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 읽기]<12>수화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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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김기택(1957∼ )

두 청년은 격렬한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 같았다.
승객이 드문드문 앉아 있는 버스 안이었다.
둘은 지휘봉처럼 떨리는 팔을 힘차게 휘둘렀고
그때마다 손가락과 손바닥에서는
새 말들이 비둘기나 꽃처럼 생겨나오곤 하였다.
말들은 점점 커지고 빨라졌다.
나는 눈으로 탁구공을 따라가듯 부지런히 고개를 움직여 두 청년의 논쟁을 따라갔다.
그들은 때로 너무 격앙되어
상대방 손과 팔 사이의 말을 장풍으로 잘라내고
그 사이에다 제 말을 끼워 넣기도 하였다.
나는 그들의 논쟁에서 끓어 넘친 침들이
내 얼굴로 튈까 봐 자주 움찔하였다.
고성이 오갈 때에는 그들도 꽤나 시끄러웠을 것이다.
운전기사가 조용히 좀 해달라고 소리칠까 봐
가끔은 눈치가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버스 안에 두 사람 말고는 딴 승객은 없는 듯 조용하기만 했고
이따금 손바닥 서걱거리는 소리만 들려왔다.


찰칵, 찰칵, 찰칵. 김기택은 마치 카메라처럼, 감정이나 감상에 흐트러짐 없이 미세한 부분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볼 때, 숨 쉬는 것도 잊었을 듯싶게 본다. 보려고 태어난 것처럼 본다. 거의 들여다본다. 그렇게 포착해서 김기택이 보여주는 사물과 정황은 실제로 눈앞에 놓인 듯 생생하다.

수화는 말을 못하거나 듣지 못하는 이들이 손 모양이나 팔 동작을 이용해서 하는 의사 표현 방법이다. 시인은 본다. 집중하여 서로의 말을 보는 이들을. 그들의 소리 없이 격렬한 대화를. 우리나라 수화는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언어학적 체계화가 미흡하다고 한다. 우리 신체언어를 한층 섬세하고 풍부하게 만드는 일이 유혹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열 살만 더 젊었어도!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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