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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6월 5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탱크가 들이닥쳤다. 중국 지도부가 시위를 무력 진압하기로 결정하고 군을 투입한 것이다. 이때 흰 셔츠에 검은색 바지를 입은 남성이 탱크 앞을 막아섰다. 이후 그는 ‘탱크맨’으로 불리며 톈안먼 민주화 시위의 상징이 됐다. 30여 년이 흐른 뒤 이번에는 베이징 시내의 고가도로에 시진핑 국가주석의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을 내건 남성이 등장했다. 인터넷 공간에서는 탱크맨에 빗대 그를 ‘브리지(bridge·다리)맨’으로 부르며 응원하는 메시지가 올라오고 있다. ▷중국에서 최고 지도자를 비판하려면 때론 목숨까지 걸어야 한다. 2019년 7월 ‘시 주석과 리커창 총리는 사퇴하라’는 피켓 시위를 벌인 시민운동가 왕메이위는 투옥 2개월여 만에 숨졌다. 시민단체와 유족은 그가 혹독한 고문을 당한 끝에 사망했다고 주장한다. 2020년 1월 ‘시 주석은 물러나라’는 글을 쓴 법학자 쉬즈융은 비공개 재판을 받고 있다. 그에게는 최고 형량이 무기징역인 국가권력 전복 혐의가 적용됐다. ▷13일 베이징 쓰퉁차오(四通橋)에는 2장의 현수막이 걸렸다. 한 장에는 “독재자이자 민족반역자인 시진핑을 파면하라”고 쓰여 있었고, 다른 한 장에는 “영수(領袖) 말고 선거권을 요구한다” 등의 구호가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체포된 남성은 펑짜이저우라는 이름으로 인터넷에서 활동해 왔다고 미국의소리 방송이 전했다. 중국 당국은 즉각 인터넷 단속에 나섰다. SNS 위챗에 이 사건과 관련된 사진이나 글을 올린 계정 60만 개가 폐쇄됐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시 주석의 3연임을 확정하는 당 대회를 사흘 앞둔 예민한 시점에 벌어진 돌발 시위에 중국 정부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흉흉한 민심에 기름을 끼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선전시에서는 수천 명이 모여 ‘제로 코로나’ 정책에 항의하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7월 정저우시에서는 지역 은행들이 부실화되면서 예금을 찾지 못하게 된 3000여 명이 시위를 하다 보안요원들과 충돌했다. 집회를 여는 것 자체가 어려운 중국에서 이례적인 일이다. ▷1989년 2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난 덩샤오핑은 “중국은 안정을 필요로 한다. 1년 365일 시위만 하면 어떻게 경제 개발을 계속할 것인가”라고 했다. 국민을 통제할 필요가 있고 가능하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불과 2개월 뒤 톈안먼 시위가 시작됐고 끔찍한 유혈 사태로 이어졌다. 장기 집권에 나선 시 주석은 첨단 정보기술(IT)까지 동원해 사회를 철저하게 감시하고 있다. 하지만 수면 아래에서 들끓고 있는 민심을 언제까지나 억누를 수만은 없을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영국 정부는 7월 헌혈자 1만3000여 명의 혈액을 검사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코로나 항체를 갖고 있는지를 조사했다. 그 결과 국민의 73.4%가 감염을 통해 항체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런데 이 중 절반이 넘는 38.8%는 확진 판정을 받지 않은 사람들이었다. 영국 인구를 감안하면 2600만 명 이상이 코로나에 걸리고도 제대로 검사를 받지 않았다는 얘기가 된다. 이보다는 적지만 한국에서도 미확진 감염자가 1000만 명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2020년 9월 정부가 발표한 한국인의 항체양성률은 0.07%에 불과했다. 1만 명 중 7명만 코로나 항체를 갖고 있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국립보건연구원의 23일 발표를 보면 항체양성률은 97%를 넘었다. 약 2년 동안 항체를 가진 사람이 비약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항체가 있다고 해서 감염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중증으로 진행될 가능성을 낮추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고 전문가들은 이야기한다. 오늘부터 실외마스크 착용 의무가 전면 해제되는 등 코로나 출구 전략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반가운 소식이다. ▷하지만 경계해야 할 대목도 눈에 띈다. ‘숨은 감염자’들이 예상보다 많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서 감염에 의해 항체를 갖게 된 사람의 비율은 57.65%였다. 그런데 확진 판정을 받은 사람은 전체 국민의 38.15%다. 그 차이인 19.5%포인트는 실제로는 감염됐지만 검사를 받지 않은 사람들이다. 증상이 없거나 자가진단키트 검사에서 확인되지 않아 넘어간 경우는 어쩔 수 없더라도 확진자가 되는 것을 피하려고 일부러 검사를 받지 않는 것은 문제다. ▷한국은 백신 접종률이 높은 편이지만 여전히 100명 중 12명은 한 번도 백신을 맞지 않았다. 변이가 거듭되면서 코로나에 한 번 걸렸어도 다시 감염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격리되지 않은 채 활동하는 감염자가 많아지면 확진자 증가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최근 1주일 평균 인구 100만 명당 신규 확진자 수를 보면 한국이 대만, 브루나이, 슬로베니아 등에 이어 8번째로 많다는 점도 걱정스러운 대목이다. ▷오미크론이 초기 코로나에 비해 덜 독한 것은 사실이다. 2020년 초 코로나 1차 유행 당시 2.1%에 이르렀던 치명률이 올여름 6차 유행에서는 0.05%로 뚝 떨어졌다. 하지만 언제라도 새 변이가 발생할 수 있고, 보건당국은 겨울 재유행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아프면 쉬고 밀집한 곳에서는 마스크를 쓴다는 기본 방역마저 손을 놓기에는 이르다.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 종식을 선언할 때 우리나라만 뒤처지는 일은 없어야겠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세계 제일 일본(Japan As Number One)’이라는 말에 일본인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환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놀라운 경제성장을 지켜본 미국 하버드대 에즈라 보걸 교수가 1979년 쓴 책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당시 일본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었고 미국에서는 “일본을 배우자”는 열기가 뜨거웠다. 하지만 이제는 ‘과거의 영광’이 됐다. 일본 경제가 중국에 2위 자리를 내준 지 이미 오래고, 3위를 지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 됐다. ▷올해 들어 엔화 가치가 빠르게 떨어지면서 근래 1달러에 140엔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런 흐름이 이어진다면 올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은 30년 전 수준으로 후퇴하고, 4위인 독일과 비슷한 규모가 될 것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이 19일 보도했다. 한때 전 세계 GDP의 15%를 차지했던 일본 경제의 점유율은 4% 아래로 줄어들게 된다. 2000년 세계 2위까지 올랐던 1인당 GDP는 지난해 28위로 떨어졌고, 8월 일본 무역수지는 사상 최대의 적자를 기록하는 등 암울한 소식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일본 내부에서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일본은 지금까지 약 50년간 선진국의 지위를 누렸지만 이제는 거기에서 미끄러져 내려오기 직전”(노구치 유키오 히토쓰바시대 명예교수), “일본은 쇠퇴도상국이자 발전정체국”(데라사키 아키라 일본 정보통신진흥회 이사장) 등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 일본의 상황을 “청나라 말기 같다”고 비유한 학자도 있었다. 변화를 거부하다 쇠락의 길을 걷는다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만큼 일본 사회는 정체돼 있고 변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다. 일본 정부는 팩스와 도장으로 상징되는 아날로그식 행정을 바꾸기 위해 지난해 디지털청까지 신설했지만 별로 달라진 게 없다. 65세 이상 인구의 비율이 30%에 가까운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데다 총인구는 13년째 감소했다. 아베노믹스가 이어지면서 기업들은 기술 혁신보다는 엔저에 기대 수익을 창출하는 데 익숙해졌고,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이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중간 수준으로 떨어졌다. ▷198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일본 경제는 1990년대 들어 주가와 부동산이 폭락하면서 위기를 맞기 시작했다. 이후 경기 침체에서 완전히 회복하지 못하고 있어 ‘잃어버린 30년’이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호황일 때 거품이 생기는 것을 막지 못했고, 세계 경제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대가를 오랫동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일본의 사례를 거울삼아 쉼 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한국의 앞에도 긴 내리막길이 이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공화당의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는 공허했고,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은 외톨이였다. 동맹국과 적국 모두 트럼프 리더십을 무시하고 비웃었다.” 2020년 대선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의 공약집에 나온 내용이다. 트럼프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바이든을 보면서 그가 당선되면 미국의 대외 정책에 일대 변화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국가들이 많았다. 하지만 바이든 취임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뒤통수를 맞았다’는 탄식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근래 바이든은 ‘메이드 인 아메리카’의 최전선에 서 있는 전사다. 인플레이션감축법(IRA)과 ‘반도체·과학법’을 통해 전기차와 반도체를 미국에서 생산하도록 압박하고 있고, 15일에는 중국과 관련 있는 외국 기업들이 반도체, 바이오 등 분야의 미국 기업을 인수합병하지 못하게 할 수 있는 행정명령도 내렸다.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높여 중국을 견제하려 했던 트럼프의 정책에 비해 효과가 직접적이고 파급력이 크다. 중국을 넘어 한국과 유럽 등으로 불똥이 번지고 있다. ▷집권 초 바이든의 외교 전략은 트럼프와 반대 방향으로 가는 듯 보였다. 트럼프가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과 세계보건기구(WHO)에 재가입하면서 국제사회에 ‘미국이 돌아왔다’고 선언했다. 민주 진영 110개국 정상들을 모아 ‘민주주의 정상회의’를 개최했고, 트럼프가 추진했던 주독 미군 감축 계획도 중단시키는 등 유럽과의 관계 개선에 공을 들였다. 트럼프 시대에 의미가 퇴색했던 동맹, 인권 같은 단어들에 다시 무게가 실렸다. ▷하지만 ‘미국의 국익’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바이든은 트럼프에 결코 뒤지지 않았다. 취임 7개월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을 완료한 것이 단적인 예다. 탈레반의 복귀로 인권 악화가 뚜렷하게 예상됐음에도 바이든은 강행했다. 1990년대 인종 청소가 자행된 보스니아 내전에 미국 정부가 소극적 태도를 보이자 “모든 나라가 자국의 이익만 염두에 두고 행동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위험해질 것”이라고 비판했던 그였지만 ‘의원 바이든’과 ‘대통령 바이든’은 달랐다. ▷미 언론에선 “트럼프는 말로 했지만 바이든은 행동으로 한다”는 평가가 나온다. 사실 ‘미국 우선주의’는 미국 내에서 19세기 중반부터 이어져온 개념이다. 트럼프가 이를 전면에 앞세우면서 브랜드화했을 뿐이다. 오히려 정치 초보였던 트럼프는 두서없이 미국 우선주의를 밀어붙여 실제 효과는 크지 않았다. 반면 6선 의원 출신에 외교가 주특기인 바이든은 제도적으로 정교하게 진행하고 있다. ‘조 아저씨(Uncle Joe)’의 웃음 뒤에 가려진 전략을 치밀하게 분석하고 준비하지 않으면 이런 고수를 상대하기 어렵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모든 보고는 내게 먼저 하라.” 2017년 7월 취임한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은 전 직원을 소집해 강경한 어조로 말했다. 4성 장군 출신의 켈리는 파벌 간의 암투와 보고체계 붕괴로 혼란스럽던 도널드 트럼프 초기 대통령실의 기강을 잡기 위해 투입된 소방수였다. 그는 실세로 평가받던 백악관 공보국장을 내쳤고, 대통령의 딸과 사위까지 먼저 자신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그가 근무했던 1년 반이 트럼프 시절의 백악관에 그나마 질서가 유지됐던 때였다. ▷한국에서도 대통령실의 기강이 해이해지면 대통령이나 비서실장이 나서곤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비서관들의 ‘새만금 헬기 유람’으로 비난 여론이 커지자 직원 조회를 주재하면서 “(대선 공로에 대한) 보상의 유효기간은 어떤 경우는 6개월, 어떤 경우는 1년”이라고 경고했다. 이명박 정부 정정길 전 비서실장은 대통령실 직원의 성폭행 혐의 등으로 어수선했던 2009년 직원회의를 소집해 “작은 실수 하나도 국민에게 실망을 줄 수 있다”며 기강 잡기에 나섰다. ▷김대기 비서실장이 13일 첫 직원 조회를 연 것도 흐트러진 대통령실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앞서 대통령실은 지난달 말부터 이달 초까지 진행된 대규모 감찰 및 업무평가를 통해 행정관 및 행정요원급 직원 50여 명을 교체했다. 이렇게 단기간에 대통령실 실무진을 대거 교체한 것은 전례를 찾기 어렵다. 그만큼 내부 상황이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김 실장이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짱돌”이라는 직설적인 표현을 쓴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왔을 것이다. ▷문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반성은 없었다는 점이다. 윤석열 대통령 임기 초반부터 대통령실의 기강이 흐트러졌다는 것은 대통령실 첫 인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점을 방증한다. 감찰 과정에서 “대통령실이 윤핵관의 비서들로 가득 찼다”는 말이 나올 만큼 여권 핵심 인사들의 사람 심기가 만연해 있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 지인의 아들, 김건희 여사의 코바나컨텐츠 전 직원 등이 대통령실에 근무해 ‘사적 채용’ 논란도 있었다. 인사 라인에서 충분한 검증을 거쳐 채용한 것인지 의문이 여전하다. ▷현 정부 들어 대통령실에서 민정수석이 폐지되면서 공직기강비서관은 비서실장 직속으로 바뀌었고, 인사검증은 법무부로 넘어갔다. 오랫동안 유지돼온 시스템이 바뀐 만큼 관련 업무에 공백이 생길 여지가 있다. 또 수석비서관 이상에 대한 감찰을 강화하려면 특별감찰관 임명이 필요한데, 대통령실과 국회 간에 원활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보완과 개선이 병행돼야 기강을 바로 세울 수 있다. 비서실장 혼자서 군기 잡기에 나서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영국 내각에는 ‘The Great Offices of State(국가 중요 관직)’라고 불리는 4개의 자리가 있다. 내각 구성원 중에서도 특히 역할이 중요하다고 해서 붙은 이름인데, 총리와 재무장관, 외교장관, 내무장관을 가리킨다. 6일 출범한 리즈 트러스 내각은 이 ‘빅4’를 모두 백인 남성이 아닌 인물들로 채웠다. 영국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보수당 소속이면서도 취임 일성으로 “개혁”을 외친 트러스 총리의 승부수다. ▷내각의 2인자로 평가되는 쿼지 콰텡 재무장관은 아프리카 가나 출신으로, 사상 첫 흑인 재무장관이 됐다. 영국인 부친과 시에라리온 출신 모친 사이에서 태어난 제임스 클레벌리 외교장관은 “혼혈이라는 이유로 어린 시절에 끊임없이 놀림을 당했다”고 스스로 밝히기도 했다. 출입국 정책 등을 담당하는 내무부를 지휘하게 된 수엘라 브래버먼 역시 아프리카와 인도 혈통이 섞인 비백인 여성이다. 보수층에서는 “주요 직위에 백인 남성의 자리는 없느냐”는 불만이 나온다. ▷반면 야당 노동당에서는 이들의 발탁을 놓고 “구색 맞추기에 불과하다”는 혹평을 내놨다. 불법 이민자 단속을 강화하겠다는 트러스 총리는 물론 세 명의 장관 모두 보수 일색이라는 것이다. 콰텡은 브렉시트와 감세에 적극 찬성했고, 클레벌리는 러시아와 중국에 대한 강경한 대응을 주문해왔다. 브래버먼은 학교가 학생들의 성(性)적 지향을 존중할 법적 의무는 없다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세 사람은 트러스의 당 대표 선거를 지원한 핵심 측근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트러스 총리가 파격 인사를 통해 메시지를 던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영국에서 백인 인구 비율은 1991년 94%에서 2011년에는 87%로 줄어든 반면 흑인, 아시아계 등은 늘고 있다. 수도 런던은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비백인이고 2016년부터 파키스탄 출신 무슬림 사디크 칸 시장이 재임하고 있다. 인종 다양성에 관심을 높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여성 장관을 늘리는 것은 전통적으로 여성 유권자에게 인기가 없는 보수당의 약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안이다. ▷영국 보수당은 전 세계 보수정당의 원조라고 할 만큼 역사가 길다. ‘토리’라는 정파가 생긴 지는 300년이 넘었고, 보수당이라는 이름의 정당으로 활동한 지도 200년 가까이 된다. 그동안 디즈레일리, 처칠, 대처 같은 지도자들은 원칙을 중시하면서도 정치·사회적 변화를 요구하는 민심을 적극 수용했고, 그 힘을 바탕으로 보수당은 유지돼 왔다. 트러스 총리의 성패는 이런 과거의 교훈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개선해서 실행할지에 달렸을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1996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부시장으로 일하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중앙 무대로 끌어올려 준 사람은 보리스 베레좁스키였다. 올리가르히(러시아 신흥 재벌)의 상징인 베레좁스키의 후원으로 푸틴은 크렘린에 부국장으로 입성했고 총리를 거쳐 2000년 대권을 잡았다. 하지만 푸틴이 대통령이 된 이후 두 사람의 관계는 멀어졌고, 결국 영국 런던으로 망명한 베레좁스키는 2013년 자택 욕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푸틴 시대 올리가르히의 첫 의문사였다. ▷러시아의 최대 민영 석유업체인 루크오일의 라빌 마가노프 회장이 1일 모스크바의 병원에서 추락사했다. 러시아 국영 매체들은 그가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했다면서 극단적 선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우다 실족한 것이라는 민간 매체의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서방 언론들은 루크오일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무력 충돌이 최대한 빨리 끝나기를 바란다”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비판적 자세를 보였다는 점에서 마가노프의 죽음에 러시아 당국의 개입을 의심하는 분위기다. ▷앞서 4월 러시아 액화천연가스 기업 노바테크 전 부회장이 스페인에서, 국영 천연가스 기업 가스프롬 자회사 가스프롬은행의 전 부회장은 모스크바에서 각각 가족들과 함께 사망했다. 이어 5월에는 가스프롬 소유 리조트의 임원이 절벽에서 추락해 숨졌다. 이처럼 올해 들어 올리가르히의 석연치 않은 죽음이 잇따르고 있지만 자살인지 타살인지조차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사망 배경에 대한 궁금증만 계속 커질 뿐이다. ▷올리가르히는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국영기업의 민영화 과정에서 막대한 부를 쌓았다. 이들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경제와 정치에서 영향력을 확대했고 정부와 올리가르히는 상부상조하는 관계였다. 하지만 푸틴은 “기업인들은 정치판에 기웃거리지 말라”고 견제하면서 독자적으로 권력을 구축해 나갔다. 이후 최대 부호였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전 유코스 회장이 10년간 옥살이를 하고 망명길에 오르는 등 반(反)푸틴 성향의 올리가르히는 축출되고 친푸틴 기업인들만 남았다. ▷푸틴은 KGB와 군대 등 안보·정보를 담당하던 부처 출신의 이른바 ‘실로비키’를 중용해 통치의 기반으로 삼고 있다. 그동안 올리가르히뿐 아니라 야권 정치인 알렉세이 나발니, 보리스 넴초프 전 부총리 등 푸틴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암살되거나 죽음의 문턱까지 갔었다. 러시아 선거법상 푸틴은 2036년까지 집권이 가능하다. 푸틴의 철권통치가 계속된다면 러시아에 의문사의 그림자가 사라질 날은 아직 멀어 보인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구조 활동을 위해 내륙에 처음으로 해군을 출동시켰습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서 땅이 작은 바다처럼 돼 버렸기 때문입니다.” 셰리 레만 파키스탄 기후변화부 장관이 외신 인터뷰에서 홍수의 심각성을 표현한 말이다. 파키스탄 국토의 3분의 1가량이 물에 잠겼고, 3300만 명이 수해를 입었다. 이에 주민들 사이에서는 “하늘에서 지옥문이 열렸다”는 절규마저 나오고 있다. ▷파키스탄에서는 올봄 최고 5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더위가 끝나자 ‘괴물 몬순(장마)’이 찾아왔다. 강한 빗줄기가 이어졌고 피해가 집중된 신드주에서는 8월에 평년보다 8배 많은 비가 쏟아졌다. 전국적으로 1100명이 넘는 주민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 채의 집이 부서졌다. 경제적 피해는 100억 달러로 추산된다. 파키스탄 국내총생산(GDP)의 4%에 해당하는 엄청난 규모다. 이미 물가 급등과 식량난으로 힘겨운 시기를 보내고 있는 2억3000만 파키스탄 주민들의 주름이 더욱 깊어지게 됐다. ▷파키스탄은 1인당 GDP가 1500달러 정도에 불과한 빈국이어서 자연재해에 대한 대비가 충분하지 못하다. 부실하게 지어진 일부 댐과 제방들은 이번 홍수를 감당하지 못하고 무너져버렸다. 파키스탄의 산들은 대부분 가파르고 나무도 적어서 빗물을 충분히 흡수하지 못한다. 이런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홍수 피해가 커졌다고 영국 가디언은 진단했다. 파키스탄 적신월사(적십자사)는 “아직 최악의 상황이 아니다”라며 앞으로 수인성 질병이 창궐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파키스탄은 2010년에도 큰 홍수로 2000만 명의 수재민이 발생했다. 일부 학자들은 2010년과 올해 모두 라니냐(태평양 해수온 이상 현상)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라니냐와 홍수의 연관성에 주목한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기온이 높아질수록 수증기가 많이 발생해 폭우가 내리게 된다는 것이다. 지구의 기온이 1도 올라가면 남아시아 지역에서 우기에 내리는 비의 양이 5% 늘어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1959년 이후 전 세계에서 배출된 이산화탄소 가운데 파키스탄이 차지하는 몫은 0.4%에 불과하다. 미국(21.5%)이나 중국(16.4%) 등에 비하면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독일 기후연구기관 저먼워치가 평가한 기후위험지수에서도 푸에르토리코, 미얀마, 아이티 등 가난한 국가들이 1∼3위를 차지했다. ‘선진국들이 내뿜은 온실가스에 정작 심각한 피해를 입는 것은 빈국들’이라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공업화의 혜택을 누려온 선진국들이 기후변화에 따른 개발도상국들의 고통을 마냥 외면해서는 안 된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미국 대선이 끝난 지 1년 반이 넘게 흘렀지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지지자들에게 대선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트럼프는 지난달 위스콘신주 하원의장에게 전화를 걸어 대선 결과 취소를 요구했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대선 당시 거리에 무인 투표함을 배치해 부재자 투표 용지를 수거한 것이 위헌이라는 주 대법원 판결을 빌미로 대선 무효 주장을 또다시 꺼내든 것이다. 11월 중간선거에 출마하는 공화당 후보들 가운데에도 절반 이상이 ‘대선이 사기였다’는 트럼프의 주장에 동조하고 있다고 한다. 트럼프가 백악관에서 기밀자료를 가지고 나왔는지를 놓고 연방수사국(FBI)이 그의 별장을 압수수색하면서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지만 그의 인기는 식지 않았다. 압수수색 이후 진행된 한 여론조사에서 공화당 지지층의 57%는 ‘오늘 경선이 진행되면 트럼프를 지지하겠다’고 답했다. 지난달보다 오히려 4%포인트 오른 수치다. 요즘 트럼프에게 하루 100만 달러 이상의 정치자금이 쏟아져 들어온다는 보도도 있다. 트럼프 수사에 항의하기 위해 중무장한 채 FBI 지부에 진입하려던 남성이 사살되는 등 지지자들은 광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트럼프가 심어놓은 포퓰리즘, 이른바 ‘트럼피즘’이 미국 사회에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준다. 트럼프는 포퓰리즘의 요소들 가운데 특히 ‘편 가르기’ 전략을 적극적으로, 효율적으로 이용해왔다. 비(非)백인 여성 의원들을 향해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고 쏘아붙이고, 국회의사당에 난입한 지지자들은 “진짜 국민”이라고 추켜세우는 식이다. 국민을 둘로 나눠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가짜 국민’으로 규정하고 배척하는 정치를 통해 그는 2016년 대통령에 당선됐고 2020년 대선에서 47%를 득표했다. 2024년 대선에 도전한다면 트럼프는 편 가르기 전략을 전가의 보도처럼 다시 한 번 꺼내들 것이다. 실제 트럼프는 지난달 연설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다. 이건 침략”이라고 비난하는 등 예전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공화당의 다른 유력 주자들 역시 트럼피즘에 기대고 있기는 마찬가지여서 트럼프가 출마하지 않더라도 선거전 양상에는 큰 차이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 사회의 분열상을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하버드대 스티븐 레비츠키, 대니얼 지블랫 교수는 트럼프 재임 시절부터 “민주주의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 극단적인 양극화는 성숙한 민주주의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민주주의의 롤 모델 역할을 해온 미국에도 포퓰리즘과 편 가르기 정치는 이렇게 위협적이다. 한국은 어떨까. 포퓰리즘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선거를 올해 두 차례 치르면서 각 정당과 정치인들은 성별과 나이, 지역, 소득 수준 등을 기준으로 국민을 나눈 뒤 자기편으로 설정한 그룹을 향해 집중적으로 구애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로 인한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지만 선거가 끝난 뒤에도 모두 말로만 통합을 외쳤을 뿐, 진지하게 치유를 모색하는 과정은 보이지 않았다. “포퓰리스트는 자신이 국민을 통합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들의 실제 모델은 시민들을 최대한 분열시키는 것”(얀베르너 뮐러 ‘민주주의 공부’)이라고 했다. 앞으로 여권은 떨어진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야당은 권력을 되찾기 위해 언제든 포퓰리즘을 소환할 가능성이 있다. ‘당신만이 진정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하면 포퓰리즘을 경계할 때가 온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프랑스 중부 오베르뉴의 고지대에서 만들어지는 살레(Salers) 치즈는 2000년의 역사와 엄격한 품질 관리로 정평이 나 있다. 치즈의 원료가 되는 우유를 생산하는 젖소들이 영양분의 4분의 3 이상을 이 지역의 풀을 먹어서 섭취했다는 점을 증명해야 정품으로 인정된다. 그런데 살레 치즈 제조업자들이 최근 생산을 중단했다. 비가 오지 않아 소들에게 먹일 풀이 자라지 않아서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역이 50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에 신음하고 있다. ▷“사과가 가지에 매달린 채 구워지고 있다.” CNN이 전한 영국 과수 농가의 모습이다. 유럽가뭄관측소가 홈페이지에 올린 가뭄지도를 보면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많다. 농작물이 스트레스를 받아 작황이 우려되는 ‘비상’ 상황이라는 의미다. 땅에 수분이 부족한 수준을 뜻하는 주황색 지역까지 합치면 유럽 전체의 64%에 해당한다. 올해 유럽의 곡물 생산량은 최근 5년 평균에 비해 8∼9% 줄 것으로 전망된다. ▷‘서유럽 내륙 운송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독일의 라인강은 바지선 운항이 어려운 수준으로 수위가 내려갔다. 프랑스의 루아르강, 이탈리아의 포강 등 유럽의 주요 하천들도 서서히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영국 남부에는 거의 5개월간 비가 내리지 않았고, 스페인의 저수량은 평년의 40% 수준이다. 영국 당국은 머리를 매일 감지 말자고 시민들에게 권고했고, 네덜란드 정부도 샤워 시간을 5분 이내로 줄여달라고 호소하는 지경이 됐다. ▷가뭄은 유럽의 에너지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유럽에서 생산되는 수력발전 에너지는 올해 1월에 비해 7월에는 20% 줄어들었다. 또 원자로를 식힐 냉각수가 충분하지 않아 원전 발전량도 12% 감소했다. 러시아가 천연가스 공급을 제한하면서 타격을 받고 있는 유럽으로선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스페인에서 공공기관 등의 에어컨 설정 온도를 27도로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되는 등 유럽 각국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최대한 에너지를 비축해 두려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6월부터 40도를 넘나드는 폭염으로 피해가 속출했다. 영국 가디언은 “기후변화로 인해 2, 3년마다 서유럽에 극심한 더위가 찾아올 것”이라며 이런 기후가 ‘뉴노멀(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 외에도 지구촌 곳곳에서 가뭄, 홍수 등 기상이변이 벌어지면서 올 상반기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가 약 4300명에 달했다. “우리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집단행동을 할지, 아니면 집단자살을 할지 선택해야 한다”는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의 섬뜩한 경고가 수사(修辭)로만 들리지 않는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허리케인 ‘도리안’이 미국에 접근하던 2019년 9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플로리다, 조지아, 앨라배마주 등이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트위터에 적었다. 반면 앨라배마주 기상당국이 ‘우리는 피해 예상 지역이 아니다’고 발표했다. 이에 트럼프는 도리안의 예상 경로에 앨라배마주가 포함된 미 국립해양대기청의 지도를 언론에 공개했다. 알고 보니 앨라배마주 부분은 트럼프가 펜으로 그려 넣은 것이었다. 언론에선 ‘샤피(트럼프가 즐겨 쓰던 펜 브랜드) 게이트’라고 조롱했다. 그런데 트럼프가 퇴임 뒤 남긴 자료에는 이 지도가 없었다. ▷트럼프는 재임 당시 메모나 문서를 종종 찢어버리곤 했다. 이 중 일부는 참모들이 테이프로 다시 붙여서 보관했지만, 트럼프가 변기에 넣고 물을 내려버린 문서들은 영원히 사라졌다. 트럼프가 집무실에 있는 각종 자료들을 골판지 상자에 넣어서 가지고 나간 경우도 많았다. 이렇다 보니 허리케인 관련 지도뿐 아니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주고받은 편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보낸 서한 등이 트럼프 퇴임 후에 행방이 묘연하다. ▷미 대통령기록물법에는 대통령 공무와 관련된 문서, 사진, 지도, 음성 등은 퇴임 후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를 어기면 최고 징역 3년의 처벌을 받는다. 트럼프 측은 올해 1월 일부 자료를 정부에 반환했는데, 이 가운데에는 기밀로 분류된 국가안보 관련 문서들이 포함돼 있었다. 또 민감한 자료들을 모두 반환하지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결국 미 연방수사국(FBI)은 8일 트럼프의 별장인 마러라고 리조트를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사법 절차에 착수했다. ▷미국 전직 대통령 45명 가운데 지금까지 기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워터게이트’의 주역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도 기소 직전에 사면을 받았다. 하지만 트럼프는 기록물 반출 외에 지지자들의 의회 난입을 선동한 혐의, 대선 결과를 뒤집도록 조지아주 법무장관 등에게 압력을 가한 혐의 등으로도 수사를 받고 있다. 조만간 ‘전직 대통령 기소 1호’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 가능성이 있다. ▷미 공화당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수사가 지지층을 오히려 결집시켜 11월 중간선거와 2024년 대선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미 헌법에 유죄 선고를 받은 사람의 대선 출마를 금지한다는 조항은 없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트럼프의 대선 도전을 막기 어렵다. 트럼프도 “마녀사냥”이라고 정부를 비판하며 출마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트럼프가 법치를 무시하고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치를 해왔다는 것을 미국 유권자들은 기억한다. 이제 와서 ‘탄압받는 피해자’라는 이미지로 덮어버리기에는 너무 무거운 업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한국처럼 국민의 수명이 빠르게 늘어난 나라도 드물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 기준으로 1970년 한국인들의 기대수명은 62.3세에 불과했다. 현재 OECD 가입국 기준으로는 밑에서 다섯 번째로 수명이 짧은 국가였다. 반세기가 흐른 2020년에는 사정이 완전히 달라져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수명이 긴 나라가 됐다. 하지만 한국인들의 신체적 건강이 눈에 띄게 나아진 것과 달리 마음의 질병은 심각하다. ▷기대수명에는 의료 접근성, 보건 수준, 영양 상태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이런 분야가 개선되면서 한국의 기대수명이 늘어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한국인들의 1인당 외래 진료 횟수는 OECD 평균의 2배를 넘고, 인구 1000명당 병원 병상 수도 한국이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안정된 건강보험 제도와 세계적 수준의 의료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이와 함께 건강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해마다 흡연율은 줄고, 술은 덜 마시는 추세다. ▷그래서 기대수명이 긴 국가들을 보면 일본, 노르웨이, 호주, 스위스 등 경제적으로 풍요하고 사회적으로 안정된 선진국들이 많다. 한국이 그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은 반가운 소식으로 들린다. 한국이 머지않아 세계 최장수 국가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이제 한국이 건강한 선진사회가 됐다’고 말하기는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 극단적인 선택으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점이다. ▷한국의 자살률은 10만 명당 25.4명으로 OECD 국가 중 눈에 띄는 1위다. 다른 장수 국가들의 자살률이 10명대 초반인 것과 대비된다. 1990년대 초반까지는 한국의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낮은 편이었지만 외환위기를 겪은 1990년대 말부터 급격히 높아졌다. 이제 고혈압으로 숨지는 사람보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이 더 많을 정도다. 자살에 이르게 된 동기를 살펴보니 10명 가운데 4명이 ‘정신적 문제’ 때문에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전문가들은 취업과 학업에 대한 스트레스, 경제적 궁핍, 신체적 고통 등으로 마음이 병든 사람은 늘어나는데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는 것이 높은 자살률의 주요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한국은 OECD 국가 중 우울증을 가진 국민의 비율이 가장 높은 편이지만 치료율은 미국의 6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정신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부터 사라져야 제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수명은 길어졌지만 마음속에 지옥을 안고 사는 국민이 많다면 장수 국가가 된들 마냥 축복만 할 일은 아닐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2014년 말 미국 포틀랜드 시내에서 교통국 직원 에릭 잉글랜드는 우버 차량을 부르려고 여러 차례 호출 버튼을 눌렀지만 결국 실패했다. 사실 그는 당국의 허가 없이 영업을 시작한 우버를 단속하기 위해 함정수사를 벌이던 중이었다. 그가 허탕을 친 이유는 나중에야 밝혀졌다. 우버 운영진은 미리 교통국 직원이나 경찰 등의 신원을 파악해 놨다가 이들이 호출하면 운행 가능 차량이 없는 것처럼 가짜 화면을 보여주는 그레이볼(greyball)이라는 프로그램을 이용했던 것이다. 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우리는 점점 해적이 돼 가고 있어.” “맞아. 법을 어기고 있는 중이지.”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캘러닉이 2013∼2017년 주고받은 이메일과 문자메시지에 등장하는 우버 임원들의 대화다. 영국 가디언이 입수한 이 자료들을 보면 우버는 각국 정부의 규제에 부딪힐 때 편법으로 피해 나가면서 성장했다. 수사를 피하려고 회사 컴퓨터들을 먹통으로 만드는 프로그램을 이용하는가 하면, “수사관들이 들이닥치면 일단 텅 빈 회의실로 안내하라”는 등 압수수색 대응 매뉴얼까지 만들었다. ▷정치권에 대한 로비도 빠질 수 없다. 캘러닉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베냐민 네타냐후 전 이스라엘 총리, 조지 오즈번 전 영국 재무장관 등과 접촉해 우버 진출의 필요성을 설득했다. 특히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경제장관 재직 당시 “내각에서 (우버를 위해) 비밀 거래를 중개해 줬다”고 우버 측에 말하는 등 끈끈한 관계를 유지해 온 것으로 밝혀졌다. 야당에서 “국가적 스캔들”이라며 조사를 요구하고 있어 마크롱의 처지가 난감하게 됐다. ▷캘러닉에 대해 지인들은 “뭔가에 한번 꽂히면 무조건 얻어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평가한다. 그렇다 보니 합법과 불법을 오가기 일쑤였다. 그는 1998년 대학을 중퇴하고 음악파일 공유 업체를 만들었다가 저작권 침해로 2500억 달러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다. 이후 대용량 파일 전송 시스템 업체를 운영할 때에는 직원들이 내야 할 세금을 빼돌려 회사에 재투자했다가 적발되기도 했다.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달려가야 한다.” 우버가 승승장구하던 2016년 3월 캘러닉은 인터뷰에서 자신 있게 말했다. 하지만 불과 1년여 뒤 그는 다른 회사의 기술을 훔쳐 제소됐다는 등의 이유로 최고경영자 자리에서 쫓겨났다. 우버의 문제점을 파헤친 책 ‘슈퍼펌프드’는 “성공적인 스타트업 창업자들은 규정이나 원칙을 어길 때조차 플라톤의 철인과 같은 대우를 받았다”고 썼다. 하지만 그것도 용인될 수 있는 한계가 있다. 그 선을 넘어서면 추락을 피할 수 없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시행령을 통해 행정안전부와 법무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것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행안부는 시행령을 고쳐 이른바 ‘경찰국’을 만들고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규칙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법무부는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공직 후보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했다. 정부는 ‘정부조직법 등 법률에 근거한 조치’라고 주장하지만 ‘법에서 위임한 범위를 벗어난 시행령 개정은 위법’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다. 헌법 전문가인 이석연 전 법제처장을 만나 시행령 논란 등에 대해 의견을 들었다.》“尹, 법치 후퇴에 지지율 하락” ―행안부가 시행령을 통해 경찰을 통제하는 것이 법적으로 합당한가. “행안부가 제시하는 근거는 두 가지다. 정부조직법에 ‘치안에 관한 사무를 관장하기 위하여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으로 경찰청을 둔다’는 조항, ‘장관이 소속청에 대하여는 중요 정책수립에 관하여 그 청의 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이를 근거로 시행령이나 시행규칙으로 이른바 ‘경찰국’을 신설하고 경찰청 관리 규칙을 제정한다는 것이다. 법무부가 검찰을 통제하는 것과 비슷한 구조여서 행안부는 ‘그러니까 우리도 할 수 있지 않느냐’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검찰, 경찰에 대한 통제 방식의 차이점이 뭔가. “정부조직법에 ‘법무부 장관은 검찰, 행형 등 사무를 관장한다’고 명시돼 있다. 당연히 검찰국을 둘 수 있다. 반면 법상 행안부 장관이 관장하는 사무 중에 경찰 또는 치안에 관한 것이 일절 없다. 또 정부조직법에 ‘경찰청의 조직이나 직무 등에 관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그래서 행안부에 경찰을 통제하기 위한 조직을 둔다는 것은 법률을 고치지 않는 한 명백한 법체계 위반으로 헌법 위반이다. 행안부가 경찰을 통제하고 싶다면 야당을 설득하고 여론의 지지를 얻어서 치안을 행안부 장관의 업무 중 하나로 넣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 이는 경찰을 통제해야 할 당위성과는 별개의 문제다.” ―행안부가 경찰청장 지휘규칙을 만드는 것은 왜 문제가 되나. “정부조직법 전체를 체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가령 기획재정부 장관 소속인 조달청 국세청 등에 대해선 정부조직법에 별도의 조항이 없으므로 장관이 규칙을 만들어 지휘할 수 있다. 그런데 법에는 검찰청과 경찰청에 대해서만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고 돼 있다. 다른 부처 소속의 청들과는 다르다. 따라서 행안부가 정부조직법을 근거로 규칙을 만들어 경찰청장을 직접 지휘할 수 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없다.” ―행안부가 경찰을 맡으면 외압을 막아줄 수 있겠나. “고양이에게 생선가게를 맡기는 격이다. 역사적으로 검찰보다도 더 권력의 첨병 역할을 한 것이 경찰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경찰의 독립성, 중립성을 보장할까 하는 것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 그런데 지금은 법무부 검찰국, 행안부 경찰국을 마치 양 날개처럼 쓰겠다는 것이다.” ―법무부에 인사정보관리단을 둔 것은 어떤가. “새 정부가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을 없앴으면 인사검증 기능이 인사혁신처로 돌아가는 것이 정상적이다. 인사혁신처가 검찰의 협조는 받을 수 있다. 그런데 정부조직법 어디에 봐도 법무부에 공무원 인사 관련 권한은 없고 법무부에 갈 성질도 아니다. 권한이 없는데 빼앗아 온 것이다. 또 국회, 법원, 헌법재판소 인사에 대해서도 법무부가 검증하겠다는 것은 정말 문제가 심각하다. 대통령이 묵인한 것이다. 하지 말라고 했으면 안 했을 것이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나. 이런 사안들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것이다. 장관 탄핵 사유가 될 수도 있다.” ―장관 탄핵까지 갈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보는 것은 지나치지 않은가. “이런 문제가 쌓이다 보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나. 대통령과 장관을 포함해 고위공직자가 직무 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하면 탄핵 사유가 되는 것인데, 법률의 취지를 벗어나서 시행령으로 통제를 한다는 것은 명백히 법률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까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흔들린다. 정권 교체를 바라고 박수를 쳤던 많은 국민들도 지지를 철회하고 있는 상황이다.” “野, 반성 없이 편 가르기 입법” ―윤 대통령은 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해왔는데 현실은 어떤가. “윤 대통령은 그동안 헌법정신, 법치주의, 상식을 강조해왔고 나는 이를 지지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세 가지 다 실망을 하고 있다. 벌써부터 이런 원칙들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든다. 헌법정신이 뭔지는 대통령이 한 번도 제대로 얘기한 적이 없고, 법치주의도 시행령 논란 측면에서는 후퇴하고 있다. 상식이라는 건 국민의 건전한 판단이고 여론이다. 그걸 존중해야 하는데 밀어붙인다.” ―어떤 점이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나. “대표적인 것이 인사다. 국민 여론이 안 된다고 하면 대통령이 ‘이 정도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국민 눈높이는 더 엄격했다. 내정 철회하고 더 좋은 사람을 찾겠다’ 이렇게 하면 지지율이 5%는 오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밀리면 끝장이고 국정 동력이 상실된다는 식이라면 국민을 상대로 전쟁하자는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의 성 상납 의혹도 아직 사실관계가 규명이 안 됐으니까 당 윤리위원회의 결정이 미뤄져야 한다. 토사구팽하는 것처럼 밀어내는 식으로 간다면 젊은층에 대해 악수를 두는 것을 넘어 당과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질까 염려된다. 이 대표도 당 대표로서 좀 더 무게감 있게 행동할 필요가 있다.” ―현 정부에서 검찰 출신이 지나치게 중용된다는 지적도 있다. “법조인 출신이 개인적 능력은 뛰어나더라도 정책을 조정하는 능력은 약할 수밖에 없다. 정책 수행에 있어서 판단력도 떨어진다. 법조인들은 ‘내가 하는 것이 법치이고 적법 절차’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게 일사천리로 밀고 나가면 오히려 독선이 된다. 국민들이 생각하는 다른 가치가 훼손될 수 있다.” ―이른바 ‘검수완박’법 위헌 논란에 대한 견해를 밝혀 달라. “헌법상 영장 신청권은 검사의 전속적 권한이다. 영장 신청권이 없는 수사권은 공허한 것이다. 그래서 검사의 영장 신청권을 무력하게 하는 수사권 독립이나 조정은 헌법 위반이라고 본다. 나는 경찰이 수사권을 확대하는 것에는 찬성하지만 그 전제는 개헌이다. 일각에서는 지금도 영장 신청권 자체는 검사에게 주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고 하는데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개헌을 해서 깨끗이 정리해야 한다. 헌법에 영장 신청, 기타 수사에 관해서는 법률에서 정한다는 식으로 하면 된다.” ―이 외에도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한 법 중에 위헌 소지의 법이 있나. “대표적으로 임대차 3법은 명백한 위헌이고 많은 사람들이 정말 고통받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 법을 안 고치고 있다. 야당이 제대로 견제를 해야 여당인 집권당이 정신을 차린다. 그래서 민주당이 제대로 가기를 바라는데, 선거에 왜 졌는지에 대해 전혀 반성이 없다. 부동산 정책 실패로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졌으면 ‘우리가 이런 점은 반성하고 꿈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정책을 하자’고 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것이 전혀 없고 아직도 국민 편 가르기 식으로 법안을 만들고 있다.” “바른말은 반대처럼 들려” ―현 정부의 정책을 헌법적 측면에서 어떻게 평가할 수 있겠나. “법인세를 낮추고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런데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도 살아야 할 것 아닌가. 지금 지나치게 경제적 강자 쪽으로 많이 기운다는 인상을 주는데 헌법에 경제민주화 규정도 있으니까 균형을 맞춰야 한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률이 물가상승률에 미치지 못했는데 이런 분야에서는 균형을 맞춰서 정책이 같이 가야 한다.” ―법치와 관련해 윤 대통령에게 조언할 말이 있다면…. “정언약반(正言若反)이라는 말이 있다. 바른말은 반대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뜻이다. 또 ‘자치통감’에는 군인즉신직(君仁則臣直)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직언을 하는 그룹이 반드시 곁에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사기’를 보면 처음에는 터럭만큼의 잘못이 나중에는 천 리의 차이가 나는 엄청난 재앙을 초래한다는 구절이 있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이석연 전 법제처장은…행정고시와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1989∼1994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으로 근무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시민과 함께하는 변호사들 공동대표 등 시민사회와 법조계에서 다양한 활동을 했고, 2008∼2010년에는 법제처장을 지냈다. 현재 법무법인 서울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출근길에 취재진과 다양한 문답을 주고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유독 말을 아끼는 분야가 있다. 국민의힘 당내 문제에 관한 질문이 나오면 “대통령은 국가의 대통령이지 무슨 당의 수장도 아니고” “당무에 대해선 대통령이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라며 입을 닫는다. 당내에서 벌어지는 ‘윤심(尹心)’ 논란을 피하고 싶다는 취지일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부여당에서는 ‘당정대(여당·정부·대통령실)’라는 명칭에서 ‘대’를 빼달라고 부탁하고 나섰다. ▷지난달 30일 국민의힘 출입 기자단에 당에서 보낸 단체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올바른 용어는 ‘당정대’가 아닌 ‘당정’ 협의회이므로 협조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다음 날에는 총리실에서 한덕수 총리의 일정을 소개하면서 “‘당정’으로 사용해 주시기 바란다(당정대X)”라고 썼다. 한 총리와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김대기 대통령비서실장 등이 참석하는 6일 회의의 명칭을 놓고 당과 정부가 언론에 잇달아 ‘협조 요청’을 한 것이다.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다. ▷‘당정협의’는 1963년 12월 민주공화당 김종필 당의장이 박정희 대통령 겸 총재에게 건의하면서 시작됐다. 이후 ‘당정협조에 관한 처리지침’이라는 국무총리 훈령을 통해 당정협의가 공식화됐다. 현재는 ‘당정협의업무 운영규정’이라는 총리령에 따라 행정 각부의 장이 법률안이나 예산안 등과 관련해 여당과 협의를 하고 있다. 지금도 특정 현안을 놓고 정부 부처와 여당이 만나는 회의는 당정협의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당정청’ 또는 ‘당정대’가 갑자기 나온 표현은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재임하던 2001년경부터 ‘당정청’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그 전까지는 대통령이 당 총재를 겸하면서 청와대 정부 여당이 사실상 한 몸이었지만, 여당의 내분으로 당정청이 분화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는 ‘11인회’, 이명박 정부에서는 ‘9인 모임’ 등 당정청 수뇌부 모임이 진행됐고 문재인 정부까지 당정청 회의가 이어졌다. 윤석열 정부에서도 지난달 안보점검 회의를 열면서 ‘당정대 협의회’라고 불렀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대통령실 이름을 새로 짓겠다면서 위원회를 만들고 공모를 진행했다. 하지만 5개의 후보를 정해 온라인 선호도를 조사하고 심의를 진행한 끝에 대통령실이라는 이름을 그냥 쓰기로 했다. 당과 정부 간의 회의 명칭도 마찬가지다. 인위적으로 이름을 정할 것이 아니라 참석자와 의제의 성격 등에 따라 ‘당정협의’든, ‘당정대 회의’든 자연스럽게 쓰면 된다. 대통령실이 당과 정부에 간섭하거나 개입하는 것을 줄이면 명칭을 놓고 이러쿵저러쿵할 일도 없을 것이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마음만 먹으면 즉시 홍콩으로 진격해 하루 만에 점령할 수 있다.” 1982년 9월 마거릿 대처 영국 총리를 만난 중국의 최고지도자 덩샤오핑(鄧小平)은 이런 위협을 서슴지 않았다. 당시 영국은 홍콩 반환을 꺼렸지만 덩샤오핑은 군사력 동원까지 언급하며 강경하게 밀어붙였고, 결국 2년 뒤 양국은 홍콩반환협정을 체결했다. 1997년 7월 반환 이후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를 유지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하지만 25년이 흐른 지금 홍콩은 반환 이전과는 전혀 다른 도시로 변했다. ▷7월 1일 홍콩 반환 25주년을 앞두고 중국과 홍콩 정부는 축하 분위기 띄우기에 한창이다. 홍콩 시내 곳곳에는 중국 오성홍기와 홍콩특별행정구 깃발이 내걸렸고, 도심 공원들에서는 꽃 축제가 열리고 있다. TV에서는 중국과 홍콩 정부가 힘을 합쳐 사스(SARS) 등 위기를 이겨냈다는 애국주의 드라마가 연일 방영되고 있다. 25주년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방문이 될 것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하고 있다. ▷반환 이전의 홍콩은 아시아인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국제 금융 허브이자 쇼핑과 관광의 중심지였고, 민주주의가 뿌리내린 자유로운 도시였다. 하지만 중국의 일부가 된 이후 모든 게 달라졌다. 중국식 권위주의 체제가 도입되면서 시민의 권리와 자유는 위축돼 갔다. ‘우산혁명’을 비롯한 시민들의 저항에 힘입어 제한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유지됐지만, 2020년 홍콩보안법 제정 이후 남아 있던 빛마저 사라졌다. ▷현재 홍콩 입법회에는 반중파 의원이 한 명도 없다. 당국의 심사를 거치고 충성맹세를 해야 출마가 가능하도록 선거법이 바뀌면서 민주 진영 출신은 씨가 마른 것이다. 지난달 90세의 조지프 젠 추기경을 외세결탁 혐의로 체포하는 등 홍콩보안법을 적용해 야권 인사들이 줄줄이 갇혔고, 핑궈일보 등 반중 성향 언론은 문을 닫았다. 지난해 1월 이후 12만 명이 넘는 홍콩인들이 영국으로 출국하는 등 탈출 행렬도 이어지고 있다. ▷“시 주석과 중국 지도부가 홍콩이 상징하는 바에 두려움을 느끼면서 상황이 나빠지고 있다.” 홍콩의 마지막 총독 크리스 패튼의 평가다. 시 주석은 장기 집권을 결정할 10월 당 대회를 앞두고 부패 척결을 외치며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이런 시점에 시 주석으로서는 민주화의 불씨가 살아나지 못하도록 홍콩을 확실히 장악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홍콩의 명물이던 해상 식당 ‘점보’가 최근 침몰한 것을 놓고도 “홍콩의 미래를 암시하는 것 같다”는 얘기마저 나온다. 암울한 시기를 겪고 있는 홍콩인들에게 더 많은 응원이 필요해 보인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재임 중 멕시코와의 국경에 장벽 설치,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 폭탄 등 민감한 현안들을 행정명령(executive order)으로 밀어붙였다. 행정명령은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령(시행령)과 비슷한데, 트럼프는 재임 기간 중 1년에 55건꼴로 행정명령을 쏟아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한 해 평균 35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37건의 행정명령을 내린 것에 비해 훨씬 많다. 이는 트럼프의 조급한 성격 때문에 벌어진 일만은 아니다. 하원을 야당 민주당이 장악한 상황에서 본인이 원하는 입법이 여의치 않자 행정명령을 남발한 것이다. 일부 이슬람 국가 출신 시민들의 입국을 제한하는 반(反)이민 정책이 대표적 사례다. 민주당이 이민법 개정에 반대하자 트럼프는 수차례 행정명령을 통해 강행했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입국 제한과 관련해서는 대통령의 권한을 제한하는 법안까지 발의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는 특히 국회가 여소야대일 때 행정부와 입법부가 충돌할 지점이 많아진다. 국회가 입법권이라는 무기를 손에 쥐고 정부를 견제하려 하면 정부는 시행령 제정으로 맞선다. 법의 체계상으로는 시행령이 법률의 하위 개념이지만 실질적 효력에서는 별 차이가 없는 데다 제정 절차가 간단해 더 신속하게 만들 수 있다. 한국에서도 윤석열 정부 들어 시행령을 둘러싼 정부와 국회 간의 갈등이 불거지고 있다. 정부가 시행령을 고쳐 법무부 산하에 인사정보관리단을 설치한 것을 놓고 국회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법에서 위임한 범위를 벗어났다”며 강력 비판하고 있다. 경찰을 행정안전부가 통제하는 방안도 시행령을 통해 추진한다면 야당의 반발이 더욱 커질 것이다. 이에 민주당에서는 국회가 행정부에 시행령의 수정·변경을 요청하면 행정부는 그 결과를 국회에 보고하도록 하는 법안을 내놨다. 시행령까지 국회가 좌지우지하겠다는 취지인데, 법률안에 대한 거부권을 갖고 있는 대통령이 수용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시행령에 대한 심사권은 대법원에 있다’는 헌법 조항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있다. 국회가 세부적인 내용들까지 모두 법률에 넣음으로써 아예 시행령을 만들 여지를 주지 않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행정적인 전문성이 필요한 영역까지 일일이 법률에 담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법원 판결로 시행령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지만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만 심사하도록 돼 있다. 국회와 법원을 통한 견제에 한계가 있는 이상 정부 스스로 위법 소지가 있는 시행령을 걸러내야 한다. 헌법과 법률에서는 그 핵심 역할을 국무회의에 맡기고 있지만 지금까지 국무회의는 사실상 통과의례에 그쳤다. 장관들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의중에 반하는 의견을 내는 것이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라면 굳이 매주 모여 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 국무회의에서 원칙대로 ‘심의’를 해서 시행령안이 부결되는 사례가 종종 나와야 한다. 정부가 비판에 귀를 닫은 채 무리하게 시행령을 제정하면 두고두고 논란의 불씨가 될 수밖에 없다. 소모적인 정쟁이 이어지고, 시행령의 적용 대상이 된 사람들은 효력을 놓고 소송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정부가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눈을 감는 것은 근시안적인 판단이다. ‘법 위의 시행령’이 낳은 부작용은 훗날 여론 악화, 국정 동력 약화라는 부메랑으로 정부에 돌아오게 될 것이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3월 초 러시아의 보스토크 남극 기지에서 잰 기온이 평년보다 15도 높은 것으로 나타났을 때만 해도 과학자들은 “측정이 잘못됐을 것”이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북극의 기온도 평년에 비해 3도가량 올라갔다는 조사결과가 나오더니 5월에는 인도 델리의 최고기온이 49도, 파키스탄 자코바바드는 51도를 찍었다. 이제 불볕더위는 서유럽과 북미 등으로 번졌다. “불타는 지구”(영국 가디언)라는 표현이 지나치지 않을 만큼 지구촌이 펄펄 끓고 있다. ▷록 음악 축제 ‘헬페스트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는 프랑스 서부 낭트의 광장에선 18일 곳곳에서 관람객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가려고 기다리는 줄이 아니라 몇 개밖에 없는 그늘 지대를 차지하려는 인파였다. 이날 낭트의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었고, 프랑스 남서부에선 최고 43.4도까지 올라갔다. 1947년 이후 가장 일찍 찾아온 폭염이었다. 40도가 넘는 더위가 덮친 스페인에서는 대형 산불이 잇따라 발생하고 있고, 독일과 스위스 등지에서도 연일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미국 기상당국은 지난주 미국 인구의 3분의 1이 거주하는 광범위한 지역이 폭염 영향권에 있다고 밝혔다. 고기압이 한 지역에 정체돼 뜨거운 공기가 갇히면서 기온이 급상승하는 열돔(heat dome) 현상 때문이다. 열돔 주변의 대기가 불안정해지면서 폭우, 토네이도 등 기상이변이 겹치고 있어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번 주에는 더위가 더 심해진다. 북부 평원 지역에 머물던 열돔이 동쪽으로 이동하면서 중부와 동부 일부 지역의 기온이 40도 가까이 오르는 가마솥더위가 예고됐다. ▷폭염은 동물들에게 더욱 가혹하다. 뉴질랜드에서는 영양실조로 숨진 펭귄 수백 마리의 사체가 떠밀려 왔다. 주변 해역의 수온이 올라감에 따라 펭귄의 먹이인 크릴, 멸치 등이 자취를 감추면서 벌어진 일이다. 스페인 남부에서는 칼새가 둥지를 튼 고층 건물 틈이나 지붕이 너무 뜨거워져 어린 칼새들이 떼죽음을 당했고, 미국 캔자스주에서는 2000여 마리의 소가 고온으로 폐사했다. ▷더 큰 문제는 폭염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영국 임피리얼칼리지런던의 기후전문가 프리데리케 오토가 “기후 변화는 폭염의 게임체인저”라고 지적한 것처럼 기온 상승을 막으려면 온실가스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여야 하는데, 2019년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1990년 대비 54%나 늘었다. “지금의 더위는 미래를 미리 맛보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세계기상기구(WMO)의 암울한 경고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호주인들은 2019년 말∼2020년 초를 ‘검은 여름’이라고 부른다. 호주 전역을 휩쓴 대형 산불로 짙은 연기가 끊이지 않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울 면적의 400배에 해당하는 산림이 불탔고, 호주인들에게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됐다. 그런데 산불이 급속도로 번지던 시점에 스콧 모리슨 호주 총리는 비밀리에 가족들과 함께 하와이로 휴가를 떠나버렸다. 이 사실이 알려진 이후 그는 두고두고 기후변화와 민생에 무관심한 총리라는 비판을 받았다. ▷21일 실시된 호주 총선을 앞두고 모리슨 총리가 이끄는 보수 성향의 자유국민연합은 중국과 안보에 캠페인의 초점을 맞췄다. 모리슨 총리는 야당 노동당의 앤서니 앨버니즈 대표를 ‘중국의 꼭두각시’라고 비판하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한 보수단체는 트럭에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사진을 걸고 다니며 ‘중국은 노동당을 원한다’고 선전했다. 코로나 사태 이후 군사·경제적으로 강경한 반중 노선을 걸었던 모리슨 정부의 정책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호주 ABC방송이 지난달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들은 가장 큰 관심사로 기후변화(29%)를 꼽았고 이어 생계비 문제(13%) 등 순이었다. 국방·안보라고 답한 국민은 4%에 불과했다. 기후변화 문제는 호주인들에게 미래가 아닌 현실이었고, 치솟는 물가와 경제적 어려움이 주 관심사였다는 얘기다. 결국 온실가스 43% 감축 등을 내세운 노동당이 총선에서 승리하면서 앨버니즈 대표가 새 총리로 내정됐다. 2013년 이후 8년여 만에 이뤄진 정권 교체다. ▷호주 언론들은 이번 총선 결과를 ‘다문화사회의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1788년 영국인들이 호주에 정착한 이후 줄곧 영국계가 호주 사회의 주류였고, 역대 30명의 총리 역시 모두 영국계였다. 하지만 호주는 이제 인구의 49%가 해외에서 태어났거나 부모 중 한 명이라도 해외 출신인 다문화사회가 됐다. 이런 변화 속에서 이탈리아계인 앨버니즈 대표가 121년 만에 첫 비영국계 총리에 오르게 됐다. ▷뉴욕타임스는 모리슨 총리가 사회 통합을 외면하고 우경화 정책을 고집한 것이 결정적 패인이라고 분석했다. 스스로 “나는 불도저 같은 측면이 있다”고 말하는 모리슨 총리의 권위적 통치 스타일도 유권자들의 반감을 샀다. 반면 앨버니즈 대표는 “혁명이 아닌 개선”을 외치며 안정적 변화를 원하는 표심에 호응했다. 빈민촌에서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역경을 극복하며 정치인으로 성장한 그의 인간 스토리도 승리에 한몫했다. 민심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는 사실을 호주 총선이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안녕하세요”라며 주문을 받는 직원 대신 ‘Self Order’라고 쓰인 키오스크가 서 있는 식당들. 노인들은 들어서는 순간부터 위축된다. 글씨도 작은 화면을 더듬더듬 누르다 보면 실수하기 일쑤다. 뒤로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면 머릿속이 하얘진다. 소셜미디어에는 “엄마가 키오스크 사용할 줄 몰라서 한 시간 만에 주문했다는 얘기를 듣고 울었다” “아빠가 햄버거 좋아하시는데 키오스크로 바뀐 뒤 한 번도 못 드셨다”는 글이 올라온다. ▷식당이나 마트, 영화관, 병원, 관공서까지 키오스크가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키오스크는 원래 음료나 신문을 파는 간이매점을 가리키는 말이지만, 정보통신에서는 터치스크린 방식의 무인단말기를 뜻하는 ‘일렉트로닉(Electronic) 키오스크’나 ‘디지털(Digital) 키오스크’를 줄여서 키오스크로 부른다. 특히 요식업계에 도입된 키오스크 숫자는 코로나 이전인 2019년에 비해 지난해에 4배가량 늘었다. 업주 입장에서는 인건비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울디지털재단의 설문조사 결과 서울에 거주하는 55세 이상 시민 가운데 키오스크를 이용해 봤다는 응답자는 절반이 되지 않았다.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는 ‘사용 방법을 모르거나 어려워서’라는 답이 약 3분의 1로 가장 많았고, ‘뒷사람 눈치가 보여서’(18%)라는 응답도 상당했다. 노인이 직원이나 다른 손님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그것도 모르느냐’는 식으로 퉁명스럽게 대해서 포기했다는 얘기도 종종 들린다. 이러니 키오스크에 대한 노인들의 공포는 커질 수밖에 없다. ▷고령층에게는 프로그램이나 앱을 설치하는 것부터 인터넷을 연결하고 쇼핑을 하는 것까지, 디지털 문화 전반이 낯설고 어렵다. 고령층의 디지털 사용 능력은 전체 평균의 3분의 2 수준이라는 조사 결과도 있다. 연령에 따른 디지털 디바이드 현상이다. 젊은이들이 인터넷으로 손쉽게 출력하는 주민등록등·초본을 떼기 위해 고령층은 주민센터를 방문해야 하고, 아파트 청약도 대부분 인터넷으로 이뤄져 난감하다. 고령층이 많은 지역에서 한 은행이 유인 지점을 폐쇄한다는 소식에 주민들이 반대 시위를 여는 일까지 벌어졌다. ▷요즘 중시되는 웰에이징(well-aging)의 주요 요소로 건강, 직업 등과 함께 디지털 능력이 꼽힌다. 디지털과 현실이 융합돼 가는 세상에서 노인들이 소외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정부와 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교육과 함께 세대 간의 공존을 위한 젊은층의 노력이 필요하다. 키오스크 앞에서 진땀을 흘리는 노인들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작은 호의가 그 첫걸음이 될 수 있다.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