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도 모르는 부동산 부자들 증여세 탈루 백태

  • 신동아
  • 입력 2018년 9월 26일 0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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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카·현금세탁·주식증여…해도 너무해”
● 현금 6억 싸들고 와 전세 계약
● 가장 안전한 증여는 ‘엄마카드(엄카)’?
● 보험·주식 증여하며 세금은 ‘0원’
● “세무조사로 집값 잡겠다는 건 ‘어불성설’”


서울 서대문구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A씨는 얼마 전 흔치 않은 경험을 했다. 아파트 전세 계약 날, 세입자의 부모가 현금 6억 원을 싸들고 부동산 사무실을 찾아온 것. 해당 아파트의 전세금은 6억5000만 원. 유통 사업을 하는 이 부모는 아들의 통장을 통하지 않고 직접 임대인에게 현금을 ‘쏘는’ 방법으로 증여세를 면탈했다.

A씨는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세무조사를 하긴 하지만, 매매 거래만 볼 뿐 전세금 부분은 놓치고 있는 것 같다. 증여세를 안 내기로 마음먹은 사람은 어떤 수를 써서라도 안 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8월 29일 국세청은 부동산 거래 과정에서 증여세나 양도소득세 탈루가 의심되는 260명을 선정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정부가 ‘8·2부동산 대책’을 내놓은 뒤 이어진 6번째 부동산 관련 세무조사다. 이번 세무조사는 특히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국지적인 집값 급상승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풀이된다.

앞서 27일, 국토교통부와 기획재정부는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 추진 및 투기지역 지정 등을 통한 시장 안정 기조강화’ 조처를 인용해 서울 4개구(종로·동작·동대문·중구)를 투기지역으로 추가 지정하는 등 서울과 수도권의 국지적인 집값 과열을 막기 위한 대책을 내놓은 바 있다.

결혼과 동시에 시작되는 증여세 탈루


8월 29일 국세청 관계자가 정부세종2청사 국세청 기자실에서 ‘편법 증여 등 부동산 거래 탈세 혐의자 세무조사 착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8월 29일 국세청 관계자가 정부세종2청사 국세청 기자실에서 ‘편법 증여 등 부동산 거래 탈세 혐의자 세무조사 착수’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이처럼 갖은 수단을 동원해 집값 잡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반면, 부동산 부자들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탈세까지 하며 자산 불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자 B씨는 “한 달 만에 집값이 1억씩 오르니, 어떻게든 자식 명의로 부동산을 사주려고 하는 부모가 많다”고 밝혔다.

증여세 탈루의 전형적인 수법은 바로 ‘현금 지원’이다. 특히 자녀 출가 시 신혼집 마련 비용으로 거금을 증여하는 경우가 많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여성 직장인 최모 씨는 2012년 결혼 당시 시부모에게 전세 자금 대부분을 지원받았다. 당시 아파트 전세금은 5억7000만 원. 최씨 부부가 결혼 전 직장생활하며 모은 돈은 9000만 원 정도 됐고, 나머지 4억8000만 원은 시부모에게서 받았다. 당시 최씨 시부모는 아들의 통장을 거치지 않고 4억8000만 원 전액을 임대인에게 바로 송금했다. 하지만 최씨 부부는 증여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최씨는 “주변에서 보면 우리처럼 결혼할 때 양가 부모가 집을 마련해준 경우가 많은데, 증여세를 냈다는 얘기는 거의 들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혼 후에도 최씨 부부의 증여세 탈루는 밥 먹듯이 일어났다. 일명 ‘엄카’로 불리는 ‘엄마 카드’로 매달 생활비를 보조받은 것. 현행 증여세법상 성년이 된 자녀에 대한 증여세 비과세 한도는 10년간 5000만 원(미성년자는 2000만 원)이다. 이 한도를 넘으면 증여한 금액에 대해 10~50%의 증여세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최씨는 시부모로부터 매달 300만 원가량을 보조받으면서 증여세를 일절 내지 않았다.

아이 영어유치원비, 아파트 관리비, 마트에서 장 보는 비용 등 ‘엄카’로 해결한 금액이 지난 6년간 2억 원이 넘지만, 부모 명의 카드인 만큼 증여세 추징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최씨 부부의 벌이가 적은 것도 아니다. 같은 은행권에 근무하는 부부의 연봉 합산 액은 1억5000만 원 정도다. 주거비가 따로 들지 않고, ‘엄카’로 생활비까지 보조받고 있으니, 결혼 후 지금까지 모은 자 산이 4억 원 가까이 된다. 부부 중 한 사람 연봉은 고스란히 모은 셈이다.

현재 최씨 부부는 또 한 번의 증여세 탈루를 놓고 고민 중이다. 지난 몇 년간 강남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이번에는 아예 집을 사기로 마음먹은 것. 이번에도 자금 조달은 시부모 몫이 될 예정이다.

최씨는 “집값이 하도 오르니까 시부모님이 ‘더 늦기 전에 얼른 집을 사라’면서 3억 원 정도 대주시기로 했다. 경기도에 있는 빌라를 처분해서 주기로 했는데, 이번에도 그냥 받아야 될지 모르겠다. 요즘 같은 때 덜컥 받았다가 예전에 증여받은 것까지 추징당하는 건 아닌지 걱정되기도 한다”고 털어놓았다.

실제로 최근 서울 강남에서는 “세무조사가 두려워 집을 안 산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돈다. 부동산 중개업자 C씨는 “강남에서는 국세청 세무조사에서 걸린 사람들이 제법 된다. 한동안 부동산 매물을 알아보다가 행여나 부모 사업체까지 세무조사 대상이 될까 봐 매수 계획을 접는 경우를 여럿 봤다”고 말했다.

“뭐니뭐니 해도, 현금이 최고야”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이용해 증여세를 피해가려는 이들도 상당하다. 계좌이체로 현금을 넘겨주면 내역이 고스란히 계좌에 남기 때문에 이를 피하고자 ATM으로 현금을 주고받는 것.

경기도 분당에 사는 김모 씨는 ATM으로 수차례 현금을 빼낸 뒤 오랜 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아들 통장에 돈을 입금했다. 김씨 아들은 이런 식으로 받은 돈 10억 원으로 아파트를 구입했다. 하지만 이런 꼼수는 최근 국세청 감시망에 적발됐고 얼마 전 김씨의 자녀는 수억 원의 증여세를 추징당했다.

하지만 자산가들 사이에서 김씨의 경우는 ‘하수’ 쯤으로 취급받는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부모 자식 간에 차용증을 쓰고, 자식이 부모한테 무는 이자를 부모가 다시 ATM으로 빼서 자식에게 생활비조로 주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세법상 부모가 자식에게 돈을 ‘빌려’줄 때는 4.6%(2016년 이후부터) 이자를 받아야 한다. 단, 이자(증여재산가액)가 1000만 원을 넘지 않으면 과세 대상이 되지 않는다. 만약 부모에게 1억5000만 원을 대출받았다면 증여재산가액은 1억5000×4.6%=690만 원이므로 과세되지 않는다.

이 부동산 전문가는 “자식한테 받은 이자를 다시 현금이나 신용·현금카드로 돌려주면 그만 아니겠느냐”며 말끝을 흐렸다. 한편 이자가 1000만 원이 넘는 경우에는 증여재산가액의 10%만 증여세로 내면 된다.

조부모에게 공짜로 유학비 지원받는 손자들

학원가에서 정설처럼 통하는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 할아버지의 경제력”이란 유행어 뒤에도 불법 증여가 숨어 있다. 남편을 따라 미국과 태국에서 주재원으로 생활하다 돌아온 주부 박모 씨는 현재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딸의 학비를 시부모의 재력으로 해결하고 있다. 시부모가 해당 대학으로 직접 등록금을 송금하는 구조다.

세법상 부모가 자식의 교육비를 부담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지만, 부모가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있는 상태에서 조부모가 손자의 학비 및 생활비를 대는 건 분명 증여다. 하지만 지금껏 박씨는 증여세를 낼 생각조차 한 적 없다. 1년 동안 박씨가 유학비 명목으로 원조받는 금액은 3000만 원가량 된다.

또한 증여세를 내지 않고 해외 유학 중인 자녀에게 학비와 생활비 명목으로 거액의 자금을 송금(증여)하는 경우도 있다. 세법상 피부양자의 생활비나 교육비 및 이와 유사한 비용 등에 대해서는 사회 통념상 과세하지 않게 돼 있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 소재하는 학교 학비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세법을 이용해, 학비나 생활비를 부풀려 의도적으로 자식에게 서서히 재산을 이동하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최근 국세청에 적발된 사례를 보면 법원장인 G씨는 매년 해외에서 유학 중인 자녀에게 6억 원의 자금을 송금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강남에서는 유학생이 건물주로 금의환향(?)하는 경우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해외에서 유학 생활을 하다 귀국한 김모(30) 씨는 최근 경기도의 10억 원대 상가를 구입했다. 상가 임차인들의 전세보증금을 고려해도 최소 수 억 원의 자본이 필요한 고가 부동산을 구입한 것. 사실 김씨의 부동산 거래 대금 출처는 어머니였다. 호텔을 경영하는 어머니는 상가 취득 자금을 아들을 통하지 않고 매도자에게 바로 송금했다.

서울 서초구에서 활동하는 공인중개사 D씨는 “강남 재력가 중에는 자녀가 귀국하는 시점에 맞춰 건물을 사주려는 사람이 많다. 제대로 된 직장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대체로 그렇다. 자식을 건물주로 만드는 건 그렇다 치더라도, 세금은 제대로 내야 하지 않겠느냐”고 꼬집었다.

“탈루할 세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보험과 주식을 통한 증여세 탈루도 문제다. 재산이나 직업 등으로 보아 자금 능력이 없던 김모 씨는 ‘보험 찬스’를 이용해 최근 서울 소재 고가 아파트를 취득했다. 아버지가 수차례에 걸쳐 보험사에 납입한 수십억 원의 연금 원금을 통해 매월 고액의 연금 수익을 챙긴 것.

보험은 일반 현금 증여에 비해 증여 재산가액이 낮아져 증여세를 아낄 수 있지만, 아예 처음부터 탈세를 목적으로 자식이 직접 보험금을 납입한 것처럼 꾸며 세금을 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주식도 마찬가지다. 최근 국세청 조사에 따르면, 주식 전업투자자인 최모 씨는 9세, 7세인 두 자녀에게 자신이 보유 중인 주식의 일부를 증여세 신고 없이 증여했고, 이후 두 자녀는 주식 가치가 상승하자 주식을 매각해 고액의 예금으로 보유하고 있다. 결국 현금 증여를 피하고자 주식 거래를 이용한 셈이다.

원칙대로 하자면, 상장주식은 주식 증여일 기준 2개월 전후로 총 4개월간 한국증권거래소 매일 종가의 평균가로 계산해 증여세를 내야 한다. 비상장주식은 보충적 평가방법을 사용해 1주당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를 각각 2:3의 비율로 가중평균해 계산해야 한다. 단 배우자는 최대 6억 원, 직계존속은 5000만 원(미성년 2000만 원)까지 증여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한편 고가 주택을 보유한 다주택자들이 몰려 있는 강남권에서는 증여가 또 다른 의미의 ‘조세 회피’로 사용되고 있어 서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을 더욱 키우고 있다. 50대 직장인 최모 씨는 “증여세 탈루는 세금 낼 게 있는 사람들한테나 해당되는 얘기지, 집 한 채 겨우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딴 세상 얘기”라며 씁쓸해했다.

최근 들어 부동산 부자들 사이에서 증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집값 상승률이 심상치 않은 데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따라 보유세 등 다주택자의 세 부담이 커졌지만, 향후 집값은 계속 오를 것이란 기대에 ‘더 오르기 전에 하루라도 빨리 증여하자’는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것.

지난 7월 기준,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올 1~5월 서울 아파트 증여 건수는 1만1067건으로, 전년 동기(5557건) 대비 2배가량 늘었다. 지난해 서울 지역 전체 증여 건수는 1만4860건인 점을 감안하면 5개월 만에 이미 지난해 거래량의 74%를 넘은 셈이다. 지역으로 보면 서울 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강남4구(3707건)는 지난해 증여 건수(1700건)를 훌쩍 뛰어넘었다. 이 중 서초구는 지난해 523건에서 올해 1433건으로 3배 가까이 늘었다.

“세금조사로는 집값 못 잡는다”

최근 몇 년간 매매가가 급격히 오른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단지.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최근 몇 년간 매매가가 급격히 오른 서울 송파구 잠실동 아파트 단지. [홍진환 동아일보 기자]

이 같은 분위기가 계속된다면 올해 서울 지역 아파트 증여 건수는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전망이다. 강남에서 활동하는 한 세무사는 “강남은 그간 부동산 가격이 많이 올라 해당 물건을 팔아서(양도) 자식에게 넘겨주는 것보다 증여하는 게 세금 면에서 훨씬 유리하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20년 전 3억 원에서 현재 15억 원으로 오른 아파트를 소유한 2주택 보유자라면, 이를 양도할 때는 양도소득세 5억8700만 원에 지방소득세 5900만 원까지 합쳐 총 6억4600만 원에 해당하는 세금이 발생한다. 따라서 이를 뺀 나머지 8억5400만 원을 자녀에게 증여하면 또다시 1억7200만 원의 증여세가 발생해 결국 자식에게 최종적으로 귀속되는 금액은 6억8200만 원이다. 반면 해당 아파트를 그대로 자식에게 증여할 경우에는 증여세로 3억9900만 원만 내면 된다. 11억100만 원은 고스란히 자녀의 손에 들어오는 것.

임대사업자 등록 유도 정책도 강남 부자들 마음을 움직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남권에는 ‘임대사업자로 등록하느니 증여가 낫다’는 판단이 대세다. 지난 7월 정부가 발표한 부동산 정책에 따르면 공시가격 6억 원을 넘는 주택의 경우 임대사업자 등록에 따른 종합부동산세 합산 배제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 정부의 임대주택등록 유인책이 통하지 않는다.

여기에 지난 9월 13일, 정부가 추가로 발표한 부동산 정책에서도 임대사업자에 대한 혜택이 축소됐다.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40%로 대폭 줄어들었고, 양도소득세 및 종합부동산세 등의 세제 혜택도 대폭 하향 조정 됐다. 시장 참여자들이 기존의 임대사업자 혜택을 악용해 오히려 집값이 더 올랐다고 판단한 결과다.

한편 일각에서는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부동산 시장 안정화라는 정부 정책목표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것에 대해 회의감을 드러낸다. 치솟는 집값을 잡기 위해 세금을 올리고 세무조사를 실시하며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지만 효과는커녕 집값은 날로 치솟고 있기 때문이다.

애초에 세무조사는 부동산 거래 관련한 탈세를 바로잡는 ‘성실납세 유도’의 목적을 지녔을 뿐, 부동산 투기를 적발하는 도구는 아니라는 점도 한계로 지적된다. 전문가들은 “세무조사로는 부동산 시장 과열을 막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세무조사로 집값을 잡는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지금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거래 물량을 늘리는 것이다. 양도소득세는 낮추되 보유세는 높여서 시장에 물건이 나오도록 해야 한다. 임대주택 공급 등을 늘려 집값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10월호에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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