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요원의 이중생활?… 쉿, 밝히면 다칩니다”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45분


☞[화보]영화 ‘7급 공무원’ 주연 김하늘
☞[화보]영화 ‘7급 공무원’ 주연 김하늘
현직 국정원 직원이 본 영화 ‘7급 공무원’

“우리는 오늘 여기서 만나지 않은 겁니다.”

기자에게 알려준 것은 이름과 전화번호뿐. 소속 부서를 밝히기 거부한 국가정보원 정보 부문 직원 Q 씨는 22일 개봉하는 ‘7급 공무원’(12세 이상 관람가)의 실제 모델이라 할 만한 인물이다. 그는 “영화 속 국정원 직원의 모습을 현실과 비교해 달라”는 요청을 몇 번 고사하다가 겨우 짬을 냈다.

“시사회에 비공식 초청자로 가서 봤습니다. 이 영화 개봉하고 나서 소개팅을 해야겠어요. 워낙 멋있게 그려놓아서….(웃음) 시나리오 작가가 미국 대(對)테러공작원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24’를 많이 본 것 같던데요?”

‘7급 공무원’은 국정원 보안요원 재준(강지환)과 수지(김하늘)의 엎치락뒤치락 연애소동을 그린 코미디 영화다. 서로의 직업을 모른 채 사귀던 두 사람이 우여곡절 끝에 힘을 합쳐 위험인물을 체포하고 결혼에 골인한다는 줄거리.

“영화 초반 신분을 감추기 위한 수지의 거짓말에 환멸을 느껴 떠나는 재준처럼, 실제 국정원 직원이 직업 때문에 연애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있느냐”는 질문에 Q 씨는 ‘내가 하는 모든 말은 나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라고 전제한 뒤 답했다.

“여자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무역회사 다닌다’고 소개한 직원이 있었죠. 해외 출장이 잦다 보니 그렇게 설명했대요. 그런데 혼담이 오갈 즈음 직업을 밝히자 여자 쪽 집안이 발칵 뒤집혔습니다. ‘국정원에 다닌다는 말은 어떻게 믿겠느냐’며 여자 아버지가 인맥을 동원해 뒷조사에 나선 거예요. 다행히 무마됐지만 그 친구 한 달 가까이 정말 진땀 뺐죠.”

국정원 직원이 결혼할 때는 예비 배우자도 철저한 신원조사를 받는다. 만약에 대비해 외국인과의 결혼은 금지돼 있다.

“꼼꼼한 신분확인 과정을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업을 속인 ‘괘씸죄’ 때문에 영화 속 수지와 재준같이 이별하는 일도 간혹 생기죠. 하지만 어떡합니까.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는 것’은 국정원 직원이 지켜야 할 기본 생활원칙인데요.”

그래서인지 사생활 문제를 관리해주는 팀이 존재한다는 소문도 있다.

“그럴 리야 있나요.(웃음) 개인 문제는 각자 알아서 해야죠. ‘내 딸과 교제하는 아무개가 국정원 직원 맞느냐’는 신분확인 요청 전화가 오면 당사자에게 ‘현명하게 처신하라’고 간단히 언질을 주긴 합니다.”

‘7급 공무원’에는 첩보영화답게 몇 가지 첨단 장비가 등장한다. 감시 대상의 몸속에 주사하는 ‘생체 위치 추적기’와 수영복처럼 얇은 방탄복이 관객의 눈길을 끈다. Q 씨는 “그런 장비가 있다면 있는 것 자체가 기밀”이라고 답했다.

“물론 그런 장비가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죠. 하지만 북한담당 특수파트라면 몰라도 직원 전부가 항상 방탄복을 착용하고 다니지는 않아요.”

국정원은 영화 제작과정 자문을 맡았지만 ‘이 부분은 사실과 많이 다르다’고 지적할 때도 ‘어떻게 수정해야 한다’는 조언은 하지 않았다. 영화에서 직원들이 쓰는 은어 등 대부분의 디테일은 상상의 산물이다. 사격장과 청사 외부 전경 외에는 모두 세트에서 촬영했다. 영화광을 자처한 Q 씨는 “내가 본 것 중 첩보원의 실제 삶을 가장 생생하게 그린 영화는 로버트 드니로가 감독한 ‘굿 셰퍼드’였다”고 말했다.

“1960년대 중앙정보국(CIA) 요원이 겪은 실화를 토대로 만든 영화죠. ‘7급 공무원’에서 공감하며 웃은 건 주인공 수지가 DVD대여점 장기연체자라는 설정이었어요. 출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보니 맡겨놓은 세탁물을 몇 주 동안 못 찾는 사람도 많습니다.(웃음)”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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