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기자 5·18 취재수첩도 세계유산 된다… 김영택-최건 씨 기록물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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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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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민주화운동 당시 동아일보 목포 주재기자로 활동했던 최건 씨.
5·18민주화운동 당시 동아일보 목포 주재기자로 활동했던 최건 씨.
‘1980년 5월 18일 오후 4시 광주일고 인근 횡단보도. 계엄군 트럭 11대가 도착했다. 트럭에서 공수부대원 250여 명이 뛰어내렸다. 반대편에는 전남대 학생 7, 8명이 “계엄 철폐” 등의 구호를 외쳤다. 길을 가던 시민들은 웅성웅성하며 쳐다봤다. 계엄군 트럭 쪽에서 “시민 여러분 돌아가십시오”라는 내용의 안내방송을 했다. 안내방송이 한 번 나온 뒤 공수부대원들이 일제히 쫓아오면서 곤봉을 휘둘렀다. 길을 가던 신혼부부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참혹하게 구타당했다.’

당시 동아일보 광주 주재기자로 활동했던 김영택 씨(75)가 취재수첩에 기록한 내용이다. 김 씨는 같은 날 오전 광주 금남로에서 대학생들과 경찰이 충돌하는 것을 목격했다. 하지만 공수부대원들 출동과 함께 참혹한 진압작전이 시작되자 “반드시 기록물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5·18민주화운동 취재수첩을 13일간 작성했다.

김 씨는 계엄군이 사무실로 숨어든 대학생이나 시민을 실신할 때까지 구타해 연행하거나 옷이 찢겨 반(半)나체가 된 20대 여성을 조롱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후 10일 동안 비극의 5·18 현장을 취재수첩에 남겼다. 지난해까지 국민대 강사로 활동했던 김 씨는 “역사적 비극을 기록하고 남겨 반드시 진실을 밝히고 싶었다”며 “내가 작성한 5·18민주화운동 취재수첩이 유네스코 기록물에 등재돼 그 책임을 다한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택 씨
김영택 씨
‘5·18 유혈진압이 시작된 이후인 같은 달 20일 오후 2시. 전남 목포지역으로도 시민군이 트럭이나 버스를 타고 몰려들었다. 시민군은 목포역 광장에서 매일 시위를 이어갔다. 계엄군이 시민군을 무력 진압한 이후인 같은 달 29일 옛 전남도청 상무관에 갔다. 신원이 확인된 시신 80구가 있었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시신도 많았다.’

5·18 당시 동아일보 목포 주재기자로 활동했던 최건 씨(72)가 10여 일간 기록한 5·18취재수첩 내용이다. 최 씨가 작성한 취재수첩도 유네스코에 등재된 5·18 기록물들 중 일부다. 최 씨의 부인 조한금 씨(68)나 손위 처남 조한유 씨(74)가 쓴 눈물 어린 5·18 일기장도 유네스코 기록물에 포함됐다.

5·18 기록물 가운데 김대중 전 대통령 재판 기록, 당시 기자수첩 등 9개 주제로 4200권, 85만8000페이지가 있지만 취재수첩이나 일기는 10여 점 미만인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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