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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왜 인기가 여전할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한 불출마 요구는 왜 힘을 못 받을까. 트럼프 승리를 점치는 여론조사가 미 대선을 1년 앞둔 지금도 계속되면서 나오는 질문들이다. 지난주 뉴욕타임스의 6개 핵심 경합 주(州) 조사에서 트럼프가 바이든을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다. 48% 대 44%. 트럼프가 조지아 등 5개 주에서 이겼고, 바이든은 위스콘신 1곳에서 체면을 차렸다. 6개 주는 3년 전 바이든이 모두 이겼던 곳이어서 민주당에 경고음이 더 커졌다. ▷트럼프는 전통적인 민주당 표밭인 흑인 히스패닉 3040 세대에서 지지를 키웠다. 흑인 유권자 22%가 그를 지지했다. 흑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 사회적 약자를 서슴없이 비하하던 트럼프를 떠올린다면 놀라운 수치다. 트럼프는 과거 대선 때 흑인 표를 8%(2020년), 6%(2016년) 얻는 데 그쳤다. 그런 흑인들이 마음을 바꿨다. 4%대 경제 성장의 과실이 돌아오지 않는다며, 바이든의 정책 부재를 문제 삼았다. 흑인 39%가 바이든 국정을 비판했다. 3년 전 바이든이 얻은 90% 몰표에 비춰 보면 격세지감이다. ▷트럼프는 안보를 더 잘할 것이란 이미지를 얻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등 2곳에서 전쟁에 개입하는 현실이 유리하게 작동했다. 그가 외교적 해법을 지녔다기보다는 체면 안 차리고 발을 뺌으로써 ‘세금 낭비’를 줄여줄 것이란 기대 때문이다. 바이든 백악관이 우크라이나 재건에 지원할 수십조 원 규모의 예산안을 제출하자 트럼프는 “재건할 곳은 거기가 아니라 미국”이라고 썼다. 찬성한다는 댓글이 끝도 없었다. ▷트럼프는 91개 혐의로 4차례 형사재판에 넘겨졌다. 뉴욕타임스 조사에서 응답자 54%가 “심각한 범죄”라고 답했지만 후보 지위에는 흔들림이 없다. 다른 공화당 후보들이 쓴 ‘트럼프 아류’ 전략 때문에 트럼프 유고(有故) 시 대안이란 느낌을 못 줬다. 트럼프는 바람을 피운 성인 배우에게 뒷돈을 준 혐의로 기소된 것도 “마녀사냥”이라며 이미지 세탁에 활용했다. 도덕적 비난은 가능하지만 과연 형사처벌 대상인지 미국인들이 의심하는 걸 파고들었다. ▷이쯤 되면 바이든을 향한 불출마 요구가 이어질 법도 하건만 움직임이 거의 없다. 신문에 “고령의 바이든은 한쪽 다리를 관(棺)에 걸치고 있다”는 표현까지 등장하는데도 그렇다. 오바마 백악관의 선임고문이 “바이든은 결단하라”고 썼지만 민주당 핵심부에서 반향이 없다. 오히려 공화당 쪽에서 백악관 안주인이었던 미셸 오바마(59) 구원 등판을 예상하고 있다. 변호사인 미셸은 정무직 경험이 없어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게 대체적 견해다. 수수께끼 같은 트럼프의 인기와 백악관의 침묵이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커졌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를 뽑는 경선에서 마이크 펜스 전 부통령이 지난 주말 중도 하차를 선언했다. 그는 사퇴 연설에서 “미국을 점잖게(with civility) 이끌 지도자를 뽑아 달라”고 호소했다. 공화당 경선 1위를 달리는 옛 상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저격한 것이자, 팬덤 정치에 일그러진 미국을 건드린 말이었다. 부통령 자격으로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에 왔고,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과 기념사진을 찍지 않기 위해 “일부러 지각했다”고 회고록에 썼던 그 펜스다. ▷점잖음, 정중함으로 번역될 수 있는 이 말(civility)은 펜스가 즐겨 쓰지만, 미국 SNS 정치에선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한 표현이다. 펜스는 이날 “우리 본성 안의 더 좋은 천사에 호소하는 정치인, 미국의 승리만이 아니라 점잖고 정중하게 이끌 정치인에게 나라를 맡기자”고 했다. 남북전쟁 발발 직전 미국인에게 외치던 링컨 대통령의 말을 인용한 것이다. 펜스의 눈에는 갈등 유발형 트럼프가 50%대 지지율로 앞서가는 현실이 남북전쟁 전야처럼 비쳤을지 모르겠다. ▷펜스의 트럼프 비판은 배신자 논란을 일으키곤 한다. 인디애나주에서 하원의원 12년, 주지사 4년을 지낸 펜스는 2016년 부통령 후보로 지명받았다. 뉴욕시 출신으로 여성 편력이 심한 부동산 재벌 트럼프 후보로선 그가 필요했다. “아내 캐런 외에는 여성과 일대일로 식사하지 않는다”는 이른바 ‘펜스 규칙’을 지킨 그는 잘 알려진 신앙인이자 신중함으로 트럼프의 빈 곳을 채울 인물이었다. 변방의 펜스가 누구 덕분에 전국적 인물이 됐는데 나를 비판하느냐는 것이 트럼프가 심어놓은 배신자 프레임이다. ▷결정적인 것은 2020년 트럼프의 대선 패배 직후 벌어졌다. 트럼프는 “부정선거였고, 나는 패배하지 않았다”며 부통령이자 당연직 상원의장인 펜스에게 의회의 선거 결과 승인을 막으라고 요구했다. 펜스는 거절하면서 “당신이 헌법과 민주주의 위에 있다고 착각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또 이 과정을 특별검사 앞에 진술했다. 반헌법적 요구라면 ‘정중하고도 당당하게’ 거절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겠다. 하지만 펜스는 배신자 덫에 걸려 지지율이 4% 선을 맴돌았다. ▷펜스가 점잖은 리더십을 지녔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SNS에서 소비되는 ‘재미있고 자극적인’ 짧은 동영상 정치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여기에 “바이든은 부정선거로 당선됐다”는 엉터리 주장을 믿는 공화당원이 80%대에 이른다는 몇몇 여론조사는 펜스가 설 자리를 더 좁게 만들었다. 그의 사퇴 소식에 공화당 후보들은 “원칙과 신뢰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트럼프만이 “정치인들은 매우 불충(disloyal)할 수 있다”고 깎아내렸다. 떠나고 남는 두 후보의 극명한 대비는 옳고 그름이 뒤엉킨 요즘 미국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뉴스의 형식은 갖췄지만 ‘조작 정보’와 오보는 명확히 다르다. 2016년 미국 대선 때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후보를 지지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WTOE5 TV라는 매체로 미국 지방 방송사의 하나처럼 보였다. SNS상에서 급속히 퍼져 갔지만 조작된 정보였다. 이런 방송사는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반면 멀쩡한 김일성이나 덩샤오핑(鄧小平)을 사망했다고 한 것은 오보로 분류된다. 정보 접근이 어려운 공산국가의 정보를 잘못 전해 들은 뒤 충분히 확인하지 못해 생긴 결과다. ▷정확한 이름, 정명(正名)을 쓰는 것은 본질 이해에 중요하다.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뉴욕타임스 회장 겸 발행인은 정치인들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치부해 버리는 것을 지적했다. 그는 그제 서울대 강연에서 “우리 신문은 가짜뉴스라는 말을 안 쓴다”며 “언론에 무례한 표현이고, 굉장히 음흉한(insidious) 말”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정보(misinformation)로 부르자고 제안했다. 의도적 조작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이름 붙이는 순간 뉴스라는 외피를 입게 되면서 언론의 공신력이 훼손된다는 걸 지적한 것이다. 가짜와 뉴스는 같이 쓰는 자체가 형용 모순이란 뜻이기도 하다. ▷19세기 중반 뉴욕타임스를 인수한 옥스-설즈버거 가문의 6대손인 그는 2017년 발행인에 취임했고, 이후 가짜뉴스 논쟁을 피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집권한 후 뉴욕타임스 CNN 등 주류 언론의 비판적 기사를 “가짜뉴스이니 관심 두지 말라”는 식으로 깎아내리고 있었다. 트위터(현재의 X) 횟수만 2년 동안 600번이 넘었다. 트럼프는 1930년대 독일 나치가 자신들의 선전 선동과 다른 기사를 보도하면 뤼겐프레세(Lügenpresse·거짓 언론)라고 몰아세웠던 그 방식을 가져다 썼다. ▷설즈버거 회장은 강연에서 “잘못된 정보의 시대를 맞아 저널리즘에 대한 불신이 생겼다”며 “언론에는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음모론과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는 현실 속에서 사실에 기반한 뉴스를 만드는 언론사의 영향력은 더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미래에는 온라인 콘텐츠의 90%를 인공지능(AI)이 만들게 되면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더 모호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놓았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에서 보듯이 의도적으로 만든 가짜 희생자 사진이나 폭발물 영상물이 생사를 가르는 사안에서 판단을 그르치게 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한 것이다. 설즈버거 회장은 “두 번 세 번 사실관계를 크로스 체크하고, (뉴스를 가진 힘 센 사람을 향해) 어렵고 불편한 질문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언론이 자기 자리를 지켜줄 때 오해와 혼돈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퇴장해 버린 건 목요일 밤 11시였다. 제도의 안정성을 중시하는 보수 대통령이 내정한 후보자답지 못했다. 장관 자격을 못 갖췄다는 견해가 늘었다. 놀라운 건 금요일의 침묵이었다. 야당과 언론이 “드라마틱 엑시트”라고 비판하는데도 김행 본인과 국민의힘 누구도 공개 발언을 삼갔다. 대통령실에선 금요일 아침 정무수석이 ‘저강도’ 우려를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도 이탈은 안 될 말이다. 청문회는 대통령실 정치력도 평가받는 자리 아니냐. 교체 건의를 미룰 일이 아니다”라는 취지의 발언은 없었다고 한다. 여의도와 국정에서 잔뼈가 굵은 이들의 집단 침묵이었고, 투표장에 가려던 지지층을 주저하게 만들었다. 대통령에게 고언을 못 한다고 비판하기는 쉽다. 하지만 실천은 말처럼 쉽지가 않은 걸 안다. 중고교 교무실, 구청과 군청, 크고 작은 기업 등 삶의 현장에서 우리도 겪어 봤다. 미국이라고 다를 게 없다. 존 볼턴 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은 3년 전 백악관의 권력투쟁, 도널드 트럼프의 일탈과 전횡, 본인의 속마음을 회고록(‘그 일이 일어난 방’)에 기록으로 남겼다. 워싱턴의 싸움닭 볼턴 자신도 트럼프 앞에서는 속마음과 달리 말했다. 트럼프의 어리석은 실수라고 책에서 묘사한 발언을 듣고도 면전에서는 제대로 말을 못 했다고 고백하듯 썼다. 대통령은 이런 불변의 속성을 뒤집어 봐야 한다. 보고와 조언이 ‘100% 진심’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A라고 답해야 하지만 B라고 말하게 되는 순간은 언제든 오고, 대통령은 까딱하면 참모와 멘토도 동의한 ‘우리의 생각’으로 오해할 수 있다. 인내하는 열린 귀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대통령이 이견을 언짢아한다는 말이 돌고 있다. 문재인의 버럭, 박근혜의 레이저 등 어느 대통령인들 이런 게 없었을까마는 참모들을 체념하게 만들 수도 있다. 이런 말이 더 퍼지면 대통령의 매력 자본을 갉아먹는다. 대통령이 매력적이지 않다면 내년 총선에서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표를 달라”는 호소가 먹힐까. 윤 대통령이라면 반론을 펴고, 항명에 가까운 결기를 보이는 참모를 좋게 평가할 것이란 짐작이 있었다. 오늘의 윤 대통령을 만든 것은 국정원 댓글 사건, 조국 수사였다. 살아있는 권력이 적당히 덮어줬으면 하는 것을 거부한 사건들이었다. 검사 윤석열은 ‘고위 공직자라면 손해 보더라도 이쯤은 해줘야 한다’는 민심을 충족시켰다.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한마디는 그를 대통령으로 밀어 올렸다. 이런 대통령은 용기를 내는 의원과 참모에게 다른 대통령들보다는 한 번 더 생각하고 배려할 법하다. 풍문은 반대로 돌고 있다. 대통령실은 윤석열 2.0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도어스테핑이 끝난 뒤 1년 가까이 중단된 취재기자 질문받기를 놓고 보자. 달라지려 한다면 기자회견은 최대한 빨리 재개해야 한다. 형식은 어때야 할까. 기자들에게 불편한 질문도 받는 정식 회견과 소수의 패널을 마주하고 둥글둥글한 질문을 받는 간담회 중 어느 쪽이 논의될지는 머잖아 드러날 거다. 상상해보자. 박근혜, 문재인 대통령이 그 시절 정면승부를 선택한 검사 윤석열에게 기자회견 방식을 묻는다면 어느 쪽을 건의했을지 궁금하다. 대통령실을 향해 대통령의 대화법을 바꾸라는 주문이 많다. 대통령은 지금보다 더 귀를 열고 집권당과 참모들에게 반대를 허(許)할 수 있을까. 권력 앞에서 할 일 하고, 할 말 하던 제2, 제3의 윤석열을 발굴해 곁에 두고 또 내년 총선에 공천할 수 있을까.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주 2가지 핵 협박을 들고 나왔다. 하나는 핵순항미사일 발사 성공을 알린 것이고, 다른 하나는 33년 만에 핵실험을 재개하겠다는 구상이었다. 푸틴은 “제정신이라면 러시아에 도전 못 한다”고 했다. 반(反)러시아 연대를 펴는 서방을 향한 으름장이다. 동계올림픽의 도시 소치에서 열린 행사장에서 무려 3시간 41분에 걸쳐 한 말이다. 발언 내용도 형식도 세상을 놀라게 했다. ▷푸틴이 꺼내 든 핵순항미사일(부레베스트니크·바다제비)은 미국도 중국도 보유하지 못한 기상천외한 무기다. 이 미사일은 주입한 연료를 태우며 날아가는 일반 추진체가 아니라 초소형 원자로를 품고 다닌다. 비행 사거리가 무제한에 가깝다. 오늘 발사해도 저공으로 날아다니다가 내년쯤 목표물 주변 방공망이 허술할 때 때리는 식이다. 순항미사일은 탄도미사일보다 비행 속도가 느리고 요격이 쉬워 덜 위협적인 것으로 여겼었다. 유엔이 북한의 탄도미사일만 제재한 것도 이런 이유다. 푸틴의 ‘바다제비’는 패러다임을 바꾸면서 ‘게임 체인저’로 불리게 됐다. ▷핵실험 재개 발언의 파장은 더 넓고 깊다. 러시아는 1990년에 먼저, 미국은 뒤따라 1992년에 핵실험을 중단했다. 핵실험이 더는 필요 없을 정도로 핵탄두를 쌓아놓았던 두 나라는 이때 포괄적 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맺었다. 하지만 2000년 의회 비준까지 마친 러시아와 달리 미국은 의회가 비준을 거부했다. 푸틴은 이 점을 거론하듯 “러시아는 더 공정한 세계를 만들겠다”고 했다. 조약이 휴지조각이 되면 북한 핵실험을 규탄할 근거는 줄어들게 된다. ▷러시아의 핵확산 공갈은 처음이 아니다. 푸틴은 러시아, 우크라이나와 국경을 맞댄 불량국가 벨라루스에 러시아 핵무기를 옮겨놓겠다고 선언했고, 6월 이후 실제로 옮기기 시작했다. 핵확산방지조약(NPT)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고, 냉전 종식 이후 핵무기의 제3국 이전은 전에 없던 일이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작년부터 “러시아가 실존적인 위협에 처한다면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하곤 했다. ▷전문가들은 푸틴의 미치광이(Madman)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나 푸틴은 광기에 휩싸여 정상 대화가 어렵다. 내가 바라는 걸 쥐여줘야 한다’고 생각해 달라는 것이다. 50년 전 베트남전쟁을 끝내고 싶은 닉슨 미국 대통령이 썼던 방식이다. 실제로 푸틴은 광기 어린 발언과 이성적 발언을 뒤섞고 있다. 지난주에도 “핵무기란 국가 존립을 위협당할 때 방어적으로만 쓴다”는 핵 독트린을 바꿀 뜻이 없다고 했다. 핵실험금지조약 비준 파기, 핵 어뢰와 미사일 실험 지속, 시베리아 핵실험 등 러시아 전문가들이 꼽는 ‘미치광이’ 시나리오는 끝이 없다. 위험천만한 푸틴을 전 세계는 당분간 지켜보기만 할 수밖에 없게 됐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국무위원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 도중 사라지는 전례 없는 일이 벌어졌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는 그제 오후 10시 50분 일시 정회가 선포된 뒤 청문회장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러자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권인숙 여성가족위원장은 어제 이틀째 청문회를 열었으나 여당 의원들은 “합의한 적 없다”며 불참했고, 김 후보자는 종일 연락이 닿지 않았다. 청문회 파행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의정사에 청문회 도중 ‘후보자 실종’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남기게 됐다. ▷주가조작 논란이 발단이었다. 주가조작에 연루된 회사에 후보자가 한때 사외이사로 등록됐다는 점을 야당이 지적하자 후보자는 “알지 못하는 일로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다.…차라리 고발하라”며 반박했다. 공방이 반복되자 권 위원장은 “그런 태도를 유지할 거면 본인이 사퇴를 하든가”라고 했고, 국민의힘 의원들은 “위원장은 중립을 지키라”며 퇴장했다. 고성 속에 “10분간 정회”가 선포되자 김 후보자는 자료를 챙겨 떠났다. 청문회는 다시 열렸지만 후보자 없이 오전 1시가 넘어 끝났다. ▷김 후보자가 청문회 절차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않은 것은 적절치 않다. 야당의 의혹 제기가 타당했는지와는 별개로 국회 청문회라는 제도와 절차를 존중해야 하는 것은 국무위원 후보자의 기본에 속한다. 게다가 김 후보자는 파행 이튿날인 어제 어떤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그는 여가부 폐지를 두고 “드라마틱하게 엑시트(극적인 부 폐지)” 하겠다고 했는데, 청문회장 이탈이야말로 드라마틱한 엑시트(전에 없던 중도 이탈)라 해도 할 말이 없는 것 아닌가. ▷“다 답변하겠다”던 10년 전 백지신탁 논란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다. 소셜뉴스(위키트리 운영사) 창업자인 후보자는 박근혜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됐었다. 그때 이해충돌이 큰 인터넷뉴스 주식을 정부에 백지신탁해 제3자에게 매각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는 공동창업자와 시누이에게 주식을 사적으로 팔았고, 7년 뒤 되샀다. 이 주식 가치가 110억 원으로 늘었다. 하지만 “법 조항은 안 어겼고, 지금 다시 생각해도 (지인에게) 매각 그 방법밖에 없었다”는 식의 답변만 되뇌었다. 그의 인터넷뉴스가 선정적이고 여성 혐오를 담은 보도로 클릭 수를 늘려 돈을 벌었다는 지적이 나오자 “나도 부끄럽지만 이게 대한민국 언론의 현실”이라는 엉뚱한 해명을 내놓기도 했다. ▷이번 청문회 파행으로 ‘청문회 무용론’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김 후보자는 자료를 충실히 내지 않았고, 의원들 질문에는 동문서답과 긴 설명으로 피해 갔다. 의원들끼리의 고성과 말싸움도 빠지지 않았다. 청문보고서 채택에 여야가 합의하지 못한 채 장관급으로 임명된 인사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만 17명이다. 그러다 여야 대치 끝에 청문회 중도 포기라는 초유의 일까지 봐야 하는 지경이 됐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상원의원 선거 7전 7승, 부통령 선거 2전 2승, 대통령 선거 1전 1승. 화려한 정치 역정을 만들어 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80)이 궁지에 빠졌다. 고령과 건강 문제로 지지율 하락에 시달리고 악재들도 터져 나오고 있다. 지난주 1주 동안에만 불출마 압박이 2곳에서 공론화됐고, 둘째 아들이 기소됐고, 실현 가능성과 관계없이 공화당은 탄핵 절차를 시작했다. 말 그대로 사면초가다. ▷바이든의 불출마를 공개 요구한 이는 ‘40년 지기(知己)’인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다. 그는 지난주 “3년 전 도널드 트럼프(77)의 재선 저지가 바이든의 큰 업적인데, 출마했다가 지면 물거품이 된다”는 취지의 칼럼을 썼다. 사석에서 수군거릴 이야기를 워싱턴 정치에서 공론화한 순간이다. 바이든 지지를 사설로 밝혀 온 뉴욕타임스도 향후 기후변화 정책을 다루면서 “두 번째 임기가 있다면(if he gets one)”이란 표현을 큰 제목에 넣었다. 100% 출마할 것으로 본다면 쓰지 않았을 표현이다. ▷밋 롬니 상원의원(76)의 불출마 선언도 나왔다. 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맞붙은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그는 바이든과 트럼프 후보에게 자신과 함께 정치를 떠나자며 ‘새로운 세대’의 등장을 주문했다. “(우리 같은) 80대 정치인은 인공지능 기후변화를 정확히 이해 못 한다”고 말했다. 미국은 젊은 나라다. 미국인 3억4000만 명을 한 줄로 세울 때 중간에 해당하는 나이는 39세로, 한국(43세) 일본(49세)보다 젊다. 하지만 유독 정치에는 고령자가 많아 유권자의 불만이 나오곤 한다. 미국 상원의원 평균 나이는 64세로 한국 국회의원 58세보다 높다. ▷아들 헌터 바이든이 특별검사 손에 기소된 것도 지난주다. 5년 전 마약중독 사실을 숨기고 총기를 매입한 혐의다. 총기 규제를 강화하며 트럼프를 비판해온 바이든 대통령은 정치인으로서, 아버지로서 타격을 받았다. 헌터가 사업 상대방과 식사하면서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어 바꿔주는 방식으로 영향력을 키운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 하원이 대통령 탄핵조사를 시작한 것도 그가 아버지의 재임기간 동안 외국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이 사유가 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겉으론 재선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내년 대선자금 모금행사에 참석하고, 트럼프의 경제 정책을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하지만 누가 그 속마음을 알까. ‘나는 트럼프를 이길까, 내가 불출마하면 누가 민주당 후보일까. 그는 트럼프를 꺾을까….’ 현직 대통령이 존재하는 민주당에선 대선 도전의 뜻을 밝힌 유력 정치인이 사실상 전무하다. 바이든이 불출마를 선언한다면 경선 일정을 고려할 때 연말 이전일 수밖에 없다. 미국 정치는 바이든의 결심이 최대 관심거리가 되는 길로 이미 접어들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50년 넘는 정치 역정을 통해 선거에서 패배한 적이 없는 정치인이다. 부통령 8년, 상원의원 36년을 지냈다. 그런 그가 대통령 재선 도전을 선언했지만 위기에 처했다. 지난주 CNN 여론조사는 오히려 유권자들이 바이든을 ‘약체 후보’로 여긴다는 것을 보여줬다. 응답자의 48%는 “공화당에서 누가 나와도 바이든을 이긴다”고 답했다. 소속 정당인 민주당 지지층의 67%는 내년 11월 대선 때 바이든이 아닌 제3자를 후보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렇다 할 경쟁자가 없는데도 이런 응답이 나왔다. ▷갈 길 바쁜 바이든을 괴롭히는 것은 80세라는 고령과 건강이다. CNN은 전화 조사에서 “바이든이 체력(stamina)과 정교한 판단력(sharpness)을 갖췄는가”라는 질문을 넣었다. 3월 처음 등장했는데, 굴욕적 질문이다. “갖췄다”가 26%, “못 갖췄다”가 74%라는 답변도 놀랍다. 올여름 상원 공화당 1인자인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81)가 회견 중에 30초간 멍하게 굳어버린 일이 건강 위기론에 불을 지른 셈이다. ▷공화당에선 트럼프가 과반 지지를 얻으며 1위를 달리고 있다. 플로리다 주지사, 30대 억만장자 사업가가 당내에서 10%대 지지로 2위권을 형성했지만 “트럼프는 좋은 대통령”이란 평가를 내놓는 ‘트럼프 아류’에 가깝다. 이런 분위기 속에 미국 경제는 성장률, 물가, 일자리 지표가 좋아졌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지지는 오를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미국 대선은 2차대전 이후 경제가 승부를 갈랐는데, 내년에는 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생겨나고 있다.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이 50%를 오르내리는 시점에 미 대통령 기념재단·센터 13곳은 전에 없던 공동성명을 냈다. 1930년 전후 대공황기에 대통령을 지낸 허버트 후버 기념도서관부터 오바마 대통령 센터까지 참여해 “미국은 민주주의와 법치에 기반한 나라”라며 “정치에서 예의와 존중은 필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선출된 공직자는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발표했다. 이름만 안 썼을 뿐 트럼프의 일방주의적이고 무례한 정치를 비판한 것이었다. ▷바이든의 위기는 트럼프에겐 기회다. 트럼프는 대통령 시절 미국이 왜 미국의 세금을 써가며 남의 나라 안보를 지켜줘야 하느냐고 질문해 왔다. 그런 트럼프가 당선되면 한국을 포함하는 동맹·우방국들의 대외정책은 큰 혼선을 빚을 수 있다. 중국과 막 시작한 신냉전과 러시아의 침략전쟁은 어떻게 전개될지 점치기 어렵다. 4년 전 실패했던 북핵 ‘외교 리얼리티 쇼’를 시도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정례화한 한미일 3국 협의체와 미국의 핵협의그룹(NCG)은 기획한 대로 가동될 거란 보장이 없다. 우리 정부에는 바이든 외교에 집중하는 동시에 트럼프 ‘시즌2’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할 이중과제가 주어졌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조 바이든 대통령이 승리한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TV토론이 열렸다. 사회자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백인 우월주의 단체나 무장단체를 향해 폭력 시위를 중단하라고 당부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어느 단체를 거론하라는 말인가”라고 운을 뗀 뒤 “프라우드 보이스여. 몇 걸음 물러나 기다리고 있으라(Proud Boys. Stand back and stand by)”고 말했다. 질문도 이례적이었고, 그런 질문에 단체 이름을 댄 답변도 매우 낯설었다. ▷미국 법원이 바로 그 트럼프 지지 그룹 ‘프라우드 보이스’의 지도부 2인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모두 30대 후반인 피고인 조 비그스, 재커리 렐은 2년 전 이 단체 소속원들의 의사당 난입 사건을 주도한 혐의로 각각 징역 17년, 15년을 선고받았다. 난입 며칠 전 트럼프는 과격 지지자들을 향해 “1월 6일 워싱턴 시위에 오라. 매우 거칠(wild) 것이다”라고 선동했고, ‘프라우드 보이스’ 회원들은 “자유 미국인으로 살자. 네 무기를 갖고 와라”는 글을 돌렸다. ▷사건 수사와 재판이 2년을 넘기면서 미국 방송의 의사당 현장 촬영 영상, 경찰의 채증 촬영물, 두 피고인이 트위터에 올린 영상물은 인터넷에서 어렵지 않게 검색할 수 있다. 영상 속 두 사람은 확신범이었다. 바이든 당선을 의회가 선포하는 날에 맞춘 습격을 제2의 독립전쟁으로 불렀다. 난입 전날에는 “복면을 쓰고 가자. 트럼프는 역시 최고의 지도자다”라며 선동했다. 카메라에 찍힌 렐은 경찰 여럿의 얼굴에 화학물질 스프레이를 뿌렸다. ▷트럼프를 폭력적으로 지지했던 두 사람은 법정에서 후회한다며 흐느꼈다. 비그스는 “그날 군중심리에 휩쓸렸다. 평생 후회하면서 살겠다”며 선처를 호소했고 “나는 테러범이 아니니 딸아이를 만나게 해 달라”고 애원했다. 렐 역시 “정치에 질려버렸다. 나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는 누군가를 위해 거짓을 퍼뜨리는 것도 이젠 마지막”이라고 쓴 최후 진술문을 읽었다. 읽는 도중 번번이 눈물을 훔쳤다. 1심 법원은 이들에게 관용을 베풀지 않았다. ▷의사당 폭력엔 여러 트럼프 지지 단체가 개입했다. 전국에서 1100명이 체포됐고 630명이 기소됐으며 110명이 이미 유죄 판결을 받았다. 최악의 민주주의 파괴 범죄였지만 이들을 이용한 트럼프는 건재하다. 4차례 기소되면서 머그샷을 찍는 굴욕을 겪었지만 여전히 압도적인 공화당 대선 후보 1위를 지키고 있다. 판결 보도가 나온 뒤 하루가 지나는 동안 트럼프는 일절 반응이 없다. 이런 역설을 트럼프는 어떻게 설명할지 궁금하다. 선동하는 정치인, 휩쓸려 추종하나 위기의 순간은 홀로 견뎌내야 하는 극렬 지지자. 이런 관계가 만드는 비극은 동서고금 어디서건 반복되지만 교훈은 잘 전파되지 않고 있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2주 가까이 불타고 있는 하와이는 ‘X의 섬’이 됐다. 8일 새벽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시작된 산불 3개가 휩쓸고 간 마을들을 소방·구조대원 수백 명이 수색하고 있다. 수색을 마친 주택과 건물 벽에 주황색 스프레이로 X 표시를 하나씩 하고 있다. 그 X 표시가 2000개를 넘어서 마을을 뒤덮었다. 20일 현재 사망자는 114명이다. ▷하와이주는 1인당 소득이 5만 달러를 넘는다. 하나의 국가로 간주한다면 독일과 네덜란드 사이쯤 되는 부국(富國)이다. 그런 곳에서 목격된 산불 초기 대응을 보면 미스터리(X)가 하나둘이 아니다. 제주도 크기인 마우이섬은 상주 인구 16만 명에, 고급 리조트를 찾는 관광객이 넘치는 휴양지다. 소방대원은 모두 65명. 소방차가 13대, 사다리차는 2대뿐이었다. 소화전 수압이 낮아 초기 진화에 애를 먹었다고 했다. ‘여기가 미국이 맞나’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화재 직후 대피 사이렌도 울리지 않아 고개를 가로젓게 된다. 일본의 진주만 공습 악몽 이후 옥외 사이렌을 설치해 왔고, 지금은 80개나 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마우이섬 재난·방재 책임자는 “사이렌을 울렸다간 쓰나미 경보로 오인한 주민들이 (불이 난) 산 쪽으로 피할까 걱정해 그랬다”고 말했다가 하루 만에 물러났다. 홈페이지에는 “산불과 쓰나미를 위해 사이렌을 가동한다”고 적혀 있었다. 산불과의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꾼 것도, 사흘이 지난 지금까지 후임자 지명을 않는 것도 재난대응의 ABC가 맞는지 의문이다. ▷초기엔 미지수(X)였던 화재 원인은 발화 지역의 조류보호센터 보안 카메라 영상이 공개되면서 윤곽이 잡혔다. 어둠 속에 튄 섬광이 촬영된 것이다. 당시 하와이에는 허리케인 ‘도라’의 영향으로 시속 100km의 강풍이 불었다. 강한 바람에 나무가 쓰러져 송전선을 건드렸거나, 송전선이 바람에 끊기며 불똥이 바짝 마른 나뭇가지에 옮겨붙었을 것이란 추정이 유력해졌다. 매년 봄 우리가 겪는 백두대간 산불과 흡사하다. 더운 여름과 따뜻한 겨울만 존재하는 하와이는 지금(5∼10월)이 건기다. ▷하와이는 탄식의 섬이 됐다. 휴대전화가 되살아나면서 연락이 닿아 실종자가 줄었다지만 여전히 1000∼1200명이나 된다. 불에 탄 시체도 신원 확인에 애를 먹고 있다. 통상 치아나 지문을 통해 신원을 확인하지만 치과 진료 기록도 불탔고, 시신 훼손이 심해 지문 채취도 어렵다고 한다. 현지에선 불에 탄 마우이를 두고 “9·11테러 직후 같다”고, 잿더미 때문에 “흑백사진 같다”고 말한다. 마우이섬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 마음도 새까맣게 탔을 것이다. 지금 그곳에는 우리가 아는 하와이는 없다. 자연이 만들고 인재(人災)가 키운 재난이 이렇게 무섭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 후보로 유력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4번째 기소됐다. 3년 전 대선 때 ‘조지아에서는 트럼프가 이겼다’는 허위 발표를 만들어내기 위해 조지아주 국무장관을 압박했다는 등 혐의만 13가지다. 조지아주 검찰은 마피아 소탕을 위해 만들었던 특별법(RICO법)을 꺼내 들었다. ▷이 특별법은 마피아 두목을 잡기 위해 1970년 처음 제정됐다. 범죄를 뒤에서 실제 조종하면서도 증거 부족으로 처벌을 받지 않는 범죄단체 두목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을 때였다. 특별법은 정식 범죄조직은 아니더라도 사실상의 결사체(enterprise)를 만든 1인자를 가중처벌하도록 했다. 근년 들어선 내부자 거래 등 금융인 여럿이 연루된 범죄에도 적용됐다. 조지아주 검찰은 트럼프와 그의 백악관 비서실장 등 19명을 조지아 대선에 개입한 결사체로 봤다. 유죄가 확정되면 5∼20년 형이 예상된다. ▷공소장에 따르면 트럼프는 2020년 대선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조지아주 국무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1만1780표를 찾아내라고 압박했다. “내가 1만1779표 차이로 졌다고 집계됐다지만 부정한 표가 많다. 가짜 서명이 수십만 개 나왔다”고 말했다.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 국무장관은 “재검표를 3번 했다. 당신은 이기지 못했다”고 답했다. 트럼프는 결국 지지자들을 선동해 ‘바이든 당선 확정’을 발표하는 날 의사당에 난입하도록 했다. ▷4차례 형사재판에 회부됐지만 트럼프는 공화당 내 1위 후보다. 뉴욕타임스가 의뢰한 7월 조사에서 그가 54%를 얻었을 때 2위 후보는 17%에 그쳤다. 1급 핵 군사기밀 유출(두 번째 기소), 부정선거설 유포 및 부통령 회유·압박(세 번째 기소) 혐의가 심각해 보이지만 지지율은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당선된다면 첫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에게 “두 번째, 세 번째 기소를 취소하라”고 명령할 것이란 예상이 요지부동 지지율의 배경이다. 하지만 네 번째 기소는 사정이 다르다. 연방 법을 적용한 앞선 기소와 달리 조지아주 법에 따른 것이어서 대통령에겐 사면권이 없다. ▷트럼프는 8월 말 조지아주 법원에 출석하라는 통보를 받았으니 재판은 이미 시작됐다. 이렇듯 대선 유세지와 법정을 오갈 트럼프가 마주한 혐의들을 떠올리면 착잡하다. 그가 자유 진영의 리더가 다시 될 가능성이 작지 않아 그렇다. 트럼프는 유엔,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 등 다자안보 협력체에서 존중받을까. 오늘 시작하는 한미일 3국 정상회의는 어떻게 운용될 것이며, ‘마피아 두목’ 꼬리표에 중국 러시아 북한은 어떻게 반응할까. 지금의 바이든 대통령과 달리 글로벌 역할을 줄이는 고립주의가 트럼프 1기의 외교 기조였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오성규 애국지사가 오랜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그제 영구 환국했다. 마지막 재일(在日) 광복군이자 독립유공자인 그는 “일본에서 죽을 수는 없다. 자기 나라서 죽어야지”라며 조국행을 선택했다. 1923년생으로 올해 100세인 오 애국지사는 10대 후반에 중국에서 광복군 제3지대(支隊)에 입대했다. 1945년 미군의 도움으로 한미 특수훈련을 받고 국내 진격을 준비하다 광복을 맞았다.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고, 생존하는 독립유공자 9명 가운데 1명이다. ▷귀국 소망은 해방 후 조국 땅을 밟지 못했던 아픔에서 시작됐다. 그는 해방 후 중국에 남아 광복군 상하이 특파단원으로 활동했다. 그러다 일본에 정착해 재일 교포를 위해 일했다. 2018년 아내와 사별한 뒤에는 환국의 뜻을 더 세웠다고 한다. 그의 귀국 과정은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어른에게 조국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확인시켜주는 기회였다. ▷그가 탄 귀국 항공기는 기내 방송으로 애국지사의 탑승 소식을 알리는 예를 갖췄다. 공항 입국장에서는 어린이 합창단이 “조국의 영예를 어깨에 메고…”로 시작하는 광복군 제3지대 노래를 불렀다. 청년 오성규가 중국 땅에서 배고픔 설움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부르고 또 불렀을 노래다. 오 애국지사는 80년 뒤 이런 순간이 올 줄 상상이나 했을까. 그는 “감개무량해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오 애국지사는 제일 먼저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찾았다. 자신의 상관이었던 광복군 제3지대장 김학규 장군 묘소에서 감격 어린 거수경례를 했다. 그는 “그동안 찾아오지 못해 죄송합니다”라고 안부를 전했다. 오 애국지사는 1940년대 베이징에서 광복군 창설 소식을 듣고 충칭까지 2000km를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새롭다. “짚신이 터져 발에서 피가 났다”는 회상도 했다. 그날 묘역에는 뜻깊은 태극기가 걸렸다. 통상의 태극기 옆에 광복군 제3지대 2구대에서 활동하던 병사가 1946년 이후 간직해 오던 태극기를 그대로 본뜬 것을 게양했다. 태극과 4괘 사이로 “피흘림 없는 독립은 값없는 독립이란 것을 자각하자” “백전백승” 등이 씌어 있다. 나라 없는 병사들의 피 끓는 다짐이 눈에 선하다. ▷오늘로 광복 78년을 맞았다. 힘없어 빼앗긴 나라를 되찾고, 온 국민이 힘을 모아 어려움을 딛고 나라를 일으킨 것이 자랑스러운 세월이다. 힘을 되찾았기에 오 애국지사처럼 자기를 버릴 각오를 세운 어른을 기억할 수 있게 됐다. 오 애국지사는 오늘 광복절 경축식에 귀빈으로 참석한다. 100세 나이에 조국의 품을 되찾은 그의 삶에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후대에게 알리고 기억하도록 해야 한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위원장이 그제 “미래가 짧은 (노인)분들이 왜 (청년들과) 1 대 1 표결을 해야 하느냐”며 평균수명까지 남은 생애에 비례해 투표권에 차등을 두자는 취지의 말을 했다. 청년 좌담회 자리에서 “중학생이던 아들이 왜 나이 든 사람들이 우리 미래를 결정하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며 꺼낸 말이다. 이어 “되게 합리적”이고 “맞는 말”이라고 했다. 청년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는 차원에서 한 말이었고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단서를 달았지만, 부적절했다. 헌법 원칙에도 안 맞고, “1인 1표로 한다”는 공직선거법 146조와도 충돌한다. ▷숫자로 해석하자면 이렇다. 평균연령을 80세로 가정해 보자. 여생이 30년인 50세 유권자에게 1표가 주어진다면 60년 남은 20세 청년은 비율대로 2표를 주자는 것이다. 15년 남은 65세에겐 0.5표만 주어진다. 청년들의 투표 참여를 강조한 것이라 해도 선뜻 납득하기 힘든 논리다. 재산 성별 종교 피부색을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1표’ 원칙을 위해 희생을 치른 보통선거의 역사를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국민의힘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에서조차 비판이 나왔다. “나이로 차별 말라는 것이 헌법 정신”(이상민) “지독한 노인 폄하”(조응천)라는 지적이었다. 주로 김 위원장의 ‘친명 행보’를 비판해온 비명계 의원들이 나섰다. 민주당이 걱정하는 데는 연원이 있다. 과거 정동영, 유시민, 김용민처럼 잘 알려진 당내 인사들이 고령층의 정치 참여를 비꼬는 말을 하는 바람에 당은 홍역을 치렀고, 선거에서 손해를 많이 봤다. ▷김 위원장은 이후 침묵을 선택했다. 그런데 친명계인 양이원영 의원이 “김 위원장의 말이 맞다”고 가세하는 바람에 논란이 더 커졌다. 그는 SNS에 “지금 투표하는 많은 이들은 미래에 살아있지도 않을 사람들”이라고 썼다. 김 위원장의 문제적 발언은 고령의 유권자들은 후손들을 위한 긴 안목 없이 투표권을 행사한다는 걸 전제로 한다. 동의할 수 없다. 행사장에 온 눈앞의 청년들만 생각했을 뿐 자기 발언의 파장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한 발언 아닌가. ▷정당의 내부 선거는 1인 1표가 아닌 경우가 있다.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공직선거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정치 신인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당비를 내는 권리당원에게는 평당원보다 투표권을 더 주는 경선 제도가 상당 기간 지속돼 왔다. 김은경 혁신위는 내년 총선에 적용할 당내 경선 룰도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밝힌 상태다. 김 위원장은 청년 민주당원이 고령 당원보다 더 많은 표를 행사하는 ‘되게 합리적’인 경선 룰을 소신대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또 당내 토론이 시작됐을 때 양이원영 의원은 SNS 글처럼 고령의 민주당원에게 ‘청년과 달리 1표를 다 드릴 수 없다’고 설득할 수 있을까.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들어본 적도 없는 나라 ‘코리아’를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 청춘을 바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한국전쟁 참전 16개국의 노병을 만나보면 ‘자유의 가치’처럼 추상적인 말을 먼저 꺼내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군화 속 땀이 얼면서 생긴 동상(凍傷), 기어다니던 논바닥,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민둥산처럼 몸이 기억하는 것이 먼저였다. 총알이 빗발칠 땐 1인칭 부조리극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동아일보가 한 인터뷰도 그랬다. 스탠 벤더 미 해병대 병장(당시 계급)은 적군을 처음 쏴 죽였을 때의 구토를 떠올렸다. 윌리엄 웨버 대위는 “부하가 총에 맞으면 눈이 뒤집혔고, 살기 위해 방아쇠를 당겼다”고 말했다. 본능과 야수성에 압도당했던 기억이었다. 영국군 테드 로즈 이병은 임진강 전투 때 중공군에게 포위된 뒤 탄약 한 발, 빵 한 조각 남지 않은 보급 창고의 절망을 말했다. 한국전쟁은 크게 보면 냉전 초기 공산 팽창주의의 산물이지만, 자세히 보면 개인적 전투가 모여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다. ▷우리 국군과 함께 사선을 넘었던 참전국 장병이 아니었다면 현대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짐작하기 어렵다. 해외 참전국 용사들이 27일 정전협정 70주년을 앞두고 한국 땅을 다시 밟았다. 국가보훈부가 초청한 장병 64명과 가족들은 판문점을 방문하고, 동료 전사자를 모신 부산 유엔기념공원 묘역을 참배한다. ▷한국전쟁은 ‘잊혀진 전쟁’이었다. 해외 참전국에서 3만7886명이나 목숨을 잃은 탓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전쟁이 됐다.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에 온 사회가 애통해하는 점은 그때라고 다르지 않았을 텐데, 참전국과 가족들은 조국의 부름에 응한 젊은 영웅들을 고통 속에 품어냈다. 한국에 온 노병들은 그렇게 지켜낸 대한민국의 오늘을 확인하고는 나의 작은 전투가 만든 결과에 감격하고 있다. 참전 명령을 듣고 지도를 펼쳐 보고서야 코리아의 존재를 알았을 그들 아닌가. 굶주리고 냄새나던 한국 땅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인천공항 도착 때부터 목격했다. ▷방문한 용사 가운데 가수가 된 2명은 아리랑을 함께 부른다. 80대 후반 나이에 영국 오디션대회(‘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최고령 1위를 차지한 콜린 새커리와 트리니다드토바고의 국민가수가 된 로버트 넬슨이 그들이다. 새커리는 한국군이 부르던 서글픈 아리랑을 한국의 국가로 알고 따라 부르며 배웠다고 했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중략) 나를 버리고 가시는 임은/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한국전쟁은 자유진영과 함께 치른 전쟁이었다. 자유진영은 갓 태어난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았던 임이었다. 이제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임이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나라들이 생기고 있다. 70년 기적의 결과다.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천안함이 북한 어뢰에 폭침됐다는 걸 민주당은 왜 믿게 됐을까. 이래경 혁신위원장 파문이 빚어지자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북한의 소행이 맞다”고 했다. 공개발언을 해야 할 정도로 민주당은 의심받았다. 당직자들도 TV에 나와 “북한이 그랬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어떤 팩트 또는 정황 때문에 민주당이 생각을 새롭게 한 것인지는 들어본 적이 없다. 2010년 이명박 정부의 결론은 북한 소행이었다. 영국 스웨덴 등 해양강국의 해군까지 참여시킨 국제조사였다. 민주당 그룹은 인정하지 않았다. 박지원(“하필 1번 글씨가 뚜렷하게 나타나는지 의문”) 박영선(“미군 핵잠수함 오폭설이 있는데 대응책이 있느냐”) 박선원(“북한에 당했다기보다는 우리 사고가 아닌가”)의 발언이 있었다. 박근혜-문재인 대선 때 공보물에는 “천안함 침몰”이라고 인쇄했다. 어뢰 때문인지 좌초 때문인지 모호했다. 당 전체의, 대선후보 문재인의 선택이었다. (요즘 당 일각의 해명은 “선거 공보물을 일일이 확인 못 한 불찰”이었다.) 달라지는 데 5년 걸렸다. 문재인 대표가 2015년 ‘천안함 폭침’이란 말을 처음 썼다. 총선 1년 전으로 “문재인은 안보에 강하다”는 메시지를 만들 때였다. 피격 직후의 충격과 흥분이 가라앉은 그 시절 민심은 북한 소행을 의심하는 걸 용납지 않았고, 천안함 좌초설을 재판한 법원도 “북한 어뢰에 폭파됐다”고 결론 내리던 시절이었다. 이토록 민감한 사안이건만 민주당은 여론과 선거 이미지 전략에 따라 생각을 어물쩍 바꿨다. 사람의 판단은 달라질 수 있다. 대법원 확정 판결도 재심으로 뒤집힌다. 단, 새로운 증거나 진술이 나와야 그렇다. 천안함은 ‘사정 변경’의 사유가 없었다. 민주당 또는 진보 진영은 이제는 북한 소행임을 믿는지 궁금하다. 근년 들어 “북한이란 근거가 없다”는 식의 그들만의 서사를 공개 발언하는 이는 소수에 그친다. 이래경(“자폭했다”)이나 유시민(“뭐가 확인됐느냐”) 정도인데, 공교롭게도 선거에 나가 표로 심판받을 뜻이 없는 이들이다. 천안함이 공격받은 때 이명박 정부와 해군은 허둥댔다. 초기 여론은 “북한 소행인지는 합동조사 결과를 봐야겠지만 군은 믿음직하지 못하다”는 쪽이었다. 민주당이 가해자인 북한 비판보다는 이명박 정부 공격에 집중한 것도 부정적인 여론이 있어 가능했다. 폭침 초기엔 조사에 따라선 “정부 발표를 신뢰 못한다”라는 답변이 40%가 넘게 나왔다. 민주당은 이제라도 생각을 바꾼 계기가 뭔지 밝히기 바란다. 이건 과거 들추기가 아니다. 자랑스러운 역사의 민주당이 국민 앞에 가져야 할 도리다. 또 지금은 뜨겁지만 언젠가는 식게 될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를 겹쳐서 보면 민주당의 천안함 인식은 현재와 미래의 문제다. 민주당 당 대표는 “방류는 방사능 테러”라고 단언한다. 방류를 걱정하는 소비자들이 많은 데서 이런 발언이 가능했을 것이다. (6월 말 갤럽조사/응답자 78%가 “걱정된다”) 천안함 초기의 혼돈과 비슷하지 않은가. 일본이 30년 방류를 시작하면 우리 정부는 3면 바다와 어시장을 세밀하게 측정해 방사능 수치를 공개할 것이다. 민감한 과학논쟁, 정치싸움이 불붙을 것이다. 방류 1년, 2년이 흐른 뒤 여야 정치인, 과학자, 언론인이 갖는 오염수 안전성에 대한 판단은 어떻게 될까. 변함없이 유지될까. 아니면 방사능 실측치를 확인하고 생각을 바꿀까. 어떤 쪽이든 천안함 때처럼 아무런 설명 없이 넘길 순 없게 됐다. 너도 옳고, 나도 옳다는 양시양비론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다. 우리 국민들은 과학과 정치가 뒤엉킨 국면을 흥미롭게, 날카롭게 지켜볼 것이다. 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3김 시대엔 고사성어 정치가 빛을 발했다. 독재와 싸우던 YS는 대도무문(大道無門·민주화로 가는 큰길에는 문이 따로 없다)을, 2인자 정치에 능한 JP는 상선약수(上善若水·물처럼 순리대로 사는 게 최고다)를 남겼다. 사자성어의 압축적 힘이 일상의 언어에서 사라져 가면서 고사(故事) 정치에도 변화가 생겼다. 활용하는 정치인 수도 줄었고, 가끔 등장하더라도 제맛을 못 내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그제 밤 SNS에 아무 설명 없이 ‘과하지욕(袴下之辱)’이라고 썼다. 한고조 유방의 대장군 한신이 젊은 시절 저잣거리 불량배에게 요구받은 대로 사타구니(袴) 밑으로 지나는 굴욕을 견뎠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 굴욕은 참겠지만, 훗날 초왕이 된 한신처럼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뜻으로 쓴 듯하다. 하지만 지금이 사자성어 정치를 할 때인지, 또 과하지욕 자체가 적절한 비유인지 의문이 생긴다. ▷그가 주장하는 억울함의 시작은 토요 골프였다. 홍 시장은 충청·경북에 폭우가 쏟아진 지난주 토요일 오전 골프장을 찾았다. 대구시에는 큰 물난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했고 대구시민 1명의 실종은 보고받기 전이었다고 본인은 해명했다. 전국 사망자가 40명을 넘어서자 홍 시장은 뭐가 문제냐던 태도를 접고 결국 사과했다. 국민의힘에선 ‘재해 중 음주·골프 금지’ 조항 위반 등을 이유로 징계위 날짜까지 잡았다. 당 지도부를 향해 “어이없다”며 훈계조로 말하던 홍 시장이 굴욕으로 느끼는 건 그의 자유다. ▷홍 시장은 어제 아침 8시간 만에 그 8글자를 지웠다. 늑장대처와 책임회피로 충북지사와 청주시장이 뭇매를 맞자 그도 버틸 힘이 빠졌을 것이다. 홍 시장은 “나는 새벽 4시에 일어나 조간신문 6개를 읽고 그날의 이슈와 방향을 잡고 아침을 맞는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해왔다. 정치세력은 없지만, 정치감각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는 말이지만 이제 스스로 점검해야 할 때다. ▷먼저 경북을 포함한 중부지방에 ‘극한 호우’가 온다는 재난문자를 기상청이 발송한 후에도 빗속 골프를 강행한 점이다. 골프는 1시간여 만에 중단됐다. 하지만 골프장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지 ‘이래선 안 되겠다’고 스스로 복귀했다는 설명은 없었다. 또 이튿날 아침에 맑은 정신으로 읽은 뒤 지울 정도였다면 전날 밤에도 절제했어야 했다. 특히 사과 회견을 마친 뒤 자신을 한신에 비유하며 ‘미래를 위해 참는다’는 식으로 글을 남긴 건 적절치 않다. 6년 전 대선에서 780만 표를 얻었던 홍준표 시장에게 진짜 굴욕이라면 어느 쪽일까. 국민에게 사과하고, 징계위에 불려가는 것일까. 아니면 민심에서 멀어져 가고, 실수를 잡아낸 뒤 제 위치로 돌아오지 못했던 무뎌진 정치감각일까.김승련 논설위원 srkim@donga.com}

지난해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타계한 후 그가 이따금 던졌다는 질문이 회자됐다. “네가 하는 일, 그 업(業)의 본질은 무엇이더냐.” 기자로서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던 이 질문에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뭐라고 답할까. 두 후보는 오늘도 유권자들에게 “이렇게 돕고 저렇게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꼭 필요한 대통령의 일이지만, 그것이 전부인 양 들린다는 게 문제다. 두 후보는 새 시대에 맞는 정치인·공직자의 상(像)을 찾고, 제시하는 것을 업의 일부로 여겼으면 좋겠다. “이런 인재들과 국정을 함께 하겠다”는 비전을 들을 권리가 유권자에겐 있다. 그 말을 듣고 부모들이 “내 아이도 저렇게 커갔으면 좋겠다”고 반응한다면 대선 승리에 한발 다가설 것이다. 현란한 말로는 안 된다. 용인술을 검증받아야 한다. 성남시와 경기도에서 10년 넘게 인사를 해 본 이재명 후보와 달리 윤 후보는 검찰총장 때 비로소 인사권을 가져봤다. 그의 솜씨가 궁금했는데, 선대위 구성 때 기회가 왔다. 높은 점수를 주기는 어려웠다. 좋은 인물 영입을 위한 치열함이 없었다. 김성태 사태는 바깥 인물에게 양보할 뜻이 없다는 걸 보여줬다. 기회가 더 있기는 하다. 이번 대선은 대선 당일에 국회의원 5명 재·보궐선거도 치른다. 대선 후보가 국회의원 후보 공천을 책임지는 드문 사례다. 윤 후보는 서울 종로, 서초갑, 경기 안성, 충북 청주 상당, 대구 중-남 등 다섯 곳에 누구를 공천할까. 초기 선대위처럼 지명도 높은 기성 정치인, 측근을 배치할까. 김종인 이준석과 3인 정립(鼎立) 구도라며 공천권을 공동 행사할까. 연말쯤 윤 후보는 보수당 공천의 법칙을 깨주길 바란다. 보수정당에선 오랜 시간 ‘스펙 좋은 것이 인재’라는 생각이 압도했다. 보수정치는 기성 질서의 권위를 존중하는 곳이니 그럴 수 있겠다. 그렇더라도 좋은 대학 나오고, 판검사 지내고 미국서 박사 딴 것을 필요 이상으로 존중한다. (국민의힘 경선 때 최종 후보 8명이 모두 위 기준에 부합했다.) 오죽하면 “선대위가 온통 판사 검사 출신들”이란 더불어민주당 비판에 반론을 펴지 못할까. 글로벌 기업의 임원들이 법조인 일색인 걸 상상할 수 없다. 고급 스펙이 즐비한 정당을 보고 보통 사람들이 ‘내 어려움에 공감해 줄 것’이라며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까. 지난 10년 총선 때마다 국민의힘 공천은 소수가 흔들었다. 2012, 2016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편안한 사람들’을 발탁했다가 탄핵을 맞았다. 2020년엔 황교안 김형오 두 사람이 참패를 불러왔다. 올여름 국민의힘 경선 컷오프에 도전한 11명 가운데 지난 10년 동안 국회에 입성한 인물은 하태경 의원이 유일했다. 이건 대선주자급 정치인이 발탁되지 못했다는 뜻 아닌가. 공천이 아닌 사천(私薦)의 폐해는 오늘 선거도 망치지만 내일 정치에도 후과를 만든다. 좋은 스펙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공직 후보자가 좋은 학력과 경력에 더해 내 조직을 위한 ‘건강한 물의(物議)’를 일으킨 경험이 있다면 어떨까. 내부 승진보다 대의를 중시했던 인물이라면 다음 공천을 따내기 위한 몸조심 문화를 줄일 수 있다. 또 엘리트의 길을 걸었지만 ‘정책 겹눈’을 갖춘 인물을 더 찾아내란 주문이기도 하다. 효율을 중시하는 전문가의 눈뿐만 아니라 약자의 눈으로 세상을 읽는 따뜻한 겹눈 말이다. 5곳 공천은 양날의 칼이다. 대선을 이기는 손쉬운 방법일 수도 있고, ‘정치 신인’의 옛날 정치라는 부메랑일 수 있다.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srkim@donga.com}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 아들딸 스펙 쌓기에 집착한 조국-정경심 부부는 깨닫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마흔 살을 넘기면서 출신 대학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공부를 잘 못했던 친구가 훗날 성공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학자를 인터뷰한 적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창의력을 가르치는 래리 라이퍼 교수다. 그는 인간이 정보를 흡수하는 방식을 2가지로 나눈다. ①칠판 강의 듣기 혹은 출판된 책 읽기와 ②친구들이 모여 앉아 어제 본 TV 드라마를 웃고 떠들며 복기하듯 대화하기다. 전자가 일방향 정보 전달이라면, 후자는 쌍방향이다. “둘 다 50 대 50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검증이 끝났으니 토 달지 말라”고까지 했다. 라이퍼 교수의 주장은 낡은 교육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교육제도는 일방통행식인 ①번에 능숙할 때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그 바람에 소수만이 좋은 대학에 진학하고, 박사 의사 변호사가 된다는 구조다. 지필고사에는 약해도 ②번처럼 쌍방향 지식 흡수 능력이 좋은 학생들은 저평가되기 십상이다. 객관식 수능시험은 ②번 능력을 평가해내기 힘들다. 동료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 협업에 능하고, 누가 적임인지 가려내는 안목은 문제 풀이로 가려낼 수 없다. ‘나는 학습 능력이 떨어진다’는 패배감은 수십 년 반복됐고, 응어리가 됐다. 라이퍼 교수의 설명을 전해 듣고 눈물을 글썽인 학부모들도 있었다. “아이가 똑똑한 것 같은데, 시험 점수가 낮은 이유를 이제야 설명 들은 기분”이라고 반응했다. 뭔가 이상하다. 이런 걸 잘 아는 전문가와 당국자들은 왜 그동안 바꾸지 않은 걸까. 사교육비로 고통받는 유권자가 바라는 걸 정치인들이 놓칠 리가 없지 않나. 과문한 탓이겠지만, 정치인 가운데 이런 필요성을 거론한 이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유일했다. 그는 2017년 대선 때 “언제까지 인-서울 아니면 루저냐”고 연설했다. 교육정책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자는 주문이었다. 선거 포퓰리즘이라면 유권자의 환심과 표를 사기 위해 필요 이상의 세금을 퍼붓는 걸 말한다. 기본소득(이재명), 반값 주택 50만 호(윤석열), 쿼터 아파트(홍준표)가 그런 쪽이겠다. 그렇다면 청소년과 학부모에게 안 가져도 될 열패감을 덜어주는 구상과 정책은 포퓰리즘일까. 환심과 표를 살 수 있어 대중영합적이긴 하지만 ‘착한’ 포퓰리즘으로 부르고 싶다. 교육과 평가의 개념을 바꾸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현금복지 공약과 달리 큰돈이 들 것 같지 않다. 전문가의 깊은 궁리, 일선 교사의 장기적 관심과 노력이 훨씬 중요한 성공 열쇠다. 대장동과 고발사주라는 진흙탕을 헤매는 후보들이지만 대통령을 꿈꾼다면 달라진 세상을 읽어내야 한다. 칠판 앞 강의와 객관식 시험은 인류 역사에서 딱 100년쯤 먹혔던 제도다. 교육시장과 학부모의 마음을 잘 읽는 수능 1타 강사들이 한발 먼저 내다보고 있다. “수능은 죽었다”며 학생 평가 방식의 사망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쉽게 예산 쓰고, 즉발적 효과가 나오는 정책에 매달리고 있다. 그렇다 보니 오랜 시간 공들여 궁리하고 과정을 챙긴 뒤 그 결과는 퇴임 한참 뒤인 한 세대 후에야 나타날 아이들 미래정책은 뒤로 밀리고 있다. 손쉬운 포퓰리즘 앞에 착한 포퓰리즘은 설자리를 못 찾고 있다.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srkim@donga.com}

수년 전 안희정 당시 충남도지사에게 “도청 공무원이 진실을 제대로 보고하느냐”고 물었다. 답변은 애매했다. “충남도 공직자들이 ‘됩니다-안 됩니다 보고서’를 둘 다 캐비닛에 넣어두고는 그때그때 꺼내오더라”고 설명했다. 준비가 잘돼 있다는 말로도 들리지만, 높은 분 입맛에 맞는 답이라면 만들어 낸다는 말이기도 했다. 대선 후보들은 요즘 내놓는 핵심 국정과제를 내용이나 절차에서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마칠 수 있을까. 대선 후보들에게 옛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의 공소장을 꼭 구해 일독하기를 권한다. 대통령의 탈원전 국정과제를 실현하기 위해 청와대, 산자부, 원전 공기업(한국수력원자력)의 뜻이 어떻게 일그러지고 타협되는지 기록돼 있기 때문이다. 미래 대통령으로서 내가 임명한 장관과 청와대 참모들이 내 입맛에만 맞춰 캐비닛에서 정책보고서를 꺼내올지 궁금하다면, 또 걱정된다면 말이다.(7000억 원을 들여 수명을 10년 늘렸던 월성 1호기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계속 가동할 경제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은 뒤 조기 폐쇄됐다. 현재 검찰은 회계법인의 경제성 평가보고서 조작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 청와대 보고망(이지원)에 댓글을 달았다. “월성 1호기 영구 가동중단은 언제 결정할 계획인가요.” 형식만 질문이었을 뿐 강력한 지시였다. 대통령도 산자부가 100년 에너지정책을 이렇게 빨리 180도 바꿀 줄 몰랐을 것 같다. 공소장에 따르면 딱 이틀 걸렸다. 산자부의 정책전문가와 한수원의 기술전문가는 임기 초만 해도 의지가 굳었다. “월성 1호기를 가동중단하면 손실 1조8000억 원이 발생한다”고 청와대에 보고했다. 신중한 탈원전 건의는 4차례 이어졌다. 청와대가 탈핵-탈원전을 밀어붙이자 독일 사례를 따라 국회의 입법이란 형식을 갖추자는 수정 제안도 실무선에선 내놓았다. 이랬던 공직사회도 대통령 댓글을 발견한 뒤론 신념을 접었다. 시인 김수영의 표현처럼 공직자라는 이름의 풀은 비를 몰고 온 동풍 앞에 누웠고, 울었고, 다시 누웠다. 산자부 출신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은 댓글 당일(월요일)에 “대통령 하문(下問) 내용을 빨리 산자부에 전달하고 장차관 생각을 반영한 보고를 해 달라”며 움직였다. 본인은 부인했지만 산자부 장관이 “너 죽을래”라며 담당 과장을 압박했다는 것이 화요일이다. 그리고 수요일, ‘조기 폐쇄’ 보고서가 장하성 정책실장의 손을 거쳐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이런 구구한 과정이 공소장에 담겨 있고, 앞으로 대전지법 재판에서 다투게 될 것이다. 검찰은 관련자 발언, 메모를 인용해 공소장에 상세히 기록했다. 국정책임자에겐 절대 보고되지 않는 공직사회의 부끄러운 속살이다. 대선 후보들은 신문 제목 훑듯 넘어가선 안 된다. 또 결과만큼이나 과정이 중시되는 지금, 절차를 못 갖춘 정책 밀어붙이기로 얼마나 아까운 공직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는지 리더라면 챙겨야 하지 않을까. 사족. 일독을 권하긴 했지만, 101쪽에 이르는 공소장은 대선 후보가 손쉽게 입수하지 못할 수 있다. 법무부는 국회가 요구하더라도 비공개 원칙을 바꿀 생각이 없다. 현재 원전 관련 단체가 ‘문제의 원전 공소장’을 갖고 있으나 입수 경위가 명확하게 밝혀진 적은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시민단체들은 ‘공소장 낭독회’라는 듣도 보도 못한 행사를 열어 권력 핵심부에서 벌어진 뼈아픈 수사기록을 바깥에 알리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의 단면이다.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srkim@donga.com}

변호사 J의 말을 듣고 내 귀를 의심했다. 변호사 M이 검찰청의 현실을 설명할 땐 무릎이 꺾였다. 대한민국 검사가 수사 자료를 안 읽고 결론짓는 경우가 있다는 주장이었다. 2000명 검사 가운데 상당수는 기록과 사건 관계인에 묻혀 산다. 어처구니없는 일은 고등검찰청에 올라온 ‘항고(抗告) 사건’ 때 두드러진다고 했다. 항고란 이런 것이다. △2000만 원을 빌려간 뒤 안 갚거나 △회삿돈 3000만 원을 빼돌렸다는 다툼을 떠올려 보자. 수사를 해 보면 혐의 없음, 증거 부족, 범죄 안 됨 등의 결론은 다반사다. 동의 못 한다면 고소인이 고등검찰청에 다시 판단을 요청할 기회가 있다. 그게 항고 제도다. 2019년 한 해 동안 “무혐의라니 억울하다”며 제출한 항고장이 3만 건이 넘는다. 이 가운데 “따져 보니 재수사가 맞겠다”고 내려보내는 것이 10% 정도다. 고검 검사가 수사 기록을 보는 둥 마는 둥 한다는 말은 나머지 90%에서 나온다. 고등검찰청은 부장검사급 이상만 배치되는 곳이다. 베테랑 검사의 집합소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형사부 검사였던 J의 문제 제기는 ‘다시 살펴봤지만, 수사할 필요 없다는 당초 결론이 옳다’는 불기소 결정문에서 극적으로 확인된다. 고검 검사가 중앙컴퓨터에서 양식을 내려받는데, 단 한 문장만 인쇄돼 있다.이 항고사건의 피의사실 및 불기소 이유의 요지는 불기소처분 검사의 불기소 결정서 기재와 같아 이를 원용하고, 항고청 담당검사가 새로이 기록을 살펴보아도 원 불기소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할 자료를 발견할 수 없으므로 주문과 같이 결정한다. 바로 이 문장에 한 글자도 추가하지 않은 채 도장 찍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했다. 인쇄된 표현처럼, 검사가 민원인이 애써 준비한 서류를 ‘새로이’ 확인해 봤는지 알 방법도 없다. 사기당했다면서 고소하고, 기각되자 다시 항고한 민원인들은 대체로 자기 돈 들여 변호사도 고용한다. 이들이 맹탕 문서를 받아 들고 승복할 것으로 검찰은 믿는 걸까. 억하심정에 무리한 형사 고소도 많다. 하지만 이런 식이라면 검찰에 한을 품는 이른바 사법 피해자가 매년 1만 명 넘게 생겨난다. 검사는 왜 기각 이유를 안 쓸까. J와 M의 생각처럼 수사 기록을 본 게 없으니 설명거리가 없는 걸까. 사실이라면, 검찰 지휘부는 바로잡아야 한다. 두세 문장이라도 구체적인 사유 작성을 의무화해야 한다. ‘한 문장 기각’은 지방검찰청 수사에서도 원칙이란 점에 한 번 더 놀랐다. ‘고소 사건 기각 땐 사유를 안 써도 된다’고 일찍이 YS 시절에 검찰총장이 결정했다고 했다. “검사 업무를 줄여주자”는 이유였다고 검사 경력 30년인 M은 기억했다. 국가의 일은 나라 전체를 살피는 것과 함께 개개인의 행복과 만족을 살피는 쪽으로 달라지고 있다. 검찰도 예외는 아니다. 기로에 선 검찰이 못 느끼고 있을 뿐이다. 따지고 보면 검찰도 ‘한 문장 결정’의 피해자다. 판사는 “도주와 증거 인멸 우려가 없다”는 한 문장으로 구속영장을 기각한다. 이번엔 수사검사가 분개하지만, 그때뿐이다. 검찰은 스스로 달라질까, 아니면 외부의 힘이 검찰을 바꿀까. 대검찰청 기획조정부와 형사부 그리고 법무부 검찰국이 다뤄야 하는 사안이다. 국회 법사위도 자기 몫을 해야 한다.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