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서울 강북은 일본풍- 서울 강남은 유럽풍

  • 입력 2002년 7월 25일 16시 11분


'히피+로맨틱'의 조화 대학생 류정화씨 (21·홍익대 화학공학과)
'히피+로맨틱'의 조화 대학생 류정화씨 (21·홍익대 화학공학과)
동아일보 위크엔드팀과 패션정보회사 퍼스트뷰코리아(www.firstviewkorea.com)가 공동으로 ‘서울 강남북 스트리트 패션’을 분석한 결과 2002년 여름의 패션 트렌드가 한강 이남과 이북에서 각기 일본풍과 유럽풍으로 달리 진행되고 있음이 관찰됐다(조사기간 6월 초∼7월 현재).

여기서 강남은 반포 학동사거리 강남구청 청담역 주변의 지하철 7호선 동부 라인 일대와 대치동, 분당 지역 일부를, 강북은 동대문 혜화 한성대입구 성신여대입구 등 4호선 북부라인을 아우르는 인근 지역을 의미한다. 각 지역의 대표적인 랜드마크로는 각각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강남)과 동대문 두산타워 일대(강북)를 선정했다.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이 많이 몰리더라도 지하철 2호선이 지나는 신촌 이화여대 강남 잠실 신천역 주변과 삼성역 근처 코엑스몰, 을지로입구역과 가까운 명동 일부 등 강남북 어느 쪽에서도 접근이 용이한 ‘순환선 라인’ 지역은 강남과 강북패션의 혼재가 심해 전형에서 제외했다.

크게 히피, 로맨티시즘, 스포티라는 올 패션 트렌드의 세가지 화두를 모두 수용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서로 다른 모습으로 유행이 진행되고 있는 강남북 패션의 ‘북일남구(北日南歐)’ 현상은 각각 현재 유럽과 일본 거리의 패션 트렌드와도 템포를 같이 하고 있다.

글·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사진·전영한기자 scoopjyh@donga.com

●北日 = 서울 강북은 일본풍

20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앞 광장. 허벅지는 압박하되 발밑으로 갈수록 통이 넓어지는 ‘벨보텀 팬츠’를 입은 회사원 김은희씨(26·서울 강북구 수유동)를 만났다. 바지 밑단에 프릴을 달고 너비가 10㎝는 족히 될 법한 굵은 벨트를 맨 뒤 털실, 단추, 레이스가 얼기설기 붙어 있는 형광 주황색 민소매 티셔츠를 입었다.

◁ 리바이스바지+홍대앞에서 구입한 벨트식 체인+히피풍 목걸이+나이키신발+지퍼형 귀고리. 올해 패션 트렌드를 '종합선물세트'처럼 접목한 유정미씨 (21·피아노강사)
▷ 일본잡지 '논노'를 즐겨 읽고 동대문 두산타워의 일본풍 매장을 자주 찾는다는 이지영씨(24). 소매, 치마밑단에 덧댄 레이스와 가방은 현재 일본에서도 유행이다.

“동대문에서 산 바지에 레이스를 사다가 제가 직접 프릴을 달았어요.”

동대문 일대를 오가는 많은 여성들은 이처럼 술이 길게 늘어진 굵은 벨트와 화려하고 독특한 디자인의 커다란 장신구 등 다양한 소품을 창의적으로 매치시키고 있었다. 퍼스트뷰 코리아의 정재원 패션 에디터는 “미스매치, 언밸런스 등을 미학으로 삼는 최신 일본 패션, 특히 아기자기한 DIY수공예품을 의상에 접목시키는 도쿄 하라주쿠거리의 트렌드와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 빈티지풍 청바지와 일본에서 구입한 술이 많이 달린 히피풍 벨트. 커다란 은색 귀고리가 묘한 조화를 이루는 안혜선씨(21)의 코디네이션법.
▷ 벨보텀 팬츠에 커다란 레이스가 달린 빈티지룩을 보여준 박소연씨(20). 박씨는 "직접 옷을 변형해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강북에서는 로맨티시즘도 확대 재생산돼 과장된 형태로 표현됐다. 밀리오레 여성복 매장 ‘오버걸’의 박지예 숍매니저는 “허리 중간중간에 커다란 꽃장식을 다는 등 극대화된 로맨티시즘을 표현하는 아이템이 가장 인기”라고 말했다.

●南歐 = 서울 강남은 유럽풍

장식 없는 벨보텀 팬츠에 심플한 흰색 셔츠를 매치했다. 액세서리는 단아한 디자인의 티파니 목걸이와 약간의 수술이 달린 벨트뿐. 상의는 '쿠아' 제품. 팬츠는 프랑스브랜드 '아덴 베'. 회사원 서희정씨(28).

20일 오후 1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갤러리아백화점 앞. 이곳에서도 벨보텀 팬츠가 인기다. 하지만 팬츠에 요란한 장식을 붙인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각선미가 잘 살아나는 실루엣의 팬츠를 ‘가뿐하게’ 걸친 뒤 히피풍 민소매톱이나 약간의 프릴이 달린 블라우스를 받쳐 입는 게 전부였다. 민소매톱은 목선에서 가슴쪽으로 세모꼴의 슬릿이 깊게 파인 일명 ‘앙가슴 티셔츠’가 눈에 많이 띄었다.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한 유학생과 교포가 많아선지 유난히 영어가 난무하는 이 곳에서도 몇해 전까지 이 거리를 휩쓸었던 미국식 힙합패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리에서 만난 이미나양(19·미국 프린스턴대 생물학과 재학) 등 ‘해외파’ 대부분은 벨보텀 팬츠 또는 진스커트에 배꼽이 약간 보일 듯 말 듯 짧고 몸에 꼭 맞는 유럽 브랜드 ‘모르간’풍의 톱을 마치 교복처럼 너나없이 입고 있었다.

◁ 이미나양은 몸에 꼭 달라붙는 민소매 셔츠와 데님 스커트를 깔끔하게 코디해 입었다. 현재 유럽의 주요 패션 스트리트에서도 인기 있는 스타일.
▷ 상하의 모두 '올 화이트'. 히피풍의 벨트와 목걸이는 다소 튀지만 전체적으로 통일된 컨셉트의 '캐주얼 히피룩'을 연출. 강남 스타일의 코디네이션 전형을 보여준다. 대학생 차수연씨(22).

월드컵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는 스포티룩 가운데서는 유럽인들의 요트 여행 복장에서 비롯된 ‘마린룩’이 강세였다. ‘마린룩’ 필수품은 무늬 없는 흰색 팬츠 또는 스커트이며 여기에 빨간색이나 파란색 셔츠 또는 스트라이프 무늬 티셔츠와 엄지발가락만 나오는 슬리퍼를 곁들여야 한다. 현대백화점 본점과 갤러리아백화점 압구정점 영캐주얼매장에서 매출액 상위 5위권에 드는 브랜드를 분석해 보면 현재 BNX, 모르간, 시슬리, 바닐라비 등 ‘섹시 스포티’를 지향하는 유럽풍 브랜드들이 압도적이다.

◁ 화이트 팬츠와 스니커즈. 티셔츠의 목선에 스트라이프가 들어간 '스포티 마린룩'을 연출해 시원한 느낌이 든다. 서울 압구정동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서 만난 나진아씨(29‥대학원생).
▷ 현재 패션모델로 활동중이라는 여고생 임목화양(17)은 복고풍 벨보텀 팬츠에 약간의 프릴리 달린 흰색 민소매톱을 함께 입었다. 액세서리는 최대한 배제해 심플한 멋을 냈다.

●‘북일남구’의 바람은 어디서 불어오나

패션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힙합 프레피룩 등 미국패션을 선호했던 강남권이 유럽을 바라보는 이유는 간단하다.

“강남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쿨(cool)’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를 재빨리 흡수한다. 올해는 미국 뉴욕 패션이 대표하는 ‘블랙&화이트’의 미니멀리즘이 퇴조하고 유럽의 에스닉풍이 축으로 떠오른 데다 9·11테러, 달러 약세 등의 정치 경제적 현상이 맞물려 미국의 이미지를 더 이상 ‘쿨’하게 여기지 않는다.”

건국대 이인자 교수(의상심리 전공)는 여기에 “특히 올해는 강남권이 지향하는 ‘보보스’라는 화두와 결이 맞닿아 있는 ‘보헤미안 에스닉’이 인기였던 만큼 에스닉을 표나게 지향한 유럽풍이 더 빨리 침투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강남과 강북에서 모두 히피룩을 표방하면서도 그 강도가 다른 것은 브랜드 의존도 차이가 가장 큰 변수인 것으로 분석됐다. 퍼스트뷰코리아 이현주 패션 에디터는 “강남권에서 정제된 스타일을 선호하는 것은 이들이 즐겨 찾는 국내 중고가(中高價) 브랜드들이 해외 유명 디자이너들이 제시한 트렌드를 수용하면서도 극단적인 히피룩 대신 수위가 한 단계 낮은 ‘캐주얼 히피룩’을 선보였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반대로 특정 브랜드에 대한 충성도가 낮은 강북권은 동대문, 홍익대 앞 등 소규모 숍에서 만든 제품들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아 트렌드를 극단적으로 표현한 아방가르드한 의상이나 소품이 득세할 수 있었다. 강북에서 일본풍이 인기를 끈 것은 이 지역 패션리더들이 일본문화를 우월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강북 상권을 주도하는 소규모 매장이 주로 도쿄 하라주쿠 스트리트의 트렌드를 벤치마킹하는 사례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국 뉴욕의 어퍼이스트 사이드와 소호거리, 일본 도쿄의 오모테산토와 하라주쿠, 이탈리아 밀라노의 비아몬테나폴레온과 두오모광장처럼 한 도시가 각각 명품매장이 몰려 있는 거리와 개성 있는 스트리트숍 문화가 발달한 거리로 나뉠 경우 전자에서는 트렌디하나 정제된 스타일, 후자에서는 그 트렌드를 과장되고 개성있게 표현해 내는 스타일이 인기를 끌게 되는 세계적인 ‘원리’와도 올 여름 ‘북일남구’ 현상은 무관하지 않다.

김현진기자 brigh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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