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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가 태어났다. 열 달 간 배 안에 품었던 아이가 드디어 세상 밖으로 나왔다. 단풍잎 같은 손, 인형 같은 발, 해사한 얼굴이 드디어 내 품에 안겼다. 세상에! 이제 난 진짜 네 아이의 엄마다. 매 임신마다 출산일 직전까지 근무했던 나는 넷째가 나오던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출근했다. 38주에 들어서면서 배는 정말 산만해졌다. 한 남자 기자는 “여자들 말이 배가 커지다 못해 ‘터지겠다’ 싶으면 애가 나온다던데 네 배가 그렇다”고 말했다. 나도 슬슬 때가 다가온단 느낌을 받았다. 뭐라 콕 집어 말할 순 없지만 묵직한 느낌이 좀 더 묵직해질 때, 혹은 아래로 더 쏠리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출산이 임박했단 신호다. 이날 점심약속을 마치고 회사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는데, 어쩐지 배에서 그런 느낌이 났다. 회사 앞 정류장에 내리자마자 고민할 겨를 없이 곧장 동네 병원으로 가는 차에 올라탔다. 병원으로 가는 새 진통이 살살 시작됐다. 지방에서 근무 중인 남편에게 ‘나 진통 오는 것 같아’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몇 분 간격이야?’라는 남편 질문에 시간을 재어 봤다. 오 이런! 벌써 10분 간격이었다. 경산모(두 번 이상 출산한 산모)에게 10분 간격 진통이란 출산 과정이 시작됐음을 의미했다. 외래진료도 들르지 않고 곧장 분만실로 향했다. 분만실 간호사들은 멀쩡하게 화장을 하고 회사원 복장에 백팩을 메고 걸어 들어오는 산모를 처음에는 의아하게 바라봤다. “저 경산모인데요, 진통이 10분 간격이라 곧장 이리로 왔어요” 하자 “네?”하고 놀라며 그제야 부랴부랴 나를 침대로 안내했다. 태동검사를 하고 경부가 얼마나 열렸는지 확인하기 위해 질 안을 만져보는 ‘내진’을 한 간호사는 갸우뚱했다. “아직 경부가 열리진 않았는데 경산모이니 조금 지켜보게 누워 계세요.” 간호사의 말은 ‘오늘은 출산하지 않으실 테니 좀 누워있다 집에 가세요’라는 뜻 같았다. 하지만 나의 생각은 달랐다. 뭔가 ‘촉’이 왔다. ‘어쩐지 수 시간 내로 아이가 나올 것 같다’는 넷째 엄마의 촉이었다. 오후 일정 참석이 힘들겠다고 회사에 연락을 하는 사이 아니나 다를까, 진통의 강도가 강해졌다. 간격도 재어보니 6분 사이로 짧아졌다. 급히 간호사를 불러 다시 내진을 부탁했다. 30여 분 새 경부가 2cm 넘게 벌어져있었다. 간호사는 놀라며 “어머, 무슨 진행이 이렇게 빨라? (산부인과 전문의) 선생님께 연락 드릴게요”하고 사라졌다. 그 사이 나는 남편에게 ‘오늘 아이가 나올 것 같다’고 연락하고 친정엄마에게도 당장 와주십사 전화를 걸었다. 그 다음부터는 뭐가 어떻게 진행됐는지 모르겠다. 진통의 간격이 급격히 짧아져 친정엄마가 도착할 즈음에는 이미 2~4분 간격이 돼있었다. 지방에 근무하는 남편이 ‘KTX를 타고 올라가고 있다’고 보낸 문자메시지를 마지막으로 보고 분만실로 이동했다. 그 사이 진통은 2분 간격으로 더 짧아졌다. 남편 대신 엄마의 손을 부여잡으며 “아파요, 아파”하고 버텼다. 간간히 간호사가 옆에서 “산모님, 진행이 빠르니 조금만 힘내세요”하는 말이 들렸다. 남편은 출산 30분 전에야 겨우 도착했다. 이미 내가 출산 자세를 하고 힘을 주고 있을 때라 남편은 수술복을 입을 새도 없이 겨우 손만 씻고 분만실로 들어왔다. 내 입에서는 “아파”, “무서워”라는 말이 쉴 새 없이 나왔다. 보다 못한 엄마가 “애를 네 번이나 낳아놓고 뭐가 그리 무섭냐”고 핀잔을 주셨지만, 네 번 낳아도 아픈 건 아픈 거고 무서운 건 무서운 거다. 오후 7시 43분, 병원 온지 4시간도 채 안돼 아이가 내 손에 안겼다. 세 아이를 낳는 동안 한 번도 감동적이라고 느끼거나 눈물 흘린 적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갓 나온 넷째를 보자 눈물이 났다. ‘마지막 아기’라고 생각하니 괜스레 감성이 예민해졌던 것 같다. 처치를 위해 신생아실로 떠나기 전 잠시 품에 안았는데, 가슴 속에서 울컥 하는 것이 올라왔다. 이 작고 섬세한 것이 나의 새로운 아기라니. 새삼 놀랍고 경이로웠다. 아기가 신생아실로 옮겨지고, 나는 나머지 처치를 위해 조금 더 분만실에서 머문 뒤 병실로 이동했다. 아이가 눈앞에서 사라지자 새삼 내가 처한 현실이 꿈처럼 느껴졌다. 이날 오전까지만 해도 여느 때처럼 가방을 메고 출근해 일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환자복을 입고 병실에 누워있는 모습이라니. 더구나 이제 세 아이의 엄마에서 네 아이의 엄마라니. 도통 실감이 나지 않았다. 상전벽해란 게 이런 느낌일까. 남편도 믿기지 않는 듯 중얼거렸다. “이제 내가 네 아이의 아빠라니, 참.” 한동안 나도 신랑도 병실 한 구석을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잘 키우자.” “그래, 잘 키워야지.” 아이 셋 부모임에도 여전히 잘 키운단 게 어떤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부부는 그냥 그렇게 다짐하는 것으로 서로의 감상을 대신했다. 그래, 이제부터야말로 진짜 포(four)에버(ever) 육아 시작이다. 힘내자! 이미지기자 image@donga.com}

현재 하루 12시간인 어린이집 운영 시간을 둘로 쪼갠 뒤 늦은 오후 보육을 전담하는 교사를 따로 운영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늦게까지 아이를 맡겨야 하는 맞벌이 부모들을 위한 조치다. ○ 어린이집 운영, 어떻게 달라지나 보건복지부는 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현 맞춤형 보육제도 개편 방안을 처음 공개했다. 지난해 9월부터 올해 8월까지 1년간 정부와 민간 전문가 14명이 TF를 결성해 논의한 결과다. 복지부는 이 안을 바탕으로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조만간 최종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2016년 7월부터 시행된 맞춤형 보육은 부모의 취업 상태나 소득, 자녀수에 따라 어린이집 이용 자격을 종일형과 맞춤형으로 나눠 필요한 경우 어린이집을 더 오래 이용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하지만 이용자 자격만 나눴을 뿐 정작 어린이집 입장에선 늦게까지 운영해도 인센티브가 없어 운영 시간에 큰 변화가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TF는 어린이집 운영 시간인 기존 12시간을 둘로 쪼개는 방안을 제시했다. 모든 아이들이 공통적으로 제공받는 ‘기본보육시간’(7∼8시간)과 이후 ‘추가보육시간’을 나누는 것이다. 추가보육시간은 오후 7시 반까지 운영하는 저녁반,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는 야간반 등으로 세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추가보육시간에는 별도의 전담교사를 두고, 이들의 인건비도 따로 지원할 계획이다. 오후 2시까지 공통 수업을 진행하고 이후 일부 아동을 대상으로 방과 후 과정을 운영하는 유치원과 비슷하게 운영되는 셈이다.○ 양질의 보육교사 5만 명, 어떻게 확충하나 정작 중요한 세부 운영 방안은 아직 확정하지 못했다. 특히 추가보육시간 이용 가정을 어떻게 선별할지가 문제다. 기존처럼 이용 자격을 나누는 대신 추가보육시간에 아이를 보내면 부모가 추가 비용을 부담하는 방안도 논의했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추가보육시간을 전담할 보육교사 5만2000명의 충원 방법도 문제다. 권병기 복지부 보육정책과장은 “보육교사 2만5000명 충원 논의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며 “나머지 인원은 단계적으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양질의 교사를 단기간에 5만 명 넘게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또 대부분 ‘워킹맘’인 보육교사들이 늦은 오후나 밤까지 근무해야 하는 추가보육시간 교사를 선택할지도 의문이다. 정부는 교사 충원 상황 등을 감안해 내년 초부터 어린이집 운영 시간을 이원화해 운영할 방침이다. 기존 맞춤형 이용 가정이 급할 때 추가 보육을 위해 쓰던 긴급보육바우처(15시간) 폐지를 두고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다. 복지부는 ‘긴급할 때 쓰라’는 바우처의 취지와 달리 과다 이용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어 개편안대로 가면 사실상 바우처가 폐지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시민단체인 ‘정치하는 엄마들’의 조성실 공동대표는 “부모들의 직업이나 보육 형태에 따라 이용 시간이 다양할 텐데 일부 부작용으로 어린이집 이용의 탄력성을 떨어뜨리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세상이 갈수록 각박해지고 있는 것일까? 첫째를 낳은 것은 2012년. 넷째를 품고 있는 지금과 불과 6년 차인데도 그 사이 임신부를 대하는 인심이 많이 각박해졌다는 느낌이 든다. 요즘 서울에서 출퇴근 시간 대중교통을 타면 양보 받는 일이 거의 없다. 첫째를 가졌을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누가 봐도 확연히 배가 나온 만삭 임신부에게 선뜻 자리를 양보하는 사람이 열에 한두 명 수준이다. 물론 ‘나는 임신부니 당연히 자리를 양보 받아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양보는 어디까지나 배려지 의무가 아님을 안다. 나도 얼마 전까지 임신부처럼 안 보이도록 펑퍼짐한 옷을 입거나 지하철에서는 문 앞에 서 있는 식으로 불편한 상황을 피했다. 양보를 강요하고 싶지도 않을뿐더러 그 정도 서 있을 체력은 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삭에 들어서면서 대중교통 안에서 서 있는 게 버거울 때가 많다. 더구나 누가 봐도 임신부인 게 테가 나면서 남들의 시선도 불편해졌다. ‘누군가 자리를 비켜줘야 하는데….’ 다들 말은 안 해도 나를 그런 시선으로 흘끔흘끔 쳐다보는 게 느껴진다. 계속 신경 쓰이는 대상이 되느니 누가 자리를 양보해 얼른 앉았으면 싶다. 그런데 불행히도 양보를 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다. 얼마 전 지방 출장을 다녀와 오랜만에 지하철을 탔다. 택시를 탈 수도 있었지만 삼복더위에 기차역을 나와 택시정류장까지 걷느니 바로 연결된 지하철을 타는 편이 나아보였다. 퇴근시간을 약간 지나 지하철 안은 비교적 한산했다. 분명 나를 다 보았을 텐데, 바로 앞에 앉은 두 청년을 비롯해 누구 하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다. 솔직히 힘든 것을 떠나 조금 놀랐다. 특히 앞에 앉은 두 청년은 직장 선후배 사이인 듯했는데 내 배를 한 번 흘낏 보더니 아무렇지 않게 본인들 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서 연애는 해?” “아니, 아직 만나는 사람 없어.” 남편에게 이 ‘놀라운 경험’을 이야기했더니 의외로 남편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답했다. “요새는 어르신들에게도 양보 잘 안 해. 다들 본인 삶이 힘들거든. 더구나 남들 도와봐야 득 될 게 없고 오히려 도우려다 해를 당했다는 뉴스도 많이 나오잖아.” 나도 직업이 직업인만큼 늘 흉흉한 소식을 들으며 살지만 이 정도일 줄이야. 사람들의 팍팍한 삶이 이토록 인심을 삭게 하는가 싶어 새삼 놀라웠다. 생각해보면 임신부에 대한 인심만 사라지는 건 아닌 거 같다. 가끔 아이들을 데리고 근처 쇼핑몰이나 실내 놀이시설로 놀러 가면 사람들 사이에 배려가 많이 사라지고 있음을 느낀다. 쇼핑몰 입구는 보통 크고 무거운 유리문이다. 내가 낑낑대며 문을 열고 2인용 유모차를 밀어 넣는 동안 도와주는 사람은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은 뒤에 유모차가 따라 들어오는 것을 빤히 보면서 오히려 문을 그대로 놓고 가버려 유모차가 문에 치일 뻔한 적도 있다. 유모차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다가 새치기를 당한 적도 여러 번이다. 조금만 걸으면 계단이나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도 굳이 ‘유모차 우선’이라고 써 있는 엘리베이터를 비집고 들어와 타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물론 그 사람들에게도 나름의 바쁜 일정과 사정이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여러 이동 방법이 있는 그들과 달리 유모차는 엘리베이터를 탈 수밖에 없다. 한 번 새치기를 당한 뒤 10여 분을 기다리다가 결국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해 급한 나머지 에스컬레이터를 탔다. 유모차를 들쳐 업고 남은 손으로 아이들을 줄줄이 잡으니 마치 피난민 같았다. 씁쓸한 것은 엄마들 카페에 가보면 이런 경험이 별로 대수롭지 않다는 점이다. 엊그제에도 자주 가는 맘(mom)카페에 한 다자녀 가정의 이야기가 올라왔다. ‘다자녀 엄마인데 아이들을 여럿 데리고 택시를 타려 하자 택시기사가 대놓고 핀잔을 줬다’는 내용이었다. 나도 예전에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다. 애들과 가까운 쇼핑몰에 가려고 택시를 잡는데 5분여 동안 빈차 3대가 그냥 지나쳐갔다. 누가 봐도 먼 거리를 갈 모양새가 아니고, 애들 여럿은 물론이고 유모차까지 실어야 하는 품새를 보고 차를 세우지 않는 듯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애들을 멀찌감치 세워놓고 혼자 택시를 잡자 금세 한 대가 와서 섰다. “이 건물에는 엘리베이터가 없는데 옆 건물로 가면 지하 주차장으로 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요. 유모차를 태울 수 있을 거예요.” 어제 지방의 한 과학관으로 가족나들이를 갔다가 한 아주머니께서 베푼 ‘작은 배려’다. 내가 먼저 묻지 않았는데, 유모차를 끌고 온 것을 보고 선뜻 먼저 다가와 말씀해주셨다. 이분의 한 마디가 없었다면 더운 날 아이들과 유모차까지 들쳐 메고 낑낑거리며 계단으로 내려갈 뻔했다. 별 것 아니지만 받는 입장에서 그런 배려는 큰 힘이 된다. 누군가는 ‘오지랖’이라고 비아냥댈지 모르지만, 내 아이들만큼은 꼭 그런 배려를 상시 실천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배려란 결국 나에게 돌아오는 거니까.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3일 오후 대구의 공기는 후끈하다 못해 뜨거웠다. KTX 동대구역을 나서자 시민들이 물안개를 뿜는 전봇대 같은 구조물 아래 모여 너나 할 것 없이 “살 것 같다”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이 구조물은 대구시가 세운 ‘쿨링포그’다. 물안개를 맞으면 당장 시원하기도 하지만 물이 마르면서 체온을 더 낮출 수 있다. 대구시는 시내 버스정류장 4곳과 시내 보행로 곳곳에 이 쿨링포그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는 여름철 폭염일수가 30일 이상인 대한민국 대표 극서(極暑)지다. 그런 만큼 전국에서 폭염 대비책을 가장 잘 갖춘 도시이기도 하다. 분지 지형이라는 폭염 취약요소를 극복할 수는 없지만, 인간이 머리를 맞대면 이겨내지 못할 환경은 없다. 극서지 대구의 더위 극복법을 알아봤다.○ 버리는 지하수로 ‘폭염도로’ 식혀 이날 오후 2시 반 대구 중심을 가로지르는 달구벌대로 중앙로 부근에서 느닷없이 물이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지하 상수도관이 터진 게 아니었다. 도로 표지석 같은 작은 철제노즐에서 일제히 물이 뿜어져 나왔다. 대구시가 2011년 도심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도로가에 수로를 매설해 만든 ‘클린로드’ 시설이다. 여름철에는 도로를 식히기 위해 매일 4회(오전 4시 반과 10시, 오후 2시 반과 7시) 운영된다. 변명희 대구시청 환경정책과 기후변화팀 전문관은 “깨끗한 물을 끌어 쓰는 게 아니라 어차피 버리는 물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9.1km 도심대로에 매일 4회 물을 뿌리려면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대구시는 수돗물 대신 달구벌대로 아래 대구지하철 2호선의 지하수를 생각해냈다. 이 지하수는 지하철 시설물을 손상시킬 수 있어 어차피 모이는 대로 빼내야 하는 물이다. 노즐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자 주변 온도는 순식간에 떨어졌다. 차량 밖 기온을 나타내는 온도계의 숫자가 금세 41도에서 39도로 바뀌었다. 변 전문관은 “물만 뿌려도 아스팔트 온도가 최대 20도까지 떨어진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고 했다. 폐지하수의 마법인 셈이다. 대구의 도로에선 또 하나의 실험이 진행 중이다. 차열(遮熱)재가 그것이다. 차열재란 일반 아스팔트보다 햇빛을 더 많이 반사하고 흡수한 열을 빠르게 아래로 전달해 주변 기온을 상대적으로 낮추는 도료다. 서울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 시범 운영 중이다. 대구시도 지난해부터 시청 앞 도로를 포함한 1600여 m² 구간에 이 차열재를 시범적으로 깔았다. 차열재를 바른 대구시청 본관 앞 도로는 주변 도로보다 밝은 회색을 띠었다. 손을 대자 미지근했다. 오후 2시 반 대구 기온은 37.8도. 일반 아스팔트는 펄펄 끓는 프라이팬이었지만 차열재 도로는 확연히 달랐다. 변 전문관은 “차열재 도로 위 기온을 모니터링한 결과 일반도로보다 3, 4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도시계획에 ‘바람길’ 반영해야 아스팔트 도로와 함께 도시 열섬화의 주범인 시멘트 건물도 변하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해 ‘쿨루프(cool roof) 특공대’라는 자원봉사단을 조직해 저소득가구 10곳을 비롯해 일부 건물의 옥상을 밝게 도색했다. 옥상 색깔만 바뀌었을 뿐인데 빛반사율이 15%에서 80%로 크게 높아지면서 건물 실내 기온이 2∼4도 떨어지는 효과가 났다. 옥상에 텃밭을 가꿔 온도를 떨어뜨리는 녹화사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엔 옥상녹화 콘테스트를 열기도 했다. 시가 참가자에게 일부 보조금을 주면 자비를 더해 옥상에 텃밭을 꾸미고 그 결과에 따라 상금을 주는 대회였다. 올해도 이런 유인책을 통해 시민들의 자발적인 녹화 작업을 계속 독려해 나갈 예정이다. 옥상뿐 아니라 도시 전체 녹화사업도 진행 중이다. 이미 1996년 1000만 그루를 달성한 대구시 가로수는 2018년 현재 3300만 그루에 이른다. 시는 새로 ‘1000만 그루 더 심기’ 운동을 하고 있다. 도시 대부분의 보행로 가로수가 한 줄인 것과 달리 대구 중심가의 많은 보행로의 가로수는 두세 줄로 겹겹이 있다. 덕분에 보행로에 햇빛이 거의 들지 않아 한낮에도 시원한 느낌이 들었다. 도시를 가로지르는 신천(川)에는 ‘도시 바람길숲’ 조성을 계획하고 있다. 신천 주변에 신규 건축물을 제한해 바람길을 내고 나무를 심어 바람 온도를 낮추는 사업이다. 대구 바람길을 연구해온 김해동 계명대 대기환경학과 교수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밤새 차가워진 공기는 천을 따라 흐르며 도시를 식히는데, 이 바람길이 막히면 공기가 정체되고 대기오염이 악화된다”며 “바람길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모든 건축과 재개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구=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기차 타러 왔는데 물이 넘쳐서 바닥에 발을 디딜 수가 없어요.” 6일 오후 고속철도(KTX) 강릉역 대합실에서 서울행 열차를 기다리던 승객 이모 씨(27)는 의자 위로 두 발을 모은 채 쪼그려 앉아있었다. 이날 강릉지역에 내린 폭우로 대합실이 빗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이 씨는 “바다를 보며 휴가를 보내려고 강릉에 왔는데 기차역에서까지 물바다를 보게 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강릉시에는 이날 오전 2시 반부터 1시간 동안 93mm의 기록적인 폭우가 내리며 도심 여러 곳이 물에 잠겼고 일부 도로는 차량 통행이 통제됐다. 1시간 동안 강릉에 내린 비로는 2002년 8월 태풍 루사 때의 시간당 100.5mm에 이어 역대 두 번째 많은 양이다. 강릉시 포남1동 사거리는 아침부터 황톳빛 물바다가 됐다. 승용차 바퀴가 절반가량 물에 잠길 정도여서 출근길 차량들은 엉금엉금 거북운행을 했다. 일부 차량들이 우회로를 찾기 위해 방향을 트는 바람에 차량 여러 대가 뒤엉켰다. 같은 시간 경포해수욕장 인근 진안상가에서는 상인들이 침수를 막기 위해 출입문에 모래주머니를 쌓는 등 사투를 벌였다. 일부 점포에는 이미 물이 차 상인들이 물을 퍼내느라 안간힘을 썼다. 한 상인은 “아무리 퍼내도 계속 물이 들어온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져 태풍 루사 때의 악몽이 떠오른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오후 10시 30분까지 강릉 강문 282mm, 속초 224.4mm의 비가 내렸다. 강원도 연간 평균 강수량의 5분의 1에 달하는 양이다. 5일 속초는 한낮 기온이 38.7도, 북강릉(강릉시 사천면에 위치한 공식관측소)은 37.1도를 기록해 근대 기상관측 이래 최고기온을 경신했는데 하루 만에 폭염 대신 폭우가 찾아온 것이다. 양양군(182mm)과 고성군 현내면(177mm) 등지에도 많은 비가 쏟아졌다. 갑작스러운 집중호우로 피해가 속출했다. 강원도가 잠정 집계한 피해는 224건으로 대부분 도로 및 주택, 상가 침수다. 강릉시 강동면 정동진 정동119지역대 인근 도로가 산사태로 통제됐고, 설악산국립공원은 이날 오전 5시 반부터 모든 탐방로 출입이 금지됐다. 속초에서는 아남프라자 앞, 금강아파트 일원, 영랑호 일원 등 3곳의 도로가 침수돼 교통이 통제됐다. 또 비닐하우스 20동 등 농경지 3.5ha가 물에 잠겼다. 기상청은 전날인 5일 오후까지 강원도 전역에 5∼50mm의 비가 내릴 것으로 내다봤지만 실제론 최고 280mm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기상청은 “우리나라 북동쪽에 위치한 고기압과 남동쪽의 저기압에서 동시에 불어온 습한 동풍이 태백산맥과 충돌하면서 많은 비를 뿌렸다”고 설명했다. 예상 강수량보다 훨씬 많은 비가 내린 건 구름이 당초 전망보다 더 오래 머물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릉=이인모 imlee@donga.com / 이미지 기자}

오랫동안 대한민국에서 가장 더운 도시에 살면서 대구 사람들의 ‘더위 내성’은 강해졌다. ‘대폭염’이 있던 1994년 대구에서 태어난 이재민 씨는 최근 라오스를 여행하다 의외로 선선한 날씨에 놀랐다. 이 씨는 “대구가 엄청 덥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말했다. 같은 해 태어난 ‘대폭염둥이’ 문창록 씨도 경북 포항에서 군 복무할 때 일을 소개했다. “다른 지역에서 온 동기들은 모두 덥다고 난리였지만 저는 ‘포항이 참 시원하구나’ 생각했다”는 것이다. 대구에서 태어나 학창시절을 보낸 강명훈 씨(33)는 “대구가 연고지인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가 더위에 강한 덕분에 한여름 좋은 성적을 낸다”며 “‘매미가 울 때면 삼성이 치고 올라갈 때’라는 말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실제 ‘대프리카(대구+아프리카)인’들은 더위에 강할까? 국립기상과학원은 지난해 8월 25일 대구와 서울에서 5년 이상 거주한 20∼40대 남성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당시 대구의 상대온도(사람이 체감하는 더위 수준)가 서울보다 더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서울 거주자 93%가 ‘덥다’ 혹은 ‘매우 덥다’고 답한 반면 대구 거주자는 69%만이 ‘덥다’고 답했다. ‘평소 나는 더위에 강하다고 느낀다’는 응답도 서울은 17%, 대구는 25%로 차이가 났다. 동아일보가 취재한 대구 젊은이 13명은 하나같이 더위에 무덤덤한 반응을 보였다. 이들이 전한 한여름 더위 나기 비법을 소개한다. ①쿨웨어: 청바지는 절대 금물이다. 통이 큰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땀이 잘 마르는 스포츠웨어를 입는다. 박수현 씨(22·여)는 “뜨거운 햇볕을 막으려면 얇은 소재의 긴 치마가 좋다”고 했다. 쿨 토시, 스카프, 아이스두건 등 아이디어 상품을 이용하는 이들도 많았다. ②아이스팩: 대폭염둥이인 박상현 씨는 평소 아이스팩을 여러 개 얼려 집 여기저기 놓아둔다. 박 씨는 “잘 때 수건에 싸서 안고 자면 정말 시원하다”고 했다. 대구토박이 양재훈 씨(22)는 “매트 형태의 아이스팩을 집 바닥에 깔아둔다”고 말했다. ③식냉(食冷)치열: 대구 사람들은 “이열치열은 없다”고 입을 모았다. 홍태양 씨는 “아침에 차가운 우유, 점심에 냉면, 저녁에 냉국수 등 여름에는 매 끼니 차가운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대프리카인들은 이 밖에도 잦은 샤워나 교외 나들이 등을 즐겼다. 강명훈 씨는 “이제 다른 지역이 대구보다 덥다고 하면 은근히 자존심 상하는 ‘덥부심(덥다+자부심)’이 생겼을 정도로 더위에 의연해졌다”고 전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조소진 인턴기자 고려대 북한학과 4학년}
서울의 잠 못 이루는 밤이 이틀 연속 이어졌다. 3일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이 30.4도를 기록한 것. 서울의 밤사이(오후 9시∼오전 6시) 기온이 이틀 연속 30도를 넘겨 ‘초열대야’를 나타낸 것은 1907년 근대 기상관측 이래 처음이다. 2일 낮 기온(최고 37.9도)이 전날(최고 39.6도)보다 떨어진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기상청은 “구름이 복사냉각(밤새 열이 반사되며 지면의 기온이 떨어지는 현상)을 막았고 대기 중 습도가 높았던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인천과 강원 홍천, 충북 청주 등도 역대 최고 최저기온보다 높은 아침 기온을 나타냈다. 서울과 인천에서는 한때 고농도 미세먼지가 나타났다. 이날 낮 12시 초미세먼지(PM2.5) 일평균 농도는 서울이 m³당 35μg, 인천은 40μg을 기록해 나쁨 수준(36μg 이상)에 근접하거나 초과했다.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는 오존주의보도 이어졌다. 주말인 4, 5일에는 전국 대부분의 지역에서 낮 최고기온이 35도 이상 오르면서 무더위가 이어지겠다. 특히 4일은 경북 내륙을 중심으로 38도 이상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2일 전국 곳곳이 역대 가장 ‘뜨거운 아침’을 맞았다. 이날 서울의 아침 최저기온은 30.3도로 1907년 관측 이래 111년 만에 가장 높은 최저기온을 기록했다. 전날 한낮 최고기온이 39.6도를 나타내 역대 최고기온 기록을 새로 쓴 서울은 하루 만에 ‘초열대야’(전날 오후 6시∼당일 오전 9시 최저기온이 30도 이상)로 또 하나의 신기록을 세웠다. 이번 기록은 2013년 8월 8일 강원 강릉이 기록한 30.9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것이다. 2일 인천(29.1도)과 경기 동두천(26.9도) 등도 역대 가장 높은 최저기온 기록을 세웠다. 이날 한낮 기온은 기상청 예보보다 1, 2도가량 떨어졌다. 구름이 많이 낀 데다 화염에 가까운 열기를 내뿜는 동풍이 다소 주춤해진 결과다. 다만 자동관측기기(AWS)로 측정한 비공식 최고기온이 가장 높은 곳은 경북 영천시 신녕면으로 40.2도였다. 기상청은 최소 12일까지 전국에 비가 오지 않는 가운데 폭염이 지속될 것으로 전망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111년 만에 최악의 폭염이 한반도를 덮쳤다. 1일 오후 4시 강원 홍천의 기온은 41.0도를 기록해 근대 기상관측이 시작된 1907년 이래 가장 높은 기온을 나타냈다. 1942년 8월 1일 대구가 기록한 역대 최고기온(40.0도)이 76년 만에 깨진 것이다. 이날 서울의 낮 최고기온도 39.6도를 기록해 종전 서울 최고기록(1994년 7월 24일 38.4도)을 갈아 치웠다. 경북 의성(40.4도), 경기 양평(40.1도), 충북 충주(40.0도), 강원 춘천(39.5도), 경기 수원(39.3도), 대전(38.9도) 등 기상청 공식 관측소가 있는 95곳 중 35곳에서 최고기온 기록을 경신했다. 이는 역대 최다 기록이다. 이날 자동관측기기(AWS)가 측정한 비공식 최고기온 기록은 경기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로 41.9도에 달했다. 이어 서울 강북구 41.8도, 경기 가평군 청평면 41.6도, 강원 횡성군 횡성읍 41.3도를 기록했다. 지난해와 올해를 통틀어 비공식 기록이 41도를 넘은 것도 처음이다. 8월 첫날 최고기온 기록이 무더기로 쏟아진 만큼 올해 폭염 일수, 열대야 일수 등 더위 지표가 1994년 ‘대폭염’을 넘어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1994년 폭염, 열대야 일수는 각각 31.1일과 17.7일로 1972년 현대적 관측이 시작된 이래 압도적 1위다. 올해 폭염, 열대야 일수는 지난달까지 각각 17.2일, 7.8일이다. 앞으로도 폭염은 열흘 이상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기상청은 2일에도 서울과 홍천 등 다수 지역의 한낮 기온이 39도를 넘을 것이라고 예보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이르면 11월부터 대형마트와 슈퍼마켓에서 일회용비닐봉투 사용이 전면 금지된다. 현재 비닐봉투를 공짜로 주는 제과점에서는 돈을 내야 비닐봉투를 구매할 수 있다. 환경부는 이 같은 내용의 ‘자원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하위법령 개정안을 2일부터 40일간 입법 예고한다고 1일 밝혔다. 개정안은 세계 최고 수준(1인당 연간 414장)인 한국의 일회용비닐봉투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취지로 마련됐다. 현재 일회용비닐봉투를 장당 20원 안팎에 판매하는 마트와 슈퍼마켓(165m² 이상)은 앞으로 유상 제공조차 할 수 없게 된다. 일회용비닐봉투 사용이 전면 금지되는 곳은 전국적으로 마트 2000곳, 슈퍼마켓 1만1000곳에 달한다. 그 대신 재사용 종량제 봉투나 빈 박스, 장바구니 등만 이용할 수 있다. 일회용비닐봉투를 무상으로 제공하거나 유상 판매하다 적발되면 최고 20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제과점에서는 앞으로 비닐봉투를 공짜로 제공할 수 없게 된다. 전국 1만8000여 개 제과점에서는 비닐봉투를 판매하거나 종이백을 대신 제공해야 한다. 파리바게뜨, 뚜레쥬르 등 주요 프랜차이즈 2곳의 연간 비닐봉투 사용량은 2억3000만 장에 달했다. 우산, 세탁소, 운송용 에어캡(뽁뽁이) 비닐과 일회용 비닐장갑, 식품포장용 랩 등 5개 품목 생산자는 앞으로 폐비닐 재활용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법령 개정에 따라 이들 품목이 새로 생산자책임재활용(EPR) 대상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EPR란 제품 폐기물 비용을 생산자에게 일부 부담하는 제도다. 개정안은 법제처 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이르면 11월부터 시행된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바람이 부니까 마치 화염방사기 불길을 맞는 것 같았어요. 이런 경험은 처음이에요.” 1일 오후 3시 반 강원 홍천군 홍천읍 중심가인 신장대리 거리. 차량만 오갈뿐 시민들의 발길이 뚝 끊겨 마치 ‘유령도시’ 같았다. 1907년 기상 관측 이래 역대 최고기온인 41.0도를 기록한 홍천은 도시 전체가 한증막이었다. 머리 위로 불을 뿜는 듯한 햇볕이 내리쬐어 조금만 서 있어도 현기증이 났다. 아스팔트 위로 올라오는 열기에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111년 만에 대한민국 ‘여름의 역사’가 바뀐 1일, 시민들은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슈퍼 폭염’에 혀를 내둘렀다.○ 난생 처음 경험한 ‘슈퍼 폭염’ 1일과 6일은 홍천에 장(場)이 서는 날이다. 평소 같으면 시장과 도심 거리가 북적였겠지만 1일 시장엔 손님을 찾기 힘들었다. 시장에서 주차 관리를 하는 신종선 씨(73)는 “평생 홍천에서 살았지만 이런 더위는 난생 처음”이라며 “너무 더워 손님도 뜸하고 일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말했다. 1일 오후 홍천의 기온이 41.0도까지 치솟자 강원지방기상청 춘천기상대 직원들은 ‘온도 기준기’를 챙겨 홍천을 찾기도 했다. 강원도에서 그동안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은 적이 없어 관측값에 오류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미증유의 폭염’에 홍천지역 축제는 된서리를 맞았다. 이날 개막해 5일까지 홍천읍 도시산림공원 토리숲에서 열리는 ‘홍천강 별빛음악 맥주축제’는 캠핑장 운영을 취소했다. 11, 12일 홍천강 수중보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던 홍천강 수상레포츠 체험 행사도 관광객이 뜸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찌감치 취소됐다. 전국 곳곳의 해수욕장도 울상을 짓고 있다. 6월 23일 개장한 경북 포항시 칠포해수욕장에는 올해 8990명이 찾아 지난해 같은 기간(2만1390명)보다 이용객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전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백영팔 전남 완도 신지명사십리해수욕장 상가협의회장(71)은 “30년 동안 해수욕장 천막상가를 운영했는데 태풍 때를 제외하고 이렇게 손님이 없는 것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낮 기온이 39.6도로 자체 기록을 갈아 치운 서울에서도 시민들은 외출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평소 오가는 직장인들로 붐빈 광화문 세종대로조차 인적이 드물 정도였다. 땡볕이 내리쬐는 광화문 거리를 지나던 강정미 씨(25·여)는 “땀 때문에 화장은 다 지워지고 열기는 눈을 뜨기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인근 직장인 한범석 씨(45)는 “실내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을 열면 열기가 확 느껴져 숨이 탁 막힌다”고 말했다. 대폭염의 해로 기록됐던 1994년이 떠오른다는 중·장년층도 있었다. 자영업자 김석진 씨(54)는 “아직도 지독히 더웠던 1994년의 여름을 잊지 못하는데 그때 서울의 기록(38.4도)을 넘어섰다니 놀랍다”며 “거리가 온통 찜질방 같다”고 말했다. ○ 한낮 야외작업 전면 중단 지시 지방자치단체들은 비상이 걸렸다. 이날 한낮 기온이 39도를 넘긴 경기 수원시 용인시 성남시(용인과 성남은 비공식 기록) 등은 살수차를 동원해 연신 물을 뿌려댔다. 50도 이상으로 달궈진 도로에 물을 뿌려 지열 온도를 2∼3도 낮추면 ‘도심 열섬화’ 현상을 완화할 수 있다. 서울시는 폭염에 속수무책인 쪽방촌 주민 3200여 가구에 얼린 생수 6400여 병을 전달했다. 또 폭염 취약계층 1200여 가구와 복지시설 등에 선풍기와 쿨매트 등 냉방물품을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중구도 야외작업을 하는 공공일자리사업 참여자 100여 명에게 아이스팩이 부착된 얼음조끼를 지급할 예정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이날 정부와 지자체, 공공기관이 발주한 건축 토목 공사의 낮 시간대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또 농어민의 낮 시간대 작업 피하기 등도 적극 권고하라고 주문했다. 이에 국토교통부는 산하기관과 지자체에 공문을 보내 ‘긴급 안전과 관련된 작업이 아니면 폭염이 심한 낮 시간대에 작업을 중지하거나 작업을 며칠 연기할 것’을 요청했다. 민간 건설사업장에도 공사 중지를 권고했다.○ 동풍으로 달궈진 서울 홍천 사상 유례없는 ‘슈퍼 폭염’은 극서(極暑)지로 통하는 대구나 경북보다 대부분 영서지방에서 나타났다. 대구 경북보다 서울 홍천이 더 뜨거웠던 것은 연이은 동풍의 영향 때문이다. 지난달 29일 열대저압부로 약화된 12호 태풍 ‘종다리’가 북상하면서 우리나라에는 저기압이 만들어낸 동풍이 불기 시작했다. 이 바람이 태백산맥을 타고 넘으며 뜨거워진 공기가 1차로 서쪽 지방을 덮쳤다. 태풍이 지나가고 난 뒤 북태평양 고기압이 한반도 북동쪽으로 더 커지면서 또다시 동풍을 발생시켰다. 영서지방은 뜨거운 동풍의 연타를 맞은 셈이다. 특히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 지형의 홍천 등은 달궈진 공기가 빠져나가지 못한 채 정체되면서 기온이 크게 올랐다. 3일부터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서서히 남하하면서 동풍 대신 남서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이렇게 되면 뜨거운 바람이 소백산맥을 넘어 대구경북지역을 달구면서 이 지역 온도가 다시 영서지방보다 더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기상청은 최소 11일까지 전국적인 폭염이 계속될 것이라고 예보했다.이미지 image@donga.com / 홍천=이인모 / 유근형 기자}
일반적으로 온열질환 피해자라고 하면 65세 이상 노인이 대부분일 것이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65세 미만 환자가 10명 중 7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질병관리본부가 28일까지 집계한 온열질환자 수 통계에 따르면 전체 환자 2042명 중 65세 미만 비(非)노년계층 환자가 70.3%를 차지했다. 연령대별로는 50대가 422명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60대 317명, 40대 312명, 70대 249명, 30대 239명으로 30∼50대 중·장년 환자가 전체 환자의 47.6%에 달했다. 노인 환자 수(606명)의 1.6배다. 폭염이 심해질수록 사망자 중에서도 비노년계층이 크게 늘었다. 16일까지는 사망자 6명 중 5명이 노인이었다. 하지만 전국 곳곳에 내린 폭염특보가 주의보(33도 이상)에서 경보(35도 이상)로 바뀌며 총 11명의 비노년계층 사망자(0∼9세 2명 포함)가 발생했다. 올해 전체 사망자 27명 중 절반 수준이다. 채여라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건설 현장처럼 열에 취약한 노동 형태가 많은 곳일수록 온열질환자의 발생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노동취약계층 다수가 중·장년층이다. 실제 올해 19∼64세 온열질환자의 41%(567명)가 야외작업장, 11%(146명)가 실내작업장에서 일을 하던 중 사고를 당했다. 고용노동부는 30일부터 일주일간 노동취약계층 작업 현장 100곳을 특별 점검한다. 폭염 시 근로지침을 지키지 않은 사업장은 작업 중지 등 엄정 조치를 취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마치 동남아에서 볼 수 있는 스콜(열대성 소나기) 같았어요.” 28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 시간당 30∼50mm의 강한 폭우가 1∼2시간가량 쏟아지자 시민들은 열대지방의 ‘스콜(squall)’을 떠올렸다. 스콜은 뜨겁고 습한 열대지방에서 자주 볼 수 있다. 30분가량 많은 비를 쏟아붓다가 갑자기 사라지는 게 특징이다. 기상청은 이날 내린 기습 폭우에 대해 “폭염에 제12호 태풍 ‘종다리’ 등 외부 바람이 더해지며 만들어낸 합작품”이었다고 29일 밝혔다. 스콜과 관계없는 국지적인 현상이었다는 뜻이다. 열대지방 스콜은 한낮에 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이 뜨거운 육지를 만나 갑자기 상승하면서 발생한다. 습기를 가득 머금은 해풍이 상층의 차가운 공기를 만나면 급격히 비구름이 만들어지고 갑자기 비를 내리게 된다. 좁은 지역에 많은 강수를 뿌리지만 30분 이내로 짧고 해풍이 불 때마다 주기적으로 발생한다. 반면 28일 곳곳에 내린 기습 폭우는 해풍과 관계없이 육지에 쌓인 고온다습한 공기 때문에 나타났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샌드위치처럼 쌓인 고기압 탓에 빠져나가지 못하던 고온다습한 공기가 마침 북태평양고기압에서 오는 남서풍과 태풍에서 온 동풍을 만나 위로 솟구쳐 비구름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 두 바람이 충돌하며 육지의 데워진 공기를 위로 밀어내 비구름이 생겼다는 뜻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구름은 스콜보다 지속 시간은 길고 주기적으로 발생하지는 않는다. 윤 통보관은 “앞으로도 종종 이런 강우가 발생할 수 있어 갑작스레 폭우를 맞는 봉변을 당하지 않으려면 평소 기상청 예보를 주시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올해 폭염이 역사적인 무더위를 보였던 1994년 ‘대폭염’의 기록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7월 폭염일수는 이미 역대 2위 기록을 갈아 치웠고 열대야일수도 30일 2위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폭염은 최고기온 33도 이상, 열대야는 밤사이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걸 말한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펼쳐지는 8월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아 8월 이후 수치가 더해지면 올여름 더위가 24년 전의 독보적인 기록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온열질환 사망자 수는 역대 가장 많은 27명을 기록했다.○ 7월 폭염·열대야일수 역대 2위 올해 7월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28일까지 13.0일을 나타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현대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1994년(18.3일)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치다. 아직 7월이 다 가지 않았음에도 3위인 1978년(10.5일)을 크게 앞섰다. 지난 35년간 전체 폭염일수 평균(10.5일)도 뛰어넘었다. 7월 열대야일수도 역대 2위로 올라선다. 기상청은 28일 밤까지 7월 전국 평균 열대야일수가 6.5일을 기록했다고 29일 밝혔다. 29일 밤까지 포함한 수치가 30일 나오면 역대 2위를 기록했던 2013년(6.6일)을 제칠 것으로 보인다. 7월 열대야 1위인 1994년 8.9일에는 못 미치지만 이미 1990년과 2001년 전체 열대야일수(6.5일)와 같은 기록이다.○ ‘샌드위치 고기압’에 뜨거운 동풍까지 몰려와 문제는 이번 주부터 우리나라를 덮은 고기압과 뜨거운 동풍(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이 더욱 강해진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현재 우리나라 상공의 북태평양고기압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티베트발(發) 뜨거운 고기압이 30일부터 세력을 더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29일 밝혔다. 현재 한반도 상공에는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 대륙성 고기압이 마치 ‘샌드위치’처럼 쌓여 강한 ‘슈퍼 고기압’대가 형성돼 있다. 대륙에서 온 뜨거운 티베트 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한다면 아래에 있는 북태평양고기압에 열기를 전달해 슈퍼 고기압의 힘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고기압대의 영향으로 맑은 날씨가 계속돼 기온이 계속 오르고, 오른 기온이 고기압에 계속 힘을 보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12호 태풍 ‘종다리’가 폭염에 한몫할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일본에 상륙한 종다리는 내륙을 관통하면서 태풍에서 열대성 저기압으로 약화됐다. 하지만 종다리가 몰고 온 열기와 습기가 동풍을 타고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상공에 머물고 있는 고기압 탓에 남쪽에는 동풍이 불고 있다. 고기압이 시계 방향으로 돌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동쪽에서 태풍이 소멸하면서 태풍이 놓아 버린 다량의 열과 습기는 이 동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흘러들게 된다. 영동과 영남지방에는 비를 내리겠지만 태백산맥을 넘으면 푄현상 때문에 공기가 고온 건조해진다. 산맥 너머 영서지방에는 ‘고온폭탄’이 내리는 셈이다. 30, 31일 서울의 낮 기온이 최고 37도까지 오르는 등 영서지방 곳곳이 올여름 들어 가장 더운 날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 온열질환 사망자 수 27명으로 역대 최고 올해 온열질환 사망자 수는 이미 역대 기록을 경신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달 28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환자가 27명으로 2011년 감시체계 시작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고 29일 밝혔다. 아직 7월 말인데도 다른 해 전체 기록을 뛰어넘은 것으로, 이전 최다 기록은 2016년 17명이다. 온열질환자 수도 2042명을 기록해 지난해 전체 감시 기간(2017년 5월 29일∼9월 8일) 기록인 1574명을 넘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올해 폭염이 역사적인 무더위를 보였던 1994년 ‘대폭염’의 기록에 바짝 다가서고 있다. 7월 폭염일수는 이미 역대 2위 기록을 갈아 치웠고 열대야일수도 30일 2위로 올라설 것으로 보인다. 폭염은 최고기온 33도 이상, 열대야는 밤 사이 최저기온이 25도 아래로 떨어지지 않는 걸 말한다. 본격적인 무더위가 펼쳐지는 8월은 아직 시작되지도 않아 8월 이후 수치가 더해지면 올 여름 더위가 24년 전의 독보적인 기록을 뛰어넘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올해 온열질환자 사망자 수는 역대 가장 많은 27명을 기록했다.●7월 폭염·열대야일수 역대 2위 올해 7월 전국 평균 폭염일수는 28일까지 13.0일을 나타내 역대 2위를 기록했다. 현대적 관측이 시작된 1973년 이래 1994년(18.3일)을 제외하고는 가장 높은 수치다. 아직 7월이 다 가지 않았음에도 3위인 1978년(10.5일)을 크게 앞섰다. 지난 35년간 전체 여름 폭염일수 평균(10.5일)도 뛰어넘었다. 7월 열대야일수도 역대 2위로 올라선다. 기상청은 28일 밤까지 7월 전국 평균 열대야일수가 6.5일을 기록했다고 29일 밝혔다. 29일 밤까지 포함한 수치가 30일 나오면 역대 2위를 기록했던 2013년(6.6일)을 제칠 것으로 보인다. 7월 열대야 1위인 1994년 8.9일에는 못 미치지만 이미 1990년과 2001년 한여름 전체 열대야일수(6.5일)와 같은 기록이다. ●한반도 상공 ‘샌드위치 고기압’에 뜨거운 동풍까지 몰려와 문제는 이번 주부터 우리나라를 덮은 고기압과 뜨거운 동풍(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영향이 더욱 강해진다는 점이다. 기상청은 현재 우리나라 상공의 북태평양고기압을 이불처럼 덮고 있는 티베트발(發) 뜨거운 고기압이 30일부터 세력을 더 확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29일 밝혔다. 현재 한반도 상공에는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 대륙성 고기압이 마치 ‘샌드위치’처럼 쌓여 강한 ‘슈퍼고기압’대가 형성돼있다. 대륙에서 온 뜨거운 티베트 고기압이 세력을 확장한다면 아래에 있는 북태평양고기압에 열기를 전달해 슈퍼고기압의 힘이 더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이 고기압대의 영향으로 맑은 날씨가 계속돼 기온이 계속 오르고, 오른 기온이 고기압에 계속 힘을 보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여기에 12호 태풍 ‘종다리’가 폭염에 한 몫할 것으로 예상된다. 29일 일본에 상륙한 종다리는 내륙을 관통하면서 태풍에서 열대성 저기압으로 약화됐다. 하지만 종다리가 몰고온 열기와 습기가 동풍을 타고 한반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 상공에 머물고 있는 고기압 탓에 남쪽에는 동풍이 불고 있다. 고기압이 시계방향으로 돌기 때문이다. 한반도 남동쪽에서 태풍이 소멸하면서 태풍이 놓아버린 다량의 열과 습기는 이 동풍을 타고 우리나라로 흘러들게 된다. 영동과 영남지방에는 비를 내리겠지만, 태백산맥을 넘으면 푄현상 때문에 공기가 고온건조해진다. 산맥 너머 영서지방에는 ‘고온폭탄’이 내리는 셈이다. 30~31일 서울의 낮 기온이 최소 37도까지 오르는 등 영서지방 곳곳이 올 여름 들어 가장 더운 날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온열질환자 사망수 27명으로 역대 최고 올해 온열질환자 사망자 수는 이미 역대 기록을 경신했다. 질병관리본부는 이달 28일까지 온열질환으로 사망한 환자가 27명으로 2011년 감시체계 시작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고 29일 밝혔다. 아직 7월 말인데도 다른 해 전체 기록을 뛰어넘은 것으로, 이전 최다 기록은 2016년 17명이다. 온열질환자 수도 2042명을 기록해 지난해 전체 감시기간(2017년 5월29일~9월8일) 기록인 1574명을 넘었다. 현재 같은 추세라면 역대 최다 기록인 2016년 2125명도 넘어설 전망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뜨거운 차 안에서 사망. 이불에 깔려 질식사. 엄마로서 취재하다 가장 섬뜩할 때는 아이들이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사고로 목숨을 잃는 사건을 접할 때다. 9명에 불과한 아이들을 차에서 내려주면서 한 명을 깜빡한 운전기사와 인솔교사, 11개월 아기를 재우겠다며 이불을 덮어 몸으로 누른 담임교사. 잊을 만하면 반복되는 이런 소식은 정말 속상하면서도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나도 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있다. 아이들은 언젠가 부모 손을 떠난다지만 워킹맘들은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어떤 분들에겐 더 짧은 기간일 테지만) 만에 아이를 손에서 떠나보내야 한다. 첫째만 있었을 때엔 ‘맞벌이+한 자녀’ 조건이라 어린이집 입소가 쉽지 않았고 친정엄마가 24개월 될 때까지 아이를 돌봐주셨다. 만 2살이 되어 어린이집을 보낼 때 마음이 먹먹했다. 둘째, 셋째 때부터는 입소순위가 상위가 되어 각각 13, 15개월 때부터 바로 어린이집을 보냈다. 13~15개월이면 돌을 갓 지나 이제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때다. 아직 내 눈엔 핏덩이 같은 아기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렇게까지 일을 하는 게 맞나’ 하는 거였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워킹맘들이 비슷한 생각을 할 거다. 어느 날인가 오후 출근을 하는 날이라 느지막이 집을 나섰다. 아파트 단지 내 막내 어린이집 앞을 지나는데 안에서 막내 울음소리가 들렸다. 별일 아닐 텐데 순간 가슴이 철렁하며 한동안 어린이집 앞에서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어디 다쳤나? 친구랑 싸웠나?’ 당장 들어가고 싶은 마음을 간신히 누르며 아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곧 아이 울음소리는 멈췄지만 ‘우리 아이가 내가 모르는 곳에서 저렇게 울고 또 아프겠구나’하는 생각에 괜스레 미안하고 죄스러웠다. 내가 두 살 때의 일이다. 당시엔 어린이집도 없었고 베이비시터 같은 건 형편이 넉넉하던 집이나 들이던 때다. 맞벌이를 하신 부모님은 결국 시골 사시던 엄마의 할머니, 즉 나에겐 증조할머니 되는 분께 손을 벌렸다. 여든이 넘는 노인이 서울까지 올라와 시터 역할을 하신 셈이다. 80세가 가까운 나이차에도 불구하고 나와 증조할머니는 비교적 잘 어울려 지냈는데, 어느 날 할머니와 함께 아파트 계단을 내려가다가 그만 내가 계단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사고가 나고 말았다. 그냥 구르기만 했으면 좋았을 걸, 처음 넘어지면서 이마를 계단 모서리에 세게 찧었다고 한다. 이마 뼈가 부러지고 피도 상당히 많이 흘렸다. 증조할머니도 혼비백산하셨겠지만 가장 가슴이 철렁했을 건 직장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을 우리 엄마였다. 다행히 당시 일터와 집이 멀지 않아 엄마는 곧장 내가 실려 간 병원으로 내달았단다. 그때 엄마가 어떤 심정이었을는지, 나도 같은 워킹맘이 되어보니 상상이 간다. 병원 응급실에서 이마에 피 묻은 붕대를 싸매고 파리하게 누워있는 아기를 마주했을 때 ‘나는 대체 무얼 하고 있었나’하고 얼마나 자책감이 드셨을까. 아직도 내 이마에는 뼈 골절자국과 피부 흉이 남아있는데, 말씀은 안 하셔도 엄마에겐 그 못지않은 가슴 속 상처가 남아있을 듯하다. 사고가 난 어린이집 엄마들도 다들 저마다의 사정 때문에 아이를 맡겨야 했을 것이다. 어딘가에서 일을 하고, 공부를 하고, 혹은 집안을 정돈하는 등 평상시와 다름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가 고통 받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을 때 그 엄마의 가슴은 얼마나 찢어졌을지. 본인 탓은 아니지만 아마도 평생 ‘나 때문’이란 죄의식 속에 살지 모른다. “아이들 사고는 정말 한 순간이야.” 친정엄마는 늘 ‘성서처럼’ 말하곤 한다. 그렇다. 잠깐 안 보는 새 뜨거운 물을 툭 쳐서, 놀이기구에서 떨어져서, 블라인드 줄에 목이 걸려서 아이들은 다치고 죽기도 한다. 그들 엄마라고 평소 안전수칙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그저 사고란 예기치 못하게 터지는 것이다. 그런 걸 생각하면 너무 무섭고 불안하다. 평소 다자녀의 장점을 설파하고 다니지만 한편으로 부모 입장에선 자녀가 많다 보니 자녀의 사고를 겪을 확률도 높아졌단 생각도 든다. 아이가 1명인 집에선 아이 다치는 사고가 1년에 1번 난다면 우리 집에서는 1년에 3~4번 날 거라는 뜻이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 없듯 1명의 자녀가 다치든 4명 중 1명이 다치든 부모 입장에서 아픔은 똑같다. 과연 성인이 될 때까지 모든 아이들을 큰 탈 없이 온전히 키워낼 수 있을까. 어린이집 사고 뒤 난 다시 한 번 세 아이들에게 안전을 강조했다. “길 건널 때는 반드시 세 발짝 뒤에 서 있다가 파란불이 켜지면 양 옆을 둘러보고 건너기 시작하는 거야.” “아파트 안이라도 절대 뛰면 안돼. 차가 튀어나올 수 있어.” “혹시 차 안에 갇힐 일이 생기면 엉덩이로 운전대 중앙의 경적을 꾹 눌러.” 아무리 귀에 박히게 이야기를 해도 아이들은 파란불이 켜지고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하면 쏜살같이 뛰어나간다. 별 수 있나. 매번 호통을 치고 가르치고 알려주는 수밖에. 얼마 전 첫째가 컵으로 장난을 치다가 입 주변에 둥그렇게 피멍이 들고 말았다. 작은 사고지만 마치 턱수염 난 것 같은 얼굴에 내심 속상해 하며 어린이집 등원까지 거부하는 것을 보자 ‘가능하면 저 피멍이 내 입으로 옮아갔으면’ 싶었다. 평소 사람 만나는 게 직업인 내게 턱수염 같은 피멍이 있다면 무척 곤란할 텐데도 말이다. 이런 게 부모인가 보다. 아이들이 더 이상 안타까운 사고로 희생되질 않길 빌어본다. 여느 노래 가사처럼, ‘행복하자, 아프지 말고. 또 다치지 말고.’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매장용 컵을 본사로부터 받지 못했어요.” 12일 서울 종로의 A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주문했다. 기자가 매장에서 먹겠다고 했지만 직원은 다회용 컵(머그잔)을 사용할 것인지 물어보지 않았다. 머그잔을 달라고 하자 직원은 “원래는 줘야 하지만 매장에 없다”고 답했다. 카운터 앞에는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매장 내 일회용 컵(플라스틱 컵) 사용이 금지되어 있습니다’란 문구가 적힌 홍보물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매장을 둘러보니 앉아 있는 20여 명의 손님 모두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음료를 마셨다. 근처 B커피전문점 매장도 상황은 비슷했다. 손님 4명 중 3명이 일회용 컵을 사용했다. 직원은 “드시고 가시면 머그잔에 드릴까요”라고 묻긴 했지만 머그잔을 거부하자 일회용 컵으로 음료를 내줬다. A, B커피전문점 모두 정부와 일회용 컵 사용을 줄이기로 자발적 협약을 맺은 곳이다. 환경부는 5월 24일 16개 커피전문점, 5개 패스트푸드점과 일회용 컵 사용 감축을 위한 자발적 협약을 맺었다. 주요 내용은 △다회용 컵 사용 권유 △텀블러 사용 시 혜택 제공 △협약 홍보물 부착 등이다. 자발적 협약을 맺은 지 한 달 반이 지났지만 서울 종로1가에서 협약을 맺은 8곳의 커피전문점 매장을 둘러본 결과 여전히 이행은 미흡했다. 다수 매장은 다회용 컵을 우선 권하긴 했지만 손님이 거부하면 곧바로 일회용 컵을 주고 매장 내 사용도 허용했다. 협약에 따르면 주문 시 다회용 컵을 ‘우선 제공’해야 하고 매장 내에서는 일회용 컵을 사용하면 안 된다. 일부 커피전문점은 다회용 컵이 있음에도 일회용 컵을 먼저 내줬다. C커피전문점 직원은 “혼자 일하는데 다회용 컵을 씻다 보면 다른 손님을 받을 시간이 없다”고 답했다. 판매 품목에 따라 다회용 컵과 일회용 컵을 함께 쓰는 매장도 있었다. 아이스크림을 주로 판매하는 D커피전문점은 음료를 시키면 다회용 컵을, 아이스크림을 시키면 다회용 컵 권유 없이 일회용 컵과 스푼을 제공했다. 직원은 “아이스크림용 다회용 컵과 스푼은 없다”고 말했다. 이 전문점의 음료와 아이스크림 판매량 비율은 2 대 8로 아이스크림 판매량이 월등히 많다. 환경부는 자발적 협약을 맺은 커피전문점 패스트푸드점 매장을 점검한 결과 다회용 컵 사용이 여전히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26일 밝혔다. 자원순환연대와 함께 6월 25일∼7월 6일 서울, 인천의 매장 226곳을 조사한 결과 주문 시 직원이 다회용 컵을 권유하는 경우는 평균적으로 전체 주문의 44.3%에 불과해 절반도 안 됐다. 일회용품 홍보물을 부착한 곳도 75.7%로 미흡했다. 다만 텀블러 사용 혜택 제공은 99%로 잘 이행되고 있었다. 업체별로 자발적 협약 이행 차이는 컸다. 탐앤탐스(78.9%), 엔제리너스커피(75%), 롯데리아(72.3%), 스타벅스(70.3%) 등은 다회용 컵 권유를 비교적 잘 지켰지만 KFC, 파파이스, 빽다방, 이디야커피 등은 다회용 컵 권유가 미흡했다. 환경부는 8월부터 협약 내용을 위반한 업소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등 단속에 들어간다. 이병화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장은 “다회용 컵도 단순히 사용을 권유하는 게 아니라 원래 협약처럼 ‘우선 제공’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각 업체에 플라스틱 빨대를 줄이기 위한 대책 마련도 촉구할 예정이다. 엔제리너스커피는 8월부터 빨대가 필요 없는 컵 뚜껑을 출시하고 스타벅스는 이르면 올해 안에 모든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대체한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한성희 인턴기자 한양대 경영학부 4학년}

괌 북서쪽 해상에서 발생한 12호 태풍 ‘종다리’가 북상 중이다. 열흘 넘게 이어지는 폭염을 식힐 한 줄기 비가 아쉬운 상황이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덮고 있는 강한 ‘폭염 고기압’ 탓에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올해 발생한 태풍은 종다리를 포함해 모두 12개다. 이 중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친 태풍은 7호 ‘쁘라삐룬’이 유일하다. 하지만 쁘라삐룬도 우리나라를 관통할 거란 예상과 달리 대한해협을 통과해 이달 초 일부 지역에 비를 뿌리는 데 그쳤다. 한반도를 관통한 태풍은 2012년 ‘산바’ 이후 6년째 단 하나도 없다. ○ 강력한 고기압에 밀려난 태풍 기상청은 25일 오전 3시 괌 북서쪽 약 1110km 해상에서 열대저기압이 태풍 종다리로 발전했다고 발표했다. 종다리는 북한이 제출한 이름으로 참새목의 작은 새다. 태풍 발생 소식은 이날 한동안 각종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수위를 차지했다. 연일 맑은 날씨에 한낮 기온이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에 지친 시민들이 더위를 식힐 태풍 이동 경로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역대급 폭염이 찾아왔던 1994년 7월에는 7호 태풍 ‘월트’가 큰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비를 뿌려 ‘효자’가 된 적이 있다. 태풍이 한반도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현재 매우 낮다. 여전히 한반도 상공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고기압 때문이다. 오키나와 인근에 중심을 두고 한반도 전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북태평양고기압은 벌써 2주째 미동도 없이 정체해 있다. 일반적으로 중위도 기압계는 편서풍을 따라 계속 동쪽으로 이동하지만 이번 고기압은 워낙 강해 편서풍에도 꿈쩍 않고 버티는 모양새다. 기상청 윤기한 통보관은 “남쪽에서 계속 열기를 공급받는 북태평양고기압이 제자리에서 시계방향으로 뱅뱅 돌고 있다”고 전했다. 시속 19km로 북북서 방향으로 이동 중인 종다리는 현재 경로대로라면 일본 남동쪽으로 북상해 28∼29일 도쿄에 상륙하며 일본을 관통할 것으로 보인다. 육지에 상륙한 태풍은 그 힘이 급격히 줄어든다. 더구나 종다리는 강도는 ‘약’, 크기는 ‘소형’이다. 일본을 관통한 뒤 우리나라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30일 동해상에서 사라질 것으로 기상청은 예측하고 있다.○ 태풍 피해 없어 다행이지만… 지난 6년간 우리나라에 상륙한 태풍은 없었다. 2016년 18호 태풍 ‘차바’가 제주와 부산, 울산 등지에 8475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재산피해를 냈지만 당시 태풍도 부산 앞바다를 지났을 뿐 육지를 관통하지 않았다. 반면 2012년에는 태풍 3개(카눈, 덴빈, 산바)가 우리나라를 관통했고, 2개(담레이, 볼라벤)는 연안을 지났다. 이때까지만 해도 거의 매년 어김없이 태풍이 한반도를 찾았다. 많은 피해를 안긴 태풍만 살펴봐도 △2002년 루사 △2003년 매미 △2006년 에위니아 △2007년 나리 △2010년 곤파스 △2011년 무이파 등이 있다. 2012년 산바 이후 6년간 우리나라에 이렇다 할 태풍이 없었던 이유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쉽진 않지만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강남영 기상청 국가태풍센터 분석관은 “태풍은 적도지방의 에너지를 다른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역할을 하는데, 온난화로 바다가 뜨거워지면 한 번에 큰 태풍이 발생하면서 태풍 수는 줄어들게 된다”고 말했다. 실제 1980∼2010년에 비해 2000∼2010년 태풍의 발생횟수는 연평균 25.6회에서 23회로 줄었다. 여기에 중·고위도의 온난화까지 태풍을 밀어내게 된다. 문일주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은 “온난화로 중·고위도가 달궈지면 강한 고기압대가 형성돼 이것이 태풍을 막는 장벽을 만든다”고 설명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24일 대한민국 전역에 폭염특보가 내려졌다. 33도가 넘으면 발령되는 폭염특보가 내리지 않은 곳은 단 3곳, 한라산 정상과 백령도, 흑산도뿐이었다. 전국이 펄펄 끓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온도차’가 있다. 21∼23일 최고기온 분포도를 보면 서울-경기 여주-충북 충주-경북 예천-경북 영천-울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선을 따라 상대적으로 기온이 더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북서-남동 지역을 중심으로 마치 한반도가 ‘폭염 어깨띠’를 멘 듯한 모습이다. 22일 전국에서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한 곳은 서울(38.0도)이었다. 공식 기록을 기준으로 23일은 경북 영천(38.2도)이, 24일은 경북 의성(39.6도)이 각각 가장 더운 지역이었다. 24일 사선을 따라 최고기온을 살펴보면 △서울 36.8도 △경기 이천 37.5도 △경북 안동 37.8도 △대구 38.6도를 기록했다. 반면 위도가 비슷한 사선 밖 지역은 △인천 33.8도 △강원 동해 31.5도 △충남 서산 32.6도 △전남 여수 31.3도 등으로 사선 안 지역보다 3∼6도가량 낮았다. 사선 안 지역의 기온이 더 높은 만큼 온열질환자도 이 지역에 많았다. 올해 온열질환자 수는 이달 21일까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 증가했다. 특히 경북과 경남 지역은 각각 지난해보다 환자 수가 2.8배(42→116명), 3.1배(53→165명)나 급증했다. 반면 사선 밖에 있는 전북과 전남, 강원은 각각 1.2배(38→44명), 1.4배(75→108명), 1.4배(45→61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서경환 부산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는 “서울, 경기 수원, 대구, 울산 등 수도권과 경북 지역은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도시화가 고도로 이뤄진 곳이 많다”며 “도심은 자연 지역보다 인공열이 많아 기온이 더 올라간다”고 말했다. 기상청이 2016년 8월 서울에서 도시화가 기온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한 결과 초지로 이뤄진 지역은 아스팔트와 고층건물로 둘러싸인 지역에 비해 최대 3.2도 낮았다. 사선 지역에 분지나 산으로 둘러싸인 지형이 많은 것도 기온을 끌어올리는 한 원인으로 꼽힌다. 경상도나 충북 지역은 분지 지형이나 산을 등진 곳이 많아 한 번 들어온 열기가 쉽게 빠져나가지 못한다. 윤기한 기상청 통보관은 “호남이나 영동 지역은 바다와 마주하고 있어 해수의 영향으로 온도가 급격히 올라가지 않는다”며 “특히 호남 지역은 평야가 많아 공기 순환이 잘 이뤄진다”고 설명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연일 최대 전력수요가 급증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둘러싼 논란이 또다시 확산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24일 국무회의에서 최근 전력수급 상황과 원전 가동 상황을 왜곡하는 주장이 있다고 발언하면서 논란은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전력수요가 급증하자 정부가 원자력발전소를 재가동해 이를 충당하고 있는 건지, 정부의 수요 예측이 틀린 건지 점검해 봤다.○ “원전 가동 상황 계획대로” vs “원전 덕분에 전력 공급 늘어” 청와대와 여권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최근 발표가 불필요한 논란을 키웠다고 보고 있다. 22일 한수원은 다음 달 13일과 18일로 예정됐던 한빛1호기와 한울1호기의 정비 일정을 전력 피크 기간(8월 둘째, 셋째 주) 이후로 늦춘다고 발표했다. 정부는 뒤늦게 한수원 발표에 대해 “최근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해 일정을 변경한 게 아니라 이미 4월에 예정돼 있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또 탈원전 정책은 원전을 당장 줄이는 게 아니라 노후 원전의 수명을 연장하지 않는 방식으로 60여 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감축하는 것이라며 원전을 가동해 전력수요를 충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강조했다. 탈원전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는 이 같은 정부의 설명은 맞는 얘기지만 정부가 원전을 대체할 만한 에너지원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탈원전의 필요성을 과도하게 주장하면서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킨 측면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5일 하계 전력수급대책을 내놓으면서 원전 가동이 늘어났기 때문에 여름철 폭염으로 전력수요가 급증하더라도 문제가 없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부 발표에 대해 일각에서는 탈원전 정책이 현실적인 장벽에 부닥쳤다는 방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력수급 문제없다” vs “장기적으로 문제” 정부는 전력수요가 늘어나는 것에 맞춰 전력 공급량을 늘리고 있기 때문에 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21일 가동을 시작한 한울4호기가 23일부터 100% 출력을 내고 있고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기 등 다른 발전기도 추가로 가동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정부 계획대로라면 7월 말엔 지금보다 약 340만 kW의 전력이 추가로 공급된다. 하지만 매일 전력수요가 100만 kW 이상 증가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계획이 충분치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 전문가는 “24일 전력예비율이 7%대까지 떨어졌는데 원전 1기라도 중단되면 전력수급 비상단계 발령을 고려해야 하는 수치”라고 말했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26∼2030년 전력수요 증가율은 연평균 0.27%에 불과하다. 정부가 예상한 이 기간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9%로,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전력수요 증가가 거의 없다고 본 것이다. 정부는 앞으로 경제성장률이 둔화되고 에너지를 절약하는 방향으로 미래 산업이 발전한다는 근거에서 전력수요 증가율을 낮게 예측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김인수 가천대 에너지IT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상업용, 가정용 전기 비중이 전체의 50∼60%인 반면 한국은 여전히 40%대다. 앞으로 전력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은데도 정부는 신재생에너지 확충에만 매달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 “폐쇄 원전 1기뿐” vs “가동률 60%대” 청와대와 산업부는 문재인 정부 들어 폐쇄한 원전은 월성1호기 하나뿐이며, 이는 전력 공급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발전 용량과 별개로 실제로 원전이 가동되는 비율인 원전 가동률은 현 정부 들어 급격히 떨어졌다. 현 정부 출범 이전 원전 가동률은 70%대 후반∼80%대였다가 지난해 71.3%로 하락했다. 6월 현재 원전 가동률은 67.8%다. 또 정부는 이날 확정한 ‘온실가스 로드맵 수정안’에서 발전 부문이 배출할 수 있는 온실가스를 4080만 t까지 늘렸다. 신규 석탄화력발전소 7기 건설 계획에 맞춰 온실가스 배출량을 늘려준 것이다. 정용훈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정부가 전력수요를 낮게 예측하고도 화력발전을 늘리는 이유는 탈원전으로 인한 공백 때문”이라며 “지금이라도 정부가 전력수요 예측을 수정하고 원전의 필요성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세종=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문병기·이미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