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경수술이 에이즈 감염률 낮추는 이유는…”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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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연구진 세균분석 결과 발표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사는 김모 씨(43)는 지난 주말 열두 살인 아들과 비뇨기과 병원을 찾았다.
아들에게 포경수술을 시켜주기 위해서다.
김 씨는 “위생상 좋다는 주위 사람들의 권유로 포경수술을 시키게 됐다”고 말했다.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김대식 교수가 2002년 1월 영국 ‘국제비뇨기학회지’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국내 포경수술 시술 비율은 60%에 이른다.
단지 위생에 좋아 보이는 포경수술이 혹시 큰 병도 막아주지 않을까?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바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이다.》

포피밑 점막 들어내면 세균생태계 달라져
공기노출된 에이즈 바이러스 오래 못살아

○ “포경수술이 에이즈확률 낮춘다” 이견 없어

혐기성 세균(왼쪽)이 몸 안에서 면역활동을 하는 랑게르한스 세포(오른쪽)를 활성화하면 이 세포는 또 다른 면역세포인 ‘CD4+’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돕는다. 포경수술은 남성 생식기에 사는 혐기성 세균 수를 줄여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혐기성 세균(왼쪽)이 몸 안에서 면역활동을 하는 랑게르한스 세포(오른쪽)를 활성화하면 이 세포는 또 다른 면역세포인 ‘CD4+’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감염되는 것을 돕는다. 포경수술은 남성 생식기에 사는 혐기성 세균 수를 줄여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한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세계보건기구(WHO)와 프랑스 국립보건의학연구소(INSERM) 공동 연구진은 2006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포경수술을 한 남성이 에이즈에 감염될 확률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65% 더 낮다고 발표했다. 이 연구 결과는 그해 12월 ‘미국공공과학도서관의학지’에 실렸다. 이에 앞서 2000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도 비슷한 연구 결과가 나왔다.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부인이 에이즈에 감염된 187쌍을 조사한 결과 포경수술을 하지 않은 남편 137명 중 16.7%는 에이즈에 감염된 반면 포경수술을 받은 남편 50명은 단 한 사람도 에이즈에 걸리지 않았다.

포경수술을 두고 ‘위생적이다’와 ‘성감을 낮춘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지만 에이즈에 걸릴 확률을 낮춘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편이다. 미국 주간지 ‘타임’은 2007년 그해의 10대 의학혁신 중 하나로 에이즈를 예방하는 포경수술을 꼽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는 지난해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신생아에 대한 포경수술을 권장하는 방법을 고려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동안 포경수술이 어떻게 에이즈를 예방하는지에 대해선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 혐기성 세균이 면역세포 역할 바꿔


올 들어 포경수술이 에이즈 감염을 막는 이유가 밝혀졌다. 미국 존스홉킨스대 의대와 비영리연구단체인 응용유전체학연구소(TGen) 공동 연구진은 이달 6일 ‘미국공공과학도서관의학지’에 “포경수술이 남성 생식기의 세균 생태계를 바꿔 에이즈에 걸릴 확률을 낮춘다”고 발표했다.

연구진은 포경수술 전후로 남성 생식기에 있는 세균 40종을 분석했다. 그 결과 포경수술을 한 후 혐기성 세균 수가 줄어든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혐기성 세균은 산소를 싫어하는 세균이다. 반면 산소를 좋아하는 호기성 세균은 포경수술 이후 수가 증가했다. 김종성 김종성비뇨기과병원 원장은 “포경수술은 생식기 포피 밑에 있는 점막을 들어내는 것”이라며 “점막에 침투하는 에이즈 바이러스나 혐기성 세균은 공기에 노출된 환경에서 오래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서식환경이 달라지면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오래 살지 못하고 결국 에이즈 감염률도 떨어진다는 것이다.

더 직접적인 원인은 그 다음이다. 연구진은 혐기성 세균이 감소하면서 에이즈 바이러스가 몸속으로 침투하는 확률도 크게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이는 면역 세포의 하나인 랑게르한스 세포와 관련이 있다.

랑게르한스 세포는 평소에는 몸 안에 침입한 바이러스를 잡아먹으며 우리 몸을 보호한다. 하지만 혐기성 세균이 늘어나 이 세포를 활성화하면 갑자기 달라진다. 에이즈 바이러스는 또 다른 면역세포인 ‘CD4+’를 감염시키며 우리 몸속에 침투하는데 혐기성 세균이 활성화시킨 랑게르한스 세포가 이 과정을 오히려 돕는 것이다. 포경수술을 통해 혐기성 세균 수가 줄어들면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도 낮아진다.

진길남 비뇨기과개원의협의회장(진길남 비뇨기과 원장)은 “포경수술을 하면 에이즈 감염률을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한 것”이라고 이번 연구를 평가했다. 대한에이즈예방협의회 관계자도 “콘돔을 사용하는 게 에이즈를 예방하는 가장 간편하고 확실한 방법”이라면서도 “포경수술을 한 집단이 그렇지 않은 집단보다 에이즈 감염률이 낮은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변태섭 동아사이언스 기자 xrock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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