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 무섭다”… 10명중 7명 “달갑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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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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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무원을 지낸 원모 씨(59)는 2년 전 퇴직했다. 정년이 3년 남았지만 이제 그만 쉬라는 자녀들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고향인 대전에서 지내는 그에게 유일한 소일거리는 인근 텃밭을 가꾸는 일. 하지만 사회에 더는 필요한 존재가 아닌 것 같아 허무한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렇게 30, 40년을 더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아찔하다.

평균수명 100세 시대가 성큼 다가왔지만 오래 사는 일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30∼69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따른 국민인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3.3%는 90∼100세 이상까지 사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고 답했다. 그저 그렇다는 답변은 28%였다.
반면 축복이라는 답변은 28.7%에 그쳤다. 조사대상의 71.3%가 평균수명 100세 시대에 대해 긍정적이지 않은 반응을 보인 셈이다.

세계보건기구(WHO)가 5월 발표한 한국인의 평균 기대 수명은 80세(2009년 출생아 기준)로 조사 대상 193개국 중 20위다.

이에 앞서 한국금융연구원은 한국인의 평균수명이 2050년 83.5세까지 늘어난다는 보고서를 내놓았다. 사고나 선천성 질환으로 일찍 죽는 사람을 고려하면 평균수명은 더욱 늘어난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이번 조사에 따르면 수명 연장을 축복이 아니라고 여기는 가장 큰 이유는 ‘노년기가 너무 길기 때문’(38.3%)이었다. 한국인은 20대 중반에 직장생활을 시작해 55∼60세 전후에 퇴직한다. 대부분이 직장생활을 했던 기간만큼을 노년기로 보내야 한다.

건강 악화와 같은 노인문제(30.6%)도 평균수명을 달갑지 않게 하는 요소다. WHO 발표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수명은 80세였지만 질병과 부상 없이 사는 건강수명은 71세에 그쳤다. 10년 가까운 시간을 병치레로 고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노년기가 길어지면 자식에게 부담이 되므로 수명 연장이 반갑지 않다는 응답(24.1%)도 적지 않았다.

한국인이 원하는 수명은 80∼89세가 59.3%로 가장 많았다. 70∼79세(20.9%)가 뒤를 이었다. 설문만 보면 국민 5명 중 4명은 현재 수명과 비슷하거나 더 짧게 살기를 희망하는 셈이다. 100세 이상은 8.2%에 불과했고 90∼99세(7.8%)와 합쳐도 16%에 그쳤다.

한편 한국인은 평균수명이 늘어나면서 배우자를 더 중시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응답자 중 84.3%는 노후에 가장 중요한 가족으로 배우자를 꼽았다. 자녀를 꼽은 경우는 12.6%에 그쳤고 형제자매라고 답한 비율(1.3%)도 아주 낮았다.

평균수명이 늘어난 노년기에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지를 묻는 질문에는 ‘좋아질 것’(53.5%)이란 답이 절반을 넘었다. ‘보통’은 42.8%였고 ‘나빠질 것’이라는 응답은 3.8%에 그쳤다.

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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