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김선미 기자

동아일보 콘텐츠기획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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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선미 기자입니다.

kimsunmi@donga.com

취재분야

2025-11-22~2025-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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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의 기억을 걷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눈앞에 배롱나무꽃이 흐드러졌다. 진달래의 분홍도 철쭉의 분홍도 아닌 배롱나무꽃 고유의 분홍이 화면을 가득 메우며 흔들렸다. 노래 가사처럼 ‘그대를 처음 만난 날 남모르게 그려본’ 분홍 립스틱은 ‘떨리던 마음같이 사랑스럽던’ 배롱나무꽃의 분홍빛 아니었을까. 이곳은 실감형 디지털 전시 ‘미음완보(微吟緩步), 전통정원을 거닐다’가 열리고 있는 서울 세종문화회관. 하지만 나의 정신은 어느 가을날 갔던 전남 담양군 명옥헌(鳴玉軒) 원림을 걷고 있었다. 명옥헌 가던 돌담길 풍경이 지금도 생생하다. 감나무들은 주렁주렁 매달고 있던 열매를 이따금 땅에 내려뜨렸다. 나무에서 곧바로 떨어진 감을 맛본 건 처음이었다. 톡 터져 흐르던 주황색 감의 달콤한 육즙!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었을까.배롱나무는 일순간 피었다가 지는 꽃이 아니다. 비단 같은 꽃이 여름 내내 핀다. 명옥헌 원림이 특별한 건 감각과 철학의 정원이기 때문이다. 계곡물을 받아 네모난 연못, 즉 방지(方池)를 조성한 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나다’라는 동아시아 전통 우주론을 구현해 원형의 섬을 만들고 주변에는 배롱나무를 심었다. 물이 바위를 따라 옥이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흐르고 연못은 배롱나무꽃을 거울처럼 비춘다.우리는 그 가을날 약속했다. 배롱나무꽃이 피는 여름에 꼭 다시 오자고. 언젠가 그 약속대로 될까. 한여름 반짝이는 햇살과 매미 소리와 분홍빛 배롱나무꽃이 어우러지는 명옥헌 원림은 그래서 누군가에게는 추억과 상상의 정원, 비밀의 정원이 된다. 다만 궁금해진다. 지금의 우리는, 미래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와 같을까. ‘미음완보’는 조선 시대 문인 정극인의 가사 ‘상춘곡’(賞春曲)에 나오는 글귀로, ‘나직이 읊조리며 천천히 걷다’라는 뜻이다. 국가유산청이 한국 전통정원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마련한 ‘미음완보’ 전시는 이렇듯 우리 각자의 주관적 경험과 추억을 소환한다. 전남 담양 명옥헌 원림·소쇄원·보길도 윤선도 원림, 전북 남원 광한루원, 경북 안동 만휴정·영양 서식지·봉화 청암정, 서울 창덕궁 후원…. 자연유산 중 역사적·경관적·학술적 가치가 높아 보존의 필요성을 인정받은 우리 명승(名勝)들이 디지털로 펼쳐진다.전시장 바닥에 깔린 방석에 앉아 커다란 화면을 바라본다. 분명히 몸의 긴장을 내려놓았는데 정신은 기억의 세계를 날아다니듯 여행한다. 소쇄원에서 맡았던 야생화 길마가지의 은은한 향기, 연두색 새잎이 살랑이던 광한루원 수양버들의 생명력, 우리가 정원들에서 나누었던 ‘까르르’ 웃음소리…. 정원은 결코 누구에게나 똑같을 수 없다. 저마다의 경험과 지식, 관점에 따라 보고 느끼는 게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도 언제 누구와 어떤 기분으로 갔느냐에 따라 또 달라진다. “소쇄원에 가 본 적이 있다”와 “소쇄원에서 가을 탱자를 주워 주머니에 넣었다”는 경험의 층위가 다르다.전시 마지막 순서는 한국의 대표적 궁궐정원인 창덕궁 후원을 3차원 디지털 정밀 실측 데이터로 구현한 미디어아트였다. 선왕의 넋을 표현했다는 화면 속 하얀 나비가 후원의 사계절을 날아다녔다. 꽃잎이 흩날리는 봄의 주합루, 초록으로 물든 여름의 애련지, 단풍 든 가을 옥류천, 눈 내리는 겨울의 연경당…. 창덕궁 후원을 좋아해 계절마다 찾아가는데도 미디어아트로 감상하는 건 색다른 경험이었다. 디지털 기술은 평소에 관람객이 오르기 힘든 주합루에서 왕의 시선으로 부용지를 내려다보게 했다. 화면이 휙휙 바뀌는 후원의 사계절은 관람객의 몰입감을 한껏 끌어올렸다. 특히 후원에 눈발이 몰아치는 장면은 마음속을 직시하는 계기가 됐다. 어디선가 저 눈처럼 바람이 불어와 모래나 자갈 같은 감정의 부유물을 일으키고 있는 건 아닌지. 왜 그때 프랑스 작가 파스칼 키냐르의 책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에서’가 떠올랐을까. 주인공은 세상을 뜬 아내가 사랑했던 정원에서 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쇠이의 화폭 같은 감정의 어둠을 느꼈지만, 고통이 지나간 자리에는 마침내 고요가 들어섰다고 했다. 그에게 정원은 그리움이 사무치는 장소이자 아내의 영혼을 만나는 장소였다.‘미음완보’ 얘기로 돌아오면 이 전시는 경남 하동군 지리산 쌍계사 불일폭포에서 착안한 실감형 미디어 폭포를 제작해 가까이 다가서면 물줄기가 머리 위에서 갈라지는 체험을 할 수 있게 했다. 지리산국립공원에 있는 자연폭포로 높이가 60m에 이른다는데, 아직 가보지 못한 장소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다. 우리 판소리에 현대적 팝스타일을 조화시키는 그룹 이날치 출신 장영규 감독이 전시음악을 만들고 전문 조향사들이 공간에 맞춰 향기도 제작해 비치해두었다. 세련된 향이었지만 감탄할만큼 각 공간의 콘셉트와 딱 맞는 것 같지는 않아 조금 아쉬웠다. 후각이야말로 강렬한 기억이라 더욱 전문적이고 정교한 접근이 필요하겠다. 우리 전통정원이 다양한 시도로 교훈과 당위성의 공간이 아니라 아름다움과 선망의 공간으로 미래 세대에게 다가가기를 바란다.무료인 이 전시는 지난해 서울 일민미술관과 영국 런던 사치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의 앙코르 전이다. 지난해 연말 일민미술관 전시 기간이 열흘이었던 데 비해 이번에는 세종문화회관에서 4월 27일까지 열리니 더 많은 이들이 전통정원을 접하며 각자 ‘우리가 사랑했던 정원’의 기억 속을 천천히 걸었으면 한다. 이번 디지털 콘텐츠는 앞으로 디지털 사이니지 등 다양한 전시공간에 접목될 수 있어 국내외에 우리 자연유산을 널리 알릴 수 있겠다는 기대를 품게 한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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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百, ‘돌체앤가바나’ 남녀 복합 매장 인천에 첫 오픈

    롯데백화점이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돌체앤가바나(DOLCE&GABBANA)’ 매장을 21일 인천점 1층에 열었다. 인천 지역에 최초로 연 돌체앤가바나 매장으로, 플래그십 스토어를 제외하고 남녀 패션 컬렉션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유통사 유일의 ‘남녀 복합 매장’이다. 의류 컬렉션은 물론 주얼리 등 다양한 잡화 상품군까지 선보인다.젬스톤 원석으로 자연의 다양성을 표현한 ‘스프링’, 무지개 빛의 반사와 굴절로 펜던트의 아름다움을 극대화한 ‘레인보우’, 이탈리아 장신의 세공 기술로 제작한 ‘스페셜’ 컬렉션 등 총 세 종류의 컬렉션에서 선보이는 12가지 파인 주얼리 상품을 오직 롯데백화점 인천점 돌체앤가바나 매장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파이톤 스킨을 입힌 특별한 ‘시실리백’도 오직 인천점 매장에서만 만나볼 수 있다. 돌체앤가바나의 상징적인 시실리백 디자인에 고급스러운 파이톤(Python, 비단뱀) 소재를 접목한 이 토트백은 녹색 등 총 4가지 색상이다.롯데백화점 인천점은 지속적인 리뉴얼을 통해 각종 프리미엄 콘텐츠를 선보이며 점포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지하 1층에 약 1200평 규모의 ‘프리미엄 뷰티관’을 조성해 전국을 대표하는 ‘뷰티 메카’로 거듭났다. 재작년 12월에는 3500평 규모의 프리미엄 식품관인 ‘푸드 에비뉴’를 새단장해 현재까지 900만 명이 넘는 방문 고객수를 기록하는 등 미래형 식품관의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조형주 롯데백화점 럭셔리부문장은 “돌체앤가바나는 장인 정신을 담은 매혹적인 스타일로 럭셔리 패션을 대표하는 브랜드”라며 “인천 지역 최초의 매장이자, 유통사 최초로 남녀 복합 매장을 선보이는 만큼 지역 고객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하며, 향후에도 새로운 럭셔리 콘텐츠를 지속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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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요리 전문가와 위스키 전문가 부부가 사는 법

    요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히데코 선생님’은 유명하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에서 2008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 씨의 요리 수업은 지금까지 4500명 이상이 수강했다. 일본 도쿄 제국호텔의 프랑스 음식 주방장을 지낸 나카가와 다모츠(中川保) 씨를 아버지로 둔 ‘셰프의 딸’로, 국내에 일본 가정식 요리를 전파한 대표적 인물이다.그가 올해 초 자신의 18번째 책 ‘히데코의 일본요리’를 펴냈다. 남편 박병진 씨가 차린 ‘북스레브쿠헨’이라는 1인 출판사를 통해서다. 박 씨도 같은 시기 ‘위스키, 스틸 영’이라는 위스키 인문학책을 냈다. 부부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일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귀화 일본인인 아내 히데코 씨는 일본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지만 어려서부터 맛보고 자란 일본요리를 가르친다. IBM과 SAP 등 국내외 기업에서 30여 년간 일했던 남편 박 씨는 20여 년 전 좋아하는 위스키를 인생 후반기 아이템으로 준비해 지금은 위스키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1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부부는 “둘 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생각한다”며 “사람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배우고 동시에 우리의 선한 영향력도 건네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아내의 말―둘은 어떻게 만나 결혼했나.“1994년 한국에 어학을 배우러 왔다가 아르바이트로 남편이 다녔던 IBM의 거래처인 새한그룹에서 일본어 강사를 하던 중 새한 과장님의 소개로 만났다. 1년쯤 사귀다가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남편이 일본으로 와 청혼을 해서 1998년 결혼했다.”―‘히데코의 일본요리’를 펴낸 이유는.“독자들이 일본 식문화를 더 자세히 알고 집에서 쉽게 요리 할 수 있으면 한다. 그래서 특이한 일본요리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음식들을 많이 소개했다.”―히데코의 일본요리의 특징은.“일본요리 전문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이유식부터 엄마와 할머니의 일본요리 맛을 체험해 혀와 기억 속에서 일본요리의 맛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여기서 구하는 재료로 그 맛을 재현한 게 히데코의 일본요리다.”―식자재를 구하는 곳은 어디인가.“서울 연희동 ‘사러가’, 노량진시장, 마장동 시장, 가락시장의 단골 판매자들로부터 구한다. 어부와 농부 등 생산자들로부터 직접 사기도 한다. 수업 때 쓰는 빵과 후식 재료도 전문가들로부터 산다. 모두 만들고 가르치기보다 저보다 잘하는 사람의 식자재를 사용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려고 한다.”―이제 곧 3월인데 추천하고 싶은 레시피는.“봄의 향기와 공기를 느끼게 되면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이 맛있어진다. 조개 주꾸미 스미소무침을 추천한다.”>> 남편의 말―3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떻게 위스키 전문가가 됐나.“첫 직장인 IBM에 다닐 때부터 와인과 위스키를 좋아했는데 무의미하게 사업목적으로만 술을 마시는데 회의가 들었다. 100세 시대 두 번째 인생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년 전부터 위스키 공부를 했다. 매년 열흘 이상씩 전 세계 위스키 증류소도 다녔다. 위스키 칼럼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동아일보 최고위과정 광화문살롱에서 강의도 한다.”―‘위스키, 스틸 영’에 나온 곳들은 아내와 함께 여행했나.“대부분 같이 여행했지만, 스코틀랜드의 오지라서 두 번은 가고 싶지 않던 곳들은 혼자 가기도 했다.”―위스키의 매력은.“와인처럼 까다롭지 않게 구입하고, 보관하고, 마시는 술이다. 상하지 않으니 한 번에 다 마실 필요도 없다. 집에 따 둔100여 병 중 그날그날 어떤 위스키 조합으로 마실지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일본요리와 위스키의 궁합은.“위스키는 요리 없이도 마실 수 있지만 그래도 일본요리는 비교적 위스키에 잘 어울리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피트향이 나는 위스키가 해산물에 어울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플로럴한 스페이사이드 위스키가 어울린다. 피트가 없는 위스키가 오히려 사시미나 산뜻한 식초가 들어가는 해산물의 맛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튀김 음식은 하이볼이나 온더락스에 매우 잘 어울린다.”―아내와 시간을 많이 보내나.“바쁜 가운데서도 대부분의 저녁 혹은 위스키 한잔의 시간은 아내와 가지는 편이다. 즐거운 인생을 함께 헤쳐나가는 동반자로서 서로 조언해주기도 한다. 물론 둘 다 조언을 잘 듣는 편은 아니다. 그저 서로 말하는 데 의의가 있는 편이고 자주 싸우기도 한다(웃음).”조개 주꾸미 스미소 무침 - 4인용 재료: 모시조개 800g, 해감용 소금물(물1L+소금 2큰술), 청주 100mL, 주꾸미 4마리(100g), 풋콩 1컵, 두릅 또는 아스파라거스 6개, 방울토마토 8개, 소금 적당량- 초피 스미소 양념: 초피 열매 1큰술, 미소 4큰술, 쌀 식초 3큰술, 머스코바도 설탕 2큰술, 다시마다시 1큰술1. 모시조개는 씻어 해감용 소금물에 담가 은박지 덮어 30분 이상 둔다. 해감 후 다시 씻는다.2. 냄비에 해감한 모시조개와 청주, 소금을 약간 넣고 입이 열릴 때까지 찐다. 다 익으면 식혀 조갯살만 분리한다.3. 주꾸미는 내장과 입 등을 제거하고 끓는 물에 넣었다가 색이 하얗게 변하면 건져낸다. 바로 얼음물에 식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4. 끓는 물에 소금 1작은술을 넣고 풋콩을 2분간 데친 후 차가운 물에 담가둔다. 같은 냄비에 손질한 두릅을 넣어 1분간 데치고 건져내 그대로 식힌다.5. 방울토마토는 꼭지를 떼고 세로로 반 자른다.6. 초피 열매는 잘게 다져서 볼에 넣고 나머지 초피 스미소 재료와 섞는다.7. 6의 초피 스미소에 조갯살, 주꾸미, 풋콩, 두릅, 방울토마토를 넣어 버무린 후 그릇에 담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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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세계면세점, ‘코덕(코스메틱 덕후)’들의 뷰티 놀이터

    해외여행에 나설 때 면세점에서 여행의 설렘을 느낄 ‘가심비’ 쇼핑 아이템은 뭘까. 화장품 아닐까. 신세계면세점이 다양한 뷰티 브랜드와 제품을 갖춰 ‘코덕’(코스메틱 덕후)들을 유혹한다. 신세계면세점은 샤넬, 디올, 에스티로더, 시슬리, 설화수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부터 탬버린즈, 논픽션, 메디큐브 등 감각적인 K-인디 브랜드까지 거의 모든 카테고리에 걸쳐 800여 개의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던 브랜드를 다양하게 갖췄으며 단순한 쇼핑을 넘어 시향 서비스와 뷰티 클래스 등 오감으로 즐길 수 있는 체험형 콘텐츠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500개 이상 브랜드가 입점한 신세계면세점 명동점은 국내외 코스메틱 덕후들의 필수 방문지로 자리 잡았다. 샤넬, 에스티로더, SKⅡ, 설화수를 비롯해 향기에 민감한 ‘코덕’들을 위해 딥디크, 조말론, 르라보, 크리드, 아쿠아디파르마, 킬리안, 메종프란시스 커정 등 다양한 럭셔리 향수 브랜드를 구비했다.주력 제품인 수분크림을 필두로 중국 왕홍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는 헤스킨, 아마존에서 선크림 신드롬을 일으킨 조선미녀 등 K-뷰티를 대표하는 인기 브랜드들이 업계 단독으로 오프라인 매장을 운영하며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한다.친환경·비건 뷰티 브랜드들도 눈에 띈다. 비건 립 틴트와 생기 넘치는 치크 컬러로 트렌디한 메이크업을 제안하는 어뮤즈, 촉촉한 히알루론산 라인으로 수분과 진정을 내세우는 토리든, 웰더마, 쥬스투클렌즈, 하우스오브비, 원씽 등의 브랜드가 관심을 끈다. 한편 인천공항 2터미널 신세계존의 뷰티 매장은 기초 화장품부터 메이크업·향수 제품까지 구역을 나눠 개인의 취향에 맞는 제품을 찾을 수 있다. 프라다 뷰티는 국내 면세점 최초로 입점해 향수와 립스틱 등 인기 제품 등을 선보이고 있다. 또 푸에기아 1833(Fueguia 1833)은 아시아태평양(APAC) 최초 면세점 입점 브랜드로, 400병 한정 생산되는 점과 고유번호를 부여한 프리미엄 향수로 소장 가치가 높다는 설명이다.아트 브랜딩 전략도 돋보인다. 명동점에서는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한 전시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자체 캐릭터 ‘폴앤바니(Paul & Bani)’를 활용한 향수를 선보여 고객들에게 시각적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해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강화하고 있다. 또 해외여행객을 위한 ‘스페셜 오더 서비스’는 출국 3시간 전까지 주문이 가능하다. 바쁜 출국 일정 속에서도 본인에게 맞는 제품을 직접 테스트해 보고, 제품을 비교해볼 수 있다.신세계면세점은 신진 브랜드를 발굴하고 육성하며 K-뷰티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 감각적인 패키지와 독창적인 향으로 주목받는 ‘탬버린즈’, 프리미엄 스킨케어로 해외 유명 셀럽들도 사용하는 ‘듀이셀’, 미국 유명 여성래퍼 카디비가 자신의 소셜 미디어인 틱톡을 통해 머드팩 효과를 극찬한 ‘비알머드’ 등의 브랜드들이 신세계면세점에서 첫 매장을 오픈하며 글로벌 소비자들에게 브랜드 가치를 널리 알리고 있다.신세계면세점 관계자는 “신세계면세점은 프리미엄 뷰티 브랜드 유치와 차별화된 고객 경험으로 면세점 뷰티 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글로벌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에 부합하는 혁신적인 쇼핑 경험을 제공함으로써 뷰티 카테고리의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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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요리 전문가와 위스키 전문가 부부가 사는 법

    요리에 관심 있는 이들에게 ‘히데코 선생님’은 유명하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집에서 2008년부터 이어지고 있는 나카가와 히데코(中川秀子) 씨의 요리 수업은 지금까지 4500명 이상이 수강했다. 일본 도쿄 제국호텔의 프랑스 음식 주방장을 지낸 나카가와 다모츠(中川保) 씨를 아버지로 둔 ‘셰프의 딸’로, 국내에 일본 가정식 요리를 전파한 대표적 인물이다.그가 올해 초 자신의 18번째 책 ‘히데코의 일본요리’를 펴냈다. 남편 박병진 씨가 차린 ‘북스레브쿠헨’이라는 1인 출판사를 통해서다. 박 씨도 같은 시기 ‘위스키, 스틸 영’이라는 위스키 인문학책을 냈다. 부부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일로 삼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귀화 일본인인 아내 히데코 씨는 일본 대학에서 독일어를 전공했지만 어려서부터 맛보고 자란 일본요리를 가르친다. IBM과 SAP 등 국내외 기업에서 30여 년간 일했던 남편 박 씨는 20여 년 전 좋아하는 위스키를 인생 후반기 아이템으로 준비해 지금은 위스키 전문가로 활약 중이다.17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부부는 “둘 다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는 것을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생각한다”며 “사람들을 만나 그들로부터 배우고 동시에 우리의 선한 영향력도 건네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아내의 말―둘은 어떻게 만나 결혼했나.“1994년 한국에 어학을 배우러 왔다가 아르바이트로 남편이 다녔던 IBM의 거래처인 새한그룹에서 일본어 강사를 하던 중 새한 과장님의 소개로 만났다. 1년쯤 사귀다가 일본으로 돌아갔는데 남편이 일본으로 와 청혼을 해서 1998년 결혼했다.”―‘히데코의 일본요리’를 펴낸 이유는.“독자들이 일본 식문화를 더 자세히 알고 집에서 쉽게 요리할 수 있으면 한다. 그래서 특이한 일본요리보다 한국인에게 익숙한 음식들을 많이 소개했다.”―히데코의 일본요리의 특징은.“일본요리 전문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이유식부터 엄마와 할머니의 일본요리 맛을 체험해 혀와 기억 속에서 일본요리의 맛을 확실하게 알고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 한국에 오래 살면서 여기서 구하는 재료로 그 맛을 재현한 게 히데코의 일본요리다.”―식자재를 구하는 곳은 어디인가.“서울 연희동 ‘사러가’, 노량진시장, 마장동 시장, 가락시장의 단골 판매자들로부터 구한다. 어부와 농부 등 생산자들로부터 직접 사기도 한다. 수업 때 쓰는 빵과 후식 재료도 전문가들로부터 산다. 모두 만들고 가르치기보다 저보다 잘하는 사람의 식자재를 사용해 더 맛있는 요리를 만들려고 한다.”―이제 곧 3월인데 추천하고 싶은 레시피는.“봄의 향기와 공기를 느끼게 되면 바다에서 나오는 것들이 맛있어진다. 조개 주꾸미 스미소무침을 추천한다.”●남편의 말―30여 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어떻게 위스키 전문가가 됐나.“첫 직장인 IBM에 다닐 때부터 와인과 위스키를 좋아했는데 무의미하게 사업목적으로만 술을 마시는데 회의가 들었다. 100세 시대 두 번째 인생은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20년 전부터 위스키 공부를 했다. 매년 열흘 이상씩 전 세계 위스키 증류소도 다녔다. 위스키 칼럼으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동아일보 최고위과정 광화문살롱에서 강의도 한다.”―‘n잡러’의 일상은 어떤가.“오전 6시 기상해 7시부터는 칼럼이나 책의 원고를 쓴다. 9시부터는 출판사 대표로서 각 서점의 주문을 처리하고 출고지시를 한다. 오후에는 외부미팅을 하면서 히데코 요리교실의 허드렛일 담당 집사로서 각종 수강등록과 정산 등 행정 업무처리를 한다. 거의 연예인 수준인 히데코의 일정관리 및 외부활동의 매니지먼트 역할도 병행한다. 장보기와 물건나르기 등 요리교실 보조로서도 활동한다.”―‘위스키, 스틸 영’에 나온 곳들은 아내와 함께 여행했나.“대부분 같이 여행했지만, 스코틀랜드의 오지라서 두 번은 가고 싶지 않던 곳들은 혼자 가기도 했다.”―위스키의 매력은.“와인처럼 까다롭지 않게 구입하고, 보관하고, 마시는 술이다. 상하지 않으니 한 번에 다 마실 필요도 없다. 집에 따 둔100여 병 중 그날그날 어떤 위스키 조합으로 마실지 즐거운 고민을 하게 된다.”―일본요리와 위스키의 궁합은.“위스키는 요리 없이도 마실 수 있지만 그래도 일본요리는 비교적 위스키에 잘 어울리는 편이다. 일반적으로 피트향이 나는 위스키가 해산물에 어울린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플로럴한 스페이사이드 위스키가 어울린다. 피트가 없는 위스키가 오히려 사시미나 산뜻한 식초가 들어가는 해산물의 맛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튀김 음식은 하이볼이나 온더락스에 매우 잘 어울린다.”―추천하고 싶은 단골 위스키 바는.“연희동의 터줏대감으로 자리잡아가는 ‘코블러’를 추천한다. 오너 바텐더와 시니어, 주니어 바텐더들이 모두 칵테일과 위스키에 관한 전문 지식을 갖추고 고객과의 소통에도 열심이다. 무엇보다 가정집을 개조한 바여서 연희동 특유의 감성을 느낄수 있다.” ―아내와 시간을 많이 보내나.“바쁜 가운데서도 대부분의 저녁 혹은 위스키 한잔의 시간은 아내와 가지는 편이다. 즐거운 인생을 함께 헤쳐나가는 동반자로서 서로 조언해주기도 한다. 물론 둘 다 조언을 잘 듣는 편은 아니다. 그저 서로 말하는 데 의의가 있는 편이고 자주 싸우기도 한다(웃음).”〈조개 주꾸미 스미소 무침 〉- 4인용 재료: 모시조개 800g, 해감용 소금물(물1L+소금 2큰술), 청주 100mL, 주꾸미 4마리(100g), 풋콩 1컵, 두릅 또는 아스파라거스 6개, 방울토마토 8개, 소금 적당량- 초피 스미소 양념: 초피 열매 1큰술, 미소 4큰술, 쌀 식초 3큰술, 머스코바도 설탕 2큰술, 다시마다시 1큰술1. 모시조개는 씻어 해감용 소금물에 담가 은박지 덮어 30분 이상 둔다. 해감 후 다시 씻는다.2. 냄비에 해감한 모시조개와 청주, 소금을 약간 넣고 입이 열릴 때까지 찐다. 다 익으면 식혀 조갯살만 분리한다.3. 주꾸미는 내장과 입 등을 제거하고 끓는 물에 넣었다가 색이 하얗게 변하면 건져낸다. 바로 얼음물에 식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4. 끓는 물에 소금 1작은술을 넣고 풋콩을 2분간 데친 후 차가운 물에 담가둔다. 같은 냄비에 손질한 두릅을 넣어 1분간 데치고 건져내 그대로 식힌다.5. 방울토마토는 꼭지를 떼고 세로로 반 자른다.6. 초피 열매는 잘게 다져서 볼에 넣고 나머지 초피 스미소 재료와 섞는다.7. 6의 초피 스미소에 조갯살, 주꾸미, 풋콩, 두릅, 방울토마토를 넣어 버무린 후 그릇에 담는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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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의 밤은 낮보다 우아하다[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논개의 위패를 모신 진주성 의기사(義妓祠) 마당에 대숲이 일렁였다. 평양 부벽루, 경남 밀양 영남루와 함께 국내 3대 누각으로 꼽히는 경남 진주 촉석루 바로 뒤 사당이 의기사다. 임진왜란 중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질 때 논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성 맞은편 남강 변 대숲은 낮에는 겨울 햇살, 밤에는 희고 둥근 달 모양의 조명을 받아 일렁였다. 그 길의 이름은 남가람별빛길이라고 했다. 진주에 다녀온 후 마음속에 내내 대숲이 일렁인다.》● 문화가 있어 빛나는 밤 풍경 혹자는 진주의 야경이 체코 프라하보다 예쁘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진주 사람들에게 심장 같은 존재인 진주성 성곽이 낮보다 밤에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진주의 밤을 비추는 조명은 노랑도 주황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빛이어서 오묘하게 깊은 맛이었다. ‘이래서 진주 사람들이 진주성 야경을 꼭 보라고 했구나.’ 세계적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사사(師事)한 고 김중업 건축가(1922∼1988)가 남긴 경남문화예술회관의 기둥은 전통 건축의 공포(工包)를 형상화해 유독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풍겼다.진주성 안에는 고 김수근 건축가(1931∼1986)가 지은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진주대첩역사공원 내 진주성 호국마루도 문을 열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계단식 지붕 건물에 대해 지역에서 흉물 논란이 일었고, 승 건축가는 “세월이 지나면 많은 사람의 선의가 덧대어져 건축이 아닌 장소로 변할 것”이라고 맞섰다. 일전에 다른 상황에서 세계적 예술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논란이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 아픈 역사만큼 자긍심을 품은 이 문화 도시에 필요했던 건축은 무엇이었을까. 밤의 광장을 걸으며 생각해 본다. 밤의 진주를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또 있다. 소망진산 유등(流燈)공원이다. 진주성에 오르면 정작 진주성을 바라볼 수 없지만, 이 공원에서는 남강과 진주성,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조망할 수 있다. 유등은 진주를 상징하는 빛이다. 매년 10월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당시 왜군이 강을 건너는 것을 막고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운 데서 유래했다. 공원 아래 진주남강유등전시관은 그 애틋한 마음을 담은 유등을 연중 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박선기 작가의 ‘물 위를 걷다’ 작품은 700여 개 아크릴 조각이 바닥에 빛의 그림자를 일렁일렁 드리운다.● 불탔던 산에 돌을 쌓은 정원 달의 어금니. 월아산(月牙山)은 이름부터 참 곱다. 국사봉과 장군대봉, 어금니 모양을 이루는 두 산봉우리 사이로 달이 떠오른다고 지어진 이름인데 정말로 그 위치로 달이 뜬다. 월아산은 1995년 대형 산불로 산림 30만㏊가 잿더미가 됐던 아픔이 있다. 진주시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정비해 푸른 숲의 제모습을 찾았다. 월아산의 반전은 계속됐다. 2018년 목재문화체험장을 시작으로 2021년 ‘숲속 어린이 도서관’, 2022년에는 자연휴양림과 산림 레포츠 시설을 확충해 ‘월아산 숲속의 진주’라는 복합 산림 휴양 시설을 갖췄다. 공사 중 나온 월아산 돌들을 시민들과 쌓아 산석(山石) 정원을 만든 사연이 감동이다. 월아산은 애추(崖錐) 지형으로 불리는 암석 퇴적 지형으로 돌들이 곳곳에 있어 이용객 이동에 제약이 많고 산림 휴양 시설 조성에도 애를 먹었다. 진주시는 이 돌들을 애써 들어내지 않고 정원 조성에 활용하는 역발상을 했다. 코로나19 기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시민들이 공공 일자리를 얻어 돌을 쌓았다. 온기와 정성이 스며든 돌들을 쓰다듬다가 돌 사이에 핀 진주바위솔을 만나니 반가웠다. 진주바위솔은 지리산과 진주 일대 암석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자생식물이다.월아산 숲속의 진주에는 작가정원들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원을 조성하면서 너도나도 작가정원을 만드는 게 굳이 필요한가 의문을 가져 왔다. 그런데 이곳 작가정원들은 지역의 역사와 지형을 성실하게 읽어내고 욕심을 덜어낸 게 빛난다. 오픈니스스튜디오가 작업한 정원 ‘청림월연(靑林月淵)’은 바람이 이는 대숲을 거닐며 정원에 앉아 달을 바라보는 선비의 맑은 마음을 담았다. 단정한 정자에 앉으면 월아산에 원래부터 있던 대숲이 시야에 펼쳐진다. 그 숲이 일렁이며 마음의 때를 씻는다.● 과거를 기억하며 나아가는 도시 진주는 공원의 도시였다. 정원 향기를 품는 공원들의 도시…. 17년간 생활 쓰레기를 야적하던 곳이 도시 재생을 통해 거듭난 초전공원은 생태연못과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있는 생태공원이다. 6월 대한민국 정원 산업박람회가 이곳에서 열린다.진주역이 이전한 후 남아 있던 철도 시설과 터를 활용해 조성한 철도문화공원에서는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느긋하게 산책하는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원에 있는 옛날 열차 안에 들어가 보고,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에서 진주 인물들을 소개하는 문화 전시를 보고, 후피향나무와 맹꽁이 생태공원을 본 뒤 햇볕 잘 드는 ‘메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든 게 좋았다. 카페에 걸려 있는 기다란 금발의 메텔 캐릭터 그림을 보니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되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가 절로 떠올랐다. 진주 ‘노을 맛집’은 진주 서쪽 진양호 공원이다. 아천북카페에서 양마산 둘레길까지 이어진 1.8km의 ‘노을전망 데크로드’가 사랑받는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진주 동쪽에서 노을을 봤다. 지수면 승산리에 있는 지수승산부자마을에 갔다가 관란정(觀瀾亭)에 오른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700명을 모아 진주성 1차 전투에서 공을 세운 관란 허국주 선생이 은거했던 정자다. 남강으로 저물기 직전 겨울 해가 비추는 관란정 풍경은 마치 황금색 필터를 끼운 듯 따뜻한 색감이었다. 지수승산부자마을은 국내 대표 기업 창업주들이 나고 자라면서 교류한 동네다. LG그룹 공동 창업주이자 GS그룹 창업주인 효주 허만정 본가, LG그룹 공동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생가,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의 둘째 누나 이분시 여사가 살던 집 등이 모여 있다. 고즈넉한 한옥마을을 걸으니 어린 시절 창업주들이 돌담길 너머에서 뛰어나올 것 같았다. 이 창업주들이 다녔던 지수초등학교는 리모델링을 마치고 2022년부터 진주 K-기업가정신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운동장에는 이들이 함께 심고 가꿨다는 ‘부자 소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된다는데, 창업가들의 도전 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것만으로 ‘마음 부자’가 된 듯했다. 허만정 창업주의 호를 따서 조성한 공원인 효주원에 향기 좋은 은목서 꽃이 필 때 꼭 다시 와서 걷고 싶다. 진주가 이토록 우아한 곳인지 이제야 알았다.진주의 맛◇하연옥 해물 육수를 쓰는 진주냉면의 성지. 마른 명태 머리와 건새우 등으로 맛을 낸 육수에 메밀면을 담고, 채 썬 육전과 지단 실고추 오이 등을 고명으로 얹는다. 바다와 육지 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월산닭무국 진주 로컬 맛집.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 소고기 대신 늙은 닭과 무를 넣고 푹 끓여낸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하이라이트. 몸속뿐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진주식 영혼의 수프’라고 할 수 있겠다.글·사진 진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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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당신의 밤은 어쩌면 낮보다 우아하다, 진주(晉州)!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논개의 위패를 모신 진주성 의기사(義妓祠) 마당에 대숲이 일렁였다. 평양 부벽루, 경남 밀양 영남루와 함께 국내 3대 누각으로 꼽히는 경남 진주 촉석루 바로 뒤 사당이 의기사다. 임진왜란 중 왜장을 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질 때 논개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성 맞은편 남강 변 대숲은 낮에는 겨울 햇살, 밤에는 희고 둥근 달 모양의 조명을 받아 일렁였다. 그 길의 이름은 남가람별빛길이라고 했다. 진주에 다녀온 후 마음속에 내내 대숲이 일렁인다.● 문화가 있어 빛나는 밤 풍경혹자는 진주의 야경이 체코 프라하보다 예쁘다고 했다. 확실한 것은 진주 사람들에게 심장 같은 존재인 진주성 성곽이 낮보다 밤에 또렷하게 드러난다는 점이다. 진주의 밤을 비추는 조명은 노랑도 주황도 아닌 그 중간 어디쯤의 빛이어서 오묘하게 깊은 맛이었다. ‘이래서 진주 사람들이 진주성 야경을 꼭 보라고 했구나.’ 세계적 건축가 르코르뷔지에를 사사(師事)한 고 김중업 건축가(1922~1988)가 남긴 경남문화예술회관의 기둥은 전통 건축의 공포(工包)를 형상화해 유독 드라마틱한 분위기를 풍겼다.진주성 안에는 고 김수근 건축가(1931~1986)가 지은 임진왜란 전문 박물관인 국립진주박물관이 있다. 지난해 7월에는 승효상 건축가가 설계한 진주대첩역사공원 내 진주성 호국마루도 문을 열었다. 노출 콘크리트로 마감된 계단식 지붕 건물에 대해 지역에서 흉물 논란이 일었고, 승 건축가는 “세월이 지나면 많은 사람의 선의가 덧대어져 건축이 아닌 장소로 변할 것”이라고 맞섰다. 일전에 다른 상황에서 세계적 예술가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논란이 없다면 예술이 아니다.” 아픈 역사만큼 자긍심을 품은 이 문화 도시에 필요했던 건축은 무엇이었을까. 밤의 광장을 걸으며 생각해 본다.밤의 진주를 느낄 수 있는 명소가 또 있다. 소망진산 유등(流燈)공원이다. 진주성에 오르면 정작 진주성을 바라볼 수 없지만, 이 공원에서는 남강과 진주성, 저 멀리 지리산 천왕봉도 조망할 수 있다. 유등은 진주를 상징하는 빛이다. 매년 10월 열리는 진주남강유등축제는 임진왜란 진주성 전투 당시 왜군이 강을 건너는 것을 막고 가족에게 안부를 전하기 위해 남강에 유등을 띄운 데서 유래했다. 공원 아래 진주남강유등전시관은 그 애틋한 마음을 담은 유등을 연중 볼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이다. 박선기 작가의 ‘물 위를 걷다’ 작품은 700여 개 아크릴 조각이 바닥에 빛의 그림자를 일렁일렁 드리운다.● 불탔던 산에 돌을 쌓은 정원달의 어금니. 월아산(月牙山)은 이름부터 참 곱다. 국사봉과 장군대봉, 어금니 모양을 이루는 두 산봉우리 사이로 달이 떠오른다고 지어진 이름인데 정말로 그 위치로 달이 뜬다. 월아산은 1995년 대형 산불로 산림 30만㏊가 잿더미가 됐던 아픔이 있다. 진주시와 주민들이 힘을 모아 정비해 푸른 숲의 제모습을 찾았다.월아산의 반전은 계속됐다. 2018년 목재문화체험장을 시작으로 2021년 ‘숲속 어린이 도서관’, 2022년에는 자연휴양림과 산림 레포츠 시설을 확충해 ‘월아산 숲속의 진주’라는 복합 산림 휴양 시설을 갖췄다. 공사 중 나온 월아산 돌들을 시민들과 쌓아 산석(山石) 정원을 만든 사연이 감동이다. 월아산은 애추(崖錐) 지형으로 불리는 암석 퇴적 지형으로 돌들이 곳곳에 있어 이용객 이동에 제약이 많고 산림 휴양 시설 조성에도 애를 먹었다. 진주시는 이 돌들을 애써 들어내지 않고 정원 조성에 활용하는 역발상을 했다. 코로나19 기간 경제적 어려움을 겪은 시민들이 공공 일자리를 얻어 돌을 쌓았다. 온기와 정성이 스며든 돌들을 쓰다듬다가 돌 사이에 핀 진주바위솔을 만나니 반가웠다. 진주바위솔은 지리산과 진주 일대 암석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자생식물이다.월아산 숲속의 진주에는 작가정원들이 있다. 지방자치단체가 정원을 조성하면서 너도나도 작가정원을 만드는 게 굳이 필요한가 의문을 가져 왔다. 그런데 이곳 작가정원들은 지역의 역사와 지형을 성실하게 읽어내고 욕심을 덜어낸 게 빛난다. 오픈니스스튜디오가 작업한 정원 ‘청림월연(靑林月淵)’은 바람이 이는 대숲을 거닐며 정원에 앉아 달을 바라보는 선비의 맑은 마음을 담았다. 단정한 정자에 앉으면 월아산에 원래부터 있던 대숲이 시야에 펼쳐진다. 그 숲이 일렁이며 마음의 때를 씻는다.● 과거를 기억하며 나아가는 도시진주는 공원의 도시였다. 정원 향기를 품는 공원들의 도시…. 17년간 생활 쓰레기를 야적하던 곳이 도시 재생을 통해 거듭난 초전공원은 생태연못과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있는 생태공원이다. 6월 대한민국정원산업박람회가 이곳에서 열린다.진주역이 이전한 후 남아 있던 철도 시설과 터를 활용해 조성한 철도문화공원에서는 반려견을 데리고 나와 느긋하게 산책하는 사람들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공원에 있는 옛날 열차 안에 들어가 보고, 옛 진주역 차량정비고에서 진주 인물들을 소개하는 문화 전시를 보고, 후피향나무와 맹꽁이 생태공원을 본 뒤 햇볕 잘 드는 ‘메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든 게 좋았다. 카페에 걸려 있는 기다란 금발의 메텔 캐릭터 그림을 보니 어린 시절 TV에서 방영되던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가 절로 떠올랐다.진주 ‘노을 맛집’은 진주 서쪽 진양호 공원이다. 아천북카페에서 양마산 둘레길까지 이어진 1.8km의 ‘노을전망 데크로드’가 사랑받는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는 진주 동쪽에서 노을을 봤다. 지수면 승산리에 있는 지수승산부자마을에 갔다가 관란정(觀瀾亭)에 오른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의병 700명을 모아 진주성 1차 전투에서 공을 세운 관란 허국주 선생이 은거했던 정자다. 남강으로 저물기 직전 겨울 해가 비추는 관란정 풍경은 마치 황금색 필터를 끼운 듯 따뜻한 색감이었다.지수승산부자마을은 국내 대표 기업 창업주들이 나고 자라면서 교류한 동네다. LG그룹 공동 창업주이자 GS그룹 창업주인 효주 허만정 본가, LG그룹 공동 창업주인 연암 구인회 생가, 삼성그룹 이병철 창업주의 둘째 누나 이분시 여사가 살던 집 등이 모여 있다. 고즈넉한 한옥마을을 걸으니 어린 시절 창업주들이 돌담길 너머에서 뛰어나올 것 같았다.이 창업주들이 다녔던 지수초등학교는 리모델링을 마치고 2022년부터 ‘진주 K-기업가정신센터’로 활용되고 있다. 운동장에는 이들이 함께 심고 가꿨다는 ‘부자 소나무’가 우뚝 서 있었다. 이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부자가 된다는데, 창업가들의 도전정신을 되새길 수 있는 것만으로 ‘마음 부자’가 된 듯했다. 허만정 창업주의 호를 따서 조성한 공원인 효주원에 향기 좋은 은목서 꽃이 필 때 꼭 다시 와서 걷고 싶다. 진주가 이토록 우아한 곳인지 이제야 알았다.<진주의 맛>◇하연옥해물 육수를 쓰는 진주냉면의 성지. 마른 명태 머리와 건새우 등으로 맛을 낸 육수에 메밀면을 담고, 채 썬 육전과 지단 실고추 오이 등을 고명으로 얹는다. 바다와 육지 맛이 입안에서 어우러진다.◇월산닭무국진주 로컬 맛집. 소고기가 귀하던 시절 소고기 대신 늙은 닭과 무를 넣고 푹 끓여낸 것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하이라이트. 몸속뿐 아니라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진주식 영혼의 수프’라고 할 수 있겠다.진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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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활 속 실용정원으로 ‘정원과 함께하는 삶’ 이룰 것”

    산림청이 정원문화와 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해 2020년부터 매년 지방자치단체를 선정해 진행하는 대한민국 정원산업박람회가 올해는 경남 진주시에서 열린다. 6월 13일부터 22일까지 진주시 초전공원에서 열리는 ‘2025 대한민국 정원산업박람회’다. 박람회의 주제는 ‘정원과 함께하는 삶: 생활 속 실용정원’이다. 4일 진주시청에서 만난 조규일 진주시장(사진)은 이번 대한민국 정원산업박람회 개최의 의미에 대해 “2010년 전국체전 개최 이후 15년 만에 진주시에서 국가 주관 행사를 열게 됐다”며 “누구나 옥상과 주말농장 등 생활 속에서 쉽게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고 지역 내 잠재된 정원산업의 역량을 끌어내겠다”고 말했다. 왜 ‘정원과 함께하는 삶: 생활 속 실용정원’일까. 조 시장은 “정원 만들기는 대개 생활 주변의 텃밭 가꾸기로부터 비롯되는데 요즘은 옛날과 달리 이마저도 여의치 않은 실정”이라며 “아파트 거실과 베란다와 같은 실내정원을 가꾸고 주민들이 공동체 일원으로 마을 정원을 함께 만드는 것이 현실적인 ‘정원 속의 삶’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박람회는 진주시 초전공원에서 열린다. 과거 17년 동안 쓰레기 야적장으로 사용되다가 2010년 전국체전이 열린 후 생태공원으로 탈바꿈한 장소다. 조 시장은 “교통 접근성과 주차 여건이 우수하고 진주시 농산물도매시장에 인접해 정원과 농업의 만남이 가능하다”며 “박람회 이후에는 행정복합 신도시의 정원문화 타운이 되는 계기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진주시는 2023년과 2024년 복합산림복지시설인 ‘월아산 숲속의 진주’에서 월아산 정원박람회를 열었다. 1995년 대형 산불로 황폐해졌던 진주 월아산은 진주시와 지역민의 노력으로 푸른 숲을 되찾았다. 늘어나는 산림복지 수요에 발맞춰 2018년 월아산에 ‘목재문화체험장’을 운영한 것을 시작으로 2021년 ‘숲속 어린이 도서관’, 2022년에는 자연휴양림과 산림레포츠 시설을 확충했다. 특히 시설 확충 과정에서 나온 월아산 돌들을 시민들과 쌓아 만든 산석정원이 독자적 풍광을 이뤘다. 시설 개장 6년 만에 누적 방문객 100만 명을 돌파했으며 지난해에는 35만 명이 다녀갔다. 조 시장은 “사람도 살다 보면 쓰러질 때도 일어설 때도 있듯 월아산이 화재의 잿더미에서 다시 태어나 생명의 소중함을 전한다”며 “이번 박람회가 열리는 6월에 월아산의 수국이 특히 아름다울 것”이라고 했다. 조 시장은 “진주는 역사와 문화가 어우러진 도시여서 그 가치를 재조명하고 활용해 미래 세대에 자긍심을 심어주는 게 우리 모두의 몫”이라며 “이번 박람회가 삶 속에서 정원의 의미를 고찰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진주=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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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으로 K-정원을 세계에 알리는 남자 이야기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우승민 정원사진가 인터뷰첫눈은 늘 설렘이다. 지난해 첫눈은 예상치 못한 폭설로 놀라움까지 더했다. 다들 스마트폰을 꺼내 들고 첫눈의 추억을 남기던 이날, 집에서 차로 15분 떨어진 경기 포천의 국립수목원으로 카메라를 들고 나선 남자가 있었다. 우승민 정원사진가(38)다. “집(경기 양주) 가까이에 아름다운 국립수목원이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에요. 틈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아이들과 국립수목원에 가서 놀기 때문에, 첫눈 내리던 날도 거의 반사적으로 향했죠.”그는 흰 눈을 포근하게 입은 나무들이 국립수목원 육림호에 거울처럼 비친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순백의 풍경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깨어나고 마음이 깨끗해진다. 해외에서도 그렇게 보였을까. 이 사진은 지난해 12월 영국 PGPA(Professional Garden Photographer Association·전문정원사진가협회)의 ‘이달의 사진’ 세 편 중 한 편으로 선정돼 한 달 내내 협회 홈페이지 첫 화면에 노출됐다. 이뿐이던가. 지난해 8월에는 울산 태화강국가정원, 10월 충남 태안 천리포수목원, 11월 경기 가평 더스테이힐링파크 등 그가 찍은 사진들이 PGPA ‘이달의 사진’으로 한 해에 무려 네 차례 선정됐다. 정원에 관심 있는 세계인들이 그렇게 K-가든의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접했다.우 사진가는 2020년 한국인 최초로 PGPA 정회원이 됐다. 앞서 아시아 정원사진가로는 처음으로 영국왕립원예협회 국제사진 공모전(RHS Photographic Competiton)에서 상을 받자 평소 알고 지내던 PGPA 정회원 중 한 명이 추천서를 써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우 사진가는 2020년 경북 봉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거울 연못을 찍은 ‘몽환의 아침’으로 RHS 공모전에서 상을 받은 데 이어 2021년 경기 양평 두메향기, 2022년 국립세종수목원 희귀특산식물전시온실을 찍은 사진으로 연거푸 RHS 정원 사진 부문 상을 받았다. 3년 연속 수상은 세계 최초였다. 국내 식물원 수목원 업계에서 ‘우승민’이라는 이름은 ‘프로’로 통한다. 그의 정원 사진에는 계절이 있고, 기다림이 있다. 2019년 10월 30일 오전 7시쯤 촬영한 ‘몽환의 아침’ 사진은 물안개 핀 거울 연못에 비친 태양과 아침 이슬을 머금은 정원 식물이 그야말로 꿈결처럼 어우러진다. 2022년 그의 RHS 수상작인 국립세종수목원 희귀특산식물전시온실 사진은 보고 또 봐도 마음에 여운이 남는다. 햇살이 온실에 비쳐들어 홍가시나무와 새우난초를 비추던 황홀한 순간을 우 사진가는 기다리고 포착했을 것이다. 업계에서는 “우승민 사진가가 찍으면 어느 정원이든 다 예쁘다”는 말도 있을 정도다. 그는 어떻게 정원사진가가 되었나. 그를 만나 얘기를 들어보았다. ―사진을 전공했나.“가천대(옛 경원대) 조경학과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그림을 그려서인지 대학 수업에서 지방 답사를 다닐 때 아름다운 풍광에 끌렸다. 그림 대신 사진을 찍으면서 취미가 됐다. 크고 작은 사진 공모전에 도전해 150여 차례 상을 받았고 2014년 제1회 아름다운 조경·정원 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당시 대상을 받은 사진은.“벚꽃 핀 봄날 경기 양평 두물머리에서 한 부부가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찍은 ‘봄을 타다’라는 제목의 사진이었다. 아내와 연애할 때 걷던 길을 함께 산책하다가 찍었다. 당시 처음으로 야외에서 열린 조경문화박람회에서 수상하고 사진전까지 열려 조경과 사진을 둘 다 잡은 것 같아 뿌듯했다.”―대학 졸업 후 바로 정원사진가가 된 건가.“아니다. 처음에는 조경 설계사무소에서 일했다. 그런데 매일 사무실에서 밤샘 작업하며 도면에 매달리는 삶에 지쳐갔다. 조경이 자연을 오히려 훼손하는 게 아닌지 회의감마저 들었다. 1년 만에 퇴사해 국내 소셜커머스 회사에 입사해 맛집과 제품을 촬영하는 일을 하며 고객이 끌릴만한 사진을 고민하게 됐다. 이후 한 테마파크 기획홍보부에 들어가 자연을 렌즈에 담으면서 꽃이 시들어도 열매로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프리랜서 아닌가.“맞다. 사정이 생겨 테마파크 일을 관둔 뒤 평소 즐겨 찾던 강원 춘천 제이드가든에 정원 사진이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먼저 했다. 당시 홍보 사진이 필요하던 제이드 가든 측의 니즈와 부합해 2018년 연간 계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정원 사진을 찍게 됐다. 제이드가든은 주로 유럽풍 건물 위주로 소개돼왔는데 막상 가보니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원초적인 자연의 공간이 신비로웠다. 계절의 변화를 담기에 훌륭한 장소였다.”―정원사진가와 계약하다니 제이드가든이 선구적이었던 것 같다.“그렇다. 당시 좀 더 큰 스케일의 조경 사진가는 활동하고 있었지만, 정원 사진도, 정원사진가도 개념이 희박하던 때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진이 홍보되면서 다른 국내 정원들도 촬영하게 됐다.”당시 제이드가든에서 일했던 한 직원은 이렇게 전한다. “우승민 사진가보다 사진을 더 잘 찍는 사람은 많을 수 있다. 그런데 우 사진가는 본인이 조경을 전공해서인지 정원을 만든 사람이 고생한 부분, 부각하고 싶은 부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그것을 렌즈에 담는다. 그게 그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다.”―2020년 첫 RHS 공모전 수상작인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사진은 어떻게 찍게 됐나.“백두대간은 워낙 산세와 기운이 좋아 그 자체가 훌륭한 정원이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았다. 백두대간수목원에 상주하는 분들도 보기 어렵다는 연못의 물안개를 만나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자연이 준 선물이었다.”―최근 SNS에 올린 담양 소쇄원의 설경이 아름다웠다.“한국의 원림에 가면 자연을 즐길 줄 알던 선조들의 지혜가 저절로 느껴진다. 담양 소쇄원과 인근 명옥헌 원림은 어느 계절이나 아름다운데 마침 방문한 날 눈이 내렸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촬영지였던 안동 만휴정도 가보시라고 권하고 싶다.”―우리 국민에게 정원 여행지로 소개하고 싶은 장소가 많을 것 같다.“전남 담양의 죽녹원과 여러 별서들, 광주호 호수생태원, 서울숲의 오소정원, 국립수목원의 ‘식물 진화 속을 걷는 정원’, 국립세종수목원의 사계절전시온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암석원과 만병초원, 화담숲의 자작나무숲, 천리포수목원 겨울정원, 가평 더스테이힐링파크의 와일드가든, 서울식물원 온실을 특히 추천하고 싶다.”―앞으로의 포부는.“정원 문화가 발달한 영국은 식재 위주로 정원을 즐기는 것 같아 그동안 그런 사진을 출품해 상을 받았다. 꾸준히 마음 비뚤어지지 않고 정원 사진을 쭉 찍어 한국의 전통 정원도 세계에 알릴 수 있도록 하겠다.”꾸준히, 마음 비뚤어지지 않고, 쭉~. 설날을 코앞에 두고 영혼이 맑아지는 삶의 태도를 선물 받은 기분이었다. 그가 찍은 사진들을 가만히 본다. 아침 이슬을 머금은 식물, 해질녘 부드러워진 햇살…. 정원에 자주 가야 만날 수 있는, 마음의 렌즈가 깨끗해야 감사하게 마주할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정원 사진에서 길을 찾고 삶의 지도를 그려나가는 한 남자를 떠올리며 이 겨울의 정원들을 찾아나서련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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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호텔 설 명절 선물 세트는 사랑과 감사를 싣고∼

    《다가오는 설 명절을 앞두고 호텔업계는 각기 차별화된 설 선물 세트를 마련했다. 상품 기획 전문성과 지역 특색을 살려 고객 취향 맞춤형 선물 세트를 내놓으며 설 선물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선보이고 있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포시즌스 호텔 서울은 한우, 과일, 꿀, 호텔 바우처 등 다양한 구성의 ‘설 선물 세트’를 내놓았다. 구이로 즐기기 좋은 부위를 선별한 1++ 등급 한우로 구성된 ‘한우구이 미향 세트’와 ‘경북 안동한우 세트’, 명절 상차림을 위한 다양한 부위의 한우를 모은 ‘한우 특선 세트’도 판매한다. 자연산 송이와 산삼 배양근을 강원도 양양에서 채취한 꿀에 재워 은은한 향이 매력적인 ‘건강 꿀 세트’, 이 호텔의 향기를 담은 ‘포시즌스 호텔 서울 시그니처 향 세트’도 있다. 호텔 객실과 레스토랑 바, 스파에서 이용 가능한 ‘호텔 상품권’ 도 있다.>> 조선 팰리스조선 팰리스의 조선델리 더 부티크는 다채로운 구성의 햄퍼 세트를 30일까지 선보인다. 장수와 희망을 상징하는 국화를 모티브로 한 ‘국화 손과자 3입 세트’는 피칸, 헤이즐넛, 아몬드 맛 총 3가지로 전통미와 현대적 감각이 어우러진 국화 문양 디자인이 특징이다. 갈레드 부르통, 비스코티 등 프리미엄 구움과자 선물세트도 있다. 특히 선물의 품격을 높일 수 있도록 시그니처 서비스로 전통 보자기 패키징 ‘담음’을 새롭게 선보인다. 패키징 건당 2만 원으로 구매 이틀 전 예약하면 가능하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워커힐 호텔앤리조트는 전문 큐레이터가 다양한 고객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해 기획한 맞춤형 상품을 준비했다. ‘프리미엄 미트’, ‘고메’, ‘셰프스 테이블 앳 홈’, ‘스위트 홈’, ‘셀렉션’ 등 5가지 카테고리다. ‘프리미엄 미트’는 푸드테크 기업 ‘설로인’과 협업해 인공지능(AI) 기술로 육류의 품질과 지방 분포를 과학적으로 분석한 ‘워커힐X설로인 한우 셀렉션 세트’를 선보인다. ‘고메’는 워커힐 수펙스 김치, 지리산 흑돼지와 친환경 양식 새우로 만든 워커힐 고메 시그니처 만두 세트 등이 있다. 정기 배송 서비스로 만나볼 수 있는 워커힐 수펙스김치는 이번 설 한정으로 3개월, 6개월, 12개월 단위의 정기 배송권 선물이 가능하다.>> 페어몬트 서울서울 여의도 페어몬트 서울 호텔이 1억 원대 설 맞이 스페셜 햄퍼를 내놓았다. 병당 1000만 원을 호가하는 프랑스 ‘샤토 페트뤼스’ 와인 5병(2007∼2011년 빈티지)과 연회비 1100만 원의 VIP프리빌리지 멤버십 블랙 1인권을 담았다. 그 외 10만 원∼200만 원 대 햄퍼는 한우, 젓갈, 양갱, 전통주 등 국내 지역 특산물로 구성했다.>> 반얀트리 클럽앤스파반얀트리클럽앤스파는 설 명절 전후 피로를 풀 수 있는 스파 바우처 선물을 준비했다. 60분과 90분 바디 마사지 바우처 중 선택 가능하다. 홈스파 에센셜 키트도 마련했다. 이밖에 친환경 전복장 세트, 프리미엄 양갱 세트, 청도 반건시 세트, 전통 한우 육포 세트, 몽상클레르의 햄퍼 등이 있다. 24일까지 구매 가능하다.>> 이랜드파크 켄싱턴호텔앤리조트이랜드파크의 켄싱턴호텔앤리조트는 산지직송 특산품부터 호텔 PB상품까지 폭 넓힌 설 선물 세트를 21일까지 선보인다. 한우 및 정육 , 프리미엄 과일 등을 비롯해 각 지역 특산품 인 제주 만감류 세트, 지리산 벌꿀 세트, 강원도 오일 세트 등이 있다. 지난해 출시 이후 고객들에게 인기있는 호텔 PB상품인 켄싱턴 시그니처 베어 키링 3종, 켄싱턴 시그니처 베어 곰인형 2종, 센트 오브 켄싱턴 리드 디퓨저도 있다. >> 글래드 호텔앤리조트글래드 호텔은 21일까지 설 선물세트를 판매한다. 배송은 23일까지다. 글래드 호텔 레스토랑 식사권(글래드 여의도 그리츠, 메종 글래드 제주 삼다정), 글래드 굿즈 세트(꿀잠 세트, 타올 세트, 향기 세트) 등 호텔 전용 상품을 비롯해 최상급 명품 한우부터 LA 갈비 세트 등 육류 세트, 제주 청정 수산물 세트, 주류 상품 등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을 반영해 준비했다. >> 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 제주해비치 호텔앤드리조트는 해비치만의 시그니처 향을 담은 ‘해비치 배스 어메니티’를 준비했다. 이탈리아 피렌체의 유명 향수 브랜드 ‘아쿠아플로’의 수석 조향사를 지낸 실레노 켈로니가 제주를 방문해 영감을 얻은 해비치만의 시그니처 향을 개발해 만든 제품이다. 500mL용량의 샴푸, 컨디셔너, 보디워시, 보디로션으로 구성된 세트 상품과 50mL 바디로션 4개와 비누가 포함된 트래블 키트가 있다. 해비치만의 특별한 풍미가 담긴 맥주와 커피도 마련됐다. 제주산 감귤 농축액과 오렌지 껍질 등 향신료를 더한 ‘해비치 위트비어’, 세계 정상급 스페셜티 커피 원두를 자체 블렌딩해 만든 ‘해비치 빈’ 등이다.>> JW 메리어트 제주JW 메리어트 제주는 제주를 가득 담은 프리미엄 설 선물 세트를 선보인다. 제주 지역 다원 및 로스터리와 협업한 ‘JW메리어트 시그니처 세트’는 섬세한 블렌딩을 느낄 수 있다. ‘제주 은갈치 세트(3마리-6미, 마리당 650g)’는 주낙으로 건져 올린 귀한 은갈치로, 고소하고 담백한 육질이 일품이다. ‘제주 고등어 세트’는 자반 고등어 7팩, 손질 고등어 15팩으로 개별 포장되어 있어 다양한 요리에 활용할 수 있다. ‘제주 한라봉 세트’는 당도 높은 한라봉을 엄선했다. 프리미엄 설 선물 세트는 모두 6층 숍에서 현장 구매 및 배송 주문 가능하다. 리테일 숍 내 판매는 30일까지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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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여행, 동쪽으로 갈까 서쪽으로 갈까

    《설 연휴 여행을 떠난다면 어디가 좋을까.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은 바다와 도시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여행지다. 2023년 문을 연 비교적 ‘신상’인 부산의 두 호텔을 소개한다. 동쪽의 ‘빌라쥬 드 아난티’, 서쪽의 ‘윈덤 그랜드 부산’이다.》●빌라쥬 드 아난티‘아난티’는 한국의 순수 토종 로컬 호텔·리조트브랜드다. 2006년 경남 ‘아난티 남해’를 시작으로 경기 가평 ‘아난티 코드’(2016), 부산 ‘아난티 코브’(2017), 서울 ‘아난티 앳 강남’ (2022), 제주 ‘아난티 클럽 제주’ (2023) 등에서 문화가 있는 휴양의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해 왔다.2023년 7월 부산 기장군 오시리아 관광단지 내에 문을 연 ‘빌라쥬 드 아난티’는 기존의 ‘아난티 코브’보다 두 배 더 넓은 대지면적(16만㎡)에 지어졌다. 탁 트인 바다와 숲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만들기 위해 흙 200만t을 쌓아 건물 10층 높이로 대지를 올렸다. 단독빌라와 펜트하우스, ‘아난티 앳 부산 빌라쥬 호텔’ 등 392개의 객실을 비롯해 복합문화공간, 5개의 수영장, 11개의 야외 광장을 갖췄다. 지금껏 아난티의 건축 설계를 맡아온 민성진 건축가(SKM 건축사무소)가 빌라쥬 드 아난티도 설계했다. 조경은 에이치이에이(HEA)가 맡았다.빌라쥬 드 아난티 중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의 이름은 ‘엘.피.크리스탈’이다. 아난티의 시그니처 라이프스타일 숍인 ‘이터널 저니’를 비롯해 큐레이션 안목이 돋보이는 편집 브랜드숍들, 갤러리, 레스토랑, 아트북 전문 서점 등이 자리 잡고 있다. 북유럽 라이프스타일 매장 ‘HAY’, 스트리트 패션을 선보이는 ‘카시나’ 숍도 있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누구든 방문할 수 있다.호텔 무료 셔틀버스가 ‘빌라쥬 드 아난티’와 ‘아난티 코브’를 잇는다. 아난티 코브 로비에는 로맨틱한 웨딩드레스 숍도 있다. 로비 소파에 몸을 묻고 바다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뻥 뚫린다. 겨울 햇살이 내리쬐는 해안로를 따라 걷는 것도 축복이다. 인근 해동용궁사에서 새해 일출을 감상하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윈덤 그랜드 부산세계 95개국에 9200여 개의 호텔을 운영하는 글로벌 호텔 그룹 미국 ‘윈덤 그랜드’가 부산 서구 등대로에 2023년 9월 문을 열었다. 부산 서부권 첫 5성급 호텔로, 부산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떠올랐다. 24개 스위트룸을 포함한 271개 전 객실, 피트니스와 사우나가 모두 바다 전망이다. 바다 위에 떠서 해돋이를 바라보는 느낌의 일출 명소다. 부산 영도구와 서구를 잇는 남항대교를 내려다보기 때문에 야경도 예쁘다.KTX 부산역까지 차량으로 15분, 김해 국제공항까지 30분 거리여서 여행객과 출장객 모두에게 편리한 입지다. 호텔에서 차량 1분 거리에 있는 남항대교와 천마터널을 통해 부산의 동쪽과 서쪽을 연결하는 관문 역할도 한다.윈덤 그랜드 부산이 위치한 송도는 우리나라 최초 공설 해수욕장인 송도 해수욕장, 자갈치 시장 등과 인접해 있다. MZ세대에게 떠오르는 관광지인 영도 흰여울문화마을도 남항대교만 건너면 된다. 호텔에서 3분만 걸어가면 송도해상케이블카도 탈 수 있다. 총길이 365m의 송도구름다리는 한 바퀴 도는 데 15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다.이 호텔은 2025년 을사년 새해를 맞아 1월 말까지 뱀띠 고객을 위한 식음 프로모션도 진행한다. 4층 뷔페 레스토랑 ‘더 브릿지’에서는 뱀띠 고객 1인을 포함 4인 이상 방문 시 한 명당 20% 할인 혜택을 제공(주말, 공휴일은 불가)한다. 27층 레스토랑 ‘온 더 클라우드’에서는 뱀띠 고객 1인을 포함한 3인 이상 주문 시 단품 메뉴 1개를 무료로 제공한다.부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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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두에게 특별한 커피’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모모스 로스터리&커피바’에 들어서면 유리 통창을 통해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이 보인다. 녹슨 선박이 정박된 오래된 항구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액자 같다. 이곳은 과거 피난민촌이었던 영도 바닷가 선박 부품 창고였다. 옛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 내부에는 유명 산업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새하얀 스위스 ‘비트라’ 의자들이 놓여 있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 부산에 이 카페가 2021년 문을 열어 인적 드물던 영도로 청년을 끌어모으자 부산시는 이듬해 이 지역을 ‘커피 특화 거리’로 지정했다.미간에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시선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우리는 왜 커피를 마시는가. 평소 일상에 쫓겨 입속에 약을 털어 넣듯 카페인을 그저 쏟아부었던 건 아닌지. 커피의 맛과 향기와 온도를 섬세하게 음미하며 감각을 깨워보려 했는지. 이제야 커피나무들이 자라고 있을 아프리카 어느 농장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커피야말로 감각과 상상과 여행의 세계임을 이곳이 새삼 일깨운다.이 카페에서는 많은 것이 그냥 보인다. 매장 가운데 기다란 바(bar) 형태 조리대에서는 밝고 건강한 표정의 청년 바리스터들이 커피를 내린다. 유리 통창을 통해 드러나는 매장 안쪽 로스터리 공장에서 커피 원두가 공중 파이프라인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도 보인다. 일명 ‘보이는 로스터리’다. 보이는 것은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1층 매장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 ‘보이는 사무실’에 손님들이 매장인 줄 잘못 알고 올라올 정도다. 사무실이 이렇게 예쁠 일인가. 천장에는 둥근 달을 닮은 ‘루이스 폴센’ 조명들이 두둥실 달려 있고 직원들이 앉는 의자는 덴마크 ‘칼한센앤선’ 브랜드의 ‘CH24 위시본 체어’다. ‘커피에 진심’인 만큼 ‘가구에도 진심’인 회사인 게다. 그렇게 모든 게 투명하게 담겨 나오는 커피 맛을 사람들은 알아봤다.모모스커피는 ‘찐’ 부산 커피다. 이현기 모모스커피 대표(47)가 2007년 부산 금정구 부곡동 온천장역 앞 부모님 식당 앞 네 평 창고에서 시작했다. 부산의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고속철도 회사를 다녔던 그는 오랜 꿈이었던 사업을 하고 싶어 다시 경영학을 배웠다. 그리고 서른 살에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직원 월급도 주기 어려울 만큼 고전했지만 오로지 커피 품질만 생각하면서 매진한 결과 지금은 영도 로스터리&커피바(2021년), 해운대 마린시티점(2024년), 도모헌점(2024년) 등 부산에서 네 개의 ‘스페셜티 커피’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15개국 100여 개 농장에서 원두를 들여오며 지난해 기준 연 매출 200억 원, 연간 방문객은 120만 명이다.이 대표의 부모님 식당은 결코 거창한 곳이 아니었다. 부산 남구 문현동 판자촌에서 태어나 단칸방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는 이 대표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179번 버스를 타고 온천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찾아가 보니 빨간색으로 크게 ‘보신탕’이라고 쓰인 식당이었다. 부모님의 식당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온천장역 콩나물을 키우던 폐공장으로 옮겨왔고 이 대표는 이 식당 앞 작은 창고에서 커피 사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말한다. “어린 시절 ‘보신탕’이라고 적힌 집으로 들어가는 게 참 부끄러웠다. 긴 세월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고생하시다가 결국 폐업까지 했을 때 부모님의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옛 식당 입구의 흔적을 싹 다 지우고 싶었다. 못난 자존심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렸다. 감사한 마음 대신 오만함이 가득했다. 이제 당시의 부모님 나이가 돼 보니 이렇게 커피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버팀목이 부모님이었음을, 부모님이 옛 식당에 심은 대나무숲이었음을 깨닫는다.” 지금의 모모스커피 온천장 본점은 옛 식당뿐 아니라 인근 건물들을 사들여 계속 확장 중이다.모모스커피를 생각하면 ‘도전’과 ‘성장’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족 같은 끈끈한 조직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장이다. 2007년 창업 당시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를 시작한 전주연 씨(37)는 부단한 도전 끝에 2019년 한국 최초의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됐고 현재는 모모스커피의 공동 대표다. 창업 초기 한 단골손님은 ‘커피가 좋아’ 입사해 이제는 임원이 됐다. 모모스커피는 사업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기업부설 연구소를 세워 커피 연구에 매달렸다. 이 대표가 새로운 해외 커피 산지를 개척하러 다닐 동안 직원들은 국내 시장을 단단히 키웠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기업으로 가야 하는가’라는 공동의 문제의식과 도전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성장을 이끌었다.모모스커피는 지난해 고급 아파트들이 즐비한 해운대 마린시티와 옛 시장 관사를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도모헌’에 매장을 잇달아 냈다. 브랜딩 전문기업 켈리타앤컴퍼니와 손잡고 브랜드 아이덴티티(BI) 작업도 했다. 비전은 ‘특별함을 모두에게(Specialty for All)’. 커피를 즐기는 사람뿐 아니라 커피를 만드는 모두의 삶이 함께 행복하길 희망하며 커피의 본질에 깊이 다가가 다양한 문화를 통해 더 큰 가치를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점포별 특색을 담은 각각의 이미지로 컵과 드립백을 디자인해 ‘스페셜티 커피’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디자인페스티벌, 서울카페쇼 등과도 협업한다. 부모님이 옛 식당 즉, 모모스 본점의 터에 직접 가꿨던 정원의 정신을 생각하며 ‘모두의 정원’이라는 콘셉트로 누구든 즐기고 쉬어가는 매장의 정원들도 늘려 나가고 있다.‘모모스’는 무슨 뜻일까. 2000년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보보스’(Bobos·물질적 풍요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상류계층)라는 말을 사용한 후 유럽에서는 ‘모모스’(Momos)라는 마케팅 신조어가 따라 유행했다고 한다. 상업주의를 배척하고 실용성과 윤리적 가치를 즐기는 당시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13만km를 주행해 가끔 시동이 꺼지는 승용차를 아직도 운전하는 이 대표가 커피와 공간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을 보면 ‘모모스커피’는 역시 ‘모모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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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年120만 명이 찾는 ‘모두를 위한 특별한 커피’와 ‘모두의 정원’[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부산시 영도구 봉래동 ‘모모스 로스터리&커피바’에 들어서면 유리 통창을 통해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이 보인다. 녹슨 선박이 정박된 오래된 항구의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액자 같다. 이곳은 과거 피난민촌이었던 영도 바닷가 선박 부품 창고였다. 옛 창고를 개조해 만든 카페 내부에는 유명 산업디자이너 재스퍼 모리슨이 디자인한 새하얀 스위스 ‘비트라’ 의자들이 놓여 있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 부산에 이 카페가 2021년 문을 열어 인적 드물던 영도로 청년을 끌어모으자 부산시는 이듬해 이 지역을 ‘커피 특화 거리’로 지정했다.미간에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 편안한 시선으로 커피를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우리는 왜 커피를 마시는가. 평소 일상에 쫓겨 입속에 약을 털어 넣듯 카페인을 그저 쏟아부었던 건 아닌지. 커피의 맛과 향기와 온도를 섬세하게 음미하며 감각을 깨워보려 했는지. 이제야 커피나무들이 자라고 있을 아프리카 어느 농장의 모습을 상상해본다. 커피야말로 감각과 상상과 여행의 세계임을 이곳이 새삼 일깨운다.이 카페에서는 많은 것이 그냥 보인다. 매장 가운데 기다란 바(bar) 형태 조리대에서는 밝고 건강한 표정의 청년 바리스터들이 커피를 내린다. 유리 통창을 통해 드러나는 매장 안쪽 로스터리 공장에서 커피 원두가 공중 파이프라인을 타고 이동하는 과정도 보인다. 일명 ‘보이는 로스터리’다. 보이는 것은 사무실도 마찬가지다. 1층 매장에서 계단으로 이어지는 2층 ‘보이는 사무실’에 손님들이 매장인 줄 잘못 알고 올라올 정도다. 사무실이 이렇게 예쁠 일인가. 천장에는 둥근 달을 닮은 ‘루이스 폴센’ 조명들이 두둥실 달려 있고 직원들이 앉는 의자는 덴마크 ‘칼한센앤선’ 브랜드의 ‘CH24 위시본 체어’다. ‘커피에 진심’인 만큼 ‘가구에도 진심’인 회사인 게다. 그렇게 모든 게 투명하게 담겨 나오는 커피 맛을 사람들은 알아봤다.모모스커피는 ‘찐’ 부산 커피다. 이현기 모모스커피 대표(47)가 2007년 부산 금정구 부곡동 온천장역 앞 부모님 식당 앞 네 평 창고에서 시작했다. 부산의 대학에서 토목공학을 전공하고 철도건설회사를 다녔던 그는 오랜 꿈이었던 사업을 하고 싶어 다시 경영학을 배웠다. 그리고 서른 살에 커피 사업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직원 월급도 주기 어려울 만큼 고전했지만 오로지 커피 품질만 생각하면서 매진한 결과 지금은 영도 로스터리&커피바(2021년), 해운대 마린시티점(2024년), 도모헌점(2024년) 등 부산에서 네 개의 ‘스페셜티 커피’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15개국 100여 개 농장에서 원두를 들여오며 지난해 기준 연 매출 200억 원, 연간 방문객은 120만 명이다.이 대표의 부모님 식당은 결코 거창한 곳이 아니었다. 부산 남구 문현동 판자촌에서 태어나 단칸방을 옮겨 다니며 살았다는 이 대표는 어느 날 아버지로부터 “179번 버스를 타고 온천 입구에서 내리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찾아가 보니 빨간색으로 크게 ‘보신탕’이라고 쓰인 식당이었다. 부모님의 식당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당시 온천장역 콩나물을 키우던 폐공장으로 옮겨왔고 이 대표는 이 식당 앞 작은 창고에서 커피 사업을 시작했다.이 대표는 말한다. “어린 시절 ‘보신탕’이라고 적힌 집으로 들어가는 게 참 부끄러웠다. 긴 세월 자식을 먹여 살리려고 고생하시다가 보신탕이 사양산업이 되며 폐업하게 됐을 때 부모님의 상실감은 얼마나 컸을까. 그런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옛 식당 입구의 흔적을 싹 다 지우고 싶었다. 못난 자존심이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눈을 가렸다. 감사한 마음 대신 오만함이 가득했다. 이제 당시의 부모님 나이가 돼 보니 이렇게 커피로 살아남을 수 있게 해 준 가장 큰 버팀목이 부모님이었음을, 부모님이 옛 식당 콘트리트 바닥에 심은 대나무였음을 깨닫는다. 당시 얼마나 커피를 알고 얼마나 기술력이 있었겠나. 부모님이 만들어놓은 대나무 정원이 없었다면 사람들이 커피만으로 찾아왔을까.” 지금의 모모스커피 온천장 본점은 옛 식당뿐 아니라 인접한 오래된 건물들을 사들여 계속 확장 중이다. 이제는 사업을 시작한 처음 면적(4평)의 백 배(약 400평)가 됐다. 커피를 통해 공간과 문화를 모두와 나누고 싶어 정원의 이름이 ‘모두의 정원’이다.모모스커피를 생각하면 ‘도전’과 ‘성장’이라는 두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가족 같은 끈끈한 조직 분위기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성장이다. 2007년 창업 당시 아르바이트생으로 근무를 시작한 전주연 씨(37)는 부단한 도전 끝에 2019년 한국 최초의 월드 바리스타 챔피언이 됐고 현재는 모모스커피의 공동 대표다. 창업 초기 한 단골손님은 ‘커피가 좋아’ 입사해 이제는 임원이다. 모모스커피는 사업의 정체성이 흔들릴 때 기업부설 연구소를 세워 조직 구성원 모두가 커피 연구에 매달렸다. 이 대표가 새로운 해외 커피 산지를 개척하러 다닐 동안 직원들은 국내 시장을 단단히 키웠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떤 기업으로 가야 하는가’라는 공동의 문제의식과 도전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성장을 이끌었다.모모스커피는 지난해 고급 아파트들이 즐비한 해운대 마린시티와 옛 시장 관사를 개조한 복합문화공간 ‘도모헌’에 매장을 잇달아 냈다. 브랜딩 전문기업 켈리타앤컴퍼니와 손잡고 브랜드 아이덴티티(BI) 작업도 했다. 비전은 ‘특별함을 모두에게(Specialty for All)’. 커피를 즐기는 사람뿐 아니라 커피를 만드는 모두의 삶이 함께 행복하길 희망하며 커피의 본질에 깊이 다가가 다양한 문화를 통해 더 큰 가치를 발굴하겠다는 것이다. 원두와 점포별 특색을 담은 각각의 이미지로 컵과 드립백을 디자인해 ‘스페셜티 커피’ 여행의 즐거움을 더했다. 부산국제영화제, 부산디자인페스티벌, 서울카페쇼 등과도 협업한다. 부모님이 옛 식당 즉, 모모스 본점의 터에 직접 가꿨던 정원의 정신을 생각하며 누구든 즐기고 쉬어가는 ‘모두의 정원’들도 늘려가고 있다. 지금의 모모스커피를 있게 한 온천장 본점에 숲 느낌의 정원을 만드는 공사도 지난주 시작했다. ‘모모스’는 무슨 뜻일까. 2000년 미국 언론인 데이비드 브룩스가 ‘보보스’(Bobos·물질적 풍요와 보헤미안의 정신적 풍요를 동시에 누리는 상류계층)라는 말을 사용한 후 유럽에서는 ‘모모스’(Momos)라는 마케팅 신조어가 따라 유행했다고 한다. 상업주의를 배척하고 실용성과 윤리적 가치를 즐기는 당시 청년세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13만km를 주행해 가끔 시동이 꺼지는 승용차를 아직도 운전하는 이 대표가 커피와 공간을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는 모습을 보면 ‘모모스커피’는 역시 ‘모모스’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부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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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여행 우짜믄 좋노?… 정원 보러 오이소[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부산은 바다의 도시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최근 문화 감성 가득한 정원들이 도시 일상에 녹아들고 있었다. 예술과 커피, 부산시와 로컬 기업의 도전 정신이 있었다. 이래저래 해외여행이 부담스러운 요즘, 부산은 소소한 휴식과 가슴 뛰는 감동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여행지 아닐까. 바다 위로 뜨는 해를 보며 새해를 살아갈 다짐을 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을 정원 여행자의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옛 부산시장 관사를 소풍하듯 산책 요즘 부산의 대표 ‘핫플’로 떠오른 곳이 있다. 옛 부산시장 관사를 리모델링한 수영구 남천동 복합문화공간 ‘도모헌’(면적 1만8015㎡)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2021년 취임 후 관사에 입주하지 않고 시민 품으로 돌려주겠다고 밝힌 뒤 개조 공사를 거쳐 지난해 9월 전면 개방됐다. 지금까지 12만 명 넘게 다녀갔다. 도모헌에 들어서면 마치 청와대 경내를 걷는 기분이다. 산책로를 따라 오래된 소나무를 비롯해 149종류 4만 그루 나무가 심어져 있다. 실제로 1984년 대통령 지방 숙소로 지어져 ‘지방 청와대’로 불렸다. 이후 부산시장 공관으로 사용되며 2004년부터 일부 공간이 개방됐으나 대통령과 시장이 머무르던 본관까지 전면 공개된 것은 40년 만이다. 김중업 건축가(1922∼1988)가 설계한 건물을 최욱 건축가가 재탄생시켰다.도모헌의 정원 이름은 ‘소소풍 정원’이다. ‘소소하게 작은 소풍을 하는 정원’이란 뜻으로, 청나래고사리와 오이풀 같은 들꽃과 재활용 야외 가구들이 어우러져 평온한 분위기다. 광안대교가 멀리 보이는 너른 잔디정원은 눕거나 거닐거나 뛰놀 수 있는 초록색 ‘자유의 도화지’인 셈이다. 지난해 9월 부산시 제1호 생활정원(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하는 개방형 정원)으로 지정됐다.도모헌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도모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잘 익은 콩과 달개비꽃 등 자연의 색으로 이름을 붙인 각 공간에서는 재미있는 일들을 도모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과 협업한 전시, 부산의 미슐랭 레스토랑 요리사 특강, 가드닝 클래스…. 부산 커피 기업 ‘모모스커피’ 매장에서는 ‘도모헌 블렌드’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부산의 멋, ‘모모스커피’의 정원 지난해 문을 연 모모스커피 해운대 마린시티점은 ‘부산시 아름다운 조경상’을 받은 ‘오션뷰 맛집’이자 ‘정원 맛집’이다.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면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심어진 숲정원을 거닐 수 있다.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느릿한 시선을 바다와 숲에 두는 사람들의 표정이 평안해 보인다. 요가와 러닝 모임이 이뤄지기도 하는 이 정원 이름은 ‘모두의 정원’이다.모모스커피는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2007년 부산 금정구 온천장역 앞 네 평 공간에서 시작해 온천장 본점(2007년), 영도 로스터리&커피바(2021년), 해운대 마린시티점(2024년), 도모헌점(2024년) 등 네 개의 ‘스페셜티 커피’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15개국 100여 개 농장에서 원두를 들여오며,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을 두 명이나 둔 ‘커피에 진심’인 회사다. 지난해 기준 연 매출 200억 원, 연간 방문객은 120만 명이다. 부산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들에 들어섰기 때문에 모모스커피 매장 네 곳만 ‘도장 깨듯’ 순례해도 훌륭한 부산 도시 여행이 될 수 있다. 특히 봉래동 물양장(소형 선박 접안 부두) 앞 창고를 개조한 영도 로스터리&커피바는 6·25전쟁 중 피란민촌이던 영도에 멋쟁이 MZ세대를 불러모으고 있다. 부산에 밀면과 돼지국밥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모스커피가 부산 커피 문화를 이끌고 있다.● 부산 제1호 민간정원 ‘F1963’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 복합문화공간 ‘F1963’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대나무 숲이 눈과 마음을 씻어준다. 2016년 심은 대나무 묘목들이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룬 ‘소리길’이다. 도시에 초록색 산소를 훅 불어주는 것 같다. 지난해 12월 탄생한 부산시 제1호 민간정원(법인, 단체 또는 개인이 가꾼 정원을 개방하는 산림청 지정 정원)이 바로 F1963 정원이다. F1963은 고려제강 공장이 설립된 해인 1963과 공장(Factory)의 ‘F’를 합친 단어다. 1963년부터 45년간 가동하던 공장이 이전하고 창고로 사용되다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쓰이면서 거듭났다. 공장은 예술홀, 창고는 도서관, 부속 건물은 유리 온실로 탈바꿈했다. 국제갤러리, 예스24, 테라로사커피에 이어 2021년에는 현대모터스튜디오도 자리 잡았다.권춘희 ‘뜰과숲’ 대표는 으스대지 않는 조경으로 F1963 재생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대나무를 심은 건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의 뜻이었다. 올곧으면서도 유연한 대나무 성질이 와이어와 닮았기 때문이다. 산책로에는 옛 공장 바닥 콘크리트를 재활용해 깔고 정수시설이 있던 공간은 ‘단풍가든’으로, 완제품을 처리하던 뒷마당은 ‘달빛가든’과 유리 온실로 조성했다. 유리 온실에서는 식물들의 섬세한 속삭임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현대모터스튜디오 4층에는 야외 정원을 갖춘 ‘마이클 어반 팜 테이블’이라는 식당이 있고, 1층 미디어월 맞은편에는 지금은 서점으로 활용되는 옛 공장이 있다. F1963에서 정원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다. 두 건물 사이 좁은 배수로 위에 만든 암석정원의 돌과 넝쿨, 사초류(莎草類) 풍경이 수채화처럼 서정적이다. 도서관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당마삭줄이 5월에 피우는 흰 꽃 향기가 일품이라니 봄에 또 와야겠다.● 갤러리와 호텔에 들어선 정원 부산 동쪽 기장군으로 향하는 도중 해운대 달맞이길에 올랐다. ‘문탠로드’ 산책로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겨울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부산 문화를 이끄는 조현화랑에서는 다음 달 중순까지 권대섭 도예가의 달항아리 전시와 황지해 정원가의 작품 ‘물이 오를 때’ 전시가 열린다. 흙과 자연을 매개로 생명력과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황 작가는 “박주가리 씨앗을 통해 미기후(微氣候·지면에 접한 대기층 기후)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고 견고하게 지켜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국내 토종 호텔·리조트 브랜드로 성공한 아난티는 기장군을 개발시킨 주역이다. 2017년 기장군에 ‘아난티 코브’를 연 데 이어 2023년 ‘빌라쥬 드 아난티’를 열었다. 바다와 숲, 도시와 정원이 만나는 ‘아난티 마을’이라는 뜻이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문화시설과 정원을 누릴 수 있다. 둥근형 꽝꽝나무로 만든 미로 정원, 호랑가시나무가 품는 정갈한 돌담, 은목서와 홍가시나무 같은 남부 수종(樹種)이 심어진 산책로가 ‘부산의 아름다운 정원 여행’을 함께한다.그 밖의 추천 여행지◇해동용궁사 부산 기장군 바다와 맞닿은 사찰. 풍광이 뛰어나 부산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에 속한다. 바다 위로 해가 뜨기 전 색감이 마크 로스코 그림과 흡사하다. 정성스레 고른 새해 소원 하나를 빌어 본다.◇감천문화마을 피란민촌이라는 역사와 공공미술이 만나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산기슭에 알록달록 칠해진 집들이 이탈리아 친퀘테레를 연상케 한다.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흰여울문화마을 부산 대표 원도심이 독창적 문화예술마을로 거듭났다.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며 영화 ‘변호인’과 ‘범죄와의 전쟁’ 등이 촬영됐다. 형형색색 계단과 산책길 끝에 있는 동굴이 사진 명소다.글·사진 부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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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산 여행 우짜믄 좋노? 정원 보러 오이소[김선미의 시크릿가든]

    부산은 바다의 도시인 줄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최근 문화 감성 가득한 정원들이 도시의 일상에 녹아들고 있었다. 예술과 커피, 부산시와 로컬기업의 도전 정신이 있었다. 이래저래 해외여행이 부담스러운 요즘, 부산은 소소한 휴식과 가슴 뛰는 감동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여행지 아닐까. 바다 위로 뜨는 해를 보며 새해를 살아갈 다짐을 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제2의 도시 부산을 정원 여행자의 마음으로 둘러보았다. ●옛 부산시장 관사를 소풍하듯 산책요즘 부산의 대표 ‘핫플’로 떠오른 곳이 있다. 옛 부산시장 관사를 리모델링한 수영구 남천동의 복합문화공간 ‘도모헌’(부지면적 1만8015㎡)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2021년 취임 후 관사에 입주하지 않고 시민 품으로 돌려주겠다고 밝힌 뒤 리모델링 공사를 거쳐 지난해 9월 전면 개방됐다. 지금까지 12만 명 넘게 다녀갔다. 도모헌에 들어서면 마치 청와대 경내를 걷는 기분이다. 산책로를 따라 오래된 소나무 등 149종류 4만 그루가 심어있다. 실제로 1984년 대통령의 지방 숙소로 지어져 ‘지방 청와대’로 불렸다. 이후 부산시장 공관으로 사용되며 2004년부터 일부 공간이 개방됐으나 대통령과 시장이 머무르던 본관까지 전면 공개된 것은 40년 만이다. 고 김중업 건축가(1922~1988)가 지은 건물을 최욱 건축가가 재탄생시켰다. 도모헌의 정원 이름은 ‘소소풍 정원’이다. ‘소소하게 작은 소풍을 하는 정원’이란 뜻으로, 청나래고사리와 오이풀 같은 들꽃들과 재활용 야외가구들이 어우러져 평온한 분위기다. 광안대교가 멀리 보이는 너른 잔디정원은 눕거나 거닐거나 뛰놀 수 있는 초록색 자유의 도화지인 셈이다. 지난해 9월 부산시 제1호 생활정원(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조성하는 개방형 정원)으로 지정됐다. 도모헌은 ‘무엇이든 자유롭게 도모하는 공간’이라는 의미다. 잘 익은 콩과 달개비꽃 등 자연의 색으로 이름을 붙인 각 공간에서는 재미있는 일들이 도모되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과 협업한 전시, 부산의 미슐랭 레스토랑 요리사 특강, 가드닝 클래스…. 부산의 커피 기업 ‘모모스커피’ 매장에서는 ‘도모헌 블렌드’라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 ●부산의 멋, ‘모모스커피’의 정원모모스커피가 지난해 문을 연 해운대 마린시티점은 ‘부산시 아름다운 조경상’을 받은 ‘오션뷰 맛집’이자 ‘정원 맛집’이다. 해운대 바다를 바라보면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가 심어진 숲정원을 거닐 수 있다. 어딘가에 쫓기지 않고 느릿한 시선을 바다와 숲에 두는 사람들의 표정이 평안해 보인다. 요가와 러닝 모임이 이뤄지기도 하는 이 정원의 이름은 ‘모두의 정원’이다. 모모스커피는 부산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2007년 부산 금정구 온천장역 앞 네 평 공간에서 시작해 온천장 본점(2007년), 영도 로스터리&커피바(2021년), 해운대 마린시티점(2024년), 도모헌점(2024년) 등 네 개의 ‘스페셜티 커피’ 점포를 운영하고 있다. 15개국 100여 개 농장에서 원두를 들여오며, 세계 바리스타 챔피언 직원을 두 명이나 둔 ‘커피에 진심’인 회사다. 지난해 기준 연 매출 200억 원, 연간 방문객은 120만 명이다.부산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장소들에 들어섰기 때문에 모모스커피 매장 네 곳만 ‘도장 깨듯’ 순례해도 훌륭한 부산 도시 여행이 될 수 있다. 특히 봉래동 물양장(소형 선박이 접안하는 부두) 앞 창고를 개조한 영도 로스터리&커피바는 과거 피난민촌이었던 영도에 멋쟁이 MZ세대를 불러모으고 있다. 부산에 밀면과 돼지국밥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모모스커피가 부산의 커피 문화를 이끌고 있다. ●부산시 제1호 민간정원, ‘F1963’ 정원부산시 수영구 망미동의 복합문화공간 ‘F1963’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대나무 숲이 눈과 마음을 씻어준다. 2016년 심은 어린 대나무들이 지금은 울창한 숲을 이룬 ‘소리길’이다. 도시에 초록색 산소를 훅 불어주는 것 같다. 지난달 탄생한 부산시 제1호 민간정원(법인·단체 또는 개인이 가꾼 정원을 개방하는 산림청 지정 정원)이 바로 F1963 정원이다. F1963은 고려제강 공장의 설립 연도인 1963과 공장(Factory)의 ‘F’를 합친 단어다. 1963년부터 45년간 가동됐던 공장이 이전하고 창고로 사용되다가 2016년 부산비엔날레 전시장으로 활용된 이후 거듭났다. 공장은 예술홀, 창고는 도서관, 부속 건물은 유리온실로 탈바꿈했다. 국제갤러리, 예스24, 테라로사커피에 이어 2021년에는 현대모토스튜디오도 자리 잡았다. 권춘희 ‘뜰과숲’ 대표는 으스대지 않는 조경으로 F1963의 재생 건축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대나무를 심은 건 홍영철 고려제강 회장의 뜻이었다. 올곧으면서도 유연한 대나무의 성질이 와이어와 닮았기 때문이다. 산책로에는 옛 공장 바닥의 콘크리트를 재활용해 깔고 정수시설이 있던 공간은 ‘단풍가든’, 완제품을 처리하던 뒷마당은 ‘달빛가든’과 유리온실로 조성했다. 유리온실에서는 식물들의 섬세한 속삭임을 들으며 책을 읽을 수 있다.현대모토스튜디오 4층에는 야외 정원을 갖춘 ‘마이클 어반 팜 테이블’이라는 식당이 있고 1층 미디어월 맞은편에는 지금은 서점으로 활용되는 옛 공장이 있다. F1963에서 정원은 과거와 미래를 잇는다. 두 건물 사이의 좁은 배수로 위에 만든 암석정원의 돌과 넝쿨, 사초류의 풍경이 수채화처럼 서정적이다. 도서관의 콘크리트 벽을 타고 올라가는 당마삭줄이 5월에 피우는 흰 꽃의 향기가 일품이라니 봄에 또 와야겠다.●갤러리와 호텔에 들어선 정원부산의 동쪽 기장군으로 향하는 도중 달맞이길에 올랐다. ‘문탠로드’ 산책로에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겨울 햇살이 눈부시게 빛났다. 부산의 문화를 이끄는 달맞이길 조현화랑에서는 다음 달 중순까지 권대섭 도예가의 달항아리 전시와 황지해 정원가의 작품 전시가 열리고 있다. 흙과 자연을 매개로 생명력과 본질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황 작가는 “박주가리 씨앗을 통해 미기후(微氣候·지면에 접한 대기층 기후)가 세상을 얼마나 아름답고 견고하게 지켜내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국내 토종 호텔·리조트 브랜드로 성공한 아난티는 기장군을 개발시킨 주역이다. 2017년 기장군에 ‘아난티 코브’를 연 데 이어 2023년 ‘빌라쥬 드 아난티’를 열었다. 바다와 숲, 도시와 정원이 만나는 ‘아난티 마을’이라는 뜻이다. 투숙객이 아니어도 각종 문화 시설과 정원을 누릴 수 있다. 둥근형 꽝꽝나무로 만든 미로 정원, 호랑가시나무가 품는 정갈한 돌담, 은목서와 홍가시나무 등 남부 수종(樹種)이 심어진 산책로가 ‘부산의 아름다운 정원 여행’을 함께 한다.<그 밖의 추천 여행지>◇해동용궁사=부산 기장군 바다와 맞닿은 사찰. 풍광이 뛰어나 부산을 찾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 중 한 곳이다. 바다 위로 해가 뜨기 전 색감이 마크 로스코의 그림과 흡사하다. 정성스레 고른 새해 소원 하나를 빌어본다.◇감천문화마을=피난민촌이라는 역사와 공공미술이 만나 ‘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 중 한 곳으로 꼽힌다. 산기슭에 알록달록 칠해진 집들이 이탈리아 친퀘테레를 연상케 한다. 어린왕자와 사막여우 동상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줄이 길게 늘어선다.◇흰여울문화마을=부산을 대표하는 원도심이 독창적 문화예술 마을로 거듭났다.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며 ‘변호인’과 ‘범죄와의 전쟁’ 등이 촬영됐다. 알록달록한 계단과 산책길 끝에 있는 동굴이 사진 명소다. 부산=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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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치자가 세상과 마음을 다스린 조선시대 감영 원림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심원건축학술상 열 번째 총서, ‘풍경과 다스림-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을사(乙巳)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 첫 ‘시크릿가든’은 심원건축학술상의 열 번째 총서인 ‘풍경과 다스림-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을 소개합니다. 토요일이었던 4일 오후 서울 마포구 이건하우스에서 심원건축학술상 제15회 수상작 출판기념회가 열려 다녀왔어요. 심원건축학술상은 심원문화사업회(이사장 이태규)가 2008년부터 건축 역사, 이론, 미학, 비평 분야의 신진 연구자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상입니다. 이 상을 받아 이번에 출간된 도서는 임한솔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선임연구원(37)이 쓴 ‘풍경과 다스림-조선시대 감영 원림의 역사와 미학’입니다. ●심원건축학술상을 아시나요심원건축학술상은 연구자들에게 권위 있는 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건축계에서 건축물에 수여하는 상은 많지만, 건축 관련 인문학 연구를 시상하는 경우는 드문데요. 이 상은 1500만 원의 상금과 출판을 지원합니다.이 상이 탄생한 데에는 특별한 사연이 있습니다. 이태규 심원문화사업회 이사장(54·엠에스오토텍 사장)은 부친인 엠에스오토텍 창업주(회장)가 경영해 온 공장의 리모델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심원’이라는 이름의 작은 사무소를 운영하는 김광재 건축가를 소개받아 친밀한 관계를 맺습니다. 그런데 공장 완공을 몇 달 앞두고 김 건축가가 지병으로 세상을 뜨지요. 그를 기리며 만든 상이 심원건축학술상입니다.2008년 이 상의 제정 의지에 뜻을 모은 중견 건축학자들이 모여 1기 위원회를 꾸렸습니다. 그중 한 명인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말합니다. “건축사처럼 어려운 공부를 하는 연구자를 지원하겠다는 큰 방향은 이태규 이사장이 정했고, 위원회에서는 세 가지 원칙을 정했습니다. 연구의 지역과 시대를 가리지 않고, 절대적으로 새로운 지식 이론을 개발한 연구자에게 수여하며, 수준이 못 미치면 수상작을 내지 않기로 한 것입니다. 덕분에 이 상이 학술적으로 인정받게 된 것 같습니다.” 올해로 15회인 이 상에서 열 번째 총서가 발간된 것은 다섯 번은 수상작을 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태규 이사장은 이날 출판기념회에도 참석해 수상자를 축하했습니다.●“고유한 풍광을 담은 감영 원림”이번에 책을 펴낸 임한솔 연구원은 건축과 조경을 두루 공부했습니다. 그래서 ‘감영 원림’이라는 학문적 개념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감영(監營)은 조선시대 도(道)를 총괄하는 지방 행정조직, 원림(園林)은 자연을 감상하기 위한 인위적 장치입니다. 고로 감영 원림은 요즘의 도지사에 해당하는 조선시대 관찰사가 조성한 원림(정원의 확장된 개념)을 뜻합니다.조선시대 감영 소재지는 현재 기준으로 남한에 5곳, 북한에 3곳 있습니다. 남북한을 막론하고 감영 본청과 객사, 성곽의 터는 식민지 시기에 근대 시설로 전용되며 대부분 원형을 잃었는데요. 다만 성문 등이 일부 남아있고 2000년대 이후에는 각 지역의 문화 콘텐츠로 주목받아 발굴과 복원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강원 원주 강원감영, 충남 공주 공북루, 전주 풍남문 등이 감영 원림 유적입니다. 김동욱 경기대 건축학과 명예교수(전 한국건축역사학회장)는 추천사를 통해 밝힙니다. “조선시대 지방에 조성된 감영은 잘 알려지지 않은 별세계였다. 감영 원림은 궁궐 후원처럼 넓고 화려하지 않고 선비들이 지은 작은 원림의 소박함과도 구별되는 색다른 공간이었다. 팔도마다 고유한 풍광과 예술혼이 각각의 감영 원림에서 꽃을 피웠다.”책에 따르면 조선의 원림은 조선의 사상적 기반인 신유학(성리학)의 자연관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신유학의 원림관은 도덕을 추구하고 개인의 깨달음으로 세상의 이로움을 확장한다는 것이지요. 특히 조선시대 감영 원림은 주로 높은 곳에서 먼 풍경을 바라보는 조망을 구현함으로써 자연과 인위의 양립을 이뤘습니다. 조선시대 문신 서거정의 공주객사 취원루의 기문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이 정자의 좋은 것이 한둘이 아니나 먼 것을 모은 것(취원·聚遠)보다 더 좋은 것이 없다 하였는데 이는 멀리 있는 모든 좋은 경치를 이 한 곳의 누(樓)로 모아들였다는 것이다.” 풍경을 보는 통치자가 사물의 변화에 휘둘리지 않고 오히려 이를 통해 마음을 다잡고 세상을 살피며 더 나은 정치를 해내는 것을 궁극적 목적으로 제시한 것입니다. ●“풍경을 매개로 다스리는 곳”조선시대 감영 원림은 지금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걸까요. 임 연구원으로부터 들어봤습니다.―책에서 왜 ‘정원’이 아니고 ‘원림’이라고 썼는가.“‘정원’은 건축물이나 담장으로 둘러싸인 마당의 의미를 담고 있는데, 책의 서술 대상들은 그 방식으로 한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정원보다 확장된 개념으로 ‘원림’이라고 썼다.”―감영 원림은 조선시대 다른 정원과 무엇이 다른가.“도시 중심에 위치한 실권자의 정원이므로 ‘좋은 정치’라는 조성 목적이 분명했다. 깊은 곳에 숨지 않고, 사람들의 일상생활도 감상 대상으로 삼아 통치자인 관찰사가 자신을 돌아보며 가다듬었다.”―감영 원림은 지방 최고 정치인의 사치품 아니었나.“단순 사치품으로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밖으로 드러난 공간이라 정원에서의 행동이 그대로 노출됐다. 감영 원림에서 관찰사가 연회를 베푸는 걸 보고 백성이 괴롭다면 나쁜 정치, 기쁘다면 좋은 정치였다.”―‘풍경과 다스림’이라는 책 제목을 쓴 의도는.“풍경을 통해 바라보는 것은 바깥세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관찰사 스스로이기도 하다. 감영 원림은 결국 통치자가 풍경을 매개로 지역과 자기 자신을 다스리는 곳이다. 풍경을 통해 마음을 다잡고 길을 찾는 것은 지금의 우리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좋은 정치’의 공간조선시대 감영은 높은 담장을 세우는 대신 열린 시야를 갖췄습니다. 통치자가 백성의 생활공간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았기 때문에 즐거움과 다스림이 조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자연과 인간의 병치를 통해 수기치인(修己治人·자신을 닦는 데 그치지 않고 세상을 다스리는 것)으로 나아갑니다. 또 옛 기록들에 따르면 관찰사는 접객과 연회를 매개로 아름다운 풍경을 독점하지 않고 여럿과 두루 교류하며 나눴습니다. 자기만의 성(城)에 갇혀 독단에 사로잡히지 않았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좋은 정치’의 실마리가 조선시대 감영에 있는 것 같습니다. 새해에는 충남 공주에 가 볼까 합니다. 1984년 보물로 지정된 지 41년 만에 국보로 지정된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도 보고, 감영 원림 유적인 공산성 공북루(충남 유형문화유산)에도 오르려 합니다. 그러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려나요.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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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후지필름, 하이엔드 포토스튜디오 ‘상’ 오픈

    롯데그룹 계열사인 한국후지필름㈜이 최근 서울 중구 롯데호텔 서울 2층에 하이엔드 포토스튜디오 ‘상(象)’을 열었다. 기업체 임원 및 비즈니스 전문가, 대가족과 커플 등 다양한 고객층을 대상으로 맞춤형 촬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특징이다. 롯데그룹의 5성급 호텔인 롯데호텔과 한국후지필름이 만난 고품격 융합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내세운다. 스튜디오 상은 유명 광고 촬영 작가들과 손잡았다. 정상급 광고 촬영 작가 김민관 디렉터를 비롯해 국내외 유명 인사와 기업가들의 사진을 찍어 온 박준범 포토그래퍼, 연예인 앨범 재킷 및 화보 등을 작업해 온 이승욱 포토그래퍼가 촬영을 맡는다. 촬영 과정은 숙련도 높은 전문가들이 미리 사진의 콘셉트를 상담해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후 인물 사진에 적합한 각종 장비를 갖춘 롯데호텔 내 스튜디오에서 촬영이 이뤄진다. 고객이 원하면 메이크업과 머리 손질, 의상 컨설팅까지 ‘원스톱 서비스’도 가능하다. 국빈급 VIP 고객과 기업체 임원들의 프로필 사진 촬영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후지필름 관계자는 “국내 5성급 호텔로서는 드물게 롯데호텔 안에 스튜디오가 자리 잡았기 때문에 호텔 방문객과 투숙객들이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며 “호텔을 자주 이용하는 전문직 종사자에게는 품격 있는 초상 사진을, 국내외 관광객에게는 숙박과 식음료를 넘어 문화와 품격을 담은 라이프스타일을 선사하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한국후지필름은 1962년 ‘미화필름’으로 시작해 1980년 롯데그룹에 편입됐다. 이후 40여 년 동안 필름과 인화지 등 국내 사진 인화 인프라를 구축해 왔다. 최근에는 뉴트로 트렌드를 반영해 디지털 세대의 새로운 필름 인화지 수요를 창출하는 신사업들을 이어 나가고 있다. 필름 카메라의 입문용으로 인기가 많은 일회용 카메라 ‘퀵스냅’을 대림미술관 등 MZ세대가 자주 찾는 공간들에서 선보였으며, 즉석카메라 ‘인스탁스’를 비롯한 포토앨범 등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50여 곳의 오프라인 사진관을 전국에서 운영하고 있다.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5-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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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건축을 매개로 대지에는 찬가를, 방문객에게는 환대를”[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경북 칠곡군의 복합문화공간 ‘시호재(時弧齋)’에 가면 세 번 놀란다. 수려한 팔공산 산세에, 산이 품는 멋스러운 건축과 정원에, 그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 자연과 인간이 만난 시호재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래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전국구 핫플’이 됐다. 시호재는 국내 건축과 조경 전문가들의 작품이다. 재일교포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고(故)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의 장녀 유이화 건축가(50·ITM 유이화 건축사사무소 소장)와 조경회사 ‘더가든’ 김봉찬 대표(59)다. 시호재는 최근 ‘독일디자인어워드 2025’와 한국건축가협회에서 주는 건축상을 받았다. 이런 ‘어벤저스’ 팀은 어떻게 꾸려진 걸까. 그 중심에는 건축주 박용해 탑런토탈솔루션 회장(75)이 있다. 고교야구 최고 타격왕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박 회장은 불의의 부상으로 야구선수 생활을 접고 은행원으로 변신한 뒤 1989년 동양산업을 창업해 연매출 5000억 원이 넘는 그룹으로 키워냈다. 예술과 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타미 준과 친분을 쌓으면서 알아 온 유 소장에게 시호재 건축을 의뢰했고, 유 소장은 제주 비오토피아 등을 함께 작업했던 김 대표를 박 회장에게 추천했다. 유 소장은 말한다. “훌륭한 건축물은 훌륭한 건축주가 있어야 탄생할 수 있어요. 박 회장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한신뢰를 보내 주셨어요. 평소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들을 끝까지 응원하시는 것처럼요. 그래서 시호재가 팔공산의 사계절을 담아내는 자연의 조연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아버지가 설계한 제주 포도호텔과 방주교회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들이 찾아와 마음의 쉼을 찾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어요.”‘시간을 향해 쏘는 활’이란 뜻의 시호재는 대지면적 3824㎡, 건축면적 928.9㎡ 규모에 지하 1층, 지상 2층 높이의 건물 세 동이 활 모양처럼 휘어 연결돼 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지금껏 쉼 없이 인생의 여정을 날아왔기에 다시금 방향을 찾아 겨누는 동안 여유를 갖기를 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산자락이 포근하게 감싼 분지에 건축주가 머무는 독채가 있고 동서 방향으로 날개처럼 별채가 있다. 동쪽은 게스트하우스, 서쪽은 갤러리 겸 카페다. 정원이 먼저인지, 건축물이 먼저인지 분간할 수 없다. 마치 본래부터 있던 정원처럼 나무와 풀들이 바람결 따라 흔들린다. 카페에서 정원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사람들을 보면 칠곡에 이런 수준 높은 공간이 있다는 게 소중하다. 박 회장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시호재는 언제 구상해 짓게 됐습니까. “사내 연수원이 필요해 2000년대 초반 칠곡의 폐교를 구입해 ‘블루닷(BLUE-DOT)’이라는 시설을 지었습니다. 전시회와 야외 결혼식 등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죠. 코로나19 때 그 옆에 작은 집을 사서 지내면서 좀 더 수준 높은 지역 문화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습니다. 그게 시호재의 시작입니다.” ―고 이타미 준과는 어떤 인연입니까. “대구에서 태어나 야구로 유명한 칠성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상고(현재의 대구상원고)에서 야구를 했어요. 4번 타자이면서 포수였습니다. 이만수, 양준혁이 제가 아끼는 후배들이죠. 학창 시절 운동을 했지만 오래전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타미 준 선생님의 건축세계를 동경하다가 우연찮게 만나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습니다.” ―야구를 하다가 어떻게 사업가로 변신한 겁니까.“제 자랑 같지만 1966년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습니다(대한민국 야구의 원조 ‘레전드’인 고 이영민 선수(1905∼1953)를 기리는 이영민 타격상은 1958년부터 지금까지 고교 최고 타자를 뽑는 유서 깊은 상이다). 당시엔 프로 리그가 없어 졸업 후 제일은행 야구선수로 활동했는데 부상을 당해 전문 은행원으로 일하게 됐어요. 1989년 지인들의 권유로 동양산업을 창업해 36년째 국내 제조업에 자긍심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은행원으로 일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 “운동선수가 은행원이 됐으니 처음엔 어마어마한 고통이 따랐죠. 밤잠을 설쳐가며 그야말로 야구 하듯 노력해 30대에는 단자(短資)회사 임원에도 올랐습니다.” ―LG전자 협력사 모임 ‘협력회’ 회장을 20여 년간 맡으셨는데요. 사업은 어떤 일입니까. “동양산업이 모태인 탑런토탈솔루션은 자동차 전장사업과 디스플레이 사업이 핵심 사업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베트남 등 세계 6개국에 법인을 두고 있어요. 지난달 코스닥에 상장했고 향후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경기 성남시 판교에 있는 연구개발(R&D)센터를 확장했습니다.” ―야구, 사업, 정원에 서로 비슷한 점이 있습니까.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입니다. 저는 운동할 때 남들보다 더 많은 연습을 했고 사업에는 정열을 쏟아부었습니다. 시호재를 구상할 때에도 수많은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제 생각을 접목했어요. 이제 사업은 아들(박영근 부회장)에게 대부분 위임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에만 참여하고 있습니다.” ―시호재에 만족합니까. “산맥이 지닌 능선의 흐름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건축을 매개로 대지에는 찬가를, 방문객에게는 환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유 소장의 자연 친화 건축과 김 조경가의 친환경 조경이 잘 어우러졌습니다. 늘 완벽한 정원보다는 계절에 따라 숨죽였다가 다시 약동하듯 생기를 품는 자연스러운 정원을 원했기에 대만족입니다.” 정원을 조성한 김 대표의 설명도 다르지 않다. “시호재는 건축과 주변 자연이 혼연일체된 곳이에요. 그래서 정원을 자연과 연결하는 데 주력했어요.”박 회장은 시호재를 지을 때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 각 공간에 작은 중정(中庭·안뜰)을 넣는 것이었다. 일본 등을 여행할 때 중정이 주는 위로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녀와 손주들이 찾아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지은 게스트하우스를 평소에는 시간제로 일반에게 대여한다. 중정을 바라보며 고요하게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는 것이다. ―시호재가 인생 2막입니까. “인생 2막이라기보다는 작은 출발입니다. 제가 시호재를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하느냐가 시호재를 찾는 분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변신해 나가는 삶이야말로 매력적인 인생이 아닐까요.” ―시호재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점입니까. “주변의 지역성을 살리고 우리 삶과 어우러지기를 바랐습니다. 뒤로 우뚝 솟은 산과 멀리 보이는 강을 시호재가 유려한 곡선미와 정원으로 연결합니다. 굽어진 긴 담을 따라 시호재에 들어서면 오롯이 쉼에 몰입해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합니다.” ―시호재를 통해 어떤 꿈을 이루고 싶습니까. “우리나라는 문화예술 분야도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지역사회에도 전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습니다.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예술적 감성과 위로를 얻는다면 그게 저의 오랜 꿈을 이루는 겁니다.”칠곡=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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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격왕 출신 기업가, 건축과 정원으로 지역 문화 키운다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경북 칠곡군의 복합문화공간 ‘시호재’에 가 보면 세 번 놀란다. 수려한 팔공산 산세에, 산이 품는 멋스러운 건축과 정원에, 그 공간을 즐기는 사람들의 행복한 표정에…. 자연과 인간이 만난 시호재는 지난해 9월 문을 연 이래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고 ‘전국구 핫플’이 됐다.시호재는 국내 건축과 조경 전문가들의 작품이다. 재일교포 출신의 세계적 건축가 고(故) 이타미 준(한국명 유동룡·1937~2011)의 장녀인 유이화 건축가(ITM 유이화 건축사사무소 소장·50)와 조경회사 ‘더가든’의 김봉찬 대표(59)다. 시호재는 최근 ‘독일디자인어워드 2025’와 한국건축가협회 건축상을 받았다. 이런 ‘어벤저스’ 팀은 어떻게 꾸려진 걸까. 그 중심에는 건축주 박용해 탑런토탈솔루션 회장(75)이 있다. 고교야구 최고 타격왕에게 주는 이영민 타격상을 받은 박 회장은 불의의 부상으로 야구선수 생활을 접고 은행원으로 변신한 뒤 1989년 동양산업을 창업해 연 매출 5000억 원이 넘는 그룹으로 키워왔다. 예술과 건축에 대한 관심이 많아 이타미 준과 친분을 쌓으면서 알아 온 유이화 소장에게 시호재 건축을 의뢰했고, 유 소장은 제주 비오토피아 등을 함께 작업했던 김봉찬 대표를 박 회장에게 추천했다. 유 소장은 말한다. “훌륭한 건축물은 훌륭한 건축주가 있어야 탄생할 수 있어요. 박 회장님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무한신뢰를 보내 주셨어요. 평소 최선을 다하는 예술가들을 끝까지 응원하시는 것처럼요. 그래서 시호재가 팔공산의 사계절을 담아내는 자연의 조연으로 완성된 것 같아요. 아버지가 설계한 제주 포도호텔과 방주교회처럼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사람들이 찾아와 마음의 쉼을 찾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어요.” ‘시간을 향해 쏘는 활’이란 뜻의 시호재(時弧齋)는 대지면적 3824㎡, 건축면적 928.9㎡ 규모에 지하 1층 지상 2층의 건물 세 동이 활 모양처럼 휘어 연결돼 있다.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지금껏 쉼 없이 인생의 여정을 날아왔기에 다시금 방향을 찾아 겨누는 동안 여유를 갖기 원한다는 뜻을 담았다. 산자락이 포근하게 감싼 분지에 건축주가 머무는 독채가 있고 동서 방향으로 날개처럼 별채가 있다. 동쪽은 게스트하우스, 서쪽은 갤러리 겸 카페다. 정원이 먼저인지 건축물이 먼저인지 분간할 수 없다. 마치 본래부터 있던 정원처럼 나무와 풀들이 바람결 따라 흔들린다. 카페에서 정원을 여유롭게 감상하는 사람들을 보면 칠곡에 이런 수준 높은 공간이 있다는 게 소중하다. 박 회장 이야기를 들어보았다.―시호재는 언제 구상해 짓게 됐습니까.“사내 연수원이 필요해 2000년대 초반 칠곡의 폐교를 구입해 ‘블루닷(BLUE-DOT)’이라는 시설을 지었습니다. 전시회와 야외 결혼식 등 지역 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으로도 활용하고 있죠. 코로나19 때 그 옆에 작은 집을 사서 지내면서 좀 더 수준 높은 지역 문화공간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게 됐습니다. 그게 시호재의 시작입니다.” ―고 이타미 준과는 어떤 인연입니까.“대구에서 태어나 야구로 유명한 칠성초등학교, 대구중학교, 대구상고(현재의 대구상원고)에서 야구를 했어요. 4번 타자이면서 포수였습니다. 이만수, 양준혁이 제가 아끼는 후배들이죠. 학창시절 운동을 했지만 오래전부터 건축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이타미 준 선생님의 건축세계를 동경하다가 우연찮게 만나 오랫동안 인연을 맺었습니다.”―야구를 하다가 어떻게 사업가로 변신한 겁니까.“제 자랑 같지만 1966년 이영민타격상을 받았습니다(대한민국 야구의 원조 ‘레전드’인 고 이영민 선수(1905~1953)를 기리는 이영민 타격상은 1958년부터 지금까지 고교 최고 타자를 뽑는 유서 깊은 상이다). 당시엔 프로리그가 없어 졸업 후 제일은행 야구선수로 활동했는데 부상을 당해 전문 은행원으로 일하게 됐어요. 1989년 지인들의 권유로 동양산업을 창업해 36년째 국내 제조업에 자긍심으로 임하고 있습니다.”―은행원으로 일하는 게 힘들지는 않았나요.“운동선수가 은행원이 됐으니 처음엔 어마어마한 고통이 따랐죠. 밤잠을 설쳐가며 그야말로 야구 하듯 노력해 30대에는 단자(短資)회사 임원에도 올랐습니다.”―LG전자 협력사 모임 ‘협력회’ 회장을 20여 년 맡으셨는데요. 사업은 어떤 일입니까.“동양산업이 모태인 탑런토탈솔루션은 자동차 전장사업과 디스플레이 사업이 핵심 사업입니다. 한국을 비롯해 중국, 베트남 등 세계 6개국에 법인을 두고 있어요. 지난달 코스닥 상장했고 향후 소재·부품·장비 분야의 견실한 중견기업으로 거듭 태어나기 위해 경기 판교에 연구개발(R&D)센터를 확장했습니다.”―야구, 사업, 정원에 서로 비슷한 점이 있습니까.“‘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평범한 사실입니다. 저는 운동할 때 남들보다 더 많은 연습을 했고 사업에는 정열을 쏟아부었습니다. 시호재를 구상할 때에도 수많은 사례를 벤치마킹하면서 제 생각을 접목했어요. 이제 사업은 아들(박영근 부회장)에게 대부분 위임하고 중요한 의사결정에만 참여하고 있습니다.”―시호재에 만족합니까.“산맥이 지닌 능선의 흐름을 거스르고 싶지 않았습니다. 건축을 매개로 대지에는 찬가를, 방문객에게는 환대를 전하고 싶었습니다. 유이화 소장의 자연 친화 건축과 김봉찬 조경가의 친환경 조경이 잘 어우러졌습니다. 늘 완벽한 정원보다는 계절에 따라 숨죽였다가 다시 약동하듯 생기를 품는 자연스러운 정원을 원했기에 대만족입니다.”정원을 조성한 김봉찬 대표의 설명도 다르지 않다. “시호재는 건축과 주변 자연이 혼연일체된 곳이에요. 그래서 정원을 자연과 연결하는 데 주력했어요.”박 회장은 시호재를 지을 때 딱 한 가지만 부탁했다고 한다. 게스트하우스 각 공간에 작은 중정(中庭·안뜰)을 넣는 것이었다. 일본 등을 여행할 때 중정이 주는 위로의 힘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녀와 손주들이 찾아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지은 게스트하우스를 평소에는 시간제로 일반에게 대여한다. 중정을 바라보며 고요하게 마음을 다잡기를 바라는 것이다.―시호재가 인생 2막입니까.“인생 2막이라기보다는 작은 출발입니다. 제가 시호재에 어떤 마음과 자세로 대하느냐가 시호재를 찾는 분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될 것이기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변신해 나가는 삶이야말로 매력적인 인생이 아닐까요.”―시호재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어떤 점입니까.“주변의 지역성을 살리고 우리 삶과 어우러지기를 바랐습니다. 뒤로 우뚝 솟은 산과 멀리 보이는 강을 시호재가 유려한 곡선미와 정원으로 연결합니다. 굽어진 긴 담을 따라 시호재에 들어서면 오롯이 쉼에 몰입해 마음이 편안해졌으면 합니다.” ―시호재를 통해 어떤 꿈을 이루고 싶습니까.“우리나라는 문화예술 분야도 수도권에 집중되는 현상이 두드러집니다. 지역사회에도 전국을 대표하는 문화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왔습니다. 방문객들이 이곳에서 예술적 감성과 위로를 얻는다면 그게 저의 오랜 꿈을 이루는 겁니다.”칠곡=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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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신라호텔, 전 세계에 한식을 알리다

    서울신라호텔이 최근 프랑스 파리 외무성 관저에서 열린 ‘라 리스트 2025(La Liste 2025)’ 공식 행사에서 전세계 유명 셰프들을 대상으로 한식을 알렸다. 한국, 프랑스, 일본, 중국 등 4개 팀만이 각국의 고유한 미식 문화를 알릴 기회를 얻은 이 자리에서 이 호텔 한식당 ‘라연’ 셰프들은 독창적인 한식 카나페 6종을 선보였다.라연의 대표 메뉴인 구절판과 갈비를 비롯해 감태 메밀칩, 전복 김치, 약과, 전복잣쌈 등 한국 전통 요리를 현대적으로 새롭게 구성한 6종이다. 한국 전통 식자재를 활용해 궁중요리를 재해석하는 등 한국의 맛과 멋을 살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설명이다.라연, ‘라 리스트 2025’에서 6회 연속 TOP200이번 행사는 프랑스 정부가 주관하는 세계적 미식 가이드 ‘라 리스트 2025’가 전 세계 레스토랑 순위를 발표하는 자리였다. 서울신라호텔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들은 우수한 성적으로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한식당 ‘라연’은 한국 레스토랑 중 가장 높은 점수인 96점을 획득하며 전세계 TOP 200 레스토랑으로 선정됐다. 라연은 2018년 ‘라 리스트’ TOP 200에 오른 이후 지금까지 6회 연속 TOP 200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이 호텔의 프렌치 레스토랑 ‘콘티넨탈’과 일식당 ‘아리아께’도 6회 연속, 중식당 ‘팔선’은 3회 연속 TOP 1000 레스토랑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라 리스트’는 2015년부터 매년 전세계 1000대 레스토랑을 선정해 발표하고 있다. 1000대 레스토랑은 트립어드바이저 등 온라인 관광·미식 사이트와 뉴욕타임스, 미쉐린 가이드 등 전세계 유명 레스토랑 관련 리뷰, 전세계 요식업자 설문 등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결정된다.‘라 리스트 2025’에는 서울신라호텔 ‘라연’, ‘콘티넨탈’, ‘아리아께’, ‘팔선’을 포함해 총 35개 한국 레스토랑이 TOP 1000에 올랐다.서울신라호텔 한식당 라연은 한국인의 식습관과 정서, 인문학적 특징을 깊이 반영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메뉴를 선보이며 한식 파인 다이닝의 장르를 개척한 곳으로 평가받는다. 조상들의 경험과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요리는 라연만의 철학과 미식을 담아낸다고 한다. ‘셰프만의 이야기’가 담긴 메뉴 카드는 요리의 개발 배경 등 셰프들의 스토리텔링을 담아 장인정신을 강조한다. 또 한국의 농업 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맛과 향이 특별한 벼 3종을 셰프가 직접 선별해 솥밥으로 제공함으로써 역사와 가치를 고객들에게 설명한다.서울신라호텔 파인 다이닝 식당들이 호텔 콘티넨탈은 서울 도심을 전망으로 정통 프랑스 요리를 선보인다. 특히 레스토랑 내 ‘라무르 105(L’amour 105)’ 테이블은 환상적인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자리로 프로포즈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프로포즈를 준비하는 고객들을 위해 전용 상품과 함께 1:1 컨시어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테이블 세팅과 꽃 박스는 물론 소중한 순간을 빛내줄 맞춤형 플랜을 제안한다. 생일이나 기념일에 방문하는 고객들에게는 레터링 서비스와 함께 미니 케이크도 제공한다. 중식당 ‘팔선’은 전통 광동식 중식 레스토랑으로 올 겨울 코스 메뉴에는 북경오리에 캐비어를 화룡점정으로 올리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있다. 서세욱 화백 등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이 다수 전시돼 있어 미술품 애호가들이 많이 찾는다. 일식당 ‘아리아께’는 일본의 스시 명가인 ’기요다 스시’의 기법을 전수받아 국내 최초로 숙성 스시를 소개한 곳이다. 이번 시즌에는 고객 선호도가 높은 스시를 중심으로 가이세키 코스를 내놓았다. 소믈리에 컬렉션 와인과 사케를 곁들이면 한층 더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다. 김선미 기자 kimsunmi@donga.com}

    • 2024-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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