朴대통령 한국시리즈 시구… ‘심판복’ 경호원들 밀착수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3차전 열린 잠실구장 깜짝 등장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두산과 삼성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아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시구하고 있다(왼쪽 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섰고(오른쪽 위),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를 맡았다(오른쪽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올스타전에서 시구했다. 세 전직 대통령 모두 당시 구두를 신고 시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프로야구 연감·동아일보DB
박근혜 대통령이 27일 두산과 삼성의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서울 잠실야구장을 찾아 운동복과 운동화 차림으로 시구하고 있다(왼쪽 사진).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82년 프로야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섰고(오른쪽 위),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5년 열린 한국시리즈 1차전 시구를 맡았다(오른쪽 가운데).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올스타전에서 시구했다. 세 전직 대통령 모두 당시 구두를 신고 시구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프로야구 연감·동아일보DB
27일 오후 1시 45분. 경기 시작을 15분 앞두고 서울 잠실야구장 중앙 출입구에 박근혜 대통령이 나타났다. 사전에 보안검색은 없었고 직전에 등장한 경호원들이 순식간에 통로를 확보했다. 이곳에서 한국야구위원회(KBO) 구본능 총재와 양해영 사무총장 등 야구 관계자들의 영접을 받은 박 대통령은 귀빈석에 잠시 머문 뒤 3루 쪽 복도를 통해 그라운드로 나왔다.

박 대통령이 프로야구 두산과 삼성의 한국시리즈 3차전이 열린 잠실구장을 찾아 ‘깜짝 시구’를 했다. ‘2013 KOREAN SERIES’라고 쓰인 짙은 감색 점퍼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은 박 대통령은 태극기가 그려진 푸른색 글러브를 끼고 마운드로 향했다. 운동화를 신은 박 대통령은 평소의 ‘올림머리’와 달리 뒷머리를 묶어 헤어스타일에도 변화를 줬다. 박 대통령이 두 구단의 마스코트와 함께 마운드로 향할 때 동행한 심판은 ‘위장한’ 경호원이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주심을 맡은 나광남 심판의 안내로 삼성 톱타자 배영섭을 상대로 ‘원 바운드’ 시구를 했다. 공은 두산 포수 최재훈이 받았다.

박 대통령의 시구는 이날 오전 갑자기 결정됐다. KBO 관계자는 “2주 전쯤부터 청와대에 시구 요청을 했는데 전날까지 확답을 받지 못하다 오전에 연락을 받았다. 대통령이 시구할 가능성에 대비해 시구 때 입을 옷과 연습용 글러브 등은 미리 청와대에 전달했다. 대통령이 입은 점퍼의 색깔은 KBO의 상징색이며 사이즈는 S(스몰)-M(미디엄)-L(라지) 세 가지를 모두 준비했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이 아니었다면 이날 경기의 시구는 국내 야구의 첫 여성 장내 아나운서였던 모연희 씨(73)가 할 예정이었다. KBO는 “대통령의 시구에 대비해 모 씨에게 3차전 또는 4차전 시구를 부탁했다. 4차전에는 모 씨가 시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시구 후 중앙 지정석으로 이동해 서울 언북중 야구부 학생들과 2회말까지 관전한 뒤 경기장을 떠났다.

박 대통령을 포함해 프로야구 경기에서 시구를 한 대통령은 모두 4명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프로야구 출범 원년인 1982년 동대문구장 개막전에서 시구를 했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 1995년 한국시리즈 1차전 및 1995년 4월 정규시즌 개막전 등 세 차례나 잠실구장에서 시구를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3년 7월 17일 올스타전이 열린 대전구장을 찾아 시구를 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11년 9월 잠실구장을 방문해 가족과 함께 경기를 관전했지만 시구는 하지 않았다. 애초 취임 첫해인 2008년 정규시즌 개막전에 시구할 예정이었지만 사전에 정보가 유출된 탓에 경호상의 이유로 취소됐다. ‘대통령의 시구’는 노 전 대통령 이후 10년여 만이다. 프로야구 출범 전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박정희 전 대통령이 각각 1958년과 1967년에 시구를 한 적이 있다. 특히 1967년 4월 동대문구장에서 열린 제1회 대통령배 고교야구 개막전 시구자로 나선 박 전 대통령은 첫 번째 시구가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자 한 번 더 시구를 하기도 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대통령의 시구를 자주 볼 수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텍사스 구단주였던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일곱 차례 시구를 했고 역시 야구광이었던 아버지 조지 H 부시 전 대통령은 여덟 차례 시구를 했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는 5월 5일 도쿄돔을 찾아 시구식에서 ‘심판’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한편 청와대는 경호 문제 때문에 시구를 검토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미리 KBO에 알려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야구장은 경호가 힘들어 결정이 늦었다. 국민과 함께 야구를 보고 싶다는 대통령의 의지가 강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김관영 대변인은 현안 브리핑에서 “최근 떨어지는 국정 지지도를 만회하기 위해 국민적 관심이 모인 야구장으로 달려간 것은 아닌지 안타깝다”며 “대통령의 시구가 국민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기보다는 복잡한 정국을 외면하는 한가하고 무책임한 모습으로 국민에게 비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승건 why@donga.com·동정민 기자
#대통령#시구#한국시리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