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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학계 '큰별' 고려대 김인수교수 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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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학계 '큰별' 고려대 김인수교수 영면

입력 2003-02-07 19:09수정 2009-09-29 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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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의 김인수 교수와 부인 김수지 교수의 최근 모습. -동아일보 자료사진

6일 새벽 한국 경영학계는 뛰어난 학자 한 명을 잃었다. 그에게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은 진정한 학문의 길을 보여준 스승을, 이 사회는 가슴이 따뜻했던 한 의인(義人)을 떠나보냈다.

이날 밤 삼성서울병원 빈소를 찾은 이들은 모두들 저마다의 이유로 한 사람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고 김인수(金仁秀·고려대 경영학) 교수의 65년 삶은 여러 사람의 가슴에 그렇게 다른 모습으로 깊은 자취를 남겼다.

고인은 외국에서 더 유명한 학자였다. 국제학계에서 ‘Linsu Kim’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김 교수는 기술경영과 이노베이션(혁신) 부문 권위자. 외국에서 가장 논문이 많이 인용되는 한국인으로 꼽혔다. 6개 유명 국제저널의 편집위원도 맡고 있었다.

1980년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교수 생활을 시작한 그에게 배운 이들은 자신들이 강단에 선 지금도 김 교수의 수업시간을 잊지 못한다. 고인은 학생들에게 ‘악명’ 높은 선생이었다. 개강 전에 과제를 주고 첫날부터 정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학생들을 몰아붙였다. 공부하고 연구하는 과정에서 조금의 잘못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그런데도 학생들로부터 ‘가장 존경하는 스승’이 된 것은 철저했던 그 자신의 학문태도 때문이었다.

고인의 제자인 김영배 교수(KAIST 테크노 경영대학원)는 “선생님은 술 담배를 전혀 하지 않고 모든 에너지와 열정을 오로지 학문에 쏟으셨다”면서 “나이 드신 요즘에도 젊은 저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고 논문을 써 제자들을 부끄럽게 하셨다”고 말했다.

다른 많은 이들은 또 ‘인간 김인수’를 잃은 걸 비통해했다. 그의 집을 찾는 이들은 가구가 대부분 남이 쓰던 중고품인 걸 알고 놀란다. 그렇게 검소한 생활이지만 남을 돕는 데는 아끼지 않았다. 김 교수 부부는 30여년간 수입의 절반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건강했던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뜬 것은 지난달 5일 장애아학교인 서울 강남구 일원동 밀알학교에서 예배를 보고 나오다 빙판길에 넘어져 뇌를 다친 것이 원인이 됐다. 94년 그가 앞장서 세운 이 학교에 고인은 물심 양면으로 많은 도움을 줬다.

밀알학교 곽병민 장로는 “돌아가신 김 장로님(김 교수)의 뜻을 어기는 말이 되겠지만 생전에 학교에 기부할 때는 항상 익명으로 하셨다”고 전했다.

그의 ‘나눔의 삶’은 그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기억에서 비롯됐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그는 체신고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 생활을 했다. 그를 만학의 길에 들어서게 한 건 교회에서 만난 한 여대생이었다. 그 여대생의 격려로 야간대학인 국제대에 진학했고 미국에 유학, 박사학위를 딴다. 그 여대생과 결혼, 순애보는 결실을 맺었다. 부인 김수지 이화여대 교수는 국내 간호학 박사 1호다.

생전의 뜻에 따라 시신을 고려대 의대에 해부용으로 기증토록 했다. 지상에 육신의 흔적은 전혀 남지 않게 됐지만 그 자취는 누구보다 뚜렷해 보인다.

고인의 추모예배는 8일 오전 10시 서울 강남구 일원동 남서울은혜교회 내에 있는 밀알학교에서 열리며 고려대에서 영결식이 거행된다.

이명재기자 mjlee@donga.com

조인직기자 cij199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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