발견됐으며, 등과 배 부분이 깔끔하게 절단된 듯한 흔적으로 보아 의도적으로 깨뜨려 무덤에 봉헌한 것으로 추정된다. 호석 둘레에서 굴과 조개 등 당대 봉헌물이 담긴 큰 독이 일정한 간격으로 30개 넘게 발견된 점이 특히 주목할 만하다. 금령총은 이번 발굴조사에서 직경이 종래 알려진 것보다 8m가 긴 28m로 확인됐지만, 여전히 규모가 큰 편은 아니다. 그러나 금령총보다 더 큰 인근 서봉총 등도 호석 둘레에서 제사용 독을 발견했지만 금령총처럼 많지는 않다. 제사용 토기 안팎에서는 말, 소 등의 동물 뼈, 뚜껑접시(개배·蓋杯), 흙 방울, 유리구슬 등도 출토됐다. 신광철 경주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토기가 출토된 층으로 보아 무덤을 만드는 과정과 완성된 뒤에 성대한 제사를 여러 번 지낸 흔적”이라고 설명했다. 금령총이 왕릉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령총에서는 신라 금관(보물 제338호)을 비롯해 금제 방울과 허리띠, 옥팔찌, 큰 칼 등 왕릉급 무덤에서 나오는 유물이 확인됐다. 그러나 장신구가 대체로 소형이어서 왕릉이라기보다 어린 왕족이 묻힌 것으로 추정해왔다. 그러나 발굴 현장을 살펴본 박광춘 동아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는 “5세기 들어서는 왕릉급 무덤에서만 출토되는 기대(器臺·밑이 둥근 항아리를 올려놓는 받침)도 나왔다”며 “출토된 제의용 토기로 제사의식의 규모를 추정할 때 왕릉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금령총은 이번 조사에서 땅을 파지 않고 만든 지상식 적석목곽묘(돌무지덧널무덤)로 밝혀졌다. 일제강점기인 1924년 봉토와 돌무지를 걷어내고 매장 부분만 조사한 탓에, 금관이 출토된 다른 신라 무덤과 달리 지하식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었다. 경주박물관은 내년 매장 부분까지 다시 발굴할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나무 향기가 확 나서 마치 숲속에 온 것 같네요!” 새로 탈바꿈한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비전 작은도서관에 27일 주민 조휘정 씨(41)가 들어서며 말했다. 동 주민센터였던 건물에 2008년 생겨난 이 도서관은 1만3000여 권의 장서를 중심으로 주민들이 소통하는 사랑방 역할을 해 왔다. 11년이 지나며 시설은 차츰 낡아졌다. 그러던 차에 사단법인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대표 김수연 목사)이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도서관을 리모델링했다. 철제 서가를 비롯한 각종 가구를 모두 원목 소재로 바꿨다. 얼룩진 벽은 도배하고 노후 장비는 수리하거나 새로 마련했다. 손은경 도서관장(53)은 “더 따뜻하고 포근해졌다면서 주민들이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이다. 6년째 도서관을 이용하고 있다는 조 씨는 “도서관이자 쉼터인 이 공간이 밝아져 기쁘다”며 웃었다. 기존에 없던 어린이실도 따로 만들었다. 도서관은 전라초등학교, 전주동중학교와 인접해있다. 인근 어린이집 원생들도 정기적으로 온다. 이날 열린 개관식에서 새 단장을 가장 격렬하게 반긴 이도 ‘도서관에서 떠든다’는 눈치를 더 이상 안 봐도 되는 아이들이었다. 이도원 군(전라초 2)은 “친구들과 놀면서 책을 볼 수 있는 어린이실이 새로 생긴 게 제일 좋다”고 말했다. 어린이실은 서가 아래 구석 공간을 두고, 푹신한 빈백(bean bag) 의자를 마련해 아이들이 편하고 느긋하게 지낼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독서 문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도 서가 공간과 분리했다. 기존에는 책을 읽으러 온 이용자들과 프로그램 참여자들이 뒤섞여 불편한 점이 있었다고 한다. 작은도서관만드는사람들이 KB국민은행의 후원을 받아 2008년부터 새로 만들거나 리모델링한 작은도서관은 이번이 79번째다.전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름은 ‘작은’ 도서관이지만 이곳에서 청소년이 꿈을 키우고 주민들이 많은 걸 채워나갈 걸 생각하면 사실은 정말 큰 도서관이라고 생각합니다.” 27일 열린 전북 전주시 덕진구 인후비전 작은도서관 리모델링 개관식에서 허인 KB국민은행장(58)은 이렇게 말했다. KB국민은행은 2008년부터 12년째 전국 각지에 작은도서관을 조성하는 사업을 후원하고 있다. 허 행장은 “후원을 계속해 대한민국에 작은도서관 수백 개를 세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작은도서관 후원의 바탕이 된 철학이 있는가.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한 인간의 존재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읽은 책과 그가 쓴 글’이라고 했다. 독서는 사람이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꼭 필요한 활동이다. 국민은행은 청소년들이 어릴 때부터 책 읽는 습관을 키우는 걸 돕고자 한다. 특히 문화 향유 기회가 적은 지역의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책과 함께 미래를 향한 꿈과 희망을 펼치기를 바라고 있다.” ―후원을 꾸준히 하는 동력은 무엇인가. “하나를 해도 일회성이 아니라 10년, 20년, 30년씩 꾸준히 해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2007년부터 해온 청소년 교육 사업(‘청소년의 멘토 KB!’)을 비롯해 구직자와 우수 중소·중견기업을 연결하는 ‘KB굿잡’ 같은 다른 사회공헌 사업도 마찬가지다.” ―작은도서관이 공동체 활성화의 거점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도서관의 독서문화 프로그램뿐 아니라 성인 대상의 인문학 강좌, 부모 교육, 경제금융 교육도 지원하고 있다. 지역에 공동체 공간이 부족한 현실에서 작은도서관이 어울림 공간으로 거듭나는 것 같다. 오지 부대와 관사에 군인과 가족을 위한 작은도서관 조성도 후원하고 있다. 군인들의 자긍심이 높아졌고, 부대에 대한 애착이 더 강해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거의 ‘문자 중독’이라고 들었다. 어릴 적 어떤 책을 읽었나. “여러 친구와 서로 집집마다 놀러 가서 책을 읽었다. 초등학교 때 위인전을 주로 읽었다. 고난을 이기려 스스로 노력하는 모습과 함께 주변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데서 감명을 많이 받았다.” ―독서 운동에 대해 바라는 점이 있다면…. “내가 어렸을 때도 그랬지만 여전히 도서관이 집에서 먼 곳에 있는 지역이 생각보다 많다. 여력이 있어서 집에 책이 많으면 좋겠지만 모두가 그러기는 어렵지 않나. 국민은행뿐 아니라 사회가 함께 도서관을 확충해 나갔으면 좋겠다. 자신이 직접 겪지 않은 것을 배우고 느끼면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길은 독서가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전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상(1910∼1937)은 ‘이상’을 주인공으로 한 단편소설 ‘종생기(終生記)’에서 묘비명에 ‘一千九百三十七年(1937년) 丁丑(정축) 三月(삼월) 三日(삼일)’이라고 적었다. 이 날짜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937년 4월 13일이 된다. 실제 이상이 일본 도쿄대 부속병원에서 세상을 떠난 건 1937년 4월 17일. 서울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일이지만 이상은 스스로 자신의 종생을 정해 놓고 있었던 셈”이라고 말했다. 오래도록 이상 문학 연구에 천착해 온 저자의 작업을 총결산한 책이다. 이상의 인간적 면모와 작품 세계를 조명하면서 이상의 학적부부터 그림과 텍스트까지 저자가 수집한 방대한 자료를 집대성했다. 작품의 실험성과 전위성으로 다양한 해석이 충돌하고, 범상치 않은 궤적으로 삶이 신비화되는 이상과 그의 문학의 실체에 다가가도록 돕는다. 절판된 저서 ‘이상 텍스트 연구’를 대폭 수정하고 새로 밝혀진 사실을 보완했다. 저자는 “사물에 직접적이고 감각적으로 접근하는 이상의 시는 세계에 대한 인식과 사물을 대하는 주체의 시각을 새롭게 변형시킨다”며 “이상의 문학은 모더니티를 초극하는 경지로 나아가고자 한다”고 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 통합 교단이 명성교회 목회직의 부자(父子) 세습을 사실상 인정했다. 예장 통합교단은 경북 포항시 기쁨의 교회에서 26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명성교회 설립자인 김삼환 목사(73)의 아들 김하나 목사(45)가 2021년 1월 1일부터 명성교회 위임목사직을 맡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교단은 참석한 총대(總代) 1204명 가운데 920명(76.4%)의 찬성으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명성교회 수습안’을 의결했다. 교단은 김하나 목사의 청빙이 교회법상 불법이라는 총회 재판국의 재심 판결을 일정 부분 수용했고, 당분간 김하나 목사를 대신해 서울동남노회가 11월 3일 파송(파견)하는 임시당회장이 교회 운영을 맡는다. 총회장인 김태영 목사는 “수습안은 법을 초월한 면이 있다. 법과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면서 만든 안”이라고 밝혔다. 김삼환 목사가 1980년 설립한 서울 강동구 명성교회는 등록 교인이 10만 명에 달하는 예장 통합 교단의 대표적인 교회다. 예장 통합노회가 2013년 ‘교회 세습 금지’를 교단 헌법으로 결의했지만 김삼환 목사가 정년퇴임하고 2년 뒤인 2017년 아들인 김하나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하면서 세습 논란에 휩싸였다. 목회직 세습을 반대해 온 명성교회정상화위원회는 성명을 내고 “힘 있고 돈 있는 교회는 교단 헌법도 초월한다는 추악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고대 한반도의 ‘가족 순장(殉葬)’ 습속이 DNA 분석을 통해 처음으로 확인됐다. 영남대 박물관(관장 정인성 교수)은 경북 경산시 ‘임당 고총’에서 출토된 고(古) 인골의 유전자 분석 결과 무덤에 함께 순장된 이들이 부부와 딸, 부녀관계인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시간차를 두고 다른 무덤에 순장된 남매도 있었다. 이들은 무덤 주인의 가족은 아니고 순장된 사람들끼리 가족이었다. 김대욱 영남대 박물관 학예연구원은 10월 4일 경북 경산시 박물관 강당에서 열리는 학술세미나 ‘고대 인골 연구와 압독국(押督國) 사람들’에서 ‘임당 고총에서 확인된 가족 순장’을 발표할 예정이다. 발표문에 따르면 경산시 조영동의 5세기 고분에서는 무덤 주인의 인골 외에 순장된 이들의 유골 4개체가 출토됐다. DNA 분석 결과 이 가운데 3개체는 부부와 어린 딸인 것으로 나타났다. 무덤의 주곽(主槨)에 무덤 주인과 함께 순장된 2명 가운데 1명이 4∼8세의 여아였는데, 부곽(副槨)에 순장된 2명이 이 여아의 부모로 확인된 것이다. 조영동의 또 다른 5세기 고분 부곽에서 발견된 인골 2개체도 부녀 사이로 밝혀졌다. 10세 안팎의 여아와 아버지가 나란히 순장된 것이다. 5세기 말과 6세기 초의 서로 다른 무덤에서 각각 발견된 유골이 남매 사이로 밝혀지기도 했다. 김대욱 연구원은 “DNA 분석으로 고대 경산 지역 가족 순장의 습속을 파악했다”면서 “경주를 비롯한 신라 지역과 고령을 비롯한 가야 지역 고총에서 확인된 다수의 순장자들 중 일부도 가족일 가능성이 짙어졌다”고 밝혔다. 자식은 부모로부터 유전자를 정확히 절반씩 물려받지만 촌수가 멀어질수록 특정한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은 떨어진다. 이를 이용하면 인골의 촌수를 알 수 있고, 어머니가 자식에게 전달하는 미토콘드리아 DNA의 일치 여부를 통해 모계친족도 가릴 수 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한 정충원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는 발표문에서 “유전자 분석 결과 무덤의 주인으로 보이는 일부 성인 남성들은 부계 친족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전장 유전체(전체 유전자 염기서열)’ 자료를 분석해 순장자 사이의 직접적 혈연관계를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미토콘드리아 DNA 분석을 통해 경남 창녕군 송현동 고분에서 출토된 남성 순장자 4명이 같은 모계혈족에 속한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번 분석 결과가 순장자들의 신분을 설명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순장된 이들을 노예나 전쟁 포로로 보던 견해 대신 시종이나 시동(侍童), 호위무사, 재산 관리자 등 무덤 주인과 가까운 사이라고 보는 견해가 힘을 얻고 있다. 순장자를 위한 제사 유물이 부장되거나, 각종 장신구를 착용한 순장자의 유골이 출토됐기 때문이다. ‘임당 고총’은 신라에 병합된 소국 압독국 지배층의 무덤이라고 학계는 파악하고 있다. 1980년대 3차례 대규모 발굴조사에서 인골 259구가 출토됐다. 2012년부터 인골 분석이 시작됐고, 지난해 9월부터는 독일 막스 플랑크 인류사 과학연구소에서 DNA 분석을 진행했다. 인골 시료 46점 가운데 35점에서 DNA가 추출됐다. 영남대 박물관은 최근 가톨릭대 의과대학 연구팀과 함께 5세기 말 임당동 고분에 묻힌 21∼35세가량의 여성 인골을 컴퓨터단층촬영(CT)해 얼굴을 복원하기도 했다. 박물관은 ‘고인골, 고대 압독 사람들을 되살리다’ 특별전을 11월 29일까지 열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태국의 가면극 공연 등 아시아 무형유산을 소개하는 행사가 잇따라 열린다. 국립무형유산원(원장 김연수)은 ‘2019 인류무형유산 초청공연’으로 태국의 가면극 ‘콘(khon)’과 부탄의 ‘드라메체(Drametse) 가면북춤’ 공연을 10월 4일과 5일 전북 전주시 무형유산원 얼쑤마루 대·소공연장에서 개최한다. 태국의 국립예술단, 부탄의 왕립공연예술단이 선보이는 이 공연들은 태국과 부탄에서 각각 유일한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 종목이다. 무형유산원은 “두 나라가 왕실 중심으로 국가적 차원에서 보호 전승하는 대표 연희이며, 규모나 출연진의 기량 측면에서 최고의 공연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관련 국제 콘퍼런스도 10월 4일 열린다. 이달 27∼29일에는 영화제인 ‘국제무형유산영상축제’를 개최한다. 개막작으로는 전통의 사생관(死生觀)을 다룬 김태용 감독의 ‘꼭두 이야기’를 국립국악원 단원들의 실황공연과 함께 상영한다. 이를 비롯해 8개국 26편의 영화와 공모전 수상 작품이 관객을 만난다. 임권택 감독이 관객과의 대화에 나서고, 폐막작으로는 원본 필름이 가장 오래된 한국 무성 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년 개봉)를 상영한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들의 작품이 대규모로 전시되는 작품전, 아리랑·남사당놀이·판소리를 접목한 공연을 볼 수 있는 ‘대한민국 무형문화재대전’도 10월 11∼13일 무형유산원에서 펼쳐진다. 국내외 무형유산 전문가 40여 명이 시민생활과 무형유산의 가치를 논하는 ‘세계무형문화유산 포럼’은 10월 10∼12일 열린다. 모든 행사는 무료.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색동치마를 입은 모습의 단군 영정이 공개된다. 단군문화포럼(대표 이애주)은 26일부터 다음 달 15일까지 서울 종로구 수운회관 대전시실에서 ‘독립운동의 상징, 단군 영정 전시회’를 개최한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즈음의 단군 조각상, 대종교를 창시한 나철의 편지를 비롯한 관련 유물이 전시될 예정이다. 특히 화기(畵記)에 ‘광서 9년(1883년) 계미 10월 봉안’이라고 적혀 있는 단군 영정이 전시될 예정이어서 눈길을 끈다. 위 폭 51.5cm, 아래 폭 49cm, 높이 80cm로 천에 그렸으며, 우하단 화기에 ‘시주 을해생 김전(金奠), 을축생 이두성(李斗聖), 편수(片手·사찰의 건축, 단청, 목공 기술자) 을묘생 김관오(金觀伍)’라고 적혀 있다. 전시를 주관한 단군학자료원 임채우 원장은 “영정의 색동치마는 고구려 수산리 고분 벽화에 등장하는 의상과 유사하다”면서 “충남도 문화재로 지정된 부여 단군 영정보다 더 오래된 현존 최고(最古)의 단군 영정이며, 1910년 대종교에서 그린 단군 영정의 모본(母本)이 됐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조선 후기 단군 신앙은 오늘날 북한 지역인 구월산 삼성사, 묘향산 단군굴, 평양 숭녕전을 중심으로 이어졌다. 숭녕전에는 영정을 모시지 않았고 단군굴은 참배가 쉽지 않았기에, 이 영정이 삼성사에 있던 것이라고 임 원장은 추정했다. 19세기 삼성사에 단군 영정이 봉안돼 있었다는 건 옛 한시에서도 확인된다. ‘광무 9년’(1905년)이라고 새겨진 천부경 각석도 전시에 나온다. 이 각석의 발견을 기념하는 학술대회가 10월 4일 서울 종로구 천도교중앙대교당에서 개최된다. ‘단군학 총서’ 발간 기념 학술대회도 앞선 이달 2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물 분자는 1930년대 헝가리 과학자의 실험에 따르면 사람의 몸에 보통 11∼13일 정도 머문다. 하지만 스위스 제네바 호수라면 10년 정도, 시베리아의 바이칼 호수라면 300년 이상 갇혀 있을 수도 있다. 미국 뉴욕 폴스미스대 자연과학부 교수가 호수의 세계를 다뤘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1817∼1862)의 책 ‘월든’으로 유명한 미국 매사추세츠주의 월든 호수는 수영하는 이들이 본 소변 탓에 여름이면 인(燐)의 함유량이 2배가량 증가한다고 한다. 그래서 인을 좋아하는 조류가 이 호수에 번성하고 있다. 바다라는 이름이 붙은 갈릴리호, 아프리카의 빅토리아호, 시베리아 바이칼호 등을 소재로 호수의 생태계를 과학적으로 조명했다. 21세기의 ‘월든’이라고 할 수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국내 유일의 문화재, 박물관 전문 전시회인 ‘2019 국제문화재산업전’이 열린 19일 경북 경주시 보문로 화백컨벤션센터. 3D시스템즈코리아와 대구의 기업 CTOK의 컨소시엄 부스에서 기자가 머리 착용 디스플레이(HMD)를 쓰자 눈앞에 유적 발굴 현장이 돌 하나하나의 모양까지 그대로 펼쳐졌다. 조이스틱으로 특정한 두 지점을 지정하니 자동으로 거리가 표시됐다. 광대역 스캐너를 사용해 발굴 현장을 3차원 데이터로 기록하고 이를 가상현실(VR)로 재현한 것이다.》 이는 요즘 발굴 현장에서 실제로 사용하는 기술이다. 선박이나 공장 등 복잡한 구조물을 스캔하는 데 쓰였지만 문화재로 영역을 확장했다. 깨진 도자기 조각을 스캔해 가상으로 조합하고, 빠진 조각을 3차원(3D) 프린터로 만들어내는 것도 가능하다. 김창현 CTOK 대표(42)는 “발굴 현장에서 놓친 부분을 나중에 언제든지 다시 확인할 수 있다”면서 “대용량의 데이터를 매우 빨리 재현할 수 있어서 수천 명이 VR에 함께 접속해 모두가 현장에 있는 것처럼 회의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회에는 문화재 보존, 방재, 수리·복원, 디지털 헤리티지, 박물관 관련 업체 등 81개 기업이 235개 전시부스를 마련했다. 3D 스캔과 VR 등으로 이를 재현하는 기업들의 부스가 특히 관심을 모았다. 남한에서는 거의 멸종된 크낙새가 디지털 영상으로 복원되기도 했다.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주관하는 복원 프로젝트에 참여한 문화유산기술연구소는 디지털 원형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하고 이를 VR, 증강현실(AR), 홀로그램 등으로 재현하는 기업이다. 수원 화성, 석굴암 등을 3D 데이터로 만들어서 VR로 재현하기도 했다. 핵심은 정밀도다. 2mm 단위로 문화재 겉면을 점 정보로 파악해 이를 입체로 구현한 뒤 사진 데이터와 종합한다. 김진산 문화유산기술연구소 연구원(33)은 “미래를 위해 수천만 기가픽셀의 고해상도로 저장한다”며 “아주 작은 금이 하나 가더라도 원래의 모습이 어땠는지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주요 문화유산도 우리 기술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로 보존되고 있다. 문화유산기록보존연구소와 위프코는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인도네시아 보로부두르 사원을 비롯해 아세안 6개 국가의 유적을 3D 데이터로 실측하고 디지털 콘텐츠로 제작했다. 전시장 지하의 실크로드 디지털체험관에서는 7세기 실크로드의 거점 도시 사마르칸트의 모습이 가상현실로 펼쳐졌다. 문화재디지털복원가인 박진호 씨(47)는 “인공지능 기술이 가상현실과 결합해 고대의 가상 인물과 관람객이 대화하게 되고 디지털 유산 기술의 발전은 과거를 체험하는 타임머신 역할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진으로부터 문화재를 지키는 면진장치 기술(참솔테크), 지능형 문화재 재난방재 시스템(한국아이티에스)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재 관련 기술도 선보였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문화유산은 잘 보존하고 관리해야 할 유물일 뿐 아니라 미래 가치를 창출하는 보물로, 지역 사회의 발전을 이끄는 산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화재청과 경북도, 경주시가 주최한 이번 전시는 21일까지 계속된다. 전시회 기간 ‘디지털 문화유산 국제포럼’을 비롯한 콘퍼런스 13건이 개최된다. 부대 행사인 문화재 취업박람회에서는 문화재 관련 창업 및 취업자가 준비생들과 경험을 나누는 토크 콘서트, 취업 컨설팅도 열린다.경주=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발해가 멸망한 뒤에도 오랫동안 부흥운동을 펼쳤던 발해 유민의 역사를 다룬 연구서가 발간됐다. 동북아역사재단(이사장 김도형)은 해동성국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발해가 926년 거란의 침입을 받고 멸망한 뒤 유민의 동향을 담은 ‘새롭게 본 발해 유민사’(1만5000원·사진)를 최근 펴냈다. 편찬 책임자인 임상선 동북아역사재단 책임연구위원은 거란이 발해를 멸망시킨 뒤 세운 동단국(東丹國)을 조명했다. 동단국은 설립 직후부터 발해인의 계속된 저항을 받았다. 이에 우차상(右次相·고위 관직의 하나) 야율우지가 “남은 무리(발해 유민)가 조금씩 번식하면 아마도 후환이 될 것(遺種浸以蕃息 恐爲後患)”이라고 건의했고, 동단국은 928년 요양(랴오양·遼陽) 지역으로 옮겨졌다. 임 연구위원은 “이를 거부한 발해 주민들이 고려와 여진으로 달아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발해가 멸망한 지 200년 가까이 지나서도 발해인들은 반요(反遼) 투쟁을 벌였다. 요나라 때 발해인의 성격을 검토한 나영남 한국외국어대 교수는 “1115년 금의 건국에 자극받은 고욕이 요나라에 반란을 일으켰고, 이듬해에는 고영창이 대발해 황제를 칭하고 한때 요동의 50여 개 주를 함락시키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금나라에서 발해인들의 활동이 활발했다. 사서에 ‘요양발해인’으로 기록된 장호(?∼1162)는 금 태조부터 무려 5명의 황제 아래에서 관료로 일했고 남양군왕 등의 작위를 받기도 했다. 박순우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는 “고위 관직을 지낸 이들의 수와 봉작(封爵) 측면에서 발해인들은 금 조정에 상당한 족적을 남겼다”고 했다. 황인규 동국대 교수는 승려와 신도, 사원과 유적으로 나누어 발해 유민이 문화적 정체성을 지켰던 ‘발해 불교’의 흔적을 조명했다. 임상선 연구위원에 따르면 중국 학계가 발해를 자신의 역사로 간주한 건 오늘날 ‘국민’의 개념에 가까운 ‘중화민족’을 주장하면서부터다. 임 연구위원은 “발해 유민은 발해 멸망 이후 약 200년간 어디에 살건 거란인, 송(宋)인, 고려인이 아니라 발해인으로 자칭했고 그렇게 분류됐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